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유병자의 아내 리잉

퍼슨웹은 <중국저층방담록 中國底層訪談錄>(장강문예출판사, 2001)의 번역을 기획하여 장강문예출판사와 정식으로 번역출판계약을 체결하고 <중국저층방담록>에 실린 60편의 인터뷰 중 16편을 골라 <저 낮은 중국>(이가서, 2004)이란 제목으로 출판한 바 있습니다. <중국저층방담록>의 일부지만 <저 낮은 중국> 에는 실리지 않은 미출판인터뷰들을 <저 낮은중국>의 역자 이향중 씨의 번역으로 인터뷰 웹진 퍼슨웹에 독점공개하니 무단전재는 삼가해주시기 바랍니다.

몽유병자가 실제로 있는지 항상 의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시인 뉴한(牛漢)이 쓴 <나와 내 시에 대해>라는 글을 읽었다. 거기에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온다. “두들겨 맞아서 뇌에 어혈이 생기고 뇌혈압이 높아져 신경을 압박하게 되었다. 그 결과 난 거의 반세기 동안이나 몽유병 환자로 사는 고통을 받고 있다. 이 증상은 내 삶의 부분이 되어버렸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몽유병 증세가 나타나는 것이다. 나는 영원히 깨어날 수 없는 꿈속에서 살고 있는 셈이다. 

그와 나는 나이차이가 꽤 나지만 친구나 다름없이 지낸다. 하지만, 190cm나 되는 그의 거구 때문인가, 솔직히 그의 병세를 똑바로 대할 자신은 없다. 1996 11 1일 한 친구의 소개로 노혁명가 리잉(黎英) 선생을 만났다. 말씀을 나누다 우연히 그의 남편인 소설가 관둥(關東) 선생을 알게 되었다. 일흔이 넘은 그는 뉴한과 비슷한 이력의 소유자였다. 부인 리잉 선생의 동의를 얻어 관둥 선생의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창밖의 햇빛은 이미 온기를 잃었지만, 내 마음이 막 뜨거워지는 소리가 들린다. 누가 감히 이 얘기를 역사의 동화(童話)가 아니라고 하리?


리 아주머니 안녕하시죠? 얼마 전 어느 잡지에서 관둥 선생님의 소설 한편을 읽었는데, 거기에 몽유병에 관한 얘기가 있더군요. 아주 사실적으로 쓰셨던데요. 근데, 그게 관둥 선생님 당신의 얘기인가 궁금하던데, 선생님은 어떻게 그렇게 완벽하게 당신의 꿈을 기억해서 정리하실 수가 있죠?

 

 

 

자네처럼 이렇게 물어보는 사람이 한 둘이 아냐. 관둥의 몽유병은 모두 다 알고 있지. 그이는 젊었을 때부터 진보적인 사상을 가지고 있었어. 그러다가 하루는 국민당 부패 반대 학생운동에 참가했지. 거리에서 시위를 하다가 진압경찰과 싸움을 벌이다가 잡혀서 감옥에 들어가서 한 40여일 고생했지.

 

출옥하는 날 문서에 서명을 하고 어두컴컴한 복도를 걸어서 빠져 나가는데, 문득 자기 발걸음 소리가 이상하게 크다는 생각이 들었나봐. 그래서 살살 천천히 걸어서 결국 복도 끝까지 갔지. 그리고 한숨을 돌리는데, 복도 여기저기서 검은 그림자들이 튀어 나오는 걸 미처 눈치 채지 못한 거야. 순간 몸을 재빨리 돌렸는데, 그쪽도 막혀 있는 거야. 관둥은 덩치도 크고 권투도 배웠기에 자세를 갖추고 한판 붙으려고 했지. 근데 상대방은 숫자도 많고 몽둥이까지 들고 있었어.

 

결국 벽까지 몰렸지. 몽둥이 네댓 개가 한꺼번에 날아드는데, 두 주먹으로 몽둥이 두개를 간신히 막았지. 근데, 바로 정면으로 날아든 몽둥이 하나가 정수리에 정통으로 맞은 거야. ! 하는 비명을 지르고 바로 기절했지. 깨어나 보니 이미 감옥에서는 풀려났고, 깨끗하고 밝은 병원에 누워 있었던 거야. 난 그때 그 병원에 간호사였는데 그 사람이 어쩌다 그랬는지 알게 되었고, 그러다가 그이를 사랑하게 됐지.

 

당시에, 그 사람은 바로 영웅이 되었지. 사회단체 사람들이 그를 살펴보러 왔고, 그 중에는 숭칭링 허샹닝도 있었고 유명한 영화배우들도 많았어. 병실엔 꽃들이 가득 찼지. 모두 젊은 아가씨들이 보내 온 거지. 이렇게 각계각층의 격려로 관둥은 빨리 회복됐지. 나중엔 기자와 인터뷰하면서 권투자세로 사진 찍기까지 했어. 이때가 바로 해방 직전이라 국민당 군대는 마구 패주하고 있었고 고위급들은 허겁지겁 대만이다 유럽이다 미국이다 하며 도망갈 길을 찾고 있는 상황이었어. 사회가 무척 무질서한 상태라 관둥이 퇴원을 해도 어떻게 뭐 특별히 할 게 없다고 해서, 주치의 선생의 권고로 일정기간 요양을 하기로 했지. 관둥의 일상생활은 내가 챙겼는데, 차츰차츰 서로 좋아하는 감정이 생겨났지.

