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테라피'(공식 명칭 Horse assisted therapy)는 인간과 말이 교류하는 과정을 통해 인간과 자연, 인간과 사물, 그리고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회복하고 치유하는 프로그램이다. 그것의 기원은 히포크라테스(기원전 260~335년)가 승마의 효과를 발견한 것에서 유래한다. 1957년 헬싱키 올림픽에서 L. 하텔이 양 다리가 마비되는 ‘폴리오 장애‘를 딛고 은메달을 딴 것을 계기로 1960년대 유럽을 중심으로 ‘치료/치유를 위한 승마’가 자리를 잡았다.
왜 하필이면 ‘말’인가? 그것은 오롯이 말이 지닌 특성 때문이다. 말은 처음 만난 사람과 10년을 돌봐준 주인을 구분하지 않고, 항상 평등하게 ‘처음 뵙겠습니다’라는 태도로 사람을 대한다. 말이 선천적으로 지닌 쿨한 태도 덕분에 오락, 재활, 관계의 재구축과 같은 복합 기능을 수행하는 말 테라피가 가능하다.
일본 전국에 14개의 말 테라피 목장을 운영하고 있는 말 테라피스트 요리타 가쓰히코 씨는 자신의 삶 역시 말에게 구원받았다 하였다. 요리타 씨가 대표로 있는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진행하는 ‘말 테라피’의 과정을 들어보자. 오키나와 목장에서 ‘말을 돌보며 생활하는 연수’에 참가하면 누구나 한 마리의 말을 담당하게 된다. 말의 밥을 챙겨주고, 우리를 치워주고, 직접 타기도 하면서 말을 책임지고 돌보며 함께 목장에서 생활하는 것이다.
물론 아침 5시에 일어나기 쉽지 않죠. 그렇다고 억지로 깨우지 않아요. 그저 이렇게 이야기할 뿐이죠.
“그래,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지, 늦게 일어나도 상관없단다. 근데 말 아침밥은 누가 주지?”
말 우리를 청소하는 것도 물론 귀찮아요. 냄새도 나고요. 역시 강요하지는 않고 이렇게 이야기하지요.
“그래, 더러운 곳 청소하는 게 얼마나 싫겠니. 안 해도 된단다. 근데 말은 혼자 청소 못하는데 어떻게 하지?”
이렇게 반복하다보면, 조금씩 바뀝니다. 조금이라도 일찍 일어나서 밥을 주려고 하고, 청소도 조금씩 시작하지요.
내가 요리타 가쓰히코 씨를 처음 만난 것은 2010년 2월이다. 그때 요리타 씨는 제주도 말 목장을 시찰하였고, 나는 수행 통역으로 그와 동행하였다. 그 교류를 시작으로 한국 청소년들이 요리타 씨의 말 목장에서 연수를 받게 되었고, 말 테라피 목장에 관심 있는 기업과 지자체들이 생겨났다. 나는 그가 말 테라피를 시작하게 된 개인적이고도 사회적인 이유를 차근차근 듣고 싶었다.
2010년 12월 사업 준비 차 다시 한국을 방문한 요리타 씨를 만났다.
말 테라피가 필요한 사회
퍼슨웹(이하 “퍼”) : 이번 한국 출장은 어땠어요?
요리타(이하 “요”) : 제주도 가서 주민들이랑 세미나하고, 경기도에도 다녀왔고, 정신과 전문의가 하는 대안학교에도 다녀왔죠. 말 목장하고 싶다는 재단과 미팅하고.
퍼 : 바쁘게 돌아다녔네요. 2월에 시작했는데 벌써 그 정도의 네트워크로 진행하면 내년에는 테라피를 하는 말 목장이 생기겠어요.
요 : 아직은 잘 몰라요. 일단 법인을 먼저 만들고 차근차근 해나갈 것 같아요.
퍼 : 왜 요리타 씨가 하는 말 테라피 사업이 한국에서도 이렇게 술술 잘 진행되는 거죠? 말 테라피 분야는 아직 생소한데, 뭔가 다른 이유가 있을까요?
요 : (웃음) 그걸 나한테 물어보면 어떡해요. 나도 모르지. 다른 사람들한테 물어봐야죠.
퍼 : 요리타 씨는 한국에서도 말 테라피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요 : 어제 대안학교 가서 친구들 만나보니 ‘아 이 친구는 내 담당이네!’ 하고 보여요. 정확히 말하면 나를 필요로 하는 거라기보다는, 말을 필요로 하는 친구들이죠. ‘이 친구는 동물의 힘을 빌려야 겠군’ 하는 거죠. 그런 친구들이 한국에도 많은 거죠.
퍼 : 만나면 그게 다 보이나요?
요 : 네, 그건 보인다기보다 믿는 거죠. 물론 착각일 수도 있겠죠.
퍼 : 가령 어떤 친구들이죠?
요 : 일본에서도 ‘이 친구한테 필요한 사람은 머리 좋은 선생님이나 훌륭한 의사가 아니라 말 아니야?’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어요. 물론 ‘그건 아니지’라며 공감 못 하는 사람도 있겠죠. 반면, ‘그렇군요’ 하고 공감하는 사람도 있어요. 공감하는 사람이 많으면 말 테라피 사업을 진행하는 거죠.
퍼 : 한국도 비슷해 보이나요?
요 : 한국 사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O와 X로 규정된 시험을 보면서 자란 아이들이 지금 이 사회에 엄청 많잖아요? 다들 사회에 나와서도 O, X로 판단을 하는 거죠.
퍼 : O, X ? 이것 아니면 저것? 이분법적 구분을 말씀하시나요?
요 : 한국 세미나에서도 이런 질문이 있었어요. ‘정말 다 나을 수 있나요?’, ‘이런 아이도 치료 가능한가요?’ 저는 ‘낫는 게 아니라요…’ 하면서 왜 낫는 게 아닌지 설명을 계속 반복하죠. ‘낫는 것도 좋지만, 무엇보다 이 친구가 앞으로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으면 더 좋겠죠? 그렇게 보면 낫고 안 낫고는 중요하지 않죠?’
