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화불량에 걸린 이십대에 만나는 사람 또는 글
누구에게나 이십대는 병이다. 병이라는 말이 너무 크고 무겁다면 소박하게 소화불량쯤으로 해두어도 좋겠다. 쉽게 삼킨 사랑에 체하고 급히 먹은 존재 이유에 배탈이 나는 시기, 몸 안을 훑고 가는 삶이 양호하게 소화되지 못하고 뒤죽박죽인 혼돈으로 발병하는 시기, 그러니까 소화불량에 걸렸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청춘의 몸앓이 시간, 그게 바로 이십대인 것이다. 이러한 이십대에 자가치유법의 일환으로 읽게 되는 글들이 있다. 아니 돌이켜보건대, 그 시절에 읽지 않으면 안되는 글들이 있다. 너무 이르거나 너무 늦으면 그 글들은 아픔을 낫게하는 치료약으로서의 긴요성을 잃는다. 지나치게 미리 맞는 예방주사나 뒤늦게 먹는 영양제쯤으로 몸으로 느끼는 효험이 감퇴되기 때문이다.
이인성의 『낯선 시간 속으로』(1983)도 그 중 하나이다. 실연 혹은 배신이라는 돌이킬 수 없는 상처, 애증으로 맺어진 타자의 급작스런 죽음(여기서는 아버지의 죽음)과의 감당하기 어려운 대면, 그리고 삶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욕망하게 되는 간절한 자기 살해의 시도 ― 이것들이 바로 소설의 바탕에 드리운 사건의 얼룩이다. 그런데 얼핏 듣기에도 만만치 않은 이 세 가지 사안(실연, 부친 사망, 자살 기도)을 그저 사건의 ‘얼룩’이라고만 이름짓는 까닭은 작품을 이끌어가는 진정한 동인(動因)이 이러한 사건의 배치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곳간에서 곶감만 골라먹듯 소설에서 줄거리만을 내먹으려는 독자를 우롱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사건은 극화의 방식을 피해 자의식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서술 뒤로 숨고 만다. 숨어 있지만, 숨어 있는 채로 자기를 바라보는 의식을 더욱 집요하게 밀고 나가게 한다는 점에서, 그것은 의식의 바탕에 지워지지 않게 물든 얼룩인 것이다. 그러므로 정면으로 부각되는 것은, 그리고 아픈 이십대를 무엇보다 사로잡는 것은 가히 “정신의 자기 고문(이성복)”이라 할 만한 치열한 ‘자의식의 밀고감‘이다. 그것은 주어진 사태 앞에서 생각하고, 생각하는 자신을 다시 생각하고, 생각하는 자신을 생각하는 또다른 자신을 거듭 생각하는 무한 소급의 사유방식으로써 존재의 실감을 추궁하고 확인하는 이인성만의 독특한 글쓰기 방식으로 자리잡고 있다.
고문에 가까우리 만큼 질기고 악착같은 존재 탐문의 성격이 그의 적은 작품 수를 설명해 준다. 등단 후 이십 년이 넘는 세월 동안, 그가 출간한 소설집은 단지 네 권. 솔 출판사의 ’21세기 작가 총서 기획‘ 덕에 비평가들이 가려 뽑은 중단편들이 (재)수록된 소설집 『마지막 연애의 상상』(1992)과 산문집 『식물성의 저항』(2000)을 논외로 하면,『한없이 낮은 숨결』(1989),『미쳐버리고 싶은 미쳐지지 않는』(1995),『강어귀에 섬 하나』(1999)가 그 나머지 소설집들이다. 이러한 작품들 속을 일관되게 흐르며 지나가는 것은, 나–너–그’라는 문법적 인칭의 경계를 넘나들어 자기를 분열시키고, 이렇게 분열된 자아를 다시 소설의 몸으로 모두어 담는 자의식일 터인데, 그렇다면, 이인성의 그 (분열증적으로) 발산하면서도 (글쓰기를 통해) 수렴하는 자의식은 대체 어떤 삶을 살아온 것일까? 오늘 우리는 소설가 이인성의 살아온 흔적, 살아가는 자취를 만나러 간다.
1. 이인성의 베케트 (S. Beckett)
지난 3월, 안개라기엔 너무 무겁고 이슬비라기엔 아직 가벼운 는개를 맞으며 한성대 입구의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소설가는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태. 녹음기의 작동 상태를 살피고 질문할 내용을 점검해본다. 무슨 질문부터 시작해야 편안한 인터뷰가 될는지 내심 걱정이다. “어, 저기 오신다“라는, 선배의 말에 다들 자리에서 일어나 소설가를 맞이한다. 자리를 잡고 술을 한 순배 돌리고, 자, 그럼 시작해볼까?
퍼> 시를 매우 좋아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홈페이지(www.leeinseong.pe.kr)에‘골방에서 시읽기‘라는 타이틀로 단평도 여러 번 올리셨고, 『미쳐버리고 싶은 미쳐지지 않는』의 경우는 주인공이 시인이기도 할 뿐 아니라, 수십 편의 시를 각 장의 제사(題詞)로 쓰고 있기도 하니까요. 연극에 대한 애정도 남다르신 것으로 보입니다. 학위 논문을 모두 베케트나 몰리에르 같은 극작가로 선택하신 것만 봐도 그렇고. 그렇다면, 골방에서는 시를 읽고 학교에서는 연극을 논하면서 글쓰기로는 소설만을 고집하시는데, 무슨 특별한 이유라도 있으신 것인지요? 소설가인 선생님에게 시, 소설, 연극은 각각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 것인지 궁금하네요.
