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신동에 예술공간을 열다 – 러닝투런

<000간>은 지난 6월 창신동에 문을 연 청년 사회적 기업 러닝투런의 예술공간 이름이다. 러닝투런은 창신동의 한 지역아동센터에서 미디어 아트 교육을 해오다가 ‘창신동’에 대한 관심으로 이곳에 아예 2년간 계약을 하고 예술공간을 꾸렸다. 봉제 공장 사이(間), 혹은 ‘일상’이 되어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창신동의 익숙함 사이사이에서 '낯섦'을 발견하는 작업을 하고 싶다는 이들은 끊임 없이 질문 '꺼리'들을 던지고 있다.

소규모 봉제공장이 밀집해 있는 창신동에는 지역아동센터 교사들을 중심으로 ‘마을 만들기’ 밑그림이 그려지고 있다. 올 초 김미아 해송지역아동센터 센터장과 사회적 기업 참신나는옷 전순옥 대표가 창신동 지역아동센터 교사들을 대상으로 ‘창신동 마을 만들기’ 공감대를 나누고자 마련한 ‘토크쇼’에서 청년 사회적 기업 러닝투런이 함께 했다.*

콩(신윤예)과 키다리(홍성재)로 이루어진 청년 사회적 기업 러닝투런은 1년여 전부터 창신동에 위치한 해송지역아동센터에서 메세나 프로그램을 통해 아이들을 대상으로 예술 교육을 해왔다. 이들은 아이들과 함께 창신동 봉제 공장에서 나온 조각 천들을 모아 재배치해보거나 소품을 만드는 작업을 했고 골목 벽 아트 작업인 ‘오르막 페스티벌’을 진행하기도 했다.

당시 창신동에 위치한 사회적 기업에서 일하고 있던 내가 이들을 처음 만났을 때는 이곳에서 좀처럼 만날 수 없던 젊은 친구들이어서 무척이나 반가웠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마냥 반갑다고만 할 수 없었는데 그 이유는 이런 것이었다. 나는 이 동네에 물음표만 달 뿐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있는데 저들은 뭔가 ‘할 것(DO IT)’ 같은 느낌. 그리고 예상대로 이들은 결국 반 년도 채 되지 않아 이곳에 ‘000간’이라는 예술공간을 열었다.

창신동에는 수백 개의 소규모 봉제 공장이 밀집되어 있지만 어느 한 곳 특색 있는 간판이 존재하지 않는다. 러닝투런을 처음 만날 날, 이들은 내게 이 사실을 주지시켜 주면서 의아해했다. 과연 이 물음표가 어떤 답을 찾아가고 있는지, 그리고 이들이 창신동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궁금했다. 러닝투런을 만나러 창신동으로 갔다.

* 마을 만들기는 사라져 가는 공동체를 살리자는 오랜 시민 운동의 하나로, ‘더불어 사는 마을공동체, 함께 잘 사는 희망 서울’을 시정 비전으로 내세운 박원순 서울 시장이 2017년까지 5년간 725억 원을 투입하여 주민 중심의 자치, 문화•경제 활동이 순환되는 975개의 마을 공동체를 세우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종로구 전체에 있는 열 두 개의 지역아동센터 중에 절반 이상이 창신동에 자리하고 있다. 소규모 봉제공장이 밀집해 있는 창신동, 이곳 지역아동센터를 다니는 아이들의 부모 대부분은 이른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봉제 일을 한다. 일터와 가정이 공존한 이곳에서 지역아동센터 교사들을 중심으로 마을 공동체 만들기가 논의되고 있다는 것이 흥미롭다. 지난해 패션봉제마을 조성을 통한 창신동의 희망 찾기 집담회, 창신동 패션봉제마을 만들기 준비 일꾼 모임, 그리고 이후 세 차례의 마을 걷기 행사가 진행 되었다. 지금은 지역아동센터 교사뿐만 아니라 창신동 마을 공동체 만들기에 관심 있는 이들이 모여 한 달에 한 번씩 ‘창신 마을넷’ 모임을 가지고 있다.

 

예술공간 <000간>을 열다

 

퍼슨웹(퍼): 창신동에 예술공간 ‘000간’을 오픈 하셨는데요.

홍성재(홍): 네. 지난 6월 8일에 문을 열었습니다.

퍼: 제가 여기 오다 보니까 지나가는 사람들이 한 번씩 쳐다보고 가던데요, 주민들이 이곳에 관심이 많은가요?

   인터뷰 하는 동안에도 사람들이 통 유리를 통해 ‘000간’을 들여다보며 지나갔고 러닝투런이 해송지역아동센터에서 가르쳤던 아이들은 문을 열고 아는 척을 하고 가기도 했다.

신윤예(신): 저희가 작업장 꾸리느라고 2주 동안 작업을 했는데 동네 주민 분들이 왔다 갔다 하시면서 되게 궁금해 하시더라고요. 여기 뭐가 생기는 거냐고 묻기도 하시고요. 미술 작업실 생긴다고 하니까 그럼 여기 미술 학원 생기는 거냐고(웃음). 계속 궁금해 하시더라고요.

퍼: 미술 학원이요?

신: 네. 또 어떤 분은 미술 공간이 생긴다니까 치킨집 안 생기고 이런 거 생겨서 너무 좋다고 하시는 거예요. 이런 공간이 생긴다는 것 자체가 지역 주민들의 일상에서 사건 일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들어요.

퍼: 저도 이 지역에 있는 사회적 기업에서 일 년여 일했는데, 여기에 이런 공간이 생긴다는 게 흥미로웠습니다. 이곳 이름이 ‘000간’인데 표기가 특이합니다. 어떤 의미인가요?

신: ‘공공 공간’으로 읽습니다. 000이 ‘땡땡땡’으로 읽히기도 하는데요, 저희가 표기를 000으로 한 이유 중에 하나는 비어 있는 0, 그래서 어떤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의미를 담고 싶었어요. ‘공공 공간’이라고 한글로 썼을 때 ‘공’이 세 개나 들어가서 어색하기도 했고요.

퍼: 오픈 즈음해서 작업장 간판 사진을 미리 보내 주셨을 때 사실 단번에 읽지 못했어요. 이름을 아직 못 정하셨나 했죠.(웃음)

신: 그러셨구나. 원래 ‘공간’에서 ‘간’ 자가 ‘사이 간(間)’자잖아요. 창신동에서 거창하게 무얼 해야 하는 공간이라기 보다는 여러 공간(집이나 공장 등) 사이에 비어 있는 어떤 공간들 중에 하나라고 생각했어요. 저는 예술이 누군가를 계속 초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게끔 하는 거라는 생각을 하는데, 무수히 많은 빈 공간 중에 하나를 차지한 공간으로서 공간과 공간 사이를 잇거나 그 공간에 누구를 초대해서 이벤트나 전시들을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식으로, 우리만의 방식으로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어요.