 

한번은 내가 관둥 약을 들고 당번실에서 나오는데, 갑자기 관둥 병실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는 거야. “워-!” 하는데 기차 기적소리 보다 커. 난 깜짝 놀라서 약을 바닥에 떨어뜨리고 말았어. 바로 달려가 문을 쾅! 하고 열었지. 당직 직원들 모두 놀라고 말았어. 하지만, 관둥은 다들 놀라는 걸 보면서도 별 반응이 없어. 그때 그 사람 창가에 서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거야! 난 바로 뛰어가 그를 부축했지. 그런데 이 사람 내 손등을 토닥거리며 잔잔하게 웃으며, “왜 그래? 이렇게 많이 여기들 와서 뭐해? 무슨 일 있어?” 하는 거야. 어떤 간호사가 뭐라고 하려는 걸 주치의 선생이 바로 제지하면서 “별일 아니네. 다들 돌아가, 별일 아니라니까” 라고 했지.

 

관둥은 다들 좀 평소와 다르다는 걸 보고는 내손을 쥐고 무슨 일인지 캐묻는 거야. 난 그가 일부러 모른 척 한다고 생각해서 화가 나서는 암말도 안 했어. 나중에 원장 선생이 날 찾아서 하는 말이, “자네 정말 관둥에게 시집가기로 마음먹었나?” 하기에, 그렇다고 했지. 그러자 원장 선생이 “관둥의 병은 영원히 낫기 힘들 거야” 하는 거야. 그래서 내가 다급하게 “불치의 병인가요? 몇 년이나 더 살 수 있어요?” 하고 물었지. 원장 선생이 손을 내 저으며 , “자네 대체 무슨 생각하나? 관둥의 병은 감옥에서 얻은 거네. 국민당 놈들이 두들겨 패서 뇌진탕을 일으킨 거지. 그 친구 두개골강(頭蓋骨腔)에는 아직까지 어혈이 있어. 우리 병원으로서는 두개골을 열어서 어혈을 꺼낼 도리가 없네. 그래서 이 어혈이 중추신경을 압박하면 기억 속에 간헐적인 공백이 생겨. 여기서 한 달여 치료를 했는데, 조금 전이 첫 발병이지……고함을 지르고도 자기가 그랬다는 걸 기억 못하는 거지.” 이 말을 듣고 난 앞이 캄캄해졌어.

 

다시 원장 선생에게 “그럼 앞으로도 계속 이런 건가요?” 하고 물었더니 원장 선생이 “긴장하거나, 또는 스트레스를 받거나 지나치게 흥분하면 그럴 수 있어. 하지만, 본인이 낙관적으로 마음을 먹고 긍정적인 생각을 하면 별 일은 없을 거야. 베이핑(역주:베이징의 옛이름)이 곧 해방될 거잖아. 공산당이 들어오면 사회도 안정되고 민주적인 발전도 이룰 거니까. 관둥은 이제 겨우 스무 살이니까, 몇 년 지나서 의료조건이 좋아지면 그 친구 병도 해결할 수 있을 거야.

 

근데, 설마 몰랐지. 이 병이 수십 년 동안이나 계속 될지는! 그 사람이 고함치는 데는 이미 익숙해졌어. 하지만, 그 때 원장 선생이 숨긴 게 있어. 이 병이 고함치는 거 보다 더 심한 증상이 있다는 거. 바로 몽유병이지. 관둥은 평소에 말투가 진중하고 자상한 사람이야. 근데 몽유병 증상이 나타나면 또 다른 사람이 돼. 아무 소리도 없지만, 격정과 집착에 사로잡혀. 프로이드가 얘기한 그대로야. 모든 꿈은 돌출이며, 결함이다. 자기 이전의 경험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말말이야. 그러니, 관둥은 자기의 꿈을 정리하고 기억할 수 없는 거야. 1초전에 고함친 것도 기억 못 하지……그 사람 소설은 내가 그 사람이 꿈속에서 했던 걸 써준 거야.

 

 

 

 

 

 

 

 

한 둘이 아냐. 관둥의 몽유병은 모두 다 알고 있지. 그이는 젊었을 때부터 진보적인 사상을 가지고 있었어. 그러다가 하루는 국민당 부패 반대 학생운동에 참가했지. 거리에서 시위를 하다가 진압경찰과 싸움을 벌이다가 잡혀서 감옥에 들어가서 한 40여일 고생했지.

 

출옥하는 날 문서에 서명을 하고 어두컴컴한 복도를 걸어서 빠져 나가는데, 문득 자기 발걸음 소리가 이상하게 크다는 생각이 들었나봐. 그래서 살살 천천히 걸어서 결국 복도 끝까지 갔지. 그리고 한숨을 돌리는데, 복도 여기저기서 검은 그림자들이 튀어 나오는 걸 미처 눈치 채지 못한 거야. 순간 몸을 재빨리 돌렸는데, 그쪽도 막혀 있는 거야. 관둥은 덩치도 크고 권투도 배웠기에 자세를 갖추고 한판 붙으려고 했지. 근데 상대방은 숫자도 많고 몽둥이까지 들고 있었어.