퍼 : 중요한 건 낫고 안 낫고의 구분이 아니다.
요 : 네. 그런데 질문한 사람은 ‘그렇군요’라고 말한 후, 바로 그 다음 질문에 다시 ‘그럼 낫지 않는다는 건가요?’라고 물어요. 저는 다시 ‘아니, 그게 아니고요…’ 설명을 반복하죠. 실은 일본과 한국이 똑같은 상황이에요.
퍼 : 맞아요. 근데 이미 그런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 이 사회에 있죠.
요 : O, X 밖에 없는 시험을 보고 자란 아이들이, 이 사회에 나와서 그 시험의 영향을 곳곳에 끼치는데, 그 영향력은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퍼 : 예를 들자면?
요 : 저는 TV도 안 보고, 라디오도 거의 안 듣지만 라디오 프로그램 중 듣는 게 딱 하나 있어요. 어느 날 그 방송에서 ‘소아암과 싸우고 있는 아이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는 주제로 캠페인을 했어요. 캠페인 제목을 듣는 순간 너무 역겨운 거예요.
퍼 : 왜요?
요 : ‘이 아이들이 암이랑 지금 싸우고 있는 거야? 싸우고 있는 게 아니잖아?’라고 생각했어요. 분명히 암은 암이고, 그 암에 걸린 아이가 있는 거죠. 근데 암이랑 싸우는 건 아이들이 아니라 의사나 제약회사가 아닌가요? 암과 관련된 이해 관계자들은 암과 싸우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아이들은 아니잖아요?
퍼 : ‘싸움’이 전제하는 무엇이 마음에 안 드신 거죠?
요 : 그렇죠. 싸운다는 건 이기거나 지는 것 밖에 답이 없어요. 물론 병이 호전돼서 나은 아이들은 괜찮죠. ‘넌 이겼구나’하면 되지만, 병이 점점 나빠져서, 혹여 죽게 된다면 그 아이는 어떻게 되는 건가요? 그럼 싸움에서 지게 되는 거잖아요? 아이도 싸우고 있다가 죽게 된다는 것을 아는 순간 패배감에 빠지게 되잖아요. 항상 ‘넌 암과 싸워서 이겨야 돼’라는 말을 들은 아이들은 패배감을 느낄 수밖에 없게 되죠.
퍼 : 그렇죠.
요 : 암에 걸려서 점점 악화되는 게, 꼭 지는 건 아니잖아요? 6살에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한들, 그게 싸움에서 진 건 아니잖아요? 6살까지 매일매일 씩씩하게 행복하게 살았으면 그것으로도 의미가 있는 거지, 죽는다고 지는 건 아니잖아요?
퍼 : 지금 생각해보니 그렇네요. 한국에서도 ‘암과 싸우는 아이들’ 그런 이야기를 미디어에서 많이 흘리는데,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은 없었네요.
요 : 라디오 캠페인 제목 듣고 나서 엄청 열 받았죠. ‘전국에 이런 방송 전파로 흘리면서 대체 뭐하는 거냐! 까불지마! 아우 열 받아!’ 하면서요. 이건 테라피 하면 치료가 되느냐 안 되느냐를 묻는 이야기랑 같은 거예요.
퍼 : 어떤 면에서요?
요 : 테라피 하고도 낫지 않으면 그 아이는 실패한 아이인가요? 꼭 낫지 않아도 행복하게 살 수 있으면 되지 않나요? 낫는지 안 낫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마찬가지로 오래 살았는지 그렇지 않았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비록 오래 못 살았어도 살아있는 동안 매일매일 충실하게, 행복하게 살았으면 된 거잖아요. 그것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는 거예요.
퍼 : 결국 이분법이 아니라 다른 구도가 필요하군요.
요 : 네. 이기느냐 지느냐는 중요하지 않아요. 그런 라디오 캠페인 만드는 사람들도 역시 OX 시험 다 순조롭게 통과한 엘리트니깐, 그렇게밖에 생각 못 하는 거죠. 방송 들으면서 ‘정말 바보 아니야?’ 했는데, 저는 귀찮게 매일매일 이런 생각하고 살아요.
출발선에 서지 않기
퍼 : 요리타 씨가 OX 시험을 보던 학창시절부터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이 있었던 것은 아니죠?
요 : 저는 학창 시절부터 그랬어요. 그런 시험이 싫어서 아예 참가를 안 했죠.
퍼 : 시험을 안 본 거예요?
요 : 그렇죠. 시험을 볼 때도 있었고, 안 볼 때도 있었는데, 기본적으로는 마음 내키는 대로, 그때 기분에 따라 행동했어요. 초등학교 때부터 ‘출발선에조차 서지 않는 싸움’을 했지요. 출발선에 서는 순간부터 이기는지, 지는지가 갈리게 돼요. 그래서 시험을 안 보거나, 학교를 안 가거나 했죠.
퍼 : 학교 안 가고 뭐했어요?
요 : 집에는 학교 다녀오겠다고 하고, 그냥 개랑 공원 가서 종일 놀았죠. 근데 가끔은 승부해보고 싶으니깐 시험을 볼 때도 있었어요. 물론 이길 자신 있는 것만 골라서요. 이기면 기분은 좋으니깐요. (웃음) 그 당시에는 그저 다들 경쟁을 전제로 출발선에 서 있는 그 자체가 싫어서 그랬는데, 조금 커서는 왜 그게 싫었는지 알게 됐죠.
퍼 : 왜 싫었어요?
요 : 경주를 하려고 다 나란히 서서 ‘준비 땅!’을 기다리잖아요. 그게 너무 싫었어요.
퍼 : 그럼 운동회 같은 것도 참가 안 했어요?
