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자잘한 돈

"대학교 2학년 여름 방학 때였는데, 그 때도 과외를 두 개인가 세 개인가 하고 있었어요. 너무 지겹더라구요. 대학 들어오자마자 시작해서 쭉 과외를 했으니까요. 근데, 그 때 그 까페에서 아르바이트 하던 친구가 한달간 유럽으로 배낭 여행을 간다고 했어요. 걔는 그렇게 돈을 벌어서 확 털고 배낭 여행을 가더라고요. 그게 그렇게 좋아 보였어요. 그래서, 내가 니 대신 그 까페에서 아르바이트 하면 안 되겠느냐고 물었죠."

계영이? 그 일 잘 못하던 애?

 

대학교 2학년 여름 방학 때였는데, 그 때도 과외를 두 개인가 세 개인가 하고 있었어요. 너무 지겹더라구요. 대학 들어오자마자 시작해서 쭉 과외를 했으니까요. 근데, 그 때 그 까페에서 아르바이트 하던 친구가 한달간 유럽으로 배낭 여행을 간다고 했어요. 걔는 그렇게 돈을 벌어서 확 털고 배낭 여행을 가더라고요. 그게 그렇게 좋아 보였어요. 그래서, 내가 니 대신 그 까페에서 아르바이트 하면 안 되겠느냐고 물었죠.” 

 

사촌 동생 계영이는 지금 의대에 다닌다. 지방에서 올라온 데다 유복하지 않은 형편이라 학비부터 생활비까지 대부분의 경비를 혼자 해결해왔다. 말수가 적고 씩씩한 아이다. 
이 아이한테 이런 이야기는 처음 듣는다.

 

 낮에는 차랑 음류수를 팔고, 식사도 되고, 그런 까페구요, 저녁에는 맥주를 팔았어요. 낮에 3시쯤 나가서 저녁 10까지 일했는데, 얼마 받았냐면잘 생각이 안 난다시간당 2500원 정도였나? 그래도 돈을 꽤 모았어요. 하루에 7시간쯤 일하면 2만원 가까이 벌잖아요? 근데, 식사도 주고, 무엇보다 하루 종일 일하니까, 돈 쓸 일이 없잖아요. 그래서 돈을 꽤 모은 셈이죠. 밤에 더 일하면 갈 때 아주머니가 택시비도 챙겨주셨거든요. 남자애들은 일 끝나면 나가서 포장 마차에서 그냥 마셔버리고 그러더라구요. 저는 집도 멀고 그래서 맨날 곧바로 집에 왔거든요. 아마 걔들은 거의 안 남았을 거예요.”

 

처음에는 좀 감상적으로 시작했어요. 결국 과외 하는 게 돈 좀 있는 집 애들 더 좋은 대학 가라고 하는 거 아닌가 싶어서 역겹기도 했구요, 왜 하루끼 소설 같은데 보면 주인공이 레코드 가게 같은 데서 일하고 여행다니고 그러잖아요. 그게 괜찮아 보였나 봐요. 낮에 주인 아주머니도 안 나오시고, 주방장 아저씨랑, 다른 언니 하나랑 그렇게 셋이 있을 때는, 내가 주인이라도 된 것처럼 꽤 책임감도 느끼고 그랬다니까요. 손님들이 여기서 식사도 하고, 얘기도 하고 좋은 시간을 보내시라고 내가 일한다는 생각도 들고, 할 수 있는 한 친절하고 싹싹하게 굴려고 노력도 하구요. 근데 얼마 지나니까, 그게 그렇지도 않더라구요. 제가 아무리 친절하게 대하려고 해도, 손님들은 저를 쳐다보지도 않고 주문하고. 뭐가 조금 잘못되면 쉽게 화를 내고요, 제가 잘 하는 건 당연한 거니까 보이지도 않고요. 저녁 되면 아저씨들이 맥주 피쳐 같은 걸 받는 척 하면서 슬쩍 손도 잡고 그랬어요. 그 까페는 강남역 씨티 극장 뒤에 있었는데, 좀 넓고 비싸고 그런 데 였거든요. 저라면 절대로 안 가는 곳이죠. 나중에는 나보다 나이도 한참 많고 잘 차려 입은 여자분들이 와서 비싼 거 시키면서, ‘언니, 이거요이러면, 언니라는 말이 너무 미워서 혼자 속으로내가 왜 니 언니냐그러기도 했죠

 


