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역방랑] ③ 준가르, 마지막 날  

이리하伊梨河, 이리하.
면면히 멈추지 않고 흐르네, 거센 물결을 일으키며 세차게. 꼭 내가 당신을 그렇게 깊이 깊이 사랑하는 것처럼. 이 세상에, 다른 사람은 없어라. 오, 이리하, 이리하.

마지막 전장터로 가는 날

 
2008 년 5월 15일. 이리 소소昭蘇 평원에 가던 날 사천에서 대지진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라디오에 학교가 무너져서 아이들 수백 명이 죽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천재지변이라는 것도 우스운 말이다. 학교가 호텔보다 더 쉽게 무너지는 것이 천재니 지변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 아이들이 어른들보다 달리기를 못한다는 사실은 또 하늘의 뜻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 나는 이렇게 결론을 내릴 수 밖에 없다. 더 타락한 어른들이 덜 타락한 아이들을 죽였다.  
 
대체로 더 타락한 인간들이 ‘하늘의 뜻’이라는 말을 쓰기를 좋아한다. 하늘의 뜻을 얼마나 존중하는지 급기야 돌에다 하늘의 뜻을 새겨 넣는다. 그 돌은 최소한 수백 년은 썩지 않을 것이다. 하늘의 뜻이라면 하늘이 새겨 넣어야 할 것이로되, 고작 석공이 새기는 것이 좀 우스꽝스럽다. 하늘의 뜻이라면 하늘이 보낸 바람과 비를 반겨야 할 것이로되, 비각을 세워 비바람을 막으려 하는 품세도 우습다. 돌에 새겨진 하늘의 뜻이 영 믿음직하지 않는 것이 그런 까닭이다.  
   
남쪽으로 천산에는 눈이 녹지 않았고, 그 유명한 유채꽃도 아직 피지 않았다. 누런 들판으로 양떼들만 풀을 찾아 움직이고 있었다. 회오리 바람이 불다 갑자기 비가 내리고 초원이 시커멓게 변했다가 다시 개기를 반복하는 이상한 날씨였다. 나는 지금 격등비格登碑를 찾아 가는 길이다. 준가르를 위한 조곡으로는 격등비만한 것이 없다. 소소현에 들러 격등산까지 함께 갈 택시기사를 찾으니 대개는 손사래를 친다. 군사주둔지라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다. 사실 격등산에서 차로 얼마만 더 들어가면 카자흐스탄이다. 못 들어가면 다시 나오면 될 것이 아니냐, 열심히 젊은 친구 한 명을 설득했다.  
 
들어가는 길은 거의가 군사 주둔지다. 둔이라고 쓰여진 마을들은 거개 과거에 사람들을 이주시켜 만든 마을들이다. 주둔지를 지날 때마다 에둘러 갔다. 다행히 멀리 격등산과 비각이 보일 정도까지 갔을 때 심장이 쿵덕쿵덕 뛰었다. 저 산 위를 올라 서쪽을 바라보면 멀리 카자흐 평원으로 터진 계곡이 보이고, 왼쪽으로는 천산이 엎어질 듯이 서 있다. 오른쪽으로는 올망졸망하게 이어진 언덕위로 양떼들이 하얗게 널려 있다. 저 산 위에 서고 싶다. 하지만 나는 서지 못했다. 퉁명스러운 군인의 대답 몇 마디만 들었다.   
 
“외국인에게 개방되어 있지 않습니다.”
 
찔러도 피도 날 것 같지 않은 그 신참 병사를 설득할 방법은 없다. 시국이 어수선해서인지 국경지대는 분위기가 좋지 않다.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전술상 퇴각이다.  
 
하지만 언제 다시 이곳으로 오랴. 멀리서라도 비석을 바라보고 싶었다. 별 볼일 없는 사진기지만 최대한 끌어당겨서 찍으면 대충의 모양은 나올 것 같았다. 그러나 이곳은 군사지대, 어떻게 할 것인가?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나는 맞은편 언덕으로 올라가 관찰하기로 했다. 다행히 택시기사도 격등비를 직접 본 적은 없어서 뭔가 신기한 것인가 해서 나를 따랐다.  
 
