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면 항상 냉동실에 떡 하니 자리를 잡고 있던 얼린 야쿠르트. 그 야쿠르트 하나 꺼내 먹는 맛에 살았던 시절. 그 맛은 정말, 캬아! 엄마랑 목욕탕 다녀오는 길에 먹었던 야쿠르트의 그 달콤함. 그 맛은 정말, 캬아! 뒤집어놓은 야쿠르트 껍질을 이빨로 까서, 쪽쪽 빨아먹는 그 맛은 정말, 캬아! 어린 시절 나의 간식 0순위였던 야쿠르트는 내 일상의 한 부분이었다. 그리고 그 야쿠르트를 매일 가져다주시던 야쿠르트 아줌마도.
궁금했다, 그런 야쿠르트 아줌마가. 어렸을 때부터 늘 보아왔던 야쿠르트 아줌마는 분명 나와 상관없는 남이었지만 왠지 항상 친근하게 느껴졌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야쿠르트 아줌마는 노란 유니폼을 입고, 노란 캐리카와 함께 항상 같은 자리에 있었다. 비단 내가 사는 동네뿐만이 아니라, 전국 방방곡곡에 왠지 우리 엄마와 비슷하게 생긴 야쿠르트 아줌마들이 항상 있었다.
그토록 낯익지만 정작 실체는 알지 못 하는 야쿠르트 아줌마에 대한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야쿠르트 아줌마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그렇게 만난 분이 야쿠르트 아줌마, 방순분 씨. 20년 전, 내가 창신동에 살았던 시절 동네 주민이었던 일명 ‘민주 언니네 아줌마.’ 20년 가까이 연락이 끊겼던 우리의 인연은 3년 전 창동역 근처에서 우리 엄마가 우연히 아줌마를 발견하면서 다시 시작되었다.
눈이 많이 왔던 어느 토요일 오전, 나는 20여 년 만에 아줌마를 다시 만났다. 눈이 꽤 많이 쌓였던 탓에 살짝 걱정을 하는 나와 달리, 눈이 오니 따뜻해서 좋다는 아줌마. 야쿠르트 배달에 동행한 2시간여의 시간 동안 꽤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아침 일찍 배드민턴을 치고 오시는 할머니, 저번에 수금해주는 것을 깜박했다며 일부러 돈을 가져다주시는 할머니, 지난 며칠 몸살을 앓았다고 하는 젊은 애기 엄마.
처음 보는 야쿠르트 배달 광경은 자못 흥미로웠다. 집집마다 야쿠르트를 놓는 장소와 배달 방법이 각기 달랐다. 대부분은 야쿠르트 주머니에 넣어두지만, 어떤 집은 직접 집 안에 가져다주기도, 현관문에 난 구멍으로 넣어주는 경우도 있었다. 아파트에서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얼마나 효율적으로 배달 시간을 줄일 수 있는지에 대한 노하우도 확인할 수 있었다.
다음 날 나는 조금 더 긴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우리 집으로 아줌마를 초대했다. 식탁에 앉아 간단한 과일을 먹으며 했던 첫 대화는, 몇 년 전 시집 간 아줌마의 외동딸, 민주 언니에 관한 것이었다. 휴대폰 바탕 화면에 예쁘게 웃고 있는 두 손녀딸의 이야기도 빼놓지 않으셨다. 직업 군인인 사위 때문에 현재 강릉에 살고 있어, 자주 얼굴을 보지 못해 조금 서운하다는 아줌마는 곧, 특유의 씩씩함으로 인터뷰를 이어갔다.
1. 야쿠르트 ‘여사님’
퍼슨웹(이하 ‘퍼’): 어제 보니까, 야쿠르트 아줌마들끼리 서로 ‘여사님’이라고 부르시던데?
방순분 야쿠르트 아줌마(이하 ‘방’): 대리점 안에서는 나이에 상관없이 서로 여사님이라고 불러. 물론 고객들은 나한테 ‘아줌마, 야쿠르트 아줌마’라고 부르지.
퍼: 저도 여사님이라는 호칭은 조금 생소하거든요.
방: 그러니까, 사람들은 그 호칭 몰라. 나도 야쿠르트 아줌마라고 불리는 게 편해. 우리 대리점에서 일하는 야쿠르트 아줌마가 20명 정도 있거든? 각각 한 지역 씩 맡고 있는데, ’17지구 여사님, 15지구 여사님’ 이렇게 불러.
퍼: 여사님이라고 부르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방: 글쎄, 특별한 이유는 잘 모르겠고. 처음에 교육 받을 때 그렇게 받았으니까. 아마 우리끼리라도 조금 존중해주자는 의미가 아닐까 싶은데.
퍼: 그런 것 같아요.
방: 나는 종종 장난으로 할멈으로도 불려. 손녀가 있어서. (웃음)
퍼: 야쿠르트 아줌마들은 아침 일찍 배달을 다니시잖아요. 몇 시부터 몇 시까지 배달을 하시는 거예요?
방: 보통 집에서 오전 6시 좀 넘어서 나와서 오후 5시까지 일 해. 여름에는 7시까지 할 때도 있고.
퍼: 하루종일 일하시는 거네요. 배달은 오전 시간에 하시나요?
방: 응. 점심시간 전에 배달은 보통 다 마치고. 그 이후로는 판매를 또 하지.
퍼: 배달과 판매를 동시에 하시니까. 그럼 하루에 걷는 양도 꽤 되겠어요.
방: 응. 저번에 내가 안 그래도 궁금해서 만보기를 차고 나왔었거든. 그 때 기록이 한 7000보정도 되더라고. 나는 다른 아줌마들에 비해서 많이 걷는 편은 아니야.
퍼: 그래도 매일 꾸준히 그렇게 걷다보면, 저절로 건강관리가 되겠어요.
