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퍼슨웹 20대 방담
‘지금’ ‘누구’와 인터뷰[inter-view]할까? [1] 보기
[방담 참가자]
멘솔 2008년 겨울, 새로운 놀이터를 찾다가 퍼슨웹을 만났다.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하고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했다. 현재는 백수. 실업 급여로 연명하며 생계 연장을 위한 일자리를 찾고 있다.
대뜸 대학 4학년 1학기인데 취업 걱정은 별로 하지 않는다.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한다. 사람과의 만남을 흔적으로 남겨볼까 하고 퍼슨웹에서 친구들 인터뷰를 진행중이다.
모험 19살 때, 인터뷰를 해보겠다며 퍼슨웹을 드나들기 시작. 대학 졸업 즈음 <88만원 세대> 책의 영향을 받아 청년 문제를 직접 해결해보겠다며 20대 몇몇과 함께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현재 퍼슨웹 2세대를 찾아다니고 있다.
구 시골학교에서 무엇이든 잘 하는 씩씩한 어린이로 자랐다. 대학 졸업과 동시에 한국을 떠나 1년 반 여행을 했다. 이후 광고회사의 카피라이터, 웹진 기자, 단추 디자인 작업자 등의 직업을 전전하다 다시 디자인 학교를 입학했으나 그만두었다. 현재 음악커뮤니티 회사에서 기획을 담당하고 있다.
장 고등학교 때 접한 1인칭 소설 덕분에 자아를 발견했다.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한 후, 대학원에 진학하였다. 박물관에서 일을 하다 얼마 전 그만두었다.
두부 문예창작과를 나왔다. 화력발전소에서 일하다 한 달 간 캄보디아 등을 여행했다. 현재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하고 있다.
싼타 멘솔의 부탁으로 인터뷰 사진을 찍으러 퍼슨웹에 방문. 현재 모 언론사에서 영상뉴스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퍼슨웹에 몸담고 있진 않지만 인터뷰 대상에 따라 촬영 지원이 가능한, 사심 가득하고 이기적인 동료.
지금 20대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하지 않다.
<88만원 세대> 출간 이후 청년들의 목소리를 담은 책들이 쏟아졌다. ‘저희 그렇지 않거든요’ ‘그거 사회구조 때문이거든요’ ‘그래도 우린 잘 살 수 있거든요’ 등의 이야기. 그닥 공감할 수 없었다. 앞 세대가 우리 세대를 규정한 <88만원 세대>에 불만이 가득해도 결국 다시 앞 세대 누군가의 혜안이 담긴 책을 찾아 읽으며 위로받았다.
이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궁금하지 않다.
포탈 사이트 메인 화면에 몇 초씩 떴다 지는 뉴스 타이틀처럼 내게 다가오는 ‘사회’는 잠깐씩 등장했다 사라지는 CF에 가까웠다. 내가 그 사회와 어떻게 얽혀 있는지, 그 위치에서 무엇을 해야만 하는지 생각만으로도 머리가 지끈거렸다.
20대 방담을 기획하게 된 계기는 거창하지 않다. 그저 “나도, 너도 왜 ‘인터뷰’를 하겠다고 퍼슨웹에 모였는지” 호기심이 발동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렇게 ‘인터뷰’를 통해 다른 사람에게 말을 걸어보고 싶어하는, 같은 세대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인터뷰’라는 매개 때문일까? 우리는 지금 현재의 일상에서 마주한 이슈들부터 머리가 좀 굵은 이후 골방에서 일기장에나 끄적여놓았던 이야기까지 거침없이 공통의 화제로 꺼내 놓을수 있었다.
1. 요즘 젊은 것들
대뜸 우리를 ‘요즘 젋은 것’들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어느 세대죠? 부모님 세대? 운동권 세대?
멘솔 글쎄. 우리 앞 세대 전체 아닐까? 근데 ‘젊은 것들 운운’하는 말을 들으면 제 자신은 경계에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내 또래 친구들이랑 이야기하다 보면 “10대 고등학생들, 20대 초반 대학생들은 이러저러하더라” 그런 말 하게 되죠. 그들과 20대 중후반의 우리를 다시 구분 짓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젊은 것 운운’하는 말보다 오히려 다른 세대에 대해 함부로 이야기하는 것에 불만이 있어요.
두부 맞아. 바보 취급하면서.
