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인터뷰] 추국 (醜國)

지금으로부터 1년전, 우리는 죄없는 두 어린 영혼과 어설픈 이별을 했습니다. 달뜬 함성 속에 잊혀져간 두 영혼은 잊혀졌다가는 다시 살아나기를 반복하며 그들을 기억하고 있는 우리의 마음을 죄스럽게 하고 있습니다. 1주기가 되는 지금, 우리는 잊혀질 수 없는 그 죽음을 다시 떠올리려 합니다. 여기 이 허구가 허구가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이 더욱 우리의 삶을 괴롭히고 있습니다. 분노와 추도의 마음을 올립니다. <편집자>

 

0. 프롤로그 – 세 가지 불행

지난 밤, 부르스는 돌아오지 않았다.

바발론의 유적을 담는답시고 유보라테스 강가를 들개처럼 돌아다니고 있겠지. 쉰 살을 훌쩍 넘긴 뚱뚱보가 하루도 쉬지 않고 밤마다 바드다그 남쪽으로 1994년형 지프랭글러를 모는 것이다. 올해만 해도 그 근방에서 목숨을 잃은 관광객이 스무 명을 넘었다. 부르스처럼 피부색이 누렇고 척 보기에도 힘을 쓰지 못할 것 같은 중늙은이는 범죄의 표적이 되기 십상이다. 열흘 전 끔찍이 아끼던 니콘 카메라를 강탈당하고 돌아왔을 때는 이제 그 야밤의 드라이브도 끝이라고 생각했다. 부르스 리 흉내는 그만 내겠지. 그런 내 예상을 비웃기라도 하듯 지난 밤 또 외박을 한 것이다.

샌드위치 두 조각과 우유 한 컵으로 아침 식사를 마치고 노트북에 전원을 막 넣으려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예상했던 대로 부르스였다.


나 : 어딥니까? 또 부서진 성벽 틈에서 쪼그리고 밤을 보낸 거예요?

부르스 : (전화의 음질이 좋지 않다) 빨리 와!

나 : 왜요? 강도라도 만나 몽땅 털렸습니까? 그러기에 혼자 밤에 나가지 말라고……

부르스 : 지난 밤 여학생 둘이 장갑차에 깔렸어. 즉사했다고.

나 : (깜짝 놀라며) 뭐라구요? 장갑차가 왜 여학생들을? 어디예요, 거기?

 

FNN – ‘Fucking DNN’이 결코 아니다 – 입사가 내 생애 가장 큰 불행이었다면, 중동 담당 특파원을 자원한 것은 그 다음 불행이고, 사진기자 부르스와 바드다그에서 함께 활동하게 된 것은 마지막 불행이다. 더 나은 근무조건을 제시하는 몇몇 회사의 제안을 물리치고 FNN에 입사한 것은, 2003년 리코아에서 짧고 싱겁게 끝난 전쟁을 추국(醜國)의 침략전쟁으로 규정한 특집 다큐멘터리를 보고 나서였다. 지미 하워드-그때는 방송국장이고 지금은 부사장이다. 나를 리코아 특파원으로 추천한 장본인이다-가 감독한 그 다큐멘터리는 베트남 전쟁과 함께 리코아 전쟁을 추국의 가장 사악한 침략 전쟁으로 꼽았다. 그 주장에 매료되어 아랍어를 익히기까지 했다. 막상 입사하고 나니 회사 형편은 열악하기 그지없었다. 추국의 제국주의를 공공연하게 비난하는 이 작은 방송국-방송국이란 표현은 지나치다. 라디오 채널이 하나 있긴 하지만, 대부분은 홈페이지에 그날그날 기사를 업데이트 하는 정도다-에 흔쾌히 광고를 내고 그 주식을 살 사람은 드물다. 입사할 때 제출한 자기소개서가 문제였을까. 어느 날 지미 하워드는 나만 따로 부 사장실로 불러 중동 특파원 자리가 하나 비었다고 했다.


나 : (의아한 표정으로) 중동 특파원이라구요? 저 혼자 중동을 모두 책임지라는 겁니까?

지미 : 중동의 나라들은 기껏해야 추국의 크고 작은 주만 하다네. 자네만 부지런히 움직이면 힘든 것도 아니지. 20년 동안 평화가 이어져 오고 있지 않은가. 가끔 이스라엘 쪽이 말썽이긴 해도.

나 : 절 바보로 아십니까? 바드다그에서 근무하던 중동담당이 넉 달 전 피살되었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그 전 담당도 일 년 전에 죽었구요.

지미 : 그건 단순한 자동차 사고였네. 그 친구들은 평소에도 술 마시고 운전하길 즐겼어.

나 : 지원하고 싶지 않습니다. 전 이제 입사한 지 겨우 석 달 지났어요.

지미 : 그럼 사표를 내게. 우리가 왜 자넬 뽑은 줄 아는가? 바로 이 일을 맡기기 위해서라네. 자네의 아랍어 실력은 우리 회사에서 최고일세. 당장 준비하게.

 

다음 날, 사표 대신 중동특파원 지원서를 총무국에 제출했다. 지원자는 나 하나였다.

바드다그에 도착한 작년(2022년) 11월 15일에는 모처럼 비가 내렸다. 우산도 없이 비를 맞으며 공항버스까지 짐을 옮겼다. 미리 도착 시간을 전화로 알렸는데도 파트너는 보이지 않았다. 휴대폰도 불통이었다. 하는 수 없이 택시를 타고-나중에 알고 보니 정상요금보다 다섯 배나 더 비싼 요금을 냈다- 물어물어 숙소에 닿았다. 문이 굳게 잠겨 있었으므로 계단에 웅크리고 앉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 날 저녁의 일기가 그 순간의 착잡함을 전한다.


 2022년 11월 15일

역시 이건 현명한 선택이 아니다. 언젠가는 꼭 한 번 바드다그와 하노이에 가고 싶었지만, 그것은 충분한 준비를 마친 후의 일이다. 나는 이 낯선 도시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 책 몇 권 읽었다고 그 도시를 어찌 알 수 있으리. 

따뜻한 커피, 가슴과 목을 덮을 수 있는 이불, 양말을 벗고 지친 발을 씻을 맑은 물. 저 문 안에는 틀림없이 이런 것들이 준비되어 있겠지? 추국에서는 이미 사라지고 없지만 아프리카와 아시아에서는 요즈음도 심심찮게 발병한다는 폐렴이라도 걸리면 어떻게 하지? 내가 모르는 풍토병이 엉덩이를 타고 내 몸으로 스며든다면? 

예상은 했지만, 너무너무 허름한 아파트이다. 지은 지 50년은 훨씬 넘었겠다. 내가 그 이름을 아는 벌레들이 모두 살고 있을 것 같고, 시커먼 쥐들이 지붕과 벽의 얼룩진 틈에서 꼬리를 내밀 것 같다.



부르스 리 – 예명과 전혀 어울리지 않지만 그때까지 FNN에서 그의 본명을 아는 이는 없었다 – 는 그 아파트만큼이나 칙칙하고 더러웠다. 눈썹까지 눌러 쓴 모자는 정수리 부분이 아예 구멍이 뚫렸고, 점퍼를 채우는 단추는 열 개 중 네 개만이 너덜너덜 달려 있었다. 수염은 꺼칠했고 누런 이에서는 지독한 악취가 흘러나왔다. 호주머니가 열 개도 넘는 바지는 개구리 무늬처럼 알록달록했고, 발목을 완전히 덮은 검은 장화 역시 빛이 바래 드문드문 회색 빛을 띄었다. 옷차림을 이렇듯 자세히 살핀 것은 훨씬 나중의 일이고, 그 새벽 계단에 쪼그리고 앉아 잠든 어깨를 부르스가 짚었을 때, 나는 화부터 냈다.


나 : (일어서며 소리를 지른다) 저녁 9시 도착이라고 전화하지 않았습니까? 왜 마중을 안 나왔죠?

부르스 : (침착하게 시선을 내린 채) 도착한다고 했지 마중 나오라는 소린 안 했잖아?

나 : (반말에 기분이 상한다. 30년 가까이 연상이지만 그래도 첫 만남이 아닌가) 그게 그 말 아닙니까? 마중은 안 나오더라도 집에서 기다리고는 있어야 하지 않나요?

부르스 : (여전히 무뚝뚝하게) 불발탄이 터졌거든. 다섯 죽고……둘 다쳤어.

나 : (깜짝 놀라며) 불발탄이라뇨?

부르스 : 19년 전에 떨어진 건데…… 묻혀 있다가…… 발굴 도중 터졌어.

나 : 19년이라면? 리코아 전쟁 말인가요? 19년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불발탄을 수거하지 않았단 말입니까?

 

그때 부르스의 얼굴에 떠오른 차디찬 미소를 잊지 못한다. 그 웃음은, 겨우 19년 지난 것 같고 뭘 그래?, 꼭 이렇게 묻는 듯했다.


부르스와의 공동생활은 엉망진창이었다. 나는 계획표대로 깔끔하게 생활하는 쪽이다. 기자라는 직업상 벌어지는 돌발상황을 제외하곤 예측 가능한 하루 하루를 보내려고 한 것이다. 기상 시간은 아침 7시이고, 조깅 시간은 30분이 적당하며, 적어도 하루에 8시간 이상은 취재를 하고 기사를 썼다. 저녁식사는 밤 7시에서 8시까지, 그 후로 두 시간 정도 책을 읽다가 11시를 넘기지 않고 잠자리에 들었다. 청소는 사흘에 적어도 한 번은 했고, 매일 일기를 썼으며, 저녁마다 시장에 갔다. 활기가 넘치는 바드다그의 시장은 기분 전환 하는데 그만이었다.

이런 나의 생활방식은 전혀 보장받지 못했다.

그놈의 암실이 문제였다. 방이 두 개였지만, 부르스는 이미 그 중 하나를 암실로 사용하고 있었다. 디지털 카메라가 집집마다 보급된 요즈음에도 부르스는 크고 무겁고 초점도 잘 맞지 않는 흑백 카메라를 고집했다. 보도기사에는 흑백사진이 어울린다고 터무니없는 고집을 세우기까지 했다. 결국 사진을 위해 방 하나를 빼앗기고 나머지 좁은 방에서 둘이 함께 생활해야만 했다. 침대를 넣을 엄두를 내지 못할 만큼 이미 그 방에도 부르스의 자질구레한 짐들이 가득 쌓여 있었다.

부르스는 대부분 밤에 작업했다. 낮에는 하루 종일 외출했다가 자정 무렵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부터 악몽이 시작되었다. 로큰롤을 크게 틀어놓는 것은 보통이고 라디오와 텔레비전 역시 동시에 볼륨을 높였다. 그런 아수라장 속에서라야 제대로 사진을 현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청소는 한 번도 하지 않았고,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것도-기자이면서- 싫어했다. 회사에서 꼬박꼬박 월급이 나올 텐 데도 식사는 늘 햄버거와 콜라였다.

그와 지낸 지 닷새만에 본사로 전화를 걸었다. 부사장에게 다른 숙소를 구하겠다고 했더니 이런 답이 수화기를 타고 내 귀를 찔렀다.


지미 : 숙소를 따로 구하는 건 자네 자율세. 헌데 자네 전임자 두 사람…… 그 사람들 교통사고가 말이야 모두 숙소를 옮기자마자 일어났다네.

나 : 그들의 죽음과 숙소를 옮긴 것이 관련이 있다 이 말씀인가요?

지미 : 꼭 그런 건 아니겠지만…… 부르스가 방패막이 역할을 하는 건 사실이지. 부르스만큼 바드다그에 리코아인 친구들이 많은 사람도 드물다네. 그 아파트도 현지의 친구가 부르스에게 그냥 쓰라고 주었다지 아마.

나 : 도저히 살수가 없습니다. 미쳐버리겠다구요.

지미 : 그래도 사진 하난 끝내준다네. 착하고 일 못하는 사람보다 성질이 고약해도 일 잘 하는 사람이 백 배 낫지. 


결국 베란다 쪽 거실에 칸막이를 하고 나만의 공간을 마련하는 선에서 타협을 보았다. 헤드폰을 개조하여 귀마개를 만들고 하루에 한 번 대청소를 했다. 깨끗해진 아파트를 보며 부르스는 한두 번 눈살을 찌푸렸지만 내가 하는 일을 막지는 않았다. 사진을 찍고 현상하는데 방해만 받지 않는다면 다른 것은 아무래도 상관없는 듯했다. 

 

 

1. 캄캄한 강에 운동화를 씻고 – A 언덕 풍경 


고흐의 ‘모래언덕’을 연상시키는 A언덕을 찾는 것은 힘들지 않았다.


한 달 전 부르스와 바발론 유적의 보존에 관한 기사를 쓰기 위해 취재를 나왔던 것이다. 이스라엘이 조용했고 석유 값도 추국이 원하는 대로 적정선을 유지하고 있었으므로, 특별히 신경 쓸 취재거리가 없었다. 모처럼 한가하게 집에서 탐정소설이나 읽으려는데 부르스가 나를 끌고 A언덕으로 향했다. 이 언덕만 넘으면 바로 유보라테스 강이다. 부르스는 이미 본사에 바발론 유적에 관한 기사를 쓰겠다고-나와 한 마디 상의도 없이- 통보한 후였다. 투덜대며 따라나선 길이지만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전쟁이 얼마나 인류의 문화유산을 치명적으로 파괴할 수 있는가를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부르스는 오랫동안 이 문제에 매달린 사람답게 파괴된 유적을 자세히 안내했다. 그 기사를 본사로 통고한 후 입사 후 처음으로 부사장 지미로부터 격려전화를 받았다. 특히 독자들의 관심을 끈 것은 바로 A언덕을 넘어 폐허와 처음 부딪히는 이 대목이다.


……A언덕의 내리막길로 접어들 때는 차라리 눈을 감는 것이 좋다. 20년 전 문화지도에는 귀한 유물을 전시한 박물관과 아름다운 궁 그리고 아직 발굴을 끝마치지 못한 고풍스러운 돌담들이 표시되어 있다. 그러나 그곳엔 아무 것도 없다. 20년 전 떨어진 미사일 두 발이 이곳을 폐허로 만들어 버렸다. 그 쓸쓸함을 귀로 먼저 받아들인 후에 눈을 뜨는 것이 충격을 줄이는 비결이리라……


이번에도 A언덕에서 처음 부딪힌 것은 울음 소리였다. 내리막으로 가다가 다시 약간 오르막으로 접어드는 사고 현장에 아직 도착하지도 않았는데, 여자들의 높고 탁탁 끊어지는 울음소리가 귀에 닿았던 것이다. 그들은 아만다, 올리비아(나중에 이 이름을 확인했다), 두 여중생과 함께 리코아로 문화유적답사를 온 B주 호산나 중학교의 학생들이었다. 어제는 마침 올리비아의 열네 번 째 생일이라서 저녁식사 시간에 생일 잔치까지 했다고 한다. 초콜릿 케이크에 초를 꽂고 올리비아는 훗날 바발론을 연구하는 고고학자가 되어 이곳을 다시 방문하겠다는 결심을 친구들에게 밝힌 후 촛불을 껐다.


총을 든 리코아 군인들이 사건 현장을 겹겹이 에워쌌다. 기자들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고 민들만 먼발치로 웅성웅성 모여들었다. 나는 기자증을 내밀며 현장을 보여달라고 요구했다. 현장을 책임진 리코아 장교는 오른손으로 권총을 만지작거리며 눈을 부라렸다. 단순한 교통사고다. 돌아가라. 나중에 사단에서 직접 설명을 할 것이다. 일이 확대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대충 이런 정도의 답이 돌아왔을 뿐이다. 그때 등뒤에서 누가 내 어깨를 잡아끌었다. 카메라를 어깨에 맨 부르스였다.


부르스 : 따라와.

나 : 현장을 두고 어딜 가는 겁니까?

부르스 : 걱정 마. 거긴 내가 다 찍어놨어.


부르스가 군인들보다 먼저 현장에 닿은 것이다. 두 굽이를 더 내려간 다음 걸음을 멈추었다. 왼쪽 무릎에 붙은 호주머니에서 줄자를 꺼냈다.


부르스 : 언제 군인들이 물러갈 줄 모르니 우선 여기서 대충 조사를 해보자구.

나 : 조사라니요?

부르스 : (줄자의 한쪽 끝을 내밀며) 잡아.

나 : (줄자를 쥐자 부르스가 길의 폭을 잰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진 거죠? 시신은 확인했나요? 

부르스 : (줄자를 다시 받아 호주머니에 넣은 후 무덤덤하게 답한다) 6m 80cm. 좁군 너무 좁아.

나 : 좁다니요?

부르스 : (담배를 꺼내 입에 물며) 학생들을 친 장갑차의 너비가 얼마인 줄 아는가?

나 : ……

부르스 : 아까 재봤더니, 3m 67cm 었다네. 어젯밤에 장갑차들이 이 길을 오르내렸다는 군. 정확히 말하자면 그 차량은 전차구난차량(M88)으로 지뢰지대 개척용 차량일세. M60 전차 차체를 기본으로 한 이 차량은 뒤에 미클릭(MICLIC)을 발사할 수 있는 장치를 달았다네. 

나 : 미클릭이 뭐죠?

부르스 : 미클릭은 로켓으로 폭약을 발사하여 지뢰를 함께 폭발시키는 장비지. 또 차량 상부에는 지뢰제거용 장비(Mine Flow)와 구난 장비 등이 탑재되어 있기도 해. 그래서 보통 장갑차들보다 훨씬 시야가 좁지. 구체적으로 따지자면 이렇게 구분이 가능하지만, 장갑차의 종류나 성능을 잘 알지 못하는 마을 주민들은 대부분 이 전차구난차량도 장갑차라고 부른다네. 하여튼 마주보고 오는 이 두 장갑차가 딱 붙어서 길을 통과하려 해도 7m 34cm 가 필요해. 54cm 나 부족하지.

나 : 그럼?

부르스 : (고개를 끄덕이며) 두 대가 교차해서 지나가려면 갓길로 장갑차를 최대한 붙일 필요가 있겠지. 이 길을 적어도 두 달에 한 번은 다니는 장갑차 운전병들이 그 사실을 모를 리 없어. 지난밤에도 저 사고 현장에서 장갑차 두 대가 마주 오는 상대를 발견했고……

나 : 이런 죽일 놈들!


우리는 다시 사건 현장으로 올라갔다. 그 사이 병력이 늘어나 구경꾼보다 리코아 병사들이 더 많았다. 그때까지도 울음을 그치지 않고 있는 여중생들에게 다가갔다. 금발에 도수 높은 안경을 쓴 인솔교사인 듯한 40대 중반의 여인에게 손수건을 먼저 내밀었다. 그녀는 눈물을 훔친 다음 예의바르게 인사했다. 그녀의 이름은 테레사였다.


테레사 : 고마워요. (다시 울먹인다) 오, 하나님! 어떻게 이런 일이……

나 : (왼손에 숨긴 소형 녹음기를 켠다) 시신을 직접 확인하셨나요?

테레사 : (눈물을 흘리다 말고 경계의 빛을 띤다) 누구시죠?

나 : (앞의 F 발음을 일부러 삼키고 뒤에 NN을 큰 소리로 또박또박 발음한다. 상대에게는 그냥 NN 정도만 들릴 정도다. 상대가 우리를 DNN으로 착각해주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착각한다고 해도 우리 책임은 아니다.) FNN 기자 탐입니다.

테레사 : (표정이 밝아진다) 아! ……역시 빠르시군요.

나 : (아직 그들은 오지 않았답니다. 라고 생각하며, 왼손에 숨겼던 녹음기를 꺼내 든다) 성함이? 

테레사 : 테레사예요. 테레사 윌리암스.

나 : 인솔교사신가요?

테레사 : 그래요. B주 호산나 중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고 있답니다. 열흘 일정으로 리코아 문화유적탐방을 왔어요. 내일이면 귀국하는 날인데……(말을 맺지 못하고 다시 울먹인다)

나 : 몇 명이 왔죠?

테레사 : 모두 15명이에요.

나 : 시신은 확인하셨습니까?

테레사 : (다시 떠올리기 싫은 듯 고개를 좌우로 세차게 흔든다) 예.

나 : 선생님의 학생들이 맞습니까?

테레사 : 머리가…… 머리가 완전히 장갑차에 깔려서…… 알 수가 없었어요. 다만 그 옷, 청바지에 자유의 여신상이 그려진 푸른 티셔츠는 아만다의 것이 분명하고, 자주색 치마에 얼룩말 무늬의 블라우스는 올리비아가 즐겨 입던 옷이랍니다. 친구들도 모두 지난 밤 아만다와 올리비아가 그 옷을 입고 있었다고 했어요. 둘 다 아시아에 온 기념으로 머리에 검은 물을 들였지요.

나 : 옷차림 외에 두 시신이 아만다와 올리비아란 걸 확인할 수 있는 물품이 또 있었습니까?

테레사 : 올리비아가 애지중지 가지고 다니던 CD 플레이어를 봤어요. 추국을 떠날 때 아버지인 제임스로부터 미리 받은 생일선물이라고 했답니다. 이상하게 그 플레이어만은 흠집 하나 없이 멀쩡하더군요. 올리비아가 맞아요.

나 : 그 아이들이 야밤에 왜 이 길을 걷고 있었던 거죠?

테레사 : (표정이 딱딱하게 굳는다) 리코아에서의 마지막 밤이니까…… 조금 자유를 줬어요. 밀린 잠을 자도 좋고 친구와 잡담을 나눠도 좋고 가까운 곳은 산책해도 좋다고…… 두 아이는 산책을 나왔었나 봐요.

나 : 산책을 말입니까? (이곳이 우범지대란 걸 모르신단 말입니까, 라는 물음이 혀끝까지 올라왔다) 그랬군요. 두 학생의 부모들에게는 연락이 되었나요?