방: 아무래도 체력이 좀 좋아져. 이 일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는 진짜 힘들더라고. 그런데 요새는 건강해졌다는 것을 나 스스로 느낄 정도야.
퍼: 맨 처음에 야쿠르트 아줌마는 어떻게 시작하셨어요?
방: 그 때 상황이 돈은 벌어야 되는데, 딱히 내 입장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더라고.
퍼: 아무래도 엄마들이 막상 돈을 벌어야겠다고 생각하고 나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면 그 범위가 좀 제한적이죠.
방: 현실적으로 그게 사실이지. 그런 면에서 야쿠르트 아줌마는 우리 엄마들이 그런 상황에 닥쳤을 때 한번쯤은 생각해 봄직한 직업이거든.
퍼: 야쿠르트 아줌마는 미혼 여성은 할 수 없는 직업이라는 점이 한 몫 하겠네요.
방: 맞아. 결혼 안 한 사람은 야쿠르트 아줌마 못 해. 하지만 싱글 맘은 당연히 할 수 있고.
퍼: 2000년대 대형마트들이 많이 생겨나면서 아줌마들의 일자리가 함께 창출되었다고는 하지만, ‘야쿠르트 아줌마’와 같이 어떤 상징적 의미를 갖지는 못하는 것 같아요.
방: 아무래도 그렇지. 그 대형마트들의 채용 조건이 딱히 아줌마여야 한다는 것은 아니니까.
퍼: 요즘은 하도 청년 실업난이 심하니까 제 또래의 젊은 사람들도 계산원으로 일하더라고요.
방: 그래서 아마 내가 야쿠르트 아줌마를 생각해 낸 것 같아. 또 내가 어디 얽매이는 것을 좀 싫어하거든.
퍼: 야쿠르트 아줌마 일은 어떻게 알아보셨어요?
방: 내가 중계동 살 때 그 동네 야쿠르트 아줌마한테 물어봤어. 이 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퍼: 그래서 그 야쿠르트 아줌마가 일을 소개시켜주신 거예요?
방: 자기가 일하고 있는 중계 대리점을 소개해 주더라고. 그런데 거기는 대리점이 아니라 직매소였어.
퍼: 대리점하고 직매소가 다른 개념인가요?
방: 직매소는 본사에서 관리하는 곳이고, 대리점은 사장이 따로 있는 거야.
퍼: 다 다르구나.
방: 그렇게 중계동에서 한 6개월 정도 일했어. 그런데 그 지역에 오르막길이 많거든. 그래서 너무 힘이 드는 거야. 그것 때문에 중간에 좀 아팠어.
퍼: 어디가 많이 아프셨어요?
방: 응, 자궁내막증 수술 받았어. 그래서 한동안 쉬다가 다시, 지금 일하고 있는 창동 상천대리점으로 왔어.
퍼: 중간에 그렇게 아프셨는데도, 이 일을 다시 시작한 이유가 있나요?
방: 이 일이 힘들고 어려운 건 사실이야. 그런데 재미도 있어. (웃음) 따지고 보면 세상에 안 힘든 일이 있나?
퍼: 그렇죠. 이 일의 어떤 점이 특히 재미있으세요?
방: 사람들 만나서 이야기하고 그렇게 지내는 것이 좋아. 특히 내가 할머니들한테 인기가 좀 있지. (웃음)
퍼: (웃음) 안 그래도 어제 보니까, 할머니들이 아줌마를 참 좋아하시더라고요.
방: 내가 인기가 좀 많아. (웃음) 이 일을 하면서 느끼는 건데, 야쿠르트 아줌마들은 친절해야 해!
퍼: 그렇죠. 친절은 야쿠르트 아줌마의 상징이니까요.
방: 아침에 신랑하고 좀 싸우고 나왔어도, 사람들 만나서는 허허 웃어야 해. 아침부터 나 기분 나쁘다고 다른 사람들한테 인상을 쓸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퍼: 그렇게 곤란한 때가 있더라고요.
방: 처음에는 그런 점이 좀 힘들더라고, 그런 상황에 익숙하지 않았었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적응해서 괜찮아졌어.
2. 초보 야쿠르트 아줌마와 캐리카
퍼: 처음에 일을 시작하면서 다른 힘든 점은 없으셨어요?
방: 처음에는 ‘캐리카’ 끌고 다니면서 야쿠르트도 많이 쏟았지.
퍼: 아, 그 끌고 다니시는 수레를 ‘캐리카’라고 불러요?
방: 응, 우리는 ‘캐리카’라고 불러. 그거 끄는 게 보통 일이 아니더라고.
퍼: 많이 무겁죠?
방: 처음에는 힘 조절이 잘 안되니까 힘들더라고. 온 몸에 힘을 주고 다니니까 팔, 다리, 허리, 안 아픈 데가 없었어. 운전이 미숙해서 길거리에서 야쿠르트니 에이스니 다 쏟고.
퍼: 그럴 때는 진짜 당황스럽잖아요.
방: 당연하지, 힘도 빠지고. 그런데 지나가는 사람들이 막 ‘아줌마 여기요’하면서 야쿠르트 주워 담는 거 도와주고 그랬어.
퍼: 참 고맙죠, 그런 사람들은. 그럼 캐리카 운전에 능숙해지기까지는 시간이 얼마나 걸리셨어요?
방: 한 4개월 정도 걸리더라. 그나마 손에 좀 익는 데까지. 중심도 딱 잡고 그래야 끌기가 쉬워. 이게 뒤로 중심이 쏠리면 세울 때 뒤로 자빠져버려. 그러니까 일단 뒤가 무거우면 안 되더라고.
퍼: 경험을 통해 노하우를 터득하셨네요. 그럼 이제 손목 아프신 것도 좀 덜하시겠어요?
