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김정환

일 시: 2004년 5월 25일(화) 오후 5시부터 7시까지

장 소: 2호선 홍대입구역 옆 네이버 카페

참석자: 김정환(시인), 채상우(시인), 김성환(퍼슨웹 편집장)

기억하는가. <학살 소리>1) 를 기억하는가. <치명적인 광명>2)에 온몸을 내던져야 했던 연대를 기억하는가. 그 연대의 중심에서 <순금의 기억>3)을 퍼올리던 시인을 기억하는가. 파경을 맞은 세계의 한복판에서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匕首>4)품고 여전히 희망을 노래하는 시인을 아는가. 그가 바로 김정환이다.

 

김정환을 기억한다면 이렇게 말해도 될 것이다. 김정환을 만난다는 것은 한 시대를 만나는 일이다. 그리고 김정환을 만난다는 것은 한 시대의 참담한 절망을 만나는 일이다. 그리고 마침내 김정환을 만난다는 것은 한 시대의 참담한 절망 속에서도 결코 그려 보일 수 없는 전망을 만나는 일이다. 끊임없이 움직이는 전망, 끊임없이 반성하는 전망, 끊임없이 세계의 중심을 향해 돌진하는 전망을 만나는 일이다. 그런 전망과 만난다는 것은 정말이지 두려운 일이다.

그러나 실제 김정환 선생은 동네 담배가게 아저씨처럼 털털하다. 들은 바에 따르면 김정환 선생은 매번 같은 옷만 입고 다닌다고 한다. 술을 마셔도 돼지껍데기 안주에 소주를 제일 좋아한다고 한다. 그것도 날이 샐 때까지 말이다. 그래서 나는 김정환 선생을 만나기 전전날부터 술도 마시지 않았고 밥도 제때 꼬박꼬박 다 챙겨먹었고 잠도 푹 잤다. 그런데 아쉽게도 김정환 선생과 대작하지는 못했다. 그보다 더 아쉬운 건 인터뷰 내용 중 앞부분의 일부가 녹음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래서 밝히건대 인터뷰 내용 중 앞부분은 메모해둔 것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김정환 선생과 독자들께 양해를 부탁드린다.

 

 

장편소설을 죽이는 문화

 

 

 

채상우: 핸드폰이 없으시던데 일부러 장만하지 않으신 건가요?

 

김정환: 별다른 이유는 없어.

 

 

 

채상우: 선생님과 인터뷰를 하려고 한 달 전쯤부터 전화를 드렸었는데 매번 댁에 계시더라구요?

 

김정환: 그랬지. 주로 집에 있었지. 그런데 내가 집에 있다는 건 바쁘다는 뜻이야. 집에서 글을 쓰니까.

 

 

 

채상우: 글 쓰시는 일 말고 댁에서 다른 일은 안 하시나요? 근래 법무부 쪽 일을 하신다고 들었는데요?

 

김정환: , 그 일. 지금은 끝났어. 재소자들한테 들려줄 음악을 선별하는 일이었는데, 아침, 점심, 저녁 이렇게 세 번 무슨 음악을 들려주나 그런 계획 짜는 일이었지.

 

 

 

채상우: 일전에 민족문학작가회의 사무실에 들른 적이 있었는데 김정환 선생님과 인터뷰를 한다고 했더니 소설 쓰시는 김남일 선생님께서 이건 꼭 물어보라고 하시더라구요. 선생님께선 새벽 세네 시까지 술을 드시고도 써야 할 원고는 꼭 쓰신다던데, 도대체 그런 에너지가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 말이죠.

 

김정환: 그건 몰라서 하는 소리야. 술 마시고 글을 쓰는 게 아니라, 글 다 쓰고 술 마시는 거지. 예전엔 술힘으로 글을 썼어. 술기운이 아니라 술힘으로. 술힘이라는 걸 알아야 해. 술기운으로 글쓰는 건 글쟁이가 아니지.

 

 

 

채상우: <글쟁이>라는 표현은 혹시 자본주의를 의식해서 하시는 말씀인가요?

 

김정환: 그렇다기보다는 글을 쓰면 글쟁이지 뭐.

 

 

 

채상우: 선생님은 시뿐만 아니라 장편소설, 평론, 오페라 등도 쓰셨는데, 그렇게 다방면의 글쓰기를 하시는 이유는 따로 있나요?

 

김정환: 애초부터 일부러 그럴려고 해서 그런 건 아니고, 예전에 노문연(노동자문화예술운동연합)에서 일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소설도 가르치고 극본도 가르치고 그랬거든. 그런데 소설을 가르치려면 내가 소설을 알아야 하니까 소설에 대해 공부를 한 거고, 공부하고 나니까 나도 좀 써봐야겠다 싶어서 쓴 거고 그랬던 거야. 오페라 대본도 마찬가지야.

 

 

 

채상우: 시 쓸 때의 마인드와 소설 쓸 때의 마인드는 다르잖아요? 여러 방면의 글쓰기를 병행하는 일이 쉽지는 않았을텐데요.

 

김정환: 다르지. 그래서 시를 쓸 때는 시만 쓰고 소설을 쓸 때는 소설만 쓰고 그랬어. 난 그렇게 했어. 시집 한 권 낼 때까지는 시만 죽어라 썼고, 소설을 쓸 때는 소설에만 전념했지.

 

 

 

채상우: 전집격인 『김정환 시집』(이론과실천, 1999) 「자서」를 보니까 이런 구절이 있더라구요. <시는 내 문학의 원인이자 결과다>라구요. 선생님께 시란 무엇입니까?

김정환: 그 말 그대로지 뭐.

 

 

 

채상우: 『황색예수전 1-3(실천문학사, 1983-86)이나 『회복기』(청사, 1985), 『기차에 대하여』(창작과비평사, 1900)도 그렇고, 이번에 내신 『하노이서울 시편』(문학동네, 2003)도 장편연작시인데, 이처럼 장편연작시를 쓰시는 별도의 이유가 있으신지요? 그리고 작년에도 장편소설5)을 내셨던데, 굳이 장편소설만 고집하시는 이유가 따로 있으신지요?