우문(愚問)이다. 우문인지 알면서도 질문을 던진다. 이런 게 어쩌면 작가에게 건네는 질문의 A,B,C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다른 한편으로는 이인성을 모르는 독자를 위해 그의 윤곽을 그려본다는 취지에서. 사실인즉, 젊은 날 습작시 한 편 써보지 않고 작가가 된 이는 드물 것인데, 이 소설가도 마찬가지이다. 그 물증을 잡으려면 시에 소설을 봉납한 것으로 보이는 『미쳐버리고 싶은…』(내가 너무나 좋아하는 소설!)을 한 번 보자. 이 소설 마지막에는 인용된 시들의 작가와 시 제목을 찾아주는 색인이 있는데 그 색인을 살피면, 어지간한 시 애호가들에게는 낯익은 시인의 이름들 사이로 교묘히 낯선 이름이, 숨은 그림처럼 박혀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그 낯선 이름이 이 작품의 주인공 이름과 동일하다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 시가 바로 오늘 우리가 만나고 있는 소설가의 시이다. 그런가 하면, 젊은 날에 쓴 희곡 작품도 찾아볼 수 있다. 「잃어버린 사건―1974년의 악몽」이라는 제목의 희곡은 중단편 모음집『마지막 연애의 상상』의 마지막에 수록되어 있다.
이> 글쎄, 뭐, 시는 감각을 유지시켜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고, 문학의 바탕에 깔리는 감각의 결 같은 거. 연극은 베케트 땜에 원체 좋아했고, 학교 다닐 때 실제로 연극을 하기도 했었고. 소설은 뭔가를 한 번 끝까지 밀고 나가게 하는 힘 같은 게 있는 것 같아서. 소설 이론은 안 읽게 되더라구. 왠지 읽으면 안될 것 같았어. 인물이 어떻구, 시점이 어떻구, 이런 거에 맞추게 될 것 같아서…… 어이, 근데, 이렇게 계속 딱딱하게 할래?
시원시원한 너털웃음과 함께 던지는 이 말 한마디에 다같이 한바탕 웃음을 터뜨린다. 그 순간, 어색하던 분위기가 풀어졌다. 50kg 안팎의 살벌하게 마른 체구답지 않게, 그는 마른 사람 특유의 신경질적인 구석이 조금도 없다. 조금도 없을 뿐만 아니라 술자리에서의 그는 자청해서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북돋우는 ‘분위기 메이커‘로서의 자질도 갖추고 있다. 격식 따지기를 워낙 싫어하는 성품 탓에 그는 오늘의 ‘말섞음(inter-view)’ 자리도 편안하게 풀어주고 있는 것이다.
퍼> 베케트는 언제부터 좋아하시게 된 거예요?
이> 대학 다닐 때. 그 땐 아르바이트비를 받으면 물론 대개는 다 술로 풀었지만, 책도 꼭 사보았거든. 당시 종로 거리에 외국어 서적만 전문으로 팔던 책방이 있었어. 대개는 영어책만 가져다 놓던 곳인데, 한번은 이렇게 보니까, 책을 쌓아놓은 맨 아래 칸에 불어책이 있더라구. 제목을 보니 다 베케트거야. 베케트 작품이 거의 다 있었던 것 같애. 그 때 다 사서 읽었지. 베케트가 아일랜드 사람인데, 아일랜드라는 나라도 참 복잡하고 어려운 나라야. 그래서 그런지, 아일랜드를 보면 큰 작가들이 많아. 굉장히 전위적이고. 근데, 또 어김없이 그 작가들은 다 망명자들이고.
자기 생전에 자기 이름으로 저널이 나온 게, 내가 본 한에서는 베케트가 처음인 것 같애. 내가 알기로는 베케트 저널이라는 게 일 년에 한 권씩 나오는 걸로 두 개 정도가 나왔는데 다 살아 있을 때 나온 거거든. 그만한 역량이 있었던 작가지. 읽어 보면 역시 대단한 작가라는 생각이 들고. 이오네스코랑 비교하면, 이오네스코는 몇 번 읽으면 바닥이 보이는 것 같은데, 베케트는 아니거든. 읽어도 읽어도 바닥이 잘 안 보여. 하여간 깊어.
퍼> 베케트가 그렇게 좋은가요?
