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장 난 벽시계 ♬ _ 박종기
세월아 너는 어찌 돌아도 보지 않느냐
나를 속인 사람보다 네가 더욱 야속하더라
한두 번 사랑땜에 울고 났더니
저만큼 가버린 세월
고장 난 벽시계는 멈추었는데
저 세월은 고장도 없네
청춘아 너는 어찌 모른 척하고 있느냐
나를 버린 사람보다 네가 더욱 무정하더라
뜬구름 쫒아가다 돌아봤더니
어느새 흘러간 청춘
고장 난 벽시계는 멈추었는데
저 세월은 고장도 없네
1983년 동방플라자 문화센터에서 처음 시작된 노래교실은 2011년 현재까지도 많은 문화센터나 구민회관에서 꾸준히 주부들의 인기 강좌로 사랑받고 있다. 평범한 전업 주부인 우리 엄마는 오전 10시 반이면, 어김없이 노래교실에 간다. 그런 우리 엄마 친구들도 오전 10시 반이면, 어김없이 엄마와 함께 노래교실에 간다. 도대체 노래교실은 어떤 곳일까? 그 곳에는 누가 있는 것일까? 궁금증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래서 한번 알아보기로 했다. 엄마와 엄마 친구들이 오전 시간을 보내는 그 노래교실에서 노래를 가르치는 노래강사 박정숙 씨를 만나보았다.
그녀를 만나기로 한 지하철 1호선 외대앞 역. 내가 그녀를 처음 만난 곳은 한 구두 가게였다. 검정색 새틴 소재에 큐빅이 촘촘히 박혀있는 구두를 집어든 그녀는 그 구두가 마음에 든 듯 “노래교실 나갈 때 신으려고요.”라고 선수를 치며 말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다시 역으로 걸어오는 길. 길거리 옷 가게에 전시되어 있는 땡땡이 무늬의 블라우스를 보면서 그녀는 말했다. “저런 디자인도 무대에 서면 너무 화려하지 않고 깔끔하니 괜찮을 것 같은데.” 요즘 그녀의 머릿속은 노래교실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 고장 난 벽시계 ♬ _ 박종기
세월아 너는 어찌 돌아도 보지 않느냐
나를 속인 사람보다 네가 더욱 야속하더라
한두 번 사랑땜에 울고 났더니
저만큼 가버린 세월
고장 난 벽시계는 멈추었는데
저 세월은 고장도 없네
청춘아 너는 어찌 모른 척하고 있느냐
나를 버린 사람보다 네가 더욱 무정하더라
뜬구름 쫒아가다 돌아봤더니
어느새 흘러간 청춘
고장 난 벽시계는 멈추었는데
저 세월은 고장도 없네
1983년 동방플라자 문화센터에서 처음 시작된 노래교실은 2011년 현재까지도 많은 문화센터나 구민회관에서 꾸준히 주부들의 인기 강좌로 사랑받고 있다. 평범한 전업 주부인 우리 엄마는 오전 10시 반이면, 어김없이 노래교실에 간다. 그런 우리 엄마 친구들도 오전 10시 반이면, 어김없이 엄마와 함께 노래교실에 간다. 도대체 노래교실은 어떤 곳일까? 그 곳에는 누가 있는 것일까? 궁금증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래서 한번 알아보기로 했다. 엄마와 엄마 친구들이 오전 시간을 보내는 그 노래교실에서 노래를 가르치는 노래강사 박정숙 씨를 만나보았다.
그녀를 만나기로 한 지하철 1호선 외대앞 역. 내가 그녀를 처음 만난 곳은 한 구두 가게였다. 검정색 새틴 소재에 큐빅이 촘촘히 박혀있는 구두를 집어든 그녀는 그 구두가 마음에 든 듯 “노래교실 나갈 때 신으려고요.”라고 선수를 치며 말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다시 역으로 걸어오는 길. 길거리 옷 가게에 전시되어 있는 땡땡이 무늬의 블라우스를 보면서 그녀는 말했다. “저런 디자인도 무대에 서면 너무 화려하지 않고 깔끔하니 괜찮을 것 같은데.” 요즘 그녀의 머릿속은 노래교실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1. 노래교실에서
퍼슨웹(이하 ‘퍼’): 저희 엄마는 왜 오전 10시 반만 되면 항상 노래교실에 가시는 걸까요?
박정숙(이하 ‘박’): 노래강사 앞에서 노래교실에 왜 가느냐고 물으면, 나는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하나? (웃음)
퍼: (웃음) 아니, 항상 궁금했어요. 엄마가 노래교실에서 뭐 하시는지, 그 곳에는 어떤 사람들이 있는지.
박: 노래교실은 조금 특별한 공간 같아요. 비단 노래만 하는 곳은 아니죠. 자신과 같은 또래들과 모여서 이야기도 하고, 함께 신나게 웃어젖히고, 그렇게 우리 엄마들이 남들 눈치 안 보고 스트레스를 마음껏 풀 수 있는 그런 곳이에요.
퍼: 사실 평범한 우리 엄마들이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공간이 그리 흔치 않은 것이 사실이죠. 그런데 왜 하필 항상 10시 반에 노래교실에 가는 것일까요?
박: 남편 회사 보내고, 아이들 학교 보낸 후, 정리하고 나면 딱 그 시간 즈음이 되거든요. 그게 우리 엄마들의 자유시간인데, 그 시간이 한편으로는 참 공허하거든요. 그래서 삼삼오오 모여서 이 노래교실로 오는 것이죠.
퍼: 노래교실이란 공간은 우리 엄마들의 놀이터이자 치유의 공간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박: 맞아요. 제 주변에 남편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고 나서,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아서 몇 년 동안 바깥출입도 삼가던 친구가 있어요. 한번은 친구가 하도 노래교실에 가자고 해서 못 이기는 척 따라갔대요. 그렇게 한 번 두 번 가다가 지금은 저랑 같이 공부까지 하고 있는데, 그때 자기가 노래교실에 안 갔더라면 우울증 때문에 정말 어떻게 됐을지도 모르겠다고 하더라고요.
퍼: 강사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니까, 노래교실에 대해서 더 궁금해지는데요? 지금 동대문구 보훈회관에서 강의하고 계시죠?
박: 네. 그런데 보훈회관이라서 그런지 아저씨들이 좀 많아요. 한 20명 정도? 보통 다른 곳을 남자 회원이 많아야 3-4명이거든요.
퍼: 남자회원들은 노래교실에서 어때요? 여자회원들에 비해서 좀 소극적일 것 같은데요?
박: 아휴 웬걸요. 남자회원들도 진짜 적극적이에요. 제가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회원들끼리 노래방 기계 틀어놓고 노래하고 그러거든요. 아저씨들도 얼마나 적극적으로 나와서 노래하고 그러는데요.
퍼: 보통 회원들의 연령대는 어느 정도예요?
박: 보통은 40-50대 우리 엄마들 또래니, 60-70대 우리 할머니들 또래죠. 보훈회관의 회원들은 거의 60-70대예요.
퍼: 회원 수는요?
박: 대충 한 60명 정도 되는 것 같아요. 많을 때는 한 80명 정도 되는 것 같고요.
퍼: 대충이요? 정확한 회원 수는 알 수 없나요?
박: 아, 그게 제가 지금 가르치는 곳 회원들은 공짜로 수업을 듣거든요. 그래서 그런지 회원들이 들락날락 해요. 그래서 정확한 회원 수를 알기는 힘들어요. 그날그날 나가는 악보 복사 매수를 통해서 대충 회원 수를 파악해요.
퍼: 다른 노래교실 보면 노래 교재도 따로 있던데, 강사님은 따로 교재를 사용 안 하시나 봐요?
박: 사실 그 교재들은 강사가 만들어서 회원들한테 돈 받고 파는 거예요. 그게 곧 강사의 수입원이 되기도 하고요. 그런데 우리 회원 분들은 돈 쓰는 것 자체에 대한 부담을 많이 느끼셔서 팔 수가 없어요. 그래서 그때그때 복사해서 나눠드리는 거예요.
퍼: 노래교실에서는 주로 어떤 노래를 가르치나요?
박: 아무래도 전통가요나 트로트가 주예요. 노래교실에서는 그날의 노래 선곡에 따라서 반 분위기가 정말 확확 달라지거든요. 저는 보통 한 주에 한 곡씩 신곡으로 진도를 나가요.
퍼: 최근에 나온 트로트 신곡이요?
