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하면 각자 머릿속에 무엇이 떠오를까? 바다? 바람? 돌? 한라산? 귤? 야자수? 올레길? 내가 좋아하는 제주의 것들이다. 제주 특유의 파랑 바다를 보고 있으면 너덜너덜해진 마음에 기운이 스며들었고, 특유의 찰진 바람을 실컷 맞고 나면 그 순간만이라도, 살아간다는 게 두렵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제주도를 좋아했고, 여행했고, 가고 싶다는 말을 늘 입에 달고 살았다. 그리고 2010년 11월, 결국 제주도민이 되었다.
제주도민이 되어 만난 제주 토박이들은 하늘을 잘 쳐다보지 않았다. 좀 무덤덤하다고 했다. 그들에겐 제주도가 쉬러 오는 곳, 여행 오는 곳이 아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제주도민들은 제주도에서 돈을 벌고 공부를 한다. 실직도 하고 좋은 학교에 가기 위해 경쟁도 한다. 더군다나 관광과 농업이 주업인 제주 섬인지라 일자리 수는 적고 종류는 단조로우며 주 6일 근무가 태반이면서도 월급 수준은 열악하다. 주변 자연이 아름답다고 해서 저절로 배부르지도, 등 따습지도 않다. 좌절을 겪지 않을 수도 없으며 아픈 순간이 순식간에 괜찮아지는 것도 아니다.
나 역시 오래지 않아 진짜 제주도민이 되어야 했다. 제주도의 푸른 자연만을 생각하며, 그 이름을 들으면 무조건 ‘설렘 모드’가 되던 여행자가 아니라 먹고 살기 위해 일을 해야 했고 크고 작은 갈등을 겪어야 했다. 때문에 육지의 일상이 그랬듯, 힘들면 위로가 되고 답답하면 해소할 수 있고 나를 기쁘고 즐겁게 해줄 수 있는 친구들과 장소들이 필요했다. 비로소 바다와 하늘을 보러 다니던 여행자 시절, 관심 가져본 적 없던 ‘다른 제주도’, 아니 이제는 ‘우리 집’이 된 이곳의 주변이 궁금해졌다.
그렇게 만난 곳이 ‘간드락 소극장’이다. ‘간드락’은 제주시 아라2동 일부의 옛 지명으로 지금까지도 마을 이름으로 사용되고 있다. 간드락 마을 입구, 새로 지어진 건물들 뒤편에 작은 집이 하나 숨어있다. 마당 건너 작은 집 문 위 항아리들에 하얀 색 페인트로 휘갈겨 쓴 듯한 ‘간’, ‘드’, ‘락’, ‘소’, ‘극’, ‘장’.
2004년 개관하여 7년째 계속 그 자리를 지키며 창작극, 인디밴드 콘서트, 어린이극, 창작 워크숍, 청소년 프리마켓 등 다양한 활동을 매개로 무대 안에서, 밖에서 제주 사람들을 만나고 있는 그곳. 이들은 왜 소극장이라는 방식을 통해 제주 사람들과 만나고 싶었을까? 왜 그 자리를 지켜가고 있는 걸까?
제주 토박이인 오순희 대표는 문화 예술 관련 일을 전업으로 삼고 있던 전문가가 아니었다. 지난 십여 년 간, 친동생 오경헌 씨가 이끄는 문화 집단 테러J(자파리 연구소)가 제주에서 벌이는 거리 예술제며 거리 연극 등의 활동을 뒤에서 도와오던 그녀가 지난해부터 극장 운영의 전면에 나서게 되었다. 오순희 대표(@ohora44)와 함께 ‘간드락 소극장’에 대해, 제주 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 보았다.
제주도의 테러J
퍼슨웹(이하 ‘퍼’) : 사실 제주도에 소극장이 있을 거란 생각을 못 해봤었어요. 부끄럽지만 아예 있는지 없는지 궁금해해본 적이 없어요. 어떻게 소극장을 시작하게 된 건가요?
오순희(이하 ‘오’) : 우리 제주도민들이 가장 부딪히는 게 좋은 공연이 있고 관심도 있는데 이것들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다는 거예요. 제주도에는 오지 않으니까 서울로 가야하죠.
퍼 : 제주에 온 지 몇 개월밖에 안됐지만 공감이 가요. 3월초에 서울 다니러 가기 전, 제일 먼저 했던 게 공연 예매예요.
오 : 서울 가려면 왕복 비행기표에 입장료, 밥 값, 또 그날 못 내려오면 잠잘 데도 필요하고… 기본적으로 돈이 몇 십 만원이 없어지잖아요. 근데 또 이게 한 번씩 이렇게 보고 온다고 해도 갈증에 갈증만 더 할 뿐이지, 쉽게 해갈이 되지가 않지요.
퍼 : 그러게요. 공연은 신나게 한 번 보고 나면 자꾸 보고 싶어지던데.
오 : 벌써 이게 십 년도 훨씬 전의 일인데 ‘테러J’라고 이 친구가 3만 원짜리 공연 보려고 비행기 타고 서울로 직접 갔었어요. 근데 갑자기 사전공지도 없이 그날 공연이 취소됐다고 내일 오라고만 하더라는 거예요.
퍼 : 황당했겠네요.
오 : 서울 사람들이야 내일 또 보러 오고 그럴 수 있을 테지만 멀리서 올라갔던 사람은 어떻게 하겠어요. 이쪽 입장을 전혀 생각해주질 않는 거예요. 일방적으로 통보하고 마는 방식에 얘가 너무 화가 나버린 거죠. 문화적으로 소외된 지역에 산다고 왜 이렇게 한 번 더 소외를 받아야 하나.
퍼 : 지방에서 온 사람들은 그날이 유일한 기회일 수도 있는 건데 말예요. 물론 사는 곳에 그런 공연이 있다면 굳이 서울까지 오지 않아도 되는 거고.
오 : 그게 계기가 돼서 99년인가 98년인가, 젊은이들 세 명이 모여서 문화 단체를 만들었어요. ‘우리 스스로가 정체되어 있는 제주 문화에 테러를 하자!’ 하면서. 그래서 테러 제주, ‘테러J’ 가 되었죠.
퍼 : 테러라는 단어에서 절실함이 느껴져요. ‘테러J’ 만든 분도 문화나 예술, 관련하여 일하시던 분이셨어요?
오 : 원래는 미술, 동양화를 전공한 친구예요. 또 영화* 쪽에도 관심이 있고.
* 독립 문화꾼 오경헌 “진짜 독립영화? 예산보다 상상력” 기사 보러 가기
퍼: 어떻게 아시는 분인데요?
오: 내 동생예요. 내 동생이라지만 개인적인 성향은 나도 잘 파악을 못하죠.
퍼 : 그렇구나. 하하하
오 : 우리 학교 다닐 때 기껏해야 제주도에서 볼 수 있는 게 미술전시회, 연극 정도였어요.
퍼 : 연극요? 당시엔 어떤 연극들을 했었나요?
오 : 옛날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라고 하면 그걸 약간 각색하거나 뭐, 거의 명작들, 고전 소설들, 번역 작품 위주로 극이 올라왔었죠. 근데 좀 화가 나기도 하고 속상하기도 해요.
퍼 : 어떤 부분이요?
오: 지금 봐도 그 당시랑 별 차이가 없다는 느낌이 들어서. 왜 이렇게들 발전을 안 할까. 제주 밖에 나가면 다양한 게 너무 많아서 놀라게 되거든요.
퍼 : 몇 십 년 전이랑 별 차이가 없다니. 그 정도로 정체되어 있을 줄은 몰랐어요.
오 : 지난번 간드락에서 <꿈꾸는 아이들>이라고 폐지를 이용해서 인형으로 이미지 극을 했었어요. 학교 연극부에서 활동하던 청소년 애들이 와서 이걸 보고 깜짝 놀란 거죠.
퍼 : 왜요?
오 : 그냥 대사로만 하는 게 연극의 전부가 아니란 걸 처음으로 알게 되었으니까요. 연극의 표현이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는데 접해보질 않았으니까 몰랐던 거지요.
퍼 : 드라마나 영화 같은 건 온라인을 통할 수 있지만 연극은 직접 눈으로 보는 건데, 접할 수 있는 기회 자체가 많이 없으니.
오 : 네. 그런 것들 보여주려고 ‘테러J’라는 팀이 10년을 넘게, 거리 공연, 거리 예술제, 거리 축제를 해왔죠. 거리에서 쉽게 할 수 있는 것들로 제주 시청 어울림 마당에서. 지나가는 사람들 한 사람만 봐줘도 좋다는 마음으로. 뭐 아무도 안 본다 해도 일단 내가 즐거우면 되는 거니깐 시작을 했어요.
퍼 : 아무리 취지가 좋다고 해도 자기가 좋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죠.
오 : 일단 내가 좋아서 했는데 거기에 같이 공감하는 사람이 하나씩 둘씩 늘어나면 얼마나 더 좋겠어요. 막말로 나쁜 짓 하는 것도 아니고요. 내가 굳이 원하지 않는다고 해도, 옆에서 누군가가 우리를 위하는 마음에 무언가를 열심히 하고 있단 건 감사한 일이지요.
퍼 : 뭐랄까. 모르는 사람도 좀 가깝고 살갑게 느껴지고, 다들 살아 숨 쉬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피부에 와 닿기도 해요.
오 : 이 친구들은 공연 안 할 때 육지 가서 다른 것들 보고 경험하고 공부하러 다녔어요. 제주도에 들어오는 게 없으니깐. 그 팀 멤버 3명이 무슨 예술 축제 있다 하면 가서 보고 하면서 계속 왔다 갔다 했죠. 또 갈 때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무턱대고 인사하고.
퍼 : 그렇군요.
오 : 그분들이랑 교류를 해야겠는데 방법이 없으니깐 자비 들여 무작정 계속 갔어요. 그렇게 몇 년 하다 보니 거기서도 ‘어? 쟤들 누구야? 당신 뭐하는 사람이야?’ 하게 된 거죠.
퍼 : 와, 대단하네요.
오 : 그때까진 하고 싶은 말이 쌓이기만 했었으니 기회가 생기면 어떻겠어요. 그냥 터지는 거죠. ‘저는 제주도에서 이렇게 저렇게 하고 있는 사람인데, 이런 거 해보려고 합니다.’하니깐 그분들도 좋은 생각 가지고 있다면서 흔쾌히 ‘우리가 가서 공연 해 줄게요.’ 그런 식으로 인연이 되었고요.
퍼 : 아. ‘테러J‘도 계속 업그레이드하고, 다른 공연 팀도 제주도에 오게 되고. 그러면서 거리 공연이 거리 축제, 예술제로 커진 거군요.
오 : 자기네가 간절했던 만큼 일이 계속 진행되었고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일이 커졌죠. 그러니깐 또 뭔가를 계속해서 할 수 있는 장소가 필요해지고. 거리에서 10년 넘게 하니깐 아무래도 민원이 생기기도 했고요.
간드락의 소극장
퍼 : 그렇게 간드락 소극장이 생겨난 거군요.
오 : 2004년에. 처음엔 우리 극장에 조명 장비 하나 없어서 다 빌려 썼어요. 여긴 진짜 다, 사람들의 마음으로 만들어진 곳이에요. 돈 주고 맡겨서 완벽하게 만들어진 곳이 전혀 아니죠. 조명도 인천에 있는 조명하는 친구가 좋은 마음에 해주고 가고. 좋은 일 한다면서 사람들이 하나씩 하나씩 채워줬어요.
퍼 : 저도 처음에 그런 느낌 받았었어요. 손으로 일일이 만진 듯한.
오 : 사람들이 여기 오면 독특한 분위기가 난다고들 하더라고요. 그 시간동안 사람이 정말 그렇게 정성을 들여서 만들어놓은 게 느껴지나 봐요. 제주도에서 가장 예쁜 소극장인 것 같다고 얘기해주는 사람도 있고요.
퍼 : 간드락이 지명이잖아요. 이곳에 자리 잡게 된 계기가 있어요?
오 : 우연이죠. 어릴 적에 집을 그리게 되면 가장 많이 그리는 게 아름다운 산 하나에, 빨간 삼각형 지붕에 굴뚝 하나 있어서 연기 폴폴 나고 하는 그림 많이 그리잖아요.