5월에도 천산 북쪽의 바람은 차다. 양들은 아직 덜 돋아난 싹을 찾아 풀밭을 헤치고 있다. 산을 기어오른다. 그리고 8부 능선에 달해서는 살금살금 기다가 결국은 포복으로 접근했다. 설마 실탄을 가지고 있지는 않겠지. 들키면 자연스럽게 양치기인 척하며 내려오면 된다. 마음속으로 두세 번 다짐한다. 언덕 정상에 오르니 비각이 보인다. 새로 만든 청나라 양식의 누런 비각 속에 비석이 들어 있다. 천산 허리에는 구름이 드리워져 있고, 서쪽으로 뻗은 초원에는 더 이상 거칠 것이 없다. 어디가 국경일까? 저 멀리 눈 덮인 천산을 제외하면 일망무제의 벌판에 거대한 금을 긋는 것도 시간이 걸릴 것이다. 아무런 자연적인 장애물이 없는 이곳에 국경이 있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없다. 서쪽에는 파란 빛이 더 하다. 바로 여기서 초원의 마지막 전사들이 최후를 맞이했다. 그리고 준가르 유목제국은 산산이 흩어졌다.  
 
사진 두어 장을 찍는 차에 뒤쪽이 약간 어수선해 돌아보니 택시 기사는 헐레벌떡 뛰며 달아나고 있다. ‘이 친구야, 그러다가 저쪽에서 총이라도 쏘면 어떻게 하려구?’ 사실 그런 일이야 일어나겠느냐마는 겁쟁이 기사의 돌출행동에 무척 당황했다. 자연스럽게 돌아서 한 참 내려오다가 초소가 안 보일 때쯤에 나도 냅다 뛰었다.   
 
– 총이라도 쏘면 어떻게 하려고 뛰었소?  
– 자네야 발각돼도 돌아가면 되지만 나는 여기서 일해야 된다구. 여기는 내가 들어올 수 있는 곳이 아냐. 주둔지를 몇 개나 지났잖아. 발각되면 큰일나. 빨리 돌아가자.
 
그래 그 친구의 말도 일리가 있다. 나를 버리고 가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다. 사진은 몇 장 찍었다. (그렇게 어렵게 사진을 찍었으나 나중에 싸리무 호에서 말을 달리다 사진기를 잃어버렸다. 계곡 안에 사는 친구들이 주워간 것 같다고 하기에 따라가려니 말을 타고 하루를 들어가야 한단다. 그래서 포기했다. ‘목숨 걸고’ 찍은 사진이 아까워서, 다시 신강으로 여행하는 박형에게 기어이 부탁해서 격등비 사진을 얻었다.)

허풍선이의 학살극

 
비문을 쓴 사람은 건륭이다. 그는 황제니까 나는 그에게 몇 마디 비난을 들려주려 한다. 그가 거지라면 나는 그를 비난하지 않을 것이다. 생전에 받은 끝 없는 아부, 그리고 오늘날 받고 있는 뒤틀어진 찬사를 벌충할 문장 하나쯤은 있어야 하기에. 비문에는 도대체 뭐라고 쓰여 있을까?
 

격등산의 험하고 높은 곳에, 적은 보루를 견고히 했도다.  
우리 군사 당당하니, 적의 견고함이 스스로 꺾였다.  
격등산의 끊어지고 막다른 곳, 적은 그곳 구멍에 자리를 잡았다.
우리 군사 높은 사기 앞에, 적의 둥지를 꿰뚫을 듯.
우리 군사는 노도처럼 이리하를 건넜다.  
앞에는 이끌어 주는 이 있어, 우리를 위해 배를 준비해주었고,  
강을 건넌지 8일, 격등산까지 쫓아왔다.
앞은 진창이요 뒤는 절벽인데, 어둠이 깔렸다.  
저들의 진지를 부수는 게, 저들의 군사를 죽이는 게, 뭐가 어렵겠는가?
허나 우리의 무력을 감추어두는 것뿐이지.
우리의 무력을 감추어 두는 게 어찌 적을 가만 두는 일이던가?
이미 생각해둔 바가 있으니, 공을 세울 일이 멀지 않았다.   
저들도 나의 신하라고 내가 이미 말했다.  
그러니 우리 군사들은 언덕을 잿더미로 만들어, 황제의 은혜를 저버릴까 봐 두려워했다.  
세 명의 바투르(용사)와 22명의 장졸이, 밤에 적의 진지를 들이치니, 일만一萬의 적이 벌벌 떨었다.  
너희들은 하나하나가 딴 생각인데, 누가 너희를 지켜 주겠느냐?  
너희 우매하고 모자란 것들이, 아직도 달아나려 하는구나.  
너희가 달아난들 누가 너희를 받아주랴?  
묶여서 군문軍門에 보내지면, 후회막급일 것이다.  
아, “죽이느니 차라리 가르치라” 했듯이,  
잡은 자들을 용서해주어 나의 큰 도량을 빛냈다. (受俘赦之,光我擴度)
이 도호부를 설치하고, 당唐은 장군들을 높였으나,  
비용은 크고 노고는 막심했으나, 종래 복종시켜 신하로 삼지 못했도다.  
이미 나의 은혜에 신하가 되고, 나의 올바름에 복종했으니, 격등산에 비문을 새겨, 억대의 후손에게 알리노라.   