 

김정환: 장편소설을 쓰는 이유는 내가 아직 단편소설을 못 쓰니까 그런 거고. (웃음) 장시를 쓰는 이유는 달라. 사실은 장편소설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는데, 지금 우리 문단을 보면 원고 청탁이나 받으면 시 몇 편 쓰고 그러다 어느 정도 분량이 되면 시집 한 권 묶어내고 그러는데, 뭐 그래도 좋은데, 다 그럴 수는 없는 거잖아. 난 우리나라의 문화의 폭이 좁다고 생각해. 외국을 봐. 「황무지」라든지 유명한 시들은 다 장시잖아. 장시에 맞는 그만한 세계관의 크기랄까 부피랄까 이런 게 외국처럼 계속 문제시되고 실험되지 않는다면 우리나라 시는 그냥 잡기로 떨어질 위험이 있어. 소설도 마찬가지지. 우리나라의 경우를 보면 대하소설하고 단편소설집밖에 생각나는 게 없어. 단편소설 조금 잘 쓰다가 장편소설 하나 쓰면 주위에서 질이 떨어졌다고 비판이나 하고, 그런 와중에 책이나 좀 많이 팔고 그런다고. 한마디로 대중소설이 되어버리는 거지. 이런 게 모두 문화의 폭이 좁다는 증거야. 외국의 경우를 보면 체홉이나 모파상처럼 단편소설<>가 있는데, 우리나라엔 없어. 단편소설가란 단편소설 한 편 혹은 기껏 몇 편으로 인정받는 게 아니란 말야. 적어도 단행본 한 권 분량 정도의 단편소설들을 지속적으로 써내야 단편소설가라고 할 수 있지. 그리고 외국에서는 대하소설은 문학으로도 안쳐요. 소설이라면 소설적 세계관을 지니고 있어야 하고, 최대한도로 질이 떨어지지 않는 상태에서 세계관이나 미학이 더 깊어질 수 있는 적절한 길이를 유지해야 하는 거지. 그리고 그런 상태에서 길이를 넓혀가야 좋은 거지. 그런데 우리나라는 장편소설 문화를 아주 죽여버리는 문화야. 단편소설을 쓰면 잘 쓴다고 그랬다가 장편소설 쓰면 평론가들이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고 <, 질이 떨어진다> 그러고, 거기에 대해서 소설가들도 뭐 별소리 안하고 그러잖아. 요새는 역량 있는 소설가들이 많이 나와서 좀 나아지고 있긴 하지만.

 

 

 

채상우: 우리나라에선 시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서정시를 가리키는 거잖아요. 그리고 서정시라면 흔히 개인의 내면 혹은 감각이나 정서를 그리는 갈래라고 생각하고, 그러다 보면 자연히 시의 길이가 길어질 수는 없는 거구요. 그런데 선생님께서 지금 하신 말씀은.

 

김정환: 그런 말 자체가 우리나라의 문학을 죽여버리는 거야. 이제 방금 한 말은 서정시가 아니면 자연시라는 소린데.

 

 

 

채상우: 무슨 뜻이신지요?

 

김정환: 자연시라고 하면 그저 산이 나오고, 어머니도 나오고, 사랑도 나오고 그런 시를 말하는 건데, 서정시는 자기 자신의 감정을 읊는 거 아니겠어? 자기 자신의 감정에 사회적인 게 안 섞여 있으면 그게 무슨 제대로 된 감정이겠어?. 감정은 사회적인 건데. 그렇지 않아? 하다 못해 남자가 여자를 좋아하는 것도 사회적인 것이고, 이웃을 느끼는 것도 다 사회적인 건데. <서정적>이라는 말을 <자연적>이라는 말과 혼동하고 있다는 말이지. 김소월 시가 서정시쯤 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게 아니고 <서정시>가 있고 <서사시>가 있는 거지. 「황무지」가 서정시인가 서사시인가?

 

 

 

채상우:「황무지」야 서정시죠.

 

김정환: 그렇지. 서정시지. 자연시가 아니잖아. 그런데 「황무지」는 서정시인데도 길잖아. 왜 우리나라에서는 안 된다는 거야. 그게 서정시라는 말하고 자연시라는 말을 혼동하기 때문이야.

회고는 음탕하다

 

 

 

채상우:『하노이서울 시편』의 서시에 해당하는 이 시에서 인상적인 구절을 꼽으라면 단연 <회고는 음탕하지>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이 시집 전체의 주조음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이 구절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었냐 하면 혹시 선생님께서 비판하시고자 한 회고의 대상이 실은 선생님 자신이 아니었을까였습니다. 그러니까 선생님께서 베트남에 가셔서 실제로 목도했었던 장면들은 어쩌면 선생님께서 팔십년대에 꿈꾸었던 세계가 아니었을까, 그래서 그런 풍경들에 매료된 것은 아니었을까, 지금도 세상은 이렇게 되어야 하는 것 아니냐 하는 생각을 그런 풍경들에 투사한 것은 아니었을까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장면들을 베트남에 가서 목격하시고.

 

김정환: 하면서도 동시에 경계를 하자는 거지. 박정희가 없어 봐야, 김일성이 없어 봐야, 칠십년대는 칠십년대지 이천년대가 아니라는 거지. 거기에 가서 만약 회고에 빠진다면 음탕해진다는 거지. 자기에 대한 경계지. <회고는 음탕하지>라는 말이 좋다는 소리는 아닐 거 아냐?

 

 

 

채상우: 자기에 대한 경계라고 하셨는데, 좀더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셨으면 합니다.

 

김정환: 그러니까 <회고는 음탕하다>라는 것은 삶에 대한 기본적인 자세를 표현한 말이야. 가난했던 시절이 그립다고는 하지만, 그런 말하는 사람 보고 그 시절로 돌아가서 살라고 하면 정작 살 것도 아니면서 가난했던 시절이 좋았다고 말로만 그런다고. 전쟁 직후가 따뜻했다고 그러는데 그때로 돌아가서 살라고 하면 어디 누가 그러겠어? 그게 진정한 삶과 무관한 욕망이라고. 그러니까 사랑이 아니라 음탕이라 이거야. 사랑이 아니라 음탕한 것, 다른 말로 하자면 변태다 이거지. 욕심이 많은 거야. 그런데 가난한 시절을 그리워하는 것도 한편으론 사실이잖아. 그리고 그렇게들 말하고. 그런 지점에 어떤 복잡한 게 있는 거지. 그 복잡한 것을 <회고는 음탕하지>라고 한마디로 표현했다면 잘했다고 봐야지. (웃음) 내가 왜 이렇게 농담을 섞어 얘기를 하냐 하면 <회고는 음탕하지>라고 써놓으니깐 왼갖 평론가들이 <회고는 음탕하단다>라면서 이런저런 말들을 하는데, 하여간 평론가라는 자들은, 여러 가지 의미망을 일껏 걸쳐 놓고 엮어 놓고 그렇게 해서 그 의미망이 시가 되는 건데, 거기서 굳이 하나씩 무슨 아포리즘 비슷하게 끄집어내 가지고 그 난리들이야. (웃음)

 

 

 

채상우: 그만큼 잘 쓰셨으니까 그런 거겠지요. 저도 만약 선생님에 대한 글을 쓸 기회가 있다면 우선 음탕한 회고에 대해 쓸 생각이었습니다. 어쨌거나 이 시뿐만 아니라 『하노이서울 시편』 전체에서 문제 삼아야 될 부분은 회고의 대상이 구체적으로 무엇인가가 아닐까 합니다. 그 가운데에는 만약 박정희가 없었다면 칠십년대도 아름다웠지 않았겠는가 하는 생각도 있지 않나 싶은데요.

