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기 – 고딩, 인권을 말하다

지난 해 11월 말, 서울역. 서울지역 전교조 소속 교사들과 일부 학생들이 모여 '미군장갑차 여중생 살인사건' 규탄집회를 준비하고 있었다. 귀에 익은 '민중가요'가 흘러나오고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몇 명의 몸짓패가 그 노래에 따라 동작을 맞춰보고 있다. 오후 한 시부터 집회를 시작한다고 했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좀처럼 시작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학생들은 저희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재잘거리고 교사로 보이는 사람들은 분주하게 뛰어다니며 시위에 쓰일 도구들을 나르고 있었다. 나는 그 번잡스러운 와중에서 '박성기'라는 고등학생을 찾아내기 위해 연신 두리번거렸다.

지난 해 11월 말, 서울역. 서울지역 전교조 소속 교사들과 일부 학생들이 모여 ‘미군장갑차 여중생 살인사건’ 규탄집회를 준비하고 있었다. 귀에 익은 ‘민중가요’가 흘러나오고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몇 명의 몸짓패가 그 노래에 따라 동작을 맞춰보고 있다. 오후 한 시부터 집회를 시작한다고 했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좀처럼 시작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학생들은 저희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재잘거리고 교사로 보이는 사람들은 분주하게 뛰어다니며 시위에 쓰일 도구들을 나르고 있었다. 나는 그 번잡스러운 와중에서 ‘박성기’라는 고등학생을 찾아내기 위해 연신 두리번거렸다.

 

그를 만나러 가는 일에 나는 약간 들떠있었다. 그가 중앙위원장으로 있다는 ‘전국민주중고등학생연합’(이하 ‘민주중고생연합’)이라는 조직(?)은 근래에 보기 드문, 중고등학생들의 자발적 모임이었다. ‘전국’이니 ‘민주’니 하는 말의 무게는 제쳐두고라도, 학생인권과 교육개혁을 주제로 ‘운동’을 하는 일은 ‘공부만’ 열심히 하는 범생이중고등학생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 그러나 상식과 예상이 깨지는 곳에서 흥분과 묘미는 시작된다.

 

집회가 시작될 즈음 그를 발견했다. 벌써 삼십 분 전부터 바로 옆에 서서 박수치며 웃던 그 학생이었다. 집회장으로 속속 모이는 학생들을 일일이 반겨주는, 밤색 교복에 고수머리를 하고 있는 소년은 영락없는 고등학생이었다. 인터뷰 얘기를 꺼내자, 그는 “아, 그래요? 다음 주 월요일에 봅시다.”라고 냉랭하게 받아쳤다. 순간 나는 조금 당황했다.

 

고딩 인권을 말하다

 

12월의 첫 월요일에 인터뷰를 했다. 바람이 많이 불어 쌀쌀했고 눈까지 내려 길바닥은 질퍽거렸다. 마침 점심시간이라 김밥과 떡볶이를 시켜놓고 함께 먹었다.

 

퍼슨웹(이하 ‘퍼’)> 그땐 참 쌀쌀맞던데 원래 성격이 좀 차가운 줄 알았어요.

박성기(이하 ‘박’)> , 그때요? 워낙 여기저기서 부르는 사람이 많아서 정신이 없었어요.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이 갑자기 인터뷰를 하자고 하니까 별 생각 없이 그랬던 거예요.

 

지난 번에 만났을 때보다 인상과 말투가 누그러져 있었다.

 

> 현재 ‘민주중고생연합’은 어떤 일을 하고 있습니까?

> 크게 학생인권 부문과 교육개혁 부문으로 나눌 수 있겠네요. 인권 부문 사업은 이번 ‘미군장갑차 여중생 살인사건’에 대해 진지하게 대처하고 있고요. 그 ‘사건’은 저희가 막 움직이기 시작하려고 할 때 터졌는데 전국 지부에서 개별적이고 자발적으로 움직여 주었지요. 그래서 서울에서도 서명과 모금운동을 했고요. 집회 참여 때에는 청소년들이 직접 발언을 하면서 참여의식을 높여 주는 일을 했습니다. 하지만 학교에 따라서는 집회 참가도, 서명도 못 하게 하는 곳도 있었어요

교육개혁과 관련된 문제로는 지금은 끝났지만 수능에 관해 항의를 하자는 주장이 있었습니다. 수능을 ‘자격 고사화’ 하는 것이 어떨까 하는 고민을 하게 된 거죠. 프랑스의 입학제도는 대학입학자격시험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고등학교의 졸업시험 말고요. 그 정도로 수위를 낮추는 게 어떨까 하고 제안을 했거든요. 지금은 그것을 제안하는 수준에서 출발하고 있습니다. 그밖에 교육토론이라든지 전교조 초청 강연회 등을 열었습니다.

