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경력 트럭 생선장수 부부의 하루

“아~생선 왔어요! 갈치가 왔어요, 갈치요. 조기가 왔어요, 조기. 동태요, 동태. 생고등어요, 생고등어. 낀따루요, 낀따루. 쭈꾸미요, 임연수, 새우, 홍합, 대구, 꽃게, 가재미…” 홍성일(67), 박영자(65) 씨 부부의 트럭에서 들리는 이 소리를 듣고 포천과 동두천 일대의 동네 사람들은 생선을 사러, 이 부부를 보러 나온다.
  사람들 손에 들려가는 검은 비닐봉지 속에 담기는 생선은 종류도 크기도 모양도 다양했다. 갈치, 조기, 동태, 고등어, 오징어, 꼬막 등등. 그 많은 생선을 트럭에 싣고 다니며, 일일이 동네 사람들의 ‘생선 취향’을 기억하며 사는 한 트럭 생선장수 부부. 바로 나의 6촌 큰아빠 큰엄마이신 홍성일, 박영자 씨다. 큰아빠가 칼질을 하고나면 어느 사이 비닐봉지를 벌려 들고 옆에 서 있는 큰엄마. 생선을 썰고, 생선을 챙겨주며 손님들에게 한 두 마디 건네는 안부 인사 속에서 오랜 세월 켜켜이 쌓인 그들의 관계가 느껴졌다. 손님들과 아무렇지 않게 툭툭 건네는 농담 속에 담긴 그 웃음이 참 짖궃고 재밌었다.
 
  “아따 실력도 좋네. 도미를 네 박스나 팔아?”
  “아, 내꺼 아니여.”
  “갑장**은 어디 가부렀어? 화장실 갔다 여적 안 왔댜?”
  “똥통에 빠져 브렀는 갑쟤! 하하하”

**나이가 같은 사람
 

  구리수산시장 난로 가에서 이 분주한 농담이 오가던 당시 시각은 새벽 4시. 보통 사람들은 한창 깊이 잠들어 있을 그 시각이 한평생 트럭 생선장수로 살아오신 이 분들에게는 그저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 시간일 뿐이었다. 내게는 참으로 생소했던 그 시간을 40년 동안 살아온 생선장수와 그 옆에서 20년 동안 생선장수 보조로 살아온 아내, 이 트럭 생선장수 부부의 하루를 따라가 보았다.
 

트럭 생선 장수 부부의 하루
 
오후 7시 ~ 7시 반
    취침
오전 3시                  기상 (여름은 오전 2시)
오전 4시                  구리수산시장 도착, 생선 고르고 생선 싣기
오전 6시 반              포천의 한 마을 도착.
오전 7시 반              본격 장사 시작
오전 9시                  아침식사
오후 1시                  장사 마무리 (여름은 오후 3시)
오후 2시                  점심식사
오후 3시 반              귀가 (여름은 5시)

1. 생선장수의 비밀

 
5:00am 구리수산시장
 
퍼슨웹(이하 ‘퍼’) : 트럭 몰고 장사 다니시다보면, 화장실은 어떻게 해결하세요?
 
박영자(이하 ‘박’) : 차타고 다니면 일일이 화장실 찾기가 힘들어. 그 때 그 때 상황 봐서 알아서 해결 해야지, 얼른 얼른. 사람 없을 때 차 세워놓고 뒤에서 해결하기도 하고 그러지.
 
퍼 : 큰 아빠는 물이나 과일 같은 것도 잘 안 드시던데, 혹시 화장실 문제 때문에 그러시는 건가요? 이 일을 하시면서 그런 습관이 생기신 거예요?
 
홍성일(이하 ‘홍’) : 아니, 나는 밥이나 때맞춰 먹으면 그만이여. 화장실도 원래 자주 안 가는 편이고. 하루 종일 차를 타고 다니면 아무래도, 변비와 같은 직업병이 생기기기는 하지.
 
퍼 : 저는 화장실을 자주 가는 편이라 이런 게 궁금했어요. 참! 그리고 트럭 장사하시는 분들 보면 항상 궁금했던 건데, 스피커로 나오는 그 멘트는 어떻게 만드시는 거예요?
 
홍 : 트럭에다가 돈 주고 따로 녹음하는 기계를 달았지. 그래서 여기다가 마이크를 이렇게 가지고 다니면서 연결해가지고 그 때 그 때 녹음을 해서 트는 거여.
 
퍼: 아 그 때 그 때 매일 다르게 녹음을 하시는 거예요?
 
