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기 최 – 한국인 3세 무용가

매디슨에는 Peggy라는 한 한국인 3세가 살고 있다. 스마일형의 웃는 얼굴, 그리고 한복을 돋보이게 하는 어깨선이 무척 고운 그녀를 처음 본 순간 나는 '어쩌면 저렇게 한국 여인같이 생긴 한국 여인이 다 있을까' 감탄했다. '최묘영'이라는 한국 이름을 가진 Peggy는 위스컨신 매디슨 대학의 Asian Studies 담당 교직원이자 무용가, 안무가이다. 얼음으로 변한 눈이 덮인 조용한 거리의 커피숍에서 3년 전 Peggy가 나에게 들려준 이야기 몇 토막, 그리고 먼 발치에서 바라보았던 그녀의 무용이 나로 하여금 새삼 그녀를 다시 찾게 만든다.

그녀의 몸이 말하는 우리

 

3년 전 겨울, 그러니까 1998년 12월, 나는 미국 위스컨신(Wisconsin)주의 작은 도시 매디슨(Madison)에서 어학연수 10개월째를 맞고 있었다.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의 그 매디슨 말인가요. 누구나가 그렇게 물었고 나는 또 한결같이 이렇게 대답했다. 아니요.
미국에만도 매디슨이라는 이름의 도시는 Wisconsin주에 말고도 꽤 여러 개 있다고 한다. Wisconsin주의 그 매디슨에는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의 ‘다리’ 만큼이나 유명한 큰 호수가 여러 개 있다. 그 중에서도 겨울이면 꽝꽝 얼어붙는 Mandota호는 위스컨신 매디슨 대학(University of Wisconsin Madison)을 명물로 만드는 데 한몫한다. Mandota호에서는 어느 해 겨울인가 <닥터 지바고> 촬영이 이루어졌다고도 한다. 과연 시베리아 벌판이라 해도 손색없는 풍경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매디슨에는 Peggy라는 한 한국인 3세가 살고 있다. 스마일형의 웃는 얼굴, 그리고 한복을 돋보이게 하는 어깨선이 무척 고운 그녀를 처음 본 순간 나는 ‘어쩌면 저렇게 한국 여인같이 생긴 한국 여인이 다 있을까’ 감탄했다. ‘최묘영’이라는 한국 이름을 가진 Peggy는 위스컨신 매디슨 대학의 Asian Studies 담당 교직원이자 무용가, 안무가이다. 얼음으로 변한 눈이 덮인 조용한 거리의 커피숍에서 3년 전 Peggy가 나에게 들려준 이야기 몇 토막, 그리고 먼 발치에서 바라보았던 그녀의 무용이 나로 하여금 새삼 그녀를 다시 찾게 만든다. 그녀의 육성을 들을 수 없는 인터넷 채팅을 통해서라도 굳이 다시 만나고 싶었다. 얼굴을 마주하지 못한다는 안타까움 때문인지 아니면 간헐적으로 끼여드는 매디슨에서의 추억 때문인지 가뜩이나 느린 영어타자 속도가 뚝- 떨어진다.

 

1. ‘자랑스러운’ 한국인

매디슨과 서울 사이의 시차 때문에 채팅 날짜를 잡기가 힘들었다. 인터뷰 요청에서부터 실제 인터뷰까지의 모든 일이 ‘온라인’상에서 이루어졌다. 휴대폰으로 언제 어디서나 누구의 사생활에도 쉽게 간섭하는 데 어느 새 익숙해져 있던 나로서는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스케줄을 조정하는 데 쓸데없이 조급해했다. 첫 채팅을 하기로 한 2001년 6월 1일 금요일 오전 10시 퍼슨웹 사무실. Peggy가 있는 Madison 시각으로는 5월 30일 목요일 밤 8시. 대화창에서 Peggy가 인사한다. 

 

퍼슨웹> Peggy, 대화창 보이세요?

Peggy> 네, 잘 보여요. Anyong haseyo?

Anyong haseyo. Peggy가 즐겨 쓰는 인사법이다. hello, good morning 대신 헬로우, 굿모닝을 기분좋게 따라 읽던 어린 시절이 생각나면서 한국어에 대한 Peggy의 심정이 대강 헤아려진다.  

퍼슨웹> 이름이 페기 묘영 최(Peggy Myoyoung Choy)인데. ‘묘영’이라는 한국 이름은 누가 지어주셨죠?
Peggy> Peggy라는 미국 이름은 부모님이 지어주셨고, 묘영이라는 이름은 제 외할아버지(황사순)께서 붙여주셨어요.

퍼슨웹> ‘묘영’이라는 이름은 무슨 뜻인지?

Peggy> 외할아버지께서 제 이름을 지어주실 때 ‘묘’는 ‘아름다움’을 뜻한다고 하셨대요. ‘영’은 돌림자구요. 

 

 

그렇다면 Peggy는 최妙영. 한자를 모르는, 아니 한국말을 못하는 그녀에게 무슨 ‘최’ 무슨 ‘영’이냐는 질문을 던질 겨를이 없다.

