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인터뷰어 바보 만들기
지난 9월 어느 목요일 저녁 7시, 현태준 작가의 단골집에 무려 4명의 퍼슨들이 모였다. ‘제대로’ 인터뷰하자는 취지에서 ‘술집’을 인터뷰 장소로 정했으니 인터뷰는 맛집 탐방 같기도 했고, 홍대 주변 상권에 대한 성토이기도 했다. 또 술자리의 이야기가 대개 그렇듯 시시껄렁한 농담도 오고 갔다.
인터뷰 자리를 이렇게 만든 데는 이유가 있다. 이미 한번 현태준 작가를 만나 인터뷰를 해 본 적이 있는 나는 이 둥근 뿔테 안경의 ‘아저씨’가 인터뷰에 너무 영리하게 대처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도통 먼저 입을 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인터뷰어가 야심차게 준비한 질문조차도 가볍게 ‘통과’해 버리더라는 것.
현태준(이하 ‘현’) 내가 인터뷰어를 따돌려요. 인터뷰를 너무 많이 하다 보니까, 이백 번도 더 했나? 그러니까 보면 딱 알죠. 이 사람이 무슨 생각으로 왔는지.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이 둥글둥글한 ‘아저씨’가 ‘인터뷰어 바보 만들기’의 달인이었다니.
현태준 작가의 작품들은 재미있다. 철수와 영희의 야한 상상과 다 커서도 코딱지를 파는 아저씨, 어렸을 때 가지고 놀았던 온갖 장난감과 마치 내가 쓴 것 같은 일기들. 말은 ‘불량’식품이지만 실은 누구나 먹었던 그 형형색색의 조잡한 불량식품처럼, 낄낄거리면서 보게 되는 것들이다.
만화가, 일러스트레이터, 장난감 수집가, 수필가… 하나의 범주로 묶어낼 수 없는 그의 작업들이 등장한 지도 벌써 18년이 지났다. 1992년 <신식공작실>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현태준 작가의 작업들은 한때는 유행하던 ‘옛날 장난감 시리즈’ 같았고, 또 한때는 개성적인 일러스트레이터의 여행기 같았으며, 최근에는 괴짜 수집가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관통하는 것은 ‘아즈씨’와 ‘뽈랄라’라는 말로 요약된다.
‘솔직하게 휘파람을 불자’라는 뜻으로 내가 제멋대로 해석한 것이다. 좀더 직접적으로 말하자면 포르노(외설 문학, 호색[에로] 문학; 춘화; 에로 사진이란 뜻)가 우리나라에서 촌스럽게 뽀르노로 불리면서, 뽀르노+랄랄라의 합성어가 된 것인데, 직접적으로 해석하면 뽀르노는 즐거워! 가 되지만 나는 이것을 비유적으로 생각하여, 뽀르노는 비단 에로물이라기보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것, 체면 차리기. 모범적인 척하기, 좋아하지만 숨겨야 하는 것들의 모든 총칭으로 생각하여 눈치보지 말고 각자 좋아하는 것을 솔직하게 즐기자란 다소 폭넓은 뜻으로 생각하였다. 그래서 쉽게 말하자면 남이 뭐래도 내가 좋아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하자! 라는 것이다. <뽈랄라 대행진>, 현태준, 안그라픽스, 2001
그리하여 ‘인터뷰를 가장한 술자리’를 만들어 4명의 퍼슨들과 현태준 작가가 주거니 받거니 이야기를 나눴는데, 실은 아직도 모호하다. 과연 그 날 밤 우리가 만난 현태준 작가는 몇 번째 ‘아즈씨’였을까?
1 ‘아즈씨’라고 불러주세요
현> 신촌에는 바가지가 없어요. 검증이 되어 있죠. 홍대는 지금 뜨내기, 바가지가 성업이예요. 특히 이런 일식집을 중심으로 심한 경우 꼬치 하나에 4,000원 받는 곳도 있어요.
퍼> 원래 일식 좋아하시는 거 같아요. 그렇죠?
현> 이걸 왜 좋아하느냐면요, 양이 안 많잖아요.
퍼> 작가님 트위터(@pollalla) 보면, 점심때 일식 집 많이 가시는 것 같던데요.
현> 라멘집. 왜 가는 줄 아세요? 혼자 갈 수 있으니깐. 점심 시간에는 분식집 못 가요. 주위에서 얼마나 눈치를 주는지. 그런데 제가 자주 가는 곳은 혼자 손님을 위한 자리가 있어요. 점심 시간 때 가도 되는 거지. 홍대에서는, 혼자 들어 가면 어후~ 막 먹다 체해. 왜 왔냐 이런 눈초리야. 그러니깐 신촌까지 와요.
퍼> 그런데 그런 반응에 예민하신가 봐요. 안 그러실 것 같은데. 혼자 가서 밥 먹는 거나 다른 사람들이 눈치 주고 하는 거에 신경 안 쓰실 것 같은 이미지거든요.
현> 어, 아니에요. 난 되게 남 신경 많이 써요. 저 사람이 싫어하는 것 같으면, 굉장히 불편해요. 그 사람 입장에서는 내가 혼자 가니까 피해를 주는 거 아니에요? 장사하는데 네 명, 두 명 앉을 자리에 나 혼자 밥 시키면 손해잖아. 그런 게 느낌이 막 온다니까.
