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 – B급, A급 세상을 조롱하다

예술작품(소설이든, 영화든, 음악이든)에 대해 비슷한 취향을 가진 사람과 이야기를 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하물며 호감이 가는 작품을 만든 예술가와의 이야기는 얼마나 더 재미가 있을 것인가. 그러나 그를 인터뷰하는 것은 피곤한 일이다. 아니 말을 바꾸자. 그것은 인터뷰어의 피곤함이라기보다는 인터뷰이의 피곤함이다. 거칠게 예를 들어보자.



인터뷰어 : (기대에 찬 표정으로)그 작품을 만들게 되신 특별한 계기가 있으십니까?

인터뷰이 : (무표정으로)그냥. 갑자기 생각이 났어요.

인터뷰어 : (약간의 기대를 남기며)갑자기 생각난 이유가 있지 않을까요?

인터뷰이 : (특별한 것이 없는 듯한 표정으로)유리컵에 금이 난걸 보니까, 영감이 떠오르더라구요.

인터뷰어 : (실망한 기색으로)유리컵의 금과 작품은 별 상관이 없어 보이는데요?

인터뷰이 : (머쓱한 표정)....



극단적인 예지만, 현실을 추상화하여 작품을 만드는 예술가들에게(물론 이건 인터뷰어 개인의 생각이다) 그 작품을 창조하게 된 객관적인 상황과 근거를 대라고 요구를 하는 짓은 잔인한 짓이다. 게다가, 그렇다고, 질문을 추상적으로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러나 인터뷰어의 열망은 ‘예술가’라는 직함을 가진 인터뷰이와 인터뷰이의 작품 그 모든 것에 대해 집요하게 물고 늘어져, 그 둘의 근원을 파악하는 것에 있지 않은가?(이 열망은 불가능한 것에 대한 열망일 것이다) 그래서 인터뷰어는 평소 흠모해 마지않던 영화감독 박찬욱을 인터뷰한다는 것의 부담감을-혹시나 그를 피곤하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하는 염려와 인터뷰 후 실망하지는 않을까 하는 염려 따위-인터뷰어의 사명감으로 감싸 잠재웠다.

 

영화감독 박찬욱의 필모그래피

 

각본

1. 올드보이 (Oldboy, 2003)
2. 공동경비구역 JSA
(Joint Security Area, 2000)
3. 아나키스트 (The Anarchists, 2000)
4. 휴머니스트 (Humanist, 2000)
5. 삼인조 (Trio, 1997)

 

 

감독

1. 올드보이 (Oldboy, 2003)
2. 복수는 나의 것
(Sympathy for Mr.Vengeance, 2001)
3. 공동경비구역 JSA
(Joint Security Area, 2000)
4. 삼인조 (Trio, 1997)
5. 달은…해가 꾸는 꿈 (1992)
 

 

 

너는 어느 쪽이냐는 질문

 

 

A급 세상은 합리적이고 논리적이다. 모든 것이 순리대로 움직이고, 인과관계는 명확하다. 자본은 시장의 법칙에 따라 움직이고, 범죄는 그에 상응하는 동기가 있기 마련이며, 웃음(울음)에는 웃게(울게) 만든 상황 혹은 원인이 있다. 반면 B급 세상은 비논리적이고 느닷없다. 많은 것들이 순간순간의 상황에 따라 변한다. B급 세상은 정돈되어 있지 않은, 부조리하고 불합리한 세상이다. 그런데 웃기는 소리일지 모르지만 A급 세상에서 영화감독들이 할 일이 있을까? 특히 박찬욱이 그런 세상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까? 그는 A급 세상에서는 할말이 없을 감독이다. 그러나 다행인지 불행인지 세상은 전혀 A급이 아니다. 그렇다고 B급인 것만도 아니다. 세상은 A급과 B급이 섞여 있으며, 그래서 할말이 더욱 많다. 박찬욱이 만든 영화의 생명력은 거기서 나온다. A급 세상과 B급 세상은 서로 길항하고 있다는 것.

 

사실 인터뷰는 힘들게 시작되었다. 궁색하고 쪽팔리는 말이지만, 그는 애타고 긴장하는 인터뷰어 앞에 약속시간을 훌쩍 넘겨 3시간을 가득 채운 후 나타났다. 그리고 ‘선수(先手)’를 쳤다.

“최근에 몸이 많이 안 좋아요”

 

단 한마디로 인터뷰어를 오히려 미안하게 만들어버린 그가, ‘선수(善手)’가 아니길 바라며 신경을 곤두세우고 질문을 시작했다.

 


퍼슨웹(아래 ‘퍼’)> (머뭇거리며) 감독님에게 누군가가 ‘너는 좌냐 우냐’ 물어보면 어떻게 대답하세요?

박찬욱(아래 ‘박’)> 글쎄, 설마 그렇게 단도직입적으로 묻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 생각 안 하고 살고 있죠(웃음). 우문은 아닌 것 같은데, 근데 저는 뭐라고 말해야 될지 나도 잘 모르겠네요.

 

퍼> 질문이 부담스러우신 건가요?

박> 아니요. 그런 게 아니라 규정하기가 힘들 것 같아서 그런 거죠.

 

퍼> 이 질문은 다른 영화작업 하시는 분들한테도 마찬가지일까요?

박> 그러니까, 아마 예술가들한테 그런 식으로 묻는 것은 난감해 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그니까 뭐, 다른 사람은 그럴 수도 있겠지만, 글쎄… 선명하게 밝히는 사람도 있지만, 켄로치(주석1)같이, 그런 사람이 오히려 예외적인 존재일 것 같아요.

 

퍼> 최근의 촛불시위, 반미 집회 때 행동하신 건 ‘나 이렇다’ 라는 표현이 아닐까 하는데요?

박> 제가 민노당 당원인 것 생각하면 ‘좌’라고 해야 되겠죠.

 

퍼> 이 질문을 하게 된 이유는 제가 인터뷰 자료를 찾아보다가, 예전에 베르나르도 베르톨로치(주석2) 초기작을 좋아하신다고 하셔서, 처음에 영화 시작하실 때부터 정치적 색깔을 가지고 계셨던 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박> 그런가 하면, 또 별로 안 그런 사람 영화도 많이 좋아하니까, 그것만 가지고 판단하기는 힘들 것 같아요. 똑 부러지게 대답 못해서 미안합니다.(웃음) 사안에 따라 다르고…

 

영화는 어쨌거나 돈이, 그것도 막대한 돈이 있어야 만들 수 있다. 거칠게 말하자면 영화는 친자본적인 예술이다. 그래서 좌파적 성향을 가진 영화감독은 자기모순의 길을 항상 걷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좌파 영화감독의 창조적 작업에 발목을 붙잡는 물귀신이고, 그리고 그것에 관한 것을 질문하기를 어렵게 만드는, 인터뷰어의 발목을 잡는 물귀신이기도 하다. 끝내 이 ‘모순’에 대해서 그는 입을 열지 못/안 했다.

 

퍼> 똑 부러지게 대답 못 하실 거라 약간은 예상했던 게, 영화 <복수는 나의 것>에서 제가 인상 깊었던 부분이, 영미(배두나역)가 호주에 사는, 자신의 머리가 두 개 달렸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두통 때문에 한쪽 머리를 총으로 쏘았다는 이야기를 류(신하균역)에게 하자, 류는 의아해하면서 “왼쪽이냐 오른쪽이냐”라고 물어보잖아요. 그러자 영미는 그렇게 물어 본 류를 ‘그 따위 질문을 하냐?’라는 표정으로 쳐다보지요, 그게 그런 걸 우회적으로 표현하신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박> 그걸 쓸 때는 그런 생각으로 쓴 건 아니지만, 써놓고 그런 식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겠다라는 정도로 알았죠. 일부러 그렇게 쓴 것은 아니에요. 예를 들어서 존 포드 영화도 좋아하고, 베르톨로치 못지 않게, 히치콕도 좋아하고, 그러니까 그건 또 별개 문제인 것 같아요.

 

퍼> 감독님을 좋아하는 관객들 중에 감독님 영화도 좋아하지만, 감독님의 정치적 성향 때문에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지 않을까요?박> 별로 없을 것 같은데 그런 사람들. 그것 때문에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 같은데? (웃음)

 

퍼> 그런 계층이 형성돼있다면 어떤 이야기를 해주고 싶으세요?