 

결국 벽까지 몰렸지. 몽둥이 네댓 개가 한꺼번에 날아드는데, 두 주먹으로 몽둥이 두개를 간신히 막았지. 근데, 바로 정면으로 날아든 몽둥이 하나가 정수리에 정통으로 맞은 거야. ! 하는 비명을 지르고 바로 기절했지. 깨어나 보니 이미 감옥에서는 풀려났고, 깨끗하고 밝은 병원에 누워 있었던 거야. 난 그때 그 병원에 간호사였는데 그 사람이 어쩌다 그랬는지 알게 되었고, 그러다가 그이를 사랑하게 됐지.

 

당시에, 그 사람은 바로 영웅이 되었지. 사회단체 사람들이 그를 살펴보러 왔고, 그 중에는 숭칭링 허샹닝도 있었고 유명한 영화배우들도 많았어. 병실엔 꽃들이 가득 찼지. 모두 젊은 아가씨들이 보내 온 거지. 이렇게 각계각층의 격려로 관둥은 빨리 회복됐지. 나중엔 기자와 인터뷰하면서 권투자세로 사진 찍기까지 했어. 이때가 바로 해방 직전이라 국민당 군대는 마구 패주하고 있었고 고위급들은 허겁지겁 대만이다 유럽이다 미국이다 하며 도망갈 길을 찾고 있는 상황이었어. 사회가 무척 무질서한 상태라 관둥이 퇴원을 해도 어떻게 뭐 특별히 할 게 없다고 해서, 주치의 선생의 권고로 일정기간 요양을 하기로 했지. 관둥의 일상생활은 내가 챙겼는데, 차츰차츰 서로 좋아하는 감정이 생겨났지.

 

한번은 내가 관둥 약을 들고 당번실에서 나오는데, 갑자기 관둥 병실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는 거야. “워-!” 하는데 기차 기적소리 보다 커. 난 깜짝 놀라서 약을 바닥에 떨어뜨리고 말았어. 바로 달려가 문을 쾅! 하고 열었지. 당직 직원들 모두 놀라고 말았어. 하지만, 관둥은 다들 놀라는 걸 보면서도 별 반응이 없어. 그때 그 사람 창가에 서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거야! 난 바로 뛰어가 그를 부축했지. 그런데 이 사람 내 손등을 토닥거리며 잔잔하게 웃으며, “왜 그래? 이렇게 많이 여기들 와서 뭐해? 무슨 일 있어?” 하는 거야. 어떤 간호사가 뭐라고 하려는 걸 주치의 선생이 바로 제지하면서 “별일 아니네. 다들 돌아가, 별일 아니라니까” 라고 했지.

 

관둥은 다들 좀 평소와 다르다는 걸 보고는 내손을 쥐고 무슨 일인지 캐묻는 거야. 난 그가 일부러 모른 척 한다고 생각해서 화가 나서는 암말도 안 했어. 나중에 원장 선생이 날 찾아서 하는 말이, “자네 정말 관둥에게 시집가기로 마음먹었나?” 하기에, 그렇다고 했지. 그러자 원장 선생이 “관둥의 병은 영원히 낫기 힘들 거야” 하는 거야. 그래서 내가 다급하게 “불치의 병인가요? 몇 년이나 더 살 수 있어요?” 하고 물었지. 원장 선생이 손을 내 저으며 , “자네 대체 무슨 생각하나? 관둥의 병은 감옥에서 얻은 거네. 국민당 놈들이 두들겨 패서 뇌진탕을 일으킨 거지. 그 친구 두개골강(頭蓋骨腔)에는 아직까지 어혈이 있어. 우리 병원으로서는 두개골을 열어서 어혈을 꺼낼 도리가 없네. 그래서 이 어혈이 중추신경을 압박하면 기억 속에 간헐적인 공백이 생겨. 여기서 한 달여 치료를 했는데, 조금 전이 첫 발병이지……고함을 지르고도 자기가 그랬다는 걸 기억 못하는 거지.” 이 말을 듣고 난 앞이 캄캄해졌어.

 

다시 원장 선생에게 “그럼 앞으로도 계속 이런 건가요?” 하고 물었더니 원장 선생이 “긴장하거나, 또는 스트레스를 받거나 지나치게 흥분하면 그럴 수 있어. 하지만, 본인이 낙관적으로 마음을 먹고 긍정적인 생각을 하면 별 일은 없을 거야. 베이핑(역주:베이징의 옛이름)이 곧 해방될 거잖아. 공산당이 들어오면 사회도 안정되고 민주적인 발전도 이룰 거니까. 관둥은 이제 겨우 스무 살이니까, 몇 년 지나서 의료조건이 좋아지면 그 친구 병도 해결할 수 있을 거야.

 

근데, 설마 몰랐지. 이 병이 수십 년 동안이나 계속 될지는! 그 사람이 고함치는 데는 이미 익숙해졌어. 하지만, 그 때 원장 선생이 숨긴 게 있어. 이 병이 고함치는 거 보다 더 심한 증상이 있다는 거. 바로 몽유병이지. 관둥은 평소에 말투가 진중하고 자상한 사람이야. 근데 몽유병 증상이 나타나면 또 다른 사람이 돼. 아무 소리도 없지만, 격정과 집착에 사로잡혀. 프로이드가 얘기한 그대로야. 모든 꿈은 돌출이며, 결함이다. 자기 이전의 경험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말말이야. 그러니, 관둥은 자기의 꿈을 정리하고 기억할 수 없는 거야. 1초전에 고함친 것도 기억 못 하지……그 사람 소설은 내가 그 사람이 꿈속에서 했던 걸 써준 거야.

