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성년(美成年) 성장사 – 음악인 조정치

조정치는 내로라하는 기타리스트다. 98년부터 강산에, 뜨거운 감자, 윤종신, 이적, 정인, 한영애 등 여러 뮤지션들의 세션으로 활약해왔다. 음악계에서는 이미 유명인인 그가 2010년 7월, 데뷔 앨범 <미성년 연애사(美成年 戀愛史)>를 대중들에게 선보였다. 미(未)성년이 아닌 미(美)성년이라는 타이틀답게 완숙한 남녀의 인생과 연애담을 솔직하게 그려낸 앨범이다.

내게 연애는 평생의 숙제요, 사랑은 사치였다. 이런 내게, 어느 한 남자가 다가와 조용히 말했다. “저기… 인생에 답 없고요, 서둘러봤자 다 똑같습디다.” 그리고는 노래한다. “입술은 빨갛게, 사랑은 뜨겁게, 인생은 즐겁게 이 밤이 가기 전에”. 하, 이렇게 간단하게? ‘딱’ 하고 뒤통수를 맞은 나는 한동안 그의 노랫말 속에서 허우적댔다. 포장되지 않은 날 것의 느낌이 신선했다.

 

내가 조정치 인터뷰를 한다 하니 누군가 되묻는다.

“누구, 주성치?”

 

 

퍼슨웹(이하 ‘퍼’) : 조정치가 본명이세요?

 

조정치(이하 ‘조’) : 네. 신문에 나오는 ‘정치’, 그거예요. 한자도 같죠.

 

퍼 : 놀림 많이 받으셨겠어요?

 

조 : 이름이 특이하면, 사람들이 놀리려 하는데, 막상 그게 재미가 없어요. 네가 정치면, 동생은 경제니? 뭐 그런 거.

 

대중들에게는 낯선 이름일 터이지만, 조정치는 음악계에서는 널리 알려진 기타리스트이자 세션맨이다. 유명 뮤지션들의 세션으로 오랜 기간 활동해왔고, 최근에는 가수 정인의 남자 친구로 유명세를 더하였다. 그가 성인들의 연애담을 담담하게 풀어낸 첫 앨범을 냈다. ‘성인물’이 범람하는 사회에 살고 있지만, 실상 제대로 된 성인들의 이야기, 성인의 문화는 접하기 어려운 우리에게 그의 음악은 어른답게, 아름다운 어른으로 연애한다는 게 무엇인지를 들려준다. 11월의 어느 날, 그 사람 조정치를 만났다.

 

 

1. “인생은 한 잔의 소주”*

 

* 조정치 <사랑은 한 잔의 소주> 듣고 보러 가기

  

퍼 : 이번 앨범 제목이 독특합니다. <미성년 연애사(美成年 戀愛史)>, 직접 지으셨나요?

 

조 : 네, 텔레비전으로 야구를 보는데. 카메라에 비친 관중석에서 한 관중이 피켓을 들고 있더라고요. 어떤 선수를 응원했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데, 좀 나이 많은 선수였던 것 같아요. 피켓에 ‘美중년’이라고 쓰여 있더라고요. 인상적이었는데, 나중에 제목 지을 때 그게 떠올랐어요.

 

퍼 : ‘미중년’이라는 말은 ‘미소년’이라는 말과 대비되어 요즘 많이들 사용하는 듯해요. 그런데 ‘미중년’이라는 말에서 ‘미(美)성년’을 떠올리는 건 유머가 숨어 있어요. 미(未)성년은 원래 아직 성년에 이르지 못 했다는 뜻인데, 그걸 묘하게 뒤섞어 놓으니.

 

조 : 제가 원래 말장난을 좋아해요. 패러디 같은 것도 좋아하고.

 

퍼 : 앨범을 만들 때, 피켓의 ‘美중년’이라는 말이 떠오른 건 앨범에서 말하고 싶었던 콘셉트 때문이겠죠?

 

조 : 앨범에서 사랑 얘기를, 그것도 완숙한 성인들의 연애담을 하고 싶었어요.

 

퍼 : ‘완숙한’ 성인의 ‘연애담’이라니 ‘美성년’이란 의미가 단순해 보이지 않습니다. 조정치 씨는 언제쯤 未성년에서 美성년으로 바뀌셨나요?