홍: 또 ‘사이 간’자에 ‘끼이다, 엿보다’ 그런 뜻도 같이 있어요. 그래서 저희는 봉제 공장 사이에 ‘끼어’ 있는 거죠. 이런 의미를 담고 싶어서 ‘000간’으로 한 거예요.

퍼: 그런 의미가 있었군요. 그런데 예술이 누군가를 계속 초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게끔 하는 거라고요?

신: 예술이 가진 속성 중 하나가 사람들을 초대하는 기능이라고 생각해요. 예술이 있는 곳으로 초대하는 건데, 이걸 전시장이나 미술관이라는 한정된 공간이 아니라 더 확대하는 거죠.

퍼: 000간에 사람들을 초대하고 싶은 건가요?

홍: 저희가 이 공간의 운영 롤 모델이 될만한 전시를 기획한 적이 있어요. 아는 선생님이 초대를 받고저희한테 기획을 맡겼던 작업인데, 독일의 Coesfeld라는 도시에서 열린 Unexplored City라는 전시의 기획이었어요. Coesfeld는 큰 도시도 아니고 유명하지 않을뿐더러 심지어 관광도시도 아니에요. 정해준 것이 뭐였냐면 작가 30명 정도의 작품을 모아서 해외 전시를 기획해보자는 거였어요.

퍼: 해외 전시요?

홍: 네. 그런데 독일에서 작품의 운송비 지원도 안 해줬었고 또 보험 들면 돈이 어마어마하게 들잖아요. 30명의 작품 한 점씩만 해도 30개인데 그림까지 크면 감당이 안 될 것 같은 거예요. 그래서 저희가 생각한 게 우리가 가는 것은 지원을 해주니까 무료로 운송할 수 있는 항공 수화물 내에서 해결하자 해서 작가들한테 크기가 작은 작품을 받았어요.

신: 작품들 포장도 해달라고 했고요, 작품을 어떻게 설치해 달라는 작가의 요구가 담긴 매뉴얼도 요청했어요.

퍼: 설치 요구가 담긴 매뉴얼이라니요?

신: 이 전시회를 기획하면서 미술관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었어요. 미술관에 와서 사람들은 작품을 보고 집에 돌아가서 예술 작품 보고 왔다고 하잖아요? 작품을 만지거나 사진을 찍기도 힘들고, 그냥 말로만 하는. 그래서 이걸 아예 뒤집어 보자는 것이 저희의 의도였어요.

홍: 매뉴얼만 붙은 작품을 아예 개인적인 공간으로 가져가라는 것이죠. 그리고 각자 개인공간에 설치한 것을 찍어서 다시 미술관에 붙이는 거예요. 그러면 우리는 개인이 작가들의 작품을 가져가서 자기 공간에 설치한 것을 찍은 “사진”으로만 미술관에서 볼 수 있는 거예요.

퍼: 색다른 전시 기획이네요.

홍: 저희가 독일 전시장에 가서 한 것은 이 그림 작품들을 포장된 채로 전시장에 그대로 놔둔 거였어요. 사람들이 오프닝 날 오면 작가가 써준 매뉴얼만 보고 대충 그 작품이 무엇인지 짐작한 후에 포장된 채로 그냥 집에 가져가요.

신: 그리고 나서 저희가 그들에게 요청한 게 집에 가서 매뉴얼대로 설치한 것을 사진으로 보내달라는 거였어요. 보내준 사진들을 보면 작가 매뉴얼대로 한 경우도 있고 자기 마음대로, 자기 취향대로 한 경우도 있어요. 전시가 진행되면 될수록 전시관은 텅텅 비는 거죠.

퍼: 재미있네요.

홍: 재미있는 게, 사람들이 설치된 작품만 찍는 것이 아니라 자기도 꼭 같이 찍어요. 또 설치하는 과정을 찍어서 보내준 경우도 있어요. 작가 중심에서 그림을 가져간 사람이 주가 된 거죠. 이메일로 사진을 보내주니까 한국에서 그림을 보낸 작가도 볼 수 있고요. 전시를 통해 예술을 어떻게 매개할까 고민한 과정이 담긴 기획이었죠.

퍼: 주민 혹은 독자들의 ‘참여’를 이끄는 예술이라든가, 공간에 대해 새로운 고민을 하게 했다는 점에서 두 분에게 좋은 경험이었겠네요.

 

‘러닝투런’ 혹은 ‘2, 異’

 

퍼: 러닝투런은 어떤 단체인가요?

신: 러닝투런의 이름은 ‘배움을 배우다(Learning to Learn, 러닝투런 홈페이지 www.ltol.co.kr )’라는 뜻이에요. 기존의 상하체계의 교육에서 벗어나 같이 정보와 시간을 공유하고, 수행하면서 새로운 관계를 모색하기 위해 만든 이름이에요.

홍: 콜렉티브 이라는 아티스트 그룹으로 활동하기도 하는데요. ‘이’는 사회가 구성되는 최소의 구성원 두 명을 말하는 ‘2’이기도 하고 서로 ‘다른’ 둘이 모였다는 의미의 ‘異’이기도 해요.

퍼: 러닝투런과 콜렉티브 이, 서로 어떻게 다른가요?

신: 저희는 2009년부터 함께 활동해 왔어요. 콜렉티브 이(Collective 2)는 저희가 함께 예술 활동을 하면서 만든 이름이구요. 그런데 활동하면서 점차 예술의 사회적 역할에 한계를 느끼기 시작했어요.

홍: 예술가로 생존하기 위한 몇 번의 고민과 우연, 선택들이 저희가 러닝투런(Learning to learn)으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러닝투런이라는 이름으로 사회 문제에 좀 더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그 활동들로 대안적인 삶의 방식을 실천해보자는 거였어요. 러닝투런은 예술을 매개로 활동을 하지만 지역의 육아, 노동환경, 대안적인 일자리에 대한 적극적인 개입을 시도할 거예요. 러닝투런의 이름과 같이(배우기를 배우다)수평적으로 서로에게 무엇을 배워나갈지를 고민할 것입니다.

퍼: 창신동을 기반으로 러닝투런으로 활동하는 지금 콜렉티브 이는 어떤 의미인가요?

신: 그 동안 콜렉티브 이로 활동하면서 예술 활동을 해왔기에 지금의 삶을 살아가는 가치관과 미학적 실천들이 만들어 질 수 있었어요. 콜렉티브 이는 저희의 정체성을 지속시키며 고민을 심도 있게 해 갈 수 있는 일종의 통로라고 생각해요. 지역에서도 예술가로서 좀 더 날카로운 질문과 실천들로 지역에 다양한 자극을 주고 싶어요. 저희는 사회적 기업의 역할인 <러닝투런>과 예술가로서 <콜렉티브 이>의 활동을 병행하며 서로에게 좋은 자극제가 되려고 해요.

퍼: 둘이 작업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신: 끊임없는 토론과 신경 싸움?(웃음)

홍: 거의 둘이 작업을 하다가 지금 인터뷰어처럼 제3자가 개입을 하잖아요? 그때 서로 다르게 생각하고 있다는 걸 명확하게 아는 것 같아요. 아, 그 문제에 대해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구나 하고 서로 객관화가 돼요.

