[서역방랑] ② 초원의 목격자들

17세기 말에서 18세기 초까지 초원은 너무 많은 피를 흘렸던 것 같다. 그런 운명은 짐승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화살을 뚫고 달리는 말을 찬미하는 이들이 쓰는 역사에 너무 익숙해져 있는 것이 아닐까? 사람도 말도, 낙타도 화살은 싫다. 정말 아무도 대변해주지 않는 짐승들을 위해 누군가 글 한편 정도는 써줘야 할 것 같다.

자유를 잃은 낙타, 자유를 실어 나르는 낙타

 
 

<낙타로 만든 성벽城壁>

 

그날 산 허리에 동료들과 함께 꼼짝없이 묶여 있었다. 앞 친구의 허리에 머리를 푹 파묻고 두꺼운 모전毛氈 아래 몸을 숨겼다. 타당, 타당. 기실 조총 따위는 무섭지 않다. 모전을 뚫고 들어와도 피부 깊숙이 박히지는 못할 것이다. 대가 굵은 화살도 먼 거리를 날아와 힘이 없다. 언제 끝날 것인가? 하지만 언제나 승리할 것만 같던 주인들이 오늘은 왠지 움츠러든 것 같다.

동쪽으로 수천리를 달려오는 중에 준가르의 깃발을 보고 달려드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그러나 저들은 계속 산을 기어오른다. 순간 두려움이 밀려온다. 어서 밤이 찾아오기를. 그런데 이게 뭔가? 옆구리를 묵직한 것이 파고든다. 처음 느끼는 고통, 커다란 쇠덩어리 공이다. 이 쇠공은 나도 도저히 견딜 도리가 없다.
 
‘아, 어머니 저는 천국의 문을 두드리고 있어요.’
 
지금 천국의 문을 두드리고 있는 나는 누구인가? 나는 낙타다. 서방에서는 박트리아 낙타라고 부르는 혹이 둘 달린 낙타다. 2미터의 키, 천 근의 거구를 가진 나는 초원에서도, 사막에서도 가장 큰 짐승이다. 가시덩굴도 가리지 않고, 사막에 듬성듬성 난 풀에도 감사하며 지냈다. 나는 말보다 몇 배의 짐을 지고 다닐 수 있고, 물이 없이도 몇 날을 견딜 수 있다. 나는 천막, 피륙, 무기, 양식을 나르며 알타이를 넘고 모래언덕을 지나 이곳 울란 부퉁까지 왔다. 그리고 칸의 명령으로 이제 다리가 묶여 엄폐물이 되어 누워있다.

 
그날 낙타가 본 모습은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양군은 화살을 비 오 듯 퍼부었고, 만주군의 좌익은 숫자를 믿고 계속 돌진했다. 낙타들의 주인인 준가르 군대는 너무나 지쳐 있었지만 완강하게 저항했다. 말과 사람들이 죽어 나가고, 동료들도 죽어나갔다. 화살도, 총알도 무섭지 않았지만 대포는 견딜 재간이 없었다.
 
다행히 만주군의 우익 앞에는 늪지대가 가로막고 있었다. 말도 대포도 그 늪지대를 쉽게 통과하지 못할 것이다. 밤이 오자 양측은 일단 군대를 물렸다. 칸은 북쪽으로 퇴각했다. 살아남은 우리 낙타들도 퇴각했다. 1690년. 울란 부퉁 초원까지 준가르의 갈단 칸을 따라온 낙타는 만주의 칸 강희의 군대에게 밀려 다시 서쪽으로 발길을 돌리게 된다.    
 
상대편 만주군에 속해 있던 낙타의 운명도 마찬가지였다. 무거운 양식과 침구들을 옮기고, 심지어 대포까지 옮기다가, 식량이 떨어지면 잡아 먹혔다. 살아 있는 동안의 고통의 측면에서는 준가르측 낙타보다 북경을 떠난 만주군의 낙타가 훨씬 가혹한 시간을 보냈다.  
 
17-8세기 초원에서 낙타로 산다는 것은 미결수未決囚로 사는 것처럼 불안했다. 그러나 이보다 훨씬 더 가혹한 환경이었지만 좀 더 의미 있는 역할을 부여 받은 낙타도 있었다. 그들은 다른 상황을 겪었다.

