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역방랑] ① 준가르를 찾아서

세상의 한 축이 사라졌다. 자연사의 법칙에 의한다면, 사라질 것은 사라져야 하는 것인지. 시대에 뒤떨어진 것들은 없어져야 하는지, 아니면 사라지지 않는 것이 종의 다양성에 기여하는지. 나는 아직 알 수가 없다. 우리의 판단과는 무관하게 한 세계는 사라졌다. 노마드라는 공허한 구호들이 난무하지만, 그 세계가 사라졌다는 것을 아는 이는 참 드물다. 사라짐에 대한 예의마저 이제 사치가 된 것일까? 언젠가는 우리도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을 것이다.

학살의 소문

 

열 살쯤 되었을 때 우리 집 소가 넘어졌다. 무엇을 잘 못 먹었는지 아니면 병이 들었는지, 자그마한 소년이 직접 본 짐승 중에서는 제일 큰 것이 넘어졌다. 그리고 일어나지 못했다. 그 때는 녀석이 다시 일어나지 못한다는 것을 절대로 인정할 수 없었다. 그 녀석은 그렇게 쉽게 넘어져서는 안될 존재로 보였다.

외양간 벽에 한 번 부딪히고, 또 땅에 떨어지는 소리가 울린다. 순간 사람들은 숨을 죽인다. 여물을 먹이던 일, 꼴은 베던 일, 엉덩이를 발로 차던 일들이 뒤죽박죽 떠오른다. 아무리 생각해도 발로 찬 것은 좀 심한 일이었던 것 같다.

아무리 동물을 싫어하는 사람이라도 코끼리가 쓰러지는 것을 보고는 당혹해 한다. 우리들 유전자 속에는 뭔가 큰 것들이 넘어지면 스스로를 돌아보도록 설계되어 있는 어떤 장치가 들어있는 듯하다. ‘뭔가 세상이 잘못된 것이 아닐까? 언젠가 우리들이 쓰러질 날이 오지 않을까?’ 삼겹살을 집어 올리거나 닭 발을 뜯으면서도 우리의 감각은 완전히 죽지는 않는다.

몇 해 전, 꽤나 유명한 책을 읽다가 어떤 학살의 기록을 보았다. 불과 두 세기 반쯤 전 초원에 살던 한 민족이 멸절되었다는 것이다. 아메리카가 아니라 아시아의 초원에서, 백인종에 의해서가 아니라 황인종에 의해서 같은 황인종이 멸절되었다는 것이다. 또 이런 학살의 명을 내린 이도 우리가 꽤 잘 알고 있는 건륭제(乾隆帝)라는 인간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이렇게 말했다는 것이다.

“이번 작전은 보통 때와는 다르다. 오이라트(준가르) 장령들을 하나하나 철저히 잡아 죽여서, 반란의 뿌리를 완전히 근절하라.”(<<청고종실록>>)

또 그 결과 이렇게 되었다고 한다. 

수 십만의 가구 중 천연두로 죽은 이가 열에 넷, 러시아와 카자흐 영토로 달아난 이가 열에 둘, 청군에게 죽은 이가 열에 셋이었다. 여자들과 아이들을 포상으로 (남에게) 주었고, 얼마간의 투항한 가구에게 둔전을 나누어 주었다. 이들을 빼면 수천 리 밖까지 오이라트의 천막은 하나도 없었다.(<<성무기>>)

그런대로 믿을 수 있는 어떤 자료는 군대에게 죽은 이들이 열에 다섯이라고 한다. 하지만 나는 믿을 수 없었다. 정말 인종 청소가 행해졌단 말인가? 중국 근대사에서 유혈극이야 수없이 많았지만 인종 청소는 없었다고 알고 있었다. 중국인들은 허풍을 잘 치지 않나? 그리고 어떻게 그런 중요한 일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를 수 있을까.

그런 일이 있었던가? 만약 정말 그런 일이 있었다면 그 오이라트 사람들은 무슨 잘못을 했던 것일까?

학살의 소문

 

열 살쯤 되었을 때 우리 집 소가 넘어졌다. 무엇을 잘 못 먹었는지 아니면 병이 들었는지, 자그마한 소년이 직접 본 짐승 중에서는 제일 큰 것이 넘어졌다. 그리고 일어나지 못했다. 그 때는 녀석이 다시 일어나지 못한다는 것을 절대로 인정할 수 없었다. 그 녀석은 그렇게 쉽게 넘어져서는 안될 존재로 보였다.

외양간 벽에 한 번 부딪히고, 또 땅에 떨어지는 소리가 울린다. 순간 사람들은 숨을 죽인다. 여물을 먹이던 일, 꼴은 베던 일, 엉덩이를 발로 차던 일들이 뒤죽박죽 떠오른다. 아무리 생각해도 발로 찬 것은 좀 심한 일이었던 것 같다.

아무리 동물을 싫어하는 사람이라도 코끼리가 쓰러지는 것을 보고는 당혹해 한다. 우리들 유전자 속에는 뭔가 큰 것들이 넘어지면 스스로를 돌아보도록 설계되어 있는 어떤 장치가 들어있는 듯하다. ‘뭔가 세상이 잘못된 것이 아닐까? 언젠가 우리들이 쓰러질 날이 오지 않을까?’ 삼겹살을 집어 올리거나 닭 발을 뜯으면서도 우리의 감각은 완전히 죽지는 않는다.

몇 해 전, 꽤나 유명한 책을 읽다가 어떤 학살의 기록을 보았다. 불과 두 세기 반쯤 전 초원에 살던 한 민족이 멸절되었다는 것이다. 아메리카가 아니라 아시아의 초원에서, 백인종에 의해서가 아니라 황인종에 의해서 같은 황인종이 멸절되었다는 것이다. 또 이런 학살의 명을 내린 이도 우리가 꽤 잘 알고 있는 건륭제(乾隆帝)라는 인간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이렇게 말했다는 것이다.

