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 사랑방과의 만남
공숙영(“공”) ▶ 안녕하세요. 여기까지 오시느라 수고 많으셨고요. 오늘 워크샵을 진행하게 된 인터뷰 웹진 퍼슨웹의 공숙영입니다. 저 말고도 많은 인터뷰를 경험한 전직 편집장님들이 여러분에게 경험담을 들려주실 겁니다. 일단 민들레 사랑방이 어떤 곳인지 소개해주실래요?
민들레사랑방 ▶ (다들 서로를 바라보며 미소를 교환할 뿐 말이 없다)
공 ▶ 이게 바로 인터뷰의 시작이에요. 어떤 단체를 찾아가면 여기가 어떤 곳이냐고 물어보게 되잖아요. 지금 인터뷰가 시작된 거예요. 자, 민들레 사랑방이 어떤 곳인지 말씀해 주세요.
엄진하(“진하”) ▶ 제가 사랑방을 5년째 다니고 있는데 언제나 이 질문이 제일 어려워요. 정체성이 분명하지 않은 곳이거든요. 도시형 대안학교고요(대안학교의 한 유형으로서 서울시 대안교육센터 소속이다 – 편집자 주). <대안교육공간민들레사랑방>이라는 공식 명칭으로 단체 등록이 되어 있어요. 어떤 프로그램이나 커리큘럼이나 시간표가 짜여져 있는 학교는 아니에요. 그냥 관심 있는 아이들끼리 모여서 소모임을 하거나 어떤 프로젝트를 하거나 그런 식으로 꾸려나가고 있고요. 여기 다니는 친구들은 연령 대는 한 8세 9세부터 30대까지 다양하게 있어요.
공 ▶ 나이 제한이 없나 보죠?
진하 ▶ 나이 제한 없고요.
공 ▶ 좋은 데군요 거기. (웃음)
엄 ▶ 학생이 될 수도 있고 멘토가 될 수도 있고 와서 그냥 노는 곳이에요.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있는데 공통점은 딱 하나예요. 학교를 다니지 않거나 학교가 싫거나 이 나라 공교육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거나 그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어쩌다보니 모여서 잘 놀고 있는 곳이고요. 두 길잡이 선생님이 계시고 학생들이 있어요. 이런저런 거 도와주시는 분들도 몇 분 계시고요.
공 ▶ 대답하기 어렵다고 하시지만 굉장히 준비된 대답을 해 주신 것 같아요. 이렇게 되면 인터뷰가 한편으로는 순조롭고 한편으로는 좀 덜 흥미롭죠. (웃음) 인터뷰를 할 때 질문지를 준비를 할 것인가 아니면 질문지 없이 그냥 갈 것인가를 생각하게 되거든요. 질문지를 준비해간다고 해서 꼭 질문지대로 인터뷰가 진행되는 것은 아니지요. 질문지에 충실하면 계획대로 진행이 되고 애초에 가졌던 의문점에 대답이 나온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에 그 자리에서 우연히 포착되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얘기들을 놓칠 수 있거든요. 상황에 맞춰서 인터뷰 질문을 확장해야 된다거나 수정해야 될 필요성이 발생해요. 아까 진하가 대답한 것과 관련하여 말하자면, 이건 집단 인터뷰인 셈인데, 민들레사랑방이라는 한 집단에 여러분이 소속해 있지만 다 생각하는 게 다를 수 있거든요. 진하의 대답이 굉장히 모범적인 대답이라고 가정한다면 사실은 거기에 대해서 자기 의견을 붙이고 싶은 사람이 있을 수 있어요. 그럴 때에는 다른 친구들이 다른 의견을 붙일 수도 있겠죠. 그렇게 되면 인터뷰 하는 입장에서는 그 인터뷰가 다른 한편으로는 재미있어지기 시작하겠죠. 다른 이야기들이 나오고 다른 문답이 시작되니까. 그럼 그걸 정리하고 어느 정도 정리가 되면 애초에 준비했던 질문지 상의 질문으로 다시 되돌아가게 되는 거죠. 질문지는 어쨌든 준비하는 게 기본이지요. 애초에 기본적인 것을 준비해 가지 않으면 내가 왜 여기 왔던가를 놓치게 되는 경우가 있어요.