퍼 : 저도 그 그림 많이 그렸었는데. (웃음)
오 : 집이라면 이래야 한다는 어렸을 적부터의 느낌이 있어서 그런지 여기를 선호하게 된 거죠. 여기가 원래 교회 건물이었어요. 종교를 떠나서 ‘교회’ 하면 느껴지는 게 있잖아요. 십자가 하나 있는 건물, 편안하고 평화로운 느낌.
퍼 :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이름이 간드락 소극장이 되었군요.
오 : 원래 교회였기에 마당이 있는 건물이 된 거죠. 2007년에 마당에 데크를 깔았어요.
퍼 : 전 저 마당 바닥이 느낌이 참 좋더라고요.
오 : 원래는 시멘트 바닥이었어요. ‘테러J’가 목돈 들인 거죠. 예술축제에서 상금으로 삼천 만원이란 큰돈을 처음 받아서 거의 천만 원 들여서 했어요. 마당 만들어놓으니깐 애들이 너무 좋아해요.
퍼 : 저도 애들이 마당에서 신나서 노는 거 본 적 있어요. 저까지 덩달아 신나더라고요.
오 : 어린이집에서 애들 오면 마당에 막 발 구르면서 바닥에서 나는 소리 들으면서 좋아하고 하니깐, 선생님들이 여기로 소풍 와서 도시락 먹어도 되냐고 물어보기도 하고. 올 적마다 사람들이 이렇게 좋게 봐주고 표현해주고 하니깐 우리가 더 고맙죠.
퍼 : 서울은 ‘공연장’ 하면 지하로 내려가야 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건물이 거의 빌딩이니 마당도 없고. 여긴 마당에 나무 데크도 깔려있고, 삼각형 지붕도 있고. 또 벽돌로 된 작은 건물이다 보니 사람들이 따뜻한 정서를 느끼게 되는 것 같아요.
오 : 근데 또 한편으로 너무 깨끗한 건물만 보던 사람들은 오면 “여기 숨 쉴 수 있어요?” 하기도 한답니다.
퍼 : 아, 그런 사람도.
오 : 사람이 움직이면 먼지 생기는 게 당연하고, 연극할 땐 조명이 가까우니 먼지가 보이잖아요. 근데 어떤 사람들은 막 입을 틀어막아요. 환경이 너무 열악하다고 하면서.
퍼 : 간드락이 시내 중심에서 조금 떨어져 있어서 불편하다는 사람들도 있지 않나요?
오 : 시내 쪽으로 나오는 게 더 좋지 않겠냐는 사람들도 있어요. 물론 사람들이 필요하다고 하면 공간들도 변화를 줘야 하긴 하죠. 그런데 도심으로 나오라는 이유는 색다른 거, 새로운 흥밋거리를 찾아서라기보다는 이동성의 편리 때문인 것만 같아요.
퍼 : 그렇죠.
오 : 극장이라고 해서 사람들을 무조건 찾아가줄 필요는 없죠. 뭔가를 누리고 싶은 사람이 다가와주는 것도 필요하잖아요. 우리는 차라리 이렇게 좀 떨어져 있는 게 더 좋은 것 같아요.
퍼 : 도심이랑 좀 떨어져 있어서 오히려 좋은 점도 있죠?
오 : 공연 후의 여운이라고 할까요. 도심의 공연장에서는 공연이 끝나면 사람들은 원래의 그 시끌벅적한 도심의 분위기로 바로 다시 돌아가야 하잖아요. 그러면 자기가 변했다는 느낌을 알아채기가 힘들죠. 단지 그냥 공연 시간 동안만 감상에 젖어 있다가 공연장 문 나서자마자 그 여운이 사라져버리는 거죠.
퍼 : 맞아요. 여운. 그래서 그 벅차오르는 감상을 마저 풀어놓지 못하고 바로 다시 눌러 담아야 하고, 그러다가는 그냥 잊어버리고 말아요.
오 : 여긴 조금이라도 더 여유로우니까 자기 자신을 정화시킬 수 있는 여지도 그만큼 더 있지 않을까요? 또 개인적으로는 극장 홀에서 건물 유리창에 거울처럼 달이 비치는 거나 마당에 빗방울 튀기는 모습 보는 것도 좋죠. 혼자 보기 아까울 만큼.
퍼 : 와.
제주 섬의 육지, 육지의 제주 섬
퍼 : 주로 어떤 분들이 오세요? 제주도 사람들한테도 물어봐도 제주도에 소극장이 있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많더라고요.
오 : 작년까진 어린아이하고 부모님이 손잡고 오는 경우가 가장 많았죠. 공연 보러. 특히 자파리*들이 지금까지 가족 극 위주로 창작을 했었으니깐.
오 : 그 이외엔 아무래도 음악 하는 친구들이 왔었죠. ‘부스의 친구들’**이라고 제주도에도 인디레이블의 친구들이 있어요.
퍼 : ‘제주도에는 놀 곳이 없다, 여기는 재밌는 게 없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어요. 제가 만난 사람들 대부분이 젊은 대학생들이어서 더 그랬나 봐요. 전부들, 여길 떠나고 싶어 하는 거 같더라고요.
오 : 그건 여기 사람들이 입버릇처럼 하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어요. 제주도에 살고 있는 사람, 또 뭔가 욕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입버릇처럼 하는 얘기예요.
퍼 : 이 나라 자체가 서울이 다른 지역에 비해 너무 비대하게 크니까 더 그럴 수도 있고요. 근데 또 거꾸로 제주도 밖 사람들은 제주도에 약간 로망을 가지고 있거든요.
오 : 다만 제주도라는 이름이 붙어서, 똑 떨어져 있는 섬이라고 해서 사람들이 그런 로망을 더 키우는 거 같아요. 제주도가 곧 ‘이어도’가 되어버린 거죠. 외부에 제주도를 홍보하는 방식도 그렇잖아요. 제주도는 특별한 곳이라는 이미지를 만드니깐. 근데 그렇게 특별한 곳 아니거든요, 제주도가.
퍼 : 다른 지역이랑 특별히 다르지 않다는 말씀이세요?
오 : 그렇죠. 외부 사람들이야 주로 여행으로 이곳에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여기에는 늘 뭔가가 일어나고 있으리란 기대치도 있겠지만 실제론 그렇지가 않지요.
퍼 : 대표님은 육지로 나가고 싶다, 제주도가 너무 좁다, 이런 생각 안 해보셨어요?
오 : 막상 간다 한들 ‘내가 꼭 서울에 가야만 뭘 할 수 있는 건가?’ 하면 그건 또 아니거든요. 여기서 움직여보면 그 나름대로 증명되는 부분들도 있고요.
퍼 : 저나 제 친구들은 고향이 거의 서울이에요. 다들 가끔씩 서울이 싫다, 뜨고 싶다 하면서도 잘 벗어나질 못 해요. 그럴수록 자연에 대한 향수나 환상을 품는 거 같아요.
오 : 그건 어디까지나 도시 입장에서 보기 때문이죠. 자연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 그 사람들한테는 도시에 가서 더 많은 걸 배우고 싶다든지, 가서 꿈을 이루고 싶다든지 하는 도시에 대한 동경이 있을 수밖에 없어요.
퍼 : 여기 와서 만난 분들 중에 육지에 가서 몇 년 살다가 돌아왔다는 분들도 많더라고요.
오 : 그렇죠. 막상 나가본 사람들도 ‘서울 가니까 지친다.’, ‘가서 해보니 별 거 아니다.’ 얘기하는 사람도 많아요. 대신 이곳은 언제나 나를 위해서 그대로 있어 주는 곳이라는 생각을 하죠. 도시 사람들한테도 점점 그런 식으로 제주도가 인식되는 게 아닌가 싶어요.
퍼 : 그렇죠.
오 : ‘제주도’ 하면 ‘도시’와는 반대되는 의미에서 ‘자연’이랄까, ‘쉬러 오는 곳’이라는 느낌을 받는 사람들이 많긴 하죠. 회귀본능이라고 하잖아요. 사람도 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에 자연으로 갈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 거죠.
퍼 : 반면 요즘 제주도로 이사 오는 사람들이 좀 많아진 거 같아요. 제가 이사를 와서 그런 경우들이 유독 눈에 더 띄는 건가 싶기도 하지만요.
오 : 근데 의외로 사람들이 막상 그렇게 동경해서 와놓고도 ‘와보니깐 별 거 아니네.’, ‘제주도 왜 이렇게 됐어?’ 이런 소리들도 나와요. 자기들이 원하는 모습이 있었던 거죠. 제주도가 그들이 원하는 모든 면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닌데 말예요.
퍼 : 도시는 다양한 사람들이 섞인 ‘샐러드 볼’ 같은 공간이 되어야 한다고 하면 제주도처럼 좀 더 자연에 더 가까운 곳들은 사람이 점점 걸러지며 일부만 남는 게 맞는 거 같아요.
오 : 뭐든 다 소화해내고 갖추어놓고 있어야 하는 도시랑은 달라야 이 공간이 가진 자연적 매력이 지켜질 수 있겠죠.
퍼 : 기획하거나 연극 제작할 때 이곳이 ‘제주도’라는 걸 많이 의식하는 편이세요?
오 : 그렇게 하면 좋겠다고 생각은 좀 해요. 요즘 들어서 제주도에 외국인들도 많이 들어오고 외부에서 들어오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제주에 대한 환상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닌데 생활면에선 동떨어진 부분이 많아서. 제주만이 가지고 있는 생활의 모습 같은 게 녹아있었음 좋겠어요.
퍼 : 외지인들이 잘 보지 못하는 ‘제주도 사람들이 살아온, 살아가는 일상’ 같은 걸 연극으로 보여주고 싶으신 거예요? 자파리가 해왔던 이야기도 그런 거죠?
오 : 삶의 방식이나 사람들 자체도 제주도만의 독특한 부분이 있을 텐데 그걸 일일이 다 말로 설명해줄 수도, 체험해볼 수도 없으니까 연극으로 녹여 보여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지요.
퍼 : 그런 부분이 작품으로 자연스럽게 전해지면 이해가 더 쉬울 거 같아요.
오 : ‘제주도는 이런 곳이구나.’ 생각해볼 수도 있고 더 호기심이 생기기도 하고. 좀 더 내밀하게 알 수 있겠지요.
퍼: 정말 그렇겠어요.
오: 그런 부분에서는 ‘제주도적’인 것을 생각하지만, 때에 따라선 굳이 제주도적인 것만 가지고 갈 필요는 없기도 하고요.
퍼 : 어떤 이유에서요?
오 : 시대를 무시해선 안 되니까요. 자라는 아이들한테는 다양한 정보나 경험을 접할 수 있게끔 도와주고 싶죠. 아무래도 제주도 아이들은 도시 아이들에 비해 경험이 모자랄 수 있잖아요. 성인이 돼서 갑자기 턱 부딪히게 되면 받아들이는데 힘들 수도 있으니깐 그런 차원에선 제주도에서 벗어날 필요도 있다고 봐요.
공간space, ‘소극장’
퍼 : 제주도에서든 어디에서든 ‘소극장’이라는 공간이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일까요?
오 : 내가 원하는 걸 채워주고 욕구를 풀어갈 수 있는 장소. 내가 음악을 좋아한다고 하면 좋아하는 음악을, 연극을 좋아하면 내 취향의 연극을 만나면서. 사람들보다 그 공간이 먼저 사람들의 욕구를 알고 그런 기회를 가까이서 마련해줄 수 있는?
퍼 : 현실은 어떤가요?
오: 소극장 숫자도 적지만 외부에서 제주도로 들어오는 공연도 제한적이지요. 자체적으로 제작되고 상연되는 공연도 적고.
퍼: 소극장 공연을 바라보는 제주도 사람들의 인식은 어때요?
오 : 사람들의 생각이 이중적이란 생각도 드는 게 사실이에요. 특히 소극장 입장에선. 왜냐면 똑같은 공연이라도 규모에 따라서 작품이 달라지게 마련인데 사람들이 그런 점은 감안하지 않고 작품을 가짜라고 해버릴 때도 있어요. 특히 소극장, 그것도 제주도라고 하면 그 지역 사람들이 먼저 업신여기기도 하고요.
퍼 : 그렇군요.
오 : 다른 데는 몰라도, 제주도 사람들은 이런 식일 때가 많아요. 아무래도 문화행사들 대부분이 서울을 통해 들어오니깐 제주도는 흉내 내기밖에 더 하겠냐는 식. ‘진짜 서울 거 아니면 여기 건 뻔하다’ 하는 전반적인 인식이 있지요.
