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MBC에서 ‘에어시티’라는 드라마를 방영한 적이 있다. 당시, 유명스타들의 출연으로 화제가 됐을 뿐 시청률은 꽤 저조했는데, 나는 O.S.T까지 구입한 열혈시청자였다. 그 드라마의 배경이 공항이었기 때문이다. 출연 배우와 스토리에 상관없이 나는 단순히 공항을 보기 위해 그 드라마를 챙겨보았다. 공항은 언제나 나에게 설렘의 공간이었고, 그 설렘은 아마도 ‘떠남’에 대한 기대였던 것 같다. 공항에서 이제 곧 ‘여행’을 떠날 수 있다는 기대.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떠남, 여행에 대한 기대는 대부분 ‘꿈’에 머물러 있다. 여행을 떠날 이유는 ‘여행을 하고 싶은 마음’ 하나인데, 현실 속에서 여행을 떠날 수 없는 이유는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그런 내 앞에서 이렇게 말하는 이가 있다.
“가끔은 한국에 와도 계속 여행을 하고 있는 기분이에요. 지금 이렇게 한국의 한 카페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도, 순간적으로 내가 지금 이탈리아의 어느 카페에 있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거든요.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고요. 이렇게 제 생활공간의 경계가 불분명해지는 순간순간이 있어요.”
처음에는 이게 웬 배부른 소리인가 싶어서 얄미웠다. 그리고 이내 부러워졌다. 마지막에는 궁금했다. 자신의 생활공간의 경계가 불분명해진다는 느낌이 어떤 것인지. 한국에 들어온 지 일주일 만에 다시 유럽으로 팀을 이끌고 떠나야 한다는 여행 인솔자 박영철 씨의 삶은, 늘 내가 상상하는 그 기대와 설렘으로 가득 차 있을까? 여행하는 삶을 사는 기분은 어떨까? 그래서 질문했다. 이런 당신의 삶이 행복하냐고, 이런 당신의 삶에 만족하냐고. 지금부터 그 대답을 들으러 가려 한다.
1. Tour Conductor 가이드
퍼: 여행 인솔자와 관광 가이드의 개념이 조금 헷갈리는데요.
박: 가이드는 짧은 기간 동안 관광객들의 여행을 총 책임지는 직업이죠, 관광 안내까지 모두요. 반면에 인솔자는 여행자들에게 단순히 도시와 도시 간 이동과 숙소까지의 안내만 도와주는 사람이라고 보시면 돼요.
퍼: 인솔자가 가이드에 비해서 하는 일이 더 편해 보이는데요?
박: 그렇게 보일 수도 있죠. 그런데 가이드는 일단 여행 일정도 인솔자에 비해서 짧고, 이동하는 동안에도 전용 이동수단이 있으니까, 체력적으로는 더 편할 수 있어요. 인솔자는 야간열차타고 여행 기간 내내 그 루트 전체를 사람들과 함께 움직이거든요.
퍼: 가이드는 인솔자의 일을 병행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인솔자는 가이드의 일을 하기에는 조금 부족하다는 생각도 들어요. 인솔자에 비해서 가이드가 직업적으로 더 전문적인 영역 인가요?
박: 가이드가 직업적으로 좀 더 전문적이라는 점은 맞아요. 하지만 저는 인솔자 일이 뭔가 아마추어적인 느낌이라서, 더 즐겁고 좋아요.
퍼: 아마추어적인 느낌이요?
박: 그게, 인솔자는 가이드에 비해서 함께 여행하고 있는 사람들과 좀 더 동등한 위치에 있는 느낌이에요. 가이드는 사람들에게 다가갈 때도 좀 더 직업적인 부분이 생길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의무적으로 쇼핑 코스를 가야하고, 팁을 받아내야 하는 그런 게 있으니까요. 이 일은 그런 부분에서는 자유롭죠.
퍼: 아, 차이를 조금 알겠네요.
박: 그리고 가이드는 아침에 출근해서 저녁에 퇴근하는 직장인의 느낌이 있는데, 인솔자는 출퇴근한다는 기분이 덜해요. 퇴근을 하고나서도 내 생활을 충분히 누릴 수 있는 느낌이랄까요. 가이드가 스스로 그 일에 얽매여 있다는 느낌이 좀 더 강하죠.
퍼: 그럼 인솔자는 보통 가이드처럼 여행사에 소속돼서 일하지 않나요?
박: 정기적으로 일을 위해서 여행사와 같이 일하는 경우가 많죠. 저도 현재 N여행사와 일을 같이 하고 있고요. 그런데 기본적으로 여행 인솔자는 프리랜서의 개념이라서, 자신이 일을 하고 싶을 때만 일하면 돼요. 제안이 들어와도 스스로 일을 안 하고 싶으면 안 하는 거죠. 대신 수입이 좀 줄어드는 건 감안해야겠죠.
퍼: 보수는 어떻게 받으세요? 해외에 나갈 때마다, 건당으로요?
박: 네. 건당으로 받아요. 그리고 단체배낭 프로그램이 2,3,4주 이렇게 기간이 다양하게 있거든요. 기간이 길수록 아무래도 많이 받겠죠? 그나마 국내에서는 지금 N여행사가 사계절 내내 팀을 꾸준히 만들어서 내보내거든요. 다른 곳에 비해서 비교적 저는 안정적으로 일을 하고 있는 편이죠.
퍼: 단체배낭 프로그램은 개인 배낭여행 프로그램에 단지 인솔자가 따라간다는 점만 다르다고 이해하면 되죠?
박: 네, 그렇죠. 기간별로 정해진 도시에 머무는 동안 자유롭게 개인적으로 여행을 하고, 그 후에 다른 도시로 이동할 때만 저와 함께 한다고 보시면 돼요.
퍼: 인솔자가 출국하기 전에 따로 해야 하는 일이 있나요?
