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은 7년 전에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로 이사 왔다. 7년 동안 단지 주변에는 점점 더 많은 대형마트가 들어섰고, 길목 사이사이에는 편의점이 들어왔다. 동네 슈퍼들은 하나둘씩 문을 닫거나 업종을 변경했다. 상가 마트만이 유일하게 동네 슈퍼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그 많던 동네 슈퍼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오렌지마트는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 상가 1층에 있는 동네 슈퍼다. 7년 동안 변함없이, 오렌지마트 아줌마는 나에게 인사를 건넸다. 늦은 귀가길에는, “오늘은 좀 늦었네? 수고했어요.”, 그리고 잔돈을 건네줄 때는 시원시원하게 “오케이!”라고.
우리 동네 오렌지마트 아줌마, 강금숙 씨를 만났다.
노래를 하면 즐거워진다
퍼슨웹(이하 ‘퍼’): 아줌마는 항상 슈퍼를 나서는 사람들에게 ‘수고했어요, 고생했어요.’라고 말씀하시잖아요.
강금숙(이하 ‘강’): 내가 슈퍼에 저녁 6시쯤부터 나와 있거든. 그 때 퇴근하는 사람들 보면 좀 지쳐있어. 그럼 ‘아유~저 사람 오늘 힘들었겠다.’ 뭐 이런 생각이 들고. 그러다 보면 나도 모르게 말하고 있는 거지. “아유~ 오늘 수고했어요, 오늘은 좀 힘들어 보이네, 고생했어.”
퍼: 그래도 그런 말, 내가 정말 힘들 때 들으면 위로가 되거든요. 저도 아줌마의 그 말이 참 고마웠어요.
강: 아, 그랬어? 뭐 그런 게 다 고맙다고 그런대. 안 그래도 며칠 전에 한 애기 엄마가 와서는, 아줌마가 수고했다고 한 말이 참 듣기 좋다고 자기 남편이 그랬다더라고. 그러면서 왜 정작 자기는 남편한테 그런 말도 안 하냐고 뭐라 그랬대.
퍼: 본이 아니게 아주머니의 친절이 부부 싸움을 만들었네요? (웃음)
강: (웃음)그게 또 그렇게 이야기가 되나? 얼마 전에 둘이 나란히 나와서 요 앞에서 더위 식힐 겸 맥주 마시고 가더라고. 그런 모습이 참 보기 좋아. 이런 말을 하는 게 돈 드는 일도 아니고, 하다보니까 이제는 습관이 된 것 같아.
퍼: 요즘은 날씨가 더워서 사람들 여기 앞에 앉아서 맥주 드시는 분들이 많던데.
강: 여기 앞에 자리가 좋잖아. 맥주 마시고 나면 사람들이 좀 치우고 갔으면 좋겠는데, 뭐 그것도 내가 다 팔아먹은 거니까 내가 치우는 게 어떻게 보면 당연하지. (웃음)
퍼: 슈퍼도 계절을 좀 타나요? 여름하고 겨울하고 매출 차이가 많이 나요?
강: 아우, 그럼. 한 50%는 차이나. 계절별로 잘 나가는 품목이 달라. 겨울에는 라면, 과자. 여름에는 빙과, 음료수. 술도 여름에 훨씬 잘 팔리지.
퍼: 보면 항상 아줌마는 즐거워 보이세요. 깔깔깔 웃기도 잘 하시고.
강: 내가 가게에서 노래도 잘 하잖아. 근데 사람들은 뭐가 그렇게 즐거워서 노래를 하냐고 그래. 그러면 나는 즐거워서 노래가 나오는 게 아니라, 노래를 하면 즐거워진다고 그러지.
퍼: 어떤 노래 좋아하세요?
강: 주현미 노래도 좋아하고, 박상민의 비원도 좋아하고. 이것저것 다 불러.
퍼: 우리 엄마도 주현미 노래 좋아하시는데.
강: 그래? 엄마 한 번 오시라 그래. 내가 노래 불러준다고. (웃음)
퍼: (웃음) 이 일이 재밌으신가 봐요.
