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의 실업 문제가 장기화되면서 다양한 담론들이 오고 간다. 이제 20대의 이야기는 그리 흥미롭지 않다. 나올 말은 다 나왔고, 20대 역시 자기들 방식으로 해볼 만큼 했다는 느낌이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게 느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주변에는 고민 많은 청춘들이 넘쳐 나고 해결되지 못 한 문제는 여전하다. 그리고 난 2010년을 끝으로 20대를 마무리 짓고 30대로 진입해야 할 처지에 놓여 있다. 이렇게 끝내자니 뭔가 억울했다. 20대 내내 통장 잔고는 바닥이었지만 그렇다고 나의 20대를 부정하고 싶지도 않았다.
이 시점에서 나는 내 나름의 “청춘”을 정의하고 싶었다. 아니 정리하고 싶었다. 그래야만 훌훌 털고 서른의 나이를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즈음 생각난 인물이 체리와 류지이다.
체리와 류지는 전에 다니던 회사, 희망청에서 워크숍 차 전주에 갔을 때 우연히 만난 친구들이다. 그들은 졸업을 앞두고 “안녕…행?!”이란 이름으로 전국을 여행하고 있다 하였다. 여행지에서 우리는 격의 없이 서로에게 호감을 갖게 되었고, 그날 밤 함께 만나 두런두런 사는 이야기도 나눴더랬다. 그 뒤 이들의 블로그를 통해 여행의 기록을 훔쳐보곤 했다.
‘여행을 떠나는 20대’란 그다지 낯설지 않다. 그럼에도 내가 그들을 떠올렸던 이유는 20대다운, 그러나 다른 20대와는 구별되는 그들만의 감성 때문이었다. 그들은 표현을 수줍어하고, 작은 인연을 소중히 여겼으며, 소소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따뜻함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한 감성의 원천이 궁금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내가 정리하고자 했던 “청춘”에 한발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 같았다.
2010년이 얼마 남지 않은 12월 18일. 우리는 홍대의 작은 카페에서 다시 만났다.
껍데기 같던 공허한 학창시절
퍼슨웹(이하 ‘퍼’) : 우리 인연이 좀 특이했죠.
체리(이하 ‘체) : 네. 여행지에서 몽상이 저희한테 맥락도 없이 말을 걸었죠. (웃음)
퍼 : 저 원래 낯선 사람한테 무턱대고 말 잘 걸어요. (웃음) 그런데 그때는 희망청을 안다고 하니까 더 신기하고 놀랐던 것 같아요. 하자센터도 안다고 하고….
류지(이하 ‘류’) : 하자센터는 저에게 고등학교 때부터 선망하던 곳이었어요. 적을 두진 않았지만 그곳을 알고 있었어요.
퍼 : 특별히 선망했던 이유가 있나요?
류 : 제가 학창시절 굉장히 모범생이었어요. 그런데 마음 속에는 항상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에 대한 질문이 있었어요. 그에 반해 하자센터는 재미난 일들이 벌어지는 곳 같았어요.
퍼 : 활동은 왜 안했어요?
류 : 뭘 하기엔 제가 비리비리 했어요.
퍼 : 체리도 모범생이었나요?
체 : 네.
퍼 : 스스로 모범생으로 규정하는 기준은?
체: 공부 열심히 한 것. 딱히 혼 안 나고, 안전할 정도로 일탈하고. 예를 들어 야자 땡땡이 치고, 학교에서 안 알려주는 책 읽고.
퍼 : 모범생으로 살면 어느 부분에선 편하지 않나요?
류 : 한국사회에서 모범생이 되는 것은 계속 이기는 경험을 하는 거였어요. 옆을 치면서 올라오는 경험들. 물론 계속 이기는 경험을 했지만, 이건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그래서 어느 순간 냉정하게 생각했어요. ‘다른 사람들이 행복하지 않은데 나 혼자 행복할 수 있을까?’ 옆에 있는 사람이 힘든데 내가 행복하지는 않을 것 같았어요.
퍼 : 음.
