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도 속하지 않을 자유를 허하라 – 하마무

하마무는 도쿄경제대학교에서 <21세기 교양 프로그램>을 전공하고 있는 22살의 학생으로, 현재는 휴학을 하고 한국에서 지내고 있다. 그녀는 홍익대학교 어학당에서 한국어를 배우고, 홍대 두리반, 명동 카페 마리, 대학 등록금 집회 등을 다니며, 평소에는 시를 쓰고 사진을 찍으며 그림도 그리는 다재다능한 사람이다. 이 다양한 활동 기저에 흐르고 있는 그녀의 생각과 마음을 엿보았다.
하마무는 일본 사람으로, 현재 홍익대학교 근처에 거주하며 한국어학당에 다니고 있다. 요즘은 ‘퍼슨웹’에서 월요일마다 일본어를 가르치고 있고, 나 역시 그 모임을 통해 그녀를 알게 되었다.
 
일본어를 공부하면서, 우리는 각자 언어의 은어와 비속어를 서로에게 가르쳐주곤 하는데 그녀는 한국어의 다양한 욕을 열심히 수첩에 받아 적으며 일본에는 ‘나쁜 말’이 별로 없다는 점을 아쉬워하곤 했다. 그러면서도 ‘씨발’이 알고 봤더니 ‘씨받이’에서 유례된 말이었다며 조심해야겠다고 다짐하기도 했다.
 
이러한 점을 통해 나는 그녀가, 특이하고 ‘정치적으로 올바른’ 소녀라는 첫인상을 받았다. 실제로 그녀는 두리반, 카페 마리, 등록금 문제와 같은 한국의 현재 쟁점과 관련된 다양한 집회에 나가고 있다. 또한 위안부 할머니, 강제 징용되었던 할아버지를 방문하여 인터뷰하고 사진으로 기록하는 등, 역사적인 문제에도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이며 그들과의 직접적인 대면을 시도하기도 한다.
 
하지만 막상 약력 확인을 위해 상투적으로 ‘당신이 하고 있는 활동들을 알려 달라’고 묻자, 그녀는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특정한 어떤 활동가, 주의자로 분류되는 게 불편하다는 거였다. 사실상 그녀는 소위 말하는 ‘평화주의자’, ‘88만원 세대론자’, ‘여성주의자’ 어디에도 속하지 않으면서, 이 모든 주제와 관련한 관심과 활동이 많았다.
 
더 나아가 그녀는 여성문제에 관심은 많지만, 아직도 남자 화장실과 여자 화장실이 갈라지는 지점에 설 때면 어디로 들어가야 할지 망설인다고 했다. 어떤 활동가 또는 주의자 이전에 일견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성(性) 구분 자체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있었다.
 
‘20대의 일본 여성’이라는 그녀의 조건을 중심으로 인터뷰를 진행해보려고 했던 나로서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반복해서 말하고자 했던 것은, ‘누군가에, 무엇에 속하는 것에 대한 강한 거부’였기 때문이다. 흔히 나이와 소속을 밝힘으로써 쉽게 정리해버리는 자기소개에서부터 난항이었다. 그녀는 모든 소속을 피해가면서, 매우 산만하게 자신을 소개했다.
 

소속을 밝히지 않은 채 자신을 소개하기

 
퍼슨웹(이하 ‘퍼’): 소개를 시작하기 전에 우선, 퍼슨웹에서 사람들이 하마무를 대신 소개시켜줄 때 ‘이 친구가 서경식* 선생님의 제자에요’라고 하는 모습을 많이 봤어요. 다른 곳에서도 그래요?
 

서경식*

1951년 일본 교토에서 재일조선인 2세로 태어나 1974년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 문학부 프랑스문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도쿄케이자이대학東京經濟大學 교양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리쓰메이칸 대학 교수인 서승과 인권운동가인 서준식의 동생으로, 방북으로 인하여 구속되었던 형들의 석방과 한국 민주화를 위한 활동을 한 경력이 있다. 이때의 장기적인 구호 활동의 경험은 이후의 사색과 문필 활동으로 연결되었으며 인권과 소수 민족을 주제로 한 강연 활동을 많이 펼쳐 왔다. <출처: 예스 24>

 

하마무(이하 ‘하’): 네, 평화활동 하는 사람들도 많이 그렇게 소개해요. 이상하죠. 솔직히 나는 서경식 선생님하고 상관없잖아요. 근데 반응은 달라요. ‘서경식의 제자’라고 하면 ‘(놀라는 투로)아, 진짜요?’하고, ‘그냥 일본에서 온 유학생’이라고 하면 ‘(담담한 투로)아… 그래요.’하죠.
 
퍼: 반응이 왜 다를까요?
 
하: 역시 서경식은 유명한 사람이니까 사람들은 내가 아니라 서경식 선생님을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선생님을 꼭 한번 만나고 싶다고 말하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소개에 익숙해지고 체념해버리는 내 자신도 문제라고 생각해요. 익숙해질 뿐 아니라 그 덕분에 사람들과 교류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역시 나를 봐주고 있지는 않다고 생각해요. 그럼 나 자신에게 매력이 있느냐, 하면 그렇게 생각할 수 없을 것 같아요.
 
퍼: 그럼 기분이 어때요?
 
하: 역시 인간은 어쩔 수 없다는 슬픈 느낌.
 