퍼 : 그래서 이런 극장 문화가 제주도에서 약한 건가요?
오 : 그러다보니 기존 연극을 하던 분들의 자체 창작이 많지도 않고요. 그리고 또 창작을 했다거나 그 작품이 훌륭하다고 하더라도 제주도 사람들이 TV나 신문 같은 주요한 매체를 통하지 않으면 잘 모르기도 해요, 직접 노력해서 찾아보는 것에 익숙하지도 않고.
퍼 : 좀 답답하시기도 하실 듯…
오 : “너 문화생활 어떻게 해?”라고 하면 의기양양하게, “나? 방학 때는 서울 가서 뭐 좀 보고 와, 여긴 뭐가 없잖아”라고 대답해요. 그런데 막상 가서도 별로 보고 온 게 없죠. 여기에서처럼 뭘 딱히 알아보고, 능동적으로 알아보고 간 게 아니니까요.
퍼 : 그렇죠.
오 : 비행기 타고 서울에 가서, 서울에서도 문화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는 홍대, 대학로 뭐 이런 데에 단지 다녀왔다는 사실만으로 막연하게 동경의 대상이 되어버리기도 하고요.
퍼 : 그냥 단지 내가 뭐 해봤다, 자랑거리밖에 안되겠네요.
오 : 그게 항상 반복 되죠 여태. ‘우리 제주도에서 이런 거 합니다.’ 하면 알아주질 않지요.
퍼 : 어떻게 해야 변할 수 있을까요?
오 : 지금 간드락 소극장을 처음 만들었던 자파리 연구소가 이제 해외로 나가고 있어요.* 한 번 나가는 게 아니라 3년, 4년 계속해서. 그러니깐 이제 사람들이 좀 알아주기 시작하는 거예요.
* 제주 극단 ‘자파리’ 일본서 ‘조용한 한류’ 기사 보러 가기
퍼 : 처음엔 등한시하다가 외국에서 주목하니깐 그러는 건가요?
오 : 자기들이 필요할 때 찾으면 당연히 있어야 할 거라 생각했던 공연 팀이 그 자리에 없으니깐 이상한 거죠. 어디 갔냐고 물어오면 해외에 공연 갔다고, 잠깐이 아니라 한 달 두 달 씩, 벌써 몇 년 째 공연 갔었다고 대답해주죠.
퍼 : 그러면 사람들이 좀 달리 보겠어요.
오 : 이젠 거꾸로 인정을 해주고 아는 척 하게 되죠. “그렇게 훌륭한 거였어요?” 하면서 순식간에 대단한 팀이 되어버리면서.
퍼 : 정말 야속하네요.
오 : 야속하죠. 가까이 있을 땐 본인들이 이걸 이해하거나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고 내치기만 해서 여기 있는 친구들이 하다하다 안되니깐 나간 거거든요. 밖에서 활약하고 나서야 아 ‘우리 원래부터 잘 알고 있었어, 관심 있었어.’ 이런 식으로 이야기 하면 아무래도..
퍼 : 사람들의 그런 반응에 회의감 들거나 하지는 않으세요?
오 :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또 사람들을 등한시 하면 안 돼요. 그러면 너무 잘못하는 거예요. 대신 개인적으로 자파리 팀한테 이야기하는 게 있어요.
퍼 : 뭐라고요?
오 : ‘당신들이 지난 십 년 동안 제주 문화에 테러를 너무나도 잘, 충분하게 했다, 그러니 지금은 더 큰 무대에 나가서 원하는 활동 하면서 제주도는 이렇다, 하면서 알리고 국제적인 교류까지 할 수 있는 역할을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하죠.
제주도 하면 각자 머릿속에 무엇이 떠오를까? 바다? 바람? 돌? 한라산? 귤? 야자수? 올레길? 내가 좋아하는 제주의 것들이다. 제주 특유의 파랑 바다를 보고 있으면 너덜너덜해진 마음에 기운이 스며들었고, 특유의 찰진 바람을 실컷 맞고 나면 그 순간만이라도, 살아간다는 게 두렵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제주도를 좋아했고, 여행했고, 가고 싶다는 말을 늘 입에 달고 살았다. 그리고 2010년 11월, 결국 제주도민이 되었다.
제주도민이 되어 만난 제주 토박이들은 하늘을 잘 쳐다보지 않았다. 좀 무덤덤하다고 했다. 그들에겐 제주도가 쉬러 오는 곳, 여행 오는 곳이 아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제주도민들은 제주도에서 돈을 벌고 공부를 한다. 실직도 하고 좋은 학교에 가기 위해 경쟁도 한다. 더군다나 관광과 농업이 주업인 제주 섬인지라 일자리 수는 적고 종류는 단조로우며 주 6일 근무가 태반이면서도 월급 수준은 열악하다. 주변 자연이 아름답다고 해서 저절로 배부르지도, 등 따습지도 않다. 좌절을 겪지 않을 수도 없으며 아픈 순간이 순식간에 괜찮아지는 것도 아니다.
나 역시 오래지 않아 진짜 제주도민이 되어야 했다. 제주도의 푸른 자연만을 생각하며, 그 이름을 들으면 무조건 ‘설렘 모드’가 되던 여행자가 아니라 먹고 살기 위해 일을 해야 했고 크고 작은 갈등을 겪어야 했다. 때문에 육지의 일상이 그랬듯, 힘들면 위로가 되고 답답하면 해소할 수 있고 나를 기쁘고 즐겁게 해줄 수 있는 친구들과 장소들이 필요했다. 비로소 바다와 하늘을 보러 다니던 여행자 시절, 관심 가져본 적 없던 ‘다른 제주도’, 아니 이제는 ‘우리 집’이 된 이곳의 주변이 궁금해졌다.
그렇게 만난 곳이 ‘간드락 소극장’이다. ‘간드락’은 제주시 아라2동 일부의 옛 지명으로 지금까지도 마을 이름으로 사용되고 있다. 간드락 마을 입구, 새로 지어진 건물들 뒤편에 작은 집이 하나 숨어있다. 마당 건너 작은 집 문 위 항아리들에 하얀 색 페인트로 휘갈겨 쓴 듯한 ‘간’, ‘드’, ‘락’, ‘소’, ‘극’, ‘장’.
2004년 개관하여 7년째 계속 그 자리를 지키며 창작극, 인디밴드 콘서트, 어린이극, 창작 워크숍, 청소년 프리마켓 등 다양한 활동을 매개로 무대 안에서, 밖에서 제주 사람들을 만나고 있는 그곳. 이들은 왜 소극장이라는 방식을 통해 제주 사람들과 만나고 싶었을까? 왜 그 자리를 지켜가고 있는 걸까?
제주 토박이인 오순희 대표는 문화 예술 관련 일을 전업으로 삼고 있던 전문가가 아니었다. 지난 십여 년 간, 친동생 오경헌 씨가 이끄는 문화 집단 테러J(자파리 연구소)가 제주에서 벌이는 거리 예술제며 거리 연극 등의 활동을 뒤에서 도와오던 그녀가 지난해부터 극장 운영의 전면에 나서게 되었다. 오순희 대표(@ohora44)와 함께 ‘간드락 소극장’에 대해, 제주 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 보았다.
장소place, ‘소극장’
퍼 : 자파리가 그렇게 해외로 자주 다니면 소극장 운영이 쉽지 않았겠네요?
오 : 테러J는 원래 굳이 이런 공간 없이도 시작했던 친구라서 그런지 몰라도 공연을 만들고 올리는 것 말고도 이 공간 자체의 커져버린 의미를 아무래도 나만큼 크게 보지 않더라고요. 근데 나는 그 사이에 간드락은 제주도 내에선 없어져선 안 될, 또 하나의 사회적인 책임의 장소로 남았다고 생각하거든요.
퍼 : 정말 공감해요. 처음엔 공연을 하기 위한 공간으로 시작했더라도 사람들이 공연 보러 와서 공연만 보고 가는 건 아닐 테니까요.
오 : 창작 워크숍 같은 거 한 번 해보면 사람들이 막 환희에 차서 해요. 만족도가 정말 높죠. 이 장소가 없어지면 사람들한테 어떻겠어요. 그래서 중간에 다른 손도 거치고 하다가 작년부터 내가 맡게 됐지요.
퍼 : 운영하시면서 말할 수 없는 어려움이 많았겠고, 지금도 많을 거 같아요.
오 : 많죠.
퍼 :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드락 소극장을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이유는, 뭐예요?
오 : 좋으니깐. 응. 좋으니까. 또 있어야 할 거 같고요. 이제는 주변에서 사람들이 원하기도 하고요. 이 공간을 한 번쯤 다녀간 사람들에게 자주 가지 않아도 ‘내가 가고 싶어 찾을 때 그 자리에 계속 있어주는 공간’이라는 믿음 같은 것을 주어야겠다는 의무감이 들지요.
퍼 : 공간 운영을 맡는 게 부담이 되셨을 거 같은데요.
오 : 저 같은 경우엔 다른 일 하면서도 계속해서 축제할 때 같이 진행하기도 했었고. 극장도 자주 왔다 갔다 했었고. 또 자파리들이 곤란한 상황에는 내가 뒤에서 스폰서 아닌 스폰서처럼 하다보니깐 점점 내 눈에 보이던 것도 좀 있지요.
퍼 : 눈에 보이는 거요?
오 : 그 사이에 자파리들이 너무 열심히 했지만, 미처 하지 못했던 것들.
퍼 : 구체적으로 어떤?
오 : 특히 내가 여자, 뭐랄까, 엄마의 입장이었기 때문에 아이들을 바라보는 시각이 좀 달라요 아무래도. 그러다보니 아이들을 위해서, 또 젊은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생각해보게 되고요. 아이들이나 젊은이들이 뭔가 다양하게 보고 또 해볼 수 있는 장 같은 것.
퍼 : 아이들이나 젊은이들일수록 금전적 여유가 적으니 주저하다가 포기하는 경우가 많죠.
오 : 그래서 이왕이면 간드락 소극장이 단순 공연장보다 좀 더 포괄적인 역할을 했으면 좋겠어요.
퍼 : 이전에도 이런 일 하셨었어요?
오 : 예전엔 일반적인 사회생활을 했어요. 예술가들은 세상물정을 잘 모르는 측면이 있잖아요. 그런 면에선 내가 좀 더 도와왔었죠. 그래서 여기 뭐가 필요한지도 좀 알고 있고. 또 깊이 배운 건 아니지만 경영을 좀 공부했기에 배운 거랑 연결시켜보기도 하고.
퍼 : 아, 원래 이런 일을 해온 건 아니셨구나. 대단하세요. 결코 쉬운 선택이 아니잖아요.
오 : 가족이다 보니까 오랜 세월 동생을 지켜보고 자파리들 하는 거 보다보니 이건 지켜줘야겠다는 생각도 하게 됐고. 지켜주는 것 뿐 아니라 이런 걸 계속 할 수 있게끔 그 후배들, 자파리 두 번째 팀, 세 번째 팀이 나와 줘야 한단 생각도 들더라고요.
퍼 : 오, 자파리 두 번째, 세 번째 팀이라. 멋져요!
오 : 맡으면서 서로 정리를 좀 하기도 했어요. 자파리와 간드락이 가족이 가족이긴 해도, ‘야 이거 해줘’, 하는 게 아니라 작품이나 워크숍 하고 싶다 하면 자파리들한테 스케쥴 확인하고 취지 설명하고 하면서 오케이 해주면 성사되고 하는 식으로요.
퍼 : 맡기까지 고민이 많이 된 부분은 어떤 점이에요?
오 : 어떤 돈으로 내가 이걸 돌릴까, 이런 공간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똑같이 하고 있을 고민이라고 생각하는 데 그런 고민이 크지요.
퍼 : 역시 돈이 가장 큰 고민거리죠.
오 : 올해부턴 후원회를 결성을 해서 기본적인 운영비는 조금씩 충당하는 방식을 생각해보고 있어요. 그래서 일 년에 몇 번씩은 수익사업도 해보고. 운영 경비가 없으면 수익사업 자체를 해보질 못하거든요. 다수의 소액후원자가 생기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죠.
퍼 : 후원자들 역시 간드락에서 해볼 수 있는 것들이 더 많아질 수 있겠네요.
오 : 그렇죠. 그래서 후원자들에게도 덕분에 이렇게 해나가고 있습니다,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이 없나 머리를 쓰고 있답니다. 요즘.