“이번 작전은 보통 때와는 다르다. 오이라트(준가르) 장령들을 하나하나 철저히 잡아 죽여서, 반란의 뿌리를 완전히 근절하라.”(<<청고종실록>>)

또 그 결과 이렇게 되었다고 한다. 

수 십만의 가구 중 천연두로 죽은 이가 열에 넷, 러시아와 카자흐 영토로 달아난 이가 열에 둘, 청군에게 죽은 이가 열에 셋이었다. 여자들과 아이들을 포상으로 (남에게) 주었고, 얼마간의 투항한 가구에게 둔전을 나누어 주었다. 이들을 빼면 수천 리 밖까지 오이라트의 천막은 하나도 없었다.(<<성무기>>)

그런대로 믿을 수 있는 어떤 자료는 군대에게 죽은 이들이 열에 다섯이라고 한다. 하지만 나는 믿을 수 없었다. 정말 인종 청소가 행해졌단 말인가? 중국 근대사에서 유혈극이야 수없이 많았지만 인종 청소는 없었다고 알고 있었다. 중국인들은 허풍을 잘 치지 않나? 그리고 어떻게 그런 중요한 일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를 수 있을까.

그런 일이 있었던가? 만약 정말 그런 일이 있었다면 그 오이라트 사람들은 무슨 잘못을 했던 것일까?

몽골은 어디에?

 

우루무치에서 지기 장용이 말한 바는 이랬다.

“지금 진짜 유목민은 거의 없고, 알타이에 가면 몽골인들은 만날 수 있을 거야.”

목장에 바둑판처럼 금이 그어진 이후로 실제로 목축은 있지만 유목은 없다. 알타이 산속에는 유목과 유사한 목축은 있을 것이다. 그래서 서북에서 동남으로 알타이 산록을 따라 내려왔지만 몽골 유목민을 만나는 일은 쉽지 않았다. 깊은 곳을 찾고 찾아서 만난 이들은 거의 카자흐인들이었다. 카자흐 양치기들에게 물으면 대답은 대충 이랬다.

“말로 이틀 거리면 닿을 수 있는데.”
“작년에 저 산 너머에 있다고 들었는데.”
“그 사람들 목장은 높은 곳에 있어서.” 

그리고 마지막으로 알타이 시에서 마준에게 들은 소식은 이랬다.

“더 높은 산으로 가야 되는데. 내가 아는 친구도 아직 안 내려왔을 거야. 아마 중국하고 몽골 국경에 모여 있을 텐데.”

더 남쪽으로 가면 풀이 많아질 것이다. 도로를 따라 몽골 국경까지 들어갈 수 있는 곳은 알타이에서 하나밖에 없다. 바로 칭허(靑河) 삼도해자(三道海子). 풀이 있는데 사람이 없으랴.  

5월 말의 알타이는 얼굴이 많다. 평지에서 산으로 올라가는 초입은 수줍은 봄 처녀다. 멀리서 보면 여전히 누런 색이지만, 그 틈을 비집고 나오는 봄빛은 어쩔 수가 없다. 작년 가을에 마른 누런 풀 아래로 노르스름한 새싹이 돋고, 쑥부쟁이는 멀리서도 잎 한 올 한 올이 보일 정도로 파랗다. 풀 향기를 실은 바람은 따스해서, 걸으면 이마에 물방울이 맺힌다. 보라색 제비꽃은 그늘 아래 숨어 있고, 햇살 따가운 들판에는 꽃잎이 깨알같이 작은 이름 모를 노랭이들이 지천이다. 이런 날은 무뚝뚝한 목동들도 곧장 풀밭에 드러누워 꽃잎을 즐긴다.

해발 천 미터를 넘기면 알타이는 장년의 남자로 바뀐다. 아직 잎이 덜 돋아난 가시나무, 노란 새싹이 싱그러운 타이가 낙엽송, 그리고 사철 푸른 가문비 나무들이 드문드문 서서 계곡을 지킨다. 성마른 바람이 부는 등성이는 민둥산이지만, 물줄기가 세차게 흐르는 여울 가에는 이끼와 바늘잎 식물들이 파랗다. 계곡으로 흘러오는 바람은 서늘하지만 우악스럽지는 않다.

2천 미터를 넘기면 산은 질풍노도의 청년으로 바뀐다. 땅은 여전히 얼어 있고, 가시나무들도 서로 모여서 바람을 피한다. 풀은 겨우 싹이 났고, 아직 꽃은 없다. 얼음 덩이에 이끌려 내려온 거대한 바위들이 평평한 곳마다 우뚝우뚝 서서, 마치 산지기 거인들처럼 들어가는 사람을 내려다본다. 양지바른 곳은 물이 부족해서 풀이 크지 못하고, 음지는 추워서 아직 싹조차 틔우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3천 미터의 고개를 넘어 고원에 도착하면 또 하나의 신세계가 펼쳐진다. 둥그스름한 언덕마다 아직 수 미터씩 쌓여 있는 눈 아래까지 태양의 온기가 들어가고, 눈이 눌려서 만들어진 얼음결 따라 가느다란 물길이 생겼다. 그 물은 고원으로 흘러 들어가고, 고원은 연한 초록 빛으로 은은하다. 인고의 세월을 견딘 여인의 모습이다. 바람은 거세지만 물은 따듯하다. 느리게 흐르는 물 위로 강렬한 태양이 비추고, 그 물속에 발을 담그면 도저히 눈 녹은 물이라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포근하다. 이곳이 알타이의 꼭대기다. 엄숙한 표정을 가지고 있지만, 커다란 가슴 속에는 젖이 가득 들어 있는 곳. 서몽골의 고향이다. 