강: 그냥 저 자리에 앉으면 재밌는 말이 그렇게 나오는 것 같아. 내가 어른들한테도 말을 놓고 그러잖아. 그래도 어른들이 버릇없게 한다고 안 하고 다 잘 들어주고 그러지.
퍼: 아줌마 특유의 친화력이 있어요. 그게 매력이신 것 같아요.
강: 그래? 그래도 처음에는 그 친화력으로도 적응하기 힘들었어. 여기가 조합아파트*거든. 이 아파트 짓기 전에는 연립주택 단지였는데, 그 곳에 살던 사람들이 조합을 만들어서 아파트를 지었던 거라 아무래도 여기 주민들끼리 똘똘 뭉쳤던 게 있거든.
*조합아파트: 지역의 무주택조합원들이 땅을 사서 아파트를 짓는 것으로, 그 소유권자 조합원을 공급의 대상으로 한다.
퍼: 그럼 텃세가 좀 있었겠네요.
강: 나는 워낙에 내 성격이 인사 잘하고 잘 웃는 편이거든. 근데 한 2년 정도까지는 사람들이 내가 항상 웃고 인사하고 이러니까, 저 아줌마 상술이 대단하다고 그런 소리가 들리더라고. 그래도 나는 그러든 말든 계속 웃고 인사하고 그랬더니, 한 5~6년 지나고 나서는 저 사람은 원래 사람이 저렇구나, 사람들이 알아주더라고. 그래서 지금은 진짜 이 일이 재미있어졌지.
퍼: 구체적으로 이 일의 어떤 점이 그렇게 재밌으세요?
강: 여기에서 시간이 지나 내가 아는 사람들이 변해가는 모습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하거든. 2살, 3살 이랬던 애들이 훌쩍 커서 지금은 초등학교 4, 5학년 이러고. 군대 간 애도 있고. 이런 게 나는 정말 신기해. 그래서 내가 그 애들한테 ‘너 어렸을 때 여기서 사탕 물고 그러고 있었다.’고 막 다 이야기 해주고 그래.
퍼: 그냥 우리 이모들 같아요.
강: 또 엄마들은 자기애들한테 관심 가져 주는 것을 좋아하거든. 그래서 나는 처음에 애기가 오면 특징을 기억해뒀다가 메모지에 이름을 적어서 요기 카운터 밑에다가 적어놨어. 그렇게 다음에 오면 그 애들 이름을 불러주지. 그러다보면 누가 성진이고 성미인지 다 알지.
퍼: 노력이 대단하신데요?
강: 이렇게 노력 안 하면 내가 일일이 애들 이름을 어떻게 다 기억해. 근데 애기 엄마들은 몰라, 내가 그렇게 외웠는지를. 그러니까 엄마들이 그러는 거야. 아니, 아주머니는 기억력도 참 좋다고.
퍼: 그럴 만도 하네요. 여기 어린이 집이 몇 갠데, 애들이 얼마나 많아요.
강: 그니까 애기 엄마들이 다 나한테 속은 거야.(웃음) 엄마들이 어떻게 한 번 보고 그걸 기억하냐고 그러면 애기가 예쁘니까 다 기억한다고 그래.(웃음)
퍼: 그래도 슈퍼 하려면 계산도 해야 하고, 물건 체크도 해야 하고, 사실 정말 기억력도 좋아야 할 것 같아요.
강: 그렇기는 하지. 담배를 팔 때도 사람들이 자기가 피우는 담배를 내가 기억했다가 말하기 전에 주면 좋아하더라고.
퍼: 누군가가 자기를 기억해 준다는 것을요?
강: 그런 것 같아. 그래서 문에 사람이 딱 들어서면 나는 아 저기 던힐 온다, 원 온다 이러면서 딱 내놓는 거지. 물론 우리 슈퍼 오기 전에 편의점 많잖아. 그런데서 살 수도 있어. 그런데도 여기까지 걸어와서 산다니까?
