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히 동성애자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어떤 점이 슬프고 어떤 점이 기쁜지 물을 생각은 우리에게 없다. 같은 무게의 질문이 우리에게 더해졌을 때 우리가 대답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서로 만나서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고, 함께 살아가는 짧은 시간동안 우리가 배운 것은 그런 것들이 그리 쉽게 설명되지 않으리라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궁금증은 있었다. ‘예쁜’ 가족이란 어떤 것일까. 그들은 한국 남성 동성애자 인권단체인 친구사이에서 주최한 2007년 ‘동성애자가 뽑은 예쁜 가족 대회’의 수상자였다. 그들이 말하는 ‘예쁜’이라는 단어가 단순히 이성애 중심의 가부장제 가족만이 ‘예쁜’ 것은 아니라고 말하는 정치적인 수식어로 기능하는 것인지, 그렇지 않다면 뭔가 다른 뜻이 존재하는지 조금 궁금했었던 것이다.
답은 아주 단순했다. 그들은 정말 문자 그대로, 꽤나 ‘예쁜’ 커플이었다. 일단 그들은 미남이었고, 친절했고, 똑똑한 커플이었다. 그렇게 유려하고 즐겁게 대화를 이끌어 나가는 사람들을 만나본 적은 별로 없다. 시종일관 웃음을 잃지 않는 형배 씨는 달변이었다. 패션 회사에 다니는 그는 대화가 삐져나오거나 어긋나는 부분을 매만져서 부드럽게 만드는 재주와 균형 감각이 있었다. 한국의 대학에서 일본어를 강의하고 있는 마코토 씨는 굉장히 이지적인 사람이었다. 모국어가 아닌 말로 이야기하는 사람 특유의 어눌함이 그에게는 없었다.
게다가 그들의 관계는 이성애자들은 가질 수 없는 질감의 ‘예쁜’ 무언가가 있었다. 이제부터 시작하려는 인터뷰는 그 예쁜 무언가에 관한 기록이다.
이야기는 아주 자연스러운 잡담으로 시작되었다. 메이크 업과 피부 관리 이야기, 사진 이야기, 서로의 이름에 들어가는 한문 이야기. 일본인인 마코토를 제외한 한국인 세 사람은 모두 예전에 일본어를 배워 보려 시도했다가 히라가나를 채 외우지도 못하고 포기한 기억이 있었으며, 소중히 아껴 마시다가 내놓은, 우리가 결혼선물로 받았던 발효차는 네 사람 모두의 입맛에 맞았던 것 같았다. 얼굴은 나와 마코토 씨가, 아내와 형배 씨가 각각 서로 닮았고, 나를 제외한 세 명이 모두 굉장한 동안이라는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는 낄낄대고 웃었다.
마코토: 9년정도 사귀고 있는데 아직 아이우에오도 못 써요.
형배: 하하하, 너무 창피하지만.
정혜: 와, 그렇게 오래 사귀셨어요? 9년이나? 두 분은 어떻게 만나셨어요?
마코토: 98년에 만났지?
형배: 처음 만난 건 98년이죠. 친구사이에서 만났고요. 저는 유학중일 때 저의 정체성에 대해서 알게 됐어요. 어렴풋이 느끼고는 있었으나, 그 전에는 사제가 되리라, 그러니까 신부나 뭐 그런 게 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아마 제 정체성을 알고 두려웠나 봐요. 무의식적으로 결혼을 한다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어요. 성적인 접촉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고, 그걸 기독교적으로 해석했었나 봐요. 제가 네 살때부터 고모님 등에 업혀서 교회를 다녔거든요. 그런 게 있다 보니까, 내면적으로는 약간 그런(성적인) 거에 대해서 좀 벗어나자는 생각이 있었어요. 그래서 아 신부가 되면 되겠다 생각을 했고, 왜냐면 굉장히 성스럽고, 그 당시 이미지가 그렇잖아요.(웃음) 본성을 억압하려고 했었던 거죠. 한편으로는 영적인 것도 있고요.
