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덴마크 수도인 코펜하겐 중심가에서 남쪽으로 조금만 걸어가면, 고풍스럽고 깔끔한 도시의 이미지와 대조되는 공동체를 만날 수 있다. 이곳은 크리스티아니아(Christiania). 집이 없는 젊은이들과 급진주의자 등이 버려진 군병영지였던 이곳을 1971년에 무단으로 점유를 하면서 시작되었고, 현재는 주민자치와 만장일치제를 바탕으로 하는 대안 공동체로 성장하였다. 22만 헥타르의 호숫가를 따라 약 850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마을은 거주자들이 직접 지은 집들, 건물을 수 놓은 자유분방한 그래피티, 그리고 이를 찾는 관광객으로 늘 복작복작하다.
이 동네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다. 요가선생님이자 채식주의자인 한 친구는 이곳이 아나키스트, 히피, 예술가들의 성지이자 코펜하겐의 진짜 보석이라며 나에게 강력 추천했다. 코펜하겐에서 나고 자란 다른 친구는 이 곳이 종종 지저분하고 무질서하지만, 그게 매력적이라서 종종 간다고 전했다. 또 다른 친구는 그 동네에서 마리화나 거래가 합법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자기는 정이 안 간다며 눈을 찌푸렸다.
나에게 크리스티아니아는 지적만족을 위한 소비의 대상이었다. 그곳에 오고 가는 사람들을 관찰하고, 허물어져가는 빌딩에 그려놓은 한국에서 보기 힘든 과격한 그래피티들을 사진기로 담고, 공정무역과 유기농 상품을 파는 까페에서 물건을 구입하면서 ‘대안문화를 즐길 줄 아는 지성인’의 순간을 만끽하곤 했다.
그러다 어느 날, 내가 크리스티아니아라는 주거지를 이국적인 관광지로만 보아 왔다는 생각이 들면서, 관광지에 사는 주민 개인의 목소리가 듣고 싶어졌다. 과연 이 문제적 공동체에 살고 있는 주민은 자신을, 자신의 공동체를, 그리고 나와 같은 외부인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그래서 이 곳을 드나든 지 1년 만에 최초로 마을 주민과의 직접 대화를 시도했다. 마을 안내소에 전화를 걸어 크리스티아니아 대변인을 맏고 있다는 토마스 얼트만(Thomas Ertmann)에게 인터뷰 요청을 했고, 우려와 달리 선뜻 인터뷰이를 찾았다고 전해주었다. 그 주민은 바로 대변인 자신인 토마스. 자진한 건지 등 떠밀린 건지는 물어보지 못했지만, 어찌되었든 고고씽!
1. 점거에서 주거로: 크리스티아니아 해방구역의 과거와 현재
퍼슨(이하 ‘퍼’): 인터뷰 요청에 응해줘서 고마워요. 우선 크리스티아니아라는 공동체를 좀 더 알고 싶어요. 1971년에 군이 점령하고 있던 이 지역을 시민들이 점거하면서 공동체가 시작되었다고 들었는데, 보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진행된건가요?
토: 현재 크리스티아니아가 위치해 있던 지역은 버려진 군병영지예요. 코펜하겐 시정부는 이 지역을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고 방치했죠. 당시 코펜하겐의 많은 주민들은 자기 집이 없었고, 전 세계적으로 청년운동이 활발하던 시기였어요. 그러다가 한 언더그라운드 잡지에 “이 곳을 점거하자”라는 글이 실렸고, 몇 주안에 몇 백명의 사람들이 모여들었어요. 이들을 어떻게 할 지가 화두로 떠올랐고, 당시 정치인들은 이를 “사회적 실험”으로 명명하고 2-3년 간 살 수 있도록 했어요. 그러자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지금까지 40년 동안 살게 되었죠.*
* 누구나 거주자가 될 수 있는 크리스티아니아는 지난 40년 동안 다양한 인생 궤적과 사회경제적 수준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이다. 부자도 있지만, 주민의 2/3은 사회보조를 받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관용적인 분위기로 마약 중독자, 동성애자, 싱글맘 및 다양한 소수자 주민들의 비율도 높다.
퍼: 운동의 한 표현이 공동체로 자리잡았다는 게 흥미롭네요.
토: 거주지 부족, 진보 운동 등 여러 다양한 것들의 표현이라고 보는 게 정확하죠.
퍼: 그렇군요. 지난 40년간 크리스티아니아를 지속시킨 주요 원천은 무엇이었을까요?
토: 만장일치제가 그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이것이 없었다면, 금새 공동체 내부에 분파들이 생겼을 거예요. 70년대의 많은 좌파 및 진보 운동들은 아나키즘, 레니니즘, 마오이즘과 같은 이데올로기라는 틀 속에 스스로 가두곤 했죠. 만장일치제에서는 이런 공동체의 이데올로기화가 어렵죠. 여기 주민들도 저마다 믿는 사상들이 있지만, 모두의 동의를 이끌기 위해선 자기 이데올로기의 교본대로만 주장할 수는 없거든요.
