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 날다

퍼슨웹의 민들레사랑방 청소년 인터뷰 워크샵 이후 다시 그들을 만났다. 민들레사랑방이 어떤 곳인지 궁금했고 또 그들이 만든 인터뷰 영상 <나를 움직인 책>이 어떨지 궁금했으며 인터뷰 영상 제작 작업이 그들에게 무엇을 가져다 주었을지가 궁금했다. 이번엔 퍼슨웹이 가정집을 개조해 만든 마포구 연남동 소재 민들레사랑방을 방문했다. 대학에서 국어교육을 전공하는 퍼슨웹 북포럼 회원 김옥출 군이 동행하여 그날의 대화에 참여했다.


공숙영(“공”) ▶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시 만나게 되어 반갑고요. 오늘의 인터뷰는 두가지 목적이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지난 번에 워크샵을 가진 후에 제작하신 <나를 움직인 책> 인터뷰 영상을 보고 나서 제작 과정 및 후일담을 듣고 싶고요. 또한 지난 인터뷰에 잠깐 소개되긴 했지만 민들레사랑방이 어떤 곳인지, 여러분이 이 곳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더 알고 싶습니다. 우선 자기소개 시간부터 가집시다.

김옥출(“옥출”)  국어 선생님이 되고자 하는 사범대 학생입니다. 제 이름 옥출은 구슬 옥, 날 출, 어릴 때 5천원을 주고 할아버지가 밖에서 지어오신 이름입니다. (웃음)

한무현(“무현”)  이번 인터뷰 영상 촬영을 함께 한 고등학교 2학년 학생입니다.

박영진(“영진”) 한국 사회에 불신을 갖고 있는 19세 청년입니다. (웃음) 왜들 웃어? 난 진지한데. 꼭 써 주세요.

이채영(“채영”)  나이는 22, 여성주의에 관심 있고요. 여기 인턴 활동을 했어요.

엄진하(“진하”)  저도 22세고요. 사랑방에 5년째 있어요. 얼마 전까지 인턴으로 일했고요.

권영도(“영도”)  18세고요. 요즈음 들어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살 순 없을까 생각 중이예요. 보드만 타고 놀기만 하고 그냥 이런저런 일을 하며 돈을 벌면서 어른이 될 순 없을까 하고요.

이구용(“구용”)  나이는 20, 직업은 예술인. (웃음) 전 원래 중고등학교 때부터 인터넷 회원 가입할 때 직업란에 항상 예술인으로 기재해왔어요. 음악 영화 다방면으로 예술에 관심 많아요.

공 ▶ 우와, 멋지네요. (웃음)

옥출 ▶ 이 곳에 대해서 우선 소개해 주실래요?

진하 ▶ 민들레출판사라고 격월간으로 대안교육 잡지를 내요. 그 잡지를 읽고 출판사를 찾아가는 아이들이 생긴 거죠. 그 애들이 출판사 한 구석에서 모이고 놀고 그러면서 민들레사랑방이 태어났어요. 나중엔 독자적인 공간이 필요해서 이렇게 따로 모인 거죠. 

민들레사랑방 인터넷 홈페이지http://www.flyingmindle.or.kr/를 보면 이 곳의 연혁과 활동내용이 상세히 나와 있다. 진하의 설명처럼 민들레출판사에 자퇴생들이 오기 시작한 게 1999년이고 그들을 위한 독립된 공간이 생긴 때가 2001년이라 한다. 이 곳 연남동에는 작년 2005 3월에 둥지를 틀었다. 상담 활동, 소모임 활동, 각종 프로젝트 및 행사가 이루어지고, 멘토와 인턴이 자퇴생들과 함께 생활하며 어울린다.

 

 

원망스러워요


영진 ▶ 민들레사랑방이 자퇴생 집단의 대표격은 아니예요. 제가 많이 돌아다녀봤는데 다 많이 다르거든요.

옥출 ▶ 그럼 여기 오는 친구들은 몇 명쯤 되나요?

진하 ▶ 매주 꾸준히 오는 사람은 15명 정도인데 왔다 갔다 하는 사람까지 치면 30명 쯤.