박: 아, 그 신곡이라는 개념이 예전에 나왔던 노래들이라고 해도, 우리 회원들이 모르는 노래면 그게 곧 신곡이에요. 사실 전통가요는 이게 몇 십 년 전부터 사람들 입에서 입으로 기억된 노래들이거든요. 지금처럼 일주일, 심지어는 하루 만에 노래가 나왔다가 사라지는 현실하고는 좀 달라요.
퍼: 예를 들면요?
박: 목포의 눈물이라는 곡이 있어요. 1935년에 나온 곡이예요. 그런데 이 곡은 아직도 노래교실에서 정말 사랑받는 곡이거든요.
* 목포의 눈물 듣고 보러 가기 (작사: 문일석, 작곡: 손목인, 노래: 이난영)
퍼: 왜 그럴까요?
박: 노래 속에 담겨있는 의미 때문일 거예요. 이게 일제강점기 때의 노래이다 보니까, 그 가사 안에는 나라를 잃은 우리 민족의 서러움이 서려있거든요. 또 그렇게 시간이 흘러서 이 노래가 탄압받았던 전라도 사람들의 슬픔도 담아내고 그러니까.
퍼: 아, 세월이 지나면서 의미를 더해가는 그런 노래, 뭔가 마음이 찌릿하네요.
박: 나는 요즘 젊은 사람들이 우리네 전통 가요에 관심을 좀 더 가져보았으면 좋겠어요. 정말로 좋은 노래들이 많거든요. 음악에 대해서는 편견을 갖는 것만큼 나쁜 생각이 없는 것이니까.
퍼: 수업시간에 재미있는 일도 많겠어요.
박: 제가 가르치는 회원들 연령대가 아무래도 있다 보니까, 조금만 늘어져도 그게 금방 티가 나요. 할머니들이 워낙에 솔직하시거든요. 말이든 감정 표현이든. 앞에 나와서 노래하기 좋아하시는데, 시간이 한정적이니까 모두에게 기회가 돌아가는 것은 아니거든요. 그럼 부득이하게 몇 분만 시켜야하는데, 그럼 다른 분들은 정말로 삐쳐요.
퍼: 그럼 분위기가 좀 그렇지 않아요?
박: 그럴 때는 ‘아이고, 우리 엄마 또 삐치셨네, 다음에는 어머니부터 꼭 시켜드릴게.’ 이렇게 정말 애들 달래듯이 달래고 나서, 정말 다음 기회에 우선순위로 노래하게 해드리죠. 그럼 또 금방 좋아하시고. 한번은 제가 화장실에서 어머님들이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정말 한참 웃었어요.
퍼: 어떤 이야기였어요?
박: 어떤 한 어머님이 그 날 동대문에서 예쁜 점퍼 하나를 사서 입고 오셨나 봐요. 그 옷이 마음에 드셨는지, 세 네 분 정도의 어머님들이 그날로 바로 가서 똑같은 점퍼를 사서 입고 오신 거예요. 그러니까 원래 맨 처음에 그 옷을 입고 왔었던 어머님이 너무 다 똑같이 옷을 입고 다니니까, 정작 본인은 이 옷을 못 입고 다니겠다고 투정을 부리시더라고요.
퍼: 여고생들 같아요. 예쁜 게 있으면 따라서 사고 그러는.
박: 제 말이요, 정말 그렇다니까요.
1. 노래교실에서
퍼슨웹(이하 ‘퍼’): 저희 엄마는 왜 오전 10시 반만 되면 항상 노래교실에 가시는 걸까요?
박정숙(이하 ‘박’): 노래강사 앞에서 노래교실에 왜 가느냐고 물으면, 나는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하나? (웃음)
퍼: (웃음) 아니, 항상 궁금했어요. 엄마가 노래교실에서 뭐 하시는지, 그 곳에는 어떤 사람들이 있는지.
박: 노래교실은 조금 특별한 공간 같아요. 비단 노래만 하는 곳은 아니죠. 자신과 같은 또래들과 모여서 이야기도 하고, 함께 신나게 웃어젖히고, 그렇게 우리 엄마들이 남들 눈치 안 보고 스트레스를 마음껏 풀 수 있는 그런 곳이에요.
퍼: 사실 평범한 우리 엄마들이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공간이 그리 흔치 않은 것이 사실이죠. 그런데 왜 하필 항상 10시 반에 노래교실에 가는 것일까요?
박: 남편 회사 보내고, 아이들 학교 보낸 후, 정리하고 나면 딱 그 시간 즈음이 되거든요. 그게 우리 엄마들의 자유시간인데, 그 시간이 한편으로는 참 공허하거든요. 그래서 삼삼오오 모여서 이 노래교실로 오는 것이죠.
퍼: 노래교실이란 공간은 우리 엄마들의 놀이터이자 치유의 공간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박: 맞아요. 제 주변에 남편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고 나서,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아서 몇 년 동안 바깥출입도 삼가던 친구가 있어요. 한번은 친구가 하도 노래교실에 가자고 해서 못 이기는 척 따라갔대요. 그렇게 한 번 두 번 가다가 지금은 저랑 같이 공부까지 하고 있는데, 그때 자기가 노래교실에 안 갔더라면 우울증 때문에 정말 어떻게 됐을지도 모르겠다고 하더라고요.
퍼: 강사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니까, 노래교실에 대해서 더 궁금해지는데요? 지금 동대문구 보훈회관에서 강의하고 계시죠?
박: 네. 그런데 보훈회관이라서 그런지 아저씨들이 좀 많아요. 한 20명 정도? 보통 다른 곳을 남자 회원이 많아야 3-4명이거든요.
퍼: 남자회원들은 노래교실에서 어때요? 여자회원들에 비해서 좀 소극적일 것 같은데요?
박: 아휴 웬걸요. 남자회원들도 진짜 적극적이에요. 제가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회원들끼리 노래방 기계 틀어놓고 노래하고 그러거든요. 아저씨들도 얼마나 적극적으로 나와서 노래하고 그러는데요.
퍼: 보통 회원들의 연령대는 어느 정도예요?
박: 보통은 40-50대 우리 엄마들 또래니, 60-70대 우리 할머니들 또래죠. 보훈회관의 회원들은 거의 60-70대예요.
퍼: 회원 수는요?
박: 대충 한 60명 정도 되는 것 같아요. 많을 때는 한 80명 정도 되는 것 같고요.
퍼: 대충이요? 정확한 회원 수는 알 수 없나요?
박: 아, 그게 제가 지금 가르치는 곳 회원들은 공짜로 수업을 듣거든요. 그래서 그런지 회원들이 들락날락 해요. 그래서 정확한 회원 수를 알기는 힘들어요. 그날그날 나가는 악보 복사 매수를 통해서 대충 회원 수를 파악해요.
퍼: 다른 노래교실 보면 노래 교재도 따로 있던데, 강사님은 따로 교재를 사용 안 하시나 봐요?
박: 사실 그 교재들은 강사가 만들어서 회원들한테 돈 받고 파는 거예요. 그게 곧 강사의 수입원이 되기도 하고요. 그런데 우리 회원 분들은 돈 쓰는 것 자체에 대한 부담을 많이 느끼셔서 팔 수가 없어요. 그래서 그때그때 복사해서 나눠드리는 거예요.
퍼: 노래교실에서는 주로 어떤 노래를 가르치나요?
박: 아무래도 전통가요나 트로트가 주예요. 노래교실에서는 그날의 노래 선곡에 따라서 반 분위기가 정말 확확 달라지거든요. 저는 보통 한 주에 한 곡씩 신곡으로 진도를 나가요.
퍼: 최근에 나온 트로트 신곡이요?
박: 아, 그 신곡이라는 개념이 예전에 나왔던 노래들이라고 해도, 우리 회원들이 모르는 노래면 그게 곧 신곡이에요. 사실 전통가요는 이게 몇 십 년 전부터 사람들 입에서 입으로 기억된 노래들이거든요. 지금처럼 일주일, 심지어는 하루 만에 노래가 나왔다가 사라지는 현실하고는 좀 달라요.
퍼: 예를 들면요?
박: 목포의 눈물이라는 곡이 있어요. 1935년에 나온 곡이예요. 그런데 이 곡은 아직도 노래교실에서 정말 사랑받는 곡이거든요.
* 목포의 눈물 듣고 보러 가기 (작사: 문일석, 작곡: 손목인, 노래: 이난영)
퍼: 왜 그럴까요?
박: 노래 속에 담겨있는 의미 때문일 거예요. 이게 일제강점기 때의 노래이다 보니까, 그 가사 안에는 나라를 잃은 우리 민족의 서러움이 서려있거든요. 또 그렇게 시간이 흘러서 이 노래가 탄압받았던 전라도 사람들의 슬픔도 담아내고 그러니까.