진하 ▶ 일부러 그렇게만 이야기했는데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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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 ▶ 민들레에 오게 된 동기라고 할까, 민들레에 왜 오게 되었고 어떻게 활동하고 계신가요? 여러분에게 이런 질문도 안 할 수 없네요.
영진 ▶ 한국 교육이라는 것에 대해 불만을 가진 때가 중2 말이었어요. 정말 이건 아니다 하고 폭발할 때가 중학교 3학년, 2002년에 자퇴하고 2003년에 복학하여 졸업했어요. 그러고 나서 고등학교를 다니는데 정말 저한테 안 맞더라고요. 거기서 말하는 입시교육이라는 게 수학 잘 한다고 나중에 수학자가 되는 것도 아니고 영어 잘 한다고 통역자가 되는 게 아니고 과학 잘 한다고 과학자가 되는 것도 아니잖아요. 제가 좋아하는 분야가 있는데 학교에서는 제 분야를 발전시킬 만한 과목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나오게 되었고, 대안학교를 전전하다가 대안학교도 공교육이랑 마찬가지로 입시교육을 위주로 하고 배울 게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왔고, 그러고 나서 민들레를 접하게 되어 오게 되었어요. 민들레사랑방은 진하 누나가 말한 것처럼 정체성이 그렇게 뚜렷하지는 않아요. 오고 싶을 때 오고 가고 싶을 때 가고 그런 성향이 있는데, 민들레 사랑방이 좋은 점이 있다면, 홍대 앞에 문화로 놀이짱이나 청소년 문화센터에서 들어오는 문화 정보가 많아서 좋은 것 같아요.
퍼슨웹의 인터뷰
공 ▶ 퍼슨웹 인터뷰는 여러분이 읽어 보시면 아시겠지만 인물 인터뷰라서…… 사실 한 사람에게는 굉장히 다양한 정체성이 숨어 있죠. 지금도 계속 변하고 있는 게 사람인데, 그럴 때 애초에 내가 이 사람을 왜 만나려고 했을까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죠. 가령 저희가 한 인터뷰 중에 개그우먼 김미화 씨 인터뷰가 있어요. 김미화 아세요?
다같이 ▶ 네
용한 ▶ 나 초등학교 때 되게 많이 웃었는데. 한바탕 웃음으로!
공 ▶ 아 세대 차이가 그렇게 안 나는군요? (웃음) 최초에 김미화 인터뷰를 제안한 인터뷰어가 인터뷰 하고 싶은 이유는, <사과나무>라는 TV프로그램에서 김미화가 자신의 가족사를 밝히면서 눈물을 흘리는 걸 인상적으로 보았기 때문이었어요. 김미화 씨는 원래 박미화였는데 어머니가 재혼하면서 김미화가 된 분이에요. 김미화 본인도 이혼한 후 자기 아이들의 성이 바뀌는 문제 때문에 호주제 폐지 운동을 했지요. 근데 막상 인터뷰를 시작하니 김미화 씨가 바쁜 사람이라 인터뷰 시간을 제한했고 인터뷰어가 세 사람이나 있다 보니 주인터뷰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충분히 못했어요. 또 아무래도 가족사 개인사에 대해 워낙 김미화 씨가 기존 인터뷰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기 때문에 그 이상의 것을 못들을 수도 있다고 예상을 했기 때문에 이 친구가 끼어들 틈을 못 찾고 있었던 거예요. 근데 인터뷰가 끝날 때가 된 거예요. 그때서야 이 친구가 실은 이 인터뷰를 제안한 사람은 자기고 이 인터뷰를 제안한 이유는 <사과나무>에서 봤는데 그게 슬퍼서 너무너무 울었다, 근데 그 이야기를 못했다, 그랬더니 김미화 씨가 “아 그 얘기 하려고 온 거 내가 다 알았지, 질문지에도 적혀 있네 뭐”라며 개그우먼답게 유머러스하게 말씀하시더라구요. 이 친구가 질문지를 손에 갖고 있었는데 질문지에 적혀있는 걸 김미화 씨가 본 거예요. 그래서 김미화 씨가 배려해서 시간을 더 주었지요. 