옥출 ▶ 여기 친구들과의 관계는 어때요?

영진 ▶ 결국 제도와의 관계는 거기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와 얽히는데. 제가 자퇴하고 나서는 학교 애들과 만나기가 어려웠어요. 걔들과는 일단 시간이 안 맞아서 만나기가 어렵고. 입시교육에 찌들어 있고. 근데 여기는 동갑이 없어요. 아르바이트 하거나 직업전선에 나가 있어서 만나기가 어려워요. 소통하는 시간을 많이 갖지는 못 했어요.

옥출 ▶ 학교 생활이 그리운 적은 없어요?

영진 ▶ 학교 생활이 그립다기보다는 학교 친구들과 놀던 게 그리운 거죠. 수업 시간이 아니라 10분 휴식시간이나 점심 시간 같은 시간.

진하 ▶ 자퇴 후에 학교 가 본 적 없냐? 난 자주 놀러갔는데.

영도 ▶ 자퇴한 후에 보드 들고 학교 놀러 간 적 있는데 쫓겨났죠. 학교 있을 때도 보드 자주 탔어요. 수위 아저씨랑 술래잡기하고. 맨날 농구하고 보드타고 들어와서 선생님 얼굴 잠깐 보고 도망가고. 그게 재미있었지 수업 받고 공부하고 그건 아니예요. 나왔다고 해서 뭐 달라질 건 없구. 주위 시선에 치이구.

옥출 ▶ 규율 같은 건 있나요?

진하 ▶ 한 달에 한 번 하는 자치회의에서 규칙을 자발적으로 정해요. 소모임이건 프로젝트건 놀러가는 것이건 모두 자치회의에서 정해요.

채영 ▶ 자치회의에서 이의 제기하고 반박하고 토의해요. 가령 게임하는 게 문제되어 게임이금지거든요.

진하 ▶ 사랑방에서 애들이 고스톱을 친 적이 있어요. 보기에 좀 그랬어요. 대안학교라는 데 모여서 애들이 쌌어, 피박 이러면 웃기잖아요. 나중엔 사라졌죠


공 ▶ 민족사관학교 아시죠? 제가 들은 이야기로는 거기 학생자치기구가 대단하더군요. 법정이 있고 학생들이 검사, 변호인, 재판관 역할을 다 해요. 가령 교내 이성교제 금지 규칙이 있고, 어기는 사람 있으면 벌칙에 따라 벌을 받고…이러한 점을 놓고 마치 대단한 학생들의 자율인 것처럼 평가하기도 하나 본데, 언뜻 듣기로는 자율을 가장한 통제사회 같아요.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교사를 대리하여 스스로 통제하는.

영진 ▶ 회초리로 때리잖아요.

공 ▶ , 그래요? 끔찍하네요. 민들레에서 게임 금지, 고스톱 금지라 하셨는데요. 그냥 든 생각이 뭐냐면, 게임이나 고스톱이 바람직하다는 게 아니라, 소위 건전문화 육성이 민들레의 목적이 아니잖아요. 대안학교라 해서 이른바 바깥 사회에서 안 좋다고 하는 일을 하면 안 된다는 통제를 스스로에게 부과하여 바깥의 미풍양속이라는 기준을 의식하는 건 아닌가 해서요.

영도 ▶ 제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요. 제가 사실 주범이었거든요. 지금은 다 끊었지만. 예전엔 안 하던 게임이 없었어요. 안 된다고 느껴서 건의한 것도 저였고요. 소모임이 안 되는 거예요. 약속도 잘 안 지키고 시간이 엇갈리고. 게임 금지한 건 잘했다고 생각해요.

진하 ▶ 나쁘기 때문에 하지 마라 이런 게 아니고 방해가 되니까요. 흡연 문제도 있었는데 담배 피러 나가서 계속 안 들어오고 시간 보내고 이런 문제가 생겼어요. 지금은 옥상에서만 피우는 걸로 정했어요. 나쁘기 때문에 하지 말라는 게 아니고요. 밖에서 말하는 미풍양속의 문제가 아니라 여기 살면서 지켜야 하는 편의의 문제예요.