 

몽골은 어디에?

 

우루무치에서 지기 장용이 말한 바는 이랬다.

“지금 진짜 유목민은 거의 없고, 알타이에 가면 몽골인들은 만날 수 있을 거야.”

목장에 바둑판처럼 금이 그어진 이후로 실제로 목축은 있지만 유목은 없다. 알타이 산속에는 유목과 유사한 목축은 있을 것이다. 그래서 서북에서 동남으로 알타이 산록을 따라 내려왔지만 몽골 유목민을 만나는 일은 쉽지 않았다. 깊은 곳을 찾고 찾아서 만난 이들은 거의 카자흐인들이었다. 카자흐 양치기들에게 물으면 대답은 대충 이랬다.

“말로 이틀 거리면 닿을 수 있는데.”
“작년에 저 산 너머에 있다고 들었는데.”
“그 사람들 목장은 높은 곳에 있어서.” 

그리고 마지막으로 알타이 시에서 마준에게 들은 소식은 이랬다.

“더 높은 산으로 가야 되는데. 내가 아는 친구도 아직 안 내려왔을 거야. 아마 중국하고 몽골 국경에 모여 있을 텐데.”

더 남쪽으로 가면 풀이 많아질 것이다. 도로를 따라 몽골 국경까지 들어갈 수 있는 곳은 알타이에서 하나밖에 없다. 바로 칭허(靑河) 삼도해자(三道海子). 풀이 있는데 사람이 없으랴.  

5월 말의 알타이는 얼굴이 많다. 평지에서 산으로 올라가는 초입은 수줍은 봄 처녀다. 멀리서 보면 여전히 누런 색이지만, 그 틈을 비집고 나오는 봄빛은 어쩔 수가 없다. 작년 가을에 마른 누런 풀 아래로 노르스름한 새싹이 돋고, 쑥부쟁이는 멀리서도 잎 한 올 한 올이 보일 정도로 파랗다. 풀 향기를 실은 바람은 따스해서, 걸으면 이마에 물방울이 맺힌다. 보라색 제비꽃은 그늘 아래 숨어 있고, 햇살 따가운 들판에는 꽃잎이 깨알같이 작은 이름 모를 노랭이들이 지천이다. 이런 날은 무뚝뚝한 목동들도 곧장 풀밭에 드러누워 꽃잎을 즐긴다.

해발 천 미터를 넘기면 알타이는 장년의 남자로 바뀐다. 아직 잎이 덜 돋아난 가시나무, 노란 새싹이 싱그러운 타이가 낙엽송, 그리고 사철 푸른 가문비 나무들이 드문드문 서서 계곡을 지킨다. 성마른 바람이 부는 등성이는 민둥산이지만, 물줄기가 세차게 흐르는 여울 가에는 이끼와 바늘잎 식물들이 파랗다. 계곡으로 흘러오는 바람은 서늘하지만 우악스럽지는 않다.

2천 미터를 넘기면 산은 질풍노도의 청년으로 바뀐다. 땅은 여전히 얼어 있고, 가시나무들도 서로 모여서 바람을 피한다. 풀은 겨우 싹이 났고, 아직 꽃은 없다. 얼음 덩이에 이끌려 내려온 거대한 바위들이 평평한 곳마다 우뚝우뚝 서서, 마치 산지기 거인들처럼 들어가는 사람을 내려다본다. 양지바른 곳은 물이 부족해서 풀이 크지 못하고, 음지는 추워서 아직 싹조차 틔우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3천 미터의 고개를 넘어 고원에 도착하면 또 하나의 신세계가 펼쳐진다. 둥그스름한 언덕마다 아직 수 미터씩 쌓여 있는 눈 아래까지 태양의 온기가 들어가고, 눈이 눌려서 만들어진 얼음결 따라 가느다란 물길이 생겼다. 그 물은 고원으로 흘러 들어가고, 고원은 연한 초록 빛으로 은은하다. 인고의 세월을 견딘 여인의 모습이다. 바람은 거세지만 물은 따듯하다. 느리게 흐르는 물 위로 강렬한 태양이 비추고, 그 물속에 발을 담그면 도저히 눈 녹은 물이라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포근하다. 이곳이 알타이의 꼭대기다. 엄숙한 표정을 가지고 있지만, 커다란 가슴 속에는 젖이 가득 들어 있는 곳. 서몽골의 고향이다. 

 

준가르는 없었다

 

5월 23일 오후, 칭허(靑河)에 도착해서 같이 산을 오를 사람을 찾았다. 삼도해자까지 거리는 산길로 겨우 6-70km 남짓이다. 쉽게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알맞은 사람을 찾았다. 그 쪽을 잘 안다는 아마니주리. 산을 내려온 카자흐족이다. 길이 쉽지 않단다. 말로 오르면 이틀이 걸릴 것이고, 오토바이로 오르면 하루면 될 것이라고 한다. 그 정도야 쉬운 길이지.

밥을 챙겨먹고, 오토바리를 손질한다. 산으로도 올라갈 수 있는 한화 백 만 원짜리 새 오토바이라고 자부심이 대단하다. 뭔가 일을 손쉽게 해낼 폼이다.

“이런 오토바이가 아니면 산을 못 올라.”

그래 고장이나 나지 않으면 되지 뭐. 기름을 잔뜩 채우고, 윤활유를 바르고, 갓 태어난 아이에게 인사를 하고, 또 아내와 작별 인사를 하고, 떠나는 의식이 자못 거창하다. 

