곱창전골 사토 유키에

사토 유키에
- 프리뮤직,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세상


1. 들어가며

2. 소리를 찾아서

3. 음악적 뿌리

4. 한국에서의 프리뮤직과 불가사리

5. 어떻게 공연을 만들어나가는가

6. 프리 뮤직이란 무엇인가

7. 그리고 잡담들


일시 : 2005년 1월 16일 20:00경부터 공연(Bulgasari vol.29@Badabie)후

장소 : 산울림 소극장 건너편 산울림 고깃집

인터뷰어 : 거북이(인터뷰어) 봉구,heartlab(사진)

1. 들어가며

 

 

 

음악들은게 몇년되었더라. 중학교때인 90년 정도라고 생각해보면 이제 15년째인거 같다. 그냥 가볍게 듣고 좋아했더라면 좋았을것을 음반 사모으고 뮤지션의 계보를 따라가면서 듣다보니 내가 지금까지 가장 많은 시간과 돈을 때려넣은 취미생활이 되었다. 그러다보니 프로그레시브락을 듣게되고 실험적인 뮤지션들에게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데 사실 지금까지 내가 락을 왜 듣는가에 대해서는 적어본 적도 있지만 실험적인 음악은 왜 듣는가에 대해서는 그다지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못했었다. 이번 기회에 그것에 대해 정리해보리라 마음먹고 인터뷰를 잡아보았다.

 

 

 

사토 유키에라는 기타리스트에 대해서는 약간의 설명이 필요하다. 그의 약력이 홈페이지에 잘 정리되어있으니 참고하시도록 하고 간단하게 요약해본다.

 

 

 

그는 63년 도쿄생으로 10대때부터 밴드생활을 하였고 이후 계속 인디밴드를 해왔다. 이중 레코딩이 남아있는 것은 94년에자 산‘(The Sun, 일본식으로 읽으면 자 산이 된다. -_-)의 유일한 작품 정도이다. 싸이키델릭한 연주과 약간의 실험적인 연주를 즐겼다고 하는데 이 시기에 대해 그는 자세히 밝히진 않았다. 이후 우연찮게 한국 록에 관심을 가지게 된 그는 70년대 한국 록 사운드에 매료되어 일본인만으로 이루어진 한국 록 전문 밴드곱창전골 95년에 결성한다. 한국과 일본을 왔다갔다하며곱창전골활동을 계속한 그는 99년 곱창전골의 데뷔음반안녕하시므니까?’를 내면서 세간의 주목을 받게된다. 하지만 이런 이벤트성 주목은 오래갈 수 없으며 그의 진가는 곱창전골 이외의 부분에서 더욱 빛나게 되었다.

 

그는 곱창전골 활동을 하면서도 끊임없이 한일 뮤지션들의 교류를 시도하였는데 대표적인 뮤지션으로는 루인즈(Ruins), 오토모 요시히데(大友良英, Ground Zero의 리더), 다모 스즈키(ダモ鈴木, Can의 보컬) 등이 있으며 이들은 모두 세계적 지명도를 가지고 있는 일본의 프리 뮤지션들이다. 그렇게 지속적인 한국에서의 연주생활 중 그는 2003년부터 정기적인 프리뮤직 연주회 ‘[불가사리]'(aka SCUM in Seoul)를 개최하기 시작하여 2005 2월 현재 30회 이상의 정기/비정기 연주회를 가졌다. 그는 지금 홍대 주변을 주 거주지로 삼아 한국과 일본을 오가면서 활동중이며 불가사리, 곱창전골 그리고 솔로 뮤지션의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일단 프리 뮤직(free music, free improvisaton)과 싸이키델릭(psychedelic), 아방가르드(avant garde), 실험주의(experimental)등의 용어들이 뒤섞여 쓰이는데 조금씩만 구분해보자. 아방가르드나 실험주의는 말 그대로 전위적이고 실험적이라는 뜻이다. 전위적이고 실험적이라고 해서 진보적이고 미래적인 것으로 오해하지만 않으면 될 것 같다. 싸이키델릭은 환각상태를 의미하는 일반적인 말이지만 그것을 음악적으로 표현한 것을 말하기도 한다. 반복적, 점증적인 특성을 가지며 분위기가 몽롱한 편이다.

 

프리 뮤직은 화음, 조성 등에서 벗어나는 것 자체가 목적중 하나였던 현대음악의 락버젼 혹은 밴드버젼 정도로 생각하면 될지 모르겠다. 악기를 이용해 예측하지 못했던 소리를 무작위로 뽑아내는 것이다. 음악의 아나키즘 정도로 생각하면 될거 같다. 분명히 어떤 사람은 나의 이런 프리 뮤직에 대한 정의를 비난할 것이며 그는 그만의 방식으로 프리 뮤직을 규정할 것이다. 그의 정의 역시 프리 뮤직을 보여주는 것일 수 있다.

2. 소리를 찾아서

 

 

 

그럼 사토 유키에가 왜 한국에 오게 되었는지, 그는 왜 그런 연주들을 하고있는지에 대해 그의 목소리를 통해 들어보도록 하자.

 

 

 

사 토: 질문 많아?

 

거 북: 원래 인터뷰는 임프로잖아요.

 

사 토: 맞아요, (마이크에 입을 대며) 임프로비제~~~~

 

 

 

거 북: 제가 사토상과 관계된 질문 몇가지만 할게요. 먼저 약력을 보니까 토쿄생이면서 곱창전골 사이가 참 약력이 간단하네요.

 

사 토: 인디밴드 하고있었잖아. 많이 하고 있었어요.

 

 

 

거 북: 스타일은 어떤거였어요?

 

사 토: 에이~ 그런 질문하는 친구는 처음이네.

 

 

 

거 북: 보통 임프로비제이션까지 올 때는 보통 정통적인 스타일을 많이 하고 오잖아요.

 

사 토: 나도 마찬가지지.

 

 

 

거 북: 그러니까 곱창전골같은 경우는 싸이키델릭이잖아요.

 

사 토: 싸이키와 임프로는 비슷하지 않아? 그런 색깔 좋아하니까~ 맨 처음에 밴드 시작했을 때는 고등학생 시절이었는데 물론 중학교때도 문화제나 뭐 그런곳에서도 팝송을 많이 연주했었어요. 물론 자작곡도 만들고. 고등학교때는 락밴드를 해서 커버곡도 많이 하고 일본어 락을 많이 했어요. 내 안의 것을 표현하는 것에는 역시 일본어로 했어야 했어요. 또 일본어가 락에 맞는지 안맞는지도 확인해야 했으니까. 그렇게 생각없이 인디밴드하면서 80년대를 보냈어요.