여기 주택에 사시는 할아버지는 꼭 여기 지날 때만 담배 살 생각이 난다고 그러시더라고. 그래서 내가 그 양반한테 말했지. 그 발이 제대로 된 발이라고. 이 일 참 재밌지 않냐.
그래서 오렌지마트가 됐지.
퍼: 그래도 이 일을 하다 보면, 재밌는 일만 있을 것 같지는 않아요. 워낙 많은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는 공간이니까.
강: 당연히 그렇기는 하지. 슈퍼한 지 얼마 안 됐을 때는 도둑한테 당하기도 하고. 내가 의외로 좀 맹한 구석이 있거든. 그 때는 또 경험도 없었을 때니까. 뭘 잘 몰랐지.
퍼: 도둑이요?
강: 굉장히 큰 도둑이었어. 어른 2명이 한 조를 짜가지고, 먼저 아저씨 한 명이 들어오더니 자기가 현찰 10만원을 줄 테니까, 꼭 농협 수표 10만 원짜리로 바꿔 달라는 거야.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이상하지. 아니 수표를 만원짜리로 바꿔달라는 것도 아니고.
퍼: 지금 생각하면 그런데, 그 때는 당황스러우니까 그냥 그런가 보다 했을 것 같아요.
강: 그런데 이것도 다 경험이야. 슈퍼에서 그날 장사한 돈은 은행에 넣는 게 아니라, 항상 가지고 가야되거든. 다음 날 물건 값을 치러야 하니까. 그래서 내가 복주머니 모양의 돈 통을 가지고 다녔어. 근데 그게 잘못이었어. 왜 보면 아줌마들이 다 돈을 꼭 배에다가 차고 있더라고.
퍼: 아, 그런 것 같아요.
강: 근데 나는 그 주머니를 서랍도 아니고 카운터 아래다가 그냥 넣어놨어. 항상 빼기 좋게. 근데 내가 얼마나 맹했냐면, 그 아저씨가 와가지고 수표로 바꿔달라기에 거기다 손을 집어 넣어가지고 아저씨가 카운터에서 보고 있는데 돈 있는 곳에 손을 넣었다? 나 여기 돈 다 있다고! 그래, 내가 얼마나 바보냐. 그랬더니 그 아저씨가 이렇게 보는 거야. 그 아저씨가 나가면서 카운터 아래에 주머니를 넣는 것까지 다 본거야.
퍼: 도둑들은 정말 치밀한 것 같아요…
강: 그러고 나서 한 5분 있다가 전화가 오는 거야. 어떤 아저씨가 쌀 20kg하고 주스를 하나 배달해 달라는 거야. 그때는 내가 뭐라도 하나 팔 욕심으로 장사를 하던 시절이거든. 빨리 좀 가져다 달라고 그래서 내가 친한 언니한테 가게를 맡기고 배달을 다녀왔지.
퍼: 그 사이 별일 없으셨어요?
강: 106동에 가서 벨을 눌렀는데, 아무리 눌러도 반응이 없는 거야. 그래서 그냥 돌아왔지. 근데 이것들이 2인 1조야. 내가 나가는 거 보고 다른 한 놈이 그 언니한테 국수 10개랑 맥주 10개를 담아 달라고 그러더래. 그래서 언니가 그걸 담는 동안 다른 놈은 카운터에 가서 그 돈 주머니를 가지고 간 거지.
퍼: 아이고!
강: 근데 나는 그 사실을 우리 올케가 나올 때까지도 몰랐어. 11시에 우리 올케가 오면 내가 집에 들어가면서 그 돈 주머니를 갖고 가거든. 근데 그 때 딱 보니까 돈이 없어 진거야. 순간 ‘아! 이거 당했네.’ 싶더라고. 그게 다 경험이지 뭐.
퍼: 비싼 수업료 내셨네요. 같이 슈퍼에 계신 분이 올케분이세요?
강: 응, 올케가 도와주고 있어. 아침 8시에 열어서 밤 12시에 닫는데, 혼자는 못 해.
퍼: 그러고 보니까, 보통 동네 슈퍼는 다 부부가 같이 하시는 것 같아요.
