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용+민규동

* 이 글은 연세대 미디어아트연구소가 기획하고 "문화기획 퍼슨웹"이 만드는 <영화와 시선7: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에 싣기 위해 집필되었다. 글의 저작권은 연세대 미디어아트연구소에 있다.

 

1. 맛배기

 

 

 

인터뷰를 시작하기도 전에 나는 약간 취해 있었다. 마로니에 공원 뒷켠 어느 해물탕 집에서 맛없는 국물을 떠먹으며 몇 잔 들이킨 맥주가 탈이었다(그만큼 나는 술이 약하다). 먼저 일어나 바람을 쐬다가 어느 찻집에서 얼굴이 벌개진 채로 두 젊은 감독을 맞이했다. ‘뜬금없이사람이 많았다. 감독도 둘인데다가 퍼슨웹에서 나온 인터뷰어도 나를 포함해서 셋이나 되었다. 구경꾼도 한 명 있었지만 그는 본래 인터뷰 같은 것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사실은 뭐에 관심 있는지 알기 어려운 사람이다. 인터뷰 내내 다른 곳을 어슬렁거리거나 누군가랑 전화 통화만 하고 있다가 내가 혼자 떠드는 것 같다고 면박을 주기도 했다. 연구 대상이다)이라서, 그나마 인터뷰 자리에 약간 숨통을 틔워줬다. 게다가 매니어 팬을 한 두 명 데려와달라는 말이 잘못 전달됐는지, 민감독의 한겨레 문화강좌 수강생이 네 명 참석했다(그래서 유감이라는 얘기는 절대로 아니니 오해마시기 바란다). 퍼슨웹의 사진 담당 기자(?)까지 포함해서 모두 11명이었다.

  사람이 많다보니 인터뷰가 다소 산만하게 진행됐다. 물론 주 인터뷰어인 내가 좀 오바한 탓이 크다. 처음엔 술이 약간 취한 핑계로 내가뜬금없는질문을 해댔고, 어찌된 일인지 나중엔 인터뷰 분위기 자체에 약간 취기가 돌았다. 김태용 감독은 뭔가 말이 모자란 듯, 준비해 간 녹취 디스크가 바닥난 바로 그 시간에도 더 할 얘기가 있어 보였지만(그래서 인터뷰와 관계 없이 흉금을 털어놓는 술자리를 마련하고 싶었지만), 시간이 허락하지 않았다. 최근에 의정부로 집을 옮긴 민규동 감독은 전철이 끊기기 전에 일어서야 했고, 김태용 감독도 준비해야 할 일이 있다며 몸을 일으켰다.

  나 개인적으로는 꽤 만족스러운 인터뷰였다. 이번 인터뷰를 위해 사흘 동안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를 네 번 보았던 나는 그만 이 젊은 감독들의 열렬한 팬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처음 나왔을 때 본 것까지 치면 모두 다섯 번 본 셈이다. 지금까지 많은 영화를 봤지만 다섯 번 본 영화는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가 처음이다. (이런 인터뷰 기회가 또 있다면 모를까, 아마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감독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기보다는 영화에 대한 내 해석을 확인받고 싶은 심정이 강했다. 내가 생각해도 참으로뜬금없는인터뷰어였다. 나중에 집에 와서 녹취 디스크를 들어보니, 만약 내가 제3자로서 내 목구멍에서 나온 목소리임에 분명한 저 낯설고뜬금없는소리들을 들었다면, 한 대 쥐어패고 싶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두 인터뷰어가 적절히 컨트롤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더 괴상한 인터뷰가 됐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바로 이런 이유에서 나는 기존의 인터뷰 기사처럼 문답식으로 글을 쓰기를 포기했다. 이왕 이렇게 된 이상 내 멋대로뜬금없는인터뷰 기사를 쓰기로 했다. 두 감독이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에서 불친절한 플래쉬백을 애용했듯이, 나도 그렇게 인터뷰 내용을 내 맘대로 재구성하기로 했다(김태용 감독도 이런 방식을 제안했다). 그대로 옮기기에는 인터뷰 분량이 너무 많기도 했다.

 

처음에 내가 던진 질문은 이런 것이었다. “영화가 나온지 4년이 넘었다. 당시나 지금이나 물론 좋은 평은 들었지만, 비평가들이 크게 주목한 것 같지는 않다. 이 영화 테이프를 빌리면서, 500원짜리 하나 빌리는 게 미안해서 『말죽거리 잔혹사』도 같이 빌려서 봤다. 영화를 볼 때마다『씨네 21』에 가서 기사를 검색하는데, 평이 많더라. 그런데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에 대한 평은 없더라. 민감독이 알려준 팬사이트에 가서 이런저런 기사를 보긴 했으나 대개는 인상기 수준이었다. 괜히 내가 아쉬웠다. 이런 것에 대한 섭섭함은 없는가? 그리고 장편 데뷔작이었는데 4년이 넘은 지금은 그 영화에 대해 뭔가 (그 때와는) 다른 느낌을 가지고 있을 테니 한 번 말해주라.” 첫 질문치고는 너무뜬금없었다.’ 문제는 인터뷰 당시에는 이런 것을 나만 몰랐다는 점이다. 어수선한 분위기가 잠시 썰렁해졌다. 어색한 침묵을 깨고 김태용 감독이 입을 열었다. “캐릭터가 재미있다. 마치 20년 전 김훈 선생님을 보는 느낌이다.” 김감독의 선한 눈웃음이 없었다면 아마 나는 삐쳤을 것이다(나는 김훈을 만난 적이 없다. 그냥 자전거 타는 사람으로 알고 있다).

 어쨌든 두 감독은 자신들의 장편 데뷔작이 평단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는 내 섭섭한 감정을생까고오히려생각했던 것보다는 주목을 많이 받았다는 식으로 얘기했다. “영화가 1년에 5,60편 나오는데, 모든 작품이 좋다 나쁘다 논쟁적으로 이야기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보면 오히려 꽤 주목을 받았다는 생각이다(민감독).” 그리고 이런저런 얘기가 두런두런 오고 갔고, 어찌어찌하다가 개봉관 수에 화제가 미쳤는데, “지금도 그렇지만 영화를 만들 당시에는 더더욱 산업적인 것에 개념이 없었다. 개봉관이 88개였다. 개인적으로는 많다는 느낌이었다(김감독)”라는 대답을 들었다.