 

 

퍼슨웹> 1998년 가을 매디슨에서 “Across Bridges of Mask and Song: Korean Dance and Music”라는 공연을 하셨죠. 그 때 얻었던 공연 팜플렛을 보니 하와이 출신이라고 소개되어 있던데. 고향이 하와이인가요? 그럼 언제 매디슨으로 이사했나요?

Peggy> 고향이 하와이인 것은 아녜요. 난 원래 시카고에서 태어났는데, 그 때 아버지는 시카고대학 메디컬 스쿨의 인턴이셨어요. 태어난지 4개월쯤 되었을 때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언니 Diane과 함께 하와이의 호놀룰루로 이사왔어요. 그래서 그런지 난 거기(하와이)가 ‘거의 고향인 것처럼’ 느껴져요. 매디슨으로 온 건 1982년인데, 당시 난 아직 학생이었고 남편인 Andy Sutton이 그 때 막 위스컨신 매디슨 대학의 음대에서 직장을 구했어요.  

이름, 고향, 현주소… Peggy에 대한 이런 호구조사(?)는 내가 알고픈 그녀의 가족사의 前史에 지나지 않는다. 그 때 그 커피숍에서 Peggy는 자기 할아버지가 안창호의 친구였다고 자랑스레 말했었다. 그걸 잊지 않고 있음에 대한 감동의 표시인지, 메신저 대화창이 적어도 두세 번 바뀌어야 조부모에 대한 Peggy의 대답은 가까스로 마무리된다. 

 

 

퍼슨웹> 조부모님에 대해서 얘기해줄 수 있나요? 할아버지께서 독립군이었고, 게다가 안창호의 친구였다는 얘기가 기억나는데.     

Peggy> 맞아요. 내 이름을 지어주었다는 외할아버지(황사순)가 지하 비밀 결사(underground nationalist secrete society)의 요원이자 안창호의 친구였어요. 외할아버지는 일본 경찰에 쫓기는 몸이었고 그들은 할아버지를 죽이려 했죠. 그래서 할아버지는 한국을 떠나기로 결심했고, 할아버지와 할머니(장태순)는 1904년 봄(아마 그럴 거예요) 반쯤 얼어붙은 압록강을 건너서 고향인 신의주를 떠나 상하이행 기차를 탔어요. 그 때 두 분은 만주인으로 변장을 하고 다녔대요. 그리고 나서 두 분은 배를 타고 샌프란시스코로 갔어요. 그 후 외할아버지는 버클리에 있는 한인교회 목사가 되셨죠. 그렇지만 처음에는 굉장히 고생을 많이 하셨어요. 할아버지는 잡일꾼이었다가 나중에 세탁소를 차리셨어요. 

 

Peggy>외할아버지는 샌프란시스코에서도 계속 독립 운동을 했어요. 할아버지의 교회는 이민한 한국인들을 위한 중심부 역할을 하기도 했죠. 외할아버지의 형님(황사용)도 목사였는데, 한국인 노동자들의 곤궁의 실상 파악을 위해 멕시코에 갔다가 우리 노동자들이 마치 ‘노예’처럼 취급된다는 소식을 전했어요. 이런 보고 덕분에 노동자들의 조건이 좀 향상되기는 했죠.  

퍼슨웹> 외할아버지에 대한 존경심이 대단하겠군요.

 

 

좀 나중에 Peggy가 덧붙인 얘기지만, 그녀 집안의 ‘애국적 혈통’은 친가 쪽에서도 흐르고 있었다. Peggy의 친할아버지(최두욱) 역시 애국심과 한국 독립에의 공훈을 인정받아 2년 전 한국 정부로부터 상을 받은 적이 있다는 것이다. 이미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대신해 아버지(최덕조)가 이 상을 받으러 한국에 다녀왔다고. 이 상을 받은 미국 출신의 한국인은 겨우 2명뿐이라고.
Peggy는 진심으로 자랑스러워하고 있었다. 뒤에 다시 나오지만, Peggy의 최근 공연(2000년 가을, Madison) “Passage of Oracle”의 제5부 “Ice River”는 바로 이러한 조부모님의 경험을 토대로 한 것이다.

 

 

퍼슨웹> 그럼, 한국 문화를 소개하는 데 열심인 것은 결국 가족사의 영향이 크겠군요.

 

Peggy> 비록 하와이에서 자라긴 했지만 항상 나는 한국인임을 자랑스러워하도록 배웠어요. 이 점은 절대로 못 잊을 거예요. 난 늘 한국 문화만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재능을 인식했어요. 한국인은 한국인만의 독특한 생활 및 사고방식을 지니고 있다고 믿어요. 나는 외할아버지를 항상 존경했지만, 내가 한국인과 한국을 사랑하고 존경하는 것은 다른 많은 가족들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이기도 하죠. 내 외할머니는 어머니가 다섯 살 때 돌아가셨기 때문에, 어머니는 외할아버지의 누님(황사순, 즉 Peggy 어머니의 고모)이 친자식처럼 길러주셨어요. 어머니를 길러주신 이 고모할머니는 한국인들을 위한 사회사업가(social worker)였는데, 한국 무용이나 연극과 같은 문화 이벤트를 직접 구성하기도 했어요. 한국 공연 예술에 대한 사랑을 어느 정도는 이 고모할머니로부터 물려받은 것 같기도 해요. 물론 고모할머니의 작품을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한국인만의 독특한 생활 및 사고방식? 궁금하다. 한국인이기도 하고 미국인이기도 한, 어쩌면 둘 다 아니기도 한 Peggy가 생각하는 한국인상이라니. 나중에 이메일을 통해 물어봤더니 한국인은 이런 사람들이란다. 한국인은 정(情)을 중시한다, 한국인에게는 한 국가로서 가족으로서 친구로서 끝까지 남아 있기 위해 노력하는 자연스러움의 감정이 있다, 한국인은 교육과 자기 수양의 덕목을 존중한다. ‘정’이 비합리성으로, ‘의리’가 가족주의 지역주의로, 자기 수양이 현실도피로 한순간 뒤바뀌면 어떡하나?라는 질문을 또 보낸다면 그녀는 뭐라고 말할까.