방: 응, 확실히 덜하지. 이제는 요령이 생겨서, 캐리카 중심을 딱 잡고 그냥 따라만 가면 돼.
퍼: 어제 보니까 캐리카를 끌고 다니시는 길이 다 정해져 있는 거 같더라고요.
방: 다 정해져있어. 아무 데로나 다니면 안 되지. 다닐 때도 항상 길가로만 다녀야 해.
퍼: 마치 주차장에 항상 내 차를 세우는 자리가 있듯이, 캐리카도 딱 정해놓은 자리에 세워놓으시던데.
방: 최대한 사람들이 다니는 길 불편하지 않게 해야지. 또 딱 정해진 자리에 세워놓아야, 손님들이 거기로 야쿠르트도 사러오고 그러거든.
퍼: 제가 예전부터 이 캐리카에 대해 궁금했던 점이 있었어요. 캐리카만 세워놓고 배달 가시면 물건이 없어지거나 하지 않아요? 가끔씩 아줌마는 없고 캐리카만 덩그마니 놓여있는 풍경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하곤 했어요.
방: 아직 그런 적은 한 번도 없었어. 이런 경우는 있었다. 작년에 비가 진짜 많이 왔던 날이 있었어. 하나로 마트에서 점심 먹고 커피 한 잔 마시고 있는데, 고객한테 전화가 온 거야. 지금 캐리카 쓰러져서 물건들이 다 쏟아지고 난리가 났다고 빨리 와보라고.
퍼: 비까지 오는데, 진짜 설상가상이네요.
방: 비바람에 캐리카가 쓰러졌던 거지. 물건은 많이 없어지지 않았어. 누가 훔치려고 그런 게 아니라, 비바람에 그렇게 된 것이니까.
퍼: 어제처럼 눈이 오는 날이나 장마철에는 배달하시기가 더 힘드시죠?
방: 당연하지, 말해 뭐해. 여름에는 시원한 상태로 배달을 해줘야 하니까 통에 얼음도 같이 넣거든. 그래서 무게가 훨씬 더 나가.
퍼: 그런데 거기에 비까지 많이 오면 정말 몸이 천근만근이겠어요.
방: 진짜 힘들지. 그래서 여름에는 살이 지금보다 2㎏ 정도 더 빠져. 겨울이 되면 다시 조금 살이 찌고. 그런데 살이 찌면 내가 몸이 둔해서 싫더라고.
퍼: 그러고 보면 희한하게 야쿠르트 아줌마의 캐리카에서 무엇인가를 훔쳤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착한 것일까요? (웃음)
방: (웃음) 그런가? 가끔씩 캐리카에 있는 통을 깜박하고 안 잠그고 배달을 갈 때가 있어. 그럴 때는 통에서 없어진 야쿠르트 개수만큼 누가 돈을 놓고 가.
퍼: 누구인지 아시고요?
방: 나중에 그 사람을 다시 만나면 저번에 자신이 돈 놓고 갔었다고 직접 말하지.
퍼: 아,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렇게만 양심적으로 돈 거래하면 진짜 공정하고 깨끗한 사회가 될 수 있겠다. 공익광고 따로 할 필요도 없이! (웃음)
방: 그런데 설사 야쿠르트가 없어졌다고 해도, 나는 뭐 화를 내고 그러지는 않을 것 같아. 물론 처음에는 속상하겠지만, ‘얼마나 먹고 싶었으면 그랬을까.’하고 생각하면 말이야.
퍼: 저만 그렇게 느끼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왠지 야쿠르트 아줌마 캐리카는 야쿠르트 아줌마만이 만지는 물건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게 다가서기가 어렵다는 뜻이 아니라, 캐리카를 온전히 아줌마의 소유물로 당연하다는 듯 인정하는 것이죠. 알게 모르게 그런 인식이 생긴 것 같아요.
방: 그런데 캐리카에 있는 물건 말고, 가끔씩 배달해 놓은 물건이 없어지는 경우는 있어. 일 끝나고 대리점에 여사님들 모이면 그런 소리들 해.
퍼: 배달 주머니에 넣어놓은 야쿠르트가요?
방: 응, 특히 여름․겨울 방학 때는 아침에 애들이 학교를 안 가니까. 우유나 그런 게 없어지는 경우가 있어.
퍼: 그럼 아줌마가 그 상황에 대해서 직접 수습하셔야 하지 않아요?
방: 그렇지. 나는 분명히 배달을 했는데, 물건을 못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속상하지. 3년 넘게 일하는 동안에는 전혀 그런 일이 없었거든.
퍼: 배달을 빼먹지는 않으실 테니까요.
방: 절대로 그런 일은 없지. 설령 배달을 하다가 깜박하면, 나중에라도 꼭 물건을 넣으니까. 아! 그리고 얼마 전부터는 회사에서 모바일 폰을 한 대씩 지급해줬어. 그때그때 그걸로 고객관리를 하거든. 그러니 빼먹거나 하는 그런 일은 절대 없지.
3. 야쿠르트 배달 중입니다
퍼: 어제 잠깐 아줌마를 따라다니면서 느낀 건데, 생각보다 배달하는 방법이나 배달하는 제품들이 상당히 복잡하던데요?
방: 생각보다 복잡하지? 그게 집집마다 먹는 종류나 요일도 다 다르고. 또 배달할 때 제품을 어디에 놓아 달라고 하는 조건이 다 달라.
퍼: 야쿠르트는 야쿠르트 주머니에 넣는 거 아니에요?
방: 어떤 집은 문 옆에 폐휴지 통 위에 놓기도 하고, 현관문 구멍에 넣어두기도 하고, 우편함에 놓기도 하고 그래. 다 달라.
퍼: 그런 것들을 일일이 다 기억하시려면 안 힘드세요? 제품 종류가 부쩍 많아진 것 같더라고요.