2. 여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를 보는 코드는 대략 두 가지다. 하나는 성장이고 다른 하나는 동성애다. 그래서인지 “10대 여성이 한국 사회에서 살아간다는 것에 주목했다는 감독()의 말이 여기저기서 많이 인용된다. 나 역시 이런 관점에는 대체로 수긍하는 편이지만, 영화를 여러 번 반복해서 보다보니 성장과 동성애라는 코드로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계속 눈에 밟혔다(아니 가슴을 쑤셨다). 위에서 옮긴 대로 처음 질문을 저토록뜬금없이던진 것은 바로 이런 점에 직접 다가서기 위해서였다. 분위기가 약간 썰렁해지긴 했으나, 인터뷰에서 별로 말하지 않기로 유명한 김태용 감독이 인터뷰가 진행될수록 (나의 첫 질문을 환기하면서) 자꾸 뭔가를 이야기하려 한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이런 걸로 미루어보면 썩뜬금없는짓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이를테면, ‘이성애적 가부장제 문화를 지배질서로 보았을 때, 거기서 빠져나가는, 혹은 거기에 붙잡히지 않는 어떤 여성성, 소위레즈비언 섹슈얼리티’, 아니면 입시와 권위적인 학교에 짓눌려 살아가는 10대의성장통이라는 코드로 이 영화를 읽으려는 시도들은 너무나 많다. 물론 본격적인 평문이 아니라 단편적인 인상기가 그렇다는 얘기다. 아무래도 영화 문외한인 내가 영화평에 대해 왈가왈부를 하는 것은 주제넘은 짓일 테니까, 게다가 이 인터뷰가 실리는 책에는 본격적인 평론이 실릴 테니까, 그냥농반진반으로 떠드는 얘기로 하자면, 쓰는 사람도 자기가 쓰는 글이 무슨 뜻인지 알고 쓰는지 가끔은 의심이 드는 주간지 영화평에서부터 하나마나한 얘기를 짧은 지면에 우겨넣는 경우가 태반인 일간지 기사에 이르기까지 많은 글들이 성장과 동성애라는 코드로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를 형해화시킨다는 느낌이 나한테는 강했다. 내가평단의 주목을 받지 못한 섭섭함운운했던 것은 바로 이 점을 가리킨 것이었는데, 워낙 말주변이 없는데다 자기주장은 쇠심줄만큼 강해서 아무 때나뜬금없는소리나 내뱉는묘한 캐릭터’, 그래서 서두에 언급한구경꾼에게 부당하게도싸이코라는 소리를 10년 전부터 들어왔던 내가 요령 있게 질문하지 못해서인지, 처음엔 내 뜻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던 것 같다. 사실 지금도 나와 동년배인 두 젊은 감독(민감독은 대학 시절에 같은 동아리에 있었다. 그 때도 그는 며칠씩이나 한 두 시간만 잠을 자면서 떠맡은 일을 해치우는 초인적인 열정을 보여줘서귀차니즘의 단꿈에 젖어있던 우리 동아리 회원들을 아연?실색?기겁케 했다. 민감독의 제안에 얼떨결에 동아리 신문 비슷한 어떤 것을 제작해야 했던 나는 그러고보면 피해자다)이 나의 문제의식을 정확히캐취했는지 여부는 잘 모르겠다. 다만, 김태용 감독은 영화평에 대한 시각이 나와 비슷하다는 인상을 받았고 민규동 감독은 평에 대한 관심 자체가 아예 없어보였다는 점이 하나의 수확(?)이었다. 어쨌든 나는 인터뷰가 혼돈에 빠져들고 있는 와중에도 내가 처음에 지녔던 문제의식을 꽉 쥐고 있었고, 간간히 틈이 보이면 그 문제의식에 대한 대답을 얻기 위해 용을 썼다. 그리고 어느 정도 답변을 얻어냈다.

  퍼슨웹에서 부 인터뷰어로 함께 나온 문화사회학자(『근대의 책읽기』라는 발칙한 책을 쓴 일용잡급, 즉 대학 강사이다. 문학 공부를 좀 색다르게 하고 싶은 분이라면, 본문까지는 아니라도 이 책의 서문만큼은 꼭 읽어보시라. 앞서 우스꽝스럽게 소개한구경꾼도 실은 『사상계와 1950년대 문학』이라는 거창한 제목의 저서가 있는 일용잡급인데, 그가 이런 책을 썼다는 것 자체가 내게는 기적이다. 1년 이상을 이런 딱딱한 주제와 씨름하고 있었다니! 문학판도 정치판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품고 있는 분이라면 한 번 읽어보시라), 커다란 덩치로 보는 사람을 위압하기도 하지만 아마도 속은 여린 사람임에 분명한 이 문화사회학자는 10대 여성에 대해 묘한 호기심(금욕적인 문화사회학자가 원조교제에 대한 꿍꿍이가 있다고 생각하는 독자는 없기 바란다. 그것은 아마도 진짜 타자는 자기 내부에 있다는 것을 감안하지 못하는, 모든 현상을 사회적인 의미망에 투영해서 바라보는 버릇이 몸에 밴 문화사회학자 특유의, 타자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이었을 것이다)이 있어 보였고, 또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에서 그 호기심을 상당 부분 충족한 듯했다. 이 양반이만약 내가 서른 살 무렵에 소설을 쓰거나 영화를 만들었다면, 20대 초반의 학생 운동 이야기를 다뤘을 것이다. 7,80년대에 군대 얘기가 그러했듯이, 내 세대에게는 그게 가장 큰 성장의 모티프였기 때문이다라고 말했을 때, 사실 그가 묻고 싶었던 것은 두 감독이 10대 여성에 대해 관심을 두게 된 계기는 무엇이고, 또한 10대 여성을 그토록 잘 묘사한 비결은 무엇인지가 아니었을까 싶다. 라캉이 말한 대로여자는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이런 질문을 던질 생각이 없었지만, 옆에서 그 질문을 던지지 않았다면 중요한 말을 듣지 못했을 뻔했다. 여기서 두 감독의 대답은 묘하게 갈렸다. 약간은 어이없는 답변도 있었는데, 처음에 이 비슷한 문답이 오갔을 때는 자신들이 10대들을 다룬 영화를 이미 만든 적이 있는, 게다가 말을 잘 들을 것처럼 보이는순응 굴종형 인간이었기에 제작사에서 편하게 생각하고 맡긴 게 아니겠냐는 투로 말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이 말을 우스개 소리로 듣지 않았다. 오히려 굉장히 심각하게 들었다. 이 얘기는 뒤에서 다시 언급하겠다.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에서 어떤 색다른 이야기를 한다기보다는 오히려 모든 사람에게 일어날 법한 보편적인 이야기를 한다고 생각했다는 두 젊은 감독 가운데 어쩐지 더 소년다운 모습의 민감독은 이렇게 얘기했다.

  첫 단편영화가 여고생을 다룬 것(『허스토리』), 그 다음이 남고생을 다룬 것(『열일곱』))이었고, 다시 여고생을 다루게 된 것이다. 지금도 10대 얘기를 하려면 하고 싶은 게 많다. 군대에서 받은 정신적 억압도 10대 시절만큼 강했지만, 10대는 내 인생의 암흑기였다. 지금은 힘들었던 것 걸러지고 즐거웠던 기억들이 남아 있는데…, 그래도 어떤 우연한 계기로 스파크가 붙으면 내 유년기가 우르르 쏟아져 나올 거다. 조금 더 거리가 있는 시기에 대해 아무래도 할 얘기가 더 많다. 새로운 방향으로 가고 싶고 다시 그 자리로 가고 싶진 않지만, 가면 많은 얘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김감독의 대답은 이와 약간 달랐다. 우선 그는 왜 하필이면 10대 여성 이야기를 다루었는가?” 라는 문화사회학자의 질문에 대해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 전에 10대들 영화를 만들었다. 그 연장선상에서 이 영화를 맡게 되었지만, 질문자가 궁금한 것은 그 이면의 대답일 것이다. 굉장히 중요한 질문인데……. 왜냐면 지금은 10대에 별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한때 미칠 듯이 10대에 관심이 많았다. 평생 성장영화를 다루는 감독도 많다. 나 역시 내가 성장과 10대에 특별한 관심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요새는 다른 영화를 만들고 싶다. 아마 나는 성장영화를 자주 만드는 그런 작가나 감독은 아니었던 것 같다

 
라고 답했다. 문화사회학자가 질문을 새삼 강조하는 의미에서 위에서 인용한 질문을 던지자, 개인사적인 부분도 있지만, 그보다는 좀 더 추상적?관념적인 부분이 컸다. 10대라는 것에 대해 서른 살 무렵에 영화를 만들었는데, 약간 추상적인…, 얘기하자면 긴데……”라며 말을 흐렸다. 그가 인터뷰 막판에 이르러서 어떤 아쉬움을 표명한 것은 바로 이 말줄임표에 있다. 그는얘기하자면 긴바로 그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허락하지 않았고, 시간이 허락했더라도 내가 그 긴 얘기를 계속 듣고 싶어했을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그는 결국 영화 감독이고 영화 감독이라면 영화로 얘기해야 하고, 이미 자신의 속내를 많이 드러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 얘기는 뒤에서 다시 꺼내겠다. 여기서 두 감독은 10여성이 아니라, 10 여성에 초점을 맞추어 대답하고 있는데, 2절에서의 내 관심은 10여성에 있기 때문이다.