게다가 우리 나라에는 섹슈얼리티랑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는 책들이 많지 않잖아요. 근데 프랑스에 가니까 호모섹슈얼리티에 대한 책이 많이 있었어요. 거기서 그 단어를 개념적으로 처음 알게 됐고, 아, 나를 두고 하는 말이 이런 거였구나 하고 생각하게 됐어요. 그때 제가 보르도에 있었는데, 거기 동성애에 관한 영화를 상영하는 영화관이 있었어요. 거기서 만난 친구들이랑 영화를 보러 다니면서 자신에 대해서 좀더 깨닫게 됐어요. 제가 93년도에 가서 94년도에 돌아왔어요. 그때가 한국에서 처음으로 퀴어 영화제가 열리는 때였는데, 씨네21같은 데 기사도 나고 그랬어요. 부담은 됐지만, 그래도 마음속에 내가 꼭 참여해야 할 것 같다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당시에 펀드레이징을 했었거든요. 그래서 씨네21에 전화를 걸어서 기자한테 이거 참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었어요. 그랬더니 대뜸 묻지도 않았는데 친구사이 전화번호를 알려주더라고요. 이 사람은 게이일 거다 하고 생각했는지는 모르겠지만.(웃음) 그러면서 친구사이에 나가게 된 거죠. 그때 저를 처음 맞아 준 형이랑 이 친구가 아는 사이였어요. 그래서 우연하게 만나게 됐고, 처음에는 친구처럼 지냈었어요. 그러다 일 년이 지나고 98년부터 사귀기 시작했나요?
마코토: 99년.
형배: 네. 99년부터.
정혜: 디게 오래 되신 커플이시네요.
형배: 보니까 그렇게 됐더라고요.(웃음)
정혜: 비교해 보니까 엄청 짧어 우리.(웃음)
현호: 저희는 원래는 퍼슨웹에서 만나기는 했었는데, 나중에 일종의 프리랜서와 클라이언트로 다시 만났어요. 작은 일을 하나 했었죠. 이 책에 보면 작은 사진이 하나 있는데, 그 책에 있는 사진을 저한테 찍어달라고 말을 했었어요. 그때 제가 천 컷 넘게 찍었었어요. 비오는 데 밖에서. 흐. 근데 자신있는 게 한 장 나오더라고요.
근데 저는 사진 비전공자였는데, 그래서 더 열심히 했었어요. 그래서 그때까지는 별로 실패한 적이 없었는데, 맘에 드는 사진을 담담하게 태연한 척 메신저로 보내니까 한다는 말이 이건 너무 이뻐서 못 쓰겠다는 거에요. 그래서 아니 그게 뭔 소리냐고 막 싸우고 그랬어요.
정혜: 그때 근데 제가 부탁한 사진이 아주 기능적인 거였어요. 그냥 굉장히 큰 물건을 그냥 작게 찍어주기를 바랬던 거였는데, 너무 열심히, 또 너무 작가적인, 너무 좋은 그런 사진을 찍어오셔서.(웃음) 제가 그 사진을 퇴짜를 놨었죠. 이유는 너무 사진이 예쁘고, 목적이랑 맞지 않는 거라서. 그래서 너무 죄송하지만 사진을 쓸 수 없겠다고 얘기를 했더니, 너무 마음에 상처를 받으면서.
현호: 돈도 다시 돌려줬어요.
정혜: 암튼 그랬던 거죠. 네에.
현호: 저는 그때 대학생이었는데, 대학생 때 뭐 여러 사정이 있어서 지금보다 프리랜서를 훨씬 열심히 했어요. 막 한달에 사십 꼭지도 넘기고 그랬어요. 그래서 그때 정말 좌절을 했었어요. 아 내가 마음에 드는데 클라이언트가 맘에 안 들어할 수도 있구나. 뭐 지금은 그런 경우를 워낙 많이 겪어서 괜찮은데, 그때는 정말 충격을 받았던 거죠. 그래서 그때부터 메일로 막 싸우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가까워진 거죠.
정혜: 그런데 저희야 뭐 따져보면 별로 멀지 않은 과거의 일이니까 막 기억이 나지만, 구 년쯤 되셨으면 이제 기억도 잘 안 나실 거 같아요.
형배: 생생한 거 같아요.
아, 멋진 말이다. ‘생생하다’니, 십 년 후의 우리도 그런 말을 쓸 수 있을까?
정혜: 아 정말요?
마코토: 사람들 만날 때마다 그런 얘기를 계속 물어요. 음, 저는 그 당시에 제주도에서 일어 강사를 하고 있었어요. 제주도도 너무 좋았는데, 아무래도 다른 게이 친구들을 만나기가 너무 어렵고, 학회나 연구회도 ‘육지’에서 많이 하잖아요. ‘육지’는 제주도 사람들이 많이 하는 말이기는 한데, 아무튼, 그때 한국에서 한 달에 한 번씩 연구회 같은 게 있었는데, 거기 참석하려고 서울하고 제주도를 왔다갔다 했었어요. 그때 친구사이 사람들 만나고 그랬는데, 그때 아까 말한 형 집에서 잤는데, 제가 코 골았어요. 그래서 그 형이 오늘은 형배 집에 가! 너무 시끄러워서 못 참아! 그랬어요. 그래서 그날 밤 형배 집에 갔는데, 그날도 역시 코 골았어요.(웃음) 그때는 그냥 친구였는데 일 년 후에 사귀기 시작했죠. 그 당시에 제주도에 있었던 남자친구가 결혼해 버렸어요. 한국 사람, 제주도 사람이었는데, 집안에서 결혼하라고 막 해서요.