테레사 : 그게….. 아만다는 고아랍니다. 아만다가 두 살 때부터 쭉 자란 임마누엘 수녀원에 전화는 했어요. 올리비아의 부모는 5년 전 이혼을 했지요. 어머니는 재혼하여 호주로 건너간 후 연락이 끊겼고 아버지는 트럭 운전사입니다. 한 번 일을 나가면 한 달 넘게 돌아오지 않지요. 그 기간 동안 올리비아는 임마누엘 수녀원에서 아만다와 함께 생활한답니다. 그래서 둘은 친자매처럼 지냈던 것이구요. 

나 : 딸이 죽었습니다. 연결이 될지 모르겠다니요?

테레사 : 왜 저한테 화를 내시는 거죠? (학생들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얘들아! 이제 돌아가자. 비행기 시간 늦겠어. (다시 나를 보며) 사고 소식이 뉴스에 보도되면 이 아이들의 부모들로부터 전화가 쇄도할 겁니다. 우선 이 아이들이라도 안전하다는 걸 알려야겠죠.


소녀들은 눈물을 계속 닦으며 테레사를 따라 A언덕을 넘어갔다. 지프차들이 연이어 도착하고 있었다. 소식을 접한 기자들이 몰려들기 시작한 것이다. 리코아 장교는 아예 내리막길이 시작되는 지점부터 출입을 봉쇄했다. 나는 어서 현장 사진을 보고 싶었다.


나 : 어서 아파트로 돌아가요. 딴 기자들이 기사를 날리기 전에 우리가 먼저 해야죠.

부르스 : (힐끔 나를 돌아본 후 계속 걸음을 옮긴다. 나도 별 수 없이 그 뒤를 따른다. 강가에 이른 부르스는 가방에서 피 묻은 운동화 한 짝을 꺼낸다)

나 : 그게 뭡니까?

부르스 : (쪼그려 앉아 운동화를 강물에 넣어 흔든다) 

나 : 뭐냐구요?

부르스 : (어둠을 응시하며) 아만다의 신이라네.

나 : 허면 증거품이 아닙니까? 허락도 없이……

부르스 : (내 말을 자른다) 신 한 짝 집어왔다고 달라지는 건 아무 것도 없으이. 이렇게 라도 해야……. 이렇게라도 그 아이들의 영혼을 달래야……. (부르스는 말을 맺지 못하고 물 묻은 신발을 다시 가방에 넣고 일어선다)

나 : (가방에 또 다른 신발 하나가 들어 있다) 그건 또 누구 건가요?

부르스 : (서둘러 가방을 닫고 되돌아간다)


나는 잠시 어둠에 묻힌 강을 내려다보았다. 아만다의 피가 이 강물에 씻겨 함께 흘러 내려갔다. 부르스는 망자의 영혼을 달래고 싶다고 했다. 어수선하고 시끄러운 사건 현장을 피하여 조용한 강으로 내려온 까닭을 조금은 이해할 듯 싶었다. 그러나 그 신은 꼭 나중에 증거물로 제출될 필요가 있다.



 

알 사하프 대령과 단독 인터뷰를 할 수 있었던 것은 부르스가 찍은 사진 덕분이다. 6월 14일 밤 그가 찍은 현장 사진이 FNN 홈페이지의 메인 화면에 뜨는 순간 추국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저렇게 곱디고운 추국의 두 딸이 사막 바람 몰아치는 리코아의 언덕길에서 뼈가 으스러지고 내장이 튀어나온 채 피를 철철 흘리며 죽어버린 것이다. 흉흉한 소문과 추측이 초를 다투어 만들어졌다.


다음 날 아침, 제2사단 참모장 알 사하프 대령의 공개 브리핑이 있었다. 브리핑룸에는 3백 명이 넘는 내?외신 기자들이 운집해 있었다. 평소라면 FNN 기자는 겨우 출입문 앞에 끼어 서거나 아예 복도로 내몰렸다. 이번에는 달랐다. 헌병이 처음부터 부르스와 내 이름을 호명했고, 우리는 영광스럽게도 DNN 기자-콧수염이 멋진 토마스 채플린이다. 그는 브리핑 기간 내내 나와 시선을 마주치지 않았다. 자존심이 상한 모양이다-바로 옆에 앉았다.

브리핑룸은 아수라장이었다. 참모장 알 사하프 대령이 준비한 문건을 읽는 것으로 브리핑을 대신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기자들은 자유로운 질의응답을 바랐고, 참모장은 아직 조사중인 사건이란 이유로 기자들의 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가 왼손으로 안경테를 자주 치켜올리며 낭독한 문건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2023년 6월 13일 밤 11시 25분 바드다그 남쪽 58km A언덕 도로에서 추국인 여중생 아만다 새런든과 올리비아 크루즈가 제2사단 44공병대 소속 장갑차에 치어 사망하였다. 운전병은 사담 병장이고 조수석의 관제병은 라마단 병장이다. 2사단은 사고조사위원회를 구성하여 철저한 조사를 벌일 계획이다. 지금까지 확인된 사항은 다음과 같다. 

1. 당시 도로는 훈련 차량이 충분히 통행할 수 있는 도로이다. 

2. 사고차량이 맞은편에서 오던 장갑차를 피하기 위해 갑자기 갓길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며, 규정에 따라 통상적으로 진행하고 있었다.

3. 맞은 편에서 마주 오고 있었다는 장갑차는 차량 행렬의 맨 선두에 있던 차량이 가다가 되돌아온 것으로, 사고 지점 도착 시점이 사고 발생 이후라 이번 사고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

4. 사고 당시 운전사는 앞서 가던 학생들을 보지 못했고, 조수석의 관제병이 보고 정지 명령을 했으나 이를 듣지 못해 사고가 났다.

5. 관제병이 학생들을 본 후 사고가 나기까지의 시간은 약 20초 가량이며, 당시 차량 속도는 10-15마일 정도였다.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뜬 고인들의 명복을 빌며, 유족들에게 심심한 사과의 뜻을 전한다.


 

2023년 6월 15일

제2사단 사단장

중장 알 야히야

 

기자들의 항의가 거세었지만, 알 사하프 대령 앞에 무장 헌병들이 한 줄로 늘어서자 분위기는 곧 잦아들었다. 불만에 가득 찬 표정을 지으며 기자들은 하나둘 브리핑룸을 떠났다. 나 역시 일단 물러날 작정으로 돌아서는데, 알 사하프 대령이 내 이름을 불렀다.

 

알 사하프 : 탐! 탐이죠? 그 옆엔 부르스 기자겠군요.

나 : (그때까지도 떠나지 않고 있던 자존심 강한 DNN 기자 토마스의 기분 나쁜 표정을 슬쩍 살핀 후) 그렇습니다. 제가 탐입니다.

알 사하프 : (더욱 친근하게) 이리 오세요. 두 분을 위해 차 한 잔 대접하겠소이다.

토마스 : (기어이 한 마디 한다) 왜 저 두 사람만 부르는 겁니까? 이래도 되는 건가요?

알 사하프 : (토마스를 보며 미소 짓는다) 전임 참모장은 DNN 기자들만 따로 불러 여행도 떠났다고 들었소. DNN은 되고 FNN은 아니 되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탐! 이리 오시오. 부르스. 오늘도 흑백사진을 찍을 겁니까?

 

인터뷰가 시작되자마자 분위기는 이내 냉랭해졌다. 우리는 알 사하프가 FNN과의 단독 인터뷰를 자청한 이유를 잘 알고 있었다. 우리가 어제 발표한 사진 외에 또 다른 현장 사진이 있는가를 알고 싶었던 것이다. 솔직히 나도 사진이 더 있는가는 자신할 수 없었다. 그것은 오로지 부르스의 몫이다. 그러나 한 번 흥정을 해볼 가치는 있었다. 비싼 차를 내오기 전에 간단히 커피 두 잔을 청했다. 정신을 집중시키기 위함이다. 나는 그와 마주 보며 앉았고, 부르스는 평소대로 주변을 서성이며 셔터를 누르기 시작했다.

 

녹음이 허용되지 않았기에 더욱 바삐 메모를 해야 했다. 적지 못하고 넘어간 부분은 나중에 부르스의 도움을 받았다. 부르스는 한 번 지난 길은 모조리 외우는 비상한 기억력의 소유자였다.

 

알 사하프 : (나와 부르스를 번갈아 살피며) 사진은 차를 마신 다음에 찍도록 하지요.

나 : (웃으며) 그냥 두세요. 부르스는 인터뷰하는 동안 자리에 앉는 법이 없습니다. 단 한 장의 사진을 위해 저렇듯 춤추듯 돌아다니지요. 신경 쓰지 마세요.

알 사하프 : (따라 웃으며) 그래도 내내 서 있으면 너무 힘들잖소?

나 : 그래야 좋은 걸 찍을 수 있답니다.

알 사하프 : (고개를 끄덕인다. 그도 이미 우리가 이런 특별한 대접에 크게 감동하지 않았음을 눈치챈 듯하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간다) 어젯밤, 장군님(알 야히야 사단장을 그렇게 불렀다)께서 크게 곤욕을 치르셨소이다. 우리에게 미리 연락을 주셨으면 좋았을 것을. 

나 : (나 역시 정면돌파로 나간다. 칼자루를 쥔 쪽은 우리니까) 기자가 오기 전에 사건 현장을 수습했다고 확신하신 모양이죠?

알 사하프 : (커피를 마신다. 1년 전 건강상의 이유로 커피를 끊었는데 오늘은 한 잔 마시겠단다) 사진이란 게 묘해서, 종종 사건의 진실을 왜곡시키기도 하지요. 끔찍한 장면을 네댓 장만 주욱 펼쳐놓으면 우리를 학살자로 만들어버린답니다. 이건 교통사고였소. 결코 살인사건이 아니란 말이오.

나 : 더 조사를 해야 사건의 전모를 파악할 수 있다고 아까 브리핑룸에서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헌데 이미 사고라고 확신하시는군요. 그 확신이 조사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까요?

알 사하프 : 나는 아무런 확신도 가지고 있지 않소. 다만 그런 사진을 일방적으로 홈페이지에 올리는 것만은 중지해 주시오. 사진이 더 있다면 그것을 우리에게 넘겨주시오. 어떤 대가라도 치르리다.

나 : 돈으로 그 사진을 사겠다는 겁니까?

알 사하프 : (의자 등받이에 등을 기대며) 경솔한 행동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충고라오.

 

나는 돈보다 명예를 백 배는 더 소중하게 여기는 스물 세 살의 신출내기 기자였다. 알 사하프는 상대를 잘못 고른 것이다.

 

나 :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바짝 탁자 앞으로 당겨 앉는다) 브리핑룸에서 읽은 문건에 대해 몇 가지 질문해도 되겠습니까?

알 사하프 : 얼마든지.

나 : 확인된 사항 다섯 가지에 대해 각각 하나씩만 묻겠습니다. 우선 A언덕의 도로가 훈련 차량, 즉 장갑차가 드나드는데 전혀 문제가 없다고 하셨는데, 맞습니까?

알 사하프 : 그렇소. 확인해보니 지난 3년 동안 우린 계속 그 길로 장갑차들을 이동시켰고, 그 사이 단 한 건의 사고도 없었소. 이번이 처음이오.

나 : (수첩에 처음이라고 적은 후) 사고를 일으킨 장갑차의 좌우 폭이 얼마나 되시는 줄 아십니까? (알 사하프가 어깨를 으쓱 들어올렸다 내린다. 모른다는 뜻이다) 3m 67cm 입니다. 장갑차 두 대가 엇갈려 오가려면 적어도 7m 34cm 는 되어야겠지요? 헌데 그 언덕길의 폭은 얼마인지 아십니까? (알 사하프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다)6m 80cm에 불과합니다. 다시 말해 장갑차가 나란히 맞물려 서면 사람이든 짐승이든 그 길 위에는 어떤 것도 무사할 수 없다는 것이죠. 그토록 좁은 길이 어찌하여 훈련 차량이 드나드는데 전혀 문제가 없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알 사하프 : 나란히 설 때 사람이 다치지 않도록 미리미리 조심하면 되는 일이오.

나 : 둘째, 맞은편에서 오는 장갑차를 피하기 위해 갓길로 장갑차를 몰지 않았다는 것은 누구의 주장입니까?

알 사하프 : 사담 병장과 라마단 병장의 일치된 진술이오.

나 : 그 말을 어떻게 믿을 수 있습니까? 미리 입을 맞춰 거짓말을 할 수도 있지 않습니까?

알 사하프 : 부하 장병들을 믿소. 그들은 명예를 소중히 여기는 알라의 아들들이오. 

나 : 장갑차가 그대로 직진을 했는지 아니면 방향을 틀었는지는 현장 조사를 하면 밝혀질 겁니다. 다음, 맞은편에서 오는 장갑차는 사고가 발생한 시점에 여중생들이 있는 위치까지 오지 않았으므로, 이번 사고와 연관이 없다고 하셨죠?

알 사하프 : 그렇소. 적어도 10m 이상 후방에서 멈추었소.

나 : (수첩 맨 뒤를 펼친다. 사건 현장의 약도가 그려져 있다) 잘 보십시오. 이렇게 굽이를 돌아서 사고를 일으킨 장갑차가 들어왔고 상대편 장갑차는 이렇게 그 반대편에서 나아오고 있었습니다. 두 장갑차를 운전하는 병사는 길을 따라 곧장 나아가면 장갑차가 부딪힌다는 것을 알고 있었구요. 그렇다면 사담 병장이 장갑차를 보는 순간 갓길 쪽으로 운전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알 사하프 : 갓길 쪽으로 장갑차를 운전하지 않았다고 진술하였소.

나 : 넷째, 운전석에 앉은 사담 병장은 학생들을 보지 못했고, 조수석의 라마단 병장이 학생들을 발견, 정지명령을 내렸으나 전달되지 않았다고 했지요?

알 사하프 : 그렇소.

나 : 그런 일이 자주 있습니까? 조수석에서 내린 명령이 운전석까지 전달되지 않는 경우가?

알 사하프 : (분노를 억누르듯 양 주먹을 꽉 쥔 채 답한다) 거의 없소만 정말 어쩌다가…… 백만 분의 일 정도로…….

나 : 그 백만 분의 일의 확률이 하필 A언덕에서 일어난 것이군요. 마지막으로 묻겠습니다. 라마단 병장이 여중생들을 발견한 후 사고가 나기까지 20초 정도의 시간 여유가 있었다고 하셨죠?

알 사하프 : 그렇소.

나 : 그 20초 동안 라마단 병장은 무얼 했습니까?

알 사하프 : 장갑차를 멈추라고 운적석에 계속 명령을 내렸소.

나 : 계속……. 20초 동안 계속 명령을 내렸고, 그 명령은 전달되지 않았군요.

알 사하프 : 그렇소.

나 : 두 병사를 만나게 해주십시오.

알 사하프 : 아니 되오. 그들은 곧 군사재판을 받게 될 것이오. 이제 그만 합시다. 돌아들 가오.

 

알 사하프는 내가 그렇게 날카로운 질문을 퍼부을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한 듯했다. 그와 작별의 악수를 나누기 전 마지막으로 물었다.

 

나 : 군사재판을 여신다고 하셨습니까? 혹시 20년 전에 추국과 리코아 사이에 체결된 소피 협정을 아십니까?

알 사하프 : (답을 못하고 내 얼굴을 멀뚱멀뚱 쳐다본다)

나 : 10년 전, 소피협정에 따라 바드다그에서 추국 여인을 강간 살해한 리코아인을 추국법정에 세운 적이 있습니다. 기억하지 못하시는군요. 그 소피협정 3조 1항을 보면 이런 조항이 있습니다. ‘리코아 영토 안에서 추국인에 대한 범법행위가 일어날 경우, 추국은 그 사건을 리코아 검찰과 함께 조사할 권리가 있으며 범인을 인도받을 수도 있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리코아 정부와 추국 정부의 합의가 있어야합니다. 10년 만에 그 소피협정이 빛을 발하게 되지 않을까 싶네요. 그렇듯 알라의 아들들을 두둔하시니, 어찌 공정한 재판이 이루어질 수 있겠습니까?

 

제2사단 정문을 나서는데, 부르스가 이상한 말을 했다.

 

부르스 : 알라의 아들들도 거짓말을 할 수 있겠지. 허나 여호와의 아들들은 더 거짓말쟁이라네.

3. 위험한 너무나 위험한 : 목격자 라헬 할머니와의 인터뷰

햄버거로 저녁을 때우며 알 사하프 대령과의 인터뷰를 정리했다. 내일 아침 이 기사가 나가면 FNN 동료들은 환호성을 지를 것이다. 부르스의 사진도 좋았다. 특히 안경 속 당황하는 알 사하프의 검은 눈동자를 기막히게 잡아냈다. 누구라도 이 사진을 보면 알 사하프가 무엇인가를 감추고 있다는 걸 눈치 채리라. 어깨가 뻐근하고 눈도 침침했다. 마무리를 하고 텔레비전을 켰다. 이렇게 한 30분 텔레비전을 보다가 스르르 잠들고 싶었다.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다가 DNN에서 멈추었다. 미 국무부 대변인과의 단독 인터뷰 예고 방송이 나왔다. 리코아에서는 안되니까 국무부를 파고드는군. 국무부 대변인과의 단독 인터뷰는 FNN으로서는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나는 암실에서 더 나은 사진을 찾던 부르스를 불렀다.


잠시 후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처음엔 내 눈을 의심했다. 인터뷰어는 찰리였다. 케네디 대학교 사회학과 동기동창생. 케네디 대학교 학생답지 않게 진작부터 공화당 청년당원으로 맹렬히 활동한 친구였다. 갓 입사한 찰리를 국무부 대변인의 인터뷰어로 정한 것 자체가 DNN이 나를 의식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하긴! 공화당 정권이니 찰리 같은 공화당원이 인터뷰어로 나서는 것도 어색한 일은 아니다. 미 국무부 대변인인 니콜라스는 눈이 맑고 입술이 얇으며 손이 유난히 길고 하얀 백인이다. 30대 초반부터 빠지기 시작한 머리칼 때문에 마흔을 갓 넘긴 나이임에도 쉰 살의 중후한 멋을 풍겼다. 아버지와 아들의 대담 같기도 했다.



찰리 : 리코아 제2사단의 브리핑 내용을 들으셨죠?

니콜라스 : 알고 있습니다.

찰리 : (여전히 떨리는 목소리로) 동의하십니까?

니콜라스 : (단호한 목소리로) 동의할 수 없습니다. 이번 사건은 짧은 기간이나마 유지되었던 중동의 평화를 깨기 위한 테러의 가능성이 높습니다.

찰리 : 방금 테러라고 하셨습니까? 제2사단의 브리핑처럼 단순한 교통사고가 아니란 말입니까?

니콜라스 : 자세한 건 더 조사를 해야 하겠으나 단순사고라고 보기에는 미심쩍은 부분이 너무 많습니다. 추국 정부는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찰리 : 소피협정에 따른 공동조사권과 범인인도권을 요구할 예정이십니까?

니콜라스 : 신중하게 검토 중입니다.

찰리 : 누구누구에게 책임이 있다고 보십니까?

니콜라스 : 장갑차에 탔던 두 병사에게는 살인죄 적용을 검토해야 하며, 훈련을 주도했던 상급 중대장과 사단장까지 지휘책임을 물어야 할 것입니다. 추국 정부는 결코 비명에 간 두 소녀를 잊지 않을 것입니다. 끝까지 조사하여 살인자들을 찾아내겠습니다. 정부를 믿어주십시오.


찰리는 큰 실수 없이 인터뷰를 끝냈다. 공화당 정권은 벌써 이 두 여중생의 죽음을 ‘테러’라는 단어와 연결시키기 시작했고, 관련자를 찾아내어 엄벌에 처하겠다고 했다. 소피 협정의 적용에 대해서는 ‘검토’라는 단어를 사용했으나, 니콜라스 국무부 대변인에게 ‘검토’란 적절한 시기를 찾는다는 뜻이다. 부르스가 사진 한 장을 내밀었다.


나 : (졸린 눈으로) 고생을 많이 하신 할머니 같네요.

부르스 : (카메라 가방을 챙겨 일어선다) 가세.

나 : (낡은 소파에 앉은 채로) 밤이 깊었어요. 어딜 또 가자는 겁니까?

부르스 : 라헬 할머니를 만나야지.

나 : (사진을 보며) 대체 이 할머니를 왜 만나자는 거죠?

부르스 : 목격자야. 유일한 목격자.

나 : (소파에서 벌떡 일어선다) 그래도 너무 늦었어요. 벌써 잠자리에 들었을 지도 모릅니다.

부르스 : 할머니는 해가 떠 있는 동안만 주무셔. 

나 : 그걸 어떻게 아세요?



부르스는 대답을 않고 현관을 나섰다.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뒤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부르스는 지프차를 운전하는 동안에도 설명을 더하지 않았다. 나는 팔짱을 끼고 어둠을 응시하였다. 최초의 목격자. 유일한 목격자! 부르스는 사건이 터진 후 한 번도 목격자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없었다. 그가 군인들보다 먼저 현장에 도착한 것도 하나의 미스터리 였다. 라헬이라는 할머니를 만나면 모든 게 밝혀지겠지. 부르스는 A언덕을 끼고 왼쪽으로 멀리 돌았다. 이미 A언덕을 곧장 넘는 길은 리코아 군인들에 의해 통제되고 있었다.

어젯밤 신을 씻은 강가에 도착했다. 짙게 깔린 어둠 속으로 강물은 소리 없이 흘렀다. 부르스는 그 강을 바라보며 파이프 담배를 피워 물었다.


나 :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할머니는 어디 계십니까?

부르스 : 기다려야지.

나 : (짜증 섞인 목소리로) 그럼 약속도 하지 않으셨단 말입니까?

부르스 : 할머니는 약속 같은 거 안 하시는 분이야.

나 : 이곳으로 오리라는 건 어떻게 아시죠?

부르스 : 지난 20년 동안 한 번도 그르지 않고 밤마다 여길 오셨다네. 딸의 이름을 부르며 말일세.

