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르 위고를 사랑한 소년 (1) – 정인용

60갑자 차이가 나는 할아버지가 있다. 나는 스물일곱 살, 그는 팔십육 세. 1927년에 태어나 일제강점기에 보통학교에 입학하셨으며, 휘문 중학교에서 톨스토이와 빅토르 위고를 알게 되었고, 시인 정지용을 담임선생님으로 만났다. 대학 독서 써클 활동으로 유치장 생활을 하셨으며, 결혼 직후 한국 전쟁이 발발하였다. 한국의 근현대사와 맞닿아 있는 나의 할아버지, 정인용 씨의 삶과 그 시절에 다가가 본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로 시작하는 노래가 있다. 시인 정지용이 지은 시 <향수>에 곡을 붙여 만든 노래다. 21세기 누구나 스마트폰으로 통하는 시대에 아무리 세련된 정서를 가진 사람이라도 마음에 물결을 일으키며 심연의 고향으로 이끄는 노래라고 생각한다.

학창시절 신문 귀퉁이에서 “월북 시인 정지용 미군 포탄에 맞아 사망 추정”이라는 식의 신문 내용을 보고 혼자서 낙담한 적이 있다. 당시 ‘미군 포탄에 맞아 사망’을 과거형이 아니라 현재형으로 받아들였던 듯한데, 분단국가인 까닭에 한국 문학의 큰 별이 죽은 걸 이런 식으로 전해 들어야 하다니, 하는 골찬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할아버지가 휘문 중학교에 다니던 시절 정지용이 할아버지의 담임선생님이었다는 이야기를 최근에 들었다.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으며 문학소녀의 꿈을 키워왔는데도 그런 큼직한 이야기를 이제야 꺼내 놓으시다니, 약이 올랐다. 할아버지를 인터뷰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아마도 그것이 시작이었을 것이다.

할아버지는 약주를 굉장히 좋아하시는데 약주를 드시고 오시는 날이면 집안에 긴장감이 돈다. ‘멋대가리 없는’ 우리들(아빠, 엄마, 언니, 나)은 잠자코 ‘네, 네’ 할 수밖에 없는 쩌렁쩌렁한 훈계가 이어지기 마련이기 때문이다.(할머니는 대장군 같은 성품답게 “또 술 잡숫고 왔냐”며 할아버지에게 맞설 수 있는 유일한 분이다.)

그런 가운데 할아버지를 우러러 마지않는 가장 꽁다리의 나는 유일하게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끝까지 듣고 있는 ‘착한’ 손녀딸이었는데,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을 읽어 봤느냐? 톨스토이의 작품을 읽었느냐? 박경리의 <토지>를 읽었느냐? 이 분들의 작품이 얼마나 위대한지 아느냐?” 하는 할아버지의 술주정(?)에서 유년의 지적 호기심이 뛰놀았기 때문이다.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을 이야기할 때 할아버지의 주름진 피부 안에 소년의 눈이 유난히 반짝였던 것 같다. 담임선생님 정지용에서 비롯된 나의 호기심은 <레미제라블>에 대해 할아버지가 지닌 동경과 가곡 <반달>의 아스라한 선율에 실린 향수에 대한 궁금증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학교에서 책으로 배우던 시대를 살아오신 할아버지의 생애를 기록하고 싶어졌다.

한 사람이 살아온 팔십 여년이라는 시간을 여기에 모두 담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어린 시절부터 들어왔던 할아버지의 말씀이지만 이번 인터뷰를 위해 할아버지의 유년부터 대학 시절까지의 세월을 새롭게 여쭙고 들었다. 그 인터뷰를 두 번에 나눠 싣기로 한다.


 

할아버지 정인용 약력 전반부

1927년              1월 1일 출생
1935년(10세)     성환 보통학교 입학
1937년              조선어교육 폐지, 창씨개명
1941년(16세)     휘문 중학교 입학
1941년              대동아 전쟁 발발
1945년(20세)     휘문 중학교 졸업

 

 

1. 담임선생님 ‘정지용’

 

퍼슨웹(이하 ‘퍼’): 할아버지, 1927년 양력 1월 1일생, 맞죠?

정인용(이하 ‘정’): 네, 맞아요. 소화(昭和) 2년 출생.

퍼: 하하, 학생처럼 그렇게 답변하시니까 좀 이상해요. 편안하게 해주세요. 근데 소화 2년이 뭐예요?

정: 일본의 대정 천황이 15년간 집권을 하다 내가 태어나던 해(음력으로 1926년)에 12월 27일에 죽었어. 12월 27일날 죽으니까 다음 왕 소화천황이 집권을 하게 된 첫 해는 4일 밖에 안 되는 거지. 대정 15년이 곧 소화* 1년이 됐다 이거여.

* 소화(쇼와, 昭和) : 일본의 연호. 왕의 재위 기간에 따라 연호가 변화한다. 1926년 대정(다이쇼, 大正) 시대가 끝나고 소화 시대로 접어들었다. 소화 시대 이후 1989년부터 평성(헤이세이, 平成) 시대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퍼: 올해 연세는 86세이시죠.

정: 음력으로는 11월 28일생이니까 음력으로 따지면 86세인데 양력으로 따지면 85세로 돼있지.

퍼: 할아버지가 들려주신 이야기 중 시인 정지용이 중학교 때 담임선생님이었다는 게 제일 신기했어요. 그것부터 들려주세요.

정: 정지용 선생님은 휘문 중학교 다닐 적에 2학년 때 담임선생님이었지. 일본 도시샤 대학에서 영문학을 공부하신 분이야. 내가 그 양반한테 무얼 배웠느냐 하면 영문영작을 배웠어. 영문법이 있구, 그렇잖어.

퍼: 맞아, 정지용 선생이 영문학을 전공했지.

정: 그때 에피소드가 뭐가 있는가 하면은 이 양반이 공부를 가르치다 말구, 그냥 수업을 중지하구서 저 바깥에 창문을 내다보고 계시는겨. 그땐 나두 뭘 하시는지 몰랐지. ‘저 양반이 왜 저러나.’ 그런디 나중에 알고 보니깐 ‘시상이 떠오를 적에, 애새끼들 공부 가르치는 게 문제가 아니다’, 그러지 않으셨나. 허허.

퍼: 아, 시상이 떠오르셔서 그러셨구나.

정: 그런데 하루는, 그때는 당번을 하면은 교실을 청소하고 그러지 않니. 출석부를 조회할 적에 담임선생님이 갖다놔. “오늘 결석이 누구냐”, “지각생은 누구냐” 하고 적어 놓구설랑 가셨다구. 그리구선 방과 후에 끝나고 청소 다 하고 나면은 출석부를 가지고 선생님한테 가는겨.

퍼: 할아버지가 당번이었어요?

정: 응, 그려. 내가 가서 검사를 맡는 거여. 근디 아이구, 나 그때 선생님한테, 참 놀랬어.

퍼: 왜요?

정: 내 친구 어떤 놈이 지각을 했어. 그때는 볼펜이 아니라 연필 아니여? 할아버지가 그걸 고무루다가 지웠단 말이여. 출석부를 딱 떠다 보더니, “너 왜 이거 지웠어!” 이렇게 된 겨. 아이구, 그거를 상상이나 할 수 있니? 선생님이, 귀싸대기를 때리는 거여.

퍼: 할아버지를요?

정: 그렇다니니깐. 나는 꼼짝 못 하구선, “왜 때리십니까?” 하니까, “너 임마, 얘 지각한 거 내가 봤는데 이거 네가 지웠지?” 그라시는겨. 그러니 내가 뭐라구랴. 이야~ 뺨따귀를 때리시더라구.

퍼: 할아버지 놀라셨겠네.

정: 정지용 선생이 키가 쪼그매요. 땅딸하신 분인데. 그때부터 내가 그 양반을 알기 시작한 거지. 정지용이라는 분이 시인이구 한국문학을 하시구 일본의 유명한 사립대학 나오신 것도 알고.

퍼: 그때부터요?

정: 그래. 그 다음에 만나 뵈었더니, “너 정가냐? 어디 정가냐? 너 요전에 뺨따귀 맞을 적에 아펐지?” 또 이렇게 나오시는 거야. 그렇게 다정하시다구. 근디 놀랜 게 그거여. 슥 한 번 보고 가셨는데, 그거 지운 걸 어떻게 아셔. 참 그때 내가 어떻게 놀랬는지.

퍼: 할아버지 기억력 되게 좋으시네요.

정: 뭐이 좋아, 좋기는. 너하고 얘기니깐은 옛날 얘기를 억지로 씹어가면서 생각을 해보는 거여.

 

1. 담임선생님 ‘정지용’

 

퍼슨웹(이하 ‘퍼’): 할아버지, 1927년 양력 1월 1일생, 맞죠?

정인용(이하 ‘정’): 네, 맞아요. 소화(昭和) 2년 출생.

퍼: 하하, 학생처럼 그렇게 답변하시니까 좀 이상해요. 편안하게 해주세요. 근데 소화 2년이 뭐예요?

정: 일본의 대정 천황이 15년간 집권을 하다 내가 태어나던 해(음력으로 1926년)에 12월 27일에 죽었어. 12월 27일날 죽으니까 다음 왕 소화천황이 집권을 하게 된 첫 해는 4일 밖에 안 되는 거지. 대정 15년이 곧 소화* 1년이 됐다 이거여.