퍼> 아아.
현> 그래서 점심시간 한참 지난 다음에, 두 시쯤? 그 때 가보면 혼자 가는 사람들은 다 그때 와요. 일부 눈치 없고, 식당 주인 입장에서는 몰지각한 손님들이 제일 바쁜 점심시간에 오는 거고. 경우가 밝은 분은 느즈막하게 오는 거야. (웃음)
퍼> 경우가 밝으시군요. (웃음)
현> 요새는 옛날과 다르게 혼자 사는 사람들이 많아졌단 말이예요. 그래서 혼자 먹는 사람들도 옛날보다 많아져서 좀 깨어있는 식당은 테이블을 작게 만들고 그러는데, 아직도 멀었어요. 아직도 혼자 밥 먹으면 되게 쪽팔려 하고.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사람들이 밥 먹으러 혼자 간다고 그러면 ‘아 불쌍하다 참 친구도 없이’ 이렇게 생각하잖아요.
퍼> 그런데 인터뷰 스타트가 의외의 모습에서 시작하는 것 같아요. 아까 얘기하셨지만, 전혀 그런 거 신경 안 쓰실 것 같은 이미지시거든요. 작가님도 본인을 스스로 ‘아저씨’라고 호명하시잖아요? 그런데 ‘아저씨’라는 게 우리 사회에서 갖는 이미지가 어떤 면에서는 상당히 무례하고, 또 마초적이기도 하잖아요.
현> 어 그럼요, 무례하죠.
퍼> 그런데 작가님은 ‘아저씨’를 내세우지만, 사실은 굉장히 섬세하다는 느낌을 주세요.
현> 예에.
퍼> 우리가 흔히 갖고 있는 아저씨 통념과 위배되는 거죠. 어떤 면에서는. 그러면 아저씨 철학이 안 맞는 거 아니에요?
현> 아저씨가 아니라 ‘아즈씨’죠. 아즈씨. 아즈씨에는 여러 종류의 다양한 아즈씨가 있고요.
퍼> 요즘 인터뷰 많이 하셨죠?
현> 어우, 되게 많이 했죠.
퍼> 네. 책* 나오고 나서 많이 하신 것 같아요.
현> 책도 그렇고 이거 저거 홍보하려고요. 옛날에 인터뷰 하나도 안 했는데 홍보하려고 다 해요. 요즘은 최소 일주일에 한 번씩은 꼭 와요. 취재는.
퍼> 그런데, 예전에 인터뷰하실 때는 ‘작가’라는 모습으로 인터뷰를 많이 하셨던 것 같은데, 요새는 인터뷰 나오는 거 보면 대부분 ‘괴짜 수집가’라고 나오세요.
현> 으음. 진행을 그렇게 해가요.
퍼> 그렇게 해도 아무렇지 않으세요?
현> 전혀 상관없어요.
퍼> 작가들 중에는 작업에 방해된다고 인터뷰 안 하는 경우들도 많던데…
현> 홍보하려고 웬만하면 다 하는데. 근데 또 많이도 안 해. 오면은 요즘에는 30분 달달달달. 인터뷰지 갖고 오면 아예 내가 보고서 읽어요. 이거 이거고 이건 이거고, 됐죠. 그게 다야.
퍼> 소모되는 느낌 되게 많으시겠어요.
현> 힘들죠, 말 많이 하니깐.
퍼> 그런데도 왜 계속 인터뷰하세요?
현> 홍보하려고.
퍼> 노동이네요, 그럼. (웃음) 인터뷰 해놓고 기사는 보세요?
현> 예, 보죠. 근데 인터뷰 해도 홍보가 잘 안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이제 안 하려고요. 이거 괜히 시간만 뺏고.
퍼> 저희도 별로 홍보에 도움이 안 될 텐데요. (웃음)
현> 그렇죠, 안 되죠. 그래도 오늘은 술 마시니까.
퍼> 일단 오늘은 인터뷰가 후져도 먹을 건 남을 거 같아요.
현> 여기, 이게 맛있어요.
2 내 안에 ‘아저씨’ 있다
퍼> 저는 처음에 아저씨라는 캐릭터로 만화니 뭐니 나왔을 때, 솔직히 ‘이 사람 장난하나, 우리들 상대로’라는 생각을 했었어요.
현> 왜요?
퍼> 뭐랄까. 예술가인데 예술가 아닌 척 한다, 라고 느끼는 면들이 좀 있어서요.
현> 제가 요새 ‘아리스트’라고 하잖아요. 짝퉁 아티스트라고.
퍼> 예, 자꾸 신조어를 만들어내세요.
현> 사람들 헷갈리게. (웃음)
퍼> 처음에, 그 작업하신 걸 보면서, 너무 빤히 보인다라는 느낌도 들었어요. 그게 만약에 일회성이었다고 하면 그냥 정말 ‘아, 갖고 놀았구나, 사람들 한 번 재밌게 웃겼구나,’ 이런 식으로 생각했을 텐데. 지금 그 캐릭터를 꾸준히 작업하신 게 십 년이 넘었잖아요. 그러면서, ‘도대체 뭘까. 그 캐릭터를 끌고 오는 힘은. 이 분은 자기 자신을 ‘아저씨’화 하면서 아저씨를 캐릭터로 뭘 하고 싶은 걸까’ 하는 궁금증이 들더라고요. 게다가 굉장히 섬세한 면들을 많이 갖고 계시면서 의식적으로 ‘아즈씨’라고 자주 말씀하시는 거죠. 그런데 저를 포함해서 우리 사회에서 아저씨가 갖고 있는 어떤 인상이 있어요. 그것에 대해서 어떤 얘기를 하시려는 건지, 아니면 정말 새로운 뭔가를 얘기하려고 하시는 건지.