방: 그래서 요즘은 특히 더 배달할 때 물건이 엄한 데로 가지 않게 집중해서 챙겨야 해. 저지방인지, 그냥인지. 슈퍼100같은 경우는 맛이 종류 별로 얼마나 다양한지. 그것도 다 일일이 확인해서 챙기고.
퍼: 생각보다 복잡했어요, 진짜.
방: 그렇다니까. 아줌마가 하는 일이라고 얕잡아보면 안 돼, 야. 이 야쿠르트 아줌마라는 직업은, 한 마디로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돼!
퍼: 가만히 보면, 이래저래 야쿠르트 아줌마는 에너지 소모가 상당한 것 같아요.
방: 그렇지. 움직이는 양도 많고. 또 말은 얼마나 많이 하는 줄 아니?
퍼: 만나는 사람마다 인사하고, 또 제품에 대해 물어보면 일일이 설명해 주고 하시더라고요.
방: 그렇다니까. 내가 아침 6시에 밥을 한 두 숟가락 정도 먹고 나오거든. 정신이 없어서 잘 못 챙겨먹어. 그러고 나면 한 9시만 되도 얼마나 배가 고픈지. 그래서 나도 내 몸 챙기느라고 이것저것 잘 챙겨먹어.
퍼: 아줌마는 이 일을 시작하시면서 좋은 음식에 관심이 생기신 거예요?
방: 아니, 나는 원래 아가씨 때부터 내 몸을 잘 챙기는 편이었어. 다른 데에는 투자 못 하더라도 내 건강을 위한 음식에는 잘 안 아꼈지.
퍼: 잘 하시는 거예요! 우리 엄마들은 자식들 실컷 좋은 것 먹이고, 정작 당신들 몸은 소홀히 생각하시잖아요. 그런 것 보면 속상하고 그래서 화도 나고.
방: 나는 절대 아니야! 나는 내 건강이 중요하니까. 엄마들도 원래는 이러는 게 맞아. 그래서 물론 물건을 팔아야하는 면도 없지 않지만, 꼭 나 같아서 비타민 제품들을 진심으로 권하기도 하고 그래. 또 그 제품들에 대해 공부해서 그 효과들도 설명해주고.
퍼: 공부도 따로 하시는 거예요?
방: 그럼! 회사에서 나오는 책자랑 또 혼자 따로 공부도 하지. 그런데 무엇보다 좋은 공부는 일단 먹어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전달해 주는 거야. 이론적으로는 뭐가 어디에 좋다고 해도, 사람들이 실제로 느낀 이야기가 더 효과적이니까.
퍼: 먼저 먹어본 사람들이 효과를 봤다고 아줌마한테 직접 말해요?
방: 아니, 내가 물어보지. 먹어보니 어떻더냐고. 이런 점들이 나아졌다 말하면, 나는 그걸 기억해뒀다가 다른 사람들한테 물건 팔 때 또 덧붙여서 이야기 해주고.
퍼: 먹는 것이어서 경기를 좀 타지 않아요?
방: 아무래도 그렇지. 경기가 어려워지면 제일 먼저 먹는 것을 줄이니까. 아무래도 경제 상황이 안 좋으면 매출이 눈에 띠게 줄어.
퍼: 저희 집도 어느 날 엄마가 야쿠르트 개수와 제품 종류를 줄이시더라고요.
방: 엄마들 입장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어. 그런데 오히려 야쿠르트는 계절을 더 잘 타.
퍼: 아무래도 더울 때 마실 것을 더 많이 찾게 되니까요?
방: 그치. 너무 더운 여름이나 겨울에는 잘 안 나가. 그런데 그게 또 당연하잖아. 겨울에 추운데 누가 이거 먹겠어. 내가 아무리 야쿠르트 아줌마지만 이해가 가지. 어쨌든 여름이 훨씬 나아.
퍼: 요즘은 그럼 좀 안 나가는 시기이겠네요?
방: 12, 1, 2월에는 좀 주춤했다가 3월이 되면 다시 쭉 올라가.
퍼: 다음 주면 말일인데, 곧 수금도 하러 다니셔야겠네요.
방: 그러니까 네가 날짜를 잘 맞춰서 인터뷰 하는 거야. 다음 주였으면 야, 바빠서 나 따라다니지도 못했어. 수금할 때는 더 집중해야 하니까. 딴 곳에 신경을 못 쓰거든.
퍼: 제가 좀 타이밍이 좋았죠? 수금할 때 특별히 어려운 점은 없으세요?
방: 수금이 돈에 관련된 거잖아. 사람들이 돈에는 좀 민감하니까. 아무래도 다른 때보다 신경이 더 쓰이지. 100원이라도 계산이 잘못되면 안 되니까!
퍼: 사람들이 돈 앞에서는 참 속이 좁아지는 경향이 있어요.
방: 게다가 영수증 돌리고, 수금하고, 또 그 내역 모바일 폰에 다 입력해서 보고하고 해야 해. 조금 복잡하기는 한데, 특별히 힘들지는 않아. 그것도 다 내 일이니까.
퍼: 모바일 폰은 그럼 언제부터 지급된 거예요?
방: 작년부터. 아줌마들한테 싹 지급되었지.
퍼: 모바일 폰이 지급되고 나서, 일이 더 편해지셨나요?
방: 아직 터치는 익숙하지 않지만, 아무래도 고객정보를 거기에 싹 저장해놓으니까. 그 때 그 때 현황도 확인하고, 편하기는 하지.
퍼: 그럼 모바일 폰처럼 앞으로 아줌마가 조금 더 편하게 일하기 위해서, 개선되었으면 하는 점은 없나요?
방: 글쎄… 겨울에 우리한테 지급되는 동복이 생각보다 진짜 얇아. 우리는 거의 밖에서 일을 하니까, 겨울에는 진짜 춥거든. 그래서 동복이 좀 따뜻했으면 좋겠어.