* 소화(쇼와, 昭和) : 일본의 연호. 왕의 재위 기간에 따라 연호가 변화한다. 1926년 대정(다이쇼, 大正) 시대가 끝나고 소화 시대로 접어들었다. 소화 시대 이후 1989년부터 평성(헤이세이, 平成) 시대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퍼: 올해 연세는 86세이시죠.

정: 음력으로는 11월 28일생이니까 음력으로 따지면 86세인데 양력으로 따지면 85세로 돼있지.

퍼: 할아버지가 들려주신 이야기 중 시인 정지용이 중학교 때 담임선생님이었다는 게 제일 신기했어요. 그것부터 들려주세요.

정: 정지용 선생님은 휘문 중학교 다닐 적에 2학년 때 담임선생님이었지. 일본 도시샤 대학에서 영문학을 공부하신 분이야. 내가 그 양반한테 무얼 배웠느냐 하면 영문영작을 배웠어. 영문법이 있구, 그렇잖어.

퍼: 맞아, 정지용 선생이 영문학을 전공했지.

정: 그때 에피소드가 뭐가 있는가 하면은 이 양반이 공부를 가르치다 말구, 그냥 수업을 중지하구서 저 바깥에 창문을 내다보고 계시는겨. 그땐 나두 뭘 하시는지 몰랐지. ‘저 양반이 왜 저러나.’ 그런디 나중에 알고 보니깐 ‘시상이 떠오를 적에, 애새끼들 공부 가르치는 게 문제가 아니다’, 그러지 않으셨나. 허허.

퍼: 아, 시상이 떠오르셔서 그러셨구나.

정: 그런데 하루는, 그때는 당번을 하면은 교실을 청소하고 그러지 않니. 출석부를 조회할 적에 담임선생님이 갖다놔. “오늘 결석이 누구냐”, “지각생은 누구냐” 하고 적어 놓구설랑 가셨다구. 그리구선 방과 후에 끝나고 청소 다 하고 나면은 출석부를 가지고 선생님한테 가는겨.

퍼: 할아버지가 당번이었어요?

정: 응, 그려. 내가 가서 검사를 맡는 거여. 근디 아이구, 나 그때 선생님한테, 참 놀랬어.

퍼: 왜요?

정: 내 친구 어떤 놈이 지각을 했어. 그때는 볼펜이 아니라 연필 아니여? 할아버지가 그걸 고무루다가 지웠단 말이여. 출석부를 딱 떠다 보더니, “너 왜 이거 지웠어!” 이렇게 된 겨. 아이구, 그거를 상상이나 할 수 있니? 선생님이, 귀싸대기를 때리는 거여.

퍼: 할아버지를요?

정: 그렇다니니깐. 나는 꼼짝 못 하구선, “왜 때리십니까?” 하니까, “너 임마, 얘 지각한 거 내가 봤는데 이거 네가 지웠지?” 그라시는겨. 그러니 내가 뭐라구랴. 이야~ 뺨따귀를 때리시더라구.

퍼: 할아버지 놀라셨겠네.

정: 정지용 선생이 키가 쪼그매요. 땅딸하신 분인데. 그때부터 내가 그 양반을 알기 시작한 거지. 정지용이라는 분이 시인이구 한국문학을 하시구 일본의 유명한 사립대학 나오신 것도 알고.

퍼: 그때부터요?

정: 그래. 그 다음에 만나 뵈었더니, “너 정가냐? 어디 정가냐? 너 요전에 뺨따귀 맞을 적에 아펐지?” 또 이렇게 나오시는 거야. 그렇게 다정하시다구. 근디 놀랜 게 그거여. 슥 한 번 보고 가셨는데, 그거 지운 걸 어떻게 아셔. 참 그때 내가 어떻게 놀랬는지.

퍼: 할아버지 기억력 되게 좋으시네요.

정: 뭐이 좋아, 좋기는. 너하고 얘기니깐은 옛날 얘기를 억지로 씹어가면서 생각을 해보는 거여.

 

2. 손이 귀한 집의 첫 손자

 

퍼: 이제 할아버지의 유년 시절부터 차근차근 들려주세요. 어디서 태어나셨어요?

정: 성환읍 매주리서.

퍼: 여기가 고향이에요?

정: 여기가 고향이구 4대서부텀 여기서 살았어. 여기가 진 고향이여.

퍼: 언제 어떻게 이쪽으로 오셨어요?

정: 나도 몰러. 어떻게 여기 매곡에 정착하게 됐는지는.

퍼: 할아버지 태어나셨을 때 가족 구성원이 어떻게 되셨어요?

정: 나의 증조할아버지, 증조할머니,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그라고 농사일 거들어주는 사람이 두세 사람이 있었어.

퍼: 할아버지가 어렸을 때 할아버지의 증조할아버지가 살아계셨어요?

정: 증조할아버지, 증조할머니, 할아버지, 할머니도 다 생존해 계셨지. 나의 할아버지는 굉장히 건장하시고 조상에 대한 생각이라든가 씨족에 대한 생각이 대단하신 양반이었어.

퍼: 그랬구나.

정: 그래서 지금 만들어 놓은 족보가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때 처음 족보를 만들 적에 나의 할아버지가 전국을 돌아다니면설랑 그것을 다 모아서 만들어 놓으셨어. 그러다가 병환이 들어서 3년 동안을 드러누워 계시다가 돌아가셨어.

퍼: 아.

정: 나의 할아버지는 조상에 대한 문제라든가 씨족에 대한 문제라든가 내 씨를 남겨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분인데도 자손을 두지 못했어. 처음 만난 초취가 수성 최씨 할머닌데, 아들딸을 11명을 나으셨어. 낳긴 11명을 나셨는데 나서 죽이고, 세 살 먹이고 죽이고, 일곱 살 먹이고 죽이고, 다 죽였어.

퍼: 그래서요?

정: 그래서 우리 아버지를 양자해 오셨어. 그렇게까지 하면설랑두 자기, 내 혈족을 남겨야겠다고 하는 그런 집념이 아주 강하셨던 분이라구.

퍼: 그런 할아버지의 영향을 할아버지가 많이 받으셨겠네요?

정: 그 핏줄은 받은 게 없지.

퍼: 양자를 어디서 오셨는데요?

정: 저 안성, 죽산이라는 데서 양자로 오셨어. 조상들의 형제관계여. 우리 아버지가 양자로 오셔서 나를 첫째로 낳았단 말이여.

퍼: 할아버지는 귀여움을 많이 받으셨겠네요.

정: 세상에 없는 걸로다가 이렇게 귀엽게 해주시는 거야. 때가 되면 가서 할머니 젖을 맥여 주고, 그 다음에는 또 할아버지가 끌고 댕기는겨. 그러고설랑 내가 코를 흘리면은 당신이 입으로 닦아줄 정도로다가, 내가 그렇게 컸어. 참 복되게 살았지, 참.

퍼: 하하하. 코를 입으로요?

정: 그렇게 귀여워해줄 수밖에. 당신은 아들을 그렇게 낳구두 다 죽이구 양자를 들여왔는데 거기서 난 것이, 첫째가 나야. 그러니깐 세상에 없는 걸로 생각을 하고, 동네방네 우리 손자라고 자랑하고 다니시구.

퍼: 하하.

정: 크면설랑 할아버지가 나를 감싸주고 길러주셨으니까 할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구 봐야지. 특히 카리스마 같은 기질을 할아버지한테 받은 것 같아.

퍼: 아버지보다는 할아버지께 영향을 더 많이 받으셨다구요?

정: 그랬다고 봐야지. 할아버지가 독점을 하고 데리고 다니셨으니까. 그때 할아버지는 아버지 보구 “아, 느덜은 지켜 보라구” 하면서. 나는 아버지 영향은 전혀 받은 게 없다고 봐도 괜찮어. 내 성질이 그렇게 된 거야.

퍼: 할머니에 대한 기억은 있으세요?

정: 할머니에 대한, 어머니에 대한 어렸을 적 기억이 거의 없어요. 할머니가 잘못해서 그런 게 아니라 할아버지가 독점을 해가지고 돌아다니시니까. 어머니한테 젖만 물려가지고 그 다음에는 뺏어가지고 나오시고. 나는 쫓아 댕겼지, 어렸을 때니까.

 

2. 손이 귀한 집의 첫 손자

 

퍼: 이제 할아버지의 유년 시절부터 차근차근 들려주세요. 어디서 태어나셨어요?

정: 성환읍 매주리서.

퍼: 여기가 고향이에요?

정: 여기가 고향이구 4대서부텀 여기서 살았어. 여기가 진 고향이여.

퍼: 언제 어떻게 이쪽으로 오셨어요?

정: 나도 몰러. 어떻게 여기 매곡에 정착하게 됐는지는.

퍼: 할아버지 태어나셨을 때 가족 구성원이 어떻게 되셨어요?

정: 나의 증조할아버지, 증조할머니,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그라고 농사일 거들어주는 사람이 두세 사람이 있었어.

퍼: 할아버지가 어렸을 때 할아버지의 증조할아버지가 살아계셨어요?

정: 증조할아버지, 증조할머니, 할아버지, 할머니도 다 생존해 계셨지. 나의 할아버지는 굉장히 건장하시고 조상에 대한 생각이라든가 씨족에 대한 생각이 대단하신 양반이었어.

퍼: 그랬구나.

정: 그래서 지금 만들어 놓은 족보가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때 처음 족보를 만들 적에 나의 할아버지가 전국을 돌아다니면설랑 그것을 다 모아서 만들어 놓으셨어. 그러다가 병환이 들어서 3년 동안을 드러누워 계시다가 돌아가셨어.

