私와 公의 마주침 – 공공미술가 양철모

양철모는 예술을 통해 공존을 고민하는 작가이자 기획자이다. 그는 이주에 관련한 문화예술활동을 펼치고 있는 믹스라이스(mixrice)의 멤버이자, 전시기획, 공공미술기획, 문화예술교육에 관련한 활동을 활발하게 펼치고 있다. 예술과 공공. 이 첨예한 두 단어가 어떻게 움직여지는지, 공공미술가 양철모를 만났다.
양철모는 작가이자 기획자이다. 예술 속에서 혹은 예술을 통한 인간적인 생활을 고민하며, 예술의 사회적 실천을 나누려 노력한다. 사진작가에서 출발, 미술 지형에서 프로젝트 그룹 믹스라이스 활동을 하고 있으며, 아트스페이스 풀(Art Space Pool) 의 운영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공공미술 그룹 퍼블릭아트 고물상 을 설립, 운영 중이며, 최근에는 ‘예술과 마을 네트워크’의 서울형  사회적기업 운영위원장으로 활동 범위를 넓히고 있다.

양철모 작가는 재미있다. 그의 작업에서는 재치가 번뜩인다. 반면 그가 던지는 메시지는 결코 가볍게 웃을 수 없는 불편함을 담고 있다. 가볍게 던지는 개인적인 농담이 사회적 메시지가 담긴 행위로 연결될 때, 진지하기에는 스스로 우스워지고 웃어 넘기기에는 무거운 인식으로, 가만히 그의 행위에 주의를 기울이게 된다.

이주에 관련된 지속적인 작업을 펼치고 있는 믹스라이스에서는 외견상 이주노동자에 대한 인식전환으로 편견 없는 다양한 활동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 활동들은 실상 이주노동자를 통해 우리 사회의 불편함을 들추어내고 있다.

정부의 문화예술정책 관련 사업으로 진행한 공공미술 프로젝트 ‘마석이야기’(2006, 경기도 남양주)와 ‘흰구름의 초대’(2007, 전북 진안)그리고 ‘배내골 마을신문’(2008, 경남 양산) 프로젝트에는 마을의 사회적 쟁점에 개입하는 뉴장르 공공미술의 성격이 짙게 배어있다.

4.19 50주년 기념 사진전 <푸른혁명> 전시에서는 당시 혁명의 주체였던 학생들의 외침을 재조명함으로써 지금 우리 사회를 되돌아볼 수 있는 전시를 기획하였으며, 격년마다 개최되는 소아암 어린이 사진전(한국백혈병어린이재단)에서는 병자에 대한 동정심에 머무르는 전시를 경계하며, 병을 가진 어린이와 병을 가지지 않은 어린이의 구분이 아닌 “모든 어린이”에 주목하는 전시를 기획하고 있다.

구제역 문제로 사회가 들끓고 있을 때 그는 죽은 동물들을 위한 위령제 전시 ‘발굴의 금지’ 를 공동 기획하였고, 4대강 이슈에 대해서는 강이 무엇인지, 모래는 무엇인지, 그 자연을 어떻게 품어야 하는지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4대강 대방랑’을 기획했다.

그는 차분하고 고요한 목소리로 숨은 그림을 찾는 듯한 애매함과 그것을 알아채는 즐거움을 준다. 그는 편안해 보이는 모습으로 우리에게 늘 불편한 메시지를 던진다. 그 이유가 뭘까? 그 불편함을 기꺼이 받아들여 함께 고민하고 싶은 욕구가 생기는 건 왜일까? 양철모 작가를, 홍대 앞 한 사회적기업 까페에서 만났다.

1. 공공미술의 대중성에 대해

퍼슨웹(이하 ‘퍼’) : 공공미술 기획자로서 여러 가지 일들을 하셨어요. 일반적인 미술 전시기획과 공공미술 기획에 차이점이 있나요?

양철모(이하 ‘양’) : 미술 전시기획과 공공미술 기획을 굳이 나눌 수 있는지 의문이에요. 사실 ‘공공미술’은 한국사회에서 아직 정의되지 않았습니다. 끊임없이 정의 내려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다만 제가 느끼기에, ‘공공미술’은 매우 귀찮은 것이라고 여기고 있죠.

퍼 : 왜죠?

양 : 나의 생각을 위장시켜야 되기 때문이죠. 그 위장은 때로는 친절함으로, 때로는 멋있게 보여져야 하기 때문이에요. 이 불편함을 생각하며 공공미술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퍼 : 공공미술은 의도부터 과정, 결과까지 공적(公的)인 것이니 공공에게 친숙해야 할 텐데, 양철모 씨가 기획하는 공공미술을 대중들이 이해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양 : 왜 그렇게 생각하시죠?

퍼 : 작품에서 쉬운 소재를 사용하시지만, 그 안의 의미를 찾기는 쉽지 않아 보이거든요.

양 : ‘대중적’에 대한 개념이 다른 것 같아요. 공공미술이라면 대중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과 언어로 표현해야겠죠. 또한 그것의 의미가 대중을 위한 것이어야겠죠. 그렇지만 공공미술을 만들어내는 작가의 사유방식까지 대중적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퍼 : 공공미술의 무엇이 ‘대중적’인가의 문제군요.