퍼: 전 처음에, 이 곳이 같은 신념을 가지는 사람들이 사는 데라고 지레짐작 했었어요.
토: 다양한 생각들이 공존하는 구조가 아니었으면, 이 공동체는 살아남지 못했을 거예요. 또한 이곳이 모두에게 열려있다는 게 여타 공동체들과의 차별점이 아닐까 싶어요. 여기 주민들은 집, 배수시설 및 당신이 보는 모든 것들을 스스로 지었고 잘 꾸며놓았어요. 그래서 외부인들도 좋아하지요. 우리는 이 땅을 점유하자라는 생각도 있지만, 동시에 이 곳을 모두에게 열린 곳으로 만들자는 생각도 함께 가지고 있어요.
퍼: 제가 살던 서울에도 비슷한 곳이 있어요. 마을 뒷산 재개발을 반대하는 운동이 커져서 지금은 대안적인 문화와 생활방식을 실천하고, 도시 속 주민자치를 실천하는 공동체로 거듭 났거든요.*
* 필자는 성미산 마을 공동체를 염두에 두고 본 질문을 하였다. 성미산 공동체에 대한 보다 자세한 정보는 <원순닷컴>에 실린 마을 주민 유창복씨와의 인터뷰 보러 가기
퍼: 공동체 유지에 주민 모두의 참여를 바탕으로 한다고 했는데, 경제적으로는 어떻게 자립하고 있나요?
토: 본 공동체는 경제적 자립*을 전제로 하고 있어요. 물론 크리스티아니아 내에서 모든 주민에게 줄 일자리가 있지는 않아요. 많은 주민들이 공동체 밖에서 일을 하고 있고, 그런 점에서 외부 세계와 완전히 단절되어 있진 않아요. 이 공동체 내 사업체에서 버는 돈은 공동체 재원(Common Purse)로 들어가서, 공동체 운영 및 관리 자금으로 쓰이죠. 돈을 더 많이 버는 사업체는 더 많이 기여하고요.
* 크리스티아니아는 여러 방법으로 공동체의 경제적 자립을 유지해 오고 있다. 대표적으로 공동체 내 사업체로부터의 수익금이 있다. 사업체는 개인이 아닌 공공의 재산으로, 일하는 사람 급여와 운영자금을 제외한 수익금은 사업의 성과에 따라서 공동체 재원으로 회수된다. 또한 크리스티아니아 주민들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집 월세를 내는데 (집 역시 개인 소유가 아님), 한 달에 약 250유로로 경제적 능력에 상관없이 동일한 금액이 적용된다 (월세를 못 내는 사람은 공동체에서 주는 사회 보조를 받음.) 주민들은 월세 외에 전기세와 상수도세 등을 따로 지출한다.
퍼: 크리스티아니아 자체 세금 같은 것이 있어요?
토: 그런 셈이죠. 월세가 있으니. 공동체 모임(Community meeting)에서 매년 예산과 그에 따른 월세액을 설정하고 있어요. 물론 만장일치제고요. 이 외에도 공동체 운영에 관련된 의사 결정을 위한 여러 모임들이 있어요.*
* 크리스티아니아에는 14개의 구역이 있는데, 한 달에 한번씩 정기적으로 열리는 각 구역별 모임(area meeting)에서는 그 구역에 사는 사람들의 현안을 논의한다. 구역 모임에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는 의사결정 최고 기구인 공동체 모임(community meeting)으로 올라가는데, 이는 크리스티아니아 전체에 해당하는 의제들을 논의한다. 공동체 모임에서는 공동체 주민 누구나 자기 의견을 낼 수 있고, 또한 모든 주민들은 이 곳에서 결정된 사항을 실천할 의무를 갖는다. 이 외에도 주제별 사안을 논의하고 결정하는 경제모임, 예산모임, 사업모임, 교통모임 등이 있다.
퍼: 그런 모임들은 보통 얼마나 빈번히 있나요?
토: 매번 달라요. 어떨 때는 한 주에 10번 이상의 모임을 크리스티아니아 내외부에서 가져요. 언론 및 기자들과 함께요. 전 대변인 일을 해서 여기 대부분 주민들보다 모임이 잦은 편이긴 할꺼고요.
퍼: 아까 모든 의사는 만장일치로 결정된다고 했잖아요. 첨예한 사안에 대해서 만장일치로 결정을 내린 사례가 있나요?
토: 지난 6월에 코펜하겐 시정부와 협상을 해서 현재 크리스티아니아가 점유하고 있는 토지를 시장가보다 저렴한 가격에 사기로 합의를 했어요.* 거기까지 가는 데 공동체 모두의 동의를 얻어야 했고, 정말 많은 모임들을 거쳤어요.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고 대표민주주의나 독재에 비교했을 때 비효율적일 수도 있겠지만, 최종에는 정말 민주적인 결과물을 얻게 돼요. 모두 동의하기 때문에, 최종 결정에 반하거나 화를 내는 분파가 없죠.