이> 글쎄…… 베케트 묘지를 보면 그 사람 성격이 드러나는 것 같애. 가령 오스카 와일드 묘지를 보면, 그 사람 묘지는 페르라셰즈에 있는데, 너무나 크고 화려해. 조각같은 걸로 너무 근사하게 치장해놓고. 약간 데카당스한 테가 있는 사람이니까 거꾸고 그랬을지도 모르겠지만. 그에 반해 베케트 묘는 너무나 담백해. 몽파르나스에 묻혔는데, 여기 술상 두 개만한 평면 대리석이 바닥에 깔려 있고, 먼저 죽은 부인 이름이 위에 있고 몇 년에서 몇 년, 그 아래에 ‘사뮈엘 베케트 1906년에서 1989년‘ 딱 그렇게만 써 있는 거야. 아마 자기 후견인이었던 절친한 친구한테 그렇게만 해달라고 부탁해놓고 죽었을 거라고 하더군. 묘지에다 절대 치장하지 마라 뭐 그렇게…
“내 생애에서 어떤 결단을 내려야만 했을 무렵, 그런 상상적 언어의 삶을 선택하기 두려워하던 나의 등을 떠밀어준 두 권의 책은 제임스 조이스의 『젊은 예술가의 초상』과 사뮈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였다. (……) 『고도를 기다리며』를 나는 책으로가 아니라 연극으로 먼저 보았는데, 그 도저한 허구의 세계가 육체적 실감으로 다가오는 데 압도되어, 그의 극작품은 거의 모든 것을 구해 읽었었다. 그 속에서, 허구는 그 어떤 사실보다도 더 넓고 깊은 진실의 ‘감(感)’과 ‘기(氣)’로 울려왔다. 아니, 도대체 무엇이 허구이고 무엇이 사실인지를 따지는 헛된 경계를 지우며 존재 그 자체의 심연으로 나를 이끌어갔다. 거기서 언어는 끝없이 텅 비면서, 동시에 끝없이 새롭게 채워지고 있었다. 나로 하여금 언어란 무엇인가, 글쓰기란 무엇인가라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할 수밖에 없게 만든 ‘사람’이 또한 그였던 것이다.” ― 『식물성의 저항』, p. 125에서.
퍼> 요즘도 베케트를 자주 읽으시나요?
이> 요새는 베케트는 잘 안 읽지. 논문을 하나 쓸려고 베케트를 계속 공부하는 거고. 베케트 연구 방향은 초기로 가더라고. 베케트 연구가 너무 많이 되어 있어서 우려낼 게 없으니까 이제는 전기로 가는 거지. 20대에 쓴 시들이나 ‘조이스(Joyce)론‘ 같은 젊은 시절 원고를 복원하고. 순전히 연구의 빈곤 때문에 오는 현상일거야. 아니, 어쩌면 연구의 풍요인데, 연구된 게 너무나 많으니까 거꾸로 젊었을 때 뭘 했나 거기에 작품을 이해하는 뿌리가 없을까 하고 거슬러 올라가는 거지. 요샌 실증적인 연구가 많아졌어. 그전에는 구조적인 연구, 이미지 연구, 정신분석적 연구 등등이 많았는데. 하여튼 묘한 현상들 중 하나지. 프랑스 비평 자체가 요새 침체니까. 요새 이슈를 잘 못찾으니까. 들뢰즈가 쓴 베케트론 이후에는 모던한 방식이든 포스트모던한 방식이든 새로운 방법론을 적용해서 베케트를 이해하려는 노력들이 잘 안 보이더라구.
퍼> 들뢰즈 얘기가 나와서 드리는 말씀인데, 철학책은 많이 읽으시는지?
이> 읽고 싶지만 게을러서 많이 못 읽어. 시집은 사실 게으른 사람들이 읽는 거거든. (웃음) 한 페이지만 읽어도 읽은 거 같은 기분이 들잖아. 다른 책들은 뭔가 생각의 매듭이 지어질 때까지 읽어야 되는 거 아냐.
퍼> 선생님 소설이 상당히 철학적인 듯한데?
이> 없는 거 가지고 폼잡는 거지. 없으니까 폼만 잡는 거지. 허허…… 그것도 아마 시 읽는 거 연장선 위에 있을지도 모르지. 시라는 게 산문으로 치면 단장하고 비슷한 거잖아. 프라그망(fragment)되어 있으니까. 글 쓸 때 그런 것에 대한 생각이 머리 속에 들어있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 글쎄, 요샌 니체를 다시 한 번 읽어볼까 하는 생각은 있어. 물론 요즘엔 니체 유행이 지나간 듯 싶지만. 니체를 한 번 제대로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은 들더라구.
퍼> 소설이 아닌 다른 것에 유혹을 느끼신 적은 없으세요? 가령, 음악을 아주 많이 좋아하신다는데?
이> 음악은 듣는 거만 좋아해. 사실 되게 음악하고 싶었었거든, 중고등학교때. 근데, 우리 아버지가 반대하셨지, 어머니도 마찬가지지만, 하여간 우리 집안이 청교도 집안이거든. 평안도 정주 출신의. 할아버지는 아주 지독한 무교주의자이셨고. 내가 중학교 1학년 때 기타를 치고 싶었는데, 끝내 기타를 안 사준 사람이야, 우리 아버지가. 그래서 내가 몰래 아르바이트 비슷한 걸 했거든. 중2,3땐가? 무슨 아르바이트냐면, 그때 영어공부하던 잡지가 있어. 잡지라는 게 그때는 굉장히 조야해. 그걸 팔며는 한 권에 얼마씩 마진을 주는 거야. 그래 가지고 그거를 친구들한테 쉽게 “사!” 그래가지고 돈을 좀 모아서, 몰래 기타학원에 등록을 했어. 그래서 한 달을 했는데, 두 번째 달 등록할 돈을 가지고 가다가 골목에서 깡패들을 만나 다 뺏긴 거야. 서너 명이 딱 둘러싸더니 주머니에서 싹 가져가 버리더라고. 그래서 그 때 포기했지. 허허.
퍼> 학창시절 포크를 주머니에 넣어가지고 다니셨다던데, 그건 바로 그 깡패들 때문이었나요?