요 : 그것도 물론 마음 내키는 대로 했죠. 달리기 경주에 참가해서 출발선에서 ‘준비 땅!’ 하면, 반대 방향으로 달리고 그랬어요. 선생님이 ‘그쪽 아니야, 이쪽으로 달려’라고 하잖아요. 그럼 나는 ‘선생님, 저는 지금 다른 사람들이랑 다른 방식으로 경주에 참가하는 중이라서 저기로 달려야 해요’ 하면서 반대로 달렸죠. (웃음)
퍼 : (웃음) 요리타 씨 돌보던 선생님들도 참 힘들었겠네요.
요 : 엄청 당황하고 고생하셨죠. 학교 다닐 때 친구들한테 인기도 많았어요. 내가 반대로 달리면 친구들도 따라서 반대로 달리는 거예요. 선생님들은 ‘요리타는 영향을 미치는 파급력이 너무 크다’고 평가했죠. 선생님들도 당황하고 고생하니깐, ‘내가 뭐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드려야지’ 했죠. 갑자기 학교에서 학교 건물을 붕괴시킬만한 장난거리가 생각나더라도 ‘이 선생님은 이제 부임한 지 2년밖에 안됐으니, 이번에는 그냥 봐줘야지’ 하면서 자제한 거죠. (웃음)
퍼 : 굉장히 거만한 학생이었네요.
요 : 그렇죠. 중학교 떄부터는 대부분 수업을 사물함 위에서 들었어요.
퍼 : 왜요?
요 : 이유는 잘 모르겠어요.
퍼 : 그러지 말라고 선생님들이 하지 않아요?
요 : 처음엔 뭐라고 하셨죠. 근데 뭐 거기서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으니까요.
퍼 : 어떻게 보면 선생님들한테 잘 보살핌 받아가며 자란 거 아니에요? 원래 반항하거나 저항하면 대부분 그러다가 지적당하고 꺾이잖아요.
요 : 그렇긴 하죠. 근데 전 굉장히 전략적으로 했던 것 같아요. 출발선에 서 있지 않는다는 것은 다시 말해서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거예요. 저는 항상 세계평화를 원했어요. 6살인가 7살 때 ‘세계 평화’라는 말을 굉장히 명확하게 이해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세계를 평화롭게 하는 게 내 인생의 미션이라 생각했죠.
퍼 : 어릴 때부터 세계 평화를 꿈꿨다고요? 설마요.
요 : 기억이 선명해요. 매일 왜 싸움이 일어나는가에 대해서 고민했어요. 그러다 출발선에 선 것 자체가 싸움의 출발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준비, 땅!’ 하고 달리기를 시작하지 않으면 경쟁을 안 해도 되는 거예요. 만일 출발선에 서있고 ‘준비 땅!’하고 경주가 시작되면, 난 거기서 달리지 않아도 이미 싸움은 시작한 거죠. 그러니깐 출발선에 서는 것 자체부터 하지 말아야 하는 거죠.
퍼 : 출발선에 서는 것 자체가 싸움의 출발이다.
요 : 네. 그래요. 어릴 때 어른들과 관계 맺을 때에도 그랬는데,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기준에 처음부터 아예 맞추지 않으면 혼나지도 않아요. 애정을 받지도 않고, 싸움도 안 되는 거죠.
퍼 : 학창 시절에 재미있는 일이 많았겠어요.
요 : 무슨 일이 있었냐면, 고등학교 때에는 교복을 안 입고 다녔어요. 전혀 다른 옷 입고 다닌 거죠. 원래는 규칙을 위반한 거라서 혼나기 마련인데, 전 한 번도 혼난 적이 없어요. 왜냐면 내가 입고 다녔던 옷이 엄청 촌스러웠거든요.
퍼 : 옷이 촌스러운 것과 혼 안 나는 게 관계가 있어요?
요 : 이게 중요해요. 교복을 조금 수선해서 불량스럽게 입고 다닌다면, 어떤 의미에서는 ‘멋있는 옷’으로 보이는 거죠. 반면 저는 더럽지는 않지만 좀 추하고 촌스러운 옷을 입었어요. 이런 패션은 장르를 넘어섰으니 ‘쟤 바보 아니야?’라고 할지는 몰라도 선생님한테 지적은 받지 않았어요.
퍼 : 도대체 어떤 옷을 입었었는지 궁금하네요.
요 : 꽤 이상했죠. 어릴 때부터 그걸 의식하고 행동해서, 저지당하거나 혼나거나 한 적이 없어요. 그냥 다 무시했죠. ‘쟨 어차피 우리랑 달라’ 하면서.
퍼 : 대단합니다.(웃음) 고등학교 졸업하고 나서는 뭐했어요?
요 : 고등학교는 다니다가 중간에 그만뒀어요. 고등학교 다닐 그 당시에는 스스로 천재라고 생각해서 학교 다닐 의미를 찾지 못했어요. (웃음)
퍼 : 스스로를 천재라고?
요 : 지금은 아니지만. 여하튼 어릴 때부터 항상 세계 평화를 고민하며 살았어요.
퍼 : 어떻게 어릴 때부터 그런 생각을 한다는 거죠? 제가 어릴 때만하더라도 얼마나 재밌게 놀 수 있을까, 무슨 게임할까, 어디 놀러갈까 그런 생각만 했는데 말이죠.
요 : 왜 못 믿죠? 그때는 항상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서로 상처받지 않고 살 수 있을까, 이게 인생의 테마였어요. 왜 그랬을까 보면, 역시 가정환경에 영향을 받은 게 아닐까요? 집안에서 매일매일 싸움이 끊이지 않았어요. 서로 싫어하고 고통과 상처를 주는 가정에서 자라서 그랬던 것 같아요.
퍼 : 아, 그렇군요.
요 : 엄마랑 아빠가 어떻게든 좀 화해하고 사이좋게 지내면 좋겠다. 그것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왜 아무 것도 없을까? 그런 고민을 하는 거죠. 매일매일. 밤만 되면 싸우는데 그 소리가 듣기 싫어서 귀 막고 잠자고 그랬어요. 자기 전에는 항상 우주여행을 했죠.