* 2011년 2월 크리스티아니아가 자리잡은 토지의 소유권은 덴마크 정부에 귀속되어 있다는 최고 법원의 결정이 나왔다. 이는 크리스티아니아가 불법점유지이며 따라서 주민 이주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공동체 주민들은 정부 그리고 자체적인 긴 협상 끝에 시장가보다 싼 가격에 점유하고 있는 토지를 구매하기로 결정하였다.
퍼: 850명에 달하는 주민들의 만장일치를 얻기가 쉽지 않았겠어요. 그 동안 인구 변동이 많았나요?
토: 처음에는 약 2000명 정도가 살았었죠. 하지만 지난 20년간 정부가 이 곳에 새로 건물 짓는 것을 금지하면서, 새로운 사람들이 쉽게 이주할 수 없었어요. 또한 지난 10년간의 집권정부는 이 마을을 없애고, 그 자리에 새로운 주택을 지으려고 끊임없이 시도했죠. 운 좋게 여태까지 버텨왔지만, 그 과정에서 일부 주민들이 떠났어요. 힘든 시기였어요. 거의 매일 경찰들이 이곳에 있었으니까요. 마을 내에 새로운 건축물을 짓는 것을 허가해 달라고, 현재도 정부와 협상 중 이예요.
* 1971년 시작 이래로 크리스티아니아는 덴마크 정부 및 코펜하겐 시정부와 점유의 적법성, 공공연한 마약거래 문제 등을 둘러싸고 불편한 동거 관계에 있어 왔다. 70년대에 정부는 이 곳을 불법 무단점유지로 규정하고 폐쇄명령을 몇 차례 내렸으나 강제철거로 이어지진 않았다. 보수 성향의 총리가 집권했던 80년대에는 공동체내의 마약 거래 문제가 불거졌고, 90년대 들어와 경찰이 대규모 마약 판매책 단속을 강행하면서 주민들과 마찰을 겪었다. 이에 2000년대부터 집권하기 시작한 우파 정부가 크리스티아니아가 점유하고 있는 땅의 통제권을 되찾아 재개발하려는 의도를 내비치면서 갈등의 골이 커졌다.
퍼: 그런 어려움이 있었군요. 그런데 크리스티아니아의 주민이 되려면 어떤 절차를 거쳐야 하나요?
토: 이 곳 주민이 되기 위한 자격조건은 없어요. 일단 빈 집이 생기면, 주간지에 거주인을 모집하는 공고가 나가요. 지원자들은 빈 집이 속한 구역의 주민들과 모임을 가지죠. 그 후 주민들은 누가 새 집의 주인으로서 적합할지 결정하는데, 그런 점에서 주관적이고 불투명한 절차죠. 그리고 저희는 대기자 명단을 만들지 않아요. 하지만 새로운 집주인 선발 이유를 밝히지 않는 것은, 여러 명이 공동으로 사는 집에서 새 식구를 찾는 여타의 과정들과 큰 차이가 없다고 보고, 본 절차는 별 문제없이 지속되고 있죠.
2. 주민 850명 중 하나: 토마스의 사연
토: 4년 전에 이 곳으로 옮겼어요. 저는 운이 좋았어요. 친구가 남자친구랑 여기로 이사가게 되었는데, 제게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트레일러를 몇 달간 관리해 줄 수 있냐고 부탁했거든요. 그래서 그 트레일러에서 지내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부식이 심해서 폐기처분을 해야 하더라고요. 그래서 어떻게 이곳에 머물게 되었죠. 그런데 전 이 곳에 살기 전부터 크리스티아니아 내의 영화상영관에서 일을 하고 있긴했어요.
퍼: 그럼 이 공동체 전에는 어디에 살았어요?
토: 지난 9년간 코펜하겐에서 거주하면서 대학공부를 마쳤어요. 한 12군데 정도를 옮겨 다니며 살았었죠. 그러는 동안에는 친구들과 종종 이 곳에서 시간을 보냈었고, 여기 살 수 있는 기회가 찾아 왔을 때 바로 잡았죠.
퍼: 여기로 이사하기 전에는 크리스티아니아의 무엇이 좋았나요?
토: 와서 휴식할 수 있는 곳이라서 좋았어요. 차도 없고 스트레스도 없는 곳이잖아요. 사람들도 친절하고요. 하지만 이사하고 나서 공동체의 모든 일들에 개입하게 되었고 지금은 공동체의 삶이 일이 되었네요. 요즘은 쉬러 크리스티아니아 밖에 나간다니깐요.
