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록+김행숙

김록 시인은 1968년 서울에서 태어나, 1998년 「시작, 끝」 외 4편으로 『작가세계』를 통해 등단했다. 건국대학교 가정관리학과를 졸업하였고, 시집으로 『광기의 다이아몬드』(열림원, 2003)가 있다.


김행숙 시인은 1970년 서울에서 태어나, 1999년 「무인통신」 외 4편으로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했다. 고려대학교 국어교육과를 졸업한 후, 같은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시집으로 『사춘기』(문학과지성사, 2003)가 있다.


박판식 시인은 1973년 경남 함양에서 태어나, 2001년 「화남풍경」 외 5편으로『동서문학』을 통해 등단했다.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한 후, 같은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6월 중에 천년의시작(출)에서 시집을 출간할 예정이다.


채상우 시인은 1973년 경북 영주에서 태어나, 2003년 「마늘 까는 여자」 외 4편으로 『천년의 시작』을 통해 등단했다.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한 후, 같은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1. 라는 웅웅거림, 혹은 침묵

 

 

 

비가 내리고 있었다. 늦겨울인데, 늦가을 오후처럼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있었다. 이런 날은 방에 틀어박혀 책을 읽거나 파전에 막걸리를 마셔야 하는 건데, 나는 감히, 마녀라고 불리는 그리고 귀신과 주저리주저리 이야기를 나눈다는 시인들을 만나러 가고 있었다. 대체 오늘 무슨 일이 벌어지려는 건지 비는 자꾸 내리고 내렸다. 2호선 홍대입구역에서 먼저 만난 시인은 김록 시인이었다. 그런데 어라, 김록 시인은 그저 평범한 얼굴이었다. 수수한 바바리 코트에 조금은 무심해 보이는 얼굴, 저 사람이 그 마녀란 말인가! 게다가 5분쯤 늦게 나타난 김행숙 시인은 늘씬한 키에 긴 생머리를 출렁거리며 생긋 웃기까지 하는 게 아닌가. 내가 혹시 헛것을 보고 있는 건 아닐까, 비가 와서 그런가, 비가 와서 말이다, 그래서 헛것을 보고 홀린 건 아닐까, 홀려서는 안된다, 뭐 이런 생각을 두서없이 하면서 퍼슨웹 사무실로 스윽 들어와 버렸다. 2시간 전쯤 미리 와 있던 박판식 시인이 말갛게 웃고 있었다. 그야 그랬다 치고 어쨌거나 인터뷰는 시작되었다.

 

 

 

채상우 : 김록 시인에게 먼저 물어볼 게 있는데요. 자서에 해당하는 「시집을 펴내며」를 보니까 이렇게 쓰여 있더군요. <2001년 봄에 내기로 했던 『광기의 다이아몬드』가 그때 과연 꼭 나왔어야 했을까? 지금은?>이라구요. 나남출판사에서 시집을 출간하기로 했다가 무산되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이런 글귀로 시집을 시작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 특별한 의미는 없어요. 책을 낸다는 일에 회의적이라서요. 어차피 안 내도 그만, 내도 그만이라는 거죠.

 

 

 

첫마디부터 김록 시인은 내 예상과는 전혀 다른 답변을 툭 던졌다. 정말이지 툭, 이었다. 그러고도 김록 시인은 세상잡사에는 관심 없다는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게다가 그녀의 목소리는 너무 작고 느렸다. 인터뷰 후반부에 가서 나는 기어코 김록 시인에게 말이 왜 그렇게 느리고 작냐고, 그래서 오해가 많았겠다고 말하고야 말았다. 그야 그렇다치고.

 

 

 

채상우 : 김록 시인이나 김행숙 시인 두 분 다 질문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은 시인들입니다. 두 분의 시를 보면 심지어 질문 자체를 이미 봉쇄하고 있다는 느낌마저 들어요. 예컨대 김록 시인은 <그대들은 나더러 왜 대답을 안 하느냐고 자꾸 그러는데 나는 정말이지, 할 말을 다 했다.>(「잘못 지은 시」)라고 적어 놓았더라구요. 그리고 김행숙 시인은 시집 맨앞에 「조각공원」이라는 시를 선뜻 배치해 두었던데, 그 시를 보면 내 시집 안에서 구체적인 혹은 특별한 의미를 찾아내려고 헛수고하지 말라는 경고가 숨어 있는 듯했어요. 그래서 제가 먼저 말을 하기보다 김록 시인과 김행숙 시인이 서로 시집을 어떻게 읽었는지 소감을 들었으면 하는데, 김록 시인 얘기부터 들어볼까요.

 

비둘기 한 마리가 발가락 사이에 부리를 넣었다 뺐다 넣었다를 시계추같이 반복한다. 그의 발가락 옆에서 「무제」라는 그의 이름을 보았다. 끄덕끄덕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잔디를 손바닥으로 쓸면서 한 여자가 그의 곁에 앉아 있었다. 그녀의 손바닥이 느리게 움직일 때마다 풀들은 순순히 몸의 방향을 바꿨다. 그녀가 하는 생각을 알 수 없었다.

―김행숙, 「조각공원」 전문

 

 

 

   : 지금 이 자리가 좌담 형식의 자리인가요? 그러면 저는 참석할 자격이 안 되는데. 전 『사춘기』를 읽고 와야 하는 건지도 몰랐어요.

 

 

 

사실 이번 인터뷰가 인터뷰였는지 좌담이었는지 아니면 말 그대로 중구난방이었는지 지금 생각해봐도 모르겠다. 애초의 기획은 단독 인터뷰였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김록 시인과 김행숙 시인 두 시인을 함께 만나게 되었다. 그래서 좌담 비슷한 꼴이 되어버렸다. 그야 그렇게 되었다 치고 어쨌든 하기로 한 인터뷰인데 그냥 맥주나 마실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그래서 서로 편하게 얘기해보자,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면 혹시 예상치 못한 훌륭한 인터뷰도 되지 않겠느냐, 이런 궁색한 말까지 하게 되었다. 그런데 웬걸, 김록 시인은 별 생각 없이 나왔다고 또 말했고 박판식 시인은 오히려 그게 더 좋은 거 아니냐고 맞장구를 쳤다. 그래선가, 대체 언제 그칠지 모르는 늦겨울 비처럼 대화가 주룩주룩 흘러내렸다. 어쨌거나.

 

 

 

   : 그런데요, 제가 만약 읽고 와야만 하는 것이었어도 뭘 아는 체하기 위해서는 그러지 않았을 거에요. 전 국내 시인들의 시를 거의 읽지 않아요. 주변 사람들이 좀 읽으라고 독촉할 때도 있는데, 그렇게 내키지가 않더라고요.

 

 

 

박판식 : 국내 시인들의 영향을 덜 받기 위해선가요?

 

 

 

   : 아뇨. 특별히 그렇지도 않아요.

 

 

 

박판식 : 국내 시인들의 시에서는 큰 매력을 못 느낀다는 의미인가요?

 

 

 

   : 그렇다고 볼 수 있죠.

 

 

 

박판식 : 전 이 시집(김록 시인의 『광기의 다이아몬드』)을 읽는 동안 보들레르의 『악의 꽃』과 마야꼬프스끼1)의 『광기의 에메랄드』가 떠올랐어요. 그 외 외국 시인들의 이름도 많이 떠올랐구요. 그래서 김록 시인의 주된 독서 체험이 외국 시인들 쪽이 아닐까, 그리고 김록 시인의 시의 스승이라 할 수 있는 이들도 외국 시인들 중에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했거든요. 그 외에도 많은 예술가들이 있을 거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 음악…….

 

 

 

박판식 : 그런데 음악을 시화시킨다는 게 물리적으로.

 

 

 

   : 아니 저는 음악과 시의 연관성은 그렇게까지 생각하고 있지 않고요, 그냥 예술 장르 중에서 좋다고 생각해서요.

 

 

 

김행숙 : 그렇게 말을 하니까, 김록 시인의 시집을 읽다가 저는 김록 시인이 말에 대해 뭐랄까, 불순하지 않은 말, 상형 이전의 세계에 대한 그런 말에 관한 시적 비전을 견지하고 있는 시인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예술 장르 중에서 음악에 대해 가깝게 여긴다는 점도 뭔가 통하는 맥락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저 자신은 말에 대해서 불순한 편이거든요. 별로 믿지 않는 편이기도 하고. 불순함과 오염 자체를 존중한다고 할까요. 많은 목소리와 관계가 섞여 있는 말의 웅웅거림 혹은 지직거림을 드러내고 싶어요. 김록 시인은 저와는 달리 순수한 말, 말의 이데아, 잃어버린 말에 대한 열망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다른 한편으로 김록 시인은 세상의 모든 말들이 오염되어 있다거나 더럽혀져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싶기도 했구요.

