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돌보는 법 – 상담사 주혜명

주혜명 선생님은 ‘주혜명 마음챙김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는 상담사, 명상 전문가다. 그곳에서 명상과 상담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사람들을 만나 마음을 들여다보고, 다루고, 돌보는 일을 가르치고 돕는다. 선생님을 만나 마음을 다루는 일이란 무엇인지 들어보았다.

친구와 ‘서른 고개’라는 교환일기장을 쓰던 이십 대 후반의 일이다. 사춘기를 이십 대에서야 겪었던 것인지, 서른 살이 되기 위한 고개를 넘는 일이 그렇게도 힘이 들었다. 세상의 온갖 걱정과 슬픔이 모두 내 안에 고이는 것 같았던 시절, 주변의 친구들이 하나둘 종교에 귀의하거나 심리 상담을 받는 등, 혼자 힘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마음의 짐을 해결하기 위한 도움을 받기 시작하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어느 날, 나도 그 문턱을 넘어 심리 상담을 받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한 심리 상담을 근 2년 동안이나 받게 되었다. 처음 시작할 땐 계획하지 않았던 일이다. 그리고 몇 년이 흐른 지금, 나는 그 시절을 내 인생에서 아주 중요한 배움과 성장이 일어난 때라 기억하고 있다. 처음 시작할 땐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나는 심리 상담이라는 것을 완전히 신뢰하지 못한 채로 그곳에 찾아갔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배움과 성장이 일어날 수 있도록 이끌어준 분, 그분이 주혜명 선생님이다.

그 기간 동안 나는 내 마음의 문제에 대해 눈을 뜨게 되었다. ‘마음’만의 문제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모든 일은 물질적 조건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라고 생각해 온 나에게는 큰 변화였다. 주혜명 선생님은 이런 나와는 전혀 다르게, ‘마음’의 문제를 다루는 전문가였다. 상담을 하는 기간 동안에는 내 이야기를 하느라 바빴지만, 이렇게 다른 가치관을 가진 누군가의 이야기를 자세히 듣고픈 욕구가 조금씩 생겨났다.

이 궁금증은 작년 여름 우연한 계기로 실마리를 찾았다. ‘명상 모임’을 소개한다는 한 통의 이메일이 선생님으로부터 왔다. 마치, 며느리도 모른다는 맛집의 레시피를 얻으러 가는 기분으로 모임에 참여했다. 거기서 나는 생애 최초의 명상을 경험하고 명상을 하는 이들을 만났다. 그리고 명상의 삶을 살아온 선생님의 이야기에 얽힌 신비한 체험의 이야기도 조금 들을 수 있었다.

나에게 인생의 소중한 지혜를 일깨워준 선생님이 살아온 길, 선생님이 경험한 명상의 세계, 상담을 하면서 선생님이 하는 생각들이 궁금해졌다. 다시 몇 달이 흐르고 명상 모임을 재개한다는 이메일이 도착했을 때, 나는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으러 갔다.

알아차림, 마음챙김

퍼슨웹(퍼) : 선생님, 안녕하셨어요?

주혜명(주) : 네, 잘 지냈어요? 어떻게 지냈어요? 궁금해요.

퍼 : 잘 지냈어요. 잠시만요 선생님, 이 대화 녹음해도 될까요?

주 : 에이, 그런 건 이따가 하구, 우선 그동안 어떻게 지냈나 이야기 좀 해 줘요. 직장은 어때요? 연애는? 어머니는 잘 계셔요?

      2년이라는 꽤 오랜 기간 동안 정기적으로 만나 사적인 이야기를 털어 놓다가 이렇게 만나게 되었으니 선생님은 내 안부가 아주 궁금하신 모양이었다. 사실 나도 선생님과 대화를 나눈 지가 오래 되어 입이 근질근질하던 차였다. 똑같은 사적인 이야기를 하더라도, 다른 사람과 나누는 것과는 다르게, 좀 더 내 마음에 집중하도록 도와주기 때문일 것이다. 선생님을 인터뷰하러 왔는데, 어느새 선생님에게 내 이야기를 털어놓고 있었다.

퍼 : … 그러다 보니 마음에서 또 불안하고 걱정되는 것들이 올라오기 시작하더라구요. 아무 일도 없었는데도요.

주 : 뭐가 그렇게 불안한 것 같아요?