  인터뷰를 시작한 지 100분이 넘어갈 무렵 잠시 휴식 시간을 가졌다. 내가 화장실을 다녀오는 사이에도 대화는 끊기지 않았다. 내가 다른 곳에 있었고 녹취가 끊겼다 이어진 부분이라 정확히 맥락을 잡지는 못하겠으나, 대충 남자 안의 여자에 관한 얘기가 오갔던 것 같다. “농담으로 하는 말인데, 두 감독은 우리 사회에서 볼 수 있는 가장 마초적인 코드를 가진 분 같다. 우리 사회에서 남자들이 가장 지저분하게 어른 되는 모습을 그린 영화가 『친구』다. 특히 경상도에서(지역색이 들어간 발언이라 빼야 마땅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말한 당사자가 부산 출신임을 감안해주시라) 유치하게 어른이 안 되는가를 그린 영화, 서른 살에 만나서친구야!’하는 영화다.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는 그와 정반대, 대척점에 있는 영화라고 생각하는데, 처음 볼 때는 아무 생각없이 봤고, 오늘 아침에 다시 볼 때는 많이 계몽됐다. 저게 여고생활이구나 하는. 며칠 전에 어느 여자애가 해줬다는 말, 동성애적인 애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십 몇년간 연애를 했지만 자신이 가장 집착했던 상대는 여자였다는 말, 이런 게 이해가 되더라.” 문화사회학자의 말이다. 곧이어너무 이해가 되요라고 김감독이 나지막하게 맞장구를 쳤는데, 자기가 만든 영화를 보고 여성적인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는 말에 맞장구친다는 것은뜬금없다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이어서 민감독이 흥미로운 대답을 했다.

  만드는 과정에서 사람들에게 이해받기가 굉장히 어려웠다. 배우들도 다 여자애들이었는데, (효신과 시은의 관계에 얽힌 어떤 지점에서는) 도저히 이해 못하겠다는 반응이었다. 편집이 끝나고 영화를 보고나서야내가 무슨 영화에서 어떤 역할을 했구나하고 느끼는 것 같았다. 사람들이 잘 이해하지 못했다. 상업적인 정서가 아니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지만, 오히려 이건 변태적인 정서다, 하는 생각이 강해보였다. 예컨대, 효신이 국어시간에 시를 외우는 신, 너무 싸이코같은 신, 수영장 왔다갔다 청소하는 장면 등에 대해서는 반감이 심했다. 그래서 빠진 장면도 많다. 140신을 찍었는데 70신만 썼다. 내가 시간을 아쉬워하는 것은 러닝타임이 짧다는 것보다는, 인물을 좀 더 입체적으로 그릴 수 없었다는 점, 영화에서 죽는 사람도 많고 자기 욕구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아이도 많은데, 그런 욕구의 배경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주변 내용을 좀 더 풍부하게 드러내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점이다. 많은 내용들이 빠져서 영화가 더 풍부해질 기회를 놓쳤다.”

  이 대목에서 내가 주목한 것은여자애들인 배우들도 도저히 이해 못하겠다는 반응을 보였다는 부분이다. 관점에 따라서는 전혀 중요치 않은 말일 수도 있는데, “여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여성성이라는 것은 허구다라고 생각하는 나한테는 귀가 솔깃한 내용이었다. 이와 관련해서 김감독 역시 중요한 얘기를 했다. 만든 지 5년이 지난 이 시점에서 뭔가 이 영화에 대해 한 번쯤정리해볼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말을 여러 차례 내비쳤던 그는 정말로 내가 기다렸던 바로 그런 말을 해주었다.

 이 영화는 나한테 뭐랄까, 잊어버릴만 하면 갑자기 전화오고, 또 잊어버릴만 하면 갑자기 전화오는 그런 영화다. 작년, 재작년, 뭘해서 뭘한다, 프랑스 디비디니 무슨 영화제니, 계속 끊임없이, 조금씩, 만들자 마자부터 지금까지 계속 나를 부르는 영화다. 이 영화를 관통하는 감독의 태도는 한 마디로 위악이다. 기획에서 마지막까지. 오늘 아침에 내린 결론이다. 이건 비밀인데……. 자꾸 상기되는 얘기가 있다. 이번 인터뷰는 진짜 마지막이라고, 다 얘길 할까 생각하다가, 그렇게 하려니 생각이 안난다. 나한테 해결이 됐거나 해결할 의지가 없을만큼 [내가] 뻔뻔해졌거나 둘 중 하나다.”

위악이라는 말이 걸렸다. 무슨 뜻인지 물었지만, 대답하지 않았다. 잊어버렸다는 식으로구라를 쳤지만, 이것 역시 또 하나의 위악이겠거니 하고 넘어가려는데, 날씬하고 침착한 우리의 또 다른 인터뷰어, 그러니까 이 영화가 극장에 내걸릴 당시에 여고생이었던 OO가 가만 냅두지 않았다. 위악이라고 말하는데, 작품이란 만든이의 것이 아니다. 작품 자체의 권리가 있다. 작품이 논의되는 과정에서 본인이 모르는 어떤 새로운 걸 발견한 적은 없는가?”

 작품은 보는 사람의 것이다라는 그런 폼나는 이유로 숨긴 건 아니다. 오히려 나 개인적으로는, 나쁘게 말하면, 작위적인 의도가 많이 있었는데, (글을 많이 안 읽어줘서 그런지) 그 의도를 읽어준 글은 별로 없었다. 이 영화에는 독특한 게 있다. 영화내적인 것보다는 이 영화가 던져진 후에 그 영화 내적인 힘보다 그 영화를 둘러싼 사회문화적 현상의 힘이 세진 영화라는 점이다. 그렇게 얘기가 전개되면 감독으로선 할 얘기가 없다. 단편영화를 찍으면 어떻게든 사람들에게 그걸 보여주려고 보따리 장수처럼 지방을 돌아다녀야 한다. 연극이랑 비슷하다. 그들 앞에서 작품을 시연하는 느낌이 강했다. 상업영화니 대중영화니, 그런 것에 대해 별 이해없이 만들어서 널리 퍼지니까, 내 노력과는 상관없이 퍼지고, 관객이 내가 만나려는 사람이 아니고 단편영화와는 다른 방식으로 그들을 만나니까 약간 당황했다. 잘 모르는 가운데 얼결에 상업영화를 시작했는데 자꾸 날 부른다. 내가 성장했나보다. 재밌다.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이 영화는 내 개인사적 얘기, 그러니까 군대 얘기. 대학 얘기, 고등학교때 얘기가 아니라, 그 당시 내 상황이었다. 그 영화를 통해서 그 주인공이 성장하는 게 아니라 나 자신이 통과제의를 겪는 그런 느낌이었다. 영화 외적인 현상에서 영화를 고정된 텍스트로 놓고 어떤 식으로 분석해나가면, 감독은 빠질 수밖에 없다. 다만 감독이 어떤 통과제의를 겪었는가를 보는 평이 나왔으면 하는데, 지금은 그 얘기를 할 때가 된 것 같기도 하고. 내가 그런 시기를 겪은 것에 대해 말이다. 지금은 10대 얘기에 관심 없다. 여성(페미니즘적 시각이든 아니다), 동성애와 같은 겉으로 드러난 키워드가 아니라, 절절한 관계, 소통이 중요한 그런 절절한 관계, 그게 막히면 죽어버리는 그런 절절한 관계[를 찍고 싶었다]. 여고건 공장이건 40대건 노인이든 상관 없[].”

 
내가 눈치 없이 끼어들었다. 그런 점에서 나는 레즈비언이니 동성애니 하는 코드가 표피적인 해석이라 보는데…….”

  아니, 그렇게 볼 순 있다. 드라마니까. 하필 10대나 여성, 레즈비언에 특별한 관심이 있냐, 그런 질문도 맞다. 딴 얘기(선생과 학생)도 가능하니까 말이다. 어쨌든, 태어나서 딱 한 번 사랑을 한다면, 바로 그런 사랑을 그린 영화다. 이 영화가 나한테 남긴 것은 글쎄미숙하고 열만 많았던 시기의 첫사랑, 다시는 그거 하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그런 힘이 평생에 또 있을까 싶은 그런 것. 나는 시은이랑 효신이랑 관계도 그런 게 아닐까 생각한다.”