퍼: 아, 세월이 지나면서 의미를 더해가는 그런 노래, 뭔가 마음이 찌릿하네요.
박: 나는 요즘 젊은 사람들이 우리네 전통 가요에 관심을 좀 더 가져보았으면 좋겠어요. 정말로 좋은 노래들이 많거든요. 음악에 대해서는 편견을 갖는 것만큼 나쁜 생각이 없는 것이니까.
퍼: 수업시간에 재미있는 일도 많겠어요.
박: 제가 가르치는 회원들 연령대가 아무래도 있다 보니까, 조금만 늘어져도 그게 금방 티가 나요. 할머니들이 워낙에 솔직하시거든요. 말이든 감정 표현이든. 앞에 나와서 노래하기 좋아하시는데, 시간이 한정적이니까 모두에게 기회가 돌아가는 것은 아니거든요. 그럼 부득이하게 몇 분만 시켜야하는데, 그럼 다른 분들은 정말로 삐쳐요.
퍼: 그럼 분위기가 좀 그렇지 않아요?
박: 그럴 때는 ‘아이고, 우리 엄마 또 삐치셨네, 다음에는 어머니부터 꼭 시켜드릴게.’ 이렇게 정말 애들 달래듯이 달래고 나서, 정말 다음 기회에 우선순위로 노래하게 해드리죠. 그럼 또 금방 좋아하시고. 한번은 제가 화장실에서 어머님들이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정말 한참 웃었어요.
퍼: 어떤 이야기였어요?
박: 어떤 한 어머님이 그 날 동대문에서 예쁜 점퍼 하나를 사서 입고 오셨나 봐요. 그 옷이 마음에 드셨는지, 세 네 분 정도의 어머님들이 그날로 바로 가서 똑같은 점퍼를 사서 입고 오신 거예요. 그러니까 원래 맨 처음에 그 옷을 입고 왔었던 어머님이 너무 다 똑같이 옷을 입고 다니니까, 정작 본인은 이 옷을 못 입고 다니겠다고 투정을 부리시더라고요.
퍼: 여고생들 같아요. 예쁜 게 있으면 따라서 사고 그러는.
박: 제 말이요, 정말 그렇다니까요.
2. 노래강사가
퍼: 조금 예민한 부분일 수도 있는데, 혹시 강사료는 얼마나 되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박: 수입이 많지는 않아요. 동사무소나 복지관에서 가르치는 경우는 시간당 보통 3만 원에서 5만 원 정도 받아요. 수강료를 회원들한테 직접 받아서 수익을 내는 강사들이 있는가 하면, 회원들이 공짜로 수업을 듣고 강사료는 담당기관에서 주는 식이죠.
퍼: 소위 말하는 스타 강사가 노래교실에도 있지 않나요?
박: 당연히 있죠. 노래교실 스타 강사들은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누려요. 일단 노래교실 규모가 다르죠. 한 수업 장에 400-500명 씩 모인다고 하더라고요. 그럼 자연스럽게 강사료도 올라가게 되고요.
퍼: 아, 그럼 스타강사들은 보통 얼마 정도를 받나요?
박: 듣기로 스타 강사의 경우는 시간 당 30-50만 원 정도까지 받는다고 하더라고요.
퍼: 거의 10배 정도 차이가 나네요.
박: 그 외에 가수 출신, 왜 유명한 강사들 있잖아요. 그분들은 아마 몇 백은 받을 거예요. 비교가 안 되죠.
퍼: 그럼 강사님도 나중에 나도 저런 스타강사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해보신 적 있으세요?
박: 잘 가르치고 싶다는 생각은 많이 하는데, 스타강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딱히 해본 적이 없어요. 지금 하고 있는 수업이나 더 노력해서 잘 해내고 싶어요.
퍼: 지금 강사님은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계세요?
박: 노래교실에서 수강생으로 수업을 들을 때는 잘 몰랐는데, 막상 가르치는 입장이 되어보니까 가르친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겠더라고요. 그래서 가르치는 사람이 연구를 하지 않는 것은 좀 무책임한 일인 것 같아요.
퍼: 맞아요. 정말 쉬운 일이 아니죠. 학생 때는 그냥 ‘홍시 맛이 나서 홍시라고 하였는데…’라고 하면 되지만, 선생님은 그 홍시 맛이 구체적으로 어떤 맛인지를 설명해서 학생들을 이해시켜야 하잖아요.
박: 맞아요, 맞아. 그래서 제가 수업을 시작하고도 쉬지 않고 여기저기 노래교실을 찾아다니고 있어요. 그 홍시 맛을 구체적으로, 또 쉽게 설명하고 싶어서요.
퍼: 다른 노래교실을 다니면서, 나 아닌 다른 강사들에게서 배울 점들이 있던가요?
박: 많죠. 아무래도 경력이 많이 된 사람들은 그 연륜이 느껴져요. 강사가 별로 특별하다고 할 것은 없는데, 굉장히 웃기고 입담이 좋더라고요. 거기에 엄마들이 까르르 넘어가고. 실제로 강의시간에 노래는 많이 안 하는데, 그래도 사람들이 많더라고요.
퍼: 친근함과 유머. 참 중요한 요소네요.
박: 그래서 그렇게 깨달은 날은 집에 와서 또 멘트나 유머에 대해서 생각해요. 또 하루는 제가 어디 농협에서 하는 수업을 들었는데, 거기는 유난히 30대에서 40대 초반의 젊은 엄마들이 많은 거예요.
퍼: 이유가 무엇이던가요?
박: 이 강사는 노래를 정말 잘 하더라고요. 그래서 젊은 엄마들이 순수하게 최신의 발라드 노래를 배우러 오더라고요. 그 외에도 어떤 강의에서는 강사가 제스처를 정말 자연스럽게 잘 하기에 아, 저런 것도 배우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퍼: 강사님이 생각하시기에 이 중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박: 나는 노래강사니까, 노래도 물론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내가 그냥 노래강사가 아니라, 노래교실의 노래강사잖아요. 그래서 무엇보다 친근함과 유머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 부분이 강점인 강사가 되고 싶어요.
퍼: 이렇게 바쁜 시간 쪼개어 여러 노래교실들을 다니며 노력한 결과가 만족스러우신가요?
박: 아무래도 지금은 완벽한 제 스타일의 강의라고 할 수 없으니까, 저에게 부족한 점이 무엇인지를 알게 해주는 이런 과정 자체에 저는 굉장히 만족해요.
퍼: 노래강사를 하려면 자격증이 필요한가요?
박: 네, 요즘은 필요해요. 예전에는 자격증이 없어도 이 일을 할 수가 있었는데, 요즘에는 자격증이 없으면 복지관 같은 곳에 이력서 넣어도 다 안 되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자격증이 필요하다기보다는 내가 이런 방향으로 봉사를 하려면 적어도 기본적인 지식을 알아야겠다고 생각해서 경희대학교 사회교육원에 가게 된 거예요.
퍼: 아, 그럼 사회교육원을 졸업하고 지금 강사가 되신 거예요?
박: 아니요, 저는 아직 졸업도 안 했고, 자격증도 없는데, 운이 참 좋았던, 특별한 경우예요. 갑자기 노래강사 자리 하나가 비어서, 그 자리에, 그러니까 지금 제가 강의를 하는 곳에, 교수님 추천으로 들어오게 됐거든요.
퍼: 아, 이런 경우가 특별히 운이 좋은 경우인가요?
박: 그렇죠! 보통은 졸업을 하고 자격증을 따고 나서도, 노인정이나 경로당에 어르신들 10-15분 모셔놓고 무료봉사부터 시작하거든요. 처음부터 강사료를 받고 시작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어요.
퍼: 아, 자격증을 따고 나서도 처음에는 무조건 무료봉사 강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 거예요?
박: 보통은 그래요.
퍼: 고속 승진한 기분이시겠어요. 강사님의 경우, 운이 좋았다고는 해도 실력이 어느 정도 되셨으니까 추천을 받지 않았을까요? 사실 아무나 추천받는 것은 아니잖아요.
박: 그런가요? (웃음) 제가 사실은 지난 해 송년 모임 때 조금 저의 끼를 발산했었어요. 나가서 사회도 보고, 노래도 부르고. 제가 원래 학교 다닐 때부터, 왜 그 오락부장이라고 하나요? 학교 행사만 있으면 앞에서 마이크 잡고 그렇게 MC보는 일을 도맡아 했어요.
퍼: 그때부터 사람들 앞에 나서는 일을 할 운명이셨나 봐요.