퍼 : 특별한 이유는 없지만, 언제든 일이 잘못될 수 있다는 생각에 문득문득 사로잡히게 돼요. 안 그러려고 해도요.

주 : 그래서 어떻게 하고 있어요?

퍼 : 아, 내가 불안을 스스로 만들어 내고 있구나, 하고 거리를 두고 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오래간만에 선생님과 대화를 나누며, 내가 어느새 마음을 돌아보는 데에 매우 능숙해졌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됐다. 선생님은 내가 내 마음을 잘 알아차리도록, 그래서 마음이 어려워지는 일이 있다고 하더라도 마음이 만들어 내는 문제들을 스스로 잘 돌볼 수 있는 힘을 기르도록 도와주신 것이다.

퍼 : 이젠 선생님 이야기를 좀 해주세요. 선생님이 하고 계신 명상모임을 좀 소개해주시겠어요? 주로 어떤 분들이 모이세요?

주 : 제가 강의하면서, 상담하면서 만난 분들이죠. 제가 명상에 대한 강의를 하기도 하고, 또 상담을 강의하거나 상담을 실제로 진행하면서도 명상 방법에 대해 종종 이야기하거든요.  그런데 명상이라는 게 방법을 알고 모르고의 문제라기보다도 끊임없이 연습해야 하는 거거든요. 운동도 방법을 안다고 바로 효과가 나타나는 게 아니듯이.

퍼 : 그럴 것 같아요.

주 : 또 제가 상담하는 내담자들한테 명상을 알려주고 있지만 상담 시간 안에는 명상을 하기가 쉽지가 않아서 따로 명상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드리고 싶기도 했고요. 또 명상이라는 게 혼자서는 잘 안 되고, 같이 하면 좋아요.

퍼 : 같이 하면 집중이 더 잘 되나요?

주 : 확실히 그래요. 명상을 할 때는 마음을 한 군데 초점에 맞추도록 하는데, 그 초점을 맞추는 힘이 혼자 하는 것보다는 여럿이서 하면 더 잘 만들어지죠. 그런 분위기가 더 잘 만들어지니까 함께 하는 게 도움이 돼요. 처음 배우는 분들도 더 잘 배울 수 있고요.

퍼 : 어떤 초점을 향해 함께 간다?

주 : 네. 그 지점을 향해서 여럿이 모여서 한다는 게 의미가 있어요. 제가 명상을 알려드리면,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다고 하거나 혼자서는 잘 못하겠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세요. 저는 사람들이 명상을 실생활에 잘 활용하기를 바라는데, 요즘 언론에 너무 많이 나오고, 책도 많이 나오고 있죠. 그래서 좋다는 건 다들 아시는데 혼자 하면 이게 맞나 긴가민가하고요.

퍼 : 명상을 배우고픈 분들에게 도움이 되겠네요. 이 공간은 원래 뭐하는 곳이에요?

주 : 제 개인상담과 명상 프로그램 운영을 위해서 마련한 곳이에요. 에니어그램을 가르치기도 하고요. 

퍼 : 저도 에니어그램을 좀 체계적으로 배우고 싶었는데, 에니어그램을 어떤 내용으로 가르쳐주시나요?

주 : 아, 저는 ‘마음챙김 에니어그램’이라는 걸 가르쳐요.

퍼 : ‘마음챙김’이요?

주 : 마인드풀니스(mindfulness). 마인드풀(mindful)이라고 하면 ‘마음을 쓰는’, ‘주의를 기울이는’, 이런 뜻의 영어단어인데 원래는 불교명상의 개념이에요. 그게 영역이 된 걸 다시 한국어로 옮긴 거죠. 예전에는 ‘알아차림’이라고도 말했었는데, 요즘은 ‘마음챙김’이라는 말이 정착이 되어 있어요.

퍼 : ‘알아차리다’라는 말과 마음을 챙긴다는 게 같이 가는 건가요?

주 : 네. 어딘가에 마음을 잘 두는 것. 잘 두고, 깨어있는 것.


 

영성의 세계, 명상의 경험

퍼 : 선생님 원래 전공은 교육학하셨죠? 원래 교사가 꿈이셨어요?

주 : 교사가 꿈이기는 한데, 사람에 대해서 이해하는 것에 관심이 있었지 무슨 교과를 공부하고 가르치는 것에 관심이 있었던 건 아니었어요. 그런데 막상 입학하니까 내 생각하고는 달랐죠. 게다가 86년도에 대학에 들어갔는데, 그때 대학 생활을 한다는 게 만만치도 않았구요. 대학 생활 내내 다른 것보다도 명상에 빠져들었죠.