현> 아니에요, 그대로 아저씨에요. 아저씨가 아닐 수가 없는 게, 내가 미국에서 자란 사람도 아니고. 한국에서 계속 자라고 생활하는 사람인데. 나도 아저씨인 건 당연한 거에요. 왜냐면 환경이 그 개인을 지배해요. 굉장히 중요한 거에요. 환경이 그 사람의 성향을. 아무리 자기가 특이하고 생각이 깨어 있다고 생각해도 어차피 한국에서 자랐기 때문에 여기 이곳의 아저씨처럼 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나도 어떨 때는 길 가다가 누가 툭 치면 그냥 아저씨처럼 화내고, 눈 내리깔고. (이런 모습에) 깜짝깜짝 놀란다니깐. 나이 먹으면 바뀌어요. 다만 다양한 ‘아즈씨’가 있는 거지. 이런 ‘아즈씨’도 있고 저런 ‘아즈씨’도 있고.
퍼> 현태준 아저씨는 다양한 ‘아즈씨’ 중에 어떤 ‘아즈씨’세요?
현> 저야 뭐 굉장히 상냥하고 친절한 ‘아즈씨’죠. (웃음)
퍼> 본인에 대한 해석에 대해서는 별로 개의치 않으시죠?
현> 아니, 흉을 보면 신경 쓰여요. 어떤 사람들이 내 책을 보면서 너무너무 마초적이라고 그러는 거에요.
퍼> 저도 약간 그런 느낌 받은 적이 있었어요.
현> 사실 나는 마초 제일 싫어하거든요. 나는 마초가 아닌데 자꾸 마초라고 해도 그냥 넘어가요. 진짜 나의 어떤 걸 딱 꼬집어내면 안 그럴 텐데, 아직 그런 적은 없었어요. 예전에 <만화 미학오디세이>를 보고 어떤 여자분이 항의를 했어요. 이렇게 마초적이고, 남근 우월 사상에 빠진 만화는 자기가 공론화 시켜서 나쁜 책이라고, 불매운동 하겠다고, 출판사 게시판에 글을 올렸더라고요. 나는 전혀 개의치 않았어요. 마초가 뭔지 아는데, 나는 전혀 그런 사람이 아니니까. 그런데 그 여자분은 그렇게 본거야. 공론화 시키면 나야 더 좋죠. (웃음) 그랬는데 그냥 혼자 사라져 버리더라고요. 그 사람 얘기의 핵심은 내가 여성을 성 상품화시켰다고…
퍼> 성을 까놓고 얘기하는 점에서 좀 낯설음이 있죠. 아무래도 현태준 씨 작품들이 여성의 시각이 없다 보니까, 무조건 마초다, 뭐 이런 식으로 본달까요.
현> 그런데 사실은 마초가 많긴 많아요.
퍼> 그게 참 구분하기 어렵긴 해요. 그래서 ‘아저씨’라고 얘기하는 것들이 어떤 일면에서는 분명히 그런 부분들을 내포하고 있지 않나 싶은데요. 혹시, 박영택 교수가 쓴 <뚱땡이의 예술철학>* 보신 적 있으세요?
현> 아, 예 봤습니다.
퍼> 저는 현태준 작가에 대한 글 중 제일 잘 썼다고 생각을 했었거든요. ‘아저씨’가 남자와 싸나이의 담론에서 배제된 타자, 루저다, 라는 거에요. 우리 사회에서. 어떻게 보면, 아까 얘기했던 마초가 아저씨가 아니라, 남자, 싸나이가 사실 마초인데. 거기서 배제된 새로운 타자를 아저씨로 부르죠.
현> 우리나라에서 능력 있는 사람 중에는 마초가 많죠, 능력 없는 사람은 마초가 별로 없어요. 능력 없는데 지가 무슨 마초야. 찌그러져야지.
퍼> 그 글에서는 6,70년대에 추구되었던 근대화나 자본주의에서 요구하는 일반적인 이데올로기에 반(反)하여,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하고, 의도적으로 해체시킨다 이렇게 표현을 했었어요. 어떻게 보시나요?
현> 대충, 대충. 감은 오는데. (웃음)
3 아저씨와 오빠의 사이
퍼> 언제부터 스스로를 아저씨라고 불러주세요, 라고 하셨어요?
현> 2000년 <뽈랄라 대행진> 나올 때부터.
퍼> 2001년?
현> 예에.
퍼> 본인한테 아저씨라는 감성이 있다고 생각을 하신 건가요?
현> 그게 아니고, 내가 대학교 강의를 나갔단 말이에요. 근데 애들이 자꾸 강사인 나한테 형님 형님 이러는 거에요. 그러다가 왠지 길에서 ‘교수님’ 그러면. 어우. 좋아지잖아요. 나는 강사인데.