박> 그런 활동이 그 사람의 예술가로서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유일한 기준은 아니다, 모든 것을 그 기준으로 맞춰서 내 영화를 보지 말아 주세요, 이렇게 얘기하고 싶어요.(웃음) 숀 펜이 <칼리토> 같은 데 나와서 하는 연기와 그가 지금 반전운동 할 때 하는 모습은, 그건 크게 상관없죠. 그런 거 때문에 당비 내고, 그런 것만 하고 조용하게 있고 싶었어요. 내 영화를 자꾸 그런 시각으로 볼까봐. 그랬는데 요즘 세상은 별로, 그렇지 않은 것 같아요. 내가 <올드보이>를 내놓았다고 해서 민노당 지지자들이 실망한다든가, 억지로 그 영화를 그런 이데올로기로 해석하려고 한다든지 하는 그런 시기는 아닌 것 같아요. 이제는…

 


퍼> 시나리오를 쓰신 <아나키스트>에서는 무정부주의자 이야기를 하셨는데, 박찬욱이 무정부주의자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박> 모든 예술가는 그 정도(무정부주의적 성향)를 가지고 있죠. 저도 그 정도에요. 옛날, 그 당시 무정부주의자들은 낭만적인 사고를 가졌던 분들이고, 모든 예술가들의 약간의 낭만적인 성격이 그들을 동경하게 만들죠. 그렇지만 한편으론 이상주의자들이어서 불쌍하기도 하죠. 예술가들이 그런 면을 갖는 거죠.

 

퍼> 영화를 만드시면서 자기위선을 느낄 때는 어떠세요?

박> 누구나 그것을 싫어한다고 이야기를 하잖아요. 나도 그렇고, 웬만하면 안 그럴려고 하지만. 나이가 들고 도 주목을 받았기 때문에. 알면서도 해야 할 때가 있죠. 그런 일을 안 하려면, 좀더 냉정해지면 되죠. 누굴 만나도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예를 들어서 어느 동료 감독이 자기 영화 시사회 불렀단 말이에요. 그럼 후지면 후지다고 이야기를 해야 되는데, 그럴 수 없을 때가 있다 말이에요. 그럴 때는 더 과장되게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 그런 게 의식되니까. 무슨 영화제 시상식에 오라고 그러면, 예를 들어서 청룡영화제 청룡영화상은 스포츠조선 주간 하에 1963년 창설돼 올해로 23째를 맞고 있다. 인가 그거 조선일보에서 한다 말이야. 나는 그 해 해당작품이 없어서, 영화는 후보에 안 올라갔는데도 그쪽에서 오라고 한단 말이야. 별로 가고 싶지 않지만, 근데 전해 내가 거기 가서 상을 받았단 말이야. 근데 ‘상준다 그럴 때는 오고, 안 준다고 그러면 안 오냐’ 그럼 더 올라가서 ‘상줄 때도 안 가면 되지 않냐?’고 이야기할 수 있죠. 근데 영화사에서 주연배우가 같이 가자 그러면 ‘난 조선일보 싫어서 안가’ 그런 말도 잘 안나오죠. 조선일보에서 인터뷰를 하자 그러면 빼보려고 하다가도, 그냥 뭐, 영향력이 큰 매체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보는 매체이기 때문에 영화 흥행과 요만큼은 관계가 있단 말이에요. 그것은 검증된 수치는 아니지만, 마케팅 전문가들은 분명히 상관이 있다고 이야기한단 말이에요. 그럼 내가 돈 받고 만드는 감독으로서, 계약서에도 있거든요, 이 영화의 홍보활동에 적극 참여한다는 조항이 있어요.(웃음) 그런 게 있으면 그것을 거절할 수가 없어요. 그럼 가서 하죠. 그리고 또 어려운 게 조선일보 이데올로기는 그렇다고 해도 영화담당 기자는 좋은 친구란 말이에요. 이런 경우 참 어려워요. 근데 안티조선 쪽에서도 그런 논리를 알고있죠. 또 그것을 반박하고, 그 말이 틀리지는 않아요. 그러니까. 나는 투철한 사람이 못 되나봐요(웃음)

 

퍼> 감독님이 한마디 하신 게 기사화 되면, 그게 감독님의 모든 것으로 규정이 돼버리는 경우가 있잖아요?

박> 그러니까 인터뷰를 하면 여러 가지 피곤한 게 많죠(웃음). 내가 요즘 조셉 콘래드(주석3) 라는 작가의 전기를 읽고 있는데, 모든 전기가 그렇듯이 그 사람이 쓴 편지, 인터뷰, 일기나 잡문들 이런 것들을 가지고 단지 그걸 갖다 맞추는 거 아네요. 이 사람 생각이 어떠했다라는 것을, 그 사람이 왜 이런 작품을 썼는지, 동기가 여기서 온 거다, 근데 나는 이거 읽으면서 저게 콘래드가 정말 진심으로 한 말이 아닐 수도 있고, 농담일 수도 있고, 그때그때 모면하기 위해 대충대충 했을 수도 있고, 본심이 아닌 거짓말일 수도 있고, 근데 그게 다 전기작가한테는 가장 중요한 근거가 되니까, 그러니까 인터뷰라는 게 좀 무섭기도 하고.(웃음) <복수는 나의 것>이 코미디입니다라고 이야기하면 그 말을 할 때는 너무 무섭고 끔찍하다고 하니까 안 그런 척 해보려고 그런 면을 강조하려고 한 건데, ‘야, 그건 코메디래’ 그거로만 자꾸 보려고 하니까, 그러니까 예를 들면 배두나라는 캐릭터가 운동권을 희화화하는, 비하하는 묘사라는 식의 그런 해석도 나오고… 뭐, 한마디가 그쪽으로 몰아가는 근거가 되니까, 참 무서운 일이죠. 그니까 입 다물고 아무 말 안 하는 게 최고죠.(웃음) 그게 최곤데. 근데 알면서도 못하는…


 

 


흥행과 관객 그리고 예술이라는 함수:

“관객은 산이나 강처럼 그냥 이렇게 있다구요.”

 

영화감독을 크게 두 부류로 나누자면 영화를 가지고 ‘장사’를 하는 감독과 그렇지 않은 감독으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물론 두 번째 부류는 가상의 인물들일 수도 있다) 그런데 박찬욱 감독은 자신을 ‘상업감독’이라고 규정했다. 인터뷰어는 이 말에서 이상적인 예술가로서의 영화감독과 현실적인 ‘장사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영화감독이 서로를 겨누고 있다가 어쩔 수 없이 한쪽이 꼬리를 내린, 혹은 그럴 수밖에 없는, 함수관계를 떠올렸다.

 


퍼> <복수는 나의 것>이 흥행이 좋지 않아서 ‘관객에게 배신당했다’라는 표현을 하셨는데, 그 책임을 묻자면 관객의 책임이라고 생각하세요, 아님 감독의 책임이라고 생각하세요?

박> 물론, 전적으로 감독의 책임이지요. 관객은 그렇게 순진하게 바라봐서는 곤란하고, 관객은 그냥 거기 있는 존재에요. 여간해서 잘 변하지 않는, 그러니까 산이나 강처럼 그냥 이렇게 있다구요. 그럼 거기 사는 사람은 맞춰서 살아야죠. 왜 이렇게 우리나라에 산이 많아, 하고 불평을 해서 무슨 소용이 있어요. 뭐. 개간을 한다는 건, 그렇게 변화하는 건 아주 요만큼이죠. 세계의 영화관객, 한국의 영화관객은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죠. 그래서 거기 맞추어 살거나 못 맞추겠으면 떠나는 거죠. 관객이 무슨 죄가 있어요. 배신감을 느꼈다고 한 것은 웃자고 한 소리죠.(웃음)

 


퍼> 이만큼 만들었는데, (관객이) 못 알아주었다. 그런 것에 대한 생각은 없으세요?

박> 그런 생각 안 해요. 그런 뜻으로 한 이야기도 아니었고, 나는 나 <복수는 나의 것>처럼, 상당히 다른 영화를 만드는 데 서로 다른 기준을 적용하는 게 아니고, 나는 항상 내게 재밌는 영화를 만들어왔어요. 왜나면 그것말고 다른 기준이 없으니까. 프로듀서한테 물어봐서 프로듀서가 재밌어 하는 영화를 만든다고 해서 영화가 항상 잘 되는 게 아니란 말이에요. 그리고 뭐 흥행을 잘 맞추는 선수가 있다면, 그 사람도 많이 틀려요. 또 나랑 안 맞을 수도 있고. 또 그렇다고 설문조사를 할 수도 없잖아요. 시나리오, 편집 모든 단계에서. 설문조사를 한다면 만 명이나 십만 명쯤 하던가. 모니터시사회를 한다면 백 명, 이백 명 많으면 삼백 명, 그 삼백 명의 생각과 삼백만 명의 생각은 다를 수가 있다구요. 결국 기준은 나라는 말이죠. 내가 뛰어나서가 아니라 어디 맞출 데가 없으니까, 하는 수없이 내가 기준이란 말이에요. 각자 감독들이.

