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서경

 

 

정서경, 영화행 꿈의 열차에 타다

<친절한 금자씨>의 작가 정서경

 

 

 

s#1. 기다림그리고 그녀의 등장

 

 

 

흡사 <친절한 금자씨>의 반지하방 벽지같은 선명한 빨간색 계단이 있는 인사동의 한 일식집 겸 주점. 일식집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 복잡하고 요란스러운 재즈 선율이 흐른다. 간간히 종업원들이 이국적 분위기를 위해 목청껏 외치는이랏샤이마세!”가 들려온다. 술집 안 십수개의 다다미 방 중 하나. 세 명의 여인이 앉아 누군가를 기다리며 대화를 이어나간다. 한 명은 목하 영화 제작 때문에 고심 중인 정미씨, 다른 한 명은 이제 막 영화평론을 시작한 지미씨. 그리고 오늘의 자리를 주선하고 기록을 담기 위한 첨단 테크놀로지 장비– MD 플레이어를 대동하고 온 편집장. 마룻바닥을 쿵쿵대는 발자국 소리마다 귀를 쫑긋거리며 문가를 바라보다가 드디어 세 명의 얼굴이 밝아지며 오늘의 주인공, 인터뷰이 “<친절한 금자씨>의 비밀작가정서경 씨가 까만색 퍼프소매가 돋보이는 수수한 공주님과 같은 모습으로 방문을 밀고 들어온다. (인터뷰 도중에 모 영화 잡지에서 일하는 유비알이 합류한다. 인터뷰어는 사진을 찍은 유비알까지 포함하면 총 네 명인데 굳이 구분하지 않고 다퍼슨웹으로 기록한다.)

 

 

 

오랜만입니다.

 

 

 

서경씨는보리라는 이름으로 퍼슨웹에 몇 개의 인상적인 글을 쓴 적 있다. (웹진 퍼슨웹의 검색란 인터뷰어 이름에보리를 치면 검색 가능하다.) 또한 그녀는 여행이 너무 가고 싶었으나 손이 하얘서 앞날을 깝깝해 하던 시절 퍼슨웹으로부터 여행비 지원을 받아 신나게 즐기고 돌아와 [삿포로행 도라에몽 기차를 타다]라는 책을이난다란 이름으로 신딸기와 함께 펴낸 적도 있다. 그러니까 퍼슨웹과 그녀의 인연은 상당히 깊은 편이다.

 

 

 

자기소개 좀 해 보시지요.

 

 ! 저 이제 자기소개 짧게 하기로 했어요. 없던 커리어가 생겨서요. 이제는 짧게 해도 되거든요. 생년하고금자씨의 작가 이 정도로요. 그러니까 75년 광주생. 금자씨 작가.

 

 

 

참 이거 건방진 서경씨가 되었군요. (웃음)

 

 

 

‘건방진’ 서경씨라는 농담에 수줍게 웃는 그녀는 자신의 일에 만족하고 있는 표정이다. 왜 안 그렇겠는가. 이제 흥행작가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는데……

 

 

 

서경씨의 삶에서 현재로서는 <친절한 금자씨> 빼놓는다면 이야기가 안되겠죠. 금자씨의 작가로 알려져서 그 영화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하긴 했겠지만, 우리는 인간 정서경에 대해서 더 알고 싶거든요. 지금 서경씨의 인생을 둘로 나눈다면금자씨이전과 이후 이렇게 될까요?

 

금자씨로 인해서 인생이 많이 달라진 것은 사실이지만, 저한테 제 인생을 둘로 구분하라고 한다면 영상원 전과 영상원 후로 나누고 싶어요.

 

 

s#2. 철학학도에서 영화학도가 되기까지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서경씨의 대학생활은 어땠나요?

 

원래는 미학과에 갈까 했었는데 왠지 너무 여성적인 것 같아서 철학과를 택했거든요. 실제로 미학과가 그렇지 않다는 것은 학교에 들어 온 다음에 알게 되었지만요. 그런데 철학과는 너무 남성적인 거예요. 일단 남학생들이 너무 많고……원래 제 성격은 전혀 그렇지 않은데 과에 있으면 왠지 공주 대접 받는 것 같고 자꾸 소외되는 것 같아서 불편해지기 시작했어요.

