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정의 새로운 도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가 곧 다가온다. 우리가 이 사람을 만난 이유도 선거 때문이다. 이 사람이 국회의원이 되겠다고 나선 것이다. 퍼슨웹은 지난 2000년에 이미 이 사람을 만난 적이 있다. "우리 시대의 모범생" 전 금속노련 사무처장 심상정. 이번 총선을 앞두고 민주노동당(이하 "민노당") 비례대표 1번 후보로 공공연히 거론되던 그가 2004. 2.27 마침내 당내 비례대표 경선에 출마했다. 당내 경선 후보 등록 전인 2004.2.14 퍼슨웹은 그를 만나 당내 경선과 총선을 앞둔 심경을 들어봤다.

프롤로그 : 그 또는 그녀

 

 

지난 퍼슨웹 인터뷰에 자세히 나와 있듯이 심상정은 구로공단에 위장취업한 후 지금까지 줄곧 오랜 세월 노동운동에 몸담아왔다. 쉽지 않은 삶을 살아온 그에게 퍼슨웹은 “우리 시대의 모범생”이란 존경 어린 명칭을 선사한 바 있다. 한편, 이번 인터뷰에 동석한 조주은은 연배와 이력, 지명도의 차이는 있으나 심상정과는 또 다른 방식으로 심상정처럼 ‘노동’과 ‘여성’을 화두로 삼아 살아온 인물이다. 대학 졸업 후 그는 노동운동 하러 울산에 가는 남편을 따라가 두 아이를 낳고 남편을 열심히 내조하며 살았다. 결혼도 결혼이지만 노동운동의 대의에 복무한다는 사명감 없이 그가 기꺼이 남편과 함께 울산에 간 것은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조주은은 새로운 자각을 안고 남편을 울산에 두고 상경하여 여성학 공부를 시작하게 된다. 결국 그는 울산 노동자 가족에 대하여 연구하여 논문을 쓰고 책까지 냈다.

 

그 날 이 두 사람이 이 글을 쓰게 된 나를 사이에 두고 가까이 앉아 있었다. 둘 다 여성이고 엄마이고 노동운동의 대의를 아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 동일성에는 차이도 존재한다. 나는 그들의 동일성과 차이, 둘 다 놓쳐서는 안 된다고 여긴다. 인터뷰 내내 그리고 쓰는 내내 나는 그 점을 의식했다. 물론 이 인터뷰는 심상정에 대한 것이지 조주은에 대한 것이 아니다. 따라서 이 글에 굳이 두 사람에 대한 내 시선을 낱낱이 드러낼 필요는 없다.
그러나 나는 심상정처럼 노동운동에 직접 뛰어들어 자신의 이름 석 자를 갖고 앞장서서 싸워 온 여성의 옆에 조주은처럼 익명으로 노동자 남편의 뒤에서 싸운 여성이 있다는 사실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무엇보다도 심상정 특유의 남다른 의지와 열정이 있었기에 심상정이 갖가지 어려움에 굴하지 않고 지금껏 싸울 수 있었겠지만, 한편으로는 한 때의 조주은 같은 잘 보이지 않는 존재들이 무수히 있었기에 지금의 심상정이 존재하는 게 아닐까?

 

또한 나는 ‘그’라고 쓸지 ‘그녀’라고 쓸지 한참을 망설였다. 원래 나는 유일한 원칙과 확고한 기준 없이 여성을 ‘그’라고 쓰기도 하고 ‘그녀’라고 쓰기도 한다. 물론 늘 망설임이 수반된다. 그라고 쓸까, 그녀라고 쓸까? 이번의 망설임은 꽤 길고 무거웠다. 그인가 그녀인가. 어떻게 쓰는 것이 그 또는 그녀의 대의를 올바르게 잘 전달하는 것일까?

 

제목을 정하는 건 더 어려웠다. 이거다, 싶은 제목이 도대체 떠오르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제목이 남다르건 아니건 간에 일단 쓰는 사람의 마음 속에 떠오르고 그에 만족해야 제목이 정해질 것 아닌가. 제목 없는 상태에서 글을 쓰며 계속 고민하던 나는 어떤 책(나중에 언급된다)을 찾다가 우연히 그 책의 저자가 쓴 이 책을 발견했다.

 

“그녀가 승리해야 우리도 승리한다”

 

순간 눈이 번쩍 뜨였다. 바로 이거다! 이 제목을 택하지 않으면 절대 안 될 것 같은 생각마저 들었다. 그 이유를 스스로에게조차 잘 설명하기 어려웠지만 말이다. 제목을 들어보고 주위 사람들은 고개를 저었다. 민노당 비례대표 경선 후보인 심상정이 경선에서 꼭 ‘승리’해야 한다고 노골적으로 선동하고 있는 것 같이 들린다는 솔직한 우려를 구체적으로 전한 사람도 있었다. 어쩌지? 어떻게 하면 좋단 말인가? 제목에 대한 고민에 빠진 상태로 나는 글을 마무리하고 있는 중이다.


I. 무엇에도 뒤지지 말아라
 
우리는 심상정이 패널로 출연한 여성의 정치참여 확대에 관한 MBC 백분토론(2004.1.29 방송)부터 화제로 삼았다.
 
  
심상정(“심”): 아이고, 그거 말도 마세요, 얼마나 주위에서 말이 많았는지, 80년대 식 옷을 입고 나가면 되느냐, 얼굴이 동그랗게 나왔다, 머리 모양이 어떻구, 전혀 의식하지 않았던 것들인데……(웃음) 토론은 물론이고 다른 어떤 면에서도 뒤지지 않아야 된다는 거예요. 심지어 외모까지…… 노조하고 당의 차이를 확 느꼈어요.
 
퍼: 요즘 얼짱 바람이 무섭지요.
심: 그건 제가 안 해 본 건데(웃음).
 