정혜: 그때 친구분하고는 지금도 연락하세요?
마코토: 가끔 연락하죠. 근데 형배도 같이 만나본 적 있어요. 근데 좀 약한 사람이었던 거 같아요. 집에서 그런 식으로 하면…….
정혜: 일본은 어떨지 모르겠는데 한국은 정말 그런 게 있는 것 같아요.
마코토: 가족주의가 좀 강해요. 만약에 일본에서 그런 식으로 하게 되면, 그냥 나 혼자서 살아, 그러고 밖에 나가서 사는데, 한국에서는 그래도 부모님과의 관계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거 같아요.
현호: 가족주의도 가족주의지만, 뭐랄까 한국 사람들은 엄마 아부지를 좀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가지구.(웃음) 저도 그러거든요. 정혜 씨도 그렇고. 그런 게 있어요.
마코토: TV보면서 연예인들이, 엄마 얘기 나오면 울어요. 다 울어. 왜 울지? 이런 생각이 조금. 아, 그래서 결혼했나?(웃음)
현호: 엄마 불쌍해서요?(웃음) 충분히 가능한 얘기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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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 두 분 중에 누가 먼저 사귀자고 하신 거에요 그럼?
형배: 그게 되게 특이했던 게, 제 기억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만나고 있었는데, 마코토가 자기는 아직 사귈 준비가 안 됐다고 먼저 이야기를 했어요.
마코토: 했죠.(웃음)
형배: 근데 묻지도 않았었고요.(일동 웃음)
마코토: 그 이전에, 있었잖아요. 섹스. 하하.
형배: 그건 있었죠.
마코토: 저는 복잡한 마음이 있었어요. 제가 아까 이야기했던 남자친구하고 헤어져서, 그 친구가 결혼하고 복잡한 마음이었는데, 그때는 내가 너무 상처받고 있는데 형배가 전화를 해서 서울에 올라오라고 했어요. 지금 방학이고, 혼자 제주도에 있으면 재미없잖아요. 그랬어요. 그래서 제가 사실 올라갈 형편은 아니었는데, 올라갔어요. 일 주일정도 있으면서, 섹스 같은 것도 있었어요. 저는 이 사람이랑 사귀게 될 것 같다는 느낌이 있었는데, 그래도 마음 속에서는 아직 정리가 되지 않았는데 하는 갈등이 있었어요. 그러니까, 사귀자는 얘기 전혀 안 했는데, 제가 “우린 사귈 수 없을 거야” 그렇게 이야기하고,(웃음)
형배: 네, 알았어요~.(웃음) 나중에 때가 되면 그럴 수도 있겠죠. 괜찮아요.
마코토: 근데 내가 미안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제주도에 돌아갔어요. 근데, 제주도에 돌아간지 삼 일만에, 보고 싶게 돼버렸어요. 그래서 전화로 “역시 우리 사귀자” 했어요. 이번에도 아무 말도 안 했는데.
형배: 응, 그래~.
정혜: 근데, 사귀게 되는 거랑, 같이 사시게 되는 거랑은 좀 다를 거 같은데,
형배: 아니에요. 저희는 좀 여러 단계가 있었어요.(웃음)
마코토: 그 후에 제가 일 년 반쯤 제주도에 있다가, 서울에 올라왔어요. 그때도 우리 따로 살았어요. 저는 제가 가르치던 대학교 근처에 있고, 형배는 형배 집에 있고, 주로 주말에 만났어요.
형배: 제가 갈 때도 있고, 이 친구가 올 때도 있고.
마코토: 계속 왔다갔다 하면서. 한 4년 전? 그때쯤 같이 살기 시작했어요. 한 공간에서.
형배: 서로 일이 있으니까, 생활이 힘들어지면 애정이라는 것도 스트레스가 많이 쌓일 수 있으니까요. 우리는 굉장히 편하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꼭 같이 있어야 된다 생각한 건 아니었고요. 물론 그런 갈등도 있었지만, 가장 좋은 방법이 뭘까 생각했을 때 지금으로서는 공간이 따로 있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행동했던 것 같아요.
마코토: 서울에 와서도 따로 있었지만, 그래도 제주도보다는 가까이 있으니까.(웃음)
정혜: 근데 부부가 같이 살면서 가사노동 문제가 부부싸움의 원인이라고 하잖아요. 두 분은 그런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세요?