이> 학교 다닐 때 하여간 이상하게 깡패친구들이랑 친했어. 깡패노릇하는 친구들이 나를 꽤 좋아했어. 나는 깡패도 아니었지만 공부도 안 했거든. 그 때 돈 뺏은 애들은 내가 얼굴을 모르는 별도의 깡패들이야. 그래서 그 깡패들한테 돈을 뺏기고 나니까 정말 화가 나더라구. 화가 났을 뿐 아니라, 내가 내 몸을 보호해야겠구나라는 생각도 들고. 그래서 그 다음부터는 깡패처럼 호크도 풀고 주머니에다 포크도 가지고 다니고 그랬었지. 허허……
이 말에 자리를 함께 한 베케트 연구자가 이 한 차례 대화를 마무리하듯 말했다. 이인성과 베케트 사이에 공통점이 많다고 말이다. 지독한 청교도 집안에서 자란 것도 그렇고, 젊은 날 불한당들에게 당한 경험이 남긴 어떤 흔적도 그렇고, ‘위스키에의 순교자’라고 불리는 베케트와 술 없이는 만날 수 없는 이 작가의 술에 대한 애정도 그렇고, 그리고 무엇보다 바닥이 보이지 않는 글의 깊이에서도 그렇다고……
2. 그만의 과거 혹은 내력
–장기 지속의 중세
소설가 이인성의 지난 날이 궁금한 독자라면, 『마지막 연애의 상상』 첫머리에 실린 「어쩌면 ‘그‘일 ‘나‘의 간추린 40년」을 읽으시라. 이 글은 위에서 말한 바 있는 출판사의 기획 때문에 세상에 나오게 된 것인데(이 총서 시리즈에서는 책 앞머리에 작가의 자전적 에세이를 반드시 수록하게 되어 있다), ‘원님 덕에 나발 분다‘고 그 덕분에 독자들은 ‘이인성이 말하는 이인성‘이라는 일종의 응축된 자서전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이인성 홈페이지에 실린 「어쩌면 ‘그‘일 ‘나‘의 간추린 47년」은 (이 종이책이 출간되었던) 1992년 이후의 상황까지를 아우르긴 하지만, 종이책의 내용을 한번 더 간추린 것이라 왠지 섭섭하다. 어쨌든 이 두 가지 자전적 서술의 ‘간추림‘으로는 여전히 아쉽다고 느끼는 독자가 있다면, 이리들 모이시라. 이제부터 우리가 들어가는 인터뷰는 그 간추림에 살을 붙이는 이야기가 될 터이므로.
퍼> 오산학교를 세우신 독립운동가 남강 이승훈 선생의 후손이라고 들었습니다. 정확히 어떤 관계이신지?
이> 굉장히 복잡해. 우리 친할아버지의 작은할아버지야. 그 연배는 그렇게 차이가 안 나지만 촌수는 그렇게 돼. 그러니까 따져보면 종증조부쯤이 되시나? (갸우뚱)
퍼> 당시 이승훈 선생께서는 평안도 정주에서 유기상을 하셨다던데요?
이> 그건 잘 모르겠고. 중인계급이거든. 중인계급이니까 대개 상업을 했을 거고. 우리 할아버지는 과수원을 하셨어. 농업에 종사하신 거지. 근데, 이승훈 선생은 훨씬 상업에 가까웠던 거 같애. (잠시 뜸을 들이며) 이승훈 선생이 잘못한 게 딱 한 가지 있지, 중인인데 양반을 샀다는 거. 족보에 의하면, 나는 여주 이씨라고 되어 있는데, 실제로는 여주 이씨가 아냐. 이승훈 선생이 족보를 사면서 여주 이씨가 된거지.
이게 일종의 숨어있는 콤플렉스같은 건데, 불란서도 마찬가지야. 불란서 부르주아들이 우리식으로 보면 중인이지 뭐. 부르주아계급들이 전부 귀족을 샀다는 거 아냐? 앞에 ‘드(de)’자 붙이기 위해서. 오노레 발작이 오노레 ‘드‘ 발작이라고 우기는 걸 봐. 마찬가지로 우리나라도 조선후기 이후부터 신분체계가 무너지고 돈이 자꾸 모든 걸 좌우하니까 족보를 사고팔고 하는게 굉장히 심했던 모양이라. 상당수들이 족보를 샀고 양반 귀족이랑 결혼하고 그래서 섞이고…… 그런 이상한 욕망들이 있는 거지. 거꾸로 얘기하면 그만큼 설움이 있다는 거지. 그 서러움 때문에 이것만은 마련해야 되겠다, 이게 자손 위한 길이다, 이리 된 거겠지. 내 친가니까 그랬다는 걸 아는데, 이승훈 선생 같은 사람마저도 그랬다는 게, 참…
퍼> 그러게 말입니다. 이승훈 선생님께서 족보를 사셨다니…… 좀 의왼데요?
이> 우리 아버님은 양반이 아니었다는 걸 속으로 너무나 자랑스럽게 생각을 하는데…… 근데, 그 평안도라는 데가 기독교 같은 게 제일 빨리 들어온 곳 아냐. 한편으로는 개화의식이 강했던 동네인데 한편으로 개화의식이 강하면서도 반대편에는 족보를 사고파는 풍습이 여전히 남아있다는 게 그래서 더 이상하다니까. 불란서 역사 이야기 할 때, ‘장기지속의 역사‘라는 이야기를 하는데, 이게 맞구나라는 생각이 드는 게 20세기 다 끝난 시점에 살면서도 여전히 유교적인 게 남아있다는 점이야. 원하든 원하지 않든 유교적인 사회는 100년 전에 단절이 됐는데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남아있는 거 아냐. 제사지낼 거 다 지내고 명절만 되면 천만 명이 이동하는 거고. 그게 ‘장기지속의 중세‘라 쉽게 얘기하면.
