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주변에서 여행을 가장 많이 하는 사람은 홍은 씨다. 여행에 관해서라면 그녀에게 묻는 것이 최선이었다. 나는 그녀를 10년 전쯤 pc통신 천리안 채팅방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에서 만났다. 류승완 감독의 영화를 본 다음날이었는데 제목이 눈에 띄어 들어갔다. 채팅방 멤버 6명은 류승완 감독의 영화가 개봉할 때 마다 같이 모여 영화를 보기로 했고 <다찌마와 리>, <피도 눈물도 없이>, <아라한 장풍 대작전> 등을 같이 봤던 것으로 기억한다. 대부분 학생이던 멤버들이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결혼을 하면서 멀어져 버렸지만 유일하게 홍은 씨 하고는 연락이 계속 이어졌다.
홍은 씨를 자주 만났던 건 아니지만 가끔 볼 때 마다 듣는 그녀의 삶은 참 다채로웠다. 그녀는 직장에 다니면서도 퇴근 전 새벽, 혹은 퇴근 후 저녁마다 다큐멘터리를 찍거나 연극을 만들거나 무언가를 배워나갔다. 주말이면 국내로, 휴가 때는 해외로, 그리고 다시 일상으로의 순간이동도 자유로운 사람 같았다. 돌이켜보니 그녀의 제안으로 잠깐이나마 철학 책 읽기 모임을 결성하기도 했고, 내가 광릉 수목원에 간 것도 지리산 둘레길을 걸은 것도 홍은 씨와 함께였다. ‘공정여행’ 프로그램을 통해 히말라야에 다녀온 후 내게 ‘쓰리 시스터즈’* 에 대해 처음 말해 준 사람도 그녀였다.
* http://www.3sistersadventure.com 쓰리 시스터즈는 네팔의 사회적 기업이다.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공정 여행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2010년 8월, 홍은 씨는 세비아로 떠났다. 한국처럼 시간이 빠른 곳에서 평범한 직장인이 3년의 공백을 선언한 것이다. 그녀는 꽤 오랫동안 ‘스페인 거주’ 프로젝트를 준비했다. 스페인어 학원에 다니며 언어를 익히고 한국어 교사 자격증도 취득했다. 그러고 보면 목표와 의지가 참 강한 사람인데, 그녀가 떠난 데는 무언가 특별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내가 아는 한 홍은 씨는 한국이 지긋지긋해서, 뭔가 잘 안 풀려서 떠나고 싶었던 것도 아니고 스페인에 가야만 하는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녀의 속내를 듣고 싶었다. 그리고 그녀처럼 일상과 여행을 능숙하게 넘나드는 사람들에게 여행이 갖는 의미가 무엇일지 궁금했다. 구글 채팅창으로 그녀를 만났다. 한국은 새벽 1시, 세비아는 저녁 6시였다.
1. 외국에서 살아보기
퍼: 스페인으로 떠난 지 벌써 1년이 되어가죠? 여긴 매일 같이 비가 오는데, 거긴 어때요?
홍: 여긴 정말 더워요. 오늘은 46도까지 올라갔는데 그래도 습기가 없어서 견딜만해요.
퍼: 46도라니, 상상이 안되네요. 세비아 사람들의 일상은 어떤가요?
홍: 세비아는 스페인에서는 4대 도시에 들어가는데 규모가 그렇게 크진 않아요. 이 곳의 일상은 1.10~1.20 유로 정도의 까페 꼰 레체(밀크커피)와 토스트를 먹는 것으로 시작해요. 스페인의 가장 전형적인 풍경을 꼽으라고 하면 저는 아침 식사 시간을 꼽고 싶어요. 여긴 일반 회사도 출근 후 10시 30분부터 20분 정도 아침 식사시간을 주거든요. 그 동안 사람들이 바(bar)에 나와 커피와 토스트를 먹으며 수다를 떨고 신문을 보죠.
퍼: 아, 부럽네요.
홍: 주말에도 아침 먹는 사람들로 바(bar)들이 가득 차요. 여기 사람들은 집에서 오붓하게 밥 먹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것 같아요. 커피한잔, 맥주한잔과 함께 끊임없이 이어지는 이들의 수다를 보고 있으면 “우린 일하기 위해 살지 않아. 살기 위해 일할 뿐” 이라고 당당히 말하는 것 같아요.
퍼: 제 주변에도 한 번쯤 외국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사람들이 많아요. 실제로 살아보니 어떤가요? 한국에서보다 행복지수가 상승한 것 같아요?
