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변사람들

청계천변을 거닐다

우리는 청계천변을 거닐었다

70여년전 <천변풍경>의 재봉이가 구경한
천변의 세태와 2003년 옛모습을 되찾으려는
청계천변은 어떻게 달라져있을까
혹은 얼마나 비슷할까

거닐면서 만난 소란스런 청계천변의 사람들을 그려본다

 

 

청계천 도깨비시장의 풍경

▶ 청계천과 청계천의 사람들

태초의 문명은 강에서 시작되었다. 청계천의 원래 이름은 개천(開川)으로 서울의 서북쪽에 위치한 인왕산과 북악의 남쪽 기슭, 남산의 북쪽 기슭에서 발원하여 도성 안 중앙에서 만나 서에서 동으로 흐르는 연장 10.92km의 도시 하천이다.(주1) 그러나 이 글에서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문명이 시작된 강, 도시의 중심을 흐르는 하천-청계천에 관한 것이 아니다. 청계천에 뿌리내리고 있는 현재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문명이라고 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그러나 하나의 상징은 훌쩍 넘어서 있는 청계천 상가에 대한 이야기다.

청계천이 복개되기 전부터, 청계천이라는 이름은 언제나 고만고만한 사람이 북적이며 살아가는 도시의 변두리동네의 상징이었다. 식민지시절 그나마 중산층들이 모여있던 천변에는 한국 전쟁이후, 얼기설기 나무판대기를 이어 만든 목조가옥이 빽빽이 들어서 있었다.
잦은 홍수와 전염병은 오래 전부터 복개의 당위성을 부추겼다. 미진하던 청계천 복개는 해방이 된 후 막 시작되는 산업화에 발 맞추기 위해 본격적으로 추진된다. 그때 그 많던 목조가옥은 철근 콘크리트로 대체되고, 강이 덮인 자리 위로 고가도로가 들어섰다.
청계천은 한국 경제개발을 위한 초석인 동시에 희생양이었다.

▶ 문명과 반대로 흘렀던 청계천의 운명

그렇게 청계천을 지하 깊숙이 숨겨둔 지 40년만에(복개공사는 1958년부터 1961년까지였다(주2)) 청계천은 세상에 다시 드러난다. 누굴 위한 다는 명분으로 청계천이 다시 세상에 드러나는지 확인할 수 없는 소문만 무성하고, 그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 지에 대한 예측도 현재로선 불가하다. 그러나 좋은 구실과 좋은 결과로 치장된 복원의 의미의 앞과 뒤에도 청계천을 자신의 삶의 터전으로 살아왔던 사람들의 목소리는 찾을 수가 없었다. 그것은 좋은 구실과 좋은 결과를 의심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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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좋게 말을 하더라도 청계천은 개발로 논리에 의해 복개되었고, 다시 개발의 논리에 의해 복원이 된다. 쾌적한 환경의 조성 뒤에는 경제중심지로서의 서울의 역할이, 역사·문화 유적의 재발견 뒤에는 개발이익이 숨어 있지 않은지. 새로운 관광자원으로서의 역할은 보기 좋은 그림일 것이고, 이 낡은 강북지역의 지가 상승으로 생기는 이익은 숨어 도사리는 음험한 속내일 것이다.
그 논리에서 청계천은 물건처럼 다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그 곳에서 밥 벌어 사는 사람들에게 청계천은 물건 아닌 생존권의 다른 이름이다.

 

청계천이 복원식이 얼마 남지 않은 일요일, 나는 청계천 상가를 찾았다. 상가에는 물건을 구경하거나 사기 위해 가는 것이 맞는 일일 테지만, 그 날은 ‘물건’이 아닌 사람 때문이었다. 청계천 상가를 삶의 터전으로 몇 십년을 살아왔던 사람들에게 이제 곧 진행될 청계천 복원의 의미와 복원으로 인한 ‘그들 삶의 변화’를 이야기 듣기 위해서였다. 청계천을 물건처럼 다루는 사람들이 아닌 청계천을 하나의 생명, 생존의 터로 생각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목적이었다.