 

 

 

원래 성격은 어떤가요? 모 영화잡지에 실린 인터뷰기사를 보면 어렸을 때부터 책 읽는 거 좋아하고 그랬다던데……

 

, 그 기사에 난 가정환경이 불우해서 책 속에 빠져들었다는 말은 약간 와전된 거예요. 그 기사 보고 얼마나 부모님께 죄송했던지. 남부럽지 않게 먹이고 입혀서 키워 놓으셨는데 제가 무슨 불우한 가정에서 자란 것처럼 되어 있었잖아요. 어렸을 때 책 읽기를 좋아하기는 했지만, 굉장히 나서기를 좋아하는 그런 성격이기도 했어요. 사람들 앞에서 연설하고 그런 거 좋아했거든요. 중학교 때도 그런 성격 때문에 학생 운동 비슷한 것도 했고요. 학교에서 신문 같은 거 만들어서 배포하고 그랬었는데, 꽤 많은 독자도 있고 그 활동이 너무 재밌었어요. 그런데 그 당시에 전교조 활동이 시작되기도 했던 때고 해서 그런 것과 관련되어 무슨 배후가 있는 것이 아니냐면서 선생님들한테 불려가서 많이 고생하고 그랬죠. 전혀 배후는 없었고 순전히 자발적으로 한 활동이었는데 말이에요.

 

 

 

그럼 대학교 때도 과 분위기에 적응하기가 힘들었겠네요. 은연중에 소수자인 여학생으로 소극적인 태도를 견지하게 될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시작하게된 것이 관악여성모임연대(줄여서관악여모”)활동이었죠. 학과에서와는 달리 여학생들끼리의 소학회는 아주 자유롭기도 하고 자발적으로 자신들의 일을 분담해서 하는, 정말 멋진 경험이었거든요. 제가 주로 맡은 역할은 대자보 쓰는 일이었는데, 아까 말씀드렸듯이 제가 연설문 같은 거 쓰는 일을 좋아했기 때문에 대자보 쓰는 일이 아주 마음에 들어서 적극적으로 하겠다고 나서게 된 거였죠. 대자보 문체를 아주 좋아했거든요.

 

 

 

 멋진 소학회 생활을 하셨군요. 그 모임은 이후에 어떻게 되었나요?

 

관악여모 멤버들이 졸업을 하면서 다들 학교를 떠나게 되었지만 함께 활동하고 싶다는 생각은 계속되었어요. 마침 당시에 인터넷 웹진이 막 뜨고 있는 추세였고 그래서 우리도 달나라딸세포란 웹진을 운영하기로 했죠. 일주일에 한번 회의하고 거기서 기획한 내용으로 한달에 한 번씩 업데이트하고, 한달에 한번 운영비도 내고요. 나름대로 열심이었어요. 거기서 제 필명이 난다였구요. 공식적으로는 1998년부터 2002년까지 계속 지속되었는데, 표면적으로 보여지는 것은 없지만 여전히 활동은 계속되고 있어요. (퍼슨웹의 달나라딸세포 편집장 신딸기 인터뷰 링크)

 

 

 

그런데 대학 졸업은 하지 않은 걸로 알고 있는데요. 소학회에 너무 빠져서 그런 건가요? 아니면 원래부터 수업 자체에 관심이 없고 혼자 도서관에서 책이나 읽고 그런 생활을 즐겨서 그런 건가요?

 

전공 수업을 들으면서 내가 철학과에 맞지 않는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하지만 처음부터 졸업에 관심이 없었던 것도 아니었고 제도 자체에 대해 초월해서 그런 것도 아니었어요. 그냥 수업을 듣다가! 이 수업은 아닌 것 같다싶으면 수강 포기를 하고 그랬었는데, 그러다 보니 한 학기에 3학점 이렇게 듣고 있더라구요. 대학원생도 아닌데 말이죠. 그렇게 4년을 다니고 나니까, 졸업할 때가 됐는데 학교를 일 년 더 다녀도 졸업을 할 수 없는 상황이 온 거죠. 부모님한테 돈 받아서 다니는 입장에 솔직하게 말씀드리기도 무척 곤란하고 그렇다고 계속 학교에 붙어있기도 막막한 상황이 된 거죠.