 

김정환: 그저 내 추억을 이야기하자는 건 아니지. 이 세상 전체가 어떻게 되어야 하는가, 어떻게 가야 하는가에 대해 이야기하자는 거지. 베트남은 아직 경제 발전이 우리보다는 좀 덜 됐으니까 당연히 농촌 지역으로 보이고, 우리나라로 따지자면 육십년대나 칠십년대로 보이고 그러는데, 그런 베트남에 가기만 하면 여기 참 좋다, 난 여기서 살란다라고들 하거든. 실제로는 살지도 않을 거면서. 수세식 변소 없으면 어디 누가 살겠어? 그 속을 들여다보지 않고, 인민의 고통을 들여다보지 않고 <아이구 여기가 참 좋구만! 우리도 여기처럼 돌아갈 수는 없나!> 이렇게 생각하는 건 진짜 음탕한 거지. 음탕하고 부도덕한 거지.

 

 

 

채상우: 저는 선생님까지 의심하고 있었습니다. 선생님도 어쩌면 음탕한 회고의 한 축을 이루고 있지는 않나 싶어서 말이죠. 방금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바와는 정반대로 생각한 셈이죠.

 

김정환: 정반대라고 말할 것까진 없고. 동전에는 양면이 있잖아. 동전의 양면처럼 그런 면이 있는 거지. 문학이라는 게 논설이 아니잖아? 문학에도 동전처럼 양면이 있는 건데, 그 아슬아슬한 지점에서 어느 쪽으로 넘어갈 것이냐를 알려면 그 다음 행을 읽어 봐야지. 다음엔 어느 쪽으로 넘어갈까, 이제. 그것은 다음 행을 읽어보는 수밖에 없어. 예전에 『기차에 대하여』라는 시집을 썼을 때 얘긴데, 아주 친한 사람들도 <기차에 대하여>가 아니라 <기차는 달린다>로 읽는거야. 시집 제목을 말야. , 임마 그 시집 제목은 <기차에 대하여> <기차에 대하여>. 이다, . 이 아니고. 이렇게 말했는데도 날 보고 기차가 아직도 달리냐고 맨날 물어. 그런데 『기차에 대하여』의 서시를 보면 기차에 대한 반성이 담겨 있거든. 세상은 이렇게 복잡해졌는데, 우리의 삶을 기차로 표현하는 게 과연 옳은 것일까라는 반성 말이지. 스탈린주의거든. <역사의 수레바퀴>라고 빗대어 말한 건 멋있는 표현 같은데, 수레바퀴라는 게 기원전 오천 년 전에 나온 거잖아. 그런데도 <역사의 수레바퀴>라고 하면서 사회주의를 건설하려고 했으니, 문학의 비유로썬 그 죄가 엄청난 거라고. 그렇지 않아?

 

팔십년대 <시청 앞으로 개떼처럼 몰려가자>라는 구호를 쓴 적이 있어. 그런 구호는 비유의 굉장한 죄악이라고. 어떻게 우리가 <개떼>? <해일처럼 덮치자> 이런 말도 했어. 그런데 그중에는 집에 암 수술 받은 마누라 있는 놈도 있었을 것이고, 먹여 살려야 할 동생들이 있는 놈도 있었을 것이고, 하여튼 별에 별 놈의 새끼들이 다 있었을 텐데, 그런 수만 명이 몰려가는데 그걸 어떻게 <해일>이라는 말로만 표현해. 그런 것들은 다 비유의 죄악이라고. 그래서 <기차는 달린다>가 아니고 <기차에 대하여>를 쓴 거지. 기차에 대해서 따져보겠다, 이런 거지. 그런데 「기차에 대하여」 연작을 보면 전철로 끝난다고. 기차가 아니라 전철로 끝나. 물론 그때는 한창 운동할 때니까 시 속에 에너지가 잔뜩 들어갔을 거 아냐. 그런 건 어쩔 수 없지. 아무리 <대하여>이지만, 에너지가 잔뜩 들어가 있으니까 독자들이 <기차는 달린다>로 읽었던 거지. 아무리 그렇다 해도 시집 제목을 <기차는 달린다>로 하면 되나. 그러니까 그런 모순이랄까 아슬아슬한 균형이랄까 그런 게 시집을 읽는 맛이지. 안 그러면 논문을 쓰지.

 

 

 

채상우: 『하노이서울 시편』을 보면 베트남에서 선생님께서 만난 작가들 가운데 상당수가 베트남전에 직접 참전했던 분들인 것 같던데요, 선생님도 그렇고 그때 동행하셨던 민족문학작가회의 회원들도 그런 점에서 베트남 작가들을 존경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김정환: 그 사람들의 너그러운 품성이나 인생을 대하는 자세에 대해서는 참 존경심이 절로 나는데, 동시에 걱정도 있지. 과연 이 자들이 자본주의를 버틸 수 있을까 하는 걱정 말야. 시집에 있잖아. 바오닌이라는 작가가 나오는 시를 보면 알거야. 바오닌의 자식은 경제학을 전공하는데, 바오닌이 그런 자식 세대를 견딜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들더라고. 그런데 바오닌에 대한 시는 베트남에 대한 애정 어린 고백이고 걱정이기도 하지만, 우리나라에 대한 전반적인 분석이기도 해. 그렇게 여러 가지가 어우러지니깐 시집 한 권을 내는 거지, 뭐 한마디로 하면 될 걸 시집으로 낼 필요는 없잖아.

 

 

 

채상우: 아까 선생님께서 서정시를 말씀하셨는데 그 의미를 이제 좀 알겠습니다.

 

김정환: 모든 좋은 시에는 다 정치성이 있고 사회성이 있고 그렇지. 그러니까 우리한테 감동을 주는 거야. 우리의 삶과는 무관하게 그냥 산골에 가보니 달이 좋더라, 이래 가지고 어떻게 우리한테 감동을 주겠나. 산이 좋은 이유는 우리가 내려와야 되기 때문이지. 중한테 산이 좋을 리가 없겠지. 지겹겠지. 이거 또 도 닦아야 하는데 하고 말야.