강: 혼자는 힘들어서 못 하니까. 나도 처음에는 우리 신랑하고 같이 하려고 했는데, 그 사람은 이게 체질이 아닌가봐. 그냥 자기 일 따로 하더라고.
퍼: 처음에 저는 동업하시는 건 줄 알았어요. 올케 분이신 줄 모르고.
강: 사람들이 다들 물어, 무슨 지간이냐고. 그러면 내가 원수지간이라고 그러지.(웃음) 시누 올케지간이면 원수지간이지 안 그래?
퍼: 에이, 원수지간인데 어떻게 같이 일을 해요.
강: 맞아. 그 사람이 성격이 좋아. 나는 이렇게 보이는 거와 달리 성격 안 좋다?(웃음)
퍼: (웃음) 슈퍼 하신 지는 얼마나 되셨어요?
강: 올해 9월 20일이 딱 8년 되는 날이야.
퍼: 꽤 되셨구나. 오렌지마트라는 이름은 직접 지으셨어요?
강: 오렌지마트는 이 가게를 소개시켜준 사돈어른이 지어줬어. 나는 처음에 그린마트로 하려고 했는데, 그 분이 오렌지마트라고 하는 순간 그린마트가 확 죽는 거야. 딱 오렌지가 괜찮더라고. 그래서 오렌지마트가 됐지.
퍼: 사돈어른이 이 가게를 소개시켜 주셨어요?
강: 아 우리 조카사위 형님이 의정부에서 슈퍼를 하거든. 그 분이 처음 슈퍼를 열 때 여러 모로 도움을 많이 주셨지. 물론 지금도 도움 많이 주시고.
퍼: 이전에도 슈퍼를 하셨었어요?
강: 이거 하기 전에는 슈퍼를 안 했지. 그 때까지는 그냥 신랑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살림하고 살았지.
퍼: 전업주부셨구나.
강: 내가 진짜 결혼하면서 돈이 하나도 없었어. 지금 내가 아저씨를 8년인가 연애하고 결혼했거든. 내가 살았던 것을 생각해보면 돈 벌려고 엄청 애를 썼던 것 같아. 이것저것 부업도 해보고.
퍼: 어떤 부업을 하셨어요?
강: 우리 딸내미가 3살인가, 4살인가? 그 때, 아침에 아파트 세탁물을 걷는 부업을 했었어. 이만한 가방을 메고 그 복도식으로 되어있던 주공아파트를 15층부터 쭉 한번 돌면 15만원을 줘. 큰 애는 유치원 보내고, 어린 것은 집에다가 TV틀어주고 나와서 그랬지. 저것이 또 말을 잘 들어서 고맙게도 집에 혼자 잘 있어줬어.
퍼: 엄마 돈 벌어오라고. 참 착한 딸이네요.
강: 조금 더 커서는 나 일하는 동안 청소도 해놓고, 이불도 정리해 놓고 그러더라고. 나 기분 좋으라고. 그 일 해가지고 돈 벌고, 또 갔다 오면 아저씨가 전기선 박스를 베란다에 두고 간다? 그럼 전기선 잇는 작업을 하는데, 그게 한 박스 당 천 원이야. 그러면 15개면 15000원이잖아. 그걸 새벽 2시 3시까지 막 하고 그러고 살았어.
역할이 조금씩은 다르니까.
퍼: 그럼 슈퍼는 어떤 계기로 하시게 된 거예요?
강: 내가 우리 조카를 한 10년 데리고 살다가 시집을 보냈거든. 결혼하기 전 날 우리 집에서 우리 조카랑 걔 언니랑 같이 잔다고 왔더라고. 그 때 걔네들이 이야기하는 걸 들었어. 지 남편의 형님이 지금 슈퍼를 하는데, 슈퍼를 하면 생활비를 제외하고도 한 달에 200-300정도 저금할 수 있다고.
퍼: 그 때만해도 그게 가능한 이야기였을 것 같아요.
