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르 위고를 사랑한 소년 (2) – 정인용

나의 할아버지 정인용의 20대는 8.15 해방과 함께 시작한다. 그는 남한과 북한에서 각각 단독으로 임시정부가 들어섰던 혼란기에 대학에 들어가 또 다시 독서 써클을 만났다. 그로 인한 유치장 생활, 결혼 직후 발발한 한국전쟁, 그리고 연이은 도피 생활이 이어졌다. 그 여정에 할아버지 정인용의 청춘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일제강점하 농촌에서 출생한 나의 할아버지 정인용은 보통학교를 거쳐 서울로 상경해 휘문 중학교를 다니셨다. 휘문 중학교에서 시인 정지용을 담임선생님으로 만났으며, 중학교 내 독서 써클에서 톨스토이와 도스토옙스키, 빅토르 위고를 알게 되었다.*

* <빅토르 위고를 사랑한 소년 (1) – 정인용>

해방 무렵의 혼란기에 대학에 입학한 할아버지는 다시 독서 서클을 만나 막스와 엥겔스, 모택동과 같은 사상가들을 접하게 되었다. 좌익 학생 운동의 혐의를 받고 유치장 생활을 하셨으며, 이를 계기로 급작스럽게 결혼에 이르렀고, 곧바로 이어진 한국전쟁 당시 죽음을 넘나든 도피 생활을 하셨다.

할아버지의 20대는 한 문학청년이 시대를 고민하고 적극적으로 맞받아쳐 싸워온 여정이자 흔적이었다. 이번 인터뷰를 계기로 알게 된 할아버지의 20대 청년기는 낯설고 뜻밖인 이야기로 가득했다. 죽음을 넘나든 이야기의 실타래, 그 속으로 다시 들어가본다.

 

할아버지 정인용 약력

1927년              1월 1일 출생
1935년(10세)     성환 보통학교 입학
1937년              조선어교육 폐지, 창씨개명
1941년(16세)     휘문 중학교 입학
1941년              대동아 전쟁 발발
1945년(20세)     휘문 중학교 졸업
1946년(21세)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국문학과 입학
1949년(24세)     결혼
1950년              6.25전쟁 발발
1953년              휴전
1955년(30세)     천안시 입장면 고아원 ‘익선원’ 근무
1962년(37세)     한집학교(고등국민학교) 설립, 운영
1965년(40세)     부친 별세로 가사(농업)에 종사

1. 대학 입학

 

퍼슨웹(이하 ‘퍼’): 대학은 언제 들어가신 거지요?

정인용(이하 ‘정’): 1945년 3월 달에 졸업을 하고 이리저리 방황을 하다가 이듬해, 그러니까 스물 한 살 되던 해 6월 달에 입학했어.

퍼: 할아버지 다니실 때 고등학교 과정은 없었어요?

정: 그땐 중학교여, 중학교. 그때 학제라는 걸 알아야 한단 말이야. 설명하려면 길지. 내가 알고 있기에는 중학교가 6년이었어요. 그 다음에 가다가 인저 5년으로 바뀌었어. 그 다음에 또 4년으로 바뀌었어.

퍼: 할아버지 때는요?

정: 나는 5학년 졸업생하고 4학년 내 졸업생하고 동시에 졸업을 했어. 5학년 마지막 학생들하고 4학년 마지막 학생들하고 한 해에 같이 졸업을 했단 말이여. 나는 4년 다니고 졸업하는 처음이자 마지막 학생이여.*

* 1918년 사립 휘문 고등보통학교(4년제)로 개칭된 휘문 중학교는 1922년 휘문 고등학교(5년제)로 개칭되었다가 1938년 휘문 중학교(5년제)로 다시 변경되었다. 할아버지는 1946년 휘문 중학(6년제)로 변경되는 과도기인 1945년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4년제로 졸업하신 것이다. 1951년 학제 개편에 따라 휘문 중학교(3년제)와 휘문 고등학교(3년제)로 분교되었다.

퍼: 해방이 되고 그 즈음 대학은 어땠어요?

정: 인제 경성제국대학이랑 사범대학이 따로 있었지.

퍼: 같은 계열인 거예요?

정: 아니지. 전연 다르지.

퍼: 그럼 할아버지는 서울대생이 아니네.

정: 가만 있어봐. 그러니까 얘길 들어보란 말이야. 이 해에 국대안통합*이라는 게 있었단 말이야. 학교 통합이라는 게. 서울 경성제국대학을 중심으로 해서 남자 사범대학, 여자 사범대학, 공업전문학교, 치과전문학교, 의학전문학교, 이런 것이 통합 돼서 지금의 서울대학이 생긴 거야.

* 국립대학안(國立大學案)(1946. 6. 19) :  미군정 당국은 경성대학(京城大學), 구 경성의전 ·치전(齒專) ·법전(法專), 경성고공(高工), 경성고상(高商), 경성고농(高農) 등을 통합하는 국립대학안을 발표, 일부 학생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8월 23일 군정령(軍政令)으로 국립서울대학교 신설을 강행하였다.

퍼: 그럼 경성제대에는 무슨 과가 있었어요?

정: 거긴 뭐 법과, 상과, 거기에 대해서는 나는 잘 모르지.

퍼: 통합되는 동시에 다니신 거예요?

정: 고 무렵에 통합이 된 거여.

퍼: 근데 왜 국문학과에 가셨어요?

정: 내 취미가 그거구 배운 게 그거니깐은. 문학을 하고 싶었던 거고. 나는 시인이 될라 그랬었어. 그런데 내가 가만히 생각 해두 내가 시인 자격은 없다, 아까 얘기한대루 내 할아버지의 기질로 봐서 내가 뭐 하러나 다니지 시인이나 낭만적인 거는 생각지도 않았단 말이여.

퍼: 시인을 꿈꾸다가 다른 길을 선택한 것은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영향이 컸다는 말이네요?

정: 그렇게 봐야지.

퍼: 왜 사범대학을 가신 거예요?

정: 선생이 되고 싶어 그랬지.

 

1. 대학 입학

 

퍼슨웹(이하 ‘퍼’): 대학은 언제 들어가신 거지요?

정인용(이하 ‘정’): 1945년 3월 달에 졸업을 하고 이리저리 방황을 하다가 이듬해, 그러니까 스물 한 살 되던 해 6월 달에 입학했어.

퍼: 할아버지 다니실 때 고등학교 과정은 없었어요?

정: 그땐 중학교여, 중학교. 그때 학제라는 걸 알아야 한단 말이야. 설명하려면 길지. 내가 알고 있기에는 중학교가 6년이었어요. 그 다음에 가다가 인저 5년으로 바뀌었어. 그 다음에 또 4년으로 바뀌었어.

퍼: 할아버지 때는요?

정: 나는 5학년 졸업생하고 4학년 내 졸업생하고 동시에 졸업을 했어. 5학년 마지막 학생들하고 4학년 마지막 학생들하고 한 해에 같이 졸업을 했단 말이여. 나는 4년 다니고 졸업하는 처음이자 마지막 학생이여.*

* 1918년 사립 휘문 고등보통학교(4년제)로 개칭된 휘문 중학교는 1922년 휘문 고등학교(5년제)로 개칭되었다가 1938년 휘문 중학교(5년제)로 다시 변경되었다. 할아버지는 1946년 휘문 중학(6년제)로 변경되는 과도기인 1945년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4년제로 졸업하신 것이다. 1951년 학제 개편에 따라 휘문 중학교(3년제)와 휘문 고등학교(3년제)로 분교되었다.

퍼: 해방이 되고 그 즈음 대학은 어땠어요?

정: 인제 경성제국대학이랑 사범대학이 따로 있었지.

퍼: 같은 계열인 거예요?

정: 아니지. 전연 다르지.

퍼: 그럼 할아버지는 서울대생이 아니네.

정: 가만 있어봐. 그러니까 얘길 들어보란 말이야. 이 해에 국대안통합*이라는 게 있었단 말이야. 학교 통합이라는 게. 서울 경성제국대학을 중심으로 해서 남자 사범대학, 여자 사범대학, 공업전문학교, 치과전문학교, 의학전문학교, 이런 것이 통합 돼서 지금의 서울대학이 생긴 거야.

* 국립대학안(國立大學案)(1946. 6. 19) :  미군정 당국은 경성대학(京城大學), 구 경성의전 ·치전(齒專) ·법전(法專), 경성고공(高工), 경성고상(高商), 경성고농(高農) 등을 통합하는 국립대학안을 발표, 일부 학생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8월 23일 군정령(軍政令)으로 국립서울대학교 신설을 강행하였다.

퍼: 그럼 경성제대에는 무슨 과가 있었어요?

정: 거긴 뭐 법과, 상과, 거기에 대해서는 나는 잘 모르지.

퍼: 통합되는 동시에 다니신 거예요?

정: 고 무렵에 통합이 된 거여.

퍼: 근데 왜 국문학과에 가셨어요?

정: 내 취미가 그거구 배운 게 그거니깐은. 문학을 하고 싶었던 거고. 나는 시인이 될라 그랬었어. 그런데 내가 가만히 생각 해두 내가 시인 자격은 없다, 아까 얘기한대루 내 할아버지의 기질로 봐서 내가 뭐 하러나 다니지 시인이나 낭만적인 거는 생각지도 않았단 말이여.

퍼: 시인을 꿈꾸다가 다른 길을 선택한 것은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영향이 컸다는 말이네요?

정: 그렇게 봐야지.

퍼: 왜 사범대학을 가신 거예요?

정: 선생이 되고 싶어 그랬지.

 

2. 대학 내 독서 서클

 

퍼: 대학 생활은 어떠셨어요?

정: 대학에 가니까 거기서 써클을 또 만난 거여. 거기는 대단하지. 규모두 크구, 차원이 높잖어. 막스, 엥겔스, 모택동 나오고 그란 때라구. 그때는 그룹에 속하지 않으면 왕따를 당하고 끼도 못하고 그랬다고.

퍼: 엘리트 지식인들은 독서 써클에 가입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였잖아요? 사상도 멋있고.

정: 대학 다니매 그러면 이런 데도 알고 그래야 할 거 아니냐, 곰팡이 새끼마냥 국문학이니 뭐니 하고 쫄쫄하니 말야, 사회가 그런 사회였으니까. 잘 나서 들어갔든, 못나서 들어갔든 왕따 당하는 거를 면하기 위해서 들어갔던 거 아니냐, 그렇게 쉽게 얘기할 수 있지.

퍼: 정말 그럴 수밖에 없는 분위기였구나. 그래서요?

정: 그러다가 써클에서 활동하는 과정에서 내가 붙잡혀 들어갔단 말이여.

퍼: 붙잡혀 들어가셨다고요?

정: 유치장에 3개월 있었지.

퍼: 대학에 들어가자마자요?

정: 아니, 서울대학교에 예과가 있고 본과가 있고 그래. 나는 처음 이제 예과에 들어 간 거지. 예과를 졸업하고 본과를 교육학부로다가 들어간 거여.

퍼: 아. 그럼 예과 생활은 얼마나 하신 거예요?

정: 1946년 6월 달에 들어가서 그 다음 다음 해에 본과에 들어 간 거지.

퍼: 그때까지는 그냥 학교생활 하신 거예요?

정: 그렇지. 그땐 그냥 써클 생활한 거지.

퍼: 그럼 유치장 가신 건 언제예요?

정: 본과 1학년 들어가서.

퍼: 어떻게 걸리신 거예요? 친구분들도요?

정: 너하고 얘기하다 보면 나 담배 피고 싶어져. 그거를 일일이 전부, 아이구.

퍼: 본과 들어가서 어떻게 하다가 유치장을 들어가셨어요?

정: 대학 2년째 들어가서 사건이 일어나 가지구.

퍼: 무슨 사건이요?

정: 남한에는 단독정부를 세우구, 이북에는 이북대로 단독 정부를 세우려고 할 때여. 그리고 국회를 세우기 위해서 각 지역마다 국회의원이 출마를 하고 그럴 때여. 그때 이승만 박사가 동대문구에서 출마를 했단 말이야.

퍼: 아, 한참 그때구나.

정: 이박사를 저격하려고 어떤 사람이 시도했다가 저격도 못하고 붙잡혔어. 그게 계기가 되어서 레프트 관계 사람들을 막 그냥 끌어들인 거지. 그리고 그때가 단독정부 수립할 때고 여수순천반란사건* 일어날 때여. 그러니까 사회가 여러 가지로 혼란스러울 때라고.

