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퍼슨웹 20대 방담
세대 담론이 한창이다. 419세대에 이은 386세대, 그리고 88만원 세대까지.
419 세대와 386세대는 자타가 함께 특정 세대를 지칭했던, 그로 인해 한때 그 세대에 소속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자부심에 벅차오르게 한 이름이었다. 그 이름에 기대어 움직이든, 그 이름의 해체를 주장하든 그 이름이 지난 몇 십 년간 우리 사회를 움직여온 동력 중 하나였음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반면 88만원 세대는 지금 현재 우리 사회 구성원 중 가장 힘든 자리에 선 초상들에게 붙여진 이름이다. 20대 자신이 아닌 다른 세대에 의해 호명된 이 이름은, 20대들에게 자부심은커녕, 그들이 처한 현 세태와 이 사회의 구조를 너무도 냉정하게 직시하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얼마 전 지방선거가 끝난 후, 한 방송사에서는 30대들을 세대 담론 속으로 불러 들였다(<KBS 심야토론> 6월 12일. http://www.kbs.co.kr/1tv/sisa/toron/index.html). 2010년 6월 2일 지방선거 결과를 통해 드러난 30대의 민심을 진단하기 위한 토론이었다. 이제 20대부터 50대까지 우리 사회를 움직이는 전 세대가 ‘세대론’을 내세우며 서로 간 ‘인정 투쟁’에 돌입한 양상이다.
그러나 이러한 인정 투쟁 속에서 20대의 얼굴은 선명하지 않다. 88만원 세대라는 명명에 반발하고 자신들이 처한 상황에 저항하며 누군가는 ‘선언’을 하고, 누군가는 20대의 목소리를 담은 책을 출판하고 있지만, 그들조차 섣불리 스스로를 20대의 대변자로 자임하지 않으며, 20대 전체를 아우르는 이름을 붙이겠다 욕심내지 않는다. 20대는 신중하게 이 사회를 지켜보며 자신의 삶을 살아내고 있는 중이다.
퍼슨웹은 20대 몇몇을 초대하여 그들을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다. 물론 우리는 그들이 20대 전체를 대변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다만 ‘인터뷰’를 매개로 퍼슨웹에 모여든 지금 현재의 20대일 뿐이다. 개인 미디어, 파워 블로거가 힘을 얻어 가는 지금 이곳에서 그들은 도대체 무슨 이유로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다른 사람과 말을 뒤섞어야 하는, 어렵고도 번거로운 공력을 필요로 하는 인터뷰(inter-view)에 관심을 갖고 있을까?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본다. 퍼슨웹 20대의 이야기는 2회에 걸쳐 게재될 것이다.
<편집자 주>
[방담 참가자]
모험
19살 때, 인터뷰를 해보겠다며 퍼슨웹을 드나들기 시작. 대학 졸업 즈음 <88만원 세대> 책의 영향을 받아 청년 문제를 직접 해결해보겠다며 20대 몇몇과 함께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현재 퍼슨웹 2세대를 찾아다니고 있다.
멘솔
2008년 겨울, 새로운 놀이터를 찾다가 퍼슨웹을 만났다.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하고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했다. 현재는 백수. 실업 급여로 연명하며 생계 연장을 위한 일자리를 찾고 있다.
구
시골학교에서 무엇이든 잘 하는 씩씩한 어린이로 자랐다. 대학 졸업과 동시에 한국을 떠나 1년 반 여행을 했다. 이후 광고회사의 카피라이터, 웹진 기자, 단추 디자인 작업자 등의 직업을 전전하다 다시 디자인 학교를 입학했으나 그만두었다. 현재 음악커뮤니티 회사에서 기획을 담당하고 있다.
대뜸
대학 4학년 1학기인데 취업 걱정은 별로 하지 않는다.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한다. 사람과의 만남을 흔적으로 남겨볼까 하고 퍼슨웹에서 친구들 인터뷰를 진행중이다.
현석
09년 공과대학에 입학하였다. 현재 전공을 작파하고 디자인을 공부하러 유학을 갈까 고민중이다.