 

 

퍼> 감독님 취향대로 찍자면 좀 불리하신 것 아닙니까?(웃음)

박> 그런데 는 잘 되었잖아요, 그러니까 내가 느낀 재미가 대중이 느끼는 재미하고 크게 안 다르구나 그걸 느꼈다가, 이게 크게 다른 걸 발견해서 배신감을 느꼈다는 거에요.

 

 

퍼> 흥행 때문에 만드실 때 절충을 많이 하시는 편인가요?

박> 그럼요. 근데 절충하고는 조금 다른데, 하고 싶은 이야기는 굉장히 많은데, 그것을 다 영화를 만들 수 없는 이유는 모든 기획에 돈 되는 제작자가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죠. 내가 이런 영화를 하고 싶다고 해도 돈 되는 제작자가 안 나타나면 못하는 거죠. 그런 식으로 걸러지는 거죠. 근데 나는 죽어도 이걸 하겠다고 아무도 돈 투자하겠다는 사람 없는데 5년이고 뛰어다니면서, 그러는 사람은 아니라는 거죠. 좀 해보다가 포기하고, 다른 걸 준비하는 거죠.

 

 

박찬욱 감독은 ‘절충’이라는 단어에 약간은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아마도 그 민감한 반응의 뿌리는 인터뷰어가 손댈 수 없는 영역일 것이다. 그 반응의 뿌리는 어느 누구도 함부로 캐낼 수 없는, 오로지 박찬욱 감독의 내면에 있을 것이고, 그 반응은 오랜 시간동안 생활고의 압박에 시달리면서도 영화의 길을 포기하지 않고, 꿋꿋하게 자신의 길을 온 모든 영화감독의 고유한 감정일 것이다. 어려운 것은 ‘절충’, ‘타협’이라는 단어가 일상생활에 쓰이는 것과 예술가의 작품에 쓰이는 것이 쉽게 구분되지 않는, 아니 맞물려 돌아가는 자본주의 시대의 논리를 누구도 쉽게 부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퍼> 영화작가라는 규정과 흥행감독이라는 규정 중에 어느 것이 더 좋으세요?

박> 흥행이 잘 되고 싶다는 것은 나를 믿고 투자한 사람들한테 손해를 끼치지 않고 싶다는 거고, 다시 말해서 본전을 하고 싶다는 거에요. 그리고 여느 예술가와 마찬가지로, 자기가 어떤 이야기를 만들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보고 즐기기를바라지, 소수의 전문가가 만족하는 영화이기를 바라겠어요?

 

 

나는 이 질문이 우문이 될 것임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질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소위 예술을 한다는 사람들의 자존심을 나는 아직도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어떤 예술도 마찬가지겠지만, 예술가로서 ‘살아남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자신의 작품을 공감하고, 작품으로 소통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본전을 하겠다는, 더도 덜도 아닌 소박한 욕심은 박찬욱 감독의 ‘경계선’이었다. 또, 어쩌면 저 우문은 (주제넘은 생각이지만) 인터뷰어가 한국영화관객들을 평가절하 하는 사대주의적 근성에서 온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퍼> 흥행이 되어야 하는 이유가 제작비만큼의 돈을 거둬야 되는, 본전을 찾아야 한다는 건데 부담을 줄이려면 디지털로 작업 하셔도 되지 않나요?박> 그렇죠. 근데 저예산이라고 해서 영화 만들 기회가 쉽게 오는 건 절대로 아니에요. 투자자들은 오히려 크게 해서 크게 버는 걸 좋아하지. 예를 들어서 50억을 투자하잖아요. 그럼 거기에 걸맞는 얘깃거리와 스타가 있을 거잖아요. 그럼 돈 벌 확률이 높다고 생각하죠. 근데 제작비 7억원의 영화를 만들었는데, 그럼 스타도 없고 얘기도 뻔할 것 아니에요. 제작비 7억원 영화 만드는 감독이 얼마나 상업적인 마인드로 하겠어요. 7억원 쓰면 그건 그대로 날리는 거라고 생각을 하죠. 저예산이 영화 만들 가능성은 오히려 낮다고 봐야 돼요. 그 가능성이 생기려면 자기 돈으로 한다든가, 빚내서 한다든가. 근데 나는 빚내서 내 영화 만들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어요(웃음)

 

 

박찬욱 감독은 상업감독이라고 자신을 이야기했지만, 그가 만든 영화와 그의 사회적 활동들은 그를 ‘상업적’이라는 단어만으로는 정의하기가 힘들게 만든다. 그는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김창국)가 지원하는 ‘차별’이라는 주제의 옴니버스 형식의 인권영화에 참여하는 충무로 감독 중에 하나로, 박광수, 이현승, 여균동, 임순례 등과 함께 성별, 종교, 사상, 성적 지향 등 국가인권위원회가 법으로 명시하고 있는 18가지 차별 유형 중 하나를 택해서 각각 10분 길이의 단편영화를 만들고 있었다.

 


퍼>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기획한 영화는 다 마무리 되셨습니까?

박> 그저께 시사했어요. 전주영화제 개막작이 되었다고 그러네요. 4월에.

 

 

퍼> 인권 영화 만드시면서 특별히 느끼신 점은요?

박> 지금 예산초과해서 내 돈이 천만원이 들어가게 되었어요. 그래서 우울해요.(웃음)

 

 

퍼> 앞으로 외국인 노동자 문제에 대해서는 영화로 더 계획이 있으세요?

박> 영화는 한번 했으니까, 뭘 또 하나요.

 


퍼> 사회적으로는요?

박> 글쎄, 뭐 그쪽에서 불러주면 언제든지 갈 마음이 있는데. 부르지도 않는데 가서 내가 ‘머리 깎을 까요?’ 할 수는 없는 거잖아요.(웃음) 그런데 기부활동 같은 건하죠.

 

 

퍼> 단편영화는 앞으로 계속 하실 생각인가요?

박> 돈 되는 사람이 있다면요. 매력이 굉장히 많이 있죠. 흥행 부담이 적으니까 좋고, 그러니까 상업영화에서 다루기 힘든 방식을 시도해 볼 수 있으니까 좋고. 또 짧은 시간에 어울리는 얘기들이 있잖아요.

 

 

퍼> 그런 영화는, 표현이 조금 이상한데, 관객이 많이 없을 것을 예측하시지 않나요?

박> 그렇죠.

 

 

퍼> 관객이 안 올 영화를 만들고 있을 때의 느낌은 조금 다를 것 같은데요?

박> 글쎄, 영화도 종류가 많으니까(웃음). 이건 단편영화고, 돈을 벌 목적으로 사람들이 투자한 영화가 아니기 때문에, 공익적인 목적으로 정부 돈을 사용한 것이기 때문에, 상업적인 부담이 없어서 좋죠. 근데 한국의 예전, 몇 년 전 만해도 단편영화라는 것은 정말 선수들끼리 많아야 천명-만명 이상 보기 힘든데 요즘은 많이 나아졌기 때문이에요. 그 상영할 수 있는 경로가 넓어졌고, 그러니까 괜찮아요, 그렇지만 한 명이라도 더 보면 좋죠.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기획하고 만든 영화에 대해서 이것저것 묻고 싶었지만 ‘백 번 듣는 것이 한 번 보는 것만 못 하다’ 라고 했던가, 인터뷰어는 전주국제영화제로 가는 기차를 타기로 마음을 먹었다. 영화를 본 이후라야 뭔가 할말도 있고, 물어볼 말도 있지 않겠는가.

 

영화감독에게 평론가라는 존재

 

평론가와 예술가 사이의 긴장관계는 비단 영화에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이 둘 사이의 묘한 관계는 함부로 단정지을 수 없는 측면이 있다. 그렇게 본다면 박찬욱 감독은 한국영화계에서 독특한 존재라 할 수 있다. 그는 영화광이자 뛰어난 영화평론가로 이름을 먼저 날렸었다. 물론 그는 그 기억을 단지 먹고살기 위해 했던 일로 치부하면서 영화평을 쓰는 일은 다시는 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지만. 그에게 한국의 영화평론가에 대해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퍼> 과거에 평론을 하셨는데 현재 평론가들 어떻게 생각보세요?

박> 평론가들이요… 항상 달라지죠. 내 영화를 칭찬해주는 사람은 좋게 보이고.(웃음) 뭐, 그런 거죠.