류 : 그 속에서 저에게 늘 “함께 살기”에 대한 키워드가 있었던 것 같아요. 억압이든 체제든 그걸 다 떠나서 ‘사람은 그냥 같이 살아야지, 원래 같이 잘 살면 좋은 거잖아.’ 이런 느낌. 이런 것들이 저를 계속 끌어온 게 아닐까 생각해요. 아, 요새 억압, 체제 등 의식화된 단어를 안 쓰려고 하는데…
퍼 : 왜요?
류 : 말과 현실의 괴리가 싫었어요. 그게 너무 어렵기도 하고. 이런 식으로 삶을 읽으면 어디까지 내 삶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싶어서요.
퍼 : 그런 말을 버리면 무엇이 남나요?
체 : 잘 모르겠어요. 어떤 사람을 파악하거나 영감을 얻는 데, 솔직히 글이 더 편하거든요. 하지만 요즘은 그런 책 속의 단어가 아니라 사람이 삶을 살아가는 방식을 연습 중이예요. 예를 들어, 저희 집에 누군가 모과를 가져다주었을 때 맡을 수 있는 향기 같은.
퍼 : 연세대 사회학과 재학 중이죠. 원래 사회학 공부하고 싶었어요?
류 : 원래는 사회복지학과를 가고 싶었어요. 저희 학교는 처음에 계열을 선택하고 나중에 학과를 선택할 수 있어요. 그런데 언젠가 ‘사회복지는 이 사회 체제를 유지시키는 단순한 방법일 뿐이다.’라는 말을 주워들었어요.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웃음) 맞는 말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퍼 : 지금도 그렇게 생각해요?
류 : 지금은 사회복지를 어떻게 공부하느냐에 따라서 실천적인 학과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왜 그때 그 이상한 말을 들었는지…. 지금 생각하면 다양한 사람이 있는 만큼 다양한 사고를 할 수 있었을 텐데 싶어요.
퍼 : 언제 사람이 다양하구나, 라는 것을 깨달았나요?
류 : 욕망과 제 안의 생각들이 끊임없이 충돌하면서요. 저의 찌질함이 많이 작용했죠.
퍼 : 체리는 사회학 잘 맞았어요?
체 : 그 중 제일 나아보였어요. 원래 갈려고 했던 건 정치학과예요. 그래서 강의를 몇 개 들어봤는데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사회학은 입문 수업을 류지와 함께 듣고 재미있어서 선택했어요.
퍼 : 류지는요?
류 : 공부하는 거 좋아했어요. 재밌긴 했어요. 하지만 맞는다는 생각은 안 했어요.
퍼 : 재밌으면 맞는 거 아닌가요?
류 : 석연치 않았어요. 말들과 분석이 재밌긴 하지만, 뭔가 공허한 부분이 있었던 것 같아요.
퍼 : 예를 들면?
류 : 제가 사회학에 대해서 받은 인상은 단어 자체가 광범위하고 크기도 했고. 사회 구조나 체제를 잘 설명하지만 말뿐인 느낌도 강했어요. 사람에 대해 연구한다고 하지만, ‘정말 그런가?’란 생각도 들고요. 물론 사회학에서 사람의 욕망이나 감정을 분석하기도 하지만, 사람들의 욕망과 감정은 여러 맥락을 알아야 하기도 하잖아요. 그런 면이 공허했어요.
퍼 : 음.
류 : 학문은 사람을 외롭게 만들어요. 특히 학교에서 배우는 것들은 거의 그런 것 같아요. 제가 학문에 대해 기대가 컸던 것 같기도 해요.
퍼 : 학문에 대한 공허함 때문에 여행을 하면서 메우려는 게 있었나요?
류, 체 : (동시에) 네. 정말 그랬어요.
퍼 : 대학에서는 학과 외 활동을 했나요?
체 : YMCA 활동하면서 주기적으로 모였어요.
퍼 : 어떻게 시작했어요?
체 : 류지가 하자 그래서.
류 : 저는 또 다른 사람이 하자 그래서. (웃음) 대학교 1학년 때 뭐든 하고 싶은 마음이었어요. 저의 이야기를 할 곳이 필요했어요. 대학 내에서 YMCA 활동하면서 “지역”, “마을” 이란 단어를 처음 들었어요. YMCA도 공부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것들을 채우려고 했던 것 같아요. 여행도 그래서 시작했어요.