 

왜 곱창전골을 시작했냐면, 그때까지 하던 밴드가 해산하게 되었어요. 시간이 많이 있으니까 사실 여행이나 해볼까 하다가, 우연히 한국에 왔지. 진짜는 영국에 가고 싶었어요. 여러 일이 있어서 컴퓨터가 필요해서 컴퓨터 샀더니 돈이 없고, 마음은 외국에 가고싶다는 기분이 있고, 제일 싸게 갈 수 있는 곳이 어딜까 했더니 한국이었어요. 한국이 옆나라잖아. 그렇구나~ 하면서 한국에 왔어요. 그때까지 연주하던 것이 다 사라졌으니까 시간이 조금 되잖아. 한국에 온 다음이야 잘 알지? 한국 록을 만나서 미쳐가지고 그것을 연구해야지 하고 생각해서. 많이 한국에 가서 수집하고 공부도 좀 하고 곱창전골 만든거죠. 

 

 

 

이 시점에서 그는 매우 중요한 부분을 얘기한다. 나를 비롯한 많은 클래식 락(6,70년대의 락음악을 통칭) 애호가들이 왜 지금의 음악들을 기피하는가에 대한 한가지 이유로 흔히 ‘?? 스삐릿의 상실을 들곤한다. 그것은 농담조로 80년대 이후 소리가 정형화되고 락의 산업화가 진행된 것을 지칭하는 것이다.

 

 

 

하지만 제가 좋아하는 락은 6,70년대밖에 없어요. 80년대 이후는 거의 안들어요. 여러 이유가 있지만 제일 큰 이유는 소리가 달라요. 임프로는 80년대 것도 90년대 것도 그냥 녹음하는게 많았었어요. 8,90년대의 락세계에 나오는 팝음악과 그냥 녹음하는 것과는 소리가 다르잖아요.

 

어떻게 만드는지 드럼 녹음하고 베이스 녹음하고, 그런 것들이 자동화가 되었지요. 80년대 이후에는. 이전까지는 그런게 없었으니까 어떻게 하면 재미있게, 좋게, 더 녹음할 수 있을까 연구하면서 신세사이저같은 기계들이 도입되고 그래서 재미있었어요. 80년대에는 음악을 어떻게 만든다는 것이 셋업이 된거지요.

 

그때까지의 파워나 실험적이라거나 프로그레시브한 면이라거나 하는 것들은 60-70년대에 끝났어요. 80년대부터는 비지니스가 되고 팝은 이렇게 만든다라는 것이 정해져버린거죠. 소리가 다르게 된거에요. 80년대 이후에도 이 밴드 좋다, 이 노래 좋다라는 뮤지션 있지만 레코드숍에서 사고싶은 기분이 없어요. 이전까지는 나오자마자 그날 가게에 가서 줄서가면서 LP 샀어. 지금까지 내가 왜 그랬는지 잘 몰랐어. 그런데 이제는 알겠어. 소리가 다르기 때문이야. 소리가 다르니까 그때까지의 마음이 달라진거야.

 

하지만 임프로는 그냥 녹음하는게 많아요. 그런 소리를 들으면 피가 변해. 그제서야 그런 소리를 만난 것이고 왜냐면 8,90년대에 나는 살고있지만 지금 음악은 내가 싫어해. 앰비밸런트(ambivalent)한 그런 게 좀 있다. 6,70년대가 그립지만 지금 사는건 90년대. 아이덴티티가 안맞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야. 그런 생각을 하면서 곱창전골이나 여러 락음악을 해왔어. 그러다가 밴드가 해산되었고, 마음대로 해보자 하는 기분으로 한국에 온거고, 한국음악 너무 재미있고. 클럽 예약해가면서 공연을 했었어요. 그럴때도 어느때는 통기타로, 어느때는 임프로로, 언제는 신중현 선생님 노래 부르고 그렇게 했어요. 그 과정에서 나온 것이 곱창전골이에요. 그런 활동하고 있었을 때 사람들이 곱창전골 재미있다고 해서 계속 하게되었어요. 하지만 그 시대부터 진짜로 임프로도 시작했어요. 

 

 

 

거 북: 현재의 곱창전골 활동은 다른 뮤지션 두분하고 같이 하는데 그 두분은 일본에 살고있나요?

 

사 토: 응 왔다갔다 해야하고, 여기서 공연을 많이 하고싶어도 일년에 몇번정도 할 수 있죠. 하지만 그정도가 더 편해요. 뭐 지금 멤버가 좋으니까. 내 페이스로 할 수가 있으니까요.

 

 

 

거 북: 데뷔작인안녕하시무니까에 비해 시간차이가 있는데, 저는 EP(최근에 나온 새음반) 듣고 사운드가 충실해졌고 오리지널리티가 생겼다고 느꼈거든요.  

 

사 토: 2집을 내고싶었는데 여건이 안되어서 아까우니까 EP로라도 만든거죠. 안녕하시무니까의 컨셉은 한국락을 이시대에 다시 부활시켜보고싶은 그런 느낌이니까요. 1집은 제가 말하기는 부끄럽지만 8-90%정도 그런 느낌을 살렸다고 생각해요. 1집은 그렇게 했으니까 두번째는 조금 다르게 일본사람의 한국노래 자작곡이면서 6,70년대의 느낌을 담고싶다는 것이었어요.

 

 

 

거 북: 제 느낌은 EP 1집보다 소리가 더 나아졌다고 하는 말이에요. 땡큐스(Mariana F. Lauren Her ThanQ’s)와 연주한거나 산울림 트리뷰트 앨범(99년에 발매된 ’77 99 22′라는 앨범)에 담긴 곡들 모두 기타 톤은 70년대적이다라고 생각해요. 요즘 임프로 위주로 하시는거 같은데 그것도 좋지만 곱창전골쪽도 더 많이 듣고싶다는 얘기지요.

 

사 토: 응응. 물론 그 싸이키한 음악은 나의 오리진이기 때문에 항상 하고싶어하죠. 하지만 그건 컨셉트고 프로젝트성이지. 나는 21세기에 살고있으니까 더 새로운 것도 하고싶지. 제일 많이, 편하게 음악성으로 할 수있는 세계가 프리뮤직쪽이에요. 그래도 나의 음악성을 만들어주시는~ 음악신에게, 뮤즈에게 내가 바치고 싶은 것은 역시 곱창전골이야. 

 

3. 음악적 뿌리

 

 

 

여기서 사토 유키에는 자신의 음악적 뿌리를 고백한다. 주로 프랭크 자파(Frank Zappa), 비틀즈(Beatles), 제이미 뮤어(Jamie Muir)를 언급하는데 일단 그의 말을 더 듣자. 사실 그의 배경은 좀 더 복잡해보인다.

