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엉이 + 늑대소녀

내 골방 안의 비주류

심야라디오 <팝스갤러리>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매일 자정이면 그녀들은 지친 나를 몽롱한 수면 속으로 인도하곤 했었다.

끊어질 듯 이어지는 문어체 말투의그 독특한 목소리가 방안 가득 퍼지면 그제야 나는 정신을 풀어놓고 긴 수면 속으로 빠져들곤 했던 것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자정이 되어도 그녀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더불어 나의 몽롱한 수면으로의 침잠도 불가능해져 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그녀들을 찾기로 했다. 그녀들을 만나 나의 몽롱과 수면의 행방에 대해 묻고 싶었다.

 

 

 

뒷조사를 해보니 그녀들은 전라도 익산의 어느 변두리에 살고 있었다. 변두리에서도 그렇게 강력한 기운을 발휘할 수 있었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평소 변두리에 대한 강한 애착을 가져오던 나는변두리의 고수그녀들을 도저히 만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들을 만나 나의 몽롱과 수면을 되찾고 덤으로 (아직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모르지만) ‘전국변두리연합회결성에 대한 의사타진을 묻고 싶었다. 여하튼 나는 그녀들을 반드시 만나야 했다. 운이 좋게도 그녀들과의 접선은 얼마 지나지 않아 이루어졌다. 접선 장소는 서울 서교동 <퍼슨웹> 사무실. 일요일 저녁 어스름이 깔리기 시작한 무렵이었다.

 

 

 

예상대로 그녀들은 야행성이었다. 낮에 그녀들을 만났다면 왠지 어색했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의 상상 속에서 그녀들은 밤의 부드러운 여백과 고독 속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꿈의 마녀들이었다. 그녀들의 이름 또한 그랬다. 부엉이와 늑대소녀. 야생동물의 이름을 가진 그녀들은 라디오 원음방송 심야 팝음악 전문프로그램 <팝스갤러리> PDJ와 작가이다. 그녀들과의 만남은 도심 한복판에서 느닷없이 야생동물을 만난 그런멸종위기의 느낌이었다. (원음방송은 원불교방송으로 공중파 FM89.7로 송출되며, PDJ PD DJ 겸직. <팝스갤러리>는 이하 <팝갤>로 약칭)

 

 

 

요즘 세상에 라디오에 게다가 팝음악 전문프로라니. 마치 연극에 독립을 결합한독립 연극처럼 그 처지가 암울하다. 현재 공중파 라디오에는 전문 음악프로그램이 그 씨가 마른 상황이다. 여기서 말하는 전문 음악프로그램이란 신보 소개, 앨범 평가, 뮤지션 발굴 등 음악 매체로써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그런 방송을 뜻한다. 그동안 라디오는 이 역할을 하지 않았고, 급기야 TV가 될 수 없는 자신의 유전자적 한계를 비관하며 온갖 어리광을 떠는 구제불능이 되고 말았다.

 

 

 

<팝갤>은 팝음악 전문방송으로서 그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 가장 색깔 있는 방송이다. 지역에서 제작되는 마이너 종교방송이지만 자신의 한계와 제약을 뛰어넘어 라디오의 미래와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는 방송이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 미래와 가능성을 엿보기 위해 그들을 만났다. 물론 나의 몽롱과 수면의 행방을 되찾고 싶은 이유도 있었다. 또한 변두리의 승리와 연대에 대해서도 의견을 듣고 싶었다.

 

 

 

인터뷰에 앞서 사과부터 해야 할 일이 생겼다. 연이은 프로그램 축소 사건과 게시판 글 삭제 사건으로 심신이 피곤한 이들에게 극악무도하게도 또 한 번 삭제질을 저질러버리고 말았다. 내용인 즉, 녹음이 잘 되고 있나 확인하러 인터뷰 도중 레코드를 끊었던 것이 그만 처음 5분가량의 내용을 완전히 지워버리고 만 것이다. 축소와 삭제로 피멍든 이들의 가슴에 또 다시 난도질을 한 기분이다. 부디 용서하시길. 삭제된 내용은 지난 2003년 원음방송 가을 개편에서 매일 프로그램이던 <팝갤>이 토,일 프로그램으로 축소되었고 이에 청취자들이 항의하는 일들이 그동안 있었다는 내용이다.

1. 축소, 삭제 그리고

 

 

 

: 그러니까 방송국의 이념과 정서에 맡지 않아서 <팝갤>을 축소시켰다는 말인가요? 정책적인 차원에서도 그렇고 정서적으로도, 말하자면불온한방송이었다는 거죠?

 

부엉이: 글쎄, 어쨌든 정서상으로나 모니터링 과정에서 말들이 많았어요. 전파낭비라는 말도 있었고……

 

늑대소녀: 그리고 우리가 버릇이 좀 없어요.

 

부엉이: 그래요, 옷차림이나 사소한 일들에서도 받아들여지지 않는 측면이 강했죠. 어떤 이들에게 용납되지 않는 측면들, 우린 우리식대로 하고 다니는 걸 즐기는 편인데, 그게 누군가에겐 아주 싫은 일이 될 수도 있었다는

 

 

 

: 그 과정 중에 이런 일도 있었더군요. 방송국 사장이 직접 청취자들에게 사과 공개를 하는, 그건 뭐였죠?