양 : 네. 예술가들은 어떤 부분이 시민을 만나고 어떤 부분이 그렇지 않은지에 대해 고민합니다. 개별 작업이 대중들이 좋아하는 작업일 수 있지만, 그 개별 작업이 맥락화 될 경우, 매우 불편한 지점을 들어내는 경우도 있죠.

퍼 : 기획의 초점이 대중적인 재미는 아니라는 말씀이시군요.

양 : 물론 대중적인 재미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하지만 그 재미가 재미로만 끝나는 건 공공미술이라 할 수 없습니다. 저는 ‘어떤 의미’가 수반된 재미를 원하는 거죠. 여기서 ‘어떤 의미’란, 서로가 암묵적으로 묵인하고 있는 불편함 까지도 함께 이야기해야 한다고 봐요.

퍼 : 불편함! 예를 들면요?

양 : 2006년 <마석이야기>*작업에서 중요한 주체들이 있었어요. 첫 번째는 지역주민, 둘째는 이주노동자, 세 번째는 학교죠. 지역주민은 자신들의 소중한 기억이 담긴 학교가 폐교됐으면 하고, 당연히 학교는 주민들의 폐교 요구에 아연실색 합니다. 또한 이주노동자의 유일한 쉼터이자 여가공간인 학교는 이주노동자들이 학교에 오는 것을 싫어합니다.

퍼 : 서로 다 싫어하네요.

양 : 지역주민과 학교는 이주노동자들이 쓰레기를 마구 버린다고 싫어합니다. 하지만 이주노동자들은 지역의 경제 노동력, 임차인 등 지역경제를 위해 꼭 필요한 사람이에요. 서로가 공유될 수 있는 기억이 있고 현재에도 그 기억은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있지만, 서로에게 관심을 가질 이유는 전혀 없는 거죠.

퍼 : 경제적 공생관계만 맺고 있더라도 어찌됐건 함께 살아가야 하잖아요.

양 : 그래요. 저희 예술가들은 그 함께 살아가야 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것이 사람들에게는 불편한 이야기로 들릴 수 있겠죠.

퍼 : 공공미술 기획에서 양철모 씨가 중점을 두고 이야기 하는 것에 대해 대중이 공감하지 못한 때는 없었나요? 가령 마을 만들기 프로젝트는 작가와 주민들 사이의 공감이 중요할 텐데요.

*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한 공공미술을 통한 마을 만들기 사업의 일환으로 양철모 작가는
경기도 남양주시 마석가구단지에서 ‘마석이야기’ 를 시작으로 전라북도 진안군 백운면 ‘흰구름의 초대’, 경남 양산시 배내골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그 후로도 꾸준히 마을 공동체와 예술이 만날 수 있는 지점에 대해 고민하며 실천하고 있다.

양 : 마을을 만드는 게 가능한 일일까요? 예술의 방법론으로 마을에 새로움을 불어 넣는다는 발상은 매우 오만한 것 같습니다. 물론 마을의 공동체는 회복될 수 없는 지경까지 붕괴됐습니다. 하지만 이건 마을의 문제로만 볼 수 없습니다. 도시화의 문제이고, 세계화의 문제이고 계급의 문제가 개입되어 있음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퍼 : 그렇죠. 단순히 마을 만들기, 주민 간의 화합 문제는 아니죠. 하지만 그 프로젝트는 마을공동체를 복원하기 위한 사업이고, 그래서 그 곳에 들어 가셨잖아요.

양 : 마을 만들기 프로젝트는 붕괴된 마을공동체에 귀를 여는 행위라 생각해요. 듣고 끝나는 게 아니라, 되새기고 기억하려는 프로젝트입니다. 그 다음에 주민과 어떤 공감대가 생기면 마을의 새로운 움직임에 대해 모색할 수 있다고 봅니다.

퍼 : 일단 ‘공감’을 찾아보는 거군요.

양 : 하지만 공감이라는 단어는 프로젝트의 결과보고서에나 쓰이고 있는 실정이에요. 예술가들이 농촌의 삶에 귀 기울이고, 농촌의 현실을 공감할 수 있어야 서로간에 공감이라는 단어를 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퍼 : 양철모 씨에게 마을 만들기 프로젝트의 핵심은 무엇이었나요?

양 : 상황과 조건에 따라서 매우 다른데요, 상황과 조건을 잘 파악해야 프로젝트의 핵심이 규정됩니다. 이번 프로젝트에서 제가 고려하고 있는 것은 새로운 사람들이 마을에 내려와 새로운 기억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변화에 관련된 겁니다. 과거의 기억뿐만이 아니라 ‘새로운 기억’을 어떻게 이야기하고 이어지게 할지, 그 부분을 항상 고민하고 있습니다.

2. 공공미술 공감

퍼 : 마을 만들기 사업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해보죠. 정부에서 진행하는 각종 문화예술에 관련한 지원 사업으로 들어 온 돈이 마을공동체에 도움이 됐다고 생각 하나요? 예를 들면, 공동체 의식이 강해져서 조화와 이해가 좀 더 생겼다든지.

양 : 기금을 통해 다양한 예술가들이 마을에 들어와 마을 분들과 관계 맺으면서 사람이 성장한다고 봐요. 마을을 움직이는 사람이 성장하면 마을도 좋아질 수 있죠. 그렇게 되면 마을 분들이 불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에 대해서도 조금씩 움직여요.

