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교박람> (1)잡지사에서 기자 일을 할 때 학교를 그만 둔 애들을 꽤 알고 지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친구들이 별 다른 문제가 있는 건 아니고 지극히 평범한 애들이었다. 애들 사회라는 건 어른들 사회하고 똑같다고 보면 된다.
1998년 1월 16일 정오, 청두 쥬옌교(九眼橋) 부근에서 이 14살짜리 유랑아를 만났다. 마치 고리키의 어린 시절을 생각나게 하는 애였다.
특별히 교육에 대해서 뭐 말하고 싶은 건 아니다. 책 팔아서 먹고 사는 교육 전문가들의 밥그릇을 뺏을 생각은 더더욱 아니다. 왜냐면, 난 도리어 어린 유랑아로부터 한참동안 교육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 아이의 생존능력이 학교에서 공부만 하는 또래 애들에 비해서 훨씬 강하다는 것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 아이는 내게 교육의 의미를 설명해줬다. 근데, 바로 이 문제는 대학에서 포스트모더니즘 이론 연구자가 죽어라 파고 있는 바로 그 주제인 것이다.
빨랑 말 못해? 너 이름이 뭐야? 집은 어딘데? 날씨가 추운데 그렇게 얇게 입고, 아프면 어떡하려고?
싫다니까요!
너 그럼 경찰 아저씨한테 넘긴다.
넘길 테면 넘겨봐요! 두 번씩이나 도망쳤어요, 파출소에서. 아빠가 날 데리고 간 적도 두 번이나 돼요. 그럼 뭘 해요? 바로 도망쳤는데요. 어쩔 건데요?
너 아주 고약한 녀석이구나.
TV에도 나왔다구요, 나. 뭐. 설날 때 경찰들이 기차역 주변에서 쓸데없이 부랑자 단속한 적 있어요. 그 때 나도 잡혔죠. 아주, 좋아요. 먹여주고 입혀 주던데요? 그러고는 어디로 보낼까 수군거리던데요. 그 때 방송 탔죠.
그거 별로 폼 나는 일이 아닌데.
뭐가 폼 안나요? 아저씨는 TV 나온 적 없죠?
이렇게 밖으로 싸돌아다니면 부모님 걱정 안 하시냐?
별로 걱정들 안 해요.
그걸 어떻게 알아?
학교 같은 거 갈 생각 없거든요, 나.
이것 참 야단났구먼. 너같이 큰 애가 공부도 안 하고, 응? 밖에서 나쁜 짓만 배울 텐데.
돈이 있어야 학교 다니죠! 아빠 엄마는 모두 잘렸는데.
잘린 사람이 어디 한 둘이야? 그렇다고, 그 사람 애들 모두 학교 안 가나? 다녀, 다닌다고! 너 아빠 엄마 아직 젊으시지? 그럼 다른 일 잡는 거 별 문제없을 거야.
우리 아빠 엄마는 구두공장에 다녔어요. 근데 월급을 못 주니까 구두로 때웠대요. 이게 말이 돼요? 그래서 집에 엄청 싸 들고 왔어요. 자기들 직접 나가서 팔기가 쪽 팔리잖아요? 나하고 동생을 시켜요. 길거리에서 팔라구요. 한 켤레 30위안씩. 누구는 목이 터져라 구두 파는데 아빠는 숨어 있어요. 너무 한 거 아녜요? 그러다 한번은 도시 관리원이 단속을 나왔어요. 당연히 난리가 났죠. 모두 물건 챙기고 짊어지고 토꼈죠. 우린 어려서 도망가다가 바로 붙잡혔죠. 구두는 당연히 압수죠. 울며불며 매달려도 소용없어요. 그 못된 인간 상대도 안 해요, 우릴. 고래고래 소릴 지르며 “어른들 어딨어? 빨리 안 나와! 애들한테 이런 짓을 시켜?”