제주도의 테러J
퍼슨웹(이하 ‘퍼’) : 사실 제주도에 소극장이 있을 거란 생각을 못 해봤었어요. 부끄럽지만 아예 있는지 없는지 궁금해해본 적이 없어요. 어떻게 소극장을 시작하게 된 건가요?
오순희(이하 ‘오’) : 우리 제주도민들이 가장 부딪히는 게 좋은 공연이 있고 관심도 있는데 이것들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다는 거예요. 제주도에는 오지 않으니까 서울로 가야하죠.
퍼 : 제주에 온 지 몇 개월밖에 안됐지만 공감이 가요. 3월초에 서울 다니러 가기 전, 제일 먼저 했던 게 공연 예매예요.
오 : 서울 가려면 왕복 비행기표에 입장료, 밥 값, 또 그날 못 내려오면 잠잘 데도 필요하고… 기본적으로 돈이 몇 십 만원이 없어지잖아요. 근데 또 이게 한 번씩 이렇게 보고 온다고 해도 갈증에 갈증만 더 할 뿐이지, 쉽게 해갈이 되지가 않지요.
퍼 : 그러게요. 공연은 신나게 한 번 보고 나면 자꾸 보고 싶어지던데.
오 : 벌써 이게 십 년도 훨씬 전의 일인데 ‘테러J’라고 이 친구가 3만 원짜리 공연 보려고 비행기 타고 서울로 직접 갔었어요. 근데 갑자기 사전공지도 없이 그날 공연이 취소됐다고 내일 오라고만 하더라는 거예요.
퍼 : 황당했겠네요.
오 : 서울 사람들이야 내일 또 보러 오고 그럴 수 있을 테지만 멀리서 올라갔던 사람은 어떻게 하겠어요. 이쪽 입장을 전혀 생각해주질 않는 거예요. 일방적으로 통보하고 마는 방식에 얘가 너무 화가 나버린 거죠. 문화적으로 소외된 지역에 산다고 왜 이렇게 한 번 더 소외를 받아야 하나.
퍼 : 지방에서 온 사람들은 그날이 유일한 기회일 수도 있는 건데 말예요. 물론 사는 곳에 그런 공연이 있다면 굳이 서울까지 오지 않아도 되는 거고.
오 : 그게 계기가 돼서 99년인가 98년인가, 젊은이들 세 명이 모여서 문화 단체를 만들었어요. ‘우리 스스로가 정체되어 있는 제주 문화에 테러를 하자!’ 하면서. 그래서 테러 제주, ‘테러J’ 가 되었죠.
퍼 : 테러라는 단어에서 절실함이 느껴져요. ‘테러J’ 만든 분도 문화나 예술, 관련하여 일하시던 분이셨어요?
오 : 원래는 미술, 동양화를 전공한 친구예요. 또 영화* 쪽에도 관심이 있고.
* 독립 문화꾼 오경헌 “진짜 독립영화? 예산보다 상상력” 기사 보러 가기
퍼: 어떻게 아시는 분인데요?
오: 내 동생예요. 내 동생이라지만 개인적인 성향은 나도 잘 파악을 못하죠.
퍼 : 그렇구나. 하하하
오 : 우리 학교 다닐 때 기껏해야 제주도에서 볼 수 있는 게 미술전시회, 연극 정도였어요.
퍼 : 연극요? 당시엔 어떤 연극들을 했었나요?
오 : 옛날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라고 하면 그걸 약간 각색하거나 뭐, 거의 명작들, 고전 소설들, 번역 작품 위주로 극이 올라왔었죠. 근데 좀 화가 나기도 하고 속상하기도 해요.
퍼 : 어떤 부분이요?
오: 지금 봐도 그 당시랑 별 차이가 없다는 느낌이 들어서. 왜 이렇게들 발전을 안 할까. 제주 밖에 나가면 다양한 게 너무 많아서 놀라게 되거든요.
퍼 : 몇 십 년 전이랑 별 차이가 없다니. 그 정도로 정체되어 있을 줄은 몰랐어요.
오 : 지난번 간드락에서 <꿈꾸는 아이들>이라고 폐지를 이용해서 인형으로 이미지 극을 했었어요. 학교 연극부에서 활동하던 청소년 애들이 와서 이걸 보고 깜짝 놀란 거죠.
퍼 : 왜요?
오 : 그냥 대사로만 하는 게 연극의 전부가 아니란 걸 처음으로 알게 되었으니까요. 연극의 표현이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는데 접해보질 않았으니까 몰랐던 거지요.
퍼 : 드라마나 영화 같은 건 온라인을 통할 수 있지만 연극은 직접 눈으로 보는 건데, 접할 수 있는 기회 자체가 많이 없으니.
오 : 네. 그런 것들 보여주려고 ‘테러J’라는 팀이 10년을 넘게, 거리 공연, 거리 예술제, 거리 축제를 해왔죠. 거리에서 쉽게 할 수 있는 것들로 제주 시청 어울림 마당에서. 지나가는 사람들 한 사람만 봐줘도 좋다는 마음으로. 뭐 아무도 안 본다 해도 일단 내가 즐거우면 되는 거니깐 시작을 했어요.
퍼 : 아무리 취지가 좋다고 해도 자기가 좋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죠.
오 : 일단 내가 좋아서 했는데 거기에 같이 공감하는 사람이 하나씩 둘씩 늘어나면 얼마나 더 좋겠어요. 막말로 나쁜 짓 하는 것도 아니고요. 내가 굳이 원하지 않는다고 해도, 옆에서 누군가가 우리를 위하는 마음에 무언가를 열심히 하고 있단 건 감사한 일이지요.
퍼 : 뭐랄까. 모르는 사람도 좀 가깝고 살갑게 느껴지고, 다들 살아 숨 쉬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피부에 와 닿기도 해요.
오 : 이 친구들은 공연 안 할 때 육지 가서 다른 것들 보고 경험하고 공부하러 다녔어요. 제주도에 들어오는 게 없으니깐. 그 팀 멤버 3명이 무슨 예술 축제 있다 하면 가서 보고 하면서 계속 왔다 갔다 했죠. 또 갈 때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무턱대고 인사하고.
퍼 : 그렇군요.
오 : 그분들이랑 교류를 해야겠는데 방법이 없으니깐 자비 들여 무작정 계속 갔어요. 그렇게 몇 년 하다 보니 거기서도 ‘어? 쟤들 누구야? 당신 뭐하는 사람이야?’ 하게 된 거죠.
퍼 : 와, 대단하네요.
오 : 그때까진 하고 싶은 말이 쌓이기만 했었으니 기회가 생기면 어떻겠어요. 그냥 터지는 거죠. ‘저는 제주도에서 이렇게 저렇게 하고 있는 사람인데, 이런 거 해보려고 합니다.’하니깐 그분들도 좋은 생각 가지고 있다면서 흔쾌히 ‘우리가 가서 공연 해 줄게요.’ 그런 식으로 인연이 되었고요.
퍼 : 아. ‘테러J‘도 계속 업그레이드하고, 다른 공연 팀도 제주도에 오게 되고. 그러면서 거리 공연이 거리 축제, 예술제로 커진 거군요.
오 : 자기네가 간절했던 만큼 일이 계속 진행되었고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일이 커졌죠. 그러니깐 또 뭔가를 계속해서 할 수 있는 장소가 필요해지고. 거리에서 10년 넘게 하니깐 아무래도 민원이 생기기도 했고요.
간드락의 새로운 시도
퍼 : 2011년에 처음 무대에 올리는 작품이 어린이 뮤지컬 <애벌레의 꿈>이죠? 1인당 표 값이 5천원이고 예매하면 30% 할인해주시던데 이렇게 받으면 운영이 어렵진 않나요?
오 : 어렵지요. 근데 <애벌레의 꿈>* 같은 경우엔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올해 간드락의 시작을 알리기 위한 취지가 커요. 또 일반인 아마추어 배우를 무대에 올려보기로 했거든요.
퍼 : 앗! 그럼 저기 연습하던 분들이 다 아마추어 배우 분들이셨던 거예요? 몰랐어요!
오 : 네. 1명 빼곤 전부 아마추어 배우. 게다가 첫 작품! 아마추어 배우라 처음부터 창작품 하면 힘들 것 같아서 기성 작품을 하는데 지금까지 연습하는 거 보면 괜찮을 것 같아요. 일반인들보단 아동극이 나을 것 같아서 어린이 뮤지컬.
퍼 : 저 분들은 어떻게 배우로 나서게 된 거예요?
오 : 공연 보러 왔다가 배우 모집한다고 해서 온 사람도 있고 친구 따라 온 사람도 있고요.
퍼 : 막상 해보니깐 어떻다고들 하세요?
오 : 어렵지요 뭐. 처음엔 각자 생각하고 온 게 다르니깐 오해도 있고 했었고요. 근데 이젠 얼추 잘 맞아요. 얼마 전엔 인천에 가서 500석 규모로 첫 공연도 하고 왔어요. 끝나고 다들 감격에 젖어서는. (웃음)
퍼 : 감격 정도가 아닐 거 같은데요. 불과 몇 달 전까지 자기가 인천까지 가서 500석이나 되는 규모의 공연을, 보는 게 아니라 연기하게 될 거라고 누가 생각해봤겠어요. 그럼 이 공연 말고도 지금까지 아마추어 배우들 모집해서 다른 거 해본 적 있으신 건가요?
오 : 아니, 이번이 처음이에요.
퍼 : 시도는 어떻게 해보시게 된 거에요?
오 : 음, 실험적인 거죠. 간드락이 가진 여건 속에서 해볼 수 있는 건 다 해보고 싶어서요. 또 배우가 아마추어라면 새로운 관객도 생겨나고 새롭게 찾아오는 사람들이 생길 것 같았고요.
퍼 : 그렇기도 하겠네요.
오 : 또 간드락은 전문적인 배우, 일부 사람들만 공유하는 공간이 아니라는 것도 알리고 싶더라고요. 연극이라고 하면 다들 고리타분하고 어렵게 생각하는데 ‘아니다, 이런 것도 있다’ 하면서 쉽다고 얘기하고 싶기도 하고.
퍼 : 연극 보고 나서 사람들이 배우들이 아마추어였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그럼 나도 한 번 해볼 수 있나?! 할 수도 있잖아요. 그것도 노리신 거예요?
오 : (웃음) 그렇죠. 그걸 제일 원하고 있어요! 근데 또 곰곰이 생각해보면 내가 어릴 때 배우하고 싶어서 이렇게 극장 운영도 하게 되고 이런 시도도 해보게 된 거 같단 생각이 드네요.
퍼 : 오! 어릴 때 배우하고 싶으셨어요?
오 : 응. 어릴 때. 욕심이 많아서 다양한 삶을 많이 살아보고 싶은 생각에요, 배우를 하면 현실은 아니지만 내가 역할을 통해서 뭐랄까, 공주에서부터 거지까지? 내가 모든 걸 체험해볼 수가 있겠다 싶었지요.
퍼 : 어린 시절부터 이미 ‘체험’이란 것에 관심이 있으셨네요.
오 : 그냥 흉내만 내는 게 아니라 그 처지가 뭔지 알아야 연기할 수 있는 것 같아서 배우가 하고 싶었어요. 그랬던 내면의 욕망이 있었기 때문에 이걸 한다고 하지 않았나 싶어지네요.
퍼 : 정말 신기하네요. 저는 어렸을 때 기자하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지금 이렇게 인터뷰 하고 있는 건가. (웃음)
오 : 이번에 <애벌레의 꿈> 준비할 때 배우들이 아마추어다보니 처음에 좀 답답한 데가 있었는데 나도 모르게 ‘이렇게 발성을 해보라’고 하면서 지도를 하고 있는 거예요 내가. 그거 보더니 연출이 ‘대표님, 연기하셨었어요?’ 하더라고. ‘연기는 개뿔, 나는 전혀 해본 적 없어,’ 그랬었는데..
퍼 : 왜 배우 안하셨어요?
오 : 그러게. 삶이 바빠서죠 뭐. (웃음)
퍼 : 아까, 이런 공간이 유지되어야 하는 이유에 ‘좋으니깐!’이라고 단번에 말씀하셨잖아요. 사람들이랑 같이 이런 활동들 하고 뭔가 마음과 마음이 전해진다는 교감이 될 때, 마음이 막 좋으세요?
오 : 당연히 거기선 정말 행복하죠.
퍼 : 행복한 마음이 드는 것, 그게 이 일을 계속 하게 만드는 힘인 가요?