홍: 글쎄요, 좀더 임팩트있게 사는 것 같긴 해요. 주어져 있는 게 없이 생활을 만들어가며 사는 거니까. 그래도 일상은 다 비슷하죠. 생각보다 엄청난 환경의 변화는 없는 것 같고.. ‘아, 이렇게도 살아지는구나.’ 하고 깨달으며 살고 있어요. 나이가 들었는지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인 것 같아요. 적응하는데 그렇게 시간이 걸리진 않았어요.
퍼: 지금 사는 집은 어떻게 구하셨어요?
홍: 처음 한 달은 학원에서 구해준 집에 살았고, 지금은 제가 따로 구해서 살고 있는데 아주 중심가는 아니지만 위치도 좋고, 집도 좋아요. 게시판에 붙은 메모들 보고 연락을 했는데 전화로는 스페인어 하는 게 더 힘들어서 할 말 적어서 연습을 했어요. 한번은 근처에 있는 사람한테 주소를 받아 적어 달라고 부탁해서 찾아가기도 했죠.
퍼: 어떻게 지내고 계신지 일상 얘기 좀 들려주세요.
홍: 집에서 시내까지는 걸어서 20분 정도인데 시내는 관광지 분위기고 집 근처가 약간 홍대 분위기라 생활은 주로 집 근처에서 해요. 요즘은 더워서 거의 다 휴가상태에요. 스페인 사람 2명에게 일주일에 두 번 한국어 가르치고, 플라멩고랑 노래 배우던 클래스는 방학이라서 지금은 같이 배우던 친구한테 두 번씩 배우고 있고, 세라믹 배우는 것도 7월로 종강, 그림도 6월부터 방학에 들어갔어요. 한가한 시기라 저도 낮에 더울 때는 집에 와서 낮잠 자고요.
퍼: 한국에서 그랬듯이, 거기서도 다양한 활동을 하시네요.
홍: 어디에 있든 생활습관은 잘 변하지 않는 것 같아요. 그래도 여기선 원하는 거 찾아 흡수되기가 한국보다 훨씬 어렵죠. 이방인은 이방인이니까요.
퍼: 먹는 건 어떻게 해결하고 계세요?
홍: 까페에 자주 가지만 밥은 주로 집에서 해먹어요. 완전히 한식은 아니지만 여긴 채소들이 싸니까 주로 채소랑.
퍼: 한국 보다 생활비가 적게 드나요?
홍: 네, 여기서는 거의 소비라는 것을 안하고 사니까요. 정말 쓸데없는 소비는 안 하게 되고, 먹거리랑 커피, 맥주 값 정도를 쓰고 있어요. 그리고 이것저것 배우는 비용들이죠.
퍼: 따로 돈 버는 일을 하고 있진 않은 거죠?
홍: 한국어 가르치는 거랑, kBS그린에 통신원으로 가끔 글 써서 들어오는 게 있는데 딱 커피 마실 정도에요.
퍼: 한국어 교사 자격증도 가지고 있는 걸로 알고 있어요. 가르치는 건 할만해요?
홍: 한국어 가르치는 거 재미있어요. 돈은 별로 안 되지만 보람도 있고요. 도서관이랑 자주 가는 바(bar)에 학생 구한다고 붙였는데 한달 넘게 연락이 없었어요. 저에게 배우는 대학생의 아버지도 처음엔 ‘이상한 놈’ 이라고 했대요. 그런데 친해져서 얼마 후엔 집에 초대받아 가족들이랑 점심도 먹었어요. 두 명 가르치는데 다른 한 명은 여기서 세라믹 배우며 알게 된 일본 언니의 신랑이에요. 스페인 사람인데 언어 배우는 걸 좋아해서 가르치는 중이죠.
퍼: 한국어는 한국에서밖에 못쓰는데, 스페인 사람이 한국어를 배우려고 하는 게 신기하네요.
홍: 그러니까요. 밖에 나와보니 한국이 참 작은 나라긴 해요. 여기 사람들이 대부분은 한국에 대해 몰라요. 중국, 일본밖에 모르죠. 그래도 저에게 배우는 대학생은 한국드라마를 좋아해서 한국말을 배우고 싶대요. 이미 인터넷으로 좀 공부를 해서 제법 한글을 잘 쓰더라고요.
퍼: 한국소식은 자주 접하세요?
홍: 가끔 페이스북을 하거나 친한 언니랑 스카이프로 통화를 하지만 한국 소식을 자주 접하진 못해요. 한국 친구들 메일 확인할 때 네이버를 열긴 하는데 한국에서처럼 기사들에 관심을 가지게 되지는 않네요.
퍼: 언제까지 세비아에 있을 계획이에요?