퍼: 어떻게 자신을 소개하고 싶어요?
 
하: 어떻게 소개하면 좋을까…. 하지만 ‘일본 학생’이라고 할 때도 왜 내가 일본하고 붙어서 소개되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그것보다는 그냥 하마무. 나는 하마무다, 라고 하고 싶어요. 이름도 직함도 붙이고 싶지 않아요.
 
퍼: 평소에 시도 쓰고 그림도 그리고 사진도 찍잖아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작품을 보여주고 싶은 욕구가 있는데, 시인이 되고 싶지는 않아요?
 
하: 아마 내가 인사하면서 ‘나는 시인입니다’라고 하는 때는 오지 않을 것 같아요. 장르를 별로 안 좋아해요. 나는 시도 쓰지만 그림도 그리고 사진도 좋아요. 사회로부터 ‘너는 시인이다!’라고 정해지고 싶지 않아요. 범주 자체가 싫어요. 범주에서부터 메이저리티, 마이너리티가 시작되니까요. 그냥 시 만들면 시인이잖아요.
 
퍼: 흠….. 그럼 하마무와 가장 비슷하다고 느꼈던 사람은 누구였어요? 한국, 일본 상관없이 제일 공감되는, 저 사람 입장이 내 입장 같다고 느꼈던 순간은 언제였어요?
 
하: 인도에서 만났던 아티스트가 말은 잘 안 통했지만 공감이 많이 됐어요. 그 친구가 나에게 남자, 여자 중에서 누가 좋으냐고 물어봤을 때 나는 ‘확실히 구분 못하겠다, 언제 변할지도 모르겠다’고 답했어요. 그러자 그 친구가 자신도 그렇대요. 처음이었죠. 동성애자와 이성애자로 나누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여태까지는 이 부분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았거든요.
 

퍼: 남자친구 없어요?
 
하: 한 번도 없었어요.
 
퍼: 친구들이 뭐라고 하지 않아요?
 
하: 하도 많이 들어서 익숙해요. 사실 ‘남자친구 없어요?’라고 질문하는 사람이 좋지는 않아요. 묻는 시점에서부터 이미 여자, 남자 친구가 없으면 이상한 애 취급받는 느낌이 있잖아요. 사소한 것이지만, 없을 때의 부끄러움은 사회에서 만들어서 주입시킨 부끄러움이라고 생각해요. 또한 사귄다는 것도 잘 모르겠어요. 내일부터 사귀자고 하면 내일부터 당장 그 사람과의 관계가 어떻게 달라지는 걸까요.
 
퍼: 하마무, 진지한 사람이었네요.
 
하: 진지한 사람 아니고 양아치이고 싶은데. (웃음) 당근과 피망에 비유하자면, 일본에서는 어른들이 어린이들에게 당근이 몸에 좋다고 먹으라고 강요해요. 그래서 당근은 뭐랄까, 친절한 이미지가 있어요. 하지만 피망은 양아치 같지 않아요? 선글라스 쓰고, 담배도 피우고, 사회에 반대하는.
 
퍼: 양아치 친구 많았어요?
 
하: 네.
 
퍼: (사진 보며) 그래서 친구들이 다들 화장을 했구나. 하마무도 양아치였어요?
 
하: 하고 싶었지만 용기가 없어서 못 했어요. 담배도 피울 수 없었고 초, 중학교 때는 많이 했지만 고등학생부터는 선생님한테 반항도 못했어요. 원래 자주 죄송하다고 생각하는 버릇이 있어서요. 친구들은 화장도 하고 공부도 못하고 수업에도 참여 안했지만 나는 공부 열심히 했어요.
 
퍼: 왜요?
 
하: 원래 공부를 좋아하거든요. 모르는 거 알게 되는 거 재밌잖아요.
 
퍼: 일본에 친구들 하고는 연락 많이 해요? 하마무를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친구들하고는 관계가 어때요?
 
하: 내 안에서 분류를 해놓고 그때, 그때 다른 이야기를 해요. 이 사람에게는 이 이야기까지만 저 사람에게는 저 이야기까지만, 이런 식으로요. 그래도 괜찮은 것 같아요. 다른 사람을 바꿀 수는 없고 어쩔 수 없으니까요.
 
 
 

속하는 것에 대한 거부

 
퍼: 다양한 관심사가 있던데, 어떤 것을 제일 싫어해요?
 
하: 극단적으로 가는 것을 가장 싫어해요. 사실 남자, 여자 나뉘는 것도 이해가 가지 않아요. 아직도 남자, 여자 화장실 나뉘어서 갈라져 있는 곳에 설 때면 어디로 가야하는지 고민하지만, 결국 여자 화장실로밖에 가지 못하는 상황이 싫죠. 개인적으로 스트레스가 돼요.
 
퍼: 극단적으로 가는 것, 이항으로 나뉘는 것에 대한 문제를 말하나요?
 

하: 누군가든 어느 집단에 속하게 만드는 사회, 점점 마이너리티를 많이 만들어내는 사회가 문제라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를 계속 만들어내면 우리들 외에 타자가 생겨날 수밖에 없잖아요. 타자는 원래 태어나는 게 아니라 자기들이 만든 건데, ‘얘네는 우리랑 달라’ 이렇게 규정짓고, 이에 대한 폭력이 생겨난다고 생각해요.
 
퍼: 자신은 어디에 속해 있다고 생각해요?
 