 

 

퍼> 감독님 영화의 평론은 찾아서 보시는 편입니까?

박> 때는 안 그랬고, <복수는 나의 것>은 많이 봤어요. 그건 흥행이 잘 안 되니까 사람 마음이, 그거 어떻게 칭찬이라도 받아 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잖아요. 그러니까 혹시 나를 칭찬해 주는 글은 없나 찾아서 보게 되죠. 나도 그럴 줄은 몰랐는데 그렇게 되더라구요.

 

 

퍼> 평론가의 평론이 도움이 되나요? 다음 작품 때 아님 그전에 했던 영화 작업에서 자기 반성이라든지, 자기가 알아서 느끼는 게 아니라 평론가가 찍어줘서 알게 된 것들이 있으세요?

박> 그거 못 느껴봤어요.

 

 

퍼> 아시는 분이 평론을 했는데, ‘영화가 아니다’라는 평이 나오면 어떠세요?

박> 처참하죠. 그리고 아는 정도가 아니라 내가 인정하는 사람, ‘저 사람 실력 있어. 보는 눈 있어’ 인정했던 사람이 내 영화를 씹으면 상처를 받죠.

 

 

퍼> 오히려 그게 객관적이지는 않을까요, 그러니까 나하고 친한 사람이, 나를 더 잘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요?

박> 근데 친한 사람의 영화라고 해서 더 잘 볼 수 있는 건 아니죠. 전혀 아니라고 생각해요. 헐리우드는 넓기 때문에 감독이랑 평론가랑 친할 일이 별로 없잖아요. 예를 들어서, 참 하기 싫은 말이지만… 한국 감독끼리 하는 말 중에 일본이나 미국, 유럽의 평론가들이 한국의 평론가보다 더 잘 보더라, 정확하게 짚어 내더라. 그런 얘기들 우리끼리는 하거든요. 그런데 가끔 이런 면이 나한테 있었구나 그런 느낌을 주는, 지적을 받을 때가 있어요, 더러. 왜냐하면 그 사람들은 날 전혀 모르니까.

 

 

비평가와 영화감독의 관계는 껄끄러운 관계이다. 서로 공생하는 관계도 우습고, 서로 적대적인 관계도 우습다. 유홍준 교수의 말을 빌리면 비평가는 제일의 관객이다. “…만약 작가의 그런 전위성이 이 시대 미술, 문화, 창조에서 올바른 방향이라고 판단된다면, 곧바로 평론가는 작가의 대변인 역을 맡아야 한다… 제일의 관객으로서 비평가란 결코 작가의 대변인 역할만 수행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작가를 향하여 관객의 입장에서 요구할 수 있는 사안을 말할 수 있고 또 말해야 한다. ‘당신이 구사하고 있는 작가적 상상력이나 창의력이라는 것이 마치 제어되지 않은 감성의 분출로 인하여 일종의 감성적 독재가 행해지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 들 때 비평가는 관객을 대신하여 발언해야 하는 것이다.”(주석4) 허나 비평가와 영화감독의 관계는 현실에서 대부분 어긋나고 생산적이기보다는 소모적이다. 누구를 위하여 영화는 만들어지는 것일까? 모를 일이다.

영화광에서 영화감독까지

 

 

인터뷰어는 영화광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영화를 많이 보는 편이라고 자부하는 터였다. 그래서 인터뷰어는 박찬욱 감독의 영화광 시절이 궁금했다. 그는 그 시절, 영화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영화를 만들겠다는 생각만으로 설레어서 잠들지 못한 밤이 있었을까? 영화광으로만 남는 것이 영화감독이 되는 길보다 행복하지 않겠냐는 생각도 했을까? 그리고 또 한 가지 궁금했던 것은 영화감독으로서 입지를 굳힌 지금의 상황에서 그가 영화작업을 어떻게 하고 있는 가였다.

 

 

 

퍼> 영화를 하시게 된 계기는요? 원래는 철학을 전공하지 않으셨어요?

박> 영화를 하고 싶었지만, 겁이 나서 영화과를 못 가고, 변두리에 있다가, 결심하고 늦게 뛰어 들어온 거죠.

 

 

퍼> 영화광에게 영화감독은 어떤 존재라고 생각하세요?

박> 아이돌 스타하고 비슷한 거 아닐까요? HOT와 서태지를 좋아하는 것처럼. 전기적인 사실에서도 관심이 많고, ‘현장에서 이랬다’라는 전설적인 이야기, 그런 이야기도 친구들끼리 재밌게 떠들고, 팬클럽 같은 거죠. 그 영화 있잖아요. <올모스트 페이머스>(주석5)처럼 투어 따라 다니면서 모든 콘서트에서, 호텔 가서 한번 같이 자고 싶어하고, 그거랑 비슷한 거죠.

 

퍼> 영화광이 영화감독이 되는 일은 행복한 일일까요? 영화광의 마지막 단계가 감독일 것 같은데요?

 박> 그렇죠. 그렇게 해서 잘 돼야지 행복하죠, 그렇지 못하면 불행해지고(웃음)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는 것은 양날의 칼이라고 생각을 했던 인터뷰어는 박찬욱 감독이 그저 영화광으로서 영화를 보고 즐기던 그때의 행복함을 떠올리며 이야기 해주기를 바랬지만 질문의 의도가 잘못 전달되었던 것일까, 그는 그때의 이야기를 쉽게 꺼내지 않았다.

 

퍼> 시나리오 같은 거 쓰실 때, 캐릭터에 자신의 성격을 집어넣으시는 편인가요?

박> 별로 아닌 것 같아요. 나는 평탄하게 살아왔고, 특별한 경험, 별난 경험을 하지도 못했고, 그리고 성격이 아주 둔감한 편이에요. 예민한 사람이 아니에요. 그렇기 때문에 내 경험에서 끌어올 수 있는 게 많지가 않아요. 나는 그럴 꺼리가 별로 없어요.

 

퍼> 경험 못 했던 부분은 이무영 감독에게서 도움을 받으시는 편인가요?

박> 그런 것도 아닌 것 같고. 이무영하고는… 취향과 사상은 좀 비슷해요. 다르다기보다는 비슷하고, 근데 기질은 좀 달라요. 그 친구는 급하고 예민한 편이고, 나는 무사태평, 나는 시나리오 써도 천천히 게으름을 부리는데, 그 친구는 빨리빨리 쓰자고 그러고 그게 젤 큰 도움이죠.(주석6)

퍼> 시나리오 한편 쓰시는 데 얼마나 걸리세요?

박> 시나리오는 초고를 빨리 쓰는 게 중요한데, 그걸 붙들고 완벽한 작품을 만들겠다고 한 문장 한 문장에 정성을 쏟아서, 그러다보면 십중팔구는 중단하게 되고, 좀 마음에 안 들어도 넘기고, 막혔을 때는 빨리해서 끝을 보는 것이 중요해요. 우리의 작업방식은 그건데. 초고는 일주일, <복수는 나의 것>은 하루에 썼고, 24시간이죠. 고칠 때는 꽤 걸리죠. 고치는 게 거듭 될수록, 끝에 가면은 한 줄 고치는데도 하루 걸리고 그러죠.

 

퍼> 좋은 영화는 여러 번 보는 편인가요?

박> 아니 두 번 보는 영화가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에요. 왜 그러냐면 좋은 영화라는 것은 평생 봐도 못 보는, 너무 많기 때문에. 뭘 두 번 봐요. 하나라도 새로운 걸 봐야지(웃음)

 

퍼> 그럼 감독님 영화는 잘 보세요?

박> 내가 만든 영화요? 절대 안 보죠. 디브디를 만들어도 안 보고, 절대 안 보죠. 시사회 때도 안 봐요.

 

퍼> 완성작을 안 보세요?

박> 그니까 기술시사회 할 때, 프린트 상태를 체크하려고 보는 거, 그 이후로는 안 보죠. 본 영화를 왜 또 봐요.

 

자신이 만든 작품을 두 번 다시 보지 않는다는 그는 끊임없이 만드는 것에서 희열을 찾는 것 같았다. 신기한 일이다. 자신의 배설물도 확인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일 터인데. 이것은 그가 사회에 대한 불만뿐만 아니라 자신이 만든 작품에도 ‘불만’이 많기 때문이 아닐까?

  

퍼> 스스로에게 냉정하신 것 같은데요? 