홍: 그 때 그 때 트럭에 싣는 생선이 다르니까, 그거에 맞춰서 ‘아구, 고등어, 이면수……’ 뭐 이렇게 다시 녹음을 해. 사람들이 그 방송 듣고 ‘오늘은 어떤 생선이 있구나.’하고 나오니까.
 
퍼: 예전부터 트럭에서 나오는 그 방송 특유의 억양이 참 재미있다고 생각했어요. (웃음)
 
홍: 아이고 그게 뭐시라고 그렇게 재밌댜? (웃음)
 
퍼: 매일매일 다른 생선을 싣는다고 하셨는데, 트럭에 생선을 싣는 특별한 기준이 있나요?
 

홍: 기준이야 분명하지. 그 날 딱 봐서 상태가 가장 좋은 놈, 신선한 놈들 위주로 싣지.
 
퍼: 그런 것을 딱 보고 알아보는 건 역시 오랜 경력과 경험을 통해서겠죠?
 
홍: 그렇지! 생선이 먹이를 먹고 스스로 소화를 시키는 데 일주일 정도가 걸리거든? 그럼 그 일주일 꽉 차게 소화를 다 시킨 생선이냐, 아니면 소화를 하루 덜 시킨 생선이냐에 따라서 그 단단한 정도에 차이가 생겨. 생선은 단단한 놈일수록 좋~은 놈이거든. 그 하루 차이가 생선 상태를 엄청나게 다르게 만드는 거지. 생선 꼬리 요만큼만 커도 돈 차이가 엄청나지는 게 또 생선이고. 참 희한한 거야, 이게. 그런 걸 딱 보고 알 정도면 이제 생선 장사 좀 했구나 싶은 거지. (웃음)
 
퍼: (웃음) 이제 곧 설 대목이잖아요. 이런 때는 싣는 생선의 종류나 양이 더 늘어나나요?
 
박: 그렇지. 설 대목에는 아무래도 평소에 안 싣고 다니던 동태 포나, 새우, 상어 같은 것도 싣고 다니지.
 
퍼: 이런 명절 때는 장사가 그래도 잘 되는 편이지 않나요? 이 일에도 혹시 장사가 잘 되는 시기가 따로 있나요?
 

박: 요즘은 설이라고 예전만큼 장사가 막 잘 되는 건 또 아니여. 네가 시간도 참 못 맞춰 온 것이, 요즘이 제일 장사가 안 되는 시기야. 이 장사는 4월에서 부터 11월 김장하는 딱 그 때까지가 바쁜 시기거든.
 
퍼: 아… 무식한 질문일 수도 있는데, 혹시 겨울에는 생선이 잘 안 잡히나요? 물량이 많이 없어서 장사가 안 되는 거예요?
 
홍: 아니 그것은 아니고. 날이 추우니까 사람들이 밖으로 잘 안 나와. 사실 12월부터 3월까지는 특별한 명절이나 행사가 있는 시기도 아니니까 더 그렇기도 하고.
 
퍼: 장사 다니시는 곳이 포천 산정호수 주변 동네와 동두천 임진각 주변 동네라고 하셨는데, 이 정도면 시골 마을이잖아요. 다른 곳에 비해서 주변에 대형마트도 없고 하니까, 계절의 영향을 크게 받지 않을 것 같았는데.
 
박: 뭐 어디나 추워서 밖에 잘 안 나와 보는 건 같을 수 있지. 그런데 네가 말했듯이 우리가 장사 다니는 데가 좀 시골이잖니. 그래서 여기가 여름이면 일꾼들로 북적북적 거려. 그 일꾼들이 밥을 식당에서 먹거든? 그럼 그 식당에 우리가 생선을 대주는 양이 상당히 늘어나게 되지, 먹는 사람이 많아지니까. 그럼 여름에는 자연스럽게 장사가 잘 될 수밖에 없는 거여.
 
홍: 그게 한 4월부터 슬슬 시작해서 10월까지 그렇게 되지. 11월은 김장 시기 때까지만 젓갈이니 뭐니 잘 팔리다가 끝나고.
 

퍼: 큰엄마, 그런데 조금 아까 저 동네 어귀에서 아주머니께 장사 첫 개시한 돈으로 뭐하셨던 거예요?
 
박: 미신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밑져야 본전이니까. (웃음)그냥 오늘 하루도 무사히 돈 많이 벌게 해 달라고 비는거여. 이 돈에 ‘퉤퉤퉤’ 침을 탁 세 번 뱉는 시늉을 하고 머리에 쓱쓱 문질러.
 