퍼> (일동 웃음)
현> 그러면서 생각하기를. ‘교수님’이라고 부르면 내가 그렇게 행동해야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그냥 ‘아저씨’라고. 불러 달라고 했어요. 아저씨라고 부르면 내가 부담이 없어지니깐. 그런데 학교에서 교수라고 부르면 가만히 있어요. 왜냐하면 다른 교수들도 배려를 해야 되기 때문에. 오빠라고 그러면 징그럽고 역시 아저씨라고 하면 편하죠.
퍼> 다른 사람들을 배려해서, 오빠라고 부르지 말라고 하시는 거죠? (웃음)
현> 아저씨라고 하는 게 제일 편해요. 아저씨라고 하면 좋아하고, 오빠라고 하면 부담스럽고. 오빠라고 하면 얘가 딴 생각 하는 것 같아. (웃음)
퍼> 그런데 새로 만드시려는 잡지의 제목은 왜 <오빠생활>이예요?
현> 그건 로망.
퍼> 아, 로망~ 아직 만드실 건 아니고. 준비하고 있는?
현> 출판사랑 구두 계약을 했는데, 그 출판사 사장님이 정식 계약을 안 하네요. 그런데 그 잡지 얘기한 인터뷰를 보고 다른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어요. 자기네랑 하자고. (웃음)
퍼> 누구의 로망이에요? 모든 남자들의?
현> 남자들 다는 아니고. 30대의 로망? 옛날 <선데이 서울>처럼 수영복 사진 싣고.
퍼> 예전에 <MDM>이라는, 조윤석 씨가 만든 음악잡지가 있었어요. 그 잡지에서 핀업걸들을 매달 뽑아가지고 컬러 화보를 실었어요. 다른 페이지는 다 재생지로 하고, 그 부분만 컬러로 해 가지고 욕을 바가지로 먹었죠. (웃음)
현> 왜 바가지로 먹어. 그게 제일 효과적인데. (웃음)
퍼> ‘오빠생활’이라고 하면 딱 그려지는 이미지가 있어요. 어떤 게 나올 것이다, 이런 느낌이 확 드는데, 그런 걸 일부러 의도하시는 건가요?
현> 저도 사실 잘 모르겠어요. 아직 계약을 안 한 상태여서 특별히 자세하게 생각은 안 했어. (웃음)
퍼> <오빠생활>에서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는 뭔가요?
현> 아저씨들이 요즘 힘들지. 많이 힘들어요. 힘이 있고 목소리가 큰 사람은 일단 우리나라 사회에서 아저씨가 아니죠. 어르신, 선생님, 사장님, ‘님’자 들어가는 분들이죠. 그 나머지가 다 아저씨인데, 그 아저씨들이 너무너무 힘들게 살고 있는 거지. 그 사람들이 봤을 때 조금이나마 재미있고, ‘이거 재미있다’, 그런 거. 거기까지.
퍼> 지금처럼 ‘오빠생활’을 말씀하시는 거나, 만화에서 보이는 아저씨 모습을 보다가 우울한 얼굴을 하고 있는 <거대아톰>*을 보면 헷갈려요. 아, 내가 알던 그 아저씨가 이 아저씨가 아닌가? 이런 느낌이랄까요?
* 거대 아톰: 현태준 작가가 전시회를 비롯해 여러 차례 선보인 거대 아톰은 우리가 어렸을 때 흔히 가지고 놀던 아톰 인형을 사람보다 크게 제작한 작품으로 ‘어른이 된 아톰’을 보여준다. 2009년 열린 <Hero Returns>展에 선보인 작품은 ‘우주소년 아∼톰’이 아니라 ‘우조소년 아…부지’. 성인이 된 아톰은 우주를 지키는 용사가 아니라, 가족들의 배웅을 받으며 우울한 얼굴로 출근하는 이 시대의 소시민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현> 어어, 헷갈리게 해야지.
퍼> 일부러요?
현> 아니 뭐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니어도. 내 생각이 왔다리갔다리 하기도 하고.
퍼> 그런 작품은 그럼 어떻게 구상하세요? 매일 장난감 보다가 그냥 문득 떠오르시는 건가요?
현> 아니, 뭔가 두리뭉실하게 매일 생각을 하고 있어요. 매일 작업해야지 생각하고 또 난 혼자 술 먹는 거 좋아하는데, 술 먹으면 심심하니까 그때 작업하죠.
퍼> 으음. 대체로 혼자서 생활하고, 혼자 작품 만들고 하시는데, 좀 외롭다거나 힘들진 않으세요?
현> 제 주변이 사람이 너무 많아요. 얼마나 많은지 몰라. 그래서 피해서 혼자 있는 거야. 아후, 술 먹자고 하는 사람도 너무 많고.
4 어른이 된 아톰의 메시지
퍼> 작품을 같이 하는 사람도 있으세요?
현> 작업을 같이할 일이 뭐 있나, 작업은 같이 못하지. 작업을 어떻게 같이 해요.
퍼> 벌여놓은 일이 굉장히 많으시잖아요? 그게 의미가 있고 또 공감하고 하면 같이 하는 게…
현> 아, 그런 건 같이 해요. 제가 말한 건 그냥 개인작업. 그러니깐 혼자 피해 있는 거예요. 왜냐하면 홍대에 앉아 있으면 맨날 아는 사람들이 와요. 오면 또 내가 또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잖아. 그래서 내가 도망 나와야지.
