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원 – 나의 전공은 음악입니다

현재 영국 리버풀의 'LIPA'에서 음악 공부를 하고 있는 23살 정지원. 'LIPA'는 폴 매카트니가 세운 실용 음악 전문학교이다. 정지원은 'LIPA'의 예비 과정을 졸업한 후 정식 학사 과정 입학을 기다리고 있는 예비 뮤지션이다. 뮤지션을 꿈꾸는 친구의 이야기는 스타가 예능 프로에서 털어놓는 연습생 시절과는 또 다른 길을 보여주었다.

소싯적 피아노 건반 한 번 두드려보지 않은 여학생, 기타줄 한 번 튕겨보지 않은 남학생이 과연 몇이나 될까? 흐릿한 기억 속 나의 초등학교 시절, 아농을 연습하다 반복되는 손가락 운동이 지겨워지면 제 멋대로 나만의 멜로디를 만들어 내고는 했다. 하지만 체르니 40번에서 좌절을 맛본 이후로 나에게 피아노는 한낱 장식품이 되어 버렸다.
이제 더 이상 태어날 때부터 ‘도레미파솔라시도’의 절대 음감에 맞춰 ‘응애 응애’ 울었다는 천재의 이야기가 궁금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차라리 음악을 사랑하고, 음악을 꿈꾸던 보통 사람이 뮤지션으로 성장하는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그 과정 속 예비 뮤지션의 모습과 그들이 경험하는 세계를 엿보고 싶었다.
현재 영국 리버풀의 ‘LIPA’에서 음악 공부를 하고 있는 23살 정지원. ‘LIPA’는 폴 매카트니가 세운 실용 음악 전문학교이다. 정지원은 ‘LIPA’의 예비 과정을 졸업한 후 정식 학사 과정 입학을 기다리고 있는 예비 뮤지션이다. 뮤지션을 꿈꾸는 친구의 이야기는 스타가 예능 프로에서 털어놓는 연습생 시절과는 또 다른 길을 보여주었다.

 

♯. 폴 메카트니가 만든 학교

 

  

퍼: 지원 씨는 지금 LIPA*에서 어떤 분야를 전공하고 있는 거예요?
정: 한국에 있을 때는 보컬 전공이었는데, 지금 학교에서는 이것저것 다 하고 있어요.

 

 

* LIPA(Liverpool Institute for Performing Arts 이하 LIPA): 폴 매카트니가 1996년 자신의 고향인 리버풀에 4000만 달러 이상의 비용을 들여 음악 실습 관련 시설을 갖춘 실용음악전문학교. 이는 곧 유럽 전역 음악인들 사이에서 화제를 모아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
** LIPA 홈페이지
http://www.lipa.ac.uk/

 

 

퍼: 학교 커리큘럼이 한국 대학의 커리큘럼과는 전혀 다른 시스템인가 봐요?
정: 물론 영국에도 한국 대학과 비슷한 커리큘럼을 가진 학교들도 있어요. 근데 제가 다니는 학교는 총체적인 뮤지션을 키우자는 목표를 추구해요. 음악의 처음부터 끝까지 여러 분야를 한 사람이 다 소화할 수 있도록 훈련시키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죠.
 

퍼: 음악 분야에서 멀티플레이어가 될 수 있도록?
정: 예, 최대한 자신의 음악 색깔을 추구하고, 또 그런 음악을 만들어낼 수 있게 하니까.
 

퍼: 어떤 방식으로요?
정: 예를 들면, 학교 수업 중에 ‘music business'(음악 사업)라는 과목이 있어요. 이 과목은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어떤 다른 레이블을 달지 않고도 우리 스스로 음악을 만들어서 팔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과목이에요.
 

퍼: 예비 뮤지션들에게 음악의 사업적인 측면을 함께 가르치는 거네요?
정: 예, 그렇죠.
 

퍼 : LIPA에는 예비 과정[Foundation Diploma course]과 학사 과정[undergraduate course]이 있다고 들었어요. 차이점이 뭐죠?
정: 파운데이션 코스는 정식 학사 과정에 들어가기 전의 1년 예비 과정이라고 볼 수 있어요. 미국 줄리어드 음대의 예비학교 개념으로 생각하시면 될 거예요.
 