호기로운 여행의 시작
퍼 : 상상만 했던 것을 실현시키는 것은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상상할 때보다 에너지가 더 많이 필요하잖아요.
류 : 각자 여행의 동기는 달랐을지 모르나, 공통적으로 일단 졸업이 가까워졌고 그래서 막연했던 것 같아요. 나름대로 대학 때 여러 활동도 열심히 했고, 고민도 충실히 했는데, 막상 졸업을 하자니 막다른 느낌이었어요.
퍼 : 여행 계획은 어떻게 세웠어요? 목록이 있었나요?
류 : 목록은 딱히 없었어요. 평소 가고 싶었던 곳 위주로 뽑았어요.
퍼 : 그래서 어디 어디를 다녀왔죠?
체 : 용산의 빈집을 시작으로, 강화도의 마리학교, 인천의 반지하 같은 곳이요. 제주도에서는 달리 도서관 같은 곳도 갔었고…. 서해를 따라 전라도로 간 다음, 제주도에 들렀다가 다시 남도로 빠져나와 지리산을 거쳐 경상도로 향하고, 경상도에서 강원도를 따라 다시 서울로 오는 여정이었어요.
퍼: 그러다 저랑 전주에서 만난 거로군요.(웃음) 여행의 총 기간은 얼마나?
류 : 3월 23일부터 7월 28일까지, 약 4개월 정도요.
퍼 : 생활할 때 규칙 같은 것도 있었나요?
류 : 크게는 없었어요. 가계부 적고. 공동 지갑 쓰고. 하루하루 저녁 시간을 나누자, 정도.
퍼 : 여행 가기 전에 경비를 도움의 밤으로 마련했다고 했던데, 어떻게 했어요?
체 : 호기롭게 했죠.(웃음) 아는 사람 다 불러서 다 뜯었어요. 배낭, 침낭 등 돈이 아닌 물품도 선물 받았고요. 각종 관계에서 만났던 사람들, 얘기하면 뭔가 줄 것 같은 사람들, 학교 친구들 등을 불렀어요.
퍼: 학교 친구들까지요?
류 : 네.
퍼: 친구들이 쉬이 주던가요?
류 : 네. 근데 저도 친구가 간다고 하면 줄 것 같아요. 한 사람이 엄청난 돈을 주지 않아도, 조금씩 모으면 되잖아요.
퍼 : 도움의 밤에는 뭐했어요?
체 : 재롱 잔치했어요. 류지가 찍은 사진도 팔고. 시골에 사는 사람들에겐 공간 물색을 부탁했어요. 지금 우리에게 있는 것들을 활용했어요.
퍼 : 재롱 잔치*는 전주에서 제가 봤던 기타치고 노래 부른 것?!
체 : 네. (웃음)
퍼 : 여행을 통해 꼭 보고 싶었던 게 있었나요?
류 : 제가 관심 있었던 것들 위주로 보고 싶었어요.
예를 들어 공공 작업소 심심은 공공미술에 관심이 있어서 가게 됐어요. 지역에서 공간에 사람이 모이고, 일들이 일어나는 것이 재밌어요.
퍼 : 오.
류 : 제가 대학생 삶 이외의 다른 삶을 몰랐어요. 예를 들어 사람을 처음 만났을 때 어떻게 해야 하며,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에 대한 개념도 없었거든요. 그런 걸 배우고 싶었어요.
퍼 : 이제 좀 감이 오나요?
류 : 네. 휴학한 지 1년이 되어 가는데, 이제야 제가 얼마나 대학생다운 행동과 만남과 말들로 살았는지가 조금 보여요. 되게 웃긴 말이죠.(웃음) 또 서울 반경 안에서만 살았던 것이 스스로를 자신감 없게 만들었던 것 같았어요. 지금의 패턴에서 나가면 뭐가 있을까 궁금했던 거죠.
퍼 : 여행의 시작은 평소 생활의 반경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에서 시작하는 것 같아요. 부모님의 반응은 어땠어요?
체 : 여행 가지 말고 학교 열심히 다니라고 했는데, 집이 혼란한 틈을 타서 그냥 갔어요.
퍼 : 잠자리는 어떻게 구했어요?