퍼 : 원래 인간에 대해 관심이 있거나 명상에 대해 관심 있는 사람들이 종교학을 하기도 하던데요?

주 : 성당에도 가본 적 있고 절에도 가본 적이 있어요. 뭔가 근원적이고, 일상을 넘어서는 초월적인 힘에는 늘 관심이 있었으니까요. 초월적 순간을 경험한 적도 있었어요. 그렇지만, 내가 교리 공부를 좀 해볼까? 생각하면 갑갑해지는 거예요. 종교라는 틀과 제도에 의존하는 것, 사제나 스님의 권위에 의존하는 문화, 그런 거 다 말고, 내 마음을 내가 만나서, 그걸 통해서 의식이 커지고 영성을 직접 만나는 경험을 하고 싶다는 욕구가 굉장히 컸어요.

퍼 : 말씀을 들어보면, 평범한 여대생은 아니셨던 것 같아요. 소위 말하는 ‘평범한 여대생’이라는 게 그 당시엔 가능하지도 않았겠지만요.

주 : 학교를 들어가자마자 한 달만에 문을 닫고, 만날 전경이 학교 안으로 들어오고, 이러던 시절이에요. 그런데 저는 이때 요가를 하러 다니고 그랬죠. TM명상이라는 것도 하고. 학교에선 그런 걸 이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죠.

퍼 : 당시 학생운동을 하던 대학생들하고는 생각이 다르셨나봐요.

주 : 시위나 학생운동은 답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그분들은 사회 제도가 바뀌면 세상이 좋아진다고 생각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저는 좀 다르게, 개인의 내면에서 뭔가 해결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굉장히 강했어요. 한 사람이 깨달으면 그 존재 자체로 세상이 나아질 수 있다.

퍼 : 말씀하신 TM명상이라는 건 뭐예요?

주 : 초월 명상. 인도의 어떤 할아버지가 미국으로 퍼뜨려서 유명해진 거예요. 비틀즈가 초월명상을 했다고 해서 더 유명해졌죠. 최근에는 의학에도 적용해서 연구 논문도 많이 나오고 있고요. 그거 배우러 많이 다녔죠.

퍼 : 초월 명상이라고 하면 선생님 하시는 명상모임에서 하는 거랑은 어떻게 다른가요?

주 : 명상모임에서 하는 건 ‘마음챙김 명상’이고 초월명상은 집중 명상이라고 해서 ‘만트라’라는 것에 집중을 하는 거예요.

퍼 : ‘만트라’요?

주 : 만트라는 명상을 하면서 입으로 암송하는 거예요. 그걸 암송하면서 정신을 집중하는 거죠.

퍼 : 그렇군요. 계속 그렇게 명상을 배우러 다니셨다니, 경제적으로 굉장히 자유롭게 살아오신 것 같아요.

주 : 경제적으로 힘들었던 적도 있었죠. 20대, 30대까지는 밤늦게까지 학원에서 아르바이트도 하고, 과외도 하고 그랬죠. 안정된 직장이 없는 것에 대해서 많이 불안했어요. 그랬는데도, 학원 강사로 일하다가 명상수련회 간다고 한 3주 쉬고, 그러고 나면 다시 돌아갈 수가 없으니까 또 옮기고 그랬죠.

퍼 : 생계를 뒷전으로 할 정도로 절박하게 명상을 추구하신 이유가 있나요?

주 : 명상을 해보면, 누구든지 초월적인 경험을 해요.

퍼 : 어떤 경험을 하셨는지 좀 말씀해주실 수 있으세요?

주 : TM에서는 명상의 한 방법으로 플라잉(flying)이라는게 있어요. 그 방법이 약간 몸이 떠요. 몸이 들려요.

퍼 : 몸이 뜬다?

주 : 떠서 날아다니는 건 아니고, 힘을 주지 않는데 몸이 떠요. 실제로는 콩콩콩콩 뛰는 데 더 가깝다고 말할 수 있죠. 허리를 다칠 수 있으니까 매트리스 같은 데 위에서 하지만, 힘으로 올리는 건 아니거든요.

퍼 : 선생님도 그 경험을 하신 거죠?

