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그대로를 산다. 자연인 안데스

‘개성’이 ‘스타일’이라는 말로 대체된 시대. 여전히 개성을 뽐내며 자신만의 유행을 만들어나가는 개성인이 있다. 데일리 코디, 퍼포먼스 밴드 부추라마, 前 쌈지 아트디렉터, 불나방 스타 쏘세지 클럽의 안코디. 수많은 개성 있는 행위들을 삶으로 표현하고 있는 안데스. 시대를 떠나 자신과 어울리는 삶을 살며, 자신으로 표현되는 사람. 특이하기보다는 자연스러운 모습의 공식 개성인 안데스를 만나보았다.

우리 삶 속에는 나 자신을 받아들이고 살아가기에 앞서 받아들여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 ‘좋아하는 일을 찾고, 하고 있는 일을 즐기며, 어떠한 곳에 있든 자신의 스타일을 개발할 것.’ 20-30대를 위한 자기계발서와 강연에서 일관되게 강조하는 이 메시지는, 자기 삶을 찾는 것조차 의무적으로 받아들여야 할 하나의 방식으로 소개된다.

 

과연 내가 나 자신으로 온전하게 살아가는 것이 부자연스럽게 의식되어야 할 일인가? 시대에 뒤쳐지지도, 맞춰지지도 않으며 자신의 모습으로 온전하게 살아가는 사람은 어떠한 형태이든 자연스러우리라는 생각이 들 때쯤 기대에 부응하는 삶의 표현을 보았다. 그 이름, ‘안데스’

 

데일리 코디, 퍼포먼스 밴드 부추라마,  前 쌈지 아트디렉터, 불나방 스타 쏘세지 클럽의 안코디, 한 일간지의 표현에 따르면 촌티 패션의 선두주자. 수많은 수식어를 지니고 있으며, ‘개성’이라는 단어가 끊이지 않고 따라붙는 안데스. 심지어 2011년 중학교3학년 도덕 교과서의 ‘개성과 유행의 추구’ 단원에 등장하게 될 공식 개성인.*

 

*<촌티 디자인 – 실험밴드 활동하는 안데스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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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개성’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각은 어떤가? 딱 그만큼의 ‘개성’과 ‘그 개성이 이루는 삶’ 속에 가둔 채 그들을 바라보고 있지는 않은지? 그러한 시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인터뷰 혹은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접했던 안데스는 늘 자신의 다양한 행위가 특별할 것 없다는 듯한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나는 서로 다른 두 가지 태도 사이의 어긋남과 겹침을 확인하고 싶었다. 2010년이 끝나갈 무렵, 퇴근 후 무채색의 회사원은 오색빛 잠바에 어린이 핀을 꽂고 나타난 안데스를 만나 자연주의 삶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1. 데일리 코디 1,200일

 

 

퍼슨웹(이하 ‘퍼’) : 데일리 코디가 1,200일 정도 되었네요. 근성 있으세요. 특이한 행위라고 보기에는 참 오래했고, 꾸준한 것 같아요.

 

안데스(이하 ‘안’) : 데일리 코디는 나의 생활입니다.

 

퍼 : 데일리 코디를 보고 구제패션의 선두주자라고 하잖아요. 구제패션은 뭔가 오래된 일상이 묻어있는 것일 텐데 구제패션을 즐기는 젊은 사람들은 왠지 그들의 일상이 묻어 나지 않더라고요. 차이가 뭘까요?

 

안 : 저는 황학동이나 남포동에서 보물찾기 하듯 옷을 찾아내는 것을 좋아해요. 반면 광장시장은 안 가요. 그곳엔 브랜드별, 종류별로 아이템들이 분류되어 있죠. 벼룩시장이라기 보다 백화점식 판매 방식이지요.

 

퍼 : 쇼핑의 한 형태인 셈이네요.

 

안 : 그렇죠. 그것도 옷 사기의 한 방식인데, 진짜 구제, 즉 빈티지가 지닌 옛 것의 보물찾기는 아니지 않나요? 전 정리 안 된 수많은 물건 가운데서 나의 노력으로 보물을 찾아내는 즐거움이 좋아요.

 

퍼 : 저도 황학동 시장을 좋아하지만, 저에게 맞는 보물을 찾아내기 힘들던데요?

 

안 : 그럼요. 훈련이 필요한 거에요. 감각도 있어야 하고요. 

  

퍼 : 무슨 훈련을 하셨는데요?

 

안 : 황학동이나 남포동에서 옷을 살 때는 옷을 입어볼 수가 없어요. 그래서 안 입어보고도 옷을 고를 수 있는 훈련이 필요하단 얘기죠. 어렸을 때 스케이트 보드를 탔었는데, 스케이트 보드를 타면 또 그 씬만의 패션규율 같은 게 있어요. 

 

퍼 : 규율이요?

 

안 : 보드 타는 애들은 보통 보드브랜드 옷만 입어요. 근데 이게 주로 수입브랜드라 엄청 비싸거든요. 그래서 도매시장에 깔리는 카피제품들을 사러 친구들과 동대문을 들락거리기 시작했죠. 동대문 도매시장은 옷을 입어볼 수가 없어요. 그때부터 옷을 눈으로만 보고 사는 훈련을 했던 거죠. 기본적으로 감각도 좀 있고요. (웃음)

 

퍼 : 안데스니까 가능한 일이죠.

 

안 : 그런가요? 타고난 기질이 원래 이런 것 같아요. 덕분에 편의점에서 물건 사듯이 광장시장에서 이미 진열된 보석을 구입하는 것보다, 황학동에서 어디 있을지 모를 그 보물을 찾는 과정 자체를 즐긴다고 할까? 황학동에도 옷걸이에 걸려서 진열된 옷들은 대개 비싸요. 5000원이 넘어가죠. 전 그런 옷들은 쳐다도 안 봐요.

 

퍼 : 그럼요?

 

안 : 바닥에 산처럼 쌓인 옷들은 대부분 1000원씩인데 그걸 밟고 올라가 뒤적이면서 보물을 발견해 냅니다. 게임의 레벨이 낮으면 재미가 없듯이, 옷 사는 것도 게임처럼 하는 것 같아요.

