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좌파의 꿈을 판다
도서출판 <이후>는
“새로운 상상력으로 다시 쓰는 사회과학“이란 출판 기조 아래
젊은 출판인들이 모여 땀흘리고 있는 비판사회과학 전문 출판사입니다.
특히, 젊은 세대들의 “이론, 실천, 교양“의 균형적인 발전을
변함없는 목표로 삼고 있으며
아울러 사회과학의 대중화, 사회과학과 인문, 예술과의 교류에도
깊은 관심을 기울여 출판 작업을 벌이고 있습니다.
– <이후>(www.e-who.co.kr)
인터뷰 약속이 잡힌 그 시간까지 사실 나는 그에 대해서 아는 바가 거의 없었다. 서너 달 전 지루한 시간이나 죽여보려고『출판저널』을 사 본 적 있다. 그곳에서 신생(新生) 출판사인 <이후>가 2001년의 주목할 만한 출판사로 선정되었다는 요지의 손바닥만한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그게 내가 아는 전부였다. 물론 인터뷰어로서 사전에 인터뷰이의 뒤를 캐보아야 하는 것이 당연할 노릇이겠지만, 나는 그냥 가기로 했다. 이미 <이후>에서 나온 몇 권의 책을 진실로 감동적으로 읽은 경험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나는 <이후>의 신간이 나올 때마다 한 번쯤은 뒤적거려 보는 사람이 아닌가?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물론 충분하지는 않았다. 허나 <이후>의 책들이 바로 이일규라는 사람과 <이후>를 말해주는 가장 중요한 소스라는 사실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이후>의 책을 보면 이일규 대표와 <이후>를 알 수 있을 터.
<퍼슨웹>의 독자들이여, <이후>의 책을 눈여겨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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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질 무렵 동교동 <이후>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 10평 남짓 될만한 좁은 사무실에는 <이후>의 구성원 서넛이 각자 모니터를 들여다보며 일에 열중하고 있었다. 이일규 대표는 우리가 잠시 숨을 돌리고 있는 사이 일을 마무리짓고, 함께 저녁이나 들자며 가방을 들고나섰다. 그는 우리를 올갱이 해장국집으로 이끌었다. 그와 함께 구수한 해장국을 들며 허기진 배를 채웠다. 그가 영업에 능할 수밖에 없는 책장사꾼이기 때문일까? 분위기는 생각보다 금새 말랑말랑해지는 것 같았다. 인근에 있는 커피숍으로 자리를 옮겨 대화를 시작했다.
1. 이일규 젊은 <이후> – <이후>의 사람들
비판적 사회과학 도서를 만드는 젊은 출판사 대표와 무슨 이야기를 나누어야 할까?
책이다. 세상에는 먹고 살기 위해 아무 일이나 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출판계는 유난히 신념의 강자들이 많은 곳이다. <이후>에서 출간된 책들을 볼 때, 그는 소위 말하는 “운동?R” 출신일 가능성이 농후했다. 그러나 동시에 문학소년이었을 가능성도 높았다.
순이) 책을 특별히 좋아하셨나요?
이일규) 좋아했죠. 좋아했다고 하니까… 제일 좋아했던 표현이 ‘잠에 당했다‘ 이런 표현이거든요. 자야지 해서 자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자는 지 모르게 잠드는 것 있잖아요. 책을 보다가 잠이 드는 거였죠. 일찍부터, 그러니까 대학교 1학년 때부터 출판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순이)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했던 문학소년이었나요?
이일규) 글쎄요.. 소설이나 시 이런 것도 즐겨 읽었죠. 어릴 때에도 책을 좋아했고. 하지만 대학에 들어와서 사회과학 서적을 읽었어요. 사실 특정한 부류의 책이었죠. 그때 그 책들이 보여주는 세상이 너무 감동적이었어요. 꼭 이런 책들을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죠. 아주 감동적이었어요… 왜 그 당시에는 사회 과학 서점에 들어갈 때에는 마음도 경건해지고 그랬죠.
그가 작지만 알찬 비판적 사회과학도서 전문 출판을 업으로 삼게 되기까지의 이력을 짐작케 할 단서를 찾았다. 바로 “사회과학“이란 말이다. 사실 사회과학이 별것인가? 사회에 대한 과학일 뿐. 그러나 그 말은 우리에게 ‘좌파‘ 혹은 ‘비판적‘이라는 수식어를 굳이 필요로 하지 않은 채 세상에 저항하는 젊은 광기를 떠올리게 한다. 사회과학이라는 말에는 80년대 대학문화의 정치적 구호가 배어있다. 그가 88학번임을 감안해 볼 때, 그는 분명 조직적으로 학습하며 이론을 갈고 닦고 실천을 고민했을 “운동?R” 출신의 출판인이라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었다.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기로 하자. 다시 책에 대해 물었다.
순이) 책이 주는 메시지 이런 것 말고도 책 특유의 물질성 이라고 할까요? 손으로 만지는 그 오랜 느낌 있잖아요. 이런 것에도 민감했을 것 같은데…
이일규) 예, 그렇긴 했지만 책을 만드는 입장이 되면서 많이 잃어 버렸어요. 만드는 데에는 책도 하나의 매체고 상품이고 하다 보니까, 효율성 같은 걸 따져야 되거든요. 때문에 만드는 입장에서는 그런 낭만이랄까 이런 느낌이 없어지는 것 같아요. 우리 책의 저자, 또 그분들의 글쓰기, 독자들의 특성… 그런 것들을 고려를 해서 시각적인 즐거움, 넘기는 소리 이런 것까지도 배려해야겠죠. 우리의 과제 같아요.