아이 이야기를 하실 때 엄마로써 약간 흔들리는 약한 모습이 나오긴 했지만 워낙 인터뷰를 많이 해보신 분이고 그 문제에 대해서 인터뷰를 많이 당해봤기 때문에 굉장히 준비된 대답이 나왔어요. 사실 인터뷰어로서 더 솔직한 대답 내지는 더 감정적인 대답을 얻는 게 소망이었을 거예요. 뭐랄까 더 가슴 아픈 얘기나 눈물나는 얘기, 아무데서도 얘기하지 않은 그런 것. 그 인터뷰에서 그런 것까지는 나오지 않아서 좀 실망스러웠을지도 몰라요. 제한된 시간이니만큼 주인터뷰어가 애초에 인터뷰하게 된 동기와 이유를 분명히 하고 좀더 밀도 있게 밀고 나갔어야 했죠. 그런 면에서 아쉬움이 남는 인터뷰였죠. 한편 이런 점도 생각해 보게 되었어요. 우리가 인터뷰를 할 때 아무데서도 이야기하지 않는 것을 듣는 게 인터뷰의 목적인가? 과연 그게 목적인가? 그 자리에서만큼은 아무한테도 보이지 않은 모습을 보여준다, 아무 데에서도 안 한 이야기를 한다, 그러면 그건 특별한 인터뷰이긴 하죠. 굉장하죠. 하지만 말하기 어려운 중요한 인생의 이슈 특히 사생활에 대해 인터뷰 할 때는 늘 비슷한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는 때도 있는 것 같아요. 그런 면에서 그 인터뷰가 유래 없는 인터뷰나 잘된 인터뷰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그 인터뷰가 실패인가, 그런 생각을 해 보게 됐어요.
면식범(“면”) ▶ 안녕하세요, 저는 면식범입니다. 편집장 시절 면장으로 불렸죠.
공 ▶ 퍼슨웹의 B급 문화 전문가이십니다. (웃음) 지금 여러분이 보고 계신 자료에 실린 “B급이 A급을 이기는 길”이라는 글을 쓰셨죠. 그 자료는 [인터뷰를 넘어]라고 우리 퍼슨웹 내부의 인터뷰 매뉴얼 용도로 제작한 것입니다. 면장님, 인터뷰 경험을 좀 들려 주세요.
면 ▶ 제가 이광중이라는 도사아저씨 인터뷰 한 게 있죠. 찾아보시면 알겠지만 인터넷에서 가끔 기괴한 모습 때문에 패러디의 대상이 되었던 그런 아저씹니다. 자칭 무당에 가까운 사람이고 도사이면서 약간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 사람입니다. 근데 본질은 무당이다 아니다는 제가 말할 바가 아니고, 제가 볼 때 이런 사람들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는 사람이고요. 열심히 하는 사람입니다. 자기가 할 수 있는 영역 내에서는 그 어떤 소위 A급 대가들보다도 자신의 모든 노력을 기울이는 그런 사람입니다. 이광중 도사아저씨의 예를 들자면 우리의 일반적 상식으로 보면 틀림없이 헛소리를 하고 있고, 예컨대 이라크 전쟁을 자기가 진두지휘했다느니 이런 얘기를 한다던지…… 이게 중요한 게 아니고 이 사람이 어떻게 해서 지금 현재 삶을 살고 있는가, 라는 겁니다. 그런 헛소리를 하는 사람 중에 사실 무슨 교회 모모목사도 있을 거고 그럴 겁니다. 뭐 태풍이 안 오게 하겠다고 한 목사도 있었잖아요. 태풍이 안 오게 하겠다, 풍년이 들게 하겠다. 그리고 공산주의를 없애겠다. 영생교 교주도 그런 식의 얘기를 했습니다. 혹시 신자가 있다면 참고 고발만 하지 마십시오. (웃음) 어쨌든 사기일 경우가 굉장히 높습니다. 근데 도사 아저씨의 경우는 좀 달라요. 그걸 온몸으로 겪어왔던 거죠. 출생의 비밀부터 해서 성장과정, 개인적인 성격, 성격 때문에 겪었던 고난, 이런 것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렇게 되었던 거죠. 대충의 잔머리를 굴리거나 얄팍한 계산에 의해서 나온 그것은 아니었다고 봅니다. 그 반면 얄팍한 인간들을 인터뷰에서 많이 겪거든요. 뭔가 특이해 보이고 남들 모르는 B급의 무언가를 하고 있는데 인터뷰를 해 보면 그 사람들이 자기가 속한 분야에 대해서 이광중 도사님만큼의 진실성이 있는 것 같지 않습니다. 제가 판단하기에 진실성이 없다고 생각하는 그런 인터뷰는 과감하게 포기했었습니다.