퍼: 아.

정: 나의 할아버지는 조상에 대한 문제라든가 씨족에 대한 문제라든가 내 씨를 남겨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분인데도 자손을 두지 못했어. 처음 만난 초취가 수성 최씨 할머닌데, 아들딸을 11명을 나으셨어. 낳긴 11명을 나셨는데 나서 죽이고, 세 살 먹이고 죽이고, 일곱 살 먹이고 죽이고, 다 죽였어.

퍼: 그래서요?

정: 그래서 우리 아버지를 양자해 오셨어. 그렇게까지 하면설랑두 자기, 내 혈족을 남겨야겠다고 하는 그런 집념이 아주 강하셨던 분이라구.

퍼: 그런 할아버지의 영향을 할아버지가 많이 받으셨겠네요?

정: 그 핏줄은 받은 게 없지.

퍼: 양자를 어디서 오셨는데요?

정: 저 안성, 죽산이라는 데서 양자로 오셨어. 조상들의 형제관계여. 우리 아버지가 양자로 오셔서 나를 첫째로 낳았단 말이여.

퍼: 할아버지는 귀여움을 많이 받으셨겠네요.

정: 세상에 없는 걸로다가 이렇게 귀엽게 해주시는 거야. 때가 되면 가서 할머니 젖을 맥여 주고, 그 다음에는 또 할아버지가 끌고 댕기는겨. 그러고설랑 내가 코를 흘리면은 당신이 입으로 닦아줄 정도로다가, 내가 그렇게 컸어. 참 복되게 살았지, 참.

퍼: 하하하. 코를 입으로요?

정: 그렇게 귀여워해줄 수밖에. 당신은 아들을 그렇게 낳구두 다 죽이구 양자를 들여왔는데 거기서 난 것이, 첫째가 나야. 그러니깐 세상에 없는 걸로 생각을 하고, 동네방네 우리 손자라고 자랑하고 다니시구.

퍼: 하하.

정: 크면설랑 할아버지가 나를 감싸주고 길러주셨으니까 할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구 봐야지. 특히 카리스마 같은 기질을 할아버지한테 받은 것 같아.

퍼: 아버지보다는 할아버지께 영향을 더 많이 받으셨다구요?

정: 그랬다고 봐야지. 할아버지가 독점을 하고 데리고 다니셨으니까. 그때 할아버지는 아버지 보구 “아, 느덜은 지켜 보라구” 하면서. 나는 아버지 영향은 전혀 받은 게 없다고 봐도 괜찮어. 내 성질이 그렇게 된 거야.

퍼: 할머니에 대한 기억은 있으세요?

정: 할머니에 대한, 어머니에 대한 어렸을 적 기억이 거의 없어요. 할머니가 잘못해서 그런 게 아니라 할아버지가 독점을 해가지고 돌아다니시니까. 어머니한테 젖만 물려가지고 그 다음에는 뺏어가지고 나오시고. 나는 쫓아 댕겼지, 어렸을 때니까.

 

3. 실용적인 농사꾼 할아버지

 

퍼: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는 뭐 하셨던 분이셨어요?

정: 농사지으셨지. 그땐 농사 밖에 없잖어. 그래서 땅을 많이 장만하셨어.

퍼: 농사꾼이셨어요?

정: 그럼 농사지시고.

퍼: 공부를 따로 하시거나 하진 않으셨어요?

정: 공부를 한 거 보담도 장사를 해야 돈을 번다, 그래설랑 망건 장사를 하신 거여. 너 망건이라는 게 뭔지 아냐?

퍼: 갓 쓸 때 안에 쓰는 거?

정: 그래. 그 망건 장사라는 게 돈이 참, 이윤이 많았대요. TV에도 나오는 걸 봤지만 그걸 만들라면 굉장한 시간이 걸리고 섬세한 기술이 필요한 거여. 그게 고가(高價)여, 고가. 지금으로 말하면 어떻게 표현을 해야 되나. 우리 지금 휴대폰 가지고 있잖니?

퍼: 네.

정: 그런데 느들 가지고 있는 게 (서로) 다르잖어. 그거하고 그거 차이 날 정도로. 망건이 그렇게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거구 또 그게 필요한 사람들이 쓰는 거니깐. 또 돈 있는 사람이나 쓰지 돈 없는 사람은 쓰도 못 하잖어.

퍼: 그렇죠.

정: 그러니까 돈 있는 사람을 상대로 해서 장사를 한 거여.

퍼: 나는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유학자셨거나 관직에 계셨거나 그런 줄 알았더니 그런 게 아니라 농사꾼이셨구나. 망건도 갖다 파시고?

정: 나의 할아버지가 그런 카리스마를 가지고 계시고 행동하신 걸 본다면 배웠든 안 배웠든 간에 그런 생각을 가지고 행동을 하신 것이 아니겠느냐 하는 거지.

퍼: 족보도 만드시고요?

정: 그려. 족보를 만들 적에도 전국을 쏘다니매, 그때 전국을 쏘다닌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잖어. 교통 문제도 있고, 짚신 신고.

퍼: 근데 족보를 왜 만드셨지?

정: 야, 임마. 족보라는 게 그때는 가보여, 가보. 조상서부터 내려오는 혈통이라는 걸 중시하는 사회 아녀. 족보라는 게 지금도 니덜이 국립 박물관이나 도서관에 가면은 어느 어느 성씨의 뭐라는 게 다 적혀 있어.

퍼: 아.

정: 우리나라의 족보가 그만큼 혈통 문제가 관련 됐잖어. 중요한 거지. 이씨 오백 년이라는 게 뭐니. 혈통 얘기 하는 거 아니냐. 또 그런 거와 마찬가지로다 서민들도 그런 걸 가지고 있었단 말이여.

퍼: 그러니까 족보를 만드실 필요를 느끼신 거죠?

정: 당연하지. 왜냐면은 개국공신 할아버지도 계시구, 또 임진왜란 당시 일등공신 할아버지도 계신데 우리 자손들이 조상의 핏줄을 이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어야 할 것이 아니냐? 그러니까 그것을 손수 나서서 하신 게 나의 할아버지, 그러니까 느이 고조할아버지 아니냐.

퍼: 아하.

정: 그러니깐 나는 아버지의 영향을, DNA나 이런 걸로 받았을지 모르겠지만은 나의 할아버지의 그 카리스마나 행동하는 거에 많은 영향을 받은 거야.

퍼: 할아버지의 아버지는 어떤 분이셨는데요?

정: 착하신 분이었지. 나의 아버지는 할아버지 밑에서 통제 생활을 한 거여. 저 촌에서 먹지도 못하고 양자로 여기로 데려왔으니까, 우리 할아버지 생각에 ‘내 자식을 만들려면 글을 가르쳐야 한다.’고 해서 독선생을 사랑방에다가 앉혀 놓고 우리 아버지에게만 글을 가르치셨대.

퍼: 할아버지는 아버지의 친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없어요?

정: 우리 아버지의 친아버지가 원래 안성 분 아니냐. 매곡 땅과 머니까 그분들 가끔 왔다 가셨다고 그러는데 나는 어렴풋이 기억날 듯 말 듯만 하지 전혀 아는 게 없어.

 

3. 실용적인 농사꾼 할아버지

 

퍼: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는 뭐 하셨던 분이셨어요?

정: 농사지으셨지. 그땐 농사 밖에 없잖어. 그래서 땅을 많이 장만하셨어.

퍼: 농사꾼이셨어요?

정: 그럼 농사지시고.

퍼: 공부를 따로 하시거나 하진 않으셨어요?

정: 공부를 한 거 보담도 장사를 해야 돈을 번다, 그래설랑 망건 장사를 하신 거여. 너 망건이라는 게 뭔지 아냐?

퍼: 갓 쓸 때 안에 쓰는 거?

정: 그래. 그 망건 장사라는 게 돈이 참, 이윤이 많았대요. TV에도 나오는 걸 봤지만 그걸 만들라면 굉장한 시간이 걸리고 섬세한 기술이 필요한 거여. 그게 고가(高價)여, 고가. 지금으로 말하면 어떻게 표현을 해야 되나. 우리 지금 휴대폰 가지고 있잖니?

퍼: 네.

정: 그런데 느들 가지고 있는 게 (서로) 다르잖어. 그거하고 그거 차이 날 정도로. 망건이 그렇게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거구 또 그게 필요한 사람들이 쓰는 거니깐. 또 돈 있는 사람이나 쓰지 돈 없는 사람은 쓰도 못 하잖어.

퍼: 그렇죠.

정: 그러니까 돈 있는 사람을 상대로 해서 장사를 한 거여.

퍼: 나는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유학자셨거나 관직에 계셨거나 그런 줄 알았더니 그런 게 아니라 농사꾼이셨구나. 망건도 갖다 파시고?

정: 나의 할아버지가 그런 카리스마를 가지고 계시고 행동하신 걸 본다면 배웠든 안 배웠든 간에 그런 생각을 가지고 행동을 하신 것이 아니겠느냐 하는 거지.

퍼: 족보도 만드시고요?

정: 그려. 족보를 만들 적에도 전국을 쏘다니매, 그때 전국을 쏘다닌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잖어. 교통 문제도 있고, 짚신 신고.

퍼: 근데 족보를 왜 만드셨지?