채영 ▶ 사랑방에 오는 건 사람을 만나는 건데 게임을 하느라 대화가 안 되는 거예요. 사실 사람 만나는 중간중간에 게임을 많이 했어요. 친목 도모 차원에서요. 근데 그러다 보니 대화가 안 돼요. 여기까지 와서 혼자 할 수 있는 게임을 하는 건 의미가 없다는 거예요. 같이 하는 건 몰라도. 누군가 게임을 하면 누군가는 소외가 되어요. 사람 만나러 왔는데 게임만 하고 있으면 할 이야기가 없고 그렇게 되면 돌아가는 거죠. 타인에 대한 관심이 적어지는 거죠. 그래서 게임은 안 된다고 생각하게 된 거죠.

진하 ▶사실 민들레사랑방은 엄밀히 말하면 자퇴생만의 모임은 아니예요. 구용이 같은 경우도 중고등학교 다 다니고 이번에 수능 시험 봤고요. 나이와 직업에 관계 없이 현 공교육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모임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이 곳의 공통점이랄까 정체성은 그것 뿐이예요. 대안학교라지만 입학과 졸업도 없고 구체적인 교육과정도 없고…. 그렇다 보니 정체성을 찾는 작업을 지금도 하고 있는 셈이죠.

공 ▶ 그렇다면 여기 오면 생기는 권리와 의무는 뭔가요?

진하 ▶ 회비 내고 자치회의에 참가하는 게 의무이고 여기 와서 무엇이건 하는 게 권리겠죠.

옥출 ▶ 규율을 안 지키면 어떻게 되죠? 규율이 싫어서 나간 친구는 없나요?

채영 ▶ 규율을 안 지키면 우리가 계속 말로 공격하거든요. 그럼 고쳐요. 시간이 걸려서 그렇지…… 규칙이 싫다기보다는 문화가 안 맞아서 못 있는 거죠.

 

옥출 ▶자체적으로 회의를 하고 여기에도 규칙이 존재하는데요. 학교 안에서도 자치적으로 이런 활동을 할 수 있다면 굳이 학교를 나오지 않아도 상관 없지 않을까요?

진하 ▶ 아뇨, 저는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옥출 ▶ 누구나 서태지가 될 순 없잖아요. 꿈을 찾으려 해도 오히려 학교 밖이 더 힘들 것 같은데……

구용 ▶ 준비 없이 나오는 게 문제죠.

진하 ▶ 준비하기 위해 그만 둘 수도 있는 거야. 내가 그랬어. 학교 그만 두고 뭐 해야지, 이게 아니고 일단 학교가 너무 싫어.

영진 ▶ 학교 다니면서 꿈을 찾기가 쉽지 않아요.

진하 ▶ 저는 고3초에 자퇴했어요. 그냥 조금만 더 참았으면 친구들처럼 대학 갔겠죠. 저는 친구들과는 다른 선택을 한 거죠. 근데 그렇기 때문에 미래에 대한 부담감이 커요. 더 잘 되어야 할 것 같은 거예요. 가족들과 친구들, 당시 선생님들에 대해서도 그렇고요. 강박이 있어요. 오히려 그대로 살았으면 부담 없이 자기 자신에게 몰입했을 것 같아요. 지금 저는 선택의 폭이 너무 좁은 것 같아요.

공 ▶ 그래서 후회스러워요?

진하 ▶ 그건 아니예요.

옥출 ▶ 선택의 폭이 좁은 건 학교를 거부해서 그런 걸 수도 있잖아요.

진하 ▶ 제 말은 갈 수 있는 데가 적다는 건데……여기서는 쉽게 어울릴 수 있지만 하다 못해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하려 해도 자연스레 너 어디 다니냐는 말이 나오고…밖에서는 대화 자체가 힘들어요. 나름대로 극복하려 하지만 콤플렉스가 되기도 하고요. 그래서 더 잘 되어야 한다는 강박이 있어요. 해가 갈수록 강박이 심해져요. 내 친구들은 대학 졸업할 때가 가까워지고 있죠.