퍼: 그렇군요.

홍: 사람 생각이 다 같지 않습니다. 조금씩 디테일의 차이가 있어요. 그런데 저희가 작업할 때는 그게 또 원동력이에요. 같은 걸 보고도 왜 서로 다를까 생각해 보게 되고요.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저희는 러닝투런이라는 이름과 별개로 콜렉티브 이이기도 한데 다를 이(異)도 된다고 했잖아요. 성별도 다르고, 생각도 다르고, 감성도 다르니까 그걸 어떻게 진행해 나갈까 고민하죠.

퍼: 그럼 어떻게 의견을 절충하나요?

홍: 절충 안 해요. 이 공간을 꾸밀 때만 해도 냉장고를 이 방향으로 놓을까, 저 방향으로 놓을까, 칠판 페인트를 진녹색으로 칠할까 좀 더 까만색에 가까운 색으로 칠할까, 이쪽 벽면에 칠할까, 저쪽 벽면에 칠할까 하면서 서로 엄청 설득시켰어요.

신: 저는 성재 씨를 설득하고 성재 씨는 저를 설득하고. 설득하면서 생각이 바뀌기도 해요. 이 과정에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오기도 하고요.

홍: 취향을 맞춰가는 데 시간이 많이 필요했어요.

신: 갓 만난 사람들처럼 내 의견이 좀 더 반영되지 않는다고 해서 각을 세우거나 하는 상태는 지나간 것 같아요.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올 때 재미있어요.

홍: 저희 작업이 문제 인식을 하게 되면 방법이 바뀌어요. 계속 바뀌어야 하는 게 맞기도 하고요. 그게 둘이 작업하는 좋은 점인 것 같아요. 아무래도 둘 이상이 되면 그게 힘들 거든요.

퍼: 그렇다면 러닝투런에게 사회적 기업은 어떤 의미인가요?

신: 무엇보다 사회적 기업을 통해 사회적 기업 하는 사람들은 어떤 방식으로 생각하는지, 또 사회랑 어떻게 만나는지 배웠어요. 사회적 기업 하는 친구들이랑 관심사가 잘 맞고 얘기가 잘 통해요.

홍: 미술 작업하는 분들 만나면 어떻게 그려야지, 어떻게 걸어야지를 고민하는 친구들 되게 많아요. 왜냐하면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그런데 그런 친구들이랑 대화할 때는 별로 흥미롭지 않은데 사회적 기업을 통해 만나는 친구들을 보면 계속 놀라워하고 계속 반응하게 돼요.

퍼: 기존 예술 커뮤니티에서 얻지 못하는 것을 사회적 기업 커뮤니티에서 얻는다는 건가요?

신: 네. 예술가들은 본질적으로 개인플레이어거든요. 그런데 저희는 연대하거나 협업하면서 만들 수 있는 다양한 상황들이 흥미로운 거예요. 영감을 많이 얻죠. 하자센터*에서 세미나 같은 거 할 때도 재미있는걸 많이 알게 돼서 자주 가려고 노력해요.

하자센터 www.haja.net : 연세대학교가 서울시에 위탁 받아 운영하는 곳으로 정식 명칭은 ‘서울시립청소년직업체험센터’다. ‘스스로의 삶을 업그레이드 하자’,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해야 하는 일도 하자’, ‘자율과 공생의 원리’라는 의미를 담아 만들어졌다.(1999년 12월 개관)

퍼: 예술 활동이라고 하면 ‘개인 활동’이라는 생각이 강했는데 연대와 협업을 고민하는 예술가라니 재미있네요. 앞서 예술의 사회적 역할에 한계를 느꼈다고 하셨는데 사회적 기업으로서의 역할이 그 부분을 보완해 준다고 이해하면 될까요?

홍: 네. 사회적 기업하는 친구들을 보면 살림살이에 대한 고민이 항상 들어가 있어요. 어떻게 살아야 할지, 어떻게 먹어야 할지,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 지, 우리 진짜 생활에 대해서 얘기할 수 있어서 좋아요.

신: 그리고 저희는 그림보다 그림이 그려지게 되는 과정에 더 흥미가 있어요. 예술이 그런 과정들을 더 공유해야 한다고 봐요.

퍼: 그려지게 되는 과정이요?

신: 미술관에 걸리는 것들은 어떻게 보면 마스터피스잖아요. 그런 것들은 사실 ‘우와, 되게 멋있다’라고 할 수는 있겠지만 ‘근데 어려워’하고 말수도 있거든요. 사람들이 현대 미술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 중에 하나가 ‘어렵다’는 거잖아요? 저희는 그런 부분에서 다른 식으로 접근하면서 사람들이랑 어떻게 매개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거죠.

퍼: ‘어렵다’에 공감해 주시니 감사하네요.(웃음)

홍: 요즘 페인팅 작업하는 친구들의 작업방식을 보면, 캔버스가 있잖아요? 화방에서 틀 사고 천 씌어 놓고는 그릴 이미지를 구글에서 찾아요. 그래서 자기가 그리고 싶은 이미지끼리 꼴라주해서 포토샵으로 만든 다음에 빔으로 천에다가 직접 쏴요.

퍼: 아, 그렇게 작업하나요?

홍: 색연필로 대강 그린 다음에 다시 사진을 보고 색깔을 입혀요. 이게 불과 한 5년 정도 만에 정착된 새로운 방식이에요. 빔 프로젝트 나오고 구글로 이미지 리서치가 가능해지면서 누구는 낙타랑 사자랑 꼴라주한 거 그리고 누구는 사자랑 헬기랑 꼴라주한 거 그리고. 그리는 방식이 같으면 같은 작품인 거예요. 그리는 태도가 너무 똑같으면 별로 감흥이 없어요. 그래서 저희는 그림을 그려도 그림을 그리는 방식에 대해 고민을 하고 그려야 한다고 생각을 하죠. 저희는 폐쇄적인 작업실 보다는 지역에서, 그러니까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목에 공간이 있고 여기서 이렇게 작업물들도 보여줬으면 좋겠어요. 저희도 이런 걸 해본 게 아니라서 여기서 벌이는 작업 하나하나가 다 실험이고 과정이에요.


 

해송지역아동센터와 함께한 지역 예술 활동

 

퍼: 그 동안 해송지역아동센터에서 어떤 교육을 해 오셨는지 궁금해요.

신: <말하는 재료들>이라고 해서 창신동 봉제 공장에서 나온 자투리 천을 모아다가 재배치하고 구성하는 작업을 해보기도 했고요, <말, 풍선>이라는 타이틀로 헬륨풍선을 사다가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적은 다음 동네에 자신이 좋아하는 공간에 매달아 보는 활동도 했어요.

퍼: 어떻게 이런 작업을 하게 됐나요?