 
< 손님 이야기1 >
 
( 오전 8시, 동네 어귀. 새벽장사를 다니시는 아주머니 )
손님: 난 아까 트럭 소리가 나가봤더니 없어서 가신 줄 알았어.
홍  : 응, 아까 지나가는데 안 나오기에, 일 나가신 줄 알았어. 오늘 도루묵이 좋~아.
손님: 안 그래도 우리 아저씨가 동해갔다가 도루묵을 한 상자 사왔는데, 그게 너무 질기더라고. 중국산 인가봐?
홍  : 아~ 요즘 도루묵은 중국산이 아니더라도 국내 것도 약간 그럴 시기야. 한창 알을 밸 때라서. 그래서 요렇게 알 안 벤 놈으로 먹어야 맛있어. 질기지도 않고.
손님: 아! 요즘 장사 너무 안 되죠?

홍  : 그냥 밥값이나 벌려고 놀러 다녀요. 하하하.
손님: 새해 복 많이 받으셔!
박  : 응! 아줌마도 새해 복 많이 받으셔. 감사해~

2. 생선장수의 단골

 
10:30am 거사리
 
퍼: 아까 커피 타 놓고 기다리고 계셨던 분들은 오랜 단골이신가 봐요?
 
홍: 아, 그 집은 한 30년 된 오래된 단골이여!
 
 
< 손님 이야기2 >
 
( 오전 10시. 30년 단골손님 부부의 집 )
홍  : 아이고 형님. 나 새해 들어서 처음 봐, 안 봐? 처음보지? 그러니 악수 한번 해야지!
형님: 이 사람아 뭐 새삼스레 하하하.
언니: 동생 이제 왔는가! 오늘은 좀 늦었네? 커피 안 먹고 기다리고 있었어.
박  : 응 언니. 근데 내가 아침 먹은 게 얹혔는지 속이 안 좋아. 매실차 한잔만 타주시오.
언니: 아, 그래? 잠깐만 기다려, 금방 타줄게. 그동안 고무 통에 있는 무도 좀 챙겨가.
홍  : 형님, 오늘 빨간 고기(=열기, 낀따루) 있어요!
형님: 빨간 고기 있어? 그럼 내가 또 사야지. 몇 마리나 있는데?
홍  : 몇 마리 사실 건데? 얼른 지갑 가져와요.
형님: 아이고 이 사람이 내 지갑 다 털어가네. 돈 주는 손이 왜 이렇게 떨리노.
박  : 돈 받는 이 손도 이렇게 바들바들 떨리네 그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또 뵈어요.
언니: 응, 어여 가. 또 보자고!
 
 
퍼: 참 보기 좋았어요. 그 집과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된 거예요?
 
홍: 뭐 처음에는 물건 팔러 갔다가 알게 되었지. 거기가 외떨어져 집이 있잖아. 그래서 원래 사람을 반기는 집이기도 하고.
 
박: 그리고 그 집 아줌마가 손이 커. 정이 많다고 하지!
 
퍼: 그렇게 보이시더라고요! 어제 그 분들이 아침식사 하시고, 두 분하고 함께 커피 마시려고 기다리고 계셨다고 하던데.
 

박: 그 양반들은 항상 그래. 우리가 좀 늦는 날도 있는데, 그 때까지 안마시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더라고. 같이 마시려고. 그 마음이 참 고맙지.
 
퍼: 단순히 생선을 사고파는 사람과 손님 사이는 아닌 것 같았어요. 그냥 당신의 동생이 생선 파는 일을 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랄까.
 
홍: 그렇지. 손님 그 이상의 관계지, 우리는. 여름에 우리는 거기 마당이 넓잖아. 거기서 칼도 갈고 다 해! 그래서 칼, 도마도 그 집 창고에 다 놔두고.
 
퍼 : 이렇게 장사하다가 만난 인연이 참 다양한 것 같던데.
 
박: 그 왜 어제 말 시원시원하게 하던 여장부 스타일 아줌마 기억나?
 
 
< 손님 이야기3 >
 
( 오전 10시 50분. 산으로 둘러싸인 한 마을. 얼만 전 소 키우는 대학을 나온 아주머니 )
홍  : 아이고 이리와 악수 한번 해.
손님: (일하던 장갑을 벗으며) 아유, 손에서 똥냄새 나는 데 무슨 악수야. 여하튼 새해 복 많이 받으셔!
홍  : 똥냄새가 좋은 거야! 10일 동안 손 안 씻어야지! 하하하
손님: 하하하. 아이고 이 양반 좀 보소. 난 코다리(=명태) 두 묶음만 줘.
박  : 다른 건 안 해? 이거 살라고 저 멀리서 그렇게 빨리 오라고 재촉했어? 난 또 많~이 산다고!
손님: 난 이거면 됐어! 아 빨리 줘! 어떤 이가 이걸로 코다리 조림을 했는데, 맛있더라고. 나도 한번 시도해 보려고!
 