우리 할아버지도 지독한 계몽주의자셨거든. 최근 20년 전만 해도 오지 비슷하게 남아있던 충청도 홍성이라는 곳에 ‘풀무학원‘이라고 있어. 농민학교인데, 처음에는 비공식 학원같은 거였어, 요샌 정식인가를 받았다고 그러대. 이북에서 이쪽으로 내려와가지고 할아버지가 처음 하신 일이 그 학교 만든 거거든.
퍼> 심훈의 『상록수』같은 분위기를 연상하면 되나요?
이> 바로 그거야. 그러니까 죽어나는 사람은 우리 할머니라고. 할아버지는 홍성에 내려가셔서 학교 만들어서 민족운동이기도 하고 계몽운동이기도 한 참 멋있는 일을 하셨는데, 그럼 누가 돈을 벌어? 그래서 할머니가 동대문 시장에 나가서 가게를 하셨는데, 그 가게로 7남매―이북에 남아있는 분까지 치면 8남맨데―를 다 교육시키셨지. 허허……
퍼> 집안 분들이 다들 공부하시는 분들이라고 들었는데요?
이> 할아버지께서는 ‘국학을 지켜야 되고 과학을 해야된다, 이래야 나라가 선다‘ 뭐 이렇게 생각을 하셨던 분이라서 우리 아버지는 국사학, 둘째는 화학, 셋째 이기문 선생은 국어학, 넷째는 공학 뭐, 이런 식으로 순서대로 번갈아 가면서 시키신 거야. 참 희한해.
퍼> 그래도 다들 다른 길로 가지 않고 아버님의 뜻을 잘 따르셨네요?
이> 따라서 해야지. 그때는 안하면…… 허허. 그러니까 한쪽에서는 굉장히 신학문적인 거 같지만 다른 한 쪽에서 보면 가부장적인 게 있는 거야. 할아버지께서 시키니까, 하라고 하면 하는 거지. 시키는 건 가부장적이고 계몽의식은 근대적이고 뭐, 아무튼 이런 것들이 마구 섞여있는 시대였던 거지. 그게 이상해. 덕분에 할머니는 정말 고생하시고. 내가 국민학교 때 할머니가 하는 동대문시장 가게에 가본 적이 있어. 옛날 청계천변에 바라크 지어놓고 옷감 팔던 그 기억이 있다고.
스스로 계몽주의자임에도 집에서는 여전히 가부장적 권위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 다름 아닌, ‘장기 지속의 중세‘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퍼> 그럼 어린 시절 경제적인 형편은 아무래도?
이> 유복하지는 않았지. 할아버지는 거의 집안일을 돌보지 않으셨고, 할머니가 하던 가게는 또 뭣 때문인지 그 자리에서 쫓겨나기도 하고 그랬어. 막내 삼촌은 나랑 8살밖에 차이가 안 나는데, 형제분들이 다들 공부를 하시니 학비를 대주면서 뒷바라지도 해야 하고, 그래서 그 시절엔 우리 어머니도 양재학원을 다닌 후 집 대문에 ‘옷‘ 간판을 내걸고 일을 하셨지.
내성적 인물의 내면 세계로 파고드는 줄거리, 고도의 사유 실험을 거치는 소설 형식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은 현실의 무게, 진짜 사람들이 복작대며 엉키는 생활의 무게를 놓치지 않고 있는데, 그것은 가령 닳고 해져 구멍뚫린 속옷으로 가난을 형상화할 줄 아는 그의 웅숭깊은 표현력에서 온다. 이제 보니 “시장의 구정물이 흘러드는 개천의 낮은 돌벽 위로 바투게 선 판잣집(「그는 왜 그럴 수밖에 없었을까」)”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그의 표현대로라면, 그의 ‘언어의 눈‘)은 “윗옷은 으레 해져 구멍이 숭숭하고, 아랫도리라면 닳아 바꿔 낀 까만 고무줄을 이어 묶은 조잡한 솜씨가 그대로 드러나 궁색하기 이를 데 없어 보이는(「유리창을 떠도는 벌 한 마리」” 가난을 겪었던 경험과 무관하지는 않은가 보다.
퍼> 집안에서는 문학에 뜻을 두신 선생님에게 어떤 반응을 보이셨는지?
이> 아버지께서도 문학적 취향은 있으셨던 모양이지만, 내가 문학하는 걸 굉장히 싫어하셨어. 아마도 내가 중3이나 고1때부터 문학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애. 그래서 문예반 활동도 열심히 하고 그랬는데, 아버지는 그걸 굉장히 싫어하고 못 하게 하려고 그러셨지. 작은 아버지께서 한 번은 아버지랑 말씀을 나누시는데, 물론 내가 듣는 줄 모르시고 하신 말씀이실 테지만, “젊었을 때 좀 저러다 말겠지“라고 하시는 거야. 그것 때문에 작은 아버지를 20년 넘게 미워한 거 있지? 허허. 물론 그 때 말씀을 나누시던 컨텍스트하고 내가 당시 생각하던 컨텍스트가 달라서 그랬겠지만 말야. 또 한편으로 보면 일제시대의 퇴폐적인 문학 경향 때문에, 문학하는 사람을 그렇게 보고 배제하는 측면도 있었을 테고. 그 사이에서 나는 ‘이게 반항이다‘하고 문학을 했던 듯도 싶어. 한번은 중3때, 교지에 글이 하나 뽑혔는데, 거기에 울 엄마 죽었으면 좋겠다 뭐 이렇게 쓴거야. 그걸 우리 어머니가 읽으시고 1주일을 앓아 누우신 적도 있지. 허허.