* 여수 순천 사건(1948. 10. 19) : 전라남도 여수에 주둔하고 있던 국방경비대 제14연대에 소속의 일부 군인들이 제주도 4·3사건 진압출동을 거부하고 대한민국 단독정부를 저지하려고 일으킨 사건이다.

퍼: 그런 분위기 속에서 할아버지도 끌려가시게 된 거구나.

정: 혼란기였고, 학교 자체가 통합이 되면서 교육계도 복잡했지. 선생들로 이리 갔다 저리 가구, 저리 갔다 이리 가구 이럴 때라구.

퍼: 그래서 대학 생활이 어려우셨어요?

정: 나는 대학생활도 못한겨. 그래서 끌려 들어가지 않았니?

 

2. 대학 내 독서 서클

 

퍼: 대학 생활은 어떠셨어요?

정: 대학에 가니까 거기서 써클을 또 만난 거여. 거기는 대단하지. 규모두 크구, 차원이 높잖어. 막스, 엥겔스, 모택동 나오고 그란 때라구. 그때는 그룹에 속하지 않으면 왕따를 당하고 끼도 못하고 그랬다고.

퍼: 엘리트 지식인들은 독서 써클에 가입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였잖아요? 사상도 멋있고.

정: 대학 다니매 그러면 이런 데도 알고 그래야 할 거 아니냐, 곰팡이 새끼마냥 국문학이니 뭐니 하고 쫄쫄하니 말야, 사회가 그런 사회였으니까. 잘 나서 들어갔든, 못나서 들어갔든 왕따 당하는 거를 면하기 위해서 들어갔던 거 아니냐, 그렇게 쉽게 얘기할 수 있지.

퍼: 정말 그럴 수밖에 없는 분위기였구나. 그래서요?

정: 그러다가 써클에서 활동하는 과정에서 내가 붙잡혀 들어갔단 말이여.

퍼: 붙잡혀 들어가셨다고요?

정: 유치장에 3개월 있었지.

퍼: 대학에 들어가자마자요?

정: 아니, 서울대학교에 예과가 있고 본과가 있고 그래. 나는 처음 이제 예과에 들어 간 거지. 예과를 졸업하고 본과를 교육학부로다가 들어간 거여.

퍼: 아. 그럼 예과 생활은 얼마나 하신 거예요?

정: 1946년 6월 달에 들어가서 그 다음 다음 해에 본과에 들어 간 거지.

퍼: 그때까지는 그냥 학교생활 하신 거예요?

정: 그렇지. 그땐 그냥 써클 생활한 거지.

퍼: 그럼 유치장 가신 건 언제예요?

정: 본과 1학년 들어가서.

퍼: 어떻게 걸리신 거예요? 친구분들도요?

정: 너하고 얘기하다 보면 나 담배 피고 싶어져. 그거를 일일이 전부, 아이구.

퍼: 본과 들어가서 어떻게 하다가 유치장을 들어가셨어요?

정: 대학 2년째 들어가서 사건이 일어나 가지구.

퍼: 무슨 사건이요?

정: 남한에는 단독정부를 세우구, 이북에는 이북대로 단독 정부를 세우려고 할 때여. 그리고 국회를 세우기 위해서 각 지역마다 국회의원이 출마를 하고 그럴 때여. 그때 이승만 박사가 동대문구에서 출마를 했단 말이야.

퍼: 아, 한참 그때구나.

정: 이박사를 저격하려고 어떤 사람이 시도했다가 저격도 못하고 붙잡혔어. 그게 계기가 되어서 레프트 관계 사람들을 막 그냥 끌어들인 거지. 그리고 그때가 단독정부 수립할 때고 여수순천반란사건* 일어날 때여. 그러니까 사회가 여러 가지로 혼란스러울 때라고.

* 여수 순천 사건(1948. 10. 19) : 전라남도 여수에 주둔하고 있던 국방경비대 제14연대에 소속의 일부 군인들이 제주도 4·3사건 진압출동을 거부하고 대한민국 단독정부를 저지하려고 일으킨 사건이다.

퍼: 그런 분위기 속에서 할아버지도 끌려가시게 된 거구나.

정: 혼란기였고, 학교 자체가 통합이 되면서 교육계도 복잡했지. 선생들로 이리 갔다 저리 가구, 저리 갔다 이리 가구 이럴 때라구.

퍼: 그래서 대학 생활이 어려우셨어요?

정: 나는 대학생활도 못한겨. 그래서 끌려 들어가지 않았니?

 

3. 유치장에서 3개월

 

퍼: 유치장에서 3개월은 어떠셨어요?

정: 응,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가 하면, 11월 달이었어. 동대문경찰서가 일정시대에 지은 건물이기 때문에 목조건물이여. 숙직실을 온돌방으로 만들고 구들장 있고 흙 바르고 그러는 거 아니여. 바깥에는 목존데 말릴라고 불을 때니깐은 목조가 타서 불이 난 거여.

퍼: 어머.

정: 그날 우리 집에서 면회 오는 날이었거든? 담안댁 당숙이 나랑 아버지 사이에 심부름꾼이었는데 이날 이 분이 면회를 오는 날이여. 아, 와보니깐, 그냥 동대문 경찰서가 홀랑 타버렸네?

퍼: 헤? 그래서 할아버지 어떻게 됐어요?

정: 나중에 들어보니까, 당숙이 “이 새끼 어서 불타죽었구나!” 하고 주저앉을 수밖에. 그런 와중에 우리는 밤에 트럭에 실려가지고설랑, 경찰들이 이박사 저격하다 실패한 사람, “저 새끼 저 놓치면 안 된다”고, 그놈은 그놈대로 그렇게 하고 우리보고는 “대가리 들으면 느덜 총 쏜다”고 말이여. 이라구, 이라구 있었어.(두 손을 깍지 끼고 뒷목을 감싸 안으심) 그래 나중에 알고 보니깐은 옮겨간 곳이 중부경찰서여. 지금 중부경찰서.

퍼: 동대문 경찰서에서 불이 나서 다 대피 시킨 거예요?

정: 응. 불난 건 거기서 피해줘서 트럭 타고 나온 거여. 빨갱이들 뭐다 난리 피울 때거든. 각 경찰서마다 탄약고마다 난리가 났을 거 아니여. 희생당하거나 책임 문제가 나오니까는 도피시키고 중부경찰서에 배치가 된 거여.

퍼: 아.

정: 그런데 그 중부경찰서 감옥이 지하에 있는데 똥그랗게 돼있어요. 원형으로 되어 있어. 여기서 나가면은 출구가 미로처럼 되어 있어서 탈출을 했다하더라도 나가지도 못하는 거야.

퍼: 교묘하게 만들어진 감옥이었구나.

정: 밥도 있잖니, 밀. 밀 삶은 거 앙상하게 갖다 주는 거야. 호렴이라는 게 있어. 커드란 소금 덩어리. 그거 하나 같이 놔주는 거여. 그게 반찬이여. 그라믄 그게 얼마나 배가 고프냐. 밀 삶은 거 쥐면 한 주먹 밖에 안 돼. 배가 고프니까 소금이 짠 게 아니라 달다 할 정도니까. 먹고 나서 호렴을 냄겨 놓는 거야. 배가 고플 때 먹으려고.

퍼: 히야.

정: 그 와중에 웃음이 날 수 있는 게 뭐냐면 이제 경찰들이 붙잡혀 온 사람들 이름 부르고 호명을 해. 그러면 “나는 누굽니다!”하고 저기서 대답하는 놈이 ‘왜 저 놈이 저기 와 있어?’ 그래요. 나는 또 ‘저 놈이 왜 저기 있어?’ 그러고. 여기저기서 끌려 온 놈 중에서 아는 놈들이 있다구. 그러면 서로 몰래 손을 흔들면설랑 아는 척을 하구.(손을 얼굴에 바짝 대고 흔드시며 인사하는 시늉) 말 하면 뭐하냐.

퍼: 유치장에서 어떻게 나오신 거예요?

정: 그때도 못 나오는 건데 집안 아저씨가 사범대학에 계셨으니까 이렇게 저렇게 해서 나오게 된 거여. 그렇지 않으면 형무소에 가서 몇 십 년 살게 되고 그렇게 될지 모르는 건데.

퍼: 할아버지의 아버지도 이 사실을 알았어요? 실망이 크셨겠네?

정: 아셨지. 아버지는 정보를 다 듣고 있었지. 실망이야 뭐 말할 수 없었겠지만 나한테 한 마디도 안하셔. 잘했다, 못했다 한 마디도 없으셔.

퍼: 그랬구나. 그래서요?

정: 아이구, 나왔는데 얘기가 뭐냐면, (담배를 피워 무신다) 오늘 별 얘기 다한다. 그러다가 오니깐은 문제가 생겼어. “너 그런 거 또 하고 그러면 학교 안 보내준다”, “그짓 하고 댕기려면은 농사나 지어라.” 그런 거야. 그러다가 이제 결혼을 하라는 문제가 나온겨.

퍼: 할아버지 3개월 유치장 갔다 나오셨을 때요?

정: 그려. 그걸 또 담안댁 당숙을 통해서나 듣지 아버지는 나한테는 한 마디도 안 하시는 거여. ‘너 이 새끼 어디서 뭐하고 왔어’ 이러지도 않으시고 한 마디도 안 하시는 거여. 그렇게 아버지가 엄격했어.

퍼: 그래서 어떻게 하셨어요?

정: “학교 보내준다는 조건이라면 나 결혼하겠습니다.” 이렇게 된 거여. 그때 마침 수리터에 누가 계셨는가 하면은 느덜 5대조 할머니의 시집이 거기 있었어. 그 아들이 거기 있었다구.

퍼: 5대조 할머니의 아들?

정: 그 위는 나도 모르지. 그 아들이 살아 계셨어. 그 아들하고 아버지하고 인척 관계가 되니깐은 서로 알잖어. 그래서 혼인이 된겨. 그래서 때 맞춰서 여기 마땅한 데가 있으니까 “결혼을 시켜서 안정을 시켜야 저 놈이 도망도 안 댕기구 딴 짓 안 할 거 아니냐.” 그렇게 된 거지.

 

3. 유치장에서 3개월

 

퍼: 유치장에서 3개월은 어떠셨어요?

정: 응,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가 하면, 11월 달이었어. 동대문경찰서가 일정시대에 지은 건물이기 때문에 목조건물이여. 숙직실을 온돌방으로 만들고 구들장 있고 흙 바르고 그러는 거 아니여. 바깥에는 목존데 말릴라고 불을 때니깐은 목조가 타서 불이 난 거여.

퍼: 어머.

정: 그날 우리 집에서 면회 오는 날이었거든? 담안댁 당숙이 나랑 아버지 사이에 심부름꾼이었는데 이날 이 분이 면회를 오는 날이여. 아, 와보니깐, 그냥 동대문 경찰서가 홀랑 타버렸네?

퍼: 헤? 그래서 할아버지 어떻게 됐어요?

정: 나중에 들어보니까, 당숙이 “이 새끼 어서 불타죽었구나!” 하고 주저앉을 수밖에. 그런 와중에 우리는 밤에 트럭에 실려가지고설랑, 경찰들이 이박사 저격하다 실패한 사람, “저 새끼 저 놓치면 안 된다”고, 그놈은 그놈대로 그렇게 하고 우리보고는 “대가리 들으면 느덜 총 쏜다”고 말이여. 이라구, 이라구 있었어.(두 손을 깍지 끼고 뒷목을 감싸 안으심) 그래 나중에 알고 보니깐은 옮겨간 곳이 중부경찰서여. 지금 중부경찰서.

퍼: 동대문 경찰서에서 불이 나서 다 대피 시킨 거예요?

정: 응. 불난 건 거기서 피해줘서 트럭 타고 나온 거여. 빨갱이들 뭐다 난리 피울 때거든. 각 경찰서마다 탄약고마다 난리가 났을 거 아니여. 희생당하거나 책임 문제가 나오니까는 도피시키고 중부경찰서에 배치가 된 거여.

퍼: 아.

정: 그런데 그 중부경찰서 감옥이 지하에 있는데 똥그랗게 돼있어요. 원형으로 되어 있어. 여기서 나가면은 출구가 미로처럼 되어 있어서 탈출을 했다하더라도 나가지도 못하는 거야.

퍼: 교묘하게 만들어진 감옥이었구나.

정: 밥도 있잖니, 밀. 밀 삶은 거 앙상하게 갖다 주는 거야. 호렴이라는 게 있어. 커드란 소금 덩어리. 그거 하나 같이 놔주는 거여. 그게 반찬이여. 그라믄 그게 얼마나 배가 고프냐. 밀 삶은 거 쥐면 한 주먹 밖에 안 돼. 배가 고프니까 소금이 짠 게 아니라 달다 할 정도니까. 먹고 나서 호렴을 냄겨 놓는 거야. 배가 고플 때 먹으려고.