체 : 이 역시 호기롭게 단체에 메일을 보냈어요. (웃음) 지역, 공간, 예술을 보고 싶은데 돈은 없습니다, 뭐 이런 내용이었어요. 신기하게 메일 하나만 보고, 혹은 무작정 찾아간 곳도 매우 잘 대해 주셨어요.
여행이 가져다 준 것들
퍼 : 여행 다니면서 만난 사람들이 궁금하네요.
체 : 섬진강 길을 걷기 위해 전라도에 갔을 때예요. 인터넷에서 지도를 복사해서 갔는데, 가도 가도 콘크리트만 나오더라고요. 체력이 거의 바닥날 때 ‘장구목 가든’이란 곳에 가게 됐어요.
퍼 : 장구목 가든이요?
체 : 네. 들풀로 반찬도 만드시고 시도 지으시는 분이 운영하는데, 거기에선 꽤나 유명한 분이시더라고요. 그분이 예전에 저희 같은 여행자 2명을 만나 현재는 딸처럼 지내신대요. 저희가 그들 같았나 봐요. 그런 무조건적인 환대를 받은 경험이 기억에 많이 남아요.
퍼 : 또 있나요?
체 : 처음 여행 간 인천의 반지하란 곳도 생각이 많이 나요. 토요일인데 일부러 나오셔서 시간도 함께 보내주시고, 비싼 해물찜도 사주셨어요. 그 밖에 길에서 만난 사람들, 반찬 하나 더 내주던 사람들 등 맨가방 맨 저희 모습만 보고 귤을 주시기도 했어요. 우리가 어려서 예뻐 보였나? (웃음)
퍼 : 먹을 거 주는 사람이 제일 좋죠.
체 : 맞아요. 저희가 음식 주면 리액션이 커져요. (웃음)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이 우리들에게 어떤 것을 먹여줬고, 재워줬는지가 기억에 많이 남아요.
퍼 : 여행 다니면서 모르는 사람의 환대가 낯설지는 않았나요?
체 : 많이 느꼈어요. 그런데 그런 삶의 방식이 그들에게는 낯설지 않았나 봐요. 대부분 가족은 가족이니까, 친구들은 서로 즐거움의 원천이 되니까 만나잖아요. 그런데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초대할 때 이유가 없었어요. 그게 많이 달랐죠.
류 : 저도 여행을 하면서 호의를 받으면 불안해지기도 했어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지향이나 젊음에 대한 투사를 엄청나게 긍정하시면서 우리에게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지 않을까 하는. 왠지 그들이 생각하는 것에 맞춰서 행동해야 할 것 같았어요.
퍼 : 류지와 체리에게 반대로 누군가가 그 같은 도움을 요청한다면 어떨 것 같아요?
류 : 저 역시 해줄 수 있을 것 같아요. 굳이 우리들처럼 헤매는 청춘이 아니라, 사람에게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퍼 : 그건 여행 후 생긴 생각?
류 : 생각은 예전부터 했는데 여행 전에는 그게 어떤 모습일까 잘 몰랐다면, 여행 후에는 그 모습이 구체화 된 것 같아요. 체리가 말했듯이 시간이 있고, 밥 한 끼를 내주는 것이 뭔가를 준다는 느낌보다 뭔가를 함께 한다는 느낌이 강했어요. 이런 삶의 자세를 보면서 내 몸을 그렇게 바꿔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퍼 : 여행 다니면서 전국을 봤잖아요. 좋은 점 외에 실망한 점은 없었나요?
류 : 모르겠어요. … 저는 여행을 다니는 것은 매우 힘들었어요. 육체적이든 정신적이든.
퍼 : 어떤 것이요?
류 : 여러 가지가 힘들었는데 서울과 지역을 구분하는 것 자체가 굉장히…
퍼 : 굉장히 무의미할 수도 있겠다?!
류 : 네. 지역을 다니면서 굉장히 서울스럽게, 도시가 되려고 하는 모습을 볼 때가 있거든요. 터미널은 신식인데 거기 있는 사람들과는 전혀 안 어울렸죠. 그 모습들을 보고 내 몸이 힘들게 반응한다는 것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어요.