박: 출국하기 한 5일 전쯤에 팀을 모아서 사전 미팅을 한번 해야 해요. 기본적으로 여행을 하는 데 준비해야 하는 것들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는 형식으로요.
퍼: 그 외에 또 다른 일은요?
박: 출국 전까지 수시로 개인적으로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부분에 대해서 답변을 주고요. 여행 당일에는 공항에 미리 가서 항공권 체크도 하고 그래요.
퍼: 올해는 특히 많이 바쁘신 것 같던데.
박: 올 초부터 지금 5월 중순까지 4번을 나갔으니까, 이번 해는 유난히 바빴네요.
퍼: 그렇게 바빴던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박: 나가는 팀 구성에 있어서 남녀비율이 상당히 중요한데요. 여행사 입장에서는 싱글 베드로 방을 만들면 손해니까, 될 수 있으면 더블로 맞추려고 하거든요. 그래서 팀에서 홀수로 남는 성(性)이 어떠냐에 따라 남자 인솔자, 여자 인솔자가 결정돼요.
퍼: 그럼 이번 해에는 유난히 남자가 홀수로 많이 남았나 보군요.
박: 그렇기도 하고, 또 꼭 방 문제만이 아니더라도 어려운 팀을 맡게 돼서 나가게 되는 경우도 있어요.
퍼: 어려운 팀이라면?
박: 여행 루트가 좀 복잡하다거나, 혹은 지중해 지역 경험 인솔자는 그리 많지 않거든요. 그럴 때는 여행사에서 아무래도 경험이 많고 믿을만한 인솔자를 원해요. 또 팀을 받다가 좀 까다로운 사람이 있다 싶으면 그 팀을 인솔해 달라는 연락이 오기도 하고요.
2. boarding pass check – T.C 출발 전
퍼: 여행 인솔자 일은 어떻게 시작하신 거예요?
박: 2002년 여름에, 여행 동호회에서 알게 된 선배의 권유로 이 일을 처음 시작했어요.
퍼: 여행 동호회 활동을 하셨어요?
박: 네, Daum 카페에 유럽배낭여행이라고 있어요. 2000년 말쯤 여행 준비 때문에 이 카페를 알게 됐어요. 그 당시에 이 카페가 규모나 활동 면에서 아마 다섯 손가락 안에 들었던 것 같아요.
* 유럽배낭여행 카페 바로가기
퍼: 좀 유명한 여행 동호회였네요.
박: 제가 기억하기로는 2000년에서 2002년 사이에 각종 인터넷 동호회가 한창 활발했거든요. 이 카페도 2000년에 만들어져서, 2001-2002년 여름 오프라인 정모 때는 많이 오면 120-150명까지도 모이고 그랬어요.
퍼: 요즘에도 동호회 사람들끼리 정모도 하고 그러나요?
박: 정모를 하긴 하는데, 오래된 회원들끼리의 친목 모임 성격이 강해졌죠. 지금은 제가 그 카페 대표로 있어요. 뭐 말이 대표지, 그냥 카페지기인 셈이죠. 카페 회원 수나 활동 내용도 예전만 못 한 것이 사실이고요.
퍼: 그래도 평회원으로 시작해서 제일 윗자리까지 올라가셨네요.(웃음) 그런데 2000년도에 여행은 어디로 갈 계획이었나요?
박: 제가 그 때 첫 직장을 그만두고 지중해 지역으로 여행 갈 계획을 세우고 있었죠.
퍼: 어떤 회사에서 일 했었는지 궁금한데요?
박: 1999년도에 대학 졸업하고 별 고민도 없이, 바로 균을 배양하는 배지회사에 들어갔어요. 그곳에서 저는 배지 생산을 위해서 원료를 배합하는 일을 했었죠.
퍼: 지금 하시는 일을 봤을 때는 전혀 예상할 수 없는 전직인데요? 그런데 회사는 왜 그만두시게 됐나요?
박: 그곳이 제 첫 직장이었는데, 1년도 못 채우고 회사를 나왔어요. 일단 직장 상사와 잘 안 맞았던 것도 있었고. 더 큰 이유는 제가 회사에 들어가고 나서야 내가 정말 뭘 하고 싶은지에 대해서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회사를 그만두고 ‘여행’을 떠나자 생각했죠.
퍼: 그럴 때 ‘여행’을 가려고 생각한 것을 보면, 원래부터 여행을 많이 다니셨나 봐요?
박: 아니요. 사실 그 때까지는 여행에 그렇게 큰 관심이 없었어요. 이 여행이 제 인생의 첫 해외여행이었어요.
퍼: 그럼 박영철 씨의 첫 여행에, 동호회에서 얻은 정보는 도움이 좀 됐나요?
박: 정보를 모아놓은 종이를 여행 당일에 집에 놓고 가는 바람에 그렇게 실질적인 도움은… 그래도 기본적인 정보를 얻는 데는 도움이 됐죠. 그렇게 여행을 다녀온 후에 동호회 활동을 더 열심히 했어요.
퍼: 그 때부터 동호회의 대표가 되기 위한 사전 작업을 시작하신 건가요?(웃음)
박: (웃음) 그런 건 아니고요. 막상 여행을 다녀오니까, 여행에 대해 관심이 더 많아지고 여행이 더 좋아지더라고요. 그래서 오프라인 모임에 자주 참석했고, 서로 여행 다녔던 이야기를 추억하면서 공감대를 쉽게 형성했어요. 덕분에 사람들하고 많이 친해졌죠.
퍼: 처음 만난 사람이라도 나랑 같은 곳을 여행한 경험이 있으면, 금방 친구가 되고는 하잖아요. 공감대 형성으로 역시 ‘여행’이라는 키워드만한 것도 없죠. 당시에 인솔자가 되기 위한 특별한 조건은 없었나요?
박: ‘유럽여행 유경험자’ 이것 하나였어요. 여행은 이론이 아닌 실전이니까, 경험 있는 사람이 필요했던 것이죠. 그 사람들에게 현지에 가서 해야 할 일을 간단히 사전 교육시켜서 내보냈어요.