 

 

 

 

 

관둥 선생님이 처음으로 몽유병 증상이 나타난 건 언제였나요?

아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지. 결혼한 지 석 달이 되었을 때였어. 베이핑 시민들은 거의 모두 이제 곧 해방이 되는구나 생각하고 있었지. 관둥이 대학을 졸업하고 달리 갈 데가 없어서 내가 일하는 병원에서 잠시 있었지. 해방군(역주:중국공산당 인민해방군)이 들어 온 첫날 밤, 우린 모두 흥분해서 잠을 이룰 수 없었어. 그도 그럴 게 지하당 학생조직에서 연락이 왔거든. 다음날 아침 일찍 베이징대학에서 집회를 열고 거리에서 해방군 환영행사를 하기로. 내가 관둥에게 “눈 좀 잠깐 붙여요. 두 시간만 지나면 날이 밝아요” 라고 했지. 관둥은 자상하게 날 꼭 안아주면서 “당신도 잠시 눈 붙여. 우리 그냥 아무 말 안고 자기로 하자, 어때?

 

난 잠깐 잠이 들었는데, 날이 밝은 것 같은 거야. 근데 직감적으로 이렇게 빨리 날이 샐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 난 간호사라 늘 야근을 하니까 그런데 좀 예민하지. 커튼을 열고 보니 역시 하늘에 별이 총총하더군. 근데 옆의 관둥이 안 보여! 두 번이나 불렀는데 대답이 없어. 그래서 불을 켜고 둘러봤지. 화장실에서 무슨 소리가 나는 거야. 바로 맨발로 살그머니 다가가서 몰래 들여다봤지.

 

그랬더니 바로 눈앞에 관둥의 커다란 등이 보이는 거야. 그 사람 거울을 보며 삭삭 면도를 하고 있었어. 작은 목소리로 “관둥! 관둥!”하고 불렀지. 관둥은 대꾸도 않고 계속 면도만 하는 거야. 면도가 끝나고 소리 없이 세수를 해. 그러고 천천히 몸을 돌렸어. 목덜미에는 피가 흐르고 두 눈은 멍해. 키가 하도 커서 그 사람 눈빛이 마치 내 머리꼭지 위로 지나가는 것 같았어. 바로 감을 잡고 더 이상 부르지 않았어. 왜냐면, 몽유병 환자는 중간에 불러서 깨우면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었거든. 만약 그랬다간 돌연사 할 수도 있어.

 

난 침대로 돌아와서 잠 든 척 했지. 그가 오더니 허리를 굽히고 내 얼굴을 쓰다듬고 서는 별 반응이 없으니까 내 이마에 입 맞추더군. 이런 모습은 보통 때라면 지극히 따뜻하고 낭만적인 거지. 하지만, 바로 이런 상황에서는 단지 뻣뻣하고 기계적으로 느껴졌어. 난 숨을 죽이고 관둥이 침대로 돌아오길 기도했어. 근데 군사훈련 하듯 뒤로 팩 돌더니 꼿꼿하게 앞을 향해 걸어가서 문 밖으로 나가더군.

 

 

바로 뒤를 쫓았지. 숲이 우거진 길인데, 그 사람이 그 길 따라 입원실 병동으로 들어가면 어떡하나 걱정했어. 큰 일 나거든. 그래서 지름길로 앞 질러가서 뒤뜰 울타리 문을 잠가 놓았어. 이렇게 하면 못 나가고 다시 집으로 되돌아오겠지 하고 생각했던 거야.

 

근데, 내가 또 틀렸어! 관둥은 문에 다가가서 몇 번 중얼거리더니 바로 몸을 돌려 딴 길을 찾아. 그 쪽은 아예 길도 없거든. 화단 두 개 넘어서 바로 전염과(傳染科) 하고 맞닿은 영안실이거든. 너무 놀라서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지만, 계속 쫓아 갈 수밖에. 앞에 지름길도 없고 당직의사를 부르기에는 이미 늦었고 해서 죽어라 달렸지. 그래서 겨우 그 사람하고 5미터 뒤까지 따라 갈 수 있었어. 영안실에 도착해 보니 문이 잠겨 있더군. 그제야 안심이 되며 그 사람이 돌아가겠지 하고는 안 보이게 숨었지. 근데 문은 열려 있었어. 자물쇠가 그냥 문고리에 걸려 있기만 했던 거야!

 

관둥은 영안실에서 엎치락 뒤치락 하더니, 냉동관에서 시체 두 구를 일으켜 세우고는 같이 벽에 기대어 서는 거야. 그리고는 셔츠를 벗어서 세 개로 찢은 다음에 한 명이 한 개씩 걸쳐. 다음에 입을 벌리고는 소리 없이 구호를 외쳐. 깃발을 마구 흔드는 시늉까지 해.