퍼> 작품에서도 혼자 하신다는 느낌을 많이 받아요.
현> 그럼, 혼자 하죠. 혼자 하는데, 도와주는 사람은 많아요. 지금 하는 일들이 혼자서는 죽어도 못 하는 것들이 있어서.
퍼> 협업 같은 건가요? 요즘 유행하는 콜레보레이션 같은?
현> 협업은 아니고. 그냥 맡기는 거.
퍼> 요즘 소설가와 일러스트레이터, 소설가와 음악가, 아니면 아예 다른 분야의 사람들이 공동작업을 하면서 본인들의 세계를 조금씩 확장시켜 나가는 면들이 있는데, 그런 점에서 작가님은 외골수 같이 작업하시는 것 같아요.
현> 저는 그렇게 안 해요. 신경쓰기 싫어가지고. 왜냐하면 상대방을 배려해야 하니까. 혼자 하는 게 편해요.
퍼> 왜 이런 걸 여쭤봤냐면요, 작업을 혼자 하시는 거 같아서 혹시 다른 사람이나 다른 작업에서 영향을 받는 게 있는지 궁금했어요.
현> 제가 지금은 생활. 서민들 생활에 관심이 꽂혀있어요. 그게 제일 우선이예요. 작업의 키워드.
퍼> 기록하는?
현> 기록하고, 또 그 다음도 있죠. 살면서 제일 약자. 약한 사람들, 그 사람들한테 관심이 있어요. 나는 힘 센 사람들한테는 관심이 별로 없어요.
퍼> 음, 아톰은 힘이 세잖아요?
현> 아니, 내가 만든 아톰은 아니잖아요.
퍼> 거대 아톰의 메시지는 뭡니까?
현> 거대 아톰의 메시지는 굉장히 명확한데, 여러 가지 의미가 많아요. 그 중에서 한 가지만 얘기하면, 성숙한 육체, 그리고 덜 떨어진 머리. 불안하고 성숙하지 못한 거죠. 얼굴은 애기 얼굴인데 몸뚱아리는 근육질의 몸. 육체는 돈이에요. 비유로 따지자면, 머리는 돈은 아니지. 머리는 우리가 느끼는 여러 가지 느낌이랄까, 문화 같은 것이죠.
아톰 포즈가 굉장히 딱딱한 차렷 자세잖아요. 경직되고. 얼굴은 굉장히 동안이지만 입이 축 쳐지고 눈이 막 옆을 보고 있고 굉장히 불안하잖아요. 그건 지금의 불안한 우리 사회죠 사회보장제도라든가 여러 가지로 서민들 생활이 안정된 게 없어 매일 불안하단 말이예요. 그걸 얘기하는 거죠. 명확하게.
퍼> 서민생활에 대해 말씀하시니, 작가님 책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사진이 생각납니다. 외국이나 우리나라의 어떤 장면들을 찍은 사진들.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 사진들인데 책 전체에서 정말 가슴에 와 닿았거든요. 그걸 보는 순간, 어떤 감수성이 탁 와 닿는 부분이 있었어요. 그 사진들을 보면, 작가님이 왜 수집품으로 남기고 싶은가, 왜 기록하고 싶은가가 계속 궁금한 거에요. 사진들 대부분이 기록적인 의미로 보였거든요.
현> 그게 내 ‘서민문화연구소’*와 다 연결이 되는 거죠. (웃음) 난 계속 관심이 많아요. 서민 생활에 대해서. 대다수의 사람들, 그러니까 성질 내는 사람들, 목소리 내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은 거의 다 능력 있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권력자나, 사장님이나 그런 사람들인데. 그런데 난 그런 게 너무 싫은 거예요. 성질 내는 걸 내가 너무너무 싫어해요.
* 서민문화연구소: 현태준 작가가 뽈랄라수집관 이후 프로젝트로 준비하고 있는 서민 생활문화 연구소. 서민들의 생활문화에 대한 다양한 조사와 자료수집을 통해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지금 이 시대의 생활문화’를 데이터베이스화 하겠다는 것. 향후 5년 내에 오픈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퍼> 맞아요, 그러신 것 같아요. 잠시 뵀는데도. (웃음)
현> 그래서 관심이 이제 그쪽으로 가 있어요. 그런데 사실 나는, 생활은 서민적이지 않아요. 맛있는 거 되게 좋아하고, 편한 거 좋아하고, 고생을 싫어하고 이런단 말이야. 나름대로 고급, 귀공자풍 좋아하는데, 관심은 서민 쪽에 굉장히 많은 거지.
퍼> 사진에서 받은 인상이 감동적이었던 이유 중 하나는 그걸 잡아내는 시각 때문이었던 거 같아요. 그걸 기록할 때 그냥 막 찍을 수도 있는데, 작가님 사진은 뭔가를 잡아내는 게 있어요. 사진을 보는 순간 정말 공감하게 만들고, 어떤 것들을 다시 보게 만들죠. 이런 건 ‘난 서민적인 것에 관심이 있어, 난 기록하고 싶어’라고 해서 되지 않는 어떤 감수성인데…
현> 제가 많이 돌아다니니까 보는 거죠. 그런데 이건 더 두고 봐야 돼요. 사람은 몰라요. 사람은 바뀔 수가 있어요. 변화를 한다고. 예를 들면 80년대 운동권인 사람들이 싹 바뀌잖아요. 제가 어떻게 바뀔지 저도 모르는 거고. 나도 바뀔 수 있다 싶어요. 지금은 이러다가 돈이 너무 잘 벌리고 대박 나고, 그러면 사람이 바뀌는 거죠. 나도 장담 못 해요.