퍼: 외국 학교는 성적 받기가 힘들어요? 조건들이 까다롭나요?
정: 네, 좋은 성적 받기가 힘들어요. 그러니까 당연히 졸업하기도 더 까다롭고요. 시험 대신에 과제를 내주는데, 그 과제에 조건이 진짜 많아요. 이러이러한 조건들에 맞추어서 과제를 수행해야 하고, 조건들을 충족시켰을 시에 A를 받을 수 있고, 또 B를 받을 수 있다는 지침들이 자세하게 명시되어 있어요.
 

퍼: 학교에서 전체 학생들에 대해서 일괄적으로 정해놓은 조건가요, 아니면 개인의 음악 역량에 따라 각각 다르게 적용되는 기준인가요?
정: 과목마다 다 달라요.
 

퍼: 지원 씨는 이제 예비 코스를 마쳤으니 학교로 돌아가면 정식 학사 코스를 시작하는 건가요?
정: 네.
 

퍼: 정식 학사 코스 기간은 어느 정도예요?
정: 3년이요.
 

퍼: 학업을 마친 후의 계획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어요?
정: 영화 음악 쪽에 관심이 많아요. 밴드 음악이랑 영화 음악! 졸업하고 나서도 얼마간 영국에 머물면서 활동을 할 생각이에요. 학교에 스튜디오가 있어서 음반 녹음을 할 수 있어요. 학교를 다니면서 네다섯 곡을 녹음해서 한국보다는 영국이랑 일본 쪽에 EP앨범을 내보려고요.

 

♯. 예비 뮤지션의 길

 

  

퍼: 그 학교에 입학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군요.
정: 저는 운이 되게 좋았었어요.
 

퍼: 운이 좋았다고요?
정: 제가 한국에서 실용음악과를 다니다가 중간에 그만두고 잠깐 영국에 나갈 기회를 얻었어요. 그런데 작년에 큰누나 결혼식 때문에 다시 한국에 들어왔던 거죠.
 

퍼 : 그거랑 그 학교에 입학하게 된 거랑 무슨 상관이 있죠?
정: 누나 결혼식이 5월 초쯤이었는데, 마침 그때 LIPA 오디션이 한국에서 있었어요.
 

퍼: 한국에서 그 학교의 오디션을 볼 수 있어요?
정: 네, 볼 수 있어요. 아마 작년이 처음이었을 거예요. 그 학교 교수진들이 직접 와서 면접을 봐요.
 

퍼: 그들이 한국까지 직접 오는 이유는 뭐예요?
정: 아무래도 비행기 표 값이 비싸니까 사람들이 오디션 때문에 영국까지 가는 건 무리잖아요. 그래서 자기네들이 일본, 한국, 중국 등 아시아권을 돌면서 오디션을 봐요.
 

퍼: 그럼 오디션 과정을 통해서 마음에 드는 학생을 발견하면 학교에서 지원도 좀 해주나요?
정: 그런 것은 없어요.
 

퍼: 그러면 ‘너 우리 학교 다닐래?’ 뭐 이런 입학 허가 정도네요.
정: 네, 그렇죠.
 

퍼: 장학금도 없고요?
정: 학교가 생긴 지 10년도 안됐어요.
 

퍼: 몇 년이나 됐어요?
정: 9년 정도 됐어요. 그래서 학교가 아직 재정적으로 안정이 덜 된 상태인 것 같아요. 학교도 아직 작고요.
 

퍼: 오디션을 한국에서 보고 합격 소식은 언제 알게 된 거예요? 영국에 돌아가고 난 후에?
정: 네. 6월에 영국으로 돌아갔을 때, 학교에서 편지가 왔어요. 학교에 입학해도 좋다는.
 

퍼: 그럼 그 편지를 받고나서, 예비 과정을 시작하였군요.
정: 네, 그렇죠. 작년 9월부터 예비 과정을 시작해서 3학기를 모두 마치고 6월 말에 한국에 잠시 들어왔어요.
 

퍼: 지원 씨는 왜 유학을 가고 싶었던 거죠? 국내에서도 음악을 배울 수 있는 방법이 많잖아요.
정: 음악 공부를 하면서 해외의 곡들을 많이 접하게 되었어요. 그러면서 ‘이런 음악적인 아이디어는 어떤 환경에서 만들어지는 걸까?’하는 호기심이 생겼어요.
 