나 : 20년 동안이나요? 딸의 이름을 부르다니요?

부르스 : 아, 저기 오시는군. 이리 물러나세.


부르스는 내 팔을 잡아끌었다. 검은 천을 머리에 두른 이가 너울너울 춤을 추며 다가오고 있었다. 너무나도 몸이 가볍고 걸음이 경쾌했다. 할머니는 방금 부르스가 서 있던 곳에서 춤사위를 멈췄다. 그리고 품에서 푸른빛이 감도는 작은 구슬 하나를 꺼냈다.


라헬 : 세헤라자데! 어디 있니 세헤라자데? 엄마다. 얘야. 엄마가 세헤라자데의 생일 선물로 유리 구슬을 사왔단다. 네가 그렇게 갖고 싶어하던 구슬이야. 세헤라자데! 나오렴. 어디 있니?


그녀의 두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부르스가 귓속말로 속삭였다.


부르스 : 20년 전 리코아 전쟁에서 막내딸을 잃었다네. 여기서 세헤라자데의 일곱 번째 생일잔치를 하려고 했지. 세헤라자데는 생일 하루 전 날 폭격을 당해 아빠와 함께 죽었어. 한꺼번에 남편과 막내딸을 잃은 가여운 여인 라헬은 혼이 나가버렸지. 충격으로 왼쪽 눈까지 멀어버렸고. 그 후로는 햇빛을 끔찍이 무서워해서 밤에만 돌아다녀. 딸의 이름을 부르며 A언덕을 넘고 또 이 강가에서 눈물 흘리지. 아주 괴팍한 노인네라네.

나 : 그랬군요. 허면 저 할머니가 장갑차에 깔린 여중생의 일을 부르스 당신에게 알려주었습니까?

부르스 : 그렇다네. 세헤라자데가 장갑차에 깔렸다더군.

나 : 세헤라자데가요?

부르스 : 여중생의 처참한 시신을 보고 폭격으로 죽은 막내딸을 떠올렸나 봐. 자, 가세. 저렇게 한바탕 울고 나면 정신이 맑아진다네. 아주 잠깐이니까 그 틈을 놓치지 말게.


부르스가 먼저 라헬에게 다가섰다. 라헬은 절친한 친구처럼 부르스와 포옹을 하고 그의 위로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부르스가 라헬의 어깨를 왼팔로 감싼 채 오른 손을 들어 나를 불렀다. 녹음기를 왼손에 든 채 다가섰다.


부르스 : 라헬! 그 얘길 해보세요. 장갑차에 깔린 세헤라자데에 대한 이야기.

라헬 : (오른쪽 눈을 치뜨며) 싫어. 그 얘긴 벌써 했잖아?

나 : FNN의 탐 기자입니다. 반가와요 할머니!

라헬 : (갑자기 나를 노려본다) 기자 따윈 안 믿어. 그때도 그랬지. 잔뜩 몰려와서 사진 찍고 이것저것 물어보고. 그리곤 끝이었어. 가, 가라구!


난처한 일이다. 그녀는 20년 전과 지금을 혼동하고 있는 것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기자들에 대한 적대감은 여전한 듯하다. 부르스는 자신의 신분을 속였을까.


부르스 : (말머리를 돌린다) 그 밤에도 춤을 췄습니까?

라헬 : (표정이 밝게 바뀐다) 그래, 그 밤은 더욱 신이 났지. 달빛도 없었으니까. 

부르스 : 그래요. 그 밤엔 구름이 짙었습니다.

라헬 : 여기 또 저기 바위들이 많았어. 그 바위들 사이로 세헤라자데의 손을 잡고 빙글빙글 돌며 춤을 췄어.


나는 수첩에 ‘바위 = 장갑차’ 라고 적었다.


라헬 : (목소리가 작아진다) 헌데 갑자기 세헤라자데의 손목이 사라졌어.

나 : 손목이 사라져요?

부르스 : (눈으로 나를 꾸짖은 후) 그랬군요. 손목이 사라졌군요.

라헬 : (고개를 끄덕이며) 그 다음엔 팔꿈치가, 그 다음엔 어깨가, 그 다음엔 머리와 가슴이 몽땅 사라져버렸어. 그 아이에게 주려고 유리구슬까지 샀거든. 얘야! 세헤라자데야. 세헤라자데야. 이름을 불렀어. 그랬더니, 그 아이가 엄마! 하고 날 찾더라고. 황급히 그곳으로 갔지. 큰 바위 아래에서 그 아이가 날 부르고 있었어.

부르스 : 세헤라자데를 찾았군요.

라헬 : 난 다시 숨었어. 군인들이 있었거든. 그들이 세헤라자데를 내려다보며 자기들끼리 소리를 질러댔어. 주먹으로 철모를 내려치기도 하고. 군인은 무서워! 무서워 군인은! 흐흑!


라헬이 몸을 심하게 떨었다. 부르스가 그녀를 다시 따뜻하게 포옹했다. 그녀는 푸른 유리구슬을 품에 안고 뒤돌아 섰다. 춤추는 그녀가 어둠 속으로 완전히 사라진 후 내가 물었다.


나 : 어떻게 그녀를 알게 되었습니까?

부르스 : (대수롭지 않은 듯) A언덕을 좋아하는 사람 치고 그녀를 모르는 이는 없다네.

나 :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곧바로 사건 현장으로 달려갔던 거군요.

부르스 : 그래.

나 : 군인들이 제지하지 않았습니까?

부르스 : 그들도 매우 당황한 것 같았어. 라헬 할머니 외에도 마을 주민들이 몰려나왔지. 그 틈에 끼어 몰래 사진을 몇 장 찍었다네. 

나 : 그럼 목격자가 더 있겠군요.

부르스 : 그렇지. 특히 여긴 추국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은 동네일세. 20년 전 폭격으로 마을 전체가 쑥대밭이 되었으니까. 중요한 사실을 하나만 더 이야기할까?

나 : 중요한 사실이라뇨?

부르스 : 1년 전 A언덕 마을 주민들이 제2사단에 진정서를 낸 적이 있다네. 장갑차를 A언덕이 아닌 다른 길로 다니게 해달라고 말일세. 사고가 나진 않았지만, 마을 주민들도 모두 장갑차 두 대의 너비가 길의 폭보다 넓다는 것을 짐작하고 있었던 거야. 그 진정은 받아들여지지 않았지. 훈련장에 닿는 최단거리가 바로 A언덕을 넘는 이 길이기 때문이야. 그 후로 장갑차가 지나갈 때면, 낮이고 밤이고 마을 사람들이 나와서 무언의 항의를 했다네. 그 날도 밤늦은 시각이었지만 마을 대표자 몇 사람은 A언덕길에 나와 있었다네.

나 : 그들을 만나보면 되겠군요.

부르스 : 이미 입막음을 했을 걸세. 돈으로 매수할 수도 있지만, 그보다 다시는 A언덕으로 장갑차를 몰고 오지 않겠다는 밀약을 했을 가능성이 커. 추국에서 날아온 여중생 두 명이 죽는 바람에 더 이상 사고의 위험이 사라졌으니 마을 주민들은 안도의 한숨을 쉴 지도 모르지.

나 : 이기적이군요.

부르스 : 이기적이라고 했나? 후후후 그리 볼 수도 있겠지. 허나 이 바발론의 유적만 가득한 땅에 처음 장갑차가 드나드는 길을 낸 사람이 누군 줄 아는가? 바로 추군들일세. 20년 전 추군들이 리코아로 진격할 때 A언덕을 곧장 가로질러 길을 냈지. 그 길에서 추합중국 여중생이 죽었으니, 아이러니가 아니겠는가? 또 하나 그 장갑차 말일세.

나 : 장갑차?

부르스 : 그것도 추국에서 만든 것이라네. 추국이 세계 제일의 무기 수출국이고, 또 리코아는 20년 전부터 추국과 혈맹으로 묶여 있으니, 추국에서 만들어진 장갑차가 리코아의 도로를 달린다고 하여 이상한 일이 아니지. 

나 : 언제 그런 조사를 다 하였습니까?

부르스 : (어깨를 으쓱 들어올리며) 상식일세, 상식. 리코아군이 사용하는 무기나 지난 세 차례의 전쟁과 관련된 장소는 모두 추국과 관련되어 있다네. 평화의 이름으로 덧칠되어 있긴 해도…… 헌데 그 병사들의 이름이 사담과 라마단이란 게 마음에 걸리는군.

나 : 그 이름이 어때서요? 리코아에선 흔한 이름이 아닙니까?

부르스 : 자넨 20년 전에 리코아를 불바다로 만들었던 전쟁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나보군. 그 전쟁에서 추국과 맞선 리코아의 독재자 이름이 뭐였나?

나 : (잠시 생각하다가 놀라며) 사담. 사담이었습니다. 허면 라마단은?

부르스 : 부통령의 이름이지. 20년 전 추국과 맞섰던 사담과 라마단이 2023년 오늘 다시 추합중국의 여중생 둘을 장갑차로 죽였네. 

나 : 하지만 그건 우연일 뿐입니다.

부르스 : 그렇네. 절묘한 우연이지. 의외로 추국에는 이것을 우연이 아닌 필연으로 여길 자들이 많을 걸세. 666이 들어간 컴퓨터 게임기만 봐도 악마의 장난이라고 기겁을 하지 않는가.

나 : 그래도 억지예요. 지금은 어느 때인데……

부르스 : 그렇지.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지. 하지만 억지도 때론 필요한 법이야. 옛날부터 그랬다네.

 

 

4. 용셔하렴! – 사담과 라마단의 편지 

 

다음 날 아침, 알 사하프가 우리들의 숙소를 방문하겠다는 연락이 왔다. 나는 그를 거실로 안내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어젯밤, 부르스가 뽑은 사진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던 것이다. 아파트 앞 놀이터에서 그와 다시 만났다. 몹시 피곤해 보였다. 밤을 꼬박 새워 마라톤 회의라도 마치고 나온 사람 같았다.


알 사하프 : (텅 빈 놀이터를 돌아보며) 바드다그에 온 지 얼마나 되었소?

나 : 6개월 남짓입니다.

알 사하프 : (고개를 끄덕이며) 그 정도면 리코아의 처지를 이해할 만 하겠소이다.

나 : 처지라니요?

알 사하프 : 리코아에서 특히 많은 기형아가 태어나고 있다는 유엔의 보고를 알고 있소? 기형아뿐만이 아니오. 원인을 알 수 없는 불치병에 걸려 하루에도 수십 명의 아이들이 목숨을 잃고 있다오. 왜 그런지 아오? 20년 전에 이 땅에서 벌어진 전쟁 때문이오.

나 : 전쟁 때문이라구요?

알 사하프 : 그렇소. 이미 리코아는 1980-88년과 1991년 두 차례 전쟁을 치렀소. 특히 1991년에는 방사능이 유출되는 열화우라늄탄을 많이 사용하였다오. 12년 동안 무수히 많은 기형아가 나왔소. 그런데 2003년 리코아 전쟁에서 다시 그 폭탄들이 이 땅에 투하되었소.

나 : 열화우라늄탄을 다시 썼단 말입니까?

알 사하프 : (잠시 하늘을 쳐다본 후) 나는 리코아 전쟁에서 큰아들을 잃었소. 그리고 아홉 명의 손주들 중에서 세 명이 기형아이고, 하나는 날 때부터 온몸에 피부 종양이 생겨 고생하다 다섯 살에 결국 숨을 거두었다오. 남아 있는 아이들도 지금은 멀쩡해 보이지만 언제 그 무서운 병이 시작될 지 모르오. 또한 한 해에 스무 차례가 넘게 불발탄들이 터지고 있소. 정부에서 불발탄들의 수거에 최선을 다 하고는 있지만 리코아 전쟁에서 너무 많은 폭탄들이 사용되는 바람에 아직도 모래바람이 매섭게 몰아칠 때면 20년 전 흉물들이 나오곤 한다오. 리코아의 부모들은 모두 자식들에 대한 미안함과 슬픔을 지니고 있소. 왜 하필 이런 나라에 태어나서 그 고생을 하느냐고, 나도 팔이 없고 발목 아래가 말발굽처럼 뭉친, 두 눈이 태어날 때부터 빛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세 손주를 보며 속울음을 운다오.


놀이터에서도 벤치에 겨우 앉아 슬픈 눈으로 또래 아이들을 바라보는 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적지 않았다. 그 아이들 대부분이 리코아 전쟁의 참혹한 그림자였다.


알 사하프 : 리코아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이들을 좋아하고 또 보호하려 한다오. 이건 내집 남의 집 가릴 일이 아니기 때문이지. (호주머니에서 편지하나를 꺼낸다) 지난 밤 사담과 라마단이 자신들의 장갑차에 치어 죽은 소녀들을 위해 편지를 썼소.

나 : (그 편지를 받아들며) 아직 조사중인 사건이 아닙니까? 

알 사하프 : 조사는 조사고 사과는 사과요. 그들이 이 일로 얼마나 가슴 아파 하고 있는가를 추국인들도 알았으면 하오. 

나 : 고도의 심리전을 펴는 건 아닙니까?

알 사하프 : 심리전이라……(가볍게 웃는다) 그렇게 본다면 하는 수 없지. 허나 이건 진심이오. 사담과 라마단은 그 누구의 권유도 없이, 자신들 스스로 이 편지를 지난 밤 작성했소. 인간적인 도리를 다 하고 싶다더군.


알 사하프와 헤어진 후 아파트로 돌아와서 이 두 편지를 곧장 FNN으로 보냈다. 현장 사진에 이은 두 번째 특종이었다. 전문을 차례대로 옮기면 다음과 같다.

 

안녕.

난 사담이야. 올해 스물 한 살. 1년 넘게 장갑차를 몰고 있지.

열네 살밖에 안된 너희들의 죽음이 너무나 안타깝고 슬프단다. 내게도 열네 살 된 누이동생이 있어. 오빠를 위해 편지도 자주 쓰고 가끔 예쁜 사진도 보내주는 참 착한 아이지. 

아만다와 올리비아!

너희들도 그랬겠지? 얼굴만 봐도 행복이 밀려드는 집안의 보물이었을 거야.

아, 그 사고를 막을 수는 없었을까? 밤을 꼬박 새우며 자책하고 있단다.

왜 그 밤은 그리 어두웠던 걸까? 왜 너희들은 내가 보지 못하는 쪽에서 걷고 있었던 걸까? 왜 하필 그 순간 통신에 잡음이 심하게 끼어 든 것일까? 

그 밤의 일에 대한 법적인 판단은 나중에 따로 법정에서 할거야. 하지만 그보다 먼저 너희들에게 용서를 구하고 싶어. 고의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내가 모는 장갑차가 너희들 목숨을 앗아간 거니까. 정말 미안해. 할 수만 있다면 너희들 부모님을 뵙고 깊은 사과의 말씀 드리고 싶어. 

용서하렴.

6월 15일

병장 사담

 

제 이름은 라마단 계급은 병장입니다.

6월 13일 두 추국인 여중생을 친 장갑차의 조수석에 앉았습니다. 2019년부터 2022년까지 4년 동안 장갑차를 운전했고, 조수석에서 관제 임무를 부여받은 지는 6개월이 조금 못됩니다. 2022년 1월 14일 결혼하여, 두 달 된 딸을 하나 두고 있습니다. 사담과 호흡을 맞춘 지는 정확하게 92일 되었습니다. 알고 보니, 북바드다그 고등학교 7년 후배였습니다. 자란 동네도 바로 이웃입니다. 사담이 태어난 곳은 우리 집에서 한 블록 정도 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북바드다그 산부인과입니다. 사담은 태어나자마자 죽을 뻔했습니다. 그가 태어났을 때는 마침 리코아 전쟁 중이었고, 그가 태어난 바로 그 날 밤 병원 옆 국영방송국에 미사일이 연이어 투하되었습니다.

사담은 매우 침착하고 운전 솜씨가 좋습니다. 44공병대에서 가장 뛰어납니다. 그는 또한 장갑차를 제 몸처럼 아꼈습니다. 훈련이 없을 때도 장갑차 안에서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들었습니다.

두 여중생의 시신을 보았을 때 정말 두렵고 슬펐습니다. 우린 정말 그들을 죽이고 싶지 않았습니다. 나는 미친 듯이 장갑차를 멈추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만, 사담은 내 명령을 제대로 듣지 못했습니다. 통신 장비의 결함은 사담의 잘못도 또 저의 잘못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통신장비의 점검을 책임진 병사를 처벌하는 것은 너무 가혹한 일입니다.

사담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처음에는 억울한 생각도 들었지만, 우리로 인해 두 소녀가 생명을 잃었다는 사실 앞에 머리를 숙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잘잘못을 가리는 일은 다른 분들에게 맡기고, 두 소녀에게 용서를 구하고 싶습니다.

 

6월 15일

병장 라마단

 

 

 

사담 병장과 라마단 병장이 먼저 사과의 편지를 썼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싶다. 행간에는 이 일을 사고가 아닌 살인으로 모는 추국 언론에 대한 불만이 묻어 있지만 그들은 무조건 용서를 구했다. 이것이 강요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작성된 편지라면, 두 병사는 용기 있는 태도를 취한 것이다. 이 편지 두 통으로 인해 추국 내에서 들끓고 있는 여론도 조금은 잠잠해지리라 기대했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착각이었다.


특종을 놓친 분풀이를 하듯, 아니면 들끓기 시작한 여론에 편승하듯, 다른 신문사와 방송국은 두 사람의 편지를 교묘하게 짜깁기했다. 물론 신문 하단이나 심야방송 말미에 전문이 소개되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몇몇 문장과 구절들만 메인 타이틀로 부각시켰다. 가령 ‘고의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내가 모는 장갑차가 너희들 목숨을 앗아간 거니까. 정말 미안해. 할 수만 있다면 너희들 부모님을 뵙고 깊은 사과의 말씀드리고 싶어.’에서 ‘고의는 아니었지만, 어쨌든’‘거니까’‘정말 미안해’ 사이의 마침표(.), 그리고 ‘할 수만 있다면’이 사라졌다. 그 결과 그 문장은 ‘내가 모는 장갑차가 너희들 목숨을 앗아간 거니까 정말 미안해. 너희들 부모님을 뵙고 깊은 사과의 말씀드리고 싶어’로 바뀌었다. 자신의 잘못을 순순히 시인한 편지로 그 내용이 달라진 것이다. 라마단의 편지는 정반대로 조작되었다. ‘우리는 정말 그들을 죽이고 싶지 않았습니다.’‘우리는 정말 그들을 죽이지 않았습니다’로 바뀐 것이다. 결국 두 병사 중 한 사람은 잘못을 순순히 시인하고 또 한 사람은 잘못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 것으로 보도되었다. 왜 두 사람의 입장이 이렇듯 다른가, 또 이렇듯 서로 다른 편지를 공개한 리코아 정부의 의도는 무엇인가 등등의 추측 보도가 줄을 이었다. 그 안에 담겨 있어야만 하는 두 병사의 인간다운 최소한의 용기는 한 줌 모래처럼 씻겨 내려가고 말았다. 16일 밤, 공병대 중대장인 나지 사브리 소령와의 인터뷰가 DNN 전파를 타면서 사건은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었다.

 

 

5. 병사들은 잘못이 없다

: 44공병대 중대장 나지 사브리 소령과의 인터뷰 


연락을 받고 간 곳은 바드다그 남동쪽에 자리잡은 르네상스 호텔이었다. 커피 숍에 도착하니 정장 차림의 사내가 우리를 7층 객실로 안내했다. DNN의 토마스와 한스(사진기자)가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나와 부르스를 무시하며 정장 차림의 사내에게 화를 냈다.


토마스 : DNN과의 단독 인터뷰가 아니었습니까? 감히…..(FNN 따위를 함께 부르다니, 정도의 표현이 생략되었다)

사내 : (토마스의 질문에는 답을 하지 않고) 곧 중대장님이 오실 겁니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부르스와 한스는 베란다에 나가 담배를 피웠다. 서로의 어깨를 툭툭 치며 농담을 지껄일 만큼 두 사람은 꽤 친해 보였다. 나는 침대에 걸터앉았고 토마스는 창문 쪽 의자를 차지했다.


토마스 : 리코아 애들이 얼마나 약아빠졌는 줄 아는가? 그들은 자넬 이용하는 거야. 속지 말게.

나 : 충고 감사합니다.

토마스 : 그들이 건넨 편지를 그대로 보도한 건 큰 실수였네. ABI의 중동 담당 책임자가 크게 문책을 당했다는 군. 자넨 아직 바드다그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잘 모르겠지만, 리코아 군부에서 나오는 정보는 일단 ABI에 알려야 하네. 특종에 눈이 어두워 국익을 해치면 아니 되지.


바드다그에 도착하자마자 ABI 요원인 스미스로부터 저녁 초대를 받았었다. 부르스는 몸이 아프다는 핑계로 가지 않았고, 나는 ABI와 되도록 다투지 말고, 그렇다고 그들에게 아부하지도 말라는 부사장 지미의 충고를 떠올리며 식사를 하러 갔다. 30명 정도의 추국인들이 나의 바드다그 입성을 축하해 주었다. 의사도 있고 교수도 있고 사업가도 있었다. 그들 중 누가 ABI 요원인지는 구별하기 힘들었다. 그들 모두가 ABI 요원일 지도 몰랐다. 그때도 스미스는 방금 토마스와 비슷한 식으로 협조를 청했다. 국익을 해치는 정보가 입수되면 먼저 ABI와 상의를 했으면 합니다. 물론 나는 협조를 가장한 압력을 한 번도 듣지 않았다. FNN은 ABI의 협조를 자기 식대로 거절한 유일한 언론이었다.


나 : 국익을 해친다는 게 무슨 말인지요? 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잘 모르겠는데, ABI에 알리는 것이 법으로 정해져 있습니까? 