주 : 명상의 한 방법으로 했죠. 이런 얘길 하면 ‘별난 경험’이라는 생각이 들잖아요. 그런데  명상 수련을 가면 보통 외국의 아주 좋은 호텔에서 하거든요. 한 2주 동안, 필리핀, 인도 같은 좋은 곳에서 다른 일 아무 것도 안 하고, 그런 좋은 환경에서 좋은 음식만 먹으면서 하루 종일 명상만 하면서 일주일 이상 있으면, 아무래도 일상하고는 다를 수밖에 없죠.

퍼 : 그 경험이 선생님을 명상으로 계속 이끄셨나요?

주 : 처음에 몸이 들릴 때 기분이 굉장히 이상하거든요. 그럴 때 느끼는 어떤 행복감은, 보통의 일상에서 한다고 하는 좋은 경험하고는 비교하기 어렵죠.

퍼 : 온전히 나에게 집중하는 기간이고요.

주 : 그렇죠. 명상수련을 간다고 늘 그런 경험을 하는 건 아니지만, 그런 경험은 언제 올지 몰라요. 그러니 절박감이 생길 수밖에요. 그리고 저는 그런 경험을 너무나 일찍부터 해봤어요. 그러니 다른 무엇이 되기 위해, 다른 무언가를 사기 위해 돈을 벌겠다는 생각은 전혀 안 들죠. 다른 것들과는 비교가 안 되는 것 같아요. 그저 명상수련회를 가기 위해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했죠.

퍼 : 그럴 것 같네요.


 

사람들 밖에서 사람들 안으로

주 : 지금 생각해보면 TM에 빠져 있을 때는 내가 약간 이상했어요.

퍼 : 어떻게요?

주 : 한 2주 동안 명상수련을 갔다가 오면, 사람 냄새가 싫어져요.

퍼 : 사람 냄새가 나던가요?

주 : TM 명상은 먹는 것에 대해서도 굉장히 엄격하거든요. 채식도 보통 채식을 하는 게 아니에요. 이를테면 감자는 소화가 안 되는 채소라서 밤에 먹으면 안 되고, 파, 마늘, 양파 같은 것도 안 먹고, 버섯도 안 먹고. 버터도 정제를 해서 먹고, 참기름도 인도에서 볶지 않은 걸로다가 공수해 와서 먹어야 되고요. 엄격해요. 그렇게 몸을 잘 정화하고 깨끗이 해야 명상을 할 수 있다는 건데, 그러다가 사람들을 만나면, 사람 냄새 나죠. 정상 생활이 어려웠어요.

퍼 : 평범한 사람들과 어울리기는 아무래도 어렵겠네요.

주 : 일상생활이 불가능해지죠. TM명상에는 원칙들이 아주아주 많아요. 명상은 해 질 무렵에 하는 게 좋다고 하는데, 해질 무렵에 두 시간 명상을 매일 하면서 사는 사람이라면 무슨 제대로 된 생활이 되겠어요. 그걸 다 지키려고 하다 보니 제가 약간 극단에 가 있었죠. 너무 많은 삶의 제약이 생기고.

퍼 : 스스로 극단이라고 느끼셨나요?

주 : 어느 날 이건 좀 아닌 것 같은 거예요. 삶을 좀 잘 살기 위해서 명상을 했는데, 어찌하다보니 내가 명상을 위해서 살고 있더군요. ‘나는 뭐다’하는 걸 강하게 내세우는 건, ‘나는 무엇이 아니다’라는 걸 강하게 내세우는 거잖아요.

퍼 : 그러다 보면 남들을 평가하는 눈으로 내려 보게 되기도 하고요.

주 : 그렇죠. 그땐 다른 사람들을 보면서 ‘탁하다’는 이야기를 참 많이 했어요. 같이 명상하던 사람들이, 그리고 내가 그러고 있는 게 보이는 거예요.

퍼 : 자기 자신을 돌아보기 시작하신 거네요.

주 : 네. 그러다가 어느 날 문득 명상을 그만뒀어요.

퍼 : 허전하지 않으셨어요?

주 : 허전했죠. 우선 아침, 저녁으로 두 시간씩 하던 명상을 안 하고 나니까 시간이 많이 남고요. 모든 것이 명상을 중심으로 맞춰져 있었는데 삶의 중심이 없어진 거나 다름없었죠.  안 하는 데 대한 죄책감도 들었고요.

퍼 : 그렇게 명상을 하시면서는 세상과 거리를 두고 사셨는데 상담 일을 시작하면서 세상일로 괴로워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기 시작하셨어요. 거리감이 느껴지시지는 않으세요?