  어쩌면 이 긴 대답은 김태용 감독 자신이 미진하게나마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를 정리하는 하나의 방식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인터뷰 서두에 영화의 러닝타임이 다소 부족하지 않았냐는 나의 질문에 대해, 그러니까장편 데뷔작이었는데 4년이 넘은 지금은 영화에 대해 뭔가 (그 때와는) 다른 느낌을 가지고 있을 테니 한 번 말해주라라는 첫 질문을 다소 우회적으로 밝힌 그 질문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했었다. “잘 모르겠다. 나로서는 잘 정리가 안 되는 영화였다. 이 영화가 나한테 사람들한테 남긴 게 뭘까 생각하다가 어느 순간 접고 시간을 흘려보냈는데. 오늘 이쯤돼면 정리를 해보려고 약간의 생각을 했는데, 근데도 정확히는 잘 모르겠다. 이상한 화학적 반응…, 카오스적 상황을 즐길 수 있는 패기. 그런 패기로 영화내적?외적 반향이 컸다. 그 안에서 만들었으니까 내게 뭔가 생각이 있었겠지만……. 러닝 타임이 충분하냐는 질문, 어렵다. 다만 영화는 완성되는 게 아니라 적정한 시점에 스톱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어느 순간 돈이든 압력이든 시간의 문제든, 그게 최선의 선택, 아니 차악의 선택으로 완성되는 것 같다. 그래서 충분하다.” 같은 질문에 대해 민감독이 한 말도 비슷했다.

  “[지금] 정리가 잘 돼 있는 상황은 아닌데, 생각보다 굉장히 영향력이 크고 깊었다. 상당히 거기 많이 빠져 있었고. 만들어진 것 자체가 기적적이었다. 만들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너무 많았다. 만들어진 것 자체에 감사하고, 신기하다. 그 이후의 삶을 떠올리면 아주 수십년 동안 그 영화를 그런 식으로 준비해왔고. 그런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었고, 그것이 내가 원하는 바였다는 생각이 든다…. 그 안에 숨어있는 수많은 요소가 나의 모든 것. 지금 이제 생각해보면…, 뛰면서 글씨를 적은, 내가 쓴 일기장 같다.” 

  
어쨌든 김감독이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자 이 때가 기회라고 생각한 나는 민감독에게도 대답을 강요했다(?). 별로 말하고 싶어하지 않은 것 같았으나, 오랜만에 본 대학 동기의 체면을 살리기 위해서였는지 내가 원하던 바로 그런 답을 해주었다. 나 역시 다른 얘기를 할 수는 없을 듯하다. 영화를 9개월 10개월 거의 죽어가면서, 육체적으로 거의 죽어가면서, (육체적으로 힘드니까 정신적으로도 힘든 그런 상황에서) 뭐랄까 왜 이리 고통스럽나 생각하면서 만들었는데, 만들어진 그 짧은 기간이 끝나니, 그 다음부터 기대치 않았던 다른 생명이 붙어서, 3.4년 지나는 과정이 어떤 방식으로든 끊임없이 나한테 영향을 미쳤고 지금까지 왔다. 내가 완전히 나는 다 컸다고 생각하고, 효신이는 어른이 못 돼고 거기서 머무르고 싶었기 때문에 죽은 것이고, 나도 내 안의 한 애가 죽어서 내가 새로운 나로 다시 태어나는그런 그런 결절이 되는 지점, 훨씬 이전에 그런 결절을 짓고 싶었지만 그제서야 그렇게 된……. 하지만, 예를 들어 팬사이트에서 개봉 3주년 기념 파티를 한다거나, 3시간 몇 분짜리, 그런 편집 안 된 것, 너무 너무 작은 이벤트지만, 그런 것 틀고, 유지되는 힘의 근원을 알기 어려운 그런 이벤트인데, 그런 거 마주할 때, 영화 만들 때의 한 순간의 에너지가 그대로 잠깐 리바이벌된다. 굉장히 멀어져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도 살짝 건드려도 제자리에 와 있는 그런 나를 발견할 때가 많았다. 그게 나를 겁먹게 하고 주눅들게 하고… (이벤트를 열어주는 건) 너무 감사한 일이지만 그런 점이 있다. 내가 성장통을 겪었던 시간인 것 같고 지금은 어떻게 마주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솔직히.”


 인터뷰어로서는 두 감독에게 듣고 싶은 말을 다 들었던 바로 그런 순간이었다. 내가 두 감독에게 확인하고 싶은 얘기는 처음부터 이게 전부였다. 여고생들의 많은 얘기를 듣고 그들을 밀착 취재해서 영화상의 핍진성을 높였지만, 사실 이런 것은 나한테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사회문화적으로 퀴어 담론의 확산에 기여한 면이 있고, 이 영화를 보고 삶이 변했다는 여러 사람들의 사연을 들으며 대사회적인 책임감 같은 걸 더 강하게 느꼈다는 말도 두 감독은 했지만, 인터뷰를 맡은 나한테는 별로 중요치 않은 문제였다. 그런 밀착 취재를 가능케 한 열정, 하루에 한 두 시간씩 자면서, 촬영과 시나리오 작업을 동시에 하면서, 세 번씩이나 그만두겠다는 말을 서로 주고받았던 무척 열악한 상황에서도 결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작품을 완성하게 했던 열정, 그 혼돈의 열정이 나한테는 소중했다
  
결국 그들이 영화에서 얘기하고 싶었던 것은 10대 여성이 아니라 자기자신이 아니었을까. 그러니까 그들은 10대 여성을 이야기한 것이 아니라 자기자신을 이야기한 것이다. 내가 공들여 부각시키고 싶은 것이 바로 이 점이다. 한때 내가 빠져 있던 늪이었던 아도르노는시의 고독 속에서 인류의 음성을 듣는 자만이 시가 말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는데, 나는 이 말을예술은 가장 사회적이지 않을 때 가장 사회적이라는 의미로 이해했다. 두 감독이 자기 얘기를 했기 때문에, 오직 그랬기 때문에, 이 영화는 사회적인 혹은 정치적인 의미가 강하게 박힌 그런 작품이 되었을 거라고, 나는 그렇게, ‘뜬금없이생각한다
  
아마도 사람들은 말하리라, 영화는 고독한 개인이 쓰는 시와는 달리 여러 사람이 참여하는 공동작업의 소산이라고. 그러나 우리 시대에 누군들 고독하지 않겠는가? 아버지란 형상 자체가 어머니와 나의 상상적 이자관계를 방해하는 외부의 침입자가 아니라 오히려 우리 욕망의 심연(che vuoi?)을 가리는 일종의 판타지라면, 그러니까 아버지되기야말로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아니사느냐 죽느냐?”라는 외상적 질문을 회피하는 일종의 타협 형성물이라면, 우리 시대는 그런 아버지가 없는 시대, 그래서 그 외상적 질문에 바로 마주해야 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생물학적인 아버지가 될 나이인 서른 살 무렵에성장통을 앓고통과제의를 겪었던 두 젊은 감독의 영화가, 10대 여성을 통해 자기 얘기를 했던 두 남자 감독의 영화가 소중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바로 이런 맥락에서여자가 존재하지 않는것처럼아버지(큰타자)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는 라캉의 말을 음미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므로 이제 서른 살이 되어도, 마흔 살이 되어도, 쉰 살이 되어도 방황할 수밖에 없는 그런 인간에 대해 이 영화를 빌어, 두 감독의 입을 빌어 내가 조금쯤 말해두어도 아주 큰 실례는 아니리라.

3. 나쁜 것과 더 나쁜 것

 

그래서 나는 두 감독의 아버지에 대해 물었다. “결국 아버지 되기, 어른 되기의 문제가 아닐까 싶다. 영화 문외한으로서 그냥 재미있는 얘기를 하자면, 『친구』는 80년대 초반에 고등학교를 다닌 세대, 『말죽거리 잔혹사』는 78년에 고등학교 2년생이었던 세대를 다룬 이야기다.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는 99년에 여고를 다닌 세대를 다룬다. 여러 평을 읽어보니, 앞 두 영화는 마초 문화를 혐오하면서도 그걸 닮아가는 사내들 세계, 그리고 그런 문화에 대한 이상한 노스탤지어를 담은 영화라고 한다. 그런데, 이 영화에 등장하는 생물 선생, 자기 수업 장면을 찍는 카메라를 빼앗으며 권위적으로 보이려 하지만 오히려 코믹한 생물 선생이나, 효신과 손을 잡고 있는 시은의 따귀를 때리는 선생이 아마도 대충 『친구』나 『말죽거리 잔혹사』의 세대가 아닐까 싶다. 그들이 시은의 따귀를 때리고 연안의 카메라를 빼앗는 그런 어른으로 자란 것이다. 자기들도 그저그런 소시민에 불과하지만 겉으론 멀쩡하고 위압적인 어른으로 행세하려는 그런 아버지. (……) 두 감독의 아버지에 대해 말해주라.” 
  