아마니주리는 조심성이 많은 친구였다. 내심 안심이 된다. 산에서는 안전이 최고지. 텐트도 있고, 침낭도 있다. 산에서 잠을 잔다고 해도 별 문제는 없을 것이다.

출발은 좋았다. 평평한 길을 따라 멀리 보이는 알타이를 향해 달린다. 10km 지점에 검문소가 있다. 사람은 없고 수동식 차단기만 덩그러니 길을 막고 있다. 오토바이가 두려울 것이 무엇인가?

“그냥 넘어가자.”
“돈 내고 가야 돼. 걸리면 안 좋다고.”

또 귀찮게 될 것이다. 변경출입허가증을 받으라고 할 것이고, 방랑자 같은 내 행색을 보면 시간을 질질 끌게 분명하다. 하루 이틀은 시간을 끌면서 내가 떠나기를 기다릴 것이다. 건너가면 별 일이 없을 터인데. 하지만 소심한 아마니주리는 검문소를 휙 지나갈 용기가 없다. 그 사이에 뚱뚱한 검문소 지킴이 아저씨가 입안 가득 음식을 넣고는 어기적어기적 걸어온다.

“10원. 어디 가는데?”
“삼도해자.”
“변경출입증 끊어서 와.”
“그냥 관광 가는 건데.”
“거기는 몽골 국경이야.”

방법이 없다. 이제는 지나가고 싶어도 갈 도리가 없다. 돌아가서 끊는 수밖에. 처음부터 이런 좌절이 오다니. 하지만 아마니주리도 생각이 있었다. 변경경비대 사무실로 가니 군복 입은 친구가 나타난다. 그리고는 심드렁하게 묻는다.

“어디가요?”
“삼도해자.”
“왜?”
“관광.”

하지만 다 묻고 나서는 한번씩 웃더니, 다시 이것저것 물어보지도 않고 허가증에 도장을 찍어준다. 이런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나다니. 그 증서를 고이 접어서 부리나케 달려 나왔다. 저 친구 마음이 바뀌면 안되니까. 아마니주리는 느긋하게 그 친구와 악수까지 하고 나온다. 나만 안달하는데 그가 말해준다.

“내 동생이야.”
“친동생?”
“그래, 친동생.”

미리 말 좀 해주지. 운수가 좋다. 새 오토바이에 든든한 기사라. 오토바이는 힘차게 산을 오른다. 오늘 저녁 산에 도착해서 하루를 묵으면서 몽골인들을 찾을 것이다. 운이 좋으면 같이 잘 수도 있다. 하지만 오산이었다. 몇 리를 못 가서 주인이 바뀔 운명이었으니까. 아마니주리는 새로 산 오토바이를 끔찍이 아꼈다.

5월 말의 알타이 계곡은 물이 불어나있다. 눈이 녹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특히 늦은 오후에서 대낮에 산마루를 떠난 물줄기들이 하류에 모이는 시간이다. 물을 건널 때는 사람이 아니라 오토바이가 주인이다. 오토바이 엔진에 물이 들어가지 않게 하기 위해 여울에 돌을 채웠다. 여울마다 내려서 돌을 채우고, 귀한 오토바이를 끌고 물을 건너면 얼마 가지 않아서 또 여울이 나온다. 그냥 타고 건너자고 해 보았지만, 아마니주리에게는 새로 산 오토바이가 내일이면 헤어질 나보다는 더 중요했다. 한 시간에 10km를 가는 둥 마는 둥이었다. 오후가 되고, 또 고도가 높아질수록 물은 더 차가워진다. 발이 얼어 붙는다. 허나 할 수 없다. 계속 가는 수밖에.

그러다 속절없이 해가 졌다. 산 속의 밤은 빨리 찾아온다. 다행히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카자흐족 천막 하나가 나타났다. 아마니주리는 별 인사도 없이 천막 안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천막 안에 있는 유목민 아주머니가 끓여주는 차를 마시고는, 이불을 내놓으라고 하고는 드러누웠다. 천막 안은 어두웠지만 바람이 없어 아늑했다. 뜨거운 차를 한 잔 더 마시고, 천막을 내어준 사람들의 온기 속에서 단잠을 잤다.

이튿날 아침 다시 산을 오른다. 역시 몇 리는 수월하게 달렸다. 그러나 이번에는 눈이 문제였다. 해발 2천 미터가 넘은 곳 응달에는 눈이 그대로 남아 있는데, 오토바이는 눈 속으로 푹푹 빠져들었다. 오후가 되면 길이 진흙으로 바뀐다. 눈이 진흙탕보다는 그래도 낫다. 빙퇴석을 헤치고 다시 두 시간여를 가시 산마루가 보인다. 산마루에는 눈이 하얗다. 오토바이를 끌고 산마루에 오른다. 해발 3천 미터.

능선에 오르니 광대한 고원이 펼쳐진다. 얼음과, 초원과, 호수가 어울려 있고, 저 멀리 쿠르간도 한 눈에 들어온다. 알타이 산중에 이런 보석이 숨어 있다니. 눈 위에는 어떤 동물의 흔적도 없다. 걸어서 30분이면 도달할 거리다. 그러나 이놈의 상전이 문제였다. 오토바이를 모시고 가야 했다. 오토바이를 모시고 30분 내려가다 인내심이 한계에 도달했다.

“아마니주리, 자네가 오토바이 끌고 와라.”
“혼자서는 못 간다니까.”

속으로 애원했다. 그대는 계속 타고 나는 계속 밀었지 않나. 나 좀 보내줘.

“나는 유적을 봐야 된다구. 오토바이는 여기 놓고 가자. 나 먼저 간다. 좀 바쁘다구.”