 

 

 

그렇다면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진학은 어떻게 생각하게 된 건가요? 원래부터 영화에 큰 관심이 있어서 나중에야 그 꿈을 찾아간 그런 케이스인가요?

 

꼭 그런 것은 아니었어요. 어떻게 보면 굉장히 현실적인 이유에서였죠. 전 글을 쓰는 직업을 갖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대학교도 졸업하지 않은 학력으로 어디 가서 그런 직업을 구한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어요. 졸업하면 현실적인 직업을 가질 수 있는 곳에 가서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대학 수학 능력시험을 보지 않고도 갈 수 있는 학교가 영상원이었죠. 거길 나오면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직업을 갖게 되지 않을까 생각했었거든요.

 

 

 

영상원에서의 생활은 어땠나요?

 

영상원에서는 정말 열심히 공부했어요. 홍상수 감독님한테 수업 들었을 때 진짜 고생 많이 했지만 배운 것도 참 많았어요. 처음 과제를 내고 나서 불려갔을 때였죠. 저는 나름대로 잘 썼다고 자부하고 있었는데, 처음부터 다시 쓰라시는 거예요. 정말 좌절했었지만 말도 안 되는 짧은 기간에 완전히 새로 고쳐 쓰면서 배운 것도 많았죠. 나중에 읽어보니까 왜 아니었는지는 알겠지만 여전히 애정이 남는 작품이에요. 영화로 만들 수는 없는 시나리오지만 연극으로 치면레제 드라마라고 해야 할까요. 읽기 위한 시나리오 뭐 그런 것에 가깝죠. 대학교 때와는 달리 수업 정말 열심히 들어서 졸업할 때쯤에는 거의 만점에 가까운 성적을 받기도 했죠.

 

 

 

s#3. 단편 영화 <전기공들>이 그녀에게 남긴 것

 

 

 

영화 <전기공들>로 이스트만 코닥의 제작 지원을 받고 박찬욱 감독과 만나게 된 계기가 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 영화에 대해서 설명 좀 해주세요.

 

졸업하기 직전에 영화를 찍었는데 그게 <전기공들>이에요. 하지만 그 영화는 별로 찍고 싶지 않았어요. 그걸 찍느라고 거의 시나리오를 쓰지도 못한 채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거든요. 졸업하고 1년 동안 그러니까 이스트만 코닥에 당선된 <전기공들>을 찍는 기간 동안 시나리오 쓰자는 제의가 좀 들어왔었거든요. 하지만 영화를 찍느라 그 제의들을 하나도 받아들일 수가 없었어요. 그런데 딱 1년이 지나니까 아무 데서도 연락이 안 오는 거예요. 그게 2003, 집에서 놀기 시작했는데 사람이 놀기 시작하니까 바닥으로 떨어지는 느낌이 들기 시작하는 거예요. 바닥에 떨어지면 그게 끝인 줄 알았는데, 내려가니까 지하가 있고, 더 밑이 있고. 그래서 처음엔죽고 싶어이러다가 나중엔죽은 거나 마찬가지야라고 생각하게 됐죠. 그러다가 취직을 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영화주간지 <필름 2.0>에 이력서를 이만하게 두껍게 써서 냈죠. 시험을 보러 갔더니 이제까지 그렇게 이력서를 두껍게 낸 사람이 없었다는 거예요. 그래서 시험은 그리 잘 본 것 같지 않지만 붙게 된 것 같아요. 상식시험을 잘 본 것 같은데 영화 기사 작성하는데 <살인의 추억>이 나온 거예요. 그 영화를 못 봐서 한 줄 쓰고 나왔거든요. 어쨌든 시험에 붙고 나서 회사를 막 다니려고 하는데, 영화제작사 마술피리의 오기민 피디님한테 연락이 온 거에요.