 

 

전망은 그릴 수 없는 아름다운 그림이다

 

 

 

김성환: 김정환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사람들은 아직까지도 『황색예수전』으로 대표되는 에너지 넘치는 시인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런데 『하노이서울 시편』을 읽으면서 들었던 생각은, 김정환이라고 하는 그 에너지 넘치는 시인이 박정희 없는 서울 거리와 하노이 거리를 대응시키는 까닭은 그저 회고도 아닐테고 그렇다고 베트남에 대한 감각적 여행기를 쓰자는 것도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이 시대를 바라보는 시인의 시각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시인한테 직접 질문을 하는 게 모순이긴 한데요, 그럼 과연 이 시인은 이천년, 이천사년이라고 하는 이 시대에 대해 어떤 비전을 가지고 있을까, 이런 점이 늘 궁금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김정환: 소위 민중시인이라는 말은 싫어하지만, 민중시인 중에는 꽤 복잡하다고 옛날부터 평을 받았거나 욕을 먹었거나 그런 사람이 난데, 여전히 문제는 똑같아. 예전엔 시비 거는 사람들이 많았으니까 그런 시비들에 일일이 응대하다 보니까 시가 좀 살벌해지기도 하고 그랬지. 요는 하여간 자본주의를 어떻게 극복하느냐인데 이게 이제는 정치적으로 극복을 한다는 것은 소용이 없어져 버렸어. 소련이 망해서가 아니라 정치라는 것 자체가 이제는 해체가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지. 사회주의 체제가 있었을 때 정치의 힘이 제일 컸어. 레닌이 사회주의 혁명을 했을 때가 정치의 최고 절정기였던 거야.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 않아. 우리가 정치권 욕을 많이 하는데 그게 정치권이 무능해서 그렇다기보다는 정치권이 할 수 없는 일들을 너무 많이 정치권에 기대하기 때문이야. 이게 박정희 시대의 버릇이야. 이미 경제나 문화나 하다 못해 연예계에 대해서도 정치가 터치를 하기는커녕 이제는 거기에 기대야 할 판이라고.

 

미국 같은 경우만 보더라도 우리나라나 부시가 어쩌구저쩌구 하지 거기선 대통령이 뭘 하고 다니는지 별 관심도 없어. 투표율도 낮고 말야. 물론 우리나라는 아직도 개혁해야 하고 바꿀 놈도 많고 그러니까 선거 때마다 올인을 한다는 둥 이러고 있지만, 내가 보기에는 투표율이 더 낮아져야 해. 그리고 정치가 해체되면서 지금은 문화라든가 경제라든가 이런 쪽에서 할 일들이 더 많아졌잖아? 그런 것들하고 자본주의를 극복하는 문제하고의 연결을 더 많이 고민해야지. 정치적으로 정권을 잡는다 못 잡는다 이런 것보다도 말야. 민주노동당이 정권을 잡는단들 내가 보기엔 지금 정권을 잡은 사람들보다 더 잘 할까? 그렇게는 생각 안 해. 그러니까 관심이 없는 거지. 더 잘 할 것 같으면 내가 관심을 좀 갖겠는데.

 

그렇다고 지금 정치를 하는 사람들이 최대치다 이런 말은 아니고. 그리고 정치하는 사람들도 자꾸 전문화가 되어야 해. 옛날에 운동하던 이력만 앞세울 게 아니라 말야. 옛날에 징역 몇 번 살았다고 해서 그걸 가지고 국회의원 되고 마이크 들고 헛소리 하고 이런 시절은 이제 지났다고.

옛날에 고생한 사람들이 정 불쌍하면 명예의 전당을 만들어서 거기다 이름 하나씩 넣어주면 돼. 그런 건 신경 쓸 것도 없어. 자신이 겪었던 것을 새로운 세대를 위한 전망으로 바꾸는 능력이 있어야 하는데, 우리는 아직 수난을 전망으로 못 바꾸고 있어. 그냥 옛날에 징역 몇 번 살았다 이런 말만 하지. 그게 민중한테 무슨 소용이 있겠어. 민중은 잘사는 나라를 만들어주기를 바라는데, 민중도 같이 징역 살아야 한다는 얘기야 뭐야. 그런 건 전혀 도움이 안돼. 이미 김영삼 정권 때부터 도움이 안됐어. 그런데도 논공행상도 있고 명분도 있고 그러니까 자꾸 정치권이 더뎌지는 거야. 내가 보기에는 운동권 출신 정치가들 중에 진짜 아주 뛰어난 지도자가 아닌 사람들은 다 물러나는 게 좋아.

 

내가 근태 형(김근태)이 정치에 입문할 때 형한테 이런 얘기를 했다고. 앞으로 정치를 하려면 고문 피해자라는 생각은 절대 하지 말아라, 그리고 그것을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우지도 말아라, 그렇지 않아도 민중은 먹고 사느라 고생인데 지도자라는 사람이 맨날 자기 고생한 얘기만 하면 얼마나 지겹겠냐라고. 그랬더니 근태 형 하는 말이 나도 그걸 지우려고 그렇게 애를 쓰는데 언론이 가만 놔두지 않는다는 거야. 걔들도 머리가 비었으니까 쓸 게 그거밖에 없는 거지. , 그런 얘기 말고 쓸 게 얼마나 많아. 맨 처음 단체 꾸려서 키울 때 그 가장 어려울 때 얘기도 있고, 그리고 밑에 쟁쟁한 후배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러니까 언론이 지도자로 못 키우는 거야. 계속 수난자로만 키우는 거지. 마르크스레닌 전집 어디를 찾아봐도 맞아서 아프다는 소리는 하나도 없어. 거기에는 정세 분석과 전망만 있다고. 우리나라는 그런 점에서 아직 모자라다고 봐.