퍼: 네.
정: 더 넓은 세계에서 뭔가 새로운 경험들을 접해보고 싶어졌죠. 어떤 한정된 음악의 틀에 갇히기 싫었거든요. 더 다양한 음악을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유학을 결심했던 거예요.
 

퍼: 그래서 영국으로 간 거군요.
정: 아니요. 처음에는 일본으로 유학을 가고 싶었어요.
 

퍼: 왜요?
정: 일본 음악 시장이 되게 커요. 음악 시장 규모로만 따지면 미국이 1등, 일본이 2등, 영국이 3등이에요. 음… 지금도 저는 일본에 앨범을 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거든요. 일본의 음악 시장은 어느 나라 사람이 보더라도 되게 매력적인 시장이에요.
 

퍼: 그렇군요.
정: 일본에는 음악을 직접 사주는 사람들이 되게 많아요. LIPA출신 밴드 중에 ‘The Wombats’***라는 밴드가 있는데, 그 사람들은 1, 2집을 일본에서 프로모션도 아무 것도 없이 앨범만 딱 냈어요. 근데 1집이 팔리니까 또 2집을 내고, 2집이 돈이 되니까 이제 투어도 다니거든요.
 

퍼: 우와~
정: 굳이 홍보가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더라도 사람들이 음악을 듣고, 음반을 사주니까. 그런 결과가 나올 수 있는 것 같아요.

 

*** The Wombats, <Let’s dance to joy divion> 유투브 동영상
   

퍼: 일본이 아니라 결국 영국을 선택한 이유가 있어요?
정: 그냥 제가 좋아하는 음악이 다 영국 쪽 음악이라서. 영국 가기 전 대학의 실용음악과 다녔는데, 학교 다니기가 너무 싫었거든요.
 

퍼: 왜요?
정: 가르치는 게 다 재즈, 재즈, 재즈. 이러다 보니까.
 

퍼: 아, 그래요?
정: 학교마다 조금씩 다르기는 한데, 제가 다니던 학교는 특히 그랬어요. 물론 재즈는 모든 음악의 뿌리기도 하지만 제가 그렇게 좋아하는 음악은 아니라서. 저는 솔직히 실용음악과를 가는 것은 그닥 추천해주고 싶지 않아요.
 

퍼: 왜요?
정: (잠시 정적)
 

퍼: 고등학생들이 음악을 공부하러 대학에 들어가야겠다고 생각하면, 대부분 별다른 정보가 없으니 자연스럽게 실용음악과를 생각하게 되잖아요?
정: 네. 그런데 실용음악과를 나와도 막상 졸업하면 할 게 없어요, 유명한 학교 몇 개들이 유명 세션은 이미 다 잡고 있고. 그 세션들이 그 자리에서 빠진다거나 더 괜찮은 세션이 나오는 경우도 그건 다 자기네 테두리 안에서 해결을 하는 식이거든요. 이런 상황인데도 요즘 실용음악 학원은 정말 많이 생겼더라고요.
 

퍼: 네, 정말 많이 생기고 있어요.
정: 한편으로는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우리나라 사람들은 아직까지 음악을 ‘사야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잖아요. 결국 음악을 하려는 사람은 많은데 음악을 사주는 사람은 없으니 좋은 학교의 실용음악과를 졸업했다고 해도 막상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거든요.
 

퍼: 그러면 지원 씨 주위에 실용음악과를 졸업한 사람들은 어떤 일을 하고 있어요?
정: 대부분이 선생님, 학원 선생님. 그러니까 학원이 생길 수밖에 없어요.
 

퍼: 결국 다시 그 분야로 돌아가서 시스템이 반복되는 거네요?
정: 그렇죠. 몇 백 대 일 경쟁률을 뚫고 들어간 대학 졸업하고 결국은 대부분이 학원 선생님.
 

퍼: 실용음악과 경쟁률이 상당하다고 들었는데. 음… 그럼 다른 일을 하는 경우는 극히 드문가요?
정: 그렇죠.
 