학내 문제로는 학교 생활규정 개정사업을 합니다. 학교 내의 규정 속에는 헌법에 나와있는 기본적인 인권을 유린하는 부분이 상당히 많아요. 그래서 그 규정에 대한 폐지를 주장하고 있고 사회적인 공감대가 필요한 부분에 대해서는 함께 참여하는 방식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은 ‘전교조’와 공동사업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 ‘전국’이라는 이름을 붙일 정도면 규모가 꽤 크다고 생각되는데 현재 회원은 얼마나 되고 어떻게 운영되고 있습니까?

> 얼마 전까지 ‘중고생연합’이 있었어요. 그런데 그 조직이 2002 4월에 흩어졌습니다. 그 이후에 몇 명이 조금씩 활동하기 시작하다가 현재 ‘민주중고생연합’으로 110여 명 정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전국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지부가 서울지부 준비위, 부산지부, 부경지부 산하에 통영지회, 창원지회, 군산지부 정도가 있지요.

 

> ‘중고생연합’이라는 조직과는 어떤 차이가 있나요?

> ‘중고생연합’은 ‘민주중고생연합’의 전신이죠. 약간의 갈등이 있어서 거기서 나왔습니다. 2001 11 23일 ‘중고생연합’ 내에 ‘중앙경영기술지원부’라는 것을 새로 만들었는데, 주로 온라인 내부에서의 통신, 기술지원, 그리고 연대사업이라든가 지방 조직 운영에 대한 컨설팅 등을 담당하였습니다. 쉽게 말하면, 운동내부에 경영의 방법을 도입하게 된 것입니다. 그것은 서울로 집중되는 운동의 방향을 지방으로 분산시키고 사람들을 키워내기 위해서였어요. 그런데 이 계획이 발표되고 나서 원래 운영을 하던 친구들이 불만을 가지게 된 겁니다. 운영이 원활하지 않다는 식으로 자꾸 딴지를 거는 거예요. 심지어 ‘학생연합을 이용해서 불순한 세력들이 모인 것 아니냐’ 라는 식의 안건을 내더라고요. 홈페이지에 욕을 사용해 가면서 저희들을 모함해서 원칙적인 측면에서 글을 삭제하는 식으로 대응했었죠. 그 상황 속에서 저를 지켜내려는 아이들과 우리를 내치려는 사람들이 충돌하게 된 겁니다. 결국 제가 ‘중고생연합’을 나가면서 사건이 끝나게 됐지만 단체이념이나 운영에 있어서 확실한 노선 차이가 있었던 거죠.

 

그는 처음부터 함께 할 수 없다면 차라리 그곳을 나와 새로운 조직운동을 전개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며 당연한 듯 말했다. 그것이 훨씬 효율적이고 상황에 발빠르게 대처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 갈등의 요인이 노선의 차이라고 하는데 처음부터 학생인권의 문제라던가 교육개혁의 문제를 가지고 함께 활동 한 것 아닌가요? 혹시 개인적인 감정이 섞여서 갈라져 나갔다는 소리를 듣지 않았는지?

> 글쎄요. 그쪽 ‘중고생연합’ 강령에 보면 “학생연합을 이용하여 불순한 세력을” 어쩌고 하는 것이 있었어요. 이건 뭐냐면, 교육의 주체인 학부모, 학생, 교사는 절대 화합 불가능한 것이라고 규정하는 것과 같은 것이라는 거죠. 그 세 주체가 하나 되어야만 교육 개혁운동을 할 수 있거든요. 그런데 과거 ‘중고생연합’에서는 이것을 실현할 수가 없었어요. 왜냐하면 전교조 선생님들에 대해서도 좀더 포괄적인 협력관계로 이해하지 않고 단순히 사업할 때만 잠간씩 만났고, 교육개혁, 학생인권에 관한 논의는 절대 하지 않았어요. 제 생각에 이건 절대 아닙니다.