퍼: 문득 드는 궁금증인데요. 야쿠르트 아줌마는 상품을 판매한다는 점, 그것도 방문 판매를 한다는 점에서 보험 아줌마와 공통점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그 느낌 자체는 많이 다르거든요. 아줌마 생각은 어떠세요?
방: 내가 보기에 보험 아줌마나 우리나 물건을 판다는 점에서, 별로 큰 차이가 없는 것 같아. 왜냐면 그네나 우리나 끈질겨야 하거든. 한 번 만나고 두 번 만나고 계속 만나서 판매를 해야 해. 보험 아줌마들도 그러고 보면 참 대단한 거지.
퍼: 아. 그래도 뭔가 그 대상의 범위가 달라서 그런가? 야쿠르트는 남녀노소 누구나 먹을 수 있고. 보험은 보험을 필요로 하는 대상이 일정하게 정해져 있으니까. 친근함의 정도랄까? 그런 게 좀 다른 것 같아요.
방: 그러고 보니, 야쿠르트는 먹는 것인데 보험은 아니니까. 그런 점에서는 분명히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아무래도 보통, 사람들은 먹는 것에 더 친숙함을 느끼지.
4. 야.쿠르트 아줌마, 야.쿠르트 주세요!
퍼: 한국야쿠르트가 40년 정도 됐다고 하던데, 그럼 아줌마 어렸을 때도 야쿠르트가 있었겠네요?
방: 그랬겠지. 그런데 내가 어렸을 때는 못 먹었어. 그때는 야쿠르트에 대한 인식이 별로 없었어.
퍼: 20년 전에 창신동을 누비고 다녔던 야쿠르트 아줌마의 모습에 대해 엄마에게 들은 적이 있어요. 골목에서 다른 아줌마들이랑 같이 어울려서 맛있는 음식 하면 갖고 나와서 배달하다 말고 같이 먹고 이야기도 하고. 더울 때는 시원한 보리차도 같이 마셨던 ‘동네 아줌마’였다고. 2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그런가요?
방: 지금도 그래. 그냥 나는 동네 아줌마야. 야쿠르트 아줌마의 이미지는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어. 여름에 땀 흘리면서 일하는 것 보면 할머니들이 방에 들어와서 시원한 수박 한 조각 먹고 가라고 하시고. 겨울에 추울 때는 따뜻한 커피 한 잔 타주시기도 하고.
퍼: 정말 훈훈하네요.
방: 물론 나한테는 그 분들이 고객이지만, 고객이기만 한 것은 아니야. 참 고맙지. 그렇게 얻어먹고 그러면 내가 미안해져. 물론 그이들은 나한테 무엇을 바라고 그러는 것은 절대 아닌 거 알지.
퍼: 그렇게 낯선 이를 자신의 집으로 스스럼없이 들여서 먹을 것을 나누고, 또 이야기도 나누고. 이게 결코 흔한 풍경은 아닌 것 같아요.
방: 흔하지 않지! 이 일을 하다보면 사람들이 가끔 자신들의 인생 이야기, 자식 이야기를 막 나한테 해. 시댁 흉도 보고, 신랑 흉도 보고. 친구한테 말하듯이.
퍼: 그럼 아줌마는 그걸 다 들어주고 계신 거예요?
방: 다 들어주지! 그러다가 해 줄 말이 생기면 하기도 하고. 그렇게 이야기하다 보면, 배달 시간이 늦어지기도 하고 그래.
퍼: 아줌마 이야기 듣다 보니까 세상에 좋은 사람들 참 많은 것 같아요.
방: 그래! 나도 이 일을 이렇게 하다보니까 느낀 점인데, 세상에 좋은 사람들이 참 많더라고. 왜 요즘 젊은 애기 엄마들이 버릇없다고 하잖아. 그런데 사실 좋은 엄마들이 더 많아.
퍼: 안 그래도 요즘 젊은 애기 엄마들이 조금 이기적인 이미지로 비춰지죠. 실제로 그런 엄마들도 있고요.
방: 아, 물론 그런 엄마들도 실제로 있기는 있어. 그런데 다른 구역은 잘 모르겠는데, 내가 배달하는 구역 젊은 애기 엄마들은 다 착해. 한 젊은 애기 엄마는 시골에서 시어머니가 돌아가시고, 혼자 남은 시아버지 자기가 모시고 산다기에, 정말 고맙다고 내가 어깨를 두드려줬어.
퍼: 그 젊은 애기 엄마가 기특해서요?
방: 그렇지! 요즘은 조금만 힘들면 노인네들 다 요양원에 보내버리는 세상인데, 얼마나 고맙니. 그런데 내가 이 일을 하면서 사람들 이야기 들어보면, 사람들이 각자 표현을 안 하고 살아서 그렇지. 한번 이야기보따리 풀어보자 마음먹으면, 사연이 없는 인생은 없더라고.
퍼: 혹시 또 다른 기억에 남는 사연이 있어요?
방: 사실 사람들 이야기를 들으면 나는 그 자리에서 딱 듣고 말아. 절대 말을 안 옮기거든. 또 그러는 것이 맞고.
퍼: 그렇죠.
방: 그래서 나는 말을 더 이상 안 이어나가. 야쿠르트 아줌마들은 항상 입을 조심해야 해! 그래서 사람들이 나한테 그렇게 자기 사연을 쉽게 털어놓는 것 같기도 하고.
퍼: 제가 느끼기에도 그래요. 왠지 아줌마가 사람들의 신문고 역할을 해주시는 느낌이랄까? 그래도 한 개 정도만 이야기 해주시면 안 될까요? (웃음)
방: 음… 시어머니하고 며느리가 같이 사는 집이 있는데, 한번은 시어머니가 나한테 와서 며느리 흉을 보는 거야. 그럴 때는 내가 어머님한테 ‘어휴, 요즘 젊은 사람들이 좀 그래요.’ 이러면서 이야기 실컷 들어드리지.