 

 

퍼슨웹> 그런데 왜 한국어를 배우지 않았죠?

Peggy> 내가 어렸을 때, 하와이에 있는 사람들은 다 영어를 썼고 그게 또 당연한 일이었죠. 그래서 나도 한국어 배우길 꺼려했어요. 고모할머니가 한국어를 좀 가르치려고 하신 적은 있죠. 그렇지만 그 후에도 적어도 세 번 정도는 한국어를 배우려고 했었어요. 최근에는 여기(University of Wisconsin Madison)에서 한국어 강의를 세 학기나 들었죠. 정말 한국어를 잘 하고 싶은데… 포기한 적 없어요. 한국어는 정말 멋진 언어라고 생각해요.

 

 

 

처음 Peggy를 알게 됐을 때, 나는 그녀가 ‘오바한다’는 우리말을 알고 있다는 것, 그 뉘앙스를 알고 내게 농담을 거는 게 재미있었다. 또 한국 문화를 사랑한다는 그녀가 왜 우리말을 배우지 않았는지 섭섭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채팅을 하면서 당신이 알고 있는 ‘유일한’ 한국말인 ‘오바’를 누구에게 배웠냐는 질문을 했더니 ‘오바’는 절대로 자기가 아는 유일한 한국말이 아니라고 느낌표까지 찍어가면서 부정한다. 한국을 사랑하고 한국문화를 소개하겠다는 그녀가 정작 우리’말’을 잘 하지 못하는 데 대해 내가 심통이라도 났던 것일까? 한국어를 정말 잘 하고 싶다는 그녀의 고백(?)이 이렇게 반갑기까지 한 걸 보면…

 

 

 

2. 온몸으로 한국을 기억/말하기

사실 Peggy가 한국말에 능통한 여느 Korean American보다도 더 ‘한국여인’다운 자태를 지닌 것은, 그녀가 (한국)무용가이기 때문이 아닐까. 언어란 굳이 삶의 리듬을 타지 않고도 반복 학습을 통해 익힐 수 있지만 무용이란 삶의 결을 따를 때 제맛을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던가. Peggy는 온몸으로 한국을 알고 있는, 혹은 알고자 하는 듯했다.

 

퍼슨웹> 무용은 언제부터 시작했나요?

Peggy> 어렸을 때 한인 교회에서 한국 무용을 본 적이 있는데, 그 후 호놀룰루의 할라 흄(Halla Huhm) 스튜디오에서 곧 무용을 배우기 시작했어요(그러니까 학부 졸업 후가 되죠). 대학에서 무용을 전공한 건 아니고, 학부에서는 인류학을 전공했고, 대학원에서는 S.E. Asian Studies와 Urban and Regional Planning을 전공했어요. 대학원을 졸업하고 나니까 여기(University of Wisconsin Madison)에서 무용을 가르칠 기회를 얻게 됐어요.

 

퍼슨웹> 1994년에는 위스컨신 소수민족 여성 네트워크(Wisconsin Minority Women’s Network)부터 ‘Women of Achievement Award’를 수상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 어떤 공로가 인정되어서 상을 받게 되었나요?

Peggy> 그 상은 지역 사회 발전을 위해 노력한 여성에게 주어지는 건데, 내 경우에는 무용가, 안무가, 그리고 사회 운동가(social activist)로서의 활동을 인정받은 것 같아요. 그렇지만 그렇게 중요한 상은 아니예요.

퍼슨웹> 무용에 뛰어난 소질이 있으시죠?

Peggy> 그렇게 잘하는 것 같지 않은데.

Peggy는 지금 분명히 그 특유의 스마일형 얼굴로 미소짓고 있을 것이다.

 

퍼슨웹> 무용이라는 것 자체가 좋았던 건가요? 아니면, 한국을 이해하기 위한 한 방편으로 한국 무용을 선택했나요?

Peggy> 난 항상 무용을 좋아했어요. 그 중에서 한국 무용은 내가 좋아하는 특별한 무엇이죠. 배우면 배울수록 점점 더 좋아져요. 그리고 한국 무용은 한국 문화를 깊이 이해하기 위한 한 방법임에 틀림없구요.