멘솔 <88만원세대> 책 처음 나왔을 때 신선했어요. 근데 언론에서 그 담론을 재생산할 때, ‘얘네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냐?’ 심층 탐구하고, 교수들이 ‘너희들 그렇게 살면 안된다’ 충고하고, 그게 싫었던 거죠.
심층 탐구나 충고에 반응을 보이지 않으면 다시 ‘너희는 의욕도 없구나, 우리 386세대가 느꼈던 파토스 같은 것을 너희는 경험할 기회가 없었지?’ 이러죠. 처음에는 짜증이 좀 나더니 이제 짜증내는 것 자체가 귀찮아요.
이런 식의 젊은 세대에 대한 관점은 어느 시대, 세대에나 공통적으로 존재했던 거잖아요. 무위무능하고 실패한 것 같고.
대뜸 ‘젊은 것’ 운운하는 사람들도 다 젊은 시절을 겪은 사람들이겠죠. 누구나 젊었을 땐 진보적이었다가 늙으면 보수적으로 변한다는 말을 읽은 적이 있어요. ‘젊은 것’들이라는 비판은 인류가 끊나지 않는 이상 계속될 거예요.
제가 싫은 건 ‘젊은 것들은 생각이 없다’며 쉽게 비판하는 거예요. 요즘 20대 친구들은 생각없이 살 수가 없어요. 생각 안하면 바로 뒤쳐지는데, 그걸 체감하는 속도가 무서울 정도예요. 예를 들어 ‘방학 동안 토익 점수 몇 백 점 올려야지’ 그런 생각 안하면 곧바로 뒤쳐진다고 느끼게 되요. 그래서 전 정작 ‘젊은 것들’ 운운하는 사람들이 생각없다고 하는 기준을 잘 모르겠어요.
20대는 이제 막 사회에 나와서 가진 것도 없고 힘도 없는데, 앞 세대가 경쟁 구도로 만들어 놓고 우리에게 ’88만원 세대, 너희 정말 문제구나’라고 하는 게 가끔은 억울할 때도 있어요.
2. 생각없는 20대?
멘솔 그 ‘생각이 없다’는 말의 의미도 한번 생각을 해봐야 해요. 그냥 토익 점수 올리고 방학을 알차게 보내며 자본주의 시대에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는지를 생각하는 게 생각이 있는 건 아니죠. 젊은 것들 생각없다는 말은 ‘너희들 왜 그런 것만 준비하고 사회에 대한 통찰이 없느냐? 왜 문제가 일어나도 해결하려고 나서지 않느냐’ 그런 의미겠죠.
하지만 지금 젊은 세대들은 젊은 세대를 비판하는 세대에게 ‘너희가 만들어놓은 시스템에서 왜 우리가 이렇게 살아야 하느냐’ 라는 원망조차도 없고, 그냥 젊은 세대 귀찮게 안했으면 싶은 거죠.
구 저도 ‘그들’에게 해명하고 싶은 것 없어요. 다만 말하고 싶은 한 마디 ‘우리에게 무례하게 굴지 않았으면 좋겠다.’
멘솔 맞아. 함부로 재단하는 거.
모험 저도 그런 이야기들 하나하나에 해명하는 건 좀 지쳤어요.
멘솔 제 자신으로 한정해 말하자면 남이야 뭘 하든말든 상관없고, 이제 나부터 제대로 하자고 생각해요. 사실 스펙도 그 사람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 살아남기 위해서 쌓는 건데 그렇게 해서 행복하다면 괜찮은 거죠. 근데 그렇게 해서 안 행복할 때가 문제잖아요. 각자 다 자기만의 삶이 방식이 있는 거고, 자기 삶 안에서 행복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장 각 시대마다 추구하는 가치는 변하기 마련인데, 한국 사회 자체가 가치관의 변화가 빠른 것 같아요. 각자 자기의 가치관에 따라서, 자기 생각을 옳다고 주장하고 있어서 서로가 다르게 보이는 것 같아요.
나이드신 분들은 그분들대로 불만이 있겠죠. 우리보다 삶의 연륜은 있지만, 우리가 그들을 우습게 보는 것도 간과할 수없는 사실이잖아요. 젊은 사람들이 함부로 말하잖아요. 직설적이고 공격적으로 아무렇게나 말하는 걸 꺼리지 않고.
구 젊은 사람들이 직설적으로 말하는 속성을 보인다 하셨지만, 나이든 분들 역시 그렇죠. 함부로 말씀하시잖아요. 저는 많이 지쳐서 세대간 합의를 본다는 건 생각도 못 하겠고, 그저 서로 예의만 지켜줬으면 하는 마음이예요. 예의는 다른 게 아니라 ‘저럴 수 있구나’하며 타인에게 열려있는 거죠. 예의를 위한 최소한의 장치라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종종 해요.