그러나 아마니주리는 오토바이를 놓고 갈 생각이 없다. 그렇다면 혼자서 끌고 오렴. 나는 갈 테니. 걸어서 20가니 호수 가에 닿았다. 멀리서 아마니주리는 눈에 빠진 오토바이를 열심히 끌어 내리고 있었다.

상상하기 힘든 거대한 돌무더기가 우뚝 서 있고, 그 주위로 인공 해자가 둘러쳐져 있었다. 방위를 알리는 새끼 돌무더기들이 네 방향으로 뻗어 있고, 그 무더기 끝마다 사슴돌이 서 있다. 누가 만들어놓은 것일까? 어떤 이는 몽골의 제3대 대칸 구육의 무덤이라고 하고, 어떤 이는 이것은 상대(商代) 중국 북방의 귀방(鬼方)의 유적이라고 한다. 문자에다 문물을 끌어대는 중국인들의 능력에 혀를 두른다. 아무리 보아도 빙퇴석 무더기로 보이는 것을 두고 칭기스칸이 서정(西征) 때 만든 잔도였다고 부르니까. 언제적 것이든 알타에서 이런 돌무더기 건축은 흔한 것이다. 분명한 것은 알타이를 터전으로 살던 유목민 누군가의 묘라는 점이다. 그리고 그곳은 신성한 제사 장소였을 것이다.

아무리 둘러봐도 짐승의 흔적이 없다. 풀은 이미 양을 키울 정도로 자라 있는데. 독수리 한 마리만 하늘을 빙빙 돌며 타르박을 찾고 있다. 아마 저 녀석은 멀리 산 속에 있는 하얀 모전 천막을 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저 돌무더기가 무슨 대답을 해 줄 것 같다. 아랫도리를 벗고 해자로 들어간다. 순간 온 몸이 저릿해지지만 얼음처럼 차갑지는 않다. 들어가기 전에 긴장했던 몸들이 오히려 풀어진다. 가운데는 가슴께까지 물이 올라온다. 살금살금 건너 돌무더기로 다가선다. 발 아래로 진흙 뻘이 밟힌다. 오래 세월, 고운 먼지가 가라앉아 생긴 뻘은 연한 두부처럼 부드럽고, 작은 자갈마저 느껴지지 않는다. 검은 빛이 도는 물 위로 풀 썩은 향기가 돈다. 다행히 물은 키를 넘기지 않고 돌무더기까지 나를 인도한다. 햇볕을 머금은 돌은 따듯하다. 독수리는 아직도 하늘을 빙빙 돈다. 저놈이 신성한 쿠르간에다 무슨 일을 벌이는 거야 하고 생각하고 있겠지.

커다란 석판 위에 누워 기다렸다. 그리고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몽골은 어디 있나? 여기 있다는 몽골은 준가르의 후예일까?’

그때 오토바이를 포기한 아마리주니가 물 건너에 서 있다. 다시 물을 건넌다. 가슴에서 허리로, 허리에서 무릎으로 물이 줄어든다. 고원의 바람이 살갗을 스치면 한기가 든다.

“몽골인들은?”
“산을 넘어갔나 봐.”
“… 언제 이곳으로 오나?”
“모르지. 국경까지 갔나 봐. 일주일 정도 있으면 올까?”


 

준가르는 없었다

 

5월 23일 오후, 칭허(靑河)에 도착해서 같이 산을 오를 사람을 찾았다. 삼도해자까지 거리는 산길로 겨우 6-70km 남짓이다. 쉽게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알맞은 사람을 찾았다. 그 쪽을 잘 안다는 아마니주리. 산을 내려온 카자흐족이다. 길이 쉽지 않단다. 말로 오르면 이틀이 걸릴 것이고, 오토바이로 오르면 하루면 될 것이라고 한다. 그 정도야 쉬운 길이지.

밥을 챙겨먹고, 오토바리를 손질한다. 산으로도 올라갈 수 있는 한화 백 만 원짜리 새 오토바이라고 자부심이 대단하다. 뭔가 일을 손쉽게 해낼 폼이다.

“이런 오토바이가 아니면 산을 못 올라.”

그래 고장이나 나지 않으면 되지 뭐. 기름을 잔뜩 채우고, 윤활유를 바르고, 갓 태어난 아이에게 인사를 하고, 또 아내와 작별 인사를 하고, 떠나는 의식이 자못 거창하다. 

아마니주리는 조심성이 많은 친구였다. 내심 안심이 된다. 산에서는 안전이 최고지. 텐트도 있고, 침낭도 있다. 산에서 잠을 잔다고 해도 별 문제는 없을 것이다.

출발은 좋았다. 평평한 길을 따라 멀리 보이는 알타이를 향해 달린다. 10km 지점에 검문소가 있다. 사람은 없고 수동식 차단기만 덩그러니 길을 막고 있다. 오토바이가 두려울 것이 무엇인가?

“그냥 넘어가자.”
“돈 내고 가야 돼. 걸리면 안 좋다고.”

또 귀찮게 될 것이다. 변경출입허가증을 받으라고 할 것이고, 방랑자 같은 내 행색을 보면 시간을 질질 끌게 분명하다. 하루 이틀은 시간을 끌면서 내가 떠나기를 기다릴 것이다. 건너가면 별 일이 없을 터인데. 하지만 소심한 아마니주리는 검문소를 휙 지나갈 용기가 없다. 그 사이에 뚱뚱한 검문소 지킴이 아저씨가 입안 가득 음식을 넣고는 어기적어기적 걸어온다.

“10원. 어디 가는데?”
“삼도해자.”
“변경출입증 끊어서 와.”
“그냥 관광 가는 건데.”
“거기는 몽골 국경이야.”

