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굉장히 큰 눈이 내린 날이었어. 낮이 밤같이 어두워지고, 길이 없어져서 사람들도 못 다니고 차도 못 다니고. 그런데 나는 그 길을 뚫고 피아노 학원에 갔어. 피아노를 치러 가면 그 집 어머니가 언제나 맛있는 쿠키를 구워주셨거든.
그것만 생각하면서 거길 간거야. 그런데 그 날은 피아노 선생님도 나갔다가 못 들어 오시고, 다른 아이들도 하나도 안 오고, 그 집 어머니도 쿠키를 굽지 않으셨어. 창 밖으로 내리는 하얀 눈을 보면서 피아노 가방을 무릎에 놓고 계속 기다렸어, 쿠키나 선생님, 다른 아이들을. 한참을 있다가, 그 집 어머니가, 안 되겠다, 내가 집으로 데려다 줄께, 하고 나를 이끌고 거길 나섰어. 눈보라가 몰아치는데 한 치 앞도 안 보이고 한 발 한 발을 떼는 것이 바닥도 없는 곳으로 가는 것만 같았어
그런데 바람이 입으로 들이닥쳐 숨을 쉴 수가 없는 거야. 죽는구나, 생각했어. 나는 말도 못 하고 헉헉 거리면서 옆에 서 있는 아주머니 코트 깃만 계속 잡아 당겼어. 그러자 그 아주머니가 내 어깨를 붙잡더니 아무 말도 없이 나를 뒤로 돌려세우더라. 그제서야 숨을 쉬었어. 그래서 살았어. 그 아주머니가 현명하셨던 거지.” “그게 몇 살 때였어?”, “작년에 눈 많이 올 때 그걸 20년 만의 큰 눈이라고 했으니까, 20년이 좀 넘었지.”
내 얘기를 좀 하겠다. 최근에 나는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 미래는 불투명하고 이제껏 걸어온 길은 끊겼다. 눈보라 속을 걷는 거 같다. 날마다 쏟아져 내리는 생활의 문제들, 크고 작은 돈 문제, 가족 문제, 건강 문제, 바퀴벌레 문제, 혼자 사는 집에 줄줄 새는 수도 문제, 귀찮은 관공서, 무서운 이웃, 먹는 일, 치우는 일, 하루에 몇 시간씩 나를 갉아먹는 열정없는 일 문제. 이런저런 걱정으로 잠이 안 오는 밤, 친구 은주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다시 적으면서, 나는 겨울처럼 마음이 고요해졌다. 마음 속으로 그림이 떠올랐다. 빨간 볼을 한 작은 어린 아이가 눈보라 속에서 숨이 막힐 때, 어떤 큰 손이 내려와 그 아이를 돌려세우고, 그 아이를 집으로 이끌며, 그 손만 따라가면 뒤를 보고 걸어도 집에 갈 수 있다고.
2.
내 친구 은주는 눈처럼 하얀 피부에 까맣고 큰 눈을 가졌다. 얇은 펜으로 그린 것 같은 그녀의 얼굴을 어떤 사람들은 차갑다고 한다. 그러나 얼굴이 빨개지도록 어떤 일에 몰두할 줄 아는 그녀가 얼마나 뜨거운 손을 가졌는지 나는 안다. 그녀는 회사에 다니면서 학교에 다니고, 그것이 힘들지 않느냐고 물어보면, 그냥 배시시 웃으면서, “재밌어“, 라고 한다. 그녀의 치밀함과 성실함에 언제나 감탄하는 나같은 태생적 루저는 이 친구가 도대체 어떤 어린 시절을 보냈는지 상상할 수가 없다.