 

조 : 제가 지금도 아름다울 미자를 쓴 美성년은 아닌 거 같고요. (웃음) 다만 삼십대가 되니 뭔가 좀 달라졌던 거 같아요. 전반적으로 강박적인 마음이 없어졌던 거 같아요. 좀 여유로워졌다고 할까요.

 

퍼 : 성인에 대한 연민이랄까, 이해가 느껴지네요. 기타리스트 조정치에서 ‘가수’ 조정치 씨가 된 소감은 어떠세요?

 

조 : 뭐, 제 스스로가 저를 가수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웃음) 그냥 음악 하는 사람으로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가수란 걸 언제까지 할지 모르기 때문에.

 

퍼 : 앨범을 들어보면 목소리가 참, 꾸밈없어요. 그래서 가창력 논란이 있기도 했었죠? (웃음)

 

조 : 네, 가창력 논란이 있었죠. (웃음) 제 개인적으로는 유희열 아저씨가 노래하는 것을 좋아해요. 뭔가 노래 잘 못하는 사람이 노래할 때 좀 더 진실되게 들리는 것 같은 효과도 있고.

 

퍼 : 기타를 오래 치셔서 저도 보컬은 큰 기대를 안 했어요.(웃음)

 

조 : 기대를 안 하고 들으셔야 돼요. 기대를 안 하면 괜찮은데.

 

퍼 : 들으면 들을수록 괜찮아지더라고요. 이런 솔직한 목소리(웃음). 이번 음반에 대해 기타리스트 시절부터 알고 지냈던 팬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나요?

 

조 : 제가 세션으로 활동하던 당시, 저한테 관심을 가져주신 분들이 가끔 있긴 했어요. 팬들을 유지하려면 카리스마도 있고 신비스러운 맛이 있어야 되는데 저는 ‘좋다’고 하시면 “오오, 고맙습니다!” 그러고 끝이죠.(웃음)

 

퍼 : 좀 싱겁네요.

 

조 : 네. 제가 이제 와서 콘셉트를 일부러 바꿀 수는 없고, 그냥 편한 대로 하고 있어요.

 

퍼 : 오랜 기간 기타리스트로 세션 활동을 하다 앨범을 내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조 : ‘볼빨간’이라는 형이 “한번 해보자” 그래서 했어요. 근데 제가 앨범을 발매함과 동시에 폐업을 하신, 비운의 형이죠.(웃음) 자본이 아니라, 본인의 의지가 사라져 버린 경우예요. 지금은 저와 같이 비트볼 레이블에 기생하고 있습니다. 저는 양자로 들어가 있고 그분은 노비로.(웃음)

 

퍼 : 만난 지 얼마 안 되었지만 성격이 좀 낙천적이신 것 같아요.

 

조 : 음… 반반인 거 같아요. 욕심을 부리지 않으니 낙천적인 편인데,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은 비관적인 거 같아요.

 

퍼 : 이를테면?

 

조 : 음반 내서 뭐 되겠어, 이런 거?

 

퍼 : 그래도 앨범을 낸다는 것은 ‘뭔가 되겠지’ 하는 마음이 있지 않았을까요?

 

조 : 아니요, 절대 아니에요.

 

퍼 : 그럼 완성된 앨범을 처음에 딱 받았을 때, 느낌 어땠어요?

 

조 : 이거… 역시 안 되겠군. (웃음) 농담이고. 그렇게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어요. 욕심 없이 하자는 게 처음 시작할 때의 생각이었기 때문에.

 

퍼 : 욕심 없음의 기준이란?

 

조 : 예를 들어 음악 하는 사람이라면 믹싱 작업에서 엄청 열을 올리죠. “아, 여기 소리가 작은데?” 또는 “아, 이 소리는 조금 더, 한 3000헤르츠가 좀 더” (웃음) 지금 이런 말을 하는 것도 좀 그런 게, 저는 믹싱에 전혀 참여하지도 않았고, 그냥 “해주세요! 해주세요오…” 하고 받았어요.(웃음)

  

퍼 : 대단하시네요. 음악하시는 분이 그렇게 하기 쉽지 않을 텐데요. 조금씩 유명세를 타고 있는 것이 부담스럽지 않으세요?