공 ▶ 그 때 친구들을 만나긴 해요?

진하 ▶ 근데 할 이야기가 적죠. 화제가 제한되죠.

영도 ▶ 원망스러워요. 나이 많은 사람들을 원망하게 되어요. 여기 오기 전까지 멍청한 일 많이 했거든요. 분명히 학교 그만 두려는 사람들이 제 윗세대부터 있었을 텐데…… 뭔가 차곡차곡 쌓여 왔다면 훨씬 나을 텐데…… 저는 주위의 친한 어른들에게 물어보곤 해요. 학교 그만 둘 생각 없었냐고. 근데 학교 그만 두고 싶은 생각 있었지만 이런저런 이유 땜에 못 그랬다는 대답이 돌아와요. 시대의 탓을 할 수도 있죠. 묻고 싶어요. 당신들은 왜 거기까지밖에 못 했느냐고. 잘난 사람들이. 이렇게 헤매고 있는데 도와주지는 못할 망정 학교 다시 가라, 너 선택 잘 못 했어, 어쩔 수 없다, 이게 현실이다 사회다 이런 소리나 하고.

진하 ▶ 네가 해야지 뭐. 늘 우리가 이야기하는 거잖아.

영도 ▶ 근데 말할 때마다 화가 나. 

 

학교와 군대

 

옥출 ▶ 교복 입은 친구가 있네요.

무현 ▶ 학교 다녀요. 원래 사랑방 사람은 아니지만 이번 영상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었어요.

옥출 ▶ 여기 좋은 것 같아요? 학교랑 비교해서?

무현 ▶ , 좋아요. 마음껏 있을 수 있고 책도 많고.

구용 ▶ 촬영편집에 인력이 부족해서 중학교 방송반 후배인 무현을 불렀어요.

공 ▶ 학교 안 다니는 민들레 여러분 입장에서 학교 다니는 친구 보면 어때요?

일동 ▶ 아무렇지도 않아요. 아무 생각 없어요. (웃음)

영진 ▶ 저도 한 3주 전에 교복 입어봤어요. 그냥 입어봤는데 딱 이틀 입으니 식상하더라구요.

구용 ▶ 진하도 그래요. 툭 하면 교복 입어요. 교복 다려 놓고.

영진 ▶ 자퇴생들 다 그래요.

진하 ▶ 학교는 싫어서 그만 두었지만 향수가 있어요. 학생으로서의 교복이 아니라 10대 후반에만 입을 수 있는 옷이라는 이미지가 있잖아요. 괜히 객기 부려보는 거죠.

옥출 ▶ 선뜻 이해가 안 되네요. 학교는 싫고 교복은 입고 싶고. 교복 입고 나가면 사람들이 학생으로 보겠네요?

진하 ▶ 그게 재미있죠. 교복은 입었지만 학생은 아니구. 주위 사람들 예상을 배반하는 거죠.

공 ▶ 전지현 나오는 영화 <엽기적인 그녀> 같네요. 교복 입구 나이트클럽 가서 제지하는 직원에게 주민등록증 보여주고 들어가서 춤추잖아요.

영진 ▶ 저 같은 경우 교복 입을 때 그냥 입는 게 아니라 제 식으로 스타일을 내요. 헤어밴드 하거나 귀걸이 하고 교복 입으면 불량해 보여요. 그러면 어필하는 게 있죠. 그냥 교복만 입으면 재미 없죠. 학교 다닐 땐 억압이 심해서 자기표현이 없으니까.

구용 ▶ 군대랑 학교랑 똑같아. 군복도 그렇고. 군대 다녀 오면 군대 그리워하잖아.

영진 ▶ 남자들 다 그렇다고 생각하지 말았으면 좋겠어. 학교가 그리워서가 아니라 교복에 대한 향수가 있어서 입는 것뿐이야.

구용 ▶ 한국 남자면 다 마초적인 성향이 있다고 봐.

영진 ▶ 남자라고 다 마초가 아니야.

옥출 ▶ 군대 갈 거죠?

영진 ▶ 가기 싫지만 끌려가는 거죠.