퍼슨웹> 무용가로서 또는 안무가로서 보기에 몸의 경험(body experience)이라는 것이 정체성 형성에 있어 매우 중요한 거라고 말씀하실 걸로 알고 있어요. 또 탈식민(post-colonial) 사회에 있어서도 몸의 탈식민화 과정(a process of decolonization)은 여전히 계속되어야 한다고 하셨는데, 간단히 말해 ‘무용/춤’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져왔는지?

Peggy> 무용은 몸의 탈식민화를 위한 도정이예요. 나는 한국 무용을 다른 한국의 공연예술들-탈춤, 판소리 등-로부터 분리시켜 생각하지 않아요. 공연의 대가들에 의해 깊은 이해를 얻고 있는 ‘단전(丹田)’으로부터 나오는 힘이란, 우리의 정체성과 뿌리, 유전과 같은 것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신체적 힘의 매우 중요한 개념이예요. 비록 그 과정이 ‘서구적인’ 인식론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일지라도 말이죠. 내 얘기가 좀 지나치게 단순화된 느낌이 든다면 좀 더 얘기를 나누어 봤으면 좋겠네요.

 

 

단전호흡? 두 아이의 엄마로서, Asian Studies의 담당자로서, 무용가로, 안무가로 바쁜 그녀에게 또다시 질문들로 잔뜩 도배된 이메일을 또 보낼 용기가 없어졌다. 그녀의 춤 동작 하나가 수백 수천의 말들을 대신할 수 있는 바에야. 각시탈을 쓴 채 탈춤에 여념이 없는, 혹은 소복을 입고 ‘승화(liberation after great suffering)’라는 주제의 한국무용에 열중한 무대 위에서의 최묘영의 모습을 다시 떠올려보는 편이, 아니, 조만간 있을 그녀의 서울 공연을 기대하는 편이 훨씬 나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한국 무용에, 아니 춤이라는 것 자체에 문외한인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은 내가 각오했던 것에 비해서도 훨씬 보잘 것 없이 좁아 보였다. 그녀가 왜 무용을 시작했으며, 왜 그것을 통해 한국을 이해할 수 있다고 믿고 있으며, 왜 한국을 알리고 싶어하는 걸까. Peggy는 애국잔가보다, 라고 믿은 적도 있었다. Peggy를 좀 알고 있다고 자신했는데.

 

Peggy와 2차 인터뷰를 하기로 한 2001년 7월 3일 화요일 오전 10시. 이번에는 사무실이  아닌 내 방 컴퓨터 앞에 앉았다. 커피를 끓여 오는 동안 Peggy가 이미 대화창을 열어 놓고 있다.

 

 

Peggy> 거기 있어요?

퍼슨웹> 네, 방금 들어왔어요. 안녕하세요.

Peggy> 참, 지난 번에 보내주기로 한 내 사진은 내일까지 꼭 보내주도록 하죠. 그동안 너무 바빠서. 괜찮겠죠?

퍼슨웹> 그럼요. 그럼 바로 인터뷰를 시작할까요? 저를 비롯해서 다른 분들도 Peggy의 춤과 단전에 무척 관심이 많아요. ‘단전’을 어떻게 이해하고 계신가요? 언제, 그리고 어떻게 그걸 배우게 됐죠?

Peggy> 단전에서 비롯되는 호흡은 무술과 명상의 근본이예요. 또 북이나 장구(Korean drums)를 연주하거나 혹은 그리고 한국 무용을 할 때에도 우리는 단전으로부터 호흡을 해요. 그건 ‘氣’ 에너지의 원천이 되는 장소이기도 해요. 나는 내 스승 중 한 분인 이선옥 선생님으로부터 단전에 대해서 처음 배웠어요. 그분은 나에게 살풀이를 가르쳐 주셨는데, 이선옥 선생님을 가르쳐주신 분은 이매방 선생님이구요. 이선옥 선생님은 당신 스스로 불교 수행으로부터 발전시킨 선무(禪舞: Zen Dance)도 가르쳐 주셨죠. 선무는 명상적인 움직임(meditational movement)을 위한 기술이자 현재 그분이 하고 있는 안무의 기초가 되고 있어요. 그 기술은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안무에도 분명 영향을 미치고 있죠.   

 

 

Peggy가 말하는 무술이란 이소룡이나 성룡의 화려한 싸움 기술이 아니라, 불교무술 즉 선무도(禪舞道)를 말한다.  
현재 상명대학 무용과 겸임교수이자 아시아 태평양 공연예술 네트워크 사무총장인 이선옥은 김백초, 이매방, 김천흥 선생에게 현대무용 및 한국무용을 사사받고 도미, 세계적 무용가 마사그래함, 에릭호킨스 등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인물이다. 지난 1984년 뉴욕대에서 선무관련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교수 생활을 한 이선옥은 선무용단(이선옥선무용단)을 창단해 유럽과 미국, 아시아 등에서 300회에 가까운 공연을 펼쳤다고 한다. 2001년 7월경(그러니까 이번 달)에는 호주 타즈매니아 페스티벌에서 ‘색즉시공 2001’을 선보일 예정이라고. 이선옥은 현재 현대불교신문에 ‘선무 건강법’을 연재중이다.
한편 이매방은 1987년에는 ‘승무’로 인간문화재 제27호에, 그리고 1990년에는 ‘살풀이’로 인간문화재 제97호에 각각 지정된 인물로 ‘하늘이 내린 춤꾼’이라는 칭호를 받는다. 주로 여자들만 입학할 수 있는 권번(券番: 일제 시대 기생 조합)에서 유일한 남자 학습생으로 춤을 배웠던 그는 후에 임방울이 이끄는 예술 단체에서 많은 공연을 하는 등 외길 춤인생을 걸어왔다.