박: 그러게요. 저는 그게 그렇게 재밌더라고요. 지금도 물론 변함은 없고요. 남들은 사람들 앞에 서면 떨린다던데, 저는 정말 소위 말하는 무대공포증이 없어요. 무대에 올라가면 저절로 그렇게 흥이 나고 그러더라고요.
퍼: 아주 타고난 무대 체질이시네요. 딱 이 일에 어울리는! 아무리 많은 사람들 앞이라도 떨지 않으세요?
박: 음… 그런 것 같아요. 많은 사람들 앞에 섰다고 막 긴장하고 그랬던 기억이 없어요. 작년 송년 모임 때도 앞에 나가서 행사 진행하고, 또 떡본 김에 제사지낸다고, 노래 솜씨도 뽐내고 그랬죠.
퍼: 그런 강사님의 모습을 교수님께서 알아보신 거군요.
박: 네, 그러셨대요. 그런데 처음에 이 노래강사 자리를 제안 받고는 조금 망설였어요. 내가 해도 될까 싶어서. 그랬더니, 교수님께서 이미 다 제 끼를 알아보셨다면서 저라면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추천하셨다고 하시더라고요.
퍼: 지금은 그 제안을 잘 받아들였다 싶으세요?
박: 네, 그래도 아직 많이 부족하죠. 그래서 교수님이 수업하는 노래교실 따라 다니면서 본 수업 전에, 무대 경험을 쌓기 위해서 사전 MC 일을 하기도 해요. 본 수업 시작하기 전에 보통 1시간에서 1시간 반 정도, 저희가 먼저 회원들하고 놀면서 분위기를 띄워놔요, 신나게!
퍼: 이렇게 일련의 과정들을 모두 거친 후에야 비로소 진정한 노래 강사가 될 수 있는 거군요. 생각보다 과정이 뭔가 체계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박: 아무래도 많은 사람들 앞에 서는 직업이고, 어설퍼 보이면 안 되니까요. 처음에는 회원들하고 강사들 사이에 기 싸움도 좀 있거든요. 거기에서 밀리지 않으려면 충분한 연습과 훈련 과정이 필요해요.
2. 노래강사가
퍼: 조금 예민한 부분일 수도 있는데, 혹시 강사료는 얼마나 되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박: 수입이 많지는 않아요. 동사무소나 복지관에서 가르치는 경우는 시간당 보통 3만 원에서 5만 원 정도 받아요. 수강료를 회원들한테 직접 받아서 수익을 내는 강사들이 있는가 하면, 회원들이 공짜로 수업을 듣고 강사료는 담당기관에서 주는 식이죠.
퍼: 소위 말하는 스타 강사가 노래교실에도 있지 않나요?
박: 당연히 있죠. 노래교실 스타 강사들은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누려요. 일단 노래교실 규모가 다르죠. 한 수업 장에 400-500명 씩 모인다고 하더라고요. 그럼 자연스럽게 강사료도 올라가게 되고요.
퍼: 아, 그럼 스타강사들은 보통 얼마 정도를 받나요?
박: 듣기로 스타 강사의 경우는 시간 당 30-50만 원 정도까지 받는다고 하더라고요.
퍼: 거의 10배 정도 차이가 나네요.
박: 그 외에 가수 출신, 왜 유명한 강사들 있잖아요. 그분들은 아마 몇 백은 받을 거예요. 비교가 안 되죠.
퍼: 그럼 강사님도 나중에 나도 저런 스타강사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해보신 적 있으세요?
박: 잘 가르치고 싶다는 생각은 많이 하는데, 스타강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딱히 해본 적이 없어요. 지금 하고 있는 수업이나 더 노력해서 잘 해내고 싶어요.
퍼: 지금 강사님은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계세요?
박: 노래교실에서 수강생으로 수업을 들을 때는 잘 몰랐는데, 막상 가르치는 입장이 되어보니까 가르친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겠더라고요. 그래서 가르치는 사람이 연구를 하지 않는 것은 좀 무책임한 일인 것 같아요.
퍼: 맞아요. 정말 쉬운 일이 아니죠. 학생 때는 그냥 ‘홍시 맛이 나서 홍시라고 하였는데…’라고 하면 되지만, 선생님은 그 홍시 맛이 구체적으로 어떤 맛인지를 설명해서 학생들을 이해시켜야 하잖아요.
박: 맞아요, 맞아. 그래서 제가 수업을 시작하고도 쉬지 않고 여기저기 노래교실을 찾아다니고 있어요. 그 홍시 맛을 구체적으로, 또 쉽게 설명하고 싶어서요.
퍼: 다른 노래교실을 다니면서, 나 아닌 다른 강사들에게서 배울 점들이 있던가요?
박: 많죠. 아무래도 경력이 많이 된 사람들은 그 연륜이 느껴져요. 강사가 별로 특별하다고 할 것은 없는데, 굉장히 웃기고 입담이 좋더라고요. 거기에 엄마들이 까르르 넘어가고. 실제로 강의시간에 노래는 많이 안 하는데, 그래도 사람들이 많더라고요.
퍼: 친근함과 유머. 참 중요한 요소네요.
박: 그래서 그렇게 깨달은 날은 집에 와서 또 멘트나 유머에 대해서 생각해요. 또 하루는 제가 어디 농협에서 하는 수업을 들었는데, 거기는 유난히 30대에서 40대 초반의 젊은 엄마들이 많은 거예요.
퍼: 이유가 무엇이던가요?
박: 이 강사는 노래를 정말 잘 하더라고요. 그래서 젊은 엄마들이 순수하게 최신의 발라드 노래를 배우러 오더라고요. 그 외에도 어떤 강의에서는 강사가 제스처를 정말 자연스럽게 잘 하기에 아, 저런 것도 배우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퍼: 강사님이 생각하시기에 이 중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박: 나는 노래강사니까, 노래도 물론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내가 그냥 노래강사가 아니라, 노래교실의 노래강사잖아요. 그래서 무엇보다 친근함과 유머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 부분이 강점인 강사가 되고 싶어요.
퍼: 이렇게 바쁜 시간 쪼개어 여러 노래교실들을 다니며 노력한 결과가 만족스러우신가요?
박: 아무래도 지금은 완벽한 제 스타일의 강의라고 할 수 없으니까, 저에게 부족한 점이 무엇인지를 알게 해주는 이런 과정 자체에 저는 굉장히 만족해요.
퍼: 노래강사를 하려면 자격증이 필요한가요?
박: 네, 요즘은 필요해요. 예전에는 자격증이 없어도 이 일을 할 수가 있었는데, 요즘에는 자격증이 없으면 복지관 같은 곳에 이력서 넣어도 다 안 되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자격증이 필요하다기보다는 내가 이런 방향으로 봉사를 하려면 적어도 기본적인 지식을 알아야겠다고 생각해서 경희대학교 사회교육원에 가게 된 거예요.
퍼: 아, 그럼 사회교육원을 졸업하고 지금 강사가 되신 거예요?
박: 아니요, 저는 아직 졸업도 안 했고, 자격증도 없는데, 운이 참 좋았던, 특별한 경우예요. 갑자기 노래강사 자리 하나가 비어서, 그 자리에, 그러니까 지금 제가 강의를 하는 곳에, 교수님 추천으로 들어오게 됐거든요.
퍼: 아, 이런 경우가 특별히 운이 좋은 경우인가요?
박: 그렇죠! 보통은 졸업을 하고 자격증을 따고 나서도, 노인정이나 경로당에 어르신들 10-15분 모셔놓고 무료봉사부터 시작하거든요. 처음부터 강사료를 받고 시작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어요.
퍼: 아, 자격증을 따고 나서도 처음에는 무조건 무료봉사 강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 거예요?
박: 보통은 그래요.
퍼: 고속 승진한 기분이시겠어요. 강사님의 경우, 운이 좋았다고는 해도 실력이 어느 정도 되셨으니까 추천을 받지 않았을까요? 사실 아무나 추천받는 것은 아니잖아요.
박: 그런가요? (웃음) 제가 사실은 지난 해 송년 모임 때 조금 저의 끼를 발산했었어요. 나가서 사회도 보고, 노래도 부르고. 제가 원래 학교 다닐 때부터, 왜 그 오락부장이라고 하나요? 학교 행사만 있으면 앞에서 마이크 잡고 그렇게 MC보는 일을 도맡아 했어요.
퍼: 그때부터 사람들 앞에 나서는 일을 할 운명이셨나 봐요.
박: 그러게요. 저는 그게 그렇게 재밌더라고요. 지금도 물론 변함은 없고요. 남들은 사람들 앞에 서면 떨린다던데, 저는 정말 소위 말하는 무대공포증이 없어요. 무대에 올라가면 저절로 그렇게 흥이 나고 그러더라고요.