장 불만만 토로한다고 해결되지는 않을 것 같아요. ‘386세대 왜 이래’, ’40대 왜 이래’, ’60대 왜 저래’ 그렇게 비난하면서 ‘너희들이 그러니까 우린 이렇게 사는거야’라고만 말할 수 없는 거죠. 각 세대가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식하고 그게 무엇인지를 찾아내려 해야지, 계속 비난만 하다 보면 분열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싼타 오늘 신문(*)에서 본 기사가 생각나네요. 참여연대에서 천안한 관련 서한을 유엔에 보내고 난 직후에 신촌과 홍대, 그리고 탑골공원에서 한번은 ‘참여연대 각성하라’라는 피켓을 들고, 또 한번은 ‘참여연대는 정당하다’는 피켓을 들고 반응을 알아보는 실험을 했대요. 그 기사를 보며 세대간 소통이 그렇게 단절되어 있고, 특히 50, 60대들은 ‘이것만 옳아’하는 입장이 뚜렷한데 어떻게 소통해나갈지 고민이 되더군요.
장 제가 탑골공원에 유물 발굴하러 간 적이 있는데, 탑골공원을 오고가는 분들 중에도 왼쪽과 오른쪽이 나눠져 있어요. 12시가 되면 한쪽은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고, 또 다른 쪽은 다른 구호를 외치죠.
구 사람들은 자기 시대에 경험한 것에 따라 자신의 생각이 전적으로 옳다고 믿는 것 같아요. 영화 <불신지옥>에 그런 인물이 하나 나오죠.(**) ‘나는 베트남 전쟁에 참가해서 사람 수십 명을 죽였어’라며 자기 앞에서는 누구든 다 깔아라 그런 인물이예요. 그 말을 마치 신들린 듯 하는데, 그때 형사가 한 대 치니 쓰러졌다가 겨우 제정신을 차려요. 꽤 섬뜩한 장면이죠.
멘솔 전쟁 체험이 사람을 그렇게 만든 거 같아요.
3. 다른 세대에 대한 예의
모험 전 지금 이야기 듣고 그런 생각 들었어요. 우리가 전 세대에게 유산을 물려받잖아요. 유산이란 게 받고 싶은 것도 있고 받기 싫은 것도 있어요. 받기 싫은 유산을 지금 20대들은 너무 명확하게 알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어요.
왜냐하면 20대들이 전 세대를 밀착해서 만나잖아요. 회사나 학교에서 만나며 전 세대로부터 물려받기 싫은 유산을 자연스럽게 보게 되는데, 그런 것에 거부감을 느끼고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을 많이 하게 되죠.
한편으로는 그것도 그 사람이 물려주는 유산인데, 그걸 어떻게 서로가 흡수할 수 있을지 고민하죠. ‘넌 다르네’하면서 신경 안 쓸 수도 있지만 그들의 유산을 어떻게 할지 고민을 안 할 수는 없어요.
장 <도덕교육의 파시즘>(***)이라는 책 보셨어요? 그 책을 읽기 전까지는 기성세대에 대한 반감이 있었어요. 모든 어른들한테 굉장히 못되게 굴었죠. 조금만 건드려도 ‘당신이나 잘하세요’ 뭐 그런 식의 반응을 보였어요. 저도 제 나름의 뭐에 빠져서 그랬던 것 같아요.
<도덕교육의 파시즘>에서 왜 지금 나이든 세대가 젊은 세대에게 공격적인가 이유를 설명해줘요. 나이든 세대는 전근대적인 사회에서 자라 근대 사회에서 자식 키우고, 현대 사회에서 젊은 세대를 만나게 되었죠. 그분들이 어렸을 때에는 농경사회여서 어른을 공경해야한다는 교육을 받았고, 근대 사회에서 기술을 배워서 자식을 서포트해 키워왔더니, 얘들이 자기네들 잘났다며 분리돼 나간 거죠.
뭐든 희생해서 왔는데 자기와 배웠던 것과 지금 사회가 괴리감이 큰 거죠, 그러다 전철의 노약자석에서도 대우을 못 받게 되면 불쑥 불특정 다수의 젊은이들에게 분노를 폭발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아, 그랬겠구나’ 했어요. 제가 이해하지 못했던 부분들이 있었던 거죠. 그래서 예전의 제 모습을 탈피하기 위해서는 제가 너그러워져야 한다 생각했어요. 각 세대가 서로의 갭을 이해해야 문제가 풀리리라 생각해요. 그것밖에 답이 없는 것 같아요.