퍼 : 지역마을에 대한 편견 같은 것은 있었어요?
류 : 편견…? 지역이나 마을의 구체적인 공간에 대해 읽은 게 아니라, 사람들이 이러이러하다, 라고 알고 가서 기대는 안 했어요. 하지만 사는 모습이 너무 치열해서 엄청나게 힘든 모습을 보고… 그 현장 자체가 힘들었던 것 같아요.
퍼 : 구체적으로 어떤 게 힘든 거예요?
류 : 일단 사람들의 겉모습이요. 강진에 갔을 때, 강진 터미널이 굉장히 신식인데 거기 있는 사람들은 나이든 분들이 대부분이었어요. 지역에 내려가면 젊은 사람은 별로 없어요. 그들 대다수가 무기력하게 할 일 없이 앉아 있었어요. 제 시선이 유독 그랬는지 모르겠지만요.
퍼 : 왜 힘들었을까요?
류 : 떠드는 것과 실제는 다른 것이죠. 터미널과 관광산업에서 추구하는 것은 제2의 서울이거나…
퍼 : 지역사회 활성화를 운운하는.
류 : 네. 결국 내걸고 있는 캐치프레이즈들과 현실의 차이가 컸어요. 이게 과연 필요한지 의문이 들었어요.
퍼: 지역을 보니 서울은 어때요?
류 : 여행할 때 서울을 많이 그리워했거든요. 서울 태생이어서(웃음). 서울은 모든 것이 일어나는 공간이에요. 그게 체제와 동화가 되든, 저항을 하든. 집약적이죠. 그런데 서울은 제가 상상했을 때, 하고 싶은 것을 못 하게 하는 요소가 너무 많은 것 같아요.
퍼 : 왜요?
류 : 일단 돈이 너무 많이 들어요.
퍼 : 그 밖에 여행 후 크게 달라진 게 있나요?
류 : 아, 저희 쉐어 하우스 해요. 8월 29일부터. 여행 갔다 와서 시작 했어요. 여행가기 전에 하자는 얘기가 있었는데 그걸 실행에 옮긴 거죠.
퍼 : 재밌을 것 같아요.
류 : 오늘 좀 재밌었어요. 반반이에요. 가족도 마냥 좋진 않잖아요.(웃음)
퍼 : 체리는 부산이 고향이고, 류지는 서울이 고향이죠?
류 : 네.
체 : 부산에서 올라와서 일산 살다가, 지금에 오게 됐어요.
퍼 : 방값이 비싸니까 쉐어 많이 하더라고요.
류 : 아름아름 아는 사람들끼리 모였어요.
퍼 : 모두 또래인가요?
체 : 학생도 있고, 직장인도 있고 다 20대예요.
퍼 : 실제로 함께 생활을 해보니 어때요?
체 : 저는 평소에 제 일상을 살기 위해 하는 일들이 적었어요. 특히 자취할 때 반찬이나 빨래를 하는 것은 ‘처리한다’는 느낌이 강했죠. 그때는 밖에서 최대한 인정받기 위해 집에서의 생활을 효율적으로 움직이는 데 관심이 있었죠. 그래서 집에 있는 시간은 죽어있는 시간 같기도 했는데, 그걸 전환해야 할 것 같았어요.
퍼 : 그럼 현재 생활을 전환하는 과정에 있나요?
체 : 그래야겠다고 생각해요. 남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더럽히지 않고, 내 시간을 조금 더 쓰거나 해요. 내가 조금만 더 노력하면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려고 하죠.
퍼 : 류지는요?
류 : 여행을 갔다 온 뒤로 제가 어떻게 살아야겠다는 몇 가지가 있었어요. 그런데 그 감정이 너무 충만했던 것 같아요. 같이 산다는 것에 뭔가를 투사하기도 하고.
퍼 : 예를 들면?
류 : 같이 하기로 한 것을 남들은 왜 하지 않나에 대한 분노 같은 거요. 또, 빨래를 하면서 귀찮아서 하고, 가끔은 나 혼자 있고 싶다 등을 생각할 때마다 여행할 때 생각했던 것과는 또 달라서 혼란스럽기도 해요. 그런 과정에서 며칠 전에 일본여행을 갔다 왔어요.