 

조 : 뭐든 부담스러운 건 싫은데 아직까지 그렇게 와 닿을 정도는 아니에요. 유명세라고 할 만한 게 없어서 아직 부담이 없는 건가?(웃음) 암튼, 유명해져 별로 좋을 건 없는 것 같아요. 유명한 사람들의 애환이 있는 것 같더라고요. 제 주변 사람들을 보면, 그분들은 이미 다 초연해지셨지만. 사람들이 약간 어이없이 대하는 게 있어요.

 

퍼 : 예를 들면요?

 

조 : 얼마 전에 김C형이랑 같이 냉면을 먹으러 갔는데, 어떤 사람이 사인 안 해준다고 재수 없다고, 바로 옆에서 계속 욕을 하시더라고요. 우리는 배고파서 밥 먹으러 간 것뿐인데. 제가 다 억울하더라고요.

  

퍼 : 주변인들을 볼 때, ‘유명해지면 부담스러워질 일이 있겠구나.’ 싶었겠어요.

 

조 : 네, 근데 제가 그렇게까지 유명해질 일은 없을 테니까 그런 쪽으로는 생각을 안 하는 편이에요.

 

퍼 : 에이, 사람 일은 모르는 거죠! (웃음)

 

 

2. “늙은 언니의 충고”*

 

 

* 조정치, <늙은 언니의 충고> 듣고 보러 가기

 

퍼 : 개인적으로 이번 앨범에서 <늙은 언니의 충고>가 제일 와 닿았어요. 어디서 영감을 얻으신 거예요?

 

조 : 글쎄 그건 너무 오래 전에 쓴 노래라 잘 기억이 안 나는데, 음… 기억이 안나요. (웃음) 제가 실제로 늙은 언니는 아니잖아요. 네, 그래서 사실은 뭐, 드릴 말씀은 없네요. (웃음) 그게 사실. 남녀를 불문한 얘기거든요. 언니라는 말을 붙였을 뿐이지. “젊어서 놀자!”는 내용이거든요.

 

퍼 : 언제쯤 쓰신 거예요?

 

조 : 20대 중반쯤.

 

퍼 : 그때 주변에서 연애를 못 해 힘들어 하시는 분들이 있었나요?

 

조 : (웃음) 그랬던 거 같진 않고, 제가 주로 걸어 다니면서 생각을 하는데… 그냥 집에 오면서 생각했던 거 같아요. ‘입술은 빨갛게, 사랑은 뜨겁게, 인생은 즐겁게’ 그 문장을 만들게 됐고, 곡은 나중에 만들었어요.

 

퍼 : 걷는 거 좋아하세요?

 

조 : 네, 자주 걸어요.

 

퍼 : 어디를 자주?

 

조 : 뭐 요즘엔 체력적 문제도 있고 해서 잘 안 걸어 다니는데, 어렸을 때는 많이 걸었어요. 정말 이유 없이. 종로에 좀 다리 저는 아저씨들이 있는, 도에 대해 물어보시는 분들 많이 다니는 그런 곳.

 

퍼 : 그때도 도에 대해?

 

조 : 그때 살벌했죠, 종로. (웃음) 특히 저 같은 애들은 자주 잡혔어요.

 

퍼 : 순해 보이고 왠지 얘기 잘 들어줄 것 같고?

 

조 : 네네.

 

퍼 : 언제부터 걷는 걸 즐기셨어요?

 

조 : 고등학교 때부터. 집은 일산의 주엽인데 마두에서 내려서, 그러니까 몇 정거장 먼저 내려서 걷고는 했어요.

 

퍼 : 걸으면서 음악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셨군요.

 

조 : 아뇨. 거의 여자 생각했던 것 같아요. (웃음)

 

퍼 : 여자 생각이요? 하하, 기타는 언제부터 치신 거예요?

 

조 : 중학교 2학년 때? 열다섯 살 그때.

 

퍼 : 무슨 계기가 있나요?