퍼: 히야.

정: 그 와중에 웃음이 날 수 있는 게 뭐냐면 이제 경찰들이 붙잡혀 온 사람들 이름 부르고 호명을 해. 그러면 “나는 누굽니다!”하고 저기서 대답하는 놈이 ‘왜 저 놈이 저기 와 있어?’ 그래요. 나는 또 ‘저 놈이 왜 저기 있어?’ 그러고. 여기저기서 끌려 온 놈 중에서 아는 놈들이 있다구. 그러면 서로 몰래 손을 흔들면설랑 아는 척을 하구.(손을 얼굴에 바짝 대고 흔드시며 인사하는 시늉) 말 하면 뭐하냐.

퍼: 유치장에서 어떻게 나오신 거예요?

정: 그때도 못 나오는 건데 집안 아저씨가 사범대학에 계셨으니까 이렇게 저렇게 해서 나오게 된 거여. 그렇지 않으면 형무소에 가서 몇 십 년 살게 되고 그렇게 될지 모르는 건데.

퍼: 할아버지의 아버지도 이 사실을 알았어요? 실망이 크셨겠네?

정: 아셨지. 아버지는 정보를 다 듣고 있었지. 실망이야 뭐 말할 수 없었겠지만 나한테 한 마디도 안하셔. 잘했다, 못했다 한 마디도 없으셔.

퍼: 그랬구나. 그래서요?

정: 아이구, 나왔는데 얘기가 뭐냐면, (담배를 피워 무신다) 오늘 별 얘기 다한다. 그러다가 오니깐은 문제가 생겼어. “너 그런 거 또 하고 그러면 학교 안 보내준다”, “그짓 하고 댕기려면은 농사나 지어라.” 그런 거야. 그러다가 이제 결혼을 하라는 문제가 나온겨.

퍼: 할아버지 3개월 유치장 갔다 나오셨을 때요?

정: 그려. 그걸 또 담안댁 당숙을 통해서나 듣지 아버지는 나한테는 한 마디도 안 하시는 거여. ‘너 이 새끼 어디서 뭐하고 왔어’ 이러지도 않으시고 한 마디도 안 하시는 거여. 그렇게 아버지가 엄격했어.

퍼: 그래서 어떻게 하셨어요?

정: “학교 보내준다는 조건이라면 나 결혼하겠습니다.” 이렇게 된 거여. 그때 마침 수리터에 누가 계셨는가 하면은 느덜 5대조 할머니의 시집이 거기 있었어. 그 아들이 거기 있었다구.

퍼: 5대조 할머니의 아들?

정: 그 위는 나도 모르지. 그 아들이 살아 계셨어. 그 아들하고 아버지하고 인척 관계가 되니깐은 서로 알잖어. 그래서 혼인이 된겨. 그래서 때 맞춰서 여기 마땅한 데가 있으니까 “결혼을 시켜서 안정을 시켜야 저 놈이 도망도 안 댕기구 딴 짓 안 할 거 아니냐.” 그렇게 된 거지.

 

4. 결혼

 

퍼: 그런 사실을 할머니 댁에서도 알고 계셨어요?

정: 느이 할머니네 집에서는 “다 제쳐 놓고서라도 빨갱이 짓 한 놈 이거는 절대로 안 된다”고, 나중에 알고 보니깐 그렇다는겨. 고르다 고르다 삼베를 고른 거지.

퍼: 고르다 고르다 뭘 골랐다고?

정: 옛날에 명주실도 있고 목화실도 있고 그런데 삼베를 제일 하치로 생각했거든? 고르다 고르다 삼베를 고른거여.

퍼: 아, 그 삼베?

정: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 내 친구들 하고도 혼인 얘기가 있었구 그랬는데, 중매쟁이 할아버지가 이쪽은 감쪽같이 속인 거여. “아, 얘는 절대 그런 애가 아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까 그런 거 같어. 그러니까 저 집에서도 그래버린 거(결혼 승낙을) 아니겠는가. 급속도로다가 결혼을 시킨겨.

퍼: 할머니는 모르고 하신 거구나?

정: 그려. 근데 그때 사범대학교에서 무슨 사건이 있었냐면은 레프트하고 라이트하고 싸움이 벌어져가주구설랑 우익 학생이 하나 죽었어. 이거 레프트에서 죽인 거다, 그래구설랑 수배령이 내린겨. 거기 내가 꼈어.

퍼: 수배령에?

정: 응. 서울서 연락이 왔어. 나는 막 유치장에서 나와서 여기 와 있는데, “너 수배령이 내렸는데 너 결혼한다매?” 이렇게.

퍼: 누구한테 연락이 왔어요?

정: 써클의 친구들한테. 난센스도 참 많어. 아, 그러니 어떡하니. 낼 모레 결혼식을 가는 판인데. 나 결혼할 때 담안댁 당숙이 우리 윗집에 살았는데 붙들려 갈까배 거기서 자고서 그러고 왔어.

퍼: 결혼식을 몰래 다른 집에 가서 자고 가셨단 말이에요?

정: 그랬다니까. 그때 서울서 두 사람이 나를 에스코트를 하러 온 거여. 장가는 간다는 데 어떡할 거여. 저기할 수도 없고(수배령이 내렸다고 못하게 할 수도 없고) 그러니깐은 둘이서 선발이 돼서 왔어.

퍼: 학교 사람들이?

정: 하나는 나보담두 술도 더 잘 먹는, 그때 나이로다가 삼십이 넘은, 사범대학교 졸업해서 선생하고 있는 선배고 하나는 보성중학교 다니는 후배고. 그러고 같이 수리터까지 갔어. 그런디 뭐. 이것저것 혼란스럽잖냐.

퍼: 한쪽에서는 쉬쉬하고, 한쪽에서는 경사 분위기였고 그랬겠네요.

정: 느이 할먼네한테 비출 순 없잖어. 그러니깐 쉬쉬하고. 후배는 들락날락하면서 (경찰이 잡으러 왔나) 감시하고 술 먹는 사람은 나하고 비유를 맞추기 위해서 술을 먹고. 그러니까 안에서는 난리가 난거야. “아 무슨 신랑이 술을 저렇게 먹느냐”고 말이여.

퍼: 마음에 안 드셨겠다.

정: 그때 담안댁 당숙이 같이 후행으로다 오셨어. 그러니까 눈을 꿈벅꿈벅하고 안절부절 못 하시는 거여. “아이고, 그만 좀 마시라”고. 그런데 내 심정은 그게 아니잖아. 거기 온 사람도 그렇고 말이야. 어떠한 상황이 벌어질는지도 모르고. 술을 그렇게 먹어도 취해질 않잖아. 그렇게 결혼식을 했어.

퍼: 어휴, 못살아.

정: 그런데 동네 놈들은 또 뭐냐면 대학교 다니고 노총각이 장가들러 왔다고 멍석 밑에다 콩을 죽 깔아 놓구설랑 잘못 걸으면은 미끌어져서 넘어지게 해 놓은거여.

퍼: 시골 친구들이 짓궂게 장난 친 거예요?

정: 응. 잿덩이 막 날라 오구. 장인 될 어른은 이놈저놈 말리러 다니느라고 난리를 피구. 우리는 정신이 바짝 나고 초긴장을 하고 들어가는 거지.

퍼: 할아버지는 정말 심정이 말이 아니셨겠네, 결혼식 날.

정: 그렇지. 느 할머니 집에서는 몰르고 있는 거구. 아 그런데 사랑방으로 해서 들어가는데 그 와중에 (멍석 아래 콩이) 깔려 있다고 정보를 주는 심부름꾼이 또 있는 거여. “(너 그러다) 넘어지면 장가도 못 들어.” 조심하라구.

퍼: 그래서 할아버지 넘어졌어요?

정: 안 넘어졌지. 열심히 갔지. 그때 얘기하면 뭘 해.

퍼: 하하. 그래서 그 이후에는요?

정: (그날 밤에) 이만한 주전자에다가 막걸리 잔치 집에서 거른 거 있지 않니. 그걸 그냥 이만한 주전자에 갖다 놓구설랑 먹자 이거여. 좋다고 하면서, 먹다가 쓰러지면 너 먹어라, 또 너 한 잔 먹어라. 그러니까 세 사람이 그렇게 술을 먹어 대니까 다른 사람들 눈깔이 이렇게 뒤집히는겨. 그리고선 신방 꾸민다고 해놓고 밤새도록 오줌만 누고 말이여. 허허허.

정: 내가 그때 마지막으로다가 가마를 탔어.

퍼: 가마를 타시다니요?

정: 상민들이, 아무개 할아버지 손자가 장가를 간다는 데 가마를 안 태워줄 수 없잖냐. 그랬더니 우리 집에서 도움을 받은 사람들, 상민들이 가마를 태워야 한다고 그러는겨.

퍼: 도움을 어떻게 받았길래?

정: 보릿고개라는 게 있지 않니? 그때 소작제도라는 게 있는데 가난한 사람들은 부잣집에서 일해주고서 쌀을 가져다 먹거나 돈으로 가져가거나 그랬단 말이야. 그런데 부잣집에서는 어떻게 했느냐면 쌀을 한 말 주면은 두 말을 갚어야 돼. 이자가 그렇게 곱이자여. 그런 생활이었었다구.

퍼: 착취를 많이 당했겠구나.

정: 먹다가 이제 떨어지면은 다음 해 봄에 일을 해드릴 테니깐은, 미리 임금을 받아다 먹는 거야. 쌀로 받아다 먹든, 돈으로 받아다 먹든. 일하는 사람들은 그러니까 그냥 부잣집한테 착취만 당하는 거야. 식량이 떨어지고 달라고 해서 먹는 것도 한계가 있고. 봄철에 이제 보리가 싹트고 나오지 않니. 죽을 쒀먹고. 그게 보릿고개라고.

퍼: 근데 우리 집에서는 안 그랬다고?

정: 우리 집은 말하자면 지주 비슷한 것인데, 아버지는 그런 나쁜 짓을 안 하셨어.

퍼: 그래서 할아버지를 가마 태워 보내고 싶어 했던 거구나?

정: 다른 집도 아니고 용무댁 도령님이신데 마지막으로 한 번 가마를 태워드린다고 그랬었지. 아버지께서는 요새 세상에 가마를 타느냐 그러셨다구. 나도 절대 싫다고 했거든. 나갈 적에만 타는 척 하고 가다가 동네만 지나고설랑 빈 가마 뒤를 덜렁덜렁 걸어갔어.

퍼: 하하.

정: 내 세대에서는 내가 마지막으로 가마를 탔지. 매곡에서는 마지막으로 가마를 탄 거여.

퍼: 그 전에는 대개 가마를 탔어요?

정: 그렇지. 남자고 여자고 시집가고 장가갈 때 가마를 탔지.

퍼: 그런 게 없어지는 분위기인데 할아버지는 타고 가신 거예요?

정: 응. 마지막으로.

 

4. 결혼

 

퍼: 그런 사실을 할머니 댁에서도 알고 계셨어요?

정: 느이 할머니네 집에서는 “다 제쳐 놓고서라도 빨갱이 짓 한 놈 이거는 절대로 안 된다”고, 나중에 알고 보니깐 그렇다는겨. 고르다 고르다 삼베를 고른 거지.

퍼: 고르다 고르다 뭘 골랐다고?

정: 옛날에 명주실도 있고 목화실도 있고 그런데 삼베를 제일 하치로 생각했거든? 고르다 고르다 삼베를 고른거여.

퍼: 아, 그 삼베?

정: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 내 친구들 하고도 혼인 얘기가 있었구 그랬는데, 중매쟁이 할아버지가 이쪽은 감쪽같이 속인 거여. “아, 얘는 절대 그런 애가 아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까 그런 거 같어. 그러니까 저 집에서도 그래버린 거(결혼 승낙을) 아니겠는가. 급속도로다가 결혼을 시킨겨.

퍼: 할머니는 모르고 하신 거구나?

정: 그려. 근데 그때 사범대학교에서 무슨 사건이 있었냐면은 레프트하고 라이트하고 싸움이 벌어져가주구설랑 우익 학생이 하나 죽었어. 이거 레프트에서 죽인 거다, 그래구설랑 수배령이 내린겨. 거기 내가 꼈어.

퍼: 수배령에?

정: 응. 서울서 연락이 왔어. 나는 막 유치장에서 나와서 여기 와 있는데, “너 수배령이 내렸는데 너 결혼한다매?” 이렇게.