오 : 네. 그리고 또 정말 감사하고요. 내가 생각하는 것을 누군가도 원하고 있었구나, 원하는 걸 채워주고 그 사람도 좋아하고 기뻐하고, 나 역시도 그걸 좋아하고, 서로가 서로의 모습을 통해서 만족하는 거? 서로가 서로를 보면서 너무나도 행복해지는 거죠.
퍼 : 그런 행복에서 ‘아 세상은 아직 살만해’ 하는 뭐 그런 용기 같은 게 생기기도 하잖아요.
오 : 그러니까요. 나는 테러J가 처음에 이걸 시작할 때 했던 말이 언제 들어도 참 좋아요. ‘우리가 살고 있는 제주도는 아름다운 섬이니까 아름다운 섬에는 아름다운 사람들이 살아야 합니다, 아름다운 사람을 위해선 아름다운 영혼이, 아름다운 영혼을 위해선 아름다운 문화가 있어야 합니다.’
퍼 : 그 말 극장 입구에 붙어 있잖아요. 저도 처음에 읽어보고 훈훈했어요.
오 : 나는 내가 살고 있는 땅이 정말 소중한데. 그러면 나만 살고 말게 아니라 지금 내 밑에 애들이 얼마나 많은데, 이 애들도 이 아름다움을 알아야 하잖아요. 그러니까 나는 이걸 아름답게 더 오래 지켜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퍼 : 그렇죠.
오 : 이 아름다움을 지켜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좀 더 많다면 우리가 가진 아름다움이 조금이라도, 한 해라도 더 유지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심정에 좀 더 절박해요. 그러면서 하다보니까 통하는 사람 하나 만나면 행복하고요, ‘아 이봐! 이거 계속 해야 한단 말이야’ 이러면서 계속 가는 거죠. (웃음)
간드락의 소극장
퍼 : 그렇게 간드락 소극장이 생겨난 거군요.
오 : 2004년에. 처음엔 우리 극장에 조명 장비 하나 없어서 다 빌려 썼어요. 여긴 진짜 다, 사람들의 마음으로 만들어진 곳이에요. 돈 주고 맡겨서 완벽하게 만들어진 곳이 전혀 아니죠. 조명도 인천에 있는 조명하는 친구가 좋은 마음에 해주고 가고. 좋은 일 한다면서 사람들이 하나씩 하나씩 채워줬어요.
퍼 : 저도 처음에 그런 느낌 받았었어요. 손으로 일일이 만진 듯한.
오 : 사람들이 여기 오면 독특한 분위기가 난다고들 하더라고요. 그 시간동안 사람이 정말 그렇게 정성을 들여서 만들어놓은 게 느껴지나 봐요. 제주도에서 가장 예쁜 소극장인 것 같다고 얘기해주는 사람도 있고요.
퍼 : 간드락이 지명이잖아요. 이곳에 자리 잡게 된 계기가 있어요?
오 : 우연이죠. 어릴 적에 집을 그리게 되면 가장 많이 그리는 게 아름다운 산 하나에, 빨간 삼각형 지붕에 굴뚝 하나 있어서 연기 폴폴 나고 하는 그림 많이 그리잖아요.
퍼 : 저도 그 그림 많이 그렸었는데. (웃음)
오 : 집이라면 이래야 한다는 어렸을 적부터의 느낌이 있어서 그런지 여기를 선호하게 된 거죠. 여기가 원래 교회 건물이었어요. 종교를 떠나서 ‘교회’ 하면 느껴지는 게 있잖아요. 십자가 하나 있는 건물, 편안하고 평화로운 느낌.
퍼 :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이름이 간드락 소극장이 되었군요.
오 : 원래 교회였기에 마당이 있는 건물이 된 거죠. 2007년에 마당에 데크를 깔았어요.
퍼 : 전 저 마당 바닥이 느낌이 참 좋더라고요.
오 : 원래는 시멘트 바닥이었어요. ‘테러J’가 목돈 들인 거죠. 예술축제에서 상금으로 삼천 만원이란 큰돈을 처음 받아서 거의 천만 원 들여서 했어요. 마당 만들어놓으니깐 애들이 너무 좋아해요.
퍼 : 저도 애들이 마당에서 신나서 노는 거 본 적 있어요. 저까지 덩달아 신나더라고요.
오 : 어린이집에서 애들 오면 마당에 막 발 구르면서 바닥에서 나는 소리 들으면서 좋아하고 하니깐, 선생님들이 여기로 소풍 와서 도시락 먹어도 되냐고 물어보기도 하고. 올 적마다 사람들이 이렇게 좋게 봐주고 표현해주고 하니깐 우리가 더 고맙죠.
퍼 : 서울은 ‘공연장’ 하면 지하로 내려가야 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건물이 거의 빌딩이니 마당도 없고. 여긴 마당에 나무 데크도 깔려있고, 삼각형 지붕도 있고. 또 벽돌로 된 작은 건물이다 보니 사람들이 따뜻한 정서를 느끼게 되는 것 같아요.
오 : 근데 또 한편으로 너무 깨끗한 건물만 보던 사람들은 오면 “여기 숨 쉴 수 있어요?” 하기도 한답니다.
퍼 : 아, 그런 사람도.
오 : 사람이 움직이면 먼지 생기는 게 당연하고, 연극할 땐 조명이 가까우니 먼지가 보이잖아요. 근데 어떤 사람들은 막 입을 틀어막아요. 환경이 너무 열악하다고 하면서.
퍼 : 간드락이 시내 중심에서 조금 떨어져 있어서 불편하다는 사람들도 있지 않나요?
오 : 시내 쪽으로 나오는 게 더 좋지 않겠냐는 사람들도 있어요. 물론 사람들이 필요하다고 하면 공간들도 변화를 줘야 하긴 하죠. 그런데 도심으로 나오라는 이유는 색다른 거, 새로운 흥밋거리를 찾아서라기보다는 이동성의 편리 때문인 것만 같아요.
퍼 : 그렇죠.
오 : 극장이라고 해서 사람들을 무조건 찾아가줄 필요는 없죠. 뭔가를 누리고 싶은 사람이 다가와주는 것도 필요하잖아요. 우리는 차라리 이렇게 좀 떨어져 있는 게 더 좋은 것 같아요.
퍼 : 도심이랑 좀 떨어져 있어서 오히려 좋은 점도 있죠?
오 : 공연 후의 여운이라고 할까요. 도심의 공연장에서는 공연이 끝나면 사람들은 원래의 그 시끌벅적한 도심의 분위기로 바로 다시 돌아가야 하잖아요. 그러면 자기가 변했다는 느낌을 알아채기가 힘들죠. 단지 그냥 공연 시간 동안만 감상에 젖어 있다가 공연장 문 나서자마자 그 여운이 사라져버리는 거죠.
퍼 : 맞아요. 여운. 그래서 그 벅차오르는 감상을 마저 풀어놓지 못하고 바로 다시 눌러 담아야 하고, 그러다가는 그냥 잊어버리고 말아요.
오 : 여긴 조금이라도 더 여유로우니까 자기 자신을 정화시킬 수 있는 여지도 그만큼 더 있지 않을까요? 또 개인적으로는 극장 홀에서 건물 유리창에 거울처럼 달이 비치는 거나 마당에 빗방울 튀기는 모습 보는 것도 좋죠. 혼자 보기 아까울 만큼.
퍼 : 와.
제주 섬의 육지, 육지의 제주 섬
퍼 : 주로 어떤 분들이 오세요? 제주도 사람들한테도 물어봐도 제주도에 소극장이 있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많더라고요.
오 : 작년까진 어린아이하고 부모님이 손잡고 오는 경우가 가장 많았죠. 공연 보러. 특히 자파리*들이 지금까지 가족 극 위주로 창작을 했었으니깐.
오 : 그 이외엔 아무래도 음악 하는 친구들이 왔었죠. ‘부스의 친구들’**이라고 제주도에도 인디레이블의 친구들이 있어요.
퍼 : ‘제주도에는 놀 곳이 없다, 여기는 재밌는 게 없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어요. 제가 만난 사람들 대부분이 젊은 대학생들이어서 더 그랬나 봐요. 전부들, 여길 떠나고 싶어 하는 거 같더라고요.
오 : 그건 여기 사람들이 입버릇처럼 하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어요. 제주도에 살고 있는 사람, 또 뭔가 욕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입버릇처럼 하는 얘기예요.
퍼 : 이 나라 자체가 서울이 다른 지역에 비해 너무 비대하게 크니까 더 그럴 수도 있고요. 근데 또 거꾸로 제주도 밖 사람들은 제주도에 약간 로망을 가지고 있거든요.
오 : 다만 제주도라는 이름이 붙어서, 똑 떨어져 있는 섬이라고 해서 사람들이 그런 로망을 더 키우는 거 같아요. 제주도가 곧 ‘이어도’가 되어버린 거죠. 외부에 제주도를 홍보하는 방식도 그렇잖아요. 제주도는 특별한 곳이라는 이미지를 만드니깐. 근데 그렇게 특별한 곳 아니거든요, 제주도가.
퍼 : 다른 지역이랑 특별히 다르지 않다는 말씀이세요?
오 : 그렇죠. 외부 사람들이야 주로 여행으로 이곳에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여기에는 늘 뭔가가 일어나고 있으리란 기대치도 있겠지만 실제론 그렇지가 않지요.
퍼 : 대표님은 육지로 나가고 싶다, 제주도가 너무 좁다, 이런 생각 안 해보셨어요?
오 : 막상 간다 한들 ‘내가 꼭 서울에 가야만 뭘 할 수 있는 건가?’ 하면 그건 또 아니거든요. 여기서 움직여보면 그 나름대로 증명되는 부분들도 있고요.
퍼 : 저나 제 친구들은 고향이 거의 서울이에요. 다들 가끔씩 서울이 싫다, 뜨고 싶다 하면서도 잘 벗어나질 못 해요. 그럴수록 자연에 대한 향수나 환상을 품는 거 같아요.
오 : 그건 어디까지나 도시 입장에서 보기 때문이죠. 자연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 그 사람들한테는 도시에 가서 더 많은 걸 배우고 싶다든지, 가서 꿈을 이루고 싶다든지 하는 도시에 대한 동경이 있을 수밖에 없어요.
퍼 : 여기 와서 만난 분들 중에 육지에 가서 몇 년 살다가 돌아왔다는 분들도 많더라고요.
오 : 그렇죠. 막상 나가본 사람들도 ‘서울 가니까 지친다.’, ‘가서 해보니 별 거 아니다.’ 얘기하는 사람도 많아요. 대신 이곳은 언제나 나를 위해서 그대로 있어 주는 곳이라는 생각을 하죠. 도시 사람들한테도 점점 그런 식으로 제주도가 인식되는 게 아닌가 싶어요.
퍼 : 그렇죠.
오 : ‘제주도’ 하면 ‘도시’와는 반대되는 의미에서 ‘자연’이랄까, ‘쉬러 오는 곳’이라는 느낌을 받는 사람들이 많긴 하죠. 회귀본능이라고 하잖아요. 사람도 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에 자연으로 갈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 거죠.
퍼 : 반면 요즘 제주도로 이사 오는 사람들이 좀 많아진 거 같아요. 제가 이사를 와서 그런 경우들이 유독 눈에 더 띄는 건가 싶기도 하지만요.
오 : 근데 의외로 사람들이 막상 그렇게 동경해서 와놓고도 ‘와보니깐 별 거 아니네.’, ‘제주도 왜 이렇게 됐어?’ 이런 소리들도 나와요. 자기들이 원하는 모습이 있었던 거죠. 제주도가 그들이 원하는 모든 면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닌데 말예요.
퍼 : 도시는 다양한 사람들이 섞인 ‘샐러드 볼’ 같은 공간이 되어야 한다고 하면 제주도처럼 좀 더 자연에 더 가까운 곳들은 사람이 점점 걸러지며 일부만 남는 게 맞는 거 같아요.
오 : 뭐든 다 소화해내고 갖추어놓고 있어야 하는 도시랑은 달라야 이 공간이 가진 자연적 매력이 지켜질 수 있겠죠.
퍼 : 기획하거나 연극 제작할 때 이곳이 ‘제주도’라는 걸 많이 의식하는 편이세요?