<낙타 돌격대>

 

우리는 좀처럼 뛰지 않는 족속이다. 2백 근이 넘는 천막, 두꺼운 담요, 온갖 가재도구를 싣고 사막을 걸을 수 있는 짐승은 우리 밖에 없다. 우리는 심지어 동료 말들이 먹을 풀도 싣고 다닌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 무거운 짐을 싣고 달리기까지 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눈도 녹지 않은 초원을 떠났다. 백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우리 조상들이 살던 볼가강 초원, 긴 풀이 자라는 곳이다. 아직 초원에 눈도 녹지 않은 정월, 칸은 길을 재촉했다.
 
그러나 눈 덮인 길을 달린지 한 달이 못되어 일련의 코자크 기병대를 만났다. 약탈로 유명한 짜르의 용병들이 계곡을 막고 피난민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겨울에 말은 이미 힘이 없어 달리지 못하고, 칸은 반드시 저 계곡을 통과하라고 했다. 그래서 우리를 썼다.
 
토구트 몽골의 가장 용맹한 전사들이 우리 등에 올라탔다. 그리고 계곡에서 막고 있는 이들을 향해 돌진했다. 우리들은 뛰었다. 우리의 등에는 목숨을 걸고 자유의 땅을 찾아 가는 이들이 타고 있다. 그러나 저들은 사람 목으로 장사하는 놈들이다. 저놈들은 유목민이 아니다. 화살과 총알을 뚫고 달리는 선봉에 우리가 섰다. 좀처럼 뛰지 않는 우리가 뛰었다. 토구트의 화살 한 대는 적의 목숨 하나였다. 우리가 한 걸음 다가가면 적은 두 걸음 물러났다. 그리고 길을 열었다.  

 
 
1771년 정월 볼가 토구트의 칸 우바시는 준가르로 돌아가고자 했다. 유목민은 전쟁을 한다. 자신과 가축을 지키기 위해 싸우고, 혹은 기아로 먹고 살 길이 없을 때는 에누리 없이 약탈한다. 때로는 자신의 가축을 늘리거나, 더 나아가 국가를 세우기 위해 전쟁을 한다. 허나 몽골의 칸이 용병이 된다?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다.
 
볼가 토구트는 짜르를 위해 스웨덴인들과 싸운 지 얼마 되지 않아 또 오스만인들과 싸웠다. 인구가 겨우 수십만에 불과한 부족이 남의 나라 전쟁에 수천, 때로는 수만의 장정이 차출당했다.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원래의 고향 준가르 땅으로 한겨울에 대 탈출을 감행한다. 짜르의 용병 코자크들이 흑해로 고기잡이를 떠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달리고 달려 왔는데 카자흐 초원으로 들어가는 길목을 코자크가 막아선 것이다. 그 때 토구트의 전사들은 뛸 수 없는 말을 대신해서 낙타를 타고 싸웠다.
 
시련은 끝이 아니었다. 카자흐 초원에 들어서자 다시 카자흐인들이 달려들었다. 카자흐인들은 준가르인들에게 당한 고통을 기억하고 있었다. 준가르와 같이 오이라트의 일족인 토구트가 옛 준가르의 땅으로 들어가면 다시 카자흐는 고난을 겪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토구트를 철저히 약탈하고자 마음먹었다.
 
투르가이 강가에서 다시 토구트와 카자흐의 대전이 벌어졌다. 이 때도 낙타가 말을 대신하여 선봉을 맡았고 초원이 피로 물들었을 때야 동쪽으로 가는 길을 열 수 있었다. 떨어졌다가 또 다가오고 또 다가오는 이들. 황소를 따라가는 쉬파리처럼 물러났다 몰려들고를 반복하며 피를 빨았다. 그러나 토구트는 멈추지도 않았고, 투항하지도 않았다. 누군가의 표현처럼 그들은 정말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거대한 힘에 이끌려 계속 동쪽으로 이동했다.    
 
카자흐 초원에 들어섰을 때는 눈이 녹기 시작했다. 눈이 녹을 때 초원은 진창으로 바뀐다. 발굽이 작은 말과 소는 계속 진창으로 빠져들고, 그 때 짐을 감당해야 했던 짐승은 다시 낙타였다. 굶고 쫓기는 상황에서 사람들이 기댈 곳은 낙타였다. 그리고 그들은 짐실이로서, 돌격대로서의 임무를 모두 소화해내고 인간들을 목적지로 데려다 주었다.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은 사슴이 아니라 낙타다. 거구지만 모가지가 너무 길어서 코뚜레만 하면 속절없이 끌려 다닌다. 길다란 속눈썹에 검고 깊은 눈, 뿔도 없는 나는 조물주가 세상의 순한 것들의 정수만 모아서 만든 짐승이다. 발굽이 넓어서 슬픈 짐승은 아무리 무거운 것을 실어도 불평을 하지 않는다.
 