퍼: 그 전에 박영철 씨는 여행 인솔자가 무엇인지 알고 계셨나요?
박: 아니요, 제가 이 일을 시작한 당시만 해도 여행 인솔자는 지금보다 더 생소한 개념이었어요. 저도 설명을 듣고 나서야, 무슨 일을 하는지 알았죠. 그런 걸 다 떠나서, 저는 처음 이 일을 제안 받았을 때 단순히 ‘여행’을 갈 기회가 생겼다는 그 사실 자체가 좋았어요.
3. fasten your seat belt – T.C 출발
퍼: 인솔자로써 처음 접해본 일은 어땠나요?
박: 처음이라 긴장을 많이 했죠. 아무래도 내가 다른 사람들의 전체 여행 스케줄을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으니까요. 그래도 ‘여행’을 떠나기는 하는 거잖아요.
퍼: 일을 하러 간다는 느낌이 아니라, ‘여행’을 떠난다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는 게 참 특이하네요.
박: 물론 일을 하러가는 것이기는 했지만, 처음 일을 시작할 때는 여행을 떠날 수 있다는 기대도 컸어요. 이 일의 매력이기도 하죠. 그런데 지날수록 아무래도 여행보다는 일의 느낌이 강해지는 것 같아요.
퍼: 뭔가 안타까운 것 같아요. 여행이 일이 된다는 느낌이. 궁금하기도 하고요.
박: 그냥 이 상황에 익숙해지는 거죠. 내가 하는 일이 이런 것이라는 느낌이요. 그래도 이 일은 저랑 처음부터 잘 맞았던 것 같아요. 사람들이 그러더라고요. 첫 인솔팀 데리고 나갔다 오면 ‘이게 내가 할 일이구나, 아니구나.’를 딱 알 수 있다고.
퍼: 박영철 씨는 그럼 처음부터 이 일이 내가 할 일이구나를 아신 거네요?
박: 그렇죠. 한번은 이동 중에 기차를 한번 갈아타야 했던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저는 이 기차가 그 목적지까지 한 번에 가는 줄 알고 가만히 있었죠. 문득 느낌이 좀 이상하더라고요. 그래서 허겁지겁 사람들한테 기차에서 얼른 내리라고 하고 보니까, 그 기차는 다른 방향으로 쭉 가는 거였어요. 하마터면 전체 일정이 완전 꼬일 뻔했죠, 그것도 처음 맡은 팀부터.
퍼: 그렇게 뭔가 상황이 잘못되고 있다는 건 직감으로 아시는 건가요?
박: 네, 제가 이 일을 업으로 삼으려고 그랬는지, 정말 본능적으로 느껴지던데요.(웃음)
퍼: 아, 본능적으로요?(웃음) 이렇게 여행 인솔자까지 하게 만든, 박영철 씨의 첫 여행 이야기도 좀 들려주세요.
박: 저의 생애 첫 해외여행 루트는 그리스, 터키, 이집트, 이탈리아였어요. 처음으로 여행이 주는 약간의 긴장과 설렘의 공존을 경험했죠.
퍼: 그 긴장과 설렘의 공존의 느낌이 어떻던가요?
박: 처음 일주일 동안은 모든 것이 다 낯설어서 힘들더라고요. 설렘보단 긴장의 연속이었죠.
퍼: 그 긴장이 설렘으로 바뀌는 데는 오래 걸리셨나요?
박: 희한하게 딱 일주일이 지나고부터는 점점 행복해지기 시작했어요. 여행 안에서 모든 시간과 공간을 내가 자유롭게 설계할 수 있고, 또 그대로 실행에 옮길 수 있다는 사실이 저를 정말 행복하게 만들더라고요.
퍼: 자유, 여행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이죠. 그곳 사람들과 의사소통은 어땠어요?
박: 여행갈 때 한영사전 딱 하나 들고 갔거든요. 그러니 어느 정도의 의사소통이었는지 짐작 가능하죠. 대부분의 의사소통은 뭐 손짓과 발짓이었죠.
퍼: 그런데 신기한 사실은 그렇게 하는 대화가 다 통한다는 거죠.
박: 그러게요. 여행을 다니면서 문화유적지나 풍경을 보는 것도 좋았지만, 그렇게 몸으로 대화를 나눈 그곳의 사람들과 보냈던 시간이 기억에 더 오래 남더라고요.
퍼: 그럼 첫 여행에서 만났던 사람 중에 기억에 남는 사람이 있었나요?
박: 그리스 내륙의 시골 마을 마테오라에서 만난 한 독일인 친구요. 각자 혼자 여행을 하다가 서로 사진을 찍어주면서 친해졌어요. 그 친구는 차를 렌트해서 여행하고 있었고, 저는 대중교통을 이용했었죠. 그런데 마침 역으로 내려가는 버스가 끊겨서 그 친구 차를 얻어 타게 됐어요.
퍼: 주로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지 기억이 나요?
박: 그 당시 그 친구는 30대 중반이었는데, 집에서 빨리 결혼하라고 한다는 그런 지극히 사적이고 일상적이 이야기요. 외국인과도 서로 사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고, 또 결혼에 대한 부모님의 잔소리도 우리나라와 크게 다르지는 않다는, 이런 비슷한 구석을 발견하고 나니까 더 가깝게 느껴지더라고요.
퍼: 사실 직접 경험하지 않으면 모르고 살게 되는, 사람에 대한 편견이 종종 있죠. 독일인은 무뚝뚝하고 차가울 거라고 보통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실제로 제가 여행 중에 만난 독일인들은 참 친절하고 따뜻했어요.
박: 맞아요. 이건 어디까지나 제 기준일 수 있지만,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마음이 열려있고 또 여유로운 것 같아요. 제가 첫 해외여행에서 만난 사람들은 최소한 어느 정도는 다 행복해 보였어요. 그래서 생각했죠. ‘여행은 참 좋은 거구나!’