 

부엉이: , 게시판에서 애청자 글을 삭제한삭제 사건이요. 서울 원음방송 게시판에 있던 <팝갤> 복원에 대한 청취자들의 항의 글들이 모두 삭제된 거예요. 어느 날 갑자기아무런 사전예고도 없이. 그건 요즘 같은 인터넷 시대에 안 되는 일이죠. 물론 애청자들이 항의를 했어요. ‘내 토시하나 쉼표 하나까지 다 돌려 달라이런 항의 글들이 쇄도했죠. 방송국에서는 게시판에 적합하지 않는 글들이어서 모두 삭제했다는 이야기만 반복했는데, 그건 제가 보기에도 타당하지 않았어요. 그러나 결국 글은 복구가 안됐고, 문제가 점점 커졌어요. 애청자들은 신문에도 보도 자료를 내고, <언론중재위원회>에 의견을 제시하고 이런 와중에 사장님이 공개사과문을 발표한 거죠. 서울원음방송 본부장이 해야 할 사과문 발표를 익산의 사장님이 하신 겁니다. 저도 참담한 마음이었구요.

 

 

 

: 그럼 지금 상황은 사장의 사과 외에 글에 대한 복원도 없었고, 그렇게 마무리된 건가요?

 

부엉이: . 그걸로 끝났죠. 지금은 그것으로 마무리 된 상황이에요.

 

 

 

그러나 상황은 마무리 되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그녀들은 아직 축소 ·

삭제 사건의 박탈감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듯이 보였다.

 

 

 

: 그런데 <팝갤>이 왜 매일 방송으로 복귀해야 하는 거죠? 방송의 정책과 정서에 맞지 않아서 축소된 거라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 방송으로 복귀해야 하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건가요?

 

부엉이: 타당한 이유가 있죠. 청취자들은 새로운 음악을 들을 권리가 있으니까요. 그리고 방송국 정책은 청취자들의 편에서 수립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듣는 이들의 편에 서서 그들의 입장에서 수립되어야 결국 호응도 얻을 수 있는 거죠. 가끔은 내가 왜 이렇게 <팝갤>에 집착을 하나 싶을 때도 있어요. 하라는 대로 했을 때의 편함을 ?i고 싶을 때도 있구요. 그런데 하나하나 청취자들 사연을 보고 있으면, 그리고 그동안 애청자들과 공감했던 음악에 대한 진지한 태도를 생각하면…..글쎄요, 그런 걸 포기하는 것은 제작자로서 참 힘들더라구요.

 

 

 

: 그러니까 팝스갤러리가 공중파 방송으로 매일 복귀해야 하는 이유는 많은 청취자들과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는 이유가 하나이고, 또 최근에 청취자들이 스스로 보도 자료를 발표했더라고요. 그 자료의 요지는 공중파 전문 팝음악 프로그램으로써 퀄러티가 높은 방송이라는 그런 글이었거든요. 이런 두 가지 이유가 되겠네요.

 

부엉이: 애청자들의 복귀운동이 없었다면 우리도 깨닫기 힘들었을 거예요. 우리 방송이 나름대로 매력이 있고 애착이 갔지만, 이렇게 회사와 충돌까지 해가며 이어나갈 필요가 있을까 절망했죠. 그런데 매번 힘을 얻는 건 애청자들의 반응인 것 같아요. 비록 메이저처럼 엄청난 숫자는 아니지만 청취자 층이 무척 다양하고 전국 각지에서 반응이 오고 그들이 확고한 신념을 심어주고 우린 다시 음악으로 보답하고 그러는 와중에 몇 년이 흐르고 <팝갤>은 알게 모르게 다져진 것 같아요.

 

 

 

: 방송국 측은 그럼 청취자들을 배려하거나 고려하지 않는 건가요?

 

늑대소녀 : 아니요, 나름의 방식으로 고려하는 거죠.

 

 

  

: 그건 뭐죠, 나름의 방식으로만 고려한다는 게?

 

부엉이: ‘일부 과격한 애청자들에게 목 맬 필요 없다란 이야기도 종종 들어요. 따뜻한 음악스타일을 지향하죠. 좀 음악다운 음악을 내보내자는 식이랄까? <팝갤>같은 방송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 이해하기도 싫은 건 아마도 음악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탓이 라고 생각해요. 방송국 측에서는 부드럽고 마음을 차분하게 해주는 new age 풍의 편안한 음악만 음악으로 보는 거죠. 나름대로 쎈(?)음악들은 일부 축축한(?) 사람들만 듣는다고 생각하는 식요. 실제로 주변엔 그런 식으로 제게 모니터해오는 사람들도 더러 있어요. 그런데 그렇지만은 않거든요. 딸 둘을 키우고 아내를 사랑하는, 지극히 가정적인 철도청에 다니는 한 애청자가 <마릴린 맨슨>을 들으며 특별한 감화를 받았다는 사연을 전해 오는 경우도 있거든요. <팝갤>엔 음악 때문에 휘청거리는 사람들 별로 없습니다. 오로지 음악을 향유할 뿐이죠. 늘 갖는 생각이지만 사람이 만들었습니다. 사람이 만든 음악 다 들을 만 합니다.