하: 항상 어디에 속해 있긴 하지요. 그리고 내가 어디에 속해 있는지 끊임없이 생각해요. 메이저인지, 마이너인지. 일본 국적에 속해 있는 건 메이저에 속하는 거라, ‘인간이 인간으로써 다함께 협력합시다! 손잡고 나아갑시다!’ 이거는 모순이에요. 일본 내에서도 국적을 가지고 있는 사람과 아닌 사람의 엄청난 차이를 무시하고 다함께 손을 잡자고 하는 건, 마이너리티를 무시하는 것 뿐 아니라 자신의 주류로써의 의무를 방기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퍼: 지금 한국에서는 어느 자리에 속해 있어요? 장면이 바뀌었으니, 속한 자리도 바뀔 수 있을 것 같은데요.
 

하: 여성이기에 마이너리티지만, 한편으로는 한국 역시 아시아이기 때문에 괜찮다는 감각이 있어요. 뉴질랜드에 있는 친구가 있는데 걔는 아시아인이라고 굉장히 무시당한대요. 나는 그런 의미에서 한국에 있는 게 비겁한 것도 같아요. 이 생각이 어떻게 보면 누군가를 차별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누군가가 나를 차별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한데, 감각적으로 알아차리지 못해요. 조금 더 민감해져야 하는데….
 
퍼: 아까도 비슷한 경우가 아닐까 싶은데요. 아까 길에서 하마무가 저보고 “홍대 스타일이에요. 일본 사람 같아요”라고 했잖아요. 그게 되게 칭찬 같고 기쁘더라고요. 요즘 서울에서 홍대는 핫하고 세련된 곳이라는 이미지가 있는데, 그게 일본 사람 같다는 표현과 연결되는 것 같아요. 솔직히 중국사람 같다고 했다면 칭찬으로 느끼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하: 역시 그런 의미에서 내가 일본 사람이라서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그 무의식이 너무나 무섭고 두려워요.
 
퍼: 모두가 무서워하는 점일 것 같아요. 근데 하마무, ‘미안해요’라는 말 엄청 많이 하잖아요. 항상 특징적이었어요. 일본 사람들하고 하마무가 같은 점이 별로 없는데 그건 비슷해요.
 
하: 그래요? 몰랐어요. 하지만 내가 정말 잘못했기 때문에 하는 거예요. 예를 들어 지각한 것은 잘못이니까요. (상대방이 늦어서) 내가 기다리는 것은 괜찮은데 누군가를 참게 하는 것은 싫어요. 그러나 어쩌면 이것도 나쁜 버릇일 수 있겠다. 그렇구나! 정말 딱 잘못했을 때만 미안하다고 해야 하는데, 항상 말하는 것은 나쁜 버릇이네요!
 
퍼: 결국에는 자기한테 피해만 안가면 되고, 타인에게 민폐만 끼치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닐까요?
 
하: 나도 그래서 나쁜 거라고 생각해요. 만약에 상대방 탓이라고 하면 그 사람이 몰려서 방어를 하게 되고 그러면 서로 싸우면서 말을 나누게 되는데, 내 탓이라고 하는 순간 말이 없어지잖아요. 어찌 보면 비겁한 것 같아요. 그 사람을 싸움의 대상으로도 만들지 않고, 내가 싸움의 대상이 되지도 않으니까요.
 
퍼: 내 편견으로는 그게 일본의 문화 같은데 일상적으로 ‘스미마셍(미안해요)’도 잦고, 이메일에서도 항상 ‘미안합니다만’, 이런 배려하는 표현이 많고요. 최대한 갈등을 드러내거나 표현하지 않는 문화가 있는 것 같아요. 어떻게 생각해요?
 

하: 굉장히 비겁하다고 생각해요. 그 문화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일본 사회에서 살기 힘들어요. 일본사회에서는 자기주장을 하는 사람을 보면 이상하다고 따돌리거든요. 더 문제는, 일본사람들은 자신들이 세계에서 제일이고 자신의 문화가 가장 우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일본 문화를 기준으로 다른 사람들을 판단해버려요.
 
자기 의견을 내는 한국, 미국 사람들을 보고 ‘저 사람 왜 저래?’ 하고 낮게 판단하죠. 정말 사소한 거 하나에서 차별이 시작하고, 그게 바로 폭력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도 세세하게 신경을 써야하는데 어려워요.
 
퍼: 차별이 바로 폭력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해요?
 
하: 누군가를 차별하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사람을 보면 화가 나다 못해 굉장히 슬퍼요. 일본 사람이 재일 조선인을 싫어하는 거라든지, 어학당 사람들이 한국에 살면서 한국 너무 촌스럽고 재미없다고 하는 거라든지.
 
퍼: 화가 아니라 슬프다고요?
 
하: 재일 조선인, 한국인, 중국인을 싫어하는 데는 딱히 이유가 없어요. 자연스럽게 누군가를 배제시키는 거죠. 그러면 ‘저 사람이 저런 시각으로 언젠가는 나를 배제시키겠지’ 하는 생각이 들어 무섭고 슬퍼요. 중요한 것은 누군가의 문제니까 도와줘야지 하면서 타자화 시키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당사자, 내 문제로써 받아들여서 나의 문제니까 내가 해결해야 한다고 판단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저 사람이 저런 시각으로 언젠가는 나를 배제시키겠지’ 하는 생각이 들어 무섭고 슬퍼요, 이 말을 듣는 순간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했다. 나는 당연히 그녀가 어학당의 외국인들이 한국을 무시하는 발언을 할 때 정의로운 제 삼자가 느낄 법한, 다소 무덤덤한 분노를 느끼리라 예상했다. 불의를 향하지만 내 일은 아닌, 그 무덤덤한 분노 말이다.
 