내가 시민운동을 전체적으로 그리고 이론 자체를 지지하는 것은 아니지만, 시민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공부를 많이 한 사람들이야. 열렬히 운동을 안했기 때문에 오히려 전문성을 갖출 만한 시간이 있었고, 자신이 가진 전문성으로 지금 시민운동을 하고 있잖아. 변호사도 그렇고, 의사도 그렇고. 그런 사람들이 정권에 참여하는 거 말야, 강금실이 법무부 장관을 한다든가, 이창동이 문화부 장관을 한다든가 이런 거 말야. 이런 현상은 굉장히 좋은 일이라고 생각해. 운동권이 정치하는 것보다는. 운동권은 이제 대접이나 받아야지. 데모 말고 한 게 없는데. 데모 하느라고 바빠 가지고 공부를 안 했는데 어떡할거야. (웃음)

 

 

 

김성환: 선생님은 글을 전문적으로 쓰시는 분이신데요, 글쟁이로서의 전망이라고 한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김정환: 글을 쓰는 거라고 생각해. 내가 쓴 책 중에 『전망은 그릴 수 없는 아름다운 그림』(사회평론, 1999)이라는 산문집이 있어. 예전에 우리가 NL이다 PD CA다 이러고 지냈는데, 그런 게 다 전망을 그릴려다가 망한 경우들이야. 어떻게 그런 도식으로 자본주의를 극복할 수 있겠어. NL이고 PD CA고 그건 다 전망을 도식적으로 그리려고 한 거야. 그릴 수 없는 전망을 그리려고 한거지. 그렇다고 전망이라는 게 불가능한 것이다, 이렇게 말을 해서도 안 되는 거지. 그래서 <전망은 그릴 수 없는 아름다운 그림>이다, 이렇게 말을 한 거야. 그랬더니 다른 사람들이 너는 시나 써라, 시나 써, 그러더라고. (웃음) 원래 사회구성체라는 것이 그렇거든. 마르크스가 사회구성체라는 것을 얘기했을 때 그건 어떤 되어 가는 형태에 대한 비유야, 비유. 지금 사회가 요렇게 되어 가고 있다라는 방향을 보여주는 비유인데, 이걸 너무 도식화하니까 방향도 아니고 비유도 아니고 그냥 골격이 되어버린 거지. 그러니 서로 다른 골격들만 가지고 피터지게 싸운 거야. 하여간 그런 점에서 문학예술 분야에서 아직도 할 일이 있다고 봐.

 

 

 

채상우: 방금 하신 말씀은 전망 자체를 그리는 게 아니라 전망을 그릴 수 있는 조건들에 대해 모색한다는 의미인가요?

 

김정환: 전망의 방향을 만들어간다는 거지. 모이면서 만들어간다는 거지. 모이는 것도 옛날처럼 십만 명, 이십만 명 모여가지고 무슨 되도 않는 노래 부르고 그러는 게 아니라 각자 자기 영역에서 활동하면서 그 각각의 영역들을 통합할 수 있는 망을 만들어가는 거지. 그런 통합망들이 늘어날수록 수준도 높아져야 되는 거고. 그런데 옛날에는 그렇지 못했지. 옛날엔 백 명이 모여서 아무리 뛰어다녀도 한 명이 한 것보다 못한 것들을 운동이라고 한 게 많아.

 

 

 

 

채상우: 「다운타운하노이서울 시편 3」을 보면, 하노이 중심가를 지나다가 일산 오토바이를 탄 베트남 젊은이들을 보고 선생님께서 통역 가이드에게 이라고 말했는데, 곧이어 그 말을 <표현할 한국어가 없다>, 내겐 <식민지 언어만 있다>라고 말하는 대목이 있는데요, 이 부분을 읽다보면 한국 사회 내에는 이제 변혁의 에너지가 소멸한 것 아니냐라는 선생님의 우울한 시선이 느껴집니다. 이 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김정환: 그런 점이 있지. 우리나라엔 <활기>는 없고 <살기>만 있어. 특히 언론이나 TV, 인터넷이 그래. 신문을 보면 이건 완전히 죽기살기야. 또 인터넷에 들어가보면 왜 그렇게들 서로 못 잡아먹어서 난리들인지. 그보다도 아까도 얘기했지만 내가 그 시에서 말하고 싶었던 건 뒷세대들에게 물려줄 <활기>였는데, 아직 우리는 그런 게 없잖아.

 

우리 애들이 지금 둘 다 대학생인데, 얘들을 보면 전혀 살기가 없어. 노는 거 보면 참 멀쩡하게 잘 놀고 아르바이트도 잘 하고, 공부도 열심히 하고 그래. 또 요즘 노는 애들을 보면 그냥 노는 게 아니잖아. 공부는 싫고 딴 걸 하고 싶어서 락 밴드를 한다든지 그러지. 고등학교 일 학년 때부터 벌써 자기가 뭘 하고 싶은지를 안다는 거야. 왜냐하면 그만큼 받아들이는 문화가 다양하니까. 요즘에는 법관 한다는 사람은 별로 없어. 영화감독이나 탤런트처럼 연예계 쪽이 월등 우세하지. 그렇다면 이제 어른들이 공부해야 할 게 뭐냐 하면 연예계의 질을 높이는 거겠지. 글 좀 쓰는 놈들 모여라, 연예계 질 좀 높여줘야겠다, 저거 저렇게 헤반죽하고 웃기만 하면 되겠냐, 내용 좀 갖춰주자, 뭐 이래야 하는 거 아냐? 이런 게 다 자본주의를 극복하는 운동이라고.

 

요즘 법관들 보면 참 좋아졌어. 옛날 법관들은 완전히 치맛바람에 만들어진 자들이거든. 어렸을 때 공부 좀 하면, , 너 법관 해라, 이렇게 부모가 강제로 시켜서 만든 거지. 그런 놈들 만나면 할 얘기가 없어. 그냥 목에 힘만 들어가 있지, 뭐 농담을 할 줄 아나 술을 마실 줄 아나. 그런데 요즘 변호사들 만나면 놀기도 잘 놀고 춤도 잘 추고 말야. 치맛바람에서 벗어나서 그래. 부모가 정해준 게 아니라 자기가 그걸 하고 싶어서 했기 때문에 그만큼 다른 거야. 굳이 따라가야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 점점 더 그렇게 되지 않으면 서유럽이고 미국이고 우리는 죽어도 못 따라가.

 

그런 자유, 그런 다양성, 자유의 내용 이런 것들을 선배들이 책임을 져야 돼. 선배들이 책임을 져야 할 부분은 딱 그거야. 자유의 내용 말이지. 자유의 내용이 더 많은 자유를 주게끔 만들어야 한다고. 괜히 잘 노는 애들 만나 가지고 <너 오일팔 알아?>, <몰라요>, 그러면 <너 이 새끼, 그것도 모르냐! 이백 명이 죽었는데 그것도 모르냐!> 이래서는 안된다 이거지. 5·18 기념행사를 해도 언론을 보면 맨날 사람이 얼마 죽었네, 어떻게 죽었네 그러기만 하는데, 그걸 보고 죽은 사람 부모인들 기분이 좋겠어? 누가 기분이 좋겠어? 그걸 빛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찬란한 빛으로. 광주는 이미 했어. 광주에선 그 오 일인가 십 일인가 동안 이미 찬란한 빛을 보여줬다고. 그런데 그렇게 보여준 것도 못 써먹고 있는 게 우리지. 그런 것들이 전부 할 일들이야. 글쟁이로서 최소한 할 일들이야.