결국 숨어있던 아빠가 나왔죠. 나하고 동생 손을 비틀어 쥐고는 도시 관리원에게 와락 밀어 버렸어요. 그리고는 자기 가슴을 쾅쾅 때리면서 말했죠. “그래, 씨발! 우리 무허가다. 왜, 어쩔래? 우리 애들 잡아가면 될 거 아냐! 데려가, 데려가! 공장 망해서 받은 월급이 이거다. 이거 몰수하면, 당신이 우리 먹고 사는 거 책임질 거야! 응?”
아빠 말은 들은 체 만 체예요. 도시 관리원이 뭐 저런 자식이 다 있어 하면서 막 삿대질을 하는 거예요. 그래서 아빠가 우릴 보고 그 사람한테 붙잡고 매달리라고 시켜요. 그 말을 듣더니 그 사람 깜짝 놀라서 도망가 버렸어요.
너 세상물정을 좀 아네? 집으로 돌아가. 돌아가서 공부하다 남는 시간에 집안일을 좀 도와드려. 그러면 부모님이 얼마나 고생하시는가 알게 될 거다. 공부는 기회를 놓치면 안 돼.
공부? 공부 같은 거 생각 없어요.
왜?
한번은요. 아빠가 또 시켜요! 정말! 운동화 학교 앞에서 팔라고. 학생들이 좋아할 신발이다 이거죠. 저번에 그런 일이 있었는데. 열 받아요 안 받아요? 못 간다고 버텼죠. 애들한테 놀림감 될 거 뻔하잖아요? 하지만 아빠가 “임마, 이거 애들한테 딱 팔기 좋아. 친구들이면 더 쉽고. 그리고 야, 이 자식아!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쪽 팔리는 게 어딨어?” 아빠는 잘린 다음에 맨날 술이고, 뻑 하면 우리한테 화풀이에요.
하는 수 없이 신발을 들고 나갔죠. 근데, 죽어도 학교 앞에서 못 팔겠어요. 구석에 좌판을 깔고 쭈그리고 앉았죠. 나중에 아빠가 따라 왔어요. 귀를 잡고 날 일으켜 세우더니 나더러 말 안 듣는다고 막 뭐라 해요. 바로 대꾸했죠. “어른들만 체면 있어요? 우리도 체면 있어요! 신발 판다고 학교도 못 갔는데!” 결국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죠. 아빠 때문에 얼마나 속이 상했는지. 학교도 사회랑 똑같다는 걸 왜 몰라요? 돈만 있으면 뭐든지 돼요. 가난한 집 애들은 무시당한다구요. 선생이란 사람들도 돈 많고 똑똑한 애들만 좋아해요.
내가 울면서 개기니까, 아빠가 “알았어, 임마. 내가 팔지. 가는 김에 너 선생 만나서 학비 어떻게 좀 깎아줄 수 있는지 물어봐야지. 요즘 잘린 사람이 한 둘이 아니니까, 선생도 신경 쫌 써 주겠지.” 그래요. 근데, 이번엔 또 엄마가 와서 아빠하고 한판 붙었어요. 엄마는 인력시장에서 취업을 했어요. 보증금 걸고 여드름 약 한 상자 가지고 온 거예요.
엄마가 날 타일러요. “이거 여중생한테 딱 좋은 여드름약이거든? 사춘기 계집애들 여드름 엄청 짜증나잖아? 몇 번만 몰래 숨겨서 학교 가서 팔아봐, 응? 여자애들한테 조금씩 찍어 바르라고 해봐. 되게 좋아할 걸?” 이번엔 엄마까지! 엄마 밀쳐 버리고 아무 말도 안 했어요. 엄마가 또 이래요. “가기 쪽 팔리면, 엄마가 갈게. 걔들 주소하고 전화번호 적어 줘. 응? 나도 어쩔 수가 없어. 인력시장 가 봐. 구인광고 그렇게 많아도, 태반이 외판원이야. 이삼십 대 대졸 애들도 취업을 못 해서 난리인데, 나 같은 사십대 초반에다가 잘린 여공이 어디 쉬워? 이런 임시직이라도 어디야?”
난 몸을 확 돌려 바로 뛰쳐나왔어요. 두 번 다시 집에 갈 생각 없어요.
학교에서 너 이러는 거 알지?