홍: <말하는 재료들>의 경우, 아시다시피 창신동에는 소규모 봉제공장들이 많고 거기에서 나오는 조각천이나 의류부자재들이 많잖아요. 실제로 해송에 다니는 친구들의 부모님들은 봉제업에 종사하고 계시거든요. 부모님들에게는 버려지는 노동의 잉여물이지만 아이들에게는 그것들이 살아 있는 예술 재료가 될 수 있다는 것이 흥미로웠어요. 그 재료들을 새롭게 구성하고 배치하는 작업을 아이들과 함께 해본 거죠.

신: <말, 풍선>의 경우는 아이들이 자신들이 살고 있는 공간에 보다 능동적으로 개입하게 하기 위해 기획한 수업이었어요. 자신이 좋아하는 장소를 정한 다음 풍선에 하고 싶은 말을 적어서 그 장소에 매달아 봤어요. 설치가 끝나면 다 같이 각자 풍선을 매단 장소를 답사해 봤지요.

퍼: 어떤 공간에 주로 풍선이 매달렸나요?

홍: 다양했어요. 담배꽁초를 많이 버린다는 자기 집 앞에 담배 피우지 말라는 메시지를 써서 매달기도 했고요, 공원에 재미있는 운동기구를 설치해달라는 메시지를 적어 놓기도 했어요.

퍼: 아이들과 벽 칠하는 활동도 하셨다고 들었는데요?

신: 네, 지난 5월에 오르막 페스티벌이라고 여기 골목골목이 오르막인 곳이 많아서 지은 이름인데요, 벽 리서치 수업의 결과라고 할 수 있죠.

퍼: 벽 리서치 수업이요?

홍: 네, 저희가 3개월 동안 이 동네의 벽에 대해 조사하고 어떻게 하면 벽을 보수할 수 있을까 함께 고민한 수업이에요.

퍼: 3개월 동안 한 벽과 관련해 하신 수업 내용은 뭐에요?

‘오르막 페스티벌’ 작업 과정 사진을 보며 인터뷰가 진행되었다.

신: 그 전에 저희가 했던 수업은 말씀 드렸듯이 동네를 알아보는 수업이었어요. 그러면서 보다 심도 있게 하나에 집중해서 해보자는 생각을 했어요. 그러다가 디자인 하는 친구랑 만나서 벽 디자인을 베이스로 한 리서치 수업을 통해 창신동을 알아보는 수업을 해본 거죠.

퍼: 어떻게 벽을 소재로 삼게 된건가요?

신: 여기 창신동에 길들이 되게 많은데 길들 사이에 벽이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우리가 쉽게 지나친다는 것으로 시작했어요. 그 다음에 우리 동네에는 어떤 벽들이 있을까를 조별로 나눠가지고 알아봤어요.

퍼: 아이들과 함께요?

홍: 네. 항목을 정해서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자신의 키로도 벽의 높이를 측정해 보기도 하고 여기는 더러운데 여기는 왜 깨끗한지도 생각해 봤어요. 가장 긴 벽, 짧은 벽, 자연스러운 벽 그런 것을 다 찾았어요. 아이들이 생각하는 게 다 다르거든요. 그래서 지도를 찾아 다니면서 보물찾기 하듯이 아이들이랑 점을 찍어가면서 했죠.

퍼: 재미있었겠네요.

신: 다양한 벽들을 보면서 “벽이란 과연 우리한테 뭘까”를 같이 생각했어요.

홍: 되게 웃긴 것도 있었어요. 나무로 조경해 놓은 것을 보면서 “이런 것도 벽일까?”하고 질문도 던져 보고요. 또 어떤 친구는 놀이터에 설치되어 있는 설치물도 벽이래요. 그러면서 우리에게 벽에 대한 혼란이 왔어요.

퍼: 하하.

신: 그래서 아이들이랑 벽에 대해 정의를 내리는 수업을 한 거예요. 벽이 도대체 무얼까? 벽은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런 다양한 벽들을 통해서 질문지를 만들어 봤어요. 해송지역아동센터랑 지장암 사이에 벽이 있는데 이 벽은 어떤가에 대해서 아이들이랑 얘기도 해보고 다른 사람들 이야기도 들어 보러 다녔어요. 이 과정에서 인터뷰 수업도 하게 됐고요.

퍼: 인터뷰 수업도 하셨어요?

홍: 네. 일단 인터뷰를 하기 전에 가상 인터뷰를 해봤어요. 아이들이 인터뷰 연습하는 걸 먼저 카메라로 찍고 아이들한테 다시 보여줬어요. 인터뷰를 하는 너희들의 태도가 어떤지 한 번 보고 시작하자는 의미에서요.

신: 이 수업이 좋았던 게 아이들이 인터뷰이가 되물으면 “그냥요” 혹은 “몰라요”라고 대답한다거나 부끄러워서 눈을 안 마주친다거나 이런 식으로 실수를 되게 많이 했어요. 인터뷰 태도가 이상하다고 말로 해줄 때는 모르는데 녹화해서 직접 자기가 인터뷰 하는 모습을 보여주니까 왜 이상한지 아는 거예요.

퍼: 인터뷰는 누구를 대상으로 한 건가요?

신: 주요 대상을 좀 나누어서 지장암 주지 스님, 슈퍼 아주머니, 미용실 아주머니, 지나가는 사람들을 인터뷰 했어요. 그리고 4시 정도에 학교 끝나고 중고등학교 애들이 이 벽 사이를 되게 많아 다니는데, 그 아이들을 대상으로도 했죠.

퍼: 인터뷰를 통해서 원하는 아이디어를 얻었나요?

홍: 사실 인터뷰 내용은 되게 일반적이었어요. 대부분 대답이 “벽화 그리면 좋죠”, “아이들의 꿈과 희망을 키웠으면 좋겠어요” 라는 거였는데 오히려 아이들이 인터뷰를 통해 실제로 사람들의 생각을 듣고 그것을 바탕으로 벽에 페인트를 칠하게 되는 과정이 즐거웠던 것 같아요.

신: 인터뷰 결과를 정리하면서 이 벽 사이를 어떤 시간대에, 어떤 연령대의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는지 아이들과 같이 세분화 해보는 작업을 통해서 이들의 요구를 어떻게 충족시킬 수 있을까를 우리 스스로 재질문해 보았어요. 그러고 나서 아이들이랑 최종 회의를 했어요.

퍼: 그래서 벽을 어떻게 하기로 하셨나요?

홍: 낙서가 많으니까 아예 낙서를 자유롭게 하도록 칠판페인트로 하자는 둥 아이디어가 많이 나왔는데 결과는 깔끔하게 하얀색으로 칠하자로 됐어요. 

퍼: 하얀색으로만 칠한 건가요?

홍: 네. 벽화는 하고 싶지 않았어요.

퍼: 그건 왜 그렇지요?