오 : 그렇게 하면 좋겠다고 생각은 좀 해요. 요즘 들어서 제주도에 외국인들도 많이 들어오고 외부에서 들어오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제주에 대한 환상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닌데 생활면에선 동떨어진 부분이 많아서. 제주만이 가지고 있는 생활의 모습 같은 게 녹아있었음 좋겠어요.
퍼 : 외지인들이 잘 보지 못하는 ‘제주도 사람들이 살아온, 살아가는 일상’ 같은 걸 연극으로 보여주고 싶으신 거예요? 자파리가 해왔던 이야기도 그런 거죠?
오 : 삶의 방식이나 사람들 자체도 제주도만의 독특한 부분이 있을 텐데 그걸 일일이 다 말로 설명해줄 수도, 체험해볼 수도 없으니까 연극으로 녹여 보여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지요.
퍼 : 그런 부분이 작품으로 자연스럽게 전해지면 이해가 더 쉬울 거 같아요.
오 : ‘제주도는 이런 곳이구나.’ 생각해볼 수도 있고 더 호기심이 생기기도 하고. 좀 더 내밀하게 알 수 있겠지요.
퍼: 정말 그렇겠어요.
오: 그런 부분에서는 ‘제주도적’인 것을 생각하지만, 때에 따라선 굳이 제주도적인 것만 가지고 갈 필요는 없기도 하고요.
퍼 : 어떤 이유에서요?
오 : 시대를 무시해선 안 되니까요. 자라는 아이들한테는 다양한 정보나 경험을 접할 수 있게끔 도와주고 싶죠. 아무래도 제주도 아이들은 도시 아이들에 비해 경험이 모자랄 수 있잖아요. 성인이 돼서 갑자기 턱 부딪히게 되면 받아들이는데 힘들 수도 있으니깐 그런 차원에선 제주도에서 벗어날 필요도 있다고 봐요.
간드락의 꿈
퍼 : 두 번째, 세 번째 자파리 팀 얘기도 그렇고, 계속해서 이 땅을 살아갈 사람들 얘기도 그렇고. 그래서 간드락 소극장에서 청소년이나 젊은이들이 활동할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아지길 바라고 계시는 건가 봐요.
오 : 그렇기도 하고, 지금 엄마 아빠들은 모르는 게 없어서 본인들 못 해본 것들, 아이들한테 시키면서 애들이 너무 홍수 속에서 사는 것 같아요.
퍼 : 아이들한텐 그렇게 쏟아 붇게 되면 오히려 독이 될 거 같기도 해요. 이것저것 손대본 건 많은데 진짜 알고 있는 것,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으니까요.
오 : 중 고등학교 때 다들 방황을 겪기 마련이잖아요. 근데 그렇게 부모의 강요에 몰아치는 교육의 홍수 속에선 경험들이 막연해지고 정작 마음 둘 곳이 필요할 때 그런 곳을 찾기도 어렵죠. 결국 애들은 자기 옆에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다고 느끼고. 그럴 땐 부모도 옆에 없는 거고 결국 친군데, 요즘은 그 친구 또한 마찬가지잖아요.
퍼 : 여기 근처에 학교 많죠? 청소년들이 많이 오는 편이에요?
오 : 응, 많죠. 근데 얘들이 여기서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까 싶어요. 숨어서 담배 피러 들어오는 것 말고 여기서 놀다 가면 좋겠어요. 그래도 작년 겨울부턴 재작년에 비해서 한 사람, 두 사람씩, 학생들이 와주기 시작하고 있지요.
퍼 : 올해 계획하고 계신 게 있나요?
오 : 하고 싶은 게 일단, ‘청소년 아트 프리마켓’. 주는 청소년이지만 연령에 관계없이 진행을 하고 싶어요. ‘거기에 가면 정말 재밌는 꺼리가 있어‘,’거기에 가면 누가 가라고 하거나, 혼내거나, 눈치 주는 게 아니라 극장 안이나 마당에서 그 어떤 것이든 해보고 싶은 대로 해볼 수 있어‘ 라고 생각하며 찾아오는 장소가 돼주고 싶지요.
퍼: 오.
오: 그런 경험들을 통해서 아이들이 나도 무언가를 스스로 할 수 있다는 활력을 얻었으면 해요.
퍼 : ‘청소년 아트 프리마켓’은 어떻게 운영되나요?
오 : 안 쓰는 물건 가져와서 그냥 저가에 판매하는 거 말고 내가 가지고 있는 솜씨, 사소한 거라도 남들이 가지고 있지 못한 부분이 있을 수 있으니까 저는 그걸 끄집어내서 키워낼 수 있게 되는 장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숨어있는 재주꾼 아이들을 만나보고 싶기도 하고요.
퍼 : 아, 자기가 가진 재주를 파는 장이 되겠네요.
오 : 춘천 마임축제처럼 작가들이 직접 만든 거 가지고 나와서 보여주거나 그 자리에서 직접 만들어주기도 하면서 서로의 작업에 대해 이야기하고, 다양한 사고방식을 경험해보면 좋겠죠.
퍼 : 청소년 때는 특히 ‘자기’를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크잖아요. 잘하는 거 알아줬으면 좋겠고, 자기 좀 봐줬으면 좋겠고. 애들이 좋아할 거 같아요.
오 : 청소년 뿐 아니라 어른들도 마찬가지예요. 서로, ‘이거 재밌지 않냐?’하면서 공유하고, ‘난 이거 하면 재밌더라. 너도 한 번 해봐’, ‘응? 나도 해보니깐 재미나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즐거워지는 게 아니겠어요. 그러다보면 각자의 우물에만 고여 있던 생각이나 고집에서 좀 더 벗어날 수 있는 계기도 되고요.
퍼 : 그렇죠.
오 : 이런 것들이 더 풍성해져서 제주도가 예술가들의 등단의 장이 되는 희망을 가지고 있긴 한데 그건 내 힘으로는 안 될 거 같고..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다보면 좀 더 가까워지지 않을까요? 어린 아이들한테 펼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 주변 예술가들이나 다른 사람들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 그게 내 역할이라고 생각하면서 하고 있죠.
퍼 : 아트 프리마켓 말고 혹시 다른 계획들도 있어요?
오 : 음. 가능하다면 쉼터의 아이들이나 뭔가 마음이 힘들다고 하는 일반 가정의 아이들의 마음을 다독일 수 있는 프로그램도 하고 싶어요. 연극적인 방식으로. 이건 육지에서 선생님을 불러야 되죠.
퍼 : 그렇겠어요. 경험 많은 선생님이 필요하겠네요.
오 : 또 영화나 그 외 다른 분야라도 아이들이 관심을 보이면 같이 그 분야 워크숍도 진행해보려고 하고 있고요. 부모나 애들이나 시간을 좀 할애해 준다고 하면 여름 방학 때나 겨울 방학 때 애들을 위한 캠프 같은 것도 열어주고 싶고.
퍼 : 하고 싶은 일들이 많으시군요.
오 : 예술이라는 건 경험으로 습득되어야 표현할 수가 있는 거잖아요. 어렵게, 하나하나 과정을 겪어내면서. 요즘은 대중예술이 과잉되어있어서 겉모습만 보고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큰 것 같아 보여요. 거쳐야 하는 과정이 반드시 있는데 그냥 쉽게, 뚝딱뚝딱 하면 될 것처럼 여겨서. 아이들이 그런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걸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죠.
퍼 : 자파리 연구소 작품들은 창작극이기도 하고 소품도 거의 대부분 직접 만드는 거죠?
오 : 네. 직접 제작하지요. 우린 새로운 작품 할 때 홍보 DM 발송하거든요. 그럴 때도 조그만 거 하나라 손으로 작업해서 보내고 있어요. 간드락 소극장이 추구하는 바를 보여줄 수 있으니까요. 각자 가지고 있는 재주가 있으면 이렇게 자기 솜씨로 색칠하기도 하고, 이것도 도와주는 친구가 있으니까 가능한 거지만.
퍼 : 예전엔 어떻게 했었는데요?
오 : 자파리 팀 같은 경우엔, 은미(자파리 멤버)나 그 팀원들이 많이 했죠. 그릴 시간 없으면 종이 잘라서 붙이기도 하고. 이렇게 하면 DM 받은 분들이 그냥 무심코 버릴 수가 없다고 하시더라고요들. 손으로 쓰고 그러면 한 번은 더 보게 된다면서. 전에 어떤 분은 이런 거 해줘서 너무 감동을 받아서 반드시 열어보게 된다고도 하시고요.
퍼 : 그러게요. 간드락이 추구하는 감정이나 정서가 알게 모르게 전달 될 것 같아요. 그래서 또 사람들이 간드락이라면 이걸 할 수 있겠다 싶은 기대감을 가지고 찾아올 수도 있고.
오 : 그렇죠. 그렇게들 찾아오기도 하죠.
퍼 : 사람이 사는데 뭐가 중요한 거 같다고 보세요?
오 : 글쎄. 그건 내가 추구하는 거하고 사람들이 각자 추구하는 건 정말 다르기 때문에.
퍼 : 그냥 대표님께서. 내가 이런 마음을 잃어버리면 내가 너무 힘들다 싶은 게 있으세요?
오 : 굳이 한 마디로 하면 사랑? 사랑하는 마음? 대상은 사람일 수도 있고 사물일 수도 있고. 내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것들에 대한 사랑의 마음. 그게 없으면 안 될 거 같아요. 사랑이란 단어로 딱 부러지게 말할 수 있다기보다 그런 감정인 거 같아.
‘변방’ 제주도 땅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과 같이 즐겁고 같이 기쁘고 싶어 문화를 나누고자 했던 간절함에서 시작된 간드락 소극장은 제주의 것이자 기꺼이 같이 즐겁고 같이 기뻐해준 지역 사람들의 것이기도 하고 기뻐하는 사람들을 보고 지금도 또 다른 꿈을 꾸고 있을 오순희의 것이기도 했다.
사람들은 되도록 자기가 살아가고 있는 그 터전에서 계속 머물기를 바란다. 그래서 떠나는 것을 고민하지 않을 수 있도록 씨앗을 뿌리고 물과 거름을 주고 볕도 쪼이고 하며 척박해지지 않도록 터전을 일군다. 터전이 점점 풍요로워질 때, 일상을 대하는 마음에는 자연스레 좀 더 편안하고 살만하다는 느낌이 스며들 것이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자꾸 모인다. 서로 보고 듣고 느끼며 터전을 풍요로울 수 있게 하는 다른 존재들, 그들을 만날 수 있는 장소들을 찾아서.
때문에 그런 ‘장소’가 되어주는 ‘소극장’은 단순히 연극이나 콘서트를 볼 수 있는 작은 물리적 공간만이 아닌 큰 ‘뿌리’이다. 내가 처음에 간드락을 찾았던 것처럼, 이런저런 경험을 해보고 친구들을 만나고 하며 일상을 가꾸고픈 소망들이 극장으로 모여 들어 뿌리를 내리면서 삶은 지탱되고 있는 것이다.
공간space, ‘소극장’
퍼 : 제주도에서든 어디에서든 ‘소극장’이라는 공간이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일까요?
오 : 내가 원하는 걸 채워주고 욕구를 풀어갈 수 있는 장소. 내가 음악을 좋아한다고 하면 좋아하는 음악을, 연극을 좋아하면 내 취향의 연극을 만나면서. 사람들보다 그 공간이 먼저 사람들의 욕구를 알고 그런 기회를 가까이서 마련해줄 수 있는?
퍼 : 현실은 어떤가요?
오: 소극장 숫자도 적지만 외부에서 제주도로 들어오는 공연도 제한적이지요. 자체적으로 제작되고 상연되는 공연도 적고.
퍼: 소극장 공연을 바라보는 제주도 사람들의 인식은 어때요?
오 : 사람들의 생각이 이중적이란 생각도 드는 게 사실이에요. 특히 소극장 입장에선. 왜냐면 똑같은 공연이라도 규모에 따라서 작품이 달라지게 마련인데 사람들이 그런 점은 감안하지 않고 작품을 가짜라고 해버릴 때도 있어요. 특히 소극장, 그것도 제주도라고 하면 그 지역 사람들이 먼저 업신여기기도 하고요.
퍼 : 그렇군요.
오 : 다른 데는 몰라도, 제주도 사람들은 이런 식일 때가 많아요. 아무래도 문화행사들 대부분이 서울을 통해 들어오니깐 제주도는 흉내 내기밖에 더 하겠냐는 식. ‘진짜 서울 거 아니면 여기 건 뻔하다’ 하는 전반적인 인식이 있지요.