방송도 탔다니까 그러시네. 학교에서 어떻게 모르겠어요? 난 우리 반 담임이 정말 싫어요. 그 인간 돈 있는 부모들만 상대해요. 나 같이 가난한 애들한테는 얼마나 더럽게 구는데요?
만약에 어떤 착한 사람이 너 공부하는 거 돈 대주면 어떡할래?
그래도 공부할 생각 없어요. 난 사람들이 이상한 눈으로 날 쳐다보는 게 싫어요.
그건 또 뭐야? 너 <고옥보>(2) 봤어? 거기 보면 주인공이 잠도 못 자고 지주네 머슴살이 하지만, 언제나 공부하려고 하잖아.
<반야계교>(3) 는 읽어 봤어요. 옛날 얘기잖아요? 요즘 사장들 못 배운 인간들은 꼭 거기 나오는 지주 새끼 같아요. 힘 좀 있다고 제멋대로죠.
좋다. 그건 너 말이 맞는다고 치자. 근데 암만 봐도 너 장래는 별 볼일 없는 것 같은데.
그런 소리 하지 마요! 뛰쳐나올 때 땡전 한 푼 없었어요. 그래도 개긴 게 도대체 몇 달째예요? 날 애들 취급하지 말아요. 어른들이라고 뭐 별 볼일 있어요?
이렇게 밖에서 빈둥거리면 나중에 뭐 먹고 살래? 넝마주이 될래? 거지 될래?
일하죠 뭐.
너 겨우 열네 살인데. 미성년자 취업은 불법이야.
그건 아저씨가 몰라서 하는 소리에요! 식당에서 반년 동안 서빙도 했는데요? 사장 아줌마도 잘린 사람인데, 정말 잘 해줬어요. 먹여주고 재워주고. 거기다 한 달에 200위안씩 월급까지. 나중엔 자길 엄마처럼 대하래요. 날 데리고 노래방에도 놀러 다녔죠. 거기 있는 아가씨들 나보다 어린 애들 수억이예요. 모르죠? 디스코텍 가는 거 정말 좋아요. 애들하고 디스코를 추면 아무 생각 없어요. 디스코텍엔 중학생도 많아요. 모두 대만이나 홍콩 스타들 팬이죠.
그 아줌마가 너한테 참 잘해줬구나.
그래요. 술도 줬어요. 같이 자기도 했어요. 처음엔 각자 이불을 덮고 자요. 내가 잠들면 슬그머니 날 만져요. 내 좆을요. 하도 만져서 결국 그냥 팬티에 싸 버렸죠. 아줌마하고 같이 자기 싫은데. 아예 꼭 껴안고 안 놔줘요. 그게 무서워서 그냥 도망쳤죠.
그러다가 역 앞에서 학교 때려치운 애를 알게 됐어요. 이름이 셰민(謝敏)이예요, 셰민. 서로 동갑인데 고향이 스?x(石棉)이죠. 걔 아빠도 광산에서 잘렸는데 하도 가난해서 입을 옷 도 없었다나요? 결국 뛰쳐나온 거죠. 의형제를 맺었죠, 우리끼리. 그리고는 같이 충칭(重慶) 가서 조폭이 되려고 했죠. 충칭에 도착하긴 했는데 어딘지 우리가 어떻게 알아요. 하루 종일 역 앞하고 부두에서 헤매면서 물어보았죠. 솔직히 그 때 너무 힘들고 배고파 죽을 뻔했어요.