구 저는 그런 세대간의 갭을 다른 데가 아니라 바로 부모님과 싸울 때 느껴요. 누가 봐도 제3자가 봐도 제가 옳은데 엄마의 논리는 항상 그거예요. 말대꾸 하지 말라고. 그걸 수도 없이 반복하던 어느 순간, “사람은 사람마다 자기 우주가 있다”는 걸 깨달았아요. ‘우리 엄마도 엄마 나름의 우주가 있고, 엄마를 둘러싸고 60년간 돌던 행성이 있는 거다’. 물론 저도 제 우주가 있는데, 서로의 행성끼리 부딪친 거죠.
장 우리 엄마는 52년생이니까 기본 도덕이 가장 우선시 되었던 사회에서 자랐어요. 반면 저희는 합리적인 것을 요구하는 사회에서 자랐죠. 그 지점이 충돌하는 거 같아요. 저희가 “당신들이 살아왔던 시대를 모르지는 않습니다”라는 걸 전하면 ‘말대꾸 그만해’라는 반응은 안 하시지 않을까요?
예전에 제가 20대 때에는 정말 억울하고 분하고 그랬어요. 지고 싶지 않고 다 이겨버리고 싶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쓸모없는 데에 에너지를 소모한 것 같아요. 지금 서른 둘인데, ‘내가 한 발짝만 물러났으면 서로 더 잘 이해했을텐데’라는 생각을 자주 하는 것처럼요.
멘솔 훌륭한 어른들이 있는 건 분명해요. 배울 건 배워야 하고, 서로 이해하려 애써야겠지만, 쉽진 않은 일이죠.
4. 타인에 대한 호기심
모험 세대와 세대가 통하지 않는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같은 세대끼리도 잘 통하는 것 같지는 않아요. 세대와 세대의 구분이 분명하고 눈에 잘 띄니까 세대간 갈등만 부각되는 것 같아요. 같은 세대들끼리는 소통이 잘 되나요?
멘솔, 두부 총체적인 커뮤니케이션 불능의 시대예요.
모험 소통을 하기 위해서 사랑과 이해가 필요하죠. 하지만 저부터 좀 지쳐있고, 가끔은 종교의 힘이 없이는 불가능할 것 같이 보이기도 하죠. 저는 밖에서 노는 것보다 집에 혼자 있는 걸 은근히 좋아해요. 며칠 동안 밖에 안 나가고 방에서 혼자 살 수 있어요.
구 안 그럴 것 같은데.
모험 그래 보이죠? 어쩌다보니 다른 사람과 어울리며 생활하고, 그 과정에서 익힌 관계맺기는 사회적으로 학습된 것이죠.
구 제가 요즘 하는 프로젝트가 니트(NEET) 청년들 밖으로 한 발짝 나오게 하는 거예요. 이건 또 다른 세계예요.
장 제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사람에 대한 실망 때문에 나오지 않다가 결국 사람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다시 나오게 되는 게 아닐지요.
모험 엮이기 싫어서 안 나가는 거죠. 밖에 나가는 이유는 엮이고 싶어서라기보다는 호기심 때문에 나오는 것 같기도 하고요. 저한테는 ‘타인에 대한 호기심’이 결정적이었던 것 같아요.
장 결국 그게 나를 위한 게 아닐까 해요. 저 사람이 궁금한 이유는 날 인정받고 싶은 욕구 때문이잖아요. 호기심이 생긴 이유는 이 사람이 날 이해해주지 않을까 해서죠.
오늘 이런 자리에 모인 이유도 서로 이해해주지 않을까, 그걸 확인하는 자리가 아닐까 해요. 같은 생각으로 공감이 됐을 때 여기 퍼슨웹에 다시 나오는 거겠고요. 히키코모리 같은 경우에는 가족한테조차 인정받지 못했고, 인정받을 만한 사람을 찾지 못한 상처 때문에 못 나오는 게 아닐까 싶어요.
제 경우, 모든 타인을 다 사랑할 수는 없지만, 이해는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5. 퍼슨웹에 왜 왔니?