정: 야, 임마. 족보라는 게 그때는 가보여, 가보. 조상서부터 내려오는 혈통이라는 걸 중시하는 사회 아녀. 족보라는 게 지금도 니덜이 국립 박물관이나 도서관에 가면은 어느 어느 성씨의 뭐라는 게 다 적혀 있어.

퍼: 아.

정: 우리나라의 족보가 그만큼 혈통 문제가 관련 됐잖어. 중요한 거지. 이씨 오백 년이라는 게 뭐니. 혈통 얘기 하는 거 아니냐. 또 그런 거와 마찬가지로다 서민들도 그런 걸 가지고 있었단 말이여.

퍼: 그러니까 족보를 만드실 필요를 느끼신 거죠?

정: 당연하지. 왜냐면은 개국공신 할아버지도 계시구, 또 임진왜란 당시 일등공신 할아버지도 계신데 우리 자손들이 조상의 핏줄을 이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어야 할 것이 아니냐? 그러니까 그것을 손수 나서서 하신 게 나의 할아버지, 그러니까 느이 고조할아버지 아니냐.

퍼: 아하.

정: 그러니깐 나는 아버지의 영향을, DNA나 이런 걸로 받았을지 모르겠지만은 나의 할아버지의 그 카리스마나 행동하는 거에 많은 영향을 받은 거야.

퍼: 할아버지의 아버지는 어떤 분이셨는데요?

정: 착하신 분이었지. 나의 아버지는 할아버지 밑에서 통제 생활을 한 거여. 저 촌에서 먹지도 못하고 양자로 여기로 데려왔으니까, 우리 할아버지 생각에 ‘내 자식을 만들려면 글을 가르쳐야 한다.’고 해서 독선생을 사랑방에다가 앉혀 놓고 우리 아버지에게만 글을 가르치셨대.

퍼: 할아버지는 아버지의 친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없어요?

정: 우리 아버지의 친아버지가 원래 안성 분 아니냐. 매곡 땅과 머니까 그분들 가끔 왔다 가셨다고 그러는데 나는 어렴풋이 기억날 듯 말 듯만 하지 전혀 아는 게 없어.

 

4. 보통학교 입학 – 시계를 선물로 받다

 

퍼: 할아버지 몇 살 때 학교에 처음 가셨어요?

정: 7살 때.

퍼: 그때는 학교를 뭐라고 불렀지?

정: 보통학교. 성환 보통학교.

퍼: 할아버지, 아빠, 언니랑 저는 모두 성환 초등학교 동창이네요! 그럼 성환 보통학교에 7살 때 가신 거예요?

정: 응, 7살 때. 아니 10살 때.

퍼: 10살? 왜 이렇게 늦게 갔어요?

정: 7살 때는 글방에 가서 공부했고.

퍼: 글방? 옛날 서당 같은 데?

정: 응, 서당. <천자문>, <동문선습>……

퍼: 그걸 그때 배우셨어요?

정: 그럼, 할아버지 그런 거 배웠지. 그것이 지금 할아버지가 가지고 있는 지식이(의 전부)여.

퍼: 그럼 몇 살까지 글방에 다니신 거예요?

정: 7살부터 10살 사이에. 10살서부텀 보통학교, 지금 초등학교에 들어간 거여.

퍼: 10살 때 들어간 거면 제 때에 들어가신 거예요? 그때 당시?

정: 그때로서는 늦지도 않고 이르지도 않고 적당한 시기에 들어간 거여.

퍼: 성환 초등학교가 엄청 오래된 거구나.

정: 아, 그럼. 내가 18회 졸업생이니깐은, 1917년인가 1918년서부텀 학교가 있었다는 얘기지. 그때는 직산 보통학교 생긴 다음에 한참 후에 성환 보통학교가 생긴 거야.

퍼: 보통학교를 얼마나 다니셨어요?

정: 할아버지가 열다섯, 여섯 살까지. 6년 다녔으니깐.

퍼: 그때도 6년 과정이었구나.

정: 우리 아버지가 뭐라 그러신 줄 알어? 내가 이제 초등학교 입학을 했단 말이여. 이제부터는 시간생활을 해야 된다.

퍼: 시간생활?

정: 그래서 그때 아버지께서 어머니한테 이제 앞으로는 학교 댕기려면 시간생활을 해야 되구 그러니깐은 밥도 시간 맞춰서 해야 되구 맥이구 가야 되구 그란다구.

퍼: 보통학교 가시면서 시간에 맞춰 생활하게 되신 거군요.

정: 그렇지. 그래서 내가 입학식 할 적에 시계를 집에 사가지고 오셨어. 그 시계가 그 시계여. 어디 있었는데.

퍼: 이사 가면서 버리지 않았어? 나도 보면서 자랐는데 그 시계가 엄청 오래 된 시계네? 할아버지의 일생과도 같은.

정: 어디 있을 텐데, 어디 있을 겨. 그렇게 해서 인제 보통학교를 들어갔지. 그때 일정시대니깐. 그래 졸업하구.

퍼: 일정시대라는 것을 피부로 느끼게 된 계기가 있었어요?

정: 그때는 보통학교니까 일정시대인지 별로 이런 게 없었어. 그런데 공부는 일본 공부만 했으니까. 일본어로 공부했지. 4학년 때까지도 조선어라는 게 있었어. 조선, 한글 책자도 있었고. 근데 할아버지 졸업할 무렵이 되니깐은 그게 서서히 없어지는 거여.* 조선어가 없어지구 창씨개명을 하고.

* 중일전쟁이 발발한 1937년부터 조선의 학교에서 조선어 과목이 폐지되었다.

퍼: 집안에서는 조선어를 쓰고 학교에서는 일본어를 쓰고?

정: 그렇지. 조선어가 국어가 아니라 일본어가 국어여. 그때 되니깐 창씨개명이 나오는 거여. 창씨개명이 뭔지 알어?

퍼: 이름을 바꾸는 거 아니야?

정: 이름만 바꾸는 게 아니라 성을 바꾸는 거여. 이름만 바꾸면 괜찮은데 성을, 우리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말이여, 청주정씨, 전주이씨, 이(李) 왕조, 이런 성을 바꾸라는겨, 일본놈 성으로다가.

퍼: 할아버지도 그럼 창씨개명을 하셨어요?

정: 했지.

퍼: 하셨어요? 뭐라고?

정: 서천(西川). 서천이라는 게 뭐냐 하면 할아버지의 9대조 되는 분이 서천부원군이여. 그런 벼슬을 하셨다구. 그래서 거기서 따서 창씨개명할 때 서천이라는 말을 그걸로 지은 거여.

퍼: 일본어로 뭐라고 불렀어요?

정: 니시카와. 니시는 서쪽이란 말이고 카와라는 말은 개울이라는 말.

퍼: 이게 성이고 그럼 이름은?

정: 나는 충일. 우리 형제가 다섯 아니냐? 둘째 동생은 추지, 셋째 동생은 추소, 넷째 동생을 뭐라고 했더라? 다섯째 동생은 충작. 추사꾸. 그런 시대에 살았어, 우리가. 그러다가 인제 보통학교 졸업하고 휘문 중학교에 들어갔지

 

4. 보통학교 입학 – 시계를 선물로 받다

 

퍼: 할아버지 몇 살 때 학교에 처음 가셨어요?

정: 7살 때.

퍼: 그때는 학교를 뭐라고 불렀지?

정: 보통학교. 성환 보통학교.

퍼: 할아버지, 아빠, 언니랑 저는 모두 성환 초등학교 동창이네요! 그럼 성환 보통학교에 7살 때 가신 거예요?

정: 응, 7살 때. 아니 10살 때.

퍼: 10살? 왜 이렇게 늦게 갔어요?

정: 7살 때는 글방에 가서 공부했고.

퍼: 글방? 옛날 서당 같은 데?

정: 응, 서당. <천자문>, <동문선습>……

퍼: 그걸 그때 배우셨어요?

정: 그럼, 할아버지 그런 거 배웠지. 그것이 지금 할아버지가 가지고 있는 지식이(의 전부)여.

퍼: 그럼 몇 살까지 글방에 다니신 거예요?

정: 7살부터 10살 사이에. 10살서부텀 보통학교, 지금 초등학교에 들어간 거여.

퍼: 10살 때 들어간 거면 제 때에 들어가신 거예요? 그때 당시?

정: 그때로서는 늦지도 않고 이르지도 않고 적당한 시기에 들어간 거여.

퍼: 성환 초등학교가 엄청 오래된 거구나.

정: 아, 그럼. 내가 18회 졸업생이니깐은, 1917년인가 1918년서부텀 학교가 있었다는 얘기지. 그때는 직산 보통학교 생긴 다음에 한참 후에 성환 보통학교가 생긴 거야.

퍼: 보통학교를 얼마나 다니셨어요?

정: 할아버지가 열다섯, 여섯 살까지. 6년 다녔으니깐.

퍼: 그때도 6년 과정이었구나.

정: 우리 아버지가 뭐라 그러신 줄 알어? 내가 이제 초등학교 입학을 했단 말이여. 이제부터는 시간생활을 해야 된다.

퍼: 시간생활?

정: 그래서 그때 아버지께서 어머니한테 이제 앞으로는 학교 댕기려면 시간생활을 해야 되구 그러니깐은 밥도 시간 맞춰서 해야 되구 맥이구 가야 되구 그란다구.

퍼: 보통학교 가시면서 시간에 맞춰 생활하게 되신 거군요.