민규동 감독이 담담하게, 나직한 음성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

아버지를 생각하면 슬프다. 10초만에 울 수도 있다. 여섯 살에 어머니 돌아가시고 열세살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그래서 고아로…, 열다섯 살 차이 배다른 형님을 두고 살아왔는데, 일기장이 이 만큼[두 손을 각기 배꼽 부근과 머리에서 두뼘쯤 위에 두었다] 쌓여 있는데, 평생 외로운…. 아침부터 밤까지 성실하게 일하셨고, 지금도 그렇다. 맨날 사기당하고, 이만큼도 남에게 해를 못 끼치고, 고향에서 못 머물고, 타지로 돌아다니기만…. 선생이나 화가가 꿈이었는데, 실제로는 금속공장 노동자. 정서는 너무너무 책읽기, 글쓰기 그런 것을 좋아하고, 조용조용 안싸우고, 술 안마시고, 금욕적인 삶을 살아온 건데, 어울리지 않는 일을 하셨다. 나중에 경비원, 시다, 포항 용광로에서 철() 나르는 일도…. 고향은 인천인데, 지금은 개인택시 운전하신다. 대학 시험치고, 등록금 형이 도박으로 날리고, 공장 다니면서, 대학 못 가시고…. 어릴 때부터 내가 생긴 게 아버질 닮았다, 성격이 아버질 닮았다는 얘기 들었다. 타지에서 통장도 할 정도로, 어머니는 사교적이셨다. 너무너무 아는 사람도 많고, 잘 어울리고 그랬다. 아버지가 엄마한테 야단맞고, 어머니가 큰소리 치시는…, 이런 분위기였는데, 슬픈 영화 좋아하는 내 그런 정서가 [아버지를 닮은 것 같다.] 갈등은 평생 없었던 것 같고, 전혀 미워해 본 적이 없다. 맞은 기억은 있지만(껌 훔쳤을 때), 아버지가 가족을 위해 희생한다는 이미지가 늘 강했다. 자식들을 위해 담배를 안 핀다, 고스톱에서 돈 잃으면 어머니한테 야단 맞고, 자기의 삶, 자기의 욕구보다는 자기 삶을 유예하고…, 그러다보니 세월이 너무 흘러서…, 돈을 한번도 못 써보신…, 그래서닮으려고 노력은 안하는데 유전적으로 닮은 지점이 있는 것 같다.” 

 

글쎄요…, 우리 아버진별 일 없는데, 드라마틱한 얘기 별로 없는데…, 하기가 좀 어려운 게, 영점 영영영영영퍼센트 확률일지라도 책을 읽으면안 좋을 것 같아서…. [아버지에 대한] 앙금 같은 건, 어떤 드러마틱한 사연은 없지만….”

 

 

정말로 특별한 사연은 없는지 모른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자기 얘기는 고유한 법이다. 이 고유성을 존중해주지 않으면 사회학도 정치학도 말짱 헛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오직 그 고유성에 깊이 침잠할 때만 예술가는 보편적인 것을 말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민감독의 아버지는 마초 문화가 지배하는 시대에서 짓눌리고 상처받은, 그러면서도 자식들을 위해 많은 걸 희생하고 묵묵히 삶을 견뎌 온 이 땅의 많은 착한 아버지들의 초상이다. 내 짧은 한국 영화사 안목으로는, 그런 착한 아버지들에 관한 얘기가, 아버지가 착했기(무기력) 때문에 아들의 원망과 불평을 듣는 그런 아버지가 아니라 차라리 아들에게 슬픔과 연민과 감사의 마음을 느끼게 한 그런 아버지들에 관한 얘기가, 소설에서는 가령 김소진의 작품에서 다루어진 바 있지만, 영화에서는 별로 그려지지 않은 것이 문제 같다. 마초 문화를 혐오하는 듯하지만, 결국 그 세계에서 살아왔고 또한 살아남은(survival game?), 그래서 그 문화를 얼핏 동경하는 듯한, 나나 두 감독보다 반 세대 위의 여러 감독들의 영화가 그래서 나는 못마땅하다. 아버지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과 아직도 화해 못해서, 그러니까 우리 내부의 어떤 결핍과 아직도 화해하지 않아서 생기는, 아버지에 대한 이상한 집착이 그들의 영화에는 남아 있다. 나는 그런 게 불편하고,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가끔은 화가 난다.


   
이 시점에서 얼굴이 뽀얗던 민감독의 조교(?)라는 분이 털어놓은 얘기를 들어보는 것이 필요한 듯싶다. “[공형석 선생은] 어른이 되지 못한 어른이다. 그런 어른이 그려져서 이 영화가 맘에 들었다. 『버스 정류장』이란 영화에도 비슷한 인물이 나오는데, 그것은 좀 아니라고 생각했다. 어쨌든 그 국어 선생[공형석]이 예전에는 그립고 공감도 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그렇게는 못 살겠다. 지금은 부정하고 싶다.”
   


   
이 시점에서 얼굴이 뽀얗던 민감독의 조교(?)라는 분이 털어놓은 얘기를 들어보는 것이 필요한 듯싶다. “[공형석 선생은] 어른이 되지 못한 어른이다. 그런 어른이 그려져서 이 영화가 맘에 들었다. 『버스 정류장』이란 영화에도 비슷한 인물이 나오는데, 그것은 좀 아니라고 생각했다. 어쨌든 그 국어 선생[공형석]이 예전에는 그립고 공감도 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그렇게는 못 살겠다. 지금은 부정하고 싶다.”
   

이로써 김감독도 흉금을 털어놓을 그런 분위기가 됐는데, 그는 자꾸 머뭇거렸다. 그를 머뭇거리게 하는 그게 뭔지는 짐작하기 어려웠다.

 

인터뷰 내내 우리의 대화 공간에는 묘한 긴장이 서려 있었다.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를 여고생, 10대 여성에 관한 얘기로 보려는 일반적인 시각과, 내가 2절에서 누누이 강조했던 것처럼 두 감독의 자기 얘기로 보려는 나의 시각이 충돌해서 빚어낸 긴장이었다. 아마 그 접점에 공형석 선생이 있을 것이다. 그는 어른이지만 어른이 아니고, 그래서 효신이 죽는 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인물이다. 김태용 감독의 분신이나 다를 바 없다고 민감독은 말했지만, 그럼에도 이 인물은성장통통과제의를 겪고서 살아남은 두 감독과는 많이 다른 인물이다.


 

작위적인 냄새도 약간 풍기는, 그래서 두 감독이 아주 솔직하지는 못했다는 생각까지 들었던 이 인물이 어떤 식으로든 좀 더 살았으면(either/or를 내장한 중의법이다),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는 더 훌륭한 영화가 됐을 거라는뜬금없는생각도 해본다. ? 사람은 그런 정도의 이유로 자살하지 않기 때문이다. 혹은, 그런 정도의 이유로도 충분히 자살할 수 있지만, 자살에 이르기까지의 심리적 밀도가 약하게 드러났다고나 할까. (3) 민감독은죽기 직전에 죽을까 말까 고민하는 대신, 하루동안 사람들에게 이해받지 못하고, 지원에게 따귀까지 맞는 그런 고통스런 과정을 거쳐서 담담하게 죽음을 택하는 인물, 미친개가 아니면 정의로운 전교조 선생이라는 학교 교사의 전형적인 캐릭터에서 벗어난 인물, 선생들 사이에서 잘 못 어울리고, 사랑스런 여학생에게 매달리지만 여학생은 자길 못 받아들이는, 그런 인간적인, 고민하는 선생이라고 말했지만, 두 감독은 다만 자기 내부에도 존재하는 그런 나약한 부분을 다소 작위적으로 드러내서 자신들의 강함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발상은 약간 위험해 보인다. 세상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정형화된 모습의 어른이 되거나, 아니면 죽어야 한다는 발상이 약간 도식적이라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좀 더 새로운 어른 상이 필요할 게 아닐까? 체념을 기조로 한남성적 성숙이라는 고전적인 강박관념에서 벗어난 인물로서


  

어쨌든 이제 우리는 이 어른답지 못한 어른이 짝사랑했던(?) 효신이라는 아주 희한한 인물에 대해 얘기할 때가 되었다. “어느 인터뷰에서 보니까, 원래 시나리오에는 효신이 죽고 싶어하는 이유가 설정돼 있었는데, 최종 작품에서는 그런 부분 다 잘라내고 드러내지 않았다고 하더라. 효신은 왜 죽고 싶어하나, 라는 일반 관객의 질문이 나올 법하다. 나는 약간 거꾸로 생각했는데, 효신이 정말 고민했던 것은 살 이유가 없다는 게 아니었을까? 시은에 대한 집착은 살고자 하는 어떤 이유, 혹은 핑계를 하나 만들어놓으려는 시도일 뿐이었고

.” 