결국 경찰한테 자수를 했죠. 걔가 그러자고 해서요. 경찰들이 밥을 주더니 주소하고 전화번호를 물어봐요. 셰민이 “우린 도둑놈이에요. 그래서 자수하러 왔어요.”라고 딴청을 피웠죠. 경찰이 피식 웃더니 “오, 그러셔? 이 동네 도둑놈들은 내가 꽉 잡고 있지. 근데 너희는 어떻게 처음 보지?” 물어봐요. 또 구라를 쳤죠. “우리 청두에서 도둑질하면서 여기까지 왔어요. 충칭에서 조직에 들어가려고요.”라고. 그랬더니, 경찰이 버럭 화를 내더니 “이놈들 자꾸 쓸데없는 소리 할래? 이렇게 가출하면 집에서 얼마나 걱정하는 줄 알아?” 하면서 막 야단치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말했죠. “아저씨 우리 좀 잡아가세요! 네?” 그러니까, 경찰이 “무슨 나쁜 짓 했는데? 뭘로 너희들 잡아넣어?”라고 되물어봐요. 이번엔 내가 “나쁜 짓 했다니까요? 돈을 몇 백 원씩이나 훔쳤다니까요?”라고 구라를 쳤죠. 경찰이 다시 “뭘 훔쳤는데?” 라고 묻길래, 할 말이 없어서 그냥 “가방을 슬쩍했어요, 그럼 된 거 아녜요?” 하고 대꾸했죠. 경찰이 웃긴다는 표정으로, “안창따기야? 아님, 빽따기야? 줄은 쓰기나 한 거야?”라고 물어요. 그게 무슨 말인 알 수가 없어요. 그래서 “아저씨 그게 무슨 말인데요?” 라고 바보같이 물어봤죠. 경찰이 푸하하 웃더니 “도둑놈들이 그런 말도 몰라? 가방을 슬쩍 했다고? 요놈들! 확, 그냥. 됐다. 오늘은 여기서 자! 내일 아침에 청두로 보내 줄 테니. 그쪽 경찰들이 처리해 줄 거다.”라고 하더군요.
이 말을 듣고 일제히 “우린 절대 집에 안 가요!”라고 소리쳤죠. 경찰이 탁자를 쾅! 치면서 “요놈들! 맞을래?” 하더니, 다음부터는 아예 상대도 안 해요. 우리는 귓속말로 몰래 얘기했죠. 아무래도 청두로 돌아가는 거 말고 방법이 없어요. 그래서 경찰한테 잘 못 했다고 빌었죠. 다음날 우릴 역으로 데려가서는 무료로 기차에 태워줬어요.
청두에 돌아오니 갑자기 집 생각이 나요. 몰래 한 번 가 봤죠. 집에 들어가기도 전에 안에서 아빠 엄마가 한바탕 하는 소리가 들리더군요. 잡히는 대로 마구 집어 던지면서 장난이 아니에요. 어휴, 씨발!
길거리를 밤새 돌아다니다가 남문 버스 터미널에서 셰민을 다시 만났어요. 예닐곱 명쯤 되는 거지 애들이랑 분위기 아주 좋아요. 날 보더니 “조직은 아직 못 찾았어. 우리가 하나 만들지 뭐. 흑룡방(黑龍幇)이라고 하자. 어때? 니가 제일 크니까 왕초를 해라. 우리 모두 널 형님으로 모시지, 뭐” 하더군요. “왜 흑룡방이야?” 물었더니, “세수도 못 하고 다니잖아, 우리? 옷 벗으면 모두 ‘흑룡‘일 걸?” 라고 했어요. 거지 애들이 이 소릴 듣더니 모두 하하 웃고는, 날 둘러싸고는 형님! 하더군요.
너희들 그렇게 모여 살면 생활을 어떻게 하냐?
동고동락 하는 거죠 뭐. 같이 태어나진 못 했어도, 죽을 땐 같이 죽자고 맹세했죠.
영화에서 본 거지?
난 성룡 원표, 셰민은 이연걸을 좋아하죠.
밥 먹을 돈은 어떻게 하니?
때리고 삥 뜯는 거죠. 양산박(梁山泊) 호걸들처럼요.
어디 한 번 들어 보자.