강: 그렇지. 지금처럼 슈퍼가 힘들고 그럴 때는 아니었으니까. 그 때 우리 신랑 월급이 한 200정도였거든. 그래서 내가 조카한테 한 번 물어봤지. 야, 슈퍼하면 돈이 그렇게 남느냐고. 그렇다기에 남편한테 말했어. 나 슈퍼 하러 서울 간다고!
퍼: 네? 아무 대책도 없이 무작정요?
강: 응. 내가 그 때 부천에 살았거든. 서울에 가서 슈퍼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어. 당시 의정부에서 그 조카사위 형님이 슈퍼를 했거든. 직접 가서 보니까, 이게 너무 쉬운 일인거야. 가만히 앉아서 돈만 받으면 되는 거더라니까.
퍼: 얼핏 보기에는 쉬워 보일 것 같기도 하네요.
강: 그래서 그렇게 처음에 사돈어른의 도움을 받아서 여기에 오렌지마트를 열게 되었지. 그런데 뭐 돈도 많이 안 벌리더만 뭐. (웃음)
퍼: 요즘은 동네에 기업형 슈퍼마켓이나 편의점이 많이 생겨서 더 어렵지 않으세요?
강: 우리한테 물건 대주는 사장 말이, 도봉구에 대형마트가 가장 많다고 하더라고. 다른 구에는 대형마트가 2-3개 정도인데, 여기는 6개 정도가 있대. 요 근처만 해도 하나로, 이마트, 롯데마트, 홈플러스 벌써 몇 개야.
퍼: 대형마트만 해도 그 정도인데, 이 근처 편의점하고 기업형 슈퍼마켓을 얼핏만 세어 봐도 한 5-6개는 되는 것 같아요.
강: 타격이 없다고 하는 건 거짓말이지. 그래도 아휴 뭐 이런 거 해가지고 큰 돈 벌 것 같으면 사람들 다 동네슈퍼 하지. 그래도 그냥 밥은 먹고 사니까.
퍼: 이런 상황이 많이 신경 쓰이고 그러진 않으신가 봐요?
강: 뭐, 슈퍼마다 크기대로 역할이 조금씩은 다르니까. 동네 슈퍼에 보통 장바구니 들고 장 보러 오지는 않잖아? 그냥 밀가루하나 라면 하나, 이렇게 음료수 하나! 이렇지. 그냥 밥 먹고 사는 것에 감사해, 나는.
퍼: 그런데 여기 옆에 조그맣고 오래된 슈퍼가 하나 있더라고요.
강: 아, 거기 미래슈퍼.
퍼: 저는 이사 와서 한참 동안 그곳에 슈퍼가 있는 줄 몰랐어요.
강: 여기에 옛날 5층짜리 연립 단지 있었을 때부터 슈퍼를 하던, 아줌마는 여기가 고향인 사람이야.
퍼: 그럼 아무래도 아줌마가 여기에 슈퍼를 하시겠다고 했을 때, 그분들 마음이 편치는 않았을 것 같아요. 위치도 그렇고 슈퍼 크기도 그렇고 장사하기 훨씬 나은 조건이니까.
강: 항상 나는 그 아줌마한테 미안해. 안 그래도 우리 남편이 처음에 여기에 슈퍼를 하자고 마음먹은 뒤에, 고민 고민하다가 미래 슈퍼를 찾아갔어. 솔직히 그 분들도 굉장히 속상하시지. 여기가 자기네들의 터전인 곳인데.
퍼: 아, 먼저 찾아가셨구나.
강: 갑자기 바로 옆에 새로운 슈퍼가 들어온다고 하니까 당신들도 얼마나 고민이었겠어. 우리 남편이 본의 아니게 이렇게 되어서 죄송하다고 이야기를 하면서, 이정도 아파트단지에 저 상가 정도면 어차피 여기에 슈퍼 하나 들어올 수밖에 없다고, 죄송하지만 이해해 주시라고 그랬지. 그 분들도 굉장히 좋으신 분들이야.
퍼: 아, 그렇게 잘 이야기를 하셨구나. 그런데 최근에는 요 뒤에 큰 마트가 하나 더 생겼잖아요.