 

한 주간지 인터뷰*에서 박성기는 중고생 운동판의 ‘야당이 되고 싶다’라고 이야기했다. ‘야당’ 운운할 만큼 중고생 운동판이 큰 지는 모르겠다. 사실 중고생연합은 큰 조직이라 하기 어렵다. 전국에 있는 대부분의 중고등학교 학생들을 묶는 것도 아니고, 단지 몇몇의 ‘자발적’ 학생들의 모임 수준이었다. 학내에서 어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도 아니고 해서 얼핏 보면, 어른들의 운동을 그저 흉내만 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찌 되었건, 중고생 내부에도 서로 다른 가치 이념 지향이 있음은 분명한 듯하다.

 

> ‘민주중고생연합’의 후원은 전교조가 하고 있는 것인가요?

> 전교조는 후원단체가 아니고 협력단체입니다. 연대사업을 하는 파트너쉽 단체이지요. 선생님들은 자생적으로 성장한 학생 단체라 하여 저희에게 관심을 보이고 도와주시려고 합니다. 이런 운동은 계속 되어야 한다고 하면서 조언해 주시고 민주중고생연합이 이제 더 이상 아픔을 겪지 말고 앞으로 나가라는 말씀도 해주십니다.

 

물론 이 ‘민주중고생연합’이 자생적으로 결성되었고 전교조와는 파트너쉽 협력관계라고 하지만 선생님들의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다고는 보기 어려울 것 같다.

 

고교시절 교내에서 목적의식을 가지고 자발적인 학생운동조직을 구성한다는 일은 ‘말도 안 되는, 혹은 말이 안 될 일’로 통했다. 혹 불의에 항거하려고 정의감에 불타 의외의 행동을 하는 친구들도 간간이 있었지만 그것이 자발적인 요구에 의해서라기보다 교내에서 감봉, 정직을 당하는 ‘전교조 선생님’들에 대한 동경, 연민 같은 것에 가까웠다고 할 수 있겠다. 학교의 방침을 바꾸기 위해서든 교육개혁을 위한 운동이건 간에 그런 일들은 애초에 꿈을 꾸지도 못했던 것 같다. 그저 학교 선생님들이 내려주는 작업을 하달 받아 충실히 하고 나름대로 고교생다운 참신함을 보여주면 그것으로 끝이었으니까.

 

> ‘민주중고생연합’이 과거 ‘중고생연합’의 전철을 그대로 밟을 가능성은 없을까요?

> 과거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 제가 수많은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아직 과거의 친구들과 연락을 하고 있고 그 친구들을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거든요. 중요한 것은 제가 무슨 대표자의 권위를 지니고 조직을 운영하려하는 것이 아니라 일꾼으로 활동하고 있다 점입니다. 대표라는 이름은 회의할 때나 필요한 것이지 평소에는 회원들의 형으로, 친구로 함께 일합니다. 가족처럼 지내면서 편하게 조직을 운영해 나가는 것도 그때와는 다른 방법이겠지요. 어차피 운동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또 사람사업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회원들 앞에서 제가 살갑게 다가서고 또 스스로 반성도 한다면 큰 어려움이 없을 것 같습니다.

원칙과 상식, 그리고 희망

 

> 학교 내에 ‘학교운영위원회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학교 운영에 관한 대부분의 것들이 여기서 논의된다고 알고 있는데 학생들의 운영위 참여 수위는 어느 정도입니까?

> ‘학교운영위원회라는 조항이 아무리 법에 기재되어 있더라도 ‘교육법 시행령 60조부터 68조까지학생참여에 관한 조항은 단 한 줄도 없습니다.

 

초중등 교육법 시행령 제2절에 보면, 학교운영위원회는 당해 학교의 교원위원, 학부모위원 및 지역위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이 하는 일은 ‘학교교육시설의 보수 및 확충, 교육용 기자재 및 도서의 구입, 학교체육활동 기타 학예활동의 지원, 학생복지 및 학생자치활동의 지원이다. 학교 운영 방침이나 정책에 관한 내용들은 생각했던 것보다 그다지 많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 이것은 학생자치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학생회가 교원위원이나 학부모위원과 동등한 위치가 아니고 학교 생활부 밑에 있거나 구조상 실질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나오거든요. 아무리 학생들의 참여를 적용해봤자 학교 생활부 밑에 있는 조직 정도로 밖에 인식되지 않거나 실질적으로 없는 것이죠. 학교에선 학생들은 단순히 훈육의 대상으로만 인식되기 때문입니다.