형배: 저희들 같은 경우에는 그런 트러블은 한 번도 없었구요. 그런 면에서 게이라는 게 얼마나 행복한지 몰라요. 왜냐면 일반 커플들 같은 경우에는 여자가 집안일 해야 하고 남자가 바깥 일 해야 하고 그런 게 도식화된 경우가 많잖아요. 남자가 가사일 도와줄 때도 마치 이건 내가 할 일이 아니라, ‘도와 준다’는 생각을 하잖아요. 그런데 저희는 같은 동성 커플이니까, 남성이 해야 할 일 여성이 해야 할 일 구분이 없어요. 그래서 가사일이 당연히 반반씩 구분돼요.
현호: 저희는 사실 엄청 싸운 편이에요. 근데, 전 정말 아무리 양심에 손을 얹고 생각해도 그런 성 역할 땜에 그러는 건 아닌데, 디테일의 완성도랄까? 그런 거에 대한 기준점이 다른 거죠. 그러니까 저는 최대한 빨리 해놓고 쉬고 싶어하고, 아내는 양념통들도 맛을 기준으로 막 분류해놓고 그래요. 그리고 서로가 민감한 부분이 다르잖아요. 전 냄새에 민감해서 화장실 청소를 자주 하는데, 아내는 상대적으로 좀 덜 그렇고, 반면에 물건들을 전부 정확히 정리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어요. 특히 연초에 제가 몸이 안 좋아서 입원을 했고, 한동안 서있기도 힘들었는데 조금만 뭐라고 하면 서운하고. 그래서 암튼 제가 많이 삐졌죠. 근데 지금은 그런 게 많이 줄어들고 있어요.
형배: 너무 빠르신 거 아니에요?(웃음) 그런 점들이 있죠. 저희도 있었어요. 예를 들어 저는 정리벽이 있어요. 물건들이 다 깔끔하게 딱 있어야 돼요. 근데 이 친구는 흐트러져 있는 게 나름의 정리방식이고, 저는 정리해 놓고도 잘 못 찾기도 해요. 근데 약간 정리하는 건 좀 다르긴 하지만, 둘이 살게 되면 정말 약간 맞출 필요는 있는 것 같아요. 정말 제가 민감한 부분도 약간 타협할 필요가 있고, 오래 살다보면 자연스럽게 되게 되는 거 같아요.
현호: 근데 물론 정혜 씨가 훨씬 정리를 잘하고, 심지어는 책 한 권을 꽂아도 그게 다 원칙이 있어요. 건축 옆에는 인테리어가 있어야 되고 그 옆에는 가구 디자인이 있어야 되고 그런 식이에요. 그냥 꽂는 게 아니에요. 근데, 제 입장에서는 나는 그런 정리법을 외워야 되잖아요. 그리고 아내가 꽂는 데 워낙 오래 걸리니까, 다 정리하기 전까지는 오히려 책들이 바닥에 그냥 누워있어야 하는 시간이 필요한 거에요. 이사를 가면 한두 달 정도. 그래서 저는 대충 꽂혀 있으면 그래도 찾기 편할 텐데, 누워있으면 찾기 힘들잖아요. 그래서 말은 못하지만 불만이 많았죠.
형배: 저희는 영역을 따로 나눠 놨어요. 제 영역, 이 친구 영역, 각자의 영역은 각자 알아서.
현호: 근데 정혜 씨는 그런 건 싫어해요. 문 닫아놓고 있으면 안 되고, 모든 일은 같이 해야 되고.(웃음)
형배: 제가 정혜 씨랑 더 비슷한 것 같아요. 저는 금전적인 거나 뭐 모든 면에서 좀 그렇게 생각하는 편이고, 이 친구는 개인의 영역을 존중하는 편이에요. 처음에는 좀 싸웠는데, 이제 그냥 서로를 존중하면서 맞춰서 살게 돼요. 외국인이라서 그런 건 아닌 거 같아요. 저희가 아는 또 다른 국제 커플의 경우에는 오히려 외국인 친구가 금전적인 걸 공유하고 싶어하고, 한국인 친구가 그걸 불편하게 생각하고 그래요.
현호: 저희는 처음에 저는 대학생이었고, 정혜 씨는 청년 사업가였고.(웃음) 그래서 대개 정혜 씨가 데이트 비용 같은 걸 거의 다 냈는데, 저는 뭐 그런 걸로 자존심이 상해하거나 하는 성격은 전혀 아니었을 줄 알았어요.(웃음) 그런데 가끔씩 떠올리게 될 때가 있더라고요. 자격지심처럼. 그래서 그때부터 옷 하나 신발 하나를 거의 안 샀어요. 좀 사입으라고 해도 마음이 불편해서. 어쨌든 항상 가진 걸 나눠서 썼어요. 그런데 딱히 그게 편해서가 아니라 지금은 이미 서로 가진 걸 나눌 수 없는 그런 단계가 됐거든요. 근데 제 경우에는 그게 좋다고 생각해서는 아닌 거 같아요. 생각해볼 선택의 여지가 없이 그냥 그렇게 되어 있더라고요.