퍼 : 그래서 이런 극장 문화가 제주도에서 약한 건가요?
오 : 그러다보니 기존 연극을 하던 분들의 자체 창작이 많지도 않고요. 그리고 또 창작을 했다거나 그 작품이 훌륭하다고 하더라도 제주도 사람들이 TV나 신문 같은 주요한 매체를 통하지 않으면 잘 모르기도 해요, 직접 노력해서 찾아보는 것에 익숙하지도 않고.
퍼 : 좀 답답하시기도 하실 듯…
오 : “너 문화생활 어떻게 해?”라고 하면 의기양양하게, “나? 방학 때는 서울 가서 뭐 좀 보고 와, 여긴 뭐가 없잖아”라고 대답해요. 그런데 막상 가서도 별로 보고 온 게 없죠. 여기에서처럼 뭘 딱히 알아보고, 능동적으로 알아보고 간 게 아니니까요.
퍼 : 그렇죠.
오 : 비행기 타고 서울에 가서, 서울에서도 문화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는 홍대, 대학로 뭐 이런 데에 단지 다녀왔다는 사실만으로 막연하게 동경의 대상이 되어버리기도 하고요.
퍼 : 그냥 단지 내가 뭐 해봤다, 자랑거리밖에 안되겠네요.
오 : 그게 항상 반복 되죠 여태. ‘우리 제주도에서 이런 거 합니다.’ 하면 알아주질 않지요.
퍼 : 어떻게 해야 변할 수 있을까요?
오 : 지금 간드락 소극장을 처음 만들었던 자파리 연구소가 이제 해외로 나가고 있어요.* 한 번 나가는 게 아니라 3년, 4년 계속해서. 그러니깐 이제 사람들이 좀 알아주기 시작하는 거예요.
* 제주 극단 ‘자파리’ 일본서 ‘조용한 한류’ 기사 보러 가기
퍼 : 처음엔 등한시하다가 외국에서 주목하니깐 그러는 건가요?
오 : 자기들이 필요할 때 찾으면 당연히 있어야 할 거라 생각했던 공연 팀이 그 자리에 없으니깐 이상한 거죠. 어디 갔냐고 물어오면 해외에 공연 갔다고, 잠깐이 아니라 한 달 두 달 씩, 벌써 몇 년 째 공연 갔었다고 대답해주죠.
퍼 : 그러면 사람들이 좀 달리 보겠어요.
오 : 이젠 거꾸로 인정을 해주고 아는 척 하게 되죠. “그렇게 훌륭한 거였어요?” 하면서 순식간에 대단한 팀이 되어버리면서.
퍼 : 정말 야속하네요.
오 : 야속하죠. 가까이 있을 땐 본인들이 이걸 이해하거나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고 내치기만 해서 여기 있는 친구들이 하다하다 안되니깐 나간 거거든요. 밖에서 활약하고 나서야 아 ‘우리 원래부터 잘 알고 있었어, 관심 있었어.’ 이런 식으로 이야기 하면 아무래도..
퍼 : 사람들의 그런 반응에 회의감 들거나 하지는 않으세요?
오 :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또 사람들을 등한시 하면 안 돼요. 그러면 너무 잘못하는 거예요. 대신 개인적으로 자파리 팀한테 이야기하는 게 있어요.
퍼 : 뭐라고요?
오 : ‘당신들이 지난 십 년 동안 제주 문화에 테러를 너무나도 잘, 충분하게 했다, 그러니 지금은 더 큰 무대에 나가서 원하는 활동 하면서 제주도는 이렇다, 하면서 알리고 국제적인 교류까지 할 수 있는 역할을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하죠.
장소place, ‘소극장’
퍼 : 자파리가 그렇게 해외로 자주 다니면 소극장 운영이 쉽지 않았겠네요?
오 : 테러J는 원래 굳이 이런 공간 없이도 시작했던 친구라서 그런지 몰라도 공연을 만들고 올리는 것 말고도 이 공간 자체의 커져버린 의미를 아무래도 나만큼 크게 보지 않더라고요. 근데 나는 그 사이에 간드락은 제주도 내에선 없어져선 안 될, 또 하나의 사회적인 책임의 장소로 남았다고 생각하거든요.
퍼 : 정말 공감해요. 처음엔 공연을 하기 위한 공간으로 시작했더라도 사람들이 공연 보러 와서 공연만 보고 가는 건 아닐 테니까요.
오 : 창작 워크숍 같은 거 한 번 해보면 사람들이 막 환희에 차서 해요. 만족도가 정말 높죠. 이 장소가 없어지면 사람들한테 어떻겠어요. 그래서 중간에 다른 손도 거치고 하다가 작년부터 내가 맡게 됐지요.
퍼 : 운영하시면서 말할 수 없는 어려움이 많았겠고, 지금도 많을 거 같아요.
오 : 많죠.
퍼 :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드락 소극장을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이유는, 뭐예요?
오 : 좋으니깐. 응. 좋으니까. 또 있어야 할 거 같고요. 이제는 주변에서 사람들이 원하기도 하고요. 이 공간을 한 번쯤 다녀간 사람들에게 자주 가지 않아도 ‘내가 가고 싶어 찾을 때 그 자리에 계속 있어주는 공간’이라는 믿음 같은 것을 주어야겠다는 의무감이 들지요.
퍼 : 공간 운영을 맡는 게 부담이 되셨을 거 같은데요.
오 : 저 같은 경우엔 다른 일 하면서도 계속해서 축제할 때 같이 진행하기도 했었고. 극장도 자주 왔다 갔다 했었고. 또 자파리들이 곤란한 상황에는 내가 뒤에서 스폰서 아닌 스폰서처럼 하다보니깐 점점 내 눈에 보이던 것도 좀 있지요.
퍼 : 눈에 보이는 거요?
오 : 그 사이에 자파리들이 너무 열심히 했지만, 미처 하지 못했던 것들.
퍼 : 구체적으로 어떤?
오 : 특히 내가 여자, 뭐랄까, 엄마의 입장이었기 때문에 아이들을 바라보는 시각이 좀 달라요 아무래도. 그러다보니 아이들을 위해서, 또 젊은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생각해보게 되고요. 아이들이나 젊은이들이 뭔가 다양하게 보고 또 해볼 수 있는 장 같은 것.
퍼 : 아이들이나 젊은이들일수록 금전적 여유가 적으니 주저하다가 포기하는 경우가 많죠.
오 : 그래서 이왕이면 간드락 소극장이 단순 공연장보다 좀 더 포괄적인 역할을 했으면 좋겠어요.
퍼 : 이전에도 이런 일 하셨었어요?
오 : 예전엔 일반적인 사회생활을 했어요. 예술가들은 세상물정을 잘 모르는 측면이 있잖아요. 그런 면에선 내가 좀 더 도와왔었죠. 그래서 여기 뭐가 필요한지도 좀 알고 있고. 또 깊이 배운 건 아니지만 경영을 좀 공부했기에 배운 거랑 연결시켜보기도 하고.
퍼 : 아, 원래 이런 일을 해온 건 아니셨구나. 대단하세요. 결코 쉬운 선택이 아니잖아요.
오 : 가족이다 보니까 오랜 세월 동생을 지켜보고 자파리들 하는 거 보다보니 이건 지켜줘야겠다는 생각도 하게 됐고. 지켜주는 것 뿐 아니라 이런 걸 계속 할 수 있게끔 그 후배들, 자파리 두 번째 팀, 세 번째 팀이 나와 줘야 한단 생각도 들더라고요.
퍼 : 오, 자파리 두 번째, 세 번째 팀이라. 멋져요!
오 : 맡으면서 서로 정리를 좀 하기도 했어요. 자파리와 간드락이 가족이 가족이긴 해도, ‘야 이거 해줘’, 하는 게 아니라 작품이나 워크숍 하고 싶다 하면 자파리들한테 스케쥴 확인하고 취지 설명하고 하면서 오케이 해주면 성사되고 하는 식으로요.
퍼 : 맡기까지 고민이 많이 된 부분은 어떤 점이에요?
오 : 어떤 돈으로 내가 이걸 돌릴까, 이런 공간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똑같이 하고 있을 고민이라고 생각하는 데 그런 고민이 크지요.
퍼 : 역시 돈이 가장 큰 고민거리죠.
오 : 올해부턴 후원회를 결성을 해서 기본적인 운영비는 조금씩 충당하는 방식을 생각해보고 있어요. 그래서 일 년에 몇 번씩은 수익사업도 해보고. 운영 경비가 없으면 수익사업 자체를 해보질 못하거든요. 다수의 소액후원자가 생기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죠.
퍼 : 후원자들 역시 간드락에서 해볼 수 있는 것들이 더 많아질 수 있겠네요.
오 : 그렇죠. 그래서 후원자들에게도 덕분에 이렇게 해나가고 있습니다,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이 없나 머리를 쓰고 있답니다. 요즘.
간드락의 새로운 시도
퍼 : 2011년에 처음 무대에 올리는 작품이 어린이 뮤지컬 <애벌레의 꿈>이죠? 1인당 표 값이 5천원이고 예매하면 30% 할인해주시던데 이렇게 받으면 운영이 어렵진 않나요?
오 : 어렵지요. 근데 <애벌레의 꿈>* 같은 경우엔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올해 간드락의 시작을 알리기 위한 취지가 커요. 또 일반인 아마추어 배우를 무대에 올려보기로 했거든요.
퍼 : 앗! 그럼 저기 연습하던 분들이 다 아마추어 배우 분들이셨던 거예요? 몰랐어요!
오 : 네. 1명 빼곤 전부 아마추어 배우. 게다가 첫 작품! 아마추어 배우라 처음부터 창작품 하면 힘들 것 같아서 기성 작품을 하는데 지금까지 연습하는 거 보면 괜찮을 것 같아요. 일반인들보단 아동극이 나을 것 같아서 어린이 뮤지컬.
퍼 : 저 분들은 어떻게 배우로 나서게 된 거예요?
오 : 공연 보러 왔다가 배우 모집한다고 해서 온 사람도 있고 친구 따라 온 사람도 있고요.
퍼 : 막상 해보니깐 어떻다고들 하세요?
오 : 어렵지요 뭐. 처음엔 각자 생각하고 온 게 다르니깐 오해도 있고 했었고요. 근데 이젠 얼추 잘 맞아요. 얼마 전엔 인천에 가서 500석 규모로 첫 공연도 하고 왔어요. 끝나고 다들 감격에 젖어서는. (웃음)
퍼 : 감격 정도가 아닐 거 같은데요. 불과 몇 달 전까지 자기가 인천까지 가서 500석이나 되는 규모의 공연을, 보는 게 아니라 연기하게 될 거라고 누가 생각해봤겠어요. 그럼 이 공연 말고도 지금까지 아마추어 배우들 모집해서 다른 거 해본 적 있으신 건가요?
오 : 아니, 이번이 처음이에요.
퍼 : 시도는 어떻게 해보시게 된 거에요?
오 : 음, 실험적인 거죠. 간드락이 가진 여건 속에서 해볼 수 있는 건 다 해보고 싶어서요. 또 배우가 아마추어라면 새로운 관객도 생겨나고 새롭게 찾아오는 사람들이 생길 것 같았고요.
퍼 : 그렇기도 하겠네요.
오 : 또 간드락은 전문적인 배우, 일부 사람들만 공유하는 공간이 아니라는 것도 알리고 싶더라고요. 연극이라고 하면 다들 고리타분하고 어렵게 생각하는데 ‘아니다, 이런 것도 있다’ 하면서 쉽다고 얘기하고 싶기도 하고.
퍼 : 연극 보고 나서 사람들이 배우들이 아마추어였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그럼 나도 한 번 해볼 수 있나?! 할 수도 있잖아요. 그것도 노리신 거예요?
오 : (웃음) 그렇죠. 그걸 제일 원하고 있어요! 근데 또 곰곰이 생각해보면 내가 어릴 때 배우하고 싶어서 이렇게 극장 운영도 하게 되고 이런 시도도 해보게 된 거 같단 생각이 드네요.
퍼 : 오! 어릴 때 배우하고 싶으셨어요?
오 : 응. 어릴 때. 욕심이 많아서 다양한 삶을 많이 살아보고 싶은 생각에요, 배우를 하면 현실은 아니지만 내가 역할을 통해서 뭐랄까, 공주에서부터 거지까지? 내가 모든 걸 체험해볼 수가 있겠다 싶었지요.