 

 

퍼슨웹> 단전이 서구적인 인식론에 속하지 않는다고 지난 번에 말씀하셨는데.

Peggy> 르네상스기 이래의 과학과 의학 생리학에 바탕을 둔 서구의 신체 지형학(geography of body)의 틀 안에서 만일 ‘중심’이란 걸 정의해야 한다면 그것은 ‘심장’이 되기 쉬울 거예요. 피가 정화된 후에 심장으로부터 나와 동맥과 정맥으로 흐르고 그것이 다시 정화의 순환 과정의 출발점으로 돌아온다는 것이죠. 또 ‘심장’은 사람이 ‘느끼는(feel)’ 부분이기도 하고 또 ‘사랑’의 메타포로도 종종 사용되잖아요.
그렇지만 단전을 영어로 정의하자면, ‘밭(rice paddy)’이라고 할 때의 그 의미에 빗대서 ‘혈액의 밭'(blood paddy)이라고 할 수 있어요. 단전은 혈액이 가장 응축되어 있는 곳으로 여겨져요. 사실 이건 맞는 말인데, 왜냐면 여기가 바로 여성의 자궁이 위치한 곳이기도 하니까요.

퍼슨웹> 정말 재밌군요. 사실 제 자신 단전이나 선무 등에 그렇게 익숙하질 못해요. 선무에 대해서 좀 더 설명해 주시겠어요?

Peggy> 아까도 말했지만, 선무는 이선옥 선생님이 발전시킨 명상적 무용 기술을 말하는 거예요. 그건 굉장히 마음(정신)의 집중을 요구하는, 단전으로부터 나오는 움직임이죠. 우리가 명상을 하기 위해 앉은 것과 똑같이 단전을 통해 호흡을 하면서 정신을 온통 집중한 동작으로 무용을 하는 거예요. 이런 동작은 정말 어려운 것 같아요. 무척 강렬하면서도 동시에 매우 고요해요. 이것과 비슷하게, 명상도 그야말로 강렬함과 평온을 동시에 그 목표로 하고 있어요.

 

퍼슨웹> 사실 저는 Peggy가 말하는 몸의 탈식민화(decolonization of body)라는 것이 정확히 무얼 뜻하는지 굉장히 궁금했어요. 단전하고도 관련되나요?

Peggy> 우리 몸의(그리고 마음도 마찬가지죠. 왜냐면 몸과 마음을 분리할 수 없으니까) 탈식민화 과정의 일부분은, 하나의 대안적인 ‘신체 지형학'(an alternative “geography of body”)을 지니는 데 있다고 생각해요. 심장 대신 단전을 중심으로 삼는 것, 그건 분명히 우리의 행동과 심지어는 생각이 비롯되는 완전히 다른 하나의 중심을 만들어내는 거예요. 이런 방식으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우리 몸에 대한 서구적인 인식틀로부터 해방시킬 수 있게 되죠. 또 우리는 단전 중심적 호흡 속에서 자가 치유의 근원도 함께 발견할 수 있어요. 탈식민화의 과정은 또한 정신과 신체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변화시키는 것과도 관련돼요.

 

 

그렇다면 우리의 몸과 정신을 소유하고 있는 건 누구인가. 우리 자신? 일상 생활에서 우리는 어떤 가치들을 받아들여 왔을까. 우리 교육의 특징(본성)은 무엇인가. 그것이 우리를 어디로 이끌고 있을까. 
사실, 좀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나는 어려웠다. 그건, 영어 때문이 아니다(과연?). 그녀의 온몸을 흠뻑 젖어들게 하는 그 어떤 세계 – 그것을 무용이라고 해도 좋고, 아니면 예술이라고 해도 좋다. 혹은 종교적인 것, 혹은 한국적인 것이라고 해도 괜찮다 – 에 나는 손조차 담그지 못하고 있으니. 사후약방문격으로 이리저리 웹 서핑을 하면서 단전에 대해서 선무에 대해서 조금씩 알아갈 뿐이다. 사실 단전은 상단전(腦), 중단전(心), 하단전(제하 3치)으로 나뉜다는 것, 그러나 흔히 단전이라 하면 제하(臍下: 배꼽 밑) 3치(9cm쯤)의 부위를 말한다는 것, 단전호흡이란 이 하단전을 통해 호흡하는 것을 말한다는 것, 인간은 모체에 있을 때에는 단전으로 호흡을 하다가 태어나 성인으로 성장하면서 점차 가슴 머리로 호흡을 올린다는 것, 그래서 죽으면 ‘목숨'(목의 숨)이 끊어졌다고 표현한다는 것, 그리고 단전을 글자그대로 해석하면 丹(붉음)이 있는 田(밭), 즉 충만된 생명과 왕성한 에너지가 있는, 생명의 씨를 받는 좋은 밭이라는 것, 호흡법은 생사 전반의 법이라는 것 등등

 

쉽게 말해 서양식 체력 단련법에 단련될 대로 단련된 내가 가쁜 흉식 호흡을 조절해가면서 아침마다 조깅을 하고 있을 때 Peggy는 우주의 氣를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단전 호흡을 통해 靈肉을 함께 살찌우는구나.

