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구이성(余桂生) 여사는 올해 쉰아홉 인데, 예전에 어머니와 소학교에서 동료교사로 근무하신 분이다. 그 후로 바이궈린(白果林) 지역으로 이사 오셔서 우리 이웃이 되셨다. 두 집 사이의 왕래는 잦은 편이다. 하루는 내가 <<주역(周易)>>으로 점을 본다는 사실을 아시고는 뭐에 홀리신 것처럼 계속 찾아와서 점을 좀 봐달라고 하신다. 하지만 그런 점도 미래를 알 수 없나 보다. 1996년 3월 17일 밤에 강도를 당하신 거다. 얼마나 놀라셨을까!
3월18일 오전 위 선생님이 황급히 날 찾아와서 또 점을 봐달라고 하신다. 이 인터뷰는 이렇게 이뤄졌다. 나는 어르신한테 강아지를 한 마리 키우시라고 했다. 비록 강도를 물지는 못해도 짖기는 할 테니까 말이다. 위 선생 말씀이, “광견병 때문에 개 등록비만 몇 백 위안이고 1년에 주사값만 300위안이야.”
웨이(威) 선생, 나 또 자네가 해주는 점 보러 왔어.
아니, 지난 주 바로 어르신 점 봐드렸잖아요? <<역경(易經)>> <몽지사(蒙之四)>편에 이런 말이 있지요. “初?, 告. 再三瀆, 瀆則不告.” 그러니까, 맨 처음 점을 볼 때 천지신명이 이미 자기한테 할 얘길 다 한다는 거죠. 그러니 두 번 세 번 또 계속 점을 보면 그건 천지신명을 모독하는 일이랍니다. 그 때는 이미 점을 봐 봤자 아무런 결과도 나오지 않는다는 뜻이죠. 왜냐면, 사람과 신의 관계는 사람과 사람 관계랑 똑같기 때문이죠. 서로 간에 믿음이 필요하다는 뜻이랍니다.
난 그저 겁나 죽겠어! 지난 주 화요일 자네 집에서 점을 봤잖아? 근데, “震之二六”이란 점괘가 나왔지. 그러니까 “震往來歷, 意無喪有事”이란 얘기지. 그 뜻이, 깜짝 놀랄 벼락이 요란하게 울리고 앞에 큰 위험이 있으나, 세심하고 신중하게 행동하면 화를 일으킬 정도는 아니다, 이거잖아. 그 때 딱 생각이, 아 이거 일종의 추상적인 비유구나, 이게 비틀비틀 걸어 온 내 인생을 얘기하는구나! 한 거야.
정말 그래. 정치운동이 있을 때마다, “깜짝 놀랄 벼락이 요란하게 울리고 앞에 큰 위험이 있”었어. 하지만 요행히 나는 비켜가더군. 화는 입에서 나온다잖아. 우리 같이 글이나 가르치는 인간들이라고 화가 없으란 법 없지.
하지만 설마 몰랐지. <<역경>>에 나오는 신이 “추상적인 얘기”나 “인생철리(人生哲理)”로 사람을 갖고 놀 줄은 정말 몰랐던 거야! 그 날 저녁 집에 가는 길에 또 마침 비가 억수같이 오는 거야. 천둥과 번개가 치는데 도시 전체가 망망대해 같았다니까.
창문을 안 닫으신 건가요? 천둥이나 번개가 집안까지 들어왔나요?
아니, 도둑이 집에 들었어. 나중에 그 도둑놈이 하는 얘기가, 원래 아래층 돈 많은 왕(王)씨네를 털려고 했대. 근데, 방범문을 막 따는데 안에서 갑자기 그 집의 개가 짖더라는 거야. 그래서 왕씨가 깨서 거실 등을 켠 거지. 하는 수 없이 그 도둑놈이 다시 한층 위로 올라와서 방범문을 따고 우리 집에 들어온 거지.
그 때가 언제였어요?