홍: 아직 모르겠지만 일단 비자 연장 신청을 해둔 상태에요. 1년 정도는 더 있어볼 참이라 예술학교 세라믹과정에 등록을 해뒀어요. 예술학교가 2년 과정이라 그걸로 연장이 되면 2년을 더 있게 될지, 중간에 돌아갈지 아직 모르겠어요.
퍼: 정식 학교에 다니는 거에요? 주민센터 같은 곳에서 배우는 건 줄 알았어요.
홍: 지금까진 세라믹을 개인 그룹교실에서 배웠는데 이번에 직업학교 시험을 봤어요. 여긴 직업학교들이 공짜에요.
퍼: 외국인한테도 공짜에요?
홍: 네, 외국인도 공짜에요. 여기선 일반대학교도 1년에 1~2천 유로면 다닐 수 있어요. 학교는 세라믹이랑 영상 쪽 넣었는데 둘 다 돼서 어쩔까 생각 중이에요. 하나는 오전반이고 하나는 오후반이라 둘 다 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그렇게까지 될까 싶기도 하고요.
퍼: 공짜로 공부도 하고 친구도 사귈 수 있으니 좋겠어요.
홍: 직업학교가 고등학교 졸업하고 대학 안가는 친구들이 오는 거라 다들 십대 에요. 아가들이죠. 세라믹 쪽은 좀 나이 드신 분들이 있는 것 같은데 영상 쪽은 여기도 인기분야라 엄청 어린 친구들이 지원을 했더라고요.
퍼: 거기서도 극장에 자주 가세요?
홍: 가끔 가는데 여긴 다 더빙이에요. 그래서 영화 보러 가는 게 취미생활이라기 보다는 공부라고 할까요.
퍼: 한국에 돌아오고 싶을 때는 없었어요?
홍: 아직은 한국 행 비행기를 타는 게 상상이 안돼요. 그게 상상이 되면 가야겠죠.
퍼: 거기 계속 살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세요?
홍: 그건 아니에요. 돌아갈 거에요. 그냥 살아갈 수는 있어도, 글쎄 뭔가 하면서 산다면 한국에서 하는 것이 더 재미있지 않을까 싶어요. 이 곳에서의 시간은 그야말로 배우는 시간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퍼: 걱정이나 스트레스는 없어요?
홍: 당연히 있죠. 걱정이 없다면 거짓말이죠. 지금도 걱정해요. 비자가 연장 안되면 어쩌지? 뭐 이런 거요. 20대 때는 남들처럼 불안하기도 했어요. 이제 나이 드는 것도 걱정이 돼요.
2. 배우는 시간
퍼: 그 쪽에 직장을 구한 것도 아니고,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 살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을 것 같아요.
홍: 첫 남미 여행을 하고 나서, 다른 나라에서 한 번 살아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때는 남미에서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스페인어 공부하면서 스페인에서 살고 싶단 생각을 시작했어요. 스페인어가 너무 재미있었거든요
퍼: 스페인어가요?
홍: 좀 코믹하다고 해야 하나요. 이렇게 말하면 스페인 사람들이 싫어할지도 모르겠는데, 아무리 심각한 말도 스페인어로 하면 좀 코믹해지는 면이 있어요. 예를 들면 오케이를 여기서는 발레(Vale) 라고 하는데 발레발레 이러면 너무 재미있지 않나요?
퍼: 홍대 근처에 발레(Vale)라는 까페가 있는데 그게 스페인어로 ‘오케이’란 뜻이었군요!
홍: 특히 추임새 단어들이 많아요. 옴브레(Hombre)는 본래는 남자라는 뜻이지만 “이 사람아! 이것 보라구!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등으로 다양하게 추임새의 기능을 해요. 벵가(venga), 안다(Anda) 라는 단어도 그렇고.. 가만히 듣고 있으면 마치 랩을 하는 것 같을 때도 있어요. 스페인어에는 파찰음(ㅍ, ㅌ, ㅋ 같은)이 없어서 딱딱한 느낌이 없는 것이 나에게는 좀 더 친근하게 느껴지기도 했고요.
퍼: 스페인하면 마드리드나 바르셀로나를 먼저 생각하게 되는데, 왜 세비야였어요?
홍: 마드리드는 물가가 너무 비쌀 것 같아서요.
퍼: 다른 나라 여행자들도 많나요?
홍: 플라멩고 배우러 온 일본인들이 많아요. 이 곳에서 결혼한 사람들도 꽤 있고요. 여기 삶이 워낙 여유가 있어서인지 유럽의 다른 나라에서도 몇 달씩 와서 살다 가는 사람들이 있어요. 돈이 많은 도시는 아닌데, 그 가운데 보면 다양하게 많은 것들이 있는 재미있는 도시에요.