 

너무 무섭고 놀라서 온갖 생각이 다 들었지만, 바로 달려가 영안실 아저씨 방문을 쾅쾅 두들겼지. 그 아저씨 세상 물정에 밝고 시골에서 장례식도 많이 치러 본 사람이었어. 내가 펑펑 울면서 얘기를 하니 아무 말도 않고 방구석에 세워 둔 작은 막대기를 집어 들고 영안실로 향하더군. 술을 몇 모금 꿀꺽 마시고는 그 병을 나한테 맡기고 나더러 집으로 돌아가라고 손짓을 해. 그러더니 마치 자기 몸도 시체같이 바로 딱딱한 척 해. 관둥 옆으로 스윽 다가가서 나란히 서는 거야. 야밤에 이 네 사람의 무언극이 시작된 거야.

 

그러다가, 이 아저씨가 관둥이 팔 드는 걸 따라 하면서 순간 막대기를 관둥 주먹에 끼워 넣더라고. 그러고 나서는 막대기를 끌면서 길을 열어 나가. 관둥은 얌전하게 그 뒤를 따라서 결국 우리 집 문에 닿았지. 그러고는 그 아저씨 머리를 싹 움츠리고는 살짝 빠져서 어둠 속으로 사라졌어. 하지만, 관둥은 작은 막대기를 여전히 움켜쥐고 있었어. 마치 보이지 않는 힘에 이끌린 것처럼 숙소로 들어가. 객실을 한 바퀴 돌고는 눈을 높이 치켜뜨고 성큼성큼 걸어가서 침대로 들어갔어. 내 옆에 눕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코를 드르렁 골기 시작하더군.

 

이렇게 깜짝 놀랄 일을 겪고 나니 정신이 하나도 없어. 날이 어렴풋하게 밝아 오는데 그 때서야 잠이 들고 말았지. 자명종 소리도 못 들었어. 오후 1시에 우린 마치 약속이나 한 듯이 벌떡 일어나며 다 같이 “큰 일 났다!” 소리 질렀어. 그리고는 서둘러 밖으로 뛰쳐나갔지. 세상 온 천지에 북소리 징소리로 가득 차고 홍기가 펄럭이고 우렁찬 노래 소리가 울려 퍼지더군. 해방군이 벌써 입성한 거야. 우린 바로 인파에 휩쓸렸고, 관둥은 햇빛 아래 환하게 웃고 있었지. 정말이야, 난 이렇게 불굴의 의지를 가진 이 남자를 사랑해.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그 날 몰래 떠나버렸겠지.

 

조금 있다 관둥이 내개 조용히 얘기하더군. “우리 어떻게 이렇게 늦었지? 어젯밤 내내 해방군을 환영하는 꿈을 꿨어. 면도 하고 셔츠 입고 거리로 나갈 준비를 했지. 근데, 철책문이 잠겨 있는 거야. 지름길로 돌아가는데 친구 두 명이 아직도 자고 있는 거야. 그래서 그 친구들을 일으켜 세워서 같이 담벼락 밑에서 기지개를 펴면서 잠을 좀 깼지. 좀 있으니 집회 소식을 알리러 누가 왔어. 그래서 그 사람을 따라 갔는데 어찌된 일인지 다시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어. 침대에서 일어나려고 했지만 좀 체 안 돼. 다리에 경련이 오고 눈은 아무리 뜨려고 해도 안 떠지더라고.

 

 

  

무슨 일 날까봐 관둥 선생에게 얘기 안 하신 거죠. 관둥 선생이 그러다가 혹시 아주머니에게 해를 끼친 적은 없나요?

그 사람 어느 누구도 해를 끼친 적이 없는 사람이야. 처음엔 걱정이 돼서 상사들에게 몰래 보고해서 동의를 얻고는 그 사람 물 잔에 몰래 안정제를 몇 알 넣어서 자기 전에 마시게 했지. 나중엔 부탁을 해서 바깥에서 문을 잠궈두기도 했어. 이렇게 하니까 관둥은 몽유할 때도 방안에서만 왔다 갔다 하게 됐지. 그 사람 별로 자기 마음에 안 든다 싶으면 대충대충 하는 성격이라, 별로 꼬치꼬치 캐물어 알려고 하지 않아. 그러다가 점점 몽유병 증상이 환경이나 주기 등의 영향을 받는 거라는 걸 알았지. 한 달에 몇 번 정도 나타날 뿐이고, 평소에 정서적인 안정만 유지하면 큰 문제없어.

관둥은 문학예술을 사랑하는 사람이었어. 그래서 신정부가 구 인쇄국을 접수 개조하고 몇 개를 합쳐서 출판사를 만든 후에, 관둥은 진보적인 사상을 가진 청년간부로 거기에 들어갔지. 그런데, 우리가 병원에서 이사 나온 후 얼마 안 돼서 한국전쟁이 일어난 거야! 관둥은 나 몰래 신청을 하고는, 전사(역주:일반병사) 신분으로 압록강을 건너서 전쟁에 나가려 한 거야. 그 사실을 알고도 난 진짜 이유를 말 못했어. 충격이 클까봐 두려웠거든.