아마 새벽 4시쯤 되었을 거야. 천둥이나 비도 그치고 달빛이 집으로 은은히 들어오더군. 아니, 가로등 불빛이었는지도 몰라. 평소에 난 침실 문을 잠가두는데 그 날은 무슨 바람이 났는지 안 잠근 거지. 잠결에 그림자 하나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데, 영감인 줄 알았지. 그래서 지금 몇 신데 안 자고 뭐하냐고 물었지. 근데 이상하게 발바닥이 찬 거 같아. 그 찬 기운이 내 허리 근처까지 느껴지는 거야. 그래서, 영감 그 담요나 좀 덮어주시구랴 했지. 그 소리를 듣고는 그 그림자가 나한테 성큼 다가와서는 허리를 구부려. 그리고는 뭔가 번쩍거리면서 싸늘한 물건을 내 목에 들이대는 거야. 뭔가 싶어서 만져보니 담요가 아냐! 바로 잠이 싹 달아났지.
웬만한 일에는 눈도 깜짝 안 하시는 분인데 그 도둑을 보니 어떠셨어요?
도둑놈이 목에 칼을 들이대고 있는데 농담이 나와? 그 도둑놈이 날 보고 한번 씩 웃더니(내 생각엔 웃는 것 같았어) 짐짓 정중하게 하는 말이, “부인, 값나가는 것 모두 다 꺼내 놓으시죠.” 이래. 난 본능적으로 그런 거 없다고 잡아뗐지. 그러자 바로 목이 잠시 얼얼한 듯한 느낌이 오면서 그 큰 손으로 내 입을 틀어막는 거야. 너무 놀라서 베개 밑 숨겨둔 3000위안을 싹 다 갖다 바쳤지. 그제야 내 입에 손을 떼더군. 하도 숨이 차서 겨우 일어나 앉았지.
그 도둑놈이 또 “금덩어리 같은 거 모두 다 안 꺼내? 확!” 하길래, 난 온몸을 발발 떨면서 “혼자 사는 늙은이가 무슨 금덩어리가 같은 게 있어요? 퇴직한 지도 벌써 몇 년이나 됐어요.” 하며 계속 모른 척 했지. 근데, 내 거짓말이 금방 탄로 났어. 그 도둑놈이 “당신네들 아들 딸 하나씩 있잖아? 모두 다 타지에서 일하는 거 다 아는데 무슨 소리야? 거실에 있는 가족사진도 벌써 다 봤어. 뭐 당신 공장에서 퇴직했다고? 여공 집에 무슨 대련1)이 있어! 응? ”書山有路勤爲徑, 學海無涯苦作舟“2)라고 쓰여 있더만. 당신, 그 나이 되도록 책이나 보고 공부나 하던 인간이지?” 하는 거야.
그 도둑 그냥 공돌이는 아닌 것 같은데요. 최소 중학교 정도는 졸업한 것 같군요.
나도 깜짝 놀랐어. 이 도둑을 구슬려야겠다고 생각했지. 근데 당장 칼끝이 가슴에 와 있는데 도리가 있나. 그 도둑이 날 침대에서 끌어내리더니 옷장으로 끌고 가서 “금덩어리”를 뒤지더군. 먼저 손목시계를 줬어. 그거 딸이 외국에서 사다 준 거거든. 근데 그 도둑놈 본체만체 하더니 바로 툭 던져 버려. 다시 파커 만년필을 꺼내 줬어. 그거 내가 수십 년 동안 애용한 건데 펜촉이 순금으로 된 거야. 이번에도 엄청 화를 내면서 나를 보고 막 욕지거리를 퍼붓는 거야, 그 도둑놈이. 그리고는 날 확 밀쳐 내고는 자기가 옷장을 정신없이 뒤지는 거야. 그걸 틈타 몇 번이나 몰래 도망가려다가, 바로 붙잡혔어. 입에 칼을 물고 있는데, 등 뒤에도 눈이 달린 것 같았어. 귀걸이 목걸이 반지 모두 뒤져내더군.
이런 일은 “문화대혁명” 때도 있었어. 홍위병들이 집으로 쳐들어 왔는데, 대부분이 내가 가르친 학생들이지. 이것들이 “금덩어리” “은덩어리”를 모두 몰수해 갔어. 그리고는 젠체하며 그것들 모두 부르조아들의 물건이라고 씨부렁거렸지. 설마 20년이 지나서 또 그런 악몽을 경험하게 될 줄이야 몰랐지! 머릿속에서 뭐가 쿵! 하고 떨어지는 소리가 났어.