어딘가에 속한다는 것은, 속하지 않은 이들을 배제한다는 것과 동일한 말이다. 그녀가 ‘무덤덤한 또는 관념적인 분노’를 느낄 것 같다는 나의 짐작은, 그녀가 무의식적으로는 자신을 일본인 즉, ‘선진국’의 국민에 동일시할 것이라는 전제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타인을 불편하게 하는 말을 잘 하지 않는 그녀가 나에게 ‘일본 사람 같아요’라고 했을 때, 그 말 속에는 칭찬의 뉘앙스가 들어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뜬금없이 슬프다고 했다. 그들을 보면서 언젠가 나도 배제 당할지 모른다는 아주 생생한 두려움이 있었던 것이다. 이는 스스로를 소수자로 정체화할 때 경험할 수 있는 종류의 감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삶의 경험들이 이것을 가능케 했을까 궁금해졌다.

배제된 사람들과의 만남

 
퍼: 내 속의 차별을 딱 인식하게 된 순간이 있었어요?
 
하: 일본사람, 한국사람, 재일 조선인이 있잖아요. 그럴 때, 우리가 같은 선상에 있는 건지 아닌지 헷갈릴 때가 있어요. 차별까지는 아닌데 ‘아!’ 하는 느낌이 오는 순간이죠. 일본과 한국은 국교가 있지만 일본이 한국에게 사죄하지 않은 부분이 있고, 일본과 북한은 국교조차 맺지 않고 있고, 재일 조선인은 한국 국적, 조선 국적으로 나누어져 있고요. 이 복잡한 상황에서 셋이 같이 있었을 때 우리는 어떤 관계인가 고민하게 돼요.
 
퍼: 어떤 의미에요?
 
하: 가령 재일조선인 친구가 있는데 걔가 조선적*이에요. 한국에 같이 오기로 했는데 못 왔죠. 한국 국가는 이유 없이 그 사람을 거부했지만 분단이라는 문제는 어디로 향하고 있나, 내 생각에는 일본을 향하고 있어요. 식민지가 없었다면 과연 분단이 됐을까, 그래서 내 친구가 조선적으로 남을 수밖에 없었으니까요.
 
조선적*
일본은 1947년 출입국 관리령에 따라, 1945년 해방 이후 일본에 거주하고 있던 조선인들을 외국인으로 등록하고 일괄적으로 ‘조선적’을 부여했다. 그 후 1948년에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면서 조선이라는 나라가 사라지게 되었고,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 이후 재일조선인들은 대부분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하지만 현재 약 10만 명 정도가 여전히 조선적을 유지하고 있으며, 이들은 이미 존재하지 않게 된 나라의 국적을 유지하고 있는 ‘무국적자’에 해당하기 때문에 이들에게는 여권이 발행되지 않는다. 한국에 입국할 경우에는 한국 정부에서 발행하는 임시여권을 받아야 하지만, 허가 기준은 남북관계에 따라 변동이 크다.

 

다른 예를 들자면 한국 버스나 전철에서 할머니, 할아버지가 일본어를 굉장히 잘하는 모습을 보고 ‘이거 뭐지’하고 이상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어요. 심지어 ‘대동아전쟁’이라는 표현을 일본어로 쓰던데, 이 용어에는 아시아를 제국주의로부터 해방시킨다는 표현이 내포되어 있죠. 즉, 일본적인 시각이 담겨 있는 말을 계속 쓰고 있는 걸 보면서 놀랐어요.
 
퍼: 왜요?
 
하: 언어가 머리를 지배하고, 사상을 먹어버리는데 아직도 이런 점이 조선반도에 남아있구나 싶었어요. 예전에 한국 친구의 할아버지를 뵌 적이 있었는데, 갑자기 나의 할아버지가 저 할아버지를 차별했다는 상상을 하게 되었어요. 그렇다면 이제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게 되죠.
 
퍼: 국가 단위로 생각하기는 쉽지만 내 할아버지가 친구의 할아버지를 억압했다는 상상은, 굉장히 개인에 근접한 감각인 것 같아요. 어떻게 그게 가능해요?
 

하: 아무래도 강제노동 당했던 할아버지를 찾아가서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있었던 게 영향을 미쳤던 것 같아요. 당시에 할아버지들끼리의 차별을 생각하게 되었어요.
 
퍼: 경험할수록 근접하게 느끼게 되는 걸까요?
 

하: 역시 경험인 것 같아요. 한 가지 더 예를 들자면, 우토로 마을* 알아요? 그곳에 갔을 때가 내 인생에서 가장 슬펐을 때였어요.
 
우토로 마을*
1941 년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교토 군비행장 건설을 위해 일본 정부에 의해 동원된 노동자들에 의해 형성된 재일 조선인 마을이다. 1949년 민족학교 폐쇄, 취업과 교육에서의 차별을 받아왔으며 대부분 육체노동으로 생활을 유지했다. 최근 재개발 계획으로 인하여 강제 철거하려는 시도가 있었고, 이에 반대하려는 운동이 진행되었다.