그것을 B급이라고 말하든 말든 간에, 그 속에는 분명 내공을 지닌 고수는 분명히 존재한다. 그 내공이 그 분야의 전문지식이든, 혹은 자연사적인 연륜으로 이루어진 세월의 힘이든, 또는 극히 우연적인 산물이든 간에 분명히 존재하는 것만은 틀림 없다. 그것을 그 분야의 일반론과 분리시킬 수 없다면(춤추는 소녀에게서 춤과 소녀를 분리할 수 없듯이) 오롯이 그것은 그 인터뷰이의 세계로, 그리고 그 인터뷰이가 누리는 그만의 영역의 가치로 인정해야만 할 것이다.
– 면식범, B급이 A급을 이기는 길, 인터뷰를 넘어
면 ▶제가 만난 사람 중에 신혜식도 있었는데요. 보수신문 하는. 신혜식은 우리가 흔히 알기로 싸구려 논객 중의 한 사람입니다. 아무 생각은 없고 자기 혼자 열 받아 가지고 굉장히 껄떡대고 헉헉거리는 사람입니다. 신혜식 인터뷰 때는 제 목표가 이 사람을 좀 까보자는 거였거든요. 문제는 인터뷰할 때 당신은 왜 이리 헛소리야? 이렇게 하면 결코 그 사람에 대해서 정말 의도했던 건 안 나오는 것 같아요. 예컨대 우리가 그 사람에 대해서 결론이 이미 나 있다 해도 혹은 객관적 평가가 무엇이건 간에 이 사람에게 들을 게 있고 이 사람이 자기의 분야에서 무언가를 이루고 있다는 기본적인 존중을 갖고 접근해야 하죠. 신혜식의 경우에 질문하고 답하는 거 들어보면 형편없죠.
그렇지만 형편없다는 판단이 나오려면 먼저 이 사람에게 정당한 질문을 해줘야 합니다. 미국과의 관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김정일에 대해 물어보면 김정일은 때려죽일 놈 이렇게 나오는 거죠. 애초에 질문을 당신 김정일에 대해서 악감정 있지? 라고 했다면 그 질문은 멱살잡고 싸울만한 것이 되겠죠. 그래서 결론적으로 말해서 그 사람에 대한 어떤 진지한 태도와 그 사람의 본질을 파헤치려고 하는 노력이 없었다면 B급이든 A급이든 그 사람의 정체는 드러나지 않습니다.
공 ▶ 에로배우 정세희도 인터뷰했잖아요.
면 ▶ 정세희는 나름대로 자기 일에서는 꽉 차 있었던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녹음이 지워지는 바람에 인터뷰 기사가 불발된 것에 대해서는 아쉬웠죠. 정세희 씨를 연결시켜 준 사람이 누구였냐면 성문화평론가 이명구씨라고 현재 일요신문에 성칼럼 연재하는데요. 말이 좋아 성문화평론가지 포르노평론가입니다.