정신을 좀 차리고 보니, 그 도둑놈이 문을 걸어 잠그고 커튼을 내려. 다시, 침대 등을 키고는 날 침대에 눕히더군. 그리고는 나 쪽으로 등지고 침대에 걸터앉아서 피가 뚝뚝 떨어지는 팔을 내 밀고는 하는 말이, “부인, 당신 지금 고함질렀지? 그래봤자, 소용없다는 거 모르겠어? 내 칼이 당신 고함보다 빨라! 확! 그냥. 저승길 가는 걸 도와 드릴까? 응? 내 이번 한번 만 참지. 대신에 내 팔을 한 번 그은 거야. 기억해둬? 그대로 꼼짝 않고 누워 있는 게 좋을걸. 도둑도 나름대로 직업도덕이 있어. 어쩔 수 없는 경우만 아니면, 사람은 안 해쳐”
그 놈의 강도가 완전히 사람을 갖고 노는 구만요!
나도 치가 떨렸어. 하지만 어쩌나. 노인이 뭘 어쩌겠어? 그냥 침대에 누워 있을 수밖에 없었어. 영감은 그 때 옆방에 있었는데 이미 팔십이 넘었어. 까딱하다가 잘못 하면 바로 저 세상 갈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 결국 난 마음을 단단히 먹고 도둑놈을 달래기로 했지. “어서 썩 꺼지지 못해? 지금 나가면 그냥 똥 밟았다고 생각하지.” 말은 세게 했지만, 솔직히 그 때 얼마나 겁이 났는지 몰라. 침대 시트가 흥건히 젖을 정도로 식은땀이 났으니까. 근데 그 도둑놈이 되레 마치 실망했다는 듯이, “학교 선생님이 그런 욕을 하면 쓰나. 응? 보기 안 좋은데.”라고 날 비꼬는 거야.
“강도의 논리”가 대체 뭔가 인제 알겠군요.
그 도둑놈이 손바닥을 벌리더니 나더러 손금을 좀 봐주래. 먹물들은 모두 손금을 볼 줄 안대나 어쩐대나. 거의 사람 미치겠더라고. 내가 계속 꺼지라고 소리를 치니까, 아랑곳 하지도 않고 혼자서 중얼거리는 거야.
“다니던 공장이 문을 닫았어. 거기서 십 몇 년을 기계조립공으로 일했는데, 씨발. 실업수당으로 겨우 15,000위안을 주는 거야! 젠장할. 내 평생이 겨우 만 오천 밖에 안 돼? 당신 선생이지. 대답 좀 해봐! 당신 애들한테 학교에서 뭐라 가르쳐? 집체주의(集體主義) 사상을 가져야 한다, 조직관념을 가져야 한다, 그렇게 가르치지? 그래 안 그래? 사실 요즘 힘들어 죽을 지경이야. 도대체 어디로 가라는 거지? 재취업? 길거리에서 좌판 깔고 장사를 할까? 좆 까고 있네! 장사도 사 주는 놈이 있어야 할 거 아냐? 모두 장삿길로 나서는데 도대체 누가 뭘 산다는 거야? 게다가 장사 그거 아무나 하나? 내 손을 봐. 이런 손으로 장사는 무슨 장사! 강도짓이나 하면 바로 딱 이야.”
그래서 좀 부드럽게 얘기했지. “이봐요, 아저씨. 찾으면 먹고 살 길은 많아요. 이렇게 몸도 튼실한 사람이 뭘 못하겠어요?” 그 말을 듣더니 그 도둑놈 징그럽게 씩 웃으며 하는 말이, “알고 보니 난 타고난 강도인 것 같아. 이 짓 한 반년 정도 했는데, 돈도 되고 꽤 자극적이야.”라고 니글니글 거리는 거야, 글쎄.