퍼: 여행하는 사람치고 나쁜 사람 못 봤다는 말도 있잖아요.
박: 그건 아무래도 여행을 하려면 여러 지역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니까 일단 친화력도 필요하고, 또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덜 계산적인 것 같아요.
퍼: 첫 여행에서 사기 같은 건 안 당하셨나요? 보통 첫 여행에서 이런 경험 많이들 하잖아요. 박영철 씨도 왠지 사기 좀 당해 본 얼굴이신데요?(웃음)
박: 처음 여행하는 사람치고 그런 경험 없는 사람도 드물지 않나요? 제가 꼭 그렇게 생겼다기보다는.(웃음) 이집트에 처음 도착했을 때, 그 가장 흔하다는 택시 합승 바가지요금을 당한 것을 시작으로, 투어 프로그램 비용까지 사기를 당했죠. 뭐 이런 경험을 통해서 여행에 대한 팁을 쌓아가는 것 같아요.
4. traveling – 박영철 여행
퍼: 저는 항상 궁금했던 게, 저도 그렇고 주변 사람들도 그렇고 다들 왜 그렇게 ‘여행’을 가고 싶어 하는 걸까요?
박: 음… 누구나 자유롭고 싶지만, 현실은 그게 아니잖아요. 그래서 여행을 현실에서 벗어날 탈출구로 생각하는 것 같아요.
퍼: 여행을 하는 동안 나는 그냥 온전한 내가 된다는 느낌이 있죠. 사람들과의 관계도 여행을 가면 단순해지잖아요. 대리든 사장이든 이 여행 안에서 너와 나는 그냥 똑같은 여행객이니까요. 내가 짊어졌던 역할과 내가 있었던 공간을 벗어난다는 그 해방감, 자유가 주는 짜릿함은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박: 그리고 그게 곧 여행인거죠. 만날 같은 공간, 같은 사람들하고만 있을 때는 몰랐던 ‘또 다른 나’를 발견하게 되는 것도 사람들이 여행을 하는 또 다른 이유가 아닐까요? 가끔은 너무 바쁘게 살다가 잊고 살았던 정말 사소하고 작은 내 꿈들을 발견하기도 하잖아요.
퍼: 그럼 박영철 씨는 여행 인솔자 일을 하면서 여행도 많이 하셨나요?
박: 여행은 온전히 내 몸과 마음에 휴식을 주는 것이어야 하는데, 인솔자 일을 하면서 그러기는 쉽지 않아요. 개인적으로 여행을 한다고 해도, 일단 정해진 스케줄도 있고, 사람들에 대한 책임도 있으니까요.
퍼: 저는 막연하게 인솔자 일을 하면 더 많은 곳을 여행할 수 있어서 참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아닌가 봐요?
박: 평범한 사람들에 비해서 여행을 많이 할 수 있기는 하죠. 저도 이 일 시작하고 처음에는 유럽지역 여기저기 많이 돌아다녔던 것 같아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는 그냥 그 도시 안에 머무는 시간이 늘더라고요.
퍼: 여행이 일상이 되면 좀 지겨워져서 그런 건가요?
박: 그런 건 아니고요. 인솔자에게 체력은 굉장히 중요하거든요. 저는 이번 한번으로 여행이 끝나는 사람이 아니니까, 될 수 있으면 체력을 아끼기 위해서 쉬는 편이예요. 또 지금은 내 개인 여행을 다닐 때 혹시 생길지도 모르는 변수를 같이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내가 여행을 갔다가 제 시간에 못 돌아오면, 골치가 아파지니까요. 그래서 놀더라도 동네에서 놀게 되더라고요.
퍼: 그렇게 동네에서 놀다보면, 사람들과도 알고 지내게 되고 그러지 않나요? 비교적 정기적으로 같은 도시, 같은 장소를 방문하시니까. 저녁에 동네 pub에 들러서 맥주 한잔 마시고 그러다보면 그 가게 주인과 친구가 되는, 뭐 그런 영화나 드라마에서 나올 법한 상황이 생기지는 않나요?(웃음)
박: (웃음)꼭 그렇지만은 않은데. 유럽은 워낙 많은 여행자들이 드나드는 곳이니까요. 사실 숙소도 매번 같은 게 아니고, 저도 어쨌든 잠깐 머물렀다가 떠나는 사람의 입장이라서.
퍼: 아, 그런가요?(웃음) 그럼 동네에서 보통 뭐하고 노시나요?
박: 거리를 좀 많이 걸어 다녀요. 커피숍에서 커피마시고, 혼자 조용히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요. 반면에 비교적 오래 머무는 도시에서는, 요즘도 미리 계획한 곳이 있으면 시간 내서 다녀오기도 해요.
퍼: 특히 기억에 남는 여행지가 있나요?
박: 저는 이탈리아 시골 지역이 가장 좋았어요. 문화 유적도 많고, 고즈넉한 그 풍경들도 정말 아름답고요. 여행을 많이 다니다보면,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없는 곳을 찾아다니게 되거든요.
퍼: 책에 소개되지 않은 곳 위주로요?
박: 네. 이탈리아 남부에 ‘아시시’와 ‘오르비에또’라는 도시가 있는데, 여긴 사람들에게 비교적 덜 알려진 지역들이거든요. 관광객 자체가 많지 않은 곳이라서, ‘내가 정말 여행을 하고 있구나!’라는 느낌을 줘서 참 좋았어요.
퍼: 좀 더 구체적으로 특히 어떤 느낌이 좋았던 거예요?
박: 골목 풍경이 주는 느낌이요. 또 그 골목의 건물들과 그 사이에 내리쬐는 햇빛의 느낌도 정말 아름다웠어요.
퍼: 아…
박: 아시시는 언덕 위에 마을이 형성되어 있어요. 거기에 교회가 있는데, 그 풍경이 정말 예뻐요. 오르비에또는 역에 도착을 해서 케이블카나 산악열차를 타고 언덕을 올라가야 마을이 나와요. 정말 멋진 마을이죠!