박> 모든 예술가는 기준이 높아야 되요. 감상자로서는 상관없지만 자기 작품에 대해서는 기준이 아주 높게 설정돼 있어야 되요. 후배들이 시나리오 써 오면은 그런 이야기를 많이 해요. 너는 더 잘할 수도 있고, 더 잘 될 수 있는 잠재력이 이 안에 있는데 왜 여기서 만족하느냐라는 말을 해요. 그래서 평범한 영화, 나쁜 영화, 후진영화를 보면 안돼요. 세상에 좋은 영화도 널렸기 때문에 그 보는 시간도 아까울뿐더러, 두 번째는 다른 사람보다도 나는 나쁜 영화, 엉터리 영화를 보잖아요, 그럼 엉터리인줄은 알겠는데 나하고 다른 게 뭘까, 그런 생각을 많이 해요. 내가 저 사람보다 더 좋게 만들 자신이 있나, 그런 게 흔들려요 자꾸. 내가 저 사람보다 뭐가 잘났나, 내가 만들어도 결국 저 수준 아닌가, 그래서 자꾸 위축돼요, 나쁜 영화 보면. 그런데 좋은 영화를 보면 나도 ‘씨바, 저 정도야, 뭐’ 이런 생각이 든다고요.

 

퍼> 다른 예술가들과 다른 영화감독으로서의 한계가 있다면요?

박> 아주 많죠. 혼자 하는 게 아니니까, 아주 현실적인 이야기부터 하자면요, 나는 시골이나 외국에서 살고 싶어요. 한마디로 서울을 떠나 살고 싶은데. 영화 일은 그게 안 되죠. 소설가는 그게 가능하지만. 근데 영화감독의 모든 고민은 혼자서 할 수 없다는데서 비롯한 것 같아요. 그리고 또 하나 말하자면. 한 작품을 만들고 발표하는데 너무 오랜 세월이 걸린다는것. 그래서 평생 할 수 있는 작품의 수가 아주 적다는 것. 물론 거액의 돈이 필요하다는 것. 내가 영화를 그만두려고 한 적이 있다면, 그게 무슨, 영화사에서 전화가 걸려오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여러 명이 함께 하는 일에 내 성격에 맞는지가 의심스러웠기 때문에 그런 적이 있죠. 근데 성격도 변하는 것 같아요. 충무로도 많이 변했고, 내가 예전에 데뷔 할 때는 촬영, 조명, 음향 다 노땅들. 곤조 엄청나고, 예술에 전혀 관심 없는 사람들, 배우들도 어느 정도 그런 사람이 많았고. 그 속에서는 고분분투의 분위기였는데 지금은 전혀 다르죠. 심지어 요즘은 프로듀서들도 오직 흥행밖에 모르는 프로듀서들이 오히려 더 드물어요. 요즈음 감독보다 작품이 우수해야 한다는 그런 투지를 가진 사람이 많아요. 무엇보다도 배우들이 좋아졌어요. 지금 한국영화가 나아졌다는 것은 배우들의 힘이 크고, 세계 어디다 갖다놔도 안 빠지는 감독들은 한국에 거의 없다시피 한데, 배우는 많이 있어요.

 

퍼> 배우에 대한 편애랄까요 그런 거 가지고 있으세요?

박> 영화작업 하고 있을 때는 누구를 편애하면 절대 안 되죠. 그건 감독들이 제일 피해야 하는 거고. 하다보면 누구는 마음에 들고, 누구는 덜 들고, 그런 걸 표시하면 절대 안 되고. 일반적으로 얘기하자면… 글쎄요, 어떤 배우가 좋냐면, 머리가 좋은 배우랄까요? 연기 잘하는 사람을 보면, 다 다르지만, 공통점을 하나만 이야기하라면, 머리가 좋다는 것. 연기도 머리가 좋아야 하는 거지, 그래야 감독이 하는 말귀도 알아듣고, 독특한 표현을 자꾸 생각해내는 것이 가능하죠.

 

언제 가장 행복하냐는 우문에 박찬욱 감독은 인터뷰어가 예상한 답변을 내 놓았다.

 

박> 현장에 있을 때가 제일 행복하죠. 현장체질인 것 같아요. 심지어는 내가 알레르기 심한 체질인데요, 집안의 옷장 먼지 때문에 재채기 발작을 일으키는 편인데. 영화 세트장에는 먼지가 더 많은데 아무렇지도 않아요. 이상해. 현장에 있으면 내가 새끼들을 번식해 가지고 대가족을 거느린 할아버지 가장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에요.(웃음)


 

젊은 감독들의 선택, 박찬욱

 

박찬욱 감독은 작년에 ‘젊은 감독 그룹’이 올해의 영화를 뽑는 ‘디렉터스 컷’ 시상식에서 올해의 감독상을 받았다. <복수는 나의 것>이 비록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젊은 감독들이 뽑은 올해의 감독이 자신이라면, 박찬욱 감독 스스로에게 상당한 자부심이 될 것이란 생각을 했던 인터뷰어는 그와 관련된 질문을 준비할 때, 박찬욱 감독이 자신을 자랑하기를 은근히 기대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소리인가.

 

 

퍼> 작년에, 젊은 감독들이 주는 올해의 감독상을 받으셨는데요, 그 기사를 보고 제가 받느낌은 젊은 감독이 주는 상이라 감독님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을 꺼라 생각을 했는데요?

박> 뭐, 상금도 없는데요(웃음)

 

 

퍼> 그럼 그날 소감은 뭐라고 하셨어요?

박> 그날, 당일날 모여서 투표를 해서 결정을 하는데요, 첫째 <복수는 나의 것>이 흥행에 실패해서 불쌍해서 주는 거다. 둘째 계속 <오아시스>한테 밀려서 불쌍해서 준 거다. 값싼 동정은 필요 없다. 그런 얘기했죠(웃음)

 

 

퍼> 감독님 입장에서는 영광이지 않습니까?

박> 말이 그렇지, 가보면은 놀자판 분위기라서, 과연 심사숙고해서 찍었을까하는 생각은 별로 안 들어요.(웃음)

 

 

퍼> 만약 관객이 주는 상과 젊은 감독이 주는 상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신다면요?

박> 물론 관객이죠. 근데 말처럼 몸이 따르기가 어려워요. 이쪽으로 가면 관객이 좋아하는 길이다, 시나리오 쓸 때 어떤 씬에서 어떻게 가면 관객이 좋아하겠다 알지만 몸이 안 따를 때가 많아요. 영화가 좀 싸구려가 될 우려가 있다, 그럴 때는 어쩔 수 없어요. 크게 봐서는 항상 관객들이 너무 외면하지 않는 영화를 하려고 하죠. 최소한 본전을 할 수 있는 소재와 그런 형식으로 하려고 노력을 하죠. 어정쩡한 영화죠 내 영화는.(웃음) 일단, 대중을 의식하고 하는 것과 내가 멋있게 말하자면 나의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과 둘이 모순되지 않고, 서로 긴장을 가지고 하는 것이, 나는 어차피 상업감독이니까, 상업감독으로서 그런 긴장은 필요한 것 같아요.

 

 

설마 ‘디렉터스 컷’ 시상식이 박찬욱 감독의 말대로 진짜 놀자판일 거라고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이어진 질문과 답변에서 인터뷰어는 한가지 의심과 한가지 확신이 들었는데, 먼저 의심은 기타의 한국영화시상식에 대해 인터뷰어가 가지고 있던 부정적인 면은 한국영화제만이 아닌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영화제 역시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고, 다음으로 확신은 박찬욱 감독은 영화제에서 주는 상에 대해 커다란 의미를 부여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퍼> 외국영화제에서 주는 상하고 한국영화제에서 주는 상하고 차이를 느끼세요?

박> 내가 충무로에서 유명한 게 뭐냐면, 상금 있는 상을 받아본 적이 없다는 거에요. 상을 많이 받아봤는데 아직 상금을 받지는 못했어요. 그러니까 나에게 있어서 영화상이라는 건 상금이 있느냐 없느냐 그 두 가지 종류로 나누는데… 상보다두요, 깐느에서 감독상 받기보다도, 내가 감독으로서 소원하는 건 크리테리온이라는 컬렉션에서 디브디 내보는 게 소원이에요. 영화제에서 주는 상이라는 건 굉장히 여러 가지 변수에 의해서 좌우되는 거에요. 그 해에 경쟁작들이 형편없으면 내가 받을 수 있는 거고, 또 심사위원들의 구성에 따라 달라지고, 또 뭐 내가 여태까지 40편을 만들었는데, 40편중에 최고 졸작이 상을 받을 수도 있어요. 왜냐하면 심사위원들이 ‘아 저 사람은 좋은 감독인데 여태까지 상을 한번도 안 줬잖아, 미안하잖아, 이제 줄 때가 돼었잖아’ 이럴 때 주는 경우가 있고, 폴란스키의 <피아니스트>(주석7) 같은 경우가 그런 거죠. 그러니까 별로 공정하다는 생각도 안 들고, 받았다고 해서 우쭐할 필요도 없고, 크리테리온 콜렉션 같은 경우는 기준이 정말 엄격하고, 세계 최고급의 영화광들이 인정한 작품이니까, 근데 요즈음 <더 락(the rock)> 같은 것도 나오고 그러더라구요. 망가지는 것 같아.