그래서 내가 “가족 생각을 해야죠, 네?” 라고 했더니, 그 도둑놈 왈 “또 그 얘기구만? 당신 얘기는 국산 영화에서 떠드는 소리나 똑같아. 들어 봐. 내가 바로 그 잘난 내 가족들 때문에 죽어라 일해서 피 같은 돈을 벌잖아. 그래서 가족들이 사람구실 하면서 사는 거잖아? 근데, 요즘 세상은 모든 게 뒤집혔어. 예전에는 그냥 열심히 일이나 하면 가난한 농민도 가족 챙기고 가장 노릇도 하면서 그냥 고만고만하게 살 수나 있었지. 지금은 달라. 가난하면 바로 다른 사람의 웃음거리야! 만만한 게 홍어 좆이라고 없는 놈만 완전히 죽어나는 거지. 무슨 소린지 알아?” 이러는 거야.
듣고 있자니 도저히 못 참겠어. 그래서 “나 같으면 차라리 그렇게 살고 말겠다! 이런 인간쓰레기 같은 짓은 안 해! 그렇게 자신 있으면 썩어빠진 자식들이나 털지 그래? 지금 당장 안 나가? 내 목숨 걸고서라도 쫓아버릴 거야!”라고 쏘아붙였지. 지금 생각하면 뭘 믿고 그랬는지 몰라, 정말.
내 말을 들은 체 만 체 하며 또 나불거리는 거야. “학교 선생하고 톡 까놓고 얘기하는 것도 인연이라면 인연이니까 이렇게 하지. 당신 반지 하나 여기 그냥 두지. 내 얘기나 좀 들어줘. 응? 석 달 전 가게를 하나 털었지. 그날 밤도 천둥 벼락이 몰아쳤어. 참 잘 고른 게, 용접토치로 문을 쉽게 따고 바로 들어갔으니까. 별 거 아니데. 당직이 두 놈 있는데 젊은 놈은 간단하게 요리했지. 한방에 바로 때려눕히고 테이프로 입 막고, 수갑 채워서 침대에 묶어버렸으니까.” 나한테 자기 강도짓 한 얘기를 해주는 거야 글쎄! 그리곤 계속 혼자 주절대는 거야.
“근데 뜻밖에 늙은 놈이 그 가게 책임자야. 공산당원이고. 어라, 좀체 상대하기가 쉽지 않아. 결국 칼끝을 가슴에 대고 금고를 열라고 협박했지. 그 늙은 놈이 고개를 숙이고 자물쇠를 따는 척 하다가 갑자기 홱 돌아서서 막 엉기는 거야. 한방 먹었지. 좆도! 다시 경고했지. 나 살인하게 하지 말라고.”
“근데 알고 보니 이 영감이 혁명교육 받은 놈이야. 공동재산을 자기 생명보다 중시하는 인간인 거지. 갑자기, 도둑이야! 고함을 치는 거야. 난 다급한 나머지 칼끝을 스윽 밀어 버렸지. 솔직히 죽일 생각 정말 없었다고! 근데, 피를 보더니 이 영감 완전히 맛이 갔어. 고함치고 주먹을 막 휘두르면 칼을 뺏으려고 하는 거야. 젠장!” 이 말을 들으니 내 가슴이 얼마나 쿵쾅 거렸겠어? 무서워 죽을 뻔했다니까! 속으로 그 노친네 제발 좀 살았으면 하고 얼마나 바랐는지 몰라. 내 속이 어떤지 관심도 없다는 듯이 그 놈이 결국 하고 싶은 얘기를 하더군.
“할 수 있나? 칼을 쑤욱 하고 끝까지 밀어 버렸지. 어이, 아줌마 잘 봐. 내 칼은 모두 수술용이야. 얇고 예리하지. 끝부분도 작고. 왼쪽 갈비뼈 사이로 한번 살짝 집어넣으면 바로 심장이야. 무식한 놈들이나 단검이나 식칼 가지고 개폼 잡는 거지. 내 말 무슨 말인지 알겠어? 그 공산당원 영감 한방에 갔다는 얘기야! 눈깔이 개구리새끼처럼 튀어나오면서, 응?” 그러면서 그 칼을 바로 내 눈앞에 슥 들이대는 거야! 순간 난 심장이 멈춰버리는 줄 알았어, 정말로! 제발 더 이상 그만하라고 소리쳤지만, 무시하고 계속 그 주둥이를 놀려.