 
시의 품격이야 나는 모르는 일이나, 시의 내용은 가히 우습다. 격등산은 작은 언덕이요 보루를 쌓을 곳도 없다, 황제여. 그대는 이곳에 온 적도, 몸소 활을 잡아본 적도 없기에 알 턱이 없다. 격등산은 절벽도 없고, 오월의 이곳 벌판은 진창이 아니다, 황제여. 그대의 대군은 어둠에 멈췄고, 준가르 항장降將들이 동족을 급습해서 흩어놓았다. 그것은 그대의 자비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 황제여. 또한 적이 일천이면 몰라도 어떻게 일만이 되겠는가?  
 
그런 소소한 진실들이야 무시한들 어떠랴. 허나 그대 스스로의 다짐, 즉 포로를 용서하여 도량을 빛낸다는 말은 1년도 안되어 거짓으로 드러났다. 그대는 너무 큰 허풍을 쳤다.   
 
적의 앞잡이가 된 아무르사나는 장군의 칭호를 얻었다. 하지만 그는 더 큰 지위, 즉 준가르의 칸이 되고 싶었다. 그러나 의뭉스런 건륭은 다시 준가르를 나누고 그를 그저 여러 부족 중 의 하나인 호이트의 칸으로 삼으려 했다. 준가르가 뭉치는 것을 다시 볼 수 없다는 명백한 신호였다. 아무르사나는 이 제의를 거부하고, 계속 지지자들을 모으면서 건륭을 압박했다. 건륭은 선수를 써서 아무르사나를 잡으려 했지만 그는 달아났고, 다시 준가르의 남은 세력들을 모아 청에 대항했다.  
 
그러나 준가르 칸국을 다시 세우기에는 조건이 좋지 않았다. 카자흐의 아블라이는 청에 협조하기로 다짐했다. 청도 위협적이었지만 준가르는 더 위협적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할하의 군대가 동쪽에서 아무르사나를 압박했다. 결국 아무르사나는 초기에 이리를 다시 차지했을 뿐 다시 달아나는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아무르사나의 ‘반란’은 격퇴되었지만, 그를 잡을 수는 없었다. 건륭은 그의 배신에 격분해서 이성을 잃었다. 그리고 1757년 근대 중국사에서 좀처럼 보이지 않은 대학살이 초원에서 벌어졌다. 그가 내린 명령은 두 가지였다.
 
“준가르 포로를 학살하라.”
“싸울 수 있는 자들은 모두 죽이라.”
 
그리고 이런 기록이 남아 있다.  
 

“그 때 오이라트 부족은 우리 병사들의 위세에 눌려, 비록 한 부락에 만호가 있더라도 감히 대항하는 자가 없었다. 장정들은 나오라고 호통친 후 그들을 베었는데, 그들은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고, 머리를 나란히 하고 죽음을 받아들였다.(寂無一聲騈首就死) 부녀자와 어린이들은 군사들은 모두 내지로 몰아 군사들에게 상으로 주었는데, 가는 길에 죽은 이들이 많았다. 이로서 오이라트는 씨가 말랐다.”
(조익, <<황조무공기성>>)

 
준가르는 완전히 지구상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초원의 마지막 전사들의 명예를 기리는 말은 여기 저기 찾아봐도 그저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고, 머리를 나란히 하고 죽음을 받아들였다”는 구절뿐이다. 이렇게 준가르는 사라졌고 지금 이리 혜원성慧遠城에는 인민해방군이 주둔하고 있다.  
 