장 실은 저는 사람한테 상처를 많이 받았어요. 박물관에서 일할 때 인정받지도 못 하고, 그것 때문에 상처를 많이 받았어요. 한 4년정도? 그리고 나서 사람에 대해 질린 거예요. 사람을 믿을 수 없고, 내 진심을 담아도 저 사람은 그걸 하찮게 여기겠지 하면서 진심을 담지 않게 되고요. 그러다가 우연히 퍼슨웹을 알게 되었고 오늘에 이른 거죠.
구 퍼슨웹에 온 이유는 글쓰기에 대한 욕망도 있긴 한데, ‘나같은 사람 여기 또 있구나’라는 걸 느끼려고 오는 것 같기도 해요.
장 : 솔직히 주변에 나같은 사람 많지 않은데, 어쩌다가 만난 사람이 나랑 비슷할 때 꼭 잡고 싶은 거예요. 생전 처음 본 사람도 비슷한 점을 발견하면 ‘내가 섬이 아니었구나’라고 생각하게 되죠.
멘솔 그런 생각을 안 가진 사람도 있어요. ‘나는 이런 사람이야’라는 자기규정이 있어야 커밍아웃을 하고 비슷한 사람을 찾게 되잖아요. 커밍아웃하고 찾고 연대하는 단계를 밟으려면 욕망이 있어야 하고 욕망을 실현해 나갈 때만이 위로를 받을 수 있어요. 물론 그 욕망 때문에 오히려 좌절을 경험할 수도 있죠.
‘난 다르지 않네, 나랑 비슷한 사람도 있네’라고 느끼는 것 자체가 건강하다고 생각해요. 그게 없고 자기 안에 함몰됐을 때에는 퇴폐로 가는 거죠. 물론 내 안에도 퇴폐가 있어요.
그런데 퍼슨웹이라는 곳은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 ‘나는 이런데 그 사람은 어떤지 알고 싶다’, ‘같이 뭔가 해보고 싶다’는 사람을 만나게 해줄 것 같은 기대를 갖게 하죠. 지난번 1차 방담 때 ‘대뜸’이나 다른 사람들이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싶다”고 한 게 참 신선했거든요. 물론 쉬운 일은 아니죠. 퍼슨웹이 완벽한 대안이 될지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모험 멘솔도 예전엔 사람 만나는 거 좋아했다고 이야기했잖아요?
멘솔 지금은 새로운 사람을 만나보고 싶다는 욕구는 좀 없어졌어요. 사람을 만나고 싶었던 때에는 어느 중요한 시점에 중요한 사람을 만났던 경험이 있어서 그랬었던 것 같아요. 중요한 사람은 훌륭한 사람이라기보다는 연인일 수도 있고 선생님일 수도 있어요.
다양한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찾아 다녀야 하는데 그런 장을 퍼슨웹에서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사람들을 만나면서 자극받고 소통하면서 무너지기도 하는 경험들, 1차 방담 때 이런 경험을 퍼슨웹에서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인터뷰를 하든 전시를 하든 퍼슨웹이 재밌는 놀이터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다양한 사람들 만나서 자극 받고 즐겁게 노는 곳.
다만 지금은 40대가 된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퍼슨웹을 앞으로 20대가 스스로 운영하며 책임질 수 있을지를 좀 고민하고 있어요.
구 <지속가능한 딴따라질> 읽어봤어요? 붕가붕가 레코드의 탄생기부터 나온 책이에요. ‘뜨겁지 않다면 미지근하게라도’ ‘재미가 없으면 의미도 없다, 성공보다는 성장을’이라는 문구를 캐치 프라이즈로 내걸었어요.
붕가붕가 레코드 사람들이 하는 일이 언제나 재밌지는 않지만, 처음에 지지부진하다가 갑자기 장기하가 대박이 났을 뿐이고 그 이후에도 항상 잘 되는 것만은 아니예요. 근데 그 사람들의 태도는 산업 시대와는 다르죠. 장기하를 광고계를 휘어잡을 만큼 몸집을 키워 돈을 벌 수도 있었는데 그냥 미적지근하게 가는 거예요. 슬쩍슬쩍 불꽃같은 재미를 위해서. 그래서 그 책 재밌었어요.
제가 최근에 붕가붕가 레코드의 인턴이 됐는데, 회사에서 “모든 하고 싶은 것을 해라”라는 거예요. 저는 인턴하면서 강제적으로 마감을 지켜가며 글을 쓰고 싶어 왔는데, 그게 아닌 거예요. 그래서 그 책을 읽었죠.