 

퍼> 최근 한국영화를 보다가 실망한 경우가 많은데요, 감독님은 어떠세요?

박> 근데 최근 영화를 못 봐요, 디브디 포함해서 한편 아니면 두 편 봐요, 그러니까 아무래도 선별하게 되고, 조금이라도 좋은 영화를 보게 되죠. 그러다보니 그렇게 되었죠.

 

 

퍼> 흥행한 한국영화들이 거의 주기적으로 나오고 있는데, 감독들 이름은 거의 귀에 안 들어오고, 출현한 배우들 몸값만 오르는 것 같은데요?

박> 데뷔감독들이니까, 아무래도 한편 만들었는데 잘 기억하나요.

 

 

퍼> 근데 박찬욱 감독님 경우는 조명을 받지 않으셨습니까?

박> 그때는 워낙 데뷔감독들이 적었고, 영화편수도 많지 않았고. 요즘에는 데뷔 편수가 많고, 개성이 강한 영화들이 별로 없기 때문에, 데뷔감독들의 영화들이, 그래서 그렇겠죠. 근데 감독이름이 잘 기억되어야 되나요? 그럴 필요 없어요. 상업영화 세계에서 왜 그게 중요해요.

 

 

퍼> 영화를 찾는 사람들은 감독 이름보고 찾기도 하잖아요?

박> 감독이름 보고 찾는 사람들은 소수죠.

 

 

상업영화를 만드는 영화감독 중에서도 감독 자신의 이름이 세계 영화예술의 한 축으로 인식되는 것은 드문 사례가 아니다. ‘작품’이 ‘상품’이 되었다고 해서 그 작품의 질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좋은 영화가 해외로 높은 가격에 수출이 되고, 관객 동원력이 좋다고 해서 나쁜 영화가 되는 것은 아닌 것이다. 다만 문제는 하나의 작품이 탄생하기까지의 과정인데, 즉 ‘작품’ 후에 ‘상품’이 되어야 ‘예술가’라는 존재는 그 존재의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영화는 엔딩크레딧에 감독의 이름이 마지막 혹은 처음에 올라가지 않은가? 상품에는 그 상품을 만든 (이름만이 아닌 실제의) 장인의 이름이 걸리지 않지 않은가? 또 한편으로는, 작품이 상품으로서의 가치가 높아 관객동원력이 아무리 높다하더라도, 그것은 똥에 파리가 꼬이는 상황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퍼> 요즘 데뷔하는 한국 영화감독들은 현실적으로 크게 불리한 것 같은데, 계약 할 때 불리함을 감수하고 하는 건가요?

박> 어떻게든지 데뷔를 하고 싶으니까, 나쁜 조건이라도 감수하는 거죠. 그건 어디나 마찬가지죠. 가수가 음반을 낼 때도 처음 데뷔할 때는 형편없는 조건으로 계약하잖아요? 그거랑 똑 같은 거죠.

 

 

퍼> 구조가 감독들에게 크게 불리하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박> 그렇죠 영화산업이 발전할수록 감독들한테는 불리해지죠. 최종 편집권도 프로듀스가 가진다던가, 캐스팅도 자기 마음대로 못 하던가, 그건 상업화에 따르는 그늘이죠

 

 

비단 감독의 권한이 줄어드는 상업화에 따른 그늘뿐만 아니라, 고고한 예술지상주의에 따른 그늘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하는 것은 사실 우스운 일이다. 그 둘은 박찬욱 감독의 말대로 자본주의 시대에 사는 예술가의 내면에서 긴장관계를 이루어야한다. 또한 그것을 받아들이는 관객의 내면에서도 그 긴장관계는 이어져야 하고, 그것이 서로가 서로를 속이지 않고, 자기위선에 빠지지 않는 길일 것이다.

 

 

퍼> 젊은 감독에게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생각 같은 건 하세요?

박> 뭐 그런 생각 안 해요.(웃음) 예술의 세계는 독특한 것이기 때문에, 다 독자적인 것이고, 내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에서는… 그렇죠. 예를 들어서 모범을 보이기 위해서, 가볍게 흘러가는 한국 영화의 모범이 되기 위해서 진지하고 무거운 영화를 만들어야겠다는 그런 생각은 절대 안 해요. 한국 영화가 가벼워서 문제라고 생각 안 해요. 영화 그냥 못 만들어서 문제지.(웃음)

 

분노는 나의 것

 

박찬욱 감독의 영화를 이야기하면서 주류에 대한 조롱과 냉소, 분노를 빼놓을 수는 없다. 다른 인터뷰에서 자신을 불평분자라고 이야기를 했던 그에게 그 ‘분노’의 정체를 물어보았다.

 

 

 

퍼> 영화 만드시면서 기술적인 측면을 배제하고 가장 중요한 게 있으시다면요?

 

박> 어떻게 이야기해야되나, 영화를 잘 만들고 못 만들고 문제보다는요, 그 감독이 가진 애티튜드(attitude)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세계관이랄까요? 세상을 보는 태도, 사람을 대하는 태도, 그것이 영화가 훌륭한지 아닌지 하는 가늠하는 기준이라고 생각해요. 그것을 참 명확하게 말하기 힘들지만. 스필버그가 아무리 영화를 잘 만들어도 인정하기 힘든 것은 그런 에티튜드가 없기 때문이죠.

 

 

 

퍼> 양심하고 비슷한 의미인가요?

 

박> 그건 다른데 시니컬하면 시니컬한 대로, 휴머니스틱 하면 휴머니스틱 한 대로, 더 좋은 표현이 생각이 안 나네요.(웃음) 여러 가지로 이야기 할 수 있는데요. 인간과 세상에 대해서 사회에 대해서, 일단 불만이 많아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분노가 많아야 되고, 그게 좋은 예술을 만드는 중요한 연료가 아닌가 생각하거든요. 그런 것이 안 느껴지는 작품에 대해서는 별로 공감하기 힘들죠.

 

 

 

 

퍼> 구체적으로 어떤 불만과 분노세요?

박> 특별한 것은 없고 다 비슷하겠지만, 왜 이렇게 뭐 없는 사람은 왜 점점 없게되고 그럴까. 왜 돈 많은 놈들은 아무 생각없이 살까 그런 거에서부터 또 미국 부시, 뭐 많죠(웃음)

 

 

 

퍼> 사회변혁, 이런 거는 아니고 대중적으로, 일반적으로 느낄 수 있는 그런 건가요?

박> 진보세력 안에서도 왜 저렇게 나쁜 놈이 많을까라든가(웃음), 뭐 이렇게 배신하고 변절하는 놈이 많을까. 개인적으로 만나는 사람 중에서도 얘기를 하다보면 예전에 좋아했는데 왜 저렇게 속물로 변했을까 뭐, 많죠.

 

 

 

퍼> 세상을 어떻게 보세요?

박> 글쎄요…어떤 뜻일까요. 한심한 놈들이 많다라는 건가. 달리 말하자면 나는 세상이 그렇게 잘 맞추어진 기어가 돌아가듯이 그렇게 돌아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구요, 삐걱거리고, 충동과 갈등이 많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데. 고리타분한 얘기지만 도덕성이 문제인 것 같아요. 도덕에 대한 감각들이 너무 작의적이고 이기적이고, 그런 면에서 좀 엄격해야 된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게 포르노를 규제해야한다는 식의 규제관념은 아니구요. 사회라는 것이 산업화되고 발전할수록 나 혼자 살수가 없게 되있잖아요. 관계의 망속에 살게 되잖아요. 나의 움직임 하나가 영향을 주게 되어있는데, 그런 것에 대해서 무감각한 거, 그런 얘기죠.

 

 

 

퍼> 감독님이 하신 말씀 중에, “내 영화에 일관성이 없으면 좋겠다, 한 사람이 만든 영화 같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하셨는데요?

박> 목표는 그건데, 말처럼 쉽게 되는 건 아니죠.

 

 

 

퍼> 그래도 부조리한 것은 공통점인 것 같은데요?