하는 수 없이 임신했다고 거짓말을 했지. 관둥은 씩 웃었어. 당시엔 모든 게 국가와 인민의 이익이 우선이었거든. 그러니, 아내가 임신했다고 해서 그게 남편이 전선에 못 나갈 이유는 아니었지. 최후수단으로 병원에 찾아가서 관둥의 병력 증명서를 받으려고 했는데, 마침 원장이 “스파이 혐의”로 잡혔어. 업무 인수인계를 하고 있으니 그게 되나. 더군다나 해방군 대표는 예전 서류를 봐도 잘 몰라. 속이 타 죽는데, 다행히 예전 주치의가 병력 서류를 내 주더군. 하지만 벌써 사흘이나 지나간 거야. 관둥은 부대를 따라 막 출발했고, 집에 메모 한 장 달랑 남기고. 난 급히 기차를 타고 선양(瀋陽, Shenyang 심양)에 도착했지. 더 이상은 못 가. 단둥(丹東, Dandong 단동)은 특별 통행증이 필요해서 갈 수가 없었어. 거리 가득 찬 군인과 사람들 사이에서 어디서 그이를 찾아. 결국 관둥 부대 번호를 지원군 총본부의 어느 참모에게 말했지. 그 순간 멀리 전선에서 포성 소리가 들려왔어.

관둥은 조선에서 3개월간 종군기자 임무를 훌륭히 수행했지. 원고도 잘 썼고 긴급한 시기에는 직접 총을 들고 작전도 참가했지. 그 사람이 원래 사격에 소질에 있어서 공도 세웠어. 근데 얼마 안 있어서, “미장 스파이”(역주:미국과 장제스)로 몰려 체포되어 송환되어 버린 거야! 어떻게 된 일이냐면, 야간 잠복을 하다가 관둥이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총을 버리고는 고함을 질렀대. 이건 적에게 아군 위치를 가르쳐 주는 거나 다름없는 거지. 바로 포성이 크게 터지고 방어선이 완전히 봉쇄당해버린 거야. 엄청난 사상자를 내고 철수할 수밖에. 게다가 적군이 소이탄을 발사해서 일대는 불바다가 되어버렸지.

관둥은 다리에 총상을 입고는 격분한 전우들에게 묶여서 끌려 왔어. 관둥은 병원에서 발급한 병력증서 덕분에 군법회의에 회부되는 것은 면했지만, 베이징으로 돌아온 후 무척 낙심했지. 이건 그 사람 가슴 속에 평생의 불치병으로 남았어. 하지만, 만약 다리에 총상이 없었다면 자기가 고함을 쳤다는 것도 기억 못 했을 거야, 아마. 

 

 

여기까지 말씀 하시고 잠시 쉬시죠. 관둥 선생은 자신의 병을 알게 되고 나서는 어떠셨나요? 큰 전환점이 되었을 것 같은데요?

보통사람이라면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자기한테 말 안 했다고 가까운 사람들을 원망했겠지. 근데, 관둥은 훌륭한 남자야. 그 사람은 내내 다른 사람 생각 밖에 안 해. 집에서 고민하며 술을 마시더니, 내내 하는 말이, “내가 당신 다치게 하는 거 아냐, 리잉? 만약 그런 거라면 우리 이혼하자. 몽유병 증세가 나타나서 내가 당신을 다치게 하는 거. 그거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눈물을 글썽이는 거야.

난 간호사로서 그를 위로하지 “당신은 정말로 나를 사랑하잖아요. 그런 당신이 어떻게 날 해칠 수가 있겠어요? 꿈은 바로 잠재의식이 드러나는 거예요. 당신의 잠재의식은 선하고 깨끗한 걸요.” 관둥은 내 눈을 똑바로 보다가 “당신이 내게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거. 진실만을 얘기한다는 거 알아. 당신 눈을 보면 알 수 있어” 하더군. 이어서 한숨을 쉬면서 하는 말이 “그때 나 때문에 그렇게 많은 전우들이 희생을 당했는데. 나는 이렇게 살아남아서 양심의 가책이나 받고 있으니” 라며 자책하는 거야.

난 화제를 바꿨지. “관둥, 당신 힘 내야 해요. 아직 젊으니까 병은 반드시 나을 거예요. 알았죠?”라고 위로했지. 내 말을 듣고 그 사람 “당신이 내 곁에 있으니까 나도 내가 건강해질 거라고 믿어. 고마워.”라고 하더군. 이것 봐, 자네. 관둥은 이런 사람이야. 그 오랜 세월 동안 난? 여전히 이 말을 마음에 간직하고 있지.

요즘 같이 타락한 세상에 어르신들 얘기는 마치 신화 같이 들리네요. 그 후에 관둥 선생의 병은 어떻게 되었나요?

관둥은 직장에서 사람 관계가 무척 좋았어. 그래서 윗사람들도 그 사람을 신임했지. 어딜 가서 치료한다 해도 모두 허락해 주고 한푼 두푼 씩 도와줬지. 그 때 당시엔 상하이나 광저우에 가서 소련 전문의를 찾아가도 위험한 수술이라고 모두 꺼려. 국내 의료조건은 한계가 있고 그렇다고 외국엔 못 나가니까, 그냥 끌고 가는 수밖에. 방법이 없었어.

관둥은 무슨 일 날까봐 특히 조심했어. 매일 밤새워 원고를 보고 내가 잠 든 걸 확인하고서나서야 비로소 침실문을 잠그고 자기는 거실 소파위에서 잤지. 자기 전에는 방안에 예리한 물건은 다 치워 버리고 문을 잠궈. 그리고 술을 들이키고는 누워서 잠을 청했지. 관둥이 알아서 잘 대비를 했기 때문에 오랜 동안 아무 일도 없었지. 기껏해야 깨어 보니 소파에서 바닥으로 굴러 떨어져 있는 것뿐인걸.