홍: 보수(保守)가 안 되잖아요. 벽화라는 게 보수에 대한 계획은 없어요. 저희는 아이들과 벽 리서치 하면서 이 벽의 기능을 이해하고 보수하면서 깔끔하게 유지하는 방법이 뭘까 고민했어요. 그래서 내린 결론이 흰 색 페인트로 칠해놓고 계절마다 색을 덧보태는 식으로 해나가자는 거였어요. 해송에서만 쓰는 벽이 아니기 때문에 모두의 취향에 맞추기 힘들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퍼: 의외의 결과네요.

신: 실제로 벽 사이를 자주 오가는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인터뷰한 결과를 바탕으로 벽 칠하기 작업을 한 것이 의미가 있었던 것 같아요. 오르막페스티벌을 통해 처음으로 아이들이 어머니랑 협업을 해본 것도 의미가 있었고요. 지금은 하얀색으로 깨끗하게 되어 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색깔도 좀 빠지고 지저분해지고 그럴 텐데요. 그런 부분들을 저희가 개입하는 게 아니라 해송이든 지역 주민들이 어떻게 할 것인지 계속 고민하면서 보수를 해나가면 좋겠어요.

홍: 페인트칠을 한 번 해봤으니까 아이들도 나중에 작업할 때 크게 거부감이 들지 않을 거예요. 흔적만 남기고 떠나는 것이 아니라 같이 리서치 하고 아이디어를 모으고 하는 과정이 중요한 거죠.


 

창신동에 오게 된 계기

 

퍼: 어떻게 창신동에 오게 되셨나요?

홍: 제가 2011년 한국메세나협의회를 통해 헬로우 뮤지엄 소속으로 한화예술더하기 프로그램을 진행했어요. 헬로우 뮤지엄에서 맡은 지역 중에 한 곳이 창신동이었던 거죠.

퍼: 지역을 선택할 수가 있는 건가요?

신: 헬로우 뮤지엄에서 맡은 지역이 여기랑 또 다른 곳이 있었는데 그 중에 한 군데가 창신동이었어요.

퍼: 처음에는 성재씨 혼자서만 활동하셨다고 들었는데요?

신: 네. 성재 씨가 작년 일 년 동안 이곳에서 미디어 아트 교육을 한 것을 봐오면서 창신동이라는 지역이 흥미로워서 제가 합류하게 되었어요.

퍼: 어떤 점이 흥미로우셨어요?

신: 성재씨와 함께 3번 마을버스를 타고 올라가는데 빽빽한 집들 사이로 돌 절벽이 있는걸 봤어요. 서울에 살면서 서울 한복판에 이렇게 큰 돌 절벽이 있는 것도 신기했고, 돌아다니면서 본 작은 봉제공장들도 너무 신기했어요.

퍼: 맞아요. 밖에서 봐서는 잘 모르지요.

신: 저희가 올 때마다 창신동은 재미있는 ‘꺼리’들이 항상 보여요. 그게 저희한테 큰 재산인 것 같아요. 재미있는 공간들이 계속 나오는 거예요. 시장 건너에 안양암이라는 큰 절도 있고, 일본식 가옥이 갑자기 막 나오고. 저희는 벤야민 식으로 보자면 외부인으로서 배회하면서 여긴 뭘까 저건 왜 저러지 하고 질문을 만들어 가는 사람들인 거예요.

홍: 저는 ‘한화 예술 더하기’를 통해 다양한 미디어를 사용한 예술 교육을 하면서 창신동이라는 지역과 연계한 활동을 지난 1년 동안 하다가 이것이 끝나고 나서 계속 이어서 할 프로그램이 없어서 아쉬웠었어요.

퍼: 창신동에 예술공간을 꾸리신 이유이군요. 여기 공간 비용은 얼마인가요?

신: 보증금 500만원에 월33만원이에요. 여기 공장이 되게 싸고 단타로 많이 나오더라고요. 저희가 원래 승미사라는 곳을 계약하려고 했는데 바로 나간 거예요. 그러더니 바로 또 공간이 나더라고요. 순환들이 되게 빨라요.

퍼: 비용은 어떻게 마련하셨어요?

홍: 보증금이랑 월세는 저희가 내고 나무랑 철은 사회적 기업으로 지원 받았어요. 청년 사회적 기업은 인건비가 아닌 사업비를 지원해 주는데 이곳에 작업장을 꾸린 것도 일종의 프로젝트라서 이 공간을 만드는 데 필요한 나무랑 철은 사회적 기업 시스템으로부터 지원받는 것이지요.

퍼: 그럼 인건비는 어떻게 마련하세요?

홍: 그게 아까 말씀 드린 한화 메세나랑 관련되는 것인데요. 한국메세나협의회에서 저희가 예술 단체로 활동하고 있어요.

퍼: 거기서 지원을 받는 거군요?

신: 예술가들을 직접 지원하는 것은 아니고 지역아동센터의 교육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거예요. 옛날에는 기업에서 미술관을 만든다고 하면 세제를 감면해 주고 그랬는데 요즘에는 이런 교육 프로그램으로 많이 하더라고요.

홍: 한화 메세나의 경우 한화는 지역아동센터에 예술 강사들을 파견해서 예술 교육을 하도록 하는 것으로 사회 공헌 활동을 하는 거예요. 전국에 지역아동센터가 많이 있는데 저희는 거기 가서 아이들하고 수업하는 걸로 돈을 받는 거지요.

퍼: 기간이 정해져 있는 것인가요?

홍: 메세나 같은 경우는 3년이고요, 올해 시작했어요. 월 여섯 번만 수업을 하면 되는데 그걸로 저희가 쓸 수 있는 충분한 지원을 받아요. 기업에서는 워낙 지원을 많이 해줘요.

신: 저희가 이번에 현대차그룹에서 주최하는 H-온드림 오디션에 지원을 하려고 하는데 그 이유 중에 하나도 기업에서 사회적 기업에게 주는 펀드를 활용하기 위함이에요. 요즘 저희의 핫 이슈이기도 하죠.

   지난 7월 러닝투런은 H-온드림 청년사회적기업인큐베이팅 부문을 수상했다.


 

사회복지사 아닌 예술가로 지역과 공존하기

 

퍼: 지역 단위로 마을 만들기가 붐처럼 일고 있는데요. 사실 저는 어려서 농촌의 동족 촌에서 자라서인지 마을을 ‘만든다’는 것이 굉장히 인위적인 것처럼 느껴져요. 물론 어떤 부분에서는 공감이 되기도 하니까 물음표를 달면서도 이 언저리에 머무르고 있는 것이기도 하겠지만요. 두 분도 몇 차례의 창신동 마을 만들기 모임에 참여 하셨잖아요?