 
조선에서 오셨던 할머니와 이야기를 하게 되었는데 우리가 일본어로 밖에 이야기를 못 나누는 거예요. 내가 아무리 조선어 공부를 한다 하더라도, 할머니는 어렸을 때 여기로 끌려왔기 때문에 일본어로밖에 표현을 못하죠.
 
일본어는 그 사람의 모어*는 아니죠. 일본어로든 조선어로든 그 사람과 이야기를 해도, 충분히 표현되지 않을 것이라는 게 괴로웠어요. 젊은 재일 조선인 친구들을 만나도 대충 대화는 일본어로 나눌 수 있지만, 그 친구들은 자신이 일본인들하고 분명히 다르다고 느끼고 있을 거예요.
 
모어*
‘모어’는 ‘모국어’와는 다르다. ‘어머니한테서 모유와 함께 섭취한 말’ ‘사람에게 가장 근본적인 최초의 언어’이다. 대다수 재일동포들은 일본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그 ‘모어’는 일본어다. 자민족의 ‘모국어’를 억압한 자들의 언어를 ‘모유와 함께 섭취’해버린 것이다.
<심야통신- ‘센’이 모국어로 뭐더라?/서경식>

퍼: 그게 어떤 점에서 슬펐어요?
 
하: 누군가의 슬픔을 이해하고 싶은데 그 사람이 되지 못하는 것은 확실하고, 그럼 나는 과연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슬픈 일이에요. 하지만 역시 이것도 자기중심적인, 자기만족적인 고민이 아닌가 싶기도 해요. 내가 그 사람이 되지 못해서 괴로워 할 때, 나는 그저 고민만 하고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으니까요.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데 계속 고민만 하다니.
 
퍼: 조금 놀랐는데요. 내가 그 사람이 아니어서 그 사람의 슬픔을 느끼지 못해 괴롭다는 것, 그 감각이 드문 것 같아요. 다른 사람을 왜 그토록 이해하고 싶어요?
 

하: 잘 모르겠어요. 아…. 왜일까. 나는 왜일까. (침묵) 모르겠어요. 누군가의 슬픔을 이해하면 어떻게 될까요? 결국에는 자기를 위해서 그런 게 아닐까 싶어요. 아, 싫다!
 
 

자기만족적인 슬픔의 공감

 
퍼: 전에 일본의 평화활동 운동이 자기만족적이라고 했는데, 그 자기만족과 하마무의 자기만족은 어떻게 달라요?
 

하: 너무 같아서 싫어요.
 
퍼: 평화활동 운동가들은 어떤 의미에서 자기만족적이에요?
 
하: 취미잖아요. 그들은 항상 추상적인 이야기만 해요.
 
퍼: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만족을 멈추지 못하는 이유가 무얼까요?
 

하: 한편으로는 전세대들이 전쟁 시기에 행했던, 남을 죽인다거나 하는 것들을 잊기 위해서 평화운동을 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해요. 자기들은 그것 때문이라고 이야기하지는 않겠지만 내가 볼 때는 그래요.
 
퍼: 그것이 왜 자기만족적일까요?
 

하: 전쟁에 참가하거나 활동에 일조하기는 했지만 시켜서 한 거라 어쩔 수 없었다고만 말하기 때문이에요. 그 피해를 직접 당했던 사람과 마주하려 하지 않고 심지어 상상조차 하지 않으면서 그냥 평화활동을 해야 한다고 외치기만 해요.
 
퍼: 그들은 자신들도 피해자, 희생자라고 생각하나요?
 
하: 자신들도 시대의 희생자라고 생각해요. 진짜 희생자들을 분명히 마주할 수 있는 기회가 있는데 왜 하지 않는지 알 수 없어요. 김용한 씨라고 평화박물관에서 활동하는, 강제징용 당한 사람들의 역사를 되짚어보는 다큐멘터리 만드는 분이 있어요. 그 분에게 들은 이야기인데, 어떤 평화활동을 하고 있는 주부가 자기는 이렇게 평화활동 하니까 북한한테 우리 마을만큼은 미사일을 떨어뜨리지 말라고 말 좀 해달라고 부탁했대요. 농담이기는 하지만 그런 식인 거죠.
 
퍼: 조금 너무 하네요.
 
하: 또 어떤 한국 분이 자신은 평화주의자지만 아들은 군대에 갈 수밖에 없었다고 이야기하면 일본 사람들은 “평화주의자인데 너 왜 아들 군대를 보내냐”고 말해요. 이렇게 아무것도 모르면서 함부로 말하는 일본인들이 있어요.
 
퍼: 그 사람들의 자기만족적인 부분은 이제 이해할 수 있겠어요. 하지만 하마무 본인에게는 어떻게 자기만족이 나타나는지 아직도 모르겠어요.
 
하: 가령 이 그림에서부터 이야기를 풀어본다면, 원래는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내가 느끼는 것이 언어로 전부 설명되지 않기 때문에 다른 표현 방식으로 그림을 택하게 되었죠.
 
(자신의 그림을 가리키며) 이 그림도 어떻게 보면 자기만족의 일부이지 않을까요? 그림 그리는 것은 우는 것과 같아요. 울면 잊어버릴 수 있잖아요. 우는 순간 중요한 것을 잊어버리게 되니까 울기 싫은데, 나에게는 그림 그리는 것은 우는 것과 같아요. 도망가는 거죠.
 