Peggy라는 프리즘을 통과한 한국(무용)의 빛이 무척 이채롭다.

 

 

3. American, Korean-American,
그리고 Korean Studies

 

Peggy는 한국(예술)을 깊이 이해하는 만큼이나 그것을 널리 알리고 싶어하기에 언제 어디에서나 눈코뜰새 없이 바쁘다. 그녀는 최근에도 매디슨에서 “Passage of Oracle”이라는 공연을 가졌고 해외 공연도 함께 준비하고 있다. “Passage of Oracle”은 노예로 끌려 온 아프리카인들, 철도 공사를 위해 미국으로 건너온 중국인 노동자들, 일제 치하에서 견디지 못해 미국으로 건너온 한국인들(반쯤 얼어붙은 압록강을 건넜던 조부모 이야기) 등을 포함, 미국 이민자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녀의 빠듯한 스케줄 때문에 엉겁결에 끝낸 1차 채팅 인터뷰로는 그곳의 현황과 그녀가 ‘지금’ ‘막’ 가지고 있을 생각들을 알아낼 도리가 없는 건 당연한 일. 역시 2차 채팅 인터뷰가 필요했다.

 

퍼슨웹> 1998년도에 위스컨신 매디슨 대학에서 한국인 학생회와 함께 한국학 개설 추진 위원회(Committee for Korean Studies)를 구성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Peggy> 맞아요. 그 위원회 이름이 ‘Tiger 2000’이예요. 난 거기서 faculty advisor역할을 맡고 있죠. 21세기라는 맥락에서 볼 때, 한국과 한국인, 그리고 한국인 이민자 모두는 이 대학 캠퍼스의 커리큘럼을 통해 충분히 재현되고 논의되어야 할 대상이라고 생각해요. 환태평양(Pacific Rim)지역의 급격한 변화를 감안해 볼 때 한국, 그리고 미국 거주 한국인들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아요.

 

퍼슨웹> 한국 문화를 소개하기 위한 노력을 뒷받침해줄 수 있는 (한국의) 교수를 포함해 어떤 형태의 도움을 구하기 위해 애썼던 걸로 기억하는데.  

Peggy> 굳이 교수를 말한 건 아니예요. 이곳에서의 한국학 발전을 지원해줄 수 있는 분이라면 누구든지 좋아요. 물론 이곳의 동창회에서 자금조성에 도움을 주긴 하지만 어려움이 많죠.

퍼슨웹> 그곳에서 직접 한국에 관한 강의를 할 수 있는 사람? 아니면 이곳에서 물심양면 도와줄 수 있는 사람?

Peggy> 둘 다죠. 무엇보다도 이번 인터뷰가 나한테 많은 도움이 된 것 같아 기뻐요. 조만간 한국에서 ‘정신대’를 주제로 공연을 하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퍼슨웹> Peggy의 공연을 꼭 다시 한 번 보고 싶어요. 잠깐 얘기를 돌려서. 한국에서의 경험을 좀 말씀해주세요. 한국 문화를 이해하는 데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Peggy> 내 한국어 실력이 워낙 부족하다 보니 한국어로 의사소통 하는 건 매우 제한적이었어요. 내가 이해할 수 없었던 것들도 굉장히 많았어요. 하지만 인상깊은 것들도 참 많았구요. 한국인들의 열심히 일하는 능력, 빠른 대응, 타인에 대한 존경심(불교와 유교가 깊게 흐르고 있는 것 같았어요), 그리고 한국인들의 에너지. 난 특히 별다른 불평 없이 열심히 일할 수 있는 능력에 굉장히 깊은 인상을 받았어요. 난 무용가, 교사, 음악가, 안무가 등 많은 다른 사람들을 만나는 데 신이 났어요. 서울은 공연 예술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꽤 활기찬 곳이더군요. Korean American으로서, 나는 아마 결코 분단된 조국에서 살아가는 게 어떤 건지 그리고 아시아 통화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한국인들이 지금까지 기울여 온 노력들에 대해서 이해하지 못할 거예요. 또 전쟁도 한국 문화를 형성하는 데 심대한 영향을 미쳤으리라 생각되는데, 난 그것도 그렇게 깊이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어요.  