홍: 저도 계속 고민하고 있기는 한데 지금 말씀드릴 수 있는 건 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거예요. 그 동안 아파트 같은 것을 짓고 부수고 하면서 서울에서도 지역의 정체성이 중요하다는 걸 인식하게 된 거죠. 쓸어놓고 짓고 쓸어놓고 짓고 하니까 여기 가나 저기 가나 다 똑같고. 원래 같은 옷 입고 있으면 다른 옷 입고 싶어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처럼 요즘엔 지역 축제도 많잖아요? 수도권에서 멀어질수록 지역의 정체성을 더 드러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신: 저는 원래 있던 것을 잘 살리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마을 만들기에서 가장 우려되는 점이 그거예요. 그 동네의 아이덴티티를 살려야 한다는 강박증에 시달리면서 ‘이런 마을이에요’ 라고 하는 것은 오히려 다양성을 죽이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 다양성을 잘 살리는 일이 중요한 거죠. 마을은 언제나 있었어요. 물론 아파트 단지들이 생기면서 기존의 커뮤니티가 사라지긴 했지만요.

퍼: 다양성이라……

홍: 우리가 생각하는 마을 만들기는 그런 거죠. 우리 상황에 맞게 공간을 자기 스스로 어떻게든 바꿔보고 튜닝해 보는 거라고 생각해요. 막 없었던 마을을 새로 짓는 그런 것은 아니고요.

신: 결속을 다지는 것은 중요한데 커뮤니티를 만들 때 너무 하나만의 슬로건을 가지고 하는 건 진짜 아니라고 봐요. 너무 파시즘적인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저희가 여기 작은 공간으로 차리고 싶었던 것도 다양한 것들 중의 하나의 점이 되고 싶었던 거예요. 다양한 성격의 이런 점들이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저는 다양성을 살릴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수 있는 장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퍼: 다양성을 살릴 수 있는 기반이요?

신: 예를 들면 성미산 마을이 마을 만들기의 좋은 선례이긴 한데 너무 하나의 브랜드가 되어 버린 것 같은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성미산 마을처럼 되어야지!’ 이런 거요.

홍: 마을 모임을 할 때도 마을을 꼭 어떻게 해야겠다는 분위기가 있잖아요. 저는 여기 와서 태어나서 볼 오토바이를 다 본 것 같은데 오토바이 소리 같은 환경에 관심이 있어요. 이 소리가 공장이랑 집이랑 공존하는 환경일 수도 있고요. 그러니까 ‘오토바이를 줄이자’는 식의 접근이 아니고 다른 방식으로, 작고 심도 깊게 같이 대화해 볼 수 있는 ‘꺼리’들을 계속 건드려 나간 달까?

퍼: 막 바꿔야 한다는 것보다…?

신: 네. 질문을 하는 거죠. 오토바이나 여기 버려지는 천들을 매개로 질문을 던지고 싶은 거예요. 저는 여기 온지 1년이 안 됐어요. 1년 동안 계절의 변화에 따른 여러 가지 변화에 대해서 같이 얘기해 볼 수도 있는 거고요.

홍: 여기가 계절에 따라서 버리는 천의 종류와 양이 달라요. 저희는 일종의 다큐멘테이션으로 하면서 그걸 이야깃거리들로 만들어 가는 거죠. 다큐멘터리 하면 영상으로만 찍잖아요. 그런데 사실 좋은 건 물질이기도 하거든요. 여기서 버려지는 천들을 이용해 설치하는 거랑 모아 놓은 거랑 그걸 영상으로 찍고 사진으로 찍고. 인터뷰로 하는 것과는 또 다른 방식인 거예요. 미술에서는 설치로도 그런 게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희가 2년 동안 계약을 맺었으니까 2년 동안 리서치가 가능한 거잖아요. 되게 재미있는 것들이 나오지 않을까 싶어요.

퍼: 저는 겨울에 이 길(급경사 길)이 어떻게 될지 궁금했어요.

신: 그런 것일 수도 있죠. 마을 만들기 모임에서 계속 커뮤니티 만들어야 한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사실은 원래 있는 커뮤니티 안에서 어떤 방식으로 해나갈 수 있을까를 질문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홍: 커뮤니티가 없는 게 아니에요. 옆에 창신 슈퍼를 보니까 가끔 싸움도 하고 그래요. 창신 슈퍼만의 커뮤니티가 있는 거예요. 저런 커뮤니티는 어떤 걸까 하고 슈퍼 아주머니들이랑 이야기할 수 있는 거죠.
 
퍼: 동네 슈퍼의 커뮤니티도 생각할 수 있겠네요.

신: 저는 제일 중요한 건 다양성이지 하나의 길로만 가는 걸 유도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그런 것들이 일어날 수 있게끔 판을 많이 만들어 주는 게 필요한 것 같아요.

퍼: 네.

신: 예전에 동두천이랑 군산에서 지역과 연계해 예술 활동을 하셨던 디렉터 분을 만나서 얘기할 기회가 있었어요. 그분은 오랫동안 예술가들이랑 어떻게 지역을 연계할까 많이 고민하신 분인데 아마 많이 데이셨나 봐요.

퍼: 데이다니요?

신: 주민들이 우리 벽이나 칠해주고 가라, 우리 수도는 안 고쳐 주냐 이런 식이고. 예술가가 아니라 집 고쳐주러 온 러브하우스인 거예요. 게다가 구청에서는 우리 동네의 특별한 것들을 찾아 달라고 그러고. 

홍: 표상해 달라, 특화 시켜 달라. 예를 들면 창신동 같은 경우는 바늘이라든가 재봉틀로.

신: 도시를 브랜스화 시키는 거죠. 그런데 과연 그런 게 지역 연계 예술과 맞닿을 수 있을까 하는 것에 대해서 의문이 들어요. 그런 경험에서 ‘너희는 사회복지사가 아니다’라고 확실하게 말씀해 주시더라고요. 공감 가는 부분이었어요.

홍: 한편으로 그 분들은 너무 차갑기도 해요. 3, 4개월 머무르다가 전시 한 번 딱 하고 떠나거든요. 지역 사람들은 그 사람들이 거기 있었는지도 모르고 그곳에서 무얼 했는지도 몰라요. 저희는 저희 시선으로 지역 분들과 긴밀하게 연결될 필요가 있겠다고 느껴요.

퍼: 해송지역아동센터에서 보증금을 지원해 주고 싶다고 하셨을 때 그걸 거절한 이유가 거리 두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하셨는데 그 지점이 지역에서 활동하는 것의 한계와 연결 되나요?

홍: 지역에서 활동을 하면 지역을 표상하는 작업을 막 해야 할 것 같고 지역 주민들한테 도움을 주어야 할 것 같고 마치 사회 운동가처럼 뭔가 개선을 해야만 할 것 같은데 그게 싫은 거예요. 마치 여기를 개선해야 하고 이곳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즐거움이 없는 것처럼 불쌍한 사람 만드는 거요. 저는 그 자세가 너무나 좋지 않다고 생각해요.

퍼: 뭔가 개선해야 한다는 것에서 출발점을 삼으면 그럴 수 있겠네요.

홍: 그런 것에서 마을 만들기의 문제점이 파생되는 것 같아요. 누가 누구를 어떻게 행복하게 해줘요. 스스로 행복하기도 힘든데. 저는 저의 어머니도 행복하게 못 해드리는데 남의 가정을 어떻게 행복하게 해주겠어요. 저희는 지역에서 리서치 하면서 지역 안에서 사람들한테 무얼 배울 수 있을까, 어떤 경험들을 만들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싶어요.