박> 근데 뭐 목표가 그거라고 하더라도, 내가 좋은 것은 버릴 수는 없으니까. 하다보면 조금씩 공통점이 생기기 마련인데, 억지로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죠.

 

 

 

퍼> 영화의 스타일 같은 면에서는요?

박> 그런 면에서는 좀 달성할 수 있지 않을까. 소재나, 스타일이나. 내 경우에 스타일은 전적으로 소재를 따라 가는 거니까, 소재가 다양하면 스타일도 다양해 질 것이고, 디테일에서 내 취향이 들어 있다 하더라도, 아마 먼 훗날 본다던가 또는 외국에 나를 전혀 모르는 관객이 한꺼번에 여러 편을 봤을 때 구별하기 어려울 수도 있겠죠. 내가 그렇게 목표를 정했다라는 것은 그게 멋있어서가 아니라, 비슷한 이야기를 되풀이해서 찍는 것을, 싫증이 나서 못하기 때문이에요.

 

 

 

퍼> 평소에 ‘도덕적 딜레마’에 대해 관심이 많으시다고 말씀 하셨는데, 영화를 보면 상당히 그런 면이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그런 도덕적 딜레마를 생각하다 보면 확실히 선과 악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것 같은데요. 그런데 평소에 생활하실 때, 사람을 두고 ‘저놈은 나쁜 놈이다’라고 규정을 하시는 편입니까?

박> 그거 참 말하기 어렵죠. 모럴 딜레마라고 하는 것은 선택의 갈림길에 놓여 있는 거잖아요. 그렇다면 그건 선과 악이 있는 거죠. 선과 악이 있어야 무얼 선택할 것인가 고민하게 되는 거죠. 개념으로서 선악이 구별할 수 없다라고 생각은 안 해요, 나는. 구별할 수 있어요. 근데 사람을 볼 때는 한마디로 저놈이 착한 놈이다, 나쁜 놈이다라고 말하기가 어려울 때가 많다라는 거죠. 독재자라도 할지라도, 그 옆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굉장한 매력을 주는 경우도 있고, 자기 가족에게 아주 헌신적인 가장 일수도 있고, 뭐 친구에게 아주 의리 있는 사람일 수도 있고, 그런 건 가장 극단적인 경우지만, 보통 평범한 사람들끼리는, 우리 같은 사람들끼리는 참 그거 구별하기 힘들잖아요.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구요. 또, <복수는 나의 것> 경우는 송강호가 좋은 예인데, 송강호는 자본가 계급인데, 배두나 입장에서는 송강호의 돈을 뺐는 것, 그 집의 아이를 유괴하는 것은 별로 죄의식을 일으키지 않는 행동이죠. 그냥 노동계급의 적일 뿐이죠. 그러나 송강호 입장은 또 다를 수 있다는 거죠. ‘씨발 나도 노동계급 출신이다’ 그런 건 항변할 수 있는 거죠.

 

 

 

퍼> <복수는 나의 것> 대사에 그런 게 있잖아요. 동진이(송강 호역)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전기기술자로 시작해서 회사를 설립했다는… 이건 그걸 생각하시고 만드신 건가요?

박> 일부러 만들어 넣은 거죠. 그러다가 팽기사를 해고한 것은 전혀 죄의식이 없어요. 송강호는, 왜냐하면 이러다가 회사가 몽땅 망해 다 실업자 되는 것보다 좋다는 거죠. 한 두 사람 나가주는 게. 그렇지만! 그렇게 편하게 생각했는데, 근데 그 사람이 다 죽었단 말이에요. 식구들 다 데리고 죽었단 말이야, 그것을 자기가 발견했고, 그것도 왜 발견했냐면 의심해서 찾아가서 발견한 거란 말이야. 그랬을 때는 그 동안 편하게 생각했던 거에서 다른 국면으로 넘어간 거죠. ‘나의 행동이 이런 결과를 일으킬 수 있구나’라는 거죠. 그게 인제, 영화의 조연, 영화의 지나가는 인물인 팽기사라는 존재가 송강호라는 인물에게는 가장 중요한 사람이 되는 거에요. 신하균보다 오히려 더 중요한 사람이 되는 거에요. 그래서 자기 계급적 정체성을 깨닫게 되는 거니까. 그래서 한 아이를, 숨이 붙어 있는 애를 구했을 때는, 병원에 왔을 때는, 자기가 보호자 행세를 하게 되는 거고, 그것은 자기가 가진 마지막 도덕적인 희망이에요.

그 아이 하나를 구한다는 것, 직접적인 행동으로. 왜냐하면 직접적인 행동으로 일가족을 몰살시켰으니까. 근데 마지막에 전화를 받고 그 희망마저 없어지는 것, 그랬을 때 과연, 그러니까. 나는 어떻게 생각했냐면, 물론 영화에 표현된 것은 아니지만, 우리끼리 배우들하고 이야기 할 때는, 처음에 복수를 시작하려고 했을 때 송강호는, 그 새끼를 잡아죽이고 나도 죽는다라든가, 또는 죽이고 나서 경찰에 체포되든 말든 그런 미래는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에요. 그냥 딸의 죽음 때문에 돌아버린 사람이죠. 그렇지만 일이 진행될수록 조금씩 이성을 찾아간다는 거에요. 그래서 마지막에 삽질해서 시체를 묻으려고 하고. 묻으려고 땅파다가 테러리스트들이 등장하죠.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은 토막 나서 포장된 시체를 보여주잖아요. 그 행동은 뭐냐면 이제는 시체 암매장해서 완전 범죄를 만들고, 자기는 새출발 하겠다라는 생각을 갖고 있을 거라고 봐요. 딸의 죽음, 자기의 살인행각 이런 거 다 묻어버리고, 다시 사업 잘 해봐야지 하는 그게 그 계급의 정체성이라고 생각하는 거에요. 그래서 그 아이가 죽었다는 전화를 받았을 때도, 슬퍼하거나, 물론 거기에서는 그게 다음 국면으로 넘어간 계긴데, 그 전화 받기 전까지는 또 달랐어요. 그때까지는 자포자기 심정이었지만, 그거 받고는 ‘전화 잘 못 거셨습니다’라고 아주 쌀쌀맞게 끊는단 말이에요. 그 순간 그는 ‘자기가 도덕적으로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다’라는 그 가능성에 대해서 완전히 희망을 버리는 거에요. 자기가 구한 아이가 죽은 그런 순간에, 그 다음에 땅을 파기 시작한 거에요. 그리고 생략 된 게 전화 끊고 아마도 토막을 쳤을 거에요. 그리고 땅파기 시작하다가 테러리스트를 만나고 죽는 거죠. 그래서 마지막 희망을 잃게 되는 남자, 그래서 아주 이기적으로 차갑게 돌아서는 남자. 그런 얘기죠.

 

 

 

<복수는 나의 것>에 대한 부정적인 평, 예를 들면 운동권을 희화화, 비하했다는 것과 너무 잔인하다는 것 등, 자신이 의도했건 안 했건 간에 박찬욱 감독은 그런 평을 보고 그 동안 꽤 답답한 심정이었던 것 같았다. 복수는 나의 것에서 자신이 말하고자 한 것을 긴 시간동안 이야기하던 그는 말을 끝낸 후 잠깐 침묵했다.

 

 

 

퍼> 감독님 영화나 시나리오를 보면 ‘여지(餘地)’가 별로 없는 것 같은데요?

박> 아, 그렇죠. 앞으로 어떻게 바뀌질 모르는다는 게 당장의 생각인데, 흔히 말하는 열린 결말, 한국사람들이 좋아하는 여운을 남기는 결말, 내가 좀 그 쪽은 아닌 것 같아. 왠지 그렇게 해 놓으면 말이 좋아서 열린 결말이지 뭔가 무책임하다는 생각이 들고, 감독이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마무리가 잘 안되니까. 내버려둔 것 같고, 팽개친 것 같은 생각이 들어요. 그런 것도 잘 해야지 서툴게 하면… 데이비드 린치를 좋아하지만 그의 <로스트 하이웨이> 같은 경우는 쓰다 만 것 같고, 예전에 자기가 한 것 대충 편집해서 만들어 놓은 것 같고, 왕가위 영화도 시나리오를 쓰다 만 것 같고, 마무리가 안 되고, 어떻게 할 지 감을 잡지 못해서. 그냥 이렇게 가면 왠지 영화 끝나는 기분이 들잖아요. 대단원을, 뭐 대충 뭉치고 넘어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 식의 영화는 만들고 싶지 않아요. 물론 개방적인 영화 중에 좋은 영화도 많이 있지만 둘 중에 하나를 고르라면 아직까지 나는 완결된 이야기를 선택하겠어요.