오늘날 신강新疆성 전체의 낙타 수는 10만 마리 남짓이고, 반 세기 전에도 그 수는 10만 마리 내외였다는 기록이 있다. 실제로 준가르 군대가 1만 마리의 낙타를 울란 부퉁까지 데리고 왔다면, 자기들 목초지의 낙타란 낙타는 거의 다 끌고 왔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그 낙타로 성을 쌓았다.

<보신탕이 되다>  

 
얼마전 내몽골의 바단지린 사막에서 낙타에 관한 이야기를 몇 가지 들었다.
 
“20년 전에는 좋은 것이 450원이었고, 나쁜 것은 300원도 안 되었어. 그런데 지금은 좋은 것이 8천원이 넘어.”
“정말요?”
“정말이지.”
 
낙타 값이 20년 사이에 20배가 올랐다는 것이다. 물가 상승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최소한 다섯 배는 오른 것이 사실이다. 낙타 한 마리 값이 좋은 말의 두 필 값이라고 한다. 그 전까지만 해도 낙타는 이미 효용을 잃은 짐승으로 취급되어서 거의 가치가 없었다. 그런데 왜 그렇게 가격이 올랐을까?
 
“낙타고기가 양기를 보충한대. 남자들이 정력제로 먹어. 1kg에 40원이야. 옛날에는 2-3원이었지.”
 
이제 낙타는 보신탕 거리가 되었다.  
 
그리고 내몽골 얼치나기에 섬처럼 남아 있는 토구트 공동체의 도르지 아저씨에게서 낙타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낙타가 토구트들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말했다.
 
“말을 못 키워. 경제성이 없어. 이제 초지는 없어지고. 낙타는 가시나무도 먹으니까 키우지. 겨울에도 사막에서 마른 풀을 먹으니까. 이제 여기 말은 없어. 낙타도 없어지겠지. 그 때는 다른 일을 찾아야지.”  
 
풀이라고는 가뭄에 콩 나듯이 나 있는 사막의 오아시스. 붉은 사막 버드나무들만 모래 언덕을 덮고 있는 곳에서 아저씨와 나는 낙타를 잡으러 갔다. 나보다 8~9배는 무거운 녀석들, 게다가 수십 마리나 되는 무리가 이방인을 보고는 무작정 달아난다. 기린처럼 기다란 목을 세우고, 종지만한 검은 눈을 휘둥그래 뜨고 이방인을 감시한다. 다가가면 달아나고, 또 다가가면 달아난다. 사막에서 자네를 이길 수 있을 소냐. 사막의 기린아여.    

숫말은 전쟁이 무섭다

 
“몽골의 거세마들이 야위었다고 한다. 우리는 각자의 나라를 이끌고 알타이를 넘어 이동하면서 각자의 군대를 정비하고 그들을 끌고 가서 알타이의 남쪽에 이르기까지 개싸움을 싸우며 가서 (저들 말의) 배가 들어가게 하고, 몽골의 거세마들을 지치게 하여 그들의 얼굴 위에 화살을 퍼붓자.”(<<몽골비사>>)
 
 

<거세마를 위하여>

 
나이만의 타양 칸이 칭기스칸과 싸울 때 자신들의 거세마는 살이 쪘고 몽골의 말은 여위었다고 판단하고 한 말이다. 이렇게 초원에서 전쟁에 나가는 숫말은 새끼를 낳을 수 없는 말이었다.
 
왜 거세된 말을 쓰는가? 거세하지 않으면 발정 난 말끼리 얽히고, 이렇게 본능에 충실한 말들을 가지고는 초식 동물의 본능과는 가장 어울리지 않는 전쟁터를 누빌 수 없기 때문이다. 말을 거세하는 습관은 분명히 말을 집단적으로 사육하는 초원에서 생겼다. 초원의 말들은 무리를 지어도 서로 싸우지 않고, 암말을 보고 날뛰지 않고, 야습을 할 때 울을 소리를 내지 않으며, 극한 조건에서도 얌전히 사람의 말을 듣는다.
 