형배: 절대적인 건 없는 거 같아요. 지금은 이런 모습이지만 변할 수도 있고. 근데 그런 생각은 할 때가 있어요. 둘이 같이 모으면 재테크하기는 좀 편하겠다. 그런 생각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더 행복해지는 건 아니니까. 더 나아질 거라는 보장은 없으니까, 백 퍼센트 확실한 건 아니죠.
마코토: 저 같은 경우에는 한국에서 계속 일할 수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는데, 직장이 없어지면 비자가 안 나오잖아요. 그러면 무조건 일본에 들어가야 하잖아요. 그런 불안정한 상황인데, 그런데 한국에서 집을 사거나 그러려면 고민이 되잖아요. 그런 부분에서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고, 어쩔 수 없이 따로따로 생각해야 하는 문제죠.
정혜: 한국에 처음 오실 때, 원래 오래 계시려고 생각해서 오신 거에요? 아니면 오셨는데, 어떻게 하다보니 오래 계시게 된 거에요?
마코토: 그렇죠. 애인도 생기고. 처음에는 삼 년 정도 생각하고 왔는데, 구 년 되고, 십이 년 되고.(웃음)
정혜: 그럼 요즘은 정말 고민이 좀 되시겠어요. 앞으로 계속 한국에서 사실 것인지.
마코토: 제가 살고 싶다고 해도 안 되게 되는 경우가 있잖아요. 갑자기 직업이 없어진다든지 하면. 지금 취업비자로 있는 거니까요.
현호: 전임이신데도 그런 일이 생기나요?
마코토: 전임이어도, 외국인 강사는 계약이 삼 년이나 사 년 정도거든요. 더 이상 연장하기가 힘들어요. 저는 제주도에서 서울 올라와서 세 번째 직장이에요. 그때마다 이사하고, 이력서 쓰고, 일 찾기가 너무 힘들었어요. 그런데 나이 많이 먹어서 그런 일조차 없어지면, 앞으로 어떻게 살까. 처음에는 많이 고민했는데, 요즘은 좀 편해졌어요. 왜냐면, 일본에 돌아가게 되면 새로운 인생이 시작하겠다.(웃음) 그러니까 애인 때문에 지금까지 계속 고민해 왔는데, 그건 애인과는 상관없이 나의 문제다, 그렇게 생각하고 내가 해결해야 할 문제다. 그렇게 생각하고 더 편해졌어요. 물론 애인이 있으니까, 같이 살 수 있으면 살고 싶은데, 그 생각을 하면 제가 더 힘들어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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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코토: 언젠가 결혼 제도가 생길지도 모르고요.
정혜: 두 분 다 처음부터 결혼에 대한 환상 같은 건 없으셨나 봐요.
마코토: 결혼…할 수 없잖아요?
현호: 오히려 반대로, 뭔가 제도적으로 사랑을 인정받기 위해서 결혼을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 않나요? 외국에 가서 결혼을 한다든지.
형배: 저희는 그런 것보다는 그냥 같은 공간에 있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제도 자체는 글쎄, 별로 집착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마코토: 주변에 있는 이성애자 일본인 교사 분들이, 한국인들하고 결혼을 하고 비자를 받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이성애자에게는 그런 제도가 있는데, 동성애자에게는 그런 제도가 없다는 것이 좀 억울하죠.
정혜: 혹시 일본에는 그런 법률이 있나요? 제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
마코토: 아직 없어요. 결혼 제도에 있어서는 비슷하게 보수적이에요.
형배: 아시아 국가들에서는 아직 없어요. 타이완에서 한번 시도했었는데, 안 됐어요. 말은 나왔었는데, 법제화는 안 되었어요. 만약 결혼을 하려고 하면 유럽이나 샌프란시스코에 가야 되죠. 프랑스 같은 경우에는 동거연대법(시민연대법; Pacte Civil de Solidarité)이라는 게 있어요. 동성 커플이나 이성 커플이나 결혼을 하지 않았어도 일정 정도 함께 살면 세제상의 혜택이나 권리를 보장해 주는 법이거든요. 그런데 이게 결혼이랑은 다르죠.
현호: 음, 추진하시는 분들도 사실 좀 갈등되는 부분이 있겠어요. 예를 들어 동성결혼을 인정해 달라고 싸울 것이냐, 아니면 이성애주의에 입각한 결혼제도를 공격할 것이냐 하는…….