바보
사회복지학을 전공하고 싶었으나 성적에서 밀려 언론정보학을 전공했다. 덕분에 웹진을 운영하며 여러 곳을 취재하고 글쓰기를 할 수 있었다. 20대 졸업 후 일본으로 자전거 무전여행을 떠났다. 돌아와서 여행작가의 꿈을 기르다 퍼슨웹을 만났다.
20대 이야기
[1] 스펙 쌓고 일 찾기
모험 저만 퍼슨웹에 오래 있었고 다른 분들은 대부분 퍼슨웹이 처음이시죠. 왜 인터뷰를 하러 이곳에 왔는지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요. 먼저 퍼슨웹 오기 전까지 어떻게들 살아 왔는지, 어떤 고민을 지니고 있었는지에서 이야기를 시작할까요?
저는 스펙을 쌓거나 영어시험을 공부하거나 취직 걱정한 적 없어요. 퍼슨웹에서 만난 사람들 먹고 살고는 있잖아요.
멘솔 다들 스펙 있잖아!
모험 저는 소위 말하는 스펙, 없어요. 운전면허와 토익 시험도 안 볼 생각인데…
구 난, 그래도 인생은 모르는 거다 싶어 1종 면허는 따놨는데. 유치원 승합차까지는 가능한… 따놓기만 했어요.
모험 요즘 미디어를 통해서 들려오는 젊은 세대 이야기는 취직도 안 되고 점점 가난해진다는 거잖아요. 근데 생각해보면 전 취직 걱정 별로 안 했어요. 돈 없어도 퍼슨웹에 가면 뭔가 먹을 수는 있었어요. 스물 다섯살까지는 그렇게 살았던 것 같아요. 근데 스물 다섯에 일을 하는 과정에서 청년을 만나보니, 다들 뭘 하며 살아야 할지 고민하고 있더라고요. 청년 문제란 게 사회 구조적인 문제 때문이기도 했는데, ‘다 내가 못나서 그런가’ 이런 친구들도 많았고.
그 친구들의 특징 중 하나가 다른 사람과의 교류가 적은 거 같아요. 하물며 대학 친구들도 별로 없어요. 친척 외의 교류조차도 없죠. 요즘 이런저런 강연이 많이 열려서 20대가 열심히 참석하기도 하는데, 그런 곳에서는 강연자들밖에 만날 수가 없는 거죠.
저는 퍼슨웹 여기 와서 일상의 고민을 나눌 수 있었어요. 다양한 사람이 많았잖아요. 예술가, 소설가, 딴따라, 연구자도 있었고요. 붕가붕가 레코드 고건혁 씨도 전 퍼슨웹에서 처음 만났던 것 같아요. 퍼슨웹에서 그런 사람들을 너무 일상적으로 자연스럽게 만나며 교류했었죠. 근데 이게 앞으로의 시대에는 정말 필요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이런 생각을 할 즈음, 10년 전 퍼슨웹을 창간하고, 한창 활동 하신 분들은 퍼슨웹 이제 슬슬 마무리하자고 하던 찰나였어요. 그런 움직임으로 인해 제 생각이 더 확고해졌는지도 모르겠어요. 이런 인터뷰를 통한 교류가 앞으로의 시대에 더 필요해질 거다. 인터뷰하는 정신이 더 필요한 시대가 올 거다 싶었던 거죠.
대뜸 공감해요. 어떤 생각거리나 문제는 모두 사람에서 시작되는 거니까요. 제가 지금 ‘내 친구 이야기’ 인터뷰를 쓰고 있는데 ‘친구’라는 의미가 많이 퇴색되고 있어서 그런지 친구의 이야기로 글을 쓴다는 것이 힘들어요.