퍼: 누구한테 연락이 왔어요?

정: 써클의 친구들한테. 난센스도 참 많어. 아, 그러니 어떡하니. 낼 모레 결혼식을 가는 판인데. 나 결혼할 때 담안댁 당숙이 우리 윗집에 살았는데 붙들려 갈까배 거기서 자고서 그러고 왔어.

퍼: 결혼식을 몰래 다른 집에 가서 자고 가셨단 말이에요?

정: 그랬다니까. 그때 서울서 두 사람이 나를 에스코트를 하러 온 거여. 장가는 간다는 데 어떡할 거여. 저기할 수도 없고(수배령이 내렸다고 못하게 할 수도 없고) 그러니깐은 둘이서 선발이 돼서 왔어.

퍼: 학교 사람들이?

정: 하나는 나보담두 술도 더 잘 먹는, 그때 나이로다가 삼십이 넘은, 사범대학교 졸업해서 선생하고 있는 선배고 하나는 보성중학교 다니는 후배고. 그러고 같이 수리터까지 갔어. 그런디 뭐. 이것저것 혼란스럽잖냐.

퍼: 한쪽에서는 쉬쉬하고, 한쪽에서는 경사 분위기였고 그랬겠네요.

정: 느이 할먼네한테 비출 순 없잖어. 그러니깐 쉬쉬하고. 후배는 들락날락하면서 (경찰이 잡으러 왔나) 감시하고 술 먹는 사람은 나하고 비유를 맞추기 위해서 술을 먹고. 그러니까 안에서는 난리가 난거야. “아 무슨 신랑이 술을 저렇게 먹느냐”고 말이여.

퍼: 마음에 안 드셨겠다.

정: 그때 담안댁 당숙이 같이 후행으로다 오셨어. 그러니까 눈을 꿈벅꿈벅하고 안절부절 못 하시는 거여. “아이고, 그만 좀 마시라”고. 그런데 내 심정은 그게 아니잖아. 거기 온 사람도 그렇고 말이야. 어떠한 상황이 벌어질는지도 모르고. 술을 그렇게 먹어도 취해질 않잖아. 그렇게 결혼식을 했어.

퍼: 어휴, 못살아.

정: 그런데 동네 놈들은 또 뭐냐면 대학교 다니고 노총각이 장가들러 왔다고 멍석 밑에다 콩을 죽 깔아 놓구설랑 잘못 걸으면은 미끌어져서 넘어지게 해 놓은거여.

퍼: 시골 친구들이 짓궂게 장난 친 거예요?

정: 응. 잿덩이 막 날라 오구. 장인 될 어른은 이놈저놈 말리러 다니느라고 난리를 피구. 우리는 정신이 바짝 나고 초긴장을 하고 들어가는 거지.

퍼: 할아버지는 정말 심정이 말이 아니셨겠네, 결혼식 날.

정: 그렇지. 느 할머니 집에서는 몰르고 있는 거구. 아 그런데 사랑방으로 해서 들어가는데 그 와중에 (멍석 아래 콩이) 깔려 있다고 정보를 주는 심부름꾼이 또 있는 거여. “(너 그러다) 넘어지면 장가도 못 들어.” 조심하라구.

퍼: 그래서 할아버지 넘어졌어요?

정: 안 넘어졌지. 열심히 갔지. 그때 얘기하면 뭘 해.

퍼: 하하. 그래서 그 이후에는요?

정: (그날 밤에) 이만한 주전자에다가 막걸리 잔치 집에서 거른 거 있지 않니. 그걸 그냥 이만한 주전자에 갖다 놓구설랑 먹자 이거여. 좋다고 하면서, 먹다가 쓰러지면 너 먹어라, 또 너 한 잔 먹어라. 그러니까 세 사람이 그렇게 술을 먹어 대니까 다른 사람들 눈깔이 이렇게 뒤집히는겨. 그리고선 신방 꾸민다고 해놓고 밤새도록 오줌만 누고 말이여. 허허허.

정: 내가 그때 마지막으로다가 가마를 탔어.

퍼: 가마를 타시다니요?

정: 상민들이, 아무개 할아버지 손자가 장가를 간다는 데 가마를 안 태워줄 수 없잖냐. 그랬더니 우리 집에서 도움을 받은 사람들, 상민들이 가마를 태워야 한다고 그러는겨.

퍼: 도움을 어떻게 받았길래?

정: 보릿고개라는 게 있지 않니? 그때 소작제도라는 게 있는데 가난한 사람들은 부잣집에서 일해주고서 쌀을 가져다 먹거나 돈으로 가져가거나 그랬단 말이야. 그런데 부잣집에서는 어떻게 했느냐면 쌀을 한 말 주면은 두 말을 갚어야 돼. 이자가 그렇게 곱이자여. 그런 생활이었었다구.

퍼: 착취를 많이 당했겠구나.

정: 먹다가 이제 떨어지면은 다음 해 봄에 일을 해드릴 테니깐은, 미리 임금을 받아다 먹는 거야. 쌀로 받아다 먹든, 돈으로 받아다 먹든. 일하는 사람들은 그러니까 그냥 부잣집한테 착취만 당하는 거야. 식량이 떨어지고 달라고 해서 먹는 것도 한계가 있고. 봄철에 이제 보리가 싹트고 나오지 않니. 죽을 쒀먹고. 그게 보릿고개라고.

퍼: 근데 우리 집에서는 안 그랬다고?

정: 우리 집은 말하자면 지주 비슷한 것인데, 아버지는 그런 나쁜 짓을 안 하셨어.

퍼: 그래서 할아버지를 가마 태워 보내고 싶어 했던 거구나?

정: 다른 집도 아니고 용무댁 도령님이신데 마지막으로 한 번 가마를 태워드린다고 그랬었지. 아버지께서는 요새 세상에 가마를 타느냐 그러셨다구. 나도 절대 싫다고 했거든. 나갈 적에만 타는 척 하고 가다가 동네만 지나고설랑 빈 가마 뒤를 덜렁덜렁 걸어갔어.

퍼: 하하.

정: 내 세대에서는 내가 마지막으로 가마를 탔지. 매곡에서는 마지막으로 가마를 탄 거여.

퍼: 그 전에는 대개 가마를 탔어요?

정: 그렇지. 남자고 여자고 시집가고 장가갈 때 가마를 탔지.

퍼: 그런 게 없어지는 분위기인데 할아버지는 타고 가신 거예요?

정: 응. 마지막으로.

 

5. 한국 전쟁, 그리고 도피의 시작

 

퍼: 할머니 첫 인상이 어땠어요?

정: 예쁘고말고 간에 학교 보내준다고 하니깐은.

퍼: 그래서 그 이후에 학교에 가셨어요?

정: 그렇지. 조건이 그랬으니까 결혼하자마자 학교를 갔지.

퍼: 아, 다시 학교를 가셨구나.

정: 그라구서는 또 사건이 터지고 또 끌려 내려온 거지.

퍼: 또 무슨 사건이 터졌다고요?

정: 근데 그 사건이 헷갈려. 고 전이랑 고 후랑. 그러고설랑 내려와서 이제 취직한 거지. 성환 보통학교에 일반 선생님으로.

퍼: 아.

정: 취임하고 고 다음 해에 6.25 사변이 난 거지.

퍼: 할아버지 피난 생활 하셨어요?

정: 사변이 나니깐 학교에 있다가, 그땐 이제 국방군이여, 국방군. 국방군이 밀려 내려오는 거여. 그때 나는 학교 선생님들이랑 이게 어떻게 되는 건가 이야기를 하고 있었어.

퍼: 그러다가?

정: 그러다가 국방군은 내려가고 인민군이 여기 와서 있었어. 그 아래서 내가 교장도 하고 했지.

퍼: 인민 치하에서? 부딪힐 일은 없었어요?

정: 부딪힐 일이 없지. 레프트에 관계 했던 경력이 있는 사람이니까 교장으로 선발된 거지. 주변에서도 다 알고 있지. 사범대학에 있다가 무슨 일로 해서 내려온 사람이다라는 걸. 선생들도 해방 직후니까 오합지졸들 아니냐. 그러니까 나를 선출한 거여.

퍼: 아, 그래서 이후에 도피 생활을 하셨다는 거구나?

정: 그렇지. 서울이 수복된 다음에 그때부터 도망생활을 한 거지.*

* 9.28서울 수복 : 6 ·25전쟁 과정에서 1950년 6월 28일 북한군에게 점령당한 수도 서울을 한국군과 유엔군이 같은 해 인천상륙작전 성공으로 9월 28일 서울을 탈환하였다.

정: 도망 다닐 적에 에피소드를 하나 얘기해줄까?

퍼: 하하. 어떤 얘긴데요?

정: 할아버지가 어떤 마포 집에 숨어서 있었어.

퍼: 어떤 인연으로?

정: 아버지 생가에 동생 되는 분이 있어. 그 집에 가서 숨어서 있었어. 그게 마포인데 왜 거길 갔느냐 하면 그 양반 남편이 경찰이었어. 그러니까 거기가 안전할까 싶어서 찾아 간 거여. 그런데 이 양반이 생각하기에는 골치 아프지. 자기 신분에 대해 위협을 받을 수 있으니깐은 집에 들어오지도 않는 거여.

퍼: 정말 그랬겠다.

정: 여기 있다가도 안 되겄구 저기 있다가도 안 되겄구 집이나 한 번 다녀서 죽든지 해야겠다하고 떠나는 거야.

퍼: 그래서요?

정: 그때 나는 “나 집에 갈테니깐은 한 번만 에스코트 해달라”고 얘기가 된 거야. 집이 서대문 바깥에 영천에 있었으니깐은 마포 나루터까지 같이 새벽에 떠나는 거야.

퍼: 에스코트 해주신 거예요?

정: 그 근처까지 가니까 “내가 너 여기까지 데려다줬으니까 가”라는 거여. 미치겠더구만. 겁이 나는 거여. 증명서가 있어 뭐가 있어. 죽기 살기로다가 가니깐은 사람들이 죽 서 있어. 배를 탈려고. 그때 이제 내가 재주를 폈다 그럴까?

퍼: 무슨 재주요?

정: 서너 사람 앞에 보니까 어떤 부인이 있어. 도강증이 100원이었다면 부인에게 500원을 주면서, 표 살 때 하나만 더 사다 달라고 했어. 그러니까 (그 부인이) 돈을 보니까 그게 얼마여. 사서 주더라구.

퍼: 우아.

정: 배를 타는데, 거기가 마포에서 건너면 여의도여. 거기서 쪼끔 가면 인제 영등포구. 근데 그때는 허허벌판이야. 강을 건너면은 모래벌판이 쫘악 (깔려 있고). 배에서 내리고 보니깐은 헌병서부텀 양놈들까지 쫙 정찰하고 있는 거지. 하나하나 검사를 하는 거여.

퍼: 그래서요?

정: 야 여기서 죽을 순 없지 않냐 하면서 앞에 이렇게 가만히 살피고 보니깐 댓사람 앞에서 어떤 사람이 증명서가 시원찮다고 검사하는 사람하고 시비가 났어. “이때다!” 하고서는 줄 서는 데서 삐져가지고설랑 다행히 넘었지. 그런디 뛸 수도 없잖니. 잔걸음으로다가 한참 가는 거여.

퍼: 우아. 진짜 간 졸이셨겠다.

정: 그러다가 중간쯤 갔는데 누굴 만났냐면은 여기 동네에 버들계댁이라고 색시가 있었어. 그이가 영등포에 시집을 왔어. 보통학교 같이 다니고 그랬지. 중간에서 이걸 만난 거여.  “오빠, 잘 지내?”, “넌 여기서 잘 지내고 있는 거냐.” 이라면서.

퍼: 아. 반가우셨겠네요.

정: 아, 그래도 “난 급하니까 얘기할 것 없다. 너는 너대로 가라. 잘 있다고 하니까 다행이다.” 하고 영등포역까지 왔어. 골목골목마다 젊은 놈들이 완장타고설랑 왔다 갔다 하는 거여. 그때 인제 젊은 애들은 무조건 붙들어 가는 거여.

퍼: 그래서 할아버지는 어떻게 하셨어요?

정: 영등포역에 가서 플랫폼에서 기다리고 있는겨. 기다리고 있는데 차가 와야지. 7시나 8시가 됐을겨. 껌껌한데서 차가 오는데 화물차가 오는겨. 보니께 붙들려서 오는 놈들이 꽉 차있는 거여. 보따리 싸서 피난 가는 사람들도 많았지. 화물차 지붕 꼭대기에 올라타는 거야. 나도 다행히 걸리지 않고 올라탔어.