정: 그렇지. 그래서 내가 입학식 할 적에 시계를 집에 사가지고 오셨어. 그 시계가 그 시계여. 어디 있었는데.

퍼: 이사 가면서 버리지 않았어? 나도 보면서 자랐는데 그 시계가 엄청 오래 된 시계네? 할아버지의 일생과도 같은.

정: 어디 있을 텐데, 어디 있을 겨. 그렇게 해서 인제 보통학교를 들어갔지. 그때 일정시대니깐. 그래 졸업하구.

퍼: 일정시대라는 것을 피부로 느끼게 된 계기가 있었어요?

정: 그때는 보통학교니까 일정시대인지 별로 이런 게 없었어. 그런데 공부는 일본 공부만 했으니까. 일본어로 공부했지. 4학년 때까지도 조선어라는 게 있었어. 조선, 한글 책자도 있었고. 근데 할아버지 졸업할 무렵이 되니깐은 그게 서서히 없어지는 거여.* 조선어가 없어지구 창씨개명을 하고.

* 중일전쟁이 발발한 1937년부터 조선의 학교에서 조선어 과목이 폐지되었다.

퍼: 집안에서는 조선어를 쓰고 학교에서는 일본어를 쓰고?

정: 그렇지. 조선어가 국어가 아니라 일본어가 국어여. 그때 되니깐 창씨개명이 나오는 거여. 창씨개명이 뭔지 알어?

퍼: 이름을 바꾸는 거 아니야?

정: 이름만 바꾸는 게 아니라 성을 바꾸는 거여. 이름만 바꾸면 괜찮은데 성을, 우리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말이여, 청주정씨, 전주이씨, 이(李) 왕조, 이런 성을 바꾸라는겨, 일본놈 성으로다가.

퍼: 할아버지도 그럼 창씨개명을 하셨어요?

정: 했지.

퍼: 하셨어요? 뭐라고?

정: 서천(西川). 서천이라는 게 뭐냐 하면 할아버지의 9대조 되는 분이 서천부원군이여. 그런 벼슬을 하셨다구. 그래서 거기서 따서 창씨개명할 때 서천이라는 말을 그걸로 지은 거여.

퍼: 일본어로 뭐라고 불렀어요?

정: 니시카와. 니시는 서쪽이란 말이고 카와라는 말은 개울이라는 말.

퍼: 이게 성이고 그럼 이름은?

정: 나는 충일. 우리 형제가 다섯 아니냐? 둘째 동생은 추지, 셋째 동생은 추소, 넷째 동생을 뭐라고 했더라? 다섯째 동생은 충작. 추사꾸. 그런 시대에 살았어, 우리가. 그러다가 인제 보통학교 졸업하고 휘문 중학교에 들어갔지

 

5. 선택받은 맏이

 

퍼: 보통학교 졸업 후 휘문 중학교는 어떻게 가게 되셨어요? 할아버지 말마따나 시골 놈이 서울로 온 거잖아요.

정: 여기 성환 보통학교 졸업해서 서울로 학교 간 사람이 할아버지 졸업 반 중에서 세 사람 밖에 없었어. 우리 일가가 진사 댁을 중심으로다가 세 개의 집안으로 갈라지는데 세 집안끼리 사이클이 맞은 거여. ‘자손을 잘 길러야 후손이 잘 된다’, 그래서 다 협력을 해서 그 중 종손을 지금 경기 중학교에 보내드렸어.

퍼: 큰댁 아저씨의 아버지?

정: 응. 그 분은 직산 보통학교 다녔고, 서울의 한성 고등학교 갔는데 그게 그 후에 경기 고등학교로 됐지. 집안이 다 힘을 합쳐서 종손을 잘 길러야 후손들이 잘 된다 하는 생각을 해서들랑 모든 사람들이 협력을 해서 거기를 보내준 거여.

퍼: 음. 종손을 잘 길러야 후손들이 잘 된다… 집안에서 돈을 합쳐 종손의 학비를 댄 거예요?

정: 진사 댁이 돈이 많은 천석꾼이었으니까 얘기할 것도 없고. 실력도 있어야지. 시험은 당연히 치고.

퍼: 시험도 쳤구나.

정: 그래서 그 양반은 경기 중학교에 가셨고, 지금 서울 대학교가 일정 시대 때는 경성제국대학이여. 경성제국대학 시절인데 이 양반이 공부를 잘 하시고 그러셨으니까 법문학부에 입학을 하셨다구.

퍼: 할아버지는요?

정: 내가 서울 휘문 중학교에 들어가게 된 동기도 그런 집안의 분위기에서 집안들로부터 픽업된 거여.

퍼: 후원해주겠다?

정: 나의 할아버지도 욕심이 있으니깐은 나도 보내줘야 할 거 아니냐. 큰집, 작은 집은 다 경기 중학교에 들어갔어. 찌끄레기루다가 나는 휘문 중학교에 들어간 거야.

퍼: 할아버지가 오형제 중에 맏이시죠? 맏이로 선택받으신 거네.

정: 그렇지.

퍼: 오형제말고도 예전에 여동생이 있었다면서요?

정: 여동생? 내가 중학교 들어가서 죽었어.

퍼: 그럼 할아버지하고의 기억도 있겠네.

정: 그 얘기 하면 또 기가 맥히지. 우리 아버지께서 나를 낳고 그 다음에 또 둘째 아들을 낳았어. 말하자면 뭐라고 할까 체면을 세운 거 아니여.

퍼: 세 번째가 여동생이셨구나.

정: 네게로 따지면 대고모지. 그렇게 예쁘고 똑똑했어. 깔째미여. 그런데 초등학교 1학년 들어가기 전 해에 옆집에서 불이 났어요. 동네가 발칵 뒤집히고 난리가 나지 않았어. 죽은 원인을 따져 보니깐은 얘가 그때 놀랜 거여.

퍼: 그때 놀란 걸 모르고 있다가 나중에 후유증으로 죽었다구요?

정: 죽은 원인을 나중에 따져 보니까 그렇다는 거여. 그때 놀란 거를 모르고 있었지.

퍼: 그게 병이 된 거구나?

정: 한약이라도 사다 먹였으면 어떻게 되었을지 모르겠는데, 그게 병이 되어설랑, 보통학교 입학식 날 학부형이랑 애들이랑 운동장에 잔뜩 모였을 거 아니냐? 그때 불났을 때 소란 피우고 그란 것이 거기서 환상으로 떠오른 것 같어.

퍼: 그래서 바로 쓰러졌어요?

정: 집에 실려 와서 한 사흘인가 앓다 죽었대.

퍼: 할아버지 서울에 있을 때에요?

정: 휘문 중학교 다닐 땐데, 우리 아버지는 내가 돈 보내달라고 하면은 돈 그거만 딱 보내주시는 거야. 편지 그런 것도 한 장 없었어. 딱 고것만 보내주시는 거여. 그런디 걔가 죽고 나서 한 줄 반, 그 양면괘지에, 네 동생 아무아무개, 희용이가 죽었다고, 딱 한줄 반만 써 보내셨어. 그런 편지를 보내셨더라구.

퍼: 할아버지도 놀라셨겠네요.

정: 나도 놀랬지. 나는 고년을 그냥 굉장히 미워했어요.

퍼: 왜요?

정: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 하니깐은. 저년 보기 싫다고 나는 그랬어. 내가 참 그렇게 미워했어. 어떤 땐 귀여워 하면설랑두 미워했다구. 그런데 지금도 생각이 나. “오빠, 오빠” 하면서 재롱을 떨고 붙임성 있게 하고 그랬는데. 그렇게 똑똑했어. 별명이 깔째미여. 동네사람이 별명을 지어준겨.

퍼: 귀여움 받을 만도 했겠네요.

정: 저기 쳐다보면 산이 야산이었는데 ‘애장(아이의 장례)’이라고 그라잖어. 우리 아버지께서는 거기만 쳐다보고만 있었다고. 지금도 가끔 걔 생각이 나. 나도 술 먹고 그러면 가끔 거길 쳐다보는 거여. 개발이 되어서 뼉다구두 다 없어졌을 거라고 생각이 들면서두 참 생각이 나는 거여.

 

5. 선택받은 맏이

 

퍼: 보통학교 졸업 후 휘문 중학교는 어떻게 가게 되셨어요? 할아버지 말마따나 시골 놈이 서울로 온 거잖아요.

정: 여기 성환 보통학교 졸업해서 서울로 학교 간 사람이 할아버지 졸업 반 중에서 세 사람 밖에 없었어. 우리 일가가 진사 댁을 중심으로다가 세 개의 집안으로 갈라지는데 세 집안끼리 사이클이 맞은 거여. ‘자손을 잘 길러야 후손이 잘 된다’, 그래서 다 협력을 해서 그 중 종손을 지금 경기 중학교에 보내드렸어.

퍼: 큰댁 아저씨의 아버지?

정: 응. 그 분은 직산 보통학교 다녔고, 서울의 한성 고등학교 갔는데 그게 그 후에 경기 고등학교로 됐지. 집안이 다 힘을 합쳐서 종손을 잘 길러야 후손들이 잘 된다 하는 생각을 해서들랑 모든 사람들이 협력을 해서 거기를 보내준 거여.

퍼: 음. 종손을 잘 길러야 후손들이 잘 된다… 집안에서 돈을 합쳐 종손의 학비를 댄 거예요?

정: 진사 댁이 돈이 많은 천석꾼이었으니까 얘기할 것도 없고. 실력도 있어야지. 시험은 당연히 치고.