공 ▶ 병역거부까지는 엄두가 안 나죠?

영진 ▶ 저는 그런 사상은 없어요. 누가 공격하면 방어는 해야 하기 때문에……

옥출 ▶ 저는 군대도 다녀왔는데 학교보다 군대가 더 안 좋거든요. (웃음) 거기 생활은 어떨 것 같아요? 무조건 일단 참아요?

영진 ▶ 저는 못 참을 것 같아요. 군대 다녀온 사람들 만나봤는데……패는데 가만히 있어야 해요?

옥출 ▶ 무수히 많은 남자들이 거기 가서 맞아요.

영진 ▶ 그 방식이 맘에 안 들어요. 병역거부자들 안 좋게 보는 사람들 기본 생각이 우리는 다녀왔는데 너희는 왜 거부해, 이거 같아요.

옥출 ▶ 군대가 어쨌거나 유지되어야 하는데 모두가 영진 씨처럼 생각하면 유지가 될까요? 분단 상황인 이상 당장 안 바뀔 거거든요. 학교 생활에 비해 더 견디기 어려운데…… 훨씬 더 어려운데……

공 ▶ 거칠게 말해서 학교 생활도 못 버텼는데 군대 생활은 어떻게 할 거냐 이런 건가요?

영진 ▶ 학교 생활을 못 버틴 게 아니라 제가 자발적으로 거부한 거예요

공 ▶ 학교는 어쨌거나 빠져 나올 수 있고 학교 그만 둔다고 잡아가지는 않죠. 군대는 생물학적 남성이라면 가야 하고 병역 거부하거나 탈영하면 불법이 되니까요. 군대거부가 학교거부보다 더 힘든 문제인 것 같아요.

구용 ▶ 제 경우는요, 선생님들은 되게 좋았지만 학교는 싫었어요. 그래서 제가 주로 학교 밖을 돌았거든요. 그러다 보니, 오히려 저는 군대에 대한 환상이 있다고 해야 할까, 시간을 버리는 건 있지만 엄청나게 규율화된 사회에 들어가고 싶다는 환상이 있어요.

옥출 ▶ 학교는 인정하기 어렵지만 군대는 인정한다?

진하 ▶ 군대도 인정할 수 없지만 어쩔 수 없이 가는 게 아니고?

구용 ▶ 형들이 그러더라구요. 너는 들어가면 각 잡혀 나올 거다, 찍혀 나올 거다……

공 ▶ 아 마초구나! (웃음)

구용 ▶ 제 그런 점 때문에 많이 싸우는데요. 그래, 나 마초야! 이러기도 하고…

공 ▶ 솔직한 마초네요. (웃음)

구용 ▶ 제가 다 그런 건 아니예요. 정치에 있어서는 진보적인 성향이예요.

진하 ▶ 보수가 곧 마초는 아니야! 근데 어떤 의미에서는 학교를 안 다닌 거나 군대는 안 갔다 온 거나 본질적으로 동일한 거 같아요. 자퇴생들 사회생활하기 힘들어요. 당장 이력서에 적을 게 없어요. 

 

학교는 노동자를 키워낸다

 

영진 ▶ 현재의 공교육이 입시교육이고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노동자를 키워내는 거라면 군대는 사람들을 자본주의 체제에 순응하게끔 억압하면서 노동을 착취하는 제도예요. 헐값에 노동을 착취해서 자본가들을 위해 군대를 운영하죠.

공 ▶ 지금 하는 생각은 어떻게 하게 되었어요?

영진 ▶ 꼭 대학이나 학교를 다녀야 이런 생각을 배우게 되는 건 아니예요.

공 ▶ 단순히 학교를 그만 뒀는데 어디서 그런 걸 배웠느냐는 게 아니고, 학교를 다니더라도 지금 같은 생각을 하는 게 쉽지 않잖아요. 자본주의에 반대한다는 말 자체가 쉬운 말이 아니라서 물어보는 거예요.