퍼: 도망가는 거로군요.
 
하: 역시 누군가의 슬픔을 알고 싶은 건 자기만족을 채워주는 게 아닐까 싶어요. 내 삶에서도 너무 괴롭고 슬픈 부분이 있었고, 사실은 이것을 알고 싶기 때문에 남의 아픔을 알고 싶은 게 아닐까요?
 
 
 
 

슬픔이 많았던 어린 시절

 
퍼: 살면서 슬펐던 시기가 언제였어요?
 

하: 유치원에서 대학교 들어가기 전까지 모두 슬펐어요. 어렸을 때는 정말 어른들이 싫었어요.
 
퍼: 어떤 면이 제일 싫었어요?
 

하: 자신들도 모르는 것, 할 수 없는 것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항상 어린이들보다 위에 있는 것처럼 행동 하고, 딱 눈에 보이는 것만 믿는 점이 이해할 수 없었어요. 예를 들어 내가 만약에 하늘이 핑크라고 생각하면 핑크로 그리고 싶은데 안 된다고 하거나, 중학교 때는 마법사가 되고 싶어 장래희망에 썼다가 담임선생님이 엄마를 부른 적이 있었어요. 얘 좀 이상한 애 아니냐고요.
 
퍼: 엄마는 뭐라고 하셨어요?
 

하: 엄마 역시 보수적이기 때문에 나에게 문제 일으키지 말라고 했어요. 초등학교 때는 선생님한테 질문도 많이 했고, 선생님 의견에 반하는 말도 자주 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점점 없어졌어요. 초등학교 때 죽고 싶었어요. 어른들의 안 좋은 면들을 너무 많이 봐서 저렇게 될 바에는 성장하고 싶지 않다, 더 이상 크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굉장히 많이 하게 되었어요.
 
퍼: 어떤 점이 그렇게 안 좋았을까요.
 
하: 선생님이 나보고 거짓말쟁이라고 평가하곤 했어요. 선생님이 보기에는 항상 거짓말 하는 것처럼 보이고, 머리가 이상한 애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친구들도 내가 선생님한테 반항을 하면, 너 왜 반항을 하느냐고 그냥 들으면 된다고 하면서 선생님 편을 들었어요.
 
퍼: 외로웠겠어요.
 
하: 외롭지 않아요. 혼자가 아니니까. 내 심장도 하마무고, 손도 하마무고, 다리도 하마무고, 나를 구성하고 있는 게 모두 하마무이기 때문에 함께 놀았어요. 모두 말은 못하지만요. (웃음)
 
퍼: ‘슬프다’는 말 많이 쓰죠? 어떤 의미에요?
 
하: 한국어를 잘 몰라서 표현하기 어려운데, 세상에 혼자 있는 느낌을 말해요. 내 편이 한명도 없고 딱 나만 있는 느낌. ‘우주의 외톨이’라는 감각. 나도 이해받을 수 없고, 나 자신도 상대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해서 답답해요. 하지만 위에도 말했듯이 손 하마무, 눈 하마무, 귀 하마무, 배 하마무가 있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슬프거나 외롭지 않아요. 하지만 ‘그래도…. 그래도…’ 하는 마음이 남아 있어요.
 
퍼: 그래도 ‘손 하마무’만으로는 안 되는 마음일까요?
 
하: 그게 영원히 반복돼요. 세상에 혼자라고 느끼다가 한편으로는 나 자신이 있으니까 외롭지 않다고 느끼다가, 고독이 무서워져요. 뭐가 불안한지는 모르겠지만 항상 불안해요. 누군가 알아줬으면 좋겠고 누군가를 알고 싶기도 해요. 그러니까 이런 걸까요. 누군가와 누군가의 사이는 좁히고 좁혀도 하나가 되지는 않는다는 것, 그래서 멋지지만 한편으로는 그 점 때문에 괴로워요. 언제나 불안정한 그네를 타고 왔다 갔다 하는 것 같은 느낌이 있어요.
 
퍼: 사실 저는 조금 놀랐어요. 하마무의 그림이 워낙 컬러풀하고 밝아서 이런 면이 있는지 몰랐거든요.
 

하: 나도 잘 모르다가 그림을 완성하고 나면, ‘앗 컬러풀이다!’ 하는 느낌이 있어요. 어쩌면 내 마음이 슬퍼서, 컬러풀은 슬프지 않으니까 다양한 색을 쓰는 것도 같아요.
 

모든 사람의 첫 소속, 가족 이야기

 
퍼: 이 그림에서는 오빠들이 무서웠다고 적혀있는데 관련이 있어요?
 

하: 오빠들 무섭고 싫어요.
 
퍼: 왜요?
 
하: 큰 오빠가 제일 무서워요. 사실 아빠가 큰오빠 어렸을 때 매우 엄격했었어요. 반면에 작은 오빠하고 나한테는 약간 친절했으니까, 아마 그런 게 싫었는지 나랑 작은 오빠한테 가정교육을 많이 했어요.
 
퍼: 어떤 식으로요?
 