방법이 없다. 이제는 지나가고 싶어도 갈 도리가 없다. 돌아가서 끊는 수밖에. 처음부터 이런 좌절이 오다니. 하지만 아마니주리도 생각이 있었다. 변경경비대 사무실로 가니 군복 입은 친구가 나타난다. 그리고는 심드렁하게 묻는다.

“어디가요?”
“삼도해자.”
“왜?”
“관광.”

하지만 다 묻고 나서는 한번씩 웃더니, 다시 이것저것 물어보지도 않고 허가증에 도장을 찍어준다. 이런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나다니. 그 증서를 고이 접어서 부리나케 달려 나왔다. 저 친구 마음이 바뀌면 안되니까. 아마니주리는 느긋하게 그 친구와 악수까지 하고 나온다. 나만 안달하는데 그가 말해준다.

“내 동생이야.”
“친동생?”
“그래, 친동생.”

미리 말 좀 해주지. 운수가 좋다. 새 오토바이에 든든한 기사라. 오토바이는 힘차게 산을 오른다. 오늘 저녁 산에 도착해서 하루를 묵으면서 몽골인들을 찾을 것이다. 운이 좋으면 같이 잘 수도 있다. 하지만 오산이었다. 몇 리를 못 가서 주인이 바뀔 운명이었으니까. 아마니주리는 새로 산 오토바이를 끔찍이 아꼈다.

5월 말의 알타이 계곡은 물이 불어나있다. 눈이 녹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특히 늦은 오후에서 대낮에 산마루를 떠난 물줄기들이 하류에 모이는 시간이다. 물을 건널 때는 사람이 아니라 오토바이가 주인이다. 오토바이 엔진에 물이 들어가지 않게 하기 위해 여울에 돌을 채웠다. 여울마다 내려서 돌을 채우고, 귀한 오토바이를 끌고 물을 건너면 얼마 가지 않아서 또 여울이 나온다. 그냥 타고 건너자고 해 보았지만, 아마니주리에게는 새로 산 오토바이가 내일이면 헤어질 나보다는 더 중요했다. 한 시간에 10km를 가는 둥 마는 둥이었다. 오후가 되고, 또 고도가 높아질수록 물은 더 차가워진다. 발이 얼어 붙는다. 허나 할 수 없다. 계속 가는 수밖에.

그러다 속절없이 해가 졌다. 산 속의 밤은 빨리 찾아온다. 다행히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카자흐족 천막 하나가 나타났다. 아마니주리는 별 인사도 없이 천막 안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천막 안에 있는 유목민 아주머니가 끓여주는 차를 마시고는, 이불을 내놓으라고 하고는 드러누웠다. 천막 안은 어두웠지만 바람이 없어 아늑했다. 뜨거운 차를 한 잔 더 마시고, 천막을 내어준 사람들의 온기 속에서 단잠을 잤다.

이튿날 아침 다시 산을 오른다. 역시 몇 리는 수월하게 달렸다. 그러나 이번에는 눈이 문제였다. 해발 2천 미터가 넘은 곳 응달에는 눈이 그대로 남아 있는데, 오토바이는 눈 속으로 푹푹 빠져들었다. 오후가 되면 길이 진흙으로 바뀐다. 눈이 진흙탕보다는 그래도 낫다. 빙퇴석을 헤치고 다시 두 시간여를 가시 산마루가 보인다. 산마루에는 눈이 하얗다. 오토바이를 끌고 산마루에 오른다. 해발 3천 미터.

능선에 오르니 광대한 고원이 펼쳐진다. 얼음과, 초원과, 호수가 어울려 있고, 저 멀리 쿠르간도 한 눈에 들어온다. 알타이 산중에 이런 보석이 숨어 있다니. 눈 위에는 어떤 동물의 흔적도 없다. 걸어서 30분이면 도달할 거리다. 그러나 이놈의 상전이 문제였다. 오토바이를 모시고 가야 했다. 오토바이를 모시고 30분 내려가다 인내심이 한계에 도달했다.

“아마니주리, 자네가 오토바이 끌고 와라.”
“혼자서는 못 간다니까.”

속으로 애원했다. 그대는 계속 타고 나는 계속 밀었지 않나. 나 좀 보내줘.

“나는 유적을 봐야 된다구. 오토바이는 여기 놓고 가자. 나 먼저 간다. 좀 바쁘다구.”

그러나 아마니주리는 오토바이를 놓고 갈 생각이 없다. 그렇다면 혼자서 끌고 오렴. 나는 갈 테니. 걸어서 20가니 호수 가에 닿았다. 멀리서 아마니주리는 눈에 빠진 오토바이를 열심히 끌어 내리고 있었다.

상상하기 힘든 거대한 돌무더기가 우뚝 서 있고, 그 주위로 인공 해자가 둘러쳐져 있었다. 방위를 알리는 새끼 돌무더기들이 네 방향으로 뻗어 있고, 그 무더기 끝마다 사슴돌이 서 있다. 누가 만들어놓은 것일까? 어떤 이는 몽골의 제3대 대칸 구육의 무덤이라고 하고, 어떤 이는 이것은 상대(商代) 중국 북방의 귀방(鬼方)의 유적이라고 한다. 문자에다 문물을 끌어대는 중국인들의 능력에 혀를 두른다. 아무리 보아도 빙퇴석 무더기로 보이는 것을 두고 칭기스칸이 서정(西征) 때 만든 잔도였다고 부르니까. 언제적 것이든 알타에서 이런 돌무더기 건축은 흔한 것이다. 분명한 것은 알타이를 터전으로 살던 유목민 누군가의 묘라는 점이다. 그리고 그곳은 신성한 제사 장소였을 것이다.