심상정의 얼굴은 부드러운 곡선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러나 눈매와 입매는 단호하다. 금속노조원답게 목소리는 금속성을 띤다. 그의 삶을 반영하듯 강단 있는 인상이다. 그날의 방송에서 그는 발언을 많이 하지는 않았으나 그라는 존재가 갖는 질량을 분명히 드러냈다.
 
 
퍼: TV토론 참석자들이 여성의 정치참여가 확대되어야 하는 이유랄까 근거로서, 여성이 남성보다 청렴하기 때문에, 현재의 후진적이고 부패된 정치 풍토를 개선하기 위해 여성의 정치참여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많이 하던데요. 타당한 면이 없지는 않지만 뭔가 미진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습니다. 여성은 부패하지 않을 거라는 가정은 단순하고 위험한 것 같습니다. 그보다 더 근본적인 접근이 아쉽더군요. 여성의 정치참여가 왜 확대되어야 하는지 이유를 굳이 설명해야 한다는 게 우습고요.
 
심: 맞습니다. 그날 나온 양성평등선거구제니 여성전용선거구제니 하는 제도 또한 각 정당의 이해관계가 깔려 있는 것들이지요. 여성 의원마다 처지가 다르구요. 개개인을 보면 나름대로 잘 하고 있는 여성 의원들도 자신이 속한 정당의 입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죠.
 
 
TV토론에서 심상정은 여성의 정치참여 확대 방안으로 비례대표의 수를 늘리고 여성할당률을 50%로 하자는 제안을 하였다. TV토론 후에 한나라당까지 동조하는 움직임을 보여 이번 총선부터 도입될지도 모른다는 예상을 불러일으켰던 여성광역선거구제(여성전용선거구제)는 결국 도입되지 못 했다. 심지어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장 이재오는 여성광역선거구제 도입 논의는 “여성계에 대한 립서비스”였다는 발언까지 서슴지 않았다. 한편, 한나라당의 포스트 최병렬 주자로 물망에 오르고 있는 박근혜가 불법정치자금 2억원을 수수했다는 설이 떠돌고 있다.
 
 
 
화려한 경력
 
 
퍼: 현재 어떤 직책을 맡고 계십니까?
 
심: 금속노조 조합원이죠. 2001년부터 사무처장 하다가 작년 말에 그만 두었습니다. 앞으로 국회의원이건 뭘 하건 간에 조합원으로서의 권리의무는 다 하려고 합니다. 금속노조 사무처장은 조합원 직선으로 선출되었습니다. 노동운동 경력 중에 선출직으로는 유일하고 또 맡아 본 직책 중에서 제일 고위직이었지요. 작년까지 사무처장 하면서 주5일제도 쟁취했고, 많은 사람들이 저를 금속노조 사무처장으로 기억할 것 같아요.
 
퍼: 그럼 선거를 치른 경험이 있으시네요.
심: 1기, 2기 사무처장을 계속했는데 경선은 아니고 단일 후보였죠. 단일 후보니까 지지율은 높았고요.
 
퍼: 민노당에서의 직책과 활동은요?
심: 창당 발기인이고 대의원 직과 중앙위원 직도 맡고 있습니다. 당 대회 부의장도 지냈고요. 당 매체인 진보정치와 이론과 실천에 기고도 했었지요. 노조에 있으면서 민주노총 지도 하에 당의 여러 방침을 실천했고요.
 
 
그런데 심상정은 뭔가 더 할 말이 있는 듯 했다.
 
 
심: 이 질문이 나왔으니까 말인데, 어떤 신문에서 내 경력을 어디서 찾을 수 있냐고 하더군요, 거론되는 것에 비해 경력이 이렇게 없냐고 하더라고요.
퍼: 어? 경력이 화려하신 거 아닌가요? 구로동맹파업에 서노련에 전노협 투쟁국장…
 
심: 글쎄 뭐, 직책으로 따지자면……그래서 내가 그렇구나 싶더라고. 그런 걸 의식한 적은 없었는데……
퍼: 아마 제도권 정치인이 되시려면 경력에 관한 질문은 앞으로 많이 받으시게 될 것 같은데요. 이런저런 경력 다 따지겠죠.
 
 
화려한 경력이 아니냐는 반문에 그는 보일 듯 말 듯 조용한 미소를 잠시 머금었다. 경력이 왜 이렇게 없냐고 물은 기자의 눈에는 그녀의 ‘투쟁’ 경력이 쓸만한 경력으로 보이지 않았던 모양이다.
 

II. 자본과 정권의 도전은
늘 앞서간다
 
퍼: 지난 2000년에 저희 퍼슨웹과 인터뷰하신 때로부터 시간이 꽤 흘렀는데요. 그간 활동하시면서 어떤 변화를 느껴 오셨는지 여쭈어 보고 싶습니다.
심: 아, 답답함을 많이 느끼죠. 그 때보다. 답답함과 또새로운 희망이랄까, 동전의 양면 같은 감정들이 교차합니다. 당 활동을 하게 된 것도 그것과 맞물립니다. 노동자들의 정치조직화라는 화두를 갖고 구로에서 소그룹 활동을 하고 서노련도 하면서 노동운동을 한 건데요. 그 때 느꼈던 게 당시의 정치적 실천이 인텔리들의 페이퍼 활동에 한정되어 있었다는 거죠. 그 때 저는, 대중적 토대 없는 이념 노선 논쟁이란 굉장히 공허하다, 이런 확신이 있었죠. 아마 여성이 갖는 특유의 현실성하고도 관계가 있을 거예요.
 
그런데 거대한 대중운동의 흐름 속에서 개별 실무자로서의 한계가 있었고 갈등이 컸어요. 대중운동을 목적의식적으로 지원하고 지도할 수 있는 그런 힘 없이 개인 실무자로 노동운동하면서 한계를 많이 느꼈죠. 대안도 결국 우리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는데……힘겹지만 내 위치에서 할 수 있는 것을 다 할 수밖에 없다, 대중공간에서의 운동가로서의 역할에 충실하자, 이러면서 민주노조의 발전이나 산별조직화에 주력했습니다.
 