퍼 : 공동체 움직임이 강해졌다고 할 수 있겠네요.

양 : 네. 하지만 경계해야 할 것이 있어요. 지원금이 많아질수록 좋은 마을 만들기 사업이 오히려 어려워지는 점들이 생기더군요. 충북에 있는 한 단체는 마을미술프로젝트에 선정된 후에 오랫동안 둥지를 틀고 있던 폐교에서 쫓겨났습니다.

퍼 : 쫓겨난 이유가 뭐죠?

양 : 1억이 넘는 돈이 마을 문화예술을 위해 쓰인다고 알고 있었는데, 학교를 점유하고 있는 특정단체에 그 돈이 쓰인다는 게 문제였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건 표면적인 문제일 뿐이고, 더 큰 문제는 공공미술 선정 단체, 마을주민, 지자체 담당 공무원, 공공미술 사업 실행 작가 등이 서로의 이해관계와 이익을 위해 기금을 둘러싸고 각종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는 겁니다.

퍼 : 공동체 복원 사업인데 돈 문제가 얽혀 ‘공동’이라는 말이 무색해졌네요.

양 : 또 다른 예로, 제주도의 한 마을은 농촌마을개발사업 70억과 신문화공간조성사업 10억 원이 투입됐습니다. 한꺼번에 80억 원의 큰돈이 생긴 거죠. 아마도 지금쯤 마을사업에 관련된 사람들이 가슴앓이 하고 있을 겁니다.

퍼 : 양철모 씨의 작업은 같이 고민하고 싶은 것을 사람들에게 던지는 것이죠. 마을 만들기 프로젝트에서는 사람들 간 화합을 도모할 수 있는 예술적 방법을 제시하려 한 걸 텐데, 우려했던 문제들이 결국 해결되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양 : 모든 문제를 우리가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고민을 어떤 조건과 상황에 맞게 던지느냐가 매우 중요해요. 그래서 또한 우리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그리고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그 한계를 파악하는 것도 필요하죠. 예를 들면 고민조차 하지 않은 곳에서는 고민을 자극하는 행위가 중요할 수 있고, 고민이 충분히 된 곳에는 실천할 수 있는 자극이 필요한 거죠.

퍼 : 그 행위의 의미는 의도한 데로 담기게 되었나요?

양 : 음… 그렇다고 볼 수 있죠. 경남 양산 배내골에서는 마을 신문을 만들었는데, 정주민과 귀촌인의 속내를 들여다보는 신문 이었어요. 그 신문이 최종적으로 말하고자 한 것은 어찌됐던 간에 함께 살아야 하는 공동체라는 거였죠.

퍼 : 공공미술가가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양 : 예술의 사회적 실천이 곧 사회에 대한 적극적인 개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잊고 있었던 것을 끄집어내고, 우리사회가 망각하는 것에 개입하죠. 언어가 없는 곳에서 언어를 만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기억에서 사라질 것을 붙잡고 끈질기게 물고 늘어집니다.

퍼 : 그렇게 지속적으로 어떤 개입을 하는 거군요.

양 : 이런 개입만이라도 좀 잘했으면 좋겠어요.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예술이 사라지지 않듯이 예술가들도 사라지지 않겠죠. 그렇기에 공공미술 또한 시대에 맞게 다양한 문제들로 인한 다양한 방법들로 진화할거라 생각해요. 예술가들이 주목 받고 잘되면 사회에 좋은 영향을 끼치지만, 예술가들이 주목 받지 못하고 못되면 사회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아요. 그래서 저는 공공미술이라는 것을 계속 할 생각입니다.

3. 사진 혹은 사진가의 거짓말


퍼 : 공공미술 기획자 이전에 사진으로 작가생활을 시작하셨죠. 사진가로서 본인의 작업을 사회와 매개하려는 시도를 처음부터 생각했었나요?

양 : 사진이라는 매체 자체가 무엇을 알리거나, 시각화하거나, 기록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회를 변화시키는 좋은 도구 혹은 언어라 생각했어요. 하지만 쉽지는 않았습니다. 무엇을 얘기하기 위해 누구를 촬영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었어요. 촬영은 쉽지만, ‘내가 왜 저 사람을 촬영해야 하지?’ 라는 질문이 쉽게 해결되지 않았어요.

퍼 : 그런 질문을 어떻게 풀어 가셨나요?

양 : 제가 고민했던 것은 ‘대상화’의 오류에 작가가 어떻게 사유하는지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좋은 작업은 대상화의 고민이 작업에 어떻게 반영됐는지가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이런 걸 학교에서는 가르쳐주지 않아요.

퍼 : 대상화의 오류요?

양 : 가난한 사람들을 촬영하지만, 내가 왜 그 사람들을 찍는가에 대한 고민은 가려져 있어요. 사진가는 항상 카메라에 몸을 숨기고 이야기하죠. ‘저 사람들을 봐라, 가난하지만 얼마나 아름답게 살아가고 있냐’ 이런 식의 괴리감을 많이 느꼈었던 것 같아요.

퍼 : 그런 게 대상화의 오류인가요?

양 : 네. 이제 그런 사진을 보면 너무 불편해요. 쳐다 볼 수가 없어요. 특히 다큐멘터리라는 이름으로 이런 현상이 계속 반복되고 있는 것 같아서 아쉬워요. 저는 이제 그런 거짓말을 하지 않는 방법에 익숙하게 됐어요.