 

퍼 : 안데스는 자기 확신이 있는 것 같아 보여요. 외부의 시선이 두렵지는 않나요?

 

안 : 난 외부의 시선이 날 다르게 본다는 것이 좋아요. 비교당하는 거 좋고요. 결국 사람들은 모두 다 다르니까요. 그걸 인정 못하니까 힘든거죠. 생각나는 에피소드가 있는데, 스무살 즈음에 하루는 곰돌이 모양으로 된 가방에 좀 흉찍한 괴물가면을 씌워서 그걸 메고 명동에 간 적이 있어요.

 

퍼 : 왜요?

 

안 : 그 땐 어려서 그런 걸 좋아라 했었거든요. 근데 길거리에 취재 나온 패션TV에서 그 가방을 보고 인터뷰 하자고 하더라고요. ‘매체에서도 인정해주는구나’ 하면서 혼자 으쓱하며 신나서 집에 오는 길에 지하철을 탔는데, 지하철에서 내 뒤에 앉아있던 어떤 아저씨가 나를 보고 가방 당장 벗으라며 엄청 욕을 하는 거에요. 사람들에게 혐오감을 주는 그런 가방을 메고 다니면 어떡하냐며…

 

퍼 : 그래서요?

 

안: ‘저 아저씨 왜 저러지’하고 다른 칸으로 갔어요.

 

퍼 : 본인의 패션이 욕먹을 수도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렇지도 않았나요?

 

안 : 그냥 그 아저씨가 싫었어요. 뭐라고 하니까 창피하기도 했고, ‘그러지 말았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지 ‘내가 이렇게 하고 다니지 말아야겠다’ 라는 생각은 아니었죠. 같은걸 두고 명동에서는 신종패션이라고 칭찬하고 지하철에선 욕먹고. 그러니까 판단은 보는 사람들의 몫이고 그냥 나는 내가 좋은걸 하면 된다는 걸 희미하게나마 알게 된 사건이랄까요.

 

퍼 : 하하. 역시.

 

안 : 자기를 알면 당연히 자신감이 생기죠. 한때 거지같이 입고 다닌 적이 있었는데, 그냥 하찮게 하고 다니고 싶어서 엄청 하찮게 하고 다녔어요. 지하철에서 구걸하는 사람이 나한테만 종이를 주지 않을 정도로.

 

퍼 : 왜 굳이 하찮게 하고 다니고 싶었는데요?

 

안 : 그냥 그러고 싶었어요. 하찮은 외모에 영향 받는 하찮은 사람인가도 알고 싶었고, 괜히 반항심에 그런 것 같기도 하고. 근데 하찮게 하고 다녀도 사람들이 생각보다 하찮게 보지 않더라고요.

 

퍼 : 의외네요. 외모가 하찮으면 다들 하찮게 여기지 않나요?

 

안 : 하찮은 사람들만 외모로 하찮게 봐요. 그걸 신경 쓸 필요는 없죠.

 

 

 

2. ‘하찮은 것’의 쓸모

 

 

퍼 : ‘하찮은 것’들에 대한 확고한 철학을 가지고 있네요.(웃음)

 

안 : 네. 전 하찮은 게 좋아요. 제 홈페이지 이름도 무용지물 이잖아요.

 

퍼 : 왜 무용지물인지 궁금했어요.

 

안 : 네, 저는 아무 기능이 없거나 오히려 불편한 물건들. 물질적으로는 쓸모가 없지만 정신적으로 기쁨을 주는 것들. 즉, 물질적 무용지물이 정신적 유용지물인 것. 그런 것들에 관심이 많아요. 물건이 나를 설레게 한다고 할까? 물질이 드라마나 음악의 기능을 대신 하는 것이죠. 얼마 전에 미용실에 간 적이 있는데, 이때 미용실 언니의 명언을 하나 들었어요.

 

퍼 : 미용실에서요?

 

안 : 네. 보통 머리는 내가 직접 자르거나 파마도 하는데, 그날 따라 아무도 도와 줄 사람이 없어서 미용실에 갔어요. 미용실에서는 거슬릴 정도로 기계음이 강렬한 일렉트로닉 음악이 나오고 있었죠. 저도 듣기 좀 거북했는데 그때, 여자미용사가 남자미용사에게 음악 좀 바꾸면 안되냐고 하더군요. 남자가 “왜, 이거 완전 쌔끈하잖아” 라고 말하자, 여자미용사가 이렇게 말하더군요.

  

퍼 : 뭐라고 했는데요?

 

안 : “음악을 듣는데 설렘이 없잖아”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리 하는 내내 쳐다보지도 않았던 미용사 얼굴을 처음으로 쳐다봤어요. 그 미용사 언니는 아무렇지도 않게 한 말이었는데, 제가 줄곧 몇 년간 음악을 들으면서 생각했던 ‘음악의 기능은 무엇일까? 나는 왜 음악을 듣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이 언니로부터 듣게 되는구나 하고 놀랐었죠.

 

퍼 : 아. 설렘. 보통 쓸모 있고 없고가 너무 물질적으로만 판단이 되는데, 사실 ‘감정’ 이 진짜 ‘쓸모’ 있죠.

 

안 : 그럼요. 요즘엔 ‘사람들은 왜 드라마를 보는가?’라는 질문이 머릿속을 맴돌고 있었어요. 감정의 층위를 요리조리 왔다 갔다 하게 하는 건 드라마보다는 영화잖아요. 드라마는 훨씬 강도가 낮고 구조도 단순해서 복잡하고 심오한 인간의 감정을 그려내는 데는 한계가 많죠. 그런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드라마를 본단 말이죠.

 

퍼 : 많이들 그렇죠.

 

안 : 그런데 저도 드라마를 보더라고요. 하드코어인 예술영화를 보다가도 단순한 드라마를 보기도 하는 내 자신을 보면서, ‘나는 왜 드라마를 보는가’하는 의문이 생겼어요. 생각해보니 그건 사람이 감정을 소비하는 동물이라 그런 것 같아요. 사람은 자신의 감정이 어떤 레벨의 설렘 상태에 놓여있는 것을 좋아한다고 할까.