퍼 : (웃음) 우주여행이 뭐예요?
요 : 우주에 내 진짜 엄마 아빠가 있어서 매일 밤 만나러 가는 거예요. ‘요즘 이런 착한 일을 하고 있어요’ 이야기하고, 우주의 엄마 아빠한테 귀여움 받고 사랑 받은 거죠.
퍼 : 우주에 있는 엄마 아빠는 어떤 사람이었어요? 지금 요리타 씨가 아빠로 아이들 돌보고 있는데, 그때 우주의 아빠랑 비슷한 모습인가요?
요 : 아니, 전혀 달라요. 우주에서 만난 아빠는 우주의 샐러리맨이었죠. 우주에서 아이가 태어나면 캡슐에 담아서 여기저기 행성으로 보내요. 아이들도 산통을 겪고 낳는 게 아니라, 공장에서 생산되는 형태였어요. 공장에서 아이가 생산되면, ‘이 아이는 당신의 아이입니다’ 하고 배정받아서, 조금 기른 다음에 지구 같은 행성으로 보내버리는 시스템이죠. 미사일에 같이 쏴서 (웃음).
퍼 : 내용이 구체적이네요.
요 : 가끔 엄마 아빠와 신호를 주고받을 수 있어요. ‘어떻게 지내? 건강하니?’ 서로 안부를 묻는 거죠. 저는 자유롭게 우주를 오갈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서 우주로 돌아가기도 해요. 가끔 적들도 나타나서, 그 적들이랑 싸우기도 하죠. 빔 같은 거 발사해서 이렇게 삐융 하고 쏘고, 적들 물리치고 엄마 아빠 만나 놀다가, ‘자 그럼 또 만나. 내가 지구 평화를 위해서 열심히 하고 올 테니깐’ 하고 인사하고 헤어져요.
퍼 : (웃음) 너무 재밌네요. 우주의 아빠는 샐러리맨이었다니, 지금 요리타 씨랑 전혀 다른 모습이잖아요.
말을 통해 다시 태어나다
퍼 : 고등학교를 중간에 그만 두고 여행을 다녔나요?
요 : 네.
퍼 : 처음 여행간 곳은 어디에요? 가서 뭐했어요?
요 : 홋가이도에 있는 목장에서 일했어요.
퍼 : 그때 말을 만난 거예요?
요 : 아니요. 그땐 젖소 목장에서 일했어요. 월급 안 받고 그냥 숙식 제공받으면서. 그때 만난 분들이 너무 친절해서 평생 여기서 살겠다고 했어요. 근데 계속 여행 다니라는 사람이 있어서…
퍼 : 누가요?
요 : 몰라요. 우주에서 온 지령 같은 거예요. 그래서 여행 떠나서 여기저기 돌아다녔어요. 러시아도 가고, 동유럽도 가고 제주도도 갔지요.
퍼 : 왜 러시아나 동유럽에 간 거예요.
요 : 이유는 딱히 없었어요. 배랑 기차 타고 돌아다녔어요.
퍼 : 그렇게 몇 년 동안 여행했어요?
요 : 4년 정도 했어요. 4년 정도 여행하니깐, 정신이 나가서 일본으로 돌아왔죠.
퍼 : 정신이 나가다니요?
요 : 미치게 된 거죠. 머리 이상한 사람이 됐어요.
퍼 : 왜요?
요 : 너무나 많은 죽음을 봤어요. 배 타고 가다가 뛰어내린 할아버지, 두들겨 맞아 죽은 아이, 서로 싸우고 죽이고… 세계평화를 지키기 위한 여행이었는데 매번 평화를 지키는 데는 실패했어요. ‘이게 뭐지?’ 하면서 20살 됐을 때 일본으로 왔어요.
퍼 : 세계평화를 지키기 위해 여행 다니면서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하셨나요?
요 : 아무 것도 못했죠. 여러 사람들 이야기 들으면서 용기도 주고, 누가 싸우고 있으면 그 사이에 들어가서 싸움 말리고, 좌절하는 사람 만나면 ‘괜찮아, 걱정마’라고 이야기해주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퍼 : 좀 순진하달까, 낭만적이랄까? 그랬네요.
요 : 네. 유대인 학살당한 곳, 지금은 무덤인 곳에 갔는데, 거기서 어떤 사람이 자기네 할아버지도 거기서 죽었다며 그 이야기를 내게 해주고 싶다는 사람이 있어요. 그러면서 이야기를 하는데 언어는 안 통했지만, 굉장히 세세한 것까지 기억이 나요.
퍼 : 오. 러시아어도 할 줄 알아요?
요 : 아니. 못해요. 외국어 전혀 못 했어요. 근데 내가 그렇게 해도 싸움은 하더라고요. 막상 싸우기 시작하면 총으로 싸우니깐, 저도 목숨 건지려고 피해서 숨었지요.
퍼 : 위험한 상황이었군요.
요 : 네. 그렇게 여행하다 ‘아 역시 안 되네’ 하면서 돌아왔죠.
퍼 : 한계를 느낀 건가요?
요 : 한계를 느꼈다기보다 그 전까지 천재인 줄 알았는데 그게 착각이었다는 걸 알게 된 거죠. 내가 의지하고 있었던 어떤 생각들이 다 깨지면서, ‘난 천재가 아니라 그저 무척 불행한 아이였을 뿐이구나, 필요 없는 인간이었구나’를 깨달은 거죠. 그러면서 살아가는 의미를 찾지 못하고 사는 게 괴로워졌어요.
퍼 : 어린 시절이나 청소년기를 돌이켜 보면, 즐거웠던 기억은 없었나요?
요 : 그저 저는 배우로서 하루하루를 연기했던 것 같아요. 아마 연기를 했으면 잘 했을지도 몰라요. 왼손잡이 역할도 잘했고, 제가 만든 역할에 대해서는 완벽하게 연기했지요.
퍼 : 만든 역할?