   

민감독이 대답했다

.
영화를 시작할 때, ‘한국에서 10대 여성이 살아간다는 것화두를 사용한 것은 전편과 달라지는 지점, 입시 고민 말고, 입시와 무관하게 10대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보고 싶어서였다. 실제로 자살을 시도했던, 그런 드라마틱한 삶을 살았던 여자애들 말이다. 우리는 끝내 이해하지 못했지만, 입시나 부모 이해 없음이나 왕따 등 기사에서 일반적으로 다뤄지는 그런 이유가 아닌 다른 것, 그것을 끝까지 추구해서 담고 싶었다.” 

  

“10대 얘기를 계속 다루고 싶다. 죽은 친구가 하나 있었다. 3때 옆반에서 한 친구가 목메달고 죽었다. 3일 지나고 잊었다. 학교에서는 검은 띠 다는 사람 퇴학시키겠다고 했다. 아무도 추모를 하지 못했다. 언급조차 하지 못했다. 학교에 도서관이 있었다. 도서 대출증 같은 게 있고, 거의 전교생이 3년에 한 권도 안 빌렸는데. 그 애만 도서 대출 리스트를 두 번 갈아치웠다. 독서상 받았다. 상 받을 때 한 번 봤다. 책을 많이 읽는 아이구나, 그런 생각을 했었다. 유서는 공개되지 않았고, 그 친구의 심정을 알 수 없었다. 반 선생이랑 싸우고 며칠 있다 죽은 건데…, 자기 죽음이 공허하게 망각될 줄 알았으면, 슬퍼했을 거다. 효신이 내 죽음이 어떻게 기억될까라고 말하고,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해달라로 부제를 단 것은…, 사실 그 [죽음의] 의미는 모르겠지만 죽었다는 그 사실만은 기억해야 한다는…, 내 후회나 가책이 반영된 거다. 그런 모티프들이, 기억들이 아직 내 안에 많다….”

사실 이것은 내 질문에 대한 답이 아니었다. 두 감독은 내 질문을생까고있었다. 그런데 인터뷰가 한창 진행된 후에 내가 던진 질문에 대한 답을 간접적으로나마 얻을 수 있었다. 이 영화의 연장선상에서 10대를 다루는 작품을 더 할 생각이 있냐는 OO의 질문에 대해 민감독은 이렇게 얘기했다.

 

 

이 영화에서 최초의 장면은 효신이 국어시간에 즉흥시(4)를 읊는 장면이다. 효신이 시를 다 읊어갈 무렵, 맨 뒷자리에서 엎드려 있던 시은이 고개를 드는 바로 그 장면이다. 칠판에는시는 自由다고 큼지막하게 적혀 있다. 예상했던 대로 이 시를 쓴 장본인은 민감독이었다. 여기서진실은 도대체 뭘 뜻하냐고 묻는 것은 우문일 것이다. 나는 이 장면을 처음 볼 때 현기증을 느꼈다. 발밑이 갑자기 꺼지는 듯한 느낌. 이런 묘한 시를 읊는 효신은 이상한 소리를 듣는 아이고, 시은은 잘 못 듣는 아이다. “사회성이 좋으려면 잘 들어야 한다는 김감독의 말에 따르면, 둘은 사회성 제로의 캐릭터다. 그래도 시은이는 사회에 남으려고 하지만, 효신은 그것을 막무가내로 무시한다. 이유는? 효신이 죽은 이유를 알 수 없듯이, 민감독의 고교 때 친구가 죽은 이유를 알 수 없듯이, 알 수 없다고 말해야 하는 게 아닐까. 어쩐지 나는 (적어도 민감독에게는) 알지 못할 이유로 스스로 생을 마감한 민감독의 고교 때 친구가 남긴 외상을 치유하려는 데 이 영화의 기본 모티프가 있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를 중도에 포기하기(너무 급박하게 만들어야 했기에)로 두 감독과 제작자 사이에 얘기가 모두 끝난 상황에서, 갑자기 제작자에게 전화를 걸어시나리오를 고쳐서 14일 안에 영화를 완성하겠다는 말을 불쑥 꺼낸 데는 민감독의 그런 강박이 담겨 있지 않았을까 추측한다(김감독은 민감독이 이런 전화를 할 것을 전혀 예상치 못했다고 한다).

 

내가 말했다. “이상한 시를 읊은 효신에게 호감을 느끼고 먼저 다가선 것은 시은이다. 둘이 친해진 다음 음악실에서 효신이 피아노를 치다가 줄을 끊는다.” 민감독이 대답했다. “일차적인 상징이다. 사운드에 관심이 많았다. 사운드가 내러티브가 될 거라고 생각해서 청각을 강조했다. 시나리오 쓰면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거나 갑자기 소리가 안 들린 적이 있었다. 듣지 못하는 상황에 처하면…, 세상이 완전히 다르다. 남들은 못 듣는 이야기 듣는다, 남들은 못 보는 이야기를 듣고 관찰한다. (피아노 줄을 끊는 장면에서는) 선생이 시은에게 노래를 시키는 그런 상황에 대해 효신이가 반항하는, 시은이가 당한 수모와 모멸, 이해받지 못하는 현실을…, 그걸 복수하는 의미를 주려고 했다. 피아노로 상징되는 억압들. 이런[피아노]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공명이 중요하다. 다른 소리들…, 그 때부터 둘은 텔레페시가 통한다. 어떤 제의(ritual)를 생각했다. 종이를 태우거나 인형을 찌르듯이…, 피아노 줄을 끊는 게 어떨까…, 그 때 처음 텔레파시를 보내는….” 


 

프롤로그 장면에서 효신은 물(양수자궁)로 회귀하고 시은은 물 밖으로 나온다. 시은이 빠져 나온 그곳수영장자궁을 시은과 효신은 깨끗하게 청소한다. 시은이 구해준다며 던진 튜브는 효신의 몸을 때린다. 시은이는 삶을 택했고, 효신은 그러지 않았다. ‘나쁜 것과 더 나쁜 것사이에서 효신은 더 나쁜 것을 택했다. 그래서 시은은너는 참 나쁜 애야라고 말하는데, 문제는 효신이 왜 그 길을 택했는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아이들에게 왕따를 당해서라고? 글쎄, 효신은 오히려자발적 왕따가 아니었나? 왕따임을 부끄러워하기는 커녕, 자신이 듣는 것을 듣지 못하는 다른 아이들을 무시했다. “효신이랑 시은이로 크게 구분해서 보자면, 시은이는 효신이가 맞는 말 하고, ‘내가 너랑 안 창피하다는 식으로 말하지만, 난 그렇게 못하는데 자꾸 그렇게 하자니까. 넌 나쁜 애야. 내가 너한테 상처줄 수밖에 없는 그런 애라고 말한다(민감독).” “나쁘다고 한 가장 큰 이유는 효신이가 죽었기 때문이다. 자기를 자꾸 어느 한쪽으로 밀어서 너한테 상처를 주는 아이로 밀어서 넌 나쁘다고(김감독).”