 

> 문제가 구조적인 것이긴 하지만 어차피 교사와 함께 짊어지고 풀어 나가야 할 부분 아닌가요?

> 맞습니다. 교사와 학생은 서로 함께 있어야 하고 정말 가까운 관계잖아요. 그런데 간혹 일부 교사와 일부 학생의 그릇된 가치관과 행동들 때문에 과연 함께 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하게 됩니다. 요즘도 이런 문제들 때문에 갈팡질팡하긴 하지만 교사, 학생은 함께 할 수 있고 같이 나가야 된다는 생각에는 변함 없습니다.

 

> 대다수의 청소년들은 ‘민주중고생연합에서 지적하고 있는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고 있습니다. 어떤 방식으로든 그 청소년들을 만나서 이야기해야 할텐데요.

> 다른 학생들하고 저희들은 큰 차이가 없습니다. 청소년운동은 정말 이것이 좋아서 하는 것이거든요. 다른 게 있다면 운동하는 친구들이 다른 동네 살고 학교가 다른 것 밖에 없습니다. 생각의 차이는 크게 없지만 활동적이냐 그렇지 않느냐의 문제죠. 그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을 행동으로 끌어내는 것이겠죠.

 

> 사실 요즘 학생들은 개별적이고 다른 사람들 하는 일에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 학생들에게 바라는 점이 있다면 어떤 것입니까?

> 솔직히 우리들이 공부해서 대학만 가면 되지 않느냐. 이런 것 신경 써서 뭐 하자는 것이냐고 합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권리에 대해 직접적으로 주장하는 학생들은 거의 없어요. 10점 만점을 준다면 5.5점 정도로 요즘 학생들을 이야기 할 수 있다고 봅니다. 자신의 권리에 대해서는 자기가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라도 해봤으면 좋겠고 잘못된 것은 잘못되었다고 외칠 수 있는 대한민국 청소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는 이 말에 앞서 학생들 앞에 군림하지 않는 학생연합이 되겠다고 하였다. 이는 당연한 말이긴 하지만 실천적 대안은 여전히 미흡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위에 있는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선 그들 속에 녹아있는 가운데 만나야 하지 않을까.

 

> ‘중고생연합을 통해 궁극적으로 이루고자 하는 목적이 있을 텐데 어떤 것입니까?

> 금성고등학교에서 우리와 같은 생각을 지닌 학생회장이 나왔습니다. 정책과 노선, 공약까지 저희들이 신경을 많이 써서 결국 당선되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학교 안에 중고생연합 분회를 만들어 보는 게 바람직한 방법이라고 보고 있고, 또 제 바람입니다. 이것이 2005년까지의 계획입니다.

 

> 학생정당의 개념이네요?

> 굳이 이야기하자면 정당 식이라고 얘기 할 수 있겠죠. 하지만 중앙은 지금 프로세서의 역할을 할 뿐입니다. 원하면 중앙을 링크해서 가져다 쓸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거죠. 이것을 저는 수평적 리더쉽의 초기 단계라고 보고 싶습니다. 절대 상명하달 식의 조직운영이 아닌 일종의 구심으로서의 역할을 하는 것이지요. 단 상하관계는 운영에 관련된 회의를 할 때만 존재하는 것이죠. 일종의 허브조직이 됩니다. 각 지역지부가 있고 그 지부를 연결하는 것은 중앙, 이런 식으로요.

 

수평적 리더쉽. 어디서 많이 듣던 이야기인가 싶었는데 그가 가방에서 노트북을 꺼내놓았다. ‘노사모관련 대형 스티커가 노트북 위에 붙어 있었다. 아마도 박성기가 꿈꾸는 ‘학생정당의 기본 골자를 그쪽과 관련지어서 생각하면 되지 않나 싶었다. 그는 원칙과 상식에 대해 예까지 들어가며 설명했다. 확실히 노무현의 ‘원칙과 상식의 개념이 청소년들에게까지 영향을 끼친 것임에 틀림없었다.