퍼: 아까 그 곳에서의 시간이 배우는 시간이라고 했는데 어떤 것들을 배우고 있다고 생각하세요?
홍: 그냥 사는 법을 배운다고 해야 하나? 다시 한번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삶을 만드는 법을 배우는 시간, 나를 시험해볼 수 있는 시간인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집을 구하고, 한국어 가르치는 것도, 친구를 사귀는 것도요.
퍼: 한국에서 직장이 없거나 큰 고통 속에 있던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까지 자신을 단련 하는 게 필요했나요?
홍: 한국에서, 소모전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끊임없이 에너지를 쓰는데 정말 에너지를 쓰는 건지, 내 에너지가 여기까지인지 알 수 없었어요. 직장생활을 하고 안정되면 사실 그다지 노력하지 않아도 살아지는 게 있잖아요. 그러기에는 좀 스스로가 아깝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계속 의문이 드니까 한번은 답을 찾아보고 싶었다고 해야 할까요. 계속 ‘이게 아닌데..’ 하면서 살순 없잖아요.
퍼: 한국에서도 계속 여행을 하고 등산을 하고, 뭔가를 배우고, 게으른 시간이 없으셨던 것 같아요.
홍: 계속 뭔가 배우긴 했죠. 한겨레 다큐 과정도 들었고, 비록 지금은 스페인어에 묻혀 숫자 7도 영어로 생각이 안 날 정도지만 영어학원은 정말 꾸준히 다닌 것 같아요. 남미 배낭여행 후에는 스페인어도 열심히 배웠고, 한국어 교사 과정도 직장 다니면서 배웠죠.
퍼: 끊임없이 뭔가를 배웠던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요?
홍: 계속 뭔가 배운 건, 계속 다른 삶에 대한 욕구가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그냥 직장에 만족했으면 그렇게 까진 아니었겠죠.
퍼: 어떤 다른 삶을 원하세요?
홍: 그걸 알았으면 여기에 안 오고 한국에서 뭔가 하고 있지 않았을까요? 뭘 하는가는 사실 중요하지 않았던거 같아요. 뭘 하더라도 잘 살 수 있는 게 중요하지. 지금은 아무것도 정확한 것이 없어요. 그냥 현재를 살고 있거든요. 계획이라는 것이 이 시간에서는 무의미하니까요.
퍼: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거라고 생각하세요?
홍: 음.. 어린아이처럼 사는 것을 잊지 않으면, 새로운 것에 두려움 없이 반응하고, 솔직하고, 눈치안보고, 그러면 행복하지 않을까 싶어요. 그리고 마음 맞는 좋은 사람들과 더불어 같이 공유하며 사는 것, 그런 게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풍경에 감동하는 것보다 귀하단 생각이 들어요.
3. 여행의 역사
퍼: 첫 해외여행 얘기 좀 해주세요.
홍: 31살, 남미가 처음이었어요. 다들 더 일찍부터 해외에 나갔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첫 해외 여행은 꽤 늦게 했어요. 그전에는 주로 국내를 많이 다녔고요.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 영화를 보고 쿠바에 가고 싶다, 가고 싶다 하면서 키운 여행의 꿈이었어요. 쿠바 여행을 준비하다 보니 남미가 가깝길래 그럼 남미도 조금. 이렇게 여행이 확장이 된거죠.
퍼: 첫 해외 여행을 꽤 세게 하신 것 같아요.
홍: 직장을 그만 두고 간 거니까요. 3개월 정도 남미 배낭여행을 했어요. 멕시코 시티에 잠깐 머물고, 쿠바, 칠레, 볼리비아, 페루가 주 루트였죠.
퍼: 그 여행이 의미가 컸나 봐요.
홍: 항상 해외여행을 하고 싶었는데 계기를 만들기가 쉽지 않았어요. 의미라면 그것을 시작했다는 것이겠죠. 나와는 먼 세상 이야기 같았는데 한발 내딛으니 가까이 있더라고요. 그때 알았어요. 생각하기보다는 한발 내딛는 것이 중요하구나, 생각으로 천리를 가는 것 보다 한 발짝 내 걸음으로 가는 것이 더 의미가 있구나 하고요.
퍼: 돌아와서 바로 스페인어를 배우기 시작하셨죠?
홍: 네, 영어가 안 통하는 나라가 많더라고요. 스페인어 배우는게 재미있어서 7년 후에는 이렇게 세비아에서 살게 된 거고요.