어떻게 싸울 것인가
 
심: 항상 느끼는데, 주체의 준비 정도보다 자본과 정권의 도전은 늘 앞서간다, 역사는 주체 역량보다 항상 앞서간다, 노조 운동이 주로 공장 울타리 안의 임금투쟁에 매몰되어 있는 와중에 아이엠에프 이후 노동운동가들은 준비도 안 되었는데 신자유주의가 본격화되었습니다. 임금 협상 등 노사관계가 민주노총의 중심과제였었는데 변화된 상황과 자본의 전략 앞에 무방비 상태가 되다시피 했죠. 그간 민주노총의 역량이 확대되어 왔지만 일선 현장은 계속 무너지고 있습니다. 신자유주의 공세가 현장에 깊숙이 파고 든 거죠. 아무리 단단한 건물이라도 계속 가랑비가 스며들면 물을 먹게 되는 것처럼. 일선에 있으면서 굉장한 위기의식을 느꼈어요. 이 신자유주의 공세를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 민주노총이 발전해 왔는데도 노동운동은 계속 고립되는 느낌이 드는 거죠, 손해배상 가압류 등 자본의 탄압과 같은 이유도 있지만, 그보다 현장에서 자본의 여러 가지 전략이 효과적으로 파고 드는 데에 대한 위기의식 때문일 거라고 봅니다.
 
 
 
심상정의 금속성 목소리는 진지하고 심각했다. 노동운동의 최전선에 계속 서 있던 그가 몸소 겪어 얻은 결론을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심상정이 금속노조 및 민주노총으로부터 민노당으로 활동의 무게중심을 옮기게 된 이유는 바로 다음 대목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심: 지금 일선 활동가들이 위기의식이랄까 패배의식을 갖고 있어요. 이 상황에서 정치운동의 강화를 통한 대안적 실천이 우리의 과제라고 봐요. 제가 민노당에 상근하지는 않았지만 초기부터 관여해 왔는데, 이젠 급하다는 느낌이 들어요.
 
 

III. 일하는 엄마, 투쟁하는 며느리
 
퍼: 지난 퍼슨웹 인터뷰 제목이 “우리 시대의 모범생”이었는데요. 모범생이란 표현, 어떠셨어요?
심: 하하, 우리 엄마가 봤으면 뭐라고 했을까? 생소했어요. 우리 집에서 제가 제일 속썩이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노동운동 벗어나면 별로 평가를 못 받아왔던 삶이라서……
 
퍼: 국회의원이 되실 수도 있다는 거 가족들은 다 아십니까? 어떤 반응들이신지?
심: 민노당이니까 되겠나 하다가 될지도 모르겠다 싶으니까 반응이 달라져요. 친정에서는 1,2년까지만 하더라도 애도 크고 하는데 그만큼 (활동)했으면 되지 않느냐 이랬는데. 시댁도 며느리가 뭘 한다 이런 거는 2차적인 것 같아요.
 
퍼: 부군도 민노당원이신지?
심: 오늘인가 어제인가 가입을 한다고 했어요. 지금까지 가입은 안 했지만 철저한 지지자였죠. 가입을 하면 그에 상응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그렇게 못할까봐 가입을 못 하고 있다가 최근에 결심을 하더라구요. 자기 부인을 염두에 둔 것인지…… (웃음)
 
퍼: 최근에 기성 보수정당의 어느 여성 인사가 인터뷰한 걸 보았는데, 요즈음 당무 때문에 너무 바빠져서 장도 못 본다, 집의 냉장고를 열어 보니 본인이 장을 안 봤는데 채소랑 달걀 등 장본 게 들어 있더라, 본인이 바쁘니까 남편이 배려를 해 줘서 아무 내색하지 않고 혼자 장을 본 거다, 뭐 이런 내용이 있었어요. 저는 그런 거 보면 짜증이 팍 나요. 그 분은 정치 하시기 전부터 직업 생활을 꽤 오래 하신 분이거든요. 그런데도 본인이 꼬박꼬박 장을 봤다는 이야기죠. 남편이 장 한 번 본 게 뭐 그리 대수라고 개념 없이 자랑이랍시고 하는 건지, 아니면 정치적인 의도를 갖고 그러는 건지…… 보수적인 다수의 유권자들에게 자신은 집에서는 현모양처라고 어필하려는 의도로 말이죠. 어느 쪽이건 짜증나긴 마찬가지예요.
심: 짜증나죠. (웃음)
 
퍼: 심 선생님 댁의 가사노동 분담에 대해서도 안 여쭈어 볼 수가 없는데, 어떠신지요?
심: 결혼 초기에는 제가 많이 했죠. 남편은 빨래나 청소를 거들었어요. 남편이 세탁할 때 저는 끝까지 혼자 하게 그냥 내버려둬요. 세탁기 돌리는 거야 누가 못해, 빨래 종류 별로 분류하고 빨고 널고 마르면 개고 장에 갖다 넣고 다 해야지… 설거지는 하는데 음식 만드는 건 자기 영역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같고. 도와준다는 개념을 벗어난 지가 한 2,3년 되나? 바탕은 민주적인데 가부장적 환경에서 커서 머리로는 생각이 되는데 몸이 말을 안 듣는 스타일이지요. 남자나 여자나 가정환경이 어떤가가 결정적인 것 같아요.
 
 
천하의 심상정 역시 한국의 기혼 여성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을 ‘시댁괴담’을 여러 보따리 갖고 있었다.
 
 
심: 하루는 시어머님이 제 남편더러 “같이 직장생활하니까 도와주며 살아야지 어쩌겠냐” 하시는 거예요. 뭘 갖고 그런 소릴 하시나 했더니 당신 아들이 커피 타 먹고 있는 거 보고 그러시는 거예요.
 