서울에 살면서도 마땅히 청계천 상가에 올 이유가 없던 터라, 청계천 중앙시장의 초입은 호기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건 호기심이라기보다 의아함, 혹은 의문감이었다.
지하철 신당역에서 도깨비 시장으로 이어져 있는 중앙시장의 한 구석에는 입다버린듯한 옷가지와 신발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입지 않는 옷가지들을 나는 순전히 쓰레기봉투 값을 아끼기 위해 동네 한 구석에 초라하게 서있는 헌옷수거함에 의레히 버리곤 했다. 나는 그 옷가지들이 어디로 가는지는 한 번도 행각해본적이 없다. 당연히 어딘가에서 재활용하기 위해 그런 수거함이 있겠지만서도.. 그런 물건들을 “장터”에서 보았을 때는 자그마한 충격이 다가왔다.
아니 저런 물건을 팔겠다는 건가? 저런 물건을 판다는 것은 사는 사람들이 있어서 아닌가? 의문은 순진한 계급성을 띠고 있었다. 넉넉한 가정에서 자란 것은 아니지만 좌판에 깔려있는 물건에서 구매 욕구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 물건들은 낡았고 오래된 것들이었다. 우리 동네에 두었다면 민원이나 들어올 쓰레기에 지나지 않는 물건들.

 그러나 그 의문은 곧 비웃음거리가 되었다. 사람들은 좌판 앞에서 가격에 대한 흥정과 어떤 것을 사야할 지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윽, 아직 인간 되려면 한참 멀었다) 시장이 형성되어 있다는 것은 사고 파는 것이 꾸준히 이루어진다는 것이고, 사람의 발길이 아직 머물고 있다는 뜻일 터이다. 

초입을 지나 황학동 벼룩시장으로 들어섰다. 이곳 사람들은 도깨비시장이라고 부르는 곳이다. 왜 도깨비인지는 모르겠다. 주말에만 도깨비처럼 열리는 곳이라 부쳐진 이름이 아닐까 짐작을 해본다. 혹은 온갖 물건이 난장으로, 계통 없이 펼쳐져 있어 도깨비라도 나올 것 같이 어지럽고 번잡해서일까. 오래 전 시골에서 봤음직한 물건들이 상품의 얼굴을 하고 팔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활기가 느껴졌다. 꼭 물건을 사고 파는 것만이 목적이 아닌 시장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여기는 쉽게 말해 풍물시장이었다. 풍물시장은 물건을 사고 파는 것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보고, 듣고, 느끼는 것으로도 충분히 값어치를 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곳에서 장사를 하시는 할아버지 한 분을 만났다. 창고나 다락을 털면 나옴직한 잡동사니 한 좌판을 펼쳐 놓은 그의 모습은, 허허롭다고 해야하나, 초탈했다고 하야하나, 여유와 근심이 한 데 어우러진 모습이었다.

 

 

 

청계천 고가도로가 철거가 된다고 하는데요 어떠세요?
– 많이 변하겠죠. 근데 뭐 변하는 건 좋은데, 근데 이제 우리 장사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될지 불안하지.

근데 장사는 얼마나 하셨어요?
– 여기 시장이 생긴지 14-5년 되었어요. 기업은행 저 편은 더 오래되었고.

여기 공사 시작하면 많이 힘들 것 같은데요?
– 힘들겠죠. 아무래도 차가 자유스럽지 못하니까.

복개한 거 다 거두어도 계속 여기서 장사를 하실 수 있으세요?
– 글쎄 그걸 모르죠. 근데 우리는 개발이 끝나도 여기서 하고 싶어하죠. 딴 상권에 대해서는 말이 많은데. 근데 여기 만물상, 자유시장에 대해서는 서울시에서 아무 말이 없어요. 다 거둬버릴 생각은 위에서 하겠지만, 그렇지만 여기 사람들은 아무래도 생존권, 벌어먹어야 하니까. 하루아침에 후닥닥 거두어 치워버리겠는가 하는 생각도 하고…외국에도 이런 시장이 많이 있으니까 그와 같이 개발이 되면, 개발되는 것에 따라서 환경을 깨끗하게, 외국사람들한테 보기 좋게 해서…시장이 그런 생각을 하지 않고 있지 않을까? 뭐 글쎄, 그건 어디 찾아봐도 없는데, 뭐 이명박 시장이 그런 쪽에서 전문가 아닌가? 여기 도깨비시장엔 외국인이 많이 와요. 별 사람들 다 온단 말이야. 그런 생각하겠지. 단지 환경에 따라서 이것이 지금 지저분하게 보여도 개발되면 우리도 깨끗하게 할 수 있지.