퍼: 며느리는 시어머니한테 불만 없고요?
방: 왜 없겠냐. 며칠 후에는 또 그 집 며느리가 나한테 와서 짜증나 죽겠다고 그러지. 그럼 난 왜 짜증났냐고 묻고. 며느리 이야기 들어주면서 한 마디씩 하지. 우리는 뭐 나중에 안 늙겠냐고, 아랫사람이 좀 힘들더라도 그냥 이해하고 넘어가라고.
퍼: 아마 그 분들은 실질적인 조언을 바라기보다는, 그 순간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 줄 누군가가 필요한 것 같아요.
방: 알지. 그래서 난 그런 말들 들으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 또 한편으로는 내가 배우거나 새겨둬야 할 이야기들도 가끔 있어. 가슴 찡한 순간들도 있고.
퍼: 이를테면요?
방: 생전 당신 이야기는 입도 뻥끗 안 하시던 할머니 한분이 계셨어. 보통 할머니들은 나보면 이 이야기 저 이야기 먼저 막 해주시거든.
퍼: 자신의 이야기를 잘 안 하는 할머니들이 있죠.
방: 그런데 하루는 할머니가 오시더니, ‘아이고 애기 엄마! 나는 가기 싫은데, 이제 가야 해’ 이러시더라고. 내가 놀래서 물었지, 어디 가시냐고. 그때부터 당신 이야기를 해주시더라고.
퍼: ‘어디를’ 가셔야 한다고 하세요?
방: 할아버지랑 사별하시고, 자식 사업 자금 때문에 들어와 같이 살게 되셨대. 그런데 곧 포천에 있는 요양원에 가게 되셨다고. 당신은 가기 싫은데, 자식들이 원하니 어쩔 수 없이 가야하는 상황이라며 속상해 하시더라고.
퍼: 당연히 많이 속상하셨을 것 같아요.
방: 그러게, 얼마나 속상하셨으면 그러셨을까. 사실 자식에게 흉이 되는 이야기라 남에게 함부로 말할 수도 없으셨을 테니까. 그런 모습 보면 찡하지. 내가 어떻게 도움을 드릴 수도 없는 부분이고.
퍼: 그러고는 떠나셨어요?
방: 응. 작년부터 그 할머니가 안 보이시더라고.
퍼: 아…
방: 그런데 그 할머니가 어디가 아프시거나 그러면 나도 그렇게까지 속상하지는 않았을 텐데. 아침마다 수영도 열심히 다니시고, 건강하셨거든. 그 할머니께서 하셨던 마지막 말이 계속 아프게 남더라고.
퍼: 어떤 말이었는데요?
방: ‘애기 엄마! 난 버려진 거야.’ 이 말이었어. 자식들이 진짜 나쁜 거야. 그건 막말로 싸가지가 없는 것이지!
퍼: 자식들 키워봐야 소용없다는 말이 이래서 나왔나 봐요.
방: 내가 야쿠르트를 하니까 이런 것들도 알 수 있지. 안 했으면 이웃집에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그런 것에 관심이 있었겠나 싶어. 그래서 야쿠르트 아줌마 10년 넘게 하면, 그 집에 숟가락이 몇 개 있는지도 다 알게 된다고 하잖아.
퍼: 동네 사람들한테는 가끔 만나는 친구보다, 매일 만나는 야쿠르트 아줌마가 더 가까운 존재일 것 같아요. 어느새 야쿠르트 아줌마와 서로 일상을, 일상의 한 부분을 나누는 사이가 되었으니까요.
방: 나는 그렇게 생각해도, 그 사람들 마음은 어떨지 잘 모르지. 그래도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들어.
5. 야쿠르트 아줌마의 고충
퍼: 물론 아줌마가 만나는 사람들이 대부분 좋겠지만, 안 그런 사람들도 있잖아요. 워낙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시니까.
방: 당연히 좋은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지. 보면, 자신들이 돈을 주고 사먹으니까 야쿠르트 아줌마는 당연히 이걸 다 해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어.
퍼: 맞아요. 식당에서 서빙하시는 분들께 당연하다는 듯 이것저것 까다롭게 구는 사람들도 있잖아요.
방: 사람에게 ‘당연한 일’이라는 것은 없어! 다 해야 하는 상황이 되니까 하는 것이지. 조금만 내 일처럼 여겨주면 서로가 기분도 좋고 편할 텐데.
퍼: 그러게 말이에요. 이 외에는 특별히 아줌마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은 없었어요?
방: 가끔씩 엉뚱한 아저씨나 할아버지들이 괜히 와서 말 걸 때도 있어.
퍼: 어떻게요?
방: 한 70대 중반 할아버지가 어느 날 오시더니, 여기에서 제일 비싸고 좋은 게 뭐냐고 그러시더라고. 그래서 대답해 드렸더니, 그럼 정력에 좋은 제품은 없냐고.
퍼: 네? 좀 당황스러울 수도 있겠다.
방: 아니, 나는 뭐 쑥스러워서 웃고 그러지 않아. 그럴 필요가 없지. 있는 사실을 그냥 말하면 되는 거니까. 그래서 말씀드렸지! ‘할아버지, 위하고 장이 먼저 다 튼튼해야 정력도 좋은 거예요!’
퍼: (웃음) 역시 야쿠르트 아줌마네요.
방: 그랬더니 할아버지가 나더러 시원시원하다고 하나 사가시더라고.
퍼: 아, 웃기다!