“시체 치우고 그 영감 외투로 칼끝 잘 싸서 유유히 빠져 나왔지. 물론, 그 놈 옷으로 적당히 그 놈 상처 막아주고 반듯이 눕혀줬지. 바라는 대로 열사가 되게 해 준거야. 이만 하면 친절하지? 그래, 안 그래? 그리고는 다음날 신문에 난 대로야. 다급한 나머지 그냥 토꼈어. 한 푼도 못 챙겼다고, 씨발!” 그 도둑놈 말 마치고 떠나기 전에 뭐라는 지 알아? 정말 좋은 칼이래. 피도 한 방울 안 묻는다나? 이런 죽일 놈! 완전히 인간 백정 아냐?
그래서 결국 끽 소리도 못하고 그냥 있으신 거네요? 아파트 밑으로 내려가는데 시간 좀 걸리잖아요. 문 걸어 잠그고 바로 경찰에 신고하시지 그랬어요?
남편이 옆방에 있었다니까 그러네! 도둑놈이 그걸 알잖아. 어설프게 뭐 어쩌다 남편을 해치면 어떡해? 됐어. 그 놈은 그냥 도둑놈이 아니라 짐승 같은 놈이야. 지 입으로 떠들었잖아? 결국 난 밤새 잠 한숨 못 자고 끙끙거렸어. 날이 밝고 바로 파출소에 신고를 했지. 그러고 나서 자네 집으로 곧장 온 거야.
어차피 화(禍)라는 거는 닥치기 마련이잖아요. 점은 봐서 뭐 하세요? 그게 화를 막아주는 것도 아닌데. 물론 <<역경>>이 일정한 암시를 주는 건 사실이죠. 그 암시를 보고 길흉을 가리죠. 근데, 사실 우리 잘 알잖아요? 세상만사는 길과 흉이 모두 있다는 거. 하기야, 사람이면 그런 상황에 처하게 되면 쩔쩔매는 게 일반적이죠. 뻔히 이렇게 해야 된다는 게 보여도 고개도 못 들죠.
그만 둬! 자네 나한테 점 봐 줄 생각 없는 거지? 그래서 은근히 이 늙은이를 꼬집는 거지? 자네 말대로 라면, <<역경>>은 아예 있을 필요도 없고, 옛날부터 그걸로 운명을 점치는 것도 다 쓸데없는 짓이었네? 응?
어르신 제 말씀을 오해하셨군요. <<주역>>은 본래 주나라 문왕3)이 감옥에 갇혀서 생사를 점칠 수 없을 때, 복희씨의 팔괘4)를 기본으로 생각해 낸 거죠. 그 때 감옥에는 작은 창문 하나뿐이었는데, 문왕은 그 작은 창을 통해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천체현상을 관측하고는 천지일월의 순환과 왕복을 깨달았죠. 비록 인간이라 미약한 존재지만, 그러한 가운데서도 문왕은 대우주의 순환과 왕복을 경험했죠. 세상의 순환과 인간의 순환이 깊고 깊은 곳에서 만나면서 우리의 길흉화복을 결정한다는 겁니다. 이렇듯 운명은 되돌릴 수도 없지만, 어떻게 보면 또 헤아릴 수도 있는 거거든요.
자네 얘기 정말 현학적이군. 하지만 도둑놈이 그걸 어떻게 알아? 돈 밖에 모르지.
선생님도 그런 말씀을 하시나요? 아직도 기억나는 게 어릴 적 개구쟁이일 때 한 번은 집에서 몰래 10위안을 훔친 적이 있어요. 그 때만 해도 10위안이면 3인 한 가족 반 달치 생활비는 되었죠. 그 벌로 아버지가 빨래판에 꿇어 앉아 있게 했어요. 그 때 선생님이 달려 오셔서 절 구해 주셨죠. 그 때 선생님이 제 까까머리를 쓰다듬으시면서 “애들은, 잘 타이르면 돼요. 잘못은 고치면 돼요. 감옥에 있는 죄수들도 그런데요, 뭘.” 라고 말씀하셨잖아요.