 

 

 

거 북:사토상의 옛날 씨디를 보면 어렸을 때부터 녹음한 것을 모아서 씨디로 냈잖아요. 초기부터 연주뿐만 아니라 어떤 소리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아요.

 

사 토: 그때는 79년부터, 내가 중학교때니까. 그러니까 싸이키델릭과 프로그레시브를 들었지. 중학교때 비틀즈에 미쳐서 비틀즈 매니아가 된 다음에 싸이키와 프로그 많이 들었어요. 임프로까지 오게 된 다른 길은 킹 크림즌이에요. 킹 크림즌이 비틀즈를 제끼고 1위가 되었잖아. 궁금하잖아. 제일 좋아하는 음반은 Lark’s Tongues In Aspic(1973)인데, 그 안에제이미 뮤어라는 퍼커션 연주자가 있었어. 킹 크림즌하기 전에 임프로를 하고 있었어요. 

 

내가 레코드 매니아니까 제이미 뮤어를 구하고 싶어서 샀어요. 비쌌지만. 어 이거 뭐야 하는 생각이 드는거야. 삐빅 삐빅 뚝 뚜 삐이~ 뭐 이런 음악이 나오는거야. 제이미 뮤어가 참여했던 ECM레이블의 뮤직 임프로비제이션 컴퍼니(Music Improvisation Company, 1970)를 샀어. 그게 처음 구한 프리 뮤직 음반인데 지금은 일본에서 CD화가 되었으니 구하기가 쉽지. 그때 LP가 한 5천엔인가 9천엔은 했던거 같애. 비쌌지만 샀어요. 듣고나니까 이건 뭐. 난다 코레(뭐야 이거~)

 

 

 

거 북: 처음부터 그런 음악이 느낌이 좋았어요?

 

사토: 제이미 뮤어의 에센스가 락스텅스 안에 들어있어요. 시작하면 삐삐삐삐~하면서 시작하는 부분들이 있잖아. 그 안에 제이미 뮤어의 세계가 들어있어요.

 

 

 

거 북: 사실 킹 크림즌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치밀하게 계산된 구조적인 음악을 좋아하잖아요. 아무래도 제이미 뮤어보다는 존 웨튼(John Wetton)이나 프립(Robert Fripp)쪽에 관심을 더 많이 가지는데 확실히 특이한 케이스군요.

 

사 토: 왠지 모르겠지만 그에게 관심이 생긴거에요.중학교때. 물론 비틀즈는 너무너무 좋아하는, 이니까. 

 

그 외에는 내가 좋아했던 것이 하나는 프랭크 자파, 시드 배릿(Syd Barrett), 제이미 뮤어. 진짜 웃기지. 그런 중학생이 어디 있어.

 

거 북: 자파얘기를 하니까 생각난건데. 지금 사토상과 자파는 스타일이 비슷해요, 수염, 선그라스, 머리 등이 비슷한데 그런 얘기 못들었어요?

 

사 토: 음 그런가가끔 들었어요.

 

 

 

거 북: 자파는 어떤 판이 좋았나요? 

 

사 토: 뉴욕 라이브(Zappa in New York, 1978)가 좋았어요. 테리 바지오(Terry Bozzio)가 드럼이고 제일 락스타일이 강한 판.

 

 

 

거 북: 그거는 70년대 중반정도죠?

 

사 토: 자파가 가장 락스타일을 보이던 시절의 음반이고, 그때 자파는 일본에 (공연)왔어요. 제일 듣기도 쉽고. 너무 좋아했었어요.

 

 

 

거 북: 저는 자파를 들으면서 놀란게. 들을수록 좋아하는 부분들이 바뀌더라구요.

 

사 토: 자파는 좋아하게되면 그냥 종교처럼 좋아하게 되지요.

 

 

 

거북: 저같은 경우는 재즈 프롬 헬(Jazz from Hell, 1986) 근처를 좋아하다가, 씨빌리제이션(Civilization Phase III, 1995), 옐로우 샤크(The Yellow Shark, 1993)쪽으로 이동했다가 다음에는 어포스트로피(Apostrophe(‘), 1974)를 좋아하게 되었어요. 정말 대단하시지요.

 

사토: 중학교때 그런걸 좋아했으니까 지금 내가 이렇지.

 

 

 

거북: 저는 자파를 대학교 졸업하고 듣게 되었어요. 확실히 일본은 음악듣기 좋은 나라에요.

 

사토: 우연히 시작이 비틀즈여서 그랬던거에요. 아마 롤링 스톤스(Rolling Stones)로 시작했으면 지금은 블루스 매니아가 되었을거에요. 비틀즈는 참 이상해. 레볼루션 9(Revolution No.9)까지 있으니까

 

 

 

거북: 그래요 Tomorrow Never Knows도 있구요. 

 

사토: 뭐 여러가지 좋아하지만 비틀즈도 존 레넌(John Lennon)으로 시작했으니까 모르는 세계들을 많이 알게 되었어요. 지금도 오노 요코(Ono Yoko) 좋아해요. 어렸을때는 요코 좋아한다면 이상한 사람 되어요. 비틀즈 팬은 요코 다 싫어해.

 

 

 

거북: 하하, 마녀라고들 하죠. 일본 아방가르드의 흐름이 있을텐데 그런 것의 영향을 받았나요? 떠오르는 뮤지션이라도? 

 

사토: 일본에는 뮤지션 많아요. (갑자기 입으로 프리뮤직을 한다. -_-) 우웨에엑. 일본은 그런 흐름이 60년대 말부터 시작했고,그건 유럽, 미국과 똑같이 생겨난거에요.세계가 깊으니까 잘 몰랐어요. 역사가 깊어서 나는 일본 선생님들의 영향을 뭐 받았죠

 

 

 

거북: 사실 접하기 쉬운 쪽은 프레드 프리스(Fred Frith)나 뭐 그런 쪽이 아니었을까 싶은데요.

 

사토: 나는 몰랐었어. 나하고 같은 것을 했구나하고 나중에 알았지. 나는 데렉 베일리(Derek Bailey) AMM의 기타 키스 로(Keith Rowe), 그리고 한 베닝크(Hann Bennink) 정말 좋아해. 한 베닝크와만 같이 연주했어.

 

 

 

거북: 데렉은 나이가 좀 있죠?

 

사토: 응 그래서 위험하지.