 

 

 

정말로시가 自由라면, 그리고보편적 자유의 유일한 행위가 죽음, 어떠한 내적 의미나 충만도 없는 죽음(헤겔)”이라면, 이상한 시를 읊는 효신이 바로 그 자유, 어떤 의미도 없는 그 죽음으로 몸을 던진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 이상한 것은 오히려 이 행위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려는 살아남은 우리들이 아닐까. 효신은 시은에게다시 시작하자고 말하고, 시은은 효신에게네가 창피하다고 말한다. 이 어긋남, 이 배반으로 효신이 자살한 것이라고 말하면, 모든 의문은 말끔하게 풀린다. 하지만, 신체검사날 아침부터 효신은 시은에게오늘은 새로 [다른 세상에서] 태어나는 날이라고 말한다. “효신은동반자살을 생각하고 있었다는 민감독의 말을 흘려듣지 않는다면, 우리는 계속해서 효신이 죽은 이유를 모른다고 말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부정성의 심연이다. 인간이 일상 생활의 닫힌 회로에 익사하지 않으려면, 즉 그들의 삶이 정초하고 있는 부정성의 심연을 그들에게 환기시키기 위해서는 전쟁이 필요하다는 헤겔의 말을 농담으로만 듣지 않는다면, 효신은 바로 그 부정성의 심연을 본 인물이라고 추정해야 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전반성적인 현실(pre-reflexive reality)이 실은 근본적인 우연성에 기반한다는 무서운 사실을 알아버린 인물이라고 가정해야 한다. 그리고 영화에서 이 부정성의 심연을 환기하는 것이 눈, 귀신의 눈이 아닐까. 내가 줄곧 이 영화는 동성애와 성장의 코드로만 읽을 수 없다고 말하는 또 하나의 이유가 바로 이 눈에 있다. 그렇다면,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란 바로 이 눈을 기억하라는 말에 다름아닐 터다.

4. 귀신의 눈, , 기타, 페이드 아웃

 

나는 떠듬거리며 말했다.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는 보통 성장영화하고는 다른 것 같다. 잊을 만하면 전화온다고 했는데, 평생 그럴지도 모른다. 저주가 아니라, 영화에 대한 최상의 찬사이다. 일상적으로 삶을 살아가는 우리는 현실이 안정돼 있다고 생각하고 싶어하지만, 현실을 떠받치는 지반은 사소한 계기로도 쉬이 무너질 수 있다. 귀신의 시점으로 찍은 장면에서 그런 것을 느낄 수 있다.”

 

 

수영장 청소 장면에서 효신은 시은에게눈부처’(4)가 뭔지 아냐고 묻고는 자신의 눈을 들여다보라고 말한다. “나밖에 없어라고 시은은 말한다. “한창 얘기를 많이 했다. 아주 작은 모티프 하나라도 잡으면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모티프로 곳곳에 스며들도록 했다. 눈이랑 물, 동물 등…. 처음 효신이가 유혹하는 장면에서, 자기한테 가까이 다가오게 오고, 내 눈에 비친 네가 바로 눈부처란 거야…, 이렇게 말하고 싶었던 거다(민감독).” 물론 시은이 들여다보는 효신의 눈 역시 무언가를 보고 있다. 영화에서는 시은만이 효신의 눈을 들여다보고 있지만, 실제로는 효신도 시은의 눈을 들여다본다고 말해야 한다. 사랑하는 연인이 서로의 눈을 들여다볼 때, 그리고 거기서 오직 자기 모습만을 발견할 때, 그러니까 시선 주고받음의 완벽한 폐쇄 회로가 이루어질 때, 그 때 두 사람은 자신의 존재(what one is)로써 큰타자의 구성적 공백, 다시 말해 부정성의 심연을 메우는 자살적 행위이행(passage ? l’acte)에 다가선 것이다. 처음부터 효신이 원했던 것이동반자살이었다는 말은 바로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터인데, 의미심장하게도 작년에 내한한 지젝은 첫 강연에서진하고 돈독한 인격적(성적) 관계를 유지하는 유일한 길은 한 쌍의 연인이 서로의 눈을 들여다 보면서 주변의 세계를 잊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서로 손을 잡고 함께 바깥으로 눈을 돌려 어떤 제3의 지점(두 사람이 함께 싸우고 함께 참여하는 대의)를 바라보는 데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교환일기를 쓰기로 한 후에 멍하니 서 있는 시은과 달리 효신은 환성을 지르며 수영장자궁을 뛰어다닌다. 여전히주변의 세계를 잊을 수 없었던 시은과 달리 효신은 그제서야 마음껏 기뻐한다. 김감독이 말한절절한 관계가 정작 의미하는 것은 바로 이것일 것이다. 문제는 이것이 불가능한금지된 관계라는 점이다. 불가능하고 금지된 것을 원하는 자는 결국 죽을 수밖에 없고, 그래서 효신은 죽어야 했지만, 여기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두 사람이 함께 싸우고 함께 참여하는 대의가 부재한 상황에서는 그것만이 어떤 유일한 탈출구인 양 (환영적으로) 인지될 가능성이 많다는 점이다.

 

이 영화가 나온 1999년은 송능한 감독의 실패작 ?세기말?이 만들어진 바로 그 해이다. 결국은 해프닝으로 끝난 Y2K 소동처럼 『세기말』정서란 사람들의 불안한 심리가 만들어낸 정체불명의 호들갑에 불과했던 것이라도, 세기가 바뀌는 바로 그 시점에서 나온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에 그런 불안감이 10대 여성의 이야기에 투영돼서 표명된 것은 전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앞서아버지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라캉의 말을 언급했거니와, “두 사람이 함께 싸우고 함께 참여하는 대의야말로 하나의 판본(p?re-version)으로서의 아버지, 우리 욕망의 심연을 가리는 판타지로서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다면, 바로 그런 아버지의 부재(“역사는 끝났다는 후쿠야마의 선언으로 특징되는 모든이데올로기 종언의 외침들)로 야기된 불안감이 두 감독의 의식 저변에 깔려 있다고 해도 무방하리라. 그러므로 우리에게 남은 유일한 길은, 그런 아버지(공적 대의)가 부재한다는 무서운 사실, 혹은 그런 아버지가 하나의 우연한 판본에 불과하다는 무서운 사실에서 뒷걸음치며 절망(자살적 행위이행)에 이르거나 모든 것은 허구에 불과하다는 냉소주의로 전락하지 않으면서도 새로운 대의를 찾아 나서는 데 있을 것이다.

 

여기에는 물론 그 아버지의 부재를 담담하게 응시하고 수용할 줄 아는 용기가 필요할 것이다. 성숙 혹은 성장이란 바로 이 용기를 가리키는 것이 아닐까. 이런 맥락에서 이 용기란 결국 효신의 눈, 귀신의 눈을 자기 내부에 포용할 수 있는 용기일 터다.

 

옥상에서 떨어져 죽은 효신은 눈을 치켜 뜨고 있다. 민아가 열어 본 사물함에서도 마찬가지다. 물론 이 원한 가득한 귀신의 눈은 공포영화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모습이지만, 이 영화에서는 우리(관객)가 귀신의 눈을 바라보도록 장면을 구성했을 뿐 아니라, 귀신의 눈 자체가 카메라의 시점 역할을 할 때가 있다. 이건 이상한 경험이다. 원한 가득한 귀신의 눈을 제3자의 위치에서 바라볼 때가 아니라, 그 귀신의 눈 자체가 우리의 시점 역할을 할 때, 현실은 더욱 낯설고 기괴하게 보인다. , 치켜 뜬 효신의 눈이 어디서나 우리를 바라볼 뿐 아니라, 우리 자신이 그런 효신의 눈에 비친(매개된) 상으로 현실을 본다는 것(마지막 혼돈 장면에서 두드러진다). 귀신의 눈으로 현실을 본다고 생각해보라. 소름이 끼치지 않는가? 현실의 근본적인 우연성(낯섬, 기괴함)을 환기한다는 점에서. 이 경우는 죽은 자의 눈을 감겨도 소용이 없다. 그 눈 자체가 우리 내부에 들어와 있으므로. 죽은 자의 눈이 우리 내부에 들어와 있다는 사실을 회피하지 않을 때, 그 때 우리는 성장했다고 말할 수 있을 텐데, 효신의 눈을 감기지 못하는 상황은 영화 막판에 연안이 케익을 집어던지는 장면에서 극화된다. 김감독은 이렇게 얘기했다.

