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私見] 누가 성찰을 두려워하랴

반성과 성찰도 유행이 된 시대, 아이들에게 ‘자기이해 지능(Intrapersonal Intelligence)’ 혹은 ‘내면 지능’을 촉진시키기 위한 교육을 시키고 자기성찰 능력도 스펙이 된 사회. 혼잣말로 표상되는 자기성찰이 아닌, 타인과의 불화를 통해 깨달음에 접근해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하라 가즈오의 다큐멘터리 <가자 가자, 신군>이다.

은밀한 쾌감

(본 리뷰에는 <가자 가자 신군>(하라 가즈오, 1987)과 <백두산 호랑이를 찾아서>(2008, 구본환)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성찰’에 신물이 난다. 바야흐로 성찰과 반성도 트렌드인 시대다. 나부터도 지지 않고 블로그나 각종 잡글 말미에
강박적으로 성찰 하나쯤 달아 두곤 했다. 가령 누군가를 신나게 씹고도 그날의 일기장 말미에, “아! 그의 단점이 실은 나의
어두운 면을 적나라하게 비추었기에 그리도 짜증이 났던 것은 아니었던가!”라고 적는 식이다.

 
이러한 낯간지러운
깨달음과 반성에는 은근한 쾌감이 배어있다. 성찰에도, 세상 많은 것들이 그러하듯, 이득이 있다. 예를 들어 외부의 실질적인 보상이
부재할 때, 별 수 있나. 나는 자주 스스로에 대한 깨달음을 만들어낸다. 특히 대가 없는 노동을 해야만 할 시기에, 유달리 나
자신에 대해 ‘깊이’ 깨닫는다. 왜냐하면 이 노동이, 좌절이, 짜증이, 슬픔이 ‘자아 발견’, ‘자아 성장’이라는 무형의 무언가를
남겼다고 여기는 게 덜 억울하기 때문이다.

 
즉, 착취에 저항하지 못할 바에야 악착같이 월급 대신 자아라도 찾아서
400만원(산티아고 순례길 비용) 아꼈다고 생각하고 싶은 심정인 것이다. 그러므로 ‘아픈 만큼 성숙한다’는 표현에는 성숙마저도
없다면 고통의 값어치를 어디서도 찾을 수 없다는 서글픔이 있다.

 
한편으로는 속된 말로 남 까는 게 아니라 내가 나를
까는 것이기에 위협적이지 않다. 가령 아르바이트비가 제때 입금되지 않아도 따지지 못하고 전화기만 쥐었다 놓았다 하는 습관에 대해
성격적, 계급적 자기분석을 하염없이 하는 동안에는, 항의 전화를 하지 않을 수 있다. 외부의 죄악보다 내부의 치졸함을 꼼꼼하게
점검하는 결벽증은, 종종 무력감과 회피에 대한 우아한 알리바이다.

 
한 마디로 너도 나도 안전하게 성찰한다. 마치
실어증에 걸린 사람이 묵언 수행을 하는 것처럼, 거식증에 걸린 사람이 단식 투쟁을 하는 것처럼, 반성하면서도 나는 도무지 아프지가
않다. 자기 성찰의 뜻이 자신을 두루두루 살피고 살핀다고 할 때, 어떤 부분을 그리도 꼼꼼히 살피는가. 어쩌면 결코 보고 싶지
않은 마음의 구석, 죄의 중심 바로 주변부만을 찬찬히 살피고 살피며 단지 핥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 할짝거림에 밀려 정작 잠시
떠올리기만 해도 고개를 저어 털어 버리게 되는 지난밤의 죄는 마음 깊은 곳으로 꺼진다.