퍼: 그런 고충이.. 근데 사실 한국에서 온 외부인의 눈으로 봤을 때, 북유럽에서 사는 데 무슨 스트레스가 있을까 싶기도 해요. 덴마크는 한국과 비교했을 때 복지혜택과 사회 안전망이 더 탄탄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리스티아니아를 찾을 수 밖에 없게 한 것들은 무엇이었을까요?
토: 저는 원래 시골에서 자랐거든요. 그런데 코펜하겐은 직장에서 일을 하던 공부를 하던 뭔가 많은 일들로 꽉 차있어요. 차도 많고, 사람도 많고. 그리고 남부 유럽사람들과 비교했을 때 북유럽 사람들은 비교적 마음을 쉽게 열지 않는데, 크리스티아니아는 좀 달라요. 사람 간 거리가 가깝고 이방인들과 말을 트는 것이 보다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져요. 그런 자유로운 분위기가 매력이었어요. 그리고 여기는 다른 사람들에게 잘 하기만 하면, 하고 싶은 일에 거의 제약이 없는 곳이에요.
퍼: 처음에 크리스티아니아로 이사 간다고 했을 때, 이 곳을 자주 드나들지 않는 친구들과 부모님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토: 제가 크리스티아니아에 산다고 하면, 사람들은 다양하게 반응해요. 제 친구들 대부분은 “야, 정말 괜찮은데 +_+” 라고 해요. 하지만 제 부모님 친구들은 “진심으로.. -_-?”라는 반응이죠. 여기에 직접 와봤는지에 따라서 반응이 달라요. 이 곳을 직접 방문해 보지 않고, 언론의 편파적이고 부정확한 이야기에만 근거해 자기 생각대로 판단하는 사람들도 많죠. 부모님께서는 제가 이 곳에 사는 것을 좋아하세요. 이미 두 세 번 다녀가셨고요. 단 대변인 업무가 좀 덜 부담스러웠으면 하시죠
퍼: 그렇군요. 지금 공동체 내에서 하는 일이 많은데, 크리스티아니아에 전에 정치 운동이나 학생운동에 참여한 적이 있나요?
토: 지금처럼 활발하진 않았지만, 학생 때 참여했었어요. 예로 한 번은 교사들의 봉급인상을 요구하면서 한 고등학교를 점거 한 적이 있죠. 전 늘 정치에 관심이 있었어요.
퍼: 한국에서는 7-80년대에 민주화 과정에서 많은 학생들이 데모를 하는 등, 활발하게 정치 참여를 했어요. 지금은 그때와 다르고, 대학 내 학생운동은 비주류 활동이 되고 있어요. 토마스가 학생 운동을 했던 건 시대정신의 반영이었나요 아니면 다른 학생들보다 더 정치적으로 활발해서 그런 것이었나요?
토: 시대적인 맥락이 제 학생 때의 정치적 행동을 더 활발하게 했다고 봐요. 제가 5년 전에 대학교를 다녔을 당시 9/11테러가 있은 지 얼마 안 된 때였거든요. 사람들은 충격에 빠졌고,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제대로 파악할 수 없었어요. 하지만 그 때 보다 지금 이 공동체내에서 진보적인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나는 것 같아요.
퍼: 대학교에서 정치 전공을 했나요?
토: 아니요. 철학 전공을 했어요.
퍼: 고등학교 졸업하고 대학교를 바로 갔나요?
토: 졸업하고 반년간 폴케회어스콜레*에 갔어요. 전 철학과 글쓰기로 특화된 학교에 갔고, 반년 이후 대학교 과정을 시작했죠. 고등학교과 대학교 사이에 공백기간은 별로 없었어요.
* 폴케회어스콜레(시민대학)은 빈민과 교육받지 못한 이들에게 필요한 교육을 제공함으로써 이들의 적극적인 사회참여를 이끌어 낼 목적으로 약 150여 년 전부터 덴마크 전역에서 시작되었다. 만 17.5세 이상은 누구나 입학이 가능하며 성적의 압박 없이 자기가 관심 있는 과목을 공부하고 대부분 기숙생활을 한다.
토: 하하, 제가 81년생이예요. 퍼: 전 85년생인데! 저처럼 80년대의 아이들이시군요.
(세대간 동질감을 확인하면서, 훈훈해진 분위기)
3. 생활을 업으로 삼는 마을 대변인으로 살기
(토마스를 찾는 전화. 짧게 전화통화를 한다.)
퍼: 아까부터 계속 전화가 오던데, 토마스에게 이 곳이 더 이상 마음의 안식처는 아닌가봐요.
토: 그러게요 ㅜ_ㅜ 사실 이 일을 맡기 전에는, 대변인이 무슨 일인지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어요. 공동체 사람들이 제게 말하기를, 기자들에게 크리스티아니아에 대해서 이야기 할 수 있는 일 정도라고만 했거든요. 당시 전 갓 대학교를 졸업했고 돈도 없었어요. 그리고 제 선임자가 그만둬서 공석이었고요. 정부와 갈등이 한창 심했을 때 일하던 사람이었는데 정신 쇠약이 생겼다나 뭐라나…
퍼: 정말이요? 몇 년전에 정부와의 갈등이 심해져서 지금보다 더 많이 언론에 오르내렸다고 들은 적이 있어요. 정신적 부담이 상당하겠어요.