퍼: 그 다음부터는 해외 여행을 자주 하셨죠?
홍: 아무래도 그랬어요. 틈틈이 베트남, 캄보디아, 미얀마, 홍콩, 말레이시아, 네팔 등에 다녀왔고, 국내 여행도 더 많이 했어요.
퍼: 보통, 직장인에게 주말은 쉴 수 있는 기회인데 주말마다 연휴마다 어떻게 그렇게 다녔어요?
홍: 그냥 짐 싸고 걷고 이런 게 좋았어요. 나한테는 여행이 피곤한 것은 아니었죠. 집에서 쉬어야 충전이 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처럼 굳이 돈 쓰며 돌아다녀야 쉬는 게 되는 사람이 있어요.
퍼: 제일 처음 했던 여행이 뭐였어요?
홍: 나의 첫 여행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여행은 대학교 2학년 때 였어요. 대구에 있던 고등학교 시절의 단짝친구와 충청도에 갔어요. 먼저 대구에 내려가서 친구 자취방에서 하루를 보내고 새벽기차로 떠난 여행이었는데 유치하지만 티셔츠도 맞춰 입고, 그때는 사진기도 보편적인 것이 아니어서 사진기도 없이 정말 그냥 무작정 떠난 여행이었죠. 많은 이야기를 하고, 처음으로 시청에서 지도를 얻어 모르는 길을 따라 걷고 걸었어요. 점심때 너무 피곤해서 자장면 한 그릇을 먹고 둘이 허름한 여인숙에서 쿨쿨 낮잠을 잤던 여행. 난 아직도 그 여행만큼 여행다운 여행이 있었을까 싶어요.
퍼: 여대생 둘이 여인숙에서 낮잠 자는 장면이 상상되네요. 낯선 곳이라도 마음이 편했나 봐요.
홍: 여행한다는 의미보다는 친구를 만나고, 낮선 길을 만나는 경험이었죠. 그러면서 여행을 좋아하게 된 것 같아요. 새로운 것을 만나고, 보는 것을 좋아하게 되면서 삶에서도 새로운 것을 찾는 습관이 생겼어요.
4. 스스로 선택하기
퍼: 부지런히 돌아다니고, 배우고. 어릴 때부터 그랬어요?
홍: 어릴 때 그랬는지 기억이 잘 안나요. 중학교 때 까지는 대통령이 꿈이었어요. 완전 경쟁적이고, 욕심도 많은 우등생이었어요. 지금도 그 기질이 버려진 것 같진 않고 좀 다른 방향으로 돌아섰다고 해야 하나, 기본적으로 한량 스타일은 아닌 것 같아요. 뭘 만들고 움직여야 에너지가 나는 사람인 것 같긴 해요.
퍼: 세상에서 말하는 성공에 대한 욕심은 없는 사람이라고 느꼈는데, 욕심 많던 중학생이 이렇게 된 건 거창고등학교 시절의 영향이 있는 걸까요?
홍: 아무래도 영향이 있겠죠. 거창고는 완벽한 대안학교는 아니었지만, 그 당시 막 언론에서 다루기 시작했었어요. 무엇보다 거창고에 간 것이 치열한 스스로의 선택이었기 때문에 고등학교 3년 동안 열심히 긍정적으로 지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 또한 내 삶에 긍정적 영향을 주었고요. 제가 중학교 3학년 때 사춘기가 심했어요. 진짜 그 전까지 만해도 재수없이 공부만 하는 아이의 대표 주자였거든요. 중2 말에 집이 학교에서 좀 먼 곳으로 이사가면서 버스로 한 시간씩 통학을 했는데 그게 변화의 시작이었을까요? 버스 안에서 맨날 쓸데 없는 상상들을 하다 보니..
퍼: 거창고는 어떤 학교였어요?
홍: 제가 40회인데 원래 지역 아이들에게도 양질의 교육을 시키겠다는 목적으로 만든 학교였어요. 교육이념은 지금도 좋아하는 성경구절 “너희가 진리를 알게 될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였죠. 사실 공부까지 잘 했던 학교라서 더 유명해졌지만 학생 자치도 잘 되어 있었어요.
퍼: 기억에 남는 일들이 있어요?
홍: 눈 오면 토끼 잡으러 가고, 봄 예술제 4일씩 하고 농장 실습 같은 거 하고, 봄소풍은 야영으로 하고.. 당시로서는 파격이었죠.
퍼: 그럴 줄 알고 거길 간 거에요?