소소 초원에서 돌아오는 길 내내 심장은 규칙 없이 뛰었다.  
 
초원에 무심하게 서 있는 고대의 석인들. 아비, 어미, 아이로 된 석인 가족이 다정하다. 저 어린 석인도 보았을 것이다. 자신들과 비슷한 생활을 하는, 모전 천막 속에 사는 이들이 학살당하고 달아나는 모습을. 그리고 눈을 감고 있는 모습으로 조각해주지 않은 것을 원망했을 것이다. 그날 벌어진 일은 저 석인들이 광풍을 맞으며 천 년이 넘는 세월을 버텨오며, 본 풍광 중 제일 무서운 것이었을 것이다.  
 
이제 국경이 생겼다.  
 
양은 풀을 찾아, 말은 물을 찾아 움직였지만 이제는 국경을 넘지 못한다. 유목민들은 여름에는 산 허리에서, 겨울에는 계곡을 따라 내려가 이쉬쿨에서 쉬었다. 그러나 이제는 울타리가 쳐져 있다. 나무 울타리가 아니라 철조망이 초원을 가로지르고, 셰퍼드가 아니라 군인들이 총을 들고 지키고 있다.  

준가르 세계를 떠나며

 
올해 3월 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수소문했다. 서몽골 부족을 아는 이들이 있느냐고. 몽골인들을 몇 명 소개 받았지만 대부분 동쪽에서 이주한 사람들이었다. 그러다 시버족 동학량佟學良 형을 소개받았다. 8천 미터 이상인 히말라야 초오유를 등정한 산악인이지만 지금은 산보다 평지를 더 좋아하는 생활인이다. 삶이 더 소중해졌다나. 시버족? 바로 신강 점령에 동원된 만주인이 아닌가? 귀가 번쩍 트였다.  
그는 보르탈라의 아르샤티로 들어가면 진짜 유목 몽골을 만날 수 있다고 했다. 그들은 아마도 서몽골의 후예일지도 모른다고 했다. 나는 바로 응낙했다. 그의 지프차에 몸을 싣고 아르샤티로 떠났다.  
 
 
몽골 주당酒黨
 
아르샤티 초원으로 들어가기 전 현성에 이미 얼굴에 몽골이라고 쓰여 있는 0.1톤이 넘는 거구의 사나이가 맞아주었다. 범상치 않은 목소리의 해맑은 웃음이 고목 같은 몸집에서 울려 나온다. 그 때까지 나는 그가 동형의 부탁으로 잠깐 안내 나온 사람인줄 알았다. 그러나 그가 바로 주인공이었고 나는 그와 사흘 동안 계속 술을 마셔야 했다. 내가 원했는지 그가 원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차를 타고 아르샤티 초원 깊은 곳으로 가서 커다란 천막들이 서 있는 곳에 내려준다. 눈은 아직 발목까지 빠졌지만 눈 아래로 물이 흐르고 있었다. ‘차하르 장원’. 거구의 사나이 울란 바투르는 바로 차하르 장원의 장주였고, 강호의 대 주당이다. 그가 운영하는 그의 조상은 막남漠南의 차하르에서 왔다. 서몽골인이 아니었다. 하지만 나도 마음을 쉬고 싶었다. ‘서몽골이 아니라도, 그 터에 살고 있는 몽골이다.’  
 
그날 밤. 울란 바투르의 집에서 환영회가 열렸다. 기억도 하지 못할 정도의 음식이 올라왔다. 왜 나를 환대하는지는 나도 모른다. (사실 떠날 때까지 내가 환영 받은 이유를 찾지 못했다.) 어린 장난꾸러기 같은 울란 바투르는 짓궂다.  
 
– 술 먹을 줄 아나, 한국 형?
– 술 먹으러 아르샤티까지 왔는데.  
 
울란바투르가 붉은 색 상자를 가져온다. 술 상자다. 술 이름은 싸리무(賽里木). 저 투박한 사기 병 속에 정말 싸리무의 깨끗한 물이 들어 있을까? 한 상자가 다가 아니었다.  
 