그럼 개발을 해야겠네요?
– 물론 개발을 반대는 안 해요. 시장을 좀 예쁘게 만들고, 거기 알맞게 우리가 할 능력도 있고, 대부분 젊은 사람들이고 자치적으로도 얼마든지 잘 할 수 있어요. 정부에서 시청에서 지도만 해준다면.

그럼 불안하지는 않으세요?
– 불안하죠. 먹고사는 문제니까. 불안하죠.

여기 벼룩시장은 주말에만 열리지 않습니까?
– 그렇지 토요일하고 일요일.

주말에 장사는 잘 되세요?
– 물건이 희귀한 것만 있으면. 좋은 거 있으면 잘되죠.

 

벼룩시장 하기 전에는 다른 데서 장사를 하셨어요?
– 이 시장이 IMF이후 급속도로 성장했어. 그전에는 안쪽으로 성행하다가 이후에 실업자가 잔뜩 쏟아져 나오니까. 이게 밑천이 얼마 안 들고 그리고 재활용 붐이 일고, 거기 편승해서 이게 명물이 되었지.

시장이 계속 잘 되었으면 좋겠는네요.
– 여기서 장사하는 사람이 수천 명이야. 갖다주는 사람, 모으고, 파는 사람, 이것도 유통의 하나야. 여기 매달려서 먹고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장사 잘 되시길 바라겠습니다.
– 이거 피알 좀 잘해 가지고. 이 시장을 성남시장의 풍물시장처럼 그와 같이 발전같이 시켜주면 좋아. 우리가 뭐 힘이 있나 그렇게 좀 해줘요. 잘 좀 부탁합니다.

할아버지는 잘 좀 되게 해달라는 부탁을 남겼다. 그런데, “피알(PR)”이라니. 무엇의 피알을 말한 걸까. 도깨비 시장이 여기에 있다는 것? 철거되면 생계가 어렵다는 것? 아니면 청계천의 복원을 막아 달라는 것? 피알이란 말은 참으로 어울리지 않았다. 뭔가 아쉬워서 부탁하는 말을 적당히 찾지 못해 생각나는 대로 갖다 댄 단어였을 것이다. 안타깝기도 똑같고, 힘없기도 똑같은 처지에 그런 말씀을 듣자니 속이 조금 쓰렸다.
청계천의 복원에 대한 환상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 환상이 들어서는 자리는 사람마다 조금씩 틀렸다. 위의 할아버지는 개발 이후 깨끗해진 환경 속에서, 정돈되고 깔끔한 상황 속에서 다시 장사를 할 수 있었으면 하는 환상을 가지고 계셨다. 그러나 두 번째로 만난 도깨비시장의 할아버지는 달랐다.

“내일 모레(7월 1일) 어떻게 하는지는 모르지만 우리가 사수를 해야 되요. 먹고사는 일이 사라지는데… 난 청계천 복개하기 전에 서울에 왔는데, 그때가 세월이 더 좋았던 것 같아. 이거 하면 난리나. 손님들이 안 와.”

“보기는 좋은데, 타이틀은 좋은데, 붕어를 키우는 건 좋은데, 우리나라는 그런 세월이 아니자나요? 아직도 시기상조라 생각해요. 좀 더 있어야죠. 산동네 가면 쌀 없어 굶어 죽어 가는 애들이 아직도 많은데 붕어가 뭐야. 세상 따라가야지. 정말이에요. 이거 생각해보세요. 앞으로 철거되면 이 많은 사람들이, 돈 있는 사람, 없는 사람 스트레스 해소하는 곳인데 갈 곳이 없는 거야”

 

두 번째로 만난 할아버지는 청계천 복개 이전의 환상, 즉 조금 지저분하고 혼란스럽더라도 사람들이 살아가는 냄새가 나는 그 시절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계셨다.

“우리나라는 그런 세월이 아니자나요? ”

21세기를 넘어서 이제는 선진국의 문턱에 들어섰다고 자평하는 환상 속에는 저렇게 ‘그런 세월이 아닌’ 부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끼일 자리가 없다. 청계천 복원의 의미 안에 도깨비시장 사람들의 목소리는 그저 지저분하고 혼란스런 환상일 뿐인 것일까? 그렇다면 ‘그런 세월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환상은 지금 어디를 향하고 있는 것일까?