홍: 어느 날 텔레비전을 보고는 딱 저기다 싶더라고요. 그래서 우겼어요. 그때만 해도 다른 지역으로 고등학교를 가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질 않았어요. 아버지가 직접 다녀오고는 멀다고 더 반대를 했죠. 그래서 일주일 단식 투쟁을 했어요. 사실 진짜 단식을 했는지는 기억이 잘 안 나요. 하하.
퍼: 끝내 부모님을 설득하신 거에요?
홍: 일요일에 가족 회의를 해서 결정했어요. 처음으로 내가 정말 원해서 한 선택이 아니었나 싶어요. 정말 원하면 선택하게 된다는 걸 그때 알았다고 해야 하나. 그 기억이 나한테는 참 커요. 뭔가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선택하고 책임지는 그 경험 때문에 지금도 선택하는 것에 두려움이 별로 없는 것 같아요.
퍼: 스스로 선택했기 때문에 더 열심히 했어요?
홍: 그랬죠. 내가 선택했기 때문에 그 시간을 즐기려고 한 부분이 컸어요. 추억이 많아요. 아마 다른 고등학교에 갔으면 그렇게 공부 안 하면서 또 그렇게 잘난척하며 지내진 못했을 거에요. 중학교 선생님들은 내가 거창고에 가서 ‘실패했다’라는 표현도 썼다고 해요. 그래도 난 거창고에서는 사춘기 반항심 같은 것도 없었고 정말 고등학교 3년 잘 논거 같아요.
퍼: 성적이 우수한 아이들이 많았다면서 분위기가 경쟁적이지는 않았어요?
홍: 그렇진 않았어요. 수학이나 영어가 우열반이 있었는데 우열의 느낌보다는 자유롭게 선택하는 느낌이었어요. 스스로 일반 수업으로 가는 친구들도 있었고요. 다들 공부가 아니면 운동, 운동이 아니면 동아리, 제 몫을 하며 학교생활을 해서 소외되는 친구들이 없었던 것 같아요. 그게 거창고의 장점이었죠.
퍼: 그래도 고등학생인데 좋은 대학 가야 한다는 생각 안 했어요?
홍: 좋은 대학갈 성적이 안됐으니까요. 그리고 그 때는 왜 그랬나 몰라. 거창고 나오고 한신대 나오면 인간 KS 마크라는 이미지가 있었어요. 거창고 사람들이 실제로도 한신에 많이 갔고요. 지금 생각하면 다른 대학을 가도 됐을 텐데, 어설프게 다른 곳 가느니 한신에 간다는 맘이 나한테도 있었거든요.
퍼: 대학 때 전공은 뭐였어요?
홍: 기독교 교육과 였어요.
퍼: 10년 이상 알고 지냈는데 전공이 기독교 교육과라는 게 왜 이렇게 생소하죠?
홍: 사회에서 날 만난 사람들은 다들 그렇게 말해요.
퍼: 그런데 직장이 방송 쪽 아니셨나요?
홍: 사실 첫 직업은 선생님이었어요. 이대 부속중학교에서 종교선생님. 그 땐 워낙 어려서 내가 선생님이라는 게 답답했어요. 그래서 그만뒀어요. 원래 기독교 방송국에 들어가고 싶었어요. 대학교 4학년 때부터 방송모니터로 기독교 방송국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었거든요. 대학원 다니면서 방송 아카데미 다녔고요. 그러다 mbc 조연출 아르바이트를 하고 그렇게 연결 연결되어 방송 쪽 일을 하게 된 거에요.
퍼: 직장에서는 어떤 일을 하셨어요?
홍: mbc무비스에 다닐 때는 방송 될 영화 검열하는 일도 했고, mbc플러스미디어에서는 ‘mbc에브리원’ 채널 편성피디 업무를 했어요.
퍼: 사회에서 말하는 성공을 위해 노력한다면 거기 도달할 수도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 생각은 없었어요?
홍: 저도 초월한 인간형은 아니라서 일할 때는 욕심껏 일을 했어요. 지는 것도 싫고 기왕이면 잘하고 싶은 욕심이 있죠.
퍼: 그럼 뭔가 목표설정을 하진 않았어요?
홍: 글쎄요. 일에 대한 욕심에 비해 직장에 대한 욕심은 없었던 것 같아요. 그냥 뭐 다니던 직장도 나쁘지 않았으니까요. 난 회사에서 정말 열심히 일하는데 그럴수록 사람들은 항상 저 친구는 떠날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난 돈 많이 벌고 성공하는 그런 의미가 아니라 정말로 잘 살고 싶은.. 그게 더 힘든 거지만 그런 목표가 있어요.
퍼: 일을 열심히 하는데 왜 떠날 사람으로 생각했을까요?