책을 읽고 난 후, 다시 붕가붕가 레코드 측과 이야기를 했어요. 제가 두 달 안에 몇 명을 인터뷰하고 글을 써서 내 능력치의 400%를 발휘해서 상근직으로 채용되도록 하겠다는 것보다 여기서 천천히 하고 싶은 것 찾겠다고. 근데 그걸 이해하더라고요. 그런 책을 써서 그런지.
모험 퍼슨웹에도 그런 이유로 왔나요? ‘구가 퍼슨웹에 왜 왔지?’ 늘 궁금했어요. 제가 구에게 알려줬던 퍼슨웹의 정보는 한정적이었는데.
구 퍼슨웹은 모험에 대한 개런티 때문에 온 거죠. 모험이랑 짧게 젊은 친구들과 다음 세대를 위한 잡지에 대해 이야기 했고, 저도 그런 거에 관심이 많으니까 같이 만들어 보면 좋겠다 했어요.
대뜸 그럼, 전 난나(현재 편집장)의 개런티 때문에 온거예요. 이게 바로 웹 아니에요? 얽히고 섥히면서 관계가 만들어지는 게 퍼슨웹.
전 그동안 학교만 열심히 다녔어요. 학점 관리하면서. 1학년때 봉사 동아리를 했는데 어느 날 동아리방에서 선배들이 고스톱을 하고 있는 거예요. 동아리 활동이라고 하면 회의하고 화이트보드에다 뭐 쓰고 그래야 하잖아요? 대학생활이라는 게 시트콤 보면 재밌어 보이는데 여기는 이상한 냄새 나는 동아리방에서 선배들이 고스톱치고 있으니까 그 이후에 안 나갔어요. 그리고 얼마 전에 해외봉사를 다녀왔어요. ‘역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서 에너지를 얻는 게 좋은 거구나’라고 깨닫게 되었죠.
모험 건전하다…
대뜸 저도 제가 건전한 줄 알았어요. 근데 예전에 중학교 때 친구들이랑 주고받은 메일 보니까 제가 좀 약간 못됐었더라고요.
장 사람은 변하잖아. 나도 20대 초반의 친구들은 지금의 날 보면 전부 가식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고등학교 때 억눌렸던 게 빵 터지면서 대학 들어가서 술을 엄청 마셨어요. 경쟁적으로. 네발로 기어다니고, 등으로 기어다니고 막. (웃음)
모험 보고싶다!! (웃음)
멘솔 야, 볼 게 따로 있지. (웃음)
장 20대 중후반 들면서 체력도 안 되고 술이 안 받는 몸이라는 걸 알았어요. 그 이후에 술을 끊으니 사람이 좀 온순해졌어요. 만일 제가 20대 초반에 그렇게 폭발하고 반감 잔뜩 갖고 살지 않고 명랑하게 꾸미고 다녔더라면 얼마나 아름다웠을까 싶어요.
멘솔 아니야, 반감 갖고 폭발하기도 하는 게 아름다운거죠.
장 아름답긴, 우습지.(웃음) 그래서 지금 20대 초반 친구들이 폭발적이고 사회에 반감만 갖고 있는 걸 보면 예전의 내 모습과 지금의 내 생각을 이야기해주고 싶은데, 제 주변 친구들은 그런 절더러 가식이라 하죠.(웃음)
전 사춘기가 늦게 왔는데 고등학교 2학년 때 1인칭 관점의 소설을 읽으면서 ‘나의 우주’가 생긴 것 같아요. 소설을 몇 권 읽고나서, ‘저 친구도 ‘나’가 되는데, 그럼 나는 엑스트라겠네?’라는 충격. 이 시간이 지나면 그냥 서로에게 행인 1, 행인 2가 될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멘솔 그건 자의식이 생긴 거잖아요.
구 저는 7살부터 사춘기가 시작되어 본격적인 시기는 6학년부터 고3때까지. 그래서 ‘장’처럼 주변 친구들이 고등학교 또래 친구들이랑 교감하고 이야기 나눈 사연, 놀러간 이야기 들으면 정말 부럽거든요. 전 단 한번도 그런 적이 없었어요.
장 아웃사이더가 즐거울 때도 있잖아요?
멘솔 그건 자의식이 정말 강하기 때문이 아닌가?
장 제가 누군가와 다르다는 걸 자주 발견했죠. 그것 때문에 종종 불행했어요. 특히 20대에 심했는데, 이렇게 서로 다른데 어떻게 같이 살아가지 그런 생각을 많이 했었죠.