퍼: 그럼 혹시 앞으로 가보고 싶은 여행지도 있나요?
박: 글쎄요, 유럽 지역 인솔 일을 하다보니까 의외로 아시아 지역 여행을 많이 못했어요. 재작년에 태국하고 라오스 다녀온 걸 빼면.
퍼: 듣고 보니 정말 그러네요. 그럼 아시아 쪽을 더 여행해 보고 싶은 건가요?
박: 네, 기회가 된다면 인도나 네팔을 꼭 한번 가보고 싶어요. 언제부터 계획은 했는데, 계속 못 가서.
퍼: 보통 사람들이 인도나 네팔은 여행자라면 꼭 가봐야 할 곳이라고들 말하잖아요. 그 이유가 뭘까요?
박: 일단 그곳에는 여행자들이 모이고, 그곳 사람들의 모습에 우리를 비춰봤을 때 뭔가 좀 더 특별한 면이 있어서가 아닐까요?
퍼: 흔히들 이야기 하는 아직 때가 덜 묻은, 그런 순수한 모습을 간직한 특별함이요?
박: 그것도 그렇지만, 저는 ‘시간을 천천히 쓰는 방법’에 대한 그들의 철학이 좀 더 특별한 것 같아요. 우리가 볼 때 그들은 지나치게 여유가 흘러넘치죠. 그런 그들에 비춰보면서 우리는 스스로 자기 자신의 시간을 되돌아보고, 또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렇게 스스로 시간을 천천히 쓰는 방법을 배우는 거죠.
퍼: 박영철 씨는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에게 보통 어떤 말을 해주세요?
박: ‘일단 가서 직접 부딪혀라’라는 말이요. 이 말이 여행에는 가장 필요한 말 같아요. 어떤 깨달음이든 자신이 직접 경험해야만 얻을 수 있는 것이니까요. 그리고 이왕이면 혼자서 여행을 떠나보라고 말해줘요.
퍼: 그렇게 되면 박영철 씨와 같은 인솔자는 별로 필요 없겠는데요?(웃음)
박: (웃음)제가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모두 다 제 말을 듣는 것은 아닐 테니까요. ‘이곳 사람들’이 아닌 ‘그곳 사람들’과 함께 해보는 경험은 필요한 것 같아요. 친구와 여행을 하면, 만날 친구하고만 이야기하고 또 외롭지도 않죠. 그런데 혼자 여행을 하면 달라요. 내가 먼저 다가가지 않으면 외롭고 또 답답하니까, 자연스럽게 ‘그곳 사람들’과 친구가 되죠.
퍼: 그러고 보면 여행은 ‘어디’를 가는가도 중요하지만, ‘누구’와 함께하는가도 참 중요한 것 같아요.
박: 그리고 여행 중에 ‘어디에 머무느냐’도 참 중요하죠. 호텔보다는 민박이나 유스호스텔에 묵는 것이, 보다 다양한 사람들과 ‘여행객’이라는 동등한 위치에서 만나기 쉬운 것 같아요.
5. Travel Conductor – T.C 여행
퍼: 여행 인솔자, 이 일의 매력은 무엇일까요?
박: 음.. 자유롭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인 것 같아요. 일을 하고 안 하고의 선택부터, 여행을 가서 내가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한 결정이 온전히 ‘나’에게 달렸잖아요. 또 다양한 사람들과 문화를 수시로 접하며 산다는 점도 아주 매력적인 부분이죠. 그리고 단체배낭 프로그램을 통해서 만나는 새로운 인연이요.
퍼: 단체배낭은 보통 처음 여행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선택한다고 들었어요.
박: 네, 처음 여행을 하다보면 여행 자체도 생소한데 이것저것 신경 써야 할 일들이 많잖아요. 그 중에서 가장 신경 쓰이는 이동과 숙소 부분을 인솔자가 대신 해주니까요.
퍼: 그런 점이 한편으로는 여행을 하면서 겪을 수 있는 좌충우돌 경험의 기회를 뺏는다는 느낌도 드는데요?
박: 여행을 평생 한번만 간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죠. 그런데 저는 첫 번째 하는 여행과 두 번째 하는 여행은 분명 다를 거라고 생각해요. 첫 번째 여행에서 느끼는 막연한 두려움을 인솔자가 조금 덜어주면, 두 번째 세 번째 여행에서는 이번과는 또 다른 새로운 경험을 좀 더 마음껏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퍼: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요. 단체배낭의 인원은 보통 몇 명인가요?
박: 15-20명 정도. 각 지역별, 직업별로 가지각색 다양한 사람들이 한 팀이 되죠.
퍼: 특별한 기회가 아닌 한, 쉽게 모을 수 없는 사람들을 그렇게 한꺼번에 만나는 것도 참 새로운 경험이네요.
박: 그리고 그렇게 만난 사람들이 3-4주 동안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친구가 되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도 참 흥미로워요.
퍼: 살다보면 점점 만나는 사람의 범위가 좁아지잖아요. 직장생활을 하다보면 더더욱. 그래서 요즘 사람들이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이 그리워서, 트위터나 페이스북과 같은 소셜 네트워크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가끔 하거든요.
박: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점에서 저는 직업상 매번 새로운 사람들을 직접 오프라인에서 만나 친구가 될 수 있으니, 정말 행운인거죠.
퍼: 인솔한 팀 중에 특별히 기억에 남는 팀이 있나요?
박: 보통 술을 많이 먹는 팀 같은 경우가 좀 웃기죠. 여름 팀이 특히 그런 경우가 많아요.
퍼: 팀 별로 계절의 영향을 받을 것 같아요. 여름이나 겨울은 아무래도 학생들이 많이 몰릴 테니까요.