홍: 그건 왠지 모르겠어요. 그렇다고 내 이미지가 ‘일 안하고 떠날 생각만 하는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그냥 방랑기가 보이는 걸까요? 아니면 회사라는 공간에 내가 안 어울려 보였을 수도 있고요. 회사 그만둔다고 국장에게 말했을 때 첫마디가 “그럴 줄 알았다”였어요. ㅎㅎ 그런데 난 기본적으로 떠날 것이기 때문에 현재를 게을리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면 다음을 선택하는 것에 대한 확신도 가질 수 없거든요.
5. 떠나지 않기 위한 여행
퍼: 앞으로도 계속 여행을 많이 할 것 같으세요?
홍: 사실 이곳에서 여행에 대한 욕구는 사라졌어요.
퍼: 왜요? 거기서도 여기저기 열심히 돌아다닐 것 같은데..
홍: 여기 사는 게 여행하고 별로 다르지 않으니까 그런가 봐요. 여전히 조금은 낯설고, 지루하지 않고요. 여행이라는 것이 그런 의미부여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해요. 여기 와서 여행에 대해 여러 생각을 해요.
퍼: 어떤 생각이요?
홍: 여행으로 삶을 포장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요. 요즘 여행하고, 자신의 여행을 세상에 이야기하는 것이 유행이잖아요. 무수한 블로그와 책들에 여행 이야기가 넘치죠. 낯 간지러운 게 많아요. 스페인 책 쓰겠다고 2주 여행 온 여자분이 있었어요. 한국은 뭘 좀 진지하게 할 시간을 안 주는 것 같아요. 시끌시끌하고 모든 것들이 깊이가 부족하다고 할까.
퍼: 어디어디 갔다 왔다 몇 개국 갔다 왔다는 게 중요한 사람들이 있죠.
홍: 나도 여행하고 있는 내가 멋있다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던 것 같아요. 왠지 더 자유로워 보이고, 용기 있어 보이고, 남들보다 더 많은 경험을 가진 것 같아서 많이 떠벌리고도 싶고, 가끔 여행의 좋은 점만 포장하게도 되고 그러죠.
퍼: 그런 경험, 저도 있는 것 같네요.
홍: 어느 순간 그것이 참 아이러니 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결국 여행조차도 다른 사람의 동감을 형성해야지만 더 의미 있는 것이 되는 느낌이랄까. 어딘가를 여행하고 그 안에서 충만해졌다면 굳이 ‘내 여행은…’ 이라고 말하지 않아도 나에게 이미 의미가 있는 건 아닐까.
퍼: 그럼 여행이 어떤 거라고 생각하세요?
홍: 조용히 일상 안에서 하는 것이 정말 여행인 것 같아요. 하나의 이벤트가 아닌 삶의 도정 안의 한 부분으로 여행이 스민다면 좋지 않을까요. 사람들은 조금만 힘들어도 “아 여행가고 싶다”고 말하고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라고 해요. ‘여행’이 모든 해결책은 아닌데 ‘일상’의 반대말이 되어버렸어요.
퍼: 저는 홍은 씨의 여행기록이 책으로 나왔으면 하고 바랬던 사람인데 그런 계획은 없으신가요? kbs그린에도 글을 기고하고 계시고, 오래 전부터 블로그도 운영하고 있잖아요.
홍: 아까도 말했듯이 요즘 여행 책들이 유행처럼 번지는 느낌이라 그런지 왠지 그 물결에 들어가고 싶진 않아요. 기회가 자연스럽게 오면 고민해볼 수 있겠지만 언젠가 책을 내기 위해 지금부터 준비를 하고 싶지는 않다고 해야 할까요. kbs그린에는 한 두 달에 한번 쓰고 있어요. 그리고 여행이야기도 아니고요.
퍼: 사람들은 아무래도 외국의 경험을 무조건 부러워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여행지 소개가 아니라 각 나라에서의 삶과 사람들을 제대로 말해주는 책들이 많아지길 바라고 있어요.
홍: 외국에서 자리잡고 사는 사람들에 대한 환상이 너무 많죠. 외국 생활도 뭐 그냥 사는 거잖아요. 게다가 완전히 소속되지도 않고 이방인으로 사는 건데 말이죠. 예를 들면 민박집들도 그렇고, 한국사람들 대상으로 외국에서 자리잡는 건 일면 멋있어 보이지만 그런 경우 오히려 한국에서보다 삶이 축소되기도 해요. 집밖으로 안 움직이면 아무도 찾는 사람이 없고, 내가 끊임없이 움직이지 않으면 외국은 그야말로 섬 같은 곳이죠.