 

 

 

현재 공중파 방송국의 소득원은 광고와 후원금이다. 후원금의 경우 대개 교인들을 후원자로 하는 종교방송에서 이루어지고 있고, KBS의 경우는 시청료 수익이 여기에 추가된다. 광고의 경우 한국방송광고공사(KOBACO)가 독점으로 방송광고 판매대행사업을 하고 있다. KOBACO의 판매대행 제도에는 일명끼워팔기라는 광고 옵션 계약이 있는데, 이것은 광고주가 메이저 방송국(KBS, MBC, SBS)에 광고를 낼 때, 일정량 지정된 영세 방송국에도 같은 광고를 실어주는 제도이다. 이를테면 <퍼슨웹> KBS 9시 뉴스에 자사 광고를 싣고 싶다면, 지정된 소규모 영세 방송국에도 동일한 광고를 주어야 하는 것이다. 이 제도는 광고주 입장에서는 폐기처분되어야 할 제도지만, 영세 방송국의 재정을 지원하는 좋은 취지로 만들어졌다. 광고 대행사에 근무하는 한 관계자의 말에 의하면 영세 방송국의 경우 재정 수익의 절대치가끼워팔기이며, 그 비율이 99% 이상에 이른다고 한다. 그만큼 영세 방송국 입장에서는 재정을 안정적으로 지원받는 확실히보장된제도이다. 보장되었다는 말은 어쨌든 세상이 두 쪽 나더라도 일정량의 광고는 항상 들어온다는 뜻이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문제는 아이러니하게도 이 제도 덕분에 영세 방송국의 프로그램 평가와 방송국의 수익 사이의 상관관계가 엷어졌다는 것이다. 청취율을 조사하지 않는 경우 인기가 있거나,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프로그램이건 그렇지 않건 방송국 차원에서는 그것이 수익과는 별다른 관계가 없는 것이다. 영세 방송국에 근무하는 한 광고부 직원에 말에 의하면, 인기 연예인을 간판으로 한 프로그램의 경우에도 광고유치에 직접적인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고 한다. 어차피끼워팔기’인 것이다. 이것이 영세 방송국의 아이러니다. 제법 인기 있고 좋은 방송이라도 어차피 청취율이 조사되지 않기 때문에 그것이바람직하지 않을경우 그 프로그램은 퇴출 순위에 오르는 것이다. (참고로 영세 라디오 방송국의 경우 청취율 조사를 하지 않는다. 청취율이 미비하기 때문에 조사가 이루어질 경우 광고 유치에 타격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이런 유추가 가능하다.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미는 다른 방송국 이를테면 광고를 끼워주는 메이저 방송 프로그램과무언가 다르다는 것이다. 느낌이 다르다는 것. 다른 방송에서 하고 있지 않는 것을 하고 있다는 것. 어딘가 모르게 다르다는 것이다. 영세 방송국이 두려워하는 것은 이것이다. 끼워 팔려 나가야 할 물건이 본물건과 다르다면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이럴 때의 가장 좋은 방법은 비슷하게 만드는 것이다. 비슷한 것으로묻어가는것이다! 이들에게는 비슷한 것이 최고의 미덕이고, 다르다는 것은 틀린 것이다. 이것이 각 방송국 프로들이 모두 비슷비슷 닮아가는 이유이다.

 

 

 

애청자가 만든 보조자료 중에서

 

공중파 음악 방송의 대안이자 새로운 길 <팝스갤러리>

 

팝 음악의 전시장이라는 의미의 <팝스갤러리>(이하 팝갤)는 그 의미 그대로 팝 음악을 전문으로 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이다. 원음방송(원불교 방송)에서 1998 11 30일 첫 방송을 시작, 5년이라는 시간을 넘게 이어져왔다. 이름조차 낯선 종교방송의 한 스튜디오, 그것도 익산이라는 지방에서 이끌어가는 방송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에는 부족한 것이 당연했지만, 어느새 음악 마니아들 사이에서 입소문으로 알려지면서 소리없이 <팝갤>을 사랑하는 많은 애청자들이 생겨났다. 그러던 작년 11 <팝갤>은 주말 심야시간대 방송으로 축소 개편되었다. (중간 생략)

 

 

[팝갤 애청자 모임]

 

공중파는 많은 사람들이 접근할 수 있는 가장 편리한 매체이다. 이것은 개인적인 취향의 음악 모임과는 달리 보다 열린 소통이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열린 공간을 통해 많은 청취자들이 다양한 음악을 향유하고 즐길 수 있는데, 지금의 공중파 방송은 그 기능을 거의 상실하다시피 했고, 현재 대부분의 FM 라디오 프로그램의 선곡은 대중가요 위주이며, 팝 음악 위주의 프로그램은 손에 꼽을 수 있는 정도이다. 더욱이 기존의 음악 방송은 새로운 음악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지 않거나 수용에 적극적이지 못하거나, 빌보드 차트 등에 올라 있는 주류음악 위주의 방송 기획 등 십년 전과 별다를 바 없게 진행되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과거에 FM 방송만을 통해 얻을 수 있었던 새로운 음악의 만남과 전문 음악 프로그램의 기획 의도를 상실한 채 청취율만 쫓는 현실은 FM 방송이 극복해야 할 부분임을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팝갤>이 우리나라 라디오 방송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조금 특별하다. <팝갤>은 음악 방송 고유의 기능을 잃어버린 FM 방송에서 전문 음악 방송을 고집해 오면서, 팝 음악에 목마른 음악 팬들의 갈증을 해소시켜 주는 몇 안 되는 전문 음악 방송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세상의 모든 음악을 들려주고 싶어 하는 팝스갤러리는 주말 방송으로 축소된 지금도, 좋은 음악과 진보된 자세로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팝스갤러리는 음악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의 방송입니다. 어느 일상 새벽, 우연히 주파수를 돌리다 낯선 혹은 낯익은 음악에 귀를 기울이게 되는 모든 이들을 위해, 팝스갤러리를 사랑하는 애청자들은 팝스갤러리가 매일 방송으로 복귀되도록 애쓰고 있습니다.