 

 

 

채상우 : 저도 김록 시인의 시집을 읽으면서 비슷하게 생각했어요. 시집 제목인 <광기의 다이아몬드>도 심상치 않은 의미를 지니고 있어 보이구요. 김행숙 시인의 말처럼 김록 시인의 시에는 언어에 대한 특별한 의식이 있어 보이는데, 언어에 대해 특히 시어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말해주시겠어요.

 

   : 글쎄요, 새로운 언어에 대한 연구는 좀 하고 있는데. 이번 시집에 실린 시들은 1990년대 중반부터 쓴 시들이 대부분이에요. 2000년에 쓴 게 몇 개 있고요. 그런데 제가 무엇인가를 말하려고 하면 그 순간 모든 게 다 회의적으로 느껴져요. 언어에 대한 불신이라고 하기에는 적절치 않고, 글쎄요. 말하고자 하는 것은 분명히 있는데 말하고자 하는 것이 분명하면 할수록 말하기가 어려워요. 말하고자 하는 것을 어떻게 제대로 전달할 수 있을까 하는 회의를 언제나 하고 있어요. 그리고 전 2001년부터 국립국어연구원에서 일했는데, 그러다 보니까 언어에 대해 더 고민을 하게 됐어요. 기존의 언어가 아니라 치열하고 철저한 자기 언어를 새로 만들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죠. 그런데 그게 박남철 시인처럼 형식상의 파격이나 실험이 아니라 다른 무엇이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아직은 구체적으로 연구하지는 못했어요. 다만 한 가지 잡기는 했거든요. 음악처럼 나한테 다가오는 게 마임이라는 것을.

 

박판식 : 마임요?

 

   : .

 

채상우 : 마임과 음악 사이에는 공통적인 속성이 어느 정도 있겠죠. 처음부터 끝까지 물이 흘러가듯 계속해서 지속되는 순간 같은 것 말입니다. 그런데 아까 말할 때는 시와 음악이 별 상관없는 것 아니냐 이런 말을 했는데.

 

   : 시와 음악과 마임 사이에 꼭 관련이 있다는 말은 아니고요.

 

김행숙 : 몸과 언어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 꼭 그런 의미도 아니었는데요.

 

 

 

채상우 : 국립국어연구원에서 근무했다는 사실이 좀 의외군요. 김록 시인의 시를 읽고 전 김록 시인의 전공이 불문학이었지 않나 했습니다. 대학 때 전공이?

 

   : 전공은 가정관리학이었어요. , 직장 생활의 영향에 대해서는 미처 제대로 말하지 못했는데요. 저는 시를 쓴다는 것은 일단 절실해야 가능하다고 보는데, 직장 생활을 하면서 시쓰기를 병행하는 일은 도저히 불가능하더라고요. 두 가지 일을 하는 사람을 보면 이해가 안 돼요. 어떤 작업이더라도요. 한 가지 일에 매달려도 일이 될까 말까 한데 말이죠.

 

박판식 : 김행숙 시인도 비슷한 경우가 아닌가요? 약력을 보니까 국어교육과를 나왔던데, 일부러 교직 생활을 안 한 건가요?

 

김행숙 : 아뇨. 사실 능력이 안 돼서 못한 거에요.

 

채상우 : (김록 시인에게) 그럼 직장 생활을 하면서는 시를 쓰지 못했다는 말이군요.

 

   : 그렇죠. 작년(2003) 12 31일까지 3년 동안 직장 생활을 했는데, 공교롭게도 직장을 떠나면서 제 시집이 나왔어요.

 

 

 

채상우 : 그럼 2001년부터 직장을 다닌 거고, 그동안 시를 쓰지 않았다면, 이 시집에 실린 시들은 모두 나남출판사에서 내기로 했었던 원고들이었다는 말이 되는 거네요?

 

   : . 나남출판사에 원고가 간 뒤 저의 노력은 없었고 황현산 선생님, 김혜순 선생님, 김진수 선생님 힘이 컸습니다.

 

 

 

채상우 : 김행숙 시인은 문예진흥기금하고 대산…….

 

김행숙 : 문예진흥기금은 받지 않았어요. 동명이인이에요.

 

박판식 : 그럼 대산창작기금에 냈었던 시들을 중심으로 시집을 꾸린 건가요?

 

김행숙 : 아뇨. 대산에 냈었던 시들은 20편도 안 돼요.2)시집을 내기까지 시간이 많이 지났거든요. 얼결에 등단하고 나서 등단 이전 시들까지 묶어서 바로 보냈는데 어떻게 운이 좋았는지 대산창작기금을 받게 됐어요.

 

박판식 : 사소한 문제일 수도 있겠지만 등단 대표작이 시집 앞날개의 시인 소개 부분에 적힌 「뿔」이 아니라 다른 작품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요, 그동안 자의식이 변했다는 생각이 드는 게 등단할 때의 작품들은 약간 편안하고 서정적인 느낌이었는데 그 이후에 나온 시들은 실험적인 성격이 강해진 것으로 보이거든요. 의도적인 건가요?

 

김행숙 : 저는 실험시 자체가 이미 상투화되었다고 보는 쪽이에요. 이제는 더 이상 실험할 게 없다는 생각도 들구요. 새로운 영토에 깃발 꽂기 식의 아방가르드가 유효할 수 있는 시대는 아니라는 생각이에요. 그보다 시가 변했다면 그 이유는 문화의 지형 자체가 변했기 때문이라고 봐요. 지금도 시, 소설, 영화 등등이 새로운 문화적 지형도 위에서 배치를 바꾸고 있고 문학도 움직이고 있죠. 움직이는 대륙 위에서 문학도 움직이고 있다는 말이죠. 제 시가 혹시 낯설다면 그건 실험적이기 때문이라기보다는 대륙의 대이동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시적인 것 자체의 위치가 변하고 있으니까요.

 

 

 

채상우 : 좀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김행숙 : 다른 말로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아주 고리타분한 걸로 논문을 썼어요. 1920년대 동인지를 대상으로 박사학위논문을 썼는데.3)

 

 

 

채상우 : 요즘 많이들 쓰죠.

 

김행숙 : 그렇긴 하죠. 요즘 들어 1920년대에 대해 관심을 많이 가지는 이유가 근대를 다시 보자는 거잖아요, 근대의 내부로 들어가서 말이죠. 특히 1920년대 초기는 지금 우리가 지니고 있는 기본적인 감수성을 발견하고 창안해냈던 시기라고 할 수 있죠. 그러니까 <아 이게 문학이야, 이게 바로 문학적인 거야!>라는 의식이 형성되고 그것을 정리하기 시작한 때가 1920년대라는 말인데요. 제가 박사학위논문의 대상으로 1920년대를 삼은 이유는 제 언어를 미학적으로 침범하지 않는 그리고 제 언어가 견딜 수 있는 시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에요. 좀 비겁하긴 하지만 만약 제가 매혹을 느끼는 작가나 시기를 대상으로 논문을 쓴다면 제 시에 너무 많은 간섭이 가해질 거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여하튼 논문을 쓰기 위해 1920년대 당시의 잡지들을 읽으면서 제가 느꼈던 건 이런 거였어요. <, 난 이렇게는 쓰지 말아야지>, <난 죽어도 이렇게는 안 써>라고 말이죠. 일종의 낭만주의적인 포즈라고 할까, 고백, 상처에 대한 신비화 뭐 그런 것들이 지겹더라구요. 그리고 시가 일인칭 고백이라면 자신의 내면을 투명하게 드러내는 게 관건일 텐데, 그런데 그게 그렇게 싫더라구요. 그래선지 사실 1년 동안 거의 시를 쓰지 못했어요. 시를 쓰지 않았던 그 일 년이 시에 대해 전면적으로 다시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되었던 것 같아요. 이러다 영 시를 쓰지 못하게 되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까지 했어요.