▶ 도깨비시장연합회 회장 양연수

그로부터 며칠 후 청계천을 다시 찾았다. 청계천 복원공사에 반대해 조직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는 도깨비시장연합회라는 곳을 인터뷰하기 위해서였다.
전철에서 내려 그전과 같은 길로 걸어올라가는 길에 중앙시장 한 귀퉁이에서 철물 장사를 하시는 할아버지 한 분을 만났다. 그런데 중앙시장에서 장사를 하시는 분의 생각은 예상했던 것과는 많이 틀렸다.

 

 공구상가는 옮긴다는데 중앙시장은 어떻게 해요?
– 여기는 그런 마음은 없어요. 장사에 지장은 있지만, 버틸 만큼 버텨야지

복개하면 장사가 좀 나아질까요?
– 통로가 안 되니까. 장사는 사람이 많이 모여야 하는데. 안될 수가 있지.

여기 계속 지킬 생각인가 보네요
– 할 수 없지.
 

어차피 바뀌는 건 바뀌는 거고 나아졌으면 좋겠는데요?
– 나아질 것도 없고. 그리고 여기 상가조합은 저기 바깥에 도깨비시장연합회랑 틀려. 여긴 영향을 안 받고, 그 사람들은 바로 길가에 있으니까. 근데 헐어버리는 것도 잘 하는 거야. 깨끗하게 해야지. 장사는 그렇게 해야지. 헐고 그러니까 깨끗하고 좋잖여. 있는 사람들은 다 그래도 단골 잡고 그러고 사니까. 떠나고 그러면 단골 잡으려면 힘들지. 단골 잡으려면 10년은 걸려. 여긴 만물로 이름난 거 아녀. 아무 물건이나 살 수 있다 이거지. 그리고 저거(복원) 잘하는 거야. 저기 도깨비 시장 난장판으로 해 가지고 어디. 어이구, 길거리 다녀보셔. 깨끗하게 해야지.

근데 재밌다고 오는 사람들도 있잖아요?
– 구경하러 오지. 근데 난전 펼쳐 놓은 그 사람들은 세가 없잖여. 여긴 다 세 내고 하는 건데. 그 사람들이 무슨 세가 있어. 이런 사람들은 다 세 있지. 게다가 예전에 권리금이 팔천이고 일억이고 그렇게 있었는데, 지금은 권리금은 다 없어졌어. 아무도 권리금 못 받는다고…. 누가 이런 가게에 다시 들어오겠어. 단골 알고 물건알고 하는 사람이나 다시 들어오는 거지.

나아질 기미가 없나요?
– 없어. 전혀. 진작에 틀린거야. 글렀어. 이제 할 수 없으니 그렇게 하는거지. 안되야.

할아버지는 청계천 복원으로 환경이 나아져야 한다고 말하고 있지만 또 한편으로 장사에 가져올 부정적 영향을 염두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미 고사위기에 처해있는 상권에 대한 체념 탓일까 그다지 공사에 연연하는 것 같지 않았다. 게다가 도깨비시장의 지저분함과 세 없이 장사하는 특혜(?)를 달갑게 생각하지 않았다. 청계천 사람들의 이해관계는 얽히고 설켜있었다. 그것은 청계천 복원에 단순하게 접근하는 것을 막아서는 걸림돌이었고, 그 이유는 서로가 서로를 고립시키고 단절시키는 원인으로 작용하는 것 같기도 하였다.

 

도깨비가 삼일아파트를 한 채 빌려쓰고 있다는 어떤 분의 말씀에 따라 삼일아파트 안으로 올라갔다. 여기저기 불에 탄 흔적과 어두운 복도. 인기척은 위협으로 느껴졌다. 그것은 외부인 만이 아니라 내부인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도깨비를 만나기 위해 3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의 통로에는 아주머니 몇 분이 둘러앉아 계셨다. 통로를 가로막고 앉아서 잔뜩 경계하고 있는 아주머니는 거의 동시에 그리고 퉁명스럽고도 긴장이 베인 말투로 왜 3층으로 올라가려는지 물어보았다. 도깨비를 인터뷰하러 왔다는 것과 소속을 밝혔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수없이 왔다간 기자들에게 질려있는 눈치였다.(예상컨대 이곳의 딱한 사정이 방송과 신문, 잡지로 전해졌을 때 돌아온 피드백은 그들의 희망과는 거리가 멀었을 것이리라.) 그들은 희망이 없었고, 인터뷰가 그저 귀찮을 뿐이었으며, 처음 본 외부인을 경계하고 있었다. 그렇게 머뭇거리기를 몇 분, 아저씨 세분과 통로에서 마주쳤고, 그들 중 한 분이 도깨비시장연합회 회장이었다. 그분들에게 인터뷰를 하러 왔음을 밝히고, 그제야 3층 계단을 올라갈 수 있었다.