퍼 : ‘그런 거짓말’이 뭔가요?

양 : 예를 들어, 장애인의 힘든 모습을 찍는다고 했을 때, 멋진 구도에 광각렌즈 앵글을 이용해서 애절한 모습을 얼마나 강렬하게, 그리고 희소성 있게 표현해 냈는가 하는 것만 좋은 사진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말한 거짓말이란, 자신을 속이고 대상을 속이는 거짓말을 말하는 거예요. 대학이라는 제도 교육이 더 부추기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사진을 잘 찍는 법만 가르치고 촬영자와 대상자간의 관계와 구조에 대한 생각은 가르치지 않으니까요. 이게 더 중요한 문제일 텐데도 말이죠.

퍼 : 그런 게 사진가들의 거짓말이군요.

양 : 네. 그런 사진가는 집요하기만 하고 윤리적으로 무책임하다 생각했어요. 작가의 윤리가 멈춰 있는 거죠.

퍼 : 대상에 대한 고민과 찍어야 하는 사진이 다른 것이요?

양 : 대상에 대한 고민이 없거나 다른 각도인 점이요. 예를 들자면 외국의 유명한 패션사진가가 있어요. 그는 일하고 있는 일반 사람들을 정면으로 세워놓고 촬영을 합니다. 찍힌 사람들은 남루한 옷, 거친 피부, 주춤하는 불안한 눈빛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어요. 그 사진가는 그들의 디테일한 삶을 촬영했다고 할 수 있지만, 제가 보기에는 그는 패션의 관점에서 그들을 재현했어요. 그의 사진 한 장은 엄청난 액수로 미술시장에서 거래될 겁니다. 찍힌 사람들이 평생 벌어도 못 벌 수 있는 금액으로 말이죠. 하지만 찍힌 사람에게 돈의 분배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유명한 사진가가 촬영한 사진을 소비할 뿐이고 찍힌 사람의 삶에 대해서 관심도 책임도 없습니다. 이건 윤리적으로 꼭 생각해봐야 할 문제라고 생각해요.

퍼 : 작업과 윤리적 문제. 어떻게 연결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셨는데요?

양 : 만약 작가가 그런 고민을 했다면 그 고민이 작업에 반영되어야 좋은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최소한의 작가 윤리죠. 왜 사진가들은 그들을 찍으면서 자기와 대상의 관계가 괴리되는 문제에 대해서는 작업에 반영하지 않을까? 그런데 그런 고민이 깊어지면 사진 작업을 잘 할 수 없는 것 같아요. 다른 식의 접근을 한다거나, 아니면 새로운 방법을 찾을 때까지 작업을 할 수 없게 되죠. 여하튼 지금은 사진을 잘 못 찍습니다.

퍼 : 예전엔 잘 찍으셨나 봐요?(웃음)

양 : 그럼요, 아주 잘 찍었죠.(웃음) 사진에 문법이라는 게 있는데, 아름다움을 구분하듯이. 좋은 사진, 완벽한 구도에 재미난 상황. 그런 걸 맞추는 거죠. 하지만 위에서 말한 작가/대상에 대한 깊숙한 사고와 개입은 없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초기에 잘 찍은 사진과 지금 잘 찍은 사진이 다릅니다.

퍼 : 어떤 계기로 사진의 사회적 역할을 생각하게 된 건가요?

양 : 2003년인가,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만드는 차별에 관련된 포스터 작업을 하게 됐어요. 그 때 이주노동자를 촬영해야 해서 이주노동자 활동가를 만났는데, 그 일을 계기로 명동성당에서 이주노동운동을 하고 있던 분들과 친하게 됐어요. 그래서 명동성당에 자주 갔었는데, 갈 때마다 보니까, 기자들이 인터뷰하는 사진을 많이들 찍고 가더군요. 그런데 그 인터뷰가 항상 똑같은 거예요.

양 : 사진도 똑같고, 이주노동자 분들이 말하는 것도 똑같고. 이주노동자들의 언어가 아닌, 마치 흔히 말하는 운동, 투쟁의 열사 같은 언어라고나 할까요. 그런 상황에서 이주노동자들이 자신의 언어로 말하고 자신이 재현하는 방법이 전혀 없다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거기에 계신 분께 사진을 가르쳐 드리고, 이주노동자들의 삶을 기록하자고 제안했죠. 그것을 계기로 저의 삶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어요. 그 때 믹스라이스도 만났고, 사진을 단순히 촬영하는게 아니라 적용하는 방법에 대해서 고민하기 시작했고. 그리고 사진으로 어떻게 소통할 수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퍼 : 사진 작업에서 공공미술 작업으로는 어떻게 넘어가게 된 건가요?

양 : 믹스라이스라는 그룹에 들어가면서 사진, 영상, 디자인, 글, 퍼포먼스, 음식, 설치 등등. 무언가를 얘기하기 위해서 적절한 것을 선택해서 작업을 했어요. 이건 사진 하나가 아닌 또 다른 형식과 기획을 필요로 하는 일들이었어요.

퍼 : 통합된 기획 영역을 자연스럽게 만나고 습득할 수 있었겠군요.