대뜸 다들 사춘기를 심각하게 보냈군요. 전 내일부터 시작될 예정이에요. 사춘기. (웃음)
6. 이런 인터뷰를 하고 싶다.
모험 퍼슨웹에서는 누구를 만나고 싶어요? 누구를 인터뷰 하고 싶어요?
두부 한대수 인터뷰를 하고 싶었는데 이미 퍼슨웹에서 인터뷰 했더라고요(****). 예술가들이 창작물을 만들 때 그냥 나오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어떤 사람이길래 이런 음악을 만들었을까, 그런 이야기를 듣고 싶었어요. 한대수가 쓴 <올드보이 한대수>라는 자서전을 우연히 읽었어요. 읽어보니까 여러가지를 많이 고민하고 사는 사람이더라고요. 제가 지금 무엇을 이야기해도 그것에 대해서 솔직하게 이야기해줄 것 같은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죠.
**** <영원한 자유, 영원한 고독 한대수> 퍼슨웹 인터뷰 보기
멘솔 퍼슨웹에서 인상적이었던 인터뷰는 내 친구 인터뷰요.
모험 멘솔은 지금 인터뷰 시작했잖아요. 인터뷰하고 녹취 풀고 글 쓰는 과정 힘든 거 다 알면서도 왜 그 사람을 인터뷰 하고 싶었어요?
멘솔 처음에 퍼슨웹 와서는 사심을 듬뿍 담아 인터뷰 하고 싶었는데, 막상 매체에 올라간다 하니 자기 검열을 하게 되었어요. 할 수 있을까? 이게 얼마나 유효할까? 정말 내가 그 사람들에게 관심있나? 이런 걸 생각하니 오히려 쉽게 못 하겠더라고요. 가까운 사람부터 해야겠다는 생각도 있었고, 전문가처럼 인터뷰할 수 없다면 나에게 의미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이희원 선생님을 인터뷰 한 이유는 다르게 살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자존감을 갖고 세계와 싸우며 다르게 살고 있는 사람들을 인터뷰 하고 싶어요. 그렇게 사는데 다 이유가 있고 그 안에서 사회 문제도 발견할 수 있겠다 생각했어요. 이희원 선생님도 그런 이유에서 선정한 거예요. 내가 느끼고 있는 어떤 것이 그 사람을 통해서 나오지 않을까? 사실 인터뷰도 인터뷰인데, 다른 재밌는 것도 퍼슨웹에서 해보고 싶어요. 근데 제가 지구력이 좀 약하죠.(웃음)
모험 구는 인터뷰하고 싶었던 사람 없어요? 인디밴드 하고 싶다고 했잖아요?
멘솔 이제 붕가붕가 레코드에서 인턴하면 직업적으로 해야하는 거 아닌가?
구 내가 인터뷰 하는 사람들은 내 나이대 사람들, 일을 하든 안하든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이건 사심 인터뷰와 연결할 수 있는데, 어디 가서 굉장히 궁금한데 그냥 물어볼 수 없으니, 인터뷰어란 이름으로 궁금한 걸 물어보는 거지.
대뜸 저는 기획 기사로 세계 곳곳 돌아다니면서 평범한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하고 싶어요.
장 저는 제 이야기는 서슴지 않고 해요. 저를 드러내는 걸 주저하지 않지만 상처는 많이 받는 편이에요. 근데 다른 사람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아요.
모험 사람 자체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 없는데 가끔 보면 내가 빠져있는 어떤 주제가 있고 그 주제를 더 알고 싶어서 인터뷰 하고 싶은 경우도 있잖아요. 그런 적 없어요?
구 관심있는 사람이 아니라 반대로 정말 말도 안되는 성격 가져서 관심조차 갖고 싶지 않은 사람인 경우에도 인터뷰 해보고 싶긴 해요.
장 저는 제가 이상하다는 걸 알기 때문에 웬만한 사람은 다 이해가 돼요. 대뜸이 알고 있는 내 모습은 최근 몇 달의 모습일 뿐이죠. 알수록 이상할 거예요.
대뜸 이상하다는 건 자기가 정한 거잖아요?
장 상처를 통해 체득한 거죠.
멘솔 그렇게 따지면 여기 있는 사람은 다 이상한 사람들 아니야?
모험 전 평범하게 지내는 걸 체득한 것 같아요.
장 평범한 척하는 게 스트레스는 아닌지?
모험 그냥 그 상황에 맞게 연출을 하는 거죠. 그런 게 필요없는 곳이 제겐 퍼슨웹이고, 다른 사람들도 그렇기 때문에 오는 게 아닐까도 싶고요.