강: 그래, 내가 그 럭키마트가 생기고 나름 고민을 많이 했어. 그 때 미래슈퍼 아줌마 심정을 더 절실히 이해하겠더라고. 나도 똑같은 입장이 됐잖아.
퍼: 타격을 좀 받으셨어요?
강: 처음에는 사람들이 호기심으로 새로운 곳을 가게 되잖아. 그래서 많이 신경도 쓰이고 그랬었는데, 한 달 정도 지나고 나니까 다시 상황이 원위치가 되더라고. 그런데 똑같은 손님이라도, 지금은 그 손님이 왜 그렇게 고맙냐! 최근에 여기 앞에 우성마트도 없어졌잖아. 커피숍으로 새로 만든다고 하더라고.
퍼: 아, 그 조그만 슈퍼도 없어졌어요? 저는 그냥 리모델링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없어졌구나…
정말 굉장히 특별한 존재야.
퍼: 일하면서 힘들 때는 없으세요?
강: 내가 가끔씩 흐트러질 때가 있어. 사소하지만, 거스름돈을 줄 때 계산을 잘못 한다거나 하는. 조금 스트레스가 쌓이기도 하고.
퍼: 그럼 그럴 때는 어떻게 하세요?
강: 나는 그럴 때면 항상 우리 언니를 생각해. 사람이 굉장히 곧고 반듯한 사람이거든. 그래서 내가 살면서 안 좋은 생각이 들 때면 항상 그 사람을 생각해.
퍼: 언니를요?
강: 응, 아까 내가 10년 데리고 있다던 그 조카 있지. 그 조카가 우리 언니 딸이거든. 나랑 언니랑 나이 차이가 좀 많이 나. 10살.
퍼: 아, 차이가 좀 나네요. 그럼 언니가 엄마 같기도 하겠어요.
강: 나한테는 그 양반이 엄마고 언니고 그래. 우리 엄마가 나 어렸을 때부터 충청도 충주 시내 시장에서 생선 가게를 크게 하셨거든. 엄마 아빠 다 장사하시느라 바쁘니까, 우리 언니가 나를 거의 다 키웠지. 내 위로 오빠가 둘 있고, 내가 막내거든.
퍼: 더욱 애틋한 감정이 있겠네요.
강: 응, 우리 언니가 22살에 시집을 갔거든. 우리 언니는 시집을 별로 가고 싶어 하지 않았는데, 우리 엄마가 일찍 시집을 보냈지. 그 때는 다 그랬어. 그 때 시집가는 언니를 보면서 내가 그 터미널에서 얼마나 울었었는지. 시집가는 우리 언니도 울고. 시집가서도 우리 언니는 항상 집에 두고 온 우리를 걱정하며 살았어.
퍼: 서로가 그리웠을 것 같아요.
강: 많이 그리웠지, 항상 보고 싶고. 언니는 나에게 특별한 존재야. 내 인생의 바른 길잡이이기도 하고.
퍼: 지금 언니 분은 어디 사세요?
강: 저기 경상도.
퍼: 그럼 자주는 못 뵙겠네요.
강: 자주는 못 보더라고, 난 내가 언니 보고 싶으면 가게는 그냥 올케한테 맡기고 차 끌고 가. 밤 12시가 되어도 난 가. 내가 좀 다혈질이야.(웃음)
퍼: 그 때 그 때 감정에 솔직하신 거죠. 전 그런 아줌마가 부러운데요?
강: 내가 그렇게 가면, 그 사람이 표현은 안 해서 그렇지, 많이 좋아해. 얼마 전이 언니 환갑이었어. 그런데 언니가 미신을 잘 믿어서, 그 날 가족끼리 모여서 밥 먹는 것도 안 좋다고 그랬나봐. 그래서 아무도 오지 말라고 그래서 그 날 가족들이 못 모였어.
퍼: 자식들은 좀 서운했겠다!