 

 

 

이스트만 코닥 이야기가 자꾸 나와서 이쯤에서 정리를 하고 넘어가지 않을 수가 없다. 한국 이스트만 코닥은 단편 영화 시나리오를 공모하여 제작 지원을 하고 있는데 지원자격은 사전에 단편 영화를 1편 이상 제작해 본 경험이 있고 연출이나 촬영을 하는 자에 한한다. ,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에 상관없이 50분 이내의 중단편 시나리오를 지원하고 일차 서류 심사를 거친 후 면접을 통해 최종 선발된다. 정서경은 <전기공들> 2002년 이스트만 코닥의 제작 지원을 받은 적이 있다. 그녀의 말로는 되돌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라고 하지만 그녀가 이 제작 지원을 통해서 얻게 된 것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자신의 길은 연출이 아니라는 확고한 계시 다른 하나는 당시 심사위원이었던 오기민 피디와 박찬욱 감독이라는 든든한 지원군이었다.

 

 

 

하지만 그 때 그 경험만으로 자신이 연출을 할 사람은 아니라고 판단을 내린 게 혹시 속단은 아니었을까요? 다른 상황과 조건 속에서 다시 연출을 해 보면 다를 수도 있잖아요.

 

연출을 꼭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각본 작업을 하는 게 저에게 더 맞고요. 또 각본을 하게 되면 연출을 할 때보다 더 많은 작품을 할 수가 있어요.

 

 

 

정서경은 <전기공들>을 연출하면서 자신의 길은 감독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연출하고 있는 작품이 나아가야 할 곳보다는 작품과 함께 하는 스탭들이 처해있는 상황이 더 맘이 쓰였다니 그럴 만도 한 일이다. 촬영하는 내내 잔걱정이 그칠 날이 없었고 화장실에 가서목을 매어 자살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좋은 성격이 때로는 좋은 감독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그녀에게 뼈저리게 실감하게 만든 경험이었다고나 할까. 인간관계에 신경을 쓴 탓일까? 그녀는 이 작업을 통해 남자친구를 얻었고, 인터뷰 기간 틈틈이 걸려오는 그의 전화를 받는 그녀의 행복한 얼굴에서 그 작업이 그녀에게 준 세 번째 선물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여튼 그래서 오피디님이 한 달에 60만원씩 줄테니 사무실에 나와서 시나리오를 쓰라고……제가 당장 월급이 없으면 생활할 수 없으니 필름 2.0에 가야한다니까 그렇게 하라고 하신 거죠. 그 이후로 한 네 달쯤 지나서 지금 촬영 중인 김유석씨 주연의 <모두들, 괜찮아요?>를 쓰게 되었죠. 그게 제 처녀작인 셈이예요. 이 작품을 쓰면서 제게 생긴 가장 큰 변화는 어떤 작업을 하건 끝까지 한다는 생각이 생겼다는 거예요. 그 전에는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서 쓰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장기간 놀다 보니까 무엇이든 기회가 오면 써야겠다고 다짐하게 된 거죠.

 

 

 

시나리오 단계에서의 제목은 <영화감독이 되는 법>이었던 영화 <모두들, 괜찮아요?>는 감독지망생 남편과 부양책임을 지는 아내를 둘러싼 가족 이야기이다.

 

 

 

박감독님이 <전기공들>을 보고 마음에 들어 한 것은 두 분의 취향이 통했기 때문일 텐데 그게 어떤 면인지 궁금하네요. 그리고 <전기공들>은 어떤 내용이지요?

 

일단은 부조리한 부분이 마음이 맞았구요. 그 다음은 말이 많다는 것, 대사가 많다는 것이었죠. 어떤 여자애가 아침에 일어났는데 어떤 아저씨들이 갑자기 들어와서 전기공사를 시작하는 거예요. 아저씨들 마음대로. 처음에는 불편하고 집도 자꾸 어질러지고 해서 당황했는데, 자꾸 아저씨들에게 얽매이게 되는 거예요. 아저씨들이 마음대로 나가서 안 들어오니 외출도 못 하고 기다리게 되고 아저씨들 밥도 차려줘야 하고. 같이 사는 남자애가 짜증을 내기 시작하죠. 하여튼 둘이 싸우게 돼요. 그런데 전기공들 때문에 정신이 없으니까 잠시만 이대로 같이 살자고 했는데, 결국은 아저씨들이 공사가 끝났다며 떠나버리고.