순이) <퍼슨웹>도 인터넷을 무대로 하는 잡지죠. 그런데 인터넷 세상이랍시고 모니터를 들여다보는 것하고 종이책을 만지면서 읽는 것과는 원초적으로 다른 경험이 아닌가 싶은데… 여기 저기서 “e-북의 시대가 올 것이다, 도서관은 전면 디지털화 될 것이다.” 하는 데 책을 직접 만드는 사람으로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일규) 처음부터 이 북을 분야별로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예를 들어서 백과 사전 같은 것들은 이북이 구현하기 가장 좋은 것들이죠. 멀티미디어의 성격을 띤 자료를 입체적으로 보여 주고 저장하고 검색할 수 있도록 해 주니까. 그렇지만 일련의 유기적인 텍스트일 경우에는 이것이 아날로그 방식이라 후져 보이기는 하겠지만, 이것만큼 효과적인 매체가 없는 것 같아요. 가장 압축적이고.
순이) 한국 사람들 냄비근성이 때문일까요? 심지어는 “이제 종이책은 끝장났다. 도서관도 싹 디지털화 하자.” 신문 보면 가끔씩 이런 말들이 난무하기도 하는데요. 이에 대해 책을 직접 만드시는 분은 어떤 생각을 하는지 궁금했어요.
이일규) 저희들도 이–북 형태라면 우리가 하는 분야뿐만 아니라 시도 소설도 적합하지 않다고 봐요. 그것이 구현될 수 있는 것은 특정한 분야. 그곳에서만 가능하지, 전반적으로는 아니라고 봐요.
“사회과학“에의 매혹
순이) 특히 대학 시절 사회과학 서적을 읽으면서 출판에 관련된 일에 욕심을 내기 시작하신 것 같은데, 사회과학서적이라면… 특히 어떤 특별한 것이 있었죠? 충격적이었던 책이 있었나요?
이일규) 제일 가장 큰 매력을 느꼈던 책은 이영희 선생님의 <우상과 이성>이었어요. 지금도 그 분의 글을 좋아해요. 이영희 선생님이 보여 주었던 것, 이론과 실천이 만나는 곳, 혹은 지식인과 글쓰기… 이런 것들은 저한테 모범이 무엇인지 보여주었죠. 그 한 권의 책에 완전히 갔다고 봐야죠.
그 이후로 이영희 선생님의 책이라면 다 읽었습니다. 이 책을 보고 그저 텍스트뿐만이 아니라, 그분의 글쓰기… 그러니까 글쓰는 작업, 글쓰기 이전에 관찰하는 작업… 이런 방식에 흠뻑 젖었던 거죠. 그 책이 어떠한 이영희 교수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글을 통해서 보여주고자 했던 것들을 보게 됨으로써 그 책을 좋아하게 되고… 사실은 딱딱한 내용인데 그것을 보여주는 표현에도 매료가 되었어요. 아주 아름다웠어요.
한 권의 책이 세상을 뒤집어 놓을 수 있을까? 물론 “NO”이다. 어찌 책 따위가 세상을 뒤집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어떤 책은 한 시대를 풍미하고 어떤 사람들은 그 책 때문에 전혀 다른 차원의 세계를 보게 된다. 리영희 선생의 <우상과 이성>. 그는 이 책과 또 다른 어떤 책들을 읽으며 출판계의 문을 열기 시작했을 것이다. 너무나 헛된 질문인 것 같아 차마 꺼내지는 못했다. “당신은 책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하지만 그는 무의식 깊은 곳에서 책으로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욕망이 샘솟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긴 하지만 말이다.
순이) 어쩌다가 <이후>를 시작하게 되셨는지 그 경로를 들어보고 싶네요.
이일규) 정말 출판일을 하고 싶었는데, 갈 데가 없었어요. 가고 싶었던 데가 전혀 없던 것은 아니었죠. 문을 두드려 본 곳이 한 곳 있었어요. 제가 생각했던 거랑 너무 달랐고, 일단은 기존 출판사는 가지 말자고 마음먹고 사람을 모으기 시작했죠. 사람들이 어떤 구체적이 상이 없으니까 말을 해도 안 믿어주고 처음에 지금 마케팅하고 있는 친구만 걸려들었어요.
순이) 돈벌이하려고 장사를 시작한 게 아니죠? 대표님이나 다른 분들 대학에서 공부를 계속하다가 아니면 운동을 하다가 무언가 갈증이 나서 이일을 시작한 게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드는데요.
이일규) 같이 일하시는 분들이나 도와주시는 분들은 대개 그래요. 마케팅 담당하는 친구하고 둘이 시작하긴 했지만 여러 분들이 도와주셨고 지금도 도와주시죠. 제가 학생시절 교지 만드는 일을 했었는데 그때 참께 하던 분들이 많이 도와주셨어요. 학보사 친구들도 그렇구요. “대학언론 포럼“이라는 단체를 만든 적도 있었는데, 그때 알고 있던 활동가들이 많이 도와주었어요, 어쨌든 그분들이 출판이라는 형태의 일을 직접 도와 준 것은 아니었지만 많은 힘이 되었죠.
순이) 특별히 출판사를 시작하면서 힘든 점이 무엇이 있었을까요?
이일규) 편견이었던 것 같아요. 우리가 처음에 『오래된 습관 복잡한 반성』이라는 책을 만들었죠. 어떻게 보면 그 책의 형식, 집필자… 이 모든 것이 시작부터 도전적인 것이었어요. 그 때는 학생운동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도 무공이 높은 사람들이 그러니까 대학교수 같은 사람들이 이야기해야 말빨이 서고 그랬죠. 근데 그런 사람들은 학생들이 어떻게 사는 지 전혀 모르거든요. 이미 그분들은 학생들에 대한 통로 같은 것들이 끊어져있을 때였어요.
그래서 처방의 내공은 약해도 학생운동에 대해서라면 학생들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라고 보는데, 그 문제에 대해서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이 일차적으로 저자의 후보에 올라야 하죠. 그 원칙을 그대로 따랐을 뿐이죠. 그런데 문제는 서점들이 받아들여주질 않았어요. 필자들 중에서 알려진 사람이 한 명이나 있기나 하나, 책도 후져 보이고… 만들어 놓고 깔 데가 없었죠. 그 책을 들고 나가서 개척을 해야 했어요. 하루 종일 둘이 나가서 책 들고 돌아다니면서. 서점 한군데 뚫으면 성공이었어요. 처음에 도매는 아예 받지도 않아요. 각 서점마다 돌아다니면서 직거래를 하는 건데, 그때 책을 만든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느꼈죠.