주 : 나는 명상이 삶을 도와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현실에서의 명상의 한 형태는, 현실이 힘드니까 명상으로 도망가는 모습들이에요. 굉장히 건강하지 않은 명상방법이죠. 나는 극단에 가봤잖아요? 삶을 배제하는 극단. 그래서인지, 삶의 실질적인 문제들 속에서 자기가 정말 배워야 할 것들이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퍼 : 깨달음은 일상과 함께 와야 한다는 거군요.

주 : 네. 그 안에서 잘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나는 내담자들에게 명상을 알려주고 싶어요. 삶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아주 실질적인 방법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명상과 상담이 구별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퍼 : 상담을 공부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으세요?

주 : 저는 뭐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 그저 궁금한 걸 공부하기 위해 따라다니다 보니 오늘날의 내가 된 거죠. 어느 날, 불교대학원대학교 상담학과에 ‘자아초월상담전공’이 생겼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그건 심리치료에 명상과 같은 초개인적인 방법을 적용하는, 상담의 새로운 분야인거예요. 그걸 공부하고 싶어서 간 거죠.

퍼 : 자아초월상담이요?

주 : 나는 명상을 책을 보고 나서 체험을 한 게 아니고 체험을 먼저 했잖아요. 그것에 대해서 가르치기도 했고요. 그런데 그 체험에 대해 과학적인 근거와 논리적인 설명을 이해하고 싶었어요, 심리학이라는 어떤 체계 안에서.

퍼 : 원래 심리학을 더 공부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으셨나요?

주 : 원래는 심리학이 재미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과학적’이라는 말이 얼핏 ‘합리적’이라는 말과 같이 들리지만, ‘비과학적’이라는 건 비합리적인 것이 아니라 현재의 과학적인 역량으로 증명할 수 없을 때 비과학적이라고 하는 거거든요?

퍼 : 그렇죠.

주 : 내가 학부 때 배웠던 심리학은 쥐 잡아서 자극주면 어떻게 반응하는지 관찰하는, 행동주의 중심의 심리학이었어요. 그런데 ‘자아초월 심리학’이라고 하니까, 그 이전에는 과학적이지 않다고 배척했던 분야까지 학문의 영역으로 가져와서 그것을 검증하고 체계화하는 고민을 하겠다는 거였죠. 그게 굉장히 궁금했죠. 그래서 대학원에 들어가서 상담공부를 하게 됐죠.


 

상담사로서 살아간다는 것

퍼 : 예전에 선생님과 상담할 때, 제가 힘겨운 이야기를 할 때면 선생님도 함께 마음  아파하시는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상담자는 그럴 때 어떤 마음인 건지 궁금했어요.

주 : 아, 내가 같이 그럴 때 마음이 어땠어요?

퍼 : 제 이야기가 선생님의 어떤 경험을 건드리는 게 아닌가, 나도 선생님 이야기를 들어드리고 위로해야 되는데 내가 선생님을 소비만 하고 있다는 부담을 느꼈어요. 또 한편으로는 내가 나의 이야기에 대해 슬퍼해도 된다는 것에 함께 마음이 편해지기도 했고요.

주 : 응, 그거거든요. 상담을 하다보면 내담자의 어떤 슬픈 감정이 올라올 때가 있잖아요. 그때 상담자가 함께 슬퍼하는 건 치료를 하는 하나의 굉장히 중요한 과정이에요.

퍼 : 치료하는 과정인가요?

주 : 상담에 오기 전에 내담자들은 슬픈 감정을 어찌할 줄을 몰라요. 슬프기는 슬픈데 자유롭게 슬퍼하지 못해서 병이 생기거든요. 슬픔에 빠져들면 내가 나를 지탱할 수 없을 것 같고, 안 될 것 같은 마음에서, 슬픔과 싸우다가 더 힘든 어떤 자리에 가거든요. 그게 우울증이고 불안 장애고 신경증이 생기는 메커니즘이죠.

퍼 : 슬픔을 마음껏 느끼는 게 필요하군요.

주 : 상담자는 슬플 때 슬퍼할 수 있는 굉장히 안전한 공간을 주는 거예요. 슬플 수 있는 공간을 주고, 슬퍼하면서 무너지지 않을 수 있는 버팀목이 되어 주는 거죠. 그때 상담자는 슬픔을 느끼지만 슬픔에 빠지지는 않아요.