 

조 : 집에 기타가 있었어요. 제가 중학교 1학년 때 엄마가, 집에서 게임만 하고, 공부는 안하고, 만날 그러고 있으니까, 너 취미로 기타나 치라고, (웃음) 그때 당시 한 7만 원짜리 기타를 사다주셨는데, 한동안 내버려두다가 1년쯤 지나 그게 눈에 띄어서.

 

퍼 : 그때부터 노래를 만드셨나요?

 

조 : 제가 워낙 뭐든 만드는 걸 좋아해서 기타치기 시작한 지 한 달 뒤부터 기타 치면서 노래도 만들었어요.

 

퍼 : 중학교 시절에 어떤 노래를 만드셨나요?

 

조 : 어……. 처음에 만든 건 ‘고향생각’이라구요.

 

퍼 : 중학생에게 어울리는 정서는 아닙니다.(웃음)

 

조 : 중학생이 뭐 할 얘기가 있었겠어요?(웃음) 그냥 뭐라도 쓴 거였겠죠. 그러다 99년 스물두세 살 때쯤 한영애 누님의 노래 ‘가을 시선’의 가사를 보고 제 노래의 가사가 약간 달라졌어요. 그 노래의 느낌이랄까, 분위기를 느꼈던 것 같아요. 그 당시 한영애 누님이 몸도 안 좋으셨다고 들었었거든요.

 

   <가을 시선>
   한영애 작사/이병우 작곡

    

   이제는 모두 돌아가
   제자리에 앉는다
   불타는 열정에
   가리워졌던 고운 얼굴들이
   미소를 보내는 시간

 

   떠나간 착한 연인들
   서로 안부를 묻고
   다락방 전설이
   끝나기 전에 그리운 손을 잡고
   고맙다 인사를 하네

 

   * 해는 유리 거울로
   달은 그림자 너머
   별은 벌거벗는 이 가슴에
   깊어지라고 더 깊어지라고
   평화롭게 반짝이면서
   안으로 뜨네
   사랑…..
   아름다운 길 용서를 만드네
   드높은 하늘
   모든 것 이해하며 감싸 안아주는

 

퍼 : 노래는 언제 만드세요?

 

조 : 주로 새벽에 꾸역꾸역 쓰는 편이에요. 엄청 많이 고치고. 메모 자주 하는 편이예요. 며칠 전 도로 위에 비둘기가 돌아다니더라고요. 곧 치어 죽을 것 같은데도 아주 여유롭게. 그때 쟤는 참 여유롭다 이렇게 생각했어요. 그런 거 적는 거예요.

 

퍼 : 세션 활동을 오래 하셨어요. 세션은 대중적으로는 돋보일 수 있는 자리가 아니기에 갖게 되는 소감이 있을 듯한데요.

 

조 : 저는 어느 정도 위치에 올라서신 분들의 세션을 많이 했는데 그런 분들을 특별히 부러워하지는 않았어요. 음, 다만 연주를 다 끝내고 나면 성취감은 없는 것 같아요.

 

퍼 : 네.

 

조 : 물론 그것도 자기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려있는 거고, 거기에 모든 걸 쏟아 부어서 완성도 있게 하면 되는데 그게 생각처럼 잘 안 돼요. (웃음) 나이가 점점 들면서 그냥 자기 할 것만 딱 하게 되고, 그 이상의 것은 표현하기 힘들어지더라고요.

 

퍼 : 세션 활동하면서 느꼈던 허무함이 홀로서기의 이유 중 하나일까요?

 

조 : 제가 연주자의 길을 계속 걸어왔지만, 그동안 노래를 조금씩 만들어 왔었고 또 뭐든 만드는 것을 좋아해서 앨범을 만들고 싶었던 마음은 늘 가지고 있었어요. 그냥 제가 게을러서 빨리 못했던 거 같아요.

 

퍼 : <그린치즈>라는 락 그룹의 멤버이기도 하셨습니다.

 

조 : 네. 베이스 치는 이경남이라는 형이 있는데요, 그 형이 어느 날 저한테 “같이 하자” 그러더라고요. 연습실에서 우연히 만났는데. 그래서 그냥 그렇게 하게 됐나 봐요. (웃음)

 

퍼 : 그룹 <그린치즈>의 음악 색깔과 이번 앨범의 색깔이 사뭇 다른 분위기인데요, 추구하는 스타일이 바뀌신 건가요?