『오래된 습관 복잡한 반성 1』
■ 목차
1. 머리말/ `오래된 습관` 혹은 `복잡한 반성`을 가로지르기
2. 대학의 조건
3. 90년대 학생운동의 비판적 회고와 전망
4. 학생회 패러다임에 관한 단상
5. 학회론에 관한 고찰
6. 인터뷰 1·학회의 현장· 정리 임재문
7. 문화운동에 관한 제언
8. 인터뷰 2·동아리의 현장· 정리 한성근
9. 프랑스 68혁명의 교훈
10. 인터뷰 3·서울사회과학연구소 이진경· 정리 이재원
11. 기고/ 학생운동을 위해 논의하고 싶은 열 가지 주제
12. 인터뷰 4·사회운동단체· 정리 현희경
13. 1998, 전국 대학 총학생회 선거결과
(*참고 : <이후>의 첫 작품인 『오래된 습관 복잡한 반성1,2』가 절판될 예정이라 한다. 6월 말부터는 서점이 아닌 <이후>의 홈페이지에서 이 책을 찾을 수 있다.)
<이후>의 사람들
순이) <이후>에 계신 분들 지금 다섯 명인가요?
이일규) 예, 저 말고요.
순이) 어떻게 만나게 되셨죠?
이일규) 아까 말씀드린 마케팅하는 친구는 시작해보자고 해서 처음부터 같이 했지요. 만났다기 보다는 같이 시작한 거죠. 재원이라는 친구는 처음부터 주변에서 도와주는 역할이었고요. 실제로 같이 시작했다고 봐야겠네요. 나머지 두 친구는 책을 만들면서 만나게 되었죠. 필자와 출판사의 관계, 역자와 출판사와의 관계. 그렇게 시작한 거죠. 김정한 씨 있죠.
『대중과 폭력』이라는 책을 만들면서 너무 좋은 인상을 받았어요. 편집자의 제일 큰 장점은 최초의 독자라는 건데. 제가 그 친구 책을 읽는데… 야 이 친구가 나보다 한 살이 어린데 이렇게 속도 깊고, 생각도 깊고, 차분하고, 글도 잘 쓰고… 내가 이 친구를 잡아야겠다 이런 생각이 들었죠. 내가 무턱대고 같이 일하자 그러면 안 할까봐 『폭력의 세기』를 번역하자고 하면서 이 친구를 끌어 들였죠. 그 친구가 응해서 함께 하기 시작한 겁니다. 철수씨 같은 경우에는 『오래된 습관 복잡한 반성 2』에서 글을 하나 썼어요. 물론 그전에 알고 지내던 다른 학교 교지 후배였기는 했지만, 결정적으로 『그람시의 여백』의 번역 작업을 맡아 주었어요.
순이) 실제로 일을 맡으면서 손발이 안 맞는다던가.. 이런 문제는 없어요?
이일규) 손발은 맞지요… 그런데 입장의 차이는 있어요. 개인들 간에 차이도 물론 있구요.
순이) 대학에서 학위과정 밟으면서 공부하시는 분들도 있잖아요. 이 분들의 먹물근성이라고 할까요 이런 게 없지는 않을 텐데, 그래도 <이후>의 대표로서 조율하는 데 문제가 없나요?
이일규) 물론 있죠. 하지만 저는 그런 것들이 무조건 필요하다고 봐요. 개인이 <이후>를 이끌어 가는 것이 아니니까. <이후>는 <이후>의 집단 의지대로 가는 것이거든요. 집단의지를 만들어 가는데 내가 중재가 역할을 하면 되는 거지요. 우리는 농담으로 “시장에 가까이 있는 사람이 두 사람 있고, 대학에 가까이 있는 사람이 두 사람 있다” 이런 얘기도 많이 해요. 제가 회의를 통해서건 생활을 통해서건 중재역할을 맡아요. 때로는 심한 말도 하고, 뒤집어엎고 싶기도 하고… 어쨌든 팀이 깨지지 않고 오고 있구요. 기본적으로 서로가 서로의 동기를 인정하고, 인간적으로 신뢰를 하고. 그렇죠
순이) 지금은 친구나 동료로서 신뢰감이 두텁게 생긴 것 같군요. 개인적으로 그런 분들과 코드가 맞을 수 있다는 것이 공통된 가치관이랄까… 대학 시절의 문화적 감수성 같은 것들이 개입되어 있을 것 같은데, 어떠세요?
이일규) 제가 88학번이니까. 그 당시의 어떤 교내 정파 조직에서의 생활 같은 것들도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대학교지 편집을 했거든요. 뭐 그때는 교지, 지금으로 말하면 어떤 정파조직에 포함이 되어 있던 것이었죠. 하여튼 그런 데에서 했던 조직적인 경험들 같은 것들이 작용을 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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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980년대 이후… 우리가 사는 게 신좌파다!
나는 이일규라는 개인에 대해서 거의 물은 것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일규라는 개인이기도 했지만 이일규라는 개인은 <이후>를 삶의 터로 삼는 자였다. 그는 늘 고민하고 있는 문제를 털어놓듯 쉽게 말을 이어갔다.
좌파를 지향하는 출판사가 자본의 논리가 지배하는 출판시장에서 터를 잡아가고 있다. ‘좌파‘라는 말과 ‘시장‘이라는 말이 어울릴 것 같지가 않다. 운동이냐? 장사냐? 계속 그의 말을 들어보기로 하자.
이일규) 우리가 예전에 사회과학 출판하는 사람들처럼 “나는 NL이다. 나는 PD다. 나는 알뛰세르주의자다.” 이런 건 없죠. 물론 지금도 이런 분들이 계시죠. 그리고 물론 이런 분들이 필요하다고 봐요. 그런데 그런 분들은 그에 맞는 형태의 출판을 찾아야겠죠. 그걸 전부 출판사라고 똑같이 부르는 건 문제가 있는 것 같아요. 그분들은 작업실인데 출판형태를 갖는다, 이런 형식이 되겠죠. 이렇게 해서 1년에 책을 딱 세 권내고. 예컨데 D 출판사도 그렇고 K출판사도 그래요. 그런 메카니즘을 택하는 것이 그쪽으로서는 나름의 적합한 방식인 것 같구요.