 

애청자들이 만든 보도자료 중에서

2. DJ, 라디오를 죽이다

 

 

 

어린 시절 수많던 별들은, 그 별들과 함께 뜨고 졌던 그 많던 DJ들은 지금은 어디서 무얼 하고 지낼까. <전영혁의 음악세계> 이야기를 했다. 라디오가 전부이던 시절부터 현재까지 살아남은 DJ는 전영혁 씨가 유일하다. 음악애호가들에게는록 음악의 전도사로 전설적인 존재가 된 그는 현재 심야 라디오 DJ이다. ‘전설은 살아있는화석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1986년 첫 방송을 시작으로 그동안 프로그램 축소와 폐지를 거쳐 현재 새벽 2시 방송으로 겨우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아무리 전설이래도 도대체 새벽 2시에 누가 라디오를 듣겠는가. 2000년부터 시작한 <전영혁의 음악세계 애청자들>(www.fm24.org)의 숙원 사업이었던 24시 프로그램 복원운동은 지난해 가을 개편에서 또 다시 좌절되고 말았다. 24시 심야프로를 개그콘서트의 남매가 차지하던 그 날, 전영혁 씨의 오프닝 멘트는우리 음악이 너무 어렵나?’였다. 이것이 내가 기억하는 살아있는 전설이 남긴 최초의 농담이었다.

 

 

 

: 개인적인 질문을 드릴게요. 라디오 마니아셨죠?

 

부엉이: 라디오 마니아라기보다 예전엔 그거 밖에 없었거든요. 돈이 없어서 라디오에서 나오는 음악을 녹음해서 듣고 했거든요.

 

 

 

: 다른 방송도 많이 들으시나요?

 

 

 

부엉이 : 전영혁 씨 방송보다는 지금 사라진 성시완 씨 방송을 많이 들었어요.

 

 

 

: 예전에 비해 전문 음악 방송이 많이 사라진 거죠?

 

 

 

부엉이: 그게 운명이라고 생각해요. 부활되지도 않을 거고, 앞으로 생겨도 곧 사라질 거예요. 전 그 부분은 비관적이에요.

 

 

 

: 왜 그렇죠?

 

부엉이: 왜냐면 대중이 듣지 않으니까, 그리고 소수의 기호는 지켜지지 않으니까. 다양성이 인정되는 사회가 아니에요, 우리나라는. 음반가게에 가도 사고 싶은 음반이 없잖아요. <팝갤>이나 <전영혁의 음악세계>를 듣는 건 대중이 아니에요. 우리 방송을 듣는 게 무슨 특별한 사람이 듣는 게 아니라 그 음악 취향을 가진 사람인데, 그 사람들이 대중들로부터 배제된 거죠. 앞으로 그건 달라지지 않을 거고, 김기덕이나 배철수가 트는 30,40년 전 음악들이 앞으로 2050년이 되도 나올 거고.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 그런 프로들도 나름의 가치가 있지 않나요?

 

부엉이 : 가치가 없다는 게 아니예요. <전영혁의 음악세계>를 듣는 사람들은 배철수 방송을 인정하는데, 배철수 방송 취향을 가진 사람들은 전영혁 방송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거죠. 이 사람들은 (음악적으로) 편향되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늑대소녀 : 어느 시점에서부터인가 라디오에서 음악방송을 들을 수 있는 그게 끊겨버린 것 같아요.

 

부엉이 : DJ 책임이 커요. 지금 장기집권하고 있는 웃기는 짬뽕들 이런 사람들 정말 문제 허벌 많아요. DJ들이 딱 한정된 음악들만 들려준 거예요. 저는 그 당시에 art rock이란 게 없는 줄 알았어요. 후에 얼마나 증오하고 환멸했게요, 그 때 그 DJ들을.

 

 

 

: 그러니까 지금의 음악이 편향적으로 흘러 버린 게 지금 언급한 DJ이나 라디오 방송의 책임이라는 거죠?

 

부엉이 : 그렇죠. FM 본연의 의무를 망각한거죠. 다양한 음악을 섭취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임을 망각한 것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죠.

 

 

 

라디오를 죽인 것은 TV가 아니라, 라디오였고 그것을 만든 라디오 제작자들이다. 부엉이 말대로 라디오는 그 자양분인 음악을 편식했고, 편식하는 아이가 제대로 성장하기란 힘든 일이었다. 게다가 편식에 관여한 사람들은 현재 라디오의 기득권이 되어 라디오에 대한 거짓 신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 그런 사람이 지금은 기득권이잖아요?

 

부엉이: 지금도 어떤 DJ는 끊임없이 얘기해요. , 이거 내가 한국에 히트시킨 노래다.(헐헐) 저는 80년대 초반부터 라디오를 들었는데, 다 알죠. 저 정도 나이되는 사람이면 FM의 산증인이예요. 그동안 라디오가 어떻게 흘러왔는지 어떤 방식으로 1년 내내 똑같은 노래들만 줄창 흐르게 되는지, 아주 질려버릴 정도로 같은 음악, 그러니까 의 ‘if’ 같은 거 있잖아요.

 

 

 

: ‘한국인이 좋아하는 팝송이런 거요?