퍼 : 그걸 조절하실 수 있으세요?

주 : 그건 조절의 문제가 아니에요. 사람들은 보통, 슬픔의 감정이 올라오면 그게 나를 먹어 버릴까봐 두려워해요. 때로는 슬픔에 압도당하기도 하고요. 그래서 내가 슬픔이 되어버리는 거죠. 내가 슬픔 자체가 되어버린다면 얼마나 힘들겠어요? 다른 삶은 없어지고 오로지 나 자신이 슬픔만으로 가득 찬 존재가 되어버린다면.

퍼 : 네.

주 : 상담자가 하는 건, 슬픔을 경험하지만 ‘나’라는 존재는 슬픔보다 더 큰 존재다, 내 안에는 슬픔도 있고 기쁨도 있고 다른 정서도 있다, 나는 지금 슬픔을 느끼고 있지만 내가 슬픔 자체는 아니고 이 감정은 그냥 지금 이 순간에 느끼는 거고 지나가는 거라고, 내가 슬픔 자체로 고정되어 있지는 않을 거라는 걸 알도록, 그 감정보다 더 큰 존재로 있도록 버티도록 도와주는 거죠. 슬픔을 경험하고 흘러가도록 도와주는 일.

퍼 : 그걸 잘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면서도 하나의 슬픔을 느끼는 과정으로서 공감하는 것, 그게 상담자가 하는 일이군요.

주 : 그렇게 해도 존재가 망가지지 않는다는 것, 그렇게 해도 괜찮다는 것을 알려주는 거죠.

퍼 : 상담사로서 앞으로 꼭 하고 싶으신 일이 있으세요?

주 : 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취직하고 결혼하고 돈 벌기 위해 보내는 시간을 마음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데에 썼어요. 그래서 이제는 내가 알고 있는 걸 사람들에게 이야기해주고, 사람들에게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어요.

퍼 :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주 : 이제는 조금씩 사회적 책임도 느껴요. 그래서 명상모임 하는 거거든요. 명상과 상담 프로그램이 내 생업이고, 그걸 통해 돈을 벌지만, 그게 어떤 사람들에게는 부담이 되는 비용이라는 걸 알아요. 모든 사람에게 기회가 안 돌아가는 건 참 답답한 일이에요. 그래서 어떤 모임 하나 정도는 프로그램 하나 정도는 뭔가 좀 돌려주는 의미로, 내 직업적인 의미를 배제하고 하고 싶었어요.

퍼 : 주로 어떤 사람들이 상담을 받으러 오는 걸까요?

주 : 상담 받으러 오시는 분들은 자기 삶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 자기 삶을 온전히 책임지고 싶은 사람들이에요. 이건 자기 자신을 위해서 하는 굉장히 적극적인 행위거든요. 비용과 시간이 들어가고요, 내가 나를 잘 들여다보겠다는 의지가 있는 거죠. 그 용기가 있는 사람들이 상담을 받아요. 삶의 문제 때문에 다른 이를 탓하고 끊임없이 화를 내는 사람은 상담 못 받죠.

퍼 : 상담이라는 게 한 사람의 미래를 결정할 수도 있을까요?

주 : 미래를 결정해야죠. 그런데 그게 자기 안에서 나와야죠. 자기 마음을 명확하게 보고 결정할 수 있어야 하는데 결정이라는 것들이 많은 경우 감수해야 하는 부담감이 따르죠. 사람들은 그게 싫어서 결정을 못 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 마음을 상담을 통해서 결정을 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어요. 사주는 사주보는 사람이 답을 갖고 있다면 상담은 내담자가 가지고 있는 답을, 의미 있는 대화를 통해서 마음이 편안할 수 있는 결정에 가도록 하는 거죠.

퍼 : 상담을 하시면서 내담자가 어떤 방향으로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바라는 때도 있을 것 같은데요.

주 : 바라죠, 늘 바라죠.

퍼 : 그런데 잘 안 되잖아요? 화나거나 그러지는 않으세요?

주 : 화가 난다기보다 조금 답답할 때는 있어요. 그렇지만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해서 뭔가 바뀐다는 생각은 없어요. 그게 내담자의 문제가 아니고 내 문제라는 걸 알죠.

퍼 : 상담을 더 잘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고 생각하시는 거예요?