 

접시 돌려쓰기와 월간 쇼

 

퍼: 앞으로 어떤 작업을 하실 생각이세요?

신: 저희가 이번에 오프닝 파티 하면서 일회용품을 쓰지 않는 파티를 기획 했어요.

퍼: 일회용품을 쓰지 않는 파티요?

홍: 네. 일단은 일회용품을 쓰지 말자는 취지가 있었고요, 다른 하나는 지역 주민들을 어떻게 참여시킬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있었어요. 오프닝 파티가 열리던 날 공장이 많이 쉬는 날이기도 했고 낯설고 젊은 친구들이 많이 오니 오시기가 부담스러우실 것 같더라고요.

신: 그래서 오프닝 파티 전에 공간 오프닝을 알릴 겸해서 수박이랑 떡을 돌렸어요. 그러면서 공장에서 쓰시는 접시를 하루만 빌려달라고 했죠. 그리고 그 접시로 파티를 한 거예요.

퍼: 아, 뒤에 칠판에 그려 놓으신 게 그날 빌려 쓴 접시들인가요?

   ‘000간’에 들어서 오른쪽 벽면을 채우고 있는 벽 칠판에는 접시 돌려쓰기란 제목 아래 아마도 접시의 모양일 동그라미와 연희사, 옆집(빌려온 곳), 조끼, 자켓(그 공장에서 만드는 것), 21cm, 큰 꽃무늬(접시 크기와 특색)이 적혀 있었는데, 마침 저것도 무슨 설치 예술일까 궁금하던 참이었다.

신: 네. 작품 캡션처럼 칠판에 접시를 대가지고 그린 다음 어떤 공장에서 얼마만한 크기의 접시를 빌려 왔는지 적어놨어요.

홍: 인증샷을 찍은 것은 접시 돌려 드리려고요. 오늘 돌려 드릴 거예요.

퍼: 그러니까 옆집 공장들은 접시로 오프닝 파티에 참여하신 셈이네요?

신: 그렇죠. 재미있던 것이 외부에서 온 저희 친구들이 저 접시를 사용했잖아요. 서로 얼굴을 보지 못했지만 한쪽에서는 파티에 참여해서 그 접시를 사용했고 다른 한 쪽에서는 파티에 참여하지는 못했지만 접시를 빌려주었고요.
 
홍: 접시를 통해서 서로 다른 커뮤니티가 만난 거죠.

퍼: 재미있네요. 이 아이디어는 어떻게 생각하게 되신 거예요?

홍: 어떻게 주민들의 참여를 유도할까에 대한 고민이 있었어요. 주민들이 여기 예술 작품이 있으니 와서 보시라고 하면 처음부터 와서 열심히 보거나 그러기는 어려울 것 같고요.

신: 리크릭 티라바니야(Rirkrit Tiravanija)라는 태국작가가 미술관에서 사람들과 음식을 해먹는 퍼포먼스를 한 적이 있었어요. 미술 안에서도 일시적인 커뮤니티를 만든다거나 생활과 밀접한 것들을 통해서 다른 식으로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만드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거든요. 저희도 여기 예술 공간이라는 것이 생겼는데 주민들한테 그분들이 가지고 있는 생활 용품을 가지고 어떻게 퍼포먼스로 보여드릴 수 있나, 접시와 같은 일상 용품을 가지고 외부 사람들이랑 어떻게 공동의 경험으로 매개할 수 있나를 고민했던 거죠.

퍼: 접시 돌려쓰기는 예술 공간에 주민들을 참여시키고 싶은 마음과 낯설지 않은 생활 용품을 통해서 이런 퍼포먼스도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바람에서 비롯된 것이네요.

홍: 또 저희가 앞으로 월간 쇼를 할 생각인데요, 이 공간을 통 유리로 하고 싶었던 가장 큰 이유가 밖에서 보도록 하기 위함이에요. 저희가 이 지역을 리서치해서 그 결과를 월간마다 ‘설치’를 통해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매개체로 활용할 수도 있는 거고요. 월마다 어떤 테마를 정해서 전시하고 얘기하는 이런 구조로 갔으면 좋겠어요.

신: 앞서 말씀 드린 독일의 전시 공간이었던 쿤스트베어레인이 큰 자극이 되기도 했어요. 이 공간은 주민들이 출자한 돈으로 운영되고 주민들의 커뮤니케이션의 장이 되고 있어요. 이 공간에서 문화적인 활동을 하거나 정보를 교환하기도 하고요. 예술공간이 지속되는 다른 방식도 이 지역에서 함께 고민하고 있습니다.


 

 ‘이건 뭔데?’ 질문 ‘꺼리’ 던지기

 

퍼: 처음 만났을 때 창신동 봉제 공장에 간판을 달고 싶다고 하셨잖아요?

신: 저희가 이번에 접시 돌린다고 접시 빌리러 동네 공장 돌아다니면서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어요. 여기는 간판이랑 상호가 거의 안 맞더라고요. 어떤 데는 우리 부동산이라고 되어 있는데 봉제공장이고 치킨 파트너라고 되어 있는데 봉제공장이고 그래요. 아가페 홈패션도 공장이고.

퍼: 아, 그래요? 그럼 직접 들어가 보지 않으면 모르겠네요.

신: 심지어 우리 부동산이라고 간판 달고 있는 데는 ‘여기 부동산 아님’이라고 아래 쓰여 있어요. 

퍼: 간판을 안 바꾸시는 거예요?

신: 네. 업종 변경을 하면서 안 바꾸는 거예요. 추측이긴 한데 여기 가게들이 빨리 빠지고 이러니까 간판을 안 달고 하는 데에 익숙하신 것 같아요.

홍: 간판의 필요성이 없어요.

퍼: 그렇군요.

신: 제가 알기로 계약 단위도 1년 단위로 한대요. 1년 아니면 2년? 공장 구하러 다니는데도 시즌일 때는 공장이 없어서 못 구할 정도로 한 번 빠지고 옮기고 그러나 봐요.

퍼: 새로 안 사실이네요. 공장이 1년 단위로 들어왔다 나갔다 한다고요?

신: 일 년, 이년에 한 번 그렇게 되는 거죠. 저희가 이 공간을 만들 때도 여기에 공을 들이니까 빌린 공간인데 왜 그렇게 공을 들이느냐는 말씀을 하시기도 하더라고요. 자신들이 계속 일하는 공간인데 별다른 애착이 없는 것 같아 보이기도 하고요. 이런걸 보면서 그분들의 일하는 공간과 그 사이의 관계들에 대해서 한 번 얘기해보고, 작업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홍: 간판을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간판이 필요가 없더라고요.(웃음) 여기 해송 지역아동센터 친구 어머니가 하시는 공장가서 간판 안 필요하시냐고 여쭤봤더니 안 필요하대요. 안 필요한데 만들 필요가 없잖아요. 그 공장은 아예 간판이 없어요. 왜냐하면 오더를 받아오기 때문에 그 사람만 위치를 알면 되는 거예요.