토마스 : 제멋대로 굴지 말게. 20년 전 리코아는 추국의 적국이었네. 추군이 주둔하면서 그 후로 잠잠해졌지만, 아직 리코아 국민 중 절반 이상은 20년 전 전쟁에서 우리를 향해 총을 쏘던 시절을 그리워하는 자들이야. 이번 살인도 그들에 의해 자행된 것이고.

나 : 편지에서도 보셨겠지만, 사담은 전쟁동이입니다. 그가 추국에 대한 분노를 키웠을 리 없습니다. 오히려 추국을 칭송하는 교육을 어렸을 때부터 받은 세대가 아닙니까? 라마단 역시 사담보다는 7살 많지만, 그에게도 특별히 추국을 증오할 부분을 찾지 못했습니다.

토마스 : 자넨 그 편지를 정말 믿는 것인가? 그건 가짜라네. 두 병사가 그런 편지를 쓰려고 해도 사단에서 막았을 거야. 상식적으로 생각을 해보게. 

나 : 허락을 받았겠지요.

토마스 : (목소리를 높인다) 군대란 명령에 죽고 명령에 사는 곳임을 모르는가?

나 : (나도 따라서 목소리를 높인다) 그럼 명령을 받고 여중생들을 살해했다는 말입니까? 소설을 쓰시는군요.

토마스 : 소설은 지금 자네가 쓰고 있는 거야. 아니지. 자네가 지금 이 우스꽝스런 소설의 주인공으로 행세하는 걸세. 제목은 ‘FNN, 리코아의 개다 되다.‘ 어떤가, 그럴듯하지 않나?

나 : 초조하신가 보군요.

토마스 : 초조하다고? 내가 왜?

나 : 언제나 특종을 먼저 얻던 DNN이 아닙니까? 헌데 두 번이나 FNN에게 특종을 빼앗겼으니 초조한 것도 이해가 갑니다.

토마스 : (코웃음을 친다) 흥, 정말 겁이 없군. 20년 전에도 나는 이곳에 종군기자로 있었어. 전폭기가 날고 대공포가 불을 뿜으며 미사일이 떨어지는 이 바드다그에 말이야. 20년이 지났지만 변한 건 하나도 없지. 어제 발행된 바드다그 대학생 연합의 기관지를 읽어봤는가? 리코아는 추국의 식민지이며, 진정한 해방을 위해서는 추군이 리코아에서 떠나야 한다는 걸세. 은혜를 원수로 갚을 놈들이야.


그때 나지 사브리 소령이 들어왔다. 정복 차림에 깔끔하게 면도를 하고 머리에 기름까지 발랐지만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두 눈은 실핏줄이 뻗어 나와 충혈 되었고, 누군가에게 얻어맞았는지 입술이 퉁퉁 부어 올랐다. 탁자 중앙에 나지 사브리가 자리를 잡자 나는 토마스와 마주보며 그 왼편 의자에 앉았다. 베란다에 있던 부르스와 한스가 돌아왔다. 부르스는 사진을 찍었고 한스는 동영상 촬영을 시작했다. 나는 나지 사브리 앞 탁자에 소형 녹음기를 틀었다.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없을, DNN과 FNN 둘만의 합동 인터뷰가 시작되기 직전이었다. 나지 사브리가 힐끔 녹음기를 본 후 인사를 건넸다.


나지 사브리 :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몇 가지 처리할 일이 남아서……. 44공병대 중대장 나지 사브리 소령입니다.

토마스 : (불만이 가득찬 얼굴로) DNN과의 단독 인터뷰가 아니었습니까?

나지 사브리 : (나를 힐끔 보며) 상부의 지십니다. DNN과 FNN을 동시에 만나라고 하셨습니다.

토마스 : 그 상부가 도대체 누굽니까?

나지 사브리 : (미소를 지으며 되묻는다) 아시잖습니까?

나 : 기자들을 만나라는 지시가 있었습니까?

나지 사브리 : 아닙니다. 기자들을 만나겠다는 것은 제 뜻입니다. 상부에서는 인터뷰할 매체만 정해 주셨습니다. (손목시계를 본다) 간단하게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내일 아침부터 리(리코아)-추(추국) 연합작전이 시작됩니다. 다시 장갑차 중대를 이끌고 이동해야 합니다. 먼저 제 생각을 말씀드려도 될까요?

토마스 : 그렇게 하시죠. 되도록 턱을 조금 들고 시선을 15도 정도 위를 향한 채 말씀해주세요.

나지 사브리 : (자리를 고쳐 앉으며) 알겠습니다. 추국의 언론과 방송에서 A언덕의 사고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하고 있는가를 어제-오늘 내내 살폈습니다. 사담과 라마단을 마치 살인자처럼 몰고 있더군요. 아랍 원리주의의 지하조직원인 사담과 라마단이 일부러 두 여중생을 살해했다고, 아예 소설을 쓴 기사도 절반이 넘었습니다. 간단히 밝히겠습니다. 그 사고의 책임은 전적으로 제게 있습니다. 두 병사는 저의 명령에 따라 장갑차를 이동한 것뿐입니다.

토마스 : 부하들의 잘못을 대신 지겠다? (혼잣말로, 작게) 눈물겹군.

나 : 도로의 폭이 장갑차 두 대가 오가기엔 턱없이 부족하다는 걸 아셨습니까?

나지 사브리 : (모든 걸 각오한 사람처럼) 알고 있었습니다.

나 : 1년 전 주민들이 그런 위험을 지적하며 훈련도로를 다른 곳으로 바꾸어 줄 것을 진정한 것도 알고 있었습니까?

나지 사브리 : 기억하고 있습니다.


나지 사브리 소령은 너무 쉽게 모든 잘못을 시인했다.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과연 이것이 그가 자청한 인터뷰일까? 아니면 토마스의 주장처럼 상부의 명령을 받고 앵무새처럼 지껄이고 있는 것일까?


나 : 그런데 왜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았습니까?

나지 사브리 : (잠시 침묵했다가) 모든 것이 제 책임입니다.

나 : 그것이 왜 중대장의 책임입니까? 당신은 훈련 도로를 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지 않습니다. 당신의 상관들, 가령 참모장이라든가 사단장에게 책임이 있는 게 아닙니까?

나지 사브리 : 아닙니다. 참모장님이나 사단장님이 일일이 도로의 폭을 알 수는 없습니다. 제가 보필을 못했기 때문입니다. 주민들의 진정이 들어왔을 때 좀더 신중하게 대처하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잘못입니다. 

나 : 참모장이나 사단장이 있는 자리에서 이 문제가 논의된 적이 있습니까?

나지 사브리 : 있지만, 제가 크게 염려할 바 없다는 의견을 냈고, A언덕을 지날 때는 각별히 조심하기로 의견을 모으고 넘어갔습니다.


내가 너무 일방적으로 나지 사브리와 대화를 나누자, 토마스가 경쟁적으로 끼어 들었다. 나는 허리를 조금 뒤로 젖혔다. 잠시 호흡을 가다듬을 필요가 있었다.


토마스 : B주 호산나 중학교 학생들이 문화답사를 온 것을 당신은 알고 있었습니까?

나지 사브리 : 몰랐습니다.

토마스 : 훈련 지역에 머무르고 있는 외국인들에 대해서는 사단에서 자체 조사하여 확인을 하지 않습니까?

나지 사브리 : 확인은 합니다.

토마스 : 그렇다면 6월 13일에도 확인을 했겠군요?

나지 사브리 : 이곳은 늘 문화답사를 오는 외국 학생들로 붐빕니다. 그 날만 해도 이 지역에 숙소를 정한 외국 학생들이 700명을 넘었습니다. 그 중 두 여학생이 캄캄한 밤에 A언덕에 산책을 나오리란 걸 어찌 알 수 있었겠습니까?

토마스 : (나지 사브리의 말을 무시하며 다시 묻는다) 그 외국인 학생 명단에는 틀림없이 아만다와 올리비아가 있었지요?

나지 사브리 : (목소리가 작아지며) 그렇습니다.

토마스 : 군사 훈련 지역에 늘 이렇게 많은 학생들이 머문다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닙니까?

나지 사브리 : 훈련이라고 해도 사격이나 포격 같은 위험한 것은 이 지역에서 행하지 않습니다. 단순히 장병들과 장갑차 등을 이동 배치시키는 훈련을 할 뿐입니다.

토마스 : 어쨌든 무장을 한 장병들이 오가는 지역이 아닙니까? 일부러 이 지역에 외국인 학생들의 숙소를 둔 것은 아닙니까?

나지 사브리 :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묻는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허면 우리 2사단이 일부러 학생들을 죽이려고 숙소를 군사 훈련 지역 안에 두었다 이 말입니까? 

토마스 : (말머리를 돌린다) 당신이 했다는 건 아닙니다. 허나 그 어린 학생들을 군사 훈련 지역에 방치해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은 맞지 않습니까?

나지 사브리 :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자꾸 제 상관들을 엮으려고 하지 마십시오. 20년 전부터 이곳은 외국인 학생들이 여행 와서 머무는 호텔과 여관이 밀집한 지역입니다. 모든 잘못을 제가 지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자리에서 일어선다) 제가 책임을 지겠습니다. 제 상관들과 제 부하들은 건드리지 마세요. 제가 감옥에 가겠습니다.


내가 나설 기회였다. 따라 일어서며 나지 사브리의 앞을 가로막았다.


나 : 소피 협정을 아십니까?

나지 사브리 : 알고 있습니다.

나 : 지휘책임을 면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당신이 추합중국의 법정에 선다면 몇 년이나 감옥에서 썩을 것 같습니까?

나지 사브리 : (대답을 못하고 시선을 내린다)

토마스 : (그의 등뒤에서 외치듯 말한다) 그 죄를 모두 뒤집어쓴다면 최소한 무기징역이지. 사형이 언도될 지도 몰라.

나지 사리브 : 사형!


그의 얼굴이 흙빛으로 바뀌었다. 자신이 방금 뱉은 말을 끝까지 책임지겠다는 듯 어금니를 꽉 다문 채 방을 나갔다. 토마스가 멀어지는 그의 뒤통수에 대고 짧게 뱉었다.


토마스 : 병신!

 

 

6월 17일, 아만다와 올리비아 시신이 추국으로 옮겨졌다. 리코아 정부는 몇 가지 더 조사할 것이 있다며 시신인도를 늦추었으나 들끓는 추국의 여론에 굴복했다. 그 동안 언론과 방송의 추격에 포착되지 않던 올리비아의 아버지 제임스도 딸의 시신이 도착한 비행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빨간 야구모자를 쓰고 선글라스로 두 눈동자를 가렸다. 딸의 시신을 확인한 제임스는 잠시 기절하여 병원 신세까지 졌다. 두개골이 바스러지고 척추가 으깨진 딸의 시신 앞에서 기절한 아버지! 여론은 이제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때를 맞추어 흑악관 대변인이 대신 읽은 대통령의 특별 담화문이 발표되었다. 20년 전 리코아 전쟁을 이끌었던 대통령의 막내아들인 현 대통령은 강경한 단어들을 동원하여 이런 주장을 폈다.


……이제 테러와의 전쟁을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살인자인 그들은 지금까지 전혀 반성하는 기색이 없습니다. 훈련 상황이었고 통신 장비에 결함이 있었다는 주장만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장비 결함만 있고 리코아 병사와 장교와 당국은 죄가 없다는 논리입니다. 그러나 나는 확신합니다. 사악한 악의 축이 다시 리코아에서 자라나고 있음을. 그 악의 입김이 천사 같은 아만다와 올리비아의 목숨을 앗아가 버렸음을. 이 사건을 처음부터 다시 조사하겠습니다. 리코아의 조사 결과는 전혀 신뢰할 수 없습니다. 우주시대에 어울리는 첨단장비들을 동원하여 그들이 살인광임을 밝혀내겠습니다. 또한 장갑차에 타고 있던 병사들은 물론 지휘책임선상에 있는 장교들까지 모두 추합중국의 법정에 세우겠습니다. 만약 리코아에서 소피협정에 따라 범죄자들을 인도하라는 우리의 정당한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최악의 상황까지 각오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책임은 전적으로 리코아 정부에 있음을 밝혀둡니다…….


 장례식은 이틀 뒤인 6월 19일 B주의 주지사가 참석한 가운데 성대하게 열렸다. 대통령은 비서실장을 보내 조의를 표했고, 각계각층의 유명인사들이 저마다 엄숙한 표정과 단정한 복장으로 참석했다. 특히 베트남 전쟁과 리코아 전쟁을 배경으로 추국의 승리를 그린 영화<담보>의 주인공 탈스론이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근육질 몸매를 과시하며 참석하여 주목을 끌었다.

그 밤에 나는 바드다그 서북쪽의 세쌍둥이 빌딩에서 이 사건의 무료변론을 자청한 알-사디 변호사를 만났다. 그는 추국을 비난하는 시집을 <사상의 집>을 비롯하여 다섯 권이나 발표한 저항시인으로도 이름이 높다. 20년 전 리코아 전쟁 때는 추국의 S.A 주립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다가 급히 귀국하여 바드다그 수호 작전에 참여한 이력도 있었다. 차기 법무부 장관으로 추천하는 이들도 많았지만, 그는 이 땅에서 추군이 모두 철수할 때까지는 어떠한 공직도 맡지 않겠다고 버텼다. 인터뷰는 한 시간 가량 진행되었다. 그는 부드러운 미소와 정연한 논리로 주저 없이 답했다. 간혹 신경을 거스르는 질문을 던져도 웃음을 잃지 않았다. 저렇듯 부드러운 성품에서 어떻게 추국을 비난하는 강한 시어가 나오는지 궁금할 정도였다.


나 :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알-사디 : FNN이니까 승낙한 겁니다. DNN이나 여타 다른 방송이나 언론매체에서의 인터뷰 요구는 모두 거절하고 있습니다. FNN이 그래도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살인광이나 테러니 하는 단어를 쓰지 않고 이 사건을 보고하더군요. 그게 다 탐 기자의 필력임을 알았습니다. 용기가 대단하십니다.

나 : 과찬이십니다. 

알-사디 : 과찬이 아니죠. 지난 20년 동안 탐 기자처럼 글을 쓰는 추국의 기자들을 만난 적이 없습니다. 대부분 리코아를 한없이 아래에 두고, 우리는 너희들에게 은혜를 베푼 나라이다. 그런데 어찌 감히…… 뭐 이런 태도를 취하지요. 이런저런 추군 범죄가 생겨나도 은혜의 논리로 덮어버립니다. 그 동안 추군 범죄로 이 땅에서 죽어간 이들에 비한다면, 이번 일은…….

나 : (말허리를 자르며) 추군 범죄에 대해서는 따로 특집기사를 낼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추군 범죄가 많다는 것과 여중생의 이번 사건은 따로 분리해서 논의해야 한다고 봅니다.

알-사디 : 분리할 수 없는 문제지만…… 그 모두를 탐 기자에게 떠넘기는 건 직무유기이기도 하니까…… 좋습니다. 이 사건에 국한해서 이야기를 해보도록 합시다.


알-사디는 향이 독특한 차를 권했다. 20년 전부터 추국에서 수입하는 커피는 단 한 잔도 마시지 않았노라고 했다. 그 외에 옷과 음식과 자동차도 추제는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리코아의 간디로 불릴 만했다.


나 : 그건 좀 지나친 민족주의가 아닙니까?

알-사디 : 지나치다구요? 추국에서 ‘지나치게’ 불평등한 요구를 하니까 우리도 ‘지나치게’ 나가는 것뿐입니다.

나 : 내정간섭이라니요?

알-사디 : 소피협정이 대표적인 경우죠. 추국인과 관련된 사건인 경우 합의를 거쳐 리코아인을 추국 법정에 세울 수 있다면, 리코아인에 대하여 범죄를 저지른 추국인도 합의를 거쳐 리코아 법정에 세울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왜 앞의 것은 되고 뒤의 것은 아니 되는 것이죠? 그 동안 리코아인을 상대로 죄를 지은 추군 가운데 단 한 명도 리코아 법정에 선 적이 없습니다.

나 : 추군 범죄 부분은 따로 논의하기로 하지 않았나요?

알-사디 : 미안합니다. 하지만 불평등하다는 걸 드러내기 위해선 어쩔 수 없네요.

나 : 추국 대통령의 특별 담화문을 읽어보셨죠?

알-사디 : 읽었습니다.

나 : 대통령은 사건 조사도 처음부터 다시 하고 범죄자들도 추국 법정에 세우겠다고 공언을 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알-사디 : 리코아는 엄연한 민주국가입니다. 사법부와 입법부, 행정부가 엄격히 분리되어 있고, 각자 맡은 바 역할을 성실히 수행합니다. 이번 사건에 대해서도 군-검 합동조사단이 엄격하게 조사를 할겁니다. 죄가 있다면 관련자들이 문책을 당하거나 벌을 받겠죠. 추국은 리코아의 군-검 합동조사단의 발표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것이 순리라고 봅니다. 헌데 겨우 나흘만에 리코아의 조사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겁니다. 모두 의심스럽다는 것이죠. 이것이 맹방에 대한 예의입니까? 그 동안 리코아에서 벌어진 추군 범죄를 추국에서 조사할 때, 우리도 많은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그때마다 추국의 공식 입장은 무엇이었습니까? 국적을 불문하고 엄정하고 깨끗한 수사를 하겠다. 우리를 믿어 달라. 추국은 민주공화국이며 인권과 법을 소중하게 여긴다. 자기들은 그렇게 깨끗하다면서 왜 리코아는 믿지 못하는 건지……. 

나 : 소피협정에 따르면 이런 사건의 경우 추국도 조사에 동참을 요구할 권리가 있습니다.

알-사디 : 그건 동참을 하겠다는 게 아닙니다. 자신들만 조사를 하겠다는 것이죠. 대통령의 담화문을 보면, 이 일을 테러와의 전쟁이라고 못 박고 있습니다. 리코아의 장병들을 유죄로 단정짓고 수사를 하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수사가 어떻게 공정할 수 있겠습니까? 이건 내정간섭입니다. 정말 두려운 것은 꼬투리를 잡아 다시 전쟁을 일으키지나 않을까 하는…….겁니다.


알-사디가 워낙 한숨을 깊이 내쉬는 바람에 인터뷰는 잠시 중단되었다. 나는 그때까지도 ‘테러와의 전쟁’을 하나의 은유로만 받아들이고 있었다. 리코아 정부를 압박하기 위한 말장난 말이다. 알-사디는 깜짝 놀랄 만큼 전혀 다른 의견을 내놓았다.


알-사디 : 20년 동안의 평화가 전쟁을 만들어낼 지도 모릅니다.

나 : 평화가 전쟁을 만들다니요?

알-사디 : 리코아 전쟁 후 20년 동안 지역이나 인종간의 작은 다툼은 있었지만 큰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추국의 방위산업은 그 사이 놀랄 만큼 커졌지요. 모르긴 해도 각 무기고마다 생산한 신종 무기가 그득할 겁니다. 아시다시피, 방위산업은 막대한 이권이 개입하지요. 한 나라의 대통령을 만들 수도 있는 막대한 자금이 그 안에 있습니다. 테러와의 전쟁! 그 소릴 들었을 때, 정말 다시 전쟁이 일어날 지도 모른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20년 전처럼, 엄청난 양의 미사일을 쏘고 또 쏘고,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남아도는 미사일을 다 허비하기 위하여……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리코아는 더 이상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 국가가 될 지도 모릅니다.

나 : 허나 그렇게 큰 전쟁을 하려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승인을 받아야 합니다.

알-사디 : (허탈하게 웃는다) 방위산업의 위력은 유엔도 한 방에 날린답니다. 20년 전에도 그런 승인 없이 그냥 미사일을 퍼부었지요. 추국이 마음만 먹는다면 아무도 못 말리죠. 그게 바로 이 세계의 비극이기도 합니다.


20년 전 리코아 전쟁은 유엔의 승인 없이 시작되었다. 테러와의 전쟁! 리코아인들은 그 여섯 단어를 결코 은유의 말장난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나 : 무료변론을 자청하셨지만, 소피협정에 따라 리코아의 관련자들이 추국 법정으로 인도되면, 변론 자체가 불가능할 수도 있지 않습니까? 추국 법률에 따르면, 추국의 변호사 자격증을 지니고 있지 않는 외국인이 추국 법정에서 변론을 펴는 것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혹시 추국의 변호사 자격증을 획득하셨습니까?

알-사디 : 아닙니다. 나는 추국에서 주는 그런 자격증 따윌 획득할 생각은 없습니다. 자격증 욕심이 있었다면 S.A 주립대학을 중퇴하지도 않았겠지요.

나 : 그렇다면 추국 법정에서 변호하는 모습을 뵐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알-사디 : 이것 역시 불평등한 조처입니다. 추국의 변호사들은 리코아 법정에 설 수 있는데, 왜 리코아의 변호사는 추국 법정에 설 수 없는 것입니까? 

나 : 그 법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변호사님은 추국으로 입국할 때 필요한 비자를 받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 동안 반추 집회를 주도한 혐의로 세 차례나 투옥되지 않으셨습니까? 추국 정부는 반추 인사인 변호사님의 입국을 결코 허락하지 않을 겁니다.

알-사디 : 소피 협정을 보면 죄인을 양도할 때는 양국의 합의가 필요하다고 나와 있습니다. 그것은 그 관련자들을 추국에 보낼 수도 있고, 리코아에서 재판을 진행할 수도 있지요. 나는 그들을 추국에 보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추국에 보내는 것 자체가 리코아의 법이 온전하고 정당치 못하다는 것을 스스로 자인하는 꼴이 되기 때문입니다. 끝까지 리코아 정부를 상대로 추국의 관련자 인도 요구를 단호하게 물리칠 것을 요구하겠습니다. 무료변론을 자청한 것도 그 투쟁의 일환입니다.


녹음기를 끄고 공식적인 인터뷰를 마쳤다. 알-사디 엘리베이터 앞까지 우리를 배웅해주었다. 잠시 기다리는 동안 지나가는 말투로 한 가지 질문을 더 던졌다.