퍼: 아주 타고난 무대 체질이시네요. 딱 이 일에 어울리는! 아무리 많은 사람들 앞이라도 떨지 않으세요?
박: 음… 그런 것 같아요. 많은 사람들 앞에 섰다고 막 긴장하고 그랬던 기억이 없어요. 작년 송년 모임 때도 앞에 나가서 행사 진행하고, 또 떡본 김에 제사지낸다고, 노래 솜씨도 뽐내고 그랬죠.
퍼: 그런 강사님의 모습을 교수님께서 알아보신 거군요.
박: 네, 그러셨대요. 그런데 처음에 이 노래강사 자리를 제안 받고는 조금 망설였어요. 내가 해도 될까 싶어서. 그랬더니, 교수님께서 이미 다 제 끼를 알아보셨다면서 저라면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추천하셨다고 하시더라고요.
퍼: 지금은 그 제안을 잘 받아들였다 싶으세요?
박: 네, 그래도 아직 많이 부족하죠. 그래서 교수님이 수업하는 노래교실 따라 다니면서 본 수업 전에, 무대 경험을 쌓기 위해서 사전 MC 일을 하기도 해요. 본 수업 시작하기 전에 보통 1시간에서 1시간 반 정도, 저희가 먼저 회원들하고 놀면서 분위기를 띄워놔요, 신나게!
퍼: 이렇게 일련의 과정들을 모두 거친 후에야 비로소 진정한 노래 강사가 될 수 있는 거군요. 생각보다 과정이 뭔가 체계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박: 아무래도 많은 사람들 앞에 서는 직업이고, 어설퍼 보이면 안 되니까요. 처음에는 회원들하고 강사들 사이에 기 싸움도 좀 있거든요. 거기에서 밀리지 않으려면 충분한 연습과 훈련 과정이 필요해요.
3. 노래를
퍼: 한국 사람들은 왜 그렇게 노래를 좋아하는 것일까요?
박: 왜 집안에도 옛날부터 내려오는 가풍이라는 것이 있잖아요. 그 집안의 정서라고 할까. 노래도 마찬가지로 예로부터 내려오는 한국 사람들의 정서가 아닐까요?
퍼: 맞아요. 한국 사람들은 노는 자리에는 절대 빠지지 않죠. 다들 태어날 때부터 흥(興)의 기운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 같아요.
박: 맞아요. 저도 젊은 시절에는 정말 한 흥(興)했었죠. 저는 그냥 음악만 나오면 그냥 좋아서 몸을 흔들어댔어요. 그게 설사 길거리라고 해도, 몸이 근질거려서 남들 안 볼 때 한번이라도 춤 한번 추고 지나가고 그랬어요.
퍼: 음악보다는 춤에 더 소질이 있으셨던 거 아니에요?
박: 아니요, 저는 저를 춤추게 하는 그 음악이 참 좋았어요. 더 젊었을 때는 나이트를 가면 음악에 몸을 맡긴 채로 정말 반 미친 사람처럼 놀았어요. 어떤 일을 하든지 최선을 다해야 하잖아요. (웃음)
퍼: 그렇죠. 원래 좀 적극적인 성격의 소유자이신 것 같아요. 그런 강사님도 처음 수업하셨던 날, 긴장했었나요?
박: 사실 저는 워낙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을 좋아하니까 실수도 잘 안 할 것 같고 그랬어요. 그런데 웬걸요, 처음에는 실수도 하고 그랬어요. 수업시간에 사용하는 반주기가 있는데, 조작법이 좀 복잡해요. 그래서 제가 엉뚱한 버튼 눌러서 노래가 끊기기도 하고, 다른 노래가 나오기도 하고 그랬어요.
퍼: 당황스럽지 않으셨어요?
박: 노래수업은 분위기의 흐름이 상당히 중요하거든요. 그 흐름이 끊기면 안 좋아요. 그러니 당연히 당황스러웠죠. 그래도 그럴 때는 당황한 티를 내지 않고, 우스갯소리로 부드럽게 넘어가야 해요. “아이고야, 이 기계도 우리가 하도 써대니까 힘이 들어서 이러나 보다.” 뭐 이런 식으로요. (웃음)
퍼: 직접 경험하고 부딪히면서 내가 스스로 느낄 때 가장 빠르고 정확하게 개선이 되는 것 같아요.
박: 음… 나이가 드니까 눈이 좀 침침해지잖아요. 그래서 악보에 나와 있는 표시들이 잘 안 보여요. 박자 표시도 그렇고. 첫 날은 뭣 모르고 그냥 갔다가 안 보여서 혼났어요. 그래서 또 바로 집에 와서 노란 형광펜으로 표시해 놓고 그랬어요.
퍼: 뭐든 어떤 일을 새로 시작할 때에는 보통 때의 2-3배의 에너지가 필요한 것 같아요.
박: 새로운 일을 접할 때에는 아무래도 신경이 더 쓰이니까, 긴장도 하고. 그래도 제가 워낙에 체력 하나는 타고 났거든요. 그래도 개중에는 좀 나은 편이었죠. 따로 체력 관리도 꾸준하게 하고요.
퍼: 어떻게 관리하시는데요?
박: 아, 매주 주말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산을 꼭 가요. 조금 덜 바쁠 때는 틈틈이 더 가고. 제가 등산 한 지가 한 20년 된 것 같아요. 워낙 젊었을 때부터 산을 좋아해서, 전국 100대 명산은 다 가본 것 같은데요?
퍼: 사실 어떤 일을 하든지 체력은 중요하죠. 그 체력을 유지하는 것도요. 왜 어른들이 고3한테 항상 하는 말이 있잖아요. 체력은 국력이다!(웃음)
박: (웃음) 하긴, 그건 정말 맞는 말이에요!
퍼: 그렇게 아무리 꾸준하게 체력을 관리하셔도, 요즘 생활이 힘들 때는 없으세요?
박: 아무래도 아직은 시작 단계이다 보니까, 이것저것 챙겨야할 것도 많고 그래서 힘이 들기는 들어요. 또 수업 외에는 기회가 될 때마다 노래봉사도 다니거든요. 여러 사람에게 제 즐거운 기운을 전달해줘야 하니까, 쏟아내는 에너지의 양이 상당하거든요.
퍼: 이 족발 많이 드셔야겠어요. 얼른 드세요.
박: (웃음) 목을 계속 써야하는 직업이다 보니까 어느 순간에 피로가 확 느껴지더라고요. 멘트하고 노래하고, 목이 쉴 사이가 없어요.
퍼: 따로 목 관리는 어떻게 하세요?
박: 수업이나 봉사활동을 마치고나면 되도록 목을 아끼죠. 말을 되도록 안 하고 쉬어줘요.
퍼: 그렇게 힘들 때에는, 이 일을 시작한 것에 대해서 후회하지 않으셨어요?
박: 처음에는 무대에서 내가 생각했던 부분을 100% 발휘하지는 못하겠더라고요. 경험도 부족하고. 그래서 내가 이 일을 잘 선택했는지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했었어요.
퍼: 아… 참 쉬운 일은 없는 것 같아요.
박: 제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친구가 그러더라고요. 지금 우리 나이에 그렇게 적극적으로 사는 네 모습이 참 보기 좋다고. 애들 키우면서 누구의 엄마가 아니라 박정숙으로 사는 네가 부럽다고.
퍼: 아.
박: 그 말을 들으니까, 갑자기 불끈 힘이 나더라고요. 솔직히 지금 제 나이에 제가 이렇게 노력하지 않고 그냥 집에만 틀어박혀 있었으면, 누가 저를 알아주겠어요. ‘선생님, 강사님’하면서 따르는 회원들도 고맙고.
퍼: 그래서 다시 힘을 내서 지금은 즐겁게 일을 하고 계신 거죠?
박: 어쨌든 이렇게 피곤하고 힘들어도, 제가 하고 싶어서 선택한 일이잖아요. 그래서 한편으로는 참 즐겁고 행복하고 그래요.
퍼: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보람을 느낄 수 있다면, 힘든 순간을 아무래도 잘 버텨낼 수 있는 것 같아요.
3. 노래를
퍼: 한국 사람들은 왜 그렇게 노래를 좋아하는 것일까요?
박: 왜 집안에도 옛날부터 내려오는 가풍이라는 것이 있잖아요. 그 집안의 정서라고 할까. 노래도 마찬가지로 예로부터 내려오는 한국 사람들의 정서가 아닐까요?
퍼: 맞아요. 한국 사람들은 노는 자리에는 절대 빠지지 않죠. 다들 태어날 때부터 흥(興)의 기운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 같아요.