 

 

 

채상우 : 김행숙 시인이 방금 한 얘기는 굳이 학위논문에 관한 것뿐만 아니라 자신의 문학적 태도라고 해야 하나, 문학적 자의식의 출발지점까지 알려주는 듯한데요, 사실 좀 의외군요. 특히 1920년대 시인들의 낭만주의적 경향에 대한 언급이 그런데요.

 

김행숙 : 꼭 끔찍했던 것만은 아니에요. 어떤 의미에서는 자유로워진 면도 있어요. 무엇보다 문학은 역사적인 산물이라는 점을 확실하게 느꼈어요. 문학은 본질적인 게 아니죠.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문학은 불과 백 년도 안 된 거에요. 그런 맥락에서 말하자면 지금 문학이 위기에 처해 있다거나 문학이 고사 상태라는 따위의 우울한 진단들은 사실 근대문학의 위기, 근대문학의 죽음에 대해 말하는 것에 지나지 않아요. 글쓰기 자체는 계속 있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근대문학의 테두리 안에서만 생각하고 시를 써왔던 거죠. 지금은 근대문학이 누렸던 특권, 가령 교양을 대변하는 것이라는 식의 특권의식은 거의 의미를 잃고 있는데, 논문을 쓰는 동안 그런 사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었어요.

 

2. <언니>들의 매혹

 

 

 

채상우 : 화제를 좀 돌려서 지금부터는 여성시에 관해 이야기해 보죠. 아마 여성적인 시쓰기의 본격적인 흐름은 1980년대 중반부터 찾을 수 있지 않나 싶은데, 김록 시인과 김행숙 시인의 바로 윗세대는 박서원 시인이나 김언희 시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동세대 여성 시인 가운데 단연 눈에 띄는 시인들로는 김선우 시인이나 조말선 시인이 기억나는데요, 그 시인들과 비교해서 자신의 시를 말한다면 어떤 변별력이 있을까요?

 

김행숙 : 저는 여성시에 대해 특별히 고민했던 적은 없어요. 대신 제 시에 꼬리표처럼 붙어 다녔던 건 그냥 독특하다는 얘기였죠.

 

 

 

채상우 : 김행숙 시인의 시에 대해서 말이죠?

 

김행숙 : 문학판에서 작동되는 단순한 이분법, 즉 전통서정시, 실험시 이렇게 두 계열로 나눈다면 전 실험시 혹은 모더니즘시 쪽에서 얘기되는 것 같아요. 저 자신의 의지와는 그닥 상관없이요. 그런데 그런 말 외에는 제 시가 어떤 특정 계보에 속해 있다거나 흐름에 동참하고 있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어요. 저는 여자 시인이든 남자 시인이든 성별 구분 없이 좋아하고 매력을 느끼는 시인들이 많아요.

 

 

 

채상우 : 예를 든다면요?

 

김행숙 : 어떤 특정 시인을 말하는 건 아니에요. 김록 시인의 시집을 읽다가도 그런 느낌을 받았는데, 뭐라 그럴까, 시인이 다른 시인에 대해 갖는 느낌이라 그럴까, 참 힘들겠구나라는 느낌 말이죠. 그러면서 감동을 받곤 해요 제가 시를 쓰지 않았다면 그렇게 감동을 받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어요. 어떤 열정이나 에너지가 느껴지면 정말 감동해요.

 

박판식 : 금방 김행숙 시인이 자신을 만약 전통서정시와 실험시 계열로 이분한다면 후자에 속한다고 말했는데.

 

김행숙 : 글쎄, 그렇게들 말하더라구요.

 

박판식 : 박서원 시인이나 김언희 시인, 조말선 시인도 그런 평가를 받고 있는데요. 그렇긴 하지만 김행숙 시인과 세 시인들 사이에는 차이가 있어요. 조심스럽게 말해야겠지만 김언희 시인을 비롯한 근래 여성 시인들의 시를 보면 가부장적 세계에 대한 반발의식, 저항의식이 분명하잖아요? 그에 반해 김행숙 시인의 시는 그런 대결 자체를 아예 하고 싶어하지 않는, 그러니까 그런 대결 자체가 너무 기계적이고 상투화된 고정관념에 지나지 않는 것 아니냐는 식의 비판적인 시각이 있는 듯한데요.

 

김행숙 : 그렇지는 않아요. 저는.

 

 

 

이때 갑자기 김록 시인이 <짝짝이, 짝짝이>라고 조용히 외쳤다. 나를 비롯한 세 명은 모두 황당한 표정으로 김록 시인을 바라보았는데 알고 보니 김록 시인의 실내화가 짝이 맞지 않았서였다. 김행숙 시인과 박판식 시인이 한참 대화를 나누는 동안 김록 시인은 퍼슨웹 사무실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는데, 인터뷰가 끝난 후 술자리에서 한 김록 시인의 말에 따르면 실은 인터뷰 분위기가 너무 딱딱해지는 듯해서 일부러 재미있게 하려고 그랬다는 것이다. 어쨌거나 김록 시인의 돌출적인 행동 때문에 빗소리까지 딱딱하게 들리던 인터뷰 자리가 발랄해지긴 했다. 박판식 시인도 그런 느낌이 굴뚝같았나 보다. 다음 첫마디가 <얘기가 좀 딱딱해질 것 같아서>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비는 이제 좀 천천히 내리기 시작했다.

 

 

 

박판식 : 얘기가 좀 딱딱해질 것 같아서 다른 얘기를 좀 해볼까 합니다. 두 시인의 시집을 읽으면서 재미있다고 생각한 게 뭐냐 하면 전통서정시든 실험시든 상관없이 두 시인 다 <사랑>이라는 단어를 무척 아낀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굳이 <사랑>이 나온 시를 찾아보니까 김록 시인은 두 편밖에 없고, 김행숙 시인은 한 편인가 그렇더라구요. 그런데 그 시마저도 사랑은 없다는 식이더라구요. 그에 비해 김록 시인은 시 자체는 상당히 실험적인 것처럼 보이는데도 막상 시를 찬찬히 읽어보면 다르더라구요. 시집 표사가 <흠모하는 당신에게 바칩니다>이던데, 그 문장부터 시작해서 시집 전체가 사랑에 대해 쓴 건 아닌가, 그러니까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대한 지속적인 추구가 아닌가 그런 느낌이 들었어요. 이런 점에서 두 시인이 다르다는 생각이 드는데, 사랑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들어보고 싶군요?

 

김행숙 : 저는 사랑보다는 우정에 관심이 많아요. 억압적이지 않은 유대감 같은 거 말이죠.

 

박판식 : 「지하 1F에 대해서」와 같은 시를 보면 김행숙 시인은 남성을 대상화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에 비해 김록 시인은 「관능 속의 멈춤」이라든지 여러 시를 통해 표면적으로는 사랑에 대한 불신 혹은 남성과 여성 간의 단절감을 표현하고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렇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래서 남성에 대해서, 특히 사랑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여기서는 네 개의 층을 볼 수 있다. 옥상은 쏟아질 듯한 산을 밀어내고 있다. 대성고등학교 건물 일층과 지층은 한남연립 마동이 가리고 있다.

지하에 대해서라면 한남연립 마동 베란다에서 욕망할 문제가 아니다. 나는 당신의 지하를 구경할 수 있는 베란다를 욕망한 때가 있었다. 거기서도 널어놓은 팬티는 잘 마르는가?

 

당신은 방학 중인가? 대성고등학교 남자애들은 방학 중이다. 빈 교실에 왜 커튼은 마스크처럼 입을 막는가? 당신은 정말 방학 중인가? 혹시?

마스크 뒤에서 사내애가 자위를 하고 있다. 나는 세상에 꼴리는 게 많아. 이유 따위는 없어. 입을 조금 열었지만 그는 불특정한 남자 고등학생일 뿐이었다. 커튼이 약간 구겨졌다가 괜찮아, 하면서 팽팽해졌다.

 

학교 옥상은 죽지 않고 병신이 될까 봐 무서운 곳이었다. 당신은 어디 있는가? 나는 갈 데까지 갔어도 당신의 지하를 구경할 수 있는 베란다는 욕망의 영역이다.

나는 저녁에 화분을 사러 나갈 것이다. 나는 베란다의 여자답게 꽂힐 것이다. 물 주러 오는 남자는 병신이다.