* 2000년대 중도우파 성향의 안데르스 포그 라스무센(Anders Fogh Rasmussen) 정권 집권 당시, 크리스티아니아는 마리화나 시장 척결과 재개발의 압력으로 무척 힘든 시기를 겪었다. 2004년, 정부는 공권력을 투입하여 강제적으로 시장을 닫았고, 크리스티아니아에 모여 있던 마약상들은 코펜하겐 음지 곳곳으로 흩어지게 되었다. 이때부터 뿔뿔이 흩어진 마약시장을 장악하려는 갱단간 충돌이 심화되었고, 결국 크리스티아니아의 마약 시장도 소기의 성과 없이 1년 후에 부활하였다. 또한 2004년에 정부는 주택단지를 건설하겠다는 명목아래 철거를 승인하는 법령을 통과 시켰고, 이에 대응하여 2005년도에 주민들의 항의시위가 이어졌다.
토: 공동체 대변인으로서 크리스티아니아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내부적으로 어떤 충돌이 있는지 알아야 해요. 여기서 일어나는 중요한 모임들은 거의 다 참석해야 하고, 그때와 마찬가지로 지금도 외부의 언론인들을 상대하는 일도 많고요. 그러다 보니 대변인 개인이 느끼는 부담감이 크죠. 다른 직업을 찾고 있는데 혹시 아는 거 없어요?
퍼: 에이. 저보다 토마스가 여기 돌아가는 사정은 더 잘 아시잖아요. 그런데 크리스티아니아 내의 일자리는 어떻게 찾나요?
토: 내외적으로 공고가 나기도 하고, 아는 사람 소개로 알게 되지요. 대부분의 일자리들은 공고가 나요.
퍼: 그렇군요. 그럼 대변인이 토마스의 주요 상근직인거죠? 일 때문에 크리스티아니아를 나갈 기회가 많나요?
토: 대부분의 일을 여기서 봐요. 하지만 코펜하겐 시내에서 종종 정치인이나 언론인들과 모임이 있어요. 또 저희 공동체 일을 봐주는 변호사를 만나러 가기도 하고, 시내에 있는 TV와 라디오 방송국에 가기도 하지요. 코펜하겐 외의 다른 지역들에 가서 크리스티아니아에 대해서 발표하러 가기도 하고. 하지만 공동체 내에서 전화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들이 많아요.
4. 개인은 공동체 안에서 더 자유롭다
퍼: 그렇군요. 아까 이 공동체에서 대변인으로 사는 것의 고충이라면 고충이랄까, 힘든 점을 잠시 공유해 주었는데, 주민으로서 크리스티아니아 삶에 불만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토: 글쎄요, 불만이랄 것 까진 아니고. 예를 들면, 제 갈 길 가다가 만나는 이웃들 하나하나 안부를 묻다보면 시간이 지체되지요. 이 곳은 많은 주민들이 서로 알고 지내는 작고, 끈끈한 공동체예요. 그러다 보니 모든 자기 일들이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고, 종종 예외상황이 생기거나 계획 변경들이 생기죠. 하지만 이웃들과 담소 나누고, 공동체 의식을 느끼고, 이런 것들은 없어지면 참 그리울 거에요.
퍼: 도시화는 전세계적인 개발 추세가 되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도시 내의 공동체 의식은 약해지고 있어요. 저만해도 이웃집에 누가 사는지 모르고 살거든요. 크리스티아니아 내에서 요즘 이웃간 유대와 공동체 의식은 어떤가요?
토: 꽤 강한 편이예요. 하지만 오랫동안 정부와 경찰, 그리고 덴마크 국가전체를 상대로 공동체의 존속을 위해 싸우다 보면 기운을 많이 뺏겨요. 그래서 새로운 기운 –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일할 줄 아는 에너지 넘치는 사람들 – 이 필요하죠. 이 곳은 주어지는 자유도 많고 주민들에게 크게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개개인이 성숙하게 행동하지 못하거나 공동 생활을 존중하지 않으면 공동체가 어려워지죠.
퍼: 한 없이 자유로울 것 같은 이곳이 사실은 상당히 조직적이고 공동체 의식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점이 흥미로워요. 외부인들은 그런 내부 사정까지 보지는 못하니까요.
토: 맞아요. 바로 그 점이 다수의 젊거나 예술가 성향의 이주민들이 처음에 놀라는 부분이에요. 여기 주민들은 전기세도 내야하고, 집도 지어야 하고, 모든 것을 스스로 해야 해요. 주민으로 사는 게 거의 상근직이죠. 특히 이 공동체를 없애려 하는 우리보다 더 큰 적들과 대립 중일 때, 할 일이 더 많죠.