퍼: 이 동네에서는 간판이 좀 다른 의미네요.

홍: 그런 기능이랑 좀 다른 것 같아요. 토마토 분식인데 원피스 공장이고.(웃음) 제 친구들도 오프닝 파티 때 작업실에 왔다가, 그날 마침 공장이 되게 많이 노는 날이었어요. 그러니까 친구가 “어디를 공장이라고 하는 거야?” 하면서 다 분식점이고 식당이고 심지어 (간판이) LG에요. 다른 지역이랑 간판의 의미가 다른 것 같아요.

퍼: 재미있네요.

홍: 봉제공장이라고 되어 있는 데가 제가 알기로 하나도 없어요. 옛날 가게 했던 이름들 그대로 남아 있는 거죠. 안 떼 가고. 여기 이 공간 전에도 창신 석유라는 간판을 달고 있었는데 저희가 공사 다 할 때까지 간판을 안 떼 줬어요. 계속 떼어 달라고 하는데도. 우리는 창신 석유 아닌데.(웃음)

신: 간판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 원래 간판 있으면 그 간판 아래 달아라 이런 식이에요.(웃음)

퍼: 이 공간 간판도요?

홍: 그러다보니 그런 것에도 관심이 생겼어요. 우리가 이미 들어왔는데도 간판을 교체해주지 않는 태도. 고쳐주지 않는 태도.(웃음)

신: 왜냐하면 이분들은 6개월, 1년 후에 옮기는 거에 익숙하신 거예요. 그러니까 사실 간판을 해주고 그런 것 보다는 그것들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 장으로 끌어 올까가 더 흥미로운 거죠.

홍: 진짜 안 필요한지도 좀 알아보고.

퍼: 그 필요성에 대해 함께 이야기해 볼 수 있겠네요.

신: 과연 이 사람들이 정말 필요가 없는 건지 아니면 이거에 대한 인식이 없어서 그런 건지. 여긴 간판이 좀 다른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하고 여쭤 볼 수도 있는 거고. 그런 식으로 진행해 나가면 재미있을 것 같아요.

퍼: 그러고보니까 저도 한 가지 기억나는게 있네요. 제가 예전에 서촌 주민한테서 서촌 가이드를 받은 적이 있는데 거기에도 멕시칸 치킨이라고는 되어 있는데 정작 치킨은 안 팔고 찌개나 제육볶음 같은 걸 판다고 하더라고요. 외부에서 온 사람들은 모르고 그 동네 사는 주민들만 아는 거예요. 그래서 미리 주문해 놓고 먹으러 가고.(웃음)

신: 그것도 되게 재미있네요.

홍: 또 그런 거 관심 있어요. 일할 때 보면 스팀 같은 거 올라오잖아요. 그런 거를 아카이브 해보고 싶은 거예요. 노동 양이랑 시간이랑 관계 있는 것 같고. 천 되게 많이 버리잖아요. 그런 거랑 노동 양이랑 측정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퍼: 그렇죠. 여기 골목길 걷다 보면 하얗게 피어 오르는 김이나 천들이 가장 먼저 눈에 띄기도 하니까요.

홍: 또 다른 흥미는 쓰레기예요. 저희가 오르막 페스티벌 할 때 제일 문제가 됐던게 쓰레기였어요. 저 위에 빈집이 있는데 그 앞에 쓰레기를 모아 놓는 거예요. 그거 말씀 드렸더니 너희가 뭔데 쓰레기를 여기 놓으라 마냐 하느냐 하시더라고요. 여기선 되게 민감한 문제인 거예요.
 
퍼: 그럴 수 있겠네요.

홍: 여기 길이 꼬불꼬불 하잖아요? 쓰레기 문제로 엄청 싸운대요. 여기 사람들한테 쓰레기 문제가 되게 첨예한 문제인 거예요. 그렇긴 한데 누구도 나서서 건드리기 힘든 문제?

퍼: 쓰레기 문제도 있구나…

홍: 그러니까 저희가 쓰레기 조금만 내려놔도 훨씬 미화에 도움에 될 것 같은데. 쓰레기를 내놓는 공간이 되게 좁아요. 길이 좁거든요. 쓰레기를 배출하지 말라는 방식이 아니라 같이 얘기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드는데 워낙 민감해가지고.

퍼: 그렇겠네요.

홍: 어떻게 보면 아주 뜬금없는 얘기보다 얘기할 수 있는 꺼리들이 이렇게 있는 거예요. 쓰레기 문제랑 상관없는 현대인이 어디 있어요. 간판도 그렇고. 간판 다 보잖아요. 이게 특정 지역의 문제인데 어떻게 다시 보편적인 이야기로 끌어낼까, 이쪽에서는 또 어떻게 반응하는가, 그런 거에 관심 있어요. 그런 식으로 계속 측정해 나가보려고 해요.

신: 무엇보다 ‘이건 뭔데?’라는 질문을 유도해서 같이 얘기를 할 수 있는 장이 마련된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원래 하는 일과 상호가 다른 간판과 그 분들이 일하는 공간과의 관계에서 시작하는 거죠.

홍: 한편으론 저희가 흥미롭다고 생각하는게 여기 사는 아이들한테는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도 해요. 어떤 면에서는 이 동네, 이 지역이 흥미롭다고 강요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그래서 이 공간이 아이들한테 ‘집이랑 다르네?’ 하고 그런 차이들을 생성하는 공간이었으면 좋겠어요.


 

에필로그

 

옷 만들고 남은 천이 쌓여있는 거리와 다리미 연기가 뽀얗게 이는 골목, 이 좁은 골목을 비집고 원단을 나르는 오토바이와 ‘데보라 미용실’ 간판을 달고 있는 봉제공장…러닝투런은 창신동 구석구석이 예술 ‘꺼리’라고 말한다. 지역과 연계한 예술 교육 프로그램으로 창신동과 인연을 맺기 시작한 러닝투런의 작업은 골목골목의 낯설고도 익숙한 모습을 발견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또한 이것은 골목 안에서 발견한 것을 그들 방식대로 새롭게 만들어내고, 다시 창신동 사람들에게 보이는 것이기도 하다.

000간을 플랫폼 삼아 창신동 저만큼에서 ‘거리 두고 바라보기’와 ‘촘촘히 간(間)을 좁히고 밀착해서’ 익숙하지만 낯선 것을 발견해 보겠다는 러닝투런의 실험. 이런 그들에게 000간의 계약이 만료되는 2년 후의 창신동이 어떻게 변해 있을 것 같으냐는 질문은 우문이다. 나는 그저 이들의 궁금증이 어떤 답을 찾아가는지,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그들의 작업실을 지켜보거나 그보다 마음이 동하면 함.께.하.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