학교가 쥬옌교 옆에 있었는데, 그 때 그 동네 형들한테 몇 번 돈을 뜯겼죠. 나오기만 하면 그냥 가져가요. 책가방 탈탈 털면서 뒤지기도 해요. 한 번은 오후에 친구들 몇 명이랑 쓰촨대학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중학생 몇 명이 나타났어요. 모두들 옷을 껄렁하게 확 풀어헤쳤어요. 꼭 어디 영화에 나오는 보디가드들 같아요. 우리를 천천히 둘러싸더니 돈을 내 놓으래요. 없다고 하니까 애들을 꿇어앉히고는 그냥 두들겨 패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러다 잠시 멈추더니 왕초 같은 놈이 티셔츠를 모두 벗겨요. 그러더니, 씨익 웃으며 “이 옷, 우리가 좀 빌리자.” 그래요. 싫다고 했더니, 바로 내 귀싸대기를 날리고는, “씨발놈들 어느 학교야?”라고 물어요. 어디라고 대답했더니, “몇 학년이야? 뤄다밍(羅大明) 알아 몰라?” 또 다그쳐 물어요. 걔 우리 반 애예요. “뤄다밍도 우리한테 보호비를 바쳐. 한 달에 30위안. 알아 몰라? 누가 걔 겁주면 우리가 걔를 도와주지. 너희들도 보호비 바쳐라. 안내면, 우리가 직접 가서 받는다, 응?”
그 옆에서는 어떤 놈이 가방을 뒤져서 값나가는 걸 모두 챙겨요. 그리고는 우리한테 노래도 시키고, 안 부르면 두들겨 패고 소리가 작아도 두들겨 팼어요. 엎드려뻗쳐를 시키고는 돌아가면서 20대씩 발로 막 찼어요. 그 다음엔 여자 변소로 줄줄이 들어가게 했어요. 솔직히 씨발 그때 난 그 놈들 하고 한 판 붙으려고 했어요. 그런데 칼을 들고 있어요, 그 새끼들. 변소에서 팬티만 남기고 바지까지 모두 벗겨요. 정말 열 받고 무서워서 죽을 뻔 했어요.
학교 교무주임이 파출소에 신고했죠. 경찰들이 뭐라는 줄 알아요? “어쩔 수가 없소. 우리 인력도 부족하고, 그냥 학교 근처 며칠 순찰이나 시키죠. 솔직히 걔들 잡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잡는다 해도 모두 애들이라 노동개조 보낼 수도 없고, 보내 봤자 더 못 된 것만 배울 게 뻔해요.” 그 때 내가 경찰한테 물어봤죠. “아저씨 아들이 삥 뜯겨도 이렇게 할 건가요? 네?” 파출소장이 쓴 웃음을 지으면 하는 말이, “나도 뭐 신고하는 거 말고는 없지.”
그거하고 양산박 호걸들 무슨 상관이 있어?
예전에 삥 뜯겼지만, 지금은 난 흑룡방 왕초에요. 그러니, 뜯긴 걸 다시 찾아야죠, 씨발. 안 그래요? 어떤 놈들은 자기 부모 믿고 엄청 잘난 체 해요. 요즘 그런 새끼들 돈을 “빌려” 쓰죠. 너희들도 한번 당해 봐라 이거죠.
한 번은 삐리한 놈 하나가 걸렸죠. 돈이 없어요. 한참 뒤졌는데 몇 푼 안돼요. 열 받아서 줘 팼죠. 그랬더니, 한번만 살려 달래요. 지금 마침 집에 아무도 없으니까 집에 같이 가서 돈 가져가라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개소리하지 말고 우리 흑룡방에 들어오라고 협박했죠. 어라, 근데 이 새끼가 좋다네요? 100위안씩 월 회비를 내야 된다고 했더니, 자기가 돈이 어디있녜요. 너희 아버지가 국장(局長)이니까 돈 많을 것 아냐 이 새끼야 그랬죠. 자기 아버지는 그냥 월급뿐이래요. 뇌물 같은 거 안 받는데요.
셰민이 이 말에 열 받아가지고, 요즘 세상에 뇌물 안 받는 놈이 어딨냐고 소리를 질렀죠. 너희 아버지처럼 깨끗한 척 하는 놈들이 바로 우리 부모 자른 새끼들이라고 고래고래 고함을 쳤죠. 옆에 있는 애들도 함께 열 받아서 그 자식을 완전히 작살을 냈어요. 결국 다음날 100위안을 바치더군요.
너희들 그거 범죄라는 거 알지?