제 친구가 고등학교 때 8명의 친한 친구가 있었는데, 대학 가면서 사이가 안 좋아졌대요. 그 중 한 명이 올해 결혼을 하면서 어느 날 새벽에 뜬금없이 전화해서는 용서를 구하더래요. “내가 그때 잘못했다”고. 근데 그 친구한테는 너무 황당하게 들린 거죠. 그래서 다른 친구한테 그 일을 말하니, 그 친구가 자기 회사에도 그런 경험을 한 사람이 있다고 하더래요. 그 이야기 듣고 이제 ‘더이상 친구 관계가 아니라 서로에게 뭔가를 바라는 존재가 됐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이번에 처음 쓴 인터뷰 글의 제목이 ‘내 친구 다리나’인데, ‘다리나’라는 사람 자체보다 ‘친구’에 대해 더 많이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글이 늦어지고 지금 편집장님의 끊임없는 눈초리를 받고 있죠. (웃음) 평소에 생각 안 해봤던 주제였는데 인터뷰가 계기가 되어 생각을 하게 된 거죠. 다른 주제로 다른 사람을 인터뷰 한다면, 그 주제를 새롭게 생각하는 계기가 될 거 같아요.
구 내 친구들은 나를 보면 안심을 하는 거 같아요. 날 만나는 걸 좋아하는 거죠. 한 친구가 회사에서 스트레스 받아 말이 잘 안 나온다는 증상을 이야기하면서 “나 오늘 6시에 정신과 갈거야”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그랬지. “갈 거면 나한테 들렀다 가라.” 그날 카페에서 만나 2시간 이야기했는데 결국 그 친구는 정신과 안 가고 나랑 맥주 마시고 헤어졌죠.
왜 사람들이 나를 보면 안심을 할까 생각을 해봤는데, ‘저렇게 살아도 살아 있구나’ 하면서 안심을 하는 것 같아요. 마치 달리기를 하는데, ‘내가 너무 늦은 거 아닐까? 내 앞에는 3명 가고 있는데, 꼴등하는 게 아닐까’ 하고 뒤를 봤는데 뒤에서 쭈쭈바 물고 걸어오는 애, 내가 보이는 거지. 그러면서 안심을 하는 거죠.
현석 그런 거 진짜 싫은데. 마치 우리나라 사람이 동남아 사람들 보고 안심하는 것 같잖아요.
구 그래서 내가 동남아시아 가면 모국애를 느끼나? (웃음) 정말 내 나라에 온 것 같아. 느긋함과 게으름, 따뜻한 날씨.
근데 난 다른 사람들이 절 그렇게 보는 게 기분 나쁘지는 않아요. 스물 네 살 때 대학 졸업식도 안 하고 바로 외국으로 나가버렸거든요. 1년 반 만에 들어왔는데 이곳의 공기 무게가 너무 무거운 거예요.가만히 있어도 공기가 막 누르는 거예요. ‘너 이제야말로 뭔가 해야할 때다, 밥벌이 해야 한다’ 그런 게 강했어요. 부모님도 ‘이제는 우리가 할 만큼 해줬다. 인풋이 있으니 아웃풋이 나올 시기다’ 말씀하시고. 그래서 쫓기듯 취직을 했는데 끈기는 없었어요. 남들은 200개씩 쓴다는 이력서를 저는 고작 5개 썼나? 그 중 세 군데 면접을 다녀와서 그런 짓을 하고 싶지 않아서 금방 포기했어요.
모험 첫 직장은 어디였는데요?
구 아니, 아예 안 갔어요. 안 가고 그냥 내가 목구멍 풀칠해야 하니깐 과외하고 웹진 기사 쓰고 또 하고 싶은 게 생겨서 다른 학교에 다시 다른 전공 1학년으로 입학을 했다가 그만두고 다시 회사에 입사를 했죠
나는 아직도 하고 싶은 것, 배우고 싶은 게 많다고 하면서 갔는데, 도망간 것 같아요. 학생이라는 신분이 나한테 편하고 좋으니깐. 지금 그시절을 돌아보면 지금의 나 같은 사람을 어디선가 만났다면 좀 달라질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을 해요. 꼭 그 시기에 남들이 뛴다고 자기도 압박감 때문에 뛰면서 자기가 가고 싶은 노선을 포기하는 게 아니라 좀 더 생각하면서 선택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래서 저는 우리 나이대의 다양한 사람들을 보는 것도 좋고, 다른 세대의 삶의 형태를 보는 게 필요하다 싶어요. 그러면서 ‘아 저렇게 살 수도 있구나, 낭떠러지에 매달려 있는 것처럼 초초해하지 않아도 되겠구나’ 하는 게 뭔가 선택하는 데 집중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 같아요. 그걸 모험은 10대 후반, 20대 초반에 퍼슨웹에서 한 거겠죠.