1957년 반우파투쟁이 시작되었잖아. 그래도 직장 내 동지들 사이 관계가 원체 좋으니 이게 되나. 사람이 수십 명이나 되도, 우파는 몇 명밖에 못 만들어 냈지. 근데, 이게 상부에서 지시한 숫자에 못 맞춘 거야. 또 두 명을 걸러 냈는데도 아직 “우파정원(右派定員)”이 한 명 모자라. 어떡해? 막말로 누가 적극적으로 안 나서면, 까딱하다가 상부에서 공작조를 파견해서 난리를 한판 칠 상황이 된 거야. 생각해봐. 지식인들이 꽉 모여 있는 출판계 아냐? 정치적 문제, 만들려면 한두 가지겠어? 우파 열 명을 갖다 바쳐도 모자라지. 그렇다고, 거기 최고책임자 류()선생, 마음 독하게 먹고 사람을 솎아 낼 그런 위인이 못 돼. 그 양반 심지어는 “정말 안 되면, 내가 나서서 정원을 맞추지, . 출판관련 최종적인 책임은 결국 나한테 있는 거니까. 모든 책임은 내가 지지.”라고 까지 했다니까.

관둥이 이 말을 듣고는 바로 “그건 안 됩니다! 4대가 함께 살고 계시잖아요? 줄줄이 딸린 가족들은 어떡하라고요? 차라리 내가 하죠. 애도 없는데 괜찮아요.” 라며 나선 거야. 그 양반이 “자네는 반당(反黨) 언동 한 것도 없잖아? 안 돼!” 하고 단호하게 잘랐지. 그 말 듣고 관둥이 뭐랬는지 알아? “지금이라도 바로 나가서 사람들에게 반당 언동 좀 하면 되죠, . 그걸로 모자라면, 편집주임 하면서 우파 작가들 글 심사를 안 보냈다, 그때는 그 사람들이 나중에 우파가 될 줄 몰라서 그랬다, 이렇게요 하죠.

 

 

관둥 선생 대단하시군요.

몇 분 정도 대단하고, 20여년 그 대가를 치렀지. 우파가 된 지 얼마 안 돼서, 허베이(河北) 농촌으로 하방된 거야. 갈 때가 되어, 관둥이 동료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러 갔지. 근데, 두 달 서로 못 봤다고 사람들이 그 사람이 어쩌다 우파가 되었는지 모른 체 하는 거야. 계속 숨고 피하는 거지.

 

전에 친하게 지내던 여성 동지 한 명은 덩치가 산 만한 관둥이 허리를 푹 숙이고 작별 인사를 하니까 어쩔 줄을 몰라 하다가 그만 하수도에 빠지고 말았어. 관둥의 그 천진난만하게 웃는 얼굴이 굳어지고 말았어.

집에 돌아오다가 술을 진탕 마시고는 잠시 드러누워 있더니 일어나서 또 몽유병 증세가 도졌어! 이번은 창문을 부수고 나가서 밖에서 하! ! 하며 권투연습을 했어. 날이 밝자 누가 나무 밑에서 그를 발견했어. 이 일로 관둥은 무척이나 낙심을 하고는 시골로 내려가서 낮에는 죽어라 일을 하고 밤에 잠들기 전에 반드시 끈으로 발을 침대에 옭매듭으로 묶었지. 이런 잔인한 습관이 오랫동안 계속 되다가 70년대 말에 베이징으로 돌아올 때까지 계속 됐어. 

두 분 아이가 없으시죠? 두 분 사이에 이렇게 금슬이 좋으신데 아이가 있으면 아주 똑똑하겠어요.

처음에 병 치료 할 때는 가질 생각을 못했어. 그 사람이 우파가 된 다음에는 나도 그 사람을 따라 허베이 무슨 현에 있는 병원에 가서 일을 했지. 그 땐 또 3년 재난 때라, 가질 엄두를 못 했어. 관둥이 얘기하더군 “요즘 같아서는 어른도 살아가는 게 힘든데, 애 가질 엄두나 내겠어?” 나중에 먹고 살만 하니까 그 땐 애 낳으면 우파 자식이라고 고생할까봐 두렵다고 하더군.

3년 재난으로 그렇게 많은 사람이 죽었는데, 그 때 두 분은 어떻게 사셨어요?

우선 병원엔 식량이 외부보다 많았어. 또 관둥이 현 공산당위원회에 가서 밥을 내 놓으라고 협박도 했어. “베이징 출신 우파가 굶어 죽으면 공산당 이름에 먹칠 하는 거 아냐?” 라고. 우리가 고기라고 먹은 건 임산부의 태반이었어. 그때만 해도 현은 낙후되고 또 미신도 많아서, 그런 걸 꼬치꼬치 캐묻는 사람도 없었지. 

요즘은 의료조건이 많이 좋아지고 외국 가서 치료하기도 좋잖아요. 관둥 선생 병을 치료하시는 게 어때요?