형배: 그래서 그게 가장 고민이에요. 한국에서 어떤 식으로 그걸 접근해야 하는지, 왜냐면 정치적인 전략이라는 것도 필요한 거니까요. 실은 우리 나라에서는 남녀간의 동거라는 것도 굉장히 안 좋게 보이는 거잖아요. 그래서 한국에서는 결혼은커녕 동거연대법 추진도 정말 어려운 부분이 있으니까요. 유럽에서야 살아보지도 않고 어떻게 결혼하느냐, 연애하면서야 얼마든지 좋은 모습 보여줄 수 있지만 사는 건 다른 거다 하는 마인드도 있고, 사랑하는 동안에 함께 살아야지 사랑하지 않으면서도 함께 살아야 하냐는 생각에 동거를 선호하는 사람들도 있잖아요.
저희가 저번 주에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 분들을 만났어요. 일본에서 커밍아웃을 하시고 국회의원 후보에 나가시는 오츠지 씨라는 분이 한국에 오시는 일을 계기로 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어요. (오츠지 가나코; 2003년 오사카 부의회의 최연소 의원으로 당선되었으며, 2007년에 커밍아웃을 한 후 일본 최초로 레즈비언으로 참의원 선거에 출마하였지만 아쉽게 낙선하였다.)
아무래도 한국에서는 그 시점이나 여러 가지 부분에서 고민이 많으신 것 같아요. 아직 구체적인 행보는 나오지 않은 것 같아요. 다른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어쩌면 이번 선거에 한국 최초로 레즈비언 커밍아웃을 하고 후보에 출마하시는 분이 있을 것 같아요.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 최현숙 위원장이 커밍아웃을 하고 18대 총선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12월 11일 최현숙 위원장이 선거 예비후보 등록을 마친 종로구는 ‘대한민국 정치 1번지’이자, 동성애자들의 커뮤니티가 모여 있는 곳으로 상징적인 의미가 겹치는 곳이기도 하다.) 그런데 아직 확정적인 건 없고, 다들 고민이 많으신 거 같아요.
그러니까 그들은 그냥 참으면서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되도록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순간순간을 즐겁게, 행복하게 참으면서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나는, 한 사람의 이성애자로서,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그 사랑의 질감이 무척 궁금하였다. 그래서 나는 좀 멍청한 질문을 던지기로 했다.
현호: 음, 저는 애인이랑 가족이 좀 다른 거 같아요. 개념적으로가 아니라 경험적으로. 그걸 언제 느꼈냐면, 저희가 동거하다가 결혼하기 몇 달 전에, 양쪽 집안에 좀 어려운 일이 생겼어요. 결혼식을 올릴 수 있을지 없을지 불투명해서 굉장히 서로 힘들고 괴로웠어요. 근데 그 때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힘든 일이 있으니까 빨리 결혼을 해야 되겠다. 아마 그 전에는 힘든 일이 있으면 깔끔하게 떠나거나 떠나 주거나 하는 식으로 생각을 했을 거에요. 아마 그 전까지는 애인이었고, 그 이후에 가족이었던 거 같은데, 두 분은 이성애자들이 흔히 쓰는 말로 ‘애인’에 가까운가요? 아니면 ‘가족’에 가까운가요? 아니면 저희가 상상할 수 없는 다른 느낌의 관계인가요?
형배: 성수(마코토 씨의 한국 이름)는 어때요?
마코토: 이제 애인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간지러워요.(웃음) 사귄지 구 년 됐죠. 그러면 애인이라는 생각보다는 가족이라는 생각이 들죠. 같이 별로 데이트하고 싶거나 그런 건 없죠.(웃음) 이성애자들은 허니문 기간이 끝나면 가족이 되는 거 같아요. 동성애자도, 물론 처음에 같이 있는 것만으로 가슴이 떨리는 그런 기간이 있죠. 즐겁고, 행복하고 그렇게 느꼈을 때가 있지만, 4년 정도 지나면, 조금 달라지잖아요.
정혜: 권태기라고 하는?
마코토: 실은, 지금 거의 섹스도 없고, 일년에 두세 번밖에 없고, 그래도 애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래도 같이 있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그리고 이 사람만큼 이야기나 생각이 잘 맞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생각하고, 이 사람이랑 같이 있어야 되는 이유도 있어요. 새로운 사람이랑 다시 만나서 처음부터 시작하는 것도 귀찮다고 생각되고.(웃음) 말하지 않아도 서로 알 수 있는 부분도 많고요. 그러니까, 애인이라기보다는 ‘파트너’라는 말이 적합하기도 하고, 그렇죠.