구용 ▶ 그거 이상한 양복 입은 아저씨들이 신문 가판대 옆에 쭉 붙어가지고 보는……. (웃음)
면 ▶ 왜 그렇게 보나? 난 그냥 보는데. (웃음) 그게 한 4년 전 얘깁니다. 세상 남자 치고 포르노에 대해서 한 말씀 못할 분 없고요. 특히나 술 한 잔 하거나 혹은 온라인상에서 포르노에 대해서 구구절절 말 못할 사람 없습니다. 지식인 중에도 포르노에 대해 뭐라고 쓰는 사람이 있었죠. 그런 지식인들은 포르노에 대해서 뭐라고 말을 많이 갖다 붙입니다. 학술적인 얘기를 붙이죠. 그런 글에는 신뢰도 안 생기고 전혀 관심도 안 가지게 됩니다. 근데 이명구씨 같은 경우에는 조금 달랐고,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해서 부단한 노력을 기울이는 사람입니다. 이명구씨는 그에 비해서 자신의 기득권이라면 기득권이랄까 자기가 누릴 수 있는 것을 다 포기하고 포르노에 뛰어든 사람입니다. 신춘문예 당선되어 소설을 발표한 소설가이기도 하고 전직 신문기자였습니다. 어느 정도 먹고 살만한 것이 보장되어 있음에도 그걸 다 버리고 포르노라는 성인문화산업에 뛰어들었죠. 그래서 인터뷰를 해 본 결과 예상이 빗나가지 않았고 충분히 인터뷰로 만들 만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위 B급이란 이렇게 형성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B급은 형성되고 나서 조롱받거나 삐딱한 시선 아래 놓일지언정 그 사람이 최선을 다 하는 무언가가 있다면 상관없다고,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포르노를 하던지 이박사처럼 탬버린을 흔들던지 간에 자기가 진정성을 가지고 열심히 해 왔다면 우리가 인터뷰해 줄 만한 인터뷰해 보고 싶은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고요. 그런 뜻에서 B급이 A급을 이긴다는 표현을 썼는데 좀 더 큰 결론을 내리자면 B급이나 A급이나 아무 차이가 없다는 것입니다. 만약 인터뷰 기회가 있다면 소위 B급의 사람들을 만나 보십시오. 과연 그 사람이 B급인가 아닌가를 인터뷰가 잘 드러내줄 겁니다. 그래서 인터뷰는 매력적인 도구고요. 인터뷰가 아니라면 이박사가 얼마나 A급인지, A급을 능가하는 B급인지, 이명구가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 대단한 사람인지를 확인하지 못했겠죠. 여러분들도 기회가 된다면 B급에 도전을 해 보십시오.
공 ▶ 2년 전에 퍼슨웹에서 다큐멘터리 영화 상영회를 한 적이 있어요. [먼지, 사북을 묻다]라는 작품. 그 때 그 상영회를 추진한 당시 편집장님인데, 제가 나누어 드린 상영회 자료 2페이지를 보세요. 2페이지의 이 사진이 이 분입니다.
하시진(“하”) ▶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공 ▶ “인터뷰와 다큐멘터리가 만나다” 가 상영회 타이틀입니다. 여러분이 영상 인터뷰를 할 것이기 때문에 유용한 자료가 될 수도 있겠다 싶어 드리는 거거든요. 이 행사의 과정과 취지는 주최자였던 하시진이 직접 설명하는 게 좋겠네요.
하 ▶ 이미영 감독은 인터뷰를 통해서 만났고요. 나중에 그 감독이 만든 그 영화 [먼지, 사북을 묻다]을 보니깐 그 방식이 저희가 추구하는 인터뷰하고 많이 닮아 있더라고요. 1980년에 있었던 사북사태라고, 80년 광주항쟁 전에 발생한 중요한 사건이었습니다. 사북 항쟁은 당시 민주화 열기를 통해서 전국적으로 거대한 파괴력을 가진 항쟁으로 번질 수 있었습니다. 심지어 전두환도 강원도 태백지역까지 서둘러 내려왔을 정도로 굉장한 사건이었는데, 이 사건을 이미영 감독이 파헤친 영화가 이 영화입니다. 사건 당사자들 대부분이 쉬쉬하고 묻어둔 상태였나봐요. 당연히 상처 때문이겠죠. 생활을 같이 하면서 그 사람들을 설득해서 대화의 자리로 끌어내고 스스로 말하게 한 거죠. 그 과정을 통해 실체적인 진실에 가까이 다가간 영화였던 것 같아요. 그래서 상영회를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내부의 디자이너가 포스터를 디자인하고 제가 기획서를 써서 극장 대관하고 협찬도 받고 입장료도 받아서 적자는 면했죠. 그 과정에서 퍼슨웹이 인터뷰만 하는 게 아니라 다른 문화적인 콘텐츠들도 생산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하게 되었고 그 상영회를 통해 여러 사람들도 만나게 되었습니다. 잘난 사람들의 얘기만이 아니라 보통사람의 일상을 소중하게 여기고 나름대로 진지하게 의미 있게 사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려고 하고, 그런 문화적인 콘텐츠도 많이 생산해 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공 ▶ 좀 재밌게 얘기해 줄 수 없나? 농담이고요. (웃음) 지금 바로 뛰어오자마자 숨도 못 돌리고 이야기하셔서 긴장되신 것 같아 힘 좀 빼 드리려고 그런 거예요.