 
나에게 성찰에 대해
생각하게끔 했던 영화는 주인공 스스로가 성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주인공이 집요하게 타인에게 성찰을 촉구했던 영화들이다.
죽어도 뉘우치지 못하는 인간들에게 반성하라며 침범하는 자의 이야기, 이에 끝끝내 방어하는 자의 이야기. 그 팽팽한 긴장감과
뜨거움이 새삼 알려주는 바는, 성찰에는 최소한 두 명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섹스 앤 더 시티>의
주인공 캐리는 관계에서 태어난 불화를 타인과의 부딪침이 아닌 담담한 내적 언어에 담고, 이 속말은 드라마에서 내레이션의 형태로
나타난다. 그 침대 머리맡과 블로그의 깜빡이는 커서에 놓인 습관적인 내성(內省)의 안일함을 깨뜨리는 것은, 타인의 찌름이다.
반성을 촉구하는 촌스러운 발악과 침범, 그 송곳같이 날카로운 찌름을 통해서 차마 의식과 언어에 올리지 못했던 마음의 심연이 겨우
손톱 끄트머리만큼 드러난다.

거대한 부인(否認)

<가자 가자, 신군 ゆきゆきて 神軍>(1987)은 하라 가즈오가 만든 다큐멘터리로, 태평양 전쟁 당시 뉴기니 전선에 파병됐다 전멸당한 일본군 가운데 오스트레일리아군의 포로가 되어 기적적으로 귀환한 ‘오쿠자키 겐조’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그는 촬영 전 이미 세 건의 전과가 있었다. 부동산업자 상해치사로 10년, 황궁 신년 축하식에서 히로히토 천황에게 파칭코알 투척으로 1년 9개월, 천황의 얼굴을 포르노 사진에 합성 유포하여 1년 2개월 간 복역했다.
 
* 쇼와 천황(히로히토, 1901년 4월 29일~1989년 1월 7일)은 일본의 제124대 천황으로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일본 제국 제국군 최고지휘관이자 군 통수권자였으나, 1945년 8월 패전 이후 연합군 사령관 맥아더와의 정치적 거래를 통해 전범으로 법정에 세우지 않으며 ‘천황제’ 역시 존속시킨다는 약속을 받는 대신 천황의 신격을 부인하는 ‘인간선언’을 하였다. 오쿠자키의 ‘천황파칭코사건(1969)’는 일본에서 천황을 향한 거의 최초의 테러였다.
 
영화는 독립공병대 제36연대(獨立工兵隊第36連隊)가 전쟁터에서의 식인(食人) 사실을 은폐하기 위하여 종전 선언 이후임에도 불구하고 두 명의 병사를 처형했다는 의심을 밝히기 위해, 오쿠자키가 유족과 함께 당시 일본 군인들을 찾아가 진실을 추궁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결국 오쿠자키는 자신에게 인육 먹을 것을 강요했던 상관의 아들을 총으로 쏴 중태에 빠뜨려 살인미수로 징역 12년을 살게 되는 것으로 영화가 끝난다.
 
전체적으로 영화는 그가 당시 일본군들을 찾아가는 장면의 반복인데, 매번 첫 대면이 상당히 인상적이다. 대개 시골에 거주하고 있는 전 36연대 소속 군인들은, 도시의 문구멍 달린 두꺼운 출입문이 아니라 뻥 뚫린 무방비의 오래된 집에서 오쿠자키의 방문을 ‘당한다’. 예컨대 대청마루에서 메리야스 바람에 수박을 먹다가, 양복 차림에 소박한 선물을 들고 갑작스레 나타난 저승사자 같은 남자에게, “당신은 요시자와(처형당한 상등병)가 총살당하던 자리에 계셨습니까?”라는 질문을 듣는 식이다.
 
질문을 듣지 못한 사람이라면 신세를 진 회사 동료가 명절이라고 선물을 사들고 온 줄 알 정도로 저 첫 대면은 자연스러우며, 때문에 오싹하다. 뒤이어 카메라가 침투해 들어와 이 모든 장면을 촬영한다. 심지어 병실까지 찾아가 거의 죽어가는 사람에다 대고 다음과 같이 말한다.
 
“당신은 천벌을 받고 있습니다. 야마다상이 한 짓 탓이랄까요? 멀쩡히 살 수도 있는데 이 지경이잖아요. 전쟁에서 죄가 있는 사람은 아무렇지도 않게 평화로이 살 수가 없는 거지요.”
 