퍼: 가수로 데뷔를 하는 경우도 있지 않나요?
정: 홍대에서 인디밴드로 활동하는 경우가 있죠. 앨범을 내는 건 어느 나라나 쉽거든요. 문제는 음반을 내는 것까지는 쉬운데, 그걸로 돈을 벌거나 유명해지는 건 힘들다는 거죠.
 

퍼: 음악만으로는 생계유지의 수단이 될 수는 없는 현실이네요. 그런데도 왜 그렇게 고등학생들은 실용음악과를 가려고 목을 매는 걸까요?
정: 이건 제 개인적인 생각인데요. 누구나 10대를 거치잖아요. 10대 때는 공부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없잖아요?
 

퍼: 도피의 일종라고 보시는 건가요?
정: 비슷해요 이왕이면 공부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음악으로 대학을 갈 수 있으면 좋으니까. 또 왠지 잘 할 수도 있을 것 같고. 그래서 시작을 하는 것 같아요. 한편으로 제가 실용음악과에 아쉬운 점은 다른 과는 잘 모르겠지만 이 과는 졸업하기가 너무 쉬워요.
 

퍼: 졸업하기가 쉬워요?
정: 네, 그냥 학교만 잘 다니면 돼요.
 

퍼: 졸업 조건 같은 것은 없고요?
정: 성적만 어느 정도 나오고, 학교만 잘 나가면 돼요. 출석률로 점수를 많이 주거든요. 이 정도만 하면 다 졸업을 시켜주니까. 제 생각에 이젠 학교도 이 과를 교육의 한 부분이 아니라 하나의 사업 수단으로 보는 것 같아요.
 

퍼: 그런가요?
정: 외국 학교처럼 졸업하기 어려우면, 공부 하다가 힘든 사람들은 중간에 스스로 못하겠다고 포기를 할 거 아니에요. 그렇게 살아남는 사람들이 결국 끝까지 음악을 하는 거고. 저는 그게 더 낫다고 봐요.
 

퍼: 그래도 누구나 유학을 갈 수 있는 건 아니죠.
정: 물론 그렇죠. 다만 정말 음악을 하고 싶다면 쉽게 쉽게 학점 따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는 거죠. 힘들게 넘어야 할 산이 많은 거 같아요. 저도 처음에 영국 유학 자체가 힘들었어요. 아버지랑 갈등도 있었고…
 

퍼: 유학을 반대하셨나요?
정: 예. 거의 한 반 년 동안은 아버지랑 저랑 서로 이야기도 안 하고.
 

퍼: 힘든 상황이었네요.
정: 네. 그러다 제가 대학 다닐 때 제 가능성을 믿어주셨던, 제가 좋아했던 교수님께 아버지를 한번 만나서 설득해 주실 수 있겠냐고 부탁드렸어요. 아버지가 교수님을 만나고 오시더니, ‘언제 갈 거냐?’ 이러셨어요.
 

퍼: 와… 요즘 부모님의 반응은 어떠신가요? 지원 씨가 공연하는 모습, 부모님께서 보신 적이 있나요?
정: 네, 공연 때마다 거의.
  

퍼: 부모님께서 뿌듯해 하시겠어요.
정: 엄마는 잘했다는 말씀도 가끔 해주시는데, 아빠는 만날 ‘에잇, 이 딴따라 새끼’ 그러시죠.(웃음)

 

♯. 낯선 곳의 유학 생활

 

퍼: 유학 생활은 어떠셨나요?
정: 처음 영국에 잠깐 갔을 때는 영국이 어떤 나라인지 궁금해서 그냥 영국을 느껴보고 싶었어요. 꼭 음악 공부만이 목적은 아니었어요.
 

퍼: 영국에 가보니까 궁금증이 좀 풀리던가요?
정: 글쎄요. 런던에 있을 때는 돈 때문에 되게 힘들었어요.
 

퍼: 한국 식당에서 일했다고 들었어요.
정: 제가 처음부터 공부를 하러 간 게 아니니까 제 생활비는 직접 벌어서 쓰겠다고 부모님께 말씀드렸거든요.
 

퍼: 좀 힘들었겠어요.
정: 막상 영국에 가니 후회가 되더라고요. 돈 벌기도 힘들고, 또 그렇게 돈은 버는 족족 집값에 생활비로 다 나가니까 남는 돈도 없고.
 