퍼: 자기 커피 자기가 타 먹는 것 가지고요?
심: 우리 시댁이 명절 때 남자들은 쭉 앉아 텔레비전 보고, 전화 오면 부엌일 하느라 바쁜 며느리들더러 아버님이 전화 받아라 하시는 분위기거든요. 남편이 속으로는 갈등이 있을 텐데 아버님 눈치 보느라 못 움직이더라고요. 그래서 아버님이 전화 받아라 하시면 내가 되받아 누구 아빠 전화 받으라고 지목을 하지. 하여간에 우리는 다른 것 때문에 싸우지는 않았는데 시댁만 다녀 오면 싸우는 거예요. 내일도 당장 시어머니 생신이세요. 며느리가 할 몫이 있죠. 그건 남편이 대신 못하죠. 넘겨 줄 수가 없는 거예요.
 
퍼: 양육 문제도 만만치 않으실 것 같은데요. 지난 인터뷰 때 아이가 엄마를 자주 못 봐서 ‘엄마병’에 걸렸다고 하셨네요.
심: 금속노조하면서 일주일에 한 4일 정도는 출장 다니곤 했어요. 예를 들어 창원에 가서 밤늦게까지 뒷풀이하고 그 다음 날 포항 가고 울산 가고. 한 이틀 정도 되면 갈등이 생기죠. 밤차 타고 올라가서 애 챙기고 다시 내려오고 그러지. 남성 동료들보다 몇 배는 고달프죠. 조직 사회에서 그런 게 잘 고려가 안 돼요. 고독감을 많이 느끼죠.
 
퍼: 아이를 가진 직업 여성이라면 다 겪게 되는 문제겠네요.
심: 늘 박빙으로 살죠. 항상 쫓기고. 긴장을 늦추면 구멍 난다는 위기감 같은 것
 
 
심상정은 다음과 같은 일화도 들려 주었다.
 
 
심: 우리 애가 반에서 선거로 부반장으로 뽑혔는데, 애 아빠가 애한테 엄마, 아빠가 다 바빠서 네가 부반장 해도 신경을 쓰기가 어렵다면서 그런 건 앞으로 안 하는 게 좋겠다고 그러는 거예요. 반장, 부반장하면 학부모들 특히 엄마들이 신경 쓸 일이 많잖아요. 근데 내가 애 아빠한테 화를 냈죠. 왜 애한테 그런 소리 하냐고, 걔한테는 걔 인생이 있는데 왜 우리가 하라 마라 하냐고, 애한테는 네가 하고 싶으면 하라고, 엄마는 도울 수 있는 건 돕는다고.
 
결혼의 이유
 
퍼: 결혼 안 하는 여성들도 많고 또 결혼해도 소위 출산파업이라고 자녀를 안 낳는 사람들도 점점 늘어나고 있잖아요. 혹시 심 선생님은 결혼을 안 했더라면, 아이를 안 낳았더라면, 이런 후회는 안 해 보셨나요?
심: 이미 현실이 되어 버렸으니까 그런 생각은 안 하는데…서른 네 살에 결혼할 때 주위 사람들이 다 독신주의자가 결혼한다고 그래요. 나는 내가 독신주의자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는데. 결혼을 결심하게 된 게, 대중사업을 해 보니까 다수의 남성 노동자들은 결혼하지 않은 여자는 단지 아가씨라고 여기는 경향이 있어요. 여자는 결혼하기 전까지만 활동할 거라는 선입견도 뿌리 깊고 남성 활동가에게 주는 신뢰를 여성 활동가에게는 잘 안 주죠.
 
본격적으로 사회에 편입하지 않은 사람들이 갖는 관념적 한계가 있는 것 같아요. 결혼하지 않은 여자 입장에서는 삶의 고통에 제대로 다가가기 어렵다는 것도 느끼고, 그래서 결혼하여 직접 뼈 속 깊이 겪고 돌파해야 한다고 결심했죠. 이 사회에서의 문제들이란 결국 가정을 이루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고충이라는 생각도 했고……또 한 가지는, 열사들 돌아가시고 현장에서 유가족들을 많이 봤는데, 제가 애를 낳아 보니까 그 분들이 가슴에 평생 담아야 하는 고통이 확 다르게 느껴졌어요. 그래서 어려움이 많았지만 결혼을 잘 했다고 생각합니다.
 
후회는 없지만 자각은 있어요. 애 낳고 생활하면서 개인적으로 이런 모순을 돌파하는 게 얼마나 인간을 어렵게 만드는지 알게 되었죠. “치마만 둘렀지 여장부다”, “수퍼우먼이다”, 그 전엔 이런 말 들으면 싫지 않았고 내심 우쭐하기도 했었죠. 그러다가 이건 함정이다, 가진 자들만이 할 수 있는 소리다, 그걸 깨닫게 되었어요. 그래서 문제의식이 없던 시절을 부끄럽게 여기게 되었습니다. 스스로 얼굴이 확 달아 오르더라구요. 그 뒤에 또 그런 소릴 들었을 때 제가 그랬죠. 다시는 그런 소리 하지 말라고, 우선 나는 치마를 안 입고 다닌다고. (일동 웃음)
 
그들의 차이
 
퍼: 아시다시피 같은 활동가끼리 결혼을 많이 하잖아요. 결혼 후에 부인 쪽이 활동 접는 거 많이 보셨을 거예요. 남편은 직업적 활동가 하고, 부인은 아이 보면서 돈까지 버는. 성별분업의 해체인 셈인데, 갈등이 커져 결국 남자도 운동을 접는 결과도 생기기도 하고요. 활동하면서 너무나 많이 보셨을 텐데……
 
 
이 질문은 조주은이 던진 것이다. 나는 옆자리의 조주은을 곁눈으로 재빨리 보았다. 서두에 언급한 심상정과 조주은의 차이의 일단이 드러나는 지점이다.
 