이성애자의 언어로는 그가 말하는 ‘파트너’라는 단어를 적절하게 설명하기 어렵다. ‘애인’도 ‘부부’도 아닌 서로를 사랑하는 ‘동반자’, 혹은 좀 비약하면 같은 전장에 놓인 ‘동지’? 아니다, 이 모두가 적합하지 않다. 어딘가 느낌이 다르다.
형배: 그런 부분도 그렇고, 저는 사실 흔히 말하는 애인과 가족의 구분조차도 그리 필요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지금 이야기를 들으면서 과연 그런 제 느낌을 어떻게 설명드려야 할까 생각하게 되네요. 왜냐하면 이 친구가 일생에서 저한테 가장 중요한 사람인 건 사실이지만, 저는 이렇게 둘이 같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거 자체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저희를 가족이나, 애인 같은 개념에 집어넣고 생각을 해볼 필요가 없었어요. 왜냐면 너무나 자연스럽게 흘러왔고, 지금까지 왔으니까. 지금 그 질문을 던지신 이 순간에, 아 그러면 우리는 스스로를 어떤 범주에 넣어야 하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저희에게는 두 분처럼 가족과 애인의 경계를 생각하게 만들 정도로 힘든 일은 없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만약 그런 일이 생긴다고 해도 그냥 저희가 함께 삶을 살아가면서 생길 수 있는 일들 중 하나라고 생각할 거 같아요.
마코토: 가족이라는 말 자체가 너무 이성애적인 말이잖아요. 이성애자 중심으로 쓰고 있는 말이잖아요. 결혼 제도가 있어야 가족이 되는 거니까, 우리가 가족이라는 말을 쓸 때는 그런 의미로 쓰지는 않아요. 만약 아주 친한 친구들이 모여서 우리가 서로 가족 같다고 느끼면, 그것도 우리한테는 가족이에요.
현호: 음, 사실 제 자의적인 구분이기는 한데, 만약에 제가 다른 연애를 하고 있었을 때였다면, 만약 서로에게 힘든 일이 생겨서 더 이상 즐겁지 않으면 그만뒀을 거에요. 그러니까 애인 같은 경우에는 더 좋아하는 사람이나 더 설레이는 사람이 생기면 그쪽으로 바꾸는 게 더 진실한 거잖아요. 그런데 가족 같은 경우에는 그냥 이 사람이 내 팔자구나 하면서 포기하고 살게 되는 거 같아요. 서로 웬수라고 하면서도 같이 사는 부부들처럼요.
사실 같이 살 방을 못 구하면 결혼을 하기는 힘들잖아요. 그래도 삶이 누추해지더라도 암튼 계속 같이 관계를 유지해야겠다고 느꼈어요. 그 상황에서 뭐 결혼을 하든 안 하든 상관없이 더 이상 애인이 아니라고 느꼈던 거고, 전 그걸 ‘가족’이라고 표현한 거에요. 물론 그리 적절한 개념은 아니었던 거 같긴 하네요.
형배: 그런 면에서 일반 동성애자 커플은 좀 다를 거 같아요. 이성애자의 가족은 뭐랄까, 아이도 있고 제도화된 틀 속에 자기를 안착시키는 거잖아요. 동성애자 커플 같은 경우에는 그런 제도적인 건 없죠. 심리적, 정서적, 감성적 연대감이 글쎄요, 약할 수도 있을 거 같아요. 하지만 저는 이 친구 만나면서 한번도 더 나은 사람이 있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지는 않았어요. 바로 이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런 느낌이었을지도 모르고, 첫사랑이었기 때문에 그랬을지도 몰라요. 왜냐면 이 사람도 충분히 멋진 면이 있고, 누구도 이 사람을 대체할 수는 없는 거잖아요.
만약에 어떤 사건이나 운명이 이 사람과 헤어질 수밖에 없게 만든다고 하면, 다른 사람을 만날 수도 있어요. 또 그 사람은 그 사람 나름의 장점이 있겠죠. 하지만 미리 그런 걸 말하지는 않아요. 동성애자라서 그런 건지 아니면 제 성?div id=”article-content” class=”text-content”>
형배: 오늘 이야기하면서 느낀 건데, 기존의 가족이나 제도 같은 틀로 동성애자 커플을 설명하는 건 어려운 일인 것 같아요. 왜냐면 기본적으로 닮은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현실적으로 제도라는 틀을 벗어나서 살기 때문에 다른 형태의 감성이나 느낌을 가질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그런 다른 감성을 나의 틀로 이해하는 것은 좀 힘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자기 나름의 방식대로 이해하는 수밖에 없겠지요.
사실 저는 주변에 있는 이성애 커플과 이야기를 해본 적은 없었는데, 오늘 이야기해 보니까, 아 이분들에게 어떻게 우리가 느끼는 감정을 설명할 수 있을까 하는 기분이 들어요.