―김행숙, 「지하 1F에 대해서」전문

 

 

 

  : 지금 그 질문은 시 세계에 국한된 질문 같지는 않은데요. 그런데 저는 시를 쓰는 사람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시적 대상에 관해 특별한 경계를 두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무엇을 쓰면 좋겠다, 혹은 무엇을 쓰면 촌스럽겠다 이런 구분은 두지 않는다는 말이죠. 다만 제게 절박하다면 사랑이든 무엇이든 써야겠죠.

 

박판식 : 타인과의 소통이 가능하다고 보는지요? 물론 반드시 남성과 여성 사이의 소통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제 생각엔 시란 언어를 통해 언어를 뛰어넘는 작업이긴 하지만 그런 작업이 궁극적으로는 소통을 지향해야 한다고 보는데요.

 

  :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저는 고등학교 다닐 때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았어요.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도 스님들 면벽하는 것처럼 철저하게 <자신>만을 마주 대하며 지냈어요. 그렇다고 해서 작위적으로 바깥 세계에 자물쇠를 걸어 잠근 건 아니었고요. 그런데 참다운 소통의 문제를 끊임없이 생각하게 되면서도 전 제 자신과의 소통도 제대로 이루지 못한 듯해요. 지금 돌이켜볼 때 그런 상황은 언어와 사유, 사물과 세계 간의 관계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으로 확장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채상우 :「대화」라는 시가 방금 김록 시인이 말한 것과 관련이 있을 듯합니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순간이 온다/없는 순간이 온다>로 시작하는 시 말예요. 그런데 아까 김행숙 시인도 동일한 말을 했다는 생각이 드는데, 굳이 여성으로서의 시쓰기를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두 시인 다 여성적인 세계에 기반을 두고 여성들이 공유할 수 있는 세계를 면밀하게 구축하고 있지 않나 해서 말이죠.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순간이 온다

없는 순간이 온다

내 옆에 사람들이 누워 있다

가 버리는 순간이 온다

내 옆에 소리가 없다

내가 들은 것은 반쯤은 죽은 소리,

반쯤은 살아서 가 버렸다

 

일정한 형체가 없는 순간이 온다

쉬지 않는 시간이 열린다

내 옆에 부호(符號)들이 사라진다

다른 형태로 다시 기억된다

내 옆에 0세기가 있다

내가 아는 것은 짜임새 정도,

()이 다시 태어났다

―김록, 「대화」 전문

 

 

 

  : 저는 그런 걸 가장 싫어합니다. 예전에 어떤 이가 저더러 여류 시인이라는 표현을 썼더라고요. 물론 그 앞에 거창한 수식어가 있긴 했는데, 그래서 더욱 불편했어요. 왜 그런 분류법으로 시를 보는지 말예요. 물론 그렇다고 해서 제가 그런 일에 대해 딱히 반발할 만큼의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김행숙 : 전 어떤 의미에서는 제가 여성이라는 점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남성적인 것이 싫거든요. 지금 제가 말하는 여성 또는 남성이라는 어휘는 생물학적인 분류법에 따른 것이 아닙니다. 어쨌든 그런 의미에서 저는 제가 여자라는 점이 시를 쓰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해요. 이성복 시인의 시를 읽다가 이런 생각을 언뜻 했어요. 이성복의 초기 시들을 보면 <누이>라는 단어가 많이 나오잖아요. 이성복 시에 등장하는 <누이>는 남성에 의해 호명된 존재지 스스로 자신에 대해 말하는 존재는 아니죠. 일종의 누이 콤플렉스라고도 할 수 있겠는데, 이때 여성의 언어는 봉쇄되어 있다고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최근 이성복 시인의 시에선언니가 등장합니다. 이성복 시인은 잘 알고 있는 <누이>대신 잘 모르는 <언니>라는 세계에 대한 매혹을 드러내죠. <입이 없는 존재>’에 대한 매혹과 연관되어 있으리라고 생각해요.

 

 

 

채상우 : 제가 페미니즘에 관해 말할 밑천이 있나 싶긴 한데요, 1980년대 중반의 페미니즘은 전체변혁운동의 부문운동이었잖아요. 제 생각엔 그때 당시의 페미니즘 운동이 오히려 생산적이지 않았나 생각해요. 1990년대 들어서는 페미니즘과 관련된 여러 움직임들도 점차 남성적인 문법과 권력에 익숙해지지 않았나 하는 의심이 들어서예요. 김행숙 시인과 김록 시인의 작업은 그런 움직임들과는 다르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말인데, 저는 김행숙 시인이 이성적인 시인일 거라 짐작했더랬어요. 생각보다 근래의 문학 지형도를 꼼꼼히 읽고 있는 시인이 아닐까, 시적 전략이 예상보다 치밀한 시인이 아닐까 이렇게 말이죠.

 

박판식 : 조금 더 말하자면 여성적인 것과 남성적인 것, 이렇게 이분하는 사고방식뿐만 아니라 그런 사고방식에 내재하는 대결의식으로부터도 벗어난 시 작업을 하고 있지 않나 싶은데, 일종의 메타적인 작업이라고도 할 수 있겠죠. 그러니까 저는 김행숙 시인의 시를 남성적인 세계에 대한 대결의식만으로 쓰여진 시도 아니고, 지금까지 여성시라고 일컬어져 왔던 시쓰기에 대한 모종의 반발의식에 의한 시도 아니라고 봤어요. 남성적이니 여성적이니 따위의 이분법적 사고 자체로부터 자유롭고자 하는 시쓰기라는 말이죠. 사실 그런 이분법적인 사고방식은 이미 익숙해진 만큼 낡은 것이잖아요. 그런 낡은 사고의 틀로부터 비껴나가면서 새로운 세계를 구성하고자 하는 게 김행숙 시인과 김록 시인의 시가 아닌가 하는데요.

 

김행숙 :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만큼 중요한 일도 없겠죠. 그리고 제가 뭘 할 수 있을지 저도 사실은 모르는 일이구요. 글 쓰는 사람이 자신이 뭘 할 수 있을지 미리 알고 쓴다고는 생각지 않아요. 특별히 어떤 시적 지향점을 분명히 선택하고 시를 쓰는 건 아니라는 말이죠. 제 시집의 제목을 정할 때 주변에서 약간 우려하는 분들도 있었어요. <사춘기>가 너무 감상적이지 않냐 해서 말이죠. 그런데 제가 좀 고집을 부렸어요. 전 애들한테 관심이 많거든요.

3. 시인은 사춘기

 

 

 

채상우 : 어린 아이들 말인가요?

 

김행숙 : 어린애들도 물론. 특히 사춘기 아이들 말이죠.

 

 

 

채상우 : 열두 살에서 열네 살 사이의 아이들 말이죠.

 

 

 

기억할 것들이 생기지. 열두 살이 되면,

열네 살이 되면, 나뭇잎을 떨어뜨릴 만큼 깔깔깔 웃기도 했지만

―김행숙, 「소녀들사춘기 5」 부분

 

 

 

김행숙 : 그렇죠. 제가 건너왔던 사춘기에 비추어 보아도 영 낯선 사춘기를 살고 있는 아이들에 관심이 많았어요. 그 아이들에 끌렸다고 할 수 있겠죠. 저는 사춘기 때 일기 쓰고 편지 쓰면서 보냈어요. 그때 쓴 일기는 정말 자발적인 반성문이었다고 기억해요. 내가 누구인지에 대해 묻고 물었던 때였죠. 물론 요즘 애들을 어른들의 시선으로 보면 한심하고 경박하게 여겨질지도 모르겠지만, 전 사춘기의 아이들로부터 배울 것이 많다고 생각해요. 특히 그 아이들이 지니고 있는 감수성은 언제나 새롭죠. 사춘기 아이들이 가진 감수성은 어떤 면으론 시대적인 감수성의 첨단에 놓여 있다고 생각해요.

 

박판식 : 저는 김행숙 시인의 「삼십세」라는 시를 보면서 시집 제목이 <삼십세>였어도 괜찮았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서른이긴 하지만 김행숙 시인은 여전히 사춘기가 아닐까라고 느꼈거든요. 남들이 쉽게쉽게 정리하고 넘어간 시기를 정리하지 못하고 늘 유보하는 사람의 모습이 보여서 말이죠.

 

김행숙 : 박판식 시인은 사춘기 아닌가요?

 

박판식 : 저도 사춘기죠.

 

김행숙 : <당신은 사춘기 아닌가요?>이렇게 물어보면 다들 사춘기라고 얘기하던데요.