 
심: 내 아는 후배는 결혼할 때 남편이 결혼 조건을 이렇게 내세웠대요. 자기는 운동하고 부인이 돈 벌어 뒷바라지할 것, 아들을 낳을 것.
 
퍼: 그래서 아들을 낳기는 낳았나요?
심: 지금도 돈 벌며 뒷바라지하고 있고 아들도 낳았죠.
 
 
조주은의 말이 계속 이어진다.
 
 
퍼: 아이 키우기 참 힘들잖아요. 그런데 너무나 단호한 입장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약한 모습이라는 비난…저도 상처 받은 적이 있는데… 생활도 어렵고 너무 힘들어 아는 선배한테 하소연을 했더니 남편에게 잘해 주라는 말만 들었어요. 남편을 쉬게 해라, 혹시라도 남편에게 뭐라 하지 마라, 넋두리하지 마라, 단호해져라. 근데 그 선배는 친정에서 아파트도 사 주고 애도 봐 주고 그렇게 살았거든요. 사람마다 사는 환경이 다른 건데 제게 그런 말을 하더라고요.
심: 저한테는 굉장히 아픈 이야기네요. 저도 단호한 사람 중의 하나였어요. 근데 제가 냉정했던 거는 조주은 선생의 그 선배가 단호했던 것과 좀 달라요. 사실 노동운동하게 된 것도 학교에서 운동하는 여학생들을 보고 문제의식을 느껴서였어요. 여학생들의 경우 남자친구나 오빠의 문제의식이 그대로 유입되는 경우, 즉 기성의 파워가 이식되는 경우가 많았어요. 학년이 올라가면 활동을 본격적으로 해야 하는데 남학생과 달리 외곽으로 빠지고 활동가 애인 하나씩 두고, 남학생들의 가부장적인 권위와 맞물려 꼴불견이었어요.
 
 
 
심상정도 ‘차이’를 인식하고 있었을까? 작정한 듯 그의 답변은 길었고 적어도 내 생각엔 성실했다.
 
 
심: 옛날 얘기지만 제가 원래 학교 다닐 때 멋쟁이였어요. 생머리 길게 하고 5센티 넘는 하이힐 신고 다녔죠.
 
퍼: 심 선생님께서요?
심: 다들 안 믿는 눈치인데……(웃음) 1학년 때 유인물 받아 보고 하이힐 신고 신림동4거리까지 시위에 쫓아갔어요. 시위한 학생들 사진으로 찍어 놓잖아요. 학생처장이 시위학생 사진에서 날 보고 그렇게 희한해하는 거예요. 난 내가 그렇게 희한해 보인다는 것도 나중에 알았어요. 알고 보니 운동권 여자들은 모두 커트머리에 청바지더라고요. 학생처장이 고개를 갸웃하더니 날더러 운동권 애인이 있냐고, 그렇지 않으면 이런 여학생이 시위에 나갈 리가 없다는 거예요. 이 이야기를 왜 하냐면 그만큼 여성이 남성에 종속되어 있는 것으로 사고되었고 또 실제 그런 점이 있었다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남자 선배들에게 문제제기하면서 고민하다가 공장으로 나오고 후배들도 절 따라왔죠.
 
공장 생활이 힘들었지만 그래도 즐거웠어요. 그런데 같이 간 후배들이 많이 힘들어 했죠. 구조적 모순에 대한 고통이라기보다는 기존의 의식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럴 때 인간적이라는 게 과연 뭘까, 혼자서 고민 많이 했어요. 그 친구들은 내가 그런 걸 모르고 외면한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나는 고민 많이 했어요. 인간적으로 냉정한 사람 비슷하게 되어 버렸지만, 그런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운동하면서 굉장히 어려웠던 점들 중의 하나였죠. 후배들이 같이 고민하다가 이탈을 하는데, 이탈하더라도 서로 충분히 대화하고 좋게 할 수도 있겠죠, 근데 현실은 굉장히 불편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죠. 이탈한 건 다수였고 남은 건 소수였고……
 
 
 
심상정의 고뇌가 꽤 깊었다는 것이 감지되었다. 고민을 많이 했다는 말을 반복했고 비인간적인 사람으로 인식되었다는 말도 반복했다. 그에게도 일종의 상처로 남아 있었나 보다. 이탈자는 다수고 남은 자가 소수라는 말이 의미심장하게 들렸다. 심상정의 진심 어린 답변이 질문자 조주은에게는 어떻게 다가갔을까?
 
인터뷰가 있었던 날, 현대중공업 비정규직 노동자가 비정규직 차별 철폐를 주장하며 분신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의 이름은 박일수. 민노당의 진상보고서에 따르면 현대중공업 내 하청노동자 명단으로부터 자신의 이름이 삭제된 것이 분신의 직접적인 계기라고 한다.(링크) 이름 없는 자, 즉 아예 없는 것으로 무시당한 자의 분노와 좌절은 자기 몸에 자기 손으로 불을 붙일 정도로 어마어마했던 것이다.
 
비정규직 노동자 박일수가 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느꼈을 서러움에 가까운 감정을 혹시 조주은이 심상정 앞에서 느낀 것은 아니었을지. ‘밖’에서 ‘노동’하고 ‘투쟁’하는 남편들을 위해 ‘안’에서 밥짓고 빨래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오로지 남편의 아내이자 아이의 엄마로만 호명되는 여성들, 이들은 전선의 이면에 숨어 있다. 조주은은 이름 없는 자가 자신의 존재를 항변하는 심정으로 (비록 과거의 그 장본인은 아니지만) 최소한 자기의 이름을 갖고 전선 앞에 있었던 심상정에게 호소하듯 이 질문을 던진 것 아니었을까?
 