이일규) 우리 같은 경우에는 좌파에 기반을 하면서 어쨌거나 대중출판을 우리가 효과적으로 해 내야 한다고 할 수 있죠. 그때 그때의 현실적 지형이나 이론적 지형에 맞게 개입을 해야하는 거죠. 그런데 출판이 개입을 한다는 것은 일단 물량이 전제되어야 하는 거죠. 예를 들어 한겨레신문이 일간지 시장에서 영향력을 행사한다면 기본적으로 물량이 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겁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거는 – 우리 나라 출판을 이데올로기적 지형으로 보자면 우파가 잡고 있다고 봐야겠죠 – 우리는 인문사회 과학의 특성상 충분히 좌파가 성장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고 봐요. 대학의 지형을 보든, 30대층을 보건간에. 그런데 그럴만한 출판사가 없어요. 80년대에 그 기회를 놓쳤기 때문입니다. 그때 무언가 되었다면 아마 한길사 만한 좌파 전문 출판사가 있었을 겁니다. 어쨌던 우리는 창작과비평사, 민음사나 한길사에서 내놓는 사회과학 서적 물량보다 많이 내놓는다고 잡고 있어요. 지금은 1년에 30권 정도 하려고 하는데, 우리는 목표를 일주일에 1권 해서, 1년에 대략50권을 잡고 있어요. 올해 내년을 과도기로 보고 있어요. 내후년쯤에는 그렇게 되어야겠죠.
그는 대중출판시장이라는 제약조건 하에서 이데올로기를 담는 책을 만드는 입장을 밝혔다. 출판사는 장사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장사는 이데올로기를 놓고 벌이는 헤게모니 장악 다툼이기도 하다.
순이) 첫 책부터 출판사에서 원고를 전면적으로 기획해서 내 놓았다고 하셨는데요. 상당히 공격적이랄까요 주도적이랄까요… 이런 면모를 가지고 시작하신 셈인데요.
이일규) 대개의 출판사는 들어온 원고로 책을 내거든요, 저희는 들어온 원고로 책을 내는 게 10%도 않되요. 지금 워낙 내 놓은 책이 적어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기본적인 방침은 그렇습니다. 번역서를 내는 경우에도 <이후>에서 책을 먼저 선정하고 그 분야의 전문가를 찾아요. 번역서가 아닌 저술의 경우에도 우리 쪽에서 텍스트의 내용을 대강 구상하고 자료를 찾고 필자를 찾아서 시작합니다. 이렇기 때문에 경제적 손실이 큰 것 같지만, 이것이 오히려 실패할 확률이 적은 게임을 하는거죠. 사실은 위험 부담을 낮추는 겁니다.
순이) 다른 사회과학 출판사도 그렇게 자체 주도적으로 하나요? 어떤가요?
이일규) 대개는 그렇게 못하죠. 역량 있는 편집자나 기획자가 부족해요. 기본적으로 출판계에 인력의 단절이 있었어요. 88학번 이후로, 소위 말해서 운동권의 영향력 아래에서 커온 사람들이 출판사로 가는 구조가 다 없어졌어요. 공장도 마찬가지지만, 특정한 모델을 생산하는 그 생산라인이 없어지면 특정한 엔지니어도 필요가 없는 거죠. 그때 K 같은 출판사들이 호황을 맞게 된 건데요. 사회과학 출판사들이 없어졌어요. 그 때 사회과학을 하던 분들이 다른 분야로 옮겨 갈 수도 없고 다들 출판계를 많이들 떠났죠.
“운동“과 “장사” 사이
순이) (사회과학) 출판하시는 분들한테는 “선비정신(?)” 같은 게 있다던데… 사실 그런 분들 운동만 생각하다가 장사는 문 닫는 거 아닌가요? <이후>는 장사하면서 운동도 잘 하는 것 같은데 어때요?
이일규) 그게 우리 세대의 장점 같아요. 농담으로 선배들이 “니네는 뭐가 신좌파나?” 그래요. 우리는 “사는 게 신 좌파다.” “우리가 생활하는 것 자체가 그렇다” 그러죠.(장난스럽게)
이일규) ‘우리는 장사하면서도 활동이 된다.’, ‘책을 내면서 성공하는 것이 그것이 대중적인 영향력이다.’ 이렇게 생각해요. 물론 선배들한테도 존경스러운 점이 많아요. 엄숙주의라던가… 그분들이나 우리나 어떠한 노렸던 효과는 같다고 할 수 있는데, (그분들은) 논리적 모순에 빠질 거에요. 일단 운영을 해야 하니까요. 자가당착에 빠질 수밖에 없겠죠. (<이후>는) 처음부터 넓게 잡고 우리 입지를 좁힐 여지를 없앴기 때문에 이런 모순을 덜 겪는 것 같아요. 물론 개인적으로 부딪히는 부분은 있어요.
왜 그라고 해서 이론과 실천 사이의, 장사와 운동 사이의 메울 수 없는 갭을 느끼지 않겠는가? 그런데 그것이 큰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는 잘 해낼 수 있으리라. 그리고 평소 <이후>의 책을 좋아하던 독자로서 진심으로 <이후>를 칭찬하고 싶었다.
순이) 그게 제가 보기에 <이후>의 가장 큰 장점이 아닌가 싶군요.
이일규) 그리고 그건 좋게 봐 주시니까 그런 거구요. 저는 그런 얘기도 듣습니다. 누군가 “상업적이다. 상업적인 냄새가 많이 난다. 줄타기를 잘한다.” 그래요. 처음에도 속도 상하고 그랬어요. 이젠 ‘우리가 만든 책이 반응이 좋구나. 우리가 경계에 잘 서 있구나.’ 그냥 좋게 받아들입니다.