 

분노는 나의 것

 

퍼> 영화하고 현실하고 어떤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세요, 영화에서는 작위적으로 이야기를 꾸며야 할 때가 있으실텐데요?

박> 영화에서는 우연으로 사건이 연결되는 것을 기피하잖아요. 그런데 현실은 그런 일이 많이 벌어진다말이에요. 어쩌면 이렇게 공교로운 일이, 그런 사건들이 벌어진다고요. 근데 영화는 그럴 수가 없기 때문에. 그게 제일 다른 거 같아요. 보통 생각하는 거 하고 반대에요. 그래서 이무영하고 나하고 좋아하는 장면이, 타란티노를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펄프 픽션>에서 부르스 윌리스가 차를 몰고 가는데 흑인 암흑가의 보스가 햄버거 사들고 길을 건너다가 만나잖아요. 그게 전통적인 영화에서는 기피해야 될 설정인데, 현실에서는 얼마든지 그보다 더 한 일도 벌어지니까 그런 게 재미있어요. 그러니까 우리가 실화를 두고, 이런 똑 같은 이야기를 지어내서 영화를 만들면, 사람들이 ‘저런 엉터리가 어디 있어?’ 그럴법한 일들이 실제로는 많이 벌어진다는 거죠.

 

 

퍼> 현실이 오히려 영화 같은 경우가 더 많다는 건가요?박> 그렇죠. 영화에서 지하철에서 불을 지르는 사람이 있다. 근데 200백명이 죽었다. 그런 결과가 나왔다. 시나리오를 이렇게 쓰면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냐 그러겠지. 정몽준이 하루전날 지지를 철회했다. 이런 일을 시나리오로 쓰면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며 욕먹죠.(웃음) 근데 관객들조차도 그렇게 본단 말이에요. 현실에서 기막힌 사연들을 겪으면서 영화에서는 그런 것을 보고 싶지 않다고 하니까.

 

 

영화는 끊임없이 현실을 쫓아간다. 그리고 반대로 현실이 영화를 모방하기도 한다. 영화에서 예측한 미래의 모습이 현재로 나타난 경우는 무수히 많다. 영화는 현실을 반영하는 예술이기도 하고, 현실을 넘어서는 예술이기도 하다. 얼마전 이창동 영화감독이 영화감독의 길을 잠시 접어두고 직접 현실로, 그것도 가장 더럽고 비열한 세계인 정치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퍼> 이창동감독의 문화관광부장관 취임에 대해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박> 그분에게 삼가 위로의 말씀을 전하고 싶죠(웃음).

 

 

퍼> 영화 하시던 분이 관계(官界)로 가신 것이 별로 달갑지 않으신 건가요?

박> 아니요. 우리한테는 좋을 수 있는데, 그분한테는 안되었다는 거죠. 다른 분이 되는 것 보다 한결 낳겠죠. 우리야 좋지.(웃음)

 

 

박찬욱 감독은 문화관광부장관에 실제현장의 인물이 되었다는 것을 무척 반기는 듯 했다. 그러나 이창동 문화관광부장관의 창작활동이 예전만큼 자유롭지 못 할 것을 안타까워했다. 인터뷰어의 생각도 박찬욱 감독과 마찬가지이다. 예술가에게 가장 어울리는 자리는 역시나 작품을 창조하는 자리가 아니겠는가.

 

 

퍼> 영화감독으로서 생명이 장관 하는 동안은 정지되어서 그런건가요?

박> 그 동안은 그렇잖아요. 장관 하는 동안은. 그런 데다가 어떤 사람이든지 자기가 어떤 일을 평생 잘 하지는 못 하고, 대충 그 물이 오르는 시기가 있잖아요? 지금 그런 시기라고 다들 생각을 하는데, 딱 멈춰지니까 그게 안된 거죠.

 

 

퍼> 만약에 제의가 들어오시면 어떠시겠어요?(웃음)

박> 민노당이 집권하면 내가 장관이…?(웃음). 그 날을 보려면 참… 그런 제의가 들어오면 이창동 감독님도 거절을 못해서 그렇게 된 건데. 거절 한다는 게 참 어려워요. 만약에 노무현 대통령이 전화해서 ‘좀 하시죠?’ 그러면 어떻게 거절하겠어요. 어렵죠.(웃음). 나 같으면 외국여행 가버리겠죠.(웃음)

 

수많은 질문이 머리 속을 맴돌았지만, 인터뷰를 마무리 해야할 시간이 다가옴을 느낀 인터뷰어는 최근에 그가 작업하고 있는 <올드보이>에 대한 궁금증을 끝으로, 긴장하여 잔뜩 세웠던 촉수를 서서히 뽑아 내렸다.

 

 

퍼> 영화 <올드보이> 작업은 얼마나 했습니까?

박> 시나리오는 거의 끝나가요, 오늘밤에 끝날 것 같아요.

 

 

퍼> 올드보이(주석8)에서 주인공이 15년 동안 갇혀 있는데, 그 입장을 상상해보셨어요?

박> 그렇죠. 당연하죠. 근데 문제는 잘 상상이 안 된다는 거에요. 이유를 모른 채 15년을 갇혀 있다는 것, 어떤 사람과도 접촉을 못 하고, 간수도 없고, 창도 없어요. 바깥세상을 볼 수도 없고, 그런 채로 15년을 산다라는 것은 잘 상상이 안 되요. 근데 다행인 것은 아무도 그런 경험이 없으니까. 이게 맞다 틀리다 그런 게 없으니까.(웃음)

 

 

퍼> 마지막으로 하실 말씀은요?

박> 내가 키노의 편집위원이어서 최민식씨 인터뷰를 하고 기사도 썼어요. 녹취는 기자가 하고. 아무래도 분량도 줄어야하고 논리의 일관성을 세우기 위해 위치도 바꾸고, 그게 영화편집하고 똑같더라구요. 아주 똑같아요. 그게 재밌더라구요. 한국에서 인터뷰를 당하면서 아쉽다고 느끼는 점은, 유머의 뉘앙스를 잘 안 살려 준다는 거, 웃자고 한 이야기를 굉장히 심각하게 한 것처럼 쓴다거나, 농담은 말 표현하나만 바꿔도 재미없어 지기 쉽자나요. 그런데 좀 관심들이 없는 것 같더라구.

 

 

박찬욱 감독은 약속시간에 늦은 미안함 때문에 최대한 진지하고 솔직하게 대답해주려 애를 썼다. 물론 인터뷰어는 너무 짧게 준비한 질문지를 인터뷰 내내 원망하여 이것저것 두서없이 물어보았지만 그래도 여전히 궁금한 게 많고

 

 

 

 

 

 

 

………………………………………………………………………….

 

 

주1 > 켄로치는 대표적인 좌파 성향의 감독으로 칸 영화제 심사위원상을 3차례나 받은 세계적인 거장으로 대표작으로 <숨겨진 비망록(1990)>, <랜드 앤드 프리덤(1995)> 등이 있다

 

주2 > 베르나르도 베르톨로치는 1960년대부터 모더니즘, 맑시즘 그리고 정신분석의 영향을 받으며 지적인 영화작업을 끊임없이 해온 거장. 20대 초반에 이미 완숙한 영화 형식의 수작을 찍으며, 일약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1964년 <혁명전야>, 1970년 <순응자> <거미의 계략> 등 젊은 날의 정치적 실천과 고민 그리고 맑시즘과 정신분석학의 세례를 빼어나게 표현하여 유럽 예술영화의 새 기수로 찬사를 받았다. -네이버

 

주3 > 조셉 콘래드(Joseph Conrad, 1857-1924) 폴란드에서 출생하여 영국에 귀화하여 작가가 되었다. 「로오드 짐」「밀정」「암흑의 핵심」「서구인의 눈으로」등의 작품을 썼다.

 

주4 > 유홍준 [정직한 관객], 학고재

 

주5 > 올모스트 페이머스(Almost Famous) 카메론 크로우 감독의 2000년 작품이다. 자세한내용은 “http://djuna.nkino.com/movies/almost_famous.html“에서 알 수 있다.

 

주6 >박찬욱 감독은 대부분의 시나리오를 이무영 감독과 공동작업을 했다. 주7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피아니스트는 2002년 칸느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이다.

 

주8 > 97년에 발간된 스치야 가론의 동명의 일본만화를 원작으로 하는 <올드보이>는 ’15년’, ‘추적’, ‘비밀’ 이라는 세가지 키워드 외에 줄거리는 비밀에 부쳐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