나 : 헌데 리코아 정부가 추국 정부의 협조 요청을 거절할 수 있다고 정말 믿으십니까?

알-사디 : (조금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어려울 겁니다. 현 정부가 개혁적인 성향을 지닌 정부고 나 역시 현 대통령의 당선을 위해 방송에 나가 찬조연설까지 했지만,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다는 것은 곧 테러와의 전쟁을 각오하는 일이니까요. 하지만 순순히 응할 수는 없지요. 추국 정부에게 리코아 국민의 뜻을 분명하게 전달해야 할겁니다. 아, 엘리베이터가 왔군요. 안녕히 가십시오. 또 만납시다. 법정에서 만났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7. 천국에서 즐겁게 지내! 

: 호산나 여중생들의 편지 

 

알-사디와 헤어져 아파트로 돌아온 후 DNN을 통해 두 여중생의 장례식에 대한 뉴스를 보았다. 장중한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눈물과 분노, 그리움을 담은 표정과 이야기가 이어졌다. 모처럼 FNN 홈페이지의 독자게시판으로 들어갔다. FNN을 비난하는 글들이 반짝이는 ‘new’를 달고 하늘의 별처럼 가득 차 있었다. FNN에 대한 비난이 이 정도라면 리코아에 대한 분노와 여중생의 죽음과 관련된 병사들에 대한 적의가 얼마나 크고 끔찍한가는 짐작할 수 있다. 게시판을 나오려는데 나란히 올라온 편지 두 개가 눈길을 끌었다. 하나는 장례식장에서 낭독된 아만다와 올리비아의 동급생 니콜(그녀는 바드다그에 왔던 학생들 중 하나이기도 하다)의 편지였고, 또 하나는 리코아 병사들을 미국 법정에 세우라는 집회에 참석했던, 아만다보다 한 학년 위인 사라의 편지였다. 먼저 겉장이 예쁜 니콜의 편지부터 읽기 시작했다.


아만다, 올리비아. 잘 지내지?

여긴 많이 더운데…… 너희들이 있는 그 곳은 어떨지 모르겠다.

벌써 너희들이 우리 곁을 떠난 지 나흘이 지났어.

아직 너희 둘의 책상 위에 놓아둔 국화꽃들은 시들지 않았어. 텅 빈 너희들 자리를 보면 마음이 많이 아파. 너희들의 빈자리가 너무 크게 느껴진다.

아직도 아만다가 활짝 웃으며 손 흔들어 주던 모습, 올리비아가 열심히 노래 부르던 모습…… 작년에 체육대회를 앞두고 함께 춤 연습했던 것까지 생생해.

아주 작은 일들이지만, 너희가 떠난 후 그것들이 소중해져. 얼마 전에는 너희 둘을 기억하며 전교생이 강당에 모여 노래도 불렀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런 작은 것들 밖에는 없구나. 

속히 이 억울한 사실이 해결돼서, 너희 가족들과 우리가 진심으로 웃을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얘들아. 너희들이 못다 이루고 간 꿈들, 하늘나라에서 더 넓게 펼치면서 언제나 그랬듯이 그 곳에서 밝고 착하게, 행복하게 살아가렴. 나도 최선을 다할게.

친구들아!

너무 사랑하고, 많이 보고 싶다. 


2023년 6월 17일

니콜

 


아만다와 올리비아에게


너희는 날 잘 모를 거야. 난 너희들이 함께 화단에 앉아서 밝게 웃으며 대화하는 걸 두 번 본 적이 있단다. 오늘도 저녁 내내 너희들의 억울한 죽음을 생각하며 노래를 부르고 기도를 올리고 또 거리행진을 했단다. 우리나라의 훌륭한 어른들이 너희들을 죽인 이들을 반드시 붙잡아서 벌할 거야. 그들을 벌하더라도, 너희들은 다시는 호산나 중학교로 돌아올 수 없으니…… 안타깝고 슬퍼.



친구와 후배를 잃은 호산나 여중생들의 아픔은 매우 클 것이다. 더구나 니콜처럼 바드다그까지 동행한 친구들은 평생 6월 13일의 비극을 잊지 못하리라. 나 역시 마음이 무거웠다. 맥주라도 마시고 일찍 잠자리에 드는 것이 상책이다.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는데 부르스가 맥주를 사 들고 들어왔다. 마음이 통한 것이다. 내가 간단히 햄으로 안주를 만드는 동안 부르스는 열어둔 게시판의 편지들을 읽었다.



나 : (안주를 쟁반에 담아 내오며) 참 가슴 아픈 일이에요.

부르스 : (캔 맥주를 따서 주욱 들이키며) 비극이지. 20년 아니 그 전부터 시작된 비극이야. 저 어린것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짓이니까.

나 : 20년 전이라면?

부르스 : 리코아 전쟁 때 목숨을 잃은 여중생이 몇 명이나 될 것 같은가? 또 그보다 앞선 베트남 전쟁에서는? 그때 죽은 이들을 기억하며 쓴 동급생이나 선후배들의 편지를 읽어본 적 있나?

나 : 없습니다. 그런 게 남아 있습니까?

부르스 : 지금은 이렇게 인터넷에 띄우니까 없어지지 않고 대부분 보존할 수 있지만, 그때는 종이에 대충 써두었으니 찢어지거나 불태워진 것이 태반이겠지. 그렇더라도 수 천 통이 넘는 편지가 리코아 전쟁 기념관 지하 서고에 쌓여 있다네.

나 : 재작년에 만든 리코아 전쟁 기념관 말인가요?

부르스 : 그렇네. 추국이 한사코 건립을 반대했던, 리코아 국민들이 한 푼 두 푼 모은 돈으로 세운 기념관이지. 기념관을 세운 후 처음으로 한 일이 리코아 전쟁과 관련된 개인의 기록들을 모으는 일이었어. 그때 수천 통의 편지가 발굴되었다네. 서른이 넘고 마흔 줄에 이른 아낙네들이 옛날 자신들이 쓴 편지를 찾아서 가져오는 광경…… 상상을 한 번 해보게나.

나 : (말머리를 돌리며) 수천 통이든 두 통이든……. 양이 중요한 건 아닙니다. 

부르스 : (맥주 캔을 하나 더 따서 세 모금 삼킨 후) 그렇지. 헌데 지금이나 20년 전이나, 추국의 여중생이든 리코아의 여중생이든, 친구를 그리워하며 하는 말은 왜 똑같을까?

나 : (부르스의 가늘게 떨리는 눈꺼풀을 바라본다)

부르스 : 천국에서 행복 하라는 말, 즐겁게 지내라는 말이 꼭 들어간다네. 천국? 그곳에서 과연 이 아이들이 즐겁고 행복할 수 있을까? 부모, 형제, 친구와 헤어진 이 아이들이?

 

그 후로 2주 동안 상황이 매우 급박하게 돌아갔다. 6월 18일, 추국은 정식으로 리코아 정부에 소피 협상에 따른 일련의 조치들에 대한 합의를 제안했다. 그리고 6월 19일, 리코아 정부의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사건조사단이 입국했다. 리코아 국회는 임시의회를 소집하여 추국의 제안에 대한 논의에 들어갔다. 대통령은 국회의 결정에 따르겠다며 한 발 뒤로 물러섰다. 국회는 협상에 응하자는 다수와 협상 자체를 거부하자는 소수로 나누어져 팽팽하게 맞섰다. 당장 표결에 들어가면 협상단 구성에 착수할 수 있지만, 여론은 소수를 응원하는 쪽으로 기울었다. 추국의 제안이라면 무조건 받아들이던 관행에 제동이 걸린 것이다. 독자적인 활동에 착수한 추국 사건조사단도 어려움을 겪었다. 2사단은 물론 리코아 군-경 조사단의 도움을 받지 못한 것이다. 초기 사건조사기록을 넘겨 달라는 요구는 거절당했고, 두 병사와 관련 장교들과의 만남도 이루어지지 못했다.


급기야 6월 25일 추국 대통령은 직접 리코아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협조를 당부했다. 리코아 대통령은 최선을 다해 돕겠다고 말을 받았지만, 나아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이틀을 더 기다린 다음, 추국 대통령은 6월 27일 다음과 같은 주장을 DNN과의 인터뷰에서 폈다.


……추국의 아름다운 두 딸이 목숨을 잃은 지도 벌써 2주가 지났습니다. 이제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습니다. 우리는 리코아 국회가 추국의 편인지 아니면 적인지 판단해야 합니다. 리코아에서의 현지 조사를 방해하고 협상 테이블에 앉는 것마저 거부하는 것은 두 딸을 죽인 자들을 보호하려는 짓입니다. 따라서 그들 역시 살인자들과 다를 바 없습니다. 리코아의 대통령과 각료들도 입장을 분명히 해야 할겁니다. 본인은 언제든지 악과 맞서 싸울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감히 힘으로 추국의 정의로운 일들을 가로막는다면, 힘으로 응징할 것입니다.


또한 그는 추국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리코아 장병들에 대한 처벌은 리코아 정부에 맡기자는 움직임에 대해서도 쐐기를 박았다. 그것은 또한 FNN에 대한 경고이기도 했다.


……적은 밖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항상 내응 하는 자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두 딸을 죽인 리코아인들을 벌하는 일을 어찌 리코아인에게 맡길 수 있겠습니까? 그런 거짓 주장을 펴는 사람 역시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할 것입니다. 바드다그에서 리코아인들을 동정하는 글과 사진, 방송을 보내는 무책임하고 애국심이 전혀 없는 언론사와 방송사들 역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입니다.


태평양에 있던 항공모함 두 척이 리코아를 향해 다가서기 시작한 것도 이 즈음이었고, 그로부터 사흘 동안 추국 내에 있는 리코아인 50여명에게 추국의 이익에 위배되는 행위를 했다는 애매한 죄를 뒤집어씌워 체포했다. 추국 의회에서는 리코아의 수출품을 내년부터 받지 말자는 결의안이 상정되었고, 리코아와 국경을 인접한 나라들 역시 리코아인들이 자국 영토로 들어오는 것을 금지시켰다. 물가는 폭등했고 범죄율은 하룻밤 사이에 열 배 이상 올라갔다.

리코아 내의 여론도 둘로 나누어 맞서기 시작했다. 대규모 집회가 각기 다른 장소에서 정반대의 의견을 가진 연사들을 단상에 앉힌 채 열렸다. 한 쪽은 추국의 압력에 굴하지 말고 영예롭게 싸우자며 성전(聖戰)을 소리 높여 외쳤다. 20년 전 전쟁의 경험이 없는 젊은이들 대다수가 이 의견에 동조했다. 다른 쪽은 전쟁만은 막아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전쟁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희생이 따르는가를 심사숙고해야 한다는 것이다. 추국과 맞서 싸우면 패배는 기정사실이며, 명분만 앞세우다 국민 전체가 거지꼴로 전락할 수는 없다고 했다.


젊은이들의 전폭적인 지지로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 리코아 대통령이 드디어 결단을 내렸다. 지지 층의 이탈을 각오하고서라도 전쟁의 피 바람이 리코아에 부는 것을 막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대통령과 형제처럼 지내던 재야 인사들의 비난 성명이 잇달아 발표되었지만 대통령의 뜻은 바뀌지 않았다. 리코아 국회 역시 6월 30일 총회에서 추국과의 합의에 적극적으로 임할 것을 찬성 179표, 반대 68표, 기권 9표로 가결시켰다. 기다렸다는 듯이 대통령은 불법적인 대학생 조직 리코아 총학생회 연합의 6기 의장을 역임하고 국회에 입성한 35살의 초선의원 자나티를 협상단장에 임명하였다. 추국의 노련한 협상가들과 맞서기에는 어리고 경험이 없다는 비난이 제기되었으나, 대통령은 자나티와 나는 동업자라는 표현으로 그에 대한 신뢰를 더욱 강하게 표했다.


이러한 신뢰는 일주일만에 금이 가고 말았다. 7월 1일부터 일주일 동안 바드다그 북서쪽 칼라호텔에서 시작된 협상은 두 차례의 밤샘 회의를 포함 총 열일곱 차례나 열렸지만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결국 대통령은 자나티를 협상테이블에서 내려오게 하고 그 자리에 자신의 정치적 대부인 변호사 마흐무드를 앉혔다.


협상단장에 임명된 후로는 얼굴조차 보기 힘들었던 자나티를 7월 8일 아침 독신자 아파트에서 만났다. 노총각인 그는 샌드위치 한 쪽으로 간단하게 아침을 해결했다. 지난 일주일 동안의 피로가 한순간에 밀려오는 듯 인터뷰 종종 입을 가리며 하품을 했다. 그는 차세대 리코아의 지도자를 묻는 설문 조사에서 3위를 차지한 인물답게 예의바르고 여유를 잃지 않았다. 어젯밤 협상단장에서 밀려난 사람답지 않게 종종 소리내어 웃기까지 했다.


나 :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거절할 줄 알았습니다.

자나티 : 처음엔 거절하려고 했습니다. 한숨 푹 자고 나서 새로운 마음으로 일을 다시 할 생각이었죠.

나 : 그런데 왜 승낙하셨나요?

자나티 : 협상을 하는 동안…… 칼라호텔이 너무 폐쇄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물론 보안상의 문제도 있겠으나, 국내외 기자들의 출입이 철저하게 통제되었고, 회담 소식은 저녁에 약 15분 정도의 브리핑이 전부였습니다. 수많은 억측들이 떠도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제가 협상단장에서 물러난 것에 대해서도 벌써 많은 소문이 돌고 있을 겁니다. 한 번은 해명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리코아에 대해 악감정을 가지고 있는 추국의 국민들에게 저의 진심을 알려드리고 싶었습니다. 마침 DNN이 아니고 (소리 없이 웃는다) FNN이기에 결심했습니다.

나 : (따라 웃으며) FNN이라고 반드시 리코아에 우호적인 기사만 쓰는 것은 아닙니다.

자나티 : 알고 있습니다. 왜곡이나 과장만 하지 않으면 됩니다. 잠시만!


지나티는 직접 끓인 원두커피를 내왔다. 커피를 비롯한 추국산(産) 상품을 전혀 이용하지 않는 알-사디 변호사의 얼굴이 떠올랐다. 자나티가 리코아 총학생회 연합 의장으로 있다가 투옥되었을 때 변호를 맡은 사람이 바로 알-사디 변호사다.

 

나 : (커피 향을 음미하며) 향이 좋군요. 커피를 즐기시는가보죠? 알-사디 변호사는 커피를 한 모금도 입에 대지 않으시던데…….

자나티 : 선생님(알-사디 변호사를 선생님이라고 불렀다)께서는 ‘리코아의 간디’로 존경받으시는 분입니다. 그분 말씀은 조목조목 다 옳지요. 허나 저는 이 맛을 버릴 수 없습니다. 그래도 선생님 앞에서는 커피 안 마십니다. 이상한가요?

나 : 아, 아닙니다. 저도 알-사디 변호사님과 인터뷰하는 동안 커피 생각이 간절했습니다. 오늘은 그런 걱정 할 필요가 없겠네요.

자나티 : (조금 심각한 표정으로) 선생님은 추국의 저질 문화가 리코아 청소년들의 영혼을 잠식하는 걸 걱정하십니다. 바드다그 시내에 한 번 나가보세요. 청소년들이 입고 있는 옷과 듣고 있는 음악, 액세서리, 신발, 머리 모양 어느 것 하나 추국의 유행을 따라가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우리 것을 찾자는 운동을 펴고는 있지만 역부족이죠. 리코아 영화시장의 이익 중 80% 이상을 추국의 블랙버스트들이 싹쓸이 해 가는 상황입니다. 참으로 큰 일이 아닐 수 없지요.

나 : 그렇지만 이번 협상에서 내내 의원님을 성원했고, 또 지난 국회에서의 표결 때도 소수의견을 개진한 의원들을 지지한 이들이 바로 그 젊은이들이 아닌가요?

자나티 : (고개를 끄덕이며) 바로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그들이 추국 문화의 흉내를 낸다고 추국의 앞잡이로 매도하면 아니 됩니다. 그들의 가슴에는 이 나라를 사랑하는 뜨거운 신심이 있는 겁니다.

나 : 그들은 의원님이 어제 단장직에서 해임된 것에 많은 불만을 표시하고 있습니다. 

자나티 : 그렇겠지요. 허나 저로서는 최선을 다했고…… 건널 수 없는 강이 있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다 한 후에, 제가 다치지 않도록 대통령께서 배려하신 것이 고마울 따름입니다.

나 : 배려를 했다구요? 해임이 어찌 배려가 될 수 있다는 말입니까?


자나티는 잠시 대화를 끊고 커피를 끝까지 비웠다. 그리고 한 잔 더 따라와서는 각설탕 하나를 넣었다. 각설탕이 커피에 녹으면서 작은 흔들림이 수면에 나타났다.


자나티 : (신중하게) 이건 오프 더 레코드로 해주셨으면 합니다.

나 : (녹음기를 끈 후) 말씀하시지요.

자나티 : 7월 1일 협상 테이블에 처음 앉는 순간부터 저는 같은 말만 되풀이했습니다. 병사들을 비롯한 관련자들에 대한 재판을 리코아 국내에서 리코아 법관들에 의해 진행하겠다. 사건조사에는 적극적으로 협조하겠으나 이것만은 양보할 수 없다.

나 : 추국 협상단의 반발이 심했을 텐데요?

자나티 :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저처럼 초선인데다가 반추 운동 경험도 있는 젊은이가 필요했던 것이겠지요. 난 어리고 무식해서 아무 것도 모릅니다…… 이런 식으로 막 우길 수 있으니까요.

나 : 그렇게 하라고 대통령이 밀명을 내렸단 말입니까?

자나티 : 아닙니다. 그런 걸 말을 해야 알아듣는다면 어떻게 제가 대통령님을 모신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나 : 그렇게 하는 게 리코아에게 어떤 이득이 있습니까?

자나티 : 끌려갈 때 끌려가더라도, 추국에 의해 부당하게 내려진 규제들을 먼저 푸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이쪽에서 어느 정도 버텨줘야 추국 협상단도 사탕 몇 개는 줘야겠다고(웃으며) 추국 정부에 보고하지 않겠습니까? 두고 보세요. 추국에서 박사학위까지 받은 마흐무드 변호사가 새로 단장이 되셨으니, 많은 규제 조치가 취소되거나 현격하게 완화될 겁니다.

나 : 결국 재판은 추국에서 열리겠군요.

자나티 : 끝까지 리코아에서 열 것을 고집하면 전쟁입니다. 패배가 확실한 전쟁에 리코아의 젊은이들을 내몰 수는 없지요. (양손을 소리나게 마주 치며) 자, 이제 다시 녹음을 시작하시죠.


현실정치는 어디서나 명분과 실리를 함께 챙기게 마련이다. 추국과의 협상이 단숨에 진행되었다면 젊은이들은 대통령과 집권당에게 완전히 등을 돌렸으리라. 그래도 일주일 이상 버티며 난항을 겪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훨씬 유리했던 것이다. 나는 다시 녹음기를 틀고 물었다.


나 : 마흐무드 변호사가 새로 단장에 임명되었습니다. 

자나티 : (눈웃음을 지으며) 훌륭하신 분입니다. 추국의 정관계에 지인들이 많고, S.A 주립대학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을 만큼 추국 사정에 밝으십니다. 차분하고 항상 주변 사람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는 3선 의원이시니, 좋은 결과가 기대됩니다.

나 : 합의가 잘 이루어지리라고 전망하시는군요.

자나티 : 그렇습니다.

나 : (조금 목소리를 높이며) 그런데 어떻게 합의되는 것이 잘 되는 걸까요? 두 병사가 리코아 법정에 서는 겁니까 추국 법정에 서는 겁니까?

자나티 : (약간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우선 두 나라가 상대를 믿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리코아가 추국을 믿고 추국이 리코아를 믿는다면, 좋은 결과가 나오리라고 생각합니다.

나 : 33개 시민단체들에 의해 ‘사담과 라마단의 추국 인도를 반대하는 시민들의 모임’이 결성되었습니다. 그 모임에 동참하실 생각이십니까?

자나티 : 신중하게 검토하겠습니다.

나 : 끝으로 하시고 싶은 말씀 있으신가요?

자나티 : 추국 국민들께 한 말씀 드리고 싶네요.(나는 얼마든지 길게 해도 좋다는 뜻으로 양손바닥을 들어 보였다) 먼저 두 여중생의 죽음에 머리 숙여 사과의 말씀을 올립니다. 리코아는 민주국가입니다. 어린 소녀 두 명의 목숨을 앗아간 사건을 그냥 묻어두지는 않습니다. 더구나 바발론이 좋아서 바드다그를 찾은 추국의 학생들이 아닙니까. 철저하게 조사하여 시시비비를 가려낼 것입니다. 그러니 저희를 믿어 주십시오. 결코 누구에게 유리하고 누구에게 불리하도록 미리 판단을 내리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추국 국민 여러분께 호소합니다. 리코아를 미리 판단하지 말아주십시오. 조사가 끝나고 판결이 내려질 때까지, 미리 리코아를 단죄하지 말아 주십시오. 이에는 이, 눈에는 눈으로 맞서야 한다는 생각을 제발 강자의 넓은 아량으로 접어주십시오. 리코아는 약합니다. 추국 국력에 1000분의 1도 안 되는 작은 나라입니다. 더구나 이미 세 차례나 전쟁을 겪었기에 다시는 이 땅에서 전쟁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리코아를 한 번 만 더 믿어주십시오. 감사합니다.


자나티의 예상처럼 협상의 속도는 눈에 띄게 빨라졌다. 아침에 합의하면 점심 무렵 규제가 풀리는 식이다. 추국에서 파견 나온 조사단과 리코아의 군-검 합동조사단이 함께 더 거대한 조사단을 꾸리고, 그 단장을 추국 쪽에서 맡기로 합의하자, 이제 협상은 막바지에 이르렀다는 보도가 전 세계로 전해졌다. 조사 후 혐의가 인정되는 자들을 추국으로 인도하는 것이 역시 난제였다. 마흐무드도 그것만은 순순히 양보하지 않았던 것이다.