그래봤자, 난 겨우 열네 살인데요? 왜요? 어쩔 건데요?
공두학교(4)나 소년범관리소(5)에 보내버리지. 2년 전에 <가교박람>잡지에서 편집할 때 삥 뜯긴 애들 하소연하는 편지가 얼마나 많은지 몰라. 너희 놈들이 바로 그 강도들이구만.
청두에 우리 같은 애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학교 다니는 애들도 있고 가출 나온 애들도 골고루 다 있어요. 모두 잡아들이면 공두학교 한두 개로 안 될걸요? 잡혀가도 공두학교가 정말 좋죠. 그거 모르죠, 아저씨? 먹여주죠, 입혀주죠. 공부도 시켜주죠, 돈도 안 받죠. 선생들한테 돈 찔러 줄 필요가 있어요? 학교에서 이런저런 구실로 돈을 뜯어가요? 사실 요즘 나 공두학교 가고 싶어 죽겠어요. 좀 넣어줘요, 네? 소년관리소는 나이가 많아서 못 들어가니까.
들어가서 뭘 하냐. 일단 친구를 사귀는 거죠. 영화 보면 한 번씩은 다 감옥에 갔다 오잖아요? 그런 경력이 없으면 애들 앞에서 자세가 안 나와요. 셰민하고는 이미 얘기 다 끝났어요. 열다섯 여섯 살쯤 되서 한 번 갔다 오기로요. 많이 배워서 나와야죠.
하지만! 우릴 막무가내로 돈 뜯는 놈들하고 비교하지 마세요. 원칙이 있죠. 부모가 잘린 애들은 안 뜯어요. 조별로 나눠서 돈 많은 새끼들만 뜯죠. 사실 그런 새끼들은 항상 어른들이 같이 있어요. 그러니 혼자 돌아다닐 때를 잡아야하는데 쉽진 않아요. 하지만 한번 걸렸다. 왕창 뜯어내죠.
한 번은 온 몸에 명품으로 처 바른 소학생 놈 하나를 완전히 작살낸 적이 있어요. 나중에 그 놈 엉덩이까지 까 발기려고 차는데 자식이 말을 안 들어요. 팬티를 꼭 붙잡고 놓지를 않아요. 하는 수 없이 그 놈을 구덩이에 처넣어 버렸죠.
너희 놈들 완전히 히틀러구만.
히틀러요? 언감생심이요! 우리 같은 애들이 어떻게 그런 사람을 감히 따라가요?
너희들 청두 제51중학교 천밍즈(陳明志) 알아?
몰라요.
걔 너희 같은 양산박 호걸놈들 때문에 죽었어.
어떡하다가요?
어떤 놈이 교문에서 걔 축구화를 뺐었어. 매달 보호비도 내라고 했나 보더라고. 못 견디고 건물에서 뛰어 내려 자살했지.
그런 애들은 어쩔 수가 없는 애들이에요.
어쩔 수가 없다니?
누가 자길 삥 뜯으면, 자기도 딴 놈한테 뜯어야죠. 그게 세상 아녜요? 맞죠? 그리고 보호비는요, 못 내겠으면 그냥 개기면 돼요.
그런다고 통해? 너 같은 놈들은 못 낸다고 해도 그냥 뜯어가잖아.
안 통하면, 칼을 쓰면 돼요.
그러다가 살인나면 어쩔라고?
난 의협심이 강한 애예요. 그런 일은 절대 안 해요. 걱정 마요.
넌 어린 애가 어떻게 그렇게 양심이 조금도 없니?
양심이 없다니요? 무슨 말을 그렇게 함부로 해요? 그럼 건물에서 뛰어내려서 자살하면 양심 있는 거예요? 선생이나 부모한테 일러바치면 양심 있는 건가요? 애들 사이 일인데, 어른들한테 일러바치면 안 되는 거죠. 어른들끼리 일도 애들한테 얘기 안 하잖아요?
너 옳고 그른 걸 가리는 것부터 좀 배워야겠다.