요 : 심지어 화장실 가는 횟수도 다 정했었으니까요.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 저녁에 자는 시간, 밥 먹는 양, 머리 좋은 캐릭터인지, 운동 잘하는 캐릭터인지, 잘 싸우는 캐릭터인지, 여학생들한테 인기 많은 캐릭터인지, 모두 정한 다음에 학교에 다녔어요.
퍼 : 그래서요?
요 : 운동 잘하는 캐릭터인 경우에는, 쉬는 시간 되면 바로 아이들 모아서 ‘축구하러 나가자!’ 하고 운동회에서 당연히 1등하고, 공부 잘하는 캐릭터일 경우에는 운동 안 하고 공부만 해서 100점 맞고요. 근데 이런 연기는 여행을 끝내고 일본에 온 20살에 다 끝났어요.
퍼 : 그때 말을 만났나요?
요 : 네. 다시 처음부터 말에게 길러진 셈이죠.
퍼 : 말에게 다시 길러졌다니요?
요 : 말이 저에게 인간이라는 존재를 깨우치게 해주었죠. 그전까지는 연기만 할 뿐 어느 누구와도 연결되어 있지 않았어요. 내가 세계를 구할 거라고 착각했고요. 근데 말을 만나면서, 실제 생활에서 말과의 관계가 차곡차곡 쌓이면서 깊어지는 걸 느꼈지요. 마치 말이 절 다시 길러주는 것 같았어요. 지금도 그 과도기를 겪고 있지만요. (웃음)
퍼 : 말은 어떻게 만난 거죠?
요 : 24살까지 가나가와 현에 있는 승마클럽에서 일을 했어요. 말도 잘 타게 되고 거만해지고 있었는데, ‘아 이대로는 안 되겠구나’라고 깨달았어요.
퍼 :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
요 : 제가 기르던 말이 한 발짝도 걷지 못하는 거예요.
퍼 : 말이 못 걷다니요?
요 : 그 당시에 제가 했던 말 훈련 방식이 때리면서 가르치는 거예요. 말을 안 들으면 때리고, 그래도 안 들으면 더 때렸죠. 그러다가 죽으면 어떻게 되느냐? 그럼 어쩔 수 없고, 그 말은 말이 아니었다고 생각하는 거죠.
퍼 : 아…
요 : 근데 제가 3년간 돌보던 말이 어느 날 갑자기 움직이지 않는 거예요. 때렸죠. 그래도 말을 안 들어서 피가 나도록 때렸어요. 그래도 안 움직여서, 말에서 내려서 ‘이 바보자식아, 너 평생 안 탈거야!’ 하면서 발로 찼어요. 말이 쓰러졌어요. 말 눈에서 눈물이 흘렀어요.
퍼 : 그때 심정이 어땠어요?
요 : 그 눈물을 보고서 ‘아, 나 일 저질렀구나, 도대체 내가 왜 그랬을까…’ 하면서 옆에 있던 잡초를 한 줌 쥐어서 주니깐, 엉금엉금 걸어와서 잘 먹는 거예요. 그걸 보고 ‘너 정말 이렇게 금세 또 날 용서하는 거냐, 나 같은 어리석은 인간을…’
퍼 : 아이고.
요 : 나 같은 인간은 말의 힘을 빌려야만 살 수 있고 말이 곁에 없으면 죽을 것 같으니, 말과 평생 같이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어요. 그런데 그 당시의 말 훈련 방식으로는 평생 같이 못할 것 같더라고요. 말이 견디지 못하고 도망가고, 그렇게 되면 저도 삶의 의미를 못 찾고 다시 죽지 않을까, 말 훈련 방식을 바꿔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퍼 : 그게 다른 훈련 방식을 찾는 계기가 되었군요.
요 : 다른 훈련 방식이 없으면 직접 만들자 했어요. 그러면서 ‘아, 내가 원래 좀 미쳐 있었는데, 그런 내가 말 덕분에 정말 많이 좋아졌구나’ 하고 다시금 깨달았죠. 나 같은 사람 다른 곳에도 분명 있을 터이니, 말 훈련 방식 연구하면서,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 말을 소개해주는 일을 해야겠다고, 24살에 독립했어요.
쿨한 말과 관계 맺기
퍼 : 새로운 말 훈련 방식은 어디에서 배웠어요?
요 : 직접 독학했어요. 핵심은 ‘관계 만들기’예요.
퍼 : 좀 더 구체적으로 자세히.
요 : 말을 때리면서 움직이게 하는 건 ‘관계 만들기’가 아니에요. 인간이 원하는 동작을 행하게 하기 위해 물리적으로 압력을 가하는 거죠. 그건 이 컵을 옆으로 옮기는 것과 같은 거예요. 말을 하나의 ‘물건’으로 가정할 때나 가능한 이야기죠. 만일 이 컵이 안 움직이면 좀 더 힘을 줘서 옆으로 미는 것처럼.
퍼 : 그렇죠.
요 : 제가 하고 싶었던 방법은 이 컵한테 말을 거는 거예요. ‘있잖아 컵, 좀 미안한데 옆으로 조금만 움직여줄래?’ 그러면 컵이 ‘아 그래, 좀 움직여주지’ 그러면서 조금 옆으로 움직이게 되면, 나랑 컵한테 서로 좋은 거잖아요.
퍼 : 말 걸기!
요 : 내 팔이 안 움직인다고 해봐요. 그때 어떻게 하면 잘 움직이게 할 수 있을까 그런 건 원래 관심이 없었어요. ‘움직이지 않아도 되지 않나?’ ‘더 중요한 건 따로 있지 않나?’ 움직이고, 움직이지 않고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를 구축하며 무엇을 중시하며 살아갈지를 발견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죠.
퍼 : 전제가 달라지는군요.