아무리 둘러봐도 짐승의 흔적이 없다. 풀은 이미 양을 키울 정도로 자라 있는데. 독수리 한 마리만 하늘을 빙빙 돌며 타르박을 찾고 있다. 아마 저 녀석은 멀리 산 속에 있는 하얀 모전 천막을 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저 돌무더기가 무슨 대답을 해 줄 것 같다. 아랫도리를 벗고 해자로 들어간다. 순간 온 몸이 저릿해지지만 얼음처럼 차갑지는 않다. 들어가기 전에 긴장했던 몸들이 오히려 풀어진다. 가운데는 가슴께까지 물이 올라온다. 살금살금 건너 돌무더기로 다가선다. 발 아래로 진흙 뻘이 밟힌다. 오래 세월, 고운 먼지가 가라앉아 생긴 뻘은 연한 두부처럼 부드럽고, 작은 자갈마저 느껴지지 않는다. 검은 빛이 도는 물 위로 풀 썩은 향기가 돈다. 다행히 물은 키를 넘기지 않고 돌무더기까지 나를 인도한다. 햇볕을 머금은 돌은 따듯하다. 독수리는 아직도 하늘을 빙빙 돈다. 저놈이 신성한 쿠르간에다 무슨 일을 벌이는 거야 하고 생각하고 있겠지.

커다란 석판 위에 누워 기다렸다. 그리고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몽골은 어디 있나? 여기 있다는 몽골은 준가르의 후예일까?’

그때 오토바이를 포기한 아마리주니가 물 건너에 서 있다. 다시 물을 건넌다. 가슴에서 허리로, 허리에서 무릎으로 물이 줄어든다. 고원의 바람이 살갗을 스치면 한기가 든다.

“몽골인들은?”
“산을 넘어갔나 봐.”
“… 언제 이곳으로 오나?”
“모르지. 국경까지 갔나 봐. 일주일 정도 있으면 올까?”


 

다 읽지 못한 기록

 

1219년 어느 날. 칭기스칸은 알타이 어느 지방을 지났다. 혹자는 이곳 삼도해자를 지났다고 하다. 한 여름에도 눈이 쌓여 있는 곳을 지나갔다고 하다. 자기가 보낸 상인 450명의 복수를 위해 알타이를 건넜다고 한다. 저 멀리 천산 너며, 중앙아시아 거의 전체를 지배하고 있던 호라즘 제국의 심장부를 향해서. 그리고 당시 세계 최대의 도시들이 모두 불탔다. 부하라, 사마르칸트, 우르겐치가 불탔다. 어떤 기록에는 호라즘의 수도가 함락된 후 몽골군 한 명당 도시민 24명을 맡겨 살육하게 했고, 그 작전에 참여한 몽골병단의 인원은 5만이었다고 한다. 사실이 아니었을 것이다. 아무리 큰 도시라도 도시민이 100만을 넘을 수는 없었을 테니까. 하지만 대항한 사람 대부분이 학살당했던 것은 사실이다. 몽골인이 편찬한 자료에도 이를 부인하지 않으니까.

그리고 불과 5백 년 남짓 지난 18세기 중반. 남에게 속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살아보고자 했던 어떤 몽골 부족이 학살당했다. 준가르(오이라트)의 수령은 이렇게 제안했다. 할하의 수령들에게 이렇게 제안했다.

“그대들은 자유로운 칭기스칸의 후예다. 알타이로 와서 우리와 함께 살자. 우리가 힘을 합치면 어떤 군대도 막아낼 수 있다.”

그러나 그 제의는 거절당했다. 칭기스칸 시절 고작 산림 속에 있던 지리멸렬한 친구들의 제안에 화가 났던 것일까? 둘을 싸웠고 준가르가 패했다. 그리고 얼마 후 만주의 우두머리는 꼼꼼한 옹정에서 허영기 넘치는 건륭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알타이 초원에 암운이 드리우기 시작했다.   

강자가 약자가 되고,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는 인과응보의 결과일까? 아니다. 이 부족은 칭기스칸 시절에는 산림 속에 살았다. 산림 속에 사는 사람들은 인간에게 화살을 겨누지 않는다. 순록을 따라 다니며 사냥을 하는 부족들은 거대한 권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이들은 칭기스칸에 의해 세상으로 나왔고, 또 칭기스칸의 후예들이 힘을 잃게 되자 그들을 대신하여 몽골의 주인이 되고자 했다. 그리고 아주 짧은 시절 얼마간의 힘을 얻었다. 그러나 힘을 얻는 순간 멸망의 길로 가고 있었다.  

이제 준가르(오이라트)는 없다. 나는 애초에 없는 것을 찾아 다녔던 것이다. 오래 전에 이미 없었다. 나는 이 기록은 못 보았던 것이다.

준가르는 오래 전에 붕괴되었다. 예컨대 쿠르 카라우수, 타르바가타이, 바그콜, 우루무치, 이리의 동쪽이든 서쪽이든 오이라트 종족의 천막은 하나도 없다.(<<황조경세문편>>)

이것은 무려 2백 년 전의 선배가 직접 목격한 것이다. 그런데 지금 와서 내가 무슨 수로 그들을 찾는단 말인가.

코끼리는 넘어졌다고 한다. 코끼리는 왜 넘어졌나? 누가 코끼리를 쏘았나? 나는 산을 내려가서 물어볼 것이다. 여행은 끝나지 않았다.

내려오는 길은 한참 수월했다. 타르박 한 마리가 오토바이를 보고 뛴다. 자기 달리기 실력을 믿었는지 길을 따라 뛴다. 그러나 이내 따라 잡히고 만다. 너의 짧은 다리고 문명의 이기를 이길 소냐. 토끼를 두 배 합쳐 놓은 정도 크기의 뚱뚱이 쥐가 뒤뚱뒤뚱 뛰어가는 것이 귀여워 장난기가 발동한다. 도저히 승산이 없다는 것을 느낀 녀석이 언덕 아래로 방향을 바꾼다. 그러나 몇 발짝 가더니 탈진해서 이끼 위에 죽은 듯이 퍼진다.