 

 

 

이별로 인한 공황감, 책임 전가 뭐 그런 건가요?

 

. 그런 거죠.

 

 

 

영화 자체를 보고 마음에 들어 하신 건가요? 아니면 시나리오를 보고 마음에 들어 하신 건가요?

 

 

 

시나리오요. 그 영화는 마음에 들어 한 사람 없었어요. 전주영화제에 갔을 때만 좀 반응이 좋았고……그런데 박 감독님은 좋아하셨어요. <금자씨> 뒷풀이 하러 갔을 때 마침 그게 TV에서 상영되고 있었는데 50명이 넘는 사람들이 다 그걸 보고 있었죠. 무지하게 당황스러웠죠. 아무도 좋아하는 사람이 없었는데, 박 감독님만 재미있다고 하셨어요.

 

 

 

  

s#4. 박찬욱 감독과의 만남

 

박찬욱 감독 이야기가 자꾸 나오니까 첫 만남부터 이야기를 진행해 보죠. 정서경 작가가 <전기공들>을 만들고 나서 바로 박 감독님이 부른 건가요?

 

 

 

마술피리에 가서 일하고 있을 때였어요. 어느 날 전화가 와서 만나기로 한 거죠. 그때 저는 일 때문에 사무실에서 밤을 새고 바로 갔었어야 했는데, 두 가지 문제에 봉착했죠. 하나는 제가 그때 입고 있던 옷이 너무 공주풍의 옷이었다는 것과 다른 하나는 그때 최고의 히트작이었던 <올드 보이>를 보지 않았다는 거였어요. 집에 가서 옷을 갈아입고 갈까, 영화를 보고 갈까 고민했었는데 친구 신딸기가 영화를 보고 백화점 가서 아무 옷이나 사서 입고 가면 되지 않느냐고 해서 바로 고민을 해결했죠. (웃음)

 

 

 

감독과 작가가 만나는데 옷이 뭐 그렇게 중요한가요?

 

오히려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더 문제였던 거죠. 너무 신경 쓰고 온 것처럼 보이고 싶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그 전날 제 옷차림이 그 만남에 너무 신경 써서 힘주고 나온 사람처럼 보일 수 있어서 더 신경이 쓰였던 거죠. (웃음) 좀 평범한 옷을 사 입고 영화는 아주 오래 전에 본 것처럼 말하면서 면접을 마쳤죠.

 

 

 

그때 만나서 같이 하기로 했던 작품이 <친절한 금자씨>였나요?

 

박찬욱 감독을 처음 만났을 때는 <박쥐>에 먼저 들어가기로 했었어요. 그래서 그 시나리오를 쓰고 그 다음에 <금자씨>를 들어가기로 한 거죠.

 

 

 

아 그러면 두 작품을 동시에 진행하고 있었던 건가요?

 

 

 

<박쥐>를 한참 쓰고 있었는데, <금자씨>로 갑자기 작품을 바꾸시니까 힘들었어요. 그날은 정말 감독님이 밉더라구요. 그러다가 중간에 또 다른 것을 쓰게 돼서… CJ에서 투자한 HD 프로젝트를 또 하게 됐어요. 10명의 감독이 같이 하는 250억원짜리 프로젝트에서 박 감독님이 하시는 <사이보그지만 괜찮아>의 시나리오도 쓰게 됐지요. 지금 현재 하고 있는 작업이 바로 그거에요.

 

 

 

그러면 그 열편을 다 모아서 영화제처럼 상영하는 건가요?

 

아니요. 그냥 따로 따로 개봉하는 것 같아요. 워낙 HD 콘텐츠가 많이 필요하니까요.