퍼: 그 과정에서 혹시 느낀 점은?
정: 돈 벌기 힘들구나! 흐흐
 

퍼: 그렇죠? 너무 뻔히 보이는 질문에, 너무 뻔히 보이는 대답이었네요.(웃음)
정: 런던에 있을 때 되게 힘들었어요, 정말. 그래서인지 런던은 지금도 개인적으로 별로 안 좋아해요.
 

퍼: 왜요?
정: 처음에 저는 영국이란 나라를 느끼러 런던에 간 거였거든요. 근데 제 생각에 런던은 영국이 아니었던 것 같아요.
 

퍼: 런던을 잘 느낄 수 없었던 생활환경 때문인가요?
정: 아니 그것보다, 뭐라고 할까? 너무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느낌이라서. 그래서 저 개인적으로는 런던에서 영국만의 유일한 느낌은 많이 못 받았던 것 같아요.
  

퍼: 그렇게 일하면서도 음악 작업은 계속 했나요? 어땠어요?
정: 그때는 몸과 마음이 너무 지쳐서 음악 작업을 할 수 있는 여유가 별로 없었어요.
  

퍼: 아무래도 유학 생활에서 경제적인 부분이 중요하니까.
정: 그렇죠. 제가 일했던 곳은 한국 식당이 아니라 한국 사람이 운영하는 가게예요. 식당이기도 하지만 200년이나 된 전통 있는 펍(Pub)이기도 해요.
  

퍼: 가게에서 번 돈으로 생활비는 충분했어요?
정: 충분하지는 않았지만 아껴 썼죠. 교통비도 아끼려고 자전거를 타고 다녔어요. 일하러 가면 밥 주니까, 그걸로 끼니도 해결하고.
  

퍼: 그래도 자전거 타고 다녀서 체력도 좋아지고 건강해졌겠네요. 씁쓸하지만 그렇게 아름답게 마무리를 해야 하나. 흐흐
정: 사실 런던에서뿐만 아니라, 학교 예비 과정에 처음 입학하고, 첫 학기 때에도 좀 힘들었어요. 거의 한 학기를 버렸거든요.
  

퍼: 네? 왜요?
정: 너무 힘들어서요. 첫 학기가 9월부터 크리스마스 전까지였어요. 학교에 처음 갔는데,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거든요. 저는 리버풀에 있는데, 그나마 친한 사람들은 다 런던에 있고.
  

퍼: 아~ 그랬겠다.
정: 언어 때문에 아무래도 의사소통도 자유롭게 안 되니까, 너무 외롭고… 그때는 진짜 한국에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퍼: 유학 생활이 당연히 항상 좋을 수만은 없겠죠.
정: 그때는 학교도 잘 안 나가고, 지각해서 아침 수업 빼 먹고, 그냥 혼자 만날 방에 술 사와서 술 마시고 자고.
  

퍼: 그때 음악 작업은 계속 했나요?
정: 음… 곡을 계속 쓰긴 썼어요.
  

퍼: 그때 당시 심경이 담긴?
정: 네.
  

퍼: 나중에 그 노래들 좀 들려줘요.
정: 하하
  

퍼: 그러면 그렇게 한 학기를 마친 거예요?
정: 그렇게 한 학기를 버렸죠. 그리고 1월 중순 쯤에 다음 학기가 시작됐어요. 그때 문득 든 생각이 비싼 돈 내며 다니는, 이 학교에서 뭐라고 얻어 가야하지 않을까 싶어서 마음을 다 잡고 새롭게 다시 시작했죠.
  

퍼: 지원 씨가 그렇게 힘들어 했을 때, 힘이 되어 주었던 혹은 자주 들었던 음악이 있나요?
정: 그때 엘리엇 스미스(Elliott Smith) 노래를 많이 들었어요. 특히 영화 ‘굿 윌 헌팅(Good Will Hunting, 1997)’OST 중에 ‘Between the bars’****라는 곡이 있어요. 그 노래를 특히 좋아했어요.