7월 10일에는 장갑차에 타고 있던 두 병사만 넘겨주겠다는 최후통첩이 리코아 쪽에서 나왔다. 지휘 책임이 있는 장교들은 보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추국의 협상단은 2사단장인 알 야히야 중장에서부터 참모장과 중대장을 모두 원했다. 회담은 다시 결렬되었다.


7월 11일 새벽, 추국의 대통령은 협상단과 조사단의 철수를 명령했다. 갑작스런 결정에 리코아 대통령과 각료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협상단과 조사단이 돌아가면 그 다음에 닥칠 것은 경제 제재와 전쟁이었다. 리코아 대통령이 직접 추국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협상이 결렬된 것에 대해 사과의 외교적 표현인 ‘강한 유감’을 표시하고 나서야 철수 는 이틀 후로 연기되었다. 추국의 협상단은 백기 항복을 요구했다. 관련 병사와 장교의 신원을 확보한 후에야 조사를 계속하겠다는 것이다. 대화는 중단되었고 힘에 굴복하느냐 아니면 저항하느냐 하는 선택만이 남았다.


내가 제2사단 참모장 알 사하프 대령으로부터 전화를 받은 것은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7월 12일 밤이었다. 바드다그에 온 후론 거의 울리지 않던 핸드폰이 갑자기 숨 넘어가는 소리를 냈다.


알 사하프 : (약간 떨리는 음성으로) 일단 밖으로 나오시오.

나 : (수건으로 카메라를 닦고 있는 부르스와 눈이 마주친다. 부르스가 뭔가 눈치를 채고 고개를 끄덕인다) 알겠습니다.


우리는 곧장 아파트를 나와서 놀이터로 갔다. 비를 피하기 위해 미끄럼틀 아래로 들어가 우산을 접자마자 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알 사하프 : 어디요?

나 : 아파트 앞 놀이터입니다.

알 사하프 : 주위를 둘러보시오. 수상한 자들이 있소?

나 : (주위를 살핀 후) 안 보이는데요. 왜 그러십니까?

알 사하프 : 틀림없이 누군가 잠복하고 있을 게요. 조심하오…… 사담과 라마단을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 변함이 없소?

나 : 만날 수 있습니까?

알 사하프 : 그렇소. 잠깐 동안이긴 하지만…… 그들의 진심을 들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 게요. 이리 오시오.


알 사하프는 바드다그는 서남쪽의 허름한 빈민굴의 복잡한 골목들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나는 정신 없이 수첩을 꺼내 메모를 했다. 오른쪽, 왼쪽, 왼쪽, 오른쪽. 과연 이 길을 바로 찾아갈 수 있을까 걱정이었다.


알 사하프 : 길이 좁긴 해도 차 한 대는 드나들 수 있소. 걷지는 마시오. 당신도 알겠지만 이곳의 밤거리를 걷는 건 날 향해 제발 총을 한 방 쏴 주십시오, 하고 애원하는 것과 같으니까. 30분 안에 오시오. 그보다 늦으면 우릴 만날 수 없을 것이오.

나 :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었다. 부르스가 취재수첩을 빼앗듯이 낚아챘다. 그리고 어지럽게 적힌 메모를 뚫어지게 쳐다본 후 다시 돌려주었다. 성큼성큼 비를 맞으며 지프차 쪽으로 갔고, 나는 우산을 쓴 채 종종걸음으로 뒤를 따랐다.


나 : 어딘지 알겠어요?

부르스 : (운전석에 오르며) 예전에 잠깐 살던 곳이야.

나 : (조수석에 오르며) 빈민촌에 살았단 말입니까?

부르스 : 가난하긴 해도 살 만한 동네야. 언제까지 오라고 해?

나 : 30분 이내로.

부르스 : 빠듯하겠군. 서둘러야겠어.


부르스는 신호를 하나도 지키지 않고 속력을 냈다. 빗길에 과속은 위험했지만 지금으로선 그의 운전 실력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30분이 경과하면 두 병사를 만날 기회가 영영 사라지고 만다는 것이다. 내일 새벽에 추국 조사단으로 두 병사를 인계하라는 명령이 하달된 것이 분명하다. 내일 이후로는 두 병사를 자유롭게 만나 취재하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알 사하프는 분명 두 병사들을 통해 무엇인가 알리고 싶은 일이 있는 것이다. 서둘러야 한다.


아파트 밀집 지역을 지나 빈민촌으로 들어서기 위해 지프차는 크게 원을 그리며 좌회전을 했다. 부르스는 물론 나 역시 이 길을 몇 번 지나쳤기에 갑작스런 커브 길에 놀라지는 않았다. 지프차가 덜컹대는 2차선으로 접어드는 순간 갑자기 뒤따라오던 대형 트럭이 쿵 소리를 내며 지프차의 뒤를 들이받았다. 맞은편에서 달려오던 트럭이 중앙선을 넘어 지프차를 향해 돌진했다. 비명을 지를 틈도 없었다. 부르스가 핸들을 왼쪽으로 돌리는가 싶더니 갑자기 몸이 하늘로 부웅 떠오르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이마에서부터 눈앞이 캄캄해졌다. 죽음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는지도 몰랐다.

 

9. 마지막 일격! – 제임스 찾아 A언덕 넘기 

 

알 사하프의 유서를 읽은 것은 그로부터 두 달이 지난 9월 12일의 일이다. 두 달 동안 나는 의식을 잃고 식물인간처럼 누워 있었다. 담당의사는 평생 깨어나지 못할 수도 있었다며 작은 기적에 감사하며 알라의 은혜에 감사하는 기도를 올렸다. 잠시 후 왼 팔목을 붕대로 칭칭 감고 삼각 끈을 어깨에 고정시킨 모습으로 부르스가 병실로 들어왔다. 그는 나를 끌어안고 집 떠났다 돌아온 탕아를 위로하듯 등을 다독여주었다.


부르스 : 다행이야.

나 : 두 달이나 지났다는 게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부르스 : 사실일세. 일단 좀 더 쉬게. 

나 : (부르스가 침대에 누우라는 뜻으로 어깨를 가만히 밀었지만 등을 더 꼿꼿하게 세우며) 괜찮습니다. 헌데 두 병사는? 또 참모장은 어찌 되었습니까?

부르스 : 사담과 라마단에 대한 재판이 추국 B주에서 열리고 있다네. 사실 심리를 끝마치고 닷새 후 마지막 판결이 배심원단에 의해 내려질 거야.

나 : 재판이 그렇게 빨리 진행되었단 말입니까?

부르스 : 리코아 정부가 특별히 선임한 B주의 가장 명망 있고 진보적인 변호사들이 연기 신청을 여러 차례 냈지만 모두 기각되었다네. 속전속결. 이것이 추국 정부의 입장인 것 같네.

나 : 지휘선상에 있는 장교들도 모두 재판을 받고 있습니까?

부르스 : 2사단장과 중대장의 재판이 역시 B주에서 진행 중이네.

나 : 참모장은?

부르스 : 알 사하프 참모장은 우리와 만나기로 한 바로 그 빈민촌에서 권총 자살했네.

나 : (깜짝 놀라며) 자살이라구요?

부르스 : 권총에 지문이 뚜렷하고, 바지에서 짤막한 유서가 발견되었다네.

나 : 이상하지 않습니까? 자살할 사람이 우리에게 전화를 걸어왔을 리 없습니다.

부르스 : 리코아 정부도 자살로 최종 결정을 내렸네. 유서의 필체도 참모장의 것과 일치했지. 유서에는 ‘군인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이 길을 택한다’ 라고 적혀 있었다네. 그 ‘명예’가 무엇인지에 대해 논란이 많았지. 추국에서는 죄를 인정한 것이라고 했고, 리코아의 ‘사담과 라마단의 추국 인도를 반대하는 시민들의 모임’에서는 죽음으로 무죄를 주장한 것이라는 성명을 발표했다네. 어쨌든 그가 죽는 바람에 사단장과 중대장의 혐의를 입증하는 것이 훨씬 어려워졌네. 불리한 일들은 모두 참모장이 도맡아서 했다고 넘기고 있지. 죽은 사람만 불쌍한 건가……

나 : (얼굴을 잔뜩 찌푸리며) 그 밤의 교통사고 말입니다. 그게 정말 사고였나요?

부르스 : (고개를 숙였다가 들며) 나중에…… 나중에 이야기하세. 지금은 쉬는 게 급선무야.

나 : 제가 벌써 세 번 째 아닙니까? 우연한 사고가 아니죠?

부르스 : 그 밤에 괴한들이 아파트에 들어와서 가구며 책이며 모든 집기를 깨끗이 가져갔다네.

나 : 아파트에……. 그렇다면?

부르스 : 그래. 그 날 일은 단순사고가 아닐세. 자네와 날 죽이고 관련 자료를 훔치려고 한 게야.

나 : 누가 그런 짓을 한 겁니까? 혹시……

부르스 : 속단은 말게. 하여튼 자네가 깨어났으니 정말 다행일세.

나 : 관련자료들을 모두 잃어버린 겁니까? 그 방에 가득 들어있던 필름들까지?

부르스 : (내 어깨를 다시 밀며) 잠깐만 더 눈을 붙이게. 아주 중요한 것들은 미리 딴 곳에 옮겨두었다네. 자네보다 먼저 파트너가 되었던 폴과 필립이 교통사고를 당한 후부터 중요한 자료는 따로 보관해왔지. 그러니 아무 걱정말고 한 숨 더 자게. 자세한 건 내일 아침에 이야기하세.


쉽게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두 달이나 누워 있었던 것이 아쉽고 억울했다. 간호사에게 수면제를 얻어먹은 다음에야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이명(耳鳴)이 들렸다. 드르륵드르륵. 땅바닥을 긁는 소리. 나는 단숨에 그 소리를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아만다와 올리비아를 덮친 장갑차 소리였다. 갑자기 거대한 장갑차가 내 몸 위로 올라왔다. 천천히 천천히 엄지발가락 끝에서부터 뼈마디 하나하나를 부수기 시작했다. 몸을 빼고 싶었지만 거미줄에 걸린 파리처럼 꿈쩍도 할 수 없었다. 비명도 나오지 않았다. 이렇게, 이렇게 죽어갔겠구나. 이렇게!


스미스 : 괜찮소? 탐! 탐!

나 : (눈을 떴다. 처음에는 스미스를 알아보지 못했다. 악몽의 고통이 아직도 두 발을 짓눌렀다) 아아! (그러다가 황급히 몸을 일으켜 앉는다) 휴우!

스미스 : (손수건을 꺼내다 말고) 이제 정신이 드오? 나요. 스미스!


ABI 중동담당 책임요원인 대머리 스미스였다. 나는 그가 건네는 냉수 한 컵을 단숨에 마셨다. 창 밖으로 햇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벽시계를 보았다. 11시. 내가 13시간이나 잔 모양이다.


스미스 : 깨어났다는 연락을 받고 곧장 달려온 겁니다. 다행이에요. 얼마나 걱정을 많이 한 줄 아십니까?

나 : (퉁명스럽게) 나를 왜 걱정합니까? ABI를 비판하는 기사만 잔뜩 쓴 사람인데.

스미스 : (사람 좋게 웃으며) 그런 말 마세요. 중동에 거주하는 추국인을 보호하는 것이 내 중요한 임무이기도 합니다. 탐 기자의 글이 ABI에 우호적인 것은 아니었으나 날카로운 비판이 있어야 ABI도 새롭게 거듭날 수 있는 것이 아니겠소? 하하하.

나 : (시선을 아래로 내리며) 팀장(스미스의 공식 직책은 알 수가 없다. 작년 11월 스미스의 초대를 받아 환영파티에 참석했을 때 사람들은 그를 대머리 팀장이라고 불렀다)님이 병문안을 오시리라곤 솔직히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스미스 : 우린 친구 아닙니까? 난 그렇게 믿고 있었소만.

나 : 두 달 전 그 친구에게 배신을 당한 게 아닐까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스미스 : (펄쩍 뛰며) 아니오. ABI가 왜 탐 기자에게 그런 짓을 합니까? 비판적인 기사 조금 썼다고 살인을 저지르는 건 추국의 ABI가 할 일이 아닙니다.

나 : (목소리를 낮추고 스미스와 눈을 맞춘 후) 그럼 누가?

스미스 : (역시 목소리를 낮추며) 아직 조사중이지만, 아무래도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의 짓이 아닐까…… 싶습니다.

나 : 악마를 추종하는 리코아인들의 짓이다 이 말이오?

스미스 : 자살한 알 사하프 참모장이 이슬람 원리주의자 조직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는 첩보가 있습니다. 

나 : 그들이 왜 우릴 노린단 말입니까?

스미스 : 사진 때문이겠지요. 그 현장 사진이 재판에 불리하다고 판단한 겁니다. 그걸 빼앗기 위해……

나 : 과연 그것 때문에 우리를 죽이려고 했을까요?

스미스 : 지독한 놈들입니다. 평화로운 이 세계를 전쟁의 도가니로 몰아가려는 놈들이에요. 지난 20 년 동안 40번도 넘게 자살테러를 자행했지요. 목적을 위해서 한두 명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대수롭지 않게 여길 겁니다.

나 : (냉장고 위에 놓인 스미스가 사온 꽃다발을 그제야 발견하고) 그걸 알려주기 위해 여기까지 오신 겁니까?

스미스 : 아닙니다. 한 가지 부탁을 하려고 왔습니다.

나 : 부탁? 두 달만에 깨어난 환자에게 무슨 부탁을 할 게 있습니까? B주에서 재판이 당신들 원하는 대로 잘 이루어지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스미스 : 언제부터 다시 일선으로 복귀하실 생각입니까? 적어도 올해는 그냥 요양 차원에서 쉬시는 것이 좋겠지요? 제가 특별히 보아둔 별장이 하나 있습니다. 스페인의…..

나 : (말허리를 자른다) ABI의 별장입니까? 저는 오늘이라도 당장 취재를 시작할 겁니다. 전체적인 상황을 파악하는데 시간이 좀 걸리긴 하겠지만 두 달 동안의 공백을 메우려면 더 바삐 움직여야겠지요.

스미스 : (두 눈이 날카롭게 빛난다. 그러나 곧 다시 미소를 지으며) 그렇군요. 역시 탐 기자의 일 욕심은 대단합니다. 그래도 아까 병원 담당의사에게 문의했더니, 적어도 나흘은 더 입원해서 경과를 살펴야 한다더군요. 아직 뇌파의 흐름도 자연스럽지 않고, 몇 가지 정밀검사를 해야 한답니다.

나 : 전 멀쩡합니다. 내일 아침이라도 퇴원할 겁니다.

스미스 : 나흘만 더 입원하세요. 온전히 몸을 만들어야 일을 할 수 있는 겁니다. 

나 : 나흘 동안 병실에 묶어두어야 하는 이유라도 있습니까?

스미스 : (앞이마를 손바닥으로 쓸며) 아닙니다. 다만……


그때 부르스가 과일이 담긴 종이봉투를 오른손에 들고 병실로 들어왔다. 스미스는 몸조리 잘 하라는 말을 남기고 서둘러 떠났다. 스미스가 엘리베이터에 오른 것을 확인한 다음 부르스는 종이봉투를 뒤집었다. 바나나며 오렌지가 우르르 쏟아졌다. 손에 꼭 들어오는 화상 전화기가 제일 마지막에 나왔다.


나 : 뭡니까, 그게? 첩보영화를 찍는 것도 아니고?

부르스 : (대답 대신 수첩에 적었다. ‘도청을 피하기 위해서는 하는 수 없네. 이 전화기를 이용하면 5분 정도는 괜찮아. 자, 복도로 나갈까? 지하 시체실에 방을 하나 잡아두었으이.’)


시체실은 매우 춥고 스산했다. 부르스가 방의 왼편에 마련된 유리관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부르스 : 자네가 잘못되면 들어갈 마지막 안식처였지.

나 : 도청되고 있다는 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부르스 : 두 달 전 그 일이 사고가 아니라고 일부러 말을 했던 걸세. 스미스가 낚싯밥을 깨문 줄도 모르고 달려왔더군.

나 : 그랬군요. 

부르스 : 자, 어서 전화기를 들게. 이 번호를 돌려. 지미 부사장이 애타게 기다릴 걸세.

나 : (쪽지를 건네 받은 후 전화번호를 누른다. 흔들리는 화면에 지미 부사장이 나타난다) 탐입니다.

지미 : 자넨가? 정말 살아났군. (웃으며) 난 또 중동담당 기자를 다시 뽑아야 되는 줄 알았네. 몸은 어떤가?

나 : 괜찮습니다. 헌데 거긴 어딘가요? FNN 사무실은 아닌 듯합니다.

지미 : 사정이 좋지 않네. 열흘 전 폭도들이 난입했다네. DNN에서는 그들이 애국청년동맹의 회원들이라고 하더군. 잠시 피신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이곳으로 왔다네.

나 : 고생이 많으십니다.

지미 : 자네들만큼이야 하겠나. 그건 그렇고 내일부터 다시 취재를 시작할 수 있겠나?

나 : (스미스의 얼굴을 떠올린 후) 물론입니다.

지미 : 제임스 크루즈가 새벽에 바드다그 공항에 도착할 걸세. 

나 : 제임스 크루즈라면?

지미 : 올리비아의 아버지 말이야. 결심 공판에도 참석하지 않고 A언덕을 찾을 거라고 하네. 마지막 일격을 가하겠다는 것이지.

나 : 마지막 일격이라구요?

지미 : 추국 국민들에게 6월 13일의 기억을 상기시키기 위한 수단이겠지. 

나 : 배심원들은 외부와의 접촉이 완전히 차단되지 않습니까?

지미 : 그걸 믿나? 그 배심원들의 면면을 한 번 확인해보게. 중고등학생 딸을 둔 부모가 절반이 넘네. 유죄는 확정적이야. 마지막으로 여론몰이를 하기 위해 바드다그를 찾는 것이겠지.

나 : 오늘 아침, ABI의 스미스가 제게 취재를 하지 말라는 뜻을 간접적으로 전했습니다. 나흘 동안 병실에 누워 있으라더군요.

지미 : 어찌 할 생각인가?

나 : 두 달이나 누워 있었더니 신선한 공기가 그립습니다. A언덕의 공기는 참 싱그럽지요.

지미 : 조심하게. 이제 FNN은 추국 제일주의자들에게 표적이 되었으니까.

나 : 알겠습니다.


9월 14일 아침 8시, 많은 내?외신 기자들이 바드다그 공항에서 제임스를 기다렸다. 벌써 입국 예정 시간보다 한 시간이나 늦은 것이다. 비행기는 이미 도착했지만 제임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DNN 기자 토마스가 콧수염을 만지작거리며 다가왔다.


토마스 : 깨어났군 그래.

나 : (겨우 얼굴에 웃음을 지으며) 안녕하세요. 

토마스 : 내가 조심하라고 경고했었지? 목숨이라도 건진 게 다행이라고 생각하게. 그만 이 일에서 손을 떼고 귀국하리라고 생각했는데 의외군. 죽음이 두렵지 않은가?

나 : 두렵습니다. 그러나 이대로 그냥 돌아간다면 평생 후회할 겁니다.

토마스 : 리코아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네. 모든 일은 올바름으로 돌아간다. 자네가 편히 잠들어 있는 동안 이 사건의 진실은 명명백백하게 드러났네. 이제 사흘만 지나면 두 병사와 관련 장교들은 유죄 선고를 받고 기결수로서 차디찬 감옥살이를 시작하게 될 걸세. 그 다음엔 죄인들을 감싸며 사건을 조작, 은폐하려고 했던 좌파 정치인들, 언론인들에 대한 조사에 착수하게 된다는 소문이야. FNN이 그 첫 번째 타깃이 될 것이라고 모든 기자들이 이구동성으로 생각하고 있네. FNN에 대한 수사가 시작되면 탐 자네가 가장 먼저 체포될 거야. 어떤가? 지금이라도 FNN에서의 생활을 뉘우치고 애국의 큰길에 동참하겠다는 선언을 하는 것이? 내 특별히 자네를 위해 바드다그에 있는 DNN 인터뷰실을 빌려 줌세.

나 : 싫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올바름은 아닌 듯합니다.

토마스 : 아직도 만용을 부리겠다는 건가? 나라면 숨어서 조용히 처벌을 기다릴 걸세. 이렇듯 돌아다니다가는 정말 쥐도 새도 모르게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네. ABI가 얼마나 긴장하고 있는 줄 아는가. 제임스를 테러하겠다는 내용이 담긴 이슬람 분리주의자들의 이-메일이 어제 ABI 본부에 왔다는군. 혹시 제임스와 인터뷰를 하려는 욕심이라면 포기하게. 제임스는 재판이 끝나는 그 순간까지 오직 우리 DNN과만 인터뷰를 하며 심정을 밝히기로 계약을 했으이.


주위가 갑자기 소란스러웠다. 굳게 닫혔던 유리문이 열리면서 야구모자를 눌러 쓴 사내가 여행가방을 끌며 걸어나오고 있었다. 전후좌우로 정장 차림을 한 여덟 명의 경호원들이 세심하게 주변을 살폈다. 그 중 가장 앞에 선 사내와 눈이 마주쳤다. 어제 내 병실로 찾아왔던 대머리 스미스였다. 스미스는 성큼성큼 걸어나와 기자들을 미리 설정한 취재라인 밖으로 밀어냈다. 물러나지 않으면 입국회견은 물론 사진촬영까지 불허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스미스의 시선이 다시 내게 머물자,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웃어주었다. 무표정한 그의 얼굴은 바뀔 줄 몰랐다. 이윽고 사내가 포토제닉 라인에 섰다. 플래시가 터지자 사내는 머뭇대며 두어 걸음 뒤로 물러섰다. 사진을 찍던 부르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부르스 : 이상하군.