사심으로 하는 인터뷰라는 말에 전 완전 공감해요. 퍼슨웹에 모인 사람들, 얼마나 사심을 발산할 수 있는 껀덕지가 없었으면 인터뷰라는 툴로 할까 싶어요.
저도 8년전에 퍼슨웹에 처음 왔을 때 사심이 있어서 왔어요. 그 당시 김제동 씨가 궁금했는데, 그냥 팬레터 써서 밥 먹게 된다면 의미가 있을까? 뭔가 증거물을 만들고 싶었던 것 같아요. 제가 당시 19살이었는데 19살이 공식적으로 김제동 씨를 만날 수 있는 기회는 거의 없잖아요. 퍼슨웹에서 인터뷰하고 싶다 하면 할 수 있었죠. 편집장님과 의논한 후 인터뷰를 했었어요. 물론 기사를 못 썼죠. 내 안에 질문이 있어서라기보다는 이슈가 되고 있으니 공식적인 루트로 한번 만나서 이야기나 나눠보자 그 정도였어요. 근데 만날 수 있었던 경험은 굉장히 재밌었어요. ‘퍼슨웹 이름으로 인터뷰를 하는 게 단순한 ‘만남’만은 아니구나’ 깨닫게 되었죠.
요즘엔 전 일하는 사람들의 일상이 너무 궁금해요. 제가 월급 받고 일을 하기 시작해서 그럴지도 모르겠어요.
알바하는 친구들도 밥은 몇 시에 먹는다든가 하는 노하우가 있을텐데 그들의 삶은 시급이나 월급으로밖에 드러나지 않으니까요. 저는 ‘장’을 처음 만났을 때도 인터뷰 해보고 싶었어요. 박물관 삐까뻔쩍 하잖아요.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일상은 어떤지 궁금했어요. 일하는 사람들의 일상은 뭔가 이슈가 있어서 그게 터지지 않는 이상 모르는 거예요.
잡지 <Generation Times>를 인상적으로 봤어요. 그 잡지는 굳이 이슈가 없어도 일하는 사람들의 일상을 이야기로 잘 통역해서 대중에게 전달하고 있어요. 최근에 퍼슨웹 인터뷰를 다시 읽어보니, 퍼슨웹도 그 역할을 하고 있었던 거예요. 그 당시 제기한 이슈 중 물론 지금도 해결되지 않은 채 그대로 있는 것도 많지만, 그런 이슈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일상을 담은 인터뷰가 꽤 있어요. 예컨대 서울대 경비 청소부 아줌마 아저씨들의 인터뷰가 대표적이죠.*****
***** <서울대학교 경비 청소부 아줌마 아저씨들의 낮은 목소리> 퍼슨웹 인터뷰 보기
방담 기록은 이렇게 마무리되지만, 그 이후에도 우리는 누구를 인터뷰 하고 싶은지, 혹은 얼마 전 자신이 직접 했던 인터뷰가 어땠는지 한 시간은 족히 ‘인터뷰’라는 키워드 하나로 수다를 떨었다.
방담을 마치고 난 지금, ‘지금 왜 20대에게 ‘인터뷰’가 필요한가?’, ‘왜 나는 ‘퍼슨웹 2세대’라는 이름 하에 바로 이곳 퍼슨웹에서 다시 인터뷰를 시작하려 하는가?’ 다시 질문을 던져 본다. 대답은 ‘잘 먹고 잘 살아 보기 위해서’. 그래, 나는 잘 먹고 잘 살아 보기 위해서 인터뷰를 하려 한다.
살아가면서 자연스럽게 갖게 되는 질문, ‘앞으로 무슨 일을 하지?’, ‘뭘 먹고 살지?’, ‘어디서 살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가장 듣고 싶은 사람에게 찾아가 또 다시 질문한다. ‘그 일 재밌어요?’, ‘그거 맛있어요?’, ‘사는 곳은 괜찮고요?’ 내가 생각하는 인터뷰는 바로 이런 모습이다.
예전 촌락 사회에서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주고받으며 여러 세대가 삶의 지혜를 나누었을 이 대화를, 지금 이 시대, 이 사회에서는 ‘인터뷰’라는 방법으로 질문을 던진다. 그런 과정에서 생기는, 사람들 사이의 자연스러운 얽힘과 섥힘이 내가 그리는 ‘퍼슨웹[person-web]’의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