5 무서운 건 무섭다고 말해
퍼> 아까 서민적인 것에 관심은 있지만 본인의 삶은 그렇지 않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런 모습을 기록하고 관찰하고, 또 수집할 때 심리적인 갈등은 없으세요?
현> 없어요.
퍼> 전혀 없으세요? 어떻게 하면 그럴 수 있어요. 저도 배우고 싶어요.
현> 아무, 아무 생각 없는 거야. (웃음)
퍼> 아니, 어떻게 없을 수가 있어요?
현> 없다니깐. 제가 잘하는 게 있다고 했잖아요. 나는 말도 못 걸어요. 동네 아줌마한테 가서 ‘오늘 어쩌고..’ 이런 말도 못 건다고. 가만히 보기만 하죠. 나는 내가 잘하는 거, 그러니까 자료 모으고 이런 걸 하겠다는 거예요. 나는 정치적인 건 아예 배제해요. 서민문화연구소에도 정치에 관계된 건 아예 안 할거에요. 누구 편도 안 들 거에요. 그런 곳에서 연락이 올 수도 있어요, 그러면 난 ‘미안합니다. 저는 정치에 중립입니다’ 할 거야.
퍼> 굉장히 좋아하는 정치인이 포스터를 만들어 달라고 하면?
현> 좋아하는 정치인이 없어요. 돈 많이 준다면, 생각해 보고. (웃음)
퍼> 그런데 서민적인 것에 대한 관심이라고 하면 자연스럽게 정치적인 것과 연결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정치적으로 해야 한다’가 아니라 우리 생활 자체에 이미 정치가 개입되어 있잖아요.
현> 저는 운동을 잘 못해요. 나는 그냥 이렇게 내가 벌려놓은 것밖에 못 해요. 책으로 얘기한다든가, 내 역할은 거기까지만.
퍼> 본인의 포지션을 굉장히 분명하게 정해놓고 계시네요.
현> 왜냐하면 내가 할 수 있는 게 거기까지니까요. “너는 왜 운동 못 하냐” 그러면 나는 무서워서 못한다, 고 얘기를 하죠.
퍼> 무서워서요?
현> 나 옛날에 대학교 다닐 때 서클에 들어갔는데, 거기가 운동권 서클이었어요. 미대에 ‘현대미술연구’라고 있었는데 그게 완전 운동권 서클이었어. 어느 날 갑자기 나한테 가투를 나가래요. 내가 덩치가 좀 있으니까 나보고 몽둥이 들고 나가라는데, 어우 무섭잖아. 내가 겁이 많았거든. 그래서 나는 그거 못한다고, 안 한다고 그러고 나왔어요. 농구골대에 바퀴가 달려있으니까 데모할 때 나보고 그걸 밀고 나가래. 아우, 나 무섭잖아. 하하하하하.
퍼> 그런 건 자기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정확히 알고, 받아들인 거네요.
현> 어, 내가 못하는 건 인정하는 거죠. 난 겁쟁이다, 난 무서워서 못한다, 얘기하고.
퍼> 힘들지는 않으셨어요?
현> 내가 무서워서 못하겠다고, 싫다고 하니까 선배들이 “저 겁쟁이 새끼” 그랬지. 어우, 뭐 그래도 겁이 많은 걸 어떡해요. 학교 다닐 땐 약간 좀 그랬지. 이렇게 얘기하면 좀 그랬는데. 그런데 어떡해. 참 돌아버리지. 겁쟁이라 완전히 돌아버리겠어. 그런데 지금 보면, 대학교 다닐 때 같이 운동권 했던 사람들 중에서 그때 그 정신 갖고 있는 사람은 한 서른 명 중에서 한두 명만 그대로고 나머지는 다 바뀌었어요. 그때는 소리 고래고래 지르고 그러더니 지금은 백팔십도 바뀌어서 살고, 진짜 두 명, 세 명만 그때 그 정신으로 살아요. 그러니깐 인간사 참 웃긴 거야.
6 아즈씨는 아리스트다
퍼> 전에 인터뷰하신 내용 중에서, 2,30대들을 배려하면서 작업을 한다고 얘기하신 걸 봤어요. 가능하면 그 사람들이 내 작품을 보고 바뀌었으면 좋겠다, 라고. 전 그게 좀 의외였어요. 누가 봤으면 좋겠다, 라고 구체적인 채널을 생각하면서 작업하실 거라고는 생각을 못 했거든요.
현> 내 작업은 내 말로, 내 언어로 작업을 하는 거니까 되게 책임감을 많이 느껴요. 아리까리한 건 내가 안 하지.
퍼> 그러면 뭔가를 만들 때 그것이 가지고 있는 의미라든가, 아니면 누구한테 이 얘기를 하고 싶다, 라는 걸 정확하게 가지고 있다는 말씀이시죠?
현> 매체에 따라서요. 글, 그림, 사진 같은 거. 그건 그냥 형식일 뿐이니까, 내가 표현하려는 것에 제일 잘 맞겠다 싶은 형태로 해요.