양 : 네. 그리고 하자센터라는 곳에서 사진프로젝트를 가르쳤는데, 프로젝트가 끝나고 나면 항상 전람회를 했습니다. 좀 다른 방식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아이들과 함께 마을 사진관을 차려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진을 배우는 친구들이 초등학교쯤 되는 아이들이었는데, 어른들을 상대로 아이들이 웃기고 놀면서 어설프게 사진을 찍는 거였죠.

퍼 : 사진들이 좋았나요?

양 : 사진이 너무 재미있고, 놀라울 정도였어요. 제가 촬영하면 절대 나올 수 없는 사진들이었어요. 고정되어 있는 전람회의 형식을 어설픈 사진관을 만들어서 사람들과 함께 나눈 거죠. 하여간 아이들과 사람들의 사진을 촬영하면서 신나게 놀았던 것 같아요.

퍼 : 즐거웠나 봐요.

양 : 그럼요. 보통, 사진관에 사진 찍으러 가면 조명은 어둡고, 사진관 아저씨는 딱딱하게 이래라,저래라 말하잖아요. 익숙한 공간도 아니고 모르는 사람 앞에서 명령조의 언어를 들으면서 사진을 촬영하는 게 얼마나 이상하고 불편한 일이에요. 그런 관계를 완전히 뒤집은 거죠. 아이들과 대화하면서 촬영하는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연출된 거에요. 그 이후로도 여러 번 ‘동네 사진관’을 기획하게 됐어요.

퍼 : 그 작업이 첫 번째 공공미술 기획이었나요?

양 : 네. 하지만 그 즈음에 기획 일들이 동시에 진행이 됐어요. ‘오늘의 인권전’의 경우 1,2회는 작가로 참여했는데, 3회는 주최측에서 제게 기획을 요청했어요, 그렇게 자연스럽게 3,4,5회를 기획하게 됐죠. 그러면서 전시기획을 하게 됐고, 자연스럽게 기획자와 작가 두 가지 역할을 동시에 하게 됐어요.

퍼 : 사진으로 시작해서 교육, 그리고 작은 기획에서 전시기획까지 그런 것들이 공공미술까지 이어졌군요. 자연스럽게 경계가 없어졌네요.

양 : 6,7년 전만 해도 사진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문화예술 기획자가 없었어요. 그런 자연스러운 과정을 거치면서 장르간 교류의 폭이 넓어졌죠. 특히 믹스라이스는 꽤 인지도가 높았어요. 대한민국 예술상을 탈 정도로 중요한 작가 그룹이었는데, 덕분에 미술에 대한 폭넓은 접근도 하게 됐고, 그것이 이어져서 공공미술까지 이어진 것 같아요.

4. 불편함과 마주보기


퍼 : 작업에 대한 발상을 들어보면, 그 바탕에는 소외되고 배제되는 것들에 대한 관심이 많이 보여요.

양 : 음…… 소외와 배제라. 어떻게 보면 작가들이 사회에서 배제되고 소외된 자들이라 할 수 있죠. 우리는 사회적 ‘루저’에요.(웃음) 정확히 말해서 경제적 루저죠. 경제적인 면에서 항상 어려움을 느끼며 살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소외된 자들의 마음을 더 잘 안다는 것은 아니고요. 우리 사회의 다양한 문제에 관심을 가지다 보면, 소외와 배제에 대해 주목할 수밖에 없는 건 당연한 귀결인 것 같아요.

퍼 : 왜 작가는 루저인가요?

양 : 작가의 삶이 그렇다기보다 경제적 자본에 취약한 작가들을 묘사한 겁니다. 가장 중요한 가치들이 모두 돈으로 환산되고 있잖아요. ‘돈’, 그러니까 자본이 경제적 자유를 주지만, 돈 만이 경제적 자유를 준다는 착각에도 빠지는 것 같아요. 소외된 자들이란 경쟁에서 밀린 자들이죠. 경쟁에서 밀린 이유는 계급적 관계에서 하부구조에 있기 때문일 겁니다. 그 구조에 대한 다양한 반성이 작가들의 작업에 들어가 있고요.

퍼 : 그런 작업을 통해서 보여주고 싶은 건 뭔가요?

양 : 왜 사람들은 ‘상패동 공동묘지’(양공주라 불리는 기지촌여성들의 무명묘지)에 관심이 없을까요? 왜 사람들은 마석가구단지의 이주노동자의 삶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까요? 반면 왜 작가들은 그런 곳에 관심을 가질까요? <다시 동두천을 주목하는 이유展>에서 기획자인 고승욱 씨는 “이름 없는 자들의 이름인 기지촌을 기억하고자 하는 것은 기지촌이 우리가 벗어나야 할 오명이 아니라, 내가 나의 오명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필요한 장소, 시간, 이름이기 때문”이라고 말했어요.

퍼 : 무슨 의미죠?

양 : 이주노동자들이 살고 있는 마석가구단지로 설명을 해보자면, 이주노동자는 우리의 불편함 한가운데 있어요. 급속한 산업화 시절에 우리는 독일로, 중동으로 노동자와 간호사들이 노동력을 팔기 위해 떠났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이주노동자들을 받아들이는 유입국의 위치에 있습니다.

퍼 : 그렇죠.