 
퍼: 이 장사의 특성 상, 단골을 확보하고 유지하는 게 상당히 중요한 것 같아요.
 
홍: 어떤 장사나 마찬가지겠지만, 이 장사는 특히 단골을 확보하는 게 전부라고도 할 수 있어. 돌아다니면서 물건을 파는 특성 상, 손님들이 모두 뜨내기가 될 수 있지만, 반대로 그 사람들을 모두 우리 단골로 만들 수도 있거든. 그러니 더 부지런히 노력해야 하고.
 
퍼: 구체적으로 단골을 얻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셨나요?
 
홍: 뭐 생선 장사가 따로 방법이 있간디? 그저 싱싱한 생선 제 때 맞춰와 바가지 안 씌우고 팔았지. 남들보다 더 일찍 움직이고. 사실 내가 그 새벽에 구리시장 가는 것도 생물을 사려고 더 일찍 가는 거야.
 
퍼: 생물이 아닌 것을 팔기도 하나요?
 
박: 늦게 가는 사람들은 냉동 밖에 못 사. 그런데 손님들은 딱 알거든. 이게 싱싱한 건지 아닌지. 그래서 우리는 항상 그렇게 일찍 나가서 생물을 가져다가 팔고, 될 수 있으면 신선도가 떨어지기 전에 얼른 팔려고 하지.
 
퍼: 그렇게 부지런하게 움직이신 덕분에 단골들이 하나 둘씩 생겨나기 시작한 거구나. 가격도 시장이나 마트에서 파는 것보다는 싼 편인가요?
 
홍: 싼 편이지. 그렇지 않으면 그 사람들이 우리한테 사야할 이유는 더 줄어들지.
 
퍼: 정말 이 장사를 하려면 아주 부지런해야 할 것 같아요! 손님들과 이렇게 생선 팔면서 대화를 주고받고, 그 안에서 정을 주고받을 때 기분이 어떠세요?
 
박: 아이고, 말해 뭐해? 기분 좋~지! 손님들이 나와서 물건 많이 사주고, 서로 대화하면서 웃고! 그러고 가면 기분이 당연히 좋지.
 
퍼: 장사를 하면서 보람을 느낄 때가 특별히 있으신가요?
 
홍: 우리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참 보람이 있다고 느끼지. 꼭 오는 날인데, 우리가 안 보이면 일부러 전화도 하고 그래. 그 사람들도 이제 보이다 안 보이면 걱정이 된다고 그러더라고.
 
박: 또 그런 사람들은 꼭 우리한테만 사먹는 사람들이거든. 그러니 더 고맙지.
 

3. 생선 장수의 조건

 
11:30am 산골마을
 
퍼: 개인적으로 생선 장사의 생명은 칼질이라고 생각하는데요, 보니까 계속 큰아빠만 칼질을 하시더라고요. 특별한 이유라도 있으세요?
 
박: 내가 칼질이 좀 느려서 그런 것 같아. 그리고 원래부터 이 양반은 나한테 칼질을 잘 안 시키더라고. 나를 생각하는 건지 불안해하는 건지.
 
퍼: 정말요? 큰엄마를 사랑하는 마음을 이렇게 표현하고 계셨구나…
 
홍: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큰엄마는 나같이 못해, 칼질을. 생선을 잘 못 자르면 부서져 버리니까. 그리고 사람 마음은 속으로 깊이 간직을 해야지, 겉으로는 다 표현할 필요 없는거여. 나야 속으로는 절대 변함없지, 암.
 
퍼: (웃음) 네, 그래도 같이 다니시다 보면 자주 티격태격 부딪히시죠?
 

박: 그 때는 네가 있어서 양반이었지. 하루에 열 번도 더 싸우기도 하고 그래. 아무래도 하루 종일 붙어 있다 보니까.
 
홍: 생각해보면 아무 일도 아닌데, 물건 팔다보면 서로 그렇게 되더라고. 그냥 말을 하다보면 싸움도 되고. 괜히 그렇게 되는거여.
 
퍼: 생선장수는 칼질 말고 또 뭐를 잘 해야 할까요?
 
홍: 물건 파는 사람이 물건을 잘 팔아야쟤. 그게 최고 중요한 거 아니여?
 
퍼: 그럼 생선을 잘~ 파는 큰아빠만의 비결이 있으신가요?
 