– 또 있으니까 먹읍시다.  
 
울란 바투르의 친구이자 동형의 친구인 현의 행정국장 장신張信이 첫 잔을 따르고 물어온다.  
 
– 어때요?
– 깨끗한데요.
 
좌중은 이제 자지러졌다.  
 
– 깨끗하대. 동방에서 주당이 오셨다!  
 
그 후 새로운 술 상자 몇 개를 보았다. 그리고 나머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정말 싸리무의 호수처럼 맑은 백주를 호수에 얼굴을 대고 빨아들이듯이 먹었다.  
 
다음 날. 아침에 다시 장신이 찾아와 우리를 태우고 온천으로 차를 몰았다. 어제 너무 많이 먹었으니 쉬자는 뜻으로 알았다. 그날 오후 더 큰 회전會戰이 기다리고 있는 줄 내가 어찌 알았으랴. 그들이 나를 온천에 담근 것은 마치 시든 채소에 물을 주는 것 같은 이치였다. 생기를 좀 찾으면 또 술을 들이부으려고.  
 
그 날 오후 온천溫泉 현의 인사들이 거의 다 모였다. 차하르 장원의 울란 바투르, 행정부장 장신, 교육국 부장, 신화서점 주인, 퇴임한 교장선생님, 현지 조형예술가가 모여 회족이 운영하는 농가 식당에서 다시 술판을 벌였다. 좋은 말씀들이 오갔다. 먼 곳에서 온 친구를 위해, 단결을 위해, 아내들의 고향이 같은 것을 기념하여,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술 자체를 위하여 마셨다.  
 
울란 바투르는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친구를 환영하는 몽골 노래를 불렀다. 회족 주인장은 회족의 사랑노래를 불러주었다.  
 
이렇게 사람을 대하는 데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 이들이 바로 몽골이다. 한잔, 한잔 곡식의 정수에다 의미를 부여하며, 술을 아름답게 마신다. 나는 최선을 다해 현지의 주당들을 상대했다. 어차피 물과 살로 된 인간이 이 많은 술을 견딜 수 없다. 다만 끝까지 정을 할 뿐. 관계官界에 몸담고 있는 이, 사업가, 예술가 모두 술을 마다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술이 한창 오를 때, 울란 바투르가 슬그머니 쪽지를 내민다.
 
‘오늘은 너무 많이 마시지 마셔.’
 
세상은 그런 것이다. 어쩌다 들도적 같은 동생의 걱정을 받는다. 나는 안도감을 느낀다. 거나하게 취해 방광에 압박을 받은 사나이들은 사방이 터진 농가의 화장실에서 한 사람씩 따로 만난다. 조형예술가 향형은 화상실 벽 너머로 손을 뻗었다. 꽉 잡았다. 그리고 우리네 타락한 인간들은 어느덧 스스로 부끄러워서 감히 하지 않게 된 말도 들었다.  
 
“예술 때문에 여기에 있어요. 나가야 하는데.”
 
예술 때문에 여기에 있다면 이미 여기를 벗어난 것일지도 모르지. 통으로 구운 양고기가 차려졌을 때, 창 밖으로 백양목이 점점 크게 흔들린다. 백양목을 보면서, 나는 서서히 잠이 들었다. 준가르도 서몽골도 다 잊었다. 그냥 몽골만 느껴졌다. 울란 바투르의 커다란 배 같고, ‘싸리무’의 쓰디쓴 소박함 같은 몽골. 

아르샤티의 마지막 밤

 
 
이리하伊梨河, 이리하.
면면히 멈추지 않고 흐르네, 거센 물결을 일으키며 세차게.  
꼭 내가 당신을 그렇게 깊이 깊이 사랑하는 것처럼.
이 세상에, 다른 사람은 없어라.  
오, 이리하, 이리하.  