그냥 놔둬도 잘 되는 데,

그냥 놔둬야 잘 되는 데,

그냥 놔둬서는 안 되는 데

 

 

 

채상우: 요즘 젊은 세대의 작품들은 어떻게 읽으셨나요?

 

김정환: 소설 잘 쓰는 사람들이 많더군.

 

 

 

채상우: 어느 작가를 말씀하시는 건지요?

 

김정환: 젊은 사람들 소설이 다 만만치 않지. 다 만만치 않고 좋아. 그런데 시는 이제 좀 뭔가 새로운 것을 모색해야 할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시인들이 좀 지치지 않았나 싶어.

 

 

 

채상우: 어떤 의미에서요?

 

김정환: 뭔가 새롭다든지, 더 치열하게 하나만 판다든지, 혹은 다양해진다든지 뭐 이런 게 없어졌다는 거지. 그러면 지쳤다고 그러지. 시는 이제 좀더 보폭이 넓어져야 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들어.

 

 

 

채상우: 보폭요? 세계를 조망하는 폭 말인가요?

 

김정환: 그렇지. 사유하는 폭, 멀리 보는 폭 말야. 시는 그런 면에서 좀 걱정이 돼. 소설은 읽을 때마다 기분이 좋고 그래. 뭐 그쯤 얘기하지. 구체적으로 누구누구 말하는 것보다는.

 

 

 

채상우: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내용 가운데 조금 불분명하다 싶은 대목이 있어서 다시 질문을 드릴까 합니다. 아까 선생님께서는 전망이란 어떤 되어 가는 방향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전망의 방향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다양한 활동들의 통합망이 구축되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선배 세대들은 후배 세대들에게 자유의 내용을 마련해주어야 한다고도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전망의 방향이란 결국 후배 세대들이 선배 세대들이 마련해준 자유의 내용을 따라간다는 의미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리고 만약 선배 세대들이 전망의 내용 혹은 자유의 내용을 미처 마련하지 못했다면, 그저 통합망을 구축한다고 해서 전망의 방향이 자연스럽게 도출될 수 있을 거라고 장담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요.

 

김정환: 방향성이란 이런 거지. 그냥 놔둬도 잘 되는 데가 있고, 그냥 놔둬야 잘 되는 데가 있고, 그냥 놔둬서는 안되는 데가 있고 말이지. 요즘 들어 소위 조직운동은 국회의원들이나 하는 짓이지. 국회의원이 되려면 조직을 만들어야 하니까, 그래야 표를 끌어 모을 수 있으니까. 거기에선 숫자가 중요한 거니까. 그러니까 국회의원이라는 게 잘 하려고 해도 잘할 수가 없는 거야. 전체를 보고 운동을 한다는 것은 최소한 세 가지를 구분할 줄 알아야 해. 그냥 놔둬도 괜찮은 데, 그냥 놔둬야 잘 되는 데, 그냥 놔두면 안 되는 데가 있어. 요 세 가지를 알려면 공부를 더 해야 되겠지, 그렇지? 그리고 그 다음에 놔둬서는 안 되는 데에 개입을 하기 위해서는 또 공부를 해야겠지. 공부를 해서 자기가 하는 얘기가 남들보다 나아야 개입을 하든지 말든지 할 거 아냐. 그러니까 그것만 해도 굉장히 힘든 일이야. 그것만 해도 전망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지. 요즘 조직운동가들이 얼마나 많어. 그런 거 하는 사람들 보면 처음에는 뭐 시민운동을 한다고 했다가 정치운동으로 가고 그러잖어. 시민운동도 숫자니까. 그러니까 그런 쪽은 그냥 놔둬도 돼. 그런 것까지 왈가왈부할 필요는 없어. 거기에 괜히 나까지 껴가지고 야, 내가 숫자 좀 더 모아줄까, 아니면 그 숫자 도로 내놔라, 이럴 필요는 없는 거 아냐.

 

 

 

채상우: 그럼 그냥 놔둬서는 안 되는 공간은 어디죠?

 

김정환: 그냥 놔둬서는 안 되는 공간은 아까도 얘기했어. 언론이나 TV가 그런 데지. 물론 내 관심이 그래서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그런데 그런 부분들만 잘 되면 모두 된다 이게 아니라 그런 부분들이 잘 되어서 오히려 정치에 영향을 줘야 돼. 정치가 언론이나 TV에 영향을 주는 게 아니라 오히려 거꾸로 언론이나 TV가 정치에 영향을 줘야 된다는 거지. 정치를 잘 하기 위해서 사람 바꾸고 그래서 언론사 사장도 바꾸고 방송사 PD도 바꾸고 이렇게 하면 내용이 없어. 역시 옛날의 빵잽이들밖에 없는 거야. 빵잽이들 데려다 드라마 만드나? 뭐 징역 살았으면 드라마 더 잘 만드나? 거꾸로 가야 되는 부분이 더 많은 때다 이거지. 내 판단으로는. 내 판단이 옳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고 내 판단은 그렇다는 거야. 그리고 이런 말을 어디 가서 강요할 필요도 없다는 거지. 내 일을 하면 되는 거니까. 누가 이런 내용을 물어보면 지금처럼 얘기를 하지 뭐. 그런데 알고 보면 내가 이십 년 동안 그런 일을 쭉 해왔어. 정치에 대해서 얘기를 해달라면 사양은 안했지만 이십 년 동안 그런 일을 해왔어. 그러다 보니 사람들 눈에 내가 좀 부산해 보이나봐. 저 새끼 정신 사납네 그러지. 그런데 사실 나처럼 일관된 사람도 없어. 글도 참 오만가지 다 쓰고. 그래서 정신 사납네 이러는데, 내가 보기에는 시만 쓰는 사람들이 정말 정신 사나워. (웃음)

 

 

 

채상우: 왜요?

 

김정환: 아니 답답하지도 않나. 그리고 그런 사람들일수록 시가 답답하거든. 답답한 게 시라고 주장하고. 아까 말한 것처럼 서정시는 이런 것이다 해서 맨날 그냥 쫄쫄 굶는 얘기, 마누라한테 야단 맞는 얘기나 쓰고. 그런 시도 어느 정도는 필요하겠지만 시인 이천 명 중에 천팔백 명이 그럴 필요는 없는 거잖아? 그렇지 않아? 그게 더 정신 사나운 거지.