 

퍼 : 설렘 상태요?

 

안 : 인간이라는 동물이 가장 편안하거나 행복해하는 온도가 있듯이 감정의 레벨도 그 수치가 있는 것 같은데요, 드라마를 보는 동안 수치가 설렘의 단계로 올라가면서 가장 기분이 편안하고 좋아지는 상태로 빠지는 것 같아요. 그건 영화를 통해 심오한 인간의 격정적 감정을 체험하는 것과는 또 다른 기능인 듯 해요.

 

퍼 : 감정의 움직임이 있는 시간이라는 얘기에요?

 

안 : 하루 종일 감정을 제대로 느끼고, 감정에 충실한 순간이 많지 않은데 드라마를 보는 1시간 정도의 시간 동안 소소하고 사소한 것에 사람들은 온전히 자신의 감정을 소비하죠. 보는 그 순간은 일상에서 잠자고 있던 감수성을 깨워서 운동시키는 거죠.

 

퍼 : 그렇군요.

 

안 : 감정 소비의 가장 쉬운 선택인 거죠. 그 방식에 대한 선택까지 고민해야 한다는 건 바쁜 현대인들에게 가혹할 수도 있고요.

 

퍼 : 드라마는 참 의도된 감정 소모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안 : 감정 소모도 쓸모 있는 짓이에요. 감정도 소비되고 소모되어야 하죠. 그것도 하나의 감정 표현이라고 봐요. 저도 요즘 현빈 나오는 드라마 적극적으로 감정 이입해서 봐요. 완전 몰입되던데요. 참 정신적으로 쓸모 있는 짓인 것 같아요.(웃음)

 

퍼 : 하하. 물질적으로 쓸모 있다는 것과 정신적으로 쓸모 있다는 것. 재미있는 구분이네요. 그럼 안데스의 무용지물은 하찮은 것으로 뭔가 정신적인 쓸모 있음을 만들고 싶다는 얘기인가요?

 

안 : 네. 정신적 유용지물. 제가 되고 싶은 모습이기도 하고요. 사람들의 감정 움직임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정신적 유용지물. 라디오에서 이병우 씨가 나왔었는데, 본인은 오래된 악기 같은 사람으로 남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퍼 : 멋있네요.

 

안 : 여기저기 잘 쓰여져서 낡고 헤진 동반자 같은 오래된 악기. 저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요.

 

퍼 : 안데스는 사람들에게 어떤 긍정적 영향을 주고 싶어 하는 것 같아요.

 

안 : 다른 사람, 다른 상황과 상호작용에서 서로 영향을 받아야 풍요로워 지는 것 같아요. 제가 비교 당하는 거 좋아한다고 했잖아요. 같아질까 봐 두려워서라도 주위를 잘 살펴요. 그러다 보니 제 작업이 누군가에게 영향이 될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됐죠.

 

퍼 : 어떤 영향을 주고 싶은데요?

 

안 : 남과 다른 사람은 세상에서 상처를 많이 받아요. 특히 대한민국에서는 더더욱. 그러면 세상에 뛰어들기보다는 숨어 지내는 게 편할 테고, 그러다 보면 소외되기 마련인데, 그럴 때 자신과 비슷한 경우의 사람들이 숨지 않고, 자신의 다름을 오히려 장점으로 드러낼 때 희망과 용기를 얻는데요. 그 때 느껴지는 가장 큰 감정의 종류는 ‘위로 받는 기분’인 것 같아요.

 

퍼 : 누구나 위로가 필요하죠.

 

안 : 저도 그런 식으로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는 사람이면 좋겠어요. 내가 직접적으로 위로해주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하는 짓거리를 통해 사람들이 위로 받을 수 있게.

 

퍼 : 위로가 되는 사람.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어요?

 

안 : 제가 그랬거든요. 제가 힘들 때 저를 위로해준 것은, 나와 같은 존재들이 어딘가 또 있다는 사실. 그 사실만으로도 엄청 위로가 되었어요.

 

퍼 : 안데스를 보는 것으로 자연스럽게 위로가 되는 것?

 

안 : 나 같은 사람에게 관심이 있다는 것 자체가 사실 보통 상태는 아닌 것 같거든요. 뭔가 코너에 몰리거나, 자기 안의 다른 무언가를 어쩌지 못하는 사람들인 경우가 많죠. 보통 제 팬들이 특이한 사람들이 많을 거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사실 굉장히 평범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에요.

 

퍼 : 그래요?

 

안 : 누구나 다 꿈꾸는 자기 모습이 있지만, 그대로 드러내기란 쉽지 않지요. 그래서 잠재되어 있는 그들의 욕망이 저로 인해 충족되는 것 같아요. 내 모습이 그들이 원하는 모습과 같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자기 자신이 원하는 어떠한 모습을 하고 있는 사람을 보면서 느끼는 대리만족이요.
 

 

3. ‘사라지는 것’들의 힘

 

 

퍼 : 그런 생각이 하찮게 다루어지다 사라지는 것에 관한 남다른 느낌으로 드러나는 것 같아요. 안데스 작업에는 사라져가는 것, 무언가 사라지는 상황에 대한 메시지가 많이 담겨 있잖아요.

 

안 : 언제부턴가 새 것을 취하면서 없어지는 건 옛 것이라기보다는 자신인 것 같아요.

 

퍼 : 그러네요. 빠르게 변화되는 새 세상에 나를 맞추지 않으면 나를 찾기도 전에 뒤쳐진다는 부담이 있기도 하죠.

 

안 : 예를 들면, 휴대폰, 스마트폰이 과연 다양한가요? 우리의 개성이 드러나나요? 선택권은 더 줄어들고 다양성, 재미도 더 줄어들지 않았어요? 예전에는 휴대폰 디자인만 해도 얼마나 선택권이 많고 다양했던지. 지금 스마트폰은 다 똑같이 생겼잖아요. 이유도 모른 채로 우린 선택권이 없어진 거에요. 그게 ‘발전’인지는 모르겠어요.