하 ▶ 저 재미있는 사람인데…
공 ▶ 그건 됐고 (웃음) 이 영화를 찍은 이미영 감독님은 사북에 가서 마음 트고 말 트고 하느라고 시간도 진짜 많이 보내면서 찍었대요. 변영주라는 감독이 만든 정신대 할머니 다룬 [낮은 목소리]라는 영화도 있잖아요. 할머니들 계신 나눔의 집에 가서 할머니들이랑 친해지려고 놀고 빨래하고 몇 년 그렇게 지내면서 찍은……. 다큐멘터리라는 게 그래서 힘든 작업인 것 같아요. 극영화를 찍으면 마음에 안 들면 중간에 내용이나 배우를 바꿔도 되겠지만 다큐멘터리는 그런 게 아니잖아요. 이 영화[먼지, 사북을 묻다] 속에 진폐증으로 고생하시는 분이 나오는데 돌아가시죠. 정말 영화를 찍은 것 같이 돌아가셔요.
하 ▶ 관객들도 후반부에서 많이 울고 그랬어요. 장기수 할아버지들에 대한 영화 [송환]도 그런 영화잖아요. 저희가 한 인터뷰 중에도 장기수 선생님들 인터뷰가 있지요. 6.25에 대해서 어떻게 평가하느냐 했더니 “그건 당연히 우리 조국의 승리지요!” 라고 하더라고요. 여기서 우리 조국이라고 하는 게 북쪽을 얘기하는 거죠. 그분 말씀은 사실 국가보안법에 걸리는 거죠. 말로는 “아, 그렇습니까” 하고 받았지만 북한을 찬양하는 자리에 제가 있었던 거죠.
공 ▶ 그리고 막상 그런 말 들으니깐 약간 놀랬지요?
하 ▶ 그땐 진짜 놀랐죠. 이거 어떻게 해야 되는 거지? 싶었죠. </span
나를 움직인 책
공 ▶ 여러분이 이번에 만드실 영상이 북페스티벌만을 위한 게 아니라 보편성 같은 게 담겨 언제 어디서 봐도 좋은 필름이 된다면 더 뜻 깊겠지요. 내 인생의 책이라는 특정 주제를 갖고 하는 인터뷰인데, 잘못하면 진부한 인터뷰가 될 수 있겠다 싶어요. 뻔한 소리, 뻔한 책……그래서 여러분들이 그 사람이 하는 말만 듣고 끄덕끄덕 정말 감동적입니다, 라고 끝낼 게 아니라 좀더
공 ▶ 대답하기가 좀 난감한데……. 거짓말을 할 수는 없고……제 경우엔 [공산당 선언]을 들고 싶어요. 거창하게 표현하자면, 나의 독서의 역사는 공산당 선언을 읽기 전과 후로 나뉜다,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 책 하나만이 제 인생을 형성한 건 아니지만 그걸 읽고서는 책을 읽는 방식과 세상을 보는 방식이 바뀌었다고 할 수 있겠죠. 공산당 선언을 대학 1학년 때 봤어요. 여러분과 비슷한 나이 때죠. 만 19살. 그 때 대학은 소위 386문화의 영향권이죠. 대학 1학년 여름방학 때 선배들의 권유로 공산당 선언을 봤어요. 그 책의 내용도 내용이지만 책을 읽은 방법이 굉장히 중요한데, 여느 독서처럼 혼자 읽은 게 아니고 여러 친구들하고 둘러앉아 한 문장씩 처음부터 끝까지 읽었어요. 1학년 학생들이 몇 명이 모였고 2학년 선배가 있었는데, 한 사람이 소리 내어 한 문장을 읽으면 그 다음 문장은 다른 사람이, 그런 식으로 돌아가면서 읽다가, 잘 이해가 안 되는 대목이 있으면 함께 이야기하고 해결되면 그 다음으로 넘어가고. 우린 대학 1학년 밖에 안됐고 우리를 도와준다고 온 선배도 2학년 밖에 안됐고, 사실은 그 자리에서 나온 말들이 오류일 가능성이 굉장히 크죠. 우문현답이 아니라 우문우답일 가능성이 굉장히 크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도교육 속에서 살다가 대학에 와서 위험한 책이라고 세상이 말하는 책을 순전히 학생들끼리만 모여서 한 줄씩 소리 내서 읽는 거, 눈으로만 혼자 읽고 마는 게 아니라 그렇게 읽었다는 과정 자체가 너무나 놀라웠던 경험이었던 거죠. 선배 집에 모여서 밤을 꼬박 샜죠. 그런 책을 어디서 대놓고 읽기도 어렵잖아요. 근데 읽고 있는데 글쎄 정전이 됐어요. (웃음) 하필 그 때 출출해서 밤참으로 라면 끓여먹자고 불 위에 냄비를 올려놓고 있었는데 정전이 돼 버린 거예요. 큰일 났다, 어쩌지, 우리가 이런 책 읽는 거 하늘이 아시나봐, 경찰이 감시하나봐, 이런 농담 하면서 촛불 켜놓고 라면은 이미 집어넣었어요. 먹긴 먹어야 하니깐. 촛불 켜고 라면 먹고 근데 놀랍게 라면을 다 먹고 꺼억, 하는 순간 불이 딱 들어왔어요. 영화 같죠? 그래서 다시 정신 차리고 집중해서 돌아가면서 읽었고, 맨 마지막 문장 여러분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끝나죠.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정말 잊을 수가 없죠. 이렇게 말하다 보니 갑자기 뜻하지 않게 감정이 북받치는군요.