퍼> 뭐를 얘기하고 싶은가에 따라서요?
현> 예, 그렇습니다. 그때그때 제일 효과적인 걸로 하죠. 편한 거.
퍼> 작가님은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고, 사진도 찍으시니 스스로를 표현하는, 많은 매체를 가지고 계시잖아요? 원래 다 좋아하던 건가요, 아니면 의식적으로 계발을 하신 건가요?
현> 저기, 제가 최근에 깨달은 게 있어요. 뭐냐면, 쪽팔림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되겠다. 내가 수준이 낮으면 낮은 대로 그냥. 내가 사실 그림 못 그리잖아요.
퍼> 못 그린다고요? 잘 그리시는데.
현> 아니야, 못 그리는데. 내가 그 그림을 공개하는 건, 난 여기까지 밖에 안돼, 라고 해서 그냥 하는 거예요. 내가 그래서 편해진다는 거죠. 글도 난 여기까지 밖에 안돼, 그러니까 더 잘 쓸려고 안 한다는 거야. 그러면 편해져요. 내가 잘 찍으려고 노력 안하고. 그렇게 하면 진짜 작업하기가 쉬워요.
퍼> 혹시 다른 사람들이 작가님을 예술가라고 바라봤을 때, 너무 기대치가 높다거나 아니면 저 사람은 뭔가 있을 것이다, 뭐 이렇게 생각할까봐 부담감이 있으세요?
현> 그렇게 바라본 적 별로 없는데.
퍼> 그렇게 바라보지 않도록 굉장히 오랫동안 갈고 닦아 오신 것 같아요.
현> 그런데 그렇게 바라본 적이 거의 없어요.
퍼> 바라보기를 원하세요, 혹시?
현> 그냥 그런 거는 내가 모른 척 하고 넘어가죠.
퍼> 뭔가 원하는 게 있으신가 본데요. (웃음)
현> 이건 미묘한 건데, 미묘. 이게 재미에요, 재미. 사람마다 재미를 느끼는 부분이 다들 다르잖아요.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닌 거고. 그러니깐 그게 또 미묘해요, 미묘해. 그게 그냥 인사치레로 얘기하는 사람도 있고, 또 진지하게 얘기하는 사람도 있기 때문에 아주 미묘하지.
퍼> 말씀을 들으면 들을수록 뭔가 있는 것 같은데요. (웃음)
현> 나는 그러니깐, 가면이지, 가면. <각시탈>이라고 있어요. 낮에는 자기 정체를 숨기고 바보 행세를 하면서 밤에는 각시탈 쓰고 악당을 무찌르고. (웃음) 난 사실 그런 만화에 굉장히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퍼> 아~
현> 그래서 저기, 내 정체를 밝히는 게 사실 싫어. 내가 어렸을 때 이걸 너무너무 재미있어 했는데, 유독 우리나라 만화에는 그런 류의 만화가 많았어요. 낮에는 바보짓하고 밤에는 이렇게 멋있어지고.
퍼> 정체를 숨기고서.
현> 고행석의 <불청객 시리즈>도 그런 류였는데, 이현세의 <공포의 외인구단>은 한국적인 정서는 아니에요. 일본적인 정서지. 우리나라 탈춤을 보면, 바보처럼 막 놀다가 가끔 양반들에 대해서 뼈있는 풍자를 하잖아요. <각시탈>은 마치 그런 것 같죠.
퍼> 그럼 작가님도 전략적으로 그렇게?
현> 어. 아니 그러니깐 난 그게 재밌어요. 재밌고, 즐겁고. 남이 나를 한심하다는 식으로 보고. (웃음)
퍼> 음. 저도 인터뷰하면서 느낀 게, 작가님한테 여러 가지 얼굴이 있는데, 솔직히 정체를 모르겠다고 느끼는 면들이 많았어요. 그럼 그게 전략적으로?
현> 아니, 난 그냥 그게 재밌는 거야. 전략도 아니고. (웃음) 하다 보니깐 이렇게 된 건데. 그러니깐 마구마구 헷갈리게 되는 거지. 헷갈리고.
퍼> 재미와 전략을 아슬아슬하게 왔다 갔다 하시면서?
현> 어어, 재밌어 재밌고.
퍼> 그런 면에 있어서 굉장히 탁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진 한 장을 보는 시각도 그렇고, 또 아저씨라는 캐릭터를 쭉 끌고 가는 것도 그렇고. 뭐랄까, 떨어지지 않는 거죠, 사람들한테. 외면 받지 않는 감각이 있을 뿐만 아니라 그런 감각들이 너무 좋으신 거 같아요. 감각이라고 말하기에는 조금 너무 가벼운 감이 있고. 계속 관찰자의 시선에서 나온 거랄까?
현> 뭐, 아무튼 할 게 많아요. 앞으로도. (웃음)
퍼> 그런데 솔직히 저는 10년 된 독자의 입장에서 너무 오랫동안 새로운 걸 안보여주시지 않나 하는 생각도 좀 있어요. 너무 오래 뽈랄라에, 수집가에 집중하시는 게 아닐까, 하는.
현> 2007년 헤이리에서 시작하고, 2008년 뽈랄라 문 열고, 정신이 하나도 없어요.
퍼> 예 그러니깐요.