구 나는 스물 다섯 살 때 이런저런 생각하면서 ‘아 너무 늦어버렸어’라고 했었죠. 스물 일곱살 때에도 그랬죠. 근데 아닌 거죠. 너무 당연하게도 늦은 나이가 아닌데…
대뜸 나 지금 딱 스물 다섯인데.
저는 늦었다고 생각하지 않고, 남들이 늦었다고 하면 ‘왜 늦지?’ 라고 생각해요. 다들 4학년 1학기 때 인턴 알아보고 진짜 초조해 하고 교수님과 매일 상담해요. 전 과제 때문에 교수님과 상담해본 적은 있어도 미래의 진로 때문에 상담해본 적은 없어요. 저는 남들이 다 갖고 있는 자격증이나 스펙도 없어요. 목표가 있어 대학원에 가겠다는 것도 아니고 인턴 경험도 없고.
모험 그러니깐 지금 퍼슨웹에 있는 거 아닐까? (웃음)
대뜸 그런 거 같아요.
멘솔 저도 뭐 누굴 만난 것까진 아니고 스펙이랑 상관없이 살다가 운 좋게 취직을 했어요.
현석 어떻게 취직을 했어요?
멘솔 사실 운이라고 하지만 은근히 내가 그 전까지 했던 게 다 스펙이었던 거죠. 일본에 갔다 온 거라든지 상을 받은 것 등등.
현석 스펙을 정의해야할 것 같아요.
멘솔 국문과에 들어간 그 순간 뭐…
모험 엇, 구도 국문과, 대뜸도 국문과인데.
구 국문과면 뭐 해. 따놓은 거라곤 운전면허 1종 밖에 없는데.
멘솔 영어도 안 하고 아무 것도 안 했었는데, 오히려 회사 들어가니까 그 압박을 더 느끼는 거죠. 그 바닥에서 살아남으려면 또 다른 스펙을 요구하는 거예요. 그걸 요구하지 않는 곳은 굉장히 저임금을 줘요. 내가 먹고 살 수 있을 만큼 월급을 주는 곳은 스펙을 요구하더라고요.
[2] 386세대와 20대
모험 다니던 회사는 왜 그만뒀어요?
멘솔 여러가지 이유가 있는데, 386세대 문제랑 엮여 있어서 그거 다 이야기하면…….
모험 나도 비슷한 한계 같은 걸 다른 사회운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느꼈던 것 같아요. 그런 활동은 대부분 ‘안티’적인 성격이 강해서, 눈 앞에 분명한 적이 있고 그 적에 대항하는 에너지가 있지만, 그것 외에는 뭐가 있을지 잘 안 보였고… 그런 한계를 느낄 때마다 힘들었지요.
멘솔 그 사람들이 도덕적인 사람들은 아닌 거잖아요. 운동을 하는 감각으로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모험 예를 들면?
멘솔 일과 운동 사이에서 자기 정체성이 성립이 안 되어서 분열을 일으키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러니까 자기는 도덕적이고, 내가 하는 일은 의로운 일이라고 하지만 사실 그 안에는 굉장히 폭력적이고 권위적인 게 있죠. 일반 회사에서 일하는 친구들은 상사가 시키면 노래방 가서 벽 잡고 춤도 춘다는데, 이런 연공서열에 의한 폭력이나 권위주의는 자본주의 시스템에 철저히 물들어 있는 회사면 당연하게 통용되죠.