 

퍼 : 그렇게 휩싸이는 게 무섭기도 해요. 그럼 안데스는 스마트폰 거부할 거에요?

 

안 : 아니요. 모르겠어요. 저도 가져야 되는 건 아닌가 흔들리더라고요. 흔들리는 거 싫지만 그렇게 되요. 그런데 스마트 폰을 갖기 싫은 부분은 똑같은 외모도 그렇지만 그 기능에 있어요.

 

퍼 : 어떤 기능이요?

 

안 : 저는 웹의 정보로부터 저를 어떻게 하면 좀 멀리 둘 수 있을까 고민하거든요.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면 하루 종일 내 몸에 그 기계가 딱 달라 붙어서, 온갖 가십과 다른 사람들의 일상 등으로 나를 혼란하게 만들 것 같아요. 정보의 과잉이에요.

 

퍼 : 그거 두렵죠.

 

안 : 문제는 내가 필요한 기능만 취하고 나머지는 걸러내는 자가조절기능을 가지고 있으면 되는데, 저는 그렇게 이성적인 사람이 못 돼서 기계란 것이 자꾸 저를 유혹할 것 같고, 그러면 저는 기계랑 싸워서 이길 자신이 없어요. 그러니까 그냥 안 가지겠다는 거죠.

 

퍼 : 안데스의 개인적인 작업 속에서는 사회적 의미가 읽혀요. 의도한 건가요?

 

안 : 개인적 메시지와 사회적 메시지는 다를 수가 없다고 봐요. 개인과 사회는 분리될 수 없잖아요. 내가 사회 속에서 사는데 내 생각이 다 사회의 영향을 받은 것이고, 또 내 작업이 영향을 줄 수도 있는 것이고요. 굳이 의식하고 작업하진 않지만 일부러 분리하지도 않아요. 그런데 보는 사람들이 분리하더라고요.

 

퍼 : 자꾸 해석하려고 하죠?

 

안 : 사람들은 ‘해석’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그렇지만 해석해도 좋아요. 다 각자의 방식으로 느낌을 갖는 것을 부정하고 싶진 않아요. 저도 사회 속에서 느낀 제 개인 감정을 표현한 것인데, 그게 사회적인 감정이 될 수도 있는 거니까요. 철거촌 작업도 그래요. 철거촌을 직접 찾아 다니다 보면 참 묘한 감정이 들더라고요.

 

퍼 : 어땠는데요?

 

안 : 세상이 끝나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하는 이상한 감정에 빠졌어요. 밥 먹다가 그대로 뛰쳐나간 바람에 반찬이며 숟가락이 그대로 놓여져 있는 밥상. 웬만해선 그 뒷모습을 잘 볼 수 없는 엎어져 있는 가구들을 보며 세상의 마지막, 지구의 종말을 타임머신을 타고 가서 보고 온 기분이었어요.

 

퍼 : 그에 관한 전시도 했었나요?

 

안 : 네. 우리가 본 철거촌을 그대로 재현한 부추라마의 전시를 했었죠. 철거촌에 가서 경험했던 그 감정을 말로 설명하기보다는, 다른 사람들도 우리가 만든 공간을 통해 조금은 느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퍼 : 데덴찌 프로젝트도 그런 작업의 연속일까요?

 

안 : 글쎄… 데덴찌 프로젝트는 해야 될 것 같더라고요. 내 일생의 프로젝트랄까?

 

퍼 : 왜요?

 

안 : 어느 날 전국의 어린이 데덴찌 방식이 다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제가 자란 마산에서는 편을 가를 때 “덴지야 데덴” 이라고 했는데 서울에 오니까 “데덴찌” 라고 하더라고요. 그게 신기해서 지역 다니면서 어린이 데덴찌 사운드를 채집하게 됐죠. 그러면서 지역의 구전동요도 자연스럽게 채집하게 되었고요.

 

퍼 : 지역에서 이상하게 보지는 않나요?

 

안 : 에피소드도 많이 생기죠. 그런 것도 지금 우리네 모습의 기록이 될 수 있어요. 초딩들을 만나려면 초등학교로 가야 하니까 일단 학교를 찾아가요. 보통은 선생님들 몰래 애들을 불러서 촬영을 하죠. 그런데 한 번은 광주동운초등학교에서 수위 아저씨한테 딱 걸렸어요.

 

퍼 : 그래서요?

 

안 : 왜 왔냐고 물으시길래 전국 지역의 소리조사단이라고 했더니, 우리를 교무실로 안내하더군요. 교감선생님과의 어색한 인사와, 아이들 수업이 끝날 때까지 삼십분의 어색한 기다림 끝에, 교감선생님이 지정해주신 5학년1반 교실에 가서 담임선생님을 만났어요.

 

퍼 : 담임선생님까지요?

 

안 : 네. 선생님께 아이들이 손으로 편가르기 하는 동영상을 찍고 있으니, 아이들 4명만 모아달라고 부탁을 드렸어요. 그러자 그 선생님이 아이들한테 하시는 말씀, “자기 손이 예쁘다고 생각되는 사람 4명 손들기!” 오마이 갓! 데덴찌마저도 우수하게 선정된 애들에게 우수한 방법으로 시키는 거에요.

 

퍼 : 하하. 시트콤 같은 상황이네요.

 

안 : 그런 것들이 그렇게 어색할 수가 없어요. 결국 쉬는 시간에 몰래 딴 애들 데리고 다시 찍었어요. 역시 자연스러운 게 최고라니까요.

 

퍼 : 그렇게 구전으로 이어지는 생활 양태의 기록이 우리나라에 매우 필요하고 지역사회에서도 다양하게 시도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

 

안 : 전 그런 건 잘 모르고 그냥 재미있어서 하는 건데… 의미가 있는 작업이라 생각되면 뜻이 있는 곳에 쓰이면 좋겠네요. 이런 내 하찮은 시도들이 어딘가에 유용하게 쓰이면 좋을 것 같아요.
 