퍼: 시험도 쳤구나.

정: 그래서 그 양반은 경기 중학교에 가셨고, 지금 서울 대학교가 일정 시대 때는 경성제국대학이여. 경성제국대학 시절인데 이 양반이 공부를 잘 하시고 그러셨으니까 법문학부에 입학을 하셨다구.

퍼: 할아버지는요?

정: 내가 서울 휘문 중학교에 들어가게 된 동기도 그런 집안의 분위기에서 집안들로부터 픽업된 거여.

퍼: 후원해주겠다?

정: 나의 할아버지도 욕심이 있으니깐은 나도 보내줘야 할 거 아니냐. 큰집, 작은 집은 다 경기 중학교에 들어갔어. 찌끄레기루다가 나는 휘문 중학교에 들어간 거야.

퍼: 할아버지가 오형제 중에 맏이시죠? 맏이로 선택받으신 거네.

정: 그렇지.

퍼: 오형제말고도 예전에 여동생이 있었다면서요?

정: 여동생? 내가 중학교 들어가서 죽었어.

퍼: 그럼 할아버지하고의 기억도 있겠네.

정: 그 얘기 하면 또 기가 맥히지. 우리 아버지께서 나를 낳고 그 다음에 또 둘째 아들을 낳았어. 말하자면 뭐라고 할까 체면을 세운 거 아니여.

퍼: 세 번째가 여동생이셨구나.

정: 네게로 따지면 대고모지. 그렇게 예쁘고 똑똑했어. 깔째미여. 그런데 초등학교 1학년 들어가기 전 해에 옆집에서 불이 났어요. 동네가 발칵 뒤집히고 난리가 나지 않았어. 죽은 원인을 따져 보니깐은 얘가 그때 놀랜 거여.

퍼: 그때 놀란 걸 모르고 있다가 나중에 후유증으로 죽었다구요?

정: 죽은 원인을 나중에 따져 보니까 그렇다는 거여. 그때 놀란 거를 모르고 있었지.

퍼: 그게 병이 된 거구나?

정: 한약이라도 사다 먹였으면 어떻게 되었을지 모르겠는데, 그게 병이 되어설랑, 보통학교 입학식 날 학부형이랑 애들이랑 운동장에 잔뜩 모였을 거 아니냐? 그때 불났을 때 소란 피우고 그란 것이 거기서 환상으로 떠오른 것 같어.

퍼: 그래서 바로 쓰러졌어요?

정: 집에 실려 와서 한 사흘인가 앓다 죽었대.

퍼: 할아버지 서울에 있을 때에요?

정: 휘문 중학교 다닐 땐데, 우리 아버지는 내가 돈 보내달라고 하면은 돈 그거만 딱 보내주시는 거야. 편지 그런 것도 한 장 없었어. 딱 고것만 보내주시는 거여. 그런디 걔가 죽고 나서 한 줄 반, 그 양면괘지에, 네 동생 아무아무개, 희용이가 죽었다고, 딱 한줄 반만 써 보내셨어. 그런 편지를 보내셨더라구.

퍼: 할아버지도 놀라셨겠네요.

정: 나도 놀랬지. 나는 고년을 그냥 굉장히 미워했어요.

퍼: 왜요?

정: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 하니깐은. 저년 보기 싫다고 나는 그랬어. 내가 참 그렇게 미워했어. 어떤 땐 귀여워 하면설랑두 미워했다구. 그런데 지금도 생각이 나. “오빠, 오빠” 하면서 재롱을 떨고 붙임성 있게 하고 그랬는데. 그렇게 똑똑했어. 별명이 깔째미여. 동네사람이 별명을 지어준겨.

퍼: 귀여움 받을 만도 했겠네요.

정: 저기 쳐다보면 산이 야산이었는데 ‘애장(아이의 장례)’이라고 그라잖어. 우리 아버지께서는 거기만 쳐다보고만 있었다고. 지금도 가끔 걔 생각이 나. 나도 술 먹고 그러면 가끔 거길 쳐다보는 거여. 개발이 되어서 뼉다구두 다 없어졌을 거라고 생각이 들면서두 참 생각이 나는 거여.

 

6. 휘문 중학교 입학

 

퍼: 보통학교 졸업하시고 곧바로 중학교에 들어가신 건가요?

정: 열 살에 보통학교를 들어갔으니깐은 열다섯에 졸업을 했을 거 아니여. 그리고 열여섯 살에 중학교에 들어갔자. 중학교 들어간 지 2년 째 되니깐은 대동아전쟁*이 터진 거여.

* 대동아전쟁(태평양 전쟁, 1941~45) : 1941년 일본이 미국 하와이의 진주만을 기습공격하며 시작되었다.

정: 그때부터 가니깐은 그냥 뭐 각반치고 각반이 뭔지도 모르지?

퍼: 발에 두르는 거 아닌가?

정: 그때는 발에 뚤뚤뚤뚤 말아서 차는 게 있었다구. 그게 각반이여, 각반. 등산갈 때 배낭 메고 다니잖어? 그때는 책을 배낭에다가 짊어지고 다니고 그랬다구.

퍼: 각반차고 배낭 짊어지고 다녔다고요?

정: 태평양 전쟁이니 뭐니 전시 태세니까. 중학교고 뭐고 전부다 그런 거여. 어느 철도를 이쪽으로 옮겨야 된다, 이건 철수해야 한다 그랬단 말이여. 보국대여 보국대. 비행장 뭐 건설한다 그러면은 동원돼서 나가는 거야. 그런데 휘문 중학교에서는 그렇게 안 했어.

퍼: 왜요?

정: 그렇게 민족성이 강했으니까.

퍼: 중학교는 시험 봐서 들어갔어요?

정: 아 그럼! 필기시험도 보구 구두시험도 보구. 지금 생각하면 집안의 후원으로 휘문 중학교 들어간 혜택이 컸지. 그때 성환 보통학교를 나오고 휘문 중학교를 들어간다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나 다름없어.

퍼: 열여섯 살 때 처음 집 떠나서 생활한 거네요.

정: 그렇지. 그때 큰댁 형님이 경성제대를 졸업하고 경기 중학교를 들어갔구 경성제대를 들어가설랑 경기 중학교 선생으로 계셨어. 30대 빠릿빠릿한 양반이니까. 서울에 집을 하나 장만했단 말이야. 집안에서 해준 것도 아니지만은 그 집이 돈이 많으니까. 할아버지도 그 집에 가서 하숙생활 비슷하게 한 거여.

퍼: 학교에서 가까웠어요?

정: 그렇지. 큰댁 형님이랑 살던 데가 가회동 18번지여. 내 잊어버리지도 않어. 거기서 쪼끔 내려오면 옛날에 경기여고여. 그리고 여기서 이쪽으로 내려오면 중앙 중학교고. 지금 현대건설 자리가 휘문 중학교 자리여. 휘문 중학교가 그거 팔고 서초동으로 나온 거여.

퍼: 그 집이 근처에 소설가 김남천이 살았다던 그 집이예요?

정: 가회동 18번지 거기서 길 건너서 김남천의 집이 있었어.

퍼: 휘문 중학교가 세워진 지가 얼마나 됐어요? 오래 됐죠?

정: 할아버지가 38회니깐은, 이씨 조선 말기에 그게 생겨난 거야. 배제, 휘문, 양정이 처음 왕실에서 만들어진 거야. 그 다음에 고려대학교 설립자 그 양반이 중앙 중학교를 세웠지. 휘문 중학교는 민서방네들이 세운 거구.

퍼: 휘문 중학교가 서초동으로 이사 가고 난 후 가본 적 있으세요?

정: 현재 휘문 중학교의 건물이 그때 할아버지가 다니던 구조랑 똑같어. 참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건데.

퍼: 할아버지 다시 가봤어요?

정: 가봤지. 거기도 가보구. 옛날에 지하실에 물 실험실 있는 데도 다 가보고 했는데 그때 그 구조하고 똑같이 만들어 놨어. 참 잘 만들어놨구나, 생각했지.

퍼: 일부러 똑같이 만들어 놓았구나.

정: 그때부텀 휘문 중학교 야구가 유명했어. 그런데 할아버지가 들어가면서부텀 일본놈이 미국놈 운동이니까 하지 말어라, 그랬어. 운동장도 참 잘 만들어놓고 그랬는데 못 하게 됐어.

퍼: 휘문 중학교 선생님 중에서 정지용 선생님 말고 기억에 남는 선생님은 없어요?

정: 거기에서 정지용 선생님도 나오고 장팔 선생님도 나오고 그러구선 저 뭐여 박, 외국어대학교 창립한 양반이, 박술흠 선생님. 그때는 휘문 중학교에 교무주임이었었어. 말하자면 교감 선생님.

퍼: 그렇구나.

정: 김도태 선생님이라고 또 계셨지. 김도태 선생님 그 양반은 한국의 역사와 지리에 대해 아주 유명한 분이여. 그런데 말년에 전시, 6.25사변 당시에 해군 역사편찬위원으로 계시다가, 수복이 되면설랑 서울 상업(현재의 서울여자상업고등학교)이라고 있어. 여자들 학교. 저기 효자동 저쪽 언덕, 지금 어디로 옮겨졌니, 어쨌니. 할아버지는 몰랐는데 서울상업 거기 교장으로 있다가 돌아가셨다나.