그런데 심상정 또한 대학 시절 운동권 여학생들의 이름이 삭제되어 가는 것을 보고 – 심상정이라고 예외였으리란 법은 없다 – 대학을 박차고 나왔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자신이 속한 조직 속에서 남성들에게 제대로 입 열어 자신의 고통을 말할 수 없는 어려움을 겪었다고 하지 않는가. 빛과 그늘은 제각각 그러나 동시에 서로를 품고 계속 세포분열한다. 어디까지가 빛이고 어디까지가 그늘인가.
 

IV. 남자처럼 일하고
여자처럼 승리하라
퍼: 심 선생님은 민주노총 위원장 자리에 도전할 생각은 없으셨어요? 그러니까 대권욕 같은 거 없으셨어요?
심: 후진적 사고일 수 있는데 지금도 좀 그렇지만 교과서적 사고방식을 가졌어요. 개인의 전망과 연결시켜 사고하는 훈련이 안 되어 있었고, 단점인지 장점인지 모르겠는데, 그런 걸 금기시했어요. 다른 욕심을 갖고 뭘 했으면 다른 길이 있었을지도 몰라요. 저는 지위에 관계 없이 살았고 지위에 관한 욕심이 없었어요. 그런데 그래서 과감하게 생각할 수 있었어요. 애매하게 인간관계를 절충하고 살지 않았고 원칙에 충실하게 발언할 수 있었죠.
 
퍼: 지위나 평가에 연연하지 않고 헌신해 오신 선생님의 자세는 굉장히 존경할 만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렇게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일반화의 위험이 있긴 하지만, 남성에 비해 여성들이 자기 성과를 따지고 평가하고 평가받는 면에 약한 것 같거든요. 성과를 따져야 사실 책임도 지게 되는 것일텐데요.
심: 업적에 비례하는 객관적 지위를 거론할 때 문제의식을 느끼긴 했어요. 구성원들이 인정하는 성과에 걸맞는 지위가 상응해서 같이 주어지지 않으면 질곡이 생긴다는 느낌을 받은 적도 있고요. 기피할 문제는 아니죠. 제 개인적 거취에 관해 큰 그림을 그려 본 적이 없어요. 적극적으로 그런 점을 추구하지 않았고, 이번에도 (비례대표 경선) 주변에서 나서지 않았으면 제가 직접 나서지는 못 했을 겁니다. 다른 분들 선거 지원하는 건 곧잘 했는데 내가 나서는 거는 부담이 가요. 교육 같은 건 몰라도 선동연설 같은 건 부담스럽고. 책임 같은 게 뒷덜미를 잡아서 과감하게 못 하겠어요.
 
퍼: 정치적인 수사를 구사하는 게 어려우시다는 거죠. 아무래도 여자보다 남자가 구라를 잘 치지.(웃음)
심: 그렇죠. 마음에 없는 말 잘 못 하죠. 그렇지, 남자가 잘 하지.(웃음) 그래서 남한테 상처도 많이 준 거 같아요 가령 누군가의 거취 문제를 놓고 이야기할 때도 돌려서 말을 못 하죠. 다들 평가가 이렇다 말은 못 하고 다른 이유 갖다 대고 돌려 말하는데, 나는 그런 거 비겁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또 그 개인의 발전에도 좋지 않다고 생각해서 있는 그대로 말하는데 그게 사람을 섭섭하게 해요. 말문이 막혀 버릴 때가 있어요. 소신껏 이야기하고 실천하고 마음에 안 들면 후려치고 이래야 하는데, 눈치 봐야 하는 게 너무 불편해 갈등이 많이 있어요.
 
퍼: 구라나 수사가 늘 배격되어야 할 건 아닌 것 같아요. 사회나 조직이 제대로 돌아가기 위해 필요할 때도 있지 않을까요? 지금까지 여자들이 조직을 책임지는 역할을 맡아 본 적이 별로 없어서 수사를 잘 못하게 된 건 아닐까요?
 
 
심상정의 토로를 들으며 문득 [남자처럼 일하고 여자처럼 승리하라]라는 제목의 책이 떠올랐다. 직장 생활을 시작한지 얼마 안 되어 발견한 책이었다. 미국의 성공한 직장 여성이 쓴 직장 여성을 위한 지침서. 직장초년병으로서 내가 당시에 모종의 어려움이나 불안을 안고 있었기에 그 책에 손이 간 것이 분명하다.
 
남자처럼 일하고 여자처럼 승리하라? 개처럼 벌어서 정승처럼 쓰라는 말은 들어봤어도. 무언가 절충적이고 타협적인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하다. 저자는 게임의 법칙을 받아들이지 않아도 좋지만 게임의 법칙을 모르고 게임에 임하는 것은 손을 등 뒤로 묶인 채 게임하는 것과 다름 없다고 쓰고 있다. 그 책에 “사기꾼이 되라”는 주문이 나온다. 어떤 일을 하건 간에 하기 전에 100% 알고 확신할 수는 없다. 사기를 치는 게 아닐까 하는 두려움과 의심 대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라는 것이다.
 
 
 
여자들은 왜 그럴까
 
 
 
심: 누가 그래요. 여자들은 말로 하지 왜 찔찔 짜거나 성질을 냅니까. 성질을 낸다는 게 바로 나를 두고 하는 말이예요.
 