양 : 그 산업화, 인종, 종교, 문화, 유교주의가 가진 우리라는 견고함의 불안을 환기시키는 중심에 이주노동자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들의 몸을 통과해서 다시 돌아와 마치 부메랑처럼 한국사회에 다양한 것을 얘기할 수 있는 거죠. 저는 이주노동자를 위한 활동가라고 할 수 없어요. 그들의 몸을 빌려 예술이라는 도구를 통해 사회를 재조명하는 행위를 하는 거죠. 고승욱 씨가 말한 것도 상패동 공동묘지가 떨쳐버려야 할 역사 혹은 기억이 아니라 현존하는 사실이며 이 사실에서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발언이거든요.

퍼 : 그런 작업들이 이주노동자들에게도 영향을 주나요?

양 : 제가 그들이 아니기에 정확한 대답을 할 수는 없어요. 하지만 제 입장에서 보면, 이주노동자들도 한국사회에서 다양한 진화를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이제 스스로 커뮤니티를 만들어 구축하고 펼치고 있는 시점까지 온 것 같아요. 난민이자 이주노동자들인 미얀마 국적의 사람들은 <버마액션>을 만들어 버마의 민주화를 위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국의 상황을 알리는데 그치지 않고, 국내적인 이주노동자의 인권에 대해서도 MWTV(이주노동자 방송국)목소리를 전하고 있어요. 그리고 <스탑크랙다운>이라는 다문화밴드를 결성해서 문화예술 활동도 하고 있습니다.

퍼 : 스스로 움직이게 되는 거군요?

양 : 그렇죠. 이주노동자영화제 만들어 문화 영역에서도 열심히 활동하고 있어요. 그들은 얼마 전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주는 인권상을 거부하기도 했지요.* 국가인권위원회가 제 기능을 하지 못 한다는 비판을 몸소 실천한 거에요. 결국 이주노동자들은 그들의 지점에서 스스로 판단하고 함께 하고 있는거죠. 내용과 형식이 다르지만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걸 느낍니다. 다문화 사회가 중요한게 아니라, 함께 사는게 중요한 이유지요.

* MWTV 이주노동자방송 인권상 거부 관련 기사 보러 가기 

퍼 : 우리나라의 다문화 정책 경향은 ‘이주민들을 어떻게 한국사회로 통합시킬까?’의 관점에 집중되어 있는데, 앞에서 말씀하신 활동은 그것과는 다른 관점이군요.

양 : 기존의 다문화 정책은 어떤 불편함을 안고 있어요. 불편하니까 ‘다문화’ 같은 포용정책을 만든 겁니다. 그 불편함을 스스로 완화시키는 주문 같은 게 ‘다문화’입니다.

퍼 : 다른 인종의 며느리가 있는 불편함, 나와 다른 피부의 사람과 함께 살아야 한다는 불편함, 피가 섞인다는 불편함, 이 모든 불편함이 ‘다문화’라는 말에 담겨 있죠.

양 : 이건 통합정책이 아니라 한편으로 우월주의 정책인 것 같습니다. 실제로 끌어안을 수 있을까요? 미디어에서 이주노동자는 불쌍한 사람들로 묘사 됩니다.

퍼 : 가족이 먼 곳에 있어 보고 싶어서 눈물 흘리는 상황만이 반복되죠.

양 : 사람의 삶이기 때문에 수없이 많은 상황과 삶이 있다는 인식을 하지 않은 채 동정의 대상으로서 이주노동자가, 여성결혼이민자가 머물러 있는 게 지금 우리사회 인식의 한계 같아요.

퍼 : 그렇지만 언론에서도 다양한 역할을 하는 건 아닐까요? 이주자에 관한 다양하고 폭넓은 인식을 확산시키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결국 이주자들의 생각이 다양해 질 때 미디어도 다양한 방식으로 재현의 문제를 고민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양 : 언론은 잘 변하지 않는 것 같아요. 감정적이고 동정심에 항상 호소하는 게 휴머니즘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제발 휴머니즘 좀 안 했으면 좋겠습니다. 아니면 제대로 된 휴머니즘을 보여줬으면 좋겠습니다.

퍼 : 흠..

양 : 문제는 이주노동자들의 정체성이 미디어를 통해 만들어지고 유포되는 거에요. 이주노동자라는 신분 자체가 이주노동자들의 삶하고는 무관하게 주체에 의해서 재생산되는 꼴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마치 여성이 여성을 바라볼 때 남자의 시선으로 자신의 여성성을 바라보듯이 말이죠.

퍼 : 매개가 없을 수는 없잖아요. 작가도 일종의 매체이고. 어떤 것을 통과시켜 보여주는 데는 어차피 한계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나요?

양 : 모든 것들은 한계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 한계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행위가 불필요하다고 볼 수는 없어요. 오히려 어떤 완결성을 지니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수많은 질문들을 통해 한계에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작품의 한계에 대해서 질문하신 것은 전통적인 시각에서 작품을 바라보는 관점입니다.

퍼 : 무슨 뜻이죠?

양 : 작품은 어떤 완결성이 아닌 다른 의미를 지닐 수 있어요. 우리가 작업했던 <어떤 무대>라는 작업은 미술관에서 설치된 작품으로서 완결성이 아닌 이주노동자가 그들의 경험과 기억을 토대로 만든 연극을 기념하기 위한 기억의 통로, 재현 같은 기능을 하죠. 작품에서 의미가 그냥 통과되어 버리지 않도록, 혹은 통과 되어 우리가 갈 수 있는 지점에 대해서 말하고자 하는 겁니다.