나 : 왜요?

부르스 : 키가 한 5cm정도 작아.

나 : 뭐라구요?


방금 전까지 나와 이야기를 나눴던 토마스는 물론 사진기자 한스까지 보이지 않았다. DNN이 제임스의 입국 장면을 놓칠 리가 없었다. 부르스가 조용히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부르스 : 가짜야. 저건! 

나 : 뭐라구요?

부르스 : DNN과 ABI가 짠 것 같아. 자, 가자구.


기분대로라면 스미스의 대머리에 침이라도 뱉어주고 싶었다. 그러나 지금은 사라진 제임스를 찾는 것이 급했다. 부르스의 지프차는 여전히 식식거리면서도 제법 속도를 냈다. 두 달 전 트럭에 밀려 거의 2분의 1로 찌그러졌으나, 내가 기적적으로 살아난 것처럼, 이 지프차 역시 폐차를 면했다. 그러나 자세히 살피면 군데군데 찌그러진 것을 편 흔적이 역력했다. 부르스는 오른손 하나로 두 달 동안 돌아다녔다며 운전석을 내주지 않았다.


나 : 이런 짓을 할 이유가 있나요? 기자들이 많을수록 좋은 것 아닙니까?

부르스 : 일단 DNN과의 계약을 지킨 다음에 나머지 기자들과 만날 생각이겠지.

나 : 계약이라…… 어디로 가는 겁니까?

부르스 : A언덕.

나 : 제임스가 그곳으로 갔다고 어떻게 단정하시죠?

부르스 : 리코아 속담에 역지사지란 말이 있네.

나 : 역지사지? 무슨 뜻이죠?

부르스 :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하란 말일세. 자네가 만약 DNN의 토마스 기자이고 장갑차에 깔려 죽은 올리비아의 아버지인 제임스를 단독으로 바드다그에서 인터뷰하게 되었다면, 그와 어디서 인터뷰를 하고 싶겠나?

나 : (잠시 생각한 후) 그렇군요. 올리비아가 장갑차에 깔려 죽은 바로 그 A언덕이겠군요. 딸이 죽은 자리에서 눈물 흘리는 아버지. 그걸 영상에 담아 추국 전역에 보도하면,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킬 겁니다. 그 소식을 만약 배심원들도 듣는다면, 판결에 영향을 줄 것이구요. 

부르스 : 그런 걸 리코아 속담으로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라고 한다네. 지금 곧장 가면 인터뷰를 끝내기 전에 끼어 들 수 있겠어.


DNN과 ABI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A언덕 입구에 간이 검문소가 서 있었던 것이다. 새로 2사단장에 임명된 알-아사드 중장은 대표적인 친추파(親醜派)로 이름이 높았다. ABI가 협조를 청하면 사단 병력 전체를 이동시킬 정도였다. 멀리서 검문소를 확인한 부르스는 바위 뒤에 지프차를 세웠다.


부르스 : (차에서 내린 후) 걸어가야겠네. 괜찮겠나?

나 : (따라서 내리며) 걱정 마세요. 왼팔은 어때요?

부르스 : (삼각 끈을 풀고 가볍게 왼손을 돌리며) 가만히 있으면 괜찮은데, 물건을 집거나 들면 쿡쿡 쑤시는군. 내가 지름길을 알고 있다네. 조금 험하긴 하지만.

나 : 앞장서세요.


부르스가 허리를 숙인 채 앞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심호흡을 한 후 그 뒤를 따랐다. 부르스는 검문소 왼쪽에 울퉁불퉁 솟아있는 바위들을 끼고 돌기 시작했다. 바위와 바위 사이에 난 길을 다람쥐처럼 빠져 들어갔다. 20분 정도면 장갑차 사고가 난 곳에 도착할 수 있을 듯했다. 갑자기 부르스가 걸음을 멈추고 배를 땅바닥에 댔다. 나 역시 그 뒤로 따라 엎드렸다.


나 : 왜 그러십니까?

부르스 : 저길 보게. 움푹 패였지 않은가?


날카롭게 부서진 돌 조각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다. 그 가운데 땅이 원 모양으로 움푹 패였다. 지름이 2m 는 넘어 보이고 깊이도 3m 이상이다.


부르스 : 지뢰라네. 리코아 전쟁 때 여긴 마지막 격전지였어. 리코아군의 급습을 막기 위해 임시방편으로 지뢰를 묻었다더니 사실이었군 그래. 아니 되겠네. 다시 돌아가야 할 것 같아.

나 : (손목시계를 보며) 벌써 15분이나 언덕을 올랐습니다. 그냥 가죠.

부르스 : (단호하게 고개를 젓는다) 안 돼. 잘못하면 둘 다 목숨을 잃게 돼. 내려가세.


부르스의 뒤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짜증이 났다.


나 : 20년 전 묻은 지뢰라면 왜 전쟁이 끝난 후 수거되지 않았죠?

부르스 : 대부분 수거해갔지만, 찾지 못한 것도 꽤 된다더군. 그 바람에 한 해 많게는 30-40여명씩 리코아 국민들이 목숨을 잃고 있지. 리코아는 세계에서 가장 지뢰가 많이 매설되어 있는 나라라네.

나 : 겉으로 보긴 평화롭기 그지없는 나라인데…… 아픔이 많군요.


다시 검문소 아래로 내려가서 오른쪽 바위들을 더듬어 올랐다. 그쪽은 길 자체가 없었기 때문에 시간과 노력이 배로 들었다. 뜨거운 태양이 살갗을 벌겋게 익혔다. 갈증이 심했지만 마실 물이 없었다. 토마스! A언덕에서 네 놈을 보면 턱부터 한 방 갈겨주리라. 비겁한 놈들!


처음 지프차에서 내린 후 1시간 20분이 지나서야 사고 현장에 닿을 수 있었다. 그러나 너무 늦게 도착한 것일까.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부르스가 길바닥에 난 자동차 바퀴 자국을 손가락으로 일일이 만진 후 결론을 내렸다.


부르스 : 이미 인터뷰를 마쳤군. 여기에 지프차를 세웠어. 토마스의 승용차는 그 뒤에 주차했고. 인터뷰는 바로 이 길가에서 이루어졌네. 올리비아가 쓰러진 바로 그 자리지. 이 선명한 운동화 자국을 보게. 제임스는 한 동안 여기에 서서 이 구두의 주인공 토마스와 인터뷰를 했군 그래. 그리고 다시 차를 타고 저 아래 호텔이 밀집한 곳으로 갔어. 떠난 지 10분 정도.

나 : (두 주먹을 머리 위로 치켜들었다 뿌리치며) 미치겠네 정말! 

 

10. 축배의 노래 

– 제임스와 함께 쓰러지다 

 

그 후로도 이틀 동안 제임스를 계속 쫓아다녔다. 그는 항상 야구모자와 선글라스를 쓰고 고개를 약간 숙인 채 말을 아꼈다. DNN의 토마스는 제임스의 그런 옷차림조차 올리비아를 생각하며 밤마다 눈물을 쏟았기 때문이라며 동정하는 기사를 써댔다. A언덕에서 그가 따낸 특종을 더욱 빛내기 위한 후속기사인 셈이다. DNN과의 인터뷰에서는 참담한 심정을 비교적 또박또박 밝히던 제임스지만 나머지 기자들 앞에서는 단답으로 일관했다. 토마스가 어떤 악담을 했는지 몰라도 제임스는 내가 접근만 해도 입을 닫아버렸다. 질문을 하기도 전에 화부터 냈다.


다시 A언덕을 올랐던 9월 16일에는 일부러 그의 곁에 바짝 붙었다. 그는 힐끔 내 얼굴을 확인한 후 정면을 보고 묵묵히 걸음만 옮겼다.


나 : 너무 늦게 이곳에 온 게 아닙니까? 지난 두 달 동안 왜 올리비아의 마지막 흔적을 찾지 않으셨나요?

제임스 : (여전히 앞만 보고 걷는다)

나 : 따님의 죽음에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이 깊이 개입되어 있다고 주장하셨는데, 증거가 있습니까?

제임스 :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나를 돌아보며) FNN 기자와는 말을 섞기 싫소.

나 : (더욱 가까이 다가서며) 왜죠? DNN과는 독점 인터뷰도 했으면서 FNN과는 왜 말을 섞지 않겠다는 것이죠? 

제임스 : (갑자기 오른 주먹을 들고 흔들며 소리친다) 네놈은 악마야! 내 딸을 죽인 놈들과 한 패라고!


결국 나는 더 이상 제임스와 대화를 나눌 수 없었다. 다른 기자들이 질문을 할 때도 멀찍이 물러서서 귀를 기울여야만 했다. 제임스가 내 얼굴만 보아도 짜증을 내며 이야기를 중단했던 것이다.

9월 16일 저녁, 칼라호텔 특별 회의장에서 기자회견이 열렸을 때도 나는 맨 뒤 구석에 앉아 있었다. 리코아 병사와 장교들을 무조건 추국으로 인도하라는 추국 협상단의 요구를 무기력하게 받아들인 바로 그 장소였다. 제임스는 여전히 모자를 깊게 눌러 썼고, 선글라스 대신 암청색이 들어간 안경을 착용했다. 내일 판결을 앞두고 자신의 심경을 공식적으로 밝히는 자리였다. 이상한 점은 오후까지 따라다니던 리코아 기자들이 단 한 사람도 회의장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ABI의 요구로 회의장 출입 자체를 막았을 가능성이 컸다. 아버지의 슬픔을 극대화하려는 추국 기자들의 상투적인 질문이 이어졌다. 기자들의 이름을 지우고 한 사람이 질문한 것처럼 이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정도였다.


기자 : 피곤하지 않습니까?

제임스 : 기후가 달라서 조금 힘들긴 하지만…… 올리비아를 위한 일인데 이깟 더위쯤이야 아무 일도 아닙니다.

기자 : 오늘 출국하여 내일 판결을 직접 지켜보실 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만……

제임스 : 저는 배심원들이 현명한 판단을 하리라 믿습니다. 판결이 내려지면 올리비아가 마지막으로 숨을 거둔 땅에 입을 맞추고도 싶고.

기자 : 리코아의 두 병사는 거듭 사과의 편지를 발표하고 있습니다. 그들을 용서할 뜻은 없으십니까?

제임스 : 아직 그들이 진심으로 뉘우친다고 보지 않습니다. 형량을 줄이려는 얄팍한 수작입니다.

기자 : 중대장까지는 지휘 책임이 있겠으나 사단장까지 처벌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일부 주장도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제임스 : 저도 5년 넘게 군 생활을 해봤습니다. 이런 일이 발생하면 사단장 스스로가 책임을 지고 전역해야 하는 겁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적당히 넘어가겠다는 태도를 확실히 고쳐줘야 합니다.

기자 : 다시 한 번 확인하겠습니다. 이번 일을 살인이라고 보십니까?

제임스 : (단호하게) 그렇습니다.

기자 :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이 개입했다고 보십니까?

제임스 : 그렇습니다.

기자 : 두 병사에게 어느 정도의 형량이 내려져야 한다고 보십니까?

제임스 : 최고형이 구형되었으면 합니다.

기자 : 최고형이라면……. 사형을 말하는 겁니까?

제임스 : 배심원들이 현명한 판단을 하리라고 믿습니다.

기자 : 리코아는 두 소녀의 죽음을 애도하는 뜻으로 기념공원을 세우고 또 그 동안 모금한 돈을 유족에게 전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아주 많은 리코아 국민들이 모금운동에 동참하여, 그 액수가 상당하다고 들었습니다. 그 돈을 받으실 겁니까?

제임스 : 올리비아와 아만다를 위한 장학재단을 만드는 데 쓰겠습니다.

기자 : 장학재단? 일단 돈은 받으시겠다는 것이군요. 기념공원을 세우는 것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십니까?

제임스 : 무엇을 기념할 것인가가 중요할 겁니다. 내일 판결이 내려지면, 그에 따라 범죄자들의 죄상이 만천하에 드러날 겁니다. 그들의 끔찍한 죄 하나하나를 공원에 새겨 영원히 기억하겠다면, 기념공원 설립에 찬성할 겁니다. 그러나 리코아 정부가 과연 제 요구를 받아들일까요? 혹시 두 병사와 장교들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상징적인 공간으로 사용하려는 것이 아닌지 그 저의가 의심스럽습니다.

기자 : 올리비아의 어머니는 어디에 있습니까? 왜 한 번도 나오시지 않는 것이죠?

제임스 : (슬픈 표정을 지으며)5년 전에 죽었습니다. 재혼한 남편과 또 이혼을 하고 비관자살을 했습니다.

기자 : 그 사실을 올리비아는 알고 있었습니까?

제임스 : 숨겼습니다. 마음에 상처를 줄 필요는 없으니까요. 추국을 떠나 다른 나라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만 말해줬습니다.

기자 : 두 달이 넘게 계속되고 있는 바드다그 시민들의 횃불 시위에 대해서는 어찌 생각하십니까? 두 소녀의 죽음을 애도하는 것은 물론 두 병사의 선처를 호소하기 위한, 또 소피 협정의 부당성을 알리기 위한 시위입니다. 아시고 계시죠?

제임스 : 방송을 통해 보았습니다. 한 마디로 어처구니없는 행동입니다. 지금은 거리로 몰려나와 집회를 열고 행진을 할 때가 아닙니다. 조용히 물러나 자신들의 잘못을 뉘우쳐도 모자랄 상황인데, 소피 협정을 개정하라니요? 소피 협정이 없었다면, 그 두 병사는 무죄가 선고되어 벌써 풀려났을 겁니다. 악의 세력이 그들을 조종하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소피 협정을 개정하라는 자들 역시 이슬람 원리주의자들과 뜻을 같이하는 자들입니다. 악의 세력이 분명합니다.

기자 : 내일 선고가 끝나면 무얼 하실 작정이신가요?

제임스 : 다시 트럭을 몰아야죠.

기자 : 자서전을 쓰고, 정계로 진출할 계획을 가지고 계시다고 들었습니다만……

제임스 : 아닙니다. 그건 다 저와 제 딸을 모해하려는 악의 세력들이 퍼뜨린 유언비어입니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갈 겁니다.


9월 17일, 배심원들의 최종판결이 나왔다. 중학교 3학년과 1학년 두 딸을 둔 배심원 대표가 읽은 판결문은 예상대로였다. 재판정에 선 네 명의 피고인은 모두 유죄가 확정되었다. 사담 병장은 무기징역, 라마단 병장은 징역 15년, 중대장인 나지 사브리 소령은 징역 5년, 사단장 알 야히야 중장에게는 징역 3년이 선고되었다. 사담 병장과 라마단 병장에게는 징역 10년이 지날 때까지 감형 혜택을 볼 수 없다는 조항까지 덧붙었다. 속보를 전하는 추국의 언론과 방송은 외국에 사는 추국인들을 보호하려는 추국 정부의 의지가 더욱 확고해졌다며 일제히 환영하는 사설과 기사를 내보냈다. 두 소녀가 다녔던 호산나 중학교 운동장엔 동급생들의 모습을 스케치하기 위해 몰려든 취재진들로 다시 북새통을 이루었다.


리코아도 교통이 마비되기는 마찬가지였다. ‘사담과 라마단의 추국 인도를 반대하는 시민들의 모임’의 대변인을 맡은 자나티 의원은, 배심원단 선정에 이의를 제기하며 전면적인 재심을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리코아 총학생회 연합도 소피 협정의 폐지를 주장하며 동맹휴업에 돌입했다. 17일 밤의 횃불시위는 두 달 동안 시위에 참가한 사람을 전부 합친 수보다 많았다.


그 밤 7시부터 칼라호텔에서 열리는 축하파티에 늦은 것은 횃불시위 취재 중 봉변을 당했기 때문이다. 두 달 전, 그러니까 내가 그 사고를 당하기 전까지, 바드다그 시민들은 FNN 기자 완장을 찬 내게 매우 호의적이었다. 추국의 언론매체 중에서 그래도 FNN은 공정하게 리코아 국민들의 의견도 보도한다고 소문이 나 있었던 것이다. 두 달 동안 악화된 반추 감정을 살피지 않고 성급하게 바드다그 시청 앞으로 나간 것이 화근이었다. 오후 2시부터 시작된 집회는 6시 퇴근 시간에 맞추어 그 열기가 고조되었다. 지나가는 자동차들은 일제히 경적을 울렸고 추국기가 불태워졌다. 리코아 경찰들도 이 날만은 보고도 못 본 체하며 시위대들을 방관했다. 나는 이제 막 직장에서 거리로 나온 듯한 정장 차림에 넥타이를 맨 30대 중반의 사내에게 다가갔다.


나 : 안녕하십니까. FNN 기자 탐입니다. 인터뷰에 잠시 응해주시겠습니까?

알리 : (완장을 확인한 후 차갑게) 그럽시다.

나 : (녹음기를 켠 후) 판결 소식은 들으셨습니까?

알리 : (사진을 찍는 부르스를 힐끔 보며) 들었으니까 이리 온 게 아니오?

나 : 실례지만 성함과 하시는 일을 여쭤봐도 될는지요?

알리 : G반도체 회사에 다니고 있소. 이름은 알리요.

나 : G반도체라면, 리-추 양국이 합작으로 만든 회사 말씀이시죠?

알리 : 그렇소. (따지듯) 왜 그게 뭐 잘못되었소?

나 : 아닙니다. 횃불 시위에는 몇 번 참여하셨습니까?

알리 : 오늘이 처음이오. 그 동안 참다 참다못해 이렇게 나왔소.

나 : 참다 참다……. 무엇을 그리 참으셨습니까?

알리 :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뭐긴 뭐야. 추국의 깡패 짓이지. 얻어맞는 것도 한두 번이지. 멋대로 잡아가고 멋대로 무기징역 선고하고 또 멋대로 정의가 바로 선 날이라도 떠들고…… 미친놈들이지.

나 : (더 이상 그와는 대화를 나누기 힘들다고 판단한 후) 감사합니다.


부르스가 카메라를 내리며 가까이 다가서서 속삭였다.


부르스 : 아무래도 칼라 호텔로 가세. 여긴 너무 분위기가 안 좋아.

나 : 가다뇨? 

부르스: 자네가 병원에 있는 동안 자유의 여신상처럼 횃불을 든 시위대를 따라 네댓 차례 시내를 걸었지만 오늘처럼 살기가 느껴진 적은 없었네. 지도부는 평화적인 시위를 약속하고 있으나 그것이 과연 지켜질까 오늘은 걱정이 되는군. 추국기란 추국기는 모두 가지고 나와 불태우고 있지 않은가. 짚으로 만든 추국 대통령의 형상을 두고 화형식까지 연다고 하네. 가세.

나 : (괜히 화를 내며) 칼라 호텔에 가봤자 뭐합니까? 보나마나 내년 추국 대통령 선거에서 현 대통령의 재선은 확실하다는 따위의 뻔한 농담이나 지껄이며 술이나 퍼마실 텐데…… 리코아 국민들이 분노한다면, 그 분노의 근거와 함께 그 분노의 모습까지 담아서 추국 국민들에게 보여주고 싶습니다.

부르스 : 가자니까.


그는 내 오른팔을 강제로 끌었다. 그 순간 누군가가 주먹으로 팔목을 내리쳤다. 윽, 신음 소리와 함께 부르스와 나는 좌우로 물러났다. 그 사이로 젊은 축들이 쓰윽 밀고 들어왔다. 그들은 험상궂은 표정으로 내 어깨를 툭툭 쳤다. 나는 완장을 들어 보이며 아랍어로 말했다.


나 : FNN 기자 탐입니다.

사내 : (옆에 선 사내들을 둘러보며) 어쭈. 우리말을 할 줄 아네. (나를 노려본다)FNN기자? (주먹을 치켜든다) FNN 기자는 추국인 아니냐? 대답해봐. 너 추국인이지?

나 : (용기를 내어 가슴을 펴고) 합법적인 취재 허가를 받았습니다.

사내 : (눈을 부라리며) 합법적? 법을 지켰다고? 법법 좋아하는 것 보니까 넌 틀림없이 추국인이구나. 법이면 다 되는 줄 알어? 그래, 좋아. 오늘 나는 법을 어기겠어. 법을 어기고 이 법 좋아하는 추국인을……

알-사디 : (뒤에서 사내의 손목을 잡으며) 이게 무슨 짓인가? 기자를 폭행하려 들다니?

사내 : (고개를 돌리며 목소리를 높인다) 당신이 뭔데 참견이야?

알-사디 : 나는 알-사디라고 한다. 오늘 집회를 준비한 ‘시민들의 모임’의 공동대표를 맡고 있지.

사내 : (기세가 조금 꺾인 목소리로) 왜 추국인을 두둔하시는 겁니까?

알-사디 : 나 역시 자네들만큼 추국을 증오한다. 리코아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자기들 멋대로 리코아인 네 명에게 어마어마한 형량을 선고한 추국이 싫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추국이란 나라와 그 나라를 그토록 나쁘게 이끌고 있는 몇몇 지도자들에 대한 분노이지, 선량한 추국인 전부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FNN은 리코아의 형편을 공정하게 추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 알린 언론매체가 아닌가? 탐 기자는 그 중에서도 가장 용감한 사람이고. 고맙다고 인사를 해도 모자랄 일인데 주먹을 쓰려 하다니…… 당장 사과하게. 당장!


알-사디가 끼어 들지 않았다면 어찌 되었을까? 콧잔등이 내려앉거나 갈비뼈 한두 개쯤은 금이 갔으리라. 알-사디에게 고맙다는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시청 앞을 빠져나왔다. 칼라 호텔 정문에서 초조하게 담배를 피던 부르스가 나를 보고 황급히 달려왔다.


부르스 : 무사했군. 다행이야. 혹시 자네가 잘못되지나 않았을까 걱정했네. 벌써 시청 근방에 있던 추국인 두 사람이 심하게 다쳤다는 속보가 나왔다네. 