박: 큰아빠가 나랑 있을 때는 무뚝뚝하니 말도 별로 없으신데, 장사할 때는 달라. 너도 어제 봤지? 사람들하고 막 농담하면서 웃고, 말도 왜 잘~ 하시지 않던?
 
퍼: 네! 정말 의외였어요, 그런 큰아빠 모습. 그런데 참 보기 좋았어요!
 
홍: 아니 그것은 그것이고! 생선 장사는 생선을 남기면 안 돼. 그러니까 생선에 욕심을 내면 안 된다는 소리야. 그게 장사 비결이라면 비결이지.
 
퍼: 생선에 욕심을 내면 안 된다고요?
 
홍: 처음에 시장에서 생선을 떼어다가 트럭에 실을 때, 딱 내가 오늘 팔 수 있는 양만큼만 싣는 거야. 욕심 부리지 않고. 그렇게 딱 내가 팔 생선이 다 팔리면 장사 접는 거지. 괜한 욕심 부렸다가 생선이 남으면, 그 물건은 다 버려야 하거든.
 
퍼: 장사하는 사람이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는 건 참 어려운 일 같은데, 큰아빠가 이 일을 그렇게 오랫동안 잘 해 오신 데는 그런 이유가 있었네요.
 
박: 그런데 그렇게 욕심을 안 부리는 큰아빠도 요즘은 경기가 하도 안 좋으니까 힘들지.
 
퍼: 요즘 장사가 안 된다는 말이 얼른 실감이 안 나서 그러는데요. 예전에 식당하고 거래했던 양이 지금하고 얼마나 줄어들었나요? 반 정도?
 
홍: 계절적인 점을 감안한다고 해도 예전에 우리 물건 두 박스를 받던 식당이 지금은 반 박스를 가져가거든? 반 이상 줄어든 거지.
 
퍼: 사람 마음이 안 그러려고 해도 장사가 잘 안 되다보면 좀 인색해지지 않나요? 덤으로 주는 것도 잘 안 하게 되고~
 
박: 우리는 뭐 딱히 그런 건 없지. 워낙 오랫동안 봐 온 사람들이라. 뭐 인색해지고 말고 할 것도 없어. 우리가 주면 주는 만큼 또 돌려주는 사람들이니까.
 
퍼: 이 어려운 경기 상황은 어떻게 해야 풀릴까요? 살기가 워낙 힘들 요즘들이잖아요.
 
홍: 요즘 워낙 다들 어려우니까, 내가 경제난 해소니 뭐니에 대해 말하기는 어렵고… 그냥 이 장사 경기는 사람들이 생선을 많이 사먹으면 될 것 같은디? (웃음)
 
 
< 손님 이야기4 >
 
( 오전 11시. 산으로 둘러싸인 마을 안 쪽 집. 몇 해 전 동해로 오징어를 잡으러 나간 남편을 잃고 지금은 혼자 살고 있는 아주머니 )
 

손님: 오늘 꽃게도 있어요?
박  : 여기 있어요, 내가 떨이로 만 원에 줄게 이거 남은 거 다 가져가요.
손님: 아이고 내가 오천 원 밖에 안 들고 나와서… 홍합이나 한 오천 원 어치 사야겠다.
박  : 꽃게 좋아하잖아. 이걸로 가져가. 오천 원은 나중에 주셔.
손님: 응, 내가 그럴게요. 다음번에 올 때 내 마저 드릴게.
박  : 그리고 잠깐만! (비닐봉지에 홍합 두 바가지를 담으며) 이거 가져가서 시원하게 끓여 드셔.
손님: 아이고 뭐 이렇게. 감사해요!
박  : 추운데 얼른 들어가요. 감사해~

4. 생선 장수의 구역

 
12:30pm 산정호수

 
퍼: 특별히 이 지역들, 산정호수 임진각 주변 동네로 장사를 다니시는 이유가 있나요? 이 지역들은 어떻게 선택하시게 된 건지 궁금해요.
 
홍: 내가 이 일을 한 지도 이제 40년이 넘어가거든. 처음에는 내가 운전하는 사람이랑 둘이 동업하는 식으로 같이 장사를 다녔어. 그런데 나중에는 벌이를 똑같이 이등분하는 게 시원치 않아지니까 서로 독립을 했어.
 
퍼: 그 뒤로 그럼 따로 운전면허증도 따시고, 트럭도 마련하시고 그런 거예요?
 
홍: 그렇지. 벌써 이 트럭이 네 번째인가 다섯 번째 트럭이니까. 혼자 장사한 지도 거의 40년 됐다고 보면 돼.
 
퍼: 아무래도 혼자 장사를 다시 하려면, 또 다시 장사할 새로운 지역을 찾아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을 것 같은데요?
 