 

> 예를 들어, A라는 것이 있습니다. A는 누가 보더라도 옳은데 학교에서는 A가 아니라 B가 옳다는 식으로 분위기가 가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학생이 최소한 인간으로서 존중을 받아야 한다는 원칙이 있잖아요. 이것은 당연한 것이잖아요. 하지만 학교에선 이게 잘 안됩니다. 이런 식의 원칙을 무시하는 경우가 있고요. 상식의 경우는 이런 예로 설명하면 좋겠네요. 어떤 여학교의 생활규칙을 보면 남자 친구 사귀는 것을 문제삼는다거나 (웃음) 아르바이트를 금지하는 조항이 있어요. 이게 상식적으로 가능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말도 안 되지요.  

 

> 학교라는 조직 자체가 구조상 획일화 된 제도교육을 시행할 수밖에 없잖아요. 때문에 상식 통하지 않는 것은 당연하고요. 그런데 문제는 그 학교를 사회제도가 만들어 낸 건데 졸업하고 밖으로 나오면 오히려 더 원칙과 상식이 통하지 않거든요.

> 하지만 전 이렇게 생각해요. 0.1%의 희망만 있어도 큰 희망이거든요. 저는 그것을 이 활동을 하면서 느끼고 있고요. 만일 사회라는 시험대에 오른다하더라도 제 원칙과 소신은 무너지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 사회는 점점 좋아지고 있지 않습니까?

 

> 사회가 점점 좋아지고 있다고요?

> 그렇게 느끼고 있어요. 역사적으로 보았을 때 옛날보다 지금이 훨씬 좋아졌잖아요. 정말 나아진 겁니다. 앞으로 더 나아질 것이고 그것이 제가 희망을 거는 이유입니다.

 

> 노사모 활동하고 있다던데, 이유는 무엇 때문입니까?

> 노무현을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이번 ‘후보자단일화협의같은 경우만 보더라도 저희와 ‘중고생연합과 비슷하다는 동질감 같은 게 느껴지더라고요. 사회적 훈련하는 과정 속에서 노무현을 접하게 된 거지요. 노사모 할 때는 적극적으로 하지 않았는데 국민경선 때 참여하게 된 거죠. 가장 결정적인 계기가 있습니다. 노무현은 지금 이 시대에 원칙과 상식을 외치는 코드로서 존재하는 것이거든요. 저는 그 때문에 지지합니다. 다른 것은 없습니다.

 

> 민주당과 노무현의 관계는 오히려 원칙과 상식이 없는 것 아닐까요?

> 어차피 노무현은 정치인입니다. 하지만 썩어문드러진 정치인들 중에서 그나마 아직까지 나은 사람이 노무현이 아닌가 생각해 보는 것이고요. 물론 제 마음 속으로는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를 지지합니다. 그러나 수순을 따지자면 노무현씨가 되고 그 다음에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된 후에 권영길씨가 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그는 이 사회가 무엇이 어떻게 좋아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노무현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일까. 그런데 원칙과 상식을 말하면서 ‘노무현은 정치인이라는 식의 관대함을 보이는 것은 조금 뜻밖이었다.

 

아이들의 바람막이가 되고 싶어요

 

> 사실 고등학생이 학생운동 한다는 것이 보기 드문 일입니다. 어려움이 많을 텐데, 학교에서 이런 것 못 하게 하지는 않습니까?

> 초기에는 어려움이 많았어요. 저와 다른 생각을 하고 계시는 선생님들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가 학생인권의 문제나 교육개혁에 관해 논리적으로 말씀드리고 설명하다보니까 이제는 많이 이해하시는 눈치예요. 물론 곁에서 많이 도와 주시고 조언해주시는 선생님들도 계시죠.

 

>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동기가 있었을 텐데요?

> 초등학교 6학년 때 카톨릭 동호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인터넷이 없었으니까 pc통신이었죠. 그때 우리들 편지가 누군가의 힘에 의해 검열될 수도 있다는 법률안이 제정된다고 하더라고요. 그 말을 듣고,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고 그렇게 처음으로 반대운동을 했어요. 그리고 “두발제한 철폐 운동” 하면서 학생인권운동 쪽으로 눈을 넓히게 된 것입니다.

 

> 이제 졸업을 하게 되는데 향후의 활동 계획은?