이쯤에서 여러 가지가 묻고 싶어진다. 소설 속의 그와 실제 삶에서의 그가 얼마나 비슷하며 얼마나 차이 나는지에 대해. 사실 그는 “그동안 줄곧 그래왔고 앞으로도 대개는 그럴 것이듯이, 내 소설 속에 나오는 다른 이야기꾼이 되기를 애써 피하(「당신에 대해서」,『한없이 낮은 숨결』)”기 때문에, 독자인 우리는 소설 속 인물의 모습을 작가 자신의 모습과 겹쳐 읽지 않을 수가 없다. 그래서 자전적 요소가 특히 많이 스며든『낯선 시간 속으로』를 처음 읽었을 때, 독자인 나는 소설에 나오는 대로 자식과 불화하던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신 걸로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나중에는 그게 소설적 거짓말이라는 걸 알게 되었지만 말이다.「무덤가 열일곱살―철들 무렵(2)」(『강 어귀에 섬 하나』)에서도 ‘아버지 무덤가에서의 성찰‘이라는 테마가 반복되는 걸 보면, 그에게는 아버지라는 존재가 화두처럼 자리잡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버지를 미워하는 아들이라는 설정이 정신분석적으로는 너무나 틀에 박힌 설명이 나오겠지만, 그런 것 말고, 그의 개인사적 맥락에서 본다면 어떤 전후사정이 있는 것일까?
퍼> 젊은 날, 아버지를 많이 미워하셨었는지요?
이> 젊었을 때는 누구나 다 그런 건데, 나도 그랬었겠지. 내가 문학을 하려는 이유 중의 하나가 아버지에 있었다는 생각도 들어. 아버지는 너무나 단정하고 너무나 논리적인 분이시거든. 논리적으로 차근차근 따져나가려는 사람. 어느 순간 ‘나 그거 다 싫어, 논리고 뭐고 내가 싫은데……’ 하는 그런 느낌, 그게 상당 부분 나를 문학쪽으로 데려갔던 거 같애. 그게 중학교 때부터 대학교 2,3학년 때까지 느낌들이야. 한번은 고등학교 때 데모를 했는데, 그 때는 고등학생들도 시국 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때였거든, 하여튼 그랬는데, 아버지가 그 얘기를 전해듣고는 와서 그러시는 거야. “세상에 불의가 가득차서 그러는 모양인데 그렇다면 너 왜, 불의 하나하나에는 일일이 맞서지 않느냐, 세상을 바꾸는 일은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다.” 뭐, 이런 말씀을 하셨지. 이게 고2때 들은 얘기야. 당시에 내겐 너무나 충격적이었어. 그래서 내가 더 문학을 하게 된 거 같애.
퍼> 소설 속 인물의 모습과 관련해서 또 하나 궁금한 것은 선생님의 형제 관계예요. 실제로는 동생분이 한 분 있으신 걸로 알고 있는데, 소설 속 인물들은 언제나 고립된 외아들로 나타나잖아요. 물론 자의식이 강조되는 소설이라 그럴 것 같기도 하지만…..
이> 동생이나 나나 각자 살아서 그랬나봐. 어렸을 땐 둘이 어울려 잘 놀았고, 지금도 서로 생각은 많이 해주는데, 그게 한 번 만나서 뭐 해보자 이렇게는 잘 안되더라고. 우리 아버지와의 관계도 마찬가지고. 밖에서 친구들이랑은 잘 어울리는데 집안에서는 그게 거의 없어. 거기다가 아버님은 술 안하시지, 동생도 간염 때문에 술 안 하지 그러니까 나로서는 만날 이유가 거의 없지. 껄껄껄. 오히려 술고래인 사촌 동생하고는 가끔 만나. “그래 오늘은 한 번 밤새 마셔보자“하면서.
결국 이렇게 화제는 술로 건너간다. ‘술을 알지 못하는 자 문학을 알지 못한다‘거나 ‘술 없이는 문학을 논하지 말라‘거나 하는 게, 아는 사람은 다 아는 문학판의 금언인데, 이러한 금언이 있기까지의 술–문학 선생들에 대한 전설을 듣고 있자니, 이인성의 다음과 같은 술–문학론(?)이 떠오른다 : “그러므로 문학을 그저 ‘의사소통‘이라고만 말하는 것은 부족하다. 문학은 비정형의 형태로서의 그 무엇, 몸으로 직접 감각되지 않는데도 몸으로 먼저 나누려는 그 무엇인 것이다. 그렇듯 문학은 우리의 몸을 감싸며 동시에 우리의 몸 안을 훑고자 한다. 그럼으로써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의 발길을 아지 못할 그 어디엔가로 향하게 한다. 그 걸음을 옮기다가 문득 우리는 우리 몸의 구체적 움직임을 머리로 의식하게 되겠지만, 그래서 우리의 움직임을 명명하는 어떤 사유의 언어를 우리 곁의 누구에겐가 내뱉게 되겠지만, 그때쯤이면 문학은 벌써 우리가 걷는 길목의 저만치 주막에서 언어–술의 향기를 익히고 있을 것이다. 당신들의 의식에 다른 취기를 주기 위해서.”