 

“전체적으로 영화는 비관적이다. 생일 파티 장면에서 연안은 케익을 던진다. 우리 모두를 대변하는 느낌을 주는 민아가 나레이터를 맡았다…. 민아의 환상인지 감독의 환상인지는 모르겠지만…, 모두가 진혼곡을 불러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개인의 진정성이 집단의 비열함에 진다고 생각하기에…, 민아가 우리 모두를 대변해주는 듯하지만 그걸로 해결 안 된다고…(김감독).”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는 이상한 소리를 듣는 아이, 알 수 없는 이유로 죽은 아이에 대한 애가(哀歌)이지만, 공동체는 애도를 성공적으로 수행하지 못한다. 공동체가 사라진 시대에서는 이것이 정직한 방식일 것이다. 현실의 근본적인 우연성을 환기하는 귀신의 눈은 이미 우리의 시점을 점유하고 있다. 아무리 죽은 자의 눈을 감기려 해도 소용이 없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이 영화가 주는 가장 공포스러운 전언이 아닐까. 내가 지금까지 서투르게 말한 내용을 두 감독이 모두 동의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어쩌면 나 역시도감독은 빠질 수밖에 없는그런 얘기를 떠들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이 영화를 10대 여성, 혹은 이미 지나가버린 어린 시절의 어떤 혼돈에 관한 얘기로 요약?정리하는 일반적인 독법에 항의하고 싶었다. 40대 가장(혹은 어머니)이 빈번하게 자살하는 우리 시대의 불행이 순전히 생활고에만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삶에 대한 희망이 사라졌기 때문이라는 내 나름의 판단을 강조하고 싶었다. “잘 살아보세라는 담론조차 사라진 우리 시대의 어떤 부재에 관한 알레고리로 이 영화를 읽고 싶었던 것이다.

 

 이 영화에는 관객이 읽어주길 바라는 무수한 상징이 있다. 두 감독은 정말 치밀하게 곳곳에 그런 상징의 숲을 만들어놓았다. , , , 거북이, 피아노, 우유, 신체검사, 사소한 대화, 일기장에 적힌 문구, 심지어 휴대폰 벨소리까지. 이런 무수한 상징에 대한 해석은 이 글의 몫이 아닐 것이다. 나는 다만싱징적인 혹은 상징화하는 사고양식들이 작품에 존재한다는 사실은 언제나 대상의 직접적인 의미의 상실을 나타낸다는 프레드릭 제임슨의 말을 떠올렸다. 이런 점에서 상징법의 과잉은 결코 두 감독만의 책임이 아니다. 세상과 삶을 치열하고 정직하게 바라보려고 했던 두 젊은 감독의 열정을 탓할 수야 없지 않은가.

 

그래서 이 영화가눈에 띄게 남겨준 건 5년의 실업이다(김감독)”는 말이 안타깝게 들린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알겠습니다하면서도, 내용적으로는 놓치고 싶지 않은 건 놓치지 않는(민감독)” 작가다운 고집이 어쩌면 두 감독을 5년 간 실업 상태로 방치한 요인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 글에서 나는 인터뷰를 빌미삼아 어줍잖은 작가론 흉내를 내보았지만, 사실 이런 글은 쓰여지지 말아야 했다. 아니, 너무 일찍 쓰여진 것이다. 김감독은 더 많은 말을 하고 싶어했지만, 어쩌면 지금쯤은 너무 많은 말을 했다고 후회할지도 모른다. 세상에 대고 무언가 할 말이 있다면, 그들은 영화를 통해서 해야 하기 때문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선지자 존 바스는『보르헤스와 나』라는 글에서 제임스 조이스, 프란츠 카프카, D. H. 로렌스, 버지니아 울프 등에게 수여되지 않은 노벨상이 토마스 만, Y. B. 예이츠, 윌리엄 포크너,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께스 등에게 주어졌기에 그나마 괜찮은 상으로 남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 말을 원용해서 약간의 과장을 무릅쓰고 말한다면, 나는 두 감독이 5년 간 실업 상태에 놓인 것은 그들의 불명예가 아니라 한국 영화계의 불명예라는 말까지 하고 싶다. 인터뷰 중간에뜬금없이던진그래도 5년 동안 영화를 찍지 못한 경험이 쓴 약이 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두 감독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했지만, 내게 무슨 억하심정이 있어서, 두 감독의 마음을 할퀴고 싶은 마음으로 그런 짓궂은 질문을 던진 것은 아니었다. 촬영 기간 내내 둘이서만 소곤소곤 얘기를 주고받느라 스탭들이 소외돼 있었다는 말이 사실이라면, 아마도 그 5년 간의 실업은 그런 아마추어리즘을 극복하는쓴 약이 되었을 것이라는 내심을 전하고 싶었을 뿐이다. 10대와 성장을 다루는 영화를 더 찍고 싶든 그렇지 않든, 나는 벌써부터 지독한성장통을 앓고통과제의를 겪어가며 성숙한 그들의 다음 영화(둘이 함께 찍든, 따로 찍든)를 기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인터뷰에서 나는 그들이 10대 여성 이야기를 다 큰 어른의 입장에서 들여다본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성장통을 앓고 통과제의를 겪어가며 만든 영화라는 점을 확인하고 싶었다. 그것을 어느 정도 확인한 지금, 내가 할 일이라곤 한국 영화판에 대고 그들에게 다시 메가폰을 쥐어주라는 말을 떠드는 것밖에 없는 듯하다. 연안의 카메라에 얼굴을 가득 들이밀며 결국 그것을 빼앗아가는 생물 선생처럼 더 이상 이 두 감독에게서 카메라를 빼앗지 말라는 말을 떠드는 것밖에 없는 것이다. 이것만이 김감독의 파토스와 민감독의 치밀함(7)이 결합하여 탄생한 이뜬금없는작품과 그 안에서 죽은 효신이에게 내가 갖춰야 할 마지막 예의가 아닐까 싶다.

 

 

 

그러므로, 두 젊은 감독에게 메가폰을 허()하라!

 

 

 

 

 

3) 별 이유 없이 죽는 인물은 효신이 하나로 족했다는 생각이다.

 

4) “아무도 없다. 아무도 있다. 그러나 없다. 아닌가 있나? 없는 것 같아. 아니야 있어. 없다고 했지? 그것은 진실. 진실은 있다. 있다는 거짓. 거짓은 있다. 있다는 진실. 아무도 몰라. 아무도 없어. 그래서 몰라. 아무도 있어. 그래도 몰라. 정답은 있다. 아니다 없다. 있다는 진실. 없다는 진실. 없다는 거짓. 있다는 거짓. 진실은 거짓. 거짓은 진실. 나는야 몰라. 아무도 나야. 나는야 아무다. 누구도 나도 나는야 누구도 될 수 있다. 진실이 거짓이 되듯….”

 

5) 정호승의 시 『눈부처』에서 따온 것이다. “내 그대 그리운 눈부처 되리/ 그대 눈동자 푸른 하늘가/ 잎새들 지고 산새들 잠든/ 그대 눈동자 들길 밖으로/ 내 그대 일평생 눈부처 되리/ 그대는 이 세상/ 그 누구 곁에도 있지 못하고/ 오늘도 마음의 길을 걸으며 슬퍼하노니/ 그대 눈동자 어두운 골목/ 바람이 불고 저녁별 뜰 때/ 내 그대 일평생 눈부처 되리

 

6) 민감독은 인터뷰가 끝나는 마당에우리 이제 인터뷰 같은 것 하지 말자고 말했다.

 

 

7) 이런 점에서 보면, 외모와 상관 없이 김감독이 더 소년답다고 말해야 옳을지 모른다. 물론, 철없기로는 두 감독에 비할 바 없이 더 철없는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것도 우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