 

  : 저는 갱년깁니다. 국립국어연구원에서 갱년기 환자로 통했어요. 병원 가보라는 말도 들었죠. 무릎도 안 좋았지만, 정신적으로도 그랬어요. 달아올랐다 얼어붙었다 이렇게요.

 

김행숙 .박판식 : 그게 또 다른 사춘기 아닌가요?

 

 

 

맞다. 적어도 김행숙 시인과 김록 시인, 박판식 시인 그리고 나는 여전히 사춘기였다. 인터뷰 초반부엔 서로 무슨 말을 할까 망설이고 망설이는 모습이 역력했다. 김록 시인의 말은 대부분 도대체 왜 저러나 싶을 만큼 이해하기 힘들었다. 김행숙 시인은 마냥 사춘기 소녀처럼 크고 맑은 두 눈을 굴리면서 이런 말 저런 말을 했다. 박판식 시인은 이제 필요 없어진 질문지를 조금씩 찢고 있었다. 나도 아예 엉덩이 밑에 깔고 앉아버렸다. 그러다가 그러다가 말이다, 조금씩 곁눈질하던 서로의 속살에 차츰 익숙해지자 속도 없이 깔깔거리기 시작했다. 아마도 김행숙 시인이 다음 이야기를 하고 나서부터였던 것같다.

 

 

 

김행숙 : 개인적으로 저는 사춘기를 굉장히 끔찍하게 보냈어요. 아까 김록 시인은 면벽하듯 혼자 지냈던 시절이 있었다고 했는데, 제겐 사춘기가 그 비슷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초등학교 6학년 봄에 부산에서 서울로 이사를 왔어요. 교실에서 도드라지게 되는 사투리는 저를 언어의 섬으로 만들었어요. 졸업할 무렵에 한 남자애가 제게 벙어린 줄 알았다고 말했을 정도로 말을 하지 않고 지냈죠. 자폐의 시절은 꽤 길었는데, 중학교 때까진 그저 부끄럼을 많이 타는 아이였을 뿐 크게 문제가 되진 않았어요. 그런데 고등학교 때부터 생활 자체가 불편하게 되었어요. 친구들과 시선을 주고받으면서 말하는 것도 힘들어 하게 됐으니까요. 음악 실기 시험 땐 매번 선생님과 아이들을 놀라게 했어요. 음정도 박자도 잘 맞추지 못하는, 즉 음치인 저로선 아이들 앞에서 노래를 불러야 한다는 게 고역이었죠. 번번이, 얼굴이 심하게 붉어지고 몸에 쥐가 나기 시작하다간 시험도 채 치르지 못하고 쓰러져 버려 양호실로 옮겨지곤 했어요. 정말 투명인간이 되고 싶었어요. 증상은 점점 심해졌어요. 빠져나올 수 없었죠. 대체로 사춘기 아이들은 어른들과 달리 뭔가에 사로잡히면 균형을 잃고 그냥 거기에 빠져버리죠. 자폐나 공포조차도 어떤 에너지를 내장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부끄러움에도 열등감에도 무서운 에너지가 있을 수 있죠. 때때로 치명적이기도 한.

 

박판식 : 지금도 여전히 사춘기 때처럼 극복되지 않은 부분들이 있나요?

 

김행숙 : 있죠. 가끔 그때처럼 육체가 어떤 균형을 벗어나 무너질 것 같은 느낌이 엄습해올 때가 있어요.

 

 

 

채상우 : 저도 노래를 참 못 불러요. 그건 그렇고 김록 시인은 면벽하듯이 자폐적인 혹은 내폐적인 생활을 했다고 말했고, 김행숙 시인은 악몽 같은 사춘기를 경험했다고 이야기했는데 두 분의 시를 보면 그런 개인적인 이력이 시쓰기와 세계관 형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 않았나 싶어요. 그런데 김행숙 시인은 지금까지 말한 것처럼 사춘기 아이들이 지니고 있는 쾌활함, 발랄함, 그리고 그 안에 숨어 있는 에너지, 이런 것들에 대해 공감하는 정도를 넘어 홀려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점은 김행숙 시인과 김록 시인 간의 차이점이라고도 할 수 있을 듯한데요, 특히 시를 쓰는 자세에서 말이죠. 김행숙 시인의 시 중에 「홀림」이라는 시가 있던데, 이 시에서 중요한 건 무엇에 홀려 있는가 즉 홀림의 대상이 무엇인가가 아니라 무엇인가에 홀려 있다는 사실 자체가 아닌가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무엇을 동경하는가보다 동경한다는 사실 자체에 매료된 경우처럼 김행숙 시인의 시도 무엇인가에 홀려 있다는 그 상황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닌가 싶다는 뜻이죠. 조금 맥락은 다르지만 정황만 제시하는 시 가령 「조각공원」이나 「新挑林」도 이런 점에서 함께 읽어볼 여지가 있겠다 싶은데요. 이런 시들은 시적 정황 자체에만 주목할 뿐이지 그런 시적 정황을 의미화 하고자 시도한 흔적은 보이지 않거든요. 홀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듣고 싶습니다.

 

 

 

재수생 시절 서소문 공원에서 삼립식빵을 뜯다가 뺨을 얻어맞은 일이 있었다. 벤치에 길게 누워 자던 남자는 홀린 듯이 일어나서 나를 때렸다. 더러운 사내는 조금 비틀거렸지만 유감없이 구겨진 신문을 적선하고 사라졌다. 이유 모르게 나는 자꾸 불량스러워지고 싶었다.

카세트를 어깨에 맨 맹인이 천천히 지나간다. 오류, 개봉…… 점입가경.

―김행숙,新挑林 부분

 

 

 

김행숙 : 제가 의식적으로 그런 건 아닌데 이런 말을 많이 들어요. 무엇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다, 이 시는 한마디로 무엇을 말하는 것이라고 할 수 없다, 즉 요약할 수 없다는 거에요. 제 시가 그렇다고들 하니 저도 그런가 보다고 생각하게 됐는데, 무엇인가를 꼭 말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 게 사실이기도 해요. 오히려 제가 중시하는 건 느낌의 차원이라고 할 수 있어요. 미시적인 것, 스토리로 포섭되지 않는 것, 틈 같은 것, 그래서 놓치고 있는 것, 이런 것들에 대한 매혹을 시로 쓰고 싶어요. 정신분석적인 방식은 아니에요. 정신분석학은 사실 이상하기도 할 뿐더러 폭력적인 데가 있잖아요?

 

 

 

채상우 : 어떤 측면에서요?

 

김행숙 : 무의식을 번역해낼 수 있다는 믿음 자체가 말예요. 무의식은 말 그대로 모르는 거거든요. 그런데도 무의식을 번역해낸다는 건 모순이죠. 어쩌면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정신분석의의 권위가 생겨나는 건 아닐까요? 정신분석의의 해석은 기실 엉뚱한 허구일 수도 있어요 발레리가 근대에 풍경화가 범람하게 된 이유에 대해 말하는 걸 흥미롭게 읽은 적이 있어요. 이렇게 말했죠. 나뭇가지를 그리듯 인간의 팔과 다리를 그린다면 사람들은 깜짝 놀랄 것이다, 우리는 나뭇가지를 모르기 때문에 대충 그려도 나뭇가지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인간을 그릴 경우 관절을 약간 비틀거나 코나 입의 각도를 조금만 틀어도 그것을 보는 이들은 기형을 그렸다고 혹은 미적인 왜곡을 가했다고 하는 식으로 반응을 할 것이다, 그렇지만 나뭇가지에 대해서는 그런 반응을 보일 수 없다는 거에요. 풍경에 대해선 그런 반응을 일으킬 수 있을 만큼의 판별력이 없으니까요. 풍경화에서 화가의 독단이 가능할 수 있듯이 무의식에 대해서도 어떤 독단과 독백이 쉽게 통용될 수 있는 건 아닐까 싶고, 그 독단과 독백은 이성의 폭력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박판식 : 그런 의미에서 매혹적인 시가 「사라진 계단」과 「초콜릿 분쇄기」가 아닌가 합니다. 굳이 어떤 의미를 찾아내려 한다면 너무 많이 찾아낼 수 있는 시라는 의미에서 말이죠.