요 : 지금 하는 일의 핵심은 ‘관계성’이예요. 모두 이것과 연결되어 있지요. 저는 말을 좋아하니깐, 이야기를 나눌 말을 찾아 소개하고, 이야기를 나눌 때 ‘사람의 언어’뿐 아니라 말도 이해할 수 있는 기호도 사용하지요. 그러면서 서로 관계를 깊이 만들어나가는 것, 그런 깊이를 실감 가능한 관계를 만들어가는 거죠.
퍼 : 관계를 다시 만들어 가는 건 꼭 말이어야 가능한 건가요?
요 : 사람끼리도 괜찮아요. 물론 쉽지 않은 일이죠. 관계를 잘 맺을 줄 아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만났을 때에는 전자가 엄청난 노력을 해야 후자를 도울 수 있어요. 공부해야 하고, 능력도 갖춰야 하죠. 매우 어려운 일이죠.
퍼 : 사람과 다른 동물이 관계를 맺는 것은요. 개나 고양이 같은 반려동물들?
요 : 물론 다른 동물도 가능해요. 개, 고양이, 토끼, 쥐도 가능하긴 해요. 하지만 어려워요. 저는 말이 제일 간단하다고 생각해요. 말이 가지고 있는 특성이 사람 간의 관계를 구축하는 데 가장 적합해요.
퍼 : 왜죠?
요 : 말은 낯을 가리지 않아요. 강아지는 자기 주인인줄 알고 다가가서 애교도 부리곤 하죠. 인간이 다가가지 않는 한 말은 사람에게 다가오지 않아요. 물론 먹이가 있으면 다가가긴 해요. 그거랑은 좀 다른데, 강아지는 굳이 먹이가 없어도 주인이 부르면 가잖아요. 말이 낯가리지 않는 게 테라피 할 때에는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해요.
퍼 :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인가요? 그게 왜 중요한 역할을 하죠?
요 : 낯가리지 않고 애교가 없으니깐, 차별을 전혀 안 해요.
퍼 : 차별?
요 : 예를 들어, 강아지가 어제는 친근하게 다가와서 애교 부리다가 오늘은 상태가 좀 안 좋아서 가만히 있을 수 있지요. 그럼 테라피 받는 사람들은 상처받을 수도 있어요. ‘어제는 그렇게 애교 부리다가 오늘은 강아지가 말을 잘 안 듣네, 난 역시 안 되는 인간이야’ 하면서 상처 받아요.
퍼 : 정말요?
요 : 네. 좀 어이없이 들릴지 모르겠지만, 실제로 그런 경우가 있어요. 만일 두 사람이 강아지를 부르는데 한 사람한테 가서 애교 부리고 다른 사람에게는 냉랭하다면 냉랭하게 대한 사람은 상처받을 수 있어요. 평생 그 강아지를 다시 안 만날 수도 있고, 죽을지도 모르죠.
퍼 : 심리적으로 매우 심약한 상태라면 그럴지도 모르겠군요. 말은 안 그런가요?
요 : 말은 사람을 대하는 게 한결 같아요. 매일 먹이를 주는 사람이나 처음 보는 사람을 똑같이 대해요. 누구에게나 ‘처음 뵙겠습니다’ 하면서 대해요. 그 전까지 관계는 일절 무시하죠. ‘내가 널 10년간 길렀잖아!’ 해도 무시해요.
퍼 : 반대로 그 특성 때문에 말을 기르는 사람이 상처받지는 않나요?
요 : 물론 기르는 사람 입장에서는 상처받을 수 있지요. 그렇지만 자기가 쭉 돌봐온, 관계를 깊이 맺어온 대상이 자기에게 다가와서 친하게 대하지 않아서 받은 상처는 제가 지금 이야기한 상처와는 또 다른 차원이에요.
퍼 : 무엇이 다를까요?
요 : 친하게 대해주지 않는다고 상처를 받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관계성이 없기에 상처를 받는 거예요. 관계성이 없는 것을 친하게 대해주지 않는다고 받아들여 상처가 되는 거죠. 근데 말은 관계가 있든 없든 관계성을 요구하지 않기 때문에 처음 온 사람이 상처받는 경우는 없어요.
퍼 : 네
요 : 쭉 관계를 만들어 온 사람의 경우, ‘뭐야, 나한테 따뜻하게 대하지도 않고 말이야’ 하는 상처는 받을 수 있겠지만 그 상처는 관계성을 만들지 못해 생긴 건 아니에요. 관계를 깊이 맺어온 사람이 친하게 대해달라고 요구하는 건 그저 인간의 거만함을 드러내는 것이고, 여기서 이야기하는 진짜 상처는 아니에요.
퍼 : 그렇군요. 그럼 그때는 어떻게 하나요?
요 : 물론 테라피 전문가 입장에서 상처를 받는 경우도 있지요. ‘내가 몇 십 년간 돌봤는데도 말은 여전하구나’ 하면서 받는 상처. 그건 테라피 전문가가 되면 마주 하는 하나의 장벽이에요. 개인이 선택을 해야 하죠. 그 일을 계속할지 말지.
퍼 : 아, 그렇군요.
요 : 내가 사랑하면 반드시 돌아오겠지 하는 건, 인간중심주의 생각이에요. 물론 사람 관계에서는 있을 수 있는 이야기지만, 동물과 자연은 아니에요. 내가 정성을 다해 돌봐도 말은 일절 무시하죠.
퍼 : 요리타 씨는 그럴 때 섭섭하지 않았나요?
요 : 저에게는 아무 상관없어요. 저는 말의 그런 능력에 도움을 받아 지금 이렇게 살고 있기에, 그에 대한 은혜를 갚기 위해 말을 돌보고 있는 거예요.
퍼 : 그렇군요. 말이 테라피에 적합한 다른 이유가 또 있을까요?
요 : 직접 탄다는 점이 중요하죠. 물리적으로 신체 감각을 이용해서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거죠. 인간의 경우에는 가끔 업어줄 수는 있어도 탈 순 없죠. 개나 고양이도 무리죠.
퍼 : 현대사회에 사회에 결여되고 있는 ‘접촉’ ‘연결’과도 이어지네요.