   

**** Elliott Smith, <Between the bars> 유투브 동영상

 

#. 엔터테이너와 아티스트의 사이

  

퍼: 앞으로 어떤 뮤지션이 되고 싶은지에 대해 듣고 싶어요. 먼저 영화 음악에 관심이 많다고 했는데, 그럴 만한 동기가 있었나요?
정: 제가 런던에서 일하다가 영상 작업을 하는 한국 사람들을 만났어요. 한국에서 네다섯 분이 학교를 함께 다니다가, 작년 9월부터 유럽을 여행하고 있대요. 오랫동안 여행을 하다보면 돈이 부족하니까 자신들이 머무는 민박집의 홍보 영상을 만들어주며 무료 숙박도 하며 제가 일하던 곳에 오셨어요.
 

퍼: 그런 방법으로 여행하면서 먹고 잘 수도 있군요.
정: 그분들의 최종 목표가 영국에 있는 밴드들의 뮤직비디오를 찍어주는 거래요. 그런데 요즘 그분들이 그 목표를 이루고 있는 중이예요.
 

퍼: 어떻게요?
정: ‘Arco’라는 영국 밴드의 뮤직비디오 작업을 하고 있거든요. ‘Arco’의 음악은 한국에서 커피 프린스 OST*****랑 CF 배경음악으로 쓰이면서 유명해졌을 거예요. 이번에 아르코가 해체하기 전에 마지막 앨범을 내는데, 이분들이 그 뮤직비디오를 만들고 있죠.

 

     

***** Arco <Perfect world>(커피 프린스 OST 중에서) 유투브 동영상

   

정: 그분들이 자신들이 여행을 하면서 찍은 영상을 인디 영화로 만들어서 낸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그 영화의 음악 감독을 한번 해보고 싶다고 했어요.
 

퍼: 긍정적으로 검토되고 있는 건가요?
정: 네, 거의 확정적으로!
  

퍼: 만약에 음악 감독을 하게 된다면 지원 씨한테는 좋은 경험이 되겠네요.
정: 예. 그렇죠.
  

퍼: 어떤 종류의 영화를 좋아하나요?
정: 제가 제일 좋아하는 영화는 ‘흐르는 강물처럼’이에요. 제일 인상 깊게 봤던 영화는 ‘타인의 삶’과 ‘수면의 과학’이에요. 저는 사람의 입장을 다룬 영화가 좋아요. 결국 영화는 사람을, 사람의 삶을 향해있는 거잖아요.
  

퍼: 영화 음악이나 밴드 음악 이외에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는?
정: 앞으로 현대 음악 쪽도 해보고 싶어요. 현대 음악은 기존 음악 분야들과는 또 다른, 뭔가 색다른 음악적 표현을 할 수 있는 분야인 것 같아요. 요즘에는 ‘정말 새로운 음악이다’싶은 것들은 잘 나오지 않는 것 같아요. 물론 현대음악도 100% 다 새로운 것들로만 구성할 수는 없겠죠. 음악적 한계는 분명히 존재하니까.
  

퍼: 네.
정: 그래도 지금의 뻔히 보이는 팝 음악들보다는 좀 더 새롭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퍼: 지원 씨는 음악을 평생 직업으로 삼을 생각인가요?
정: 네. 지금 생각에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하고 싶을 것 같아요. 그런데 앞으로 계속 할 일, 직업과 관련시켜 생각을 하다보니까, 돈 문제를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더라고요. 지금 아버지도 은퇴하신 상황이시고.
  

퍼: 대중음악을 하는 경우 예술성과 상업성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죠.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게 쉬운 문제는 아니잖아요. 음악인이 예술적 신념을 고수하기 위해서 상업적인 이익을 포기했을 때, 우리는 그 사람을 기꺼이 아티스트라고 인정하기도 하고요.
정: 어… 제 생각에는 결국에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이 이기는 것 같은데요?
  

퍼: 결국은?
정: 상업성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요. 음… 인디밴드들이 뜰 수 없는 게 지금 우리나라의 상황인 거 같아요. 제가 왜 돈 버는 사람들이 이기는 거라고 생각하느냐면 돈을 가진 사람들이 유행을 이끌어 나갈 수 있거든요.
   