퍼: 아, 선생님은 성질을 내는 쪽이시군요. (일동 웃음)
 
심: 2~30명 모이는 회의 구조 속에 여자 혼자 있어 봐요. 여성 문제 제기하면 얼마나 조직에 심각한 다른 문제가 많은데 그런 문제를 제기하느냐 그러지를 않나, 별 일이 다 있지요. 그래서 여성 활동가들이 좌절하니까 우는 거고, 나 같은 영악한 사람은 초장부터 내지르는 거지. 여자들이 태어날 때부터 울보입니까 뭐. 그런 풍토 속에서 계속 살았어요. 남자들이 여성 상급자들을 그렇게 불편해 한다는 것도 나중에 알았어요. 부서 회의를 하는데 나보다 하급자가 내가 있는데도 계속 자기가 나서요. 남자 상급자가 성질 내면 안 따지고 나중에 술이나 한 잔하고 말고, 여자 상급자가 야단하면 꼭 문제가 돼. 그 여자는 성질이 원래 그러니까, 이러고. 차차 인정을 받아서 여자라는 데서 오는 어려움이 줄어들긴 했지만.
 
 
 
 
 
 
  
남성은 할 수 있지만 여성은 할 수 없는 행동 다섯 가지
 
▶ 남자는 울 수 있지만 여자는 그럴 수 없다. -남자가 울면 합당한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여자가 울면 눈물을 무기로 내세운다고 여긴다.
 
▶ 남자는 성 관계를 가질 수 있지만 여성은 그럴 수 없다.-남자에게 스캔들은 별 거 아니지만 여자의 경우 해고당하거나 한직으로 내몰리는 데 연애사건이 결정적으로 작용한다.
 
▶ 남자는 안절부절할 수 있지만 여자는 그럴 수 없다. – 손가락으로 계속 탁자를 치는 등 남자의 안절부절한 행동은 ‘이쯤에서 끝냅시다’는 소리 없는 메시지로 여겨지지만 여자의 그런 행동은 짜증스런 작은 습관으로 보인다.
 
▶ 남자는 소리칠 수 있지만 여자는 그럴 수 없다. – 남자가 소리 지르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지만 여자의 분노는 자제력을 잃은 것으로 여겨진다.
 
▶ 남자는 추해도 되지만 여성은 그럴 수 없다. -남자의 과체중은 사회적 성공의 증표로 여겨지는 경우도 없지 않다. 하지만 여자는 날씬하지 않으면 자기 절제력이 부족해 일 진행에도 문제 있는 인물로 치부된다.
 
[남자처럼 일하고 여자처럼 승리하라] (링크)
 
  
 
CNN의 부사장까지 지낸 미국의 성공한 직장 여성과 남한의 전투적 여성 노동운동가가 각자 소속 집단에서 느끼는 문제의식이 이렇게 비슷하다니!
 

V. 이것이냐 저것이냐
 
 
퍼: 2000년 말에도 여성의 정치세력화를 다룬 백분토론이 방송되었죠. 그 때는 류시민 씨가 사회를 봤었죠. 그 때도 심 선생님이 출연하셔서 구조조정 과정에서 여성들이 1차적인 희생양이 되는 문제에 대해 노동계가 적극적으로 대응을 못했다는 점을 인정하시고 앞으로 여성운동계와 연대하여 적극적으로 대처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때로부터 3년 정도 흘렀는데 여성 비정규직노동자 문제 해결에 관하여 그간 성과가 있었는지요?
 
심: 비정규직 여성노동자 문제에 대해 직접적으로 대안을 갖고 실천하지는 못 했습니다 이제 여성할당이 이루어지고 있고 이 단계를 넘어서야 실천이 본격화될 것입니다. 이 문제를 노동운동의 중심의제로 올려야 합니다. 임단투나 제도개선투쟁과 동급으로 양성평등을 의제로 설정하는 게 과제입니다. 여성 상층 간부와 여성노동자들을 조직화해서 기본 투쟁의 동력으로 연결시켜 내야지요. 민주노총에서는 여성 문제는 여성 단위만 동원해 내는 수준 이상으로 힘이 안 실렸었습니다.
 
퍼: 여성후보로서의 정체성과 노동후보로서의 정체성이 충돌할 경우가 생길 수도 있을 듯한데요.
 
심: 당신이 노동후보지 뭐 여성후보냐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는데, 여성노동자 문제를 업으로 삼지 못한 것에 대해 부채의식이 있습니다. 대학 시절부터 지금까지 오면서 여성노동자나 일하는 여성에 대해 늘 고민해왔습니다. 전노협 시절 중앙위원여성할당제를 제시하여 그 문제 때문에 지도부와 부딪친 적도 있고, 전담해서 그런 업무를 한 건 아니지만 여성 관련 사안이 나오면 내가 일정 정도 역할을 안 할 수가 없게 되어 있었습니다.
 
저도 고민을 많이 해 봤는데 노동과 관련해서는 조직적 역량이 마련되어 있는 반면, 여성후보로서의 역할에 대해서는 토대가 없어서 어렵게 느껴집니다. 여성문제에 대해서는 내가 능동적으로 토대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부담이 큽니다. 조직적으로 뒷받침이 안 되면 사실 실천이 어렵습니다. 개인이 자신의 의지만 갖고 버텨낼 수가 없거든요. 전 그런 건 안 믿습니다. 결국 현장의 역학관계에 규정됩니다. 갈등이 있을 때, 자기 이해관계가 있을 때, 결국 누구 편에 서느냐, 이거는 자기기반의 문제죠. 여성문제에 대해 당내 투쟁이 강화되어야 합니다. 여러 발 앞서 못 갑니다. 반 발 정도 앞서는 것도 굉장히 힘겹습니다. 어쨌거나 만약 제가 국회에 들어갔는데 국회 내에서 여성비하나 성차별 문제가 발생하면 절대 가만히 안 있습니다. 단호히 쳐야 합니다. 남성이건 여성이건 민노당이 원내에 들어가면 기존 의원들은 엄청나게 경계할 겁니다.
 
 
 
퍼: 대단한 반향을 일으켰던 100인위원회(링크)의 행동방식에는 어떤 의견을 갖고 계십니까?
 