 

 

 

애석하게도 이후 약 30분 동안의 대화는 녹음되지 않았다. 주로 김행숙 시인과 김록 시인이 서로 얘기를 주고받았는데, 나는 메모조차 하지 않았다. 변명이 아니라 두 시인 사이에 오간 대화가 너무 감미로워서 훅 빨려들려고 말았다. 그래서 기억나지 않는다. 왜 그럴 때가 있지 않은가, 정신을 놓아버릴 만큼 재미난 이야기를 듣고 나서 새카맣게 잊어버릴 때 말이다. 하필이면 왜 녹음되지 않은 부분에서 그랬을까 싶기도 하지만 굳이 애써 기록할 까닭도 없어 보인다. 이 잃어버린 30분은 고스란히 내 기억 속 어딘가에 묻혀 있을 거니깐. 묻혀 있건 내가 파묻어버렸건 어쨌거나.

 

 

4. 영혼을 위하여, 즉흥적일 것!

 

 

 

김행숙 : 일전에 이윤기의 「나비 넥타이」를 읽은 적이 있는데, 거기 연극부원 선발하는 얘기가 나와요. 오디션 룸 한가운데에 있는 탁자 위에 사과 한 알을 올려놓고 그 사과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이느냐에 따라 당락을 결정해요. 에덴의 사과로, 빌헬름 텔의 사과로, 뉴턴의 사과로 해석하는 사람도 있고 그랬는데, 어떤 한 사람은 천천히 탁자 쪽으로 걸어가 사과를 집어들고선 그냥 우적우적 베어 먹어요. , 너다, 바로 너다, 그렇게 시험에 붙죠.4) 어떤 관념이나 신화로 덮어씌워진 사과가 아닌 내 것으로서의 사과를 만난다는 것, 그게 중요하죠. 대상과 그렇게 만나고 싶어요.

 

 

 

채상우 : 저는 아까도 말했지만 김행숙 시인과 김록 시인의 시를 읽으면서 두 시인 다 탁월한 전략가들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판단했구요.

 

  : 우리 둘 다요?

 

 

 

채상우 : 제가 오해한 거죠.

 

  : 아니 잠깐만. 저는 즉흥적인 걸 좋아하는데, 아니 좋아하는 정도가 아니라 제 자신의 삶이 즉흥 자체라고까지 할 수 있는데, 아까 김행숙 시인이 말한 그 사과 말이죠. 그 얘기를 재미있게 듣다가 저도 할 말이 생각났는데요, 만약 진실이 없다면 혹은 진실에 대해서 말할 수 없다면 즉흥적인 게 진실에 가깝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그러니까 빵틀에서 나온 풀빵 같은 시는 증오스럽기까지 해요. 그리고 다른 얘기를 좀 하자면 전 눈이 무척 나쁜 편인데 안경을 쓰지 않아요. 그런데 안경을 쓰지 않은 상태에서 보면 미묘한 깊이 같은 음영이 각각의 사람들에게서 보이거든요. 그걸 영혼이라고도 할 수 있을지, 그런 영혼을, 개개인의 영혼을 다 끌어 모아서 어떤 하나의 육체에 통합시킬 수 있다면 그것이 완전한 인간이라고 할 수 있을 듯한데요, 우리는 그렇지 못하잖아요. 모두 흩어져 있는 셈이죠. 저는 영혼을 하나로 보고 있거든요. 그런데 그게 모두 각각 흩어져 있다 보니까 싸움도 있고 고민도 있다고 생각해요.

 

 

 

채상우 : 김행숙 시인의 시를 보면 김록 시인이 방금 말한 점에 대해서는 상당히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을 듯한데요. 예컨대 「8월의 사랑」을 보면 쌍둥이에 대한 얘기가 나오고, 또 시집 곳곳에 출몰하는 귀신을 생각해 보면 말이죠.

 

김행숙 : 그런 셈이죠. 좀 다른 맥락에 있지만, 세상의 구심력을 억압적으로 느끼고, 뿔뿔이 도망치라고 말하고 싶으니까요.

 

 

 

채상우 : 김행숙 시인이 분열증적이라면, 김록 시인은 편집증적이라고 말해도 되는 건가요?

 

  : 예전에 사이코 드라마를 본 적이 있는데, 왜 역할을 바꾸어서 하는 연극?

 

박판식 : 역할극 말이죠? 남편이 아내가 되고 아내가 남편이 되고 하는 식의.

 

  : 그런데 왜 꼭 그런 상황을 인위적으로 만들어야만 어느 정도 단편적이나마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 심리극에 관심이 많이 가더라고요. 그래서 그런 희곡을 쓰기도 했어요. 다른 사람들은 이것저것 쓰면 잡스러운 인간이라고 하던데, 전 소설도 썼어요.

 

김행숙 : 전 잡스럽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장르로부터 자유로워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다양한 글쓰기의 코드를 사용할 수 있다는 건, 또 즐길 수 있다는 건 좋은 일인 것 같아요.

 

  : 심각한 얘기는 아니었고요, 저는 그냥 재미있게 표현한다는 게(김록 시인의 앞의 말 가운데 <잡스러운 인간>이라는 표현을 뜻함) 어색하게 됐네요. 예전에 같이 일했던 친구도 그런 말을 제게 하더라고요. 곁에서 오랫동안 일을 함께 했어도 저에 대해서 판단을 못하겠다고요. 특히 어떤 게 진담이고 어떤 게 농담인지 모르겠다고요. 그냥 다 농담으로 보면 된다 이렇게 얘기를 해주었는데.

 

박판식 : 반대로 다 진담으로 봐도 괜찮다는 말이죠?

 

  : 글쎄요. 초등학교 다닐 때 제가 무슨 말을 하면 친구들이 굉장히 웃었어요. 왜 웃냐고 물어보면 표정 변화 하나 없이 우스운 얘기를 해서 그렇다고 대답하더라고요. 표정이 그렇게 진지하니까 더 웃긴다고요.

 

 

 

채상우 : 지금 한 얘기는 소통의 문제와 관련이 있어 보이는데요. 김록 시인의 시를 보면 소통의 불가능성이나 결여에 대해 유달리 자주 언급한 듯한데, 물론 의사소통 자체가 이런저런 이유로 이미 불가능한 것 아니냐와 같은 선험적인 전제 아래 시를 썼다는 것은 아니고, 김록 시인이 그런 상황에 매우 민감했기 때문에 여러 편의 시에 흔적을 남긴 건 아닌가 합니다. 대화를 나눌 때의 표정이라든지 말하기의 속도나 음의 높낮이 등 때문에 오해를 많이 겪었을 듯한데, 소통의 문제에 관해 관심을 가지게 된 기억의 원점이라고 해야 하나, 특별한 경험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일이 있었나요?

 

  : 특정한 일화로 설명할 수는 없겠죠. 누구나 다 그렇겠지만 성격이나 세계관은 수년 동안의 경험이 쌓이고 쌓인 결과니까요.

 

김행숙 : 저는 김록 시인 시에서 이런 점이 좋았어요. 시의 제목과 시 사이의 거리, 무척 시적이라는 느낌이 들었어요. 김록 시인의 시 제목들은 어떻게 보면 비시적이다 싶을 만큼 관념적이라고 오해받을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것 같아요.

 

  : 저는 시적인 게 뭔지 몰라요. 그리고 시적이다, 비시적이다 그런 표현들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편이에요.

 

김행숙 : 물론 저도 시적인 것과 비시적인 것을 이분법적으로 생각하지는 않아요. 다만 시가 만들어지는 지점 말예요, 그런 잡아내기 아주 묘한 지점에 김록 시인의 시 제목이 놓여 있다는 뜻이에요.

 

  : 제가 모든 해석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시를 써서 그런 건 아닐까 생각하는데요. 볼록렌즈로 태양의 열에너지를 집중시킬 때 딱 타들어가는 순간 있죠, 그런 순간, 그런 순간의 집중이 바로 시이겠지만, 제가 쓰는 방식은 그 순간을 풀어가는 것이랄까 그렇게 말할 수 있겠네요. 그러니까 다의적인 해석이 가능한 시, 이런 경험을 한 사람은 이렇게 읽어도 되고 저런 경험을 한 사람은 저렇게 읽어도 되는 식 말이죠. 아까 전략적인 시쓰기라는 말도 나왔는데, 그뿐만 아니라 자동기술적인 시쓰기라는 표현도 그렇고, 실험시라는 말도 제가 지금 하는 작업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어요. 그렇다고 해서 여러 가지 의미로 읽힐 수 있다는 게 시적 완성도가 높다는 뜻은 아니고요.