마코토: 나도 느꼈어요.
형배: 응, 우리가 고민하지 않는 것들을 이분들은 고민을 하고 있고, 우리가 별로 중요하지 않는 부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서로 같이 대화를 하기 위해서는 그런 과정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우리는 그냥 살고 있는 것뿐인데, 뭔가 그걸 설명할 연결고리가 필요하다고 계속 생각하고 계시는 거 같기도 하고. 그게 제도일 수도 있고, 뭔가 다른 것일수도 있지만, 그런 느낌이 들었어요.
마코토: 저희가 설명한 것들이 잘 이해가 됐는지 모르겠어요.
정혜: 알 듯 모를 듯.
현호: 근데 모르는 건 당연한 거 같아요. 저는 사실 다른 이성애 커플들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거든요.
형배: 맞아요. 그건 당연한 것 같아요. 우리는 일반화하기를 좋아하지만, 개인적인 체험은 전부 다른데, 이걸 사랑이라는 이름에 넣어서 그냥 정리해 버린다는 느낌을 받아요. 사람들 사이의 사랑은 정말 다른 느낌인데, 그걸 사랑이라는 한 단어로 뭉뚱그려 버린다는 게 적절하지 않은 것 같아요. 사랑을 알기 위해서는 그것이 각각 가지는 형태를 관찰해 볼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도, 제가 알고 있던 사랑의 개념이나 형태가 계속 변하고 있는 것 같아요. 중요한 것은 내가 아는 사랑을 절대화하지 않는 것인 거 같아요. 하지만 다른 형태의 사랑을 보면, 어 어쩌면 지금 내가 알고 있고, 하고 있는 사랑의 형태가 절대적인 건 아닐 수도 있겠다 하는 여유가 생길 수 있는 것 같아요.
마코토: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문제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문제에요.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문제가 아니니까. 또 같이 살다 보면 각각의 단계에 생겨나는 문제도 있고, 이전 단계에 생겨난 문제도 있어요. 그런데 그런 문제들을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기가 너무 어려워요. 만약 사십대나 오십대까지 가면 부부간의 섹스 같은 것도 거의 없어지잖아요. 만약 거기까지 가면, 다른 사람과 섹스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형배: 응, 그럴 수 있어.
마코토: 근데 이성애 사회에서는 그건 절대로 안 되는 거잖아요. 근데 십 년 이십 년 살아 보면 그때 가서 그런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것도 사실이고, 지금은 나중에 절대 그런 문제가 안 생길 수 있다고 느끼는 것도 지금 순간의 진실일 수 있는 거죠. 부부간의 관계는 그런 변화가 만나는 지점을 찾는 거라고 생각해요. 결혼이라는 제도는 일종의 사회 시스템으로서의 기계적인 발명품이지 인간적인 것은 아닐 수 있다고 생각해요. 개인적인 문제하고 그런 제도를 맞추어서 나가는 건 불가능할 때가 많아요. 그래서 나는 동성애자가 기존의 이성애자의 결혼 제도에 맞추어서 나가는 걸 반대해요. 또다른 제도를 만들어야 하는 거죠.
제도라는 것은 쉽게 판단하기 꽤나 복잡한 부분이 있다. 예를 들어 가부장제는 정치적으로 옳지 않지만, 그것을 지고지순한 가치로 믿고 사는 이들의 삶에 존재하는 애틋함까지 부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가족 제도 역시 그러하다.
사랑은 그 자체로도 충분히 폭력적이지만, 가족 제도에 편입되면 더욱 폭력적으로 변한다. ‘바람직한’ 방식의 사랑과 그렇지 않은 것은 구분되며, 제도는 자신에게 충성하지 않는 사랑들에 대해 상당한 보복을 가한다. 그것이 비록 야만적인 속성을 지닌다 할지라도 제도 안에 있다면 그 허물을 덮고, 제도 밖에 있는 사랑이 아무리 예쁘다 할지라도 경계와 배제의 시선을 보낸다. 아마 그것은 제도를 애틋하게 생각하고, 진심으로 지키길 원하는 이들일수록 더욱 격렬할 것이다.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제도를 다시 생각해 보는 일이다. 자신에게 애틋한 것이더라도 타인에게 폭력이 될 수 있다면, 과감히 그것이 주는 따뜻함을 버릴 수 있어야 그것이 진정으로 애틋하게 남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조금 더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제도를 해체하여 조금 더 말랑말랑하게 만드는 일이 필요할 것이다. 좀더 많은 사랑이 와서 쉴 수 있는 공간이 되도록 말이다. 그것이 우리의 사랑을 구원하는 일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