현> 이거 마저 끝내야 돼. 끝낼 거예요, 지금.
퍼> 계속 수집하고 보여주고. 저도 팬이라면 팬이고 관찰자라면 관찰자인데, 이 입장에서 보자면, 이제 뭔가 새로운 게 나올 때가 지났는데 싶은 거죠. 십 몇 년 전에 우리한테 뽈랄라로 아저씨를 처음 보여줬던 그 감수성이, 이제 또 새로운 게 필요하지 않나. 그런 요구를 주변에서도 받지 않으세요?
현> 우리 마누라가 나한테 먼저 요구를 해. 이게 너무 똑같은 거 같다. (웃음) 그런데 일단은 뭐 이거 먼저 해야 하니까.
7 내 수준껏, 네 수준껏
퍼> 제가 현태준 작가를 인터뷰하자, 고 하면서 계속 얘기한 게 뭐였냐면요, 이 분이 너무 영리해서 말씀을 안 하신다, 였어요.
현> 음. 나도 그런 얘기 많이 들었어요.
퍼> 인터뷰를 너무 많이 해보셔서.
현> 따돌려대갖고.
퍼> 뭐라고요?
현> 따돌려, 내가. 인터뷰를 많이 하니깐. 어후~ 사실은 백 번도 더 했나, 이백 번도 하고 그랬나. 보면 딱 알죠. 알고. 얘가 무슨 생각으로 왔나.
퍼> 아무튼, 너무 영리하게 인터뷰를 하신다,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영리하게, 라는 표현을 써서 죄송합니다만, 그러니깐 인터뷰 하는 사람이 딱 얼마만큼 갖고 왔는지 어느 정도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에 따라서 딱 그냥 요만큼만 말씀하시는 게 너무 많이 보였어요.
현> 네 그렇죠. 수준껏. 딱 수준껏 하자, 하죠. (웃음)
퍼> 그래서 에라 술 마시면서 그냥 편하게 하자. 이렇게 된 거예요.
현> 그런데 자기 수준껏 생각하면 마음이 되게 편해져요. 나는 여기까지인데 나한테 뭘 바라냐 이러면 내가 편해지지. 내 수준 이상을 하려는 것에서부터 뽀개져 버리는 거지. 괴롭고.
퍼> 그런데 상대방이 자기를 ‘선생님, 선생님’하면 그걸 무시하기 쉽지 않잖아요.
현> 아니, 그걸 가만히 있지. 뭘 무시해요. 오냐 그러지. (웃음) 아니 그런데 그런 게 별로 없다니깐.
퍼> 아, 그래요?
현> 그렇게 아무 것도 없는데. 자꾸 그러면 사람이 바뀌는 거에요. 주변에서 그렇게 흔들면 내가 진짜 그런가 보다 하면서 바뀌고. 성격이 바뀐다니깐. 내가 아까 얘기했잖아요. 나도 어떻게 될 지 모르겠다고. 나중에 만나서 내가 어떻게 될 지 모른다니깐.
퍼> 자신에 대해서도 되게 엄격하신 것 같으세요. 그런 면에서는.
현> 그런 게 있어요. 거짓말 하는 거 싫어하고, 뻥 치는 거 싫어하기 때문에.
퍼> 그러면 지금 현재 드러나는 것이 자신이 갖고 있는 최대치라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현> 그렇죠. 내가 어떻게 될 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니까. 딱 거기까지.
퍼> 일반적으로 아저씨들은 확신이 강한데, 지금 자신에 대해서 전혀 확신하지 않고 계시잖아요? 그러면 아저씨가 아닌 거 아닌가요?
현> 어어. 그러게요. 그런가? 그러면 약간 돌연변이 아저씨.
퍼> 돌연변이를 아저씨 철학으로 내세우면 안되죠. 이 시대의 아저씨들을 다 포용하셔야죠.
현> 아니 뭐 거기까지야 뭐. (웃음) 그렇게 많은 것을 기대하십니까? 아저씨에는 다양한 ‘아즈씨’가 있는 건데.
퍼> 오늘의 주제는 ‘다양한 아즈씨가 있다’?
현> 무책임한 아저씨도 많고 뭐.
퍼> 너무 좀 뻔한 질문이기는 한데 어쨌든 예술이라는 큰 범위 내에서 계시잖아요?
현> 예예.
퍼> 현태준의 예술이 어땠으면 좋겠다 라는 게 있으세요?
현> 나는 그냥. 내 말이, 내 작품을 통한 얘기가 잘 전달되면 좋겠죠. 그걸로 사람들이 재밌어 하고 즐거워하면 그게 최고죠.
비가 오고 눈 내려도 아무 생각 안 나네
낭만이 무어더냐 짜증만 나네
나는야 아저씨~
돈이 없어 님 떠나니 화딱지 나네
사랑이 무어더냐 열만 더 받네
나는야 아저씨~
탕수육 먹고 싶고 돼지갈비 뜯고 싶다
배고프니 라면도 꿀맛
행복이 무어더냐 배부르면 만사오케
나는야 아저씨~
냄새나고 더럽다고 손가락질 하지마라
내 인생도 종쳤지만 니 인생도 종칠거다
종소리가 무어더냐 마음먹기 나름인걸
나는야 아저씨~
루루루루~ 라라라라~
아저씨의 노래, 현태준 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