저녁에는 아르바이트 생이 4명쯤 되었어요. 거기는 바도 있고 안에 공간이 깊어서 칸을 나눠서 1,2,3층으로 되어 있었거든요. 나 빼고 다 친해서, 같이 잘 놀러다니고, 같이 일하던 언니랑 남자애 하나는 나중에 사귀기도 하고 그랬어요. 처음에는 혼자 심심해서, 일도 제일 열심히 하고 그랬는데요. 나중에는 바텐더랑 좀 친해져서 계속 술을 얻어먹었어요. 그 바텐더 오빠는 술을 잘 못 마셨는데, 자꾸만 자기가 새로운 칵테일을 개발했다고 나한테 계속 먹어보라고 주는 거예요. 손님 맥주를 피쳐에 담다가 유리잔에 조금 따라주기도 하고요. 주는대로고맙습니다그러면서 먹으니까 제가 술을 좋아한다고 다들 생각했던 거 같애요. 저는 그냥 친해지려고 그런건데. 그걸 계속 받아마시다가 좀 취하면, 맥주 피쳐 3000cc 같은 걸 들고 계단을 오르락내리락 하는 게 조마조마 했죠. 취하면 왜 주변에서 나는 소리도 잘 안들리고 그러잖아요. ‘넘어지면 안된다, 넘어지면 끝장이다그러면서 계단을 내려가는데, 너무 시끄러워서 다른 사람은 하나도 안 들렸겠지만, 지금 생각하면 제가 꼭, 넘어지면 안된다고 소리소리 지르면서, 맥주 피쳐를 들고 다녔던 거 같애요. 정말 넘어질 거 같으니까 저는 그 정도로 절박했거든요. 다들 웃고 떠들고 그러느라 아무도 저한테는 신경도 안 쓰는데요.”

 

저녁 10시가 지나면 이상하게 분위기가 싹 바뀌었어요. 가끔 늦게까지 일할 때가 있었는데, 그 때마다 꼭 재밌는 구경을 하게 되더라구요. 키스 같은 건 예사구요, 서로 싸우는 일도 있구요. 1층에는 칸을 좀 막은 룸 같은 게 있었는데, 가끔 남자들이 왜직업적으로 예쁜언니들을 데리고 와서 거기서 양주를 마시고 그래요. 거기 서빙하러 들어가는 게 그렇게 떨렸어요. 우유 같은 거 달라고 해서 가면요, 별 걸 다 하고 있어요. 갖다 주고 와서도 계속 그리로만 시선이 가는데요, 어느 날은 테이블을 닦는 척 하면서 그 쪽을 흘끔흘끔 보고 있으니까, 아주머니가 제 옆으로 오시더라구요. 뭘 보냐고 혼 낼 줄 알았는데, 등 뒤에서계영이한테 못 볼 걸 보게 해서 미안하구나그러고 가버리시더라구요. 그 말을 한참동안 생각했어요. 기분이 이상해서요.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데, 이런 일이 어디서나 있는 걸 다 아니까 괜찮은데, 아주머니는 나를 혼낼려고 그런 걸까, 정말 미안해서 그런 걸까, 미안하다면 아주머니가 왜 미안할까.”

 

한 달 좀 넘게 하다가 그만 뒀어요. 친구도 여행갔다 돌아왔구요. 저도 놀고 싶었거든요. 왜 예과 2학년 방학에는 모두들 미친듯이 놀려고 하잖아요. 나중에, 그 친구한테 들었는데요, 어느날 아주머니한테 제 얘기를 했더니, 아주머니가 제 이름을 잘 기억 못 하시더래요. 한참 있다가, “계영이? 그 일 잘 못하던 애?” 그러시더래요. 그 말을 듣고 참 웃었어요. 저는 정말 일 열심히 했거든요. 아주머니도 저한테 잘 해주시는 줄 알았는데, 내가 일 잘 못했던 거구나생각해보면 화장실 변기 막히면 그거 뚫는다고 한참동안 낑낑대고 그런 게 아무래도너무 술을 많이 마셨나 싶기도 하고…”

 

첫번째 아르바이트, 한 살 많은 선생님

 