이 방문 앞에서 사람들은 각양각색의 모습을 보인다. 위의 야마다처럼 병환으로 한마디도 못하고 누워서 손만 꼼지락거리기도 하고, 예의 바르게 무릎 절을 하며 손님을 맞이하기도 하고, 주거침입이라며 몸싸움을 하기도 한다.
 
그의 방문에 직면하여 제각각 다른 반응을 보이지만 모든 이들은 공통적으로 방어적이며 거짓으로 상황을 모면하려 한다. 여섯 명이 총살 집행위원이었는데 그중 대다수가 참여하지 않았다거나 자신의 총은 불발이었다고 하고, 자신들은 다만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거나 ‘과거를 잊자’거나, 심지어 총살당한 병사들은 탈영병이었으므로 유족들에게 부끄러운 줄 알라며 되레 호통을 치기도 한다.
 
반성을 촉구하는 오쿠자키와 이에 맞서 방어하는 이들 간의 관계를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있다. 아들과 며느리가 운영하고 있는 불고기집에 얹혀사는 위생병을 찾아갔을 때이다. 오쿠자키는 장사 준비로 분주한 며느리가 귀찮다는 표시를 역력히 하며 “장사가 큰일인데!”라며 짜증을 내면 “형제 잃은 게 더 큰일이지요(당시 유족과 함께했다)”라 응수하고, 노인이 된 위생병이 절룩거리며 나와 “나는 허리가 아파요”라고 하면 “죽은 것보다는 낫지요”라 답한다. 참다못한 며느리가 곧 손님이 온다며 이들을 쫓아내자 그는 소리친다.
 
“우리도 중요한 손님이다!”
 
‘중요한 손님’이라는 표현은, 그가 비단 전 일본군뿐 아니라 천황 히로히토의 책임을 묻지 않음으로써 자신들의 전쟁 책임, 식민지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던 전후 일본사회의 ‘거대한 부인(否認)’을 방문하는 중요한 손님임을 환기시킨다. 그렇다면 과연 그는 이 지독한 부인을 해제할 수 있을까.  

성찰과 방어

결국 집요한 방문에(여기는 오쿠자키뿐 아니라 가학적으로 카메라를 들이대는 감독도 포함된다), 퇴원한 야마다가 진실의 일부를 말한다.
굶주림이 극에 달하자 ‘풋내기’부터 하나씩 잡아먹었고, 수가 줄수록 자신이 잡아먹힐 확률이 높아졌음에도 결국 살아남았다는
것이다. 이 말은 표현되지는 않았으나 결국 그가 경쟁에서 이겨 다른 이들을 잡아먹었을 가능성을 암시한다. 당시 5명의 잔류병 중에
야마다는 유일한 생존자였다.

 
이 충격적인 이야기를 하면서도 야마다는 줄곧 ‘풋내기’들을 잡아먹은 이유가 그들이
자기만 알고 전체에 도움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거나, 인간이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일들이 있는 거라며 담담한 투로
말한다. 그리고는 하반신 마비라 방광을 조절할 수 없어 오줌이 줄줄 샌다며 화장실에 갈 채비를 한다. 바지를 걷자 의족 같은,
아무런 감각을 느낄 수 없는 다리가 드러난다.

 
그 소름 돋는 초연함과 완전한 무감각은 관객에게마저도 식인이라는
금기가 불러일으키는 역겨움을 망각케 할 정도로, 틈 없이 단단하다. 앞서 인물들이 자신의 잘못을 부인하기 위하여 비굴하거나 도리어
역정을 냈던 것과 달리, 야마다에게는 감정이 제거되어 있다. 껍질만 남은 그의 몰골은 단순한 뻔뻔함이나 죄책감의 부재 수준이
아니라 ‘성찰과 반성이 과연 가능한가’라는 회의를 품게 한다.