퍼: 왜 그럴까요?
정: 큰 음악 회사는 돈이 많으니까 자신들이 키우는 가수들의 음악 홍보를 마음대로 할 수 있잖아요. 그렇게 홍보가 많이 되면 뜰 수밖에 없어요. 돈을 가진 사람들이 유행을 만들어 가게 되는 셈이니까!
  

퍼: 그런데 큰 회사들이 밴드를 키우는 경우가 흔하지는 않잖아요?
정: 네, 그렇죠. 큰 음악 회사들은 밴드에는 투자를 잘 안 하려고 하죠.
  

퍼: 왜요?
정: 밴드를 뒷받침 하려면 악기 사줘야 하고, 연습실 만들어줘야 하고. 또 밴드 음반 녹음 하는 건 일반 음반 녹음하는 것보다 몇 배의 시간이 드니까. 악기도 다 직접 쳐서 녹음해야 하니까.
   

퍼: 진짜, 그렇겠다.
정: 그러다보면, 돈이 되는 것만 따라가니까. 아무래도 인디밴드들은 더더욱 뜨기가 힘들게 되는 거죠.
  

퍼: 네.
정: 또 우리나라 사람들은 삶에 여유가 없다보니까, 아무래도 내 귀에 들리는 음악만 찾게 되잖아요. 아까 말했던 미국, 일본, 영국. 이런 나라들은 예술을 대하는 태도, 삶의 여유랄까, 그게 풍족하다는 느낌을 종종 받아요.
  

퍼: 그래서 음악 시장도 꾸준히 발전할 수 있는 거겠죠.

 

♯. 정직한 노력이 담긴 음악

 

퍼: 요즘 UV가 정말 화제가 되고 있잖아요.
정: 아, 그 사람들은 정말 실험적이에요. 그래서 좋아요.
 

퍼: 저도 정말 의외로 노래가 진짜 괜찮아서 처음에는 놀랐거든요.
정: 이 사람은 자신들이 먼저 까놓고 말했어요. 자기들은 돈 벌려고 음악한다고. 이미 말을 했기 때문에 그래서 더 이상 그들의 상업성에 대해서 반박할 여지가 없는 거예요.
 

퍼: 그렇더라고요.
정: 그래서 좋아요. 음악을 만드는 사람이 자신이 만든 음악을 더 많이 팔아서 돈을 벌려고 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잖아요.
  

퍼: 네. 사실 저는 인디밴드는 돈에 연연하지 않고, 꿋꿋하게 자기 갈 길을 가는, 아주 배고픈 인생들인 줄 알았거든요.
정: 요즘엔 좀 달라졌죠.
  

퍼: 그래요?
정: 가령 이번에 월드컵 시즌에 맞춰서 빨리 음반 내서 행사 뛰어야 한다고, 일부이긴 하지만 그런 인디밴드들이 있어요.
  

퍼: 어쩔 수 없이 자신들의 생업과 연관된 일이니까 그런 게 아닐까요?
정: 글쎄. 생업이라기보다는 특수를 노리는 면이 크죠. 자기들이 그 음악으로 뭔가를 해보려는 게 아니라, 하나의 축제 같은 거를 통해서 그때만 나와서 돈 싹 벌어서 들어가고.
  

퍼 : 정말요? 의외인데요.
정: 저는 대중음악을 하는 사람들에게도 돈을 버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돈을 ‘어떻게 버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자기가 음악으로 돈을 벌고 싶다면 그만큼 음악에 투자를 먼저 하는 게 옳거든요. 근데 몇몇 특수만 노리는 사람들은 어떻게든 돈을 아끼려고 하거든요. 앨범 하나 내는 데 제작비가 500만원 밖에 안 든다면 말이 안 되는 거예요.
  

퍼: 그러니까 그게 돈이 없어서라기보다는…
정: 그 사람들이 일부러 돈을 아끼는 거죠. 인디밴드에도 부자인 사람들도 꽤 있어요.
   

퍼: 다른 나라의 상황도 우리나라와 비슷할까요?
정: 어느 나라의 인디밴드이건 힘든 건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다만, 미국이나 일본, 영국 같은 경우에는 인디에서 더 커서 인디를 벗어날 수 있는 기회가 좀 더 많다는 게 다르죠.
  

퍼: 인디로 계속 머물러 있기를 바라는 사람은 없겠죠?
정: 그럼요.
  