정: 그라구 그때 교장 선생님은 이병규 선생이라구 동경사범대학을 다니셨어. 거기서 아주 우수한 수학과를 엘리트로다가 나오신 분이여. 여기 성거(천안시 성거면)분이여. 그 아버지가 어떤 분인가 하면은 한약방을 하고 계셨어.

퍼: 그 분의 아버지가?

정: 유명했지. 옛날에 피부병 걸리고 그러면 거기를 전문 병원으로 여기고 다니고 그랬어. 근디 그분의 집안이 8형젠가 뒀는데 전부다가 일정 시대에 사각모자를 쓰고 다녔어.

퍼: 사각모자?

정: 일정시대에 대학생들은 사각모자를 쓰고 댕겼으니깐.

퍼: 아, 8형제가 모두 대학생이었구나.

정: 그려. 그리고 일본 사람들이 종로 네거리, 명동을 게다짝 끌면설랑, 망토 탁 입고, 사각모 쓰고 이라구서 나가고 그러면 감히 어떤 놈도 건드리질 못했어.

퍼: 하하.

정: 종로 우민관에서 깡패 누구여, 김두한*이두, 종로 네거리 거기서 주름 잡고 있을 때고.

* 김두한(1918-1972) : 독립운동가 김좌진의 아들로 1930년 당시 주먹왕으로 군림했다. 해방 이후 국회의원을 지냈다. 국회 국무위원석에 똥물을 뿌린 ‘오물사건’으로 유명세를 탔다.

퍼: 김두한 본 적 있어요?

정: 그럼, 봤지. 김두한이 뭐 밥도 못 얻어 먹고설랑 “내가 김두한이다, 내가 김좌진이 아들이다” 이러면은 멕혀 들어갔으니깐. 그 꼬봉들은 말할 것도 없고. <야인시대>라는 영화 나오잖어. 거기 나오는 게 바로 그거여.

 

6. 휘문 중학교 입학

 

퍼: 보통학교 졸업하시고 곧바로 중학교에 들어가신 건가요?

정: 열 살에 보통학교를 들어갔으니깐은 열다섯에 졸업을 했을 거 아니여. 그리고 열여섯 살에 중학교에 들어갔자. 중학교 들어간 지 2년 째 되니깐은 대동아전쟁*이 터진 거여.

* 대동아전쟁(태평양 전쟁, 1941~45) : 1941년 일본이 미국 하와이의 진주만을 기습공격하며 시작되었다.

정: 그때부터 가니깐은 그냥 뭐 각반치고 각반이 뭔지도 모르지?

퍼: 발에 두르는 거 아닌가?

정: 그때는 발에 뚤뚤뚤뚤 말아서 차는 게 있었다구. 그게 각반이여, 각반. 등산갈 때 배낭 메고 다니잖어? 그때는 책을 배낭에다가 짊어지고 다니고 그랬다구.

퍼: 각반차고 배낭 짊어지고 다녔다고요?

정: 태평양 전쟁이니 뭐니 전시 태세니까. 중학교고 뭐고 전부다 그런 거여. 어느 철도를 이쪽으로 옮겨야 된다, 이건 철수해야 한다 그랬단 말이여. 보국대여 보국대. 비행장 뭐 건설한다 그러면은 동원돼서 나가는 거야. 그런데 휘문 중학교에서는 그렇게 안 했어.

퍼: 왜요?

정: 그렇게 민족성이 강했으니까.

퍼: 중학교는 시험 봐서 들어갔어요?

정: 아 그럼! 필기시험도 보구 구두시험도 보구. 지금 생각하면 집안의 후원으로 휘문 중학교 들어간 혜택이 컸지. 그때 성환 보통학교를 나오고 휘문 중학교를 들어간다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나 다름없어.

퍼: 열여섯 살 때 처음 집 떠나서 생활한 거네요.

정: 그렇지. 그때 큰댁 형님이 경성제대를 졸업하고 경기 중학교를 들어갔구 경성제대를 들어가설랑 경기 중학교 선생으로 계셨어. 30대 빠릿빠릿한 양반이니까. 서울에 집을 하나 장만했단 말이야. 집안에서 해준 것도 아니지만은 그 집이 돈이 많으니까. 할아버지도 그 집에 가서 하숙생활 비슷하게 한 거여.

퍼: 학교에서 가까웠어요?

정: 그렇지. 큰댁 형님이랑 살던 데가 가회동 18번지여. 내 잊어버리지도 않어. 거기서 쪼끔 내려오면 옛날에 경기여고여. 그리고 여기서 이쪽으로 내려오면 중앙 중학교고. 지금 현대건설 자리가 휘문 중학교 자리여. 휘문 중학교가 그거 팔고 서초동으로 나온 거여.

퍼: 그 집이 근처에 소설가 김남천이 살았다던 그 집이예요?

정: 가회동 18번지 거기서 길 건너서 김남천의 집이 있었어.

퍼: 휘문 중학교가 세워진 지가 얼마나 됐어요? 오래 됐죠?

정: 할아버지가 38회니깐은, 이씨 조선 말기에 그게 생겨난 거야. 배제, 휘문, 양정이 처음 왕실에서 만들어진 거야. 그 다음에 고려대학교 설립자 그 양반이 중앙 중학교를 세웠지. 휘문 중학교는 민서방네들이 세운 거구.

퍼: 휘문 중학교가 서초동으로 이사 가고 난 후 가본 적 있으세요?

정: 현재 휘문 중학교의 건물이 그때 할아버지가 다니던 구조랑 똑같어. 참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건데.

퍼: 할아버지 다시 가봤어요?

정: 가봤지. 거기도 가보구. 옛날에 지하실에 물 실험실 있는 데도 다 가보고 했는데 그때 그 구조하고 똑같이 만들어 놨어. 참 잘 만들어놨구나, 생각했지.

퍼: 일부러 똑같이 만들어 놓았구나.

정: 그때부텀 휘문 중학교 야구가 유명했어. 그런데 할아버지가 들어가면서부텀 일본놈이 미국놈 운동이니까 하지 말어라, 그랬어. 운동장도 참 잘 만들어놓고 그랬는데 못 하게 됐어.

퍼: 휘문 중학교 선생님 중에서 정지용 선생님 말고 기억에 남는 선생님은 없어요?

정: 거기에서 정지용 선생님도 나오고 장팔 선생님도 나오고 그러구선 저 뭐여 박, 외국어대학교 창립한 양반이, 박술흠 선생님. 그때는 휘문 중학교에 교무주임이었었어. 말하자면 교감 선생님.

퍼: 그렇구나.

정: 김도태 선생님이라고 또 계셨지. 김도태 선생님 그 양반은 한국의 역사와 지리에 대해 아주 유명한 분이여. 그런데 말년에 전시, 6.25사변 당시에 해군 역사편찬위원으로 계시다가, 수복이 되면설랑 서울 상업(현재의 서울여자상업고등학교)이라고 있어. 여자들 학교. 저기 효자동 저쪽 언덕, 지금 어디로 옮겨졌니, 어쨌니. 할아버지는 몰랐는데 서울상업 거기 교장으로 있다가 돌아가셨다나.

정: 그라구 그때 교장 선생님은 이병규 선생이라구 동경사범대학을 다니셨어. 거기서 아주 우수한 수학과를 엘리트로다가 나오신 분이여. 여기 성거(천안시 성거면)분이여. 그 아버지가 어떤 분인가 하면은 한약방을 하고 계셨어.

퍼: 그 분의 아버지가?

정: 유명했지. 옛날에 피부병 걸리고 그러면 거기를 전문 병원으로 여기고 다니고 그랬어. 근디 그분의 집안이 8형젠가 뒀는데 전부다가 일정 시대에 사각모자를 쓰고 다녔어.

퍼: 사각모자?

정: 일정시대에 대학생들은 사각모자를 쓰고 댕겼으니깐.

퍼: 아, 8형제가 모두 대학생이었구나.

정: 그려. 그리고 일본 사람들이 종로 네거리, 명동을 게다짝 끌면설랑, 망토 탁 입고, 사각모 쓰고 이라구서 나가고 그러면 감히 어떤 놈도 건드리질 못했어.

퍼: 하하.

정: 종로 우민관에서 깡패 누구여, 김두한*이두, 종로 네거리 거기서 주름 잡고 있을 때고.

* 김두한(1918-1972) : 독립운동가 김좌진의 아들로 1930년 당시 주먹왕으로 군림했다. 해방 이후 국회의원을 지냈다. 국회 국무위원석에 똥물을 뿌린 ‘오물사건’으로 유명세를 탔다.

퍼: 김두한 본 적 있어요?

정: 그럼, 봤지. 김두한이 뭐 밥도 못 얻어 먹고설랑 “내가 김두한이다, 내가 김좌진이 아들이다” 이러면은 멕혀 들어갔으니깐. 그 꼬봉들은 말할 것도 없고. <야인시대>라는 영화 나오잖어. 거기 나오는 게 바로 그거여.

 

7. 한글로 소설 읽기 – 독서 서클과 만남

 

퍼: 휘문 중학교 시절 기억에 남는 일이 있으시다면요?

정: 그때 얘기를 하게 되면은 할아버지가 중학교를 들어가니깐은 처음에는 할아버지도 인제 까불구, 등치도 좋구 그랬으니깐은 서울 놈들이 깔보진 못했었어요.

퍼: 하하.

정: 그러다 (친구들이) 어떤 그룹에 날 끌어 들였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까 그게 써클이여. 독서회라는 게. 처음에는 애들 책 읽는 거, 재밌는 걸 해주기 위해서 일본 놈 잔잔바라바라*, 싸움하는 거를 읽혔어.