박: 맞아요. 저도 젊은 시절에는 정말 한 흥(興)했었죠. 저는 그냥 음악만 나오면 그냥 좋아서 몸을 흔들어댔어요. 그게 설사 길거리라고 해도, 몸이 근질거려서 남들 안 볼 때 한번이라도 춤 한번 추고 지나가고 그랬어요.
퍼: 음악보다는 춤에 더 소질이 있으셨던 거 아니에요?
박: 아니요, 저는 저를 춤추게 하는 그 음악이 참 좋았어요. 더 젊었을 때는 나이트를 가면 음악에 몸을 맡긴 채로 정말 반 미친 사람처럼 놀았어요. 어떤 일을 하든지 최선을 다해야 하잖아요. (웃음)
퍼: 그렇죠. 원래 좀 적극적인 성격의 소유자이신 것 같아요. 그런 강사님도 처음 수업하셨던 날, 긴장했었나요?
박: 사실 저는 워낙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을 좋아하니까 실수도 잘 안 할 것 같고 그랬어요. 그런데 웬걸요, 처음에는 실수도 하고 그랬어요. 수업시간에 사용하는 반주기가 있는데, 조작법이 좀 복잡해요. 그래서 제가 엉뚱한 버튼 눌러서 노래가 끊기기도 하고, 다른 노래가 나오기도 하고 그랬어요.
퍼: 당황스럽지 않으셨어요?
박: 노래수업은 분위기의 흐름이 상당히 중요하거든요. 그 흐름이 끊기면 안 좋아요. 그러니 당연히 당황스러웠죠. 그래도 그럴 때는 당황한 티를 내지 않고, 우스갯소리로 부드럽게 넘어가야 해요. “아이고야, 이 기계도 우리가 하도 써대니까 힘이 들어서 이러나 보다.” 뭐 이런 식으로요. (웃음)
퍼: 직접 경험하고 부딪히면서 내가 스스로 느낄 때 가장 빠르고 정확하게 개선이 되는 것 같아요.
박: 음… 나이가 드니까 눈이 좀 침침해지잖아요. 그래서 악보에 나와 있는 표시들이 잘 안 보여요. 박자 표시도 그렇고. 첫 날은 뭣 모르고 그냥 갔다가 안 보여서 혼났어요. 그래서 또 바로 집에 와서 노란 형광펜으로 표시해 놓고 그랬어요.
퍼: 뭐든 어떤 일을 새로 시작할 때에는 보통 때의 2-3배의 에너지가 필요한 것 같아요.
박: 새로운 일을 접할 때에는 아무래도 신경이 더 쓰이니까, 긴장도 하고. 그래도 제가 워낙에 체력 하나는 타고 났거든요. 그래도 개중에는 좀 나은 편이었죠. 따로 체력 관리도 꾸준하게 하고요.
퍼: 어떻게 관리하시는데요?
박: 아, 매주 주말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산을 꼭 가요. 조금 덜 바쁠 때는 틈틈이 더 가고. 제가 등산 한 지가 한 20년 된 것 같아요. 워낙 젊었을 때부터 산을 좋아해서, 전국 100대 명산은 다 가본 것 같은데요?
퍼: 사실 어떤 일을 하든지 체력은 중요하죠. 그 체력을 유지하는 것도요. 왜 어른들이 고3한테 항상 하는 말이 있잖아요. 체력은 국력이다!(웃음)
박: (웃음) 하긴, 그건 정말 맞는 말이에요!
퍼: 그렇게 아무리 꾸준하게 체력을 관리하셔도, 요즘 생활이 힘들 때는 없으세요?
박: 아무래도 아직은 시작 단계이다 보니까, 이것저것 챙겨야할 것도 많고 그래서 힘이 들기는 들어요. 또 수업 외에는 기회가 될 때마다 노래봉사도 다니거든요. 여러 사람에게 제 즐거운 기운을 전달해줘야 하니까, 쏟아내는 에너지의 양이 상당하거든요.
퍼: 이 족발 많이 드셔야겠어요. 얼른 드세요.
박: (웃음) 목을 계속 써야하는 직업이다 보니까 어느 순간에 피로가 확 느껴지더라고요. 멘트하고 노래하고, 목이 쉴 사이가 없어요.
퍼: 따로 목 관리는 어떻게 하세요?
박: 수업이나 봉사활동을 마치고나면 되도록 목을 아끼죠. 말을 되도록 안 하고 쉬어줘요.
퍼: 그렇게 힘들 때에는, 이 일을 시작한 것에 대해서 후회하지 않으셨어요?
박: 처음에는 무대에서 내가 생각했던 부분을 100% 발휘하지는 못하겠더라고요. 경험도 부족하고. 그래서 내가 이 일을 잘 선택했는지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했었어요.
퍼: 아… 참 쉬운 일은 없는 것 같아요.
박: 제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친구가 그러더라고요. 지금 우리 나이에 그렇게 적극적으로 사는 네 모습이 참 보기 좋다고. 애들 키우면서 누구의 엄마가 아니라 박정숙으로 사는 네가 부럽다고.
퍼: 아.
박: 그 말을 들으니까, 갑자기 불끈 힘이 나더라고요. 솔직히 지금 제 나이에 제가 이렇게 노력하지 않고 그냥 집에만 틀어박혀 있었으면, 누가 저를 알아주겠어요. ‘선생님, 강사님’하면서 따르는 회원들도 고맙고.
퍼: 그래서 다시 힘을 내서 지금은 즐겁게 일을 하고 계신 거죠?
박: 어쨌든 이렇게 피곤하고 힘들어도, 제가 하고 싶어서 선택한 일이잖아요. 그래서 한편으로는 참 즐겁고 행복하고 그래요.
퍼: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보람을 느낄 수 있다면, 힘든 순간을 아무래도 잘 버텨낼 수 있는 것 같아요.
4. 부른다
퍼: 밖에서 힘들게 일을 하고 집에 들어가면, 아무래도 집안일까지 일일이 신경 쓰기가 좀 힘드시겠어요.
박: 사람이 지치니까, 아무래도 집안일을 예전같이 하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특히 저는 지금 청소를 등한시하고 있어요. 한번은 아는 언니가 집에 놀러왔는데, 집안 꼴이 이게 뭐냐고 그러더라고요. 원래 안 그랬던 사람이 왜 이 꼴을 해놓고 사냐고.
퍼: 이럴 때는 가족들의 도움이 절실하겠어요.
박: 가족들의 많은 협조가 필요하죠. 제가 청소는 안 해도 밥은 꼬박꼬박 잘 챙기거든요. 먹는 것은 잘 먹여야 한다는 주의라서. 그 외에는 가족들이 많이 도와줘요. 제가 아들만 둘인데, 이럴 때 보니까 제가 애들 습관을 어렸을 때부터 잘 들여놨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퍼: 습관을 어떻게 들여놓으셨는데요?
박: 말하자면, 우리 집에서는 뭐든지 셀프에요.
퍼: ♬자기의 일은 스스로 하자, 알아서 척척척♬ 뭐, 이런 노래와 같은 상황이네요.
박: (웃음) 맞아요. 저는 우리 애들 초등학생 때부터 실내화를 빨아준 적이 없어요. 각자 알아서 실내화를 빨아서 다녔죠. 제가 그렇게 교육을 시켰어요. 왜 시집살이도 당해본 사람이 더 잘 시킨다고 하잖아요. 제가 어렸을 때, 그렇게 배우면서 자랐거든요.
퍼: 자식들은 그렇다고 해도, 남편 분께서는 이 일을 반대하거나 하시지는 않았어요?
박: 전혀요. 우리 남편은 정말이지 저의 가장 든든한 지원군이에요. 제가 어떤 일을 하든 적극적으로 지원해주는 편이에요.
퍼: 우와, 주변 분들이 강사님을 부러워하겠어요.
박: 대학교 졸업하고 나서도, 대학원 갈 생각이 있으면 가라면서 먼저 말을 꺼내주더라고요. 사실 결혼하고 애들 키우면서도 제가 꾸준히 어떤 새로운 일에 손을 댈 수 있었던 것은 남편의 공이 커요. 참 고마워요.
퍼: 대학교를 결혼하고 애들 키우면서 다니셨어요?
박: 제가 대학을 좀 늦은 나이에 입학했어요, 40대 중반에. 그때 학교에서 사물놀이 동아리를 시작했어요. 사실 제 원래 꿈은 봉사하면서 사는 것이었거든요. 그래서 사물놀이를 하면, 공연을 하면서 사람들한테 즐거움을 줄 수 있겠다 싶었어요.
퍼: 그래서 공연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봉사는 많이 하셨어요?