 

 

 

몇가지 체크하고 넘어가도록 하자. 킹 크림즌(King Crimson)은 락계에서 가장 이성적인 사운드를 만들어낸 밴드라고 불리고 있으며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와 함께 프로그레시브락을 대표한다. 시드 배릿(Syd Barrett)은 핑크 플로이드의 초기 리더였으며 싸이키델릭 사운드의 지향점을 잘 보여준 뮤지션 중 하나다. 비틀즈는 훗날 실험적인 락을 많이 연주하기 시작했는데 그 대표적인 곡들이 최초의 프로그레시브 곡중 하나로 불리는 Tomorrow Never Knows(Revolver앨범 수록곡)와 비틀즈 스타일의 프리 뮤직인 Revolution No.9(화이트앨범이라고도 불리는 The Beatles앨범 수록곡)이다. 

 

Revolution No.9 (좀 안어울리지만) 신해철의 레이블 이름이기도 하다. 비틀즈가 실험적인 면을 띠게 된 것은 존 레넌(John Lennon)의 영향이 가장 큰 편이다. 오노 요코와 레넌의 결혼은 비틀즈 해산의 결정적 요인중 하나가 되었는데 레넌과 요코는 둘의 이름으로 여러장의 실험적인 앨범을 내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레넌과 요코가 함께 한 음반들은 결코 추천하지 않는다.

 

프랭크 자파(Frank Zappa)는 클래식, 현대음악, 두왑, 기타 임프로비제이션, 극음악 등을 미국식 B급 문화안에서 섞어버린 대가다. 나는 미국출신의 락커 하나를 대라면 그를 꼽고있다. 그와 비슷한 레벨의 뮤지션이라면 마일즈 데이비스(Miles Davis) 정도 외에는 떠오르지 않는다.

 

사토 유키에는 대단한 음악팬으로 나는 예전에 그의 집에서 그의 컬렉션을 보고 놀란 적이 있다. 그것은 사토 유키에가 직접 쓴 [독특한 음반소개]를 보아도 확인이 가능하다. 

4. 한국에서의 프리뮤직과 불가사리

 

 

 

거 북: 그럼 일본 기타리스트가, 일본은 임프로쪽이 강하잖아요. 그럼 그쪽에서 할 수도 있었을텐데.

 

사 토: 하지만 내가 우연히 곱창전골때문에 여기 왔잖아요. 그러니까 여기서 나만 할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물론 제가 임프로 그런거 좋아하니까 자기가 하고싶은 것도 하지만, 친구가 많잖아요. 많이 왔잖아. 옛날에는 최선배 선생님께 부탁해서 장소 빌려가며 연주했었는데 너무 힘들었었어요. 내가 이벤트성으로 주관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지요. 그때도 나만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면 내가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물론 인디밴드가 있으니까 락밴드는 있지만 임프로는 선생님들밖에 없어. 그래서 일본 친구들과도 같이 할 수 있고, 뭔가 흐름을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거죠. 젊은 친구들 발견하려고, 새로운 친구들을 발견하고 싶어서. 왜냐면 임프로하는 친구들은 일본에서 강태환 김대환 선생님 인기 많아서 그러고 있었으니까, 사물놀이나 그런 것들이 인기 많아서, 그런것때문에 한국에는 대단한 뮤지션만 있나하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한국에 오면 그분들 밖에 없는거야. 열명정도밖에 없어. 하지만 아직 발견되지 않은 사람들이 있을거야라고 생각했어. 선생님들은 한국보다 일본에서 더 공연을 많이 해요. 강태환선생님은 한국의 재즈클럽이 싫대. 시끄러우니까 작게 연주해달라고 한대. 연주는 무엇때문에 하는거야. 음악 듣고싶으니까 오는 손님이 아닌거잖아. 그냥 분위기 때문에 오는거고, 그런게 너무 싫으니까 실망하는거야. 장소가 없어요. 만약에 하고싶은 젊은 사람들이 있어도 할 수가 없으니까 있는지 없는지 확인도 안되고 그런것도 있어서 불가사리를 시작한거고, 젊은 친구들을 발견하고 싶었어요. 시작했더니 있잖아요. 하하.

 

 

 

거 북: 사실 그점에 대해 높게 보고있어요. 불가사리 활동이 3년은 되었는데 몇년간 이런 일들을 하시는 것을 보면 피터 게이브리얼(Peter Gabriel)이 자기 음악을 하다가 앨범 So(1986)로 성공을 하고 그것으로 무엇을 할까 고민하면서 리얼월드(Real World)를 설립하고 워마드(WOMAD)를 주최하고 그렇게 자기세계를 넓혔다는 것이 생각나요. 사토상이 자기 혼자 할 수 있는 것을 넘어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것을 찾는다는 것을 높게 생각됩니다.

 

사 토: 피터 가브리엘보다 못해. 하하.  

 

 

 

거 북: 사토상도 꼽았던 1세대들 이외에 박재천 이나 미연 등을 제외하고 나머지 흐름을 잇고있는 그런 뮤지션들은 불가사리 이외에서는 잘 안보이는 것가요?

 

사 토: 박창수나 미연은 피아노가 없어서 불가사리에 부르기 미안하고, 박재천과는 기회가 되면 연주를 하고싶지만 개런티를 못줄거 같아서 역시 미안하고김대환 선생님은 오신다고 하셨는데 돌아가셨고, 우리가 모르는 친구를 발견하고 싶은거죠. 요즘 컴퓨터나 일렉기타는 다들 가지고 있으니까 좋은 친구들 있어요. 옐로우 키친(Yellow Kitchen)의 최수환이나 데이트리퍼(Daytripper)나 뭐 하고싶은 친구들은 제일 먼저 해야지. 우리가 부르는거 말고.

 

 

 

거 북: 제가 보기엔 우리나라에 실험적 음악을 하는 사람들은 이미 언급된 사람들 이외에 어어부 밴드나 코코어 정도. 그 외에 홍철기, 아스트로노이즈(Astronoise) 등이 있는 [벌룬앤니들]정도 같아보이네요.

 

사 토: 거기도 요즘 둘밖에 없죠. 확인해보세요. 철기에게.

 

 

 

거 북:그정도 이외에는 별로 안보이는건가요?

 

사 토: 없는거 같아. 오늘 불가사리에서 같이 했잖아. 이한주, 김윤태, 이선덕, 있다 씨 등등이. ㅎㅎ 한국에는 프로그레시브 밴드가 없어 신기하게도. 다들 너무 좋아하니까 한국의 프로그 밴드가 있나 하고 생각했는데 없어.

 

 

 

거 북: 동서남북이나 조윤 정도를 얘기하지만 뭐랄까 좀 다르죠.

 

사 토: 시완에서 약간 나왔잖아. 김병덕 세장 나왔고, 조윤도. 그런데 그것으로 끝이니까. 다 좋아하는거 아냐? 그런데 그런 밴드가 없어. 요즘은 어디 있을지도 몰라요. 슈퍼스트링 있죠.

 

 

 

거 북: 연주 하나요? 예전에 공연은 한번 갔었는데요.