퍼 : 양철모 씨는 작품에 의미가 통과되거나 다른 곳으로 이끌 수 있게 어떤 식으로 작업하시나요?

양 : 우리의 모든 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건 ‘대화’에요. 모든 것의 시작이 대화에서 출발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대화는 다른 상황을 만들어냅니다. 공유하고, 개입하고, 형태로 만들고, 기념하는 다양한 가지치기의 단초를 제공합니다.

퍼 : 대화를 계속 따라가는 것이 중요하겠어요.

양 : 네. 우리는 그 대화를 따라갑니다. 따라가다 보면 어떤 기억하고 마주하게 되요. 그 기억의 회로를 선별하고 가공하여 다시 우리를 바라볼 수 있는 다른 형태로 변환시킵니다. 이런 각각의 장치가 의미입니다. 어떻게 보면 의미의 뭉침이라고 할 수 있어요.

5. 공동체를 상상하다

퍼 : 양철모 씨 활동의 중심 주제인 ‘소수자/약자와 공존’은 공동체 문제입니다. 양철모씨가 제안하는 문제 해결의 방법은 ‘공동체 내 약자 존중하기’로 보이는데요, 그것으로 공동체 내에서 ‘소수자/약자와 공존하기’가 해결될까요?

양 : 그것이 아니라면, 약자가 안 되는 길은 강자가 되는 길밖에 없을 겁니다.

퍼 : 강자들을 변화시킬 수 있는 방법도 필요하지 않을까요?

양 : 강자냐 약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함께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강자라고 하는 사람들은 변화가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다른 사람들이 잘못됐다고 말하죠. 최근의 공정성 논의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는데, 사람들이 자신의 삶에서 작은 부분도 감내하지 않고 공정성을 말하는 것 자체가 문자라고 생각합니다.

퍼 : 공동체 이야기를 다시 해볼까요? 어떤 공동체를 상상하세요?

양 : 공동체란 약속, 규율, 규범 등이 있어야 결속력을 갖는데, 그 결속력이 개인의 자유와 상반됩니다. 과거에 있었던 공동체들의 해체 이유를 들여다보면 개인의 자율성 문제를 공동체가 끌어안고 가지 않았던 것 같아요. 이 부분을 어떻게 지혜롭게 해결하느냐에 따라 공동체의 운명이 바뀌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기 때문에 제가 원하는 공동체는 느슨하고 많은 사람들의 공동체가 아닌 작은 단위가 산발적으로 흩어져 있는 구조를 상상해보고 있어요. 작은 단위는 삶을 함께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최소단위로 생각해요.

퍼 :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신다면요?

양 : 최근에 재미난 기획을 하고 있어요. 이건 회사에서 하는 기획이 아닌 개인적인 삶에 대한 기획인데요, 농촌 마을에 3명의 사람이 내려가 3개의 가게를 열 계획입니다. 여기서 3개의 가게란 가게, 술집, 식당입니다.

퍼 : 꼭 필요한 것들이군요.(웃음)

양 : 서로 텃밭을 통해 작물을 생산하고 생산된 작물을 식당에 팝니다. 식당에서 작물을 판돈을 가지고 술집과 식당을 이용합니다. 이렇게 서로가 자급자족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무엇을 만들고 싶어요. 손님들이 오면 자급자족이 더 원활하게 진행 될 것 같습니다.

퍼 : 돈을 엄청 많이 벌면 어쩌죠!(웃음)

양 : 그러면 문을 닫고 놀면 되죠. 여유가 생기면 마을 노인들에게 텃밭에서 키운 식자재를 받고 식당을 이용하게 하면 좋을 것 같고요. 더 여유가 되면 거동이 불편한 마을 노인들에게 식사배달을 할 수 도 있을 것 같아요. 마을에 비슷한 가게를 계속 만들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이름도 만들었어요. 일거리 가게, 일거리 식당, 일거리 주점 합치면 ‘삼거리가게’입니다.

퍼 : 있을 법 하네요. 재밌어요.

양 : 삶과 일이 분리되지 않고, 외롭지 않으며, 신나는 삶을 그려본 기획이에요. 그리고 저는 할 거에요. 이게 제가 꿈꾸는 작은 공동체에 관한 상상입니다.

6. 함께, 살아가기


퍼 : 요즘 시골에 가서 직접 집을 짓고, 만화방을 만들고 있으시죠?* 본인의 상상을 실현하고 계시네요.

* 양철모 작가는 충북괴산에 폐가를 구입해, 집을 수리하고, 텃밭을 가꾸면서 몸의 상쾌함과 삶의 의미를 찾기를 진행 중이다. 새로운 동료를 만나 새로운 이웃을 꾸려나갈 계획이란다. 또한, 폐가를 개조한 게스트하우스와 무인만화방을 구상하며, 누구든 와서 자유롭게 만화를 보고 쉬고 갈 수 있는 시골집을 만들기를 진행 중이다.