퍼: 화물차 지붕에?

정: 응. 안양 오다 보면 수원서 오는데 윗길이 있어요. 찻길이 밑에 있구. 지금도 그게 있어. 화물차 위에 타면 잘못하면 걸려서 떨어져 죽는 거여. 거기서 몇 사람 떨어져 죽었어. 나는 떨어져 죽지 않구설랑 왔어.

퍼: 고비를 엄청 많이 넘기셨네.

 

5. 한국 전쟁, 그리고 도피의 시작

 

퍼: 할머니 첫 인상이 어땠어요?

정: 예쁘고말고 간에 학교 보내준다고 하니깐은.

퍼: 그래서 그 이후에 학교에 가셨어요?

정: 그렇지. 조건이 그랬으니까 결혼하자마자 학교를 갔지.

퍼: 아, 다시 학교를 가셨구나.

정: 그라구서는 또 사건이 터지고 또 끌려 내려온 거지.

퍼: 또 무슨 사건이 터졌다고요?

정: 근데 그 사건이 헷갈려. 고 전이랑 고 후랑. 그러고설랑 내려와서 이제 취직한 거지. 성환 보통학교에 일반 선생님으로.

퍼: 아.

정: 취임하고 고 다음 해에 6.25 사변이 난 거지.

퍼: 할아버지 피난 생활 하셨어요?

정: 사변이 나니깐 학교에 있다가, 그땐 이제 국방군이여, 국방군. 국방군이 밀려 내려오는 거여. 그때 나는 학교 선생님들이랑 이게 어떻게 되는 건가 이야기를 하고 있었어.

퍼: 그러다가?

정: 그러다가 국방군은 내려가고 인민군이 여기 와서 있었어. 그 아래서 내가 교장도 하고 했지.

퍼: 인민 치하에서? 부딪힐 일은 없었어요?

정: 부딪힐 일이 없지. 레프트에 관계 했던 경력이 있는 사람이니까 교장으로 선발된 거지. 주변에서도 다 알고 있지. 사범대학에 있다가 무슨 일로 해서 내려온 사람이다라는 걸. 선생들도 해방 직후니까 오합지졸들 아니냐. 그러니까 나를 선출한 거여.

퍼: 아, 그래서 이후에 도피 생활을 하셨다는 거구나?

정: 그렇지. 서울이 수복된 다음에 그때부터 도망생활을 한 거지.*

* 9.28서울 수복 : 6 ·25전쟁 과정에서 1950년 6월 28일 북한군에게 점령당한 수도 서울을 한국군과 유엔군이 같은 해 인천상륙작전 성공으로 9월 28일 서울을 탈환하였다.

정: 도망 다닐 적에 에피소드를 하나 얘기해줄까?

퍼: 하하. 어떤 얘긴데요?

정: 할아버지가 어떤 마포 집에 숨어서 있었어.

퍼: 어떤 인연으로?

정: 아버지 생가에 동생 되는 분이 있어. 그 집에 가서 숨어서 있었어. 그게 마포인데 왜 거길 갔느냐 하면 그 양반 남편이 경찰이었어. 그러니까 거기가 안전할까 싶어서 찾아 간 거여. 그런데 이 양반이 생각하기에는 골치 아프지. 자기 신분에 대해 위협을 받을 수 있으니깐은 집에 들어오지도 않는 거여.

퍼: 정말 그랬겠다.

정: 여기 있다가도 안 되겄구 저기 있다가도 안 되겄구 집이나 한 번 다녀서 죽든지 해야겠다하고 떠나는 거야.

퍼: 그래서요?

정: 그때 나는 “나 집에 갈테니깐은 한 번만 에스코트 해달라”고 얘기가 된 거야. 집이 서대문 바깥에 영천에 있었으니깐은 마포 나루터까지 같이 새벽에 떠나는 거야.

퍼: 에스코트 해주신 거예요?

정: 그 근처까지 가니까 “내가 너 여기까지 데려다줬으니까 가”라는 거여. 미치겠더구만. 겁이 나는 거여. 증명서가 있어 뭐가 있어. 죽기 살기로다가 가니깐은 사람들이 죽 서 있어. 배를 탈려고. 그때 이제 내가 재주를 폈다 그럴까?

퍼: 무슨 재주요?

정: 서너 사람 앞에 보니까 어떤 부인이 있어. 도강증이 100원이었다면 부인에게 500원을 주면서, 표 살 때 하나만 더 사다 달라고 했어. 그러니까 (그 부인이) 돈을 보니까 그게 얼마여. 사서 주더라구.

퍼: 우아.

정: 배를 타는데, 거기가 마포에서 건너면 여의도여. 거기서 쪼끔 가면 인제 영등포구. 근데 그때는 허허벌판이야. 강을 건너면은 모래벌판이 쫘악 (깔려 있고). 배에서 내리고 보니깐은 헌병서부텀 양놈들까지 쫙 정찰하고 있는 거지. 하나하나 검사를 하는 거여.

퍼: 그래서요?

정: 야 여기서 죽을 순 없지 않냐 하면서 앞에 이렇게 가만히 살피고 보니깐 댓사람 앞에서 어떤 사람이 증명서가 시원찮다고 검사하는 사람하고 시비가 났어. “이때다!” 하고서는 줄 서는 데서 삐져가지고설랑 다행히 넘었지. 그런디 뛸 수도 없잖니. 잔걸음으로다가 한참 가는 거여.

퍼: 우아. 진짜 간 졸이셨겠다.

정: 그러다가 중간쯤 갔는데 누굴 만났냐면은 여기 동네에 버들계댁이라고 색시가 있었어. 그이가 영등포에 시집을 왔어. 보통학교 같이 다니고 그랬지. 중간에서 이걸 만난 거여.  “오빠, 잘 지내?”, “넌 여기서 잘 지내고 있는 거냐.” 이라면서.

퍼: 아. 반가우셨겠네요.

정: 아, 그래도 “난 급하니까 얘기할 것 없다. 너는 너대로 가라. 잘 있다고 하니까 다행이다.” 하고 영등포역까지 왔어. 골목골목마다 젊은 놈들이 완장타고설랑 왔다 갔다 하는 거여. 그때 인제 젊은 애들은 무조건 붙들어 가는 거여.

퍼: 그래서 할아버지는 어떻게 하셨어요?

정: 영등포역에 가서 플랫폼에서 기다리고 있는겨. 기다리고 있는데 차가 와야지. 7시나 8시가 됐을겨. 껌껌한데서 차가 오는데 화물차가 오는겨. 보니께 붙들려서 오는 놈들이 꽉 차있는 거여. 보따리 싸서 피난 가는 사람들도 많았지. 화물차 지붕 꼭대기에 올라타는 거야. 나도 다행히 걸리지 않고 올라탔어.

퍼: 화물차 지붕에?

정: 응. 안양 오다 보면 수원서 오는데 윗길이 있어요. 찻길이 밑에 있구. 지금도 그게 있어. 화물차 위에 타면 잘못하면 걸려서 떨어져 죽는 거여. 거기서 몇 사람 떨어져 죽었어. 나는 떨어져 죽지 않구설랑 왔어.

퍼: 고비를 엄청 많이 넘기셨네.

 

6. 처가 ‘수리터’에서 도피 생활

 

정: 그런디 인제 이 기차가 성환에 서면 집에 한 번 들러서 어디를 가든지 하고 안 서면 정처 없이 어디든 가자 이랬는데, 이 기차가 그냥 성환에 서네? 그때 12시가 넘어서 보름달 비슷하게 달이 화창하게 밝았어. 죽든 살든 집이나 한번 다녀서 가자고 내려서 매곡까지 걸어서 오는 거여.

퍼: 그때 큰아빠가 태어나셨을 때니까, 가족들도 많이 보고 싶으셨겠어요.

정: 느이 큰아빠는 살아서 깨갱깨갱 하고 있던 때지. 그것도 보고 싶고 저것도 보고 싶으니깐은 용감하게 내린 거여. 집에 오니까 12시가 넘고 그랬어. 그때 뭐 1.4후퇴니까는 겨울 때 아니냐. 날은 춥고 집에 왔더니 어머니가 붙들고 우시매설랑, 그때 생각하면 참.

퍼: 증조할머니나 할아버지나 마음이 어떠셨겠어요.

정: “어머니 나 여기서 있으면 안 돼요.” 하면서 어디 갈테니깐은 인사를 하고 나오는 데 할 말이 없잖어. 그래서 거기를 떠나서 수리터를 간 거여. 수리터를 가는데 거기 뭐가 있니. 논길 밭길 걸으면설랑, 동네 있는 데로 갈 수가 없잖어. 엉망이지.

퍼: 아이구.

정: 두 신가 세 시쯤 됐는데 사랑방에 가서 문을 두드린 거지. 처가의 장인어른이 “야,  네가 어떻게 살아서 왔느냐고 말이여.” 한밤중에 땅을 파고 난리가 난거야.

퍼: 수리터가 할아버지한테는 처가인거죠? 왜 그리로 가셨어요?

정: 조사가 오고 그라는 판이니까 어딜 와. 여길(성환) 떠난다고 하고 떠날 수밖에 없잖아. 어머니께서 붙들고 저기 하시는데 “없던 자식으로 생각하쇼.” 하고 그래 수리터 갔어. 아까 얘기한대루 땅 속에서 살고 짚가리 속에 살고 그랬다구.

퍼: 얼마나요?

정: 18개월 동안.

퍼: 가족들이나 큰아빠를 볼 수 있었어요?

정: 밤에 몰래 나와서 봤지. 그때 그게(큰아빠가) 위로가 된 거여. 골치 아프고 복잡하고 여러 가지 고민을 하고 있는데 밤에 몰래 나와서 큰애비를 안아보고 그러면은 그게 또 고민이 되는 거여. 내가 여기서 어떻게 할 건가. 내가 이 새끼를 내버리고 어디로 도망을 갈 건가, 이런 고민을 또 하고 그렇지.

퍼: 그렇게 18개월 동안 계시다가 어떻게 나오신 거예요?

정: 자수를 한 거지. 장인어른이 안정이 되니깐은 나를 자수를 시킨겨. 자수했지.

퍼: 그러셨구나.

정: 장모님은 어떤 분이었던가 하면 참 그 양반 보통 분이 아니여. 사변이 났는데 사위는 사위대로 또 이렇게 됐지, 친정 동생이 또 그 레프트 관계로다가 걸려 들어갔지, 또 형부라는 분이 또 그 문제로다가 걸려 들어갔지.

퍼: 친정 동생, 형부, 사위 모두 다?

정: 장모님 주변에 있는 세 사람이 다 걸려 들어갔어. 누구를 도와줄 거냐. 친정 동생을 도와줄 거냐, 형부를 도와줄 거냐, 사위를 도와줄 거냐. 막막하지? 생각만 해도 기가 맥히지? 다 살려줬어, 장모님이.

퍼: 어떻게요?

정: 그렇게 수단이 좋았어. 거기서 제일 가까울 것은 나, 사위일 거 아니냐. 땅굴도 파고, 짚가리 속에서도 살고 그랬어. 장인, 장모가 다 나를 살리기 위해 그렇게 하셨어. 내 그래 네 할머니가 비기 싫어두 장인어른, 장모님이 나한테 해준 것을 생각하면 그럴 수도 없어.

퍼: 하하.

정: 인생은 이렇게 가고 그런 거 아니겠느냐는 거지. 그렇게 하다가 86살이 됐고 할머니는 82살이 됐고 이렇게 살잖아. 이제 와서 좋고 나쁘고 얘기할 거 아무 것도 없잖니. 다 집어치구, 이게 다 뭐여.

퍼: 하하. 그래서 자수를 하셨어요?

정: 그라다가 (땅굴에서) 나갔어. 그러니까 검사가 뭐라는 줄 알어?

퍼: 뭐라고 하는데요?

정: 18개월 동안 땅굴에서 살고 짚가리 속에서 살다가 나가니깐은, 얼굴이 핼쓱하고, 얼굴은 지금도 이쁘잖니. 검사가 보니깐은 생김새도 예쁘고 색시 같은 새끼가 어떻게 저런 일을 저질렀냐 이렇게 얘기가 나오는 거여.

퍼: 하하하하.

정: 그런데 그때 증인으로다가 성환 보통핵교 선생들이 다 불려 나오는겨. “너희 교장이 어떤 놈이냐?”하고. 나와서 좋을 얘기 할 놈이 하나도 없잖어.

퍼: 왜요?