 

사 토: 연습하지. 하하.

 

 

 

거 북: 슈퍼스트링은 꼭 앨범이 나왔으면 했는데 못나와서 좀 안타까웠어요.

 

 

 

(그 사이에 같이 있던 자칭 죤 덴버라는 외국인이 집에 가면서 말을 건다. 인터뷰하는구만, 락스타네~ TV? KBS? 웹진이야~ 락매거진~? 웹진이라니까~~)

 

 

 

한국의 씬을 만들려면 안정적으로 사람들이 찾아올 수 있고 듣고싶을 때 음악을 들을 수 있고 하는 재상산구조가 필요하잖아요. 그것을 위해서 바람직한 예라면 자딕(Tzadik, John Zorn의 레이블)이나 ReR(Recommended Record, Chris Cutler의 레이블)처럼 하면 좋겠지만 

 

사 토: 돈이 없어요. 스폰서 있으면 하고싶어요.

 

 

 

거 북: 한국에서는 그런게 어렵잖아요. 팔리지도 않고. 저는 가끔 드는 생각이, 요즘 홍대 인디씬들이 조금 커지고 있지않는가 하는 생각이 드는데, 뭐 씬이 커지고있기보다는 음반이 안팔리는 대신 공연을 더 많이 보는거 같아요, 홍대의 경우는. 옛날의 인디 레이블처럼 거기서 여러 장르의 음악이 나왔던것 같은데, 그런 흐름이 다시 살아났으면 하는 생각이 있지요. 그런 쪽으로 같이 하신다거나, 사운드데이같은 것이나 참여하신다거나 하는 것을 통해 이런게 있음을 알리는 것은 많이 하시는지저는 불가사리는 계속 하는 것을 아는데 홍대씬에 참여한다거나 하지는 않은것 같거든요.

 

사 토: 요전에 홍대 놀이터에서 했던 공연도 있었잖아요. 프린지 페스티발에서 했던 것처럼 부탁받으면 하는거죠.

 

 

 

거 북: 약간 따로 떨어져있는 느낌이 들어요. 제가 잘못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요,

 

사 토: 따로지

 

 

 

거 북: 공유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은가요?

 

사 토: 코코어(Cocore)하고 아방하게 하고 했잖아.

 

 

 

거 북: 오늘같은 경우는 허클베리 핀(Huckleberry Finn)의 드러머가 와서 하고 했지요.

 

사 토: 친구니까.

 

 

 

거 북: 아마 제 생각에는 클럽데이같은 집단적 공연에 오는 사람들이 이런 불가사리 같은 뮤지션들의 존재를 잘 모를거 같고. 그러니까 그들에게 알리는 것이 좋아보이는거죠.

 

사 토: 그런것도 하고싶어요. 그런 친구가 있다면 연락해주세요. 하지만 지금 있는 친구들도 우연히 친구가 되었기 때문에 같이 하는거죠. 재미있게 보고 관심이 생기니까 하는거지. 왜냐면 인디씬은 괜찮아요. 밴드도 많고. 여럿 나올거 같고. 하지만 앞으로도 정보도 많아질 것이니까 인터넷도 있으니까. 시간이 되면 여러 정보도 나오게 되니까. 그런거에 관심있는 친구들은 자기가 알아서 할거에요.

 

요즘은 일본 노래 나보다 잘 아는 사람 많아요. 요즘 일본애들 잘 몰라. 내가 일본사람이니까 나에게 다 물어보는거야. 모르지. 왜 모르냐고, 재미없다고 해. 하지만 그들은 이제 알았으니까 재미있게 듣는거지. 옛날에는 진짜 힘들었지만 지금은 간단하게 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불가사리도 알려질 수 있을거 같아요. 아직도 모르는 사람 많이 있으니까 모르는 사람에게 알려주고, 하고싶은 사람에게 오라고 해서 관심이 생긴 사람에게 놀자고 하는 그런 상태가 불가사리 상태죠.

 

5. 어떻게 공연을 만들어나가는가

 

 

 

거북: 한국에서 연주를 많이 하고계시잖아요.

 

사토: 나도 더 잘하게 여러 연주할 수 있으면 곱창전골같은 것도 많이 보여주고 싶은데, 나도 그렇게 여러가지 다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잘 할 수 있는 세계는 조금밖에 없으니까. 임프로는 나의 스타일이고. 진짜는 여러 스타일이 있잖아. 프리 재즈도 있고 우리가 모르는 세계도 있는데, 그런것 모두 다 임프로잖아요. 그런 것들도 다 보여주고 싶은데 그러니까..친구가 많이 오니까 좋지. 그런 영향을 받고 새로운 세대나, 뭐 새로운 세대가 아니어도 괜찮은데 그런 사람들이 여기서 나오면 너무 좋지.

 

용나는거라고 생각해요. 나밖에 할 수 없었던 일이잖아. 서로 영향받고 그러면 너무 좋지. 우연히 내가 여기 살고있으니까 나밖에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해서 그런거 하고 싶어요. 그런거 하면 한국에 새로운 포스트락 친구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겠지. 그러니까 그런거 계속 해야지. 오고싶은 친구들이 생겨나고 기회가 많이잘 수 있을거에요. 돈도 있고 스폰서도 있고 여유있으면 크게 PR할 수 있었는데..

 

 

 

거북: 제가보기에는 지금도 적극적으로 하고있구요. 꾸준히 하는 것이 중요한거 같아요. 그것을 보고 찾아오는거잖아요. 저기 가면 볼 수 있다 이런것이 사람들에게 들어가야 하는거죠.

 

사토: 돈이 있으면 매번 포스터도 만들고싶고 모여서 뭔가 하고싶은데 뭐 계속 하다보면 도와주는 사람이 생길지도 모르고, 기대하고 있어요.  

 

 

 

거북: 이건 제가 진짜 궁금했던 것인데, 다른 일본 뮤지션들도 많이 왔었지만, 알프레드 하르트(Alfred Harth, 크리스 커틀러와 캐시버(Cassiber)에서 활동)나 루인즈나 다모 스즈키 등과 같은 뮤지션들이 왔는데요. 그런 뮤지션들은 지명도도 있으니까 그들에게 여기서 공연하게 하는 것도 쉽지가 않았을 거 같은데 그런 것은 어떤 식으로 풀어나가세요?

 

사토:  친구니까.

 

 

 

거북: 제 생각에는 같이 고기먹으러 가자. 고기먹고 연주도 하고 그렇게 하자있거 같은데

 

사토:  . 그렇지만 알프레드 달라. 알프레드는 사모님이 한국사람이니까 여기 왔지.