퍼: 지원 씨도 최종적으로는 돈도 벌고, 음악적으로 유명해지고 싶겠네요?
정: 뭐. 부정할 순 없죠.
   

퍼: 음악 하는 사람이 갖춰야 할 조건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정: 음… 글쎄요. 노래하는 사람을 예로 들면, 정말 노래를 기술적으로 잘 하는 걸 떠나서 그 노래를 정말 잘 표현하는 사람?
  

퍼: 그럼 지원 씨 개인적으로 노래를 진짜 잘 표현하는 사람은 누구라고 생각해요?
정: 저는 한국에서는 이소라.
   

퍼: 국외에는?
정: 리키 리 존스(Rickie Lee Jones)요.
  

퍼: 여자 가수를 좋아하는구나?(웃음)
정: 예뻐서 좋아하는 건 아니고.(웃음) 리키 리 존스 노래******를 한 곡 들으면, 무슨 드라마 보는 것 같아요. 그 노래 한 곡 안에 그 사람의 감정이 모두 다 들어있어요. 그래서 노래를 정말 잘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 Rickie Lee Jones, <Chuck E’s In Love> 유투브 동영상
        

퍼: 지금 지원 씨가 정해놓은 목표나 기대치가 있어요? 이 정도면 됐다 싶은.
정: 너무 유명해지는 것까지는 바라지 않더라도, 어느 정도 인정받고, 벌 만큼 좀 벌고.
  

퍼: 조금 더 구체적으로는요?
정: 음… 영국의 큰 페스티벌에 나가서 메인 스테이지에서 공연하는 게 목표라면 목표예요! 일단 그런 큰 무대에 서기 위해서는 이름이 알려져야 하거든요.
  

퍼: 그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가 우리나라 상황과 비교했을 때 얼마나 차이가 있나요?
정: 우리나라 무대에 비해서 두 배는 더 기회가 많죠. 대신에 그 무대에 서려면 자신들의 앨범이 있어야 해요.
   

퍼: 지원 씨가 추구하는 음악 스타일이 궁금하군요. 지금 쓰고 있는 곡의 분위기는 어떤가요?
정: 영국에서 지금 쓰는 곡은 한국에 있을 때 쓰던 곡 분위기랑 많이 달라졌어요.
   

퍼: 어떻게 달라졌는데요?
정: 아무래도 영국의 영향을 받은 것도 좀 있어서. 사운드나 멜로디 같은 것들이 조금 자극적이고 강한 방향으로 바뀌었어요. 영국에 가서 그곳의 좋은 음악들을 더 많이 접하다보니까 좀 더 새로운 시도들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강해졌어요.
  

퍼: 이를테면?
정: 제가 요즘 홍대 클럽에서 공연을 준비하고 있거든요. 그 공연에서 지금 제가 집중하고 있는 음악 스타일을 반영하고 싶어서, 노래할 때 노래를 좀 더 세게 부르려고 해요.
  

퍼: 그럼 지금 지원 씨의 음악 스타일은 이전의 서정적이고 부드러운 느낌에서 좀 더 강한 느낌으로 가는 중간 과정에 있다고 볼 수 있나요?
정: 그렇게도 볼 수 있죠. 하지만 제가 하고 싶은 음악 방향이 고정된 것은 아니에요.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서 그 나이에 느끼는 부분들이 다 다를 테니까. 그 나이에 좀 더 와 닿는 다양한 음악들을 모두 경험해 보고 싶은 욕심이 있어요.

 

   

‘정.지.원’. 아직은 그를 오롯하게 뮤지션 ‘정.지.원’이라고 말하기에는 부족한 느낌이었다. 그에게서는 화목한 가정에서 사랑받고 자라, 지금은 철이 든 막내아들의 느낌이 진하게 배어났다. 또 아직은 20대 초반의 풋풋한, 장난기 가득한 청년의 느낌도 가득했다.
허나, 이 모든 느낌은 그가 지금 자신이 목표한 지점에 도달하기 위한 과정에 놓여있는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 그 과정을 밟고 있는 그는, 분명히 자신의 음악적 색깔을 찾기 위한 음악적 모험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었다. 내게 음악이 간절히 필요해지는 순간, 언젠가 그의 음악을 찾게 될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