방: 왜냐면 내가 그 자리에서 괜히 쭈뼛거리면, 아저씨들이 나를 만만하게 볼 수 있거든. 어떤 아저씨들은 괜히 말 시키려고 하기도 해. 그런 사람들은 내가 딱 봐서 말을 아예 안 섞지. 난 그런 거 정말이지 싫더라!
퍼: 아저씨들이 다 그런 건 아니겠죠?
방: 당연하지, 점잖게 딱 살 것만 사서 가는 괜찮은 양반들도 있지! 좋은 사람들이 더 많아.
퍼: 물론 야쿠르트 일 자체도 힘드셨겠지만, 이렇게 사람들하고의 관계 부분이 많이 힘드셨을 것 같아요. 왜 사회생활에서 가장 어려운 게 대인관계라고 하잖아요.
방: 일하는 거 배우는 데 걸리는 시간은 금방이야. 이 일이 좀 반복적이기도 하니까. 그런데 사람들 상대로 상품 판매하고, 또 그 고객들 유지하는 일은 보통 일이 아니지.
퍼: 사람 상대하는 일이 보통 일이 아닌 만큼, 스트레스도 쌓이고 하실 텐데.
방: 스트레스 물론 받지, 왜 안 받겠니. 고객들이 말도 안 되는 것 가지고 꼬투리를 잡거나 따지면 힘들지. 그렇다고 고객한테 절대 화를 낼 수도 없고.
퍼: 그럴 때 참기 진짜 힘들죠.
방: 내가 이 지역으로 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일인데, 한 회사 여직원 몇 명이 자기들이 우유를 못 받았다고 그러는 거야. 난 분명히 3일 동안 꼬박꼬박 배달을 했는데.
퍼: 그래서 어떻게 하셨어요?
방: 자기네들끼리 웃는 모습을 가만히 보니까, 딱 나를 놀리려고 그런다는 게 보이더라고. 그래서 속으로 ‘어라? 요것들 봐라?’하고는 더 웃으면서 더 친절하게 다시 우유를 배달해줬지.
퍼: 아, 그 사람들 진짜 양심이 없네요.
방: 그래도 그런 것 가지고 내가 고객한테 뭐라고 할 수는 없거든. 그런 부분까지 모두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진정한 야쿠르트 아줌마인 것이지.
퍼: 일하면서 인내심을 정말 많이 기르게 되겠어요! 그래도 여전히 스트레스는 쌓이잖아요. 스트레스는 보통 어떻게 푸세요?
방: 나는 컴퓨터로 고스톱 치고, 또 창동역에 가면 악세사리 가게들 있잖아. 거기 가서 귀걸이 사서 기분전환 하기도 해. 내가 스트레스 받는다고 해서 뭐 술을 먹거나 쇼핑을 하거나 하는 것 못하겠더라고. 그것도 다 돈이니까.
퍼: 그 와중에 돈까지 생각하는 것을 보니, 영락없는 우리 엄마들의 모습이네요.
방: 그래, 우리 엄마들이 다 그러고 산다, 야.
6. 야쿠르트 아줌마의 자격
퍼: 그 동네 사람들은 거의 다 아줌마를 알지 않을까요?
방: 내가 배달하는 집이나, 야쿠르트 사러 자주 오는 고객들만 알지. 그 동네 사람들은 다 알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워. 또 요즘은 야쿠르트 값을 통장으로 바로 넣어주기도 하니까, 배달하면서 얼굴 한번 못 본 집도 더러 있어.
퍼: 디지털 시대의 삭막함 중에 하나죠.
방: 그래서 나도 그 분위기에 맞추려고 문자도 배우고 터치폰 다루는 법도 배웠잖아. 가끔씩 문자로 입금확인 답장 기다리거나, 주문하는 고객들도 있거든.
퍼: 이 일 하시기 전에는 문자 못 하셨어요?
방: 쓸 일이 딱히 없으니까, 할 줄도 몰랐지. 내가 우리 딸한테 문자 배우면서 얼마나 구박을 많이 받았는지! (웃음)
퍼: 우리들 입장에서는 엄마가 좀 답답하니까.(웃음)
방: 근데 내가 결정적으로 문자를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던 건, 한 할머니 때문이었어.
퍼: 무슨 일이 있었어요?
방: 한 할머니가 나한테 물으시더라고, 문자할 줄 아냐고. 내가 못한다고 하니까, 할머니도 문자 배운 지 얼마 안 되었는데 간단한 안부인사 전하는 데 진짜 좋다고. 시집간 딸이랑 전화로 못할 말도 문자로 하면 되니까 또 좋고. 그러니 나도 문자를 꼭 배우라시며.
퍼: 야쿠르트 아줌마가 물론 말도 많이 하지만, 한편으로는 말을 잘하기도 해야겠어요!
방: 아무래도 말을 많이 하는 직업이다 보니까, 조리 있게 말을 잘 하면 더 좋지!
퍼: 성격도 좀 활발하고 그래야 할 것 같던데요?
방: 맞아. 안 그랬던 사람들도 이 일하면서 성격이 바뀌기도 하고.
퍼: 아줌마 성격은 어떤 것 같아요?
방: 지금 네가 보면 모르겠어? 맺고 끊음이 확실한 목소리 큰 여자지. (웃음) 아! 내가 가끔씩 은행에 배달할 때는 제일 비싼 음료수를 내가 일부러 들고 들어 가. 그리고 팀장님한테 한번 쏘시라고 먼저 권하기도 하고 그래.
퍼: 배달 외에 영업도 하셔야 하니까요?
방: 그런데 그것도 진짜 분위기 잘 봐가면서 해야지! 아무 때나 그러면 안 돼! 그 지점에 뭔가 좋은 일이 있다 싶을 때, 그 틈에 이야기를 꺼내지. 그럼, 기분 좋은 팀장이 여기 직원들한테 하나씩 다 돌리라고 하지.
퍼: 그런 것도 다 판매하는 노하우네요.