 

4. 일상이 예술이다

 

 

퍼 : ‘하찮은 것’,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안데스의 생각이 데일리 코디와도 연결되는 게 아닌가 싶어요. 데일리 코디, 아직도 재미있나요? 1,000회 기념 패션쇼도 하셨는데?

 

안 : 데일리 코디 1,000회 기념 패션쇼 할 때 뭔가 특이해야 하지 않나 스스로 부담을 줬었어요. 하기 싫어서 도망가고 싶기도 했고.

 

퍼 : 그런데 해냈잖아요?

 

안 : 네. 그때 깨달았어요. 데일리 코디는 ‘나의 일상인 거다’라고. 사실 작년쯤에 ‘왜 하나’ 생각이 들기도 했었어요. 나의 생각이 옷으로 보여질 때, ‘이건 너무 1차원적인 방식이 아닌가’라는 회의감… 

 

퍼 : 뭔가 계속 새로운 것을 보여줘야 하고 사람들이 그것을 기대한다는 부담감 때문이었나요?

  

안: 새로운 것에 대한 부담은 아니었어요. 새로운 것 보여주려고 시작한 것도 아닐뿐더러, 나의 감각에 대한 자신감은 어느 정도 있거든요. 감은 있는 사람인지라, 내가 하는 것이 진부하거나 지겨울 것이라는 생각은 안 해 봤죠. 단지, 매일 무언가를 보여지게 하는 것이고, 사람들은 나의 어떤 것을 시각적으로만 본다는 것, 즉 1차적으로 소통되는 것에 대해 회의감이었던 것 같아요.

 

 : 그런데도 아직 계속하고 있다는 것은 그 회의감을 극복했다는 것이겠네요.  
   

안 : 네, ‘일상성’의 발견이랄까요? 제가 하는 행위가 지닌 일상성을 받아들이게 된 거죠. 1,000회 기념 패션쇼가 큰 계기가 됐어요. 그 이후로 ‘일상성’이라는 단어를 발견하게 된 거죠. 

 

퍼 : 그 전에는 ‘일상적’인 것이 아니었다는 말씀이세요?

 

안 : 일상성과 특이함을 구분 지었던 것 같아요. 1,000회 기념 패션쇼를 하면서 ‘특이함’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해보게 되었죠.

 

퍼 : 어떤 생각이죠?

 

안 : 사람들이 나에 대해 갖는 ‘특이하다’라는 시선을 그리 신경 쓰는 것은 아니었지만, 난 내가 나에 대해 갖는 ‘특이하다’라는 시선은 굉장히 의식했어요. 내가 나를 봤을 때 특이하다는 것, 즉 남들과 다른 어떤 면에서 자부심을 가졌었나 봐요. 그런 나 자신에게 실망을 주고 싶지 않았죠.

 

퍼 : 자신에게 실망하지 않는 방법이 뭐였죠?

 

안 : 저를 인정하는 거죠. 사람은 다 다른데, 굳이 거기서 가공한 어떤 것으로 나 스스로에게 특이함을 기대하지 말자는 것. 나를 받아들이면, 그게 곧 다름의 인정이더라고요. 다르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다 다르거든요.

 

퍼 : 나를 인정하면 달라진다?

  

안 : 특별할 것도 없고, 특별할 필요도 없는, 매일 밥 먹는 것처럼 나의 일상을 자연스럽게 기록, 아니 기록이랄 것도 없이 그냥 일상이라는 것이요. ‘그대로의 일상인데 괜히 특별함에 대한 부담을 가질 필요가 뭐가 있겠는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이후로 데일리 코디 하는 것이 훨씬 편해졌죠.

 

퍼 : 1,000회 기념 패션쇼 관련 인터뷰에서 “모델들에게는 모델들이 입고 온 옷이 가장 예뻤다는 걸 깨달았다”고 했죠. 안데스에게 중요한 전환점이 된 순간이라고 생각했어요.

 

안 : 네. 그건 정말 중요한 깨달음 이었어요. 내 옷을 입은 모습보다 모델 자신들이 입고 온 옷이 자신들에게 가장 잘 어울리고 예쁘더라고요. 그 전에는 다른 사람들을 내 눈으로 보고, 내 기준에서만 평가했었는데, 모델들에게 옷을 입히면서 생각이 많이 달라졌죠. 자신의 몸의 형태에 가장 잘 어울리는 옷은 자기자신이 가장 잘 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퍼 : 그 전에는 스타일 맘에 안 드는 사람들도 많았겠어요?

 

안 : 많았죠. 저 사람 옷 잘입네, 못 입네, 속으로 생각 좀 했죠.(웃음) 

   

퍼 : 이젠 그런 생각 안 들어요?

 

안 : 네. 옷 입는 것은 하나의 예에 불과하고 모든 개인의 행위에 대해 다들 본인의 취향과 이유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로 한 거에요. 저도 남의 기대가 아닌 나 자신에 대한 평가가 가장 두려웠던 것이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면서 많은 해방감을 느낀 거죠.

 

퍼 : 이제 ‘다름’ 이라는 스스로의 기준에서 자유로워졌나 봐요?

 

안 : 5년이라는 시간 동안 꾸준히 한 것에 대해 나 스스로를 평가해 보고, 그것이 나의 ‘일상’이라는 걸 찾았죠. 좋아요. 지금은 정말 아무렇지 않게 데일리 코디 하고 있어요.
 

 

5. 취미의 심화 과정

 

 

퍼 : 하는 일이 워낙 많아서 평소에도 바쁠 것 같아요. 데일리 코디 이외에도 부추라마, 데덴찌 같은 프로젝트도 하고, 본업인 디자인 일도 할 테고…

 

안 : 그렇게 바쁘지는 않아요. 한 번에 하나씩 하거든요. 아무리 좋아도 한 번에 하나씩. 그래야 재미있게 하게 되더라고요.

 

퍼 : 어떻게 그 많은 일들을 다 구상하고 실현해요?

 

안 : 일이라고 할 것까지는 없고. 다 취미의 심화과정인 것 같아요. 저에게는 취미가 곧 작업이자생활이고, 그것이 곧 일상이 되는 것 같아요.