퍼 : 다녀와서 좀 나아졌나요?
류 : 네. 여행을 한 번 하고 오면, 확실히 나아지는 것 같아요. 여행가서 느낀 것은 제가 의식화된 방식으로 살자고 했던 것 같아요. 일본 여행 때 제가 묵은 게스트하우스도 친구들이 운영하는 쉐어 하우스였는데, 별 규칙이 없었어요. 누가 나가면 “잘 다녀와요”, 누가 오면 “어서 와요.”가 전부였죠. 그 모습을 보고, 원래 저런 건데…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요즘엔 그냥 다시 또 잘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평범하지도, 그렇다고 특별하지도 않다
퍼 : 요즘은 뭐하고 지내요?
체 : 저는 학교 다니고 아르바이트하고. 학교 생활협동 조합에서 일해요.
퍼 : 요즘 졸업하면 뭐할 거냐는 질문 많이 받지 않아요?
류 : 질문하는 사람들이 많이 사라져요. (웃음)
퍼 : 그러면 진로 고민 있어요?
체 : 지금 당장 고민하지 않아요. 지금처럼 살면 알바 몇 개 하면서 살면 되거든요.
퍼 : 불안하지 않아요?
체 : 별로. 지금 저는 제가 여행 이후 상상했던 대로 살고 있어서요. 새로운 상상이 생기면 불안해질 수 있겠죠.
퍼 : 부모님이 기대는 안 하시나요?
체 : 부모님 같은 경우는 아무래도 기대가 있어요. 하지만 제가 편안했으면 하는 바람이니, 제가 원하는 편안함의 상태가 어떤 것인지를 더 말해야겠다는 생각은 해요.
류 : 경제적인 것을 유지하면서 살아야 하니까 일단 돈부터 벌어야겠다는 생각은 해요. 하지만 취업보다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살 것 같아요. 그게 저에게는 더 편하고요.
퍼 : 류지와 체리는 10년 후 뭐하고 있을 것 같아요?
류 : 직업은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왠지 10년 후엔 서울에 없을 것 같아요.
퍼 : 그럼요?
류 : 저는 카페나 공간을 만드는 일에 관심이 있어요. 언젠가 뭔 훗날 지역에서 어떤 공간을 만들고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막막한 날 산책을 나갔는데, 어느 곳에서 재미있는 곳을 발견하면 마음이 좋아지잖아요. 그런 공간을 만들고 싶어요. 이게 허세일까요? (갸우뚱)
퍼 : 허세 중요해요. (웃음) 요새 많은 20대들이 꿈꾸죠. 카페나 바리스타…
류 : 네. 저도 한때, 제가 카페를 만들고 싶거나 공간을 만들고 싶은 게 단지 지금 세대가 꿈꾸는 것 중의 하나를 하고 싶어 하는 것은 아닌지 질문을 하곤 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카페는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나도 하고 싶다고 생각해요. 다만 그런 것이 있어야 할 곳은 여기(서울)가 아니다, 라고 생각하고요.
퍼 : 서울은 공간이 충분치 않죠.
류 : 그리고 너무 많은 것들이 몰려있어서 뭘 하든 사람들이 식상하게 볼 것 같아요. (웃음)
퍼 : 학력에 대한 압박은 없나요?
체, 류 : (동시에) 구체적으로 어떤…?
퍼 : 사회적으로 고학력들에 대한 편견이 있잖아요. 동기들도 은연중에 서로 구속할 것 같기도 한데.
체 : 없는 것 같아요.
류 : 연세대 학력을 부담스러워 한 적은 있어요. 결국엔 경쟁에서 이긴 애들로 비춰지잖아요. 엄기호 선생님의 책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에 이런 말이 있어요.
“바보같이 편입하려고 기를 쓸 것이 아니라 멋있게 탈주를 꿈꾸라고 한다.
그런데 이들에게는 이 체제로부터 ‘탈주’할 바깥이 없다.
이들은 이미 바깥으로 내쳐진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착취당할 권리’조차 박탈당했다”
퍼 : 그 구절이 왜요?