 

부엉이: , 그거 지금 또 그거 하더라구요. ‘let it be’가 이번에 또 1위더라고요. 10년 동안 부동의 1. 그러니까 이런 방송이 대중들을 그런 식으로 조장하고 있는 거죠. 결탁을 해서. 아니 도대체 대중들은 다른 곡은 안 듣습니까? 아무리 듣고 또 들어도 ‘let it be’가 눈물나게 좋아서 10년째 1위를 점하고 있는 한국 대중의 기호가 정말 진정 진실이란 건가요? 1천명이 참여해서 합계를 내고 그걸 자료라고 발표하는 그 DJ아저씨 정말 자신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책임을 통감하셔야 할 겁니다. 아저씨! 내년엔 그런 거 하지 마세요. 1위곡을 바꾸시든지……

 

 

 

결탁? 여기서 결탁이란 방송국을 포함한 매스컴, 연예기획사, 음반기획사의 그더러운결탁을 말하는 것인가? 물으려다 묻지 않았다. 알만한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는 그런결탁이기 때문이다. ‘한국인이 좋아하는 팝송이란 이런결탁이 만들어낸 또 하나의 거짓말이다. 어디 한국인만 좋아하는 노래가 따로 있더냐?

 

 

 

: 대중들에게 좀더 다가서기 위해서는 선곡의 융통성이라고 해야 하나요, 그런 배려들도 있어야 하는 건 아닐까요? 모르는 음악만 나오면 사실 대중들이 쉽게 듣기는 어렵잖아요?

 

부엉이 : 그런 걸 생각 안한 건 아닌데, 그래도 그런 선곡이 자주 되지 않는 건. 새로운 음악이 많거든요. 이 정도의 음악을 듣는 사람들이면 그런 것에 만족하지 않거든요. <팝갤> 하나라도 그런 음악프로로 남게 되는 걸 저는 바라거든요. 이런 게 아마 독선으로도 비춰질 수도 있을 거예요.

 

 

 

: 그런데 라디오는 대중매체잖아요. 그러니까 그런 고려도 있어야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들거든요?

 

부엉이: 그런데 라디오가 대중매체라는 게저는 현재의 라디오가 대중만의 매체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옛날이라면 몰라도요. 지금은 낱낱의 소수의 세상이거든요. 인터넷 이후…. 지금 라디오는 불특정 대다수가 듣는 것이 아니라 불특정 소수가 듣거든요. 그러니까 그런 불특정 소수들을 위하는 방송이 있어야 하는 거죠. 사실 음악전문방송의 가장 큰 적은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우리 사회라고 생각해요. 청취자들을 담보로 모든 프로그램이 천편일률적으로 나갈 수는 없어요.

 

 

 

: 라디오가 대중매체는 아니라는 말씀인가요?

 

부엉이: 예전에는 음악 접할 수 있는 매체라곤 라디오뿐이었어요. 지금은 아니죠.

3. 우리는 마이너가 아니라

비주류이다

 

 

 

라디오, 변두리, 마이너 그리고 소통. 이 인터뷰의 기획은 애당초 이 유사 낱말들이 그리는 그림을 맞추고 그 가능성을 살펴보는 것이었다. 나의 잃어버린 몽롱과 수면을 되찾는 일도 이 그림 안에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 스스로 마이너라고 생각하세요?

 

부엉이: 마이너로 몰고 가고 있죠. 상황들이. 저는 저를 마이너라 칭한 적은 없어요. 비주류라는 언급은 했으나….

 

 

 

: 그게 같은 의미가 아닌가요?

 

부엉이 : 마이너라면…. 모르겠어요, 왠지 패배적인 느낌이 강해요. 비주류는 주류 속에 편입되고 싶어하지 않는데, 마이너는 메이저가 되고 싶어 하는 느낌. 그런 차이랄까? 원래 우리가 표방한 것은 음, 뭐였지?

 

 

 

늑대소녀: ‘주류를 감싸 안는 비주류

 

 

 

부엉이: , 우리 캐치프레이즈가 이거였어요. 비주류도 주류를 감쌀 수 있다. 늘 주류가 비주류를 감싸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었죠.

 

 

 

: 멋진 표현인데요. 주류를 감싸 안는 비주류, 그런데 감싸 안는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부엉이: 비주류도 주류 감쌀 수 있어, 그런 생각. 일종의반란이죠. 비주류가 주류의 흐름을 주도할 수도 있다! 선곡 면에서도 우리는 의 ‘sea of heartbreak’도 틀 수 있다, 뭐 그런 거예요. 오늘 두 번째 곡으로 도 나갈 거예요. 비주류가 주류를 감쌀 수 있다는 게, 선곡의 문제일 수도 있고, 또 하나는 사회적인 의미, 그러니까 주류는 늘 일정한 위치에 올라서고, 비주류는 희생당하고, 소수는 늘 뒤에 나앉기 마련인데. 그게 아닐 수도 있다는 걸 알아달라는 뜻이었어요.

 

 

 

: 상당히 인상적인데요. 비주류가 꿈꾸는 것이 주류일 때는 그 현재 위치가 지향점을 위한 일종의 하층부로써의 의미 밖에 없는데, ‘주류를 감싸 안는 비주류라는 말은, 그 이상의

 

 

 

부엉이 : 그렇죠, 애초 우리의 철학이었어요. 당시만 해도 통렬한 뜻으로 받아들여지길 바랐어요.

 

 

 

: 그런데 감싸 안는다는 의미가주류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그런 의미로 받아 들여야 되는 건가요?