근데, 어머니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려주신 얘기가 있어요. 뭐냐면, 어떤 애가 있었는데 바늘을 하나 훔쳐서 집에 갔대요. 근데 그 엄마가 야단을 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우리 애가 똑똑하다고 칭찬을 한 거예요. 그 다음에 그 애가 엄마가 눈감아주니까 닭도 훔치고 개도 훔치고 장난이 아닌 거예요. 나중에는 점점 얘가 간덩이가 부어 가지고 결국 살인이고 뭐고 안 가리는 강도가 되어 버린 거죠.
결국 경찰에 잡혀가지고 극형을 받게 되었어요. 형을 받을 즈음 그 강도가 엄마에게 마지막으로 젖 좀 달라고 했어요. 자기 새끼 안 아픈 엄마가 어디 있겠어요? 결국 망나니가 말렸지만 그 엄마가 가슴을 열고 그 애를 가슴에 꼭 껴안고 젖을 물렸죠. 그런데, 그 나쁜 놈이 자기 엄마 젖꼭지를 그만 물어뜯어 버리고 만 거예요. 그 강도 놈이 자기 엄마가 처음 바늘을 훔쳤을 때 엄하게 야단을 치지 않아서 자기 신세가 이 꼴이 되어 버렸다고 원망한 거죠.
오호, 그래서 자네는 그런 가정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강도가 안 되고 강도얘기를 쓰는 작가 되었단 말이지? 참, 내. 하지만 문제는 말이야, 자네 같으면 문을 따고 들어오는 도둑놈한테 금방 말한 그런 얘기를 해 줄 수 있겠어?
그건 선생님 말씀이 맞아요. 되레 그 도둑놈이 어르신한테 얘기를 들려줬죠.
솔직히 말하면, 그 도둑놈이 나한테 수업 한 시간 해준 거나 다름없어. 그것 때문에 또 여기 와서 자네한테 내 점 좀 봐 달라고 하는 거지.
일이 터지기 전에 뭔가 불길한 느낌 같은 건 별로 없었나 보죠?
우레가 막 쏟아지다가 마치 달빛이 씻어 버린 듯이 갑자기 날이 개이고 그랬어. 조금 전에 말한 대로야. 평소 저녁에 아파트 밑에서 술 한 잔 걸치고 사람들 하고 노닥거리면 새벽녘까지 있는 건 보통이야. 술 먹기 내기 하면 시간이 후딱 지나가지. 그 날은 날씨가 평소와 달라서인지 포장마차도 일찍 걷었더만. 새벽 2시쯤인가 비가 그쳤어. 창문을 여니까 공기가 참 시원하더군. 사방이 어찌나 조용한지 낙엽 떨어지는 소리도 들릴 정도였으니까. 그래서 오늘밤은 푹 잘 수 있겠구나 생각했던 거지.
밑에 층 개가 짖는 소리도 안 들렸나요?
그거 애완견이야. 무슨 일이 있든 없든 일단 짖고 보는 놈이야. 왕씨가 침대에서 일어나서는 자기 개더러, 미친 놈 지랄한다고 욕하는 소리는 들리더라고. 그러니 별 일 아니다 생각한 거지. 그 때 난 침대 등만 켜고 책을 좀 보는 중이었어. 그거 오래된 습관이거든. 차이즈중5)이 그린 <선설(禪說)>이란 만화를 보고 있었던 거지.
<선설>이요? 거기에 이런 얘기 나오죠, 아마? 어떤 도둑놈이 절에 있는 중을 털러가는 얘기요. 중이 꼼짝도 안 하고 누워서는 두 눈을 빤히 뜨고 도둑놈이 정신없이 이러 저리 뒤지는 걸 바라보는데, 그 도둑놈 값나가는 거 아무 것도 못 찾았어요. 출가한 중이 돈 되는 게 어디 있겠어요? 도둑이 낙담해서 절을 나오다가 창문 밖에 걸어 놓은 그 중 가사(袈裟)를 보고는 그거라도 가져가자고 끄집어 내렸죠.