박: 맞아요. 봄, 가을은 보통 혼자 조용히 생각을 정리하시는 분들이 많고, 여름에는 바캉스를 즐기러 오는 기분으로 오시죠. 작년 여름에 갔던 팀 중에 직장인이랑 대학생들이 딱 반반 섞여 있었던 적이 있어요.
퍼: 그럼 보통 패가 딱 갈리지 않나요? 직장인 대 대학생으로.
박: 그럴 것 같은데, 그 두 그룹이 서로 술 마시면서 친해진 거죠. 급기야는 기차역에서 한 시간 정도 기차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던 적이 있는데, 거기서 직장인들이 대학생들한테 폭탄주 제조법을 알려주고 있더라고요. 기다리면서 그렇게 같이 또 한잔하고.
퍼: 유럽은 맥주 값이 물 값보다 싸니까, 술 좋아하는 사람들한테는 천국이죠.
박: 아, 그리고 이야기하다 보니까 계속 생각나는데, 요즘에는 가족들이 함께 여행을 오는 경우가 늘어나요. 한번은 엄마와 딸이 같이 왔는데, 여행 내내 둘이서 많은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참 보기 좋더라고요.
퍼: 혹시 인솔자 생활을 하면서 예기치 못한 상황이 발생하지는 않나요?
박: 꽤 자주 생기죠. 여행 프로그램마다 정해진 루트가 있거든요. 그런데 그 루트를 또 장담할 수는 없는 게, 야간열차가 있다가 없어지기도 하고, 갑자기 파업을 하기도 해요.
퍼: 박영철 씨도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있나요?
박: 있었죠. 저희가 타고가야 할 야간열차의 량 하나가 통째로 없어지는 경우가 있었어요. 저희가 예약해놓았던 해당 량이 갑자기 고장이 나서 그 량을 빼고 기차가 도착한 거죠.
퍼: 그럼 그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해요?
박: 기사 회사 측에서 해당 량을 컴파트먼트 1등석 시트로 교체해서 왔어요. 원래 예약했던 ‘쿠셋’칸은 밤새 누워서 이동할 수 있는데, 이 1등석 시트는 앉아서 가야하거든요. 그래도 일단 일정을 맞춰야 하니까 그거라도 타고 가는 거죠.
퍼: 이런 경우에 대비해서 인솔자들은 수시로 변경 사항들을 체크해야겠네요. 또 순발력도 있어야 할 것 같아요.
박: 인솔자는 확실히 상황대처능력이 좋아야 해요. 사람들 인솔하려면 목소리도 좀 커야 하고, 빠릿빠릿하게 움직여야 하고요. 또 이런 상황에서 내 의사를 상대에게 전달할 수 있는 정도의 영어 실력도 필요하고요.
퍼: 유럽에는 관광객을 노리는 소매치기들이 많잖아요. 실제로 소매치기를 당한 팀원도 있었나요?
박: 소매치기를 당하거나 물건을 잃어버리는 경우는 더러 있죠. 그 때는 같이 경찰서에 가서 Police Report를 작성해야 해요. 그래야 여행자 보험이 적용되거든요. 그런데 이런 경우는 소매치기를 당한 것보다, 그 일로 인해 이 여행 자체를 두려워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더 문제예요.
퍼: 더구나 해외에서 그런 일을 당하면 더 막막하고 심난하죠.
박: 이럴 때는 제가 하루 정도 함께 다니면서 그 두려움을 없애주려고 노력해요. 여행에 관한 이야기도 많이 나누고요. 다음 날 그 팀원이 다시 즐겁게 여행하는 모습을 보면, 참 뿌듯하죠.
퍼: 인솔자는 일종의 여행 보험 같은 거네요. (웃음) 뭔가 긴급한 일이 생겼을 때 나타나 처리해주는.
박: 그렇다고 인솔자가 사람들이 부탁하는 모든 일을 처리해 주는 보험맨은 아니에요. 될 수 있으면 좋은 게 좋은 거니까 해드리고 싶지만, 그 중에서도 제가 처리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이 있거든요. 그럴 때는 구분해서 정중하게 거절하죠.
퍼: 인솔할 때, 이것만은 철저하게 지킨다 하는 원칙이 있나요?
박: 약속시간이요! 이게 이동과 관련된 일이니까, 기차나 차 시간에 늦으면 절대 안 되거든요. 일정 전체가 꼬여버리니까. 그래서 약속 시간은 여러 번 강조하죠.
6. Turbulence – T.C 고민
퍼: 여행 인솔자라는 직업은 여자와 남자 중 어느 쪽이 더 많나요?
박: 보통 여자와 남자 비율이 8:2정도 돼요. 여자가 훨씬 많죠. 사실 우리나라에서 남자가 이 여행 인솔자라는 직업을 유지하기에는 여러 가지 제약들이 따르죠.
퍼: 구체적으로 어떤 제약들이요?
박: 사실 여행 인솔자가 안정적으로 보장되는 장기적인 직업은 아니잖아요. 그래서 가족을 책임지는 ‘가장’의 삶을 살아야 하는 대한민국 남자들은 이 일이 하고 싶어도 막상 택할 때는 망설이게 되거든요.
퍼: 그렇겠네요.
박: 그래서 보통 이 일을 시작하려는 사람들은 처음부터 아예 투잡(two jobs)으로 이 직업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아요. 글 쓰는 일과 병행하거나, 대학원을 다니면서 여유 시간을 이용한다거나 하는 거죠.
퍼: 반면에 박영철 씨는 이 일 하나만 하고 계시죠?
박: 네, 저도 사실 처음에는 여행 동호회 사람들하고 책을 쓸 목적으로 이 일을 병행하자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 책 쓰는 일이 흐지부지 되면서, 지금 저한테는 이 일만 남아있죠.
퍼: 인솔자를 하다가 중간에 그만두는 사람도 있나요?