 

퍼 : 취미가 일이면 힘들다고들 하잖아요. 취미의 심화과정이 일상이면 어때요?

 

안 : 취미가 일이면 힘들다는 말에 동의하지 않아요. 일과 생활, 좋아하는 것이 분리된다는 것이 잘 이해가 가지 않거든요. 나와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내가 살아가는 생활 아닌가요? 본인의 관심, 취향이 모든 생활에 배어있잖아요.

 

퍼 : 그렇죠.

 

안 : 사람들은 자신을 다 사랑할 텐데, 본인 자신의 관심과 취향을 싫어하진 않겠죠. 그렇다면 본인의 취향이 배어있는 일이 생활이랑 분리될 수 없지 않나요? 결국은 다 좋아하는 대로 사는 거잖아요.

 

퍼 : 음. 그럼 취미의 심화가 일이 될 수도, 일의 심화가 취미가 될 수도 있겠어요.

 

안 : 그 차이가 없다는 것이죠. 어쨌든 생활 자체가 본인의 취향이 반영된 것일 테니까요. 물론 경계가 있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적어도 제 경우에는 취미, 취향, 일상, 생활의 경계가 없어요.

 

퍼 : 어렵지 않아요?

 

안 : 좋아하는 것을 내 환경 안에서 내 스타일대로 하는 것, 그리고 그 자체를 받아들이는 것이 어렵다기보다는 기쁨이죠. 난 취미, 일상, 작업, 생활이 경계가 없기에 상호 영향을 주며 풍요롭게 살 수 있는 것 같아요.

 

퍼 : 취미 같은 일을 잘 하는 게 부러워요. 전 좋아하는 것 중에 못하는 게 태반이거든요.

 

안 : 제가 잘하는 것만 하는 것은 아니에요. 잘하는 것도 하고 못하는 것도 하고 그래요. 하려고 하는 것보다 하고 싶은 것을 하게 되기도 하고. 잘해서 정식으로 돈 벌 수 있는 일은 디자이너로서 일하는 것인데, 사실 그건 잘하죠. 재미있기도 하고. 그래서 충실히 해요.

 

퍼 : 못 하는 데 계속 하는 일이 있어요?

 

안 : 음. 음악은 잘 못하는 것 같은데요. 그래도 해요. 재미있으니까. 그리고 항상 혼자 작업해와서 협업으로 뭔가 만들어 내는 것도 잘 못하는 것 같은데 ‘부추라마’에서는 훼이랑 같이 했죠. 해보니까 또 재미있더라고요.

 

퍼 : 그런데 일에 취향이 반영될 수는 있어도, 취미의 심화가 일이 될 수 있다는 것은 복이죠.

 

안 : 취미의 심화라는 게 취향이 반영된다는 것이지 취미처럼 한단 얘기는 아니에요. 그리고 심화’과정’이라고 했잖아요. 저도 그렇게 완성되었다는 게 아니라, 그 ‘과정’을 일로 생각하니 풍요롭단 얘기죠.

 

퍼 : 보통 성공 케이스의 결과만 따르고 싶어하는 경우가 많죠. 과정은 분명 다 다를 텐데 결과만 보고 그것만 취하고 싶어 하죠.

 

안 : 취할 것들을 볼 줄 알고, 취할 줄 아는 시야와 깊이를 쌓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쉽게 얘기하자면, 저는 위시리스트가 있는데 1) 식기세척기 2) 건조기 3) 로봇청기예요. 전 ‘설거지- 빨래 너는 것- 청소- 샤워’가 제일 싫거든요. 그 중에서도 설거지를 제일 싫어하는데, 한편으로 먹는 것은 아주 좋아하죠.

 

퍼 : 하하. 갑자기 웬 설거지에요?

 

안 : 사실 ‘먹는다’라는 행위에 재료 사는 것부터 치우는 것까지 다 들어있는 거잖아요. 그런데 전 먹는 것은 엄청 좋아하면서도 설거지는 진짜 싫어하는 거에요. 그럼 사먹으면 되는데, 사먹으려면 돈이 더 많이 들고, 결국 더 일해서 돈을 벌어야 하는 거죠. 그러니까 좋은 순간을 취하기 위해서는 희생이 따르고 과정이 있는 건데, 사람들은 ‘맛있게 먹었다’라는 결과만 취하려고 하니 그게 모순인 거죠. 과정 생략하고 좋은 결과만 보여주는 사회도 이상하고요.

 

퍼 : 그러게요. 000의 00경영, 000의 00삶의 방식, 이런 도서들이 자기계발서로 넘쳐나죠. 과정은 다 다를 텐데 다 그 사람들처럼 살아야 할 것처럼 이야기하잖아요.

 

안 : 그게 요즘 나오는 ‘누구처럼 해라’ 류의 자기계발서와 위인전 혹은 진솔한 자서전의 차이인 것 같아요. ‘과정이 이러하니 다 이렇게 하면 된다’가 자기계발서라면, 위인전이나 공감 가는 자서전은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과정으로 보여주잖아요.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성공이라는 걸 한 사람들은 막상 다른 사람처럼 안 살았을 걸요? 아마 본인을 인정하고 본인의 방식에 따르지 않았을까요?

 

퍼 : 그렇죠.

 

안 : 그런 점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분이 있어요. 바로 조경규 씨. 그분은 오래 전부터 인터넷에서 이상한 짓을 많이 하시던 분인데요. 요즘엔 만화를 주로 그리시고요. 저는 그분이 하는 별난 짓들을 보면서 자랐죠.

 

퍼 : 그 ‘분’이 하는 별난 ‘짓’이라…

 

안 : 어떤 장르의 경계도 없고, 보여주는 방식의 한계도 없어 보이고, 그냥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시더라고요. 누구누구처럼 하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처럼 하는 것. 스스로에게 매우 충실하기. 그분을 보면서 제가 위로를 많이 받았다고 할 수 있어요.

   

*조경규의 예술 세계 보러 가기  

   

퍼 : ‘자신에게 충실한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다.’