홍: 아무래도 이제 혼자 장사를 다시 시작하려고 하다보니까, 생선을 팔 새로운 지역을 찾아야 했지. 트럭타고 다니는 장사는 장사할 곳을 찾는 게 아주 중요하니까. 그렇게 찾고 찾다보니까 저~ 동두천 시골 마을에까지 들어 들어가게 됐지.
 
박: 일주일을 5일 기준으로 생각하면, 요즘에는 저쪽 동두천 임진각 주변에는 3일 정도를 가고, 여기 포천 산정호수 쪽은 2일 정도 오고 그래.
 
퍼: 산정호수 주변 마을은 어떻게 들어가시게 되셨어요?
 
홍: 언제인지는 정확하게 기억이 안 나는데, 우연히 한 휴게소에서 산정호수에 사는 그 동네 사람을 그곳까지 태워다준 적이 있었어. 그 때 차를 놓쳤나 어쨌다 그랬었나? 하여튼 그 사람이 고맙다고 생선을 사주기 시작하면서 동네에 소문이 나기 시작하고. 자연스럽게 단골이 생겼지. 그러면서 그 주변 마을들도 하나씩 찾아서 들어가게 되었고.
 
퍼: 두 분은 그럼 이 동네들 말고, 장(場) 서는 데는 안 다니세요?
 
박: 응, 우리는 장에는 안 가. 장에는 돈을 줘야 해.
 
퍼: 그럼 아파트 단지나 이런 곳에도 전혀 안 들어가시는 거예요?
 
홍: 아이고, 큰 아파트 단지는 한번 들어가려면 돈을 내고도 한 1년 넘게 기다려야 하기도 해. 다 돈 주고 하는 거야. 그것도 단지 막 들어서기 시작할 때 딱 치고 들어가지 않으면 또 어렵기도 하고.
 
퍼: 트럭 장사 하시는 분들 중에도 한 곳에 좀 머물면서 물건을 파시는 분들도 계시던데, 두 분은 딱 물건 팔고 나면 잘 쉬지 않고 계속 이동, 이동하시더라고요.
 
박: 우리는 동네 골목, 골목을 돌아다니면서 장사를 하니까. 그리고 이 시간 즈음에는 ‘이 집에서 기다리겠구나.’ 이런 걸 딱 알거든. 그래서 될 수 있으면 시간 맞춰서 부지런히 얼른 얼른 이동하려고 하지. 다른 장사치들 보다 우리가 좀 빠른 편이기는 해.
 
퍼: 매일 장사를 이 길들로만 다니시니까, 오히려 서울 사시는 집보다도 장사하시는 곳이 더 친숙하실 것 같아요.
 

박: 오히려 서울 길보다는 이 쪽 지리가 더 빠삭하지. 서울 길은 잘 모를 때가 많아. 대부분의 시간을 이 주변에서 보내다 보니까.
 
퍼: 그렇게 따지면, 동네도 지금 살고 있는 동네보다 이렇게 장사 다니는 동네가 더 친숙하시겠어요.
 

박: 응, 사실 그렇지.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는 사실 옆집에 누가 사는 지도 잘 몰라. 그런데 이 동네에는 어느 집에 누가 살고, 그 누구네 집에 무슨 일이 있는 지도 다 알고 있잖아. 아까 봤지? 그 손님이 자기 어디 산다고 일일이 말 안 해도 그냥 척하고 그 집으로 딱 갖다 주잖아.
 
 
< 손님 이야기5 >
 
( 오후 12시. 산정호수 주변 마을 단골손님들 )
홍   : 내 여기 다 모여 있을 줄 알았어.
손님1: 오늘은 좀 늦었네?
홍   : 안녕하세요, 형님. 안녕들하세요. 아, 안녕하세요. 아이고 누님 안녕하셨어?
손님2: 날이 춥네. 복 많이 받어.
홍   : 아이고 누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셔! 이제 나도 누님하고 같이 늙어가는 처지네! (웃음)
손님2: 무슨 소리야! 야, 내가 너 업어 키웠어! (웃음)
손님3: 저 코다리(=명태)는 얼마나 있어? 한번 꺼내봐. 사람이 몇이냐, 이 정도는 있어야겠다.
손님4: 나는 자반이랑 아귀랑 해서 우리 집에 갖다 줘요. 거스름돈은 집사람이 살 거 있으면 보태서 더 사라 그러고.
손님5: 나는 저 대구 한 마리랑, 동태랑 오징어도 있어?
홍   : 형님도 집으로 갖다 놔? 알았어. 혹시 사람 없으면 안에다 들여놓을게.