 
영화는 한바탕 눈물바다와 사죄 없이, 그 카타르시스
없이, 오쿠자키가 반성하지 않는 상관의 아들에게 총을 쐈다는 소식으로 끝난다. 또한 2005년 MBC에서 광복 60주년 특별기획을
제작한 <천황의 나라 일본>를 보면, 위의 사건으로 12년간 복역을 마치고 어느덧 85세가 되어 시립요양원에서 지내고
있는 오쿠자키가 치매에 걸렸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히로히토는 죽을 때까지 아무에게도 단 한마디도 사과하지 않았어”라고 말하는
모습이 나온다. 그는 그해 사망하는데 결국 그의 ‘반성 촉구 여정’은 평생에 걸쳐 실패로 돌아간 셈이다.

 
오쿠자키의
삶 자체가 성찰과 방어의 대결전이었다. 타인과의 관계도 그랬지만 자신과 자신과의 관계도 그러했다. 그는 히로히토 관련 정치적인
범죄와 무관한 첫 살인을 자신에게 주어진 ‘천벌’이라고 생각한다. 인생을 살면서 누구도 죽이고 싶지 않았으나 자신이 뉴기니에서
자행한 식인과 같은 죄로 인해 살인죄를 저지르게 되었다고 여긴다. 살인자가 되어버리고 나서야 ‘왜 내가 살인을 저지르게
되었을까’, 깊이 성찰한 끝에 ‘전쟁’ 때문임을 알게 되고 이전의 평범했던 삶을 버리고 체제투쟁에 투신하게 된 것이다. 어찌 보면
지극히도 자기중심적인 결론이다.    

 
이러한 결론은 차치하고라도 오쿠자키 자체가 전쟁 방지와 평화를 위해
엄청나게 폭력적인 범죄를 저지르고 다니는, 상당히 모순적인 인물이다. 심지어 그는 살해 장면을 촬영하지 않겠다는 하라 가즈오
감독을 죽이겠다고 협박하는가 하면, 목적을 위해서는 어떤 수단이든 정당화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이러한
모순점과 어두운 뒤통수를 인식하지 못한다. 도리어 부동산업자를 살인한 것과 뉴기니에서의 만행 간의 관계를 깨달은 자신에게 타인의
죄를 물을 정당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듯 보인다. ‘성찰한 자’가 가지는 도덕적 우월감이다.  

‘내레이션’이라는 권력

이제 영화에서 성찰을 드러내는 주된 표현방식 중 하나인 ‘내레이션’에 내포된 권력의 문제로 가보자. 이 영역과 관련하여 <가자 가자, 신군>과 비슷한 장면을 가지고 있으나,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 또 다른 다큐멘터리 한 편이 떠올랐다. 2008년에 만들어진 <백두산 호랑이를 찾아서>(구본환)에도 쇠약해진 인물에게 과거의 진실을 잔인하게 묻는 장면이 나온다. 심지어 둘은 손자와 할아버지 관계이다.
 
간략하게 영화를 소개하자면, 감독은 자신의 할아버지와 동서지간이자 군대에서 상하 관계였고 실제적으로 집안 살림에도 보탬을 주었던 이모할아버지 ‘백두산 호랑이’ 김종원의 삶을 다룸과 동시에,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자신의 심리를 관조한다.
 
* 일명 ‘백두산 호랑이’ 김종원은 일본군 하사관 출신으로 1948년 여순사건에 개입하여 일본도로 사람들을 참수하고, 이후에도 빨치산 소탕이나 토벌활동에 종사하면서 수많은 민간인을 잔인하게 학살한 인물이다. 그는 민간인 학살의 대가로 총 8개의 훈장을 받았다.
 
이 영화의 특징적인 부분은, 여전히 ‘백두산 호랑이’가 대한민국 건국에 필요했던 사람임을 의심치 않는 감독의 조부나 역사적 사건 자체가 주인공이 아니라는데 있다. 첫 장면이 감독 자신의 얼굴과 “마음의 준비는 다 되어 있는 거야?”라는 촬영감독의 질문에 모르겠다고 답하는 대화로 시작하고, 영화 전반이 내레이션의 설명에 기대고 있는데서 알 수 있듯이 감독 본인이 주인공이다.
 