 

 

 

채상우: 시가 사회적이다 혹은 정치적이다라는 말씀은 원론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원론적인 사항보다 지금 문학권에서 문제시되고 있는 지점은 문학에 대한 보다 본질적인 질문들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가령 자의식의 문제라든지, 글쓰기 자체를 통한 정체성의 새로운 구성 가능성이라든지 말이죠. 아까 잠깐 말씀을 하시긴 했지만, 최근 문단의 이런 경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김정환: 글쎄 뭐 내가 그렇게 이런저런 얘기를 할 정도로 요새 사람들 책을 많이 읽은 건 아니니까 아까 얘기한 그 정도로 족한데. 우리나라 소설은 참 튼튼하다고 생각해. 그런데 시는 허리는 없고 노인네들은 지쳤고 뭐 그런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어. 그리고 시라는 게 반복하기가 굉장히 쉬운 분야거든. 반복하면 절대 안되는 게 시인데, 또 반복하기 쉬운 게 시라고. 시 쓰기가 내 전업이다 이러고 매달려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풍토가 그렇지 못하잖아. 오히려 거꾸로 시 쓰기를 전업으로 삼는다 그러면 저거 미친 놈 아니냐 이렇게들 말하지.

 

 

 

채상우: 폐인 취급받기 쉽죠.

 

김정환: 그렇게 되는 것까진 좋은데, 그렇다 치더라도 전업의식을 버리면 안 되지. 늘 자기는 시인이라는 의식을 버리면 안 되는데, 시 쓸 때만 시인이다라고 생각하면 지치지. 자기 글에 대한 자의식도 없어지고. 그리고 요즘은 또 소재주의가 너무 심해.

난 포르노도 위대하다고 생각해

 

 

 

채상우: , 저희 둘 다 91학번인데요, 기억하시겠지만 1991년은 그야말로 분신정국이었는데.

 

김정환: 막바지라 가장 살벌했을 때지.

 

 

 

채상우: 생에서 가장 좋을 때, 열아홉, 스물, 스물하나 때 한참 데모만 하다 군대 갔다 와서 허겁지겁 졸업하고.

 

김정환: 그런 사실을 잊어.

 

 

 

채상우: 그런데 선생님, 선생님의 시나 말씀을 들어보면 팔십년대에 대한 동경이 상당 부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선생님께서 베트남 풍경을 바라보면서 회고하는 장면이 심상치 않게 느껴졌던 거구요.

 

김정환: 아니 팔십년대야 놀기는 좋았지. (웃음) 그런데 내가 이제 놀 나이는 아니잖아. 이제 일할 나이지. 아니 내가 옛날 일들은 다 소용없다 이런 얘기를 하자는 건 아니고 우리가 했던 일들을 물려주는 방법을 이제 책임져야 하는데, 그저 다음 세대한테 니들이 알아서 해라 이래서는 안 된다는 거지. 그리고 자기네들이 뭘 했는지를 다음 세대한테 알리고 싶으면 다음 세대에게 맞는 용어로 바꿔서 얘기를 해줘야 하는 거지. 니들이 왜 우리 용어를 이해 못하고 그래, 이렇게 되면 소용이 없다는 거야. 그건 역사 발전을 위해서 고생을 했다는 사람들이 역사 발전을 스스로 가로막는 거지. 스탈린이 전쟁영웅이지만 소비에트 발전을 가로막았듯이 똑같은 거지. 그런 일은 비일비재해. 그러니까 전쟁영웅이 정치를 하면 안 된다는 말이지.

 

 

 

채상우: 이런 말씀을 드려도 될지 모르겠지만, 선생님 시도 근래 들어 많이 순해지신 것 같습니다. 아까 『기차에 대하여』에 관해 말씀을 하셨는데, 『황색예수전 1-3』이나『회복기』와 같은 초기시는 물론이고 『기차에 대하여』도 무척 날카롭고 거친 언어로 쓰여진 시집이었잖아요? 대학에 들어와서 처음 그 시집들을 접했을 땐 한편으로는 무섭기까지 했는데요.

 

김정환: 무서워서 싫어. 내가.

 

 

 

채상우: <>이라는 시어도 툭툭 튀어나와 있고 그래서 많이 놀랐었습니다. 그런데 근래 『해가 뜨다』나 『하노이서울 시편』 쪽으로 가면 어법도 그렇고 많이 달라지셨더라구요.

 

김정환: 해가 뜨다! 무르익어야지. 누구나 무르익어야지. 난 덜 무르익었다고 욕먹는데 뭐. 쟤는 아직도 저러냐 뭐 이러면서. 너 좀 늙어라, 늙어라고 사람들이 말해. (웃음)

 

 

 

채상우: 선생님께서 그렇게 지속적으로 자기 반성을 하시고, 삶을 끊임없이 변혁시켜나가시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무척 부끄럽습니다. 방금 하신 말씀도 저희에게 거꾸로 자랑하시는 것으로 들리는데요.

 

김정환: 누구에게나 다 그 나이로는 감당 못할 고민이 있는 법이야. 그리고 고민의 내용은 갈수록 더욱 커져야 되는 거지. 그런데 자꾸 과거 얘기를 하게 되면, 아무리 치열하게 살아왔다 한들 그리고 그때 아무리 고생했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어. 더구나 지금 세대가 하는 고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데 말이지. 젊다는 게 그래서 중요한 거야. 그런데 자신이 겪었던 고민의 그 크기를, 안티의 그 크기를 그 다음 세대한테 그대로 강요하면 안 되지. 보다 폭넓게 보도록 해줘야 한다는 거지.

 

 

 

채상우: <내 안의 시대의 죽음에서 벗어난 것>6)이라는 구절을 지금 말씀하신 맥락과 연결시켜 읽어도 되겠는지요?

 

김정환: 그렇겠지 뭐. (웃음)

 

 

 

채상우: 제가 좀 버릇없이 여쭤보겠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바로 그 다음에 <앞으로 우리는 유토피의 한계를 벗고, 현실의 예술세계와 같아질 수 있을까? 있어야 한다>7)라고 쓰셨는데, 어떻게 의문형이 곧바로 당위로 전환될 수 있는 거죠?

 

김정환: 그렇지. <있어야 한다>. 얼마나 갈지는 몰라도. 그런데 지나 놓고 보면 말야, 역사만큼 위대한 예술작품도 없어요. 톨스토이의『전쟁과 평화』보다 더 위대한 것은 전쟁사거든. 그렇잖아? 그러니까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하자는 거지.