 

 

 

거북: 그 캐시버에 있던 알프레드 하르트가 한국에 살고있는지 몰랐어서 당황했었어요. 지금도 한국에 있나요? 요즘엔 연주 잘 안하시는것 같은데. 불가사리 안나오죠?

 

사토:  지금 일본에서 공연하고 있지. 오토모의 뉴 재즈 퀸텟에 가입해서 연주하고 있어. 루인즈나 이치라쿠나 다모 등은 자기들이 한국에서 하고싶다고 했어.

 

 

 

거북: 마니 노이마이어(Mani Neumeier, Guru Guru의 드러머)는요?

 

사토:  똑같애. 친구니까. 한국에서 경제적으로 해결하는 것은 무리잖아. (갑자기 오사카 사투리가…-_- 무리는 한국말도 일본말도 무리야.) 여기 오는 친구들은 친구거나 친구의 친구거나, 친구가 시켰다거나 해서 오는거야.

 

 

 

거북: 저는 일본 뮤지션들중에는 키도 나츠키(鬼怒無月)와 마리아 칸논(マリア ?)등의 뮤지션들이 와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어요.

 

사토:  키도 나츠키는 한국에서 공연한 적이 있어.

 

 

 

거북: 저는 몰라서 못갔어요.

 

사토:  마리아 칸논이나 키도 나츠키 상은 친구의 친구정도 거치면 가능할거 같기도 하고.

 

 

 

거북: 친구가 되면 할 수 있다. ㅎㅎ 친구니까 가능했겠구나 싶은데, 친구가 너무 많은거 같아요. 진짜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사토: 친구의 친구가 시켜서 친구의 친구의 친구가 되니까

 

 

 

거북: 왜 공연관련 질문을 했냐면, 한국의 프로그레시브 팬들이 있지만 예전에 비해 열심히 듣진 않는거죠. 프로그 팬들의 모임에서 해외 뮤지션을 유치해보고싶다는 생각들을 했어요. PFM이나 휴 호퍼(Hugh Hopper)나 앤디 서머즈(Andy Summers) 이런 뮤지션들을 불렀을 때 얼마를 준다고 하면 올 수 있을까를 준비하다가 무산된 적이 있죠. 너무 비용이 많이 든다고 판단해서요. 그럼 사토 유키에는 어떻게 하는거냐 하고 궁금했었지요.

 

사토:  다 친구가친구에 친구가그렇게하하. 친구 커넥션이지. 나도 친구들에게 진짜 미안해. 진짜 유명한 사람들 오잖아요. 그런데 한국에서는 개런티를 줄 수가 없어.

 

 

 

거북: 맛있는거 사주세요. ㅎㅎ

 

사토: 맛있는거 먹고, 재미있게 놀고

 

 

 

즉 한국에서는 구조적으로 실험적 해외 뮤지션의 공연을볼 수 없다‘. 그들의 비행기값도 못만들어주기 때문이다. 그나마 2002년에 로저 워터스(Roger Waters)의 공연을 볼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핑크 플로이드라는 거물중의 거물 밴드를 이끌었던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현재처럼친구 커넥션으로 공연을 볼 수 있는이상한상태가 오래가길 바랄 뿐이다. 키도 나츠키나 마리아 칸논같은 뮤지션이 사토 유키에의 친구 커넥션에 걸리길 바라는 수 밖에 없다. 한국내 실험적 뮤지션의 공연도 보기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다.누가 있는지도, 언제 어디서 하는지도, 어떤 것을 하는지도 모두 알기 힘들다.생활고에 쫓기다보니 나도 그런 공연들을

제대로 못챙기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공연들을 가끔 보다보면 대충 한다리 건너면 알만한 사람들이 태반이다. 즉 연주자들 뿐만 아니라 보는 사람들도친구 커넥션으로 이루어져있다는 거다. 요즘에는 불가사리 홈페이지 내의 게시판에 프리 뮤직쪽의 공연정보가 많이 올라온다. 역시 친구 커넥션이다. 

 

 

6. 프리 뮤직이란 무엇인가

 

 

 

(오늘 공연한 악보를 함께 보았다. 이건 즉흥을 위한 악보로 존 케이지(John Cage) 식의 그림악보다.) 

 

 

 

사토: 전화 마크가 있었으니까, (관객들에게) 보여주면 재미있었어~ 악보는 어제 만들었기 때문에 미리 볼 수가 없었어.

 

 

 

거북: 꽤 잘 만드셨네요.

 

사토: 데스메탈과 블루스 뮤지션은 함께 연주를 할 수가 없어. 그런데 임프로는 같이 할 수 있어.

 

 

 

거북: 그러니까 존존(John Zorn)이 네이팜 데스(Napalm Death)의 드러머(Mick Harris)와 함께 연주를 했죠.

 

사토: 어떤 것도 할 수 있는 세계야. 프리 임프로비제이션보다는 프리 뮤직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 사실 그 세계에는 이름이 없어요. 무엇이든 할 수 있는거야.

 

 

 

거북: 임프로를 하시는 것은, 이건 제 관점이니까요. 저는 임프로는 관객에게 보여주는 것은 여러 실험을 한 다음에 그것을 모아서 표현하고싶은 형태로 어느정도 정리를 해서 보여주는 것이라는, 그런 형태로 많이 생각을 해요. 임프로도 라이브를 할 때도 있겠지만 그 전에는 여러 실험들을 한 다음 그것들을 어떤 식으로 정리를 해서 한번에 표현을 하겠다이런게

 

사토: 하지만 진짜는 달라. 임프로는 한번밖에 할 수 없어요. 그러니까 처음에는 실수했다고 생각했던 것도 나중에 들어보면 좋더라 이런 가능성도 있거든. 임프로는 챤스에요. 실험적으로나 그런것을 할 수 있는 챤스를 만든거지. 결과는 관계없어요.

 

 

 

거북: 그것 자체가 목적인거고  

 

사토: 그런 챤스와 공연기회가 필요해. 라이브니까 여러 영향도 있고. 물론 실수도 있지. 그런데 그게 실수인지 아닌지 모르는거니까. 난 뭐가 재미있냐면 그때 밖에 할 수 없는 일이 있으니까. 손님이 있기때문에 할수 있는 것들이 있어. 그때 손님들이 와서 함께 연주하는 거니까, 그런 상태, 그런 장소. 그러니까 진짜 재미있고 그런것에 한번 맛들이면 완성도와 연습이 필요한 그런 음악 없어. 어느때도 계속 엑사이팅하고 재미있는 것이 많이 생기는 그런 장소에요. 그러니까 그런 것을 계속 할 수 있으면 언제라도 자기가 모르는, 자기 안에서 나오는것도 자기가 모르는 것도 있어. 자기에게서 받거나 동료들에게서 받거나, 손님에게서 받거나. 물론 긴장된 것도 있지만 크리에이티브한 느낌 그런 느낌 많이 받아요. 너무 재미있어요. 이것은 임프로는 아마 인류 최초의 음악일거에요. 