퍼: 잔잔바라바라가 뭐에요?

정: 쌈하는 거. 칼 들고설랑 잔잔바라바라. 사무라이들이 그거하는 게 잔잔바라바라여. 그런 책이 도는 거여.

* 잔바라: 큰칼 싸움을 가리키는 일본말.

퍼: 그런 책을 그때 보셨구나.

정: 재밌으니까 공부는 하기 싫고 그렇잖어. 서울 가니까 촌놈이 뭣도 모르니까 책을 보는 거여. 그런데 그 다음에 2학년 올라가니까 지금 얘기한 정지용 선생님, 또 누구여, 최남선, 알지? 그라구 ‘사랑’이라는 책을 지은 양반이 누구지?

퍼: 이광수?

정: 이광수의 <사랑>, <이차돈의 주검>. 뭐 이런 것이 돌기 시작하는 거여. 그라구설랑 인저 이기영 선생님의 <고향>. 이기영 선생이 어느 분인가, 여기 목천(천안시 목천면) 분이여.

퍼: 고향에 ‘성환’이라는 지명도 나오잖아요.

정: 심훈의 <상록수> 이런 책이 막 도는 거여. 그라믄 이게 어떻게 되는 거냐하면, “너 이거 주면 읽고 여기 넘겨줘야 한다.”고 사흘 동안에 읽고 넘겨줘야 되게 돼 있어. 이거 안 하면 다음에 책이 안 와.

퍼: 안 읽을 수가 없겠구나?

정: 넌 안 하면 비토(veto, ビㅡトㅡ;거부권, 금지)다, 비토당하는 거여. 그러니까는 학교 공부는 제쳐놓고설랑 그것만 열심히 보고설랑 거기 넘겨주는 거여. 그런 식으로 하다보니깐 그때 할아버지가 심훈의 <상록수>니 외국 문학 톨스토이니 <부활>, <전쟁과 평화>, 도스토옙스키의 <까라마조프의 형제들>, 빅토르 위고의 <장발장>을 전부 그때 읽어본 거야.

퍼: 하하. 빅토르 위고.

정: 그라구설랑 저 누구여 저 무슨무슨 백작의 무슨 뭐라는 거, 탐정소설 무슨 백작이여, 그게. 그런 얘기가 다 거기 나오는 거여. 그러니까 그거 읽을 수밖에. 근데 재미도 있잖어.

퍼: 그게 휘문 중학교 안에서 한 거예요?

정: 그런데 그 안에서가 아니라 그 바깥에 뒷구멍으로다가.

퍼: 안에서는 한글소설 못 읽게 했어요?

정: 안 되지. 그때 일정시댄데 눈깔이 시퍼래 가지구서 이래서(엄지와 검지를 맞대어 동그랗게 만드신 다음 눈에 가져가셔서는) 저기한 판인디. 가르치는 선생님 중에서도 ‘그 선생님 어째 안 나오신다’고 그러믄 (속삭이시며) “그 양반 저기 끌려 갔어, 임마”, 이런 식으로다가 그렇게 삼엄했어.

퍼: 할아버지가 독서서클에 가입하게 된 계기는요?

정: 몇 사람 만나다 보니깐 그 위에는 무엇이 있었겠지. 지금도 그렇겠지만은 어디구 그런 게 있는 거여. 너 요놈, 요놈 포섭해라. 그렇게 되는 거지. 그게 써클이 되고 그러면은 재미있게 운영하게끔 만들어 주는 거여.

퍼: 잔잔바라바라처럼?

정: 그려. 아까 얘기했던 잔잔바라바라도 나오고 느덜한테 이런 말하기 그렇지만은 섹스 얘기 나오는 그런 책도 나오는 거여. 젊은 애들이 재미 느낄 수 있는 책을 돌려주는 거여. 그러구서 서서히 독서에 대한 재미를 길러주는 동시에 어느 정도 됐을 적에는 그 다음에 그게 돌아가는 거지.

퍼: 그 흐름을 돌리는 사람이 누군지 몰라요?

정: 모르지. 저 위에 독립운동가라든가.

퍼: 할아버지가 그때 책을 열심히 읽었구나.

정: 안 읽으면 안 되지. 거기서 왕따 당하니까. 촌놈이 올라가서 왕따 당하면 어떻게 할겨.

 

(<빅토르 위고를 사랑한 소년 (2) – 정인용>으로 이어집니다.)

 

7. 한글로 소설 읽기 – 독서 서클과 만남

 

퍼: 휘문 중학교 시절 기억에 남는 일이 있으시다면요?

정: 그때 얘기를 하게 되면은 할아버지가 중학교를 들어가니깐은 처음에는 할아버지도 인제 까불구, 등치도 좋구 그랬으니깐은 서울 놈들이 깔보진 못했었어요.

퍼: 하하.

정: 그러다 (친구들이) 어떤 그룹에 날 끌어 들였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까 그게 써클이여. 독서회라는 게. 처음에는 애들 책 읽는 거, 재밌는 걸 해주기 위해서 일본 놈 잔잔바라바라*, 싸움하는 거를 읽혔어.

퍼: 잔잔바라바라가 뭐에요?

정: 쌈하는 거. 칼 들고설랑 잔잔바라바라. 사무라이들이 그거하는 게 잔잔바라바라여. 그런 책이 도는 거여.

* 잔바라: 큰칼 싸움을 가리키는 일본말.

퍼: 그런 책을 그때 보셨구나.

정: 재밌으니까 공부는 하기 싫고 그렇잖어. 서울 가니까 촌놈이 뭣도 모르니까 책을 보는 거여. 그런데 그 다음에 2학년 올라가니까 지금 얘기한 정지용 선생님, 또 누구여, 최남선, 알지? 그라구 ‘사랑’이라는 책을 지은 양반이 누구지?

퍼: 이광수?

정: 이광수의 <사랑>, <이차돈의 주검>. 뭐 이런 것이 돌기 시작하는 거여. 그라구설랑 인저 이기영 선생님의 <고향>. 이기영 선생이 어느 분인가, 여기 목천(천안시 목천면) 분이여.

퍼: 고향에 ‘성환’이라는 지명도 나오잖아요.

정: 심훈의 <상록수> 이런 책이 막 도는 거여. 그라믄 이게 어떻게 되는 거냐하면, “너 이거 주면 읽고 여기 넘겨줘야 한다.”고 사흘 동안에 읽고 넘겨줘야 되게 돼 있어. 이거 안 하면 다음에 책이 안 와.

퍼: 안 읽을 수가 없겠구나?

정: 넌 안 하면 비토(veto, ビㅡトㅡ;거부권, 금지)다, 비토당하는 거여. 그러니까는 학교 공부는 제쳐놓고설랑 그것만 열심히 보고설랑 거기 넘겨주는 거여. 그런 식으로 하다보니깐 그때 할아버지가 심훈의 <상록수>니 외국 문학 톨스토이니 <부활>, <전쟁과 평화>, 도스토옙스키의 <까라마조프의 형제들>, 빅토르 위고의 <장발장>을 전부 그때 읽어본 거야.

퍼: 하하. 빅토르 위고.

정: 그라구설랑 저 누구여 저 무슨무슨 백작의 무슨 뭐라는 거, 탐정소설 무슨 백작이여, 그게. 그런 얘기가 다 거기 나오는 거여. 그러니까 그거 읽을 수밖에. 근데 재미도 있잖어.

퍼: 그게 휘문 중학교 안에서 한 거예요?

정: 그런데 그 안에서가 아니라 그 바깥에 뒷구멍으로다가.

퍼: 안에서는 한글소설 못 읽게 했어요?

정: 안 되지. 그때 일정시댄데 눈깔이 시퍼래 가지구서 이래서(엄지와 검지를 맞대어 동그랗게 만드신 다음 눈에 가져가셔서는) 저기한 판인디. 가르치는 선생님 중에서도 ‘그 선생님 어째 안 나오신다’고 그러믄 (속삭이시며) “그 양반 저기 끌려 갔어, 임마”, 이런 식으로다가 그렇게 삼엄했어.

퍼: 할아버지가 독서서클에 가입하게 된 계기는요?

정: 몇 사람 만나다 보니깐 그 위에는 무엇이 있었겠지. 지금도 그렇겠지만은 어디구 그런 게 있는 거여. 너 요놈, 요놈 포섭해라. 그렇게 되는 거지. 그게 써클이 되고 그러면은 재미있게 운영하게끔 만들어 주는 거여.

퍼: 잔잔바라바라처럼?

정: 그려. 아까 얘기했던 잔잔바라바라도 나오고 느덜한테 이런 말하기 그렇지만은 섹스 얘기 나오는 그런 책도 나오는 거여. 젊은 애들이 재미 느낄 수 있는 책을 돌려주는 거여. 그러구서 서서히 독서에 대한 재미를 길러주는 동시에 어느 정도 됐을 적에는 그 다음에 그게 돌아가는 거지.

퍼: 그 흐름을 돌리는 사람이 누군지 몰라요?

정: 모르지. 저 위에 독립운동가라든가.

퍼: 할아버지가 그때 책을 열심히 읽었구나.

정: 안 읽으면 안 되지. 거기서 왕따 당하니까. 촌놈이 올라가서 왕따 당하면 어떻게 할겨.

 

(<빅토르 위고를 사랑한 소년 (2) – 정인용>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