그런데 소위 말하는 운동권 출신 출판사, 혹은 운동하는 감각으로 책을 만드는 출판사에서는 이 시대를 고민하며 관련 책을 만들면서도 1년에 몇 번씩 엠티 가고, 회식 자리에서 술 안 마시고 빼거나 집에 빨리 가는 거 싫어하고, 휴가 쓸 때마다 눈치 주고 짬밥 얘기하고, 저임금으로 희생을 요구하는 부분이 있어요. “우리들이 이만큼 했으니 너희들도 이만큼 해야 해” 그런 식으로. 그러다 스스로를 속이는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까지 보면서 ‘차라리 돈이나 많이 받든지, 왜 내가 이런 게 좋아서 여기 왔지?’ 그런 생각을 했죠.
모험 거기서 몇 년 일했죠?
멘솔 2년 반. 그래서 좀 다른 구조나 다른 시스템에 들어가고 싶은 생각 때문에도 그만 뒀던 것 같아요. 맨날 엠티 간다니깐 솔직히 그런 거 싫죠?
모험 엠티는 좋은데, 엠티 가서 뭘 하는지가 중요하죠.
멘솔 술로 시작해서 술로 끝나는 분위기. 내가 술을 싫어하는 것도 아니야. 하지만 젊은 사람들이 개인주의적인 것도 있잖아요. 1년에 몇 번 엠티 가면 주말에 못 쉬어요. 가서도 생산적인 걸 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술 마시고 바다에서 소리치고 공동체 이야기하고.
모험 거기서 말하는 공동체는 무엇?
멘솔 나는 조직이라고 생각하고 들어갔어요. 월급받는 조직. 그런데 알고보니 공동체를 꿈꾸는 조직이었던 거죠. 사장님하고 술 마시며 이야기를 하다 “너는 이 회사를 공동체라고 생각하니 조직이라고 생각하니?” 이러는데 그 순간 너무 무서운 거야. 그럼 처음부터 공동체라고 이야기하든지. “난 조직이라고 생각한다”고 그랬더니 분위기 막 안 좋아지고……. 그래도 좋은 분들이죠.
현석 공과 사는 구분해야 하지 않나요?
멘솔 다른 데는 어떤지 모르겠는데, 돈 벌고 이윤을 추구해야 하는 게 회사인데, 그럼 아예 처음부터 공동체라고 하든지. 이상하게 희생 요구하면서 그 안에서 가부장적이고…
현석 가족 같이?
멘솔 그놈의 가족, 제발 가족이라는 얘기 좀 안 했으면 좋겠어.
모험 현석은 386세대 알아요?
현석 독재 정권 때 민주화 운동했고 지금은 40~50대가 된 사람들? 얼굴 맞대고 이야기해 본 적은 없어요.
모험 주관식 문제 답변 같다. ‘386이란?’
대뜸 저도 현석과 세대 차이는 잘 안 나는데, 현석과 감각은 비슷해요. 386에 대해.
구 예전 세대와 지금의 20대는 가진 몸이 다른 것 같아요. 산업기 시대에 사람들은 어떤 공동체, 조직의 대의를 위해 개인을 기쁘게 당연하게 희생해야 하는 게 있었죠. 그런데 제가 아는 우리 세대 사람들은 타도해야 할 구체적인 대상도 없었고, 먹고 살지 못해서 굶어본 적도 없어요. 다르게 태어났고 다르게 살았는데 그들 세대와 같은 몸을 가지라고 강요하죠. 제가 매일 부딪치는 문제예요.
누가 폭력적으로 대하지는 않는데, 암암리에 “네가 정말 이걸 하고 싶다면 너의 모든 걸 바쳐야하지 않겠니?” 그게 선의라는 암묵적인 동의가 있거든요. 근데 저는 내가 즐거워서 나한테서 시작되는 우주가 있는데, 언제 올지도 모를 뭔가를 위해서 지금의 나를 희생하는 건 진심으로 할 수는 없는 거예요. 그거에 부딪치고 있는 중이에요.