요 : 말은 대상자와 직접 몸이 맞닿는데, 이건 마음을 돌보고 성장시키기 위해서 굉장히 중요한 포인트이지요. 현대 사회에서는 신체 접촉이 점점 줄어들고, 머리로만 생각하잖아요. 몸은 어딘가에 내팽개쳐 있고, 마음으로 고민만 하고요.
퍼 : 그렇죠.
요 : 마음도 머리도 몸과 다 연결된 일체의 것이라, 몸을 활용한 커뮤니케이션을 배우지 않으면 진짜 살아가는 힘은 만들어지지 않아요. 그렇기에 말은 테라피 하기에 아주 적합한 동물인 거죠.
불안하다면 접촉하라
퍼 : 은둔형 외톨이, 부등교 학생, 지적장애인 학생들과 함께 목장에서 생활하는 프로그램도 있는데, 그것도 <인포메이션 센터> 사업의 하나로 시작한 건가요?
요 : 처음에는 재활승마 목장으로 시작했어요. 몸이 불편해서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말을 타면서 재활하는 활동부터 시작했어요. 또 어떤 분이 학교에 안 가는데 말을 좋아하는 친구가 있다며 돌봐주지 않겠느냐고 제안을 했어요. 그 친구를 만나고 나의 일상을 있는 그대로 함께 해야겠다 싶어서 같이 살면서 돌보기 시작했어요.
퍼 : 처음 돌봤던 친구, 지금은 많이 컸겠네요?
요 : 지금은 우수한 변호사가 됐지요. 제가 고소당하면 구해줘야 하니깐 변호사가 되겠다고 했어요. (웃음) 내가 왜 고소당하는데? 했지만요.
퍼 : 대안학교 같은 데 가면 ‘아 이 친구는 나랑 놀아야겠구나’ 하면서 테라피 대상자들을 금방 알아볼 수 있다고 했잖아요. 그건 어떻게 알아보는 건가요?
요 : 눈빛이나, 행동을 보고 알죠. 선생님이 왔는데도 자고 있다거나, 다른 곳 보고 있다거나, 그런 친구들은 딱 봐도 관계 만들기 힘들겠구나 하고 알 수 있잖아요? ‘내 친구구나’ 하고 알아채죠. 비슷한 종족들은 서로 알아본다니까요. (웃음)
퍼 : 구체적인 경험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요 : 이번에 서울 출장에서도 대안학교에 갔는데, 아이들에게 한 시간 정도 강연을 해달라고 부탁받았어요. 선생님들이 ‘시끄러운데 괜찮겠어요? 말 잘 안 들을 텐데 괜찮겠어요?’라고 묻는 거예요. ‘괜찮아요.’ 하면서 들어갔는데, 제 이야기를 다 잘 듣는 거예요. 같은 종족이 온 걸 안 거죠. 친구들도. ‘아 같은 종족이 왔다, 뭔가 이야기하네’ 그러면서요. (웃음) 이야기 끝나고는 너나할 것 없이 손들고 질문하겠다 하고. (웃음)
퍼 : 어떤 질문들이 나왔어요?
요 : 재밌어요. ‘말은 뭘 먹나요? 말은 몇 살까지 사나요?’부터 시작해서, ‘좋아하는 한국 연예인 있나요?’ 그럼 ‘소녀시대 좋아해요’라고 대답하고 ‘오~’ 하고 아이들이 반응하고, ‘일본 애니메이션 이거 알아요?’라고 물어보면 ‘당연히 알지’라고 대답하면 다시 또 ‘오~’ 하고. (웃음) 뭐 그런 거죠. 저도 그렇고요. 다 같은 종족이에요. (웃음)
퍼 : 요리타 씨와 같은 종족 친구들이 앞으로 점점 더 늘어날까요?
요 : 늘어날 거예요. 그런 아이들이 나오는 이유는 관계성 결여라고 아까 이야기 했죠. 근데 이 세상은 점점 관계성이 결여되는 방향으로 가고 있기 때문이에요.
퍼 : 왜요?
요 : 가령 자동차 운전을 하며 돌아다니는 거, 그게 관계성이 결여된 거예요. 걸어 다니면 지면과 관계가 계속 유지되잖아요. 그리고 맨발로 걸어 다니면 더욱 그렇고요. 인도 사람들은 걸어 다니면서 땅에게 감사하죠.
퍼 : 접촉을 통해 생기는 관계군요.
요 : 여기저기 자동문이라 문도 자기 힘으로 열지 않죠. 자연스럽게 자기 몸과의 관계성도 잃어버리게 되요. 이러니까 관계성이 결여된 아이들이 나오는 거예요. 점점 관계성이 결여된 사회로 만들수록 그런 아이들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거죠.
퍼 : 편리하고 풍요롭게 살기 위해 발전한 게 아니라요?
요: 그러니깐 편리함, 풍요로움에 대한 의미를 착각하고 있는 거죠. 그걸 수정해야 해요.
퍼 : 어떻게 수정해요?
요 : 제가 지금 수정하고 있어요. 그래서 세계 곳곳에 목장을 만들고 있는 거죠.
퍼 : 물리적인 관계뿐만 아니라 사람 사이의 관계도 사라지는 것 같은데, 어때요?
요 :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는 이성적인 관계잖아요. 이성적인 관계는 신체적인 관계 위에 존재하지 않으면 진정한 관계를 만들 수 없어요. 뇌만 있으면 인간이 되느냐? 그건 아니잖아요? 감각을 가진 신체, 그 감각이 드나드는 신체가 굉장히 중요한 거죠. 뇌는 심장이나 간처럼 하나의 기관일 뿐이에요. 그래서 뇌 자체만으로는 아무 기능을 못해요. 모두 연결되어야 기능을 하는 게 바로 사람인 거죠. 뇌만 발전하게 된다면 이 세상은 참 이상하게 될 거예요. 결국 불안만 생겨나게 되죠.