초원에서는 언제 싸움이 벌어질지 모른다. 싸움이 벌어지면 말은 갑옷이나 활보다 더 중요한 전쟁 도구다. 상대를 죽이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살아남는 것이다. 초원에서 목숨을 부지하자면 내구력이 강하고 순종적인 말이 절대적이다. 스키타이나 몽골인들이 대량으로 말을 거세한 것은 분명 전쟁 때문이었을 것이다. 농경사회인 아랍 세계에서는 아예 전투용으로는 암말만 쓰되 수말을 거세하지 않는다. 그러니 거세마는 분명 초원의 전통이다.
 
하지만 말의 입장에서 보면 참으로 기가 막히는 일이 아닌가. <<춘추좌전>>에 “발정 난 소나 말이 서로 유혹하여 끌어들일 수 있는 거리도 아닌데(風馬牛不相及), 왜 우리 나라로 쳐들어 오셨습니까?”라는 초나라 명신의 명언이 기록되어 있다. 비록 비유적이지만 말이나 소는 일단 발정 나면 국경을 가리지 않고 욕구를 해결하는 짐승이다. 그래서 어느 문명권이든 종마種馬는 남성의 원시적인 욕구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진다.    
 
봄에 암말 냄새를 맡고 흥분한 종마가 킁킁거리는 모습은 자연이 준 욕망과 자연 자체가 가장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풍광 중 하나다. 그 욕망의 정수가 뿜어져 나와 새 세대를 열 것이다. 새끼 양, 송아지도 다 예쁘지만 천방지축 뛰어 노는 망아지 만큼 귀여운 짐승은 쉽게 찾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놈이 수컷이라면 초원에서는 거세를 피하기 어려웠다. 종마가 되는 몇 마리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이제 말을 타고 전쟁을 하는 시기는 지났다. 어떤 곳에서는 전쟁을 벗어나 자연의 품성으로 돌아가는 말들도 있다. 그러나 몽골인들은 아직도 전쟁에서 조상들의 목숨을 지켜주었고, 오늘날도 떼어낼 수 없는 친구인 말이라는 동물에 대해서만은 보통 가축과는 다른 애틋함을 품는다. 초원의 과거와 현재를 돌아보기 위해서 말을 타지 않을 수 없기에, 말을 대할 때 응당히 취해야 할 몇 가지 예의를 갖추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말은 눕고 싶다>

신강 보르탈라 아르샤티 초원에는 2011년 10월 새신랑이 될 초루가 산다. 초루 바투르. 돌맹이 같은 용사라는 뜻이다. 한쪽 눈을 감고 봐도 몽골 사람이다. 검은 눈썹에 옆으로 쭉 찢어진 눈. 콧날은 쭉 뻗어 멋있지만 그 높이만큼 튀어나온 광대뼈가 그가 벌판에 사는 사람임을 여실히 보여준다. 투박하고 직선적인 말투와 굵은 손마디가 꽤나 어울리는 젊은이다. 하지만 몽골인답지 못하게 술을 마시면 비틀거리고, 시커먼 얼굴에 걸맞지 않게 수줍음이 넘친다.
 
초루는 앞으로 이 글에서 다시 등장할 울란 바투르의 이종 사촌이다. 울란 바투르는 이종사촌 집에 나를 던져두고는 볼일을 보러 갔다. 다 큰 남자들끼리 곰살맞은 대화가 있을 리 없다. 하는 이야기는 말이다.
 
“말 탈 줄 아나?”
“안다.”
 
초루가 마구를 챙겨서 나온다. 허리가 날씬하고 눈망울이 순한 검둥이한테 마구를 채운다. 그러나 이미 마구를 채워놓은 누렁이도 있었다.
 
“채워놓은 말이 있는데?”
“이놈은 말 안 듣는다. 고집이 세다.”
“너무 노회한 녀석인가?”
“검둥이가 7살 누렁이는 13살.”
 
내가 원래 타고자 했던 고집쟁이 누렁이는 어떤 놈인가? 한참 이발을 하지 않아서 갈기가 무릎까지 내려오고, 눈도 이마에서 흘러내린 갈기가 가리고, 꼬리는 땅에 끌린다. 짧고 굵은 다리와 목, 왠지 웃음이 나오는 외모 때문에 녀석이 질주하는 모습이 상상이 안 된다. 놈은 거의 걸어 다닌다. 술 취한 주인 아저씨를 태우고 천천히 걸어 다니는 장발족이다.  
 