5. 생선장수의 인생

 
2012.01 방학동
 
퍼: 40년 동안 쭉 생선 한 가지만 파셨던 거예요? 이전에 다른 일은 안 하셨었어요?
 
박: 아이고 너네 큰 아버지는 과일이며, 야채, 신발까지 안 팔아본 게 없어 야.
 
홍: 내가 젊은 시절에는 신발 팔러 전국 안 돌아다녀 본 데가 없었지. 또 그 이전에는 태평양 그 아모레 화장품도 팔러 다니고 그랬어.
 
퍼: 큰아빠가 방문판매 일도 하셨어요? 남자 방문판매원이라… 생소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네요.
 

홍: 그렇지. 당시 태평양 공장이 남산 밑에 있었을 때인데. 그 때가 외판원 생활을 막 시작했던 시기였을 거야. 그 당시에는 남자 외판원도 많았어.
 
퍼: 그럼 큰아빠 담당 지역은 어디였어요? 방문판매는 자기 담당 구역이 정해져 있는 것으로 아는데.
 

홍: 응. 나는 정릉 4동 담당이었어. 딱 정해진 자기 담당 지역에서만 물건을 팔 수 있었지! 그 화장품이 그 때 당시 외판, 시판용으로 따로 나왔거든? 근데 외판이 시판 것보다 비쌌던 걸로 기억해.
 
퍼: 왜요? 그냥 생각하기에는 방문판매용이 더 싸야할 것 같은데. 안 그러면 사람들이 다 시장에서 사지 않았을까요?
 

홍: 딱히 그렇지 않았어. 뭐 시장에서 살 사람은 시장에서 사고, 우리한테 살 사람들은 우리한테 사고 그랬지. 왜냐면 우리는 당시 3개월 월부로 팔았고, 시장은 바로 현금으로만 팔았거든. 그러니까 월부로 할 사람은 우리한테 사고 그랬지.
 
퍼: 월부라는 게 뭔가요?
 
홍: 월부는 한참 전에 없어진 개념이지만, 당시에는 장부에다가 3개월 치 월부를 매겨놓고, 한 달 치 씩 까고 표시하고 그랬거든. 지금의 카드 할부 생각하면 비슷한 거야.
 
퍼: 화장품 외판원 일은 언제까지 하셨던 거예요?
 
홍: 20살 때부터 한 몇 년 했지. 그 당시에 남자 외판원들이 낮에 여자 혼자 있는 집에 화장품 팔러가고 그러니까, 아무래도 이목이 좋지는 않았어. 가끔 남녀 사이에 불미스런 일이 있기도 했고. 그래서 점점 남자 외판원들이 없어졌지.
 
퍼: 큰아빠는 워낙 미남이셔서, 인기가 많은 외판원이셨을 것 같아요.
 
박: 그랬다고 하더라고. 네 큰아빠가 또 젊은 시절에는 얼마나 더 예뻤겠냐. (웃음)
 
퍼: (웃음) 그랬을 것 같아요. 처음 생선 장사를 하셨을 때도 우여곡절이 많으셨을 것 같은데. 어떠셨어요?
 

홍: 40년 전에 처음 이 장사를 시작했을 때는 당연히 트럭이 없었지. 그래서 리어카를 끌고 다니면서 생선을 팔았거든.
 
퍼: 맞아요, 예전에는 주택가 골목에 종 울리면서 두부랑 해서 파시는 분들이 많이 있었는데. 큰아빠도 종 울리고 다니셨던 거예요?
 
홍: 아니, 나는 확성기로 하루 종일 목이 터져라 ‘생선 왔어요!’를 외쳤지. 하루 종일 하도 말을 하니까, 장사가 끝나면 침 때문에 입가가 하얘지고 그랬어! 한번은 시끄럽다고 장사하다가 경찰한테 확성기를 빼앗기기도 하고 그랬었어.
 
퍼: 그때는 단속이 더 심했나요?
 
홍: 단속보다는, 통금 시간이 있었던 게 좀 불편했어. 통금이 풀리는 시간에 맞춰 청량리 시장에 가서 물건을 받아다가, 여기 우이동으로 오는 길에 팔고 그랬거든. 아무래도 생선 팔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드는 셈이지.
 
퍼: 생선을 늦게 사면 좀 더 늦게까지 파시면 되지 않아요?
 

박: 아이고 너네 큰 아버지는 생선 얼른 팔고 친구들하고 같이 술 마시는 재미가 더 쏠쏠하셨을 걸? (웃음)
 
홍: (웃음) 사실 맞아. 어떤 때는 그 날 하루 번 생선 값을 술값으로 고스란히 다 쓰기도 했지. 젊었을 때니까!
 