이일규) 사실 기존의 인문/사회과학 출판사들은 특히나 ‘상업적이다‘라고 하면 심하게 알레르기반응을 보이는 이유가 있었어요. 사회과학 출판사에서 과거에 기획자라는 명함이 없었을 뿐이지 실제로는 기획일을 하는 사람들 있었거든요. 그 사람들은 철저히 아카데미 안에 있고 또 장차 그 안으로 들어갈 사람들이었죠. 그 사람들은 이 책이 나가든 안 나가든, 대중적인 영향력이 있든 없든, 독자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든 받지 못하든, 상관이 없다는 거죠. 왜? 이제 자신의 본업은 교수가 될 사람이니까. 학교로 돌아가서 학생들 가르치면 되니까. 그런 고민을 할 필요가 없었죠. 그들은 그저 자신이 먼저 본 비젼을 얘들이 알아듣던 알아듣지 못하던 펼쳐주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을 거에요. 80년대 90년대초까지 이런 분들이 실질적으로 기획자 역할을 했죠. 그 사람들 지금은 대부분 대학 교수가 되었겠죠. 그래서 더더욱 상업적이다라는 데에 알레르기를 보이는 것 같아요.
이일규 대표의 아내의 직업은 약사라고 한다. 그는 농담끼 어린 목소리로 “집사람은 약장사하고 저는 책장사해요. 둘 다 천하게 살죠.”라고 말했다. 우리 사회에서 돈과 지위와 권위의 상관관계는 무엇일까? 그는 돈이 크게 돌거나 뒤로 오가면 신성한 것이 되는데 눈앞에서 작게 오가면 천한 것이 된다고 했다. 대학교수가 강의를 하고 학생들에게 직접 돈을 받는다면 어떨까? 또는 의사가 직접 환자에게 진료비를 건네 받는다면 어떨까?
이일규) 기본적으로 대중 출판사로서 수익을 내지 못하면 없어지는 겁니다. 예컨대 서울사회과학연구소나 연구소, 갈무리에서 하는 왑 같은 데 있죠. 이런 연구소가 가능한 것도 수입이 다른 데에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겁니다.
이일규) 차이를 인정하자는 겁니다. 어떤 분들은 절대고독 속에서 이론을 완성하고자 하는 분들도 있죠. 때로는 이런 분들의 고독이 부럽기까지 한데… 하지만 자기 영역이 있고,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일이 있는 거죠. 중요한 것은 좌파이든, 진보이든, 혁명적 진영이든 다 좋은데… 예를 들어서 민주 노동당이 대중정당이죠. 그런데 거기 모여서 옛날의 패밀리나 언더처럼 운동하면 정당이 되지 않는 겁니다.
기본적으로 대중 출판사라고 한다면 그것이 표방하는 가치가 무엇이든 대중출판사의 메카니즘을 갖지 않으면, 경제적으로도 이념적으로도 자기 재생산을 할 수 없다는 것이죠. 이건 누구도 다 아는 사실이에요. 아카데미에 지나치게 의존을 하면 망하게 되어 있어요, 또 대학 밖에 대학을 만든다는 생각으로 출판사를 해도 다 망해요. 줄타기라고 비판을 한다면 좋게 칭찬으로 받아들입니다. 대학과 시장을 연결해 주는 것 이게 출판사입니다. 기본적으로 줄타기를 할 수밖에 없는 것이죠.
신좌파, 80년대 이후
순이) <이후>가 책을 만들어 내는 데 어떤 명시적인 원칙이나 기준이 있나요?
이일규) 물론 책을 만들려면 명시화는 하지요. 하지만 우리도 정확히 어떤 단일한 기준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각론으로 들어가면 “신좌파“라는 형태로 뭉뚱그려요. 그러다 보니까 오해를 하시는 분들도 있어요. 이론적인 질문을 해대는 거죠. 사실은 층위가 다른 문제인데… 우리가 출판사의 성격을 규정하고 출판 방향 운영하는 기조를 삼는 것하고, 우리가 어떤 텍스트 안에서 구좌파 / 신좌파 이렇게 구별하는 것과는 다른 거죠. 물론 기본적으로 속성은 비슷하겠죠.
이일규) 구좌파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진행하신 분들도 계시죠. 우리는 굳이 말하자면 68정신 같은 것이 될 겁니다. 우리가 80년대 뒤에 와야 할 것이 68 혁명과 같은 것이었다. 그런 말들을 많이 하는데, 90년대 학생운동이 했어야 할 것들이 문화적인 것들, 일상적인 것들이었을 거에요. 사실 이런 운동이 조직적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지만… 점진적으로 저변에서 되고 있었다고 봐요. 그러니까 우리 <이후>는 구좌파의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도 정치적인 문화적 기획들 이런 데에 신경을 많이 쓰는 겁니다. 그런 것들이 대충 방향이 되는 것 같아요. 사실 그러면 얼마나 방향이 넓어요? 어떻게 보면, 안 될게 없는 거죠. (웃음)
순이) 출판사 이름이 <이후>였던 것이 80년대 운동이 다하지 못했던 80년대 <이후>의 운동 그 부분에 포커스를 두겠다…는 뜻이었군요. 그 이름은 혼자 생각하신 건가요?
이일규) 제가 50개의 후보를 올려놓고 혼자 정했죠. 그때는 동의를 구해야 할 사람도 거의 없었구요. 마케팅 담당하는 친구가 좋다 그래서 그냥 정했어요. 제가 이씨이기도 하구요.
이어서 이일규 대표는 <이후>의 책들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이후>는 ‘넓은 의미의 좌파 – 신좌파‘를 널리 알릴 수 있는 이론·실천·교양이라는 세 꼭지를 가지고 책을 만든다고 한다. 이 대표는 <이후>의 책이 “오퍼스 / 컬리지언 총서 / 강의 노트“라는 총서의 시리즈로 발간된다고 하며, 특히 좌파와 만날 수 있는 페미니즘, 미국의 패권과 국제 역학관계, 생태주의 이 세 분야에 특별히 지속적인 관심을 보이겠다고 했다.