박: 그랬어요. 열심히 연습해서 중국도 가고, 거기가 어디였지? 아, 괌으로 해외 공연도 가고 그랬어요.
퍼: 동아리 활동도 적극적으로 하신 것을 보면, 대학 생활을 정말 제대로 즐기신 것 같아요.
박: 네, 정말 즐거웠어요! 동아리 활동도, 학과 공부도. 늦은 나이에 배우는 재미가 쏠쏠하더라고요. 아! 그리고 학교 다닐 때, 제가 동기들한테 음식도 엄청 해다가 날랐어요. 제가 워낙에 남한테 퍼주는 것을 좋아해요.
퍼: 주위에 보면 항상 그렇게 ‘남한테 퍼주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더라고요. 그건 아무래도 타고난 성격도 성격이지만, 자신도 모르게 어떤 사람이나 환경에 영향을 받는 것 같아요.
박: 음… 그러고 보면 항상 어렸을 때부터 우리 집에는 사람들이 끊이지를 않았어요. 할머니랑 어머니께서 항상 사람들에게 베푸시는 모습을 보고 자라서 그런 것 같아요. 우리 동네에서 우리 집을 거치지 않은 거지나 나그네가 없을 정도였거든요.
퍼: 그 사람들을 그렇게 다 머물렀다 가게 했을 정도라면, 어렸을 때 집안이 좀 부유한 편이셨나요?
박: 아니요, 뭐 그렇게 내세울 정도로 부자는 아니었어요. 그냥 어르신들 생각에,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을 남하고 조금 더 나누어 갖자는 마음이었던 것 같아요. 우리 어머니가 그렇게 하시니까, 그 생각을 제가 자연스럽게 이어받은 것 같아요.
퍼: 그렇게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나 할머니께서 남에게 베푸는 모습을 보면서 자라신 것이 지금 강사님께서 남을 위해 봉사하며 살고 싶다는 생각에 영향을 끼쳤을까요?
박: 상당 부분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죠. 제가 타고나기를 즐거운 사람으로 타고났는데, 이왕이면 그 기운을 남들하고 나누어 가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죠. 문득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긴다던데, 나는 내게 있는 어떤 부분을 세상에 남길 수 있을까를 생각했던 적이 있어요.
퍼: 그래서 어떤 결론을 얻으셨어요?
박: 그게 바로 봉사였어요. 저는 가죽이 아닌, ‘사람’을 남기고 싶었거든요. 나를 통해서 즐거워지는 사람들을요. 나는 나를 보고 즐거워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행복해지는 사람이라는 결론을 얻은 거죠.
퍼: 앞서도 말씀드렸지만, 정말 의외에요. 사실 저는 강사님이 지금 나이에 이 일에 도전을 하셨다는 것 자체가, 아마도 오랫동안 염원했던 꿈을 이루신 게 아닌가 싶었거든요.
박: 제 오랜 꿈은, 한 마디로 제가 가진 어떤 재능으로 다른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노래강사가 아니라, 내 주변에 아는 어르신들 칠순·팔순 잔치 때 앞에서 사회 보면서 즐거움을 드리는 레크리에이션 강사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퍼: 그럼 대학교를 졸업하고 본격적으로 그쪽 분야 공부를 시작했나요?
박: 아니요. 대학교 졸업하고 조금 있다가 부동산 일을 시작했어요. 제가 부동산에 대해서 잘 모르니까, 사기를 당했었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부동산에 대해서 뭐라도 배워볼 생각으로 한두 달만 하자, 그러고 갔는데.
퍼: 그랬는데요?
박: 일을 하다보니까 이 일도 나름대로 재미가 있는 거예요, 그렇게 흥미를 느끼고 한 3년을 일했어요. 일을 하다 보니까 주위사람들하고 정보도 공유하면서, 그런 식으로 또 제가 사람들한테 도움이 되기도 하더라고요.
퍼: 원래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것 자체를 즐기시는 편인가 봐요?
박: 네, 도전하지 않는 인생은 별로 재미가 없잖아요. 제가 도전하는 일마다 다 잘되는 것은 아닌데, 일단은 도전해 보는 거죠, 나중에 후회하느니. 그리고 일단 도전을 했다면, 최선을 다하는 거예요. 도전하는 것 그 자체로만은 의미가 없죠. 도전한 뒤에 내가 꾸준히 해나가는 과정도 중요하니까.
퍼: 그래서 그 도전의 과정이 꼭 성공이나 실패로 결론지어지는 것은 아니어도 괜찮다는 말씀이시죠?
박: 그렇죠. 내가 도전을 했고, 그 도전에 최선을 다했으면 된 것이죠. 사실 제가 학교 다닐 때, 우등상은 못 타도 개근상은 꼭 탔거든요! 개근상, 이거 은근히 받기 힘든 상이잖아요. (웃음)
퍼: (웃음) 맞아요. 개근상 받기 힘들죠. 말씀하신대로 도전에는 성실함의 책임이 뒤따르는 것 같아요.
4. 부른다
퍼: 밖에서 힘들게 일을 하고 집에 들어가면, 아무래도 집안일까지 일일이 신경 쓰기가 좀 힘드시겠어요.
박: 사람이 지치니까, 아무래도 집안일을 예전같이 하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특히 저는 지금 청소를 등한시하고 있어요. 한번은 아는 언니가 집에 놀러왔는데, 집안 꼴이 이게 뭐냐고 그러더라고요. 원래 안 그랬던 사람이 왜 이 꼴을 해놓고 사냐고.
퍼: 이럴 때는 가족들의 도움이 절실하겠어요.
박: 가족들의 많은 협조가 필요하죠. 제가 청소는 안 해도 밥은 꼬박꼬박 잘 챙기거든요. 먹는 것은 잘 먹여야 한다는 주의라서. 그 외에는 가족들이 많이 도와줘요. 제가 아들만 둘인데, 이럴 때 보니까 제가 애들 습관을 어렸을 때부터 잘 들여놨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퍼: 습관을 어떻게 들여놓으셨는데요?
박: 말하자면, 우리 집에서는 뭐든지 셀프에요.
퍼: ♬자기의 일은 스스로 하자, 알아서 척척척♬ 뭐, 이런 노래와 같은 상황이네요.
박: (웃음) 맞아요. 저는 우리 애들 초등학생 때부터 실내화를 빨아준 적이 없어요. 각자 알아서 실내화를 빨아서 다녔죠. 제가 그렇게 교육을 시켰어요. 왜 시집살이도 당해본 사람이 더 잘 시킨다고 하잖아요. 제가 어렸을 때, 그렇게 배우면서 자랐거든요.
퍼: 자식들은 그렇다고 해도, 남편 분께서는 이 일을 반대하거나 하시지는 않았어요?
박: 전혀요. 우리 남편은 정말이지 저의 가장 든든한 지원군이에요. 제가 어떤 일을 하든 적극적으로 지원해주는 편이에요.
퍼: 우와, 주변 분들이 강사님을 부러워하겠어요.
박: 대학교 졸업하고 나서도, 대학원 갈 생각이 있으면 가라면서 먼저 말을 꺼내주더라고요. 사실 결혼하고 애들 키우면서도 제가 꾸준히 어떤 새로운 일에 손을 댈 수 있었던 것은 남편의 공이 커요. 참 고마워요.
퍼: 대학교를 결혼하고 애들 키우면서 다니셨어요?
박: 제가 대학을 좀 늦은 나이에 입학했어요, 40대 중반에. 그때 학교에서 사물놀이 동아리를 시작했어요. 사실 제 원래 꿈은 봉사하면서 사는 것이었거든요. 그래서 사물놀이를 하면, 공연을 하면서 사람들한테 즐거움을 줄 수 있겠다 싶었어요.
퍼: 그래서 공연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봉사는 많이 하셨어요?
박: 그랬어요. 열심히 연습해서 중국도 가고, 거기가 어디였지? 아, 괌으로 해외 공연도 가고 그랬어요.
퍼: 동아리 활동도 적극적으로 하신 것을 보면, 대학 생활을 정말 제대로 즐기신 것 같아요.
박: 네, 정말 즐거웠어요! 동아리 활동도, 학과 공부도. 늦은 나이에 배우는 재미가 쏠쏠하더라고요. 아! 그리고 학교 다닐 때, 제가 동기들한테 음식도 엄청 해다가 날랐어요. 제가 워낙에 남한테 퍼주는 것을 좋아해요.
퍼: 주위에 보면 항상 그렇게 ‘남한테 퍼주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더라고요. 그건 아무래도 타고난 성격도 성격이지만, 자신도 모르게 어떤 사람이나 환경에 영향을 받는 것 같아요.