 

부엉이: 변화시킬 수 없다고 해도 상관없어요. 이미 세상은 많이 변했고, 최근 10년 사이에 주류도 없고 비주류도 없는 세상이 됐다고 생각해요. 모두 각개전투고 다 낱낱이고, 이제 어떤 사건을 통해서 이리 뭉치고 저리 뭉치고 할 뿐이지, 명확한 대중도 없고, 그래서 라디오가 더 힘들지도 모르죠. 명확한 대중이 있다면 그 사람들 공략해서 그 사람들 듣게 하면 되죠. 그러니까주류를 감싸는 비주류란 말도 지금에 와서는 그렇게 통렬한 것 같지 않아요. 그 때 당시, 98년에는 통렬했어요. 그 문구를 걸어놓고 보고 있다가 그래! 고개 끄덕끄덕 하면 ON AIR 에 불이 들어오고 마이크 올리며주류를 감싸는 비주류, 팝스갤러립니다첫 곡 딱 올리고, .그러면 다들 그래요, 우리 주류를 감싸보아요~ (일동 웃음) 이랬는데, (늑대작가에게) 너 그때 그거 듣지 않았냐?

 

늑대소녀 : 맞아요. .

 

부엉이 : 그런데 지금은 그 문구 자체가 힘을 잃은 세상이에요.

 

 

 

: 그러니까 예전에는 주류를 변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는데, 지금은 변화

부엉이 : 그게 아니라 주류라는 개념과 비주류라는 개념 자체도 모호해졌어요. 지금 를 많이 들으니까 를 듣는 사람들을 주류라고 할 수 있는가 하는 거죠.

 

 

 

: 그런데 지금도 주류와 비주류의 경계가 있지 않나요?

 

부엉이: 돈으로 환산되는 건 있겠죠. 하지만 이렇게 이야기하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인터넷이란 것이 그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었어요. 각자 골방에 웅크리고 접속해 있는 사람들이 다 영화평론가이고 마니아고 대중이기도 하고, 다 그래요. 각각의 골방에서 선 하나로 연결돼 있는 사람들을 어떻게 감화시킬 것인가가 제 화두예요. 그러니까 주류네 비주류네 이런 개념엔 더 이상 관심 없어요. 모든 개인의 사회고 모든 개인의 음악이고 모든 개인의 사랑이고 모든 개인의 상품이고 모든 개인의 …….

 

 

 

: 우리 사회가 매우 개인화되었다는 말이군요. 그리고 개인화가 주류와 비주류의 경계를 의미 없게 만들었다는 뜻이네요. 늑대소녀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늑대소녀의 경우는 당시에주류를 감싸는 비주류라는 말에 감동했던 그런 청취자 중에 한 사람이었잖아요. 지금은 부엉이와 같은 생각인가요?

 

늑대소녀 : 제가 생각하기에는 대중은 있어요. 주류도 있고 비주류도 있어요. 여기 있는 사람들도 많이 부딪치지 않나요? 생활에서 견해나 취향이나. 분명히 대중은 있고, 주류도 있고 비주류도 있다고 생각해요.

 

 

 

: 근데 자꾸 모호한 게, 감싸 안는다는 의미, ‘주류를 감싸 안는다는 의미가 명확하게 어떤 것이지 잘 모르겠거든요?

 

부엉이 : 주류라는 개념이 등장하지 않고는 비주류가 존재할 수 없잖아요. 그런데 늘 왜 그래야 하는가라는 거죠. 저는 그런 질문을 한 거예요. 주류는 늘 비주류를 다수 속에 편입시키려 하잖아요? 그런데 저는 오히려 비주류가 그 작은 손으로 거대주류를 감쌀 수 있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거죠. 당시에는 그게 일종의 전복이라고 생각했어요. 주류, 대중만이 대접받고 그 사람들만의 견해만이 인정되는 사회, 다양성이 인정되지 않는 사회에서, 비주류의 전복이라고 당시에는 생각했어요. 그러나 지금은 주류건 비주류건 관심 없어요.

 

오로지 제 관심은, 모든 것에 관심 있고, 모든 것에 무관심하기도 한 각 골방의 개인들이에요. 여전히 존재하는 주류와 비주류에 대한 늑대소녀 얘기는, 다르다는 이유로 소수취급을 많이 받아온 현실 때문이 아닐까 생각하는데요, 실제로너희는 왜 이렇게 특별나게 구느냐? 다들 하는 대로 따라할 순 없냐?’라는 말을 많이 듣기 때문에…. 여기서 늑대소녀가 비주류고 다들 하는 대로의 그다들이 주류일 순 없잖아요? 음악이란 관점으로 축소시키자면오버는 주류고 언더는 비주류다라고 말할 수 있겠으나, 그런 개념역시 돈으로 환산되는 가치 일뿐 이제는 본래의 개념자체가 일그러졌다는 얘기예요. 처음 제 슬로건이었던주류를 감싸는 비주류는 선곡상의 의미가 컸어요. <팝갤>은 비주류라 칭해지는 비대중성 음악을 방송하겠다, 그 비주류로 너희들이 주류라 일컫는 것들을 감싸보지, 뭐 대충 이런….. 그러나 이내 그 슬로건은 방송철학이 되었지요. 주류는 많이 굴러다닌 탓에 너무 식상하니 신선한 비주류를 들어봐라, 너희들이 알고 있는 것들이 음악의 모든 것이 아니다. 어쨌든, 더 이상 주류와 비주류는 제 관심 대상이 아니라는 거죠.