―『식물성의 저항』p. 15에서 –
3. 문학은 섬세해 지자고 하는거야
강물 줄기가 어디에서 시작하든지 간에 결국엔 바다로 흘러가고야 말듯이, ‘글쓰는 이‘의 이야기는 어떤 것으로 말문을 열든지 간에 결국 ‘문학이 대체 무엇이며 무엇이어야 하는가, 문학은 도대체 세상에서 무슨 소용이 되는가‘와 같은 문학관 및 세계관에 대한 문제로 흘러가기 마련인가 보다. 하물며 글쓰기란 대체 무엇인가에 대한 글쓰기, 글을 쓰는 이와 글을 읽는 이의 정체를 추궁하는 글쓰기, 한마디로 메타소설적인 소설 쓰기를 감행하는 이에게야 오죽할 것인가. 그래서인지 인터뷰어들이 질문을 던지기도 전에, 인터뷰이의 이야기가 먼저 절로 그 속으로 흘러 들어간다. 자, 그럼 이제 이인성이 들려주는 문학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보자.
이> 요새는 학생들이, 다른 것도 아니고 문학을 공부하겠다고 수업을 들으면서도 학점 때문에 마음에 안 든다고 찾아들 와. 물론 학생들도 마음이 괴로워 온 거겠지. 그러면, 문학은 왜 하는데? 마음을 너그럽게 가지자고 하는 건데, 그런 학생들을 보면 아이고, 내가 수업을 잘못한 거지 싶고 괴로워. (침묵) 우리 연배 때는 문학한다고 하면 문학한다는 거 자체만 좋아했는데, 60년대 419세대인 김현 선생님 세대는 특히 더 그랬고, 그랬는데, 요샌 자꾸 따져야 되니까, 문학 내적인 게 아닌 걸 자꾸 따지니까, 그게 실리적인 거하고 자꾸 결부돼. 가령 뭐 학점하고 결부한다거나, 현실적인 처세하고 결부한다거나…… 그런 것들이 문학을 너무 단순하게 재단하게 해.
가령, 서정주에 대해서 비판하되 그 비판이 서정주 문학은 없다라는 식으로 나가면 안 되는 거라구. 그 논리는 거꾸로 말하면 위대한 인격만이 위대한 문학을 만든다는 거거든. 문학은 다른 모든 곳에서 파산한 자들이 마지막으로 모여드는 데 아냐? 보들레르가 그 예지. 이런 생각은 맑시스트들도 가졌던 생각일 거야. 가령 발작(Balzac)에 대한 평가를 생각해봐. 왕당파 보수주의자에, 카톨릭 신도에, 빚 때문에 도망다니는 파산자에, 여자 관계 복잡한 발작이지만, 엥겔스나 루카치가 말하길 “발작은 위대한 리얼리스트다“라고 하잖아. 거기에 덧붙이는 표현이 뭐야. “자기 의사에 반해서” 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이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작은 위대한 문학자였다는 거라구.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표현 속에는 사람의 현실적인 삶과 문학적인 표현 사이에는 뭔가 복잡한 회로가 있다는 거 아니겠어. 그게 사람을 살게 해주는 것 중 하나라고. 문학은 섬세해지자고 하는 거야. 요새 너무나 화가 나는 건, 단순해지는 거, 단순하게 만드는 거야. 다른 모든 세상이 단순해져도 문학은 복잡해져야 하는 거야. 다른 세상이 단순해질수록 더 복잡해져야 돼.
듣고 보니, 이러한 그의 생각은 ‘어쩌다 소설가가 되었는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한 글(「정열 가다듬기―습작시절」,『식물성의 저항』)에서 밝히는 다음과 같은 고백의 연장선 위에 있는 것이다. “그저 이렇게 말하는 게 낫겠다. 어쩌다 보니까 그냥 그렇게 되었다고. 어쩌다 보니까 그냥 내가 할 일이라곤 문학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써놓고 나자, 문득 로맹가리 소설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그에 의하면, 다른 모든 곳에서 실패한 자들이 마지막으로 모여드는 데가 문학이다. 그것이 문학의 사랑법일까, 정말 문학은 각양각색의 인간들을 모두 따뜻하게 품어들이는 큰 힘을 지닌 듯싶다. 나 역시 그 품 덕분에 삶의 힘, 정신의 힘을 구했다.”
이> 나 요새 참 걱정스러운 것 중 하나, 그니까 ‘문학적으로‘ 걱정스러운 것 중 하나가 가령 무슨 요새 얘기하는 판타지니 하는 거야. 재미없다는 게 아니야. 의미가 없다는 것도 아니고. 최근에 ‘해리포터‘를 봤는데, 가령 ‘해리포터‘같은 영화를 보면, 그게 주는 교훈이라든가 가르침이 있어. 영상에서 보면 그렇지. 현실의 거리에서 어디를 쑥 들어가니까 마술의 거리가 나온다던가, 어떤 현실의 역인데 갔더니, 기둥으로 들어가니까 신화의 세계로 들어간다 거나. 이거는 우리의 현실의 바로 그 뒷면에 신화적인 구조가 있다는 얘기거든. 그 얘기는 맞지. 신화적인 구조는 정말 인류가 생긴 이래로 있어온 어떤 것 중 하나니까. 그런 걸 깨우쳐준다는 의미에서는 그게 한 역할을 했겠지. 그러나 그 역할은 너무 작고, 그 다음에 나머지 얘기는 전부 볼거리에다가 아주 도식적인 신화구조를 이렇게 저렇게 섞어서 만드는 거라고.