“나는 티비를 좋아하는 어린애였어. 엄마, 아빠가 다 일을 하셨으니까 나한테는 티비를 오래 본다고 꺼버리는 사람이 없었거든. 내가 제일 좋아했던 프로는 <원더 우먼>이야. 까만 머리의 그 백인 여자가 뺑글뺑글 돌다가 원더 우먼으로 바뀌는 게 정신이 쏙 빠질 정도로 좋았어. 토요일 4시 쯤에 그 프로를 했거든.근데 나는 그 때 시계를 보는 법을 몰랐어
그래서 하늘을 보다가 해가 머리 아래로 이만큼 기울면, 이제 <원더 우먼>을 하는구나, 하고 티비를 켜는거야. 어느 날부터 토요일 4시에 티비를 켜도 <원더 우먼>이 안 나오더라. 영문을 몰라서 여기저기 채널을 돌리며 애타게 <원더 우먼>을 찾았지. 한번은 한 밤 중에 티비를 보는데, 까만 머리에 예쁜 백인 여자가 원피스를 입고 나와서, ‘원더 우먼이다!’ 하고 흥분해서 한참을 보고 있던 게 생각나. 결국 그 여자는 뺑글뺑글 돌지도 않고 원더 우먼으로 바뀌지도 않았는데, 아마 그 영화는 무슨 옛날 로맨틱 코미디였던 거 같애. 그 여자는 ‘엘리자베스 테일러‘였어. 까만 머리에 예쁜 얼굴을 한 여자가 나오니까 그냥 원더 우먼인 줄로만 알았던 거야. 그리고 또, 만화도 좋아했어. <루니 툰>, <새서미 스트리트>, <플린스톤>, 워너 브라더스 만화들–내가 열광한 것들. 일요일 아침마다 AFKN을 틀고 알지도 못하는 영어로 나오는 그 만화들을 뚫어져라 보고 그랬는데, 나중에 우리 이모가 한 마디 했지. ‘내가 너 조그맸을 때 부터 AFKN 좋아하는 거 보고 영문과 갈 줄 알았다‘.”
“야, 근데, 도대체 몇 살 때까지 시계 볼 줄도 몰랐냐?”, “그게, 몇 살 때더라? 아무도 시계 보는 법을 안 가르쳐 줘서… 내가 처음으로 시계 보는 법을 배웠을 때는 어찌나 그게 자랑하고 싶었던지, 친구네 집에서 한참 놀다가 일어서면서 시계를 흘끗 보고는 ‘지금은 3시 10분이야!’ 뻐기듯이 말하고 달려온 적도 있어. 사실 나는 말도 잘 못 하고 느린데다 좀 멍청해 보이는 애였어.
어떤 생일 날은 이런 일이 있었다. 우리 어머니가 생일 같은 거 잘 챙겨주고 그런 스타일이 아니었거든. 나는 그 날이 생일인 줄도 몰랐는데, 엄마가 케?揚繭? 김밥같은 거 사오면서 가서 친구들을 불러오라는 거야. 그래서 그 때 우리 아파트 윗 층이랑 앞 동이랑 돌아다니면서 초인종을 누르고 ‘저기, 오늘 내 생일인데 지금 놀러 오지 않을래?’ 라고 말하고 다녀야 했어. 근데, 그 날 따라 아무도 올 수 없다는 거야. 치과에 가야 한다거나 엄마가 없다거나, 뭐 그런 이유들. 집에 와서 빈 생일 상에 앉아, 괜찮다고 말하는 엄마랑 아빠 앞에서 촛불을 끄다가 확 울어버렸어. 그 이후로 몇 년간은 생일 상 같은 거 안 차렸지. 내가 싫어했거든.” “어떻게 생겼었는데?” “이거 보여줄께.” 은주는 다이어리를 열어 사진 한 장을 꺼낸다. 나는 조그맣게 소리를 지른다. 은주처럼 생긴 작은 소녀가 있다. 웃지도 않고 찡그리지도 않고 아무 표정도 없이 사진기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는 어린 여자 아이. 눈이 동그랗게 커서 겁을 먹은 것도 같고 깜짝 놀란 것도 같다. 거실 창가에 걸린 커튼을 손에 꼭 잡고 있어서 애써 균형을 잡고 서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양갈래로 묶은 머리, 체크 원피스, 조금도 흘러내리지 않은 하얀 양말. 다섯살 쯤? “...