 

조 : 아뇨. 그룹은 그쪽의 리더가 있으셔서 리더의 의견에 따르는 거죠. 그냥 시키는 대로 했었어요. (웃음) 세션이 아닌 멤버였음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수동적이었던 것 같아요.

 

퍼 : 어렸을 적도 수동적인 아이였나요? (웃음)

 

조 : 어렸을 때도 네, 그니까 뭘 시키질 않으셨어요, 부모님께서 “공부해라” 이런 말씀도 안하셨어요. 시키셨으면 제가 공부했을 텐데 안 하셔서……. (웃음)

 

퍼 : 스스로 뭘 하셨나요?

 

조 : 그냥 내버려뒀는데 성격상 또 가만히 있진 않으니까, 게임을 많이 했었어요. 단순한 거 말고 좀 복잡한 게임 좋아했어요. (웃음)

 

퍼 : 학창 시절에 좋아하거나 잘한 과목은?

 

조 : 영어를 좋아했어요. 당시 게임은 한글판이 없어서. (웃음)

 

퍼 : 20대는 어떻게 보내셨나요?

 

조 : 어, 뭐 하나하나에 다 쫓겼던 거 같아요. 욕심이랄 것도 없이 그냥. 주어진 것들에 다 쫓겼어요. 하나하나 해가는 거 자체가 다 힘들었던 것 같아요.

 

퍼 : 긍정적이고 또, 여유로운 20대를 보내셨을 것 같은데?

 

조 : 근데 좀, 그렇지 않았던 것 같아요. 주어진 일도 많이 있었고… 그것들을 잘 소화해내질 못했던 것 같아요. 그럴 바엔 차라리 다 놓고, 놀았다면 더 유쾌한 20대를 보냈을 것 같은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않았던 게 가장 후회되는 것 같아요. 만약에 내가 쫓기는 마음이 없었다면 편하게 손을 놨을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했어요. 30대가 되니 더 편해지는 거 같아요.

 

3. “마성의 여인”*

 

 

* 조정치(Featuring 정인) <마성의 여인> 듣고 보러 가기(Live)
  

퍼 : 이번 앨범의 가사를 보고 ‘성인의 일기장을 들여다보는 듯한 느낌’이라는 평**이 있더군요. 가사는 모두 경험에서 나온 건가요?

 

** <‘정인의 남자친구’ 조정치 새 앨범> 기사 보러가기
  

 

조 : 시작이 어떻게 되었든 전반적으로는 경험이라고 해야겠네요.

 

퍼 : 앨범 제목에서 ‘연애사(戀愛史)’를 내세우셨으니 연애 경험이 많든지, 아니면 깊은 연애를 하셔야 가능한 가사일 텐데요.

 

조 : 제가 연애 기간도 그렇고 감정적으로도 쉽게 헤어 나오지 못하는 스타일 같아요.

 

퍼 : 정인의 남자친구로 유명하십니다. 어떻게 처음 만나셨어요?

 

조 : 처음 알게 된 건 친구의 친구랑 제 친구랑 아는 사이여서 인터넷 채팅으로.(웃음) 채팅으로 만나서 술 먹고 사귄 사이에요. 쿨하게, 네. (웃음)

 

퍼 : 채팅으로 만나려면 말이 잘 통하고 생각이 잘 맞아야 하는 거잖아요?

 

조 : 처음은 채팅이었는데 곧 오프라인에서 만났죠. (웃음) 당시에는 저도 활동하고 있던 시절이 아니었고 정인이도 대전에서 상경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였어요. ‘리쌍’ 2집 활동할 때 즈음에 사귀었던 거 같아요.

 

퍼 : 김정은의 초콜릿 무대의 세션 맡고 계시고, 거기에서 두 분 연인 관계인 게 방송을 탔죠?