이런 이야기를 할 때 그는 “이런 좋은 책이 있는데… 꼭 한번 읽어보세요.”라고 말하는 열렬한 독서광 같았다. 그는 <이후>에서 나오는 책의 기획자이기도 했지만, <이후>의 책이 담고 있는 지평 안에서 꿈을 꾸는 <이후>의 열렬한 독자이기도 했다.
3. 좆도 불행하지는 않은 삶
우리 주변에는 많은 지식인들이 있다. 이들은 자신의 위치에서 집단적으로 혹은 개인적으로 이론을 가다듬고 몸소 실천하기도 한다. 지식인은 누구이며,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답이 쉽게 나오지 않는 뜨거운 감자 같은 질문이다. 하지만 (비판적) 지식인들의 (비판적) 지식은 어떻게 유통되는 것일까? 바로 책이다. 지식인과 지식인 사회의 문제는 출판사에서 맞물린다. 그에게도 한 번 물어보자. 이리 저리 에두르느라 약간은 지루한 대화가 오갔다.
순이) ‘강의 노트‘ 있잖아요. 『혁명의 문화사』라는 책있죠? 이 책은 강의를 하고 만들어진 책이죠?
이일규) 예, 강의를 할 때부터 출판을 염두 해 두고 하자 해서 여러 선생님과 함께 기획한 책이었어요. 민예총에서 강의도 이루어지고. 그런데 인기가 없어서 그때 한 번 하고 안했어요. 기획까지는 잘 되었는데요. 실제로 강의를 하고 나니까 문제가 생겼죠. 여러 분들이 필자로 있다보니까 일관성이 없다는 게 일차적인 문제였구요. 그리고 강의가 텍스트 형식으로 정리되기에는 부족한 면이 많았죠.
순이) 강의 노트가 그냥 심심해서 해보자 이런 건 아니었을 텐데요. 아마 더 큰 뜻을 품고 있지 않았나요? 예컨데 그냥 책만 내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걸 좀더 사회와 소통 공간도 만들어 확산시켜 나가자 이런 뜻도 있었던 거죠?
이일규) 강의 노트는 실험적으로 해보고 싶었어요. 기존의 전통적인 방법도 벽에 부딪혔고요. 거름에서 나온 이정우 선생님 같은 분의 책은 정말 저희도 훌륭한 책이라고 생각해요. 이제 그게 업이시니까 그게 텍스트가 될 수 있었던 거죠. 그런 것이 아니라면 강의를 중심으로 책으로 만든다는 것이 정말 어렵다는 걸 깨달았죠. 책은 비교적 많이 나갔지만(인문 사회과학 도서가 3000부 나갔다면 많이 나간 것이라 한다–순이), 저희가 생각할 때 어떤 분께서 그 책 보셨다고 하면 상당히 부끄럽고 그래요. 이제 그렇게 하면 안 되겠다 했죠.
순이) 강수돌 선생님의 책 『작은 풍요』는요? 직접 강의를 하셨던 것은 아니죠?
이일규) 강의가 대학의 전유물이기는 하지요. 그런데 대학 안에 있는 것들은 대학 밖으로 꺼내어 보자. 대학 안에서의 용어나 소재, 글쓰는 투, 이런 것들을 조정해서 대학 밖으로 꺼내어 보자. 이런 취지를 둔 것이죠. 실제로 그 책을 가지고 강연을 기획하거나 한 일은 없어요. 저희도 처음에는 책 낼 때마다 대학 학생회라든가, 생활도서관, 대학가 서점 같은 데에서 저자와의 만남 같은 자리도 만들고 강연회도 주최하고 했는데, 비용은 많이 들고… 힘에 부쳐서 요즘은 못했어요. 초심으로 돌아가서 계속 준비하려고 해요.
순이) 왜 탈식민성이라든가 논문중심주의 같은 주제로 말들이 많잖아요. 그런 것도 염두에 두셨구요? 좌파의 진영에서 많이 쓰는 말로 이론과 실천이라고 표현해야 하나요?
이일규) 예 그렇죠. 그때도 예를 들어서 지식인, 글쓰기.. 김영민 선생님부터 시작해서 여러 논쟁들이 많았잖아요. 사실 지금도 이명원 씨, 강준만 씨, 진중권 씨 넓게 보자면 다 마찬가지죠. 그런 부분에 대한 어떤 합의는 사실 불가능한 것 같아요.
물론 그런 문제들은 출판계가 많이 앉고 가고 있는 것 같고요. 일정부분 해결하는 것도 있지요. 그리고 좌파 이론들도 이것이 고담준론이다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어찌되었던 건에 이런 문제가 출판계가 끌어안고 있는 부분인 것 같기는 합니다.
이일규) 실제 어떤 분들은 그런 지적을 하기도 합니다. 너는 왜 그렇게 골치 아픈 구조를 택하느냐? 내적으로도 갈등요인은 많습니다. 저는 출판사는 개인의 창작물로 나갈 수 없다고 보거든요. 집단이라는 것은 내적 갈등이 있는 법이죠. 좋게 말하면 이것이 발전을 위한 내적 긴장이죠. 근데 갈등을 긴장으로 만드는 것은 일반 기업으로 말하자면 경영자 우리 같은 경우에는 중재자가 잘 이끌어 가는 것이 그 역할이죠.
아카데미즘은 출판의 속성입니다. 그런 면을 버릴 수는 없어요.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이론서도 읽힐 수 있어야 된다는 것이고, 읽힐 수 없는 어려운 텍스트라면 또 그것에 맞는 형태로 만들어져야 하구요. 그런 것들을 미리 처음 기획 단계에서부터 고려를 해서 합니다.
출판사의 “다른” 역할
순이) 초기에 나왔던 김정한 씨의 책이나 김 원씨의 책은 석사학위 논문인데요.
이일규) 그것도 한번 엿먹어 보라고 그랬어요.