절정의 순간, 그는 그동안 미뤄왔던 질문을 할아버지에게 하겠다며 백두산 호랑이와 함께 학살 현장에 있었던 적이 있는지 묻는다(그는 반복해서 사람 죽는데 옆에 있었던 적 없냐고 묻지만 사람 죽였냐고 묻지는 못한다). 이 가능성에 대해 그는 다소 집요하게 추궁하고, 조부는 숨도 겨우 쉴 만큼 쇠약했으면서도 끝까지 부인한다. 감독은 이 상황에서 발생하는 자신의 감정과 행동과 의문 등을 끊임없이 내레이션을 통해 설명하는데 예컨대 “갑자기 눈물이 찔끔 나왔다”거나, “나는 맘을 모질게 먹고 독촉했다”라고 하는 식이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이 하라 가즈오의 다큐멘터리와 차별되는 지점이다. 이는 부분적으로 ‘내레이션’이라는 형식이 지닌 권력의 문제일 수 있다. 등장인물들에게 자신의 속을 알릴 수 있는 발화의 권한이 주어지지 않은 데 반해 내레이터는 자신의 심리적 풍경을 선언할 수 있는 권력을 가지고 있다. 위의 장면에서도 생명이 다해가는 마당에 손자로부터 학살 현장을 목격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을 들어야하는 할아버지의 난감함보다, “나는 왜 이런 걸 하고 싶은 건지”라는 내레이션 속 감독의 고뇌가 힘을 얻는다. 그 고뇌가 이야기를 장악하는 것이다.
 
다시, 하라 가즈오의 다큐멘터리로 돌아와 보면 그는 자신에 대해 단 한마디의 변명도, 성찰도 하지 않는다. 정말이지 독하고 독하다. 사실 오쿠자키가 사람들에게 죄를 물을 수 있는 대부분의 자격은 그가 등 뒤에 카메라를 대동하고 있기 때문이고, 어쩌면 그가 영화의 주인공이 아니었어도 상관 살해 시도라는 또 한 번의 범죄를 저질렀을지 의문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감독은 스스로 성찰하지 않고 다만, 성찰을 요구하는 자와 도망가는 자의 긴장만을 담을 뿐이다. 그리고 그 양쪽에서 잡아당기는 팽팽한 긴장감은, 내레이션이라는 형식이 대표하는 폐쇄적인 성찰의 허구성을 폭로한다.
 
결론적으로 질문은 이것이다. 자기성찰이 관계에서 탄생하지도 관계로 나아가지도 못하고 내부에만 고여 있다면, 스스로에게 ‘그래도 반성은 했습죠!’ 식의 면죄부를 부여하는 은밀한 자위에 머문다면, 도대체 성찰을 자의식 과잉과 구분할 근거가 무어란 말인가. 자신에 대한 단상은 성찰이라는 거창한 표현으로 장식할 필요가 없는, 지금도 작동하고 있는 자의식에 불과하지 않을까.
 
이와 관련하여 두 권의 책이 생각난다. 우선, 커트 보네거트 소설에는 기발한 한 정신과 의사가 나온다. 그는 치료 시간 동안 환자들에게 스스로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고 대신 다른 사람 이야기만 전할 것을 요구한다. 그리하여 예컨대 환자들은 ‘신월동 A(남, 45세)씨가 맨홀에 빠졌대요’와 같은 타인의 소식만 한 시간 내내 전한다.
 
또한 숭산 대선사는 <오직 모를 뿐>이라는 서한집에서, ‘저는 제가 모두 떨쳐 버려야 한다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저는 그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와 같은 문장으로 가득한 반성문에 대해, 다음과 같은 답장을 썼다.
 
“당신은 나에게 ‘나’를 스물아홉 번 보냈습니다. 이것이 당신에게 문제가 생기는 이유입니다.”
 
이 이야기들은 자기과시든, 겸허한 반성이든 중요한 것은 ‘주어’라고 말하고 있다. ‘나는’으로 시작하는 10개의 문장은 ‘당신은’으로 시작하는 10개의 문장, 10개의 타인의 이야기를 대신한다. 성찰과 반성의 외피를 두른, 자기애를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