 

 

 

채상우 : 아까 김록 시인이 영혼에 대해 말했던 부분과 좀 연결시켜 말해보면, 김록 시인은 보편적인 진리에 대한 믿음은 있지만 그것이 이제는 불가능하지 않느냐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보여지는데, 그래서 택한 글쓰기 방식이 즉흥적인 시쓰기인가요?

 

  : 그렇다고 할 수 있죠.

 

 

 

채상우 : 그렇다면 자신이 쓴 시에서 나는 어떤 것을 의미한다 혹은 반대로 의미하지 않는다 따위의 얘기는 전혀 쓸모가 없다는 말이겠네요?

 

  : 그렇죠. 그런데 즉흥적인 시쓰기가 진실 자체를 보여줄 수는 없지만 가장 근접한 거리까지는 인도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사람들 있죠, . 하나밖에 생각을 못하는 사람 말예요. 그런 사람들은 어떤 하나의 의도에 따라 시어를 구겨넣곤 하죠. 그런 사람들과는 달리 사전에 의도하지 않고 시작(詩作)하는 시인들이 있는데, 그런 시인들의 시 가운데 간혹 굉장히 교활하게 느껴지는 작품이 있어요. 하나하나가 교묘한 시적 장치처럼 보이고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상당한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는 생각이 드는 시 말이죠. 그래서 저는 언어에 대해 회의를 하는데, 언어에 대한 회의도 가끔은 예쁜 거지발싸개 같다고 생각해요.

 

 

 

이 말이 하는 말을 알아듣지만 말이 왜 이렇게 말하는지 모르겠다

말 속에는 숨은 무거움과 숨은 가벼움이 있다

모든 말을 하고 있는 말의 가혹함은 그 말이라는 고전은

가끔씩 말의 의미일 뿐 사실 말하지 않은 말의 말씀이

나를 더 끈질기게 괴롭힌다

 

그것은 가끔씩 악의 의미일 뿐

―김록, 「가혹한 분말」부분

 

 

 

채상우 : 학교 다닐 때 정답은 일부러 안 썼을 것 같은데요.

 

  : 그런 건 아니었어요. 실제로 전 외우는 걸 싫어해요. 그리고 수학 주관식 문제를 풀 때 풀이는 올바르게 하면서도 답은 틀리곤 했어요. 덧셈, 뺄셈 같은 걸 못해서요. 뭐 그런 식의 엉뚱함은 있었는데, 일부러 반발하거나 부정하거나 그러지는 않았어요.

 

 

 

채상우 : 그럼 음악도 즉흥적인 면에서 좋아하는 건가요?

 

  : 즉흥적인 시쓰기 쪽으로 계속 몰아가는 것 같은데, 글쎄요.

 

 

 

채상우 : 저도 편집증적이죠?

 

  : 그런 뜻은 아니고요. 관련이 있어요. 참 외우는 걸 못하니까 외우는 걸 싫어하는 거고요. 음악을 틀어놓고, 그리고 안무는, 그럴듯하지 못하지만 내키는 대로 추는 게 춤이잖아요? 어떤 날은 이렇게도 추고 어떤 날은 저렇게도 추고 그런 즉흥성이 재밌어요. 일부러 즉흥적이려고 노력한다는 말은 아니고요 자기도 모르게 몸이 움직인다는 뜻에서 말이죠. 그러니까 즐거운 거고요.

 

 

 

채상우 : 저와는 반대군요. 춤을 춰본 적도 없지만, 만약 저였다면 춤을 제대로 출 수 있기 전까진 아마 스텝만 죽어라 연습했을 거예요. 하다 못해 어릴 때 국민체조 시간에도 혹시 틀리면 어쩌나 싶어서 곤욕을 치렀어요. 어렵게 살았죠.

 

박판식 : 남자들은 좀 괴롭죠. 특히 그런 자아를 가진 사람들이 군대를 갈 때는.

 

김행숙 :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군대를 가면 더 어렵지 않아요? 군대는 즉흥적인 걸 용납하지 않잖아요. 막 때리고.

 

 

 

그래 그랬다. 군대에선 때렸다. 즉흥적인 녀석은 즉흥적으로 맞았고, 격식을 따지는 녀석은 격식에 따라 맞았다. 왜냐고 묻지 마라. 군대에선 다 그랬다(지금도 그런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그런 일이 뭐 군대에서뿐이랴.

그래 그랬다. 만약 김록 시인이 남자였고 군대를 갔다면 난리가 났을 거다. 김행숙 시인은 어땠을까.

5. 비나 음악처럼…..

 

 

 

채상우 : , 김행숙 시인의 시 중에 음악에 관한 내용이 있던데요.

 

김행숙 : 「미완성 교향악」 말이죠?

 

 

 

채상우 : 그 시에 <뒷문으로 나가볼래?/나랑 함께 없어져볼래?/음악처럼>이라는 구절이 있던데, 전 이 구절을 「조각공원」의 세계와 연결시켜 읽었어요. 지극히 단단하게 의미화된 세계를 무화시키려는 의지, 이런 식으로요. 김행숙 시인이 생각하는 음악에 대해 얘기를 듣고 싶은데요.

 

김행숙 : , 음악은 저한테 공포였다니까요. 방금 채상우 시인이 말한 것과는 상관없어요. 그 구절은 그 구절 그대로 음악처럼 사라지고 싶다는 느낌을 말했을 뿐이에요. 글은 일단 쓰여지면 사라지지 않잖아요. 음악은, 소리는 그렇지 않죠.

 

박판식 : 김록 시인도 음악에 대해 할 얘기가 많을 듯한데요. 「위로」라는 시를 보니까 마니아급이라는 인상을 주던데.

 

 

 

슈트라우스는 내게 위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의 죽음과 정화 작품 24 4개의 마지막 노래는 내게 위로가 된다

베토벤은 내게 위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의 운명은 내게 위로가 된다

무소르크스키는 내게 위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의 죽음의 노래와 춤은 내게 위로가 된다

하지만 하지만 난, 내가 한때 좋아했던 음악가

모차르트의 교향곡 제39 E플랫장조 중 제2악장과

쇼팽의 즉흥환상곡은 위로가 되지 않는다

베를리오즈나 크라이슬러 등의 사랑을 주제로 한 곡들은

내게 위로가 되지 않는다

 

아아 사람은 위로를 받은 적이 없다

위로가 될 마음을 찾는다

―김록,「위로」 부분

 

 

 

  : 먼저 김행숙 시인의 얘기부터 마저 들었으면 하는데요.

 

김행숙 : 이제 마무리를 해라, 그런 말 같은데요. 시는 별 게 아니다, 내 시는 별 게 아니다 이렇게 뇌까릴 때, 때론 그런 말에 외려 듣기 불편한 자만심이 묻어 있는 경우가 있죠. 정말이지 이런 뜻에서 말하는 것은 아니구요, 시로 무엇을 말하고 싶으냐고 누가 묻는다면 전 없다고 할 수밖에 없어요. 저는 시에서 위대한 사상이나 사유 같은 걸 그닥 믿지 않는 편이에요. 철학적인 냄새를 풍기는 시를 쓰는 건 오히려 쉽다고 생각해요. 진정성은 진술 내용 그 자체에 있는 건 아닐 거에요. 저는 산문으로는 서술될 수 없는 것을 발견해내고 싶어요. 예컨대 여자들의 우정이란 이런이런 거야라고 산문적으로 규정할 수 있겠지만 그것으로는 포착할 수 없는 어떤 순간과 질감이 있다는 거죠. 그리고 그 순간의 유대감은 산문적 진술로는 그 느낌이 살아나지 않죠. 「미완성 교향악」도 제가 뭐 음악에 <대해>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쓴 건 아니에요. 어쨌든, 「미완성 교향악」의 경우엔, 쓰고 나서 묘한 해방감을 느꼈는데, 그래서 개인적으론 애착을 느끼는 시에요. 시원했다고 할까요, 다른 건 없었어요. 「미완성 교향악」이 다른 시들보다 잘 썼다, 그런 의미에서가 아니에요. 짓다 만 건물, 뚜껑이 없는 건물,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고, 계단은 있지만 이층은 없고, 그리고 어느 순간 계단은 끊어져버리는 공간, 그런 곳에서 남자아이들은 종종 싸움을 벌이고, 어떤 여자애는 그곳으로 소풍 가자고 해요. 여자아이 하나가 그 건물 뒷문으로 나가버리면 세상에서 싹 사라질 것 같은 그런 느낌이 있어요. 제가 지금 한 말은 거의 제가 쓴 시 구절 그대로인데, 그뿐이에요. 사실 전 제 시가 어렵다고 말하는 게 정말 이상해요. 저는 함축적인 언어보다 지시적인 언어를 쓰는 편이거든요. 제 시를 어렵게 읽는 이유는 어쩌면 기존의 시를 읽는 코드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해봤어요. 그러니까 이 시어는 이런 의미고, 이 구절은 이런 함축적 의미를 지니고 있고, 전체적으로 보면 이런 의미로 통합되고 하는 식 말이죠. 그런 방식에 따라 제 시를 읽으려고 하기 때문에<‘이게 뭐지?>라고 갸우뚱거리는 게 아닌가 싶어요. 제 시에는 <뭐지>에 해당하는 것이 별로 없거든요. 그냥 시에 나와 있듯이 남자아이들은 싸우고, 이층은 없고, 이층 없는 건물이 있고, 그런 건물 풍경을 보여줄 뿐인데, 묘사라고 할 것도 없구 말예요. 저는 텍스트에 따라 독서 코드도 변환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개인적으론 시든 소설이든 텍스트 자체를 즐겨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제 시가 해석 행위보다는 놀이를 생산할 수 있는 텍스트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채상우 : 박사논문 쓰시기 괴로우셨겠어요?