퍼: 알 수록,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더 신기하네요.
토: 이 곳은 다양한 아이디어와 상충하는 신념들을 끌어 안고 가면서도, 굉장히 모순적인 곳이에요. 개인의 자유를 확고하게 존중하지만, 실용적인 맥락에서 공동체의식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어요. 공동체주의를 사상으로 무조건 신봉하는 것도 아니고요. 공동체를 위해선 아무런 일도 하지 않고 모임에도 참석하지 않는다면, 그에게 크리스티아니아는 맞지 않는다고 봐요.
퍼: 크리스티아니아가 모든 사람을 포용할 수는 있어도, 모두에게 맞는 곳은 아니라는 거군요.
토: 그렇지요. 주민들이 모든 것을 스스로 한다는 점이 이 마을을 지켜낸 또 다른 원동력이죠. 이 공동체를 만들고 유지하는데 외부나 정부당국으로부터의 도움이 거의 없었어요. 따라서 여기 주민들은 더 많은 책임을 느끼고, 지고 있어요. 자기 집을 지을 때뿐만 아니라, 공동체 전반의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것이 무척 중요해요. 대신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다른 곳과 차별되게 결과물을 내죠. 이런 자유의 개념은 두렵기도 하지만 해방감을 주죠.
퍼: 개인의 해방감과 공동체 주민으로서의 의무 이행을 본인은 어떻게 조화시키고 있나요?
토: 저는 공동의 일에 참여하는 것이 자기계발의 기회라고 생각을 해요. 저 개인보다 더 큰 유기체의 일부가 된다는 느낌이 들어서, 저는 공동체 참여 속에서 더 자유로움을 느껴요. 물론 이 유기체가 세상을 어떻게 바꿀지에 대한 구체적인 행동계획은 주민마다 틀리지만, 그런 문제의식 자체를 함께 나눌 수 있는 게 좋아요.
퍼: 일정 문제의식이나 사회적 민감성을 공유한다고 하면, 왜 이 공동체는 굳이 정당이나 사회적, 문화적 조직이 되지 않았을까요?
토: 크리스티아니아가 정당이나 사업체 둘 다 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되지 않으려 한다는 거, 정치적인 규율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게 흥미로워요.* 많은 진보 운동들을 제가 목도 한 바로는, “우리는 올바른 해답을 가지고 있다”라고 주장하면서 원칙들을 세우지요. 하지만 그 원칙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진부하고 엄격한 것이 되어버리고, 결국엔 진보가 아닌 이슈 대응에서 그치더라고요.
* 크리스티아니아의 주민으로서 살아가기 위해서 지켜야 할 금지 사항들은 다음과 같다: 폭력, 자동차, 절도, 강성마약, 총기, 도검류, 폭죽, 방탄조끼 그리고 바이커 갱단의 표식. 바이커 갱단의 표식이 금지사항이 된 데는, 1980년대 중반에 이 곳 마약시장을 장악하고 범죄를 저질렀던 갱단 일원들을 공동체에서 몰아내었었던 과거 때문이다.
5. 크리스티아니아 주민, 코펜하겐 시민, 관광객 간의 공생관계?
퍼: 코펜하겐 주민들이 지금의 크리스티아니아를 만들어 오는 데 일정 역할을 했다고 생각하나요?
토: 물론이죠. 이웃들이 크리스티아니아를 많이 지지해 주었기 때문에, 정치인들이 공동체를 무너뜨리지 못했다고 생각해요.
퍼: 이웃들은 왜 이 공동체를 지지하나요?
토: 코펜하겐을 위해서 좋은 일을 많이 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죠. 우선, 이 곳은 갈 곳이 없는 사람들을 받아들였었어요. 두 번째로 이 곳은 도심 한 가운데에 차가 다니지 않는 녹지 공원이 되죠. 또한 많은 문화 공연들이 여기서 열리기도 해요.
퍼: 하지만 크리스티아니아에서 공공연히 마리화나를 거래를 하는 것이 논란이 되어 있어요.
토: 마리화나(cannabies)의 공개적 거래는 허용되지만 중독석 약물(hard drug)은 금지되고 있어요. 경찰의 예고 없는 단속이 있긴 하지만, 마리화나를 피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이 곳은 다른 곳 보다 더 안전하지요. 그리고 이를 범죄화 하기 보다, 공개하고 관대하게 대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고요.
퍼: 토마스 말 대로 마리화나에 관대한 시민들이 많다면, 왜 최근에 마약관련 된 문제들이 있었던 걸까요? 예로 2005년인가 크리스티아니아 마약 시장에서 총격전도 있었잖아요.