우리 아빠랑 똑같은 소리 하네요? 아저씨? 하기야, 아빠도 그러면서 맨날 길거리에서 구두 파는 거 시키던데요?
너 요즘 돈 뜯는 걸로 먹고 사니?
우리 요즘 애들 다니는 학교 가서 삥 뜯는 거 안 한지 오래 됐어요. 하기도 쉽지 않고 사람들한테 욕도 많이 먹고 해서요. 요즘은 멤버가 많아져서, 정기적으로 애들한테 보호비 받는 걸로 충분해요.
정기적으로 돈을 뺏는다고?
어, 오해 하지 마세요. 걔들 자기가 원해서 돈 내는 거예요. 억지로 하는 거 아니라니까요? 정부도 세금 걷고 학교도 돈 받으니까, 우리도 돈을 받는 거죠. 당연한 거죠. 돈 받고 나서, 다른 애들한테 당하면 우리가 대신 복수를 해주죠. 그래서 한 달에 몇 번 정도는 다른 놈들이랑 맞장 떠요.
솔직히, 학교도 우리한테 돈 받잖아요. 그런데, 뭐예요? 뜯기고 나면 그냥 부모한테 연락 한번 하고 애들한테 주의하라고 몇 마디하고 쫑이잖아요? 씨발, 그게 무슨 소용이 있어요? 우리는 학교처럼 안 해요. 적어도 책임감이 있죠. 어떤 새끼를 잡아야 한다, 그러면 무슨 수를 써서든 꼭 잡아서 작살내요. 알아요?
그것도 홍콩영화에서 배운 거냐?
바로 그거죠! 나 조폭영화 엄청 좋아해요. 쓰촨연합대학 뒤에 가면 동네 하나가 통째로 찻집들인데, 영화를 틀어줘요. 자리 하나에 2위안인데, 우리 같은 애들은 단골이라 1위안이면 돼요.
학교주변 단속을 그렇게 몇 번이나 하고, 신문에서 그렇게 대대적으로 계도를 해도, 너희들한테는 씨도 안 먹히는구나?
중국은 안 되는 일도 없고, 되는 일도 없잖아요?
너 같은 어린애가 그런 말을 알아?
어른들이 맨날 하는 얘기잖아요. 찻집에 앉아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죠.
너 아직도 집에 가고 싶은 생각 없어?
우리 부모가 날 보고 싶은 생각이 없는데, 내가 집에 돌아가면 뭘 해요? 나중에 부모가 제대로 된 일거리를 가지면 그때 한번 돌아가 보죠.
공부는?
왜 자꾸 물어봐요? 아까 얘기했잖아요! 공부할 생각 없다고. 뭐, 아저씨가 만약에 날 받아 준다면 따라가서 공부해 볼 수도 있죠.
다음날 바로 도망가 버리면?
도망갔다가 다시 돌아 올 수도 있는 거죠. 모두 자유인이잖아요. 누가 누굴 간섭하고 그러는 거 싫잖아요?
1) 가교박람(家敎博覽). 유아부터 고등학생까지를 대상으로 하는 가정교육 잡지.
2) 고옥보(高玉寶). 작가 가오위바오(高玉寶)의 자전적 소설로 한 소년이 지주의 학정과 일본군의 침략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성장한다는 내용으로, 작가 가오위바오 자신이 빈농출신으로 문맹이었으나 인민해방군 문예 지도로 이 소설을 쓰게 된다. 신중국을 상징하는 작품으로 간주된다.
3) 반야계교(半夜鷄叫). 역시 가오위바오가 등장하는 작품으로 악독한 지주가 하인들을 일찍부터 일을 시키려고 한밤중에 자기가 닭이 우는 소리를 흉내 내서 하인들을 깨우다가, 도리어 하인들의 꾀에 넘어가서 두들겨 맞고 하인들은 지주타도에 앞장서는 유격대가 된다는 내용.
(4) 공두학교(工讀學校). 범죄를 저지른 청소년을 교정하는 교육을 행하는 중등교육기관.
(5) 소년범관리소(少年犯管理所). 소년범에 대해 강제적인 교육개조를 행하는 시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