 

김행숙 : 아뇨. 재밌었어요. 논문이라고 해도 바깥의 시선, 안의 시선이 아니라 바깥의 시선에서 연구 대상을 읽으면 굉장히 재미있어요. 그러면 텍스트 자체도 굉장히 낯설게 보이구요. 그리고 만약 개화기 소설을 연구하는 사람이 개화기 소설이 재미없으면 논문을 어떻게 쓰겠어요?

 

 

 

채상우 : 바로 윗세대 시인들만 해도 시론이 있는 시인들이 대다수잖아요? 시론이 있는 시인들은 시에 대한 기준도 무척 엄격하더라구요. , 그 시는 이런이런 면에서는 좋지만 이런이런 면에서는 좋지 않아라고 말이죠. 그런데 그런 기준이 조금 밑의 젊은 층에서는 차츰 사라지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김행숙 시인이 이제 방금 말한 내용도 이런 측면에서 볼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김행숙 : 시와 시론은 함께 제출되는 게 아닐까요? 시는 시론을 품고 있죠. 시론이 시를 품는 게 아니라.

 

 

 

채상우 : 공감합니다. 참 마지막으로, 아까 김록 시인의 말을 마저 듣지 못했는데.

 

  : 무슨?

 

박판식 : 김록 시인의 시를 보면 음악평론가처럼 논리적인 접근은 아니겠지만 음악에 대해 상당한 감식력이 있어 보였어요. 그래서 어떤 음악가를 좋아하는지, 음악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관해 듣고 싶은데요.

 

  : 아 그 말이요. 참「위로」에는 제가 지금 좋아하는 음악가는 없어요. 한때 모차르트는 좋아했는데 그야말로 한때였죠. 바흐를 더 좋아했었어요. 그리고 1990년대 말부터 제가 주목하고 있는 음악가는 비욕(Bjork)5) ,포티쉐드(Portishead)6) 라고 할 수 있죠, 좋아한다고 감히 말하기보다는. 시인도 그런데 국내 시인이건 외국 시인이건 누가 좋으냐, 이렇게 물어보면 지금은 없다고 말할 수밖에 없어요. 누굴 존경하느냐는 질문보다 답변하기가 어려워요. 저는 대신 작곡가를 존경한다고 말하고 싶어요. 음악에 대한 생각은 변함없는데, 고전적 악상의 단순함과 심오함을 동시에 갖췄을 때 감동을 준다는 점입니다.

 

 

 

 

 

주섬주섬 서로 이야기를 주워 담다 보니 벌써 세 시간이 넘어버렸다. 이후에도 몇 마디 말이 오가긴 했는데 대충 두 가지 얘기였다. 배는 고프지 않냐, 저녁 먹으면서 좀더 말하자, 그리고 두서없는 질문에 답변을 잘해주어서 고맙다, 아니다, 못난 시집 읽느라 고생했겠다 등등. 어쨌건 세 시간이 넘도록 주절주절 참 말도 많았다. 그런데 여전히 창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문득 지금까지 한 얘기들 말고도 밤 새워 할 얘기가 많을텐데, 어딜 가니라고 창밖에서 누군가 말하는 듯싶었다. 그래서였을 거다. 우리(김록 시인과 김행숙 시인, 박판식 시인, 그리고 나와 퍼슨웹의 이용현 디자이너까지)는 허기도 끌 겸 술도 마실 겸 해서 홍대 앞 돈가스 전문점으로 갔다. 9시였고 10까지 그곳에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때 무슨 말들을 했더라. 대충 이런 얘기들이 오갔다. 김록 시인은 대학 다닐 때 법학 공부를 한 적이 있다고 했다. 법전을 줄줄 외울 만큼 재미있게 공부했다고까지 말이다. 김록 시인은 생각보다 집요한 구석이 있는 사람이다. 음악에 대해서도 조금씩 들려주었다. 황병기 가야금 산조부터 이야기를 시작했는데 우리가 잠시 머물렀던 돈가스 집 밖에는 대나무가 늦은 겨울비를 맞으며 부산하게 떨고 있었다. 가야금 산조라, 김록 시인의 나지막한 소리에 대나무가 흔들렸던가, 모르겠다. 덧말로 김록 시인은 자신의 본명이 김영옥이라고 알려주었다. 김록이라는 필명을 쓰게 된 이유는 김영옥이라는 이름이 흔하지 않느냐라는 황현산 선생님의 권고 때문이었고 작명은 옥새 전각 장인인 민홍규 화백이 맡았다고 한다. 김행숙 시인은 내내 맑게 웃고 있었다.

 

비가 잠시 그쳤을 때 우리는 신촌으로 줄행랑을 쳤다. 신촌 앞 맥주집에서 맥주를 마셨는데 이문재 시인과 이홍섭 시인을 우연히 만났다. 이홍섭 시인이 술값을 냈다. 김행숙 시인의 말처럼 모든 건 우연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끝내는 노래를 못 부른다는 노래방엘 가고야 말았다. 김행숙 시인은 일찍 가서 합석하지 못했다. 모두들 정말 열심히 불렀다. 못난 놈들끼리는 서로를 알아본다는데, 음치들끼리도 그런건가 싶다. 박판식 시인은 예외다. 우리가 불렀던 노래는시가 될 수 있으려나, 모르겠다. 그럼 우리가 쓴 시는 노래가 될 수 있으려나, 그것도 모르는 일이다. 아 참 이 말만은 꼭 하고 끝내야지 큰일날 뻔했다. 내가 본 바로는 김록 시인은 마녀가 아니었다. 그리고 김행숙 시인도 귀신과 얘기를 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둘 다 시인이었다. 어쨌건 참 오랫동안 홀린 듯 노래를 부르고 불렀다. 그리고 우리가 노래를 부르는 동안 구죽죽하게 내리던 비가 문득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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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블라지미르 블라지미로비치 마야꼬프스끼(Vladimir Vladimirovich Maiakovskii, 1893-1930) : 러시아 시인. 마야꼬프스끼의 시 「바지를 입은 구름」가운데 이런 구절이 있다. <뭐야, 나를 자극하자는건가?/<자네가 가진 광기의 에메랄드는/거지의 동전만도 못해>라는 말로?>

 

2) 김행숙 시인은 2000년도에 제8회 대산창작기금을 수혜받았다. 그때 표제시는 「삼십세」였다.

 

3) 논문명은 「1920년대 동인지 문학의 근대성 연구」다. 김행숙 시인은 2003년도에 고려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4) 자세한 내용은 이윤기의 『나비 넥타이』(민음사, 1998) 48-50쪽을 보라.

 

5) 아이슬랜드의 음악가다. 혹시 궁금하다면 라스 폰 트리에(Lars von Trier) 감독의 「어둠 속의 댄서(Dancer In The Dark)」를 보라.

 

6) 영국의 트립합(Triphop) 그룹명이다. 트립합은 힙합 비트에 몽환적인 리듬을 입힌 것이 특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