퍼: 다른 장사도 다 해보셨는데 결국 생선 장사를 선택하신 이유가 있을 것 같아요.
 
홍: 처음 장사 시작하기에 큰 자본이 없어도 떼다가 팔 수 있는 생물이었으니까. 일단 이거는 나가면 한 푼이라도 가지고 오거든. 절대 손해는 없었어, 생선 장사하면서는.
 
퍼: 아, 그래서 생선을 택하셨던 거구나. 큰 이익은 없지만, 손해는 안 보는 장사. 그럼 혹시 자식들에게 생선 장수의 삶을 물려주실 생각을 해보신 적은 없으세요?
 
홍: 이 장사가 싫었던 적은 없지만, 나도 나름 젊었을 때는 사업해서 성공하고 돈도 많이 벌고 그러고 싶은 꿈은 있었지. 그런데 내가 배움도 짧고 자본도 없고 그랬으니까. 그래서 이 장사를 시작했고 결혼하고 자식들 먹여 살려야 하다보니까 평생 생선을 팔면서 살고 있지. 그래서 자식들은 이렇게 힘들게 안 살았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어.
 
박: 아이고 이렇게 힘들 일을 뭣하러 자식들이 하게 해~ 전혀 그럴 생각 없지. 이 일을 하겠다는 놈들도 없을 거고. 이 일이 얼마나 고된 일인데.
 
퍼: 그럼 두 분은 이렇게 힘들고 고된 이 일을 언제까지 하실 생각이세요?
 
홍: 평생 해 온 일이 이 일인데,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 이 일 해서 먹고 살아야지. 그런데 요즘은 나도 나이가 들기는 들었더라고. 3-4년 전까지만 해도 감기 정도는 약 먹고 하루 딱 자고 나면 떨쳐내고 그랬는데, 요즘은 허리 수술한 데도 그렇고 눈도 안 좋아지고. 그렇더라고.
 
박: 나도 매일 트럭을 올라타고 내리는 걸 반복 하다보니까, 무릎 허리 이런 데가 아프더라고. 그래도 성격 상 평생 일 안 하고는 못 사는 사람들이라, 나도 그렇고 큰아빠도 그렇고. 아마 이 일을 계속 하고 살 거다!
 
퍼: 날씨도 춥고 장사도 안 되는 요즘인데, 그래도 이렇게 열심히 하시니까 이번 설에는 생선이 더 많이 팔렸으면 좋겠다!
 
박: 트럭장사는 가게장사와는 달라서 날씨가 너무 춥거나 눈이나 비가 너무 많이 오면 위험해서 장사를 못 나가거든. 그래서 설 대목에 날씨나 좀 도와줬으면 좋겠어.
 
퍼: 제가 눈 많이 오지 말라고, 날씨 많이 춥지 말라고 오늘부터 물 떠 놓고 기도 할게요.(웃음)
 
홍: (웃음) 아이고, 마음이라도 고맙다!

  생선을 한번 굽고 나면 온 집안에는 생선 냄새가 밴다. 창문을 활짝 열어 충분히 환기를 시키기 전까지 그 냄새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하루 동안 따라다니며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가 생선 냄새처럼 배어서 잘 사라지지가 않는다. 그렇게 40년 가까운 세월을 함께 한 사람들의 이야기라면 더더욱 그러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장사하는 사람과 손님 사이에 안부 전화를 주고받는다던 그 마음이 조금은 이해가 간다.
  그래서 일까. 피곤하고 힘들 것만 같았던 생선 장수 부부의 하루는 생각보다 꽤 유쾌했고 재미도 있었다. 돈 통에 돈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만 본 것이 아니라, 그 돈을 쥔 사람들이 오고 가는 모습을 보느라 더욱 그러했다. 그 사람들이 주고받는 이야기를 듣느라 더욱 그러했다. 생선 위에 덤으로 오고가는 배추며 무, 따뜻한 커피 한잔이 참 정겨웠다.
  이른 새벽 도봉동 집에서 출발한 트럭은 구리수산시장에서 포천 산정호수 주변 마을 구석, 구석을 돌아다니다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이 트럭 생선장수 부부가 머물고 난 자리 자리에는 그들을 기다리는, 그들이 찾아가는 사람들의 온기가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살아온 이야기가 사람들로 남아 있었다. 생선 하나로 맺어진 이 사람들의 인연, 이 희한한 광경을 보고 난 나는 참 고마웠다. 40년 동안이나 이렇게 트럭을 몰고 다니며 생선을 팔아 준 이 분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