류 : 여기서 멋있게 탈주를 꿈꾸라는 건 어른들이 지방대생들의 지나친 편입 경쟁을 보면서 하는 말이에요. 저도 그렇게 생각했었죠. 하지만 이 책은 제가 그런 시선을 가질 수 있는 이유는 제가 이미 체제 안에 들어가길 성공했고, 자신이 체제 밖으로 나오는 것에 의미를 둘 수 있는 그런 집단이기 때문에, 즉 학벌이 좋기 때문이다, 라고 했어요.
퍼 : 읽고 나서 어떤 생각이 들었어요?
류 : 워낙 학력으로 기득권층이 될 수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책을 통해서 그것이 더 적나라해졌고, 그 학벌을 기반으로 둔 제 시선까지 공격받은 것이죠.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저를 다시 보게 했어요.
퍼 : 스스로 위너라고 생각해요? 루저는 아니잖아요.
류 : … 어떤 기준에서 봤을 때 결국엔 경쟁에서 이긴 애로 보겠다는 생각은 해요. 저는 스스로 인생을 루저처럼 살았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 하난데…. 다른 사람들이 판단하기엔 뻔뻔스런 실적이긴 하죠. 그렇지만 루저처럼 살았다는 데에 대해 비판적으로 생각하거나 그것 때문에 민망해해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어쨌든 그 부분은 부담이긴 해요. 하지만 출신 때문에 사회에 기여를 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지는 않았어요.
퍼 : 어쨌든 연세대 학력은 힘들 때 기댈 수 있는 스펙 아닌가요?
체 : 저도 제가 이 학교 계속 다녀야 하는지 질문도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학교생활이 재밌었어요. 제가 직접 겪은 연대는 밖에서 보는 연대와는 다르니까요. 밖에서 어떻게 보는지 확실히 잘 모르겠지만…
류 : 여행 다닐 때 학교 어디냐고 물었을 때 뭐라 말하기가 애매했어요. 말했을 때 반응을 아니까요. 그런데 나중에 계속 물어서 대답을 하면 황당해 하더라고요. 괜히 말 안했던 것이 스카이에 다니는 것을 더욱 부각시키는 것 같기도 했고요.
퍼 : 민망했겠네요.
류 : 네. 하지만 어쨌든 제가 다녔던 몸의 역사이니 계속 그런 시선은 받으면서 살아가야한다는 것은 부정하기 힘든 것 같아요. 제가 연대 학생이라는 것을 숨기면서 사는 게 아니라, 어떻게 살아가느냐로 다시 소통해야하는 것인 것 같아요.
퍼 : 연세대 사회학과라고 하면 어떻게 반응해요?
류 : 공부를 어떻게 했는지는 물어봐요. 밖에서 나를 읽는 기호 가운데 어느 대학의 어느 과인 것이 너무 어색했어요. 특유의 시선도 있어요. 그 시선을 받기가 싫으니까 피하려고 했던 면도 있는 것 같아요.
퍼 : 나를 읽는 기호를 바꾼다면 무엇으로 하고 싶어요?
류 : “류지은”이라는 그냥 저 자체로 받아들여주면 좋겠어요. 시간을 들여서 서서히 알아가 주면 좋죠.
체 : 저는 잘 모르겠어요. 참 식상한 말이지만 그때그때 다를 것 같아요.
퍼 : 둘은 평범하지 않은 것 같아요.
류 : 허세 끼가 있어서 평범하다는 말을 싫어해요. (웃음) 하지만 특별함은 또 오글거려서 싫어요.
퍼 : 특별하진 않은데, 평범하지도 않다…?
류 : 평범함은 누가 봐서 평범해야 하는데, 누가 내 삶을 그렇게 본 적이 없으니까요. 그냥 난 충실히 살고 있다고 생각해요. 중고등학교 때 아이들 만나면 평범하지 않다는 시선을 받기는 해요.
퍼 : 그런 시선을 받으면 어때요?
류 : 제가 사는 기준으로 보면 그들이 더 특별해 보이죠. 준거집단에 따라 다를 것 같은데… 잘 모르겠어요.
퍼 : 잘 모르겠는 게 정답 같아요.