방: 영업은 곰보다는 여우같은 사람들이 잘 해. 요즘 우리 신랑이 나한테 그러더라. 야쿠르트 아줌마 하기 전에는 안 그랬는데, 일하고 나서부터는 자기가 한 마디 하면 내가 열 마디 한다고.
퍼: 아줌마 이야기를 듣다 보니까, 야쿠르트 아줌마는 진짜 부지런해야 할 것 같아요.
방: 기본적으로 그렇기는 한데, 또 사람마다 다 다르기도 해. 나 같은 경우는 이 일을 하면서 한 번도 지각한 적이 없어. 나는 항상 먼저 가서 기다려야 마음이 편해.
퍼: 한 번도. 와, 대단하세요.
방: 그리고 나는 사장님이 어떤 일을 시킬 때도, ‘못 하겠다, 힘들다’라는 말보다 항상 ‘열심히 하겠다. 해보겠다.’라고 해.
퍼: 사장님이 딱 좋아하는 직원상이네요!
방: 내가 어차피 이 회사에 들어와 일하는데, 이왕이면 더 열심히 일하면 사장님도 좋고 나한테도 좋은 일이잖니.
퍼: 그럼 아줌마는 이 일을 언제까지 하실 생각이세요? 이 일도 정년퇴직 시기가 있나요?
방: 이 일은 특별히 정해진 정년이 없어. 보통은 65세 정도가 되면 그만들 두지. 그런데 저기 월계동에서 일 하시는 분은 지금 연세가 한 70되셨는데도 아직 일하셔.
퍼: 어? 우리 할머니 정도 나이신데, 진짜 힘드시겠다.
방: 내가 저번에 지나가는 길에 일 하시는 모습을 봤는데, 진짜 할머니는 할머니야. 나이는 못 속인다니까.
퍼: 그럴 것 같아요. 아줌마는 언제까지 야쿠르트 아줌마를 하고 싶으세요?
방: 나는 그 할머니처럼 오래까지는 할 생각이 전혀 없고. 한 10년 정도만 채울라고. 그러니까 앞으로 한 5년 정도 더? 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퍼: 왜 하필이면 10년이에요?
방: 아, 10년이 되면 회사에서 2박 3일 일본으로 해외 연수를 보내주거든. 딱 그 연수받을 때까지만 일하게.
퍼: 꼭 다녀오세요! 그런데 야쿠르트 아줌마. 어떤 매력이 있어서 사람들이 그토록 오래 일하는 것일까요?
방: 모두가 다 오래 일하는 것은 또 아니야. 한 1년 하다가 적응 못하고 그만 두는 사람들도 있고. 반대로 적응을 한 사람들은 이제 5년 10년 이렇게 쭉쭉 가는 거지.
퍼: 그래도 10년, 20년 이렇게 일하고 계신 분들은 야쿠르트 아줌마, 이 일의 재미를 확실히 느끼신 것이겠죠?
방: 그건 한 마디로 ‘중독’인 것 같아. 우리 아줌마들도 만날 안 한다면서 어느새 하고 있는 게 이 일이라면서.
퍼: 그만큼 매력적이기도 하다는 소리잖아요?
방: 우리는 아침에 출근하면 어디 한 군데에 고정된 채로 얽매이지 않아도 되잖아. 내가 부지런히 다니면서 하나라도 더 팔면 그건 다 내 돈이고. 또 자투리 시간 이용해서 내 볼 일도 자유롭게 볼 수 있으니까!
퍼: 또 사람들 만나서 편하게 수다도 좀 떨 수 있고.
방: 배달하면서 사람들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거든. 야쿠르트 아줌마하면서 뭐 인생 공부도 같이 하는 것이지. 이게 다 중독이라니까.
중독. 수많은 중독 중에서도 특히 사람에 대한 중독이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중독이 아닐까. 아줌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새삼 깨달았다. 사람은 끊임없이 타인의 이야기를 궁금해 하고, 또 그래서 누군가와 항상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존재라는 것을. 어쩌면 야쿠르트 아줌마가 이토록 오랜 시간 그 자리를 지켜올 수 있었던 데에는 이런 점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야쿠르트 아줌마는 동네 사람들에게, 동네 사람들은 야쿠르트 아줌마에게 중독된 것이다. 동네 사람들이 야쿠르트 아줌마에게 중독된 이유를 생각해보니, 다음과 같은 조건들이 나왔다. 매일 매일 같은 자리에서 성실히 얼굴을 보여준다. 부지런히 걷고 또 걸으며 일한다. 나의 이야기를 그저 묵묵히 들어주고 그 자리에서 진심으로 공감해준다. 그리고 야쿠르트 아줌마는 ‘아줌마’이다.
아줌마. 외국인이 한국의 문화를 알아갈 때, 빠뜨리지 않고 질문하는 키워드이다. 이제는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문화로 생각되는 아줌마는 그러나, 정작 우리 안에서는 대접받지 못한다. 누군가 그랬다. 아줌마는 여자가 아니라, 그냥 아줌마라고. 그래서일까,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활발한 요즘도 여전히 아줌마들의 일자리는 지극히 제한적이다. 일하기 원하는 아줌마들은 많아지는데, 아줌마를 원하는 곳은 많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아줌마의 힘은, 아줌마의 중독성은 생각보다 강하다. 우리는 그 사실을 이미 잘 알고 있다. 애써 그 사실을 외면하려고 하는 것뿐이다. 이제는 인정할 때이다. 지난 세월 야쿠르트 아줌마가 한국 사회에 보여준 그 강한 중독성을. 제2, 제3의 야쿠르트 아줌마가 한국 사회의 새로운 노동 시장을 열어갈 수 있다는 희망을, 나는 이번 방순분 야쿠르트 아줌마의 인터뷰를 통해서 확실히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