강: 당연히 서운하지. 그런데 그 와중에 나는 또 가고 싶잖아? 나는 가고 싶으면 또 가야되거든. 그래서 갔지 뭐. 밭일 나갔다 돌아오는 길에 나랑 마주쳤는데, 그 양반이 정말 좋아하는 거야.
퍼: 은근히 기다리셨을 것도 같아요.
강: 그랬겠지. 그 날이 생일 날 아니냐. 내가 그 분한테 주려고 1년 정도 전부터 편지를 준비했어. 그 분한테 고마운 마음, 또 사랑하는 마음을 1년 전부터 생각날 때마다 계속 쓰고 또 빼고 그렇게 몇 번을 고쳐서 쓴 내용을, 예쁜 한지 편지지에다가 옮겨 적어서 줬지.
퍼: 편지 쓰시면서 옛날 생각도 많이 나셨을 것 같아요.
강: 그치. 편지 쓰는 나도, 편지 읽는 언니도 굉장히 많이 울었어. 같이 하룻밤 자고 오는 길에는 그래도 마음이 좀 편하더라고. 그러고 그 양반이 자기 딸들한테 이모한테 잘 하라고 전화까지 했었나봐. 사실 내가 그 분한테 받은 것에 비하면 난 해준 게 턱 없이 부족한데.
퍼: 정말 각별한 자매지간인 것 같아요. 형부가 질투하시겠는데요?
강: 우리 형부도 사람이 얼마나 좋은지 몰라. 우리 형부는 나한테 매일 전화해. 우리 형부 습관이야. 처제 뭐해 처제 뭐해. 그래서 우리 형부는 이제 내 목소리만 들어도 내가 맑은지 흐린지를 다 안다니까. 가게 처음 열 때도 형부 도움을 많이 받았지.
퍼: 정말 좋은 분들이네요.
강: 이 가게가 그냥 가게 같아 보여도, 나한테는 정말 굉장히 특별한 존재야. 이 가게에 세콤이 있거든? 그게 아침에 문 열고 들어가면 “좋은 하루 되세요!”라고 말한다? 그러면 내가 “오냐!” 그래. (웃음) 그리고 또 “안녕히 가세요.” 그러면 또 “오냐.” 그러고. 그냥 그런 것 하나하나를 다 즐겁게 생각하고. 그렇게 나는 이 가게에서 재밌게 살고 있지.
그 사람들이 궁금해.
퍼: 보니까 요새 뜨개질을 하고 계시던데.
강: 응, 뜨개질해서 커튼도 만들고, 친한 동네 언니한테 선물도 하고 그랬어.
퍼: 저 거실에 커튼이요? 우와 시원해보이고 예뻐요. 일 하시느라 바쁘실 텐데, 언제 저런 걸 다 만드시고 그러세요?
강: 내가 좀 바쁘기는 하지. 슈퍼에서 장사만 하는 게 아니거든. 이것저것 내가 하는 일이 좀 많아.
퍼: 무슨 일을 그렇게 많이 하세요?
강: 요즘 여기에 동사무소가 새로 생겼잖아. 그런데 그 위치가 좀 찾기가 어려워서, 사람들이 여기 들어와서 그렇게 길을 물어. 그건 뭐 어려운 건 아니니까.
퍼: 그리고 항상 보면 아줌마 옆에 딱 사람들 와서 이야기 할 수 있게 만들어 놓은 의자도 놓여있던데요?
강: 아니 뭐, 동네 장사니까 다들 친하게 지내지. 나는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들하고 친하게 지내거든. 노인네들도 다 고민들이 있잖아. 여기 자식들하고 사는 사람들 많아. 손자, 손녀 봐주고 하면서. 그런데 자식들하고 살면서도 말 못 할 그런 고민 들어주고 이야기 하는 거지.
퍼: 오렌지마트 상담소네요.
강: 여기가 우리 아줌마들의 아지트지. 나는 별것 다 해야 돼. 인생 상담도 하고. 나 되게 바쁘다? (웃음) 그래도 늘 보던 사람들이 하루 이틀 안 나오면 그 사람들이 궁금해. 그냥 이게 내 생활이 되어 버린 거지.