누렁이가 보기에 나는 자기 등에 탈 자격이 없다. 어쩔 수 없이 순둥이 검둥이를 먼저 타고 초원을 한 번 배회했다. 검둥이는 순하고 영리해서 안장에 앉으면 마치 편안한 의자에 앉은 듯하다. 그래도 누렁이에 대한 미련이 가시지 않았다.  
 
2011 년 봄에는 유난히 눈이 많았다. 아직 산 중턱에 눈도 녹지 않은 4월 초, 초원에 나가봐야 양들은 없는 풀을 찾아 바삐 움직여서 목동이 여유롭게 즐길 틈도 없다. 하지만 곧 다가올 봄을 위해 양들을 훈련시킨다. 초루와 나는 양몰이를 나섰다. 풀은 별로 없지만 햇볕은 좋으니까.  
 
“누렁이 한 번 태워줘.”
 
초루는 빙글빙글 웃는다. 그래도 걱정하는 표정은 아니다.
 
“뛰지 마라. 떨어뜨린다.”
 
웃음으로 대답했다.
 
“말 뒤에 가지 마라. 찬다.”
 
초루는 과장된 몸짓으로 말의 발길질을 흉내 낸다. 이 누렁이가 말인지 상전인지 분간이 안 간다.
 
“알았다.”
 
초루는 어려운 일을 내게 맡긴다.
 
“나는 양 따라 갈 테니 놀다가 천천히 와라.”  
 
논다고? 일단 타고 보니 녀석이 나를 태우고 논다. 이놈은 정통 몽골 말이다. 단단하게 뭉친 체격이며 굵은 목에다, 고개를 달랑거리지 않는 폼도 좋다. 그래 얼마나 고집이 센가 한 번 보자. 기선을 잡기 위해 배를 조이고 힘을 준다. 한 번 거칠게 고삐를 당겨주고 말을 걸었다.
 
“가자.”
 
반응이 없다. 주인이 아닌지 이미 알고 있는 녀석. 어르고 달래도 꼼짝 없다.
 
“뛰어(츄)!”
 
어림 없다. 발로 배를 한 번 찬다. 그제야 가소롭다는 듯이 움직이는 녀석. 내리막길이든 오르막길이든 고삐와 상관없이 제 길을 간다. 그 고집을 이길 수가 없다. 다만 저 멀리 초루의 양떼만 보고 기어가듯 천천히 간다.
 
하지만 이 중늙은이 말은 세상사를 많이 안다. 활을 보면 얼른 멀리 물러난다. 화살을 얹을 때는 항상 옆으로 비켜나고, 또 시위 소리가 들리면 황급히 더 멀리 달아난다. 활과 화살이 무엇인지 아는 까닭이다. 그보다 어린 말들은 시위소리를 들어도 그냥 풀을 뜯는다.
 
누렁이는 거세하지 않은 말이다. 놈은 아직 아버지가 될 자격이 있다. 그래서 놈은 거칠고, 고집이 세다. 그 놈은 아직 남자다.
 
사람들은 오해하고 있다. 잔등이 넓어서 올라탈 수 있지만, 사람이 타라고 잔등이 넓어진 것은 아니다. 화살이 쏟아지는 전장을 직선으로 질주하지만 겁이 없어서 전진하는 것은 아니다. 거세당하고, 본성이 꺾이고, 오랜 시간 동안 인위적으로 길들여진 것이다. 말은 원래 겁쟁이다. 그리고 직선으로 달리지 않는다. 모든 초식동물은 심하게 방향을 꺾으며 달린다. 아무리 뛰어난 기수도 본성 그대로 마구잡이로 방향을 바꾸는 말을 타고 달리기는 어렵다.
 
‘중국의 말은 타타르(몽골)의 말 울음소리만 들어도 달아난다.’는 표현이 있다. 중국의 말도 몽골에서 왔는데 왜 그렇게 되었을까? 실제로 군집생활에 단련되지 않고, 화살을 뚫고 달리는 경험이 없는 말들은 전쟁에서 무용지물이다. 그 수많은 몽골의 말들이 전쟁터를 누볐다는 것은 생식을 못하는 수컷들이 초원을 뒤덮었다는 이야기다. 화살에 동료 말이 쓰러져도 몽골의 말은 앞으로 달린다. 그들은 그렇게 길들여져 있다. 용감해서가 아니라 길들여졌기 때문이다.
 