관둥은 그런 데 돈 안 쓰려고 해. 그렇게 오랫동안 어혈이 있었는데 갑자기 꺼내면 뇌가 오히려, , 뭐가 좀 허전하네, 하고 느낄지도 모르잖아? 관둥은 그딴 소릴 해. 근데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칠십 살이나 먹은 인간이 아직도 애들 같애. 세상 풍파를 좀 겪다 보니 우리도 이젠 좀 알겠어. 바깥에 저 뜰 있지? 저게 손바닥만 해도 문을 잠가 버리면 관둥은 몽유할 때 아무데도 못 가. 2년 동안은 방문 안 걸어도 좀 체 밖으로 안 나가. 기껏해야 한밤중에 일어나서 면도하고 서재 들어가서 책 보는 것뿐이야. 한번은 내가 살그머니 일어나서 조용히 훔쳐보고 있었는데, 그 사람이 “리잉, 당신 거기서 뭐해?” 하지 뭐야. 내가 되레 깜짝 놀랐어. 몽유하는 게 아니었던 거야.

관둥은 마음이 참 젊은 사람이야. 80년대에 작가협회가 유명한 청년잡지 하나를 없애버린다고 해서, 문화계에서 불만이 많았지. 관둥이 이 소식을 듣고는 티셔츠 하나 달랑 거치고 바로 작가협회 사무실로 뛰어 가서 거기 퍼질러 앉아서는 무턱대고 대성통곡을 한 거야. 그러자 주위에 사람들이 놀라 모여들자, 나는 초나라 충신 선바오쉬가 진나라 조정에서 통곡한 걸 흉내 내는 거요, 라고 했지. 그 사람 이런 패기는 퇴직하고서도 여전했어.

얼마 전에 밤늦게 과학관련 책을 보더니 기뻐서 어쩔 줄 모르며 나한테 이러는 거야. “남미 어느 나라에 몽유병자 마을이 있대. 여기 마을사람들은 밤에는 일하고 낮에는 몽유한대. 외부인이 낮에 마을에 들어가 보면, 태양 흐릿흐릿 한데서 그 많은 사람들이 길거리에 뻣뻣하게 왔다 갔다 한다는 거야. 쥐 죽은 듯이 조용하대. 길을 가다 좁은 데서 마주쳐서 부딪칠 것 같으면, 신기하게도 서로 몸을 비켜서 지나간다네. 이 마을엔 곳곳에 눈이 충혈 되어 가지고 어슬렁거리는 개 투성인데, 이것들이 기다란 혀로 나무 그늘에서 자고 있는 사람 얼굴을 스윽 하고 핥는대……밤이 되어야 마을은 비로소 떠들썩해지고 닭도 꼬끼오 하고 울고 말이지. 또 밤 12시가 되면 붉은 등이 켜지고 서커스단이 마을로 들어오고 길거리에는 사람들로 넘쳐 나……

그 얘긴 저도 읽은 적이 있어요. 관둥 선생 여행가고 싶은 신 건가요?

그 사람은 그냥 얘기로 생각 안 해. 요즘 여기저기서 관련 자료를 모으고 있어. 살아있을 때 꼭 한번 가봐야겠다는 거지. “그 곳은 몽유의 땅이야. 몽유하지 않는 사람은 비정상이지. 아마 마르케스도 가 봤을 거야. 아니면 <백년간의 고독>이 어떻게 꿈같은 내용일 수 있겠어? 틀림없이 말뚝잠을 자며 쓴 거야. 나 꿈속에서 글 써 본 적 있어. 힘들게 쓰긴 했어. 결국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할 만한 걸 쓰고 말았지. 근데, 낮에 보니, 책상 위에 백지 한 장 뿐이야.

몽유병은 관둥 선생한테는 화면서 복이군요. 최소한 몽유병으로 인해 그 분은 이렇게 혼탁한 세상에서 어느 정도 거리를 두실 수 있을 테니까요. 세상에서 떨어진 느낌 같은 거 말이죠. 천당으로 들어 갈 수 있는 그런 순수한 분이군요.

그 사람 내내 천당에서 살아왔어.

 

 

작자 겸 인터뷰어
라오웨이(老威): 본명 랴오이우(廖亦武)

 

70년대말부터 시를 짓기 시작하여 각종 문학상을 받음. 89년 톈안먼(天安門) 사건을 맞아 시 <<大屠殺>>을 발표. 1990년 톈안문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安魂>>제작에 참여하다 처음으로 체포되어 4년 형을 받음. 1994년 출옥 후 고향인 청두(成都)의 찻집과 술집을 전전하며 악기를 연주하며 생계를 이어감. 1995년 공안에 의해 가택수색을 당하고 원고들을 압류당함. 동년 유명 지식인 12명과 함께 全國人民代表大會에 반부패 관련 건의를 함. 1998년 중국 70년대 지하 시를 편한 <<沈淪的聖典中國20世紀70年代地下詩歌遺照>>내고 베이징에서 구류당함. 1999년 결혼식 직전에 “불법인터뷰” 혐의로 구속. 동년 인터뷰의 일부분을 익명으로 출판되어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킨 후, 책은 판금당함. 2001 1 1990~2001년 기간에 완성한 인터뷰를 기반으로 60여명의 인물을 대상으로 한 <<中國底層訪談錄>>을 재출판하여 또다시 큰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킴. 2001년 중국 유명 일간지 <<南方週末>> <<中國底層訪談錄>>관련 대담이 실린 후 당국에 의해 동 신문사 주편집 부편집 편집주임 편집부주임 등이 정직처분을 당함. 2003년 여름 프랑스 bleu de chine 출판사에서 <<中國底層訪談錄>>을 선별 번역한 <>의 출판기념회 참석을 출국하려다 사스예방을 이유로 공안당국에 의해 출국금지 당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