 
초루의 집에서 아르샤티의 마지막 밤이 깊어갈 때, 시버족 동형은 시버어로 이리하를 노래 불렀다. 그리고 친구들은 몽골어로 따라 불렀다. 고향노래다. 이린 골이든, 이리 외젠이든, 이리 다리야든, 혹은 이리허든, 그 강은 서쪽으로 흐른다. 몽골, 카자흐, 위그르, 그리고 동형과 같은 만주족 이주민들, 그리고 한족들이 그 강에서 삶을 녹였고 이제는 떠날 수 없게 되었다. 모두 떠날 수 없다. 우리들은 나흘째 ‘싸리무’ 백주를 상자째 먹고 있다. 나에게는 화해할 대상도 없는 화해의 술이다.  
 
이미 술이 오른 동형은 말했다.  
 
– 무슨 민족이냐, 집착이다. 이제 잊어라, 공형.  
 
그래 사실 민족이 무슨 소용이냐? 함께 술을 먹은 이가 차하르 몽골인들 준가르 몽골인들 무슨 차이가 있으랴. 나의 집착일까? 그런데 그대는 왜 또 이리하를 노래 불러서 객의 마음을 흔드나.  
 
시버족도 만주를 떠나 ‘새 땅(新疆)’으로 강제이주 되었다. 그는 이리가 싫다고 했다. 그는 원래 기자였다. 우루무치에 살 것이고, 기회가 나면 더 큰 곳으로 갈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또 이리를 노래한다. 그것도 거의 잊었다는 시버 말로.  
  
나도 그렇다. 인간이 인간을 너무 많이 해쳤던 시대를 잊고 싶지만 또 떠오른다. 나도 내 안에서, 사막과, 초원과, 강과, 밭과, 고원이 한 덩어리가 되어 화해하기를 바란다. 단지 잔혹한 시절이 다시 오지 않기를 원한다.
 
– 그래, 동형. 내가 잊지 않아도 잊혀진다. 기억하는 사람도 없다.  
 
그 강. 나도 그 강을 떠날 수 없다. 겨울 갈대가 노랗던 강, 여름의 황토가 거세게 흐르던, 봄에 신록이 피어나던 강. 그 강가에서 나는 셀 수도 없는 다양한 색깔의 사람들을 보았다. 그리고 사람들의 꿈에 대해 들었다. 강가에서 아이스크림은 파는 회족 마 아주머니는 이리의 카자흐족들의 ‘바보 같은 순진함’을 한탄했다.  
 
“카자흐족은 땅이 귀한 줄 몰라. 외지인이 몇 푼만 주면 땅을 넘겨.”  
 
하지만 그녀도 바보 같이 순진하기는 마찬가지였지. 전처가 있는 남자, 한 몫 잡겠다고 소련에 갔다가 빈털터리로 온 남자, 그리고 이리 강가에서 아이스크림 기계를 지키고 있는 남자가 그의 남편이다. “데리고 살아야지. 다 늙어서.” 그녀도 그 강을 떠날 수 없다. 기름기 많은 아이스크림을 기어이 하나 안긴다. 강가로 가면 노란 머리, 까만 머리, 빨간 머리들이 겁도 없이 불어난 물로 풍덩풍덩 뛰어든다. 하지만 소심한 객은 뛰어들지 못한다. 유목민은 이제 서쪽으로 갈 수 없다. 하지만 물은 서쪽으로 간다. 아마도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울지도 모르는 초원을 품고서.  
 
벌써 몇 년째, 신강에 갈 때마다 짐승을 타고 있는 이들에게는 다 물어보았다. 싸리무에 풀이 돋을 때 호수변을 달리는 그 사람들은 준가르가 아니었다. 눈 속에 호수도 하얀 초원으로 변해 있던, 들꽃이 호수를 물들이던, 발 담그고 물 속의 조약돌을 줍던 때, 싸리무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내가 찾던 사람들이 아니었다. 나라티에서 아이를 안고 허기진 내게 국수를 준 이도, 바인부르커 경마장에서 바람처럼 달리던 기수도, 남산 목장에서 호객하던 개구장이도, 얼치스의 낙타 몰이꾼도 모두 준가르가 아니었다. 그리고 신강에서 가장 유목민스러운 사람들이 산다는 이 아르샤티에서 양을 모는 그대들도 준가르는 아니다. 그러니 카라마이의 유흥가에서 하룻밤에 수천 원을 날리는 석유 장사꾼이 준가르가 아님은 물어보지 않아도 안다.  
 
‘알 수 없다. 그런데 왜 아직도 그 이름이 준가르인가, 이 평원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