 

삼일아파트는 복원공사 계획 이전부터 철거가 시작되어 이제 몇 동만 남고 철거가 마무리가 되고 있는 시점이었다. 물론 아파트 철거조차도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혀 있었다. 시에서 나온 대책은 두 동을 임시거주지로 정해놓고 나머지를 헐어버리는 것이었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삼일아파트와 그 앞의 도깨비시장 노점상들은 서울시에서 보기에 눈에 가시 같은 존재인 것 같았다. 개발을 해야 할 곳에서 무작정 버티며 자신들의 요구를 들어달라고 떼를 쓰는 존재인 것이다. 사람이 생존권을 보장해달라고 떼를 쓰고 있는 시대. 도깨비시장을 구성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삼일아파트가 거주지였다. 지금 그들이 생존을 위해 넘어야 할 대상은 밥벌이의 유지와 거주지의 확보 두 가지였다.

 

인터뷰를 많이 하셨나 보죠?
– 문제점이 제대로 안 알려졌어. 어떤 사람이 고통을 받고, 슬픔을 눈물을 흘려야 되는지 그런게 안나가지. 도깨비시장 주민들이 제일 큰 피해를 받고 있어요

현재 청계천변에는 각종 ‘위원회’들이 들어서 있다. “청계천 상권수호 대책위원회”라는 곳도 있으며, “삼일아파트 우리땅찾기 대책위원회”라는 곳도 있었다. 인터뷰를 거절한 “삼일 아파트 우리땅찾기 대책위원회”는 도대체 무엇을 하는 곳인지 몰랐다. 부동산 업자들의 모임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 그리고 양연수 회장은 “청계천 도깨비시장 노점상 연합회”의 대표였다. 전국노점상 총연맹(전노총려)의 산하단체로 있으면서, 전국연합, 민노총과의 연대가 있다고 하였다.

인터뷰 후, 우연찮게 보게된 TV는 도깨비시장의 사정과 삼일아파트 주민들의 현재 모습을 전달하기 위해 카메라의 시선을 낮추고 있었다. 그러나 공사가 눈앞에 닥친 시점에 그 방송이 가져올 현실적 효과란 이제 곧 사라질 추억의 장소에, 사람들의 아쉬운 발걸음과 카메라 앵글을 돌렸을 뿐이었다. 이 글이 나갈 때쯤엔 벌써 공사가 진행되고 있을 것이고, 그래서 이 글 역시도 아쉬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닐 것이다.

시에서 나온 대책은 있나요?

 – 전혀 없어요. 공사를 강행하면서 상인들한테는 장지동에 16만평을 마련해준다는 이야기는 있어. 그러나 노점상, 제일 사회적 약자, 제일 사회적 빈곤층, 직접 생존에 타격을 입는 사람들한테는 배려를 안 하는 거야. 환경을 살려서 풀뿌리도 살리고 물고기도 살린다면서 사람은 살리지 않겠다는.. 시간이 걸리고 더디더라도 사람을 살려서 자연과 함께 사는 그런 환경을 만들어야지. 
단 한 사람의 생명이라도 존중해야 되는 거 아니네요? 우리가 잘 살게 해달라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먹고사는 생존권만이라도 보장을 해달라는 거 아냐, 근데 이걸 무시하고 개발하면 이게 무슨 의미를 가지겠냐고. 그리고 장사가 안 되어서 난리인데, 국가 경제가 파탄 이르고 있는데 그 혈세를 거기다 써야 되는 거냐 이거야. 사람 살리는데 써야 되지. 우리가 복원 자체를 반대하는 건 아니에요. 시간을 두고 천천히 해도 되는 건데, 무슨 날벼락도 아니고.
이에 대한 대책을 위해 모여 있는 분들이 몇 명이나 되나요?
– 직접 피해를 입는 사람들이 200-300백명이에요. 그리고 여기 인도에 있는 사람들은 당장 단속을 안 한다니까 피해가 없어요. 우리가 주축을 이루고 있어요.(도로에서 1주일에 두 번 장사를 하는 사람들)

 

여기 상인들하고 마찰은 없나요?
– 마찰은 없고, 서로 강도의 차이가 틀리지. 직접 피해가 있는 사람들은 죽기 살기로 싸우고, 다른 사람들은 관망자세지, 여기 바로 옆에 건물에 있는 상인들은 좀 영업이 안 되면 어쩔까 하는 거고, 인도에 있는 노점상인들은 그거 우리 직접 단속 안 되니까. 근데 차도에서 일주일에 두 번씩 장사하는 사람, 그 사람들은 복원하자마자 없어지니까. 그 사람들이 모인 게 이 단체야.