근데 난 요새 ‘신화붐‘이라는 게 참 이상하다니까. 신화라는 게 대단한 라고 얘기들 하지만, 실제로 신화라는 게 대단한 거지만, 신화는 원래 원형이야. 원형이란 건 거의 본능에 가깝다는 얘기야. 본능의 어떤 원형들을 보여주는 거라고. 근데 인류의 역사라는 건 그 본능에서부터 다르게 가자고 살아온 것일 거야. 인류의 역사라는 거는 그런 원형질적인 세계에서 벗어나는 다른 세계를 만들자는 거, 그게 유토피아지, 유토피아로 가자는 거 아냐? 그니까 본성의 세계를 떠나서 좀더 모든 사람이 행복한 세계를 어떻게 만들어볼 수 있을까 하고 간 게 인류의 문화가 나온 길이라고. 어떻게 보자면. 근데 이런 흐름을 너무나 단숨에 다시 원점으로 돌리려고 하는 것 같다는 불길한 느낌이 드는 거야. 그리고 그 뒤에는 자본주의가 작동하고 있는거야. 왜냐면 자본주의는 본성에 호소해서 많이 팔아먹자는 거거든.
일찍이 “‘나는 왜 혁명가가 못 되는가‘라는 자학적 질문 대신, ‘나는 소설가로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생산적 질문에 작품으로 답해나가야 한다고 스스로를 뒤집어 설득(「당신에 대해서」)”해온 그는, 지금 선악의 이분법 구도로 단순해지는 세상에 맞서, 소설은 그 이분법을 깨뜨려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즉, 문학은 삶을 이분법으로 단순화시키는 논리에 놀아나면 안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이분법의 논리 뒤에는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불길한 세력이 있기 때문에.
이> 가령, 지금 당장 부시가 ‘악의 축‘이라고 얘기하는데, 가령 해리포터만 봐도 그렇잖아, 결국엔 원형으로 들어가면 두 가지만 남는 거야. 좋으냐 나쁘냐, 예쁘냐 미우냐 이렇게 두 가지로 다 축소되는 거야. ‘반지의 제왕‘ 예고편 나온 걸 보면 절대악의 반지인지, 절대선의 반지인지 그런 게 나오던데, 이 세상에 절대악이란 게 어딨어? 그건 말 자체가 모순이야. 왜냐면 악이라는 말은 선이라는 말이 있으니까 있는 거고, 선이라는 말은 악이라는 말이 있으니까 있는 거거든. 그러니까 둘이 함께 있을 수밖에 없는 거라구. 아버지라는 말이 혼자 있을 수가 있어. 어머니라는 말이 있으니까 같이 있는 거지. 자식이라는 말이 있으니까 어버이라는 말이 있는 거고. 이 부분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함부로들 전부 말하는 거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거지. 사실은, 알면서도 이용하는 거겠지. 그니까 그거는 완전히 퇴보야.
요즘 판타지 문학이나 예술은 책을 몇 개 보니까 그렇더라. 환상문학 얘기할 때 아주 진지한 이론가들이 이야기하는 건데, 환상문학의 굉장히 중요한 축 가운데다가 카프카를 놓더라구. 그거야 맞는 말이지. 카프카가 정말 환상적이지. 근데 의미가 있지. 의미가 있는 환상문학이지. 그런 걸 전범으로 생각할 때, 요즘의 환상문학이 정말 제대로 가는 환상문학이냐 하는 거는 의심의 여지가 너무나 많은 거야. 그게 해리포터의 이름으로든 어떤 다른 이름으로든 나는 아직 신뢰를 못하겠어. 영화 해리포터는 순 동화적인 상상력 아냐? 물론 세상이 너무나 지저분해지면 순진한 거가 전범이 되니까 동화적 상상력이 중요하지. 그러나 동화적 상상력 가지고 세상이 만들어져? 아니잖아. 그거는 바탕에 깔려있어야 되는 거지. 그걸로 세상을 만들겠다 그러면 안되는 거라고.
퍼> 그럼, 앞으로 문학이 갈 수 있는 길이란 뭘까요, 혹은 길을 바로 잡는 법이랄까 하는?
이> 아, 그거야 잘 모르지. (모두 웃음) 내가 어떻게 바로 잡겠어? 그러니까 그 부분에 가면 나는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거만 한다라고 말하는 거지. 허허.
말은 이렇게 하지만, 사실 소설이 가야할 길에 대한 글고민이 어느 누구에도 뒤지지 않는 사람이 바로 그이다. 문학을 통해 삶의 힘을 얻었으니, 그 문학에 자기 존재를 다바쳐 순교하겠다는 그가 아니던가 : “신 없는 순교에의 도박, 도박에의 순교, 도박과 순교를 동시에 행하기“(문학에 대한 작은 느낌들」,『식물성의 저항』) 실제로「소설이냐 자살이냐―디지털 시대의 ‘이야기‘ 비판」이나 「‘문화의 시대‘를 위한 두 반성―21세기 문턱을 넘어서며」와 같은 글은 이러한 고민의 깊이를 잘 보여주는 것들이다.
이제 술은 떨어지고 말나눔을 위한 술상도 정리를 할 때가 되었다. 바바리를 걸친 그의 뒷모습이 는개비 사이로 휘적휘적 사라진다. 골방에서 그는 오늘밤도 취기 스민 자의식을 붙들고 치열한 글주정을 써갈 것이다. 세상의 복잡한 결을 그대로 드러내 보이기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