 

 

 

라디오가 더 이상 대중매체가 아니라는 부엉이의 말은 이것인지도 모른다. 그녀에게 청취자는 더 이상 막연한 대중이 아니라, ‘각각의 골방의 개인들인 것이다. 따라서 라디오는 그 개인을 위한 더 이상대중적이지 않은매체라는 것이 그녀의 생각이었다.

4. 주류를 감싸 안는다는 것

 

 

 

인터뷰 자리에는 처음부터 <팝갤> 애청자들이 함께 했었다. 이들은 위기에 처한 프로그램을 살리기 위해 스스로 보도자료를 만들어 배포한 적극적인 청취자들이었다. 그 중에 한 명을 인터뷰 했다.

 

 

 

<팝갤> 청취자 미니 인터뷰

 

 

 

도래미파 소녀

 

1. <팝갤>은 언제부터 듣기 시작했는지.

 

2년 전. 전주에 있던 때였는데, 제가 CD 얻어 듣던 선배한테 알게 됐어요. 지방 방송국에서 하는 방송이라고 해서 처음에는 별 기대 없이 들었는데 이제까지 제가 생각했던 라디오 방송이랑 너무 달랐거든요.

 

 

2. <팝갤>만의 매력이 있다면?

 

<팝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 좋다는 것도 중요한 이유가 되겠지만 청취자와 같이 만들어가고 싶어 하고, 소통하고 싶어 해요. 그게 가장 큰 매력 같아요. 같이 만들어가는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애청자를 존중하죠. , 그리고 심야 시간에 너무나 잘 어울리는 박 피디님의 목소리도 빼놓을 수 없겠죠.

 

 

 

3. 보도 자료를 만들고 <팝갤> 복원운동을 하는 이유는?

 

음악 찾아 드는 사람들의 귀는 점점 발달하는데, 대부분의 공중파 프로그램들이 청취자들을 따라가질 못해요. <팝갤>이 공중파의 보수성을 깨준 거죠. 보도 자료를 만들고 복원 운동에 열심이었던 이유는 그저 <팝갤>같은 프로가 하나쯤은 살아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적극적일 수 있었던 건 <팝갤> 자체가 워낙 노력하는 프로그램이에요. 매일 방송일 때는 매일매일 너무 다양했고, 듣다 보면 이거 만드는 사람들 정말 노력하는군,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매일 방송이었을 땐 다들 조용히 듣던 청취자였다가 축소?폐지 문제가 생기면서 적극적인 청취자가 될 수밖에 없었죠. 다들 저랑 비슷한 심정일 것 같아요. 이 프로그램만은 지키고 싶다. 뭐 그런.

 

 

 

: 팝스갤러리는 음악 외적으로도 이를테면 문학, 일상적인 소리, 그림 등의 문화 전반을 소재로 삼고 있는데, 이런 다양한 문화를 프로그램 안에서 소화하고픈 의도가 있으신 건가요?

 

부엉이: 있어요. 문화 전반에 대한 자잘한 열망들은 앞으로도 각 코너들을 통해 음악들과 접목될 거예요. 커버아트, 그림, 사진작가 등에 대한 이야기들이 방송되었던 것처럼…. 시는 애청자들이 더 좋아하구요.

 

 

 

: 청취자들은 어떤 분들이 많은가요? 직업이라든지 연령층이라든지.

 

부엉이: 직업은 별로 없는 것 같고요.(웃음) 예술에 대한 식견들이 아주 높은 분들이에요. 때로 우리가 감화를 받을 때도 있구요. <팝갤>이 청취자들을 만들어 가기도 하고, 청취자들이 <팝갤>을 만들어가기도 하고, 청취자들과의 상호작용이 많아요.

 

 

 

: 어떤 식으로 상호작용이 이루어지는 거죠?

 

부엉이 : 사연 하나하나가 예사롭지 않죠. 예전에 오프닝 멘트를 할 때는 청취자 사연으로 대체한 적이 많았어요. <팝갤> 게시판에는 사진이나 그림 전람회, 영화상영 일정 등이 늘 올라와 있어요. 모두 다 정보를 공유하고 있죠. 같이 향유할 수 있도록. 좋아 보여요.

 

 

 

: 청취자들과 제작까지 변화시키는 그런 커뮤니케이션도 있는 건가요?

 

부엉이 : . <팝스갤러리에 갔다> 코너도 단발성이었는데, 청취자들의 요구에 의해서 장기 지속되고 있는 거구요. 개편하기 전이나, 변화를 모색하고 싶을 때 애청자들에게 묻기도 해요. 청취자들의 진지한 요구가 좋은 방송을 만드니까.

 

 

 

[팝스갤러리 LP커버 전시회]

 

 

 

: 늑대소녀를 만난 게 2001년 인가요?

 

늑대소녀 : . 2001 8.

 

 

 

: 늑대소녀의 입성이 <팝갤>을 변화시킨 큰 사건이라던데?

 

부엉이 : 그렇죠. 제가 작가의 지배를 받고 있죠. 원래는 늑대소녀는 우리 애청자였어요. 글이 좀 되더라고요. 그림도 좋아하는 것 같고. 문학도 좋아하고, 성격도 있는 거 같고. 그래서 우리 같이 한 번 해볼까 했죠.

 

 

 

: 늑대소녀는 그럼 첫 직장인가요?