 

 

 

인터뷰 이후에 인터넷을 통해 검색해서 알아 보니, CJ에서 후원하는 HD 프로젝트는 정확하게 8명의 감독류승완, 박찬욱, 이무영, 허진호, 최익환, 최동훈, 유하 그리고 한 명의 신인 감독이 참여하고 있었다. 편당 30%정도의 예산 절감과 촬영기간의 단축이 HD영화의 최대 장점이다. HD를 통한 장편상업영화의 촬영은 이미 헐리우드나 일본의 영화계에서 시도되고 있다. HD가 보편화 된다면 한 작품당 들어가는 위험부담을 줄이고 이를 통해 좀 더 많은 영화들이 자신의 몸을 찾을 수 있도록 만들어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한류 열풍과 한국 영화사상 최고의 흥행성적이라는 호조 속에서도 한국 영화의 미래에 대해 걱정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은 제작 편수의 증가와 상관없이 각각의 영화들이 개성을 잃고 획일화되어가는 양상 때문이었다. HD가 새로운 기술을 통해 좀더 다양한 영화들을 선보일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기대해 보면서 박찬욱과 정서경이 만들어낼 <사이보그지만 괜찮아>에 대해 살짝 더 기대를 걸어 본다. 워낙 영화 시사 이전까지 제작 과정과 내용에 대해서 비밀 보장을 철칙으로 삼는 감독인지라 자신이 사이보그라고 생각하는 소녀가 정신병원에서 여러 환자들을 만나면서 그 과정에서 로맨스도 싹튼다는 내용이라는 점 이외에는 이 영화에 대해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요즘은 <사이보그지만 괜찮아> 때문에 취재다니느라 바빠요. 정신병원에도 몇 번이나 다녀와야 했거든요. 감독님이 워낙 바쁘셔서, 요즘은 영화제 다니시느라 정말 바쁘시거든요, 사전 작업은 제가 다 해둬야 하고 잠깐 잠깐 한국에 들어오셨을 때는 언제든지 달려가서 집필할 수 있도록 해야 돼요. 이 인터뷰도 잠깐 짬을 내서 빠져 나온 건데……오늘이 감독님 생일이거든요. 어제 감독님께서 자못 자랑스러운 얼굴로내일은 생일이지만 열심히 일해야지이러셨는데

 

 

 

그런데 정말로 인터뷰 도중 몇 번의 전화 통화가 오고 간 뒤 박찬욱 감독은 그녀를 기다리다가 생일 파티 때문인지 기다림에 지치셨는지 집으로 돌아가 버렸다. 그녀는 한동안 안절부절 못했으나 다음 순간 다시 씩씩한 목소리로 인터뷰에 동참했다.

 

 

 

감독님의 집필 스타일은 어떤가요?

 

감독님은 완전하게 공동작업하는 스타일이에요. 금자씨 원고를 쓸 때도 처음 컨셉은 감독님이 주시고, 제가 대강의 초고를 완성한 다음에 하나 같이 검토하면서 쓴 거거든요. 노트북 두 개를 마주 놓고 한 줄씩 서로 짚어 가면서 쓴 거예요. 감독님은 혼자 작업하는 법이 별로 없으세요. 항상 주변에 누군가가 있어서 이야기를 해 가면서 하시거든요. 그리고 계속 물어보세요.

 

 

 

그렇게 작업하게 되면 불편하다거나 작가로서의 영역을 침범한다거나 이런 생각이 들지 않으세요? 그래도 작가라면 자기 작품에 대한 욕심이나 고집 이런 게 생길 때도 있지 않나요?

 

아니요. 저는 그런 식의 작업 방식이 마음에 들어요. 어떨 때는 제가 원한 것과 다른 결론이 나올 때도 있지만 영화라는 것이 원래 공동 작업이니까요. 그리고 감독님 방식이 자신의 것을 막 주장한다기보다는 오히려 자신의 견해에 동의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세요. 항상 기준이 분명하시거든요. ‘새로운 것’, 언제나 남들이 생각하지 않은 새로운 것을 좋은 아이디어의 절대적 조건으로 내세우시니까요. 그런 부분이 제가 시나리오를 집필하는데 부담감을 많이 덜어주기도 하고, 제 스타일과 잘 맞기도 했어요.

s#5 <친절한 금자씨>

 

 

 

<친절한 금자씨>가 관심를 모았던 것은 <올드 보이>로 세계적인 인정을 받은 박찬욱과 <대장금>이후 연기에 물이 오른 듯 보인 이영애가 모이면 그 시너지 효과가 얼마나 대단할까라는 일반적인 호기심과 함께, 흔히복수 삼부작이라고 하는 시리즈 최종편에 대한 기대 때문이었을 것이다. 작품이 상영되고 난 뒤 국내외적으로 엇갈린 반응들이 나왔다.