 

퍼슨웹> 다른 민족들이 한국 문화에 대해 어느 정도 관심을 가지고 있나요? 호기심을 가지고 있던가요?
Peggy> 난 2년 전에 한국학 개설 추진 위원회 ‘Tiger 2000’이라는 조직을 결성했어요. 이 캠퍼스(University of Wisconsin Madison) 내에 한국학을 설치하려고 노력하는 중에, 여전히 한국보다는 중국과 일본에 대한 관심들이 더 크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미국 사람들의 관점에서 아직 한국은 그다지 중요한 나라로 여겨지지 않고 있거든요. 불행한 일이죠. 한국에 대해선 별로 호기심이 없는 것 같아요. 그렇지만 일단 한 번 무슨 프로그램이나 강연을 듣고 나면 무척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해요. 그때서야 비로소 한국은 중국이나 일본과 다른 어떤 독특한 면이 있다는 걸 깨닫는 거죠.
지난 주에 한국 무용에 대한 실기와 강의를 한 번 했어요. 우리 학교 댄스 프로그램의 댄스 캠프에 등록한 학생들과 위스컨신주 출신 교사들이 의무적으로 듣게 되어 있는 수업이예요. ‘의무’니까 아마 처음엔 별로 오고 싶지 않았을 걸요? 그렇지만 한국 무용이 어떤 거다라는 걸 한 번 보고 나니까 질문도 많이 하고, 저한테 와서 처음으로 한국 무용을 봤는데 굉장히 좋더라고, 또 아주 재밌다고도 하더라구요.

 

퍼슨웹> 구체적으로 한국으로부터 어떤 도움이 필요한가요?

Peggy> 먼저, 한국에 있는 대학들과의 교환 프로그램을 만들려고 해요. 세부 사항들에 관해서는 여전히 작업 중에 있구요. 또 미국의 중서부 지방에서의 한국학의 중요성을 인식한 한국 기관들로부터의 지원도 바라고 있어요.  

Peggy는 이메일을 통해서도 나에게, 한국에서의 공연 가능성에 대해 꽤 여러 번 물었다. 그런데 나는 어떤 식으로도 대답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녀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은 이러한 인터뷰 ‘따위’가 아닐지 모른다는 미안함이 몰려온다.

퍼슨웹> 화제를 좀 돌려서 질문을 드릴께요. 자신의 정체성이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생각하나요?
Peggy> 내 정체성이 무엇으로 되어있냐구요?

 

되묻는 걸 보니 그녀는 이 질문에 놀란 모양이다. 하긴, 입장을 바꾸어놓고 생각해보니 그럴 법도 하다. 이런 단도직입적이고 어색한 질문은 역시 인터뷰어의 미숙함 때문이리라.

 

Peggy> 내 정체성의 뿌리는 ‘한국인’이예요. 난 또한 불교도이기도 한데 이것이 ‘한국인임’의 핵심을 수반하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어요. 물론 난 기독교 집안에서 자랐지만 꽤 오래 전부터 불교신자가 되었어요. 또 내 정체성은, 내가 어디에 살고 있건 사회적 변화를 위해 노력하는 데 있기도 해요. 특히 내 자식들과 다음 세대를 위해서 말이죠. 나에게 있어 그 길은 바로 ‘무용’이예요. 무용은 현재와 미래를 문화와 정치, 그리고 역사로 연결시키죠.

 

‘Tiger 2000’을 비롯한 그곳 현황, 그리고 Peggy가 생각하는 자신의 정체성 문제는 역시 2차 채팅 인터뷰에서 좀 더 깊게 이야기됐다.

 

퍼슨웹> 다른 사람들에게 소개될 때 붙는 ‘한국인’이라는 수식어가 어떻게 느껴지나요?

Peggy> 나는 내가 한국인으로 여겨진다는 데 대해 무척 자랑스러움을 느껴요. 그렇지만 한국인이라는 것의 의미는 내가 어디 있느냐에 따라 많이 달라지는 것 같아요. 하와이에 있을 때 한국인은 그냥 여러 아시아 민족 중의 하나 정도로만 여겨졌어요. 그런데 위스컨신주에서 한국인이란 것은 다른 의미를 띠죠. 나는 소수 민족이고, 특히 “Korean American”이예요. 

퍼슨웹> 민족 차별 때문에 절망하거나 힘들었던 적은요?

Peggy> 위스컨신주 매디슨에서 살면서 난 항상 내가, 나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환경에 살고 있는 Korean American 여성이라는 사실을 자각하고 있어요. 종종 불합리, 차별에 대항해 싸워야할 때도 있어요. 꼭 나 자신을 위해서뿐만이 아니라 과감히 표현하지 못하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일 때도 있구요. 그런 게 때때로 꽤 절망스러워요. 이런 일들을 통해 나는 여기 있는 한국인들이 어느 정도 이곳에서의 ‘恨’의 삶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恨’이라는 감정에 대한 Peggy의 관심은 꽤 오래 된 것이었다. 3년 전 Peggy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눌 때에도 그녀는 내게 ‘한’이라는 감정이 무엇인지 되묻곤 했다. ‘한’의 사상이 백의민족 고유의 것이든 아니든, 그리고 ‘한’과 같은 정서를 한국인의 고유한 심성으로 보게 되면 우리 민족의 진취적 기상이 손상된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공명하든 아니든, 어쨌든 ‘한’이라는 것도 감정의 파문일진대 그것은 누군가 ‘바깥’에서 돌을 던질 때 깊어지는 무늬가 아니었던가.  