 

 

 

거북: 떠오르는 것을 어떻게든 표현하려고 하는

 

사토: 음악이 시작될 때와 똑같은 느낌이잖아요. 우리가 모르는 창조적인 신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순간이 있어요.

 

 

 

거북: 관객과의 호응이 있죠.

 

사토: 관객없으면 없는대로 있고우리 불가사리 보러오는 친구들에게 얘기하고 싶은 것은, 그냥 손님 아니야. 같이 음악이 태어나는 순간을 경험할 수 있는 친구들. 관객이 없으면 그런 음악 할 수 없어.

 

 

 

거북: 공연예술이라는 것은 관객과의 호응을 받고 교감을 하는 것이잖아요. 하지만 임프로는 종종 (교감을 못하는 느낌이…)

 

사토: 손님때문에 결과가 달라지는거야. 피드백이 너무 많이 와요.

 

 

 

거북: 호응을 못끌어내는 경우가 많지 않나요.

 

사토: 그럴때도 똑같애. 관객들이 재미없다고 생각하면 자기가 하는 소리와 다른 소리가 나와. 뭐 이건 나의 생각이니까. 연주가 잘못된잘못된 것이라고는 없어.

 

 

 

거북: 호응이 있을때의 교감이 있고 아닐때가 있는거죠.

 

사토: 그런 교감을 줄 수 있는 것은 프리 뮤직 밖에 없고 그러니까 대단한 세계라고 생각하는거지.

 

 

 

거북: 피드백을 받아서 다음에 뭐 해야지 하는 동기가 되어야 하잖아요.

 

사토: 여러 아티스트가 있고 발전하는 사람도 있고 똑같은 것을 또 하는 사람도 있죠. 그게 아니라 장소가, 임프로를 할 수 있는 공간이 중요해요. 여기에 그런 씬이 없으니까 젊은 친구들을 발견해야하지. 손님도 공부시켜야 해.

 

 

 

거북: 맞아요. 훈련이 필요한거죠. 제가 보기에 사토상은 연주할 때 사람들의 호응을 끌어내시는거 같아요. 바로 유머라는 부분이 있어요.

 

사토: 제가 엔터테인먼트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 있어요. 락 스타잖아요. 하하. 엔터테인먼트성이 있어요. 그런 음악 좋아해요. 하지만 그것은 나의 장점이지만 단점이에요. 그런거 있으니까 사람들 재미있게, 여자친구가 아무도 모르니까 한국에서 프리 임프로 연주할 때는 처음보는 사람이 언제라도 있으니까, 그 사람들 재미있으라고 하는거야. 그런 생각 없어도 사람들 앞에서 하면 엔터테인먼트적인게 무의식적이나 의식적으로 나와. 그렇게 진지하게 하다가도 휙 해서 사람들이 와 하고 웃는거 너무 좋아해요. 개그맨이지. 하지만 진짜는 그런 면 때문에 똑같은 연주가 되는 경우도 많아요. 일본에서 진짜 스토익한 연주도 하고 그랬거든. 진짜는 그런 것도 하고싶은데. 하지만 사람들 앞에서는 자꾸 유머가 나와서. 어쩔 수 없어요.

 

 

 

거북: 그런건 사람들의 긴장을 풀어주고. 그렇게 풀어준 다음에 또 집중시킬 수 있잖아요.

 

사토: 그래서 3월에 박창수씨 집에서 하우스콘서트할 때는 그때는 재미있는 면도 진지한 면도 보여주려고 하니까오십시오~ ㅎㅎ

 

 

 

거북: 안그래도 하우스콘서트는 얘기를 들었지만 못가봐서, 한번 가보려고 하던 참이에요.

 

사토: 물론 재미있게 하면서 진짜 생각하고 있는, 새롭게 하고싶은 그런 것들을 하면우와~ 노래도 불러달라고 하니까 어떻게 할까 생각중이야. 노래도 해야겠네.

 

 

 

거북: 이건 넓은 질문인데요. 아방가르드가 뭐냐하는 생각을 해보면. 당대의 최전선이잖아요. 최전선에 있는 것들은 당대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그런 토양이 되는거겠지요. 가장 진보적인 음악중 하나이고. 슈게이징(shoegazing)이나 포스트락(post rock)같은 것은 임프로비제이션의 영향을 받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들구요.

 

사토: 포스트락은 받았지.

 

 

 

거북: 한국에서 하는 임프로는 한국 음악들에 영향을 줄 수 있다면 좋겠지만…(슬프게도 한국의 음악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외국의 음악들 뿐이고 한국의 선배들에 의한 영향은 그다지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한국 락의 역사는 한국 역사처럼 단절의 연속으로 이루어진 역사가 아닌가 싶어요. 라는 말을 하고싶었으나 뉘앙스를 제대로 전달할 수도 없고 너무 무거워질거 같기도 하고 여러가지 이유로 하지 못했다.)

 

 

 

자 이것이 사실 내가 하고싶었던 대화였다. 조금 커뮤니케이션이 안된 느낌은 있지만 어느정도 서로의 생각은 나눈거 같다. 내 생각은 프리 뮤직이고 임프로비제이션이고간에 기본적으로성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소통은 당연히 중요하지만 무엇으로 관객과 소통할 것인가는 미리 구상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관객과 몇번 교감을 나누어본다. 그 결과를 보고 성공적인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한 다음연출을 한다.

 

그 연출을 집약해 하나의 세계를 구축한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방법론이고성의. 사토 유키에와 함께 보았던 한 베닝크의 비디오에서도, 가끔 꺼내듣는 오넷 콜맨(Ornette Coleman)의 음반에서도 그들이 내놓은 프리 뮤직에는 일종의 구축미가 있었다. 프랭크 자파는 잘 진행되는 라이브에서 종종 자기만이 연주할 수 있는 솔로 플레이를 했었는데 그것이 모든 공연마다 달랐다고한다. 즉 프랭크 자파는 실험성을 대중성과 섞어낼 수 있었던 사람이었다. 몇번 본 사토 유키에의 공연에서 그는 가끔 그런 구축미를 보여주다가도 가끔은 보여주지 못했던것 같다. 하지만 그의 연주에는 유머라는 것이 있어서 어떨때는 구축미를 못보여주더라도 살짝 웃고 넘어갈 수 있게 하는 여유가 있다.