토: 지난 10년간 집권하고 있는 우파성향의 시정부는 이를 범죄화 했어요. 그러면서 집중되어 있던 마리화나 시장이 코펜하겐 전역으로 흩어졌고, 돈이 되는 이 시장을 장악하려는 갱단이 공동체 시장에 들어오고 이들 간에 전쟁이 시작되었어요. 길거리의 총격전과 인명피해는 10년 전에는 없었던 일이에요. 코펜하겐 주민들은 정치인들이 악화시켰다고 알고 있고, 이례적으로 정부와 경찰 내에서 비판의 목소리를 낸 사람들도 있었어요. 정말 돌아버릴 상황이었죠.
퍼: 시정부랑 이런 마찰이 있는데, 그래도 토마스는 스스로를 코펜하겐 주민으로 보나요?
토: 그럼요. 이 공동체의 생존에 있어서 외부와의 연결은 무척 중요해요. 아주 오래 전부터 정치인들과 이 공동체에 대해서 대화를 해 왔어요. 만약 우리가 이곳에 바리케이트를 치고 이 땅이 우리 것이라고 주장만 했다면, 그쪽도 다르게 대응했을꺼예요. 그리고 대중들도 우리를 다른 시선으로 봤겠죠.
퍼: 하지만 외부인의 눈으로 봤을 때, 제게 크리스티아니아는 코펜하겐 다른 지역과 많이 달라서, 마치 섬 같기도 해요.
토: 저는 이 곳을 찾는 코펜하겐 주민들을 직접 보다 보니, 외부인들이 가정하는 것 보다 방문객과 크리스티아 간의 자연스러운 상호작용을 더 보게 되는 것 같아요. 여기 인구보다 더 많은 몇 천명의 방문객들이 매일 찾아와요. 지난 2년간 코펜하겐 전 인구의 삼분의 일이 크리스티아니아를 왔다 갔다고 하죠. 이 곳은 나이 든 커플에게는 좋은 산책길을, 17세 청소년에게는 음악 들을 곳을, 안전한 환경에서 마리화나를 필 수 있는 곳을 제공하지요. 여기서는 많은 다양한 것들을 할 수 있고, 그래서 인기가 있어요.
퍼: 하지만 여기에 사는 입장으로서, 수많은 관광객들이 집 앞마당까지 오는 상황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요?
토: 운이 좋게도, 전 관광객들이 많이 드나들지 않는 멀리 떨어진 곳에 살아요. 물론 제 창문 안을 들여다 보거나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있죠. 전 그게 거슬리지 않아요. 그냥 웃어주죠. 불편할 때가 있다면, 라이터를 사야 하는 데 그 상점 앞에 관광객들이 길게 줄을 서 있어서 30분 기다려야 할 때? 라이터가 뭐라고! 그게 빼고는 전 관광객들은 괜찮아요.
퍼: 외지 관광객들은 이 공동체에 있어서 중요한가요?
토: 매우 중요해요. 경제적으로도, 그리고 이 공동체의 평판을 위해서요. 많은 사람들은 언론 정보만 믿고 처음에 이 공동체에 대한 편견을 가지게 되는데, 여기에 와서 20분만 걸어보면 생각이 많이 바뀌어요.
퍼: 외지인으로 인한 문제들 때문에 방문 관광객수를 제한해야 하지 않느냐는 내부 논의는 없었나요?
토: 공동체 내 모임들 중에서는 그런 안건이 있지 않은 것으로 기억해요. 여기 대부분의 사람들은 공동체내의 사업들이 먹고 살 수 있기 때문에 크리스티아니아의 관광화를 반겨요.
퍼: 아 그런가요? 전 제가 관광객으로 여길 몇 번 왔었는데, 내가 여기 주민들의 일상을 방해하는 건 아닌가, 사진을 찍으면서 그들의 순간을 훔쳐가는 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었거든요.
인터뷰 장소에 있던 다른 주민: 사진이야 물어보고 찍기만 하면 되지. 그런데 무슨 일로 이 청년을 인터뷰 하는 거요?
(아주머니에게 토마스를 어떻게 인터뷰를 하게 되었는지, 나는 어디서 왔고 왜 스웨덴에서 공부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설명 드렸다. 토마스가 인터뷰를 응해줘서 고맙다는 나의 말에, “내 직업이 대변인이라서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쉬크하게 답했다.)
6. 주민 토마스가 꿈꾸는 공동체의 미래
퍼: 크리스티아니아에 더 필요한 게 있다면 무엇일까요?
토: 7천 5백만 크로네요, 하하하.
퍼: 왜 필요한 건지 퍼슨웹 독자들을 위해 설명해 주세요.
토: 지금 공동체가 점유하고 있는 토지를 시장가보다 싸게 7천 5백만 크로네에 매입하기로 시정부와 협상했어요. ‘인민의 주식(people’s share)’을 만들어 그 수익금을 모으고 있는 중이에요 (주식을 사는 것은 기부금의 형태이며, 공동체의 실질적인 지분을 소유하는 것은 아니다: 인터뷰어 주.) 7천 5백만이면 근 1천 유로니까 상당히 큰 금액이죠.