그런데 막을 수 있을까요?
– 자기가 최선을 대해서 막으면 그 자체가 하나의 저항이지. 역사의 싸움에 질 수도 있는 거야. 그건 영원히 지는 게 아냐. 강자가 이길 수도 있어. 그러나 미국이 이긴 거 아냐(이라크와의 싸움에서) 비평화적이고 불법적인 싸움으로 영원히 진 싸움을 한 거야. 그건 비난받을 싸움이야.

TV에서는 서울시장을 만나러 가겠다는-도깨비시장 노점상들을 가로막은 전투경찰들의 단단한 방패와 그 앞에서 오열하는 아주머니를 보여주었다. ‘내 아이들 지키겠다는 데 왜 길을 막느냐’며 쓰러져 우는 아주머니는 결국 경찰들의 방패 앞에서 무기력해지고 말았다. 방패는 무엇을 막고 있는 것일까? 서울시장은 면담을 거부하고 있었다. 지는 싸움과 비겁한 싸움. 승자가 패자이고, 패자가 승자인 싸움. 도깨비 주민들이 가진 것이라곤 – ‘우리가 가진 것이라곤 몸뿐이다’.

일각에서는 노점이 너무 이기적이라는 생각도 있는데요?
– 노점이 이기적이라면 부실기업한 놈들도 은행하고 국가에서 지원하지 말아야지. 그런 법이 어딨어. 그런 건 지원하고 여긴 빈민들은 천부의 권리를 지키겠다는 데, 생존권을 지키겠다는 건데 그게 이기적이라면 어떡해! 부자는 1억이 없어져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지만, 우리는 100만원만 없어져도 생명이 왔다갔다하는데. 그건 자체가 다른 거야. 그건 다 부르주아와 쁘디부르주아의 시각이야. 걔들 말 따르면 미국도 일본도 흔들리면 안돼. 근데 왜 미국하고 일본경제가 불황에 허덕이고 있어? 그건 모두 책 몇 권 읽고..지들이 노동자가 주인 되는 세상에 대해 뭘 알아?

시종일관 웃는 얼굴로 인터뷰를 하던 양연수 회장은 이기적이라는 말에 흥분한 어조로 자신의 대답을 이야기했다. 사실 이라크문제와 자본주의의 문제 등으로 확대된 양연수회장의 말은 상당히 낯설었다. 부르조아니, 자본의 붕괴니 하는 말들은 장광설로 들렸다. 그리고 그것이 지금의 노점상문제, 생존권의 문제와 어떤 구체적으로 접점을 찾는지, 들으면 들을수록 희미해진 것이 사실이다. 나는 서둘러 이 관념적 낯설음에서 빠져 나오고 싶었다.

앞으로 투쟁운동은 언제까지 할 생각이십니까?
– 우리 생존권의 보장이 될 때까지. 이런 건 그것뿐만 아니라 평등한 세상 자유로운 세상을 만들자는 거야. 내 장사만 잘 해먹고 살자는 거 그거야말로 이기주의지. 그렇지 않으면 서로 등쳐먹고 살자는 거지. 시장경제논리가 그거 아냐?

 

구체적인 요구조건은 뭡니까?
– 여기서 장사를 하게 해달라. 안되면 청계천 9가라도 노점 자리 한 두 평 해 달라. 아니면 한양대학교 하천부지에 노점풍물단지 하나 조성해 달라. 여긴 외국인들도 많이 오고, 정말 진귀명귀한 중고품 골동품이 재활용되고, 정말 사람들이 소중하게 여기는 곳이라고. 인사동은 고급화되고, 인위적으로 개발되었지만, 여기는 정말 자연스럽게 인간이 어깨를 부딪히며 그야말로 인간의 삶이 자연 그대로 숨쉬는 곳이란 말이야. 이런 곳을 관광특구로 만들어야지. 이런 것을 살리는 길을 모색하자 그거지. 왜 개발논리로 다른 거 다 밀어 부쳐서 획일화시키는 걸 최고로 여기냐 말이지. 작은 것들이 오밀조밀 모여야 정말 아름다운 세상이 돼지.