박: 인솔자 일이 처음에는 좋지만, 쭉 안정적이지는 않잖아요. 하다가 정기적으로 월급 받고 싶은 마음이 들면, 특히 여행사로 빠지는 사람들이 많아요. 아무리 그래도 저는 회사를 다시 들어갈 것 같지는 않아요.
퍼: 사실 박영철 씨 나이가 적은 나이는 아니잖아요. 박영철 씨와 같은 대한민국에 사는 30대 후반의 남자들의 평균적인 삶은, 보통 결혼해서 아이 한 둘은 있고, 직장에서는 차장 혹은 과장의 직책을 달고 있죠. 이런 대다수의 삶의 범주에서 살짝 비켜 서 있는, 자신에 대해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 적은 없나요?
박: 당연히 그런 걸 느낀 적이 없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일단 대다수의 사람들이 선택하지 않은 일을 선택한 사람들은, 자신의 일에 대한 자부심이나 그 일로 인해 얻는 행복이 자기 삶의 우선 조건이어야 하는 것 같아요. 자기 신념이 있어야 하죠.
퍼: 삶에 있어서 돈이 절대조건이 아니어야 한다는 말씀이신가요?
박: 그렇죠. 일단 돈이 삶의 목적인 사람들은 직장을 다니면서도 절대 만족할 수 없을 거예요. 따지고 보면 직장인들도 정해진 연봉에, 평생 돈을 벌 수 있는 액수가 한정적이잖아요. 이미 다 수치로 나와 있으니까요.
퍼: 그럼에도 사람들은 현실적인 조건을 핑계 삼아 돈을 좇게 되잖아요. 혹은 현실이 사람들을 그렇게 몰아가기도 하고요.
박: 제가 지금 제 인생을 돌아봤을 때, 남들에 비해서 후회가 적은 건, 어쨌든 현재 내가 행복하고 즐겁게 살고 있고, 또 남들보다 스트레스를 덜 받고 살고 있기 때문이에요. 현실적으로 냉정하게 바라보면 제가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은 아니죠.
퍼: 돈이나 명예, 남들이 말하는 그런 기준 안에서는 그렇죠.
박: 하지만 저는 적어도 정서적으로는 성공했다고 생각해요.
퍼: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30대 후반의 남자가 이런 마인드를 갖기란 사실상 힘들잖아요.
박: 음… 만약에 부모님께서 빚이 지셨거나, 지금 나에게 책임져야 할 가족이 있었으면 이 일을 이렇게 마음 편하게는 못 했을 것 같다는 생각은 들어요. 경제적으로 풍족하게 버는 직업은 절대 아니니까.
퍼: 결혼 문제에 있어서도, 부모님께서 별다른 말씀이 없으셨나 봐요.
박: 물론 걱정하시는 부분이 있으실 수도 있지만, 저희 부모님이 원래 좀 자식을 ‘내버려둘 줄 아는’ 분들이세요.
퍼: 어렸을 때부터 집안 분위기가 좀 자유로운 편이었나 봐요?
박: 네, 좀 그런 편이었죠. 사실 이 일을 하다보면 제 나이를 잘 잊어버리게 돼요. 직업의 특성상 제 나이를 굳이 상기시켜야 할 필요성을 못 느끼거든요. 한국 사회는 성 뒤에 붙이는 그 직위로 대충 그 사람의 나이를 가늠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이 직업은 그럴 일도 없고, 나이에 대한 압박이 없으니, 자연스럽게 결혼에 대한 압박도 없는 것 같아요.
퍼: 한국 사람이 나이를 잊고 살 수 있다는 게 한편으로는 참 부러운 대목인 것 같아요.
박: 10년 가까운 세월 동안 한국과 유럽 사이를 왔다 갔다 해서 그런지, 생긴 건 한국 사람인데, 그런 마인드는 유럽사람 같기도 해요.
퍼: 아무래도 같은 일을 오랫동안 하다보면 지루해지는 순간이 찾아올 것 같은데요.
박: 저도 올해 이렇게 바쁘기 전에, 한 일 년 전 쯤에는 이 일을 그만할까 생각했었어요.
퍼: 왜요?
박: 이 일이 여전히 좋기는 한데, 따지고 보면 이것도 쳇바퀴 돌아가는 것과 같거든요. 매번 같은 프로그램에, 같은 장소에. 자유롭게만 보이는 이 직업에도 나름의 고충은 있어요. 그래서 막연하게 제가 유럽에 자주 가니까, 그 경험과 조건을 활용할 수 있는 장사를 해볼까하는 생각을 했어요.
퍼: 이미 장사 쪽에 마음이 기운 것은 아니고요?
박: 제 생각이 아직 이렇게 두루뭉술한 상태인 걸 보면, 그건 아닌 것 같아요. 아직까지는 제가 지금 하고 있는 이 일보다 더 매력적이라고 느낀 일을 못 찾았어요. 나중에라도 그런 일이 생기면 저는 주저 없이 그 일을 선택할 것 같아요.
퍼: 그럼 직업에 대한 이런 위기의 순간을 박영철 씨는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박: 이 일이 갖는 장점은 그런 순간을 스스로 내가 원하는 조건들에 각각 다르게 적용시켜서, 다양한 변화로 만들 수 있다는 점이에요.
퍼: 다양한 변화를 만든다고요?
박: 인솔을 나갈 때마다 스스로에게 이번 여행의 컨셉을 정해주는 거예요. 사진을 찍어보겠다, 아니면 맛 집을 찾아다니겠다, 골목길을 걷겠다. 이런 특정한 주제를 정해 여행을 다니면서, 직업이 아닌 내 생활의 일부로 일을 끌어다 놓는 거죠.
퍼: 정말 이상적인 탈피 방법이네요.
박: 이런 방법을 사용할 수 있는 지금에 오기까지, 그 과정에서 나름 노력을 많이 했어요.
퍼: 평범하게 사는 다른 사람들이 누릴 수 있는 조건들을 기꺼이 포기한 대가가 그것인가요?