퍼: 점유지를 사야겠다고 결정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토: 지난 7년간 공동체를 없애려는 외부의 압력들로부터 자기방어를 하는 데 많은 에너지를 소비했어요. 이제 그 기간과 맞먹는, 평화의 시간, 우리의 에너지를 건설적으로 쓸 시간이 필요해요. 이 땅이 정말 우리땅이 되면 그게 가능해져요.
퍼: 토지 구매 말고, 크리스티아니아 주민의 시각으로 이 공동체에 더 필요한 것이 있다면요?
토: 저희 공동체가 위치한 호숫가에 사는 주민들의 상당수가 50대의 독신남성이라는 설문결과가 있어요. 이는 마을에 젊은 사람, 여성이 부족하고, 더 필요하단거죠.
퍼: 아까 이 공동체내에 젊은 사람들이 부족하다고 했는데, 얼마나 부족한 건가요? 예를 들면 20대 인구 말예요.
토: 정확한 통계는 없네요. 하지만 1971년에 점거한 젊은 사람들은 지금 50대가 되었고, 그 이후로 새로 이주한 사람들은 얼마 되지 않아요. 그러다 보니 인구 대부분이 50대고요. 새로운 주민들을 많이 받을 수 없어서가 문제였던 거 같아요.
퍼: 그렇군요.
토: 아, 그리고 마을 공동의 큰 야채농장이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유기농 야채도 기르고, 나이 드신 히피 아저씨들 소일거리 하게요. 여기가 이전 군병영지라 토양이 오염되서 정말 그렇게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연로한 주민들이 친구분들과 함께 살 수 있는 공간과 유스호스텔이 있으면 좋겠어요. 재생 에너지 생산도 했으면 좋겠고요.
퍼: 홍콩에 춤추는 사람들의 발 구름으로 전기 생산하는 나이트클럽이 있다고 들었어요.
토: 오, 괜찮은 발상이네요. 에너지 자립까지 가능해 지면 이 공동체가 모든 면에서 지속가능하게 자립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또한 전 세계에 크리스티아니아 같은 해방구역들을 생겨나는 것을 보고 싶어요.
퍼: 자매결연 맺은 곳은 없나요?
토: 있긴 한데, 성격이나 규모 면에서 저희 같은 곳은 없어요. 주민으로서 제 경험에 따르면, 이런 공동체에 산다고 했을 때 누가 만들어 놓은 히피 마을에 들어가 사는 것은 일부일 뿐이고, 나머지는 직접 만들어 가야 해요. 자기 동네는 직접 만들어야 한다는 저희의 이런 노하우가 다른 자립 공동체나 해방구역에게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고 있다고 생각해요.
퍼: 여기 쭉 살꺼에요?
토: 네. 제가 무엇을 하던 어디를 가던, 이 공동체와 제가 강한 끈으로 연결 되어 있음을 느껴요. 지금 제 주택이 어떻게 될 지도 모르겠고, 제 상황에 기복이 많아서요. 글쎄, 달로 가지 않은 한, 여기를 탈출하진 않을 꺼 같네요.
퍼: 여기 말고 살고 싶은 곳이 있나요?
토: 물론이죠. 세계에서 제가 가보지 않은 곳들이요. 전 다른 곳들에 대한 호기심이 강해서 가고 싶지 않은 곳이 없어요. 아시아는 한 번도 안 가봤는데, 거기도 참 가고 싶어요.
퍼: 제 고향은 서울이에요. 서울로 오세요! 오면 저희 집에서 재워드립니다.
(심각하게 고민하더니) 토: 서울행 비행기표 왕복 싼 게 얼마예요?
무계획적인 토지점유에서 시작하여, 느슨한 정치적 연대의식으로, 40년 넘게 지속된 공동체로 유지된 크리스티아니아의 속 사정은 흥미로웠다. 토마스의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궁금증이 해소되기 보다 더 많은 궁금증이 생겼다. 공동체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주민들이 이 공동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지만, 실제로 어떻게 가능할까라는 놀라움 반, 의문 반은 계속 되었다. 이런 이유에서 일까, 크리스티아니아를 연구하러온 연구자와 예술가들 중, 결국 주민이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크리스티아니아에 살아보고 싶어졌다 (외국인도 주민으로 받는다고 한다.) 하지만 토마스의 말을 다시 곱씹어 보니, 이런 대안적인 공동체 삶이 굳이 덴마크에서만 가능 한 것도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필요한 것은 아주 비범한 리더십, 희생을 마다 않는 개개인의 신념이나 모두를 사로잡는 정치적 비전이 아니었다. 내가 있는 바로 지금 여기에서 행하는 작은 일들과 몇몇의 동지면, 충분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