 
심: 당시에도 내 입장을 밝혔었는데, 100인위의 도발적인 문제제기 방식은 시대적으로 적절했다고 봅니다. 87년 대투쟁 이후 노조 운동이 남성중심적이었던 게 사실이예요. 이른바 노동해방 세상, 진보세상, 이런 구호와 전망에 이념적 한계가 있었고 기업의 틀 속에 있는 다수 남성노동자의 이해관계가 있었던 거죠. 여성주체역량 측면에서 종자돈이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책임을 많이 느끼고 있습니다. 아이엠에프 이후에 비정규직 문제가 대두되면서 본격적으로 여성노동자 문제가 조망된 겁니다. 지금은 여성노동운동의 주체형성기입니다. 이 점에 있어 민노당은 원칙적으로나 전술적으로나 실리적으로나 래디칼(radical)해야 합니다.
 
 
 
정치가 심상정
 
퍼: 국회의원 되는 거는 결국 정치를 하는 건데요. 진보정당의 원내 진출이란 역사적인 과제도 막중한 것이고요. 정치가가 되실 준비가 되셨는지? 정치가 심상정, 어떻습니까?
 
심: 정치가 심상정이라, 생소하네요. (웃음) 선례 없이 시험대에 오른 것이 부담스럽기는 합니다. 사실 걱정이 많아요. 여성 정책에 대해서도 체계적으로 교육받고 훈련하고 공부해야 합니다. 여성학 하는 분들이 정책을 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총선이 있다 보니 비례대표 경선에 나가게 된 건데, 사실 당내 사업에 매진해보고 싶었습니다. 당의 중심이 튼튼하게 갖추어지는데 복무하고 싶습니다. 원내 진출은 외연의 확장이지만 내실이 갖추어지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중심이 갖추어지지 않으면 결국 현실론을 따를 수밖에 없어요. 앞으로 노선 문제가 본격화될 거고 현실이 노선을 규정하는 힘이 엄청날 겁니다. 국회의원이라는 허울은 그럴 듯하지만, 아, 물론 국회의원으로 해야 할 중요한 일이 많죠, 원칙이나 방침 없이 밀려가다가 되려 나중에는 당과 운동의 발전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되어 내 개인의 의지와 관계없이 제일 먼저 사라져야 할 대상이 될지도 모릅니다. 노조 운동의 질적 강화 또한 당의 조직화 및 여성의 조직화 수준에 의해 규정 받을 수밖에 없고요.
 
 
인터뷰를 마치고 심상정은 그날 아침 별세하신 김진균 선생님의 빈소로 떠났다. 김진균 선생님 장례식에서 울려 퍼진 테이프에 담긴 육성으로 선생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한다. “이제는 노동자 계급이라는 말도 모호해졌습니다. 여성도 여러 차원에서 세분됩니다. 이제는 어린이, 동성연애자, 외국인 노동자, 탈북자 등 ‘작은 주체’에 관해 주목해야 합니다.” 점점 주체는 세분화되고 전선은 복잡해진다. 변하는 현실을 직시하여 원칙을 갱신하고 실천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은 자명하다. 심상정에게 주어진 과제는 매우 무겁다.
 

에필로그: “그녀가 승리해야
우리도 승리한다”
 
 
지금까지 나는 ‘그’라고 계속 썼다. ‘그녀’라고 써야 했을까? 둘 중 하나를 택하고 나서 내심 버린 나머지 하나를 계속 염두에 두고 있었다면, 사실은 버린 그것을 택했어야 하는 게 아닐까? 왜 저거 말고 이걸 택했는지 영문을 알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라고 쓰는 게 더 적절하다는 판단을 했기에 ‘그’라고 썼을 게 아닌가. 아마 ‘그녀’라고 썼다면 ‘그’에 대해 미련을 두었을 게 틀림 없다. 계속 ‘그’라고 부른 게 마음에 걸린다면 이제라도 ‘그녀’라고 한 번 불러보자. 앞서 찾아 놓은 제목으로, “그녀가 승리해야 우리도 승리한다”고.
 
승리란 무엇일까? 경선에서 비례대표 1번 후보가 되는 것? 나아가 진보정당 출신 국회의원이 되는 것? 물론 그것도 승리다. 왜 아니겠는가. 그러나 그 승리란 새로운 도전이자 위태로운 모험의 시작이다. 이미 그녀가 통찰하고 있는 것처럼 그 승리란 것이 오히려 그녀를 욕되게 하고 결국 그녀를 쓰러뜨릴지도 모른다. 그녀가 그렇게 몰락한다면 그 몰락이 비단 그녀만의 몰락이겠는가? 그러니 그녀가, 내가, 우리가 바라는 ‘승리’는 그런 게 아닐 뿐더러, 여기서 ‘그녀’가 심상정 개인만을 지칭하는 것은 더더욱 아닐 것이다.
 
그런데 ‘우리’란 누구인가. 함부로 우리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나는 그 점을 모르지 않는다. 당장 심상정과 조주은, 이 글을 쓰는 나를 ‘우리’라고 뭉뚱그려 부를 수 있을지 그것도 불투명하다. 그렇다면 우리란 누구인가? 심상정 그리고/또는 민노당을 지지하는 사람들? 김진균 선생님이 말씀하시길 그 의미도 모호해졌다는 소위 노동자 계급의 정치세력화를 추구하는 사람들? 또는 여성의 정치참여 확대를 지지하는 사람들? 나는 ‘우리’가 누구인지에 대한 의문을 안고서, “그녀가 승리해야 우리도 승리한다”는 애초의 제목을 무리하게 고수하려 한다.
 
 
새로운 도전을 결정한 심상정은 “보수정치의 얼음을 깨뜨리는 못”이 되겠다고 선언했다(링크). 권력과 자본의 도전은 늘 앞서가고 우리는 반발자국 앞서기도 어렵다는 심상정의 말이 자꾸 생각난다. 그녀 또는 그가 그 어려운 반발자국을 앞서서 용감히 도전하여 마침내 승리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