그걸 보고는 중이 못 참고 바로 일어서더니 도둑놈 보고 그 자리에 멈춰라고 고함을 쳤어요. 자기 고쟁이마저 벗어서 도둑놈에게 줄 요량이었죠. 근데 그 도둑놈, 중 고함 소리에 놀라서 혼비백산해서 연기처럼 사라져 버린 거예요. 그 중 하는 수 없이 웃통을 벗은 채 텅 빈 절에서 탄식하면 하는 말이, “이 불쌍한 도둑놈아! 너한테 저 하늘의 달도 따 줄 수 있으면 좋으련만!” 하고 말했대요.
자네 기억력 정말 좋네! 그래, 그래, 그 안에 그런 얘기가 있는 것 같아.
어르신 창 밖에도 달이 있었던 거죠.
자네 말은 내가 침대에 드러누워서 꼼짝 말고 있어야 했다는 얘긴가? 아님, 있는 거 없는 거 톡톡 털어서 그 놈에게 줬어야 했다는 얘긴가? 자네는 참 세상물정 모르는 사람이야. 그 도둑하고 그 도둑은 달라. 현실에는 그런 운치 있는 일은 없는 거야, 이 사람아!
이미 지난 일이잖아요. 지난 간 일은 그냥 지나 간 일로 두시죠. 제 말씀은 선생님 지금 심적인 상태를 말씀드리는 거예요. 그래도 점보고 싶으세요?
사실 잘 모르겠어.
<震>자 다음 괘는 <艮>자에요. 산처럼 정지(靜止)하다는 뜻이죠. 어르신 이미 경찰에 신고도 하셨으니, 이제 더 하고 싶은 일이 없으신 거죠.
1) 대련(對聯). 한 쌍의 대구의 글귀를 종이나 천에 쓰거나 나무 기둥 따위에 새긴 것.
2) 책에 이르는 길이 있는데 부지런함이 그 도경이고, 배움에는 끝이 없는데 노력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3) 문왕(文王). 은(殷)나라 주(紂)왕을 몰아내고 주(周)나라를 세운 인물.
4) 복희(伏羲). 중국 고대 전설의 제왕으로 삼황오제의 한 명이다. 팔괘(八卦)를 고안하고 그물을 발명했으며 결혼제도를 고안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5) 차이즈중(蔡志忠). 대만의 인기 만화가로 특히 중국 고전을 쉽게 풀어 그린 만화로 유명하다.
Writer & Interviwer
라오웨이(老威): 본명 랴오이우(廖亦武)
70년대말부터 시를 짓기 시작하여 각종 문학상을 받음. 89년 톈안먼(天安門) 사건을 맞아 시 <<大屠殺>>을 발표. 1990년 톈안문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安魂>>제작에 참여하다 처음으로 체포되어 4년 형을 받음. 1994년 출옥 후 고향인 청두(成都)의 찻집과 술집을 전전하며 악기를 연주하며 생계를 이어감. 1995년 공안에 의해 가택수색을 당하고 원고들을 압류당함. 동년 유명 지식인 12명과 함께 全國人民代表大會에 반부패 관련 건의를 함. 1998년 중국 70년대 지하 시를 편한 <<沈淪的聖典-中國20世紀70年代地下詩歌遺照>>내고 베이징에서 구류당함. 1999년 결혼식 직전에 “불법인터뷰” 혐의로 구속. 동년 인터뷰의 일부분을 익명으로 출판되어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킨 후, 책은 판금당함. 2001년 1월 1990년~2001년 기간에 완성한 인터뷰를 기반으로 60여명의 인물을 대상으로 한 <<中國底層訪談錄>>을 재출판하여 또다시 큰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킴. 2001년 중국 유명 일간지 <<南方週末>>에 <<中國底層訪談錄>>관련 대담이 실린 후 당국에 의해 동 신문사 주편집 부편집 편집주임 편집부주임 등이 정직처분을 당함. 2003년 여름 프랑스 bleu de chine 출판사에서 <<中國底層訪談錄>>을 선별 번역한 <>의 출판기념회 참석을 출국하려다 사스예방을 이유로 공안당국에 의해 출국금지 당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