 

조 : 네, 정인이가 올해 초에 앨범***을 내고 초콜릿에 노래하러 왔을 때, 리쌍의 길이 형이 축하해 주러 와서는 갑자기 “여기 남자친구도 있다”고 한 거죠. 미리 얘기도 안하고. (웃음)

 

*** 정인 <미워요> 듣고 보러 가기

   

조 : 그때 엄청 웃었어요. 회사에서는 제가 드디어 TV에 나왔다고(웃음) 그때 제가 녹음 막 끝내놓고 앨범 나오길 기다리고 있었는데, 다음날 뉴스가 뜬 거예요. 근데 제 이름은 하나도 없고 그냥 ‘정인 남자친구’ 그것만 검색어에 올랐죠. 회사에서는 이름이라도 한마디 해주지. 그랬어요.

 

퍼 : 그때의 기분은?

 

조 : 뭐 신경 쓰지 않아요.

 

퍼 : 상당히 쿨하신 것 같아요? (웃음)

 

조 : 네. 제가 그다지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 아니라서. 누군가 저를 막 때리려고 하면 “아아 죄송해요, 죄송해요” 하면서 그 위기를 모면하고 싶지, 자존심 내세우고 싶지는 않아요.

 

퍼 : 원래 그러셨던 거예요 아님,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조 : 원래 그래요. (웃음) 강자에게 굴하는 게 아니라, 강자랑 친해져서 그 옆에서 편하게 사는 스타일?

 

퍼 : 현명하세요.

 

조 : 네, 전 좀 현명한 편인 것 같아요. (웃음)

 

퍼 : 여자친구와 오랜 기간 관계를 지속하는 비결을 배우고 싶네요.

 

조 : 노력을 해야죠. 자기가 노력하는 것도 있겠지만, 상대의 노력을 알아차려 주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것 같아요. 보통은 잘 모르거든요, 상대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저도 처음엔 잘 몰랐는데, 시간이 지나고 나니까 이 사람이 나를 얼마나 어떻게 배려해줬는지 느껴지고 그래서 상대에 대한 존경심이 생겼어요.

 

퍼 : 이번 앨범 작업도 정인 씨가 많이 도와 주셨죠?

 

조 : 네. 본인 목소리로 녹음해줬고, 또 제 노래들을 다 받아줬어요. (웃음) 녹음 엔지니어링을 해준 거죠. 그거하면서 보컬 디렉팅도 해주고. 여긴 좀 더 이렇게 해봐라, 저렇게 해봐라, 요거보단 이게 낫다. 등등의 얘기를 많이 해줬죠,

 

퍼 : 가장 가까운 사람과 뭔가 같이 하면 자주 부딪히잖아요. 운전 연수가 대표적이고.

 

조 : 네, 그렇죠. 저희도 녹음만 하면 관계가 악화돼요.(웃음) 근데 끝나면 또 서로 자연스럽게.

 

4. “너와 난”*

 

 

* 조정치 <너와 난> 듣고 보러 가기

 

퍼 : 그랜드 민트 페스티벌에서 조정치 씨 공연을 봤어요. 굉장히 수줍은 뮤지션이라는 말을 들었었는데, 공연에서는 관객들을 다루는 실력이 수준급이시던데.(웃음)

 

조 : 그런 의도는 아니었는데(웃음) 관객들에게 말하는 게 긴장 완화에 도움이 돼요.

 

퍼 : 멘트는 따로 연습하시나요?

 

조 : 아니요! (웃음) 우리 공연하기 전에 앞의 팀 공연을 잘 보고, 하는 얘기를 잘 들어놔요. 그리고는 멘트 칠 때 괜히 앞의 팀 얘기하면서 이용도 하고 그러죠. 제가 음악으로 퍼포먼스가 잘 안되니까 말로 때우려는 약간 비겁한 태도이기도 하네요. (웃음)

 

퍼 : 무대에 섰을 때, 어떤 분위기가 가장 편하세요?

 

조 : 제가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관객들에게 음악만 들려줘도, 사람들의 마음을 위할 수 있다면 그게 가장 좋은 결과겠네요. 노래를 듣는 거 자체만으로도 의미를 갖는 분들이 계세요. 아무것도 없이 그냥 공간을 채워주는, 그거야말로 정말 말이 필요 없죠.

 

퍼 : 조정치 씨에게 ‘무대를 가득 채운다.’ 라는 느낌을 안겨준 뮤지션이 있다면?