구용 ▶ 똑같은 책이라도 지금에 와서 또 그 책을 읽으면 느낌이 다르잖아요.
공 ▶ 그렇죠. 다르죠. 그때는 아까 말한 것처럼 하나의 어떤 집단적인 제의를 치르는 것처럼 읽었죠. 맑스주의라는 게 지금도 유효한 것인지 대해서는 아무도 함부로 대답할 수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지금 사회주의 국가들이 망했기 때문에 맑스주의가 한물갔다고 말하는 건 쉽지만, 어쨌든 한 세기 동안 맑스주의가 진리라고 믿고서 실천한 사람들이 있었던 거고, 또 지금으로부터 100년이 지나면 세상이 어떻게 바뀔지 알 수 없죠. 하여튼 그때는 복음같이 생각을 했어요. 복음이라는 말이 딱 맞겠네요.
모험 ▶ 당시에 금서였어요?
공 ▶ 우리 때도 서점에서 살 수 있었어요. 우리 1학년 때가 막 그런 이념서적들이 합법적으로 유통되기 시작한 때거든요. 우리 선배들은 타이프로 친 걸 돌려봤대요. 지금도 맑스주의에 관심 있거나 관련 이데올로기를 공부하는 사람들은 모여서 공산당 선언을 스타디하겠지만, 대학교 1학년들이 밤샘하면서 둘러앉아 한줄한줄 읽는 일은 아마 없을 것 같은데. 그때는 단지 읽는 데에 그치는 게 아니라 읽은 걸 실천하는 그런 인간이 돼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그런 책들을 가지고 모여 있었던 거죠. 그때 그 자리에 앉아 있었던 사람들이, 저를 포함하여, 각자 삶은 계속 변해왔고, 그 책이 어떻게 삶을 움직였느냐고 묻는다면 그거는 참 말하기 어렵죠. 다만 이렇게 말해 보면 어떨까요. 내 인생인데 과연 내 인생을 나만을 위해 살아도 되나 고민하게 되는 거죠. 어쩌면 자기 인생 자기가 한 번 사는데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사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 라고 생각할 수 있잖아요. 근데 이런 지극히 당연한 생각을 지극히 당연하게 받아들이기가 어려운 거예요. 선택과 결정의 과정 속에서 고뇌하게 되는 거죠. 결국 선택은 자신을 위한 게 되더라도, 밖으로 드러난 결과는 전혀 상관없어 보일지라도.