정: 거기서 나를 옹호해 주는 말을 하면 나하고 같은 놈이 되잖어. 그러니까 “저 놈 죽일 놈이다.” 이렇게 나오는 거지. 오는 놈마다 다 그러네. 그런데 검사가 나오는 거 보니까 흉악한 놈일 줄 알았는데 땅 속에서 살고 짚가리 안에서 살고 그러다가 유치장에서 또 한 3개월 살다 나오니까 아주 핸섬하게 생겼지. 몸은 호리하게 그렇구.

퍼: 하하.

정: “너 이 자식, 너 임마 웃기는 놈이다.” 이거여, 검사가 하는 얘기가. “오는 사람마다 너 죽일 놈이라고 다들 그러는데 내가 보니까 너 그런 놈은 아닌 것 같은데 너 어떻게 된 거냐.” 그라는겨.

퍼: 검사가 좋게 봤구나?

정: 그래서 검사가 “너 어떡할 거냐?” “저를 옹호해 주는 거 보담두 가만히 놔두면 나 이렇게 그냥 살 겁니다. 그러나 저 놈 저거 빨갱이 짓 한 놈이라니깐 저 놈 어쩌구저쩌구 하면 저 또 빨갱이 될는지도 모릅니다.” 그랬더니 솔직하게 얘기한 거에 대해 검사가 감동을 느꼈어.

퍼: 우아.

정: 그러니까 또 검사가 “너 풀어줄 테니까 너 나쁜 놈이라고 얘기한 사람이 있어. 거기 가서 다 인사하고 다 잘못했다고 사과하라” 이거여. 오늘 풀어 줄 테니까 내일 당장 나가서 그러라는 얘기여. 그래 내 그랬지. “저 그렇게 못합니다. 제가 숨어 다니다 보니까 세월도 흐르구 기운도 없고 여기 나온 것도 그러한데, 싫다는 게 아니라 지금은 힘이 없다. 그러니까 한 일주일 뒤에 그렇게 할 겁니다.” 그랬더니 거기에 또 감동을 받은 거여. ‘저 놈이 솔직한 놈이로구나. 나쁜 놈은 아니로구나.’ 하고 검사가 인정을 해준 거여.

 

6. 처가 ‘수리터’에서 도피 생활

 

정: 그런디 인제 이 기차가 성환에 서면 집에 한 번 들러서 어디를 가든지 하고 안 서면 정처 없이 어디든 가자 이랬는데, 이 기차가 그냥 성환에 서네? 그때 12시가 넘어서 보름달 비슷하게 달이 화창하게 밝았어. 죽든 살든 집이나 한번 다녀서 가자고 내려서 매곡까지 걸어서 오는 거여.

퍼: 그때 큰아빠가 태어나셨을 때니까, 가족들도 많이 보고 싶으셨겠어요.

정: 느이 큰아빠는 살아서 깨갱깨갱 하고 있던 때지. 그것도 보고 싶고 저것도 보고 싶으니깐은 용감하게 내린 거여. 집에 오니까 12시가 넘고 그랬어. 그때 뭐 1.4후퇴니까는 겨울 때 아니냐. 날은 춥고 집에 왔더니 어머니가 붙들고 우시매설랑, 그때 생각하면 참.

퍼: 증조할머니나 할아버지나 마음이 어떠셨겠어요.

정: “어머니 나 여기서 있으면 안 돼요.” 하면서 어디 갈테니깐은 인사를 하고 나오는 데 할 말이 없잖어. 그래서 거기를 떠나서 수리터를 간 거여. 수리터를 가는데 거기 뭐가 있니. 논길 밭길 걸으면설랑, 동네 있는 데로 갈 수가 없잖어. 엉망이지.

퍼: 아이구.

정: 두 신가 세 시쯤 됐는데 사랑방에 가서 문을 두드린 거지. 처가의 장인어른이 “야,  네가 어떻게 살아서 왔느냐고 말이여.” 한밤중에 땅을 파고 난리가 난거야.

퍼: 수리터가 할아버지한테는 처가인거죠? 왜 그리로 가셨어요?

정: 조사가 오고 그라는 판이니까 어딜 와. 여길(성환) 떠난다고 하고 떠날 수밖에 없잖아. 어머니께서 붙들고 저기 하시는데 “없던 자식으로 생각하쇼.” 하고 그래 수리터 갔어. 아까 얘기한대루 땅 속에서 살고 짚가리 속에 살고 그랬다구.

퍼: 얼마나요?

정: 18개월 동안.

퍼: 가족들이나 큰아빠를 볼 수 있었어요?

정: 밤에 몰래 나와서 봤지. 그때 그게(큰아빠가) 위로가 된 거여. 골치 아프고 복잡하고 여러 가지 고민을 하고 있는데 밤에 몰래 나와서 큰애비를 안아보고 그러면은 그게 또 고민이 되는 거여. 내가 여기서 어떻게 할 건가. 내가 이 새끼를 내버리고 어디로 도망을 갈 건가, 이런 고민을 또 하고 그렇지.

퍼: 그렇게 18개월 동안 계시다가 어떻게 나오신 거예요?

정: 자수를 한 거지. 장인어른이 안정이 되니깐은 나를 자수를 시킨겨. 자수했지.

퍼: 그러셨구나.

정: 장모님은 어떤 분이었던가 하면 참 그 양반 보통 분이 아니여. 사변이 났는데 사위는 사위대로 또 이렇게 됐지, 친정 동생이 또 그 레프트 관계로다가 걸려 들어갔지, 또 형부라는 분이 또 그 문제로다가 걸려 들어갔지.

퍼: 친정 동생, 형부, 사위 모두 다?

정: 장모님 주변에 있는 세 사람이 다 걸려 들어갔어. 누구를 도와줄 거냐. 친정 동생을 도와줄 거냐, 형부를 도와줄 거냐, 사위를 도와줄 거냐. 막막하지? 생각만 해도 기가 맥히지? 다 살려줬어, 장모님이.

퍼: 어떻게요?

정: 그렇게 수단이 좋았어. 거기서 제일 가까울 것은 나, 사위일 거 아니냐. 땅굴도 파고, 짚가리 속에서도 살고 그랬어. 장인, 장모가 다 나를 살리기 위해 그렇게 하셨어. 내 그래 네 할머니가 비기 싫어두 장인어른, 장모님이 나한테 해준 것을 생각하면 그럴 수도 없어.

퍼: 하하.

정: 인생은 이렇게 가고 그런 거 아니겠느냐는 거지. 그렇게 하다가 86살이 됐고 할머니는 82살이 됐고 이렇게 살잖아. 이제 와서 좋고 나쁘고 얘기할 거 아무 것도 없잖니. 다 집어치구, 이게 다 뭐여.

퍼: 하하. 그래서 자수를 하셨어요?

정: 그라다가 (땅굴에서) 나갔어. 그러니까 검사가 뭐라는 줄 알어?

퍼: 뭐라고 하는데요?

정: 18개월 동안 땅굴에서 살고 짚가리 속에서 살다가 나가니깐은, 얼굴이 핼쓱하고, 얼굴은 지금도 이쁘잖니. 검사가 보니깐은 생김새도 예쁘고 색시 같은 새끼가 어떻게 저런 일을 저질렀냐 이렇게 얘기가 나오는 거여.

퍼: 하하하하.

정: 그런데 그때 증인으로다가 성환 보통핵교 선생들이 다 불려 나오는겨. “너희 교장이 어떤 놈이냐?”하고. 나와서 좋을 얘기 할 놈이 하나도 없잖어.

퍼: 왜요?

정: 거기서 나를 옹호해 주는 말을 하면 나하고 같은 놈이 되잖어. 그러니까 “저 놈 죽일 놈이다.” 이렇게 나오는 거지. 오는 놈마다 다 그러네. 그런데 검사가 나오는 거 보니까 흉악한 놈일 줄 알았는데 땅 속에서 살고 짚가리 안에서 살고 그러다가 유치장에서 또 한 3개월 살다 나오니까 아주 핸섬하게 생겼지. 몸은 호리하게 그렇구.

퍼: 하하.

정: “너 이 자식, 너 임마 웃기는 놈이다.” 이거여, 검사가 하는 얘기가. “오는 사람마다 너 죽일 놈이라고 다들 그러는데 내가 보니까 너 그런 놈은 아닌 것 같은데 너 어떻게 된 거냐.” 그라는겨.

퍼: 검사가 좋게 봤구나?

정: 그래서 검사가 “너 어떡할 거냐?” “저를 옹호해 주는 거 보담두 가만히 놔두면 나 이렇게 그냥 살 겁니다. 그러나 저 놈 저거 빨갱이 짓 한 놈이라니깐 저 놈 어쩌구저쩌구 하면 저 또 빨갱이 될는지도 모릅니다.” 그랬더니 솔직하게 얘기한 거에 대해 검사가 감동을 느꼈어.

퍼: 우아.

정: 그러니까 또 검사가 “너 풀어줄 테니까 너 나쁜 놈이라고 얘기한 사람이 있어. 거기 가서 다 인사하고 다 잘못했다고 사과하라” 이거여. 오늘 풀어 줄 테니까 내일 당장 나가서 그러라는 얘기여. 그래 내 그랬지. “저 그렇게 못합니다. 제가 숨어 다니다 보니까 세월도 흐르구 기운도 없고 여기 나온 것도 그러한데, 싫다는 게 아니라 지금은 힘이 없다. 그러니까 한 일주일 뒤에 그렇게 할 겁니다.” 그랬더니 거기에 또 감동을 받은 거여. ‘저 놈이 솔직한 놈이로구나. 나쁜 놈은 아니로구나.’ 하고 검사가 인정을 해준 거여.

 

7. 징집 거부, 또 다시 도피

 

정: 그러다가 또 군대 가라고 신체검사를 하래. 그리고 신체 건강하니까 군대 가라고 한 거지.

퍼: 근데 거기도 안 가셨단 말이에요?

정: 안 가고서. 여태까지 군대 안 가고. (웃음)

퍼: 그래서 또 도망 다니셨어요?

정: 군대 도피할 때는 땅굴생활 안하고 일선에 돌아다녔어.

퍼: 일선이 어디에요?

정: 미군부대. 철원, 금화 이쪽에, 38선 그쪽이지.

퍼: 거긴 어떻게 가게 되신 거예요?

정: 둘째 동생이 육군 대위 통역 장교였었어. 그래 둘째 동생하고 미군 부대 통역하는 사람하고 얘기가 됐단 말이여. 민간인이 못 들어가는 데니까 데리고 가서 보호해 달라. 그래서 미군부대에 가게 된 거여.

퍼: 아, 둘째 작은할아버지를 통해서?

정: 응. 너 하우스 보이가 뭔지 알어?

퍼: 하우스 보이요?

정: 하우스 보이라는 게 미군 부대가 천막 치고 침대 갖다 놓고설랑 맡아 가지고 하는 거여. 또 미국놈들 워시워시가 뭔가 하면 세탁해주는 게 워시워시 아니냐.

퍼: 그런 일을 하신 거예요?

정: 그 하우스 보이가 그걸 하는 거여. 미국놈들 신발 닦아주고, 옷 빨아주고. 도라무 통이 뭔 줄 아니?

퍼: 도라무 통? 드럼통?

정: 개울가에 가서 물을 반쯤 퍼붓는 거여. 거기다 세탁비누 있잖니? 그걸 도라무 통 구퉁이에 대고서 득득 긁어서 비눗물을 만드는 거여.

퍼: 아, 모서리에 긁어서요?

정: 집어넣을 적에 어떻게 하냐면은 그 놈들 주머니를 다 뒤지는 거여. 술 처먹고 와서 그날 제대로 걸리면은 라이타도 생기고 별거 다 생기는 겨. 그리고 물이 끓을 때까지 개울가에서 낮잠 자는 거여. 물 끓으면 집어넣고 장대로다가 몇 번 쑤시고 엉터리로다가 개울에다가 헹궈서 갖다 주는 거여.

퍼: 하하.

정: 그런데 이제 하루는 크리스마스가 닥치고 1.4 후퇴*라는 게 뭐냐면 중공군이 압록강을 건너서 백만 대군이 쳐들어올 때여. 그때 미군부대 가니깐은 이틀에, 사흘에 한 번씩 영화가 들어와요. 전선인데도.

* 1.4 후퇴 : 한국전쟁 시 중공군의 참전에 따라 연합군이 대규모로 퇴각한 사건으로 1951년 1월 4일은 서울을 공산진영에 빼앗긴 날이다.

정: 위문 차원에서 그런 게 다 들어오는데 책에서 본 걸 거기서 다 봤어.