퍼 : 그럼 그렇게 생겨난 불안은 어떻게 다시 극복하나요?
요 : ‘연결’과 ‘관계’가 ‘믿음’을 만들어 내는 원천이에요. ‘연결’이 없으면 믿음 역시 사라지지요. 사람을, 세상을, 인생을, 나 자신을 믿지 못 해서 불안해지는 거지요. 그 불안을 견디려고 이론을 만들어 내거나 돈을 벌어서 쌓아두지만 불안을 없앨 수는 없지요. 그냥 걷기만 해도 괜찮아요. 근데 저는 걷는 거 별로 안 좋아하니깐 말을 타는 거죠. (웃음)
손발, 그리고 몸으로 살아가기
퍼 : 관계, 접촉이 줄어드는 것과 마찬가지로 직접 자기 손으로 뭔가를 만드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어요.
요 : 세계 생산을 보면 세계 인구의 20%만이 구체적으로 기계를 만든다거나 채소를 기르죠. 80% 인간이 20%가 만든 것을 가지고 살아가는 거지요. 이건 뭔가 잘못된 거죠. 그야말로 착취구조지요.
퍼 : 일을 해도 점점 가난해지니깐 농사를 짓는 사람들, 손으로 뭔가를 만드는 사람들은 줄어들고 있죠?
요 : 그건 착취하는 사람들의 수가 많아지기 때문이죠. 20% 인간만이 생산하기 때문이잖아요. 가장 좋은 건 모든 사람들이 뭔가 만들고 생산하는 사람이 되는 거예요. 근데 ‘전문성’ 개념을 만들면 전문성을 가진 일부의 사람들만이 만들 자격을 갖게 되죠.
퍼 : 말 테라피도 전문가가 필요하지 않나요?
요 : 말은 누구나 다 돌보고 탈 수 있어요. 이것도 중요한 점이에요. 오늘도 어느 시장과 회의했는데, 시장이 ‘목장 좋네요. 만듭시다.’ 하니깐 회의 참가한 다른 직원이 ‘전문가들 도움 받아가며 준비된 다음에 시작합시다.’ 하는 거예요. 그건 물론 훌륭하지요. 근데 거기서 제가 한마디 했죠.
퍼 : 뭐라 하셨나요?
요 : ‘잠시만요, 목장 만들고 운영하는 건 말을 처음 만난 사람도 가능합니다. 말도 제주도에서 가지고 옵시다. 훈련되기 전까지는 아무도 안 탑니다. 일단 만나봐야 하는 거지요. 거기서 일을 시작합니다. 시행착오 겪어가면서 하면 됩니다.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지금 일을 찾지 못하는 청년도 좋습니다. 목장에서 말과 만나게 해보면서 시작하면 됩니다. 동시에 그 친구도 목장에서 활기차게 일할 수 있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것도 하나의 테라피이자 사회공헌이기도 하며, 그러는 사이에 일도 찾은 게 되는 거죠. 그러면서 하나씩 해나갑시다’라고 했지요.
퍼 : 후후
요 : 보통 전문가 집단을 구성해서 진행하고, 손님을 모집하는데, 그럼 기획한 집단과 손님이 분리된 채로 시작하게 되고 일자리도 못 만들어 내죠. 전문가밖에 그 일을 못하도록 해놨으니.
퍼 : 그래도 말 테라피 분야의 전문가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요 : 전문가를 양성하는 건 말이 안 되는 거죠. 그럴 필요도 없는 거예요. 점점 분열 구조를 만들어가는 사회가 되는 거죠. 대안학교나 대안기업들도 모르는 사이에 그런 분열된 구조 안에 말리게 되죠. 사회 시스템에 대해 확신을 갖기 힘드니까요.
퍼 : 그렇군요. 앞으로 계속 목장을 만들어 나갈 계획이죠?
요 : 네, 목장은 108개 만들어야죠. 아직 멀었어요.
퍼 : 108이 의미하는 바가 108 번뇌였죠?
요 : 네. 목장 하나를 만들면 나의 단점이 없어지는 거고, 108개 만들면 단점이 전부 없어져 훌륭한 사람이 되는 거죠. 그 후에는 죽어도 된다고 생각했어요.
퍼 : 또 다른 계획이 있나요?
요 : 학교를 만들려고 준비하고 있어요. 간디가 원래 만들려고 했던 학교가 있어요. 간디 정신은 실을 엮는 거예요. 흔히 간디 사진 보면 물레로 실을 잣는 걸 볼 수 있잖아요. 그거 상징인데, 결국 간디가 목표로 했던 건 ‘이어짐’, ‘연결’, ‘관계’예요.
퍼 : 학교의 구체적 모습이 궁금하네요.
요 : 학생들은 아침에 일어나서 일단 실을 잣는 거죠. 5-6시간, 그리고 걷기도 하면 되는 거예요. 실을 잣는 건 하나의 상징이고, 그렇게 ‘관계성’을 만들어 가는 일을 하면 되는 거예요. 말을 돌봐도 좋고, 밭을 갈아도 좋고요. 손과 몸을 이용하는 일을 하면 돼요. 혼자서 천을 몇 장 만들어내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한 장을 만들어도 몇 명이서 함께 짰느냐가 중요한 그런 학교를 만들 거예요.
요리타 씨가 말 테라피를 만나기까지, 그의 삶의 이력은 순탄하지 않다. 부모가 어릴 때 곁을 떠나고, 세계 여행 중에 많은 죽음을 생생하게 마주했으며, 이후 자살 시도를 몇 번 하다가, 말을 만나 삶의 구원을 받았다는 드라마틱한 이야기가 배경에 있다. 하지만 그는 그 배경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말 테라피를 통해 만난 아이들, 그 아이들을 통해 본 이 세상, 그 세상에 대한 경고도 함께 던진다. 동시에 그 세상 안에서 자기가 할 수 있는 범위에서 더 악화되지 않도록, 희망을 발견하고 그 희망을 실현해보기 위해 대안을 실천하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