주 : 아니요. 그런 답답함을 느끼는 건 내가 원하는 무언가 때문일 뿐이라는 걸 아는 거죠. 만약 상담을 하면서 내담자가 내 뜻대로 반응한다면 내 기분이 좋고 내가 하는 일에서 유능감을 느끼겠죠. 그런데 이게 안 되니까 힘든 거라면, 이건 백 프로 그 사람이 아니라 내 문제죠. 이유도 내 안에 있는 거고. 그런 거죠. 답답하다는 마음이 들지만 거기서 멈추는 거죠.


 

사회의 문제와 마음의 문제

퍼 : 앞에서 사회 문제를 제도적으로 해결하는 일보다 깨달음으로써 세상을 나아지게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셨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런데 요즘은 심리 상담하시는 분들이 사회적인 활동도 많이 하시잖아요? 정신과 의사 정혜신 씨와 같은 경우에는 사회적 발언도 많이 하시고, 최근에는 쌍용자동차 파업 투쟁 이후의 심리적 외상을 치유하는 일도 나서서 하고 계신데요. 이런 것을 지켜보면서는 어떻게 생각하셨어요?

주 : 참 좋게 보여요. 요즘은 사회 운동을 하는 분들도 인간의 내면에 관심을 많이 가지시는 것 같더군요. 저는 ‘안이 바뀌면 다 바뀐다’는 관점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런 변화를 보면서 좀 통합이 된달까, 그런게 느껴져요. 어떤 하나의 관점이 전부는 아닌 것 같아요. 제도가 바뀌는 것도 전부가 아니고, 내면이 바뀌는 것도 전부가 아니고.

퍼 : 요즘 정말 다들 내면의 치유, 상처의 공감, 이런 이야기들을 참 많이 하더군요.

주 : 그래요. 저는, 다 같이 깨달으면 세상은 달라질 거라는 생각을 아직도 가지고 있지만 그렇다고 모두가 앉아서 명상을 하고 깨달을 수는 없는 거죠. 그렇지만 의식이 확대된 만큼 사회제도를 바꿀 수 있는 부분이 생길 거라고 믿거든요. 이렇게 사회와 개인의 내면이 좋은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특히 잘못된 제도의 문제 때문에 마음이 아픈 사람들의 문제가 갈수록 많이 생기고 있는 것도 마음이 아프구요.

퍼 : 사회적 제도 때문에 상처받은 사람들도 만나셨나요?

주 : 쌍용차 파업 당시에 내담자 중 한 사람이 현장에 있었던 분이었어요. 그 이야기를 들으니 정말 너무 끔찍하더군요. 그 파업을 경험하신 분들, 다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을 겪을 수밖에 없어요.

퍼 : 계속 사망자도 생기고 있죠.

주 : 이런 상황에서 심리치료사들이 뭔가 할 수 있다면 굉장히 좋은 일이죠. 저는 개인적으로 그쪽으로 인연이 닿고 있지 않지만, 굉장히 좋게 보이더군요. 저도 그런 일을 좀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고요.

퍼 : 여기저기서 ‘치유’ 이야기를 하는 게, 일종의 유행이고 바람인 것 같기도 하던데요, 경계되는 면은 없으세요?

주 : 이 시대가 너무나 절실하게 내면의 돌봄을 필요로 하는 것 같아요. 다들 너무나 지쳐있고 누구나 막연한 불안감을 느껴요. 경제 발전이라는 목표가 이전에는 가시적이고 분명하게 있었죠. 사람은, 어떤 목표가 있고 그걸 이루면 행복해질 거라고 믿으면 막 달려갈 수 있지만 정작 그 지점에 갔는데 그게 아니면 굉장히 힘들어지거든요. 지금 우리 사회가 놓인 지점이 정확히 그 지점이죠.

퍼 : 잘 살면 행복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죠.

주 : 훨씬 잘 살아졌는데, 허무감이 가득하죠. 특히 젊은 세대들이 그래요. 이제는 이 계층 간의 구획에도 올라갈 수 있는 장벽들이 생겼잖아요?

퍼 : 계급이 생겼다는 말씀이시죠?

주 : 계급인 것 같아요. 어느 신분으로는 오를 수 없다는 데서 오는 무력감이 크더군요. 요즘 젊은 세대들이 다시 정치에 관심을 많이 보이고 있는데, 우리 세대에는 이상을 추구하는 거였다면 요즘 젊은 세대들의 정치에 대한 관심은, 나의 허무한 현실에 관련된 것이더군요.