 

안 : 네. 그런 방면에서 김점선 아줌마를 가장 대표적인 인물로 뽑기도 해요. 친구가 김점선 선생님 젊었을 때 사진이 나랑 닮았다고 해서 그 분의 책을 봤는데, 보고 나니까 왜 이제 읽었나 하는 후회가 많이 들더라고요. 아줌마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책을 봤거든요. 그 분 책 중 <점선뎐> 추천합니다. 삶, 생각 자체를 글로 자연스럽게 표현했는데, 글을 쓰려고 쓴 게 아니라 삶이 글이 되는 것이 참 와닿더라고요.

 

퍼 : 좋아하는 작가는 누구에요?

 

안 : 폴 오스터의 작품을 대부분 좋아하는데, 특히 <뉴욕 3부작>*을 좋아해요. 팬쇼라는 인물 묘사부분이 가장 좋아요. 온전히 자기 자신의 모습인 사람.

 

 

*폴오스터 ‘뉴욕 3부작’ 중에서
 
그런데도 내 마음속에서는 그가 다른 사람보다 본질적으로 더 우수하고 어떤 꺼지지 않는 불이 그를 생기 있게 지켜준다는, 그는 내가 나 자신에게서 바랄 수 있는 것 이상으로 자기 본연의 모습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가시지 않았다. p321
 
 

그는 다른 아이들의 관심에 무관심했고 침착하게 자기 할 일을 하면서 절대로 자기의 영향력을 이용해 남을 조종하려고 들지 않았다 p321
 
 

그에게는 절대로 꿰뚫어 볼 수 없는 은밀한 핵심, 신비한 비밀의 중심이 있는 것 같았다. 그를 모방하는 것은 어떤 식으로든 그 신비에 한몫 끼는 것이었지만, 그를 제대로 알기란 불가능하다는 것 또한 알아야 했다.
그는 절대로 우리들 대부분이 그랬던 것처럼 소동에 휘말려 들지 않았다. 그의 꿈은 좀더 내면적이고 분명히 좀더 엄격한 다른 질서에 있었지만, 다른 사람들의 경우처럼 삶을 구분 짓는 갑작스러운 변화는 전혀 없었다 p323

 

 

6. 인정! 그게 나에요.

 

 

퍼 : ‘자신을 인정한다’, ‘본성을 인정한다’. ‘인정한다’는 말씀을 많이 하시네요. .

 

안 : 타고난 본성도 중요하지만, 전 그 본성을 인정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것 같아요. 20대 때는 당연히 반항심도 있었고, 괜히 남들이랑 다르게 행동하고 싶었고, 그래서 모서리에 서 있는 것 같고 그랬죠. 그러다 점점 나를 인정하면서 편안해지고, 그러면서 지향점이 생기더라고요. 그에 다다르는 모습이, 그런 과정들이 내가 되어간다고 느끼게 되었고요.

 

퍼 : 그런데 본인에게 충실한 삶이라는 건, 본인이 선택하는 삶에서 시작될 텐데, 끊임없는 불안감 때문에 스스로의 선택이 어려운 것 같아요.. 특히 젊은 사람들에게는.

 

안 : 그런 불안감은 나를 인정하지 않을 때 나오는 것이 아닐까요? 현재에 충실하면, 인정할 것은 인정하면 되는데 보통 잘 안 그러는 것 같아요. 그럼 불안하죠. 그런데 왜 하고 싶은지에 대한 답을 모를 때는 본성에 충실하게 해보면 알 수 있어요.

 

퍼 : 하면 된다는 건가요?

 

안 : 본인을 인정한 후 실행하거나 실행하고 나 후 본인을 인정하는 거죠. 둘 다 결국은 같은 얘기지만. 저 같은 경우에는 어렸을 때 잠들기 전 양을 세는 모습이 남들과 다른 나를 발견했어요. 잠이 안 올 때 사람들은 양을 한 마리, 두 마리씩 세면서 잠이 온다고 하잖아요.

 

퍼 : 보통 그렇죠.

 

안 : 저는 양을 셀 때 이쪽 절벽에서 저쪽 절벽으로 뛰어가는 양을 상상하는데, 양들이 모두 제각각 다른 방법으로 뛰는 걸 상상해요. 첫 번째 양이 그냥 점프를 해서 뛰면, 두 번째 양은 한 바퀴 돌아서 점프를 하고, 세 번째 양은 뒤돌아서 점프를 하는 식이죠.

 

퍼 : 귀엽네요.

 

안 : 이러다 보니 다음 양은 어떻게 뛸까 생각하다가 잠을 못 자고 그냥 밤을 샌 적이 많아요. 그리고 ‘그래, 나는 이런 사람이구나.’ 하고 나를 인정했죠. ‘나는 양 세는 것이 남들과 다르니까, 다른 일도 남들과 다르게 하는 거구나’하고 알게 된 거죠.

 

퍼 : 그 어린 나이에, 그건 정말 작은 거잖아요. 그걸로도 자신을 알았단 말이에요?

 

안 : 어릴 때는 물론 그런 내 자신만 알았지만, 남들과 비교하면서 내가 다르다는 것을 인식해 나갔어요. 타인은 나를 보는 거울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내게 해준 말을 통해, 또한 다른 사람들을 관찰하면서 나를 알아 가는 것 같아요.

 

퍼 : 음.

 

안 : 모두가 아마 본인을 알 수 있는 계기가 많을 것이라고 봐요. 그럴 때 사람은 이렇게 성격이 다 다르니까 자기를 인정하고 본인에게 충실하면 되는 것 아닐까요.

 

퍼 : 안데스는 뭘 잘한다고 인정하고 거기에 충실했죠?

 

안 : 감각이 좀 남달랐고, 그림을 잘 그렸죠. 미술학원 다니면서 늘 1등 했거든요. (웃음)

 

퍼 : 어렸을 때부터 그림 잘 그리는 본성 인정해서 잘 된 경우네요?

 

안 : 네. 그런데 요새는 그림 안 그려요.

 

퍼 : 왜요?