<용감한 말의 슬픔>

 
내몽골 시린골 초원에서 만난 슈더의 말은 보르탈라의 누렁이와는 천양지차였다. 서구산 경주마와 몽골마의 혼혈인 녀석은 현지 말보다 키가 한 뼘은 더 크다. 가는 목, 날씬한 허리와 엉덩이, 그리고 긴 다리와 짧고 윤기 나는 털. 과천 경마장에서나 보던 그런 말과 비슷하다. 그러나 녀석은 거세한 경주마다. 이름도 ‘강가르’, 빨리 달리는 녀석이라는 뜻이다. 슈더가 계속 주의를 준다.
 
“이놈은 너무 빠르다. 위험하다.”
 
말이 빠른 것이 대순가. 말은 빨라야지. 고삐를 넘겨받고 바로 호기심이 발동했다.
 
“강가르, 츄!”
 
녀석은 민감하다. 옆구리를 툭 치자마자 뛴다. 몇 발짝 만에 시속 50km에 도달하는 녀석. 한치의 오차도 없이 전속력으로 직선으로 뛴다.
 
아차. 이제 유목은 사라졌다는 것을 잊었다. 시린골 남부 초원은 마치 과수원처럼 철조망이 쳐져 있다. 겨우 200m 앞에 철조망이 가로막혀 있을 줄이야. 갑자기 철조망이 등장하자 강가르는 전 속력에서 장애물을 몇 미터 앞두고 몸을 비틀며 멈춰 선다. 초보 기수는 말 위에서 곧장 내동댕이쳐졌다. 다른 선택은 없었다. 잘 생기지는 못해도 단단하게 뭉쳐진 한반도산 몸뚱이는 그래도 잘 견뎌낸다.
 
강가르는 분명히 잘생기고 빨랐다. 발길질도 없는 순한 말이었다. 그러나 그 거세한 경주마의 역동적인 속도에도 불구하고 보르탈라 초원의 누렁이 같은 늠름함과 현명함은 보이지 않았다. 유원지 마다 이런 키 크고, 말끔하게 털을 손질한 잡종 거세마들이 넘친다. 젊은이들은 돈을 받고 말 달리기를 보여준다. 날렵한 기수를 태운 말 대여섯 마리가 함께 지축을 울리며 달리는 모습은 장관이다. 하지만 약주를 거나하게 하신 초루의 부친을 태우고 느릿느릿 집으로 오는 털보 누렁이 같은 멋은 없다. 말은 몽골인의 친구다. 거세하지 않은 수컷은 자연의 선물이다. 울란 바투르가 한 말이 떠오른다.
 
“몽골인은 말을 먹지 않는다. 아침에 타던 것을 저녁에 먹다니 말이 되나? 카자흐 녀석들이나 먹지.”
 
초루는 이렇게 말했다.
 
“말이 죽으면 목은 잘라서 산 마루나 높은 나무 위에 올려 놓는다. 말이 들판을 바라볼 수 있게.”  
 
또 어떤 몽골 무당 할아버지는 내게 누워 있는 말 장식이 있는 주머니 칼 하나를 주며 이렇게 말했다.  
 
“시절이 좋으면 사람도 쉬고, 말도 쉰다는 뜻이야. 그래서 이렇게 누워 있는 말을 조각하지.”
 
이렇게 초원 사람들은 누워 있는 말을 좋아한다. 양치기들의 말은 대부분 걸어 다닌다. 원래 말은 활시위 소리를 들으면 달아난다. 사람도 짐승도 본성은 그렇다. 그러나 우리들이 들어가는 초원과 사막에서는 낙타도 말도 고된 시간을 보냈다. 그들은 화살이 날아드는 소리를 참고 앞으로 달려야 했다.
 
 
말도 낙타도 전쟁만 그치면 다시 본성으로 돌아가는데 사람은 왜 그렇지 못하는 것일까? 말과 낙타가 역사를 기록한다면 난마 같은 과거사의 실마리가 조금은 풀릴지도 모르겠다. 광대한 서부에서 사람이 가끔 말과 낙타의 눈을 가질 수 있다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