나 : (웃으며) 전 오히려 당신을 걱정한 걸요. 아직 왼 팔목도 성치 않는데, 카메라나 강탈당하지 않았을까 하고 말이에요. 자, 들어가시죠.


혹시 생길 불상사에 대비하여 리코아 전경 2개 중대가 칼라호텔 주위를 삼중으로 호위했다. 호텔 로비에 서서 리코아 중대장과 이야기를 나누던 스미스가 우리를 발견하고 환하게 웃으며 달려왔다. 승자의 미소일까?


스미스 : 기다리고 있었소. 혹시 시청 쪽에 나갔다 오는 길이오?

나 : 미행이라도 하셨습니까?

스미스 : 그걸 꼭 미행해야 아나요? 하여튼 잊지 않고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중동 지역에 특파원을 낸 언론과 방송 매체 종사자들은 FNN을 마지막으로 다 모였군요. 

나 : (손목시계를 보니 밤 10시가 가까웠다) 아직 파티는 계속되고 있습니까?

스미스 : 그렇습니다. 술과 음식은 충분합니다. 마음껏 드십시오. 어차피 오늘은 이 안이 저 바깥보다 훨씬 안전할 테니까요. 객실까지 모두 예약해뒀습니다.

나 : 대단하군요. 그 돈은 모두 ABI에서 대는 겁니까?


마음이 편치 않았다. 호텔 밖은 횃불을 든 바드다그 시민들이 눈물과 분노의 행진을 하고 있는데, 호텔 안은 기쁨에 넘쳐 술잔 가득 축배를 들고 있는 것이다. 진실은 오직 하나라고 믿지 않았던가. 정의로움 역시 하나라고 믿지 않았던가. 그러나 이 밤에 진실은 두 개였다. 정의로움도 두 개였다. 그 둘은 결코 만나서 대화를 나눌 수 없었다. 서로가 서로를 향해 불을 지르고 욕설을 하고 저주의 춤을 출 뿐이다. 나 혼자 힘으로 이 멀고먼 간극을 좁힐 수 있을까. 화해의 다리 하나 놓을 수 있을까. 오늘 유죄를 선고받은 이는, 악의 세력으로 확정된 이는 네 명의 리코아인만이 아니다. 지금 저 밖에서 횃불을 들고 바드다그의 밤거리를 돌아다니는 사람들 모두 추국 대통령에게는 악의 세력이요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농후한 위험인물이다. 20년, 혹은 그 전부터 시작된 추국에 대한 원한이 이 밤에 드디어 폭발하는 것일까? 그 폭발음에 맞추어 축배를 들어야 하는 것일까?

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갑자기 한 사내가 비틀거리며 다가왔다.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것을 보니 벌써 많이 취한 듯했다. 시끄러운 로큰롤 음악에 맞춰 사내는 춤이라도 추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무릎은 흔들렸고 엉덩이는 두 손과 따로 놀았다. 야구 모자! 그 모자를 보자마자 나는 그가 바로 제임스란 사실을 알았다. 기자들이 부어주는 축하의 술잔을 쉼 없이 받아 마신 결과이리라. 옆으로 비껴 설까 잠시 망설였다. 괜히 아는 체 했다가 시비가 붙을 수도 있었다. 시청 앞에서 만났던 사내들의 얼굴이 갑자기 떠올랐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피하기는 싫었다. 정면에서 그를 기다렸다. 이윽고 내 앞으로 다가선 제임스가 걸음을 멈추었다.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나는 잔뜩 긴장을 하고 엄지발가락에 힘을 주었다. 그가 주먹이라도 던지면 재빨리 피하며 끌어안을 작정이었다. 잠시 내 얼굴을 초점 없는 눈으로 멍하니 쳐다보았다. 기억 속에서 내 이름과 얼굴을 끄집어내는 모양이다. 맨 정신이라면 벌써 미간을 찌푸렸을 텐데, 오늘은 꽤 시간이 걸렸다. 이윽고 내가 누구인지를 깨달은 그가 오른손을 치켜들었다. 그 순간 나는 한 걸음 다가서며 그 손을 틀어잡았다. 갑작스런 접근에 놀란 그가 몸의 균형을 잃고 내 앞으로 쓰러졌다. 나 역시 그의 몸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 바람에 항상 이마 아래 눈썹까지 꾹꾹 눌러쓰던 모자와 선글라스가 동시에 벗겨졌다. 부르스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카메라를 들어 셔터를 눌렀다. 서너 장 정도를 연속으로 찍었을까. 갑자기 서터를 누르던 부르스의 손이 멈췄다. 그리고 천천히 카메라를 내린 후 제임스의 멱살을 잡아 일으켰다. 그리고 제임스의 얼굴을 솜털 하나까지도 세세히 살폈다. 기자들이 몰려들었다. 스미스가 달려와서 둘 사이를 갈라놓으려 했다. 부르스가 더욱 제임스의 멱살을 끌어당긴 후 눈을 부라렸다.


부르스 : 너 로널드지? 병장 로널드? 

11. 설전(舌戰) 

– 브루스 리와 로널드의 밀담

 

9월 19일 밤늦게 초인종이 울렸다. 현관문을 여니 제임스가 스미스와 함께 서 있었다.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제임스가 오후 2시 바드다그 공항에서 비행기로 출국하는 장면을 저녁 뉴스시간에 보았던 것이다. 지금쯤 B시에 도착했어야 할 사람이 아직 리코아를 떠나지 않았다니.


제임스 : (방안을 기웃거리며) 부르스 있소?

나 : 암실에 있습니다.

제임스 : (고개만 돌린 채 스미스에게 말한다) 밖에서 기다리시겠소? ……날 믿고 돌아가 있으십시오. 이야기가 끝나면 연락하겠습니다.

스미스 : 그래도, 내가 곁에 있는 것이 낫지 않겠소?

제임스 : 팀장님이 있으면 부르스와 제대로 이야기를 나눌 수가 없습니다.


스미스는 아쉬운 듯 걸음을 떼지 못했다. 제임스는 내 허락도 구하지 않고 현관을 지나 거실로 올라왔다. 나는 스미스에게 눈인사를 한 후 문을 닫아걸었다. 때마침 부르스가 암실에서 어젯밤에 찍은 제임스의 사진을 들고 나왔다. 두 사람은 마주 서서 잠시 서로를 노려보았다.


부르스 : 로널드. 당신이 올 줄 알았소.

로널드 : (시선을 피하지 않고) 제임스라고 불러주오.

부르스 : 그럴 수야 없지. 당신은 로널드가 분명해. 2002년 태한민국 주파시에서 근무했던 로널드! 아무리 추적해도 신원이 확인되지 않을 때부터 짐작은 했소. 역시 이름을 바꿨군. 얼굴도 몇 군데 고쳤고.

로널드 : 그건 어쩔 수 없었소. 부르스 당신을 비롯한 태한민국의 청년들이 추국까지 날 따라왔으니까. 위해를 가하겠다는 협박 메일을 받기도 했고.


로널드는 말을 끊고 나를 쳐다보았다. 나 역시 스미스처럼 대화에 방해가 되는 존재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악연이었다. 담배를 챙겨 일어서려는데 부르스가 말렸다.


부르스 : 탐 기자의 활약은 알고 있겠지요? 이 친구는 아주 공정하오. 리코아의 편도 추국의 편도 아니지. 부르스의 편도 로널드의 편도 아니란 얘기요. 그러니 이 친구가 보는 앞에서 이야길 합시다. 때로는 상식적인 자문을 구해야 할 때도 있지 않겠소? 또한 나는 당신을 완전히 믿지 못하겠소. 당신이 로널드라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내게 총이나 칼을 들이댈 수도 있겠고.

로널드 : 걱정 마오. 그렇게 하려면 벌써 손을 썼을 것이오. FNN에 오늘의 만남이 나가서는 곤란하오. 난 이미 추국에 입국한 몸이니까.

부르스 : 오늘의 밀담은 우리 셋만의 비밀로 하겠소.

로널드 : (잠깐 생각하다가) 좋소. 녹음은 마시오. 사진도 아니 되고. 어제 찍은 사진…… 그래 당신이 들고 있는 바로 그 사진도 돌려줬음 하오.

부르스 : 오늘은 녹음도 없고 사진도 찍지 않을 것이오. 허나 어제 찍은 건 곤란합니다. 그건 내가 고생해서 얻은 것이니까. 허나 말이 잘 통하면, 그 사진을 적어도 당신 생전에 내보내는 일은 없을 것이오.


로널드에게 미안한 이야기지만, 나는 그 밤의 이야기를 모두 녹음했다. 내가 병원 신세를 지는 동안,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여 부르스가 방과 거실에 초소형 카메라와 마이크를 설치했던 것이다. 누구든지 허락을 받지 않고 현관을 지나면 자동으로 카메라와 녹음기가 작동했다. 로널드가 나를 무시하고 거실로 들어섰을 때부터 이미 녹음은 진행되고 있었다. 부르스도 이 사실을 알면서 시치미를 뗀 것이다.


부르스 : 허면 ABI는 자네의 정체를 알고 있었겠군. 당신이 바로 2002년 6월 13일 주파시에서 태한민국 여중생 두 명을 죽인 장갑차의 조종수였다는 것을 말이오.

로널드 : 나는 무죄 선고를 받았소.

부르스 : 그렇지. 사과 편지 한 장 쓰지도 않고, 사죄의 눈물도 흘리지 않은 자네와 마크 병장은 무죄 선고를 받았지. 그리고 인간적인 사과와 함께 참회의 눈물을 흘린 리코아의 두 병사는 무기징역을 언도 받고 평생 감옥에서 썩게 생겼고…… 로널드. 당신은 참 뻔뻔하오. 어찌 21년 전에 그런 짓을 한 사람이 두 병사를 향해 그렇듯 독설을 퍼부을 수 있소? 당신이 믿는 하나님이 그런 당신의 모습을 본다면 어찌 생각하겠소?

로널드 : 난 부끄러운 짓을 하지 않았소. 그들은 내 딸을 죽인 살인마요.

부르스 : 당신도 21년 전에 태한민국의 두 딸을 죽였소.

로널드 : 그건 사고였소. 추국 법정은 그것이 사고임을 명백하게 밝히고 마크와 내게 무죄를 선고한 것이오.

부르스 : 그건 사고였고, 이건 살인이다?

로널드 : 그렇소.

부르스 : 만일 그때 당신과 마크가 태한민국 법정에 섰더라도 당신들이 무죄 선고를 받았으리라고 보오? 리코아의 두 병사가 리코아 법정에 섰다면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았으리라고 보오?

로널드 : 나는 점쟁이가 아니오.

부르스 : 그때 당신이 두 여중생을 죽였을 때는 오전 10시 45분이었소. 주위는 환했고 당신은 충분히 그녀들을 살필 수 있었소. 그러나 리코아의 두 병사가 훈련을 개시한 시각은 칠흑 같은 밤이오. 구름까지 짙어 별빛 하나 들지 않는 밤. 그리고 추국의 두 여중생은 이어폰을 끼고 사운드가 강한 메탈 음악에 취해 있었다오. 자 과연 어느 것이 사고고 어느 것이 살인인 것 같소?

로널드 : 난 그녀들을 보지 못했소. 또 마침 그때 중대장과 교신을 하고 있어서…….

부르스 : 조종수가 중대장과 교신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소. 대부분은 전차장이나 관제병이 하는 일이오. 교신을 했다 해도 그것 때문에 그녀들을 보지 못했다는 말은 거짓이오. 그 날은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이었소. 전방시야가 곧은 도로가 50m까지 확 트인 상태에서 시속 20Km정도로 서행하던 장갑차의 조종수가 15m 전방의 직선도로 갓길을 걷고 있는 여중생들을 보지 못했다는 것을 누가 믿겠소? 혹시 그때 당신 졸고 있었던 건 아니오?

로널드 :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나는 그녀들을 보지 못했소. 마크가 그녀들을 발견하고 내게 알렸지만 통신장애가 발생해서…….

부르스 : 통신장애! 그것도 참 이해하기 힘드오. 장갑차는 기동성과 통신이 생명이오. 훈련에 임하기 전에 가장 먼저 확인하는 것이 바로 통신인 것은 당신도 알 것이오. 헌데 왜 하필 그때 통신장애가 발생한 것이오?

로널드 : 모르겠소. 장애가 생긴 건 사실이오.

부르스 : 그건 책임을 모면하기 위해 만든 옹졸한 핑계요. 모든 걸 통신 결함으로 돌려버리고, 죄를 면하려는 것이지. 또 하나 이해할 수 없는 건 그 날 그렇게 협소한 길로 전차들을 이끌고 들어간 중대장과 그 위 상관들에게 대한 지휘책임을 제대로 묻지 않았다는 것이오. 여기에 대해서는 어찌 생각하오?

로널드 : 추국 법정이 판단한 일이오. 내가 의견을 낼 문제가 아니오.


두 사람의 설전을 숨죽이고 지켜보며 몇 가지 정리를 했다. 올리비아의 아버지 제임스는 21년 전 태한민국 주파시에서 근무하던 로널드란 군인과 같은 인물이다. 로널드는 2002년 장갑차로 태한민국의 두 여중생을 치어 사망에 이르게 했다. 그리고 추국 법정에서 무죄 선고를 받았다는 것이다.


부르스 : 추국 법정은 마크와 당신의 앞뒤가 맞지 않는 변명을 모두 받아들였소. 그리고 추군으로만 짜여진 배심원단은 두 사람에게 무죄를 선고한 것이오. 헌데 로널드, 방금 당신이 했던 말을 리코아의 두 병사도 거의 흡사하게 추국 법정에서 진술했소. 그러나 그들의 진술은 하나도 채택되지 않았소. 그리고 무기징역형이 선고된 것이오. 이렇듯 상반된 선고에 대해 어찌 생각하오?

로널드 : 추국의 법은 정의롭고 누구에게나 공명정대하다고 생각하오.

부르스 : (코웃음을 친다) 추국의 법만 옳고 리코아나 태한민국의 법은 옳지 않다 이 말이오? 로널드! 당신은 태한민국 두 딸의 유족들에게 사과 편지를 보낼 뜻은 없었소?

로널드 : 군인 신분으로 그런 글을 적기엔 적절하지 않았소. 

부르스 : 군에서 제대한 후에, 그러니까 이 일이 사람들의 기억으로부터 차츰 잊혀질 때, 그때는 인간적인 사과의 뜻을 은밀히 밝힐 수도 있지 않았소?

로널드 : 자꾸 내게 그런 걸 강요하지 마오. 내가 이름을 바꾸고 성형수술을 한 것은 바로 그 태한민국 몇몇 사람들의 집요함 때문이었소. 나는 죄인이 아니오.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하오. 편지를 쓰든 말든 그건 내 마음이다 이 말이오.

부르스 : 딸을 잃은 슬픔이 얼마나 큰 지, 그 딸을 죽인 자들에 대한 분노가 얼마나 독한지를 이번에 로널드 당신도 알았을 것이오. 이제라도 태한민국을 방문하여 두 소녀의 영정 앞에 조문의 꽃다발을 놓을 생각은 없소? 아만다와 올리비아를 위한 장학재단을 만들 때 태한민국 두 소녀를 위한 장학재단을 아울러 만들 수는 없겠소?

로널드 : 그건 내 권한 밖이오. 21년 전의 일을 끄집어내고 싶지 않소. 아만다와 올리비아는 살해당한 거요. 추국 법정이 그걸 증명했소. 태한민국 두 딸의 죽음은 애석하지만 단순한 사고였소. 추국 법정이 그걸 증명했소.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오.(로널드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부르스 : (따라 일어서며) 추국의 법이 이 세상 사람들 모두에게 적용될 수 있다는 오만을 버리시오. 나는 그 추국을 인정할 수 없소. 그토록 약하고 가난한 나라들을 법이라는 이름으로 짓밟는 나라를 어찌 이성을 지닌 국가라고 인정할 수 있겠소. 로널드! 당신은 끝까지 추국의 법 뒤에 숨는구려. 그 그림자 속에서 행복하오? 리코아 병사들을 보면서 당신의 젊은 날이, 그 비겁한 순간들이 떠오르지는 않았소? 당신들의 신은 그런 당신을 용서하실 것 같소?

로널드 : 추국의 법을 인정하지 않는 자들은 모두 악이고 어둠의 세력이며 테러집단이오. 추국은 결코 그들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오.

부르스 : 우리도 또한 추국을 용서할 수 없소. 전쟁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계속될 것 같구려. 나는 추국의 그 오만이 사라질 때까지, 끝까지 싸우겠소. 이것이 나의 정의이며 리코아의 정의이며 태한민국의 정의일 게요.

12. 에필로그 : 기억은 오래 지속된다 

 

 

부르스 리의 본명은 이동신(李東信)이다. 

2002년에 그는 태한민국 인터넷방송국 ‘민중의 향기’의 기자였다. 2002년 6월 13일부터 2002년 12월 31일까지 장갑차 사건에 대해 그가 쓴 기사는 100건이 넘었다. 이틀에 한 번씩은 새로운 기사를 쓴 셈이다. 그 시절 동료들은 그를 ‘독종’ 혹은 ‘집게발’이라고 불렀다. 한 번 파헤치기 시작하면 끝장을 보는 성격인 것이다. 그가 추군들에 의해 체포된 사실은 이런 성격을 여실히 드러낸다.


2002년 6월 26일 오후, 정의부 미2사단 게리슨 캠프 앞에서 ‘추군장갑차 여중생 살인사건 범국민대책회의’ 주최로 집회가 열렸다. 구호를 외치고 노래를 부르고 책임자 면담을 요구해도 추군은 무관심으로 일관했다. 시위에 참가한 몇몇 청년들이 철망을 뜯기 시작했다.


나 : 군사시설 보호법 위반이란 걸 몰랐나요?

이동신 : 물론 알았네. 허나 난 그저 취재를 하고 있었어.

나 : 시위대가 영내로 진입했군요.

이동신 : 그랬지. 처음엔 추군들도 멀찍이 떨어져서 구경만 하더라고. 그런데 사진을 찍으려고 카메라를 드는 순간 갑자기 달려들더라고. 아스팔트에 목을 짓누르고 양팔을 뒤로 꺾더군. 온몸을 결박당한 채 끌려갔지. 완전히 개 취급을 했어. 기자라고 신분을 밝혔지만 전혀 인간다운 대우를 하지 않았네.

나 : 추군 영내에만 계셨나요?

이동신 : 아니야. 곧 정의부 경찰서로 이송되었지. 부끄럽지만 거기서도 범죄자 취급받기는 마찬가지였네. 리코아에 이슬람 원리주의자가 문제라면, 태한민국에선 올가미를 씌울 때 좌익 용공주의자가 항상 등장하지. 주체사상의 신봉자라고 자술서를 쓰라는 거야. 끝까지 버텼네. 

나 : 그 후로 주욱 두 추군 병사를 추적하신 건가요?

이동신 : 2002년은 가을 겨울 내내 촛불시위대를 따라다녔지. 많은 집회에도 참여하고, 사진도 찍고. 2003년 봄에는 리코아에 왔었다네.

나 : (손가락을 세며) 2003년 봄이라면……?

이동신 : 그래, 그 리코아 전쟁 때 인간방패로 바드다그에 머물렀었지.

나 : 인간방패? 그게 뭐죠?

이동신 : 추군의 폭격이 예상되는 곳에 가서 머무는 것이지.

나 : 그러다가 폭격을 당하면?

이동신 : 죽는 거지…… 그렇게 죽은 인간방패 대원들도 있어.

나 : 그래서 바드다그 지리에 익숙하신 거군요. 전쟁이 끝난 후에는 귀국하셨나요?

이동신 : 잠깐 다녀오긴 했지. 그러나 줄곧 리코아에 머물렀네. 태한민국 국적을 포기했거든.

나 : (놀라며) 국적을 포기하다니요?

이동신 : 여중생들이 죽은 지 1년도 지나지 않아서, 태한민국 정부는 추국의 요청에 따라 리코아로 자국의 군인들을 파병하기로 결정했지. 나는 태한민국에 귀국했을 때 항의의 표시로 국적포기를 선언했다네. 그리곤 줄곧 바드다그에 머물렀어. 

나 : 하필 왜 바드다그인가요?

이동신 : (쓸쓸히 미소지으며) 기억을 오래 간직하기 위해서라고나 할까. 목숨을 걸고 제국주의의 침략 전쟁에 맞섰던 그 날의 정신을 이어가기 위해서라고 해두지. 중동은 제국주의의 침략 전쟁이 다시 발발할 가능성이 가장 큰 곳이니까.

나 : (지나치듯) 로널드와의 밀담은 어떻게 할까요?

이동신 : 아직 발표할 필요는 없겠지. 로널드 그 사람, 아무래도 나중에 큰 사고를 칠 것만 같아. 애국주의에 깊게 빠져 있으니까. 언젠가 한 번은 녹음한 것들을 쓸 기회가 있겠지. 그때까진 자네가 가지고 있게나.


재선을 노리는 추국 대통령은 테러와의 전쟁이 끝나지 않았음을 선언했다. 조금이라도 추국의 정책에 반대하면 어느 나라든 자국의 군대를 출동시키겠다는 것이다. 우리는 다음 취재의 주제로 ‘추국 대통령의 재선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택했다. 이번에도 역시 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으리라. 그러나 인간방패까지 경험한 이동신이 곁에 있는 한 나는 두렵지 않다. 이 밤 이동신이 특별히 사온 태한민국 소주에 취하고 내일 아침부터 다시 시작하겠다. 끝으로, 장갑차에 치어 짧은 생을 마감한 추국과 태한민국의 여중생 네 사람의 명복을 빌며 이 글을 마친다. 부디 천국에서 함께 뛰놀며 행복하기를!


<끝>


덧붙이는 글) 이 소설에 등장하는 지명, 인명, 인물, 사건, 사진 등은 작가에 의해 허구로 꾸며진 것이다. 어찌 이처럼 어처구니없는 일이 사실일 수 있으랴. 그러므로 더욱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