“그 때도 생각이란 걸 했니?” “글쎄. 이 날은 조금 기억이 나는데, 아마 참 덥다고 생각하고 있었을 거야. 여름이었고, 일요일인가 아버지가 집에 계셨는데, 나가서 사진 좀 찍자고 하는 걸 내가 싫다고 우겨서 이렇게 집에서 찍었던 거야. 어머니가 얼른 외출용 원피스로 갈아입혀줬고, 그 옷을 입으니까 왠지 기분이 나서 동생이랑 다 같이 밖에 나갔던 거 같애. 그런데, 여기는 이렇게 쨍한 날이지만 몇 시간 후에는 비가 와서 다 엉망이 되었어. 원피스랑, 머리랑, 손에 들고 있던 과자랑…”
3.
‘내가 살던 정릉에는 맑은 시냇물이 흐르고…’ 라는 식으로 시작하는 수필을 교과서에서 읽은 적이 있다. 정릉에는 아직도 북한산에서 내려오는 맑은 개천이 흐르고 있어서 아이들이 물에 발을 담그고 물놀이를 하고 있을 정도다. 은주와 나는, 그녀가 옛날에 살던 <선덕 아파트> 자리에도 가 보고(이제는 페인트도 선명한 고층 ‘대우 아파트‘로 바뀌었고), 아파트 뒷산으로 구불구불 뻗은 오솔길을 따라 은주와 그녀의 어린 친구들이 담력 훈련을 하느라고 찾아가던 주인없는 무덤가를 더듬어보기도 하고, 은주가 놀러다니곤 하던 산장 아파트 앞 놀이터에도 찾아가고, 거기서 놀고 있는 어린 여자애들이랑 인사도 나누고, 햇살이 눈부셔 꿈 속 같은 아파트 뒷 동네 골목길을 따라가기도 했다.
“여기는 시간이 멈춘 것 같아. 서울 같지가 않아. 옛날에도 이 모습 그대로였어?” “많이 변하긴 했지만, 여기선 확실히 시간이 느리게 가지. 옛날엔 이곳이 고급 주택가 중 하나였는데, 이제는 거의 실버타운이 되어가. 교통이 불편하니까 많이 움직이지 않고 앞으로 평생 이사갈 일이 없는 노인들이 사는 곳. 우리 부모님도 나이들면 이곳에 다시 와야 겠다고 생각하셔.”
“너희 부모님은 어떻게 해서 이곳에 살게 되신거야?” “아마 우리 할머니가 여기 사셨기 때문일거야. 우리 부모님은 양쪽 다 원래 이북 쪽이 고향이거든. 6.25 전에 할머니와 함께 서울로 내려오셨던 거 같아. 우리 할아버지가 6.25 때 납북을 당하시고 나서, 그 때문에 할머니가 고생을 많이 하셨어. 우리 아버지는 종로구 사직동이 본적으로 되어 있는데, 할아버지가 사라지신 후에 할머니가 동대문구 신설동으로 이사를 하시면서 본적을 바꿔버리셨어. 그리고 나서 정릉으로 이사를 하셨지.” “그게 가능한가?” “그 때는 돈으로 뭐든지 되는 시절이었으니까. 아마 아버지 형제들 중에 몇은 이름까지 바뀌었을 거야. 할머니가 고생을 많이 하셨지. 전쟁 통에 고무신 같은 거 팔아서 그 많은 자식들을 다 키워내셨으니까.”
은주의 할머니는 아직도 정릉 산장 아파트에 살고 계셔서 종종 은주가 방문을 하곤 한다. (“둘이서 뭐해?” “그냥 같이 밥 먹고 티비 보는 거지.”) 나는 은주의 할머니 이야기를 즐겨 듣는다. 자식들을 다 키워내고 고집스럽게 혼자 사시는 할머니 이야기를 듣는 것이 재밌다.
이 날은 장마 비가 오던 사이에 반짝 맑은 날이어서 걷기에 좋았다. 정릉에는 사이사이 길이 많고 길어서 은주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듣기에 참 좋았다.
4.