양 : 네, 공동체 상상 뿐만 아니라, 몸이 겪는 구체적인 경험들부터 나의 삶을 구축하는 것까지, 다양한 실험이 이루어지고 있어요. 텃밭 가꾸는 경험은 매우 놀랍고 중요한 일입니다. 집을 고치는 과정 하나하나가 매우 재미있는 과정이죠.

퍼 : 모두 몸이 느끼는 인간의 노동이군요.

양 : 네. 나무에서 열매가 열리는 과정을 어떻게 표현 할 수 있을까요! 나무가 마법사 같고 열매는 마술의 결과물 같아요.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는 이런 경이로움과 매우 멀죠. 삶이 자연과 분리되어 있다는 것은 매우 슬픈 일 같습니다. 근대와 아욱의 줄기는 먹어봤지만, 어떻게 생겼는지 모릅니다. 머위와 곰취를 어떻게 구분할지 우리는 모릅니다. 이런 것을 소외라고도 부르고 싶습니다.

퍼 : 그걸 복원하고 싶으세요?

양 : 네.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몸이 기억하고 몸이 즐겼으면 좋겠어요. 강렬한 자기 쾌락을 맛보는 경험이 아무 곳에도 없잖아요.

퍼 : 자기쾌락을 모르는 사람이 많죠.

양 : 그러게요. 상상은 하는데 실현할 엄두를 못 내는 거겠죠. 많이들 불안해하는 것 같아요. 무언가 결핍되어 있거나, 아니면 뒤쳐진다고 생각하는 사회적 압력에 불안해하는 거죠. 살기도 바쁜데 자기쾌락을 꺼내는 것조차 할 수 없는 일이겠지요.

퍼 : 본인에게 결핍이 있다는 것조차 모르지 않을까요?

양 : 그래서 자기 이해가 중요하죠. 하지만 자기 이해를 찾을 시간조차 없죠. 사회가 그렇게 만들죠. 여유가 있거나 패자인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특권 중에 하나가 ‘자기이해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라고 하면 너무 무리한 생각일까요?

퍼 : 양철모 씨는 자기이해에 도달하신 것 같나요?

양 : 제가 사회적 긴장을 가지고 살아가려고 하는 것을 보면 제 삶에 자기 이해가 꽤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고 할 수 있어요. 예전에 『자본주의 사회는 진정한 예술에 적대적이다』라는 책을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 때 나의 삶의 방법론은 가난할 수밖에 없는 구조임을 알았거든요. 슬프지도 않고 기쁘지도 않았어요. 사회구조를 알았다는 것이 다행이다 싶었죠.

퍼 : 사회구조를 이해하고 나를 이해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죠.

양 : 맞습니다. 쉽지 않은 일인데, 왜 그 때 그 책의 문구들이 중요했는지 아직도 잘은 모르겠어요. 다만, 나의 지점을 인정한다면, 많은 안타까움이 줄어들 것 같아요. 요즘 상대적 박탈감 혹은 열등감으로 힘들어 하고 자살하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졌어요. 사회는 어떤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고 봅니다.

퍼 : 개인의 자살에 대해 사회가 책임져야 한다는 말인가요?

양 : 자살은 인간 최대의 자율권이고, 그 자율권을 이렇다 저렇다 할 수 는 없죠. 하지만 함께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힘든 일이라도 시간이 지나면 피식 웃을 수 있는 일일 수 있는데, 최근의 자살에 대해서는, 제가 자살에 대해 책임감을 갖는다기보다는 안타까움이 있어요. 아직 정확하게 말하기는 어려워요. 하지만 이 안타까움에 대한 감정을 어떤 식으로 풀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퍼 : 작업에 대한 계획이 있으신가요?

양 : 2012년에 자살에 관한 전시를 할까 기획 중에 있습니다. 아직 고민하는 중인데, 어떤 식으로 진행할 지 구체적이지 않지만 꼭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살을 방지하는 사회적 장치가 전혀 없는 게 문제지만, 그 장치를 만드는 것이 예술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지금 이 시점에서 자살이 가지고 있는 사회적 해석을 해내는 것이 예술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퍼 : 내년에 있을 자살에 관한 전시가 기대되네요. 오랜 시간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잊는다는 것, 안 본다는 것은 그것이 편하기 때문일 것이다. 양철모 작가는 왜 잊혀지려고 하는 기억, 보지 않고 소외시키려 하는 것들에 개입하여 사람들을 자꾸 불편하게 만드는 것일까? 그런데 그 개입을 들여다 보고, 다시 기억해내는 것이 불편하기보다는 오히려 편안해지는 것은 왜일까?

양철모 작가를 인터뷰 하기 전, 그의 작업과 기획을 보며 늘 의문이 들었던 점에 대해, 그의 생각을 정리하는 목소리를 유심히 들으면서, 소외되고 배제된 것, 잊혀지는 것들은 근본적으로 우리에게 있어야 하는 것, 아니 우리 자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몸이 스스로 기억할 수 있는 것들, 우리의 기억이 형성할 수 있는 당연한 것들, 우리가 보면서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의식’하지 않으면 잊혀지기 쉬운 세상에 살기에, ‘내’가 잊혀지지 않기 위해서는 ‘나’를, ‘우리’를 보고, 기억해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스스로에게 소홀하지도, 세상에 소외되지도 않는,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우리들의 삶이 공존하는 사회, 불편한 인식이 필요 없는 그 사회를 떨리는 마음으로 상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