“무슨 야생동물이 이러냐?”

놀려도 반응이 없다. 그때 아마니주리가 돌을 치켜든다. 말렸다.

“뭐하게?”
“잡게.”
“잡아서 뭐하게?”
“모자 만들려고.”
“가서 모자 하나 사자.”

아마니주리도 내 말에 동의한다. 놈에게 말했다.

“겨우내 못 먹어서 그런 거지 원래 힘이 없는 것은 아니지? 독수리가 본다. 빨리 들어가라.”

어기적 어기적 녀석이 돌 틈을 찾는다. 다행히 독수리는 보이지 않는다. 


 

다 읽지 못한 기록

 

1219년 어느 날. 칭기스칸은 알타이 어느 지방을 지났다. 혹자는 이곳 삼도해자를 지났다고 하다. 한 여름에도 눈이 쌓여 있는 곳을 지나갔다고 하다. 자기가 보낸 상인 450명의 복수를 위해 알타이를 건넜다고 한다. 저 멀리 천산 너며, 중앙아시아 거의 전체를 지배하고 있던 호라즘 제국의 심장부를 향해서. 그리고 당시 세계 최대의 도시들이 모두 불탔다. 부하라, 사마르칸트, 우르겐치가 불탔다. 어떤 기록에는 호라즘의 수도가 함락된 후 몽골군 한 명당 도시민 24명을 맡겨 살육하게 했고, 그 작전에 참여한 몽골병단의 인원은 5만이었다고 한다. 사실이 아니었을 것이다. 아무리 큰 도시라도 도시민이 100만을 넘을 수는 없었을 테니까. 하지만 대항한 사람 대부분이 학살당했던 것은 사실이다. 몽골인이 편찬한 자료에도 이를 부인하지 않으니까.

그리고 불과 5백 년 남짓 지난 18세기 중반. 남에게 속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살아보고자 했던 어떤 몽골 부족이 학살당했다. 준가르(오이라트)의 수령은 이렇게 제안했다. 할하의 수령들에게 이렇게 제안했다.

“그대들은 자유로운 칭기스칸의 후예다. 알타이로 와서 우리와 함께 살자. 우리가 힘을 합치면 어떤 군대도 막아낼 수 있다.”

그러나 그 제의는 거절당했다. 칭기스칸 시절 고작 산림 속에 있던 지리멸렬한 친구들의 제안에 화가 났던 것일까? 둘을 싸웠고 준가르가 패했다. 그리고 얼마 후 만주의 우두머리는 꼼꼼한 옹정에서 허영기 넘치는 건륭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알타이 초원에 암운이 드리우기 시작했다.   

강자가 약자가 되고,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는 인과응보의 결과일까? 아니다. 이 부족은 칭기스칸 시절에는 산림 속에 살았다. 산림 속에 사는 사람들은 인간에게 화살을 겨누지 않는다. 순록을 따라 다니며 사냥을 하는 부족들은 거대한 권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이들은 칭기스칸에 의해 세상으로 나왔고, 또 칭기스칸의 후예들이 힘을 잃게 되자 그들을 대신하여 몽골의 주인이 되고자 했다. 그리고 아주 짧은 시절 얼마간의 힘을 얻었다. 그러나 힘을 얻는 순간 멸망의 길로 가고 있었다.  

이제 준가르(오이라트)는 없다. 나는 애초에 없는 것을 찾아 다녔던 것이다. 오래 전에 이미 없었다. 나는 이 기록은 못 보았던 것이다.

준가르는 오래 전에 붕괴되었다. 예컨대 쿠르 카라우수, 타르바가타이, 바그콜, 우루무치, 이리의 동쪽이든 서쪽이든 오이라트 종족의 천막은 하나도 없다.(<<황조경세문편>>)

이것은 무려 2백 년 전의 선배가 직접 목격한 것이다. 그런데 지금 와서 내가 무슨 수로 그들을 찾는단 말인가.

코끼리는 넘어졌다고 한다. 코끼리는 왜 넘어졌나? 누가 코끼리를 쏘았나? 나는 산을 내려가서 물어볼 것이다. 여행은 끝나지 않았다.

내려오는 길은 한참 수월했다. 타르박 한 마리가 오토바이를 보고 뛴다. 자기 달리기 실력을 믿었는지 길을 따라 뛴다. 그러나 이내 따라 잡히고 만다. 너의 짧은 다리고 문명의 이기를 이길 소냐. 토끼를 두 배 합쳐 놓은 정도 크기의 뚱뚱이 쥐가 뒤뚱뒤뚱 뛰어가는 것이 귀여워 장난기가 발동한다. 도저히 승산이 없다는 것을 느낀 녀석이 언덕 아래로 방향을 바꾼다. 그러나 몇 발짝 가더니 탈진해서 이끼 위에 죽은 듯이 퍼진다.

“무슨 야생동물이 이러냐?”

놀려도 반응이 없다. 그때 아마니주리가 돌을 치켜든다. 말렸다.

“뭐하게?”
“잡게.”
“잡아서 뭐하게?”
“모자 만들려고.”
“가서 모자 하나 사자.”

아마니주리도 내 말에 동의한다. 놈에게 말했다.

“겨우내 못 먹어서 그런 거지 원래 힘이 없는 것은 아니지? 독수리가 본다. 빨리 들어가라.”

어기적 어기적 녀석이 돌 틈을 찾는다. 다행히 독수리는 보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