하: 생각나는 건 햄스터 사건. 내가 햄스터 키웠었는데 깜빡 잊어버리고 밥을 제대로 주지 않아서 죽었어요. 근데 큰오빠는 겨울이라 얼어 죽었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나를 혼내면서 밖으로 나가서 햄스터하고 같은 처지가 되어야 한다고 했어요. 그러니까 햄스터가 추워서 죽었으니까 너도 추워야 한다고, 같은 생명이니까 너도 같은 느낌이어야 한다고 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생명의 소중함을 이야기한 것이긴 하지만 당시에는 상당히 충격을 받았어요. 오빠가 무서워서, 당시 집안에 스토브가 있어서 반바지, 반팔 입고 있었는데 밖으로 나가라고 하니까, ‘네, 알겠습니다.’ 하고 그 차림으로 나갔지요.
 

퍼: 때린 적도 있어요?
 
하: 어렸을 때는 때리기도 했어요. 그래서 무서워했어요. 지금은 그러지 않지만, 나한테는 아직도 무서운 느낌이 있어요. 근데 자기는 나한테 친절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퍼: 반항해본 적 있어요? 한번이라도.
 
하: 반항적인 ‘얼굴’은 해본 적 있어요. 근데 오빠가 ‘너 얼굴 표정이 왜 그래!’해서 바로 죄송하다고 했어요. 사실 9월에 오빠 결혼식이 있지만 가고 싶지 않아요. 분명 지금도 오빠는 화났을 것 같아요. 올케 언니 가족들이 이상하게 생각할지도 모르니까요. 가족인데 결혼식에 안 와? 이러면서요.
 
퍼: 한 세트인데 왜 빠졌냐고요?
 
하: 네, 가족이잖아요. 근데 유학중인데 그것 때문에 들어가고 싶지는 않은데 힘드네요.
 

퍼: 아빠는 오빠한테 어떻게 엄격했어요?
 
하: 아빠도 지금은 미안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큰오빠하고 이야기하고 싶어 하지만 잘 되지 않죠. 예를 들어서 어렸을 때 큰오빠가 피망 진짜 싫어했거든요. 근데 아빠가 억지로 먹으라고 해서 먹긴 먹었는데 다 토해버렸어요. 아빠는 그래도 먹어야 한다고 해서, 토한 것까지 다 먹은 적이 있어요. 큰오빠도 힘들었어요. 하지만 나한테 복수할 필요는 없는데 말이죠.
 

퍼: 부모님은 어떤 스타일이세요?
 

하: 아빠는 회사원이지만 옛날부터 회사를 싫어했어요. 항상 하는 말이 회사에 속해있으면 안 된다. 소속되는 순간,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못하게 된다. 아빠는 지금은 소속되어 있지만 지속 가능한 삶, 농사를 짓고 싶어 해요. 사실 그걸 보면 복잡해요. 아빠가 말하는 거랑 회사 다니는 거랑 일치하지 않으니까요.
 
엄마는 잘 웃고 갑자기 노래를 부른다거나 춤을 추는 낙천적이고 신나게 사는, 조금은 별난 사람. 하지만 미디어를 엄청 신뢰해서 지진 날 때도 신문에서 괜찮다고 하니까 괜찮구나 하더라고요. 엄마는 아빠가 회사를 그만 다니고 싶다고 하면, 65세 정년까지 계속 해서 돈 벌라고 해요. 아직 내가 졸업 안 해서 돈이 필요하니까요.
 

퍼: 아버지는 하마무에게 하고 싶은 거 하라고 하지만 정작 본인은 아직 회사 다니시잖아요. 모순되는 부분인데, 그걸 보면 어떤 마음이 들어요?
 
하: 자주 싸워요. 또 아빠 회사가 <히타치>라는 대기업인데, 그곳이 대기업이 될 수 있었던 이유가 식민지 시대에 조선 노동자들을 끌고 가서 광산에서 강제 노동을 시켜 돈을 많이 벌었기 때문이거든요. 그런 점에 대해서 아빠에게 묻지만, 어쩔 수 없다고만 하세요.
 

퍼: 아빠가 회사를 못 그만두는 이유는 뭐예요?
 
하: 아빠도 일하면 할수록 몸이 안 좋아지는 거 아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들 때문에 못 그만두죠. 나도 아빠가 농사짓고 싶다고 하면 들어주고 싶기는 하지만 대학도 다녀야 하니까 고민이 되죠.
 
사실 (전반적으로) 사이가 좋지는 않아요. 서로 쑥스러워 하는 관계라서 고맙다는 표현도 거의 안 해요. 오빠들과도 거의 연락 안 해요. 가끔 전화하면 왜 전화했냐고, 전화비 나가니까 용건 없으면 하지 말라고 해요. (일동 웃음)
 

퍼: 집에서 하마무의 편은 누구였어요?
 
하: 집에서 기르던 닭. 근데 키워서 먹어버렸어요. (일동 웃음)
 

퍼: 이런 이야기하는 거 부끄러워요?
 
하: 부끄러워요. 내가 그린 그림을 보여줄 때도 그래요. 그림은 마음속을 다 보이는 느낌, 벌거벗은 느낌이에요. 하지만 대학에 들어가면서부터 부끄러워도 마음속을 표현하는 게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퍼: 왜요?
 

하: 누군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에게 나 자신을 보여야 하니까요.
 
 

 
 

고민하며 살아가기

 
퍼: 그럼, 사랑은 무엇일까요?
 
하: 예전에 수업 시간에 사랑이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던졌었는데 서경식 선생님이,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의 등을 찢어서 그 안으로 들어가서 살고 싶은 감각이라고 이야기했었어요. 그러면서 너희들은 그런 적 없냐고 물으셨지요. 선생님은 진지하게 물어봤는데 애들은 다 웃고 말았어요.
 