 

늑대소녀 : 네 학교 휴학하고 있다가 다니다 말고 있다가 그렇게 됐죠. 처음에는 갈등을 했는데 그렇게 됐어요. 가출하려고 방송 시작했어요.

 

 

 

: 방송을 듣다 보니까 PD가 자리를 비우면 진행을 하기도 하더라고요?

 

부엉이: 지금은 늑대소녀 방송 팬클럽도 있어요.

 

 

 

: 이 이야기를 왜 꺼냈냐면, 방송 시스템이 그렇지 않잖아요. 보통 PD와 작가의 관계는 수직적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 주종관계가 보통이잖아요?

 

늑대소녀: 저희는 그냥 특수한 경우인 것 같아요. 그냥 꿍짝이 맞아서

 

부엉이 : 전 권위적인 PD는 아니에요. 작가도 그렇고….

 

늑대소녀 : 저도 저희 관계를 PD와 작가 이상의 관계로 생각해요.

 

 

 

: 그러니까 코드가 맞는 동반자의 관계인 거군요.

 

부엉이 : 특수한 거죠. 거의 대부분 주종관계인데, 아무래도 우린 특수한 듯….

 

 

 

[인터뷰가 있던날 늑대소녀와 부엉이를따라온‘ <팝갤>애청자들]

 

 

 

: 지금까지 이야기를 들어보면 <팝갤>이 공중파 라디오의 대안적인 프로그램처럼 느껴지는데요. 제작 시스템도 그렇고 음악방송으로서의 지향점도 그렇고. 청취자들이 만든 보도 자료에 따르면 진보적인 성격의 프로그램이라고 소개하던데 여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부엉이 : 사실 별 생각이 없어요. 진보적이라는 그런 말은 부담스러워요. 진보적인 방송을 하고 싶다거나 뭐 그런 생각 없구요, 새로운 음악이 너무나 많은데, 우린 그걸 들려주고 싶은 거예요. 한번 듣기만 하면 청취자들도 좋아할 수 있을텐데, 들을 기회조차 없다니말이 안되죠. 지금은 이런 방송이 흔하지 않은 거겠죠.

 

비주류면 진보적이거나, 소수면 진보적이거나 그건 아니잖아요. 그래도 청취자들이 진보적인 방송이라고 한 것은, 우리 방송이 사실 음악적으로는 앞서나가는 면이 있어요. 우리가 사람들의 음악적 취향이나 기호를 앞서가는 면은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경험이 사실 많이 있어요. 또 여기저기서 워낙 압력(?)을 많이 받아서 정말 진보의 첨병인 것처럼 돼버렸어요.

 

 

 

: 그런 것 같아요. 우리사회에서 소수는 스스로 진보가 되려고 하지 않더라도 그렇게 되어버리는 그런 이중적인 어려움이 있는 것 같아요. 정리하는 의미로 질문을 드릴게요. <팝갤>이 매일 프로그램으로 복귀한다면, 어떤 프로그램이 될 지, <팝갤>의 미래에 대해 들려주실 수 있나요?

 

부엉이: 저희가 새로운 코너를 구상하다가 축소가 됐거든요. 마이크를 들고 밖으로 나가는 거예요. 2시간 동안. 뚜벅뚜벅 걸어서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나중에 BGM으로 음악은 입히고. 그래서 가까운 카페까지 가서 사람들과 이야기도 하고, 그런 다양한 방송을 하고 싶어요. 그리고 그것 말고도 다양한 코너들을 얘기했었어요.

 

 

 

: 실험적이네요.

 

부엉이 : 실험적인 건 아니에요. 그냥 사람들이 그렇게 이름붙이는 거지, 그런 말은 제가 피해의식이 있어요. 그냥, 단지 한 번 해보고 싶은 거예요. 스튜디오 밖으로 나가서 소음도 들리고 차도 빵빵거리고 그런 것을 해보고 싶어요. 음악뿐만 아니라 다른 소리도 들어보자, 탈 스튜디오!

 

 

 

 

 

 

탈 스튜디오! 분명 이들에게서 무언가로부터이탈하려는 욕망을 엿볼 수 있었다. 그것이 스튜디오이건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이 사회이건 그들의 욕망은, 오랫동안 잠자코만 있는 나같이 무딘 사람도 감지할 수 있는 크기의 것이었다. 동시에 그들은감싸 안기를 바랐다. 이탈과 감싸 안음. 이것이 어떻게 동시에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이탈에 대한 욕망이 커질수록감싸고픈 마음이 작아지는 것은 아닐 것이라 생각해볼 뿐이다. 그것은 둘 다 한 마음에서 생겨난, 세상에 대한 진지한 태도이기 때문이다.

 

 

 

이 인터뷰는 지난 2 15일 이루어졌다. 인터뷰 이후 <팝스갤러리>가 지난 3 29일부터 매일 방송으로 복귀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다행스런 일이지만 아쉽게도 자정 12시 심야방송 제자리 복귀가 아니라, 오후 시간대로 시간대를 옮겼다고 한다(오후 5-7, 토요일 5-6 30, 일요일은 쉼). 그러나 인터뷰를 마친 후 지금까지도 나의 몽롱과 수면의 행방은 아직 찾지 못했다. 또한 라디오, 변두리, 마이너 그리고 소통이란 낱말로 무언가 새로운 그림을 그리고자 했던 처음 기획은 엉성한 밑그림만 남기고 말았다. 바라건대, 그 밑그림 언저리 어딘가에 나의 몽롱과 수면이 다정히 함께 잠자고 있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