 

안 : 그림 그리는 사람은 워낙 많으니까. ‘나까지 굳이…’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원래 잘하는 거라 내 스스로 그걸 하는 게 신기하거나 재미있지도 않고요. 근데 음악은 하는 사람 많아도 못하니까 해요. 잘하는 것이든, 못하는 것이든, 누가 많이 하든 말든, 어쨌든 되어버린 것을 하는 것 같네요. 밥 먹듯이 이것저것 하게 되면 한다는 것. 하면 충실히 한다. 이거에요 저는.

 

퍼 : 자연스러운 흐름을 받아들이는 달인 같아요.

 

안 : 아니에요. 하고 싶은 것 하면서 재미있어 하고, 때로 잘하기도 하는 건, 통달했다거나 달인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냥 일상에서 받아들이고 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퍼 : 본성을 인정하려면 자신을 잘 알아야 할 텐데, 자기를 돌아보는 안데스만의 방법이 있어요?

 

안 : 음… 멍 때리기.

 

퍼 : 하하. 멍 때리기, 정말 하고 싶은 것 중 하나인데. 전 잘 안되던데요?

 

안 : 살면서 먹먹한 시간은 정말 중요해요. 그건 하나의 단절이거든요. 단절 속에 올 수 있는 고유의 자신. 멍한 순간은 어떠한 외부의 것과도 단절된 상태거든요. 그 안에서 온전히 자기를 찾을 수 있다고 봐요. 전 그 온전한 자기의 모습이 좋더라고요. 사람이든 환경이든 뭐든. 전 우리나라도 어정쩡한 이 상태를 한 번 잘 보고 좀 인정하면 참 재미있어질 것 같아요.

 

퍼 : 우리나라요? 갑자기 우리나라는 왜?

 

안 : 내가 살고 있는 곳이니까. 전 제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우리나라도 생각나던데요. 태어났고 저도 계속 영향을 받는 곳이잖아요.

 

퍼 : 우리나라도 본성을 인정하면 재미있겠다고요? 우리의 본성이 뭐라고 생각하는데요?

 

안 : 본성이라기보다 우리의 상황, 어정쩡한 이 상황을 인정하자는 거죠. 이래저래 껴서 어정쩡한 상태. 제가 마산출신인데 한국의 이미지를 떠올려 보면 저는 마산이 떠오르거든요.

 

퍼 : 왜요?

 

안 : 큰도시도 아니고, 그렇다고 시골도 아닌 중소도시. 대부분의 길은 꼬불꼬불하죠. 직선으로 난 것이 아니라 사람이 다니던 길이 그냥 도로가 되어버린 오래된 길과 계획 없이 세워진 빌딩들. 그런 것들이 묘하게 조화를 이룬 도시. 마산은 그냥 그걸 인정해버렸어요. 그래서 좀 편안해 보이고.

 

퍼 : 그럼 발전이 없지 않나요?

 

안 : 그렇죠. 인정하고 이제 뭔가 나오면 되겠죠. 인정하기도 전에 새로운 것부터 만드는 게 이상하다는 거죠. 본래의 것들을 인정하지 않으면 새로 만들어 내는 것들이 너무 어색해요.

 

퍼 : 본인을 인정한다는 것이 자아를 찾는 가장 중요한 단계일 텐데 그게 참 힘든 것 같아요. 그래도 다들 찾으려 하죠. 그런데 요즘 자아 찾기 여행도 코스처럼 되어 가는 게 신기하지 않아요?

 

안 : 참 부자연스러운 일이죠. 왜 굳이 멀리 가서 자기를 찾으려 하는지 모르겠어요. 내 안에서 나를 찾기, 자기를 취하는 것. 나와 나를 둘러싼 환경 안에서 그대로 드러나는 내 모습을 찾는 것이 진짜 내 모습 아닌가요? 물론 멀리 가서도 나를 발견할 수는 있죠. 비교의 대상이 달라지니까. 그리고 익숙한 것으로부터의 단절은 나에게 집중할 수 있게도 하지만, 뭐 모르겠어요..

 

퍼 : 그럼 안데스는 자기를 찾았다고 생각하나요? 그래서 평안한가요?

 

안 : 저도 지금 완전히 평안한 상태는 물론 아니지만… 그런데 원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퍼 : 그 방향이 뭐죠?

 

안 : 나만의 법칙이 있는 사람이고 싶어요. 온전히 자기 자신인. 저는 그렇게 우리 일상 속에서 만날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어요. 그럼으로써 다른 사람에게 자연스러운 위로가 될 수 있는 모습이면 좋겠고. 그래서 저는 위대한 작가이기 보다는 위대한 주변인이 되고 싶네요. 본성과 본능에 충실한.

 

퍼 : 어린 도인 따로 없네요.

 

안 : 달라이라마는 아니더라도 부추라마잖아요. (웃음)

 

퍼 : 안데스 자신을 온전하게 하는데 장애물은 없어요?

 

안 : 칭찬. 난 분명 소신 있는데 흔들리게 하는 것이 칭찬인 것 같아요. 칭찬이나 비난에 흔들리지 않고 싶은데 칭찬에는 살짝 기울어지더라고요.

 
 

24시간 일하고 나서 또 24시간을 내리 자고 나왔다는 형형색색의 안데스와 정규 근무시간을 마치고 나온 무난한 회사원의 만남은 보기와는 다르게, 서로를 인정하며 어색함 없이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그대로의 것에 관심이 많다.’는 그의 이야기처럼, 생각대로 살며 온 몸으로 표현하는 모습은 ‘자연스러움의 명쾌함’으로 인터뷰 내내 흘러나왔다. 이러한 의도를 가지고 인터뷰하고 싶다 생각했던 나의 부자연스러운 의식이 부끄러울 만큼.

 

개성인의 자연스러운 사람 이야기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함께 웃었던 만큼, 사람의 본성 그대로를 바라본다는 것이 얼마나 자연스러운 즐거움인지. 그 자체가 내 안에서 받아들여졌다. ‘나’와 ‘너’로 대화한다는 것. 그것이 자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