류 : 1초는 평범하고 1초는 평범하지 않을 수도 있죠. 평범함은 타인의 존재를 어떻게 보느냐가 중요한 문제잖아요. 그런데 타인을 평범하게 보거나 특별하게 보는 게 없는 것 같아요. 외모로는 따질 수 있겠지만, 생각은 다 다르잖아요.
체 : 보통 구체적으로 아는 한 사람에 대해서 평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요. 자세히 알면 알수록 사람은 각자 만큼 너무나 크고 달라요. 평범함의 기준도 잘 모르겠어요. 88만원 세대로 묶는 것도 평범한 것 같지는 않고, 각자 다르게 경험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퍼 : 체리와 류지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라는 보통의 고민을 현실에서 잘 풀어나가는 사람들 같아요.
체 : 그냥 자연스러운 과정 같아요. 자연스럽다는 것을 어떻게 표현해야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각자가 자기 행복 찾으면서 사는 거잖아요. 저희가 달라 보인다면 그건 학교나 정부에서 채비해 주지 않은 루트로 여행을 간 것 때문이겠죠. 하지만 거기서 겪는 혼란스러움이나 고민하는 것들을 평범하거나 비범하다, 라고 할 수는 없는 것 같아요. (웃음)
퍼 : 요즘 20대들에게는 어떻게 살아야할지 성찰하기보다는 영어 단어 외우는 게 먼저인 게 현실이잖아요. 요새 청춘들에게는 자기를 돌아볼 시간조차 허용되지 않는 것 같아요.
류 : 그들도 스스로를 돌아보고 하는 선택이지 않을까요?
퍼 : 그들이 자신을 충분히 돌아봤다고 생각해요?
류 : 그들이 생각할 틈도 없이 그렇게 했다고는 설명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자기가 생각한 여러 맥락이 있을 것이고, 그 안에서 현실적으로 영어단어 외우는 게 낫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들의 맥락 안에서는 최선의 선택인 것 같아요. 저도 역시 최선의 선택을 하고 있는 것 같고요.
퍼 : 모두가 최선을 선택을 하고 있는 거네요.
류 : 처음 대학에 들어와서 선배들을 봤을 때 떠밀려서 하고 있다거나, 얘기했던 것과는 달리 현실과 타협한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게 아니라 과정 속에서 그들이 해낸 최선의 선택이니 그렇게 하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해요.
퍼 : 그런 사람들을 어떻게 바라봐요? 조금은 다른 길을 가는 거잖아요.
류 : 서로 다른 길을 가는지 잘 모르겠어요. 다른 길을 간다고 하면 너무 슬프잖아요.
퍼 : 확실히 체리와 류지의 선택과는 다르잖아요.
류 : 나도 언젠가 저렇게 될지도 모르죠. 그리고 저도 그나마 행복해지기 위해서 이렇게 하는 것이고. 제 친구들 얘기 들어보면 저의 삶이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서로 행복으로 다가가는 것 같아요. 다른 길은 아닌 것 같아요. 같이 산다고 해서 같은 길을 가는 것도 아니니까요. 삶이 겹쳐지거나 멀어지거나 하면서 사는 거잖아요.
퍼 : 만약 체리와 류지에게 여행의 시간이 없었다면 어땠을 것 같아요?
류 : 여행의 시기가 없더라도 그냥 이렇게 되지 않았을까요? 그냥 자연스러운 것 같아요. 홍시 맛이 나서 홍시 맛이 난다고 했는데, 왜 홍시 맛이 나냐고 하면 되게 뻘쭘하듯이. 대장금에 나온 말이죠. (웃음) 나한테 너무 자연스러운 것인데 오히려 다시 질문하게 되는 것 같아요.
체리와 류지를 만나고 나는 “청춘”을 다시 생각한다. 생각이 깨졌다 이어지길 반복했다. 섣불리 정의하긴 어렵지만 그들에게는 내가 간직하고 싶었던 어떤 감성이 있었다. 여리면서도 온건했고, 신중했다. 물론 그 안에서 고민과 번뇌는 거부할 수 없는 옵션처럼 자리 잡고 있었다. 나는 이들의 모습이 마치 아름다운 나비로 태어나고자 인고의 시절을 보내는 번데기 같았다. 지금은 작지만 옹골차게 낭만을 품은 번데기 청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