 

 

 

채상우: 그런데 그것도 어떻게 보면 역사를 위대하게 회고하고자 하는 사유 방식이 아닌가요?

 

김정환: 진짜 그냥 빨가벗고 풀이나 캐먹고 다니다가 지금 이렇게 사는 게 얼마나 굉장한 거야. 난 포르노도 위대하다고 생각하는데. (웃음) 오천 년 전에 비하면. 인간 아니면 다 할 수 없는 일이잖아? 그런데 만약 인간이 영영 살았다면 못했을 거야. 짐승들은 영영 살잖아. 지들이 죽는 줄 모르니까 영영 사는 거지. 풀이 자기가 죽는 줄 어떻게 알고, 벌레가 자기가 죽는 줄 어떻게 알어. 그냥 어느 날 가다가 없어지는 거지. 그러니까 그건 가상현실 속에서 계속 영영 사는 거야. 그러니까 발전이 없지, 걔들은. 인간은 어느 순간이면 자기가 죽는다는 걸 아니까 그러니까 살아 있는 동안을 귀하게 여기는 거고, 귀하니까 아름다움을 찾는 거고 그런 거지. 물을 아무렇게나 마셔도 될텐데 왜 이렇게 예쁜 컵을 만들겠어. 곧 죽을 걸 알기 때문에 그런 거지. 이 세상을 좀 아름답게 꾸며보기 시작하면서 의미도 생겨나고 미도 생겨나도 노동도 생겨나고 그런 거 아냐? 그래서 여기까지 온 거잖아. 내가 학교 다닐 때는 박정희하고 싸우느라고 이런 생각도 못하고 살았으니까 이제 젊은 사람들은 그렇게 살았으면 해. 원대하게.

 

 

 

채상우: 좀전의 이야기를 다시 하자면, 전망을 발견한다는 것도 결국 당위의 차원이라는 말씀인 셈이죠?

 

김정환: 그렇지. 전망은 삶의 방향이지.

 

 

 

채상우: , 마지막으로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요, 『하노이서울 시편』은 국문판뿐만 아니라 영문판도 동시에 내셨잖아요? 대단히 드문 사례라고 할 수 있겠는데, 선생님의 의도인가요, 아니면 출판사 쪽의 생각인가요?

 

김정환: 내가 그러자고 그랬어. 베트남 시인들한테 주려고.

 

 

 

채상우: 선생님 바쁘신 중에도 이렇게 시간을 내주셔서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시 많이 쓰시길 바랍니다.

 

 

 

 

 

 

김정환 선생을 만나고 한 달 쯤 후의 일이다. 평론을 쓰는 고영직 형으로부터 베트남 작가들이 몇 명 서울에 왔는데, 저녁을 먹으러 가니 홍대 쪽으로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난 그저 두세 명 혹은 다섯 명 정도 왔겠거니 싶어 별 생각 없이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가는 도중에 생각해보니까 혹시 김정환 선생이 있으면 어쩌나 싶은 걱정이 들었다. 그때까지도 인터뷰 내용을 정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걱정은 기우였지만, 내가 함부로 참석할 자리가 아닌 듯싶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베트남 작가로 보이는 사람들이 이십여 명 되었고, 팔레스타인과 이라크 그리고 대만 작가도 있었다. 다행히 베트남 작가들이 대다수였고 베트남어와 한국어를 통역해주는 사람이 있어서 처음엔 어떤 내용의 이야기들이 오가는지 알 수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통역해주던 사람이 좌석 사이로 앉아버리자마자 나는 그야말로 고립무원에 천둥벌거숭이가 되어버렸다. 무슨 말을 하는지 도통 알 수가 없어서였다.

 

그래서 그냥 혼자 앉아 담배만 뻑뻑 피우고 있었는데, 이름이 누 빈(Nhu Binh)이라는 젊은 여자가 곁으로 오더니 불쑥 명함을 건네는 게 아닌가. 베트남작가협회는 영문으로 쓰여 있어서 알아보겠는데, 나머지는 모두 베트남어라서 하노이에 산다는 것 빼고는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그 여자는 내게 자신이 리포터라고 영어로 말했는데(명함엔 라고 적혀 있었다) 영어 발음이 영 낯설어서 몇 번이나 듣고서야 겨우 알아들을 수 있었다. 나도 몇 마디 어설픈 영어로 말을 하긴 했는데, 답답해서 그 자리에서 나와버렸다.

 

자리가 어색하기도 했지만, 한국 작가들과 베트남 작가들, 그리고 팔레스타인과 이라크, 대만 작가들이 어눌하기 짝이 없는 영어로 겨우겨우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는 상황이 대체 뭔가 싶어서였다. 기가 막힌 일이었지만 제삼세계 작가들을 이어주고 있는 언어는 영어였다.

난 그제서야 김정환 선생이 베트남 작가들에게도 주기 위해 영문판 시집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우리에게 영어란 무엇일까, 정말이지 오래도록 생각해야 할 문제다. 그때 문득 베트남 여성 작가의 노랫소리가 들렸다. 후에 알게 되었는데, 그 노래는 다리를 사이에 두고 한참 교전중인 지역에서 한 여인이 게릴라가 되어 떠난 연인을 다리 위에서 날마다 기다린다는 내용이라고 한다. 비록 한 구절도 못 알아듣는 베트남 노래였지만, 그 노래는 제국의 언어를 가로질러 눅눅한 서울거리로 스미고 있었다.

 

훗날 누 빈을 만난다면 난 어떤 언어로 말을 해야 할까, 적잖이 걱정이다. 아니 그보다 내 가슴속에는 진정 노래다운 노래가 남아있기나 할까. 모르겠다. 다만 확실한 사실은 내 노래가 언젠가부터 극도로 음탕해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내 노래가 음탕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묘하게 즐기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고백하건대 김정환 선생에게 한 질문들 가운데 대부분은 곧 나에 대한 사문(査問)이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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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정환, 「한강(),『좋은 꽃』, 민음사, 1985.

 

2) 김정환, 『황색예수전 3., 실천문학사, 1986.

 

3) 김정환, 『황색예수전 3., 실천문학사, 1986.

 

4)김정환, 「포옹」, 『해가 뜨다』, 문학과지성사, 2000.

 

5)김정환, 『남자, 여자, 그리고 영화전태일에 대한 명상』, 웅진북스, 2003.

 

6) 김정환, 『남자, 여자, 그리고 영화』, 284.

 

7) 김정환, 『남자, 여자, 그리고 영화』, 284-2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