 

조 : <봄 여름 가을 겨울>이었어요, 제가 워낙 그분들 앨범을 좋아하기도 하고요. 최근에는 어느 클럽에서 스무 살짜리 친구가 노래를 하는데, 오- 다 채워지더라고요. 역시 타고나야 돼요.

 

퍼 : 앨범 내고 달라진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조 : 앨범을 내고 나서 점점 소일거리가 없어지고 있어요. (웃음) 제 이름으로 하는 일이 생겼고 그걸 제일 먼저 챙겨야 하니까 세션 일을 못하게 되는 일들이 생기더라고요. 보통 연말 공연 때문에 바쁜 편이었는데, 올해는 아무래도 손가락 빨고 있지 않을까. (웃음)

 

퍼 : 요즘 욕심내는 부분이 있다면요?

 

조 : 욕심까지는 아니고 그냥 ‘노래 잘 했으면 참 좋겠다.’ 요런 생각? 제가 노래를 안 할 때는 몰랐었는데 몇 번하고 보니까, 형아들이 대단하더라고요. 텔레비전에 나와서 들어줄만하게 부르는 정도는 실제로 들어보면 굉장히 잘하는 거거든요.

 

퍼 : 조정치 씨가 추구하는 보컬의 이상형이 있나요?

 

조 : 우리가 가창력 좋은 가수로 알고 있는 분들은 기본적으로 다 굉장히 잘하신다고 생각해요. 저한테는 거기까지 갈 수 있는 유전자가 없는 거 같고. (웃음) 노래하는 스타일이 완전히 바뀌진 않겠지만, 좀 더 안정적일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퍼 : 성급한 질문일지 모르겠지만 다음 앨범에 대한 구상은?

 

조 : 뭐가 됐든 조금은 다를 것 같아요. 근데 제가 지금은 구체적인 작업을 하고 있지 않으니, ‘이거다’ 말씀드리기는 어렵구요.

 

퍼 : 앞으로 시도해보고 싶은 음악 스타일은?

 

조 : 좀 더 락(rock)적인 것도 좋고, 지금보다 더 아주 부드러운 음악을 해보고 싶기도 해요. 다음엔 좀 더 소리에도 신경을 쓰고 싶네요. 이번에는 집에서 녹음한 거라 거의 시행착오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죠. 다음엔(!) (웃음)

 

퍼 : (웃음) 원래 남의 얘기 잘 들어주는 편이세요?

 

조 : 음, 그렇다고 그러더라고요. 제 얘기 하는 건 좀 어색하고 잘 안 돼요. 깊은 얘기 꺼내는 건 힘들어요.

 

퍼 : 속마음을 잘 표현 안 하시는 듯해요.

 

조 : 언젠가 깊은 속마음을 내비쳤던 적이 있는데, 그냥 그때마다 후회가 되더라고요. 한 번도 감정이 해소되거나 후련한 마음을 얻은 적이 없어요. 진짜 내 깊은 이야기를 비쳤을 땐 항상 후회가 됐었어요. 남의 얘기 듣는 건, 좋아요.

  
  

 

2시간 남짓한 인터뷰는 우리를 향한 그의 배려로 시작해 배려로 끝났다. 뭐든 부담스러운 건 싫다는 그의 말처럼,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역력했다. 편안하고 담백한 멜로디가 여기서 나왔구나 싶었다. 조근조근 뱉어내는 말 속에 묻어나오는 재치는, 그의 노랫말과도 같았다.

 

하나의 대답이 끝날 때까지는 조금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는 겸손하고 신중했으며 때로는 주저하기도 했다. 조심스러운 그를 어떻게 표현해야할지 글을 쓰고 있는 나조차도 조심스러워진다. 기분 좋은 조심스러움, 이라 표현하면 전달이 될까.

 

오랫동안 기타를 연주하면서 짬짬이 곡을 만들었고 데뷔 앨범도 4년 만에 세상에 나왔다니 적잖은 준비 기간이다. 본인의 게으름 때문에 앨범이 늦어졌다 말했지만, 그 또한 신중함이다. 열심히 대답해주려는 그의 모습이 인터뷰 열흘이 지난 지금까지도 생생하다. 한마디로 조정치는 다시 한 번 만나보고 싶은, 그런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