 

 

 

일단 흥행대작이라고 말할 수까지는 없더라도 기대에 부응하는 흥행성적이 나왔고, 감독과 배우는 깐느를 비롯한 유명 영화제 초청리스트에 올랐다. 그러나 작품 자체에 대해서는 <올드 보이>만큼의 강력한 서사적 추동력의 부재, 과잉된 스타일이라는 부정적인 평가와 복수의 테마에서 소외되어 있었던 여성의 재발견, 아름다운 이미지의 창조라는 긍정적인 평가가 팽팽하게 맞섰다.

 

 

 

박찬욱의 이전 작품들에서 여성은 보이지 않거나 말하지 않음으로써 교묘하게 소외되어 왔다. 그런 그가 금자씨라는 여성을 복수의 주체로서 전면에 내세웠을 때, ‘복수의 의미가 어떻게 완결될 것인가라는 질문에 이번의복수는 어떻게 여성화될 것인가에 대한 궁금증이 덧붙여졌다. 그러나 막상 비밀의 막이 열리고 나서도 그것에 대한 답은 별로 명쾌하지 않았다. 이영애의 싸늘하게 얼어붙은 마스크와 높낮이가 배제된 무감정한 목소리톤은 비록 그녀의 새로운 모습이기는 했지만, 금자씨라는 대상에 관객이 선뜻 다가가기 어렵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클래식 음악이나 영화음악을 들려주었던 김세원이 그녀의 내면 (실제로는 딸 제니이지만)을 대신해서 읊어주기 시작하자 과연 금자씨는 이 영화의 주인공인가, 아니면 감독의 지시대로 움직이는 인형에 불과한가라는 의문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범상치 않은 여학우 모임과 웹진까지 운영했던 작가 정서경씨는 이 영화 속의 여성, 금자씨와 일련의 공모자들 그리고 제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럼 이제 <친절한 금자씨> 이야기로 넘어가 보죠. 아무래도 서경씨와 인터뷰를 하게 된 큰 이유이기도 하고, 현재 시점에서 대표작이라고 말할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니까요. 어때요, 작가로서 완성되어 나온 작품에 대해 만족 하시나요?

 

원래 박찬욱 감독이 이 영화를 구상했을 때는 고두심씨 버전의 <친절한 금자씨>였어요. 아이를 유괴한 범인이 그 아이의 부모 앞에 가서 손가락을 자르며 사죄한다. 이것이 이 영화가 시작된 컨셉이였죠. 실제로 영화에서는 그 부분이 잘 살지 않아서 이해를 잘 못하신 분들도 많이 계시더라구요. 원래 그 장면에 대사가 있었어요. 그 장면 촬영할 때는 제가 직접 촬영 현장에 나가 있었는데요. 제 친구도 현장에 놀러 왔었거든요. 그때 대본을 보면서 그 친구가 좋은 대사라고 칭찬해 줘서 기분이 좋았었는데, 막상 촬영에 들어가고 나서 그 장면 대사를 들어내게 되었어요. 이영애씨가 대사를 하면서 손가락을 자르는 연기를 하는 게 어색하다고 지적했고, 옆에서 보기에도 좀 그렇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래서 그 장면은 대사도 없이 아주 간결하게 가게 된 거죠.

 

 

 

그런 식으로 현장에서 시나리오가 바뀌는 일들이 많이 있었나요? 작가로서 그런 일을 겪게 되면 어때요? 속상하거나 그러진 않나요?