> 일단 건강을 챙기기 위해서 외국에 나가서 치료를 받을 계획입니다. 어렸을 때 결핵성 뇌막염을 앓았습니다. 약으로 치료했기 때문에 몸 속에 아직 약 기운이 있어요. 그래서 수전증이 있고요. 한쪽 눈도 잘 보이지 않습니다. 예전에는 거의 실명 상태였는데 지금은 조금씩 시력이 돌아오고 있습니다. 자기가 저절로 살아나더라고요. 이젠 형태만 조금씩 보이는 데 훈련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내년 정도에 교대 입시를 준비해 볼 계획입니다. 제 꿈이 학교로 돌아가는 것이거든요.

 

> 교대 입시요?

> 저는 어린 아이들을 사랑하거든요.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어서 어린아이들을 가르치고 싶어요. 계속 교육운동 하면서요. 저는 어린아이들이 가슴 아픈 일을 겪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이런 운동한다는 것 자체가 비극입니다. 내 후배들이 마음놓고 살수 있는 그런 세상을 만들고 싶습니다. 사회와 접하는 첫 번째 관문인 학교에서 충격을 받게 된다면 얼마나 끔찍 한가요. 그 충격에서 평생을 살아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제가 교사가 되어서 그들의 바람막이 역할을 해주고 싶습니다.

 

> 그렇다면 공교육 쪽보다 대안교육 쪽으로 눈길을 돌리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하는데요.

> 공교육 안에서 할 수 있는 일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그곳이 불모지라면 그 곳을 개척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현장 밖에서 대안학교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장 안에서 본질적인 문제를 파고드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선생님들이 89년부터 전교조 운동을 하셨고 현장 안에서 활동하고 계시잖아요.

 

> 초등학교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 때문인가요?

> 가장 불모지거든요.

 

> 오히려 고등학교가 더 심하지 않아요?

>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고등학생들이야 의식을 깨우치면 되지만 초등학교는 그럴 수 없잖아요. 어른들이 하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게되는데 그 처음 길을 바로 잡아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올바른 길로 가기 위해서요. 물론 제가 이렇게 하는 것이 지금까지의 것과 다른 게 뭐가 있는가 하는 모순이 있겠지만 선배들이 해놓았던 부분을 하나하나 공부해 나가면서 천천히 움직일 겁니다. 어린 아이들의 작은 마음을 다치게 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운동을 해야하는데 그게 가장 어려운 거라고 생각합니다.  

 

> 대학교에 진학하게 되면 중, 고등학교 때 운동하던 것하고는 다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분야도 다양해지고 다른 시험대에도 오르게 됩니다. 대학에서 접할 수 있는 것이 굉장히 많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대학에 가면 내 꿈이 변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나요?

> 중학교에서 고등학교 올라올 때도 그런 생각했거든요. 그것하고 똑같을 것 같지만 사실 대학교 가면 더 어렵겠지요. 물론 제가 사정상 올해 대학을 진학하지는 못하지만 그 기간에 사회 속에서 훈련하고 적응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자신 있습니다. 처음 가졌던 마음을 잃지 않으면 된다고 보니까요.

 

며칠 뒤, 대선 개표방송을 지켜보면서 박성기를 다시 보게 되었다. 노무현당선유력방송이 흘러나오자 광화문에 모여있던 노란 물결의 ‘노사모회원들이 일제히 환호했고 방송은 그들의 표정을 담느라 정신 없었다. 순간, 한 방송국 아나운서가 박성기를 인터뷰하는 모습이 나왔다. 마이크를 갖다대자 박성기는 흐르는 물줄기처럼 거침없이 자신이 이번에 얼마나 열렬히 노무현을 지지했는가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순간 다리에 맥이 풀렸다. 그가 만들어 가는 운동의 모습이 ‘노무현 식이라는 것을 아무 거리낌 없이 평가하는 것이었다. 물론 그러한 평가가 나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청소년다운 도전과 새로운 모습이 결여되어 있는 것 같아 아쉽기 그지없었다. 자신만의 길을 찾아가는 청소년이라면 성공한 것에 기뻐하기도 해야 하지만 앞으로 더 실패하고 깨지고 넘어져야 하지 않을까?

 

고교시절 “청소년은 실패할 수 있기 때문에 좀 더 과감하게 도전 할 수 있다”고 말하던 한 전교조 선생님의 말씀이 생각난다. 실패를 아는 자만이 실패하지 않기 위해 더 열심히 뛰는 것이니 말이다. 그러나 그의 희망이 우리에게 여전히 소중한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