구용 ▶ 이걸 신고해야 돼 말아야 돼? (웃음)
공 ▶ 혹시 간첩신고? 아까도 말했지만 금서 아니라니까 지금은 알라딘이나 교보문고 같은 데서도 살 수 있고 (웃음) 오늘 워크샵 주제가 인생의 책이라는 걸 듣고 나서 제가 그 질문을 받으면 어떻게 대답할까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었어요. 사실 공산당 선언을 인생의 책이라고 입에 담는다는 건 참 무섭고 어려운 일이죠. 책 자체가 굉장히 뜨거운 책이라 그렇기도 하지만, 과연 공산당 선언 읽고 너는 지금 어디서 어떻게 뭘 하고 사느냐, 라고 따라올 질문이 무섭고 어려운 질문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고민이 좀 되었어요. 조심스러웠죠. 그래서 제가 아까 순간적으로 감정을 억제하기가 어려웠어요. 그 책을 입에 담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도 들었고 이런 말을 하고 있는 게 위선자 같다는 생각마저 드는 거고. 그러니깐 내 인생의 책이란 질문은 매우 뜨거운 질문이죠. 자기를 보여줘야 하기 때문에 그 질문을 받으면 사실은 타인에게 공개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공개할 수밖에 없을 거예요. 그래서 사실은 인터뷰가 픽션이 될 수 있죠. 다큐멘터리 같지만 한편으로는 픽션인거죠.
진하 ▶ 말씀 들으면서 막 소름이 끼쳤어요.
공 ▶ 그러면 제 이야기는 마치고요. “나를 움직인 책”에 대해서 모의 인터뷰를 한번 해 본 거네요. 여러분의 영상 인터뷰 계획을 좀더 자세히 듣죠.
진하 ▶ 우선 와우북페스티벌에 참여하는 출판사가 마흔 개가 넘어요. 그 출판사를 다 찾아다니면서 다 하는 건 시간도 없고 여력도 없고요. 열다섯 군데 정도로 추려서 출판사 관계자나 작가 디자이너 분들을 약 40명에서 45명 정도 인터뷰하는 거거든요. 좀 더 많을 수도 있고요.
공 ▶ 굉장하네요.
진하 ▶ 사실 이 프로그램을 처음 제안 받았을 때 저도 제 인생의 책에 대해 생각해 봤거든요. 지금까지 살면서 어떤 책이 내게 중요한 영향을 끼친 건가 생각해보니깐 내 치부를 드러내는 거나 마찬가지더라고요. 제가 아까 소름끼쳤다고 말했던 게 그런 거예요. 저도 사실 밝히기 싫거든요. 그런 걸. 저희가 인터뷰할 사람한테도 진짜 이야기가 나오길 바라는 마음이 굉장히 많은데요. 좀 불안해요. 그런 작업이 되려면 서로 어느 정도 신뢰가 있어야 하는 거고, 저희가 사실 굉장히 어리잖아요. 저희가 만나는 사람들은 연령대가 30대 이상인 사람들이고…
공 ▶ 나이 어린 여러분에게 교훈을 주려고 하는 사람도 분명히 있을 거예요. (웃음)
진하 ▶ 맞아요. 저희한테 청소년 추천 권장도서 그런 거 하실까봐 걱정이거든요. 어제 저희끼리 이야기해봤는데 애초에 계획한 4~50명을 인터뷰 못 하는 한이 있더라도 밟을 순서는 제대로 밟아가면서 진행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미리미리 연락해서 출판사의 성향 같은 걸 파악한 다음에 방문하고 될 수 있는 한 긴 시간 잡아서 하고 싶은데 일정 상 시간이 빠듯하거든요. 걱정이 돼요.
공 ▶ 게다가 압축적으로 영상으로 만들어야 하니……
진하 ▶ 지금 든 생각인데, 우리끼리 내 인생의 책에 대해 이야기해 보는 시간을 가지는 건 어떨까?
공격적인 질문을 할 필요성도 있을 것 같기도 해요. 그 사람의 어떤 치부나 약점을 들춰내자는 건 아니고요. 그 사람을 괴롭히라는 게 아니고 어떤 책이 인생에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면 구체적으로 그게 무슨 뜻인지 돌다리 두들기듯 두들겨 보자는 거죠. 예의를 지키되, 인터뷰이를 존중하되, 그 사람이 하는 말의 진정성이랄까 그런 것을 파헤쳐볼 수 있는 인터뷰를 해야 되지 않을까. 그게 왜 그 사람의 인생의 책이 됐는지에 대해 파고들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채영 ▶ 편집장님은 인생을 바꾼 책이라고 생각하시는 책이 어떤 책이세요?
공 ▶ 어, 그거 멋지겠네요. 저도 그렇게 해 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었어요. 시간 관계 상 오늘의 워크샵 공식적으로는 끝내고요. 민들레사랑방 여러분 계속 하시죠. 녹음기는 끄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