퍼: 가게 계산대 벽에는 잃어버린 물건 찾아주는 공간도 있던데요?
강: 아, 그거. 이렇게 붙여놓으면 ‘어? 저거 내껀데?’ 그러면서 얼마나 반가워하는데. 저렇게 해서 몇 개나 찾아줬어. 자기 물건 잃어버리면 속상하잖아.
퍼: 길 안내도 하시고, 잃어버린 물건도 찾아주시고.
강: 또 물건도 맡아주지. 여기 주택가는 경비실이 따로 없잖아. 그래서 택배를 맡길 데가 마땅히 없는 거야. 그래서 집에 사람이 없으면 우리 슈퍼 전화번호를 대고, 우리 가게에 맡겨놓고 가.
퍼: 가끔은 귀찮기도 하시겠어요.
강: 아니여, 자기들이 찾아가는데 뭘. 뭐가 어려워. 그리고 이런 슈퍼가 동네에 꼭 하나 있어야 되는 것이, 애들이 갑자기 돈이 필요할 때가 있잖아. 중․고등학생 애들은 꼭 필요할 때가 있어. 부모님이 다 직장가고 없으면 얘들이 어디 가서 누구한테 돈을 빌리겠어. 빌릴 수도 없고. 빌려주지도 않고.
퍼: 그렇죠.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강: 그럴 때 얘들은 우리 슈퍼 오면 다 해결이 되는 거야. 돈을 빌려가고 그네 엄마가 와서 또 갚고 그러지. 그렇게 급할 때는 서로 돕고 사는 거지.
퍼: 저도 그랬었는데.
강: 어? 나는 그런 기억이 없는데?
퍼: (웃음) 아니요, 제가 슈퍼에서 돈 빌릴 나이는 지났고요. 저 초등학교 때 살던 동네 슈퍼에서 그런 적 있었다고요.
강: 아하하, 그랬어? 난 또 우리 가게에서 언제 빌려갔었나 했지. (웃음)
퍼: 아줌마가 말씀하신대로 정말 이런 슈퍼가 동네에 꼭 하나는 있어야 하는 것 같아요. 애들을 위해서나, 어른을 위해서나.
강: 맞아. 어른은 어른대로, 애들은 애들대로 여기를 찾는 이유가 다 있거든. 어른들은 뭐 사러 오면서 한 마디 두 마디 나랑 이야기 나누는 재미로. 애들은 내가 지네들 이름 부르면서 살갑게 굴면 또 그게 재밌어서 오고 또 오고.
퍼: 오렌지마트가 동네 사랑방이네요. (웃음)
강: 내가 가끔 여기 오는 새댁한테 그런 말 하거든. 내가 이 가게를 지금 이렇게 재밌게 하다가도, 떠날 때는 어느 날 소리 소문 없이 떠날 거라고. 그러면서 생각하지. 내가 그렇게 가고 나면 사람들은 나를 어떻게 기억할까.
퍼: 어떻게 기억할 것 같으세요?
강: 어떻게 기억할지는 모르겠고. 나는 그냥 사람들이 나를 참 좋았던, 참 재밌었던 우리 동네 오렌지마트 아줌마로 기억해주었으면 좋겠어.
주말에는 대형마트에 가서 장을 보고, 한두 개 필요한 게 있을 때는 편의점에 들어간다. 점원도 있고 손님도 있지만, 누구 하나 말을 건네는 사람은 없다. 인사를 나눌 필요도 없고, 물건만 내려놓으면 알아서 계산해준다. 어느새 익숙해진 생활의 일부들.
어린 시절 동네 슈퍼에 들어서면 “어, 지민이 왔어?”라고 반겨주시던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고심 끝에 골라온 과자를 담아주시며 “오늘은 사또밥이 먹고 싶었나 보네?”라고 말 걸어주고, 내 키가 조금씩 자라는 모습을 지켜봐주던, 그 아주머니는 지금 어디서 뭘 하고 계실까.
오렌지마트 아줌마를 만나고 나오면서, 우리 동네에서 사라져가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