개발이후 투기 바람은 없습니까?
– 여기도 불어. 삼일아파트 하나 가지고 있는 사람이 일년만에 1억 4천만 원씩 받게 되었지. 나는 여기 철거민이자 노점상이야. 17동 14동 빼고 나머지는 헐기로 했어. 여기는 2년동안 보장하고 건물 완성되면 입주권을 달라고 하는 거지. 이것도 투쟁대상이지.

여기 벼룩시장에서 장사하시는 분들은 다 자기자리가 있나요?
– 있지. 여기 치열하지. 1센치를 다투지. 장사는 치열하기 때문에, 내 형제도 못 들어와(웃음)

그렇다면 노점활동으로 상업활동을 하시는 분들도 비인간적인 이윤추구에 연결되어 있는 건 아닙니까
– 그렇지(웃음). 그런데 워낙 적으니까 자기 생존권에 매달려 있는 거지.

짓궂은 질문이었을까? 당연한 이야기지만 도깨비시장 역시도 1센치를 다투어가며 서로 경쟁하는 자본주의의 논리에 어긋나는 것은 아니었다. 새로 좌판을 깔려는 이들은 텃새에 고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자리다툼이 서로의 생존권을 박탈시킬 만큼 잔인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 이 상황에서 이것은 모순이 아니냐고 따지고 들 수는 없었다. 그것은 정리할 수 없는 의문이었고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었다. 다만 TV화면에서 보았던 그들은 서로를 친인척 이상으로 아끼고 보살피고 있었다.

들어오다 보니 삼일아파트에 불이 난 흔적이 있는데요?
– 개발지구쪽 영업반 놈들이 불을 일부러 낸 거야, 사무실에 들어와서 난장판 치고.

아직 철거가 끝나지 않은 삼일아파트 곳곳에서 불에 탄 흔적을 발견할 수가 있었다. 오래된 곳이라 화재사고가 많았구나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지만, 화재의 원인이 아파트 주민들을 몰아내기 위한 외부인의 짓이라는 것을 알고는 쉽게 입을 열 수가 없었다. 확인하고, 증거할 수는 없지만, 화재뿐만 아니라 구타와 절도도 빈번하게 일어난다고 했다. 도깨비 주민들의 상황은 사면초가였다. 화재와 절도, 철거와 심지어 구타까지. 노인들의 손에 들린 방망이는 필수품이었다. 더 이상 가져갈 것도 없어 보이는 살림은 자물쇠로 채워져 있었고, 살던 사람이 떠나간 빈 아파트는 폐허였다.

 

 

많은 질문을 뒤로하고 인터뷰를 끝냈다. 객관적인 입장에서 인터뷰를 하리라 마음먹었지만, 그곳을 떠나서는 살아갈 수 없는 사람들을 대책 없이 몰아내는 현실 앞에서 ‘객관’은 들어설 자리가 없었다. 청계천 복원 문제 앞에서 객관적인 입장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은 이곳의 사정을 모르거나 혹은 알면서도 모른 체 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일 것이다. 인터뷰 도중 연신 잘라놓은 수박을 먹으라던 양연수 회장은 6월 31일 저녁에 있는 도깨비 후원 주점과 7월 1일 청계천 고가도로 띠 잇기 행렬에 참석해 달라고 부탁을 했다. 가겠노라고 말은 했지만 결국 가지 않았다. 사실 주점과 띠 잇기 행렬에서 그들과 똑같은 마음으로 있을 수 있을까하는 위선에 대한 두려움은 게으름과 무관심의 핑계를 덮어줄 보호막일 뿐이었다.

 

 

▶ 후 기

청계천이 복원된다는 현실 아래, 청계천 고가도로 아래를 횡단종단하고 있던 사람들의 이해관계가 현실의 표면위로 떠올랐다. 그런데 그 떠오른 이해관계도 선명하지가 않다. 각각의 이해관계는 이 목소리 저 목소리를 동시에 외치기도 하고, 그 둘을 모두 부정하기도 한다. 그러나 미묘하나마 각각의 입장차이는 분명히 있다.