퍼 : 80년대 대학생들은 지식인으로서의 사명감이 있었죠?

주 : 네. 그들이 세상을 위한 이야기를 했다면 요즘 대학생은 내가 사회에서 소외되어 있고 불이익을 받고 있다는 것에 대해 불안하고, 열심히 해도 깜깜하다고 생각해요. 특히 중고등학생들도 먹고 사는 것에 대해, 뭘 해서 먹고 살까 걱정을 너무나 많이 해요. 그런 것들이 사람들을 아주 힘들게 하죠.

퍼 : 앞으로 한국 사회에서 상담이 확대될까요?

주 : 점점 활성화되고 있죠. 그런데 외국과 달리 의료보험에서 심리 상담에 대한 비용을 커버해주지 않는 건 참 문제예요. 개인이 부담하기에는 큰 돈이거든요.

퍼 : 빨리 건강보험에 들어와야겠네요.

주 : 사람들이 좀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살아가는 많은 부분이, 마음을 어떻게 다뤄야할지를 몰라서 계속 그 문제를 키워가서 생기는 문제들이 많거든요. 마음을 다루는 방법들, 감정을 어떻게 접촉하고 어떻게 만나고 경험해야 하는지, 그런 걸 좀 알면 훨씬 나아질 거예요.

퍼 : 심리상담을 받고 싶어도 비용이 비싸서 망설이시는 분들도 많아요.

주 : 비용의 부담이 있죠. 그런데 한편으로는요, 우리 행복해지기 위해서 너무너무 노력하잖아요. 공부하는 것도, 돈 버는 것도, 과외 시키는 것도 다 행복을 위해서인데, 어떤 면에서는 노력을 할수록 마음이 점점 더 불편해지는 쪽으로 가는 노력들을 너무 많이 하거든요.

퍼 : 정말 그래요.

주 : 자신의 삶에 상담과 명상이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를 제대로 안다면 많은 사람들이 상담받으러 올 거예요. 요즘은 많이 그렇지는 않지만 상담은 대단히 문제 있는 사람들이 받는 거 아닌가, 하고 생각들을 하는데 정말 아니거든요.

퍼 : 저도 상담 경험을 이야기하면 그런 반응들이 꽤 있었어요.

주 : 누구나 삶의 어떤 시점에 겪게 되는 마음의 어려움이 있잖아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 일을 그냥 참고 견디면서, 해결할 수 있는 무거운 마음의 짐을 그냥 둔 채로 살아가요.  그렇다고 일상생활 못하는 건 아니니까 그럭저럭 살아가는 거거든요. 그런데 상담을 통해서 그런 마음의 짐들을 훨씬 잘 다루고 문제를 잘 넘어갈 수 있죠. 상담은 살면서 겪게 되는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해서 제대로 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전문적인 서비스예요.

퍼 : 비용이 부담이 안 가는 상담 기관을 좀 추천해 주세요.

주 : 건강가정지원센터, 청소년수련원. 무료도 있고, 만 원이나 오천 원 정도를 받는 곳도 있어요. 청소년은 무료죠.

퍼 : 많은 사람들이 상담을 한두번이라도 경험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주 : 맞아요. 시도를 해 보시면 좋겠어요. 마음을 잘 만나고 마음을 잘 다루는 방법을 배우는 게 삶에서 정말 중요한 것 같은데 학교에서 이것을 안 가르친다는 게 놀라워요.

 

 

      인터뷰를 하러 갔다가, 결국 또 이야기는 나의 직장에 대한 안부로, 또 그 안에서 겪게 되는 나의 마음의 문제들을 돌아보는 이야기들로 이어졌다.

내가 선생님을 만났는지, 선생님이 나를 만났는지, 이것이 인터뷰였는지 상담이었는지. 녹취록을 다 풀어놓은 순간까지 잘 모르겠다.

다만, 깨달음만으로도 세상이 달라질 수 있다고 믿었던 것에서 그게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었다는 선생님의 이야기가 맴돈다. ‘마음’만의 문제 따위는 없다고 여겼던 내가 선생님을 만나 세상과 나를 보는 다른 방법을 배우고 성장했듯, 선생님의 변화에도 어떤 계기가 있었을 것이다. 마음과 마음의 문제, 혹은 마음이 마주하는 수많은 지점들의 차이와 간격들 속에서. 그 마음의 경계 속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