박: 음… 그러고 보면 항상 어렸을 때부터 우리 집에는 사람들이 끊이지를 않았어요. 할머니랑 어머니께서 항상 사람들에게 베푸시는 모습을 보고 자라서 그런 것 같아요. 우리 동네에서 우리 집을 거치지 않은 거지나 나그네가 없을 정도였거든요.
퍼: 그 사람들을 그렇게 다 머물렀다 가게 했을 정도라면, 어렸을 때 집안이 좀 부유한 편이셨나요?
박: 아니요, 뭐 그렇게 내세울 정도로 부자는 아니었어요. 그냥 어르신들 생각에,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을 남하고 조금 더 나누어 갖자는 마음이었던 것 같아요. 우리 어머니가 그렇게 하시니까, 그 생각을 제가 자연스럽게 이어받은 것 같아요.
퍼: 그렇게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나 할머니께서 남에게 베푸는 모습을 보면서 자라신 것이 지금 강사님께서 남을 위해 봉사하며 살고 싶다는 생각에 영향을 끼쳤을까요?
박: 상당 부분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죠. 제가 타고나기를 즐거운 사람으로 타고났는데, 이왕이면 그 기운을 남들하고 나누어 가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죠. 문득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긴다던데, 나는 내게 있는 어떤 부분을 세상에 남길 수 있을까를 생각했던 적이 있어요.
퍼: 그래서 어떤 결론을 얻으셨어요?
박: 그게 바로 봉사였어요. 저는 가죽이 아닌, ‘사람’을 남기고 싶었거든요. 나를 통해서 즐거워지는 사람들을요. 나는 나를 보고 즐거워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행복해지는 사람이라는 결론을 얻은 거죠.
퍼: 앞서도 말씀드렸지만, 정말 의외에요. 사실 저는 강사님이 지금 나이에 이 일에 도전을 하셨다는 것 자체가, 아마도 오랫동안 염원했던 꿈을 이루신 게 아닌가 싶었거든요.
박: 제 오랜 꿈은, 한 마디로 제가 가진 어떤 재능으로 다른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노래강사가 아니라, 내 주변에 아는 어르신들 칠순·팔순 잔치 때 앞에서 사회 보면서 즐거움을 드리는 레크리에이션 강사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퍼: 그럼 대학교를 졸업하고 본격적으로 그쪽 분야 공부를 시작했나요?
박: 아니요. 대학교 졸업하고 조금 있다가 부동산 일을 시작했어요. 제가 부동산에 대해서 잘 모르니까, 사기를 당했었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부동산에 대해서 뭐라도 배워볼 생각으로 한두 달만 하자, 그러고 갔는데.
퍼: 그랬는데요?
박: 일을 하다보니까 이 일도 나름대로 재미가 있는 거예요, 그렇게 흥미를 느끼고 한 3년을 일했어요. 일을 하다 보니까 주위사람들하고 정보도 공유하면서, 그런 식으로 또 제가 사람들한테 도움이 되기도 하더라고요.
퍼: 원래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것 자체를 즐기시는 편인가 봐요?
박: 네, 도전하지 않는 인생은 별로 재미가 없잖아요. 제가 도전하는 일마다 다 잘되는 것은 아닌데, 일단은 도전해 보는 거죠, 나중에 후회하느니. 그리고 일단 도전을 했다면, 최선을 다하는 거예요. 도전하는 것 그 자체로만은 의미가 없죠. 도전한 뒤에 내가 꾸준히 해나가는 과정도 중요하니까.
퍼: 그래서 그 도전의 과정이 꼭 성공이나 실패로 결론지어지는 것은 아니어도 괜찮다는 말씀이시죠?
박: 그렇죠. 내가 도전을 했고, 그 도전에 최선을 다했으면 된 것이죠. 사실 제가 학교 다닐 때, 우등상은 못 타도 개근상은 꼭 탔거든요! 개근상, 이거 은근히 받기 힘든 상이잖아요. (웃음)
퍼: (웃음) 맞아요. 개근상 받기 힘들죠. 말씀하신대로 도전에는 성실함의 책임이 뒤따르는 것 같아요.
5. 그리고 가르친다
퍼: 강사님은 요즘 화제인 오디션 프로그램인 ‘슈퍼스타’K나 ‘위대한 탄생’을 보신 적이 있나요?
박: 안 그래도 요즘 그런 프로그램 인기가 상당하더라고요. 본 적은 있죠.
퍼: 그럼 나중에라도 강사님의 열정을 이런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발산해 볼 생각은 없으세요? 그 시도 자체가 강사님에게는 또 하나의 도전으로 기억 될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박: 사실 요즘은 제가 벌여놓은 일을 수습하기도 벅차요. 그런데 혹시 또 모르죠, 시간이 좀 지나고 정신을 차리고 나면, 오디션에 나가겠다고 할지도요.
퍼: 가능성을 아예 배제해 놓은 건 아니라는 말씀이시죠?
박: 네, 언젠가는!
퍼: 그럼 그 때 제가 적극적으로 응원할게요. 문자 투표도 하고.
박: 약속했어요!
♬ 여자의 일생 ♬ _ 이미자
참을 수가 없도록 이 가슴이 아파도
여자이기 때문에 말 한마디 못하고
헤아릴 수 없는 설움 혼자 지닌 채
고달픈 인생길을 허덕이면서
아아 참아야 한다기에 눈물로 보냅니다
여자의 일생
견딜 수가 없도록 외로워도
슬퍼도 여자이기 때문에
참아야만 한다고 내 스스로 내 마음을
달래어 가며 비탈진 인생길을
허덕이면서 아아 참아야 한다기에
눈물로 보냅니다 여자의 일생
그녀는 노래가사를 스스로 먼저 곱씹어 이해하고, 그에 맞는 적절한 감정과 박자, 제스처까지 곁들여 전달하려고 노력하는 노래강사였다. 한곡, 한곡의 노래를 부르며 우리 함께 즐거워하자고, 그래서 또 행복해지자고 말하는 노래강사였다.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 속에서 오늘도 도전하는 삶을 살아가자고 말하는 그녀는 진정, 노래교실의 엔도르핀이었다. 그녀는 오늘도 우리 엄마에게 쿵짝 쿵짝 쿵짜짜 쿵짝 네 박자 속에 담겨있는 사랑과 이별, 눈물의 우리네 사연의 한 구절을 가르치고 있다.
5. 그리고 가르친다
퍼: 강사님은 요즘 화제인 오디션 프로그램인 ‘슈퍼스타’K나 ‘위대한 탄생’을 보신 적이 있나요?
박: 안 그래도 요즘 그런 프로그램 인기가 상당하더라고요. 본 적은 있죠.
퍼: 그럼 나중에라도 강사님의 열정을 이런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발산해 볼 생각은 없으세요? 그 시도 자체가 강사님에게는 또 하나의 도전으로 기억 될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박: 사실 요즘은 제가 벌여놓은 일을 수습하기도 벅차요. 그런데 혹시 또 모르죠, 시간이 좀 지나고 정신을 차리고 나면, 오디션에 나가겠다고 할지도요.
퍼: 가능성을 아예 배제해 놓은 건 아니라는 말씀이시죠?
박: 네, 언젠가는!
퍼: 그럼 그 때 제가 적극적으로 응원할게요. 문자 투표도 하고.
박: 약속했어요!
♬ 여자의 일생 ♬ _ 이미자
참을 수가 없도록 이 가슴이 아파도
여자이기 때문에 말 한마디 못하고
헤아릴 수 없는 설움 혼자 지닌 채
고달픈 인생길을 허덕이면서
아아 참아야 한다기에 눈물로 보냅니다
여자의 일생
견딜 수가 없도록 외로워도
슬퍼도 여자이기 때문에
참아야만 한다고 내 스스로 내 마음을
달래어 가며 비탈진 인생길을
허덕이면서 아아 참아야 한다기에
눈물로 보냅니다 여자의 일생
그녀는 노래가사를 스스로 먼저 곱씹어 이해하고, 그에 맞는 적절한 감정과 박자, 제스처까지 곁들여 전달하려고 노력하는 노래강사였다. 한곡, 한곡의 노래를 부르며 우리 함께 즐거워하자고, 그래서 또 행복해지자고 말하는 노래강사였다.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 속에서 오늘도 도전하는 삶을 살아가자고 말하는 그녀는 진정, 노래교실의 엔도르핀이었다. 그녀는 오늘도 우리 엄마에게 쿵짝 쿵짝 쿵짜짜 쿵짝 네 박자 속에 담겨있는 사랑과 이별, 눈물의 우리네 사연의 한 구절을 가르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