순이) 대학 내에서 석사논문이라는 것이 지도교수나 읽으라고 쓰고, 아무도 안 읽고… 물론 전부 그런 건 아니겠죠. 그리고 성격상 대중적으로 유통이 되지 않을 법한 텍스트도 물론 필요한 것이구요. 하여튼 이 책들의 경우에 잘된 논문이고 이것이 잘 다듬어지고 해서 대중 출판의 영역으로 나왔다는 게 놀라웠는데요…
이일규) 원래 최초의 출판사는 그거였거든요. 대학의 학문적인 성과를 논문 몇 개로 내기에는 수요가 많고, 또는 가치가 높은 경우에 책으로 찍어서 내는 것이 사실은 출판사의 일이죠. 그때는 그게 대량 생산이었을 테고. 좋은 논문은 좋은 책으로 나와야죠. 주변에서는 그건 좋은데 왜 석사 논문으로 하느냐? 되도 않는 질문을 해와요. 사실 대답할 가치도 못 느끼는데 그런 데에도 우리 사회의 벽이 있는 거죠.
순이) 계속 논문을 발굴하실 생각이신가요?
이일규) 발굴이라고 하는 게 정확하겠죠. 저희가 논문을 많이 봐요. 분야마다 여성학이든 인류학이든 정치학이든 잘 된 것들이다 싶으면 낼 생각입니다. 기본적으로 대학에 끈을 대고 있는 친구들이 있고 일주일에 한 두 번은 도서관에 가니까. 주변에 도와주시는 김 원씨 같은 분들과 그런 얘기들을 많이 나눕니다.
순이) 젊은 필자군을 키우는 것도 출판사가 해야 할 중요한 기능이 아닌가요? 그 사람들 학교에서 자리 잡지 못하면 지식만 가지고 있지 갈 데 없는 사람들인 경우가 많잖아요.
이일규) 예 그것도 출판사의 주요한 역할이라고 할 수 있겠죠. 대학 밖의 지식인들이 지식인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매개 역할을 하고 그들을 부양하고. 문학 출판사가 역량 있고 창조적인 작가를 발굴하고 부양할 책임이 있듯이 이쪽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역할을 잘 해야죠. 그런 면에서 이후는 번역서가 너무 많다고 하시는 분들도 있어요.
그런데 이후는 국내 저작이 더 많아요. 50%이상이 그래요. 그리고 대부분이 처음으로 저작을 하시는 분들이에요. 직접 발굴하고 저희가 제안을 합니다. 믿고 열심히 해 보자고 해서 시작하는 거죠.
순이) 저자나 역자를 볼 때 이후는 어떤 지식인 개인뿐만 아니고 각종 사회 단체들과도 각별한 관계를 맺고 있지 않나요?
이일규) 그것도 출판사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기존의 제도화된 출판사들 – 더 이제 정확히 하자면 물론 돈은 알아야하는데 돈만 아는– 그 출판사들은 절대 그들을 부양해주지 않아요. 출판사의 중요한 기능중의 하나는 대학에서 먹여 살려 주지 못하는 사람에게 발언의 기회와 돈을 주는 것이거든요. 독자들한테 받고 매개역할을 해서 그들에게 주고. 저희가 “사회진보 연대“하고 한 작업이라든가 “아이피 레프트“와의 작업. 또는 “국제연대정책정보센터“에서 한 번역작업. 이제 우리 안에서부터 기획을 해서 이 사람들과 손을 잡고 해야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만큼 이야기가 오갔을 때, 그는 지쳐 보였다. 초짜 인터뷰어의 어눌한 진행에 스스로 말꼬리를 이어가며 2시간 가량을 떠들어야 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이제 분위기는 슬슬 종장으로 치달았다. 그때 보조 인터뷰어로 따라나섰던 면식범이 거들어 대화는 계속되었다.
면식범) 운동으로서의 책을 만들고 계신데요. 교양으로서 혹은 취미로서 독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저만해도 전공으로 보는 책하고 그냥 쉽게 보는 책하고는 전혀 다른 개념이거든요. 책을 만드시는 입장에서 책에 대해 두 가지의 입장이 있는지…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런 것을 인정한다면 자신의 위치가 어느 정도에 있다고 생각이 드세요?
이일규) 우리는 사실 교양하고 거리가 먼 이유가 단 하나에요. 사실 계속 이야기했듯이 이데올로기를 포기하지 않는 한 기본적으로 다툴 수밖에 없어요. 누구를 공격하거나 누구로부터 공격을 당하거나 하면서 논박하는 거죠. 사실 일반 순수문학이 문학이라고 표상되기 좋은 것처럼 일반 교양서적이 책이라고 표상되기 가장 좋은 것들이죠. 이런 교양서들은 상상력을 풍부하게 해 준다는 면에서 좋다고 생각해요. 소설이든 시든 산문이든 뭐든지 간에 인간이 가진 사고의 틀을 넘어서는 것이 책이 주는 주요한 교양이라고 생각해요. 근데 저희 책도 그런 속성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죠.
하지만 저희가 최우선으로 두는 것이 책이라는 것 자체가 이데올로기이고 이데올로기를 가질 수밖에 없고 이데올로기를 표방하는 것이 정상적인 것이고. 예를 들어서 과거의 논어라는 텍스트를 두고 말한다고 해도, 그 당시에 그것들이 아주 정치적인 이데올로기를 담고 있는 것들이었겠죠. 자신의 체제와 이데올로기를 옹호하는 거죠. 자신의 이상향을 실현시키고 싶은 욕망, 그런 것들이 이론적으로 정교화되는 것이겠죠. 책이라는 게 인문 사회 과학에서는 그렇지 않은 것들도 물론 있을 수 있겠는데요. 지호라는 출판사가 있죠. 저희끼리 중성이라고 얘기하는데 책을 아주 잘 만들죠. 사실 직접적으로 이데올로기를 두고 있지는 않는데. 그런 책들이 교양서로서는 표본이 되는 것 같아요. 그런 책들은 사람을 학습시키면서 사람의 상상력을 키워줘요.