퍼 : 어린 시절부터 이미 ‘체험’이란 것에 관심이 있으셨네요.
오 : 그냥 흉내만 내는 게 아니라 그 처지가 뭔지 알아야 연기할 수 있는 것 같아서 배우가 하고 싶었어요. 그랬던 내면의 욕망이 있었기 때문에 이걸 한다고 하지 않았나 싶어지네요.
퍼 : 정말 신기하네요. 저는 어렸을 때 기자하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지금 이렇게 인터뷰 하고 있는 건가. (웃음)
오 : 이번에 <애벌레의 꿈> 준비할 때 배우들이 아마추어다보니 처음에 좀 답답한 데가 있었는데 나도 모르게 ‘이렇게 발성을 해보라’고 하면서 지도를 하고 있는 거예요 내가. 그거 보더니 연출이 ‘대표님, 연기하셨었어요?’ 하더라고. ‘연기는 개뿔, 나는 전혀 해본 적 없어,’ 그랬었는데..
퍼 : 왜 배우 안하셨어요?
오 : 그러게. 삶이 바빠서죠 뭐. (웃음)
퍼 : 아까, 이런 공간이 유지되어야 하는 이유에 ‘좋으니깐!’이라고 단번에 말씀하셨잖아요. 사람들이랑 같이 이런 활동들 하고 뭔가 마음과 마음이 전해진다는 교감이 될 때, 마음이 막 좋으세요?
오 : 당연히 거기선 정말 행복하죠.
퍼 : 행복한 마음이 드는 것, 그게 이 일을 계속 하게 만드는 힘인 가요?
오 : 네. 그리고 또 정말 감사하고요. 내가 생각하는 것을 누군가도 원하고 있었구나, 원하는 걸 채워주고 그 사람도 좋아하고 기뻐하고, 나 역시도 그걸 좋아하고, 서로가 서로의 모습을 통해서 만족하는 거? 서로가 서로를 보면서 너무나도 행복해지는 거죠.
퍼 : 그런 행복에서 ‘아 세상은 아직 살만해’ 하는 뭐 그런 용기 같은 게 생기기도 하잖아요.
오 : 그러니까요. 나는 테러J가 처음에 이걸 시작할 때 했던 말이 언제 들어도 참 좋아요. ‘우리가 살고 있는 제주도는 아름다운 섬이니까 아름다운 섬에는 아름다운 사람들이 살아야 합니다, 아름다운 사람을 위해선 아름다운 영혼이, 아름다운 영혼을 위해선 아름다운 문화가 있어야 합니다.’
퍼 : 그 말 극장 입구에 붙어 있잖아요. 저도 처음에 읽어보고 훈훈했어요.
오 : 나는 내가 살고 있는 땅이 정말 소중한데. 그러면 나만 살고 말게 아니라 지금 내 밑에 애들이 얼마나 많은데, 이 애들도 이 아름다움을 알아야 하잖아요. 그러니까 나는 이걸 아름답게 더 오래 지켜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퍼 : 그렇죠.
오 : 이 아름다움을 지켜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좀 더 많다면 우리가 가진 아름다움이 조금이라도, 한 해라도 더 유지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심정에 좀 더 절박해요. 그러면서 하다보니까 통하는 사람 하나 만나면 행복하고요, ‘아 이봐! 이거 계속 해야 한단 말이야’ 이러면서 계속 가는 거죠. (웃음)
간드락의 꿈
퍼 : 두 번째, 세 번째 자파리 팀 얘기도 그렇고, 계속해서 이 땅을 살아갈 사람들 얘기도 그렇고. 그래서 간드락 소극장에서 청소년이나 젊은이들이 활동할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아지길 바라고 계시는 건가 봐요.
오 : 그렇기도 하고, 지금 엄마 아빠들은 모르는 게 없어서 본인들 못 해본 것들, 아이들한테 시키면서 애들이 너무 홍수 속에서 사는 것 같아요.
퍼 : 아이들한텐 그렇게 쏟아 붇게 되면 오히려 독이 될 거 같기도 해요. 이것저것 손대본 건 많은데 진짜 알고 있는 것,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으니까요.
오 : 중 고등학교 때 다들 방황을 겪기 마련이잖아요. 근데 그렇게 부모의 강요에 몰아치는 교육의 홍수 속에선 경험들이 막연해지고 정작 마음 둘 곳이 필요할 때 그런 곳을 찾기도 어렵죠. 결국 애들은 자기 옆에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다고 느끼고. 그럴 땐 부모도 옆에 없는 거고 결국 친군데, 요즘은 그 친구 또한 마찬가지잖아요.
퍼 : 여기 근처에 학교 많죠? 청소년들이 많이 오는 편이에요?
오 : 응, 많죠. 근데 얘들이 여기서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까 싶어요. 숨어서 담배 피러 들어오는 것 말고 여기서 놀다 가면 좋겠어요. 그래도 작년 겨울부턴 재작년에 비해서 한 사람, 두 사람씩, 학생들이 와주기 시작하고 있지요.
퍼 : 올해 계획하고 계신 게 있나요?
오 : 하고 싶은 게 일단, ‘청소년 아트 프리마켓’. 주는 청소년이지만 연령에 관계없이 진행을 하고 싶어요. ‘거기에 가면 정말 재밌는 꺼리가 있어‘,’거기에 가면 누가 가라고 하거나, 혼내거나, 눈치 주는 게 아니라 극장 안이나 마당에서 그 어떤 것이든 해보고 싶은 대로 해볼 수 있어‘ 라고 생각하며 찾아오는 장소가 돼주고 싶지요.
퍼: 오.
오: 그런 경험들을 통해서 아이들이 나도 무언가를 스스로 할 수 있다는 활력을 얻었으면 해요.
퍼 : ‘청소년 아트 프리마켓’은 어떻게 운영되나요?
오 : 안 쓰는 물건 가져와서 그냥 저가에 판매하는 거 말고 내가 가지고 있는 솜씨, 사소한 거라도 남들이 가지고 있지 못한 부분이 있을 수 있으니까 저는 그걸 끄집어내서 키워낼 수 있게 되는 장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숨어있는 재주꾼 아이들을 만나보고 싶기도 하고요.
퍼 : 아, 자기가 가진 재주를 파는 장이 되겠네요.
오 : 춘천 마임축제처럼 작가들이 직접 만든 거 가지고 나와서 보여주거나 그 자리에서 직접 만들어주기도 하면서 서로의 작업에 대해 이야기하고, 다양한 사고방식을 경험해보면 좋겠죠.
퍼 : 청소년 때는 특히 ‘자기’를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크잖아요. 잘하는 거 알아줬으면 좋겠고, 자기 좀 봐줬으면 좋겠고. 애들이 좋아할 거 같아요.
오 : 청소년 뿐 아니라 어른들도 마찬가지예요. 서로, ‘이거 재밌지 않냐?’하면서 공유하고, ‘난 이거 하면 재밌더라. 너도 한 번 해봐’, ‘응? 나도 해보니깐 재미나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즐거워지는 게 아니겠어요. 그러다보면 각자의 우물에만 고여 있던 생각이나 고집에서 좀 더 벗어날 수 있는 계기도 되고요.
퍼 : 그렇죠.
오 : 이런 것들이 더 풍성해져서 제주도가 예술가들의 등단의 장이 되는 희망을 가지고 있긴 한데 그건 내 힘으로는 안 될 거 같고..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다보면 좀 더 가까워지지 않을까요? 어린 아이들한테 펼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 주변 예술가들이나 다른 사람들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 그게 내 역할이라고 생각하면서 하고 있죠.
퍼 : 아트 프리마켓 말고 혹시 다른 계획들도 있어요?
오 : 음. 가능하다면 쉼터의 아이들이나 뭔가 마음이 힘들다고 하는 일반 가정의 아이들의 마음을 다독일 수 있는 프로그램도 하고 싶어요. 연극적인 방식으로. 이건 육지에서 선생님을 불러야 되죠.
퍼 : 그렇겠어요. 경험 많은 선생님이 필요하겠네요.
오 : 또 영화나 그 외 다른 분야라도 아이들이 관심을 보이면 같이 그 분야 워크숍도 진행해보려고 하고 있고요. 부모나 애들이나 시간을 좀 할애해 준다고 하면 여름 방학 때나 겨울 방학 때 애들을 위한 캠프 같은 것도 열어주고 싶고.
퍼 : 하고 싶은 일들이 많으시군요.
오 : 예술이라는 건 경험으로 습득되어야 표현할 수가 있는 거잖아요. 어렵게, 하나하나 과정을 겪어내면서. 요즘은 대중예술이 과잉되어있어서 겉모습만 보고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큰 것 같아 보여요. 거쳐야 하는 과정이 반드시 있는데 그냥 쉽게, 뚝딱뚝딱 하면 될 것처럼 여겨서. 아이들이 그런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걸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죠.
퍼 : 자파리 연구소 작품들은 창작극이기도 하고 소품도 거의 대부분 직접 만드는 거죠?
오 : 네. 직접 제작하지요. 우린 새로운 작품 할 때 홍보 DM 발송하거든요. 그럴 때도 조그만 거 하나라 손으로 작업해서 보내고 있어요. 간드락 소극장이 추구하는 바를 보여줄 수 있으니까요. 각자 가지고 있는 재주가 있으면 이렇게 자기 솜씨로 색칠하기도 하고, 이것도 도와주는 친구가 있으니까 가능한 거지만.
퍼 : 예전엔 어떻게 했었는데요?
오 : 자파리 팀 같은 경우엔, 은미(자파리 멤버)나 그 팀원들이 많이 했죠. 그릴 시간 없으면 종이 잘라서 붙이기도 하고. 이렇게 하면 DM 받은 분들이 그냥 무심코 버릴 수가 없다고 하시더라고요들. 손으로 쓰고 그러면 한 번은 더 보게 된다면서. 전에 어떤 분은 이런 거 해줘서 너무 감동을 받아서 반드시 열어보게 된다고도 하시고요.
퍼 : 그러게요. 간드락이 추구하는 감정이나 정서가 알게 모르게 전달 될 것 같아요. 그래서 또 사람들이 간드락이라면 이걸 할 수 있겠다 싶은 기대감을 가지고 찾아올 수도 있고.
오 : 그렇죠. 그렇게들 찾아오기도 하죠.
퍼 : 사람이 사는데 뭐가 중요한 거 같다고 보세요?
오 : 글쎄. 그건 내가 추구하는 거하고 사람들이 각자 추구하는 건 정말 다르기 때문에.
퍼 : 그냥 대표님께서. 내가 이런 마음을 잃어버리면 내가 너무 힘들다 싶은 게 있으세요?
오 : 굳이 한 마디로 하면 사랑? 사랑하는 마음? 대상은 사람일 수도 있고 사물일 수도 있고. 내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것들에 대한 사랑의 마음. 그게 없으면 안 될 거 같아요. 사랑이란 단어로 딱 부러지게 말할 수 있다기보다 그런 감정인 거 같아.
‘변방’ 제주도 땅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과 같이 즐겁고 같이 기쁘고 싶어 문화를 나누고자 했던 간절함에서 시작된 간드락 소극장은 제주의 것이자 기꺼이 같이 즐겁고 같이 기뻐해준 지역 사람들의 것이기도 하고 기뻐하는 사람들을 보고 지금도 또 다른 꿈을 꾸고 있을 오순희의 것이기도 했다.
사람들은 되도록 자기가 살아가고 있는 그 터전에서 계속 머물기를 바란다. 그래서 떠나는 것을 고민하지 않을 수 있도록 씨앗을 뿌리고 물과 거름을 주고 볕도 쪼이고 하며 척박해지지 않도록 터전을 일군다. 터전이 점점 풍요로워질 때, 일상을 대하는 마음에는 자연스레 좀 더 편안하고 살만하다는 느낌이 스며들 것이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자꾸 모인다. 서로 보고 듣고 느끼며 터전을 풍요로울 수 있게 하는 다른 존재들, 그들을 만날 수 있는 장소들을 찾아서.
때문에 그런 ‘장소’가 되어주는 ‘소극장’은 단순히 연극이나 콘서트를 볼 수 있는 작은 물리적 공간만이 아닌 큰 ‘뿌리’이다. 내가 처음에 간드락을 찾았던 것처럼, 이런저런 경험을 해보고 친구들을 만나고 하며 일상을 가꾸고픈 소망들이 극장으로 모여 들어 뿌리를 내리면서 삶은 지탱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