영진 ▶ 저는 열 일곱 살 때 자퇴했는데요. 사회비판적인 성향이 강하다 보니 사회나 경제, 정치를 알고 싶었어요. 사회에 대한 의구심이 생겨서 책을 사게 되었어요. 사회 문제가 어디서 어떻게 생기는지 고민하다 보니 결국은 자본주의 체제가 문제라는 걸 책에서 알게 되었어요. 자본주의가 너무 끔찍한 체제더라구요. 열 일곱 살 때 <공산당 선언>을 사서 봤는데 너무 어렵더라구요. 소책자지만 너무 압축적이고 생소해서 읽는 내내 사전을 옆에 두고 모르는 단어는 쓰고 그러다보니 다섯 시간에 두세 장 밖에 못 보고 목에 경련이 나는 거예요. 그래서 일단 덮어두었다가 18세 때 다시 봤는데 또 시간이 너무 걸렸어요. 아직까지는 소화불량인 것 같아서 다른 책들을 보고 있어요. 토론회 같은 데 가서 알게 된 분들로부터 책을 추천받아 읽게 되었어요. 지난번 인터뷰 워크샵 때 <공산당 선언> 이야기하실 때 몸 둘 바를 몰라 하시던데 왜 그러셨어요? 이해가 안 되더라구요. 그 책을 밝히는 게 그리 말하기 힘든 일인가요?

공 ▶ <공산당 선언>을 읽은 게 밝히기 부끄러운 일이거나 말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서 그랬던 게 아니고요. 요즈음은 <공산당 선언>이나 <자본론> 같은 건 고전목록에 당당히 올라가는 책이잖아요. 그거 읽었다고 말하는 게 무슨 문제가 되겠어요. 지난번에 진하도 그랬잖아요. 치부를 드러내는 일 같아서 말하기 싫다고. 그런 거죠. 부끄러운 일만 입에 담기 어려운 게 아니라 소중한 일도 입에 담기 벅차죠. 내밀한 추억이라 말하기 힘들었어요. 비유하자면 첫사랑 같은 것일 수 있죠. 한편 여러분에게 과연 그 추억이 감응이 가능할지 걱정되었어요. 벌써 오래 전이고 시대도 많이 변했기 때문에 제 경험이 공감될 수 있는 건지 염려가 되었던 거죠. 그래서 난감해 했던 거예요. 그리고 어떤 책을 읽고서 그 책이 이래서 좋았다, 저래서 좋았다, 이렇게 말하긴 쉬워도 그래서 그 책 때문에 내 삶이 이렇게 움직였다고 말하는 건 참 어려운 일이니까……

영진 ▶ 자본주의 사회의 대안은 사회주의라고 할 수밖에 없지 않나요? 중국이나 북한, 쿠바 같은 나라는 지금 기업가들이 판치고 있는데 진짜 사회주의라고 볼 수가 없어요.

공 ▶ 지난번에 제가, 현실 사회주의가 실패한 이 시점에 사회주의가 틀렸다고 말하는 건 쉽다, 그러나 꼭 그럴까, 이렇게 말했지만, 일단 심각한 문제점이 있는 게 판명된 이상 그걸 선뜻 대안이라고 하기도 어렵지 않을까요? 아시겠지만 현실의 사회주의 국가나 사회주의였던 국가의 국민들은 현재 심각한 경제난에 봉착해 있죠. 당장 현실의 고난 속에 허덕이는 그 사람들 앞에 가서 당신들의 국가는 진짜 사회주의가 아니라서 그런 거야, 진짜 사회주의는 나중에 정말로 도래할 거고 그 사회주의가 우리를 행복하게 할 거야, 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 말에 힘이 있을까요? 많은 고민이 필요한 문제죠.