멘솔 선배들이 말하는 ‘선’이 후배들에게 죄책감을 갖게 하는 게 있잖아요. 그들이 제시하는 문제가 내 삶의 문제와 연결되어 있으니 뭔가 해결은 해야 할 것 같고, 해야지 바뀐다는 것은 알고 있어요. 그래서 진보신당 같은 데 가서 당원 활동을 하면, 그분들의 희생이 굉장한 부담감으로 다가오면서 이상한 죄책감에 시달리는 게 있어요. 당장 내일모레 페퍼톤스 공연이 있어 공연을 가고 싶은데 당 모임에도 뭔가 있어 가야해. 그럼 고민하는 거죠. 우리 세대가 죄책감에서 벗어나는 것도 중요한 문제 같아요.
[3] 전교조와 20대
구 나보다 10살 많은 언니가 있는데, 그 세대가 가지고 있는 감성을 교묘하게 안 가지고 있는 언니인데 지금은 전교조 활동을 해요. 정말 순수하게 현재 교육에서 안 좋은 게 있으니 바꾸기 위해 단체가 필요하고, 그래서 전교조에 들어갔어요. 근데 막상 들어갔는데 학생과 아이들을 위해 활동을 한다고 하는데, 실체는 활동하다 보면 그게 안 맞는 경우도 있어요. 학생들을 위해 집회를 하는데, 집회하는 동안 자기의 아이는 돌보지 못한다거나 하는…
모험 다른 분들, 전교조는 뭔지 아세요?
현석 네… 전국교사연합회?
모험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의 약자.
현석 고등학교 다닐 때 선생님이 전교조.
대뜸 저는 사립 고등학교 다녔는데 전교조 선생님이 계셨어요. 학교에서 교감이 학생을 성추행한 사건이 있었는데, 이 사건으로 학생들이 전교조 선생님과 아닌 선생님을 분명하게 알게 되었어요. 평소에는 입시만으로 바쁘니깐 전교조는 신경을 안 쓰잖아요. 선생님의 수업 스타일을 보면 이 선생님은 다른 선생님과 다르게 덜 경직되어 있다든지. 예를 들면 시를 가르쳐도 시 풀이부터 가르치는 게 아니라 밖에 비가 오면 같이 창밖을 보면서 가르치셨거든요.
고3때 선생님은 전교조라는 걸 내세운 적은 없어요. 고3때 감정 메마르면 안 된다고 시도 읽어주시고 정말 아이들을 사랑하셨어요.
모험 전교조 선생님의 영향을 받은 공통의 경험이 있는 것도 같네요. 제가 초등학교 때를 되돌아보면 멋진 통기타 가지고 다닌, 젊은 선생님들이 계셨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전교조였죠. 근데 그분들이 전교조라는 말은 한번도 못 들었고, 또 몰랐어요. 나중에 대학 가서 알았지.
대뜸 저도 똑같았어요.
바보 우리도 사립고등학교였는데 전교조 선생님이 있었어요. 그분들도 자기를 드러내는 스타일은 아니었고 딱 보면 좋은 선생님이다. 그런 정도? 윤리 선생님이 한분 있는데 생활한복 입고 다니시고…
현석 저희도 있었어요. 저희 학교가 90년대 후반에 비리가 있었는데, 학생들이랑 삭발도 하고 법원 가서 시위도 한 이야기를 들었어요. 전교조라고 특별히 다르지는 않았어요. 근데 학교 안에서 선생님들끼리 보이지 않는 선은 있죠. 그건 보였죠.
멘솔 난 전교조의 영향은 별로 없었던 것 같아. 선교사가 되겠다며 종교에 심취해 있어서… (웃음)
현석 근데 전교조나 그런 건 학교 다니면서 알아채거나 하는 게 아닌 거 같아요. 오히려 뉴스에서 더 많이 접하고, 뭐 그렇게 알고 있어도 별로 신경도 안 쓰고…
대뜸 맞아요. 그냥 학생들이랑 좀 더 친하게 지내는 선생님들? 그 정도의 이미지?
‘지금’ ‘누구’와 인터뷰[inter-view]할까? [2] 바로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