퍼: 재밌는 경험이셨겠네.

정: 재밌지. 그러다 통역장교가 가만히 보니까 할아버지가 나이도 많고 하니까 그릇 닦고 빨래하는 걸 바꿔서 식당 일을 시켜줬어.

퍼: 식당 일은 좀 편해요?

정: 편하긴 뭘 편해. 다 똑같지. 근데 인제 월급을 주는 거여. 월급을 받아도 쓸 데가 있어? 밤새도록 포카 놀이 하는 거여. 돈 이렇게 쌓아놓고.

퍼: 누구랑 해요?

정: 거기 노무자들이랑, 나 같은 사람들 있잖어. 그라구 돈 쓸 데가 없으니까. 잃어도 그만, 따도 그만. 그라구설랑 식당에서 좋은 걸로만 골라다가 술도 좋은 걸로만 양주로만 골라다가 갖다 놓고 난로를 피워 놓고서는 마냥 하는 거여. 새벽녘이 되면 눈 비비면서 일터 나가고 그랬어.

퍼: 아.

정: 미국 놈들은 이래요. 전선에 나와서두 사병 식당이 따로 있고 장교 식당이 따로 있어요. 걔덜은 그렇게 전선에 나와도 차별이 심하고 말이야. 그래 할아버지를 장교 식당에 보내줬어. 그러니까 거기는 사람들도 별로 없고 일하기도 편하지. 고급 술 먹으매 노다거리고 그란 거여. 그라다 나중에 또 뭘 시켰는가 하면 양놈들이 제대할 때 보따리 하나씩 만들어가지고 가거든. 벙거지 8군 마크 그런 거 있잖니.

퍼: 8군 마크요?

정: 왜 이렇게 그리는 거 있잖어. 할아버지 그거 페인트 잘 혀. 거길 또 보내주더라고. 그런 거 그려주고 그러면 양놈들이 10달라도 주고 그라는 거여. 쓸데가 있어? 주머니에 쑤셔 넣고 그런 거지.

퍼: 하.

정: 탱크부대라는 게 있어. A B C가 한 대대가 되는 겨. 한 중대에 탱크가 4대씩. 그러니까 12대가 되는 거지. 하루는 출동이 된 겨. 철원으로 다가 백마고지라는데 밑에까지 간 거여. 백마고지라고 그러더라구. 백마고지라는 말 들어봤는지 모르겠지만 포탄이 아주 그냥 먼지가 되어서 푹푹 한 길씩 묻혔다고 그런 소리까지 나오고 그라지 않았어. 백마고지라는 데가 그런 데라고.

퍼: 백마고지까지 따라가신 거예요?

할: 하우스보이라는 게 그런거니까. 개울 옆에다 진을 치고 있는 거여. 땡크 4대씩 놓고서 155mm포 장전을 하고 말이여. 그런데 백마고지에 있는 인민군들은 내려다 보일 거 아니여. 개울이니까. 날이 훤해 지니까 포탄이 날라오는겨. 그러니까 인제 몇 대가 정통으로 얻어맞았어. 그러니까 “철수!” 미국놈 싸우는 게 그렇다구. 영화에도 나오지 않니? 그 위에서 쏘면 직사포지 뭐. 여기서 쏘면 한참 고개 넘어가야 하구.

퍼: 하우스보이로 얼마나 계셨어요?

정: 한 6-7개월 있었나?

퍼: 도망가는 여정 중에 하나였던 거예요?

정: 그렇지. 철원 그 근방이여. 전쟁이 1953년 7월 27일날 끝났잖아. 26일날 저녁에 포탄이 여기서두 그냥 막 날라가고 저기서도 날라오고, 아 여기서 죽는구나, 그랬지.

퍼: 막판까지 아주 치열했구나.

정: 치열했지. 땅 한 평이라도 더 뺐을라고. 거기서 정전되면 선이 그어지니까. 그게 38선 아니여.

퍼: 휴전 되고나서는 집으로 돌아오셨어요?

정: 돌아올 수가 없지. 군대 피해 도망 다니는 판이니까 돌아올 수가 없잖어. 그라니까 서울 시내 한강 위에 있는 미군 주둔하는 데 또 취직했어요. 이건 딴 얘긴데, 할미가 나 만난다고 찾아온 거여. 그때 누굴 데려왔느냐 하면 느이 둘째 삼촌을 데리고 온 거여. 금방 낳아가지고 꼼지락하는 걸. 할머니가 그때 한강을 건너려면 도강증이라는 게 있어야 되는데 그런 걸 어디서 만들어가지고선. 허허.

퍼: 왜요? 할아버지가 보고 싶어서, 아니면 달리 전할 말이 있어서?

정: 전할 말이 뭐 있어. 보고 싶으니까 오는 거지, 궁금하니까.

 

7. 징집 거부, 또 다시 도피

 

정: 그러다가 또 군대 가라고 신체검사를 하래. 그리고 신체 건강하니까 군대 가라고 한 거지.

퍼: 근데 거기도 안 가셨단 말이에요?

정: 안 가고서. 여태까지 군대 안 가고. (웃음)

퍼: 그래서 또 도망 다니셨어요?

정: 군대 도피할 때는 땅굴생활 안하고 일선에 돌아다녔어.

퍼: 일선이 어디에요?

정: 미군부대. 철원, 금화 이쪽에, 38선 그쪽이지.

퍼: 거긴 어떻게 가게 되신 거예요?

정: 둘째 동생이 육군 대위 통역 장교였었어. 그래 둘째 동생하고 미군 부대 통역하는 사람하고 얘기가 됐단 말이여. 민간인이 못 들어가는 데니까 데리고 가서 보호해 달라. 그래서 미군부대에 가게 된 거여.

퍼: 아, 둘째 작은할아버지를 통해서?

정: 응. 너 하우스 보이가 뭔지 알어?

퍼: 하우스 보이요?

정: 하우스 보이라는 게 미군 부대가 천막 치고 침대 갖다 놓고설랑 맡아 가지고 하는 거여. 또 미국놈들 워시워시가 뭔가 하면 세탁해주는 게 워시워시 아니냐.

퍼: 그런 일을 하신 거예요?

정: 그 하우스 보이가 그걸 하는 거여. 미국놈들 신발 닦아주고, 옷 빨아주고. 도라무 통이 뭔 줄 아니?

퍼: 도라무 통? 드럼통?

정: 개울가에 가서 물을 반쯤 퍼붓는 거여. 거기다 세탁비누 있잖니? 그걸 도라무 통 구퉁이에 대고서 득득 긁어서 비눗물을 만드는 거여.

퍼: 아, 모서리에 긁어서요?

정: 집어넣을 적에 어떻게 하냐면은 그 놈들 주머니를 다 뒤지는 거여. 술 처먹고 와서 그날 제대로 걸리면은 라이타도 생기고 별거 다 생기는 겨. 그리고 물이 끓을 때까지 개울가에서 낮잠 자는 거여. 물 끓으면 집어넣고 장대로다가 몇 번 쑤시고 엉터리로다가 개울에다가 헹궈서 갖다 주는 거여.

퍼: 하하.

정: 그런데 이제 하루는 크리스마스가 닥치고 1.4 후퇴*라는 게 뭐냐면 중공군이 압록강을 건너서 백만 대군이 쳐들어올 때여. 그때 미군부대 가니깐은 이틀에, 사흘에 한 번씩 영화가 들어와요. 전선인데도.

* 1.4 후퇴 : 한국전쟁 시 중공군의 참전에 따라 연합군이 대규모로 퇴각한 사건으로 1951년 1월 4일은 서울을 공산진영에 빼앗긴 날이다.

정: 위문 차원에서 그런 게 다 들어오는데 책에서 본 걸 거기서 다 봤어.

퍼: 재밌는 경험이셨겠네.

정: 재밌지. 그러다 통역장교가 가만히 보니까 할아버지가 나이도 많고 하니까 그릇 닦고 빨래하는 걸 바꿔서 식당 일을 시켜줬어.

퍼: 식당 일은 좀 편해요?

정: 편하긴 뭘 편해. 다 똑같지. 근데 인제 월급을 주는 거여. 월급을 받아도 쓸 데가 있어? 밤새도록 포카 놀이 하는 거여. 돈 이렇게 쌓아놓고.

퍼: 누구랑 해요?

정: 거기 노무자들이랑, 나 같은 사람들 있잖어. 그라구 돈 쓸 데가 없으니까. 잃어도 그만, 따도 그만. 그라구설랑 식당에서 좋은 걸로만 골라다가 술도 좋은 걸로만 양주로만 골라다가 갖다 놓고 난로를 피워 놓고서는 마냥 하는 거여. 새벽녘이 되면 눈 비비면서 일터 나가고 그랬어.

퍼: 아.

정: 미국 놈들은 이래요. 전선에 나와서두 사병 식당이 따로 있고 장교 식당이 따로 있어요. 걔덜은 그렇게 전선에 나와도 차별이 심하고 말이야. 그래 할아버지를 장교 식당에 보내줬어. 그러니까 거기는 사람들도 별로 없고 일하기도 편하지. 고급 술 먹으매 노다거리고 그란 거여. 그라다 나중에 또 뭘 시켰는가 하면 양놈들이 제대할 때 보따리 하나씩 만들어가지고 가거든. 벙거지 8군 마크 그런 거 있잖니.

퍼: 8군 마크요?

정: 왜 이렇게 그리는 거 있잖어. 할아버지 그거 페인트 잘 혀. 거길 또 보내주더라고. 그런 거 그려주고 그러면 양놈들이 10달라도 주고 그라는 거여. 쓸데가 있어? 주머니에 쑤셔 넣고 그런 거지.

퍼: 하.

정: 탱크부대라는 게 있어. A B C가 한 대대가 되는 겨. 한 중대에 탱크가 4대씩. 그러니까 12대가 되는 거지. 하루는 출동이 된 겨. 철원으로 다가 백마고지라는데 밑에까지 간 거여. 백마고지라고 그러더라구. 백마고지라는 말 들어봤는지 모르겠지만 포탄이 아주 그냥 먼지가 되어서 푹푹 한 길씩 묻혔다고 그런 소리까지 나오고 그라지 않았어. 백마고지라는 데가 그런 데라고.

퍼: 백마고지까지 따라가신 거예요?

할: 하우스보이라는 게 그런거니까. 개울 옆에다 진을 치고 있는 거여. 땡크 4대씩 놓고서 155mm포 장전을 하고 말이여. 그런데 백마고지에 있는 인민군들은 내려다 보일 거 아니여. 개울이니까. 날이 훤해 지니까 포탄이 날라오는겨. 그러니까 인제 몇 대가 정통으로 얻어맞았어. 그러니까 “철수!” 미국놈 싸우는 게 그렇다구. 영화에도 나오지 않니? 그 위에서 쏘면 직사포지 뭐. 여기서 쏘면 한참 고개 넘어가야 하구.

퍼: 하우스보이로 얼마나 계셨어요?

정: 한 6-7개월 있었나?

퍼: 도망가는 여정 중에 하나였던 거예요?

정: 그렇지. 철원 그 근방이여. 전쟁이 1953년 7월 27일날 끝났잖아. 26일날 저녁에 포탄이 여기서두 그냥 막 날라가고 저기서도 날라오고, 아 여기서 죽는구나, 그랬지.

퍼: 막판까지 아주 치열했구나.

정: 치열했지. 땅 한 평이라도 더 뺐을라고. 거기서 정전되면 선이 그어지니까. 그게 38선 아니여.

퍼: 휴전 되고나서는 집으로 돌아오셨어요?

정: 돌아올 수가 없지. 군대 피해 도망 다니는 판이니까 돌아올 수가 없잖어. 그라니까 서울 시내 한강 위에 있는 미군 주둔하는 데 또 취직했어요. 이건 딴 얘긴데, 할미가 나 만난다고 찾아온 거여. 그때 누굴 데려왔느냐 하면 느이 둘째 삼촌을 데리고 온 거여. 금방 낳아가지고 꼼지락하는 걸. 할머니가 그때 한강을 건너려면 도강증이라는 게 있어야 되는데 그런 걸 어디서 만들어가지고선. 허허.

퍼: 왜요? 할아버지가 보고 싶어서, 아니면 달리 전할 말이 있어서?

정: 전할 말이 뭐 있어. 보고 싶으니까 오는 거지, 궁금하니까.

 

8. 휴전 후 고향 정착

 

정: 서울에서 미군부대 다니다가 시간이 이렇게 흘르구 그래서 집으로 왔어.

퍼: 아무 문제없을 때에요?