 

“꿈을 찾아서”

 

공 ▶ 근본적인 질문을 하고 싶어지는데요. 탈학교가 곧 탈제도나 탈사회가 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아까 영진은 지금 학교교육이 노동자로 만드는 거라 싫다고 했는데, 노동하지 않고 살 수 없죠. 노동이 신성하다고 하나 한편 비천한 거죠. 자기를 시장에서 팔아야 하니까요. 노동하지 않아도 평생 거뜬히 살 수 있는 재산을 물려받지 않는 다음에야 누구도 피할 수 없는 문제죠. 아무리 놀고 싶다고 해도 아무리 덜 쓴다 해도 의식주는 해결해야 되잖아요. 일해서 벌지 않으면 부모건 주위의 가까운 사람이건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아야 해요. 아까 영도가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놀면서 어른이 되고 싶다고 했는데요. 저는 이미 어른인데도 요즈음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어요. 탈직장 상태라고 해야 하나. (웃음) 여러분은 앞으로 어떻게 사회에서 살아가게 될까요? 여러분이 앞으로 어떻게 현실과 싸우고 적응해가면서 꿈을 키울지 궁금해요. 아까 진하가 자퇴생들 사회생활하기 힘들다고 했는데요. 뭘 하고 싶어요?

진하 ▶ 지금 아무것도 하는 건 없어요. 저널리스트를 하고 싶었는데 지금은 아니예요. 사람 만나고 돌아다니는 게 좋아서 기자를 하고 싶었지만……지금은 그냥 글이 쓰고 싶어요. 소설이건 에세이건 공적인 글이건 간에. 근데 뭘 해야 할지는 모르겠어요. 책을 무작정 읽어야 하는 건지, 기회 닿는 대로 기고하려고 애는 쓰고 있지만. 연극도 하고 싶어요. 배우를 하고 싶은데 역시 전망이 안 서요. 운 좋게 오디션에 통과해서 주연에 발탁된 적이 있지만 안 했어요.

공 ▶ 아니 왜요?

진하 ▶ 돈 때문에요. 공연할 때까지 아무것도 못 하고 연습만 해야 한대요. 지금 집세며 생활비를 아르바이트하며 벌고 있는데 어쩔 수가 없는 거예요. 고민하다가 극단에 가서 사정을 말씀 드리고 못 하겠다고 했어요. 미련은 많아요. 언제건 준비가 되면 다시 해야지 그러지만, 하고 싶은 건 많은데 언제나 경제적인 문제나 건강 문제 이런 게 걸림돌이 되어 마음껏 할 수가 없었어요. 계속 딜레마예요.

공 ▶ 부모님에게 도움을 청할 수는 없어요?

진하 ▶ 지금에 와서 부모님에게 도와달라고 할 수도 없어요. 사정이 있어요. 스스로를 패기만만하고 자신감 넘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와서 돈 때문에 이렇게 쪼들리고 하고 싶은 일도 못 하니까 내 자신이 작아지는 것 같아요. 꿈만 가진 상태에서 나이만 먹을 것 같고. 그러다 보니 아예 작정하고 몇 년은 돈 버는 데 집중해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요.

공 ▶ 우리는 살면서 자립적인 존재, 독립적인 존재, 자유로운 존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또 그렇게 배우지만 실은 도움을 청하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존재가 되는 법을 배워야 하는 것 같아요. 물론 도움을 줄 수도 있어야 하고요. 실은 아무도 혼자 살 수는 없잖아요.

구용 ▶ 주위에 진하를 걱정하고 도와 주는 사람들이 있어요.

공 ▶ 다행이네요.

구용 ▶ 사람이 독립적으로 생활한다는 건 한계가 있죠. 중학생 때 영화를 해야지 결심했는데 부모가 편견이 있어서 말이 안 통했어요. 그래서 고등학교 1학년 때 250만원 모아서 부모님에게 갔어요. 나 이만큼 모았다, 나 정말 하고 싶다, 반 대어 달라고 해서 500만원으로 카메라를 사서 지금까지 쓰고 있어요. 저에게 가장 소중한 거예요.


우리는 시종일관 유쾌하게 웃음보를 터뜨렸지만 대화는 길고 진지했다. 꿈 많은 그들의 불안한 자유, 민들레 홀씨 같은 자유는 과연 어떻게 꽃필 것인가? 어느덧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인터뷰 영상 <나를 움직인 책>은 다음에 보고 이야기하기로 약속했다. 장시간 대화에 응해 준 민들레사랑방 친구들에게 다시 한 번 감사하며 다음의 만남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