 처음으로 했던 아르바이트는 과외. 그 때는 아무 것도 몰라서 과외해서 돈 버는 게 그저 신났죠. 잠실이었는데요. 아이는 고등학교 3학년이었으니까, 나랑 한 살 차이밖에 안 났구요. 착한 애였는데 공부도 굉장히 못 하고 좀 느린 애였어요. 어머니가 노래방을 하셔서 날마다 일하러 나가셨는데, 제가 오면 잠깐 들러서 저랑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그러셨어요. 애가 공부를 못 하니까 이것저것 답답하셨겠죠. 한 살 차이 밖에 안 나는데, 그래도 선생님이라고 선생님, 선생님 그러시면서요. 아이가 이렇고 저렇다고 하소연하시면 저는 할 말이 없어서 대충, 네에, 하고 맞장구 쳐드리거나 열심히 하면 되겠죠, 라고 대화를 끝내곤 했는데, 그게 그래도 어머니한테는 기분이 좋았나 봐요. 어머니가 참 친절하셨어요. 여름에 땀을 뻘뻘 흘리고 과외하러 가면, 새 수건 꺼내주시면서 샤워하고 하라고 하시고요. 밥도 꼭 챙겨주시고요. 어느날은 둘이 수영장 가라고 돈 주셨는데요, 걔랑 왠지 수영장 가는 게 심난하더라구요. 그래서 둘이노래방에 가서 한참동안 노래를 부르고 나왔는데(하하, 노래방집 딸하고…?), 나중에 애를 들여보내면서 영 기분이 찜찜해서 화장실에 가서 수영복 좀 적셔 가지고 가라고 그랬어요.” 

 

그 때는 돈 벌면요, 자꾸만 뭘 사고 싶었어요. 그래서 지하철 타려고 잠실 지하 상가를 지나가면서, 자잘하고 예쁘고 쓸모없는 것들을 자꾸 사모으고 그랬어요. 조그만 거울 같은 게 촘촘히 박힌 치마 같은 거랑 물소 가죽 지갑 같은 거. 사치하는 기분이 너무 좋았어요. 쓰지도 못 할 것들이었는데. 뭔가 허전해서 그랬나봐요. 과외 같은 거 해서 돈을 쉽게 벌면 손 사이로 돈이 빠져나가는 거 같아요.”

 

 나중에 걔는 떨어졌어요. 저는 전화도 못 했는데, 떨어졌다고 전화왔더라구요. 어머니한테 어찌나 미안하던지.”

 

 언니, 저는 돈 생각 많이 해요

 

 재작년인가, 부모님이 결혼식 때문에 잠깐 올라오셨는데요, 같이 결혼식장에 갔었거든요. 저는 과외를 하러 갔어야 되는데, 엄마가 늦으니까 빨리 과외 가라고, 그러시는 거예요. 밥도 안 먹었는데. 왔으니까 돈이라도 좀 주실 줄 알았는데 돈도 안 주시고요, 그냥늦으니까 빨리 과외 가라. 그 때 집세랑 뭐 그런 것 때문에 돈이 없어서 좀 힘들 때였거든요. 근데 밥도 안 먹고 과외를 하라니까 너무 기가 막힌 거예요. 그래서 기를 쓰고 밥 먹는데 따라 갔어요. 같이 밥을 먹는데, 막 눈물이 나요. 사람들 다 있는데서 훌쩍이면서 밥을 먹으니까 엄마가 너무 챙피해서, 옆으로 쿡쿡 찌르면서왜 우냐고 그러잖아요. 그래서엄마는 내가 무슨 돈으로 산다고 생각하느냐?’고 그랬죠. 그랬더니 엄마가나는 니가 돈 달란 소리를 안 해서 돈이 있는 줄 알았지그러세요. 너무 웃기죠?”

 

 언니, 저는 돈 생각 많이 해요. 돈 많은 사람은 돈 생각 할 필요가 없지만 없는 사람은 늘 생각해도 부족하잖아요. 제가 그런 데에 좀 예민해요. 까페에서 일할 때도, 카운터에 기대서 옷 잘 입고 온 애들이 비싼 거 마시는 거 보고 있으면요, ‘쟤네는 무슨 돈이 있어서 저런 걸 다 마실까, 어차피 쟤네 부모님 주머니에서 나오는 걸텐데, 돈이 쟤네 부모님 주머니에서 나와서 우리 주인 아줌마 주머니로 들어가는구나, 먹는 건 쟤네고 일하는 건 난데그런 생각하고 그랬어요.”

 

돈 생각하는 건, 뭐랄까, 인생을 사는 데 내야 하는 세금 같기도 하고요. 그냥 이것저것 생각해보는 거예요. 나한테 지금 얼마가 있는데 내가 얼마나 썼고 내가 얼마나 벌 거고이 정도면 괜찮나? 아직 충분한가? 사실 다 자잘한 것들이죠. 혼자 대충 먹고 살고 쓰는 데 들면 얼마나 들겠어요? 그런데 어떨 때는 그런 것 때문에 숨이 막히니까 우습죠. 의사들은 돈 많이 번다고 그러지만 저는 잘 모르겠어요. 의사 공부 하는데 돈이 엄청 드는 건 확실한데요. 그래도 젊을 때 가난한 건 좋은 거 같애요. 나중에라도 돈을함부로 버는일은 없을테니까요.”

 

계영이, 내 사촌 동생이다. 씩씩한 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