은주의 평소 말투는 딱 부러지고 빈틈이 없으면서도 잘 훈련된 사교성 같은 것이 섞여 있어서 우리는 그녀를 ‘살롱 마담’이라고 놀린다. 그런 은주도 가끔 부끄러울 때나 뭔가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을 때면 어린애 같은 말투를 할 때가 있다. 그럴 때 마다 나는 그 부조화가 참 신선해서 그녀를 다시 보곤 한다. 우리가 자라서 어른이 되어도 간직하는 몇 가지 무늬. 그런 것들은 왜 다 비슷할까. 두려움, 신기함, 구김없는 쾌락, 어디에나 있는 누추함, 사람이 처음 맛보는 감정들에 원형이 있는 것처럼, 우리들의 어린 시절 추억에는 어딘가 한 사람의 기억인 듯 공통되는 것들이 있다. 거기에는 은주가 들려준 이야기에서처럼 달콤한 과자도 있고, 무서워서 잠을 못 자던 밤도 있고, 좋아했던 윗 집 남자애도 있고, 도자기 인형처럼 깔끔해서 부러움을 불러일으켰던 쌍둥이 여자애도 있고, 언덕 위 큰 집에 살면서 가끔 아이들을 초대했던 외로워 보이던 남매도 있고, 나는 토라졌는데 아무도 나를 봐주지 않아 어쩔 줄 모르던 오후도 있고.
나는 거꾸로 뒤집기만 하면 마을 위로 요술처럼 눈이 쏟아지는 크리스마스 구슬을 갖고 있다. 어렸을 때는 빨리 크리스마스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그것을 자꾸자꾸 뒤집곤 했다. 지금 내가 어린 시절을 생각하는 것은 꼭 구슬 속 마을을 보는 것 같다. 필요할 때면 그것을 이리저리 굴려 잠깐의 축제를 맛보지.
“그 때도 생각이란 걸 했니?” “글쎄. 이 날은 조금 기억이 나는데, 아마 참 덥다고 생각하고 있었을 거야. 여름이었고, 일요일인가 아버지가 집에 계셨는데, 나가서 사진 좀 찍자고 하는 걸 내가 싫다고 우겨서 이렇게 집에서 찍었던 거야. 어머니가 얼른 외출용 원피스로 갈아입혀줬고, 그 옷을 입으니까 왠지 기분이 나서 동생이랑 다 같이 밖에 나갔던 거 같애. 그런데, 여기는 이렇게 쨍한 날이지만 몇 시간 후에는 비가 와서 다 엉망이 되었어. 원피스랑, 머리랑, 손에 들고 있던 과자랑…”
이제는 어디에도 없어서 사람들이 기억 속에나 간직하는 풍경을 버스만 타고 가면 볼 수 있는 것은 은주의 행운이다. 북한산을 끼고 그린 벨트로 둘러쳐진 은주의 어린 시절. 그런데 나는 그 속을 걸으면서 꼭 은주처럼 생긴 여자애가 여기 어딘가 살고 있을 것 같은 착각을 한다. 이 친구가 보여주는 단호함, 긴장감 같은 것들을 그 옛날 사진에서 찾아보려고 했지만 작은 여자애는 그런 것은 아직 하나도 갖고 있지 않았다. 그것이 여자아이를 마치 딴 사람처럼 보이게 했다. 버스를 타고 정릉을 나오면서 나는 은주의 옆 얼굴을 흘끗거리며 이 친구가 어디 그 여자애처럼 보이는 구석을 갖고 있나 살펴보았다. 턱 언저리의 어딘가, 곱슬거리는 머리카락 끝의 어딘가, 웃을 때 방심하는 모습의 어딘가에 분명히 그런 태가 있는 것도 같다. 그 둘을 나란히 떠올려보면 참으로 재미있는 것이, 어디선가 큰 손이 겁먹은 작은 소녀를 번쩍 들어올려 이렇게 커다란 아가씨로 만들어놓은 것 같으니 말이다, 아마도 20년 동안 쏟아져내린 온갖 종류의 눈보라를 뚫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