 

영화 찍는 것을 처음 봐서 원래 영화는 그런가 보다 했어요. 물론 손가락 자르는 장면에서 대사가 없어졌을 때는 저렇게 해도 이해가 갈까 약간 걱정되기는 했었죠. 하지만 그 이후에는 현장에서 대사가 없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었어요. 시나리오를 쓸 때 구상했던 것과 느낌이 달라진 장면들은 조금 있었지만요.

 

 

 

다른 잡지 인터뷰를 보니까 스스로는 복수에 관심이 없다고 했는데, 그렇다면복수라는 키워드를 빼놓고는 생각할 수 없는 박찬욱 감독의 작품과 잘 맞지 않는 것은 아닌가요? 특히 <친절한 금자씨>의 경우에는 복수 삼부작의 마지막 편이라고 다들 말했기 때문에 본인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을 텐데요.

 

 저는 이 작품의 초점이 복수 그 자체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복수가 소재가 되긴 했지만, 결국은 복수가 굉장히 허무하게 끝나 버리니까요. 복수 그 자체의 허무함과 그 이후를 다루고 있다고 생각해요.

 

 

 

박찬욱의 전작들이 점점 여성 평자들로부터 남성적 시선과 여성 인물들의 소외 때문에 부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는데요. 이 작품의 주인공이 이영애가 된다고 했을 때 사실 기대가 컸었거든요. 뚜껑을 열고 보니 나레이션 등을 통해서 여성 주인공인 금자씨에게 약간 거리감을 느끼도록 설정해 놓았더군요. 그래서 약간 실망하기도 했었거든요. 역시 여성을 알 수 없는 모호한 존재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해서요.

 

이 영화는 일종의 느와르 영화니까요. 이영애의 캐릭터는 느와르 장르에 나오는 팜므 파탈처럼 욕망을 알 수 없는 모호한 대상으로 표현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예요. 이 영화가 여성적인 것은 여성인 금자씨가 주인공이라거나, 감방 동기들의 복수에 조력하는 과정 중에 나타난 일종의 여성연대 때문인 것 같지는 않아요. 제 생각에는 금자씨가 복수 이후에 허무감을 느끼고 그것을 극복하는 방식이 딸과의 관계를 통해서라는 점이 중요한 것 같아요. 금자씨가 제니를 위해 케이크를 만들고, 제니가 그녀를 맞기 위해 달려 나오는 장면.  그리고 거기에 깔리는 먼 훗날 제니가 금자씨를 이해하고 좋아하게 되었다는 나레이션. 그 속에서 복수를 통해 얻지 못한 어떤 것을 금자씨가 얻게 되었다는 거죠. 전편의 주인공들보다 금자씨가 목적지향적이기보다는 관계지향적이라는 사실이 이 영화가 전편들이 갖지 못한 여성성을 획득하고 있는 대목 아닐까요.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이 영화의 결말과 주제에 대해서 좀 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이렇게 해서 길지는 않았지만 강렬한 느낌을 주었던, 시나리오 작가 정서경씨와의 인터뷰는 끝이 났다. 금자씨라는 화려한 스크린 뒤에 숨겨져 있었던 그녀가 인터뷰를 하는 동안 오롯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발랄하고 경쾌한 그녀, 자신에게 주어진 작품이면 어떻게든 끝내야 한다고 아니 끝낼 수 있다고 자신감에 꽉 찬 그녀의 모습이 아름답게 보였다. 이 인터뷰는 꽤 오래전에 행해진 것으로서 2005 12월 현재 정서경은 모처에서 <사이보그지만 괜찮아> 시나리오 작업 때문에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녀는 확인을 위해 보낸 인터뷰 초고에 첨부한 몇 개의 질문에 짤막한 답변을 달아 보내면서 40대쯤에는 여행전문작가가 되고 싶다는 소망을 밝혔다. 재기발랄하고 왕성한 호기심의 소유자처럼 보이는 그녀에게 잘 어울리는 소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녀가 여행을 위한 글쓰기를 위해 멀리 멀리 떠나기 전, 정서경이라는 이름을 새겨진 영화 크레딧을 많이 많이 접할 수 있게 되길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