정: 군대 가는 것도 이제 꺼끔해지고 전쟁도 그때 휴전 됐으니깐은 집으로 온 거여. 그라구나서 입장(천안시 입장면) 익선원 고아원에 가서 7년 동안 있었어.

퍼: 선생님으로?

정: 살림꾼, 관리인으로. 원장이 있고 관리인이 있고. 거기 7년 동안 있었어.

퍼: 7년 동안?

정: 그라다 마지막 되는 해에 여학생들 죽 있다고 하지 않았어? 고아원 내에서 양재학교를 했던 거야. 그라다가 성환에 미군부대 있잖어? 거기서 고아원을 도와주고 그랬거든?

퍼: 네.

정: 거기서 도와주러 댕기는 사람들, 보호물자 가지고 오는 사람들하고 할아버지하고 알게 됐어. 그래 그 사람을 붙들고설랑 “내가 여학생들을 데리고 있는데 사업을 확대시켜서 근처에 없는 애들을 공부 가르치고 싶다. 그러면 내가 건물이 있어야 할 거 아니냐. 그런 걸 지어줄 수 있는 자재를 원조를 해준다면 내가 그걸 추진시키겠다.” 그랬어.

퍼: 그랬더니?

정: “그러면 너 도와줄 테니까 대지를 구하라.” 해서 판정리에다가 한집학교를 만들기 시작한 거여.

퍼: 학교 세워서 얼마나 하신 거예요?

정: 한 3년 하다가 아버지 돌아가시고 도움을 받을만한 데가 없고 선생들은 선생들대로 봉급 달라고 야단이고.

퍼: 증조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뒷받침해 줄 사람이 없었던 거예요?

정: 아버지가 돌아가시니깐 나는 아무런 재산도 없지 않니. 동생들은 어리고 그랬으니깐은 학비 대주고, 셋째 동생도 장가들여 줬지, 넷째 동생도 장가들여 줬지, 막내 동생도 장가들여 줬지.

퍼: 아, 학비 대주고 장가 들이고? 그럼 할아버지는 그때까지 수입이 없으셨던 거예요?

정: 돈 벌은 건 아무 것도 없지. 성환 학교 선생 할 적에 월급 몇 번 받아먹은 거 밖에.

퍼: 그럼 증조할아버지 돈으로 무상으로 한집학교를 경영하려고 하셨던 거예요?

정: 아니지, 그때 구상이 많었지. 돈 없어서 학교 못가는 애들을 이렇게 저렇게 모아서 무상으로 가르쳐 주고 그 대신 돼지, 닭, 이런 거를 기르고 걔들이 그거를 관리하게 하고 거기서 나오는 수입으로다가 걔들을 공부 가르치고 하는 그런 구상을 한 거여. 근데 그게 다 빵꾸가 난 거여.

퍼: 그럼 그 다음에 할아버지 뭐하셨어요?

정: 농사지었지.

퍼: 취직은 안 하시고요?

정: 취직은 무슨 취직을 해. 연좌제 때문에 안 되는 거야. 전과자니까 취직이 안 된단 말이여. 그게 다여 인저. 농사지면서 인저 현재까지. 할아버지 지금까지 밥 굶기지 않구설랑 끌어왔어. 끌어왔다는 것 보담두, 허허. 그거 한 가지 다행이라고 생각해.

퍼: 어렸을 적에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을 말씀하실 때 가장 눈빛이 빛나셨던 것 같은데 할아버지가 기억하는 <레미제라블>은 어떤 거예요?

정: 중학교 서클 때 다 본 거여.

퍼: 감명 깊으셨어요?

정: 대단했지. 그게 다 없는 사람하고의 문제가 나오는 거 아니냐?

퍼: 대학생 때 서클 활동한 게 할아버지 평생을 옥죄었다고 생각하세요?

정: 할아버지 그렇게 생각하지 않어. 할아버지 청춘을 거기다 다 바쳤으니깐은. 이제 와서 내가 전환을 해서 뭐 그런 생각을 할아버지 가지고 있는 것 없어. 그 길이 올 거라고 생각하고 생각은 하고 있지만은 그걸 누군한테 저기한다든가 할 생각도 없어.

퍼: 그 날이 어떤 날이에요?

정: 없는 사람과 있는 사람이 함께 잘 사는 거.

 

 

할아버지의 중학교 담임선생님이었던 시인 정지용에서 시작한 인터뷰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할아버지의 출생과 유년시절, 학창시절을 넘나들며 계속되었다. 할아버지의 청춘은 일제강점기, 해방, 한국전쟁이라는 한국 근현대사의 굵직한 현장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 시대 대학을 다니며 독서 써클에 가입해 대문호와 사상가들을 만나며 키워왔던 청년들의 고민을 할아버지 또한 안고 있었다.

할아버지의 20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유치장 생활과 죽음을 무릅쓴 두 번의 도피 생활, 휴전과 함께 고향에 정착해 무상교육을 실현한 한집학교를 설립해 운영하는 등 올곧은 신념을 가지고 살아온 청년과 만날 수 있다. 빅트르 위고, 땅굴 생활, 한집학교 등 각각의 낱말들은 할아버지 술주정 속에서 부유하는 단어들이었는데 나는 이제 그것들이 할아버지의 인생 여정 꼭짓점들을 매듭짓고 있음을 알겠다.

평소 “할아버지는 더 살고 싶은 마음도 없어” 하고 되뇌시는 노인의 권태로움은 나에게 꽤나 괴로운 것이었다. 고목의 완고함과 단호함 주변을 흐르는 인생의 회의가 너무나 무기력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철부지마냥 할아버지의 인생은 성공한 것과 다름없다고, 그의 삶에 ‘성공’과 ‘실패’라는 잣대를 들이 밀었다.

하지만 이제 “푸-른 하늘 으은하수, 하-얀 쪽, 배에”를 부르실 때 쩌렁쩌렁한 울림 뒤의 우수를,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을 읽어 보았느냐는 다그침 뒤의 소년의 동경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보통학교에 입학하던 날 시계를 선물로 받은 이래 여전히 그의 시간은 흐르고 있다. 그리고 지금 그가 가지고 있는 핸드폰 안에 여든이 넘은 소년이 해맑게 웃고 있다. 꿈꾸는 그는 여전히 소년의 시간을 달리고 있다.

8. 휴전 후 고향 정착

 

정: 서울에서 미군부대 다니다가 시간이 이렇게 흘르구 그래서 집으로 왔어.

퍼: 아무 문제없을 때에요?

정: 군대 가는 것도 이제 꺼끔해지고 전쟁도 그때 휴전 됐으니깐은 집으로 온 거여. 그라구나서 입장(천안시 입장면) 익선원 고아원에 가서 7년 동안 있었어.

퍼: 선생님으로?

정: 살림꾼, 관리인으로. 원장이 있고 관리인이 있고. 거기 7년 동안 있었어.

퍼: 7년 동안?

정: 그라다 마지막 되는 해에 여학생들 죽 있다고 하지 않았어? 고아원 내에서 양재학교를 했던 거야. 그라다가 성환에 미군부대 있잖어? 거기서 고아원을 도와주고 그랬거든?

퍼: 네.

정: 거기서 도와주러 댕기는 사람들, 보호물자 가지고 오는 사람들하고 할아버지하고 알게 됐어. 그래 그 사람을 붙들고설랑 “내가 여학생들을 데리고 있는데 사업을 확대시켜서 근처에 없는 애들을 공부 가르치고 싶다. 그러면 내가 건물이 있어야 할 거 아니냐. 그런 걸 지어줄 수 있는 자재를 원조를 해준다면 내가 그걸 추진시키겠다.” 그랬어.

퍼: 그랬더니?

정: “그러면 너 도와줄 테니까 대지를 구하라.” 해서 판정리에다가 한집학교를 만들기 시작한 거여.

퍼: 학교 세워서 얼마나 하신 거예요?

정: 한 3년 하다가 아버지 돌아가시고 도움을 받을만한 데가 없고 선생들은 선생들대로 봉급 달라고 야단이고.

퍼: 증조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뒷받침해 줄 사람이 없었던 거예요?

정: 아버지가 돌아가시니깐 나는 아무런 재산도 없지 않니. 동생들은 어리고 그랬으니깐은 학비 대주고, 셋째 동생도 장가들여 줬지, 넷째 동생도 장가들여 줬지, 막내 동생도 장가들여 줬지.

퍼: 아, 학비 대주고 장가 들이고? 그럼 할아버지는 그때까지 수입이 없으셨던 거예요?

정: 돈 벌은 건 아무 것도 없지. 성환 학교 선생 할 적에 월급 몇 번 받아먹은 거 밖에.

퍼: 그럼 증조할아버지 돈으로 무상으로 한집학교를 경영하려고 하셨던 거예요?

정: 아니지, 그때 구상이 많었지. 돈 없어서 학교 못가는 애들을 이렇게 저렇게 모아서 무상으로 가르쳐 주고 그 대신 돼지, 닭, 이런 거를 기르고 걔들이 그거를 관리하게 하고 거기서 나오는 수입으로다가 걔들을 공부 가르치고 하는 그런 구상을 한 거여. 근데 그게 다 빵꾸가 난 거여.

퍼: 그럼 그 다음에 할아버지 뭐하셨어요?

정: 농사지었지.

퍼: 취직은 안 하시고요?

정: 취직은 무슨 취직을 해. 연좌제 때문에 안 되는 거야. 전과자니까 취직이 안 된단 말이여. 그게 다여 인저. 농사지면서 인저 현재까지. 할아버지 지금까지 밥 굶기지 않구설랑 끌어왔어. 끌어왔다는 것 보담두, 허허. 그거 한 가지 다행이라고 생각해.

퍼: 어렸을 적에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을 말씀하실 때 가장 눈빛이 빛나셨던 것 같은데 할아버지가 기억하는 <레미제라블>은 어떤 거예요?

정: 중학교 서클 때 다 본 거여.

퍼: 감명 깊으셨어요?

정: 대단했지. 그게 다 없는 사람하고의 문제가 나오는 거 아니냐?

퍼: 대학생 때 서클 활동한 게 할아버지 평생을 옥죄었다고 생각하세요?

정: 할아버지 그렇게 생각하지 않어. 할아버지 청춘을 거기다 다 바쳤으니깐은. 이제 와서 내가 전환을 해서 뭐 그런 생각을 할아버지 가지고 있는 것 없어. 그 길이 올 거라고 생각하고 생각은 하고 있지만은 그걸 누군한테 저기한다든가 할 생각도 없어.

퍼: 그 날이 어떤 날이에요?

정: 없는 사람과 있는 사람이 함께 잘 사는 거.

 

 

할아버지의 중학교 담임선생님이었던 시인 정지용에서 시작한 인터뷰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할아버지의 출생과 유년시절, 학창시절을 넘나들며 계속되었다. 할아버지의 청춘은 일제강점기, 해방, 한국전쟁이라는 한국 근현대사의 굵직한 현장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 시대 대학을 다니며 독서 써클에 가입해 대문호와 사상가들을 만나며 키워왔던 청년들의 고민을 할아버지 또한 안고 있었다.

할아버지의 20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유치장 생활과 죽음을 무릅쓴 두 번의 도피 생활, 휴전과 함께 고향에 정착해 무상교육을 실현한 한집학교를 설립해 운영하는 등 올곧은 신념을 가지고 살아온 청년과 만날 수 있다. 빅트르 위고, 땅굴 생활, 한집학교 등 각각의 낱말들은 할아버지 술주정 속에서 부유하는 단어들이었는데 나는 이제 그것들이 할아버지의 인생 여정 꼭짓점들을 매듭짓고 있음을 알겠다.

평소 “할아버지는 더 살고 싶은 마음도 없어” 하고 되뇌시는 노인의 권태로움은 나에게 꽤나 괴로운 것이었다. 고목의 완고함과 단호함 주변을 흐르는 인생의 회의가 너무나 무기력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철부지마냥 할아버지의 인생은 성공한 것과 다름없다고, 그의 삶에 ‘성공’과 ‘실패’라는 잣대를 들이 밀었다.

하지만 이제 “푸-른 하늘 으은하수, 하-얀 쪽, 배에”를 부르실 때 쩌렁쩌렁한 울림 뒤의 우수를,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을 읽어 보았느냐는 다그침 뒤의 소년의 동경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보통학교에 입학하던 날 시계를 선물로 받은 이래 여전히 그의 시간은 흐르고 있다. 그리고 지금 그가 가지고 있는 핸드폰 안에 여든이 넘은 소년이 해맑게 웃고 있다. 꿈꾸는 그는 여전히 소년의 시간을 달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