퍼: 아무래도 더 적극적으로 마음을 열고 다가가려고 해야만 하겠죠.
홍: 그렇게 해도 완벽히 그 문화 안으로 흡수되는 건 몇 년 가지고 되지 않아요.
퍼: 늘 공항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우루루 나가고 들어오잖아요. 배낭여행도 필수 코스처럼, 형식적으로 되어버린 것 같고요.
홍: 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을 보면 마지막은 자기 침실을 여행하는 거잖아요. 여행이 삶의 수단이 되는 건 슬픈 것 같아요. 일상의 한 부분으로 잠시 떠나고, 기억하고, 충전하는 게 자연스러워져야 좀 더 잘 살 수도, 잘 여행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자유롭게 떠날 수도 있어야겠지만 잘 돌아오는 것도 중요한 것 같아요. 그 두 가지가 다 자연스러워야지, 그렇지 않으면 결국 각각 다른 한쪽을 동경하면서 살게 되겠죠.
퍼: 홍은 씨에게 여행은 어떤 의미인가요?
홍: 누군가 여행은 삶을 확장시키는 코드라고 했었는데 그 말이 맞는 것 같아요. 단순히 가본 나라, 지역 수의 확장이 아니라 삶을 바라보는 다양한 코드를 갖게 되는 것. 확실히 여행을 통해서 삶이 풍부해질 수 있었어요.
퍼: 앞으로는 어떻게 잘 살고 싶으세요?
홍: 지금 같아서는 여행을 계속 하며 살고 싶진 않아요. 그냥 사는 것이, 지금처럼 여행하지 않아도 즐거우면 좋겠어요. 내가 이 멀리까지 와서 경험하며 무언가를 배우는 것이나, 한국에서 또 다른 세계를, 사람을 만나며 배우는 시간이나 다 같은 거라고 생각해요.
퍼: 그럴까요?
홍: 여기 와서 알게 된 건, 떠나는 건 별로 의미가 없다는 거에요. 단순히 공간의 이동이 아니라 내 삶의 영역 밖으로 나가느냐, 아니냐가 관건이고, 그래서 결국은 뭘 만나느냐인데 그건 스스로 어떤 공간을 만드는 가에 달려 있는 것 같아요. 외국에서도 한없이 작게 고립된 공간 안에만 살다 돌아갈 수도 있는 거고, 서울에서 내가 만드는 공간이 이 곳에서 만드는 공간보다 더 크고 다양할 수도 있는 거죠.
인사를 나누고 인터넷 창을 닫고 나니 아직 덥고 환하다는 세비아의 밤9시는 사라지고, 폭우로 몸살을 앓고 있는 서울의 새벽4시만 남았다. 삶이 바쁘고 어려울수록 여행을 원했던 건 왜일까? 나는 여행에서 무엇을 얻고자 했을까?
오랜 시간 떠나길 꿈꾸며 준비했던 홍은 씨가 세비아에서 말한다. 떠나는 건 별로 의미가 없다고. 그렇게 시간과 공간, 언어의 다름이나 어울리는 사람들의 엄연한 차이도 불구하고. 어쩌면 그토록 수없이 떠나고 돌아와 본 사람만 알게 되는 것일까. 우리가 정말 꿈꾸는 것은 여행이 아니라 일상이라고.
보편적인 삶에 정답이 없듯이, 이 곳에서의 삶에도 정답은 없다.
누구는 외국친구를 많이 사귀어야 뭔가 폼 나게 외국생활을 한 것이라고 말하기도하고, 재주 좋게 돈벌이를 외국에서 잘해야 성공한 외국생활을 했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학위라도 멋들어지게 따서 한국에 들어가야 외국 생활한 보람이 있다고 생각하는 이도 있고, 흔히 그냥 결혼해서 눌러 살면 그게 장땡이다 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런 게 어디 있어? 결국은 내가 얼마나 만족하느냐의 문제가 아닐까 싶다. 비싼 비행기표 값 들여 날라와서 매일 집에 틀어박혀 노닥거린다고 한들 그걸 한심하다고 말할 수 없으며, 별 영양가 없는 일에 돈 쓰며 다닌다 한들 내가 선택한 내 시간인데 누가 뭐라 할 수 있을까. 다른 공간을 선택해서 온 것이 아니라 다른 시간을 선택해서 온 것이기에 어떻게 살아도, 살고 싶은 대로 한번 살아본다면 그걸로 족하지 않을까 싶다.
Qué vida! (이런 삶을 보게나!)
–홍은 블로그에서. http://redsilver.tistor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