 

하지만 어떨때 프리 뮤지션 혹은 실험적 뮤지션들은 그러한 성의를 보여주지 않는다. 언젠가 한번 듣고 없애먹었던 데렉 베일리의 CD, 만날 똑같은 연주로 듣는 이를 짜증나게 하는 필립 글래스(Philip Glass),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던 ISO의 공연등에서 나는 커뮤니케이션 붕괴 이전의무성의를 느낀다. 이건 수차례 갔던 불가사리 공연에서 보았던 몇몇 뮤지션들에게도 해당되는 얘기다. 물론 이들 음악들의 어떤 것들은 어떤 이들의 반응을 이끌어내기도 하니까 이런 불쾌감은 나의 몰이해와 무식에서 일차적으로 기인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ISO의 리더 오토모 요시히데같은 사람은 성실하기로 유명하니까 말이다.

 

어쨌든 이 인터뷰에서 사토 유키에는 분명하게 예술지상주의적인 자기의 입장을 밝히고 있다. 프리 뮤직은 관객도 참여하는 것이다. 관객 역시 창조자이고 이 과정을 즐기기 위해서는 관객에게도 훈련이 필요하다. 즉흥은 그 다음을 만들어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즉흥 그 찰나가 목적인 것이다. 즉 그는 내가 비판하고 있는 뮤지션들의 태도를 정면으로 옹호하고 있다. 사실 나는 사토 유키에의 입장 역시 충분히 긍정하고 있다. 하지만 프리 뮤직 자체는 60년대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진 것이 없어보이는데 그건 좀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지. 힙합이 애시드 재즈(acid jazz)와 턴테이블리즘(turntablism)에 영향을 주었다거나 미니멀리즘(minimalism)이 포스트락(post rock)이나 슈게이징(shoegazing)에 자극을 준다거나하는 등의 자극과 충격을 꾸준히 뭔가에 줄 수 있을때 프런티어라는 의미가 있을텐데 그런 것이 지금의 프리 뮤직에 과연 있는가 하는 물음을 지울 수가 없는 것이다. 물론 나는 프리 뮤직이나 실험적인 음악을 광범위하게 접한 사람이 아니라서 이러한 물음을 던지는 것이 조금 민망하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물음 자체를 거의 본적이 없기때문에 나라도 하고싶었다. 누군가 알면 답변좀 해줬으면 좋겠다. 


7. 그리고 잡담

 

 

 

거 북: 생활은 어떻게 하세요?

 

사 토: 돈 줘. ㅎㅎ 아르바이트나 일본어 선생님도 괜찮고. 살기 힘들어.

 

 

 

거 북: 곱창전골이라는 이름은 누가 힌트를 주어서 정했나요?

 

사 토: 내가 좋아해서 지었지. 곱창전골이라는 바도 있는데. 그집도 컨셉이 똑같애.

 

 

 

거 북: 한국어를 너무 잘하시는거 같아요. 뭐 거의 한국인이라고 해도.

 

사 토: 왔다갔다 5년 들어온게 5년쯤 되니까 거의 10년이네. 요즘 일본에서 소개될 때는 한국에서 온 뮤지션 사토 유키에라고 소개해줘요. 한국에서 일본 뮤지션들을 엮어주고 있다고.

 

한국말은 95년부터 공부했으니 꽤 되었다. LP CD에 적힌 것들을 알고싶어서, 공부 시작했어. 일본은 진짜 한국 붐이야. 일본어 교과서도 좋아졌어. 서태지도 일본 데뷔를 시작했는데 진짜 실수했지. 욘사마를 기다렸어야 했는데. 서태지 일본판 진짜 레어(rare item). 보아에서 떴다가 욘사마에서 폭발한거지. 조용필은 진짜 대단했지. 계은숙이나 김연자는 일본가수야. 뭐 그런 이미지도 조용필이 만든거지.

 

 

 

거 북: 요즘 조용필 음반은 블락버스터처럼 나오긴 하는데 거의 호응이 없죠.

재킷 그림들은 직접 그린건가요?

 

사 토: 아니 친구가 그려줬어. 엄마가 화가였긴 해요. 하지만 우리 가족은 음악은 하나도 몰랐어요. 일본 내에서 사토상의 음반을 만드는 JABREC JASRAC(일본 음악저작권 협회)을 패로디한건가요?

관계없어. 비슷하게 보이는데. 사실 마음으로는 F**k JASRAC하고싶은데, 어쨌든 아니야.

 

 

 

거 북: 가끔 지방 공연도 하시는거 같은데요.

 

사 토: 전라도에 친구가 있어서 간 적 있어. 내가 제일좋아하는 홍어를 가서 많이 먹었어. 홍어 세계에서 제일 맛있어. 동동주랑 같이 먹으면 맛있어. 양념한거 맛없어, 홍어 아냐. 홍어는 시큼하고 죽을거 같아서 맛있잖아. 서울에서 먹는것도 홍어 아니야. 전라도 가면 홍어를 먹을 수 있어. 흑산도 진짜 홍어를 먹고싶어요. 목포의 눈물은 아마 홍어 먹을때 흘리는 눈물일거야. 한국친구 열명이랑 있어도 홍어 잘먹는 사람은 나밖에 없어. 음악도 70년대, 나 한국사람이야. 하하. 낫또를 좋아하니까 청국장 좋아해.

 

 

 

거 북: 저는 우메보시를 좋아합니다. 일본에서 올 때 우메보시 사들고 들어왔어요. 집에서 먹으려구요.

 

사 토: 우메보시 좋아하다니 희한한 사람이야. 홍어는 왜 못먹어? 중국의 삭힌 두부도 맛있고. 냄새나는 생선도. 블루치즈도 있어. 은행도 있다. 발효음식을 놔두고 한꺼번에 먹고싶어. 막걸리도 발효음식이잖아. 진짜 술이야.

 

 

 

한국생활 10년째이고 초반 5년은 일본에서 살고 한국에 년간 5-6회 오는 수준이었는데 최근 5년은 한국에서 살고 일본에 년간 5-6회 간다고 하니 그는 이제 한국사람이 되었다.

 

나는 일본에도 많은 커넥션을 가지고 있는 한국사람 사토 유키에의 존재가 참 고맙다. 그와 같은 사람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우리는 이웃과 지내는 법을 배울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단일민족 신화를 자랑으로 생각하면서 동남아 노동자들을 차별하는 한국의 현실은 고려시대 이후 이웃과 뒤섞여 살아본 적이 없는 역사에 기인한다. 하긴 중국의 조선족, 러시아의 고려인, 일본의 재일교포 그리고 북쪽의 동포들조차 껴안지 못하는 남한인데 이웃과 뒤섞이는 것을 배우는데까지는 참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이것의 처방은 조금씩 이웃과 섞여보는 경험을 가지면서 그 경험의 폭을 넓혀나가는 것 외엔 없다. 적어도 내가 아는한 사토 유키에는 가장 바람직한 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