진정한 책, 책의 사용가치
면식범) 이데올로기에 대한 자부심이랄까.. 자긍심 이런 것들도 뗄 수 없는 것 같은데요…
이일규) 자긍심이라고 하기에는 좀 그렇죠. 하지만 누구나 자기가 주장하는 바대로 살고 싶고, 저도 이제 먹고살기도 해야겠죠. 한 집안의 가장으로 경제적 문제를 책임져야 하고. 그런데 먹고살아야 하기는 하겠지만 먹고살면서 내가 그려왔던 삶, 내가 살고 싶었던 모양과 똑같이 살지는 못하더라도 가깝게 살고자 한다면, 이데올로기 문제를 묻어 두거나 은폐하고 살면 결국에는 자기 모순에 빠져들 것 같아요. 결국에는 죽기 전에 ‘아! 좆도 불행하게 죽는다.’할 지도 모르죠. 어떻게 보면 딴 거 해도 돈 잘 벌기는 틀렸고, 그냥 해소하면서 살자. 방어하면서 공격하면서. 이렇게 살아보자 하는 거에요.
이 순간 나는 이일규라는 사람이 열심히 뛰는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그를 순전히 장사꾼이라고 했다면 그를 너무 속물 취급하는 것일 테고… 그를 사회운동가라고 규정한다면 마치 박노해를 노동자 투사로 읽을 때 느끼는 찝찌름한 불편함 같은 것을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소박한 꿈을 가진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이데올로기 따위가 전혀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있다. 하지만 그에게 이데올로기는 꿈과도 같은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오로지 먹고살기 위해서 치사스럽게 구느라고 잃어버려서는 안 될 꿈. 그것이 꼭 좌파이론 같은 것일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그것은 ‘진정성‘이라는 이름의 소박한 꿈이 아닐까? 그리고 그 꿈은 먹고사는 그 곳에서 진행되어야 할 프로젝트가 아닌가? 먹고살되 꿈을 잃지는 말자. 이것이 평범한 사람들에게 허용된 치열한 삶인 것이다.
면식범) 제가 질문했던 건 책에 대한 불신에서 오는 건데요. 책의 세상이 있다면 책이란 물건이 있는데 누가 책들 중에 진정한 책일까? 무엇이 책인가… ?
이일규) 감동적인 대답을 들어 본 적이 있어요. <출판 저널>에서 본 건데. “나는 거대한 건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만든 책이 실무자들의 책상 위에 손때가 묻어서 닳아질 때 나는 나의 사명과 보람을 느낀다.” 어떤 분이 그런 말씀을 하셨다네요. 너무 감동적으로 와 닿았어요. 책이라는 게 우리가 그렇게도 무시하고 때로는 이상화시키는 것이기도 하지만, 결국 책은 대중들이 꼭 필요할 때 찾게 되는 물건이거든요. 사용가치가 있는 물건이죠. 그런 면을 소홀히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해서 좀 찔렸어요. 우리가 책을 만들어 팔아요. 그런데 우리가 만드는 책에는 이데올로기가 있다, 우리는 이데올로기를 표방하고 있다, 이런 면만 강조하는 게 아니라 사용가치를 가진 책을 만드려고 노력해야겠죠.
순이) 이런 생각이 드는군요. 왜 장사하는 사람들도 나름대로 윤리관을 가지고 계신 분들이 있잖아요. 사실 그렇다기 보다는 그랬으면 좋겠다는 것이기는 하죠. 예컨대 우리가 식료품을 공급하는 업체다. 그러면 내 자식들이 먹어도 좋을만한 음식이 아니면 시장에 내 놓지 않겠다. 이런 정신. 이후에도 얼핏 보이는 것 같은데, 지나친 가요? 어떠세요?
이일규) 거기는 못 미치죠. 나름대로 노력합니다. 우리도 전투력 따운 되었을 때 밤새껏 소주 마시면서. “장인정신” “신념의 강자가 되자” 라고 외치고 그래요. 예를 들어서 이산이라는 출판사 있잖아요. 사실 그런 분들이 거의 장인정신의 표본이죠. 부부가 하시는데… 놀라워요. 그분들이 책에 들이는 공이. 우리도 외관상으로도 더 신경 쓰고, 교정도 남들 다섯 번 보면 우리는 열 번 보고싶고 그렇죠.
그런데 우리는 지금 우리 사회에서 요구되어지는 것, 우리가 해야 되는 것,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이 세 가지를 맞추어 본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아까 얘기 한 것처럼 출판이 이데올로기를 상정한 것이라면 이데올로기는 싸움이거든요. 장사하면서 싸움이다 하면 좀 그런데… 우리가 대중출판으로서 입지를 잡아가는데 물량도 중요하죠.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어요.
이일규 대표, 순이, 면식범은 두어 시간의 인터뷰에 녹초가 되어 있었다. 우리는 툭털고 일어나 커피숍을 나왔다. 늦은 밤이었지만 <이후> 식구들의 단골집이라는 홍대앞 골목의 감자탕집에 자리를 잡았다. 소주는 유난히 달고 맛있었고, 이일규 대표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흐뭇했다. 그는 자신의 아내에 대해서, 이후의 식구들에 대해서, 또 <이후>의 신간에 대해서, 다른 출판사의 선배들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나는 그가 삶에 대해서 따뜻한 애정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몸은 피곤해 보였다. 그러나 소주가 한잔 들어가서 술술 나오는 이야기에는 잔잔한 열정이 배어 있었다.
그는 면식범과 91년 5월에 대해서도 비교적 길게 이야기했다. 나는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그가 91년 5월에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91년 5월의 기억은 그에게 외상(트라우마)과 같은 추억인 것 같았다. 10년 전 20대 초반 이일규의 고민… 그것은 오늘날 30대 초반의 이일규 대표, 그리고 <이후>와 어떤 관련이 있는 것일까?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더. <이후>가 한국의 출판시장이라는 제약조건을 넘어서 좌파의 메카가 될만한 출판사로 성장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는데, 우리에게도 튼튼한 왼쪽 날개가 필요한 법이니까.
취재 : 박익순, 면식범
녹취& 정리 : 박익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