퍼: 그 얘기 들을 때 기분이 어땠어요?
 
하: 당시에는 선생님처럼 덩치가 큰 사람이 다른 사람의 몸에 들어가다니! 상상해보니까 너무 웃겼어요. 나는 좋아하는 사람이 나타나게 된다면 너무 먹어버리고 싶을 것 같아요. 아기들을 보면 먹고 싶지 않아요?
 
퍼: 하하하, 하마무는 먹는 쪽이네요.
 
하: 고양이를 안고 있으면 너무 귀여워서 입에 넣어버리고 싶은 느낌이 있어요. 그러고 보면 결국에는 연애조차도 자기중심적인 것 같아요. 선생님은 섹스란 점막을 접촉하고 싶은 욕구라고 했어요. 키스도, 섹스도, 그 사람의 몸으로 들어가고 싶은 욕구라고요.
 
퍼: 사랑하는 사람을 먹거나 그 속으로 들어가는, 그 한 몸이 되어버리는 이미지를 떠올려 보니 아까 하마무가 했던 이야기들이 떠올랐어요. 다른 사람의 슬픔을 자신의 것처럼 느끼고 싶다는 소망, 내가 그 사람이 아니어서 똑같이 느끼지 못하는 것에 대한 슬픔. 근데 왜 등이지, 가슴이 아니고? (일동 웃음)
 
하: 왠지 등이면 들어가는 순간 완전히 일체화되어 버리는 것 같지 않아요? 얼굴도 딱 맞춰지고요. 하지만 나는 성욕이 본능이라는 생각은 믿지 않아요. 학습되었기에 성욕이라고 하면 그려지는 장면, 정의된 게 있다고 생각해요. 사랑하면 먹어서 하나가 되고 싶은 욕구는 이해하지만 그게 성욕이라고 불리는 것은 이해가 가지 않아요.
 
퍼: 어떤 사람과 똑같이 느끼는 것, 교감하는 것이 중요해요?
 

하: 네. 그리고 누군가가 나에 대해 공감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으면 포기해버리는 게 아니라,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은 분명히 있으니까 거기서부터 시작해나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퍼: 마지막으로 인생의 화두랄까, 항상 자신에게 하는 질문이 무엇이에요?
 
하: 죽음? 다들 생각하면 힘드니까 일상생활에서는 죽음을 잊고 살아가지만 가끔은 상기해야하지 않나 싶어요. 나는 곧 죽을 것이라는 점에 대해서요. 또한 나라는 존재가 무언가의 죽음에 빚져서 살아가고 있다는 점도 항상 자각하고 싶어요. 인간은 고기든, 야채든 다른 생명을 죽이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잖아요. 그래서 음식을 남기면 필요 없는 살인을 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퍼: 죽음을 생각하면 어떤 점이 달라질까요?
 
하: 고민을 멈추면 안 된다는 것. 즐겁고 신나는 일만 계속 하다보면 뇌가 비어지고, 스스로 못된 사람이 될 수 있으니까요. 결국 생각을 멈추거나 포기하지 않는 태도, 그게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하마무를 만나고 난 뒤 기억에 남은 두 단어는 ‘소속’과 ‘배제’였다. 그녀는 소속된다는 것은 배제한다는 것과 동일한 행위임을, 그러므로 자신이 소속되어 있는 위치에서 외부의 타자를 연민하거나 도와주는 것이 문제를 해결하는 근본적인 방법이 될 수 없음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리고 끊임없이 자신이 속한 자리가 어디인지를, 그리고 사람들이 그녀를 어디에 소속시키는지를 인지하고자 노력하고 있었다.
 
뉴질랜드에서 공부하고 있는 친구에 비해 한국에서 공부하는 자신이 ‘비겁’하게 느껴진다고 말하지만, 과연 한국에서 ‘일본인’으로 소속된 그녀가 어떤 배제와 만나게 될지 나는 모르겠다.
 

“나에게는 ‘-라고 불린다’는 것, 범주에 한정시킨다는 것은 위험한 민족주의 또는 상상의 공동체와 연결돼요. ‘일본문화’라는 것이 원래 존재하는지도 모르겠고 또한 계속 변화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도 존재하지 않는 상상의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세계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그 중에서도 ‘배제된 사람들’을 만났던 하마무는 지금 한국에서 두리반과 카페마리를 지키고 있는 사람들을, 강제 징용된 할아버지를, 위안부였던 할머니를 만나고 있다. 다른 사람의 슬픔을 이해하기 위해 혹은 자신의 슬픔을 잊기 위해 그림을 그리고, 시를 쓰는 그녀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배제하는 자’의 폭력과 ‘배제당하는 자’의 슬픔, 그 사이 어디라도 존재할 수 있는 그녀는. 혹은 우리는.  
 
 
p.s. 나 역시 그녀를 다른 사람에게 소개할 때, ‘일본인 친구인데 서경식 선생님 제자래’라고 해왔다. 이 자리를 빌어 하마무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그리고 자신이 무의식적으로 ‘우월한 일본인’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닌지 의심하게 되고, 이런 생각이 괴롭지만 끝끝내 그 의심을 멈추지 않겠다고 말하는 그녀에게 건투를 빌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