 

Peggy> 여기 캠퍼스에서 무용을 가르치는 것도 그 한 예가 되요. 현대 무용이나 발레 같은 것은 무용의 주류라고 여겨지지만 한국 무용이나 다른 아시아 쪽의 것들은 그저 “세계 무용”이나 “민족 무용”의 범주의 하나로만 생각될 뿐이예요. 이 범주의 지위는 현대 무용이나 발레보다 낮죠. 다른 형식의 위대한 춤들과 동등하게 한국 무용이 인정받기 위해 우리가  가야할 길은 아직 멀었어요.
 

퍼슨웹> 참, 혹시 소수 민족 여성 운동에 관련되어 있나요?

Peggy> 1980년대에 매디슨에 있는 다른 아시아계 여성들과 함께 “Pacific and Asian Women’s Alliance”라는 이름의 그룹을 하나 만든 적이 있어요. 우리의 첫 행사는 어머니 날에 캠퍼스에서 시위를 하는 거였고, 또 우린 “Take Back the Night”라고 불린 행진에 참가하기도 했어요. 이 행진이 전하는 메시지는 여성에 대한 폭력에 대한 항거였고 특히나 유색 인종 여성들에게서 많은 지지를 받았어요. 우리 그룹은 정말 활발하게 돌아갔어요. 우리는 “Talking Stories: Images of Asian American Women in Film and Literature”와 같은 학회도 가졌어요. 그러다가 우리는 Asian American Studies 프로그램을 캠퍼스에 세우길 요청했고 총장 Donna Shalala에 의해 승인됐어요. 이렇게 해서 우리 캠퍼스에 바로 Asian American Studies가 생기게 된 거예요. 아시아 여성 그룹의 힘과 투쟁 덕분이죠.

 

나도 몇 번인가 Asian American Studies에서 주최하는 세미나의 방청석에 끼어 앉아 본 적이 있다. 아, 그 때 내가 인상적으로 봤던 그 하나 하나의 얼굴들의 역사가 바로 여기에 있구나.

 

퍼슨웹> 인상적이군요. 매디슨에 있을 때 저는 매디슨에 있는 사람들이 꽤 개방적인 마음을 지녔다고 생각했었어요. 그렇지만 아직 해야할 일은 많은 거군요.

Peggy> 차별이란 늘 가시적인 것만은 아니잖아요. 그렇지만 종종 아시아 여성들은 몇 배 더 열심히 일해도 여전히 백인 여성들(혹은 남성들)과 동등하게 보아지지 않는 게 사실이죠.

퍼슨웹> 전적으로 동감이에요.

Peggy> 한국 여성들의 사정은 어때요?

퍼슨웹>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우리 사회에서 인정받으려면 무척 ‘뛰어나야’ 하거든요.

Peggy> 한국 여성들은 가정 일 말고 어떻게 바깥 일을 하고 있죠? 아내나 어머니로서의 역할은요? 결혼하고 나면 주부로서 그냥 집에 있나요?

퍼슨웹> 점점 더 많은 여성들이 결혼 후에도 계속 직장을 나가고 있어요. 그래서 우리는 아이들도 일도 다 잘 처리하는 ‘수퍼우먼’이 되어야 한다니까요.

Peggy> 우린 항상 우리가 무엇을 왜 하고 있는지 자문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균형을 맞추기란 힘들죠. 다시 단전에서의 충만한 마음 상태로 돌아가면, 그것은 우리에게 너무 많은 욕심을 내지 말고 ‘있는 그대로'(just be) 살 것을 상기시키죠.

 

퍼슨웹> 불교에 대해서도 깊은 이해를 하고 계신 모양이죠?

Peggy> 이건 내 경험에 의해 터득한 거예요. 엄마가 되는 최선의 길은 아이들의 행동을 그냥 보아 넘길 수 있는 것, 바로 그것에 있다고 생각해요. 마당(Peggy는 정말 ‘madang’이라고 썼다)에다 애들을 두고 보는 것, 그리고 너무 가까이 가두어 두려고 하지 않는 것 말이예요. 참, 불교도? 아니면 기독교인?

퍼슨웹> 저는 불교를 믿어요. 어쨌든 Peggy는 정말 좋은 엄마인 것 같군요.

Peggy> 내 평생 가장 힘들었던 경험 중의 하나예요. 엄마로서의 경험이 나의 무용을 포함해서 내 인생의 다른 모든 부분들을 형성시켰죠.

 
 

Peggy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었고 여러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이상하다. Peggy의 대답들이 빈 칸을 메우기는커녕, 오히려 이제야 온전히 이렇게 물을 수 있겠다. 아니, 이제야 내가 하려던 질문이 막 생각난다. Peggy는 어떤 사람일까?  그리고 여기에 남는 또 하나의 의문. Peggy는 주먹을 쥐기보다는 양손을 활짝 펼침으로써 엄마, 아내, 소수민족 여성운동가, 무용가, 안무가라는 모든 것을, 아니 그것을 뛰어넘는, 어쩌면 속된 말로 天下를 다 얻은 혹은 얻을 수 있는 Korean American은 아닌지. 단전호흡에서는 호(呼), 즉 내쉬는 숨이 흡(吸) 즉 들이마시는 숨보다 훨씬 중요하단다. Peggy는 모으고 가두기보다는 떨어내고 버림으로써 더 무거워지고 신중해진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