박: 그렇다고 볼 수 있죠. 안정된 직업과 수입을 포기하고, 또 그런 조건을 당연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지기까지 걸린 제 시간과 노력에 대한 일종의 대가죠.
7. landing – T.C 휴식
퍼: 어떻게 보면 박영철 씨는 한국에 돌아오는 것이 잠깐의 휴식과 함께 다음 번 일을 기다리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잖아요. 다른 사람들이 한국에서 안정된 삶을 살다가 여행으로 일탈을 꿈꾸는 것과는 반대로.
박: 그렇죠. 저는 반대로 한국에서의 시간이 쉬는 시간이고, 유럽으로 나가는 시간이 일하는 시간인 셈이죠. 그래서 한국에 있을 때는 될 수 있는 한, 잘 쉬려고 노력해요.
퍼: 어떻게 쉬는 게 잘 쉬는 건가요?
박: 저에게 잘 쉰다는 건, 집에서 맛있는 한국 음식 먹고, 잠도 푹 자고, 인터넷 하고, 텔레비전 보고, 책 읽고, 운동 하고 그런 거예요. 지극히 아주 평범한 일상을 보내는 거죠. 그렇게 저는 혼자 있는 시간도 즐기는 편이예요.
퍼: 만날 사람만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의, 조금은 의외의 모습인데요?
박: 이런 면은 인솔자 일을 하면서 생긴 부분이에요. 이 일을 하다보면 정말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잖아요. 그래서 오히려 혼자 보내는 시간이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거든요. 그렇게 스스로에게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줘야 한다고 느꼈어요.
퍼: 그럼 한국에 머무는 동안 친구들은 자주 만나는 편인가요?
박: 한국에 있는 내 사람들을 챙기는 일도 제게는 참 중요해요. 특히 저 같은 경우는 일 년의 반 정도를 외국에서 지내다보니까, 얼굴보고 이야기할 기회가 많이 없거든요. 이런 제 상황을 이제는 친구들도 다 아니까, 제가 먼저 연락을 안 하면 또 외국에 나가 있나보다 그렇게 생각해요. 그래서 더더욱 제가 먼저 연락을 해서 자주 만나자고 하는 편이죠.
퍼: 그렇게 보통 사람들과의 생활 패턴이 다르다고 느껴질 때, 소외감은 안 드세요?
박: 이 일이, 새로운 사람을 만나서 인간관계의 폭이 넓어지는 것 같은데, 다른 한편으로는 좁아지는 것 같기도 해요. 좀 아이러니하죠. 그럴 때는 저 혼자 진짜 휴식을 취하러 지방으로 여행을 가죠.
퍼: 인솔자로서의 책임을 잠시 내려놓을 수 있는 시간이겠네요. 인솔자가 하는 여행은 왠지 다른 사람들보다 더 특별할 것 같은데요?
박: 아니요, 오히려 그 반대로 더 편하게 여행하는 편이예요. 계절 따라, 음식 따라, 축제 따라, 갈 곳을 즉석에서 정하는 경우가 많아요. 안 가봤던 곳을 위주로요.
퍼: 올해에는 국내여행을 좀 하셨나요?
박: 5월 초에 진해 벚꽃 축제에 다녀왔어요.
퍼: 사람이 정말로 많았다고 하던데요?
박: 바로 이럴 때 이 직업이 정말 좋다고 느껴요. 평일 시간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으니까, 사람들이 없는 시간에 맞춰서 가면 되거든요. 전 여유롭게 올해의 진해 벚꽃을 즐기다가 왔어요.
퍼: 제대로 벚꽃 축제를 즐기셨겠네요.
박: 여행은 ‘언제’ 가는가도 참 중요하잖아요. 같은 장소라도 그 시간이 주는 느낌은 전혀 다르거든요. 그런 점에서 여행인솔자는 선택할 수 있는 ‘언제’의 폭이 상당히 넓어요. 여느 직장인들이 눈치 봐가면서 일 년에 휴가 며칠 쓰는 것하고는 분명 다르죠.
퍼: 여행 인솔자는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요소들이 참 많은 것 같아요.
박: 대신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은 온전히 자신의 몫이죠. 그 선택의 결과가 좋든 나쁘든.
퍼: 그럼 박영철 씨는 지금 자신이 선택한 지금 이 일에 대해서 만족하시나요?
박: 네, 아직까지는. (웃음)
“후회 안 할 자신 있어?”라는 질문과 “네 선택에 만족하니?”라는 질문의 차이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첫 번째 질문에 답은 딱 2개다. 후회를 하느냐와 후회를 하지 않느냐. 하지만 두 번째 질문에 대해 대답할 수 있는 선택의 폭은 상당히 넓다. 기냐 아니냐가 아닌, ‘얼마나’ 만족하는가에 대한 답. 지금까지 나는 ‘후회하느냐 안 하느냐’의 잣대로만 삶을 바라본 게 아닐까. 대학입시 때부터 아니, 어쩌면 그보다 훨씬 전부터 만족보다는 후회에 초점을 둔 삶을 살아야 한다는 압박을 받았던 것 같다.
박영철 씨에게도 선택에 대한 회의, 고민의 순간은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는 ‘자신의 삶’에 ‘만족’한다고 했다.
처음에는 한국과 이탈리아, 이 두 나라가 하나의 생활공간처럼 느껴진다는 그의 말이 부러웠다. 경계가 불분명해지는 그 순간을 나도 느껴보고 싶었다. 그런데 이제는 자신의 삶에 만족한다고 말하는 그가 부러워졌다. 단순한 여행 인솔자의 삶이 아니라, 여행 인솔자의 삶을 통해 스스로의 인생에 만족할 줄 아는 그의 여정이, 적어도 내 눈엔 행복해 보였다.
처음 내가 그를 향해 던졌던 질문, “이런 당신의 삶이 행복한지, 이런 당신의 삶에 만족하는지”에 대한 그의 대답은, “아직까지는 YES”였다. 아직까지는 Y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