그 입장차이는 청계천과 얼마나 가깝게 붙어있느냐에 따라 찬과 반으로 ‘어쭙잖게’ 나뉘는 것 같다.

 

 

먼저 청계천과 물리적으로는 멀리 떨어져 있지만 정신적으로-추억으로-회상으로 가깝게 붙어있는 사람들은 복원으로 인한 기대감과 아쉬움이 혼재 되어 있는 것 같다. 서울의 중심으로 울창한 나무들이 줄을 짓고, 물밑이 훤히 들여다보일 정도로 맑은 물이 흐르며, 그 아래로 붕어가 헤엄쳐 다닐 것에 대한 ‘우리도 이제 환경과 친화하며 생활을 즐길 수 있는 선진국으로 들어섰구나’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는, 살찌고 여유로운 생활에 대한 기대감과 어린 시절 코묻은 돈으로 신기하고 귀한 물건들을 샀던 추억의 장소, 청계천상가 일부가(정말 일부이다)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교차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아쉬움에는 서울 교통의 흐름에 핵심역할을 했던 청계천 고가도로의 철거가 미칠 교통대란의 심란함도 덧붙어 있을 것이다. 그들은 찬성과 반대를 한 목소리로 외치지 않는다. 그들에게 청계천은 어느 정도는 관망의 대상이다.

두 번째는 물리적으로도 가깝고, 정신적으로도 가까운 사람들이다. 그 사람들은 청계천 상가에서 짧게는 몇 달에서부터 길게는 몇 십년동안 장사를 해온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 사람들 안에서도 입장차이는 존재한다. 자신의 상점을(임대료를 지불하는) 가진 사람들은 반신반의하고 있다. 고가도로 철거로 인한 상권의 변동에 반신반의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여러 상권 중에서 돈 되는 장사를 하는 상권은 이전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누구보다 국가에서 발 벗고 나서기도 한다. 교통의 번잡이 가져올 상권의 축소와 이전된 곳의 상권이 얼마나 기대에 따라줄 것인가에 대해 위기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지만 축소 될 대로 축소 되어버린 지금의 상권 앞에서 그 위기감이 크게 다가올 리는 만무한 것 같다. 이들에게 청계천 복원은 어느 정도 객관적으로 바라볼 이유와 여유가 있다. 즉, 그들에게 청계천은 관조와 긴장의 사이에 있다.

 

두 번째에서 분리되어 나온 세 번째는 자신의 상점 없이 청계천 고가도로 아래의 거리에서 물건을 파는-유일하게 한 목소리를 내는-노점상들이다. 그들에게 청계천 고가도로의 철거는 생존권의 박탈이다. 하루 벌어서 하루 먹는, 그것도 요즘은 시원찮은 밥벌이가 이제는 완전히 사라질 위기에 처해있는 것이다. 더해서 삼일아파트를 주거지로 삼고 있는 노점상들은 식과 주가 한꺼번에 삶에서 도려내질 위기에 처해있다. 그들의 삶에서 도려내진 것들을 대신해 물과 고기와 나무가 그 빈자리를 채우게 될 것이고, 그들은-그들에게는 마주하기 싫은 현실이고 있어서도 안 될 일이지만- 그것을 목도할지도 모른다. 서울시는 어떤 대책도 마련해 놓지 않고 있고, 면담조차도 거부하고 있다.

청계천의 좁은 골목길만큼이나 어질럽게 얽혀 있는 청계천 사람들의 살림들 사이에서 내가 서있는 곳은 어디인가. 솔직히 나는 첫 번째 부류에 가까우면서 아쉬움보다는 기대감에 더 부풀어 있는 쪽이다.
외부에서 서울로 기어 들어온 나는 청계천이라는 장소에 아쉬움을 가질 게 하나도 없는 것이다. 그러나 굳이 이 청계천에 대한 생각을 말하라면, 생존권과 복원 중에 어느 것을 옹호할 지에 대한 기준은 있다. 생존권의 보장이 우선 이고, 그 다음이 복원이다. 그리고 경제적 가치와 역사적 의미, 도시 미학적 기준 등등은 그 다음다음이다. 서울시민을 위한다는 명분을 내세운 서울시가 그 명분 앞에서 스스로 떳떳한가하는 질문에 서울시는 대답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나 같은 사람도 청계천에 대한, 서울시민으로서의 애정을 보여주지 않을까.

공사는 진행되고 있다. 나는, 아마도, 다시 도깨비를 찾아가 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