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교육이 곧 학교교육이 아니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이때의 공교육의 의미는 무엇인가? 지금 현재 우리나라의 공교육 하에서는 초등 교육을 의무적으로 실시하고 있는데, 의무교육에 대한 시각은? 민들레에서 시도하고 있는 교육통화의 장점과 한계는? ‘교육’을 바라보는 관점은? 학교교육의 가장 큰 문제점은? 학교 교육의 수정이나 개선이 아니라 붕괴를 말하는 이유는? 등등등…
그러나 미리 솔직히 고백하건대, 현병호 씨를 만나, 이상의 질문들은 거의 하나도 제대로 묻지 못했으며, 따라서 어느 것도 속시원한 답변을 듣고 돌아오지 못했다. 그럼, 지금 이 인터뷰는 도대체 뭐냐? 그렇게 질문하실 수 있겠다. 글쎄… ‘한 근본주의자의 독백?’ 일단 그냥 함께 이 독백을 경청해보심은 어떨지…
잠깐, 이 독백을 경청하기 위해서는 우선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먼저 아주 천천히 읽어주시길… 하나의 간투사들도 무시하지 마시길… 예컨대 이런 것이다. ‘그런’이라고 적혀 있어도, ‘그러……언’, ‘그게’는 ‘…….그…으…게’ 이런 중간 휴지(休止)를 반드시 넣어서 읽어주실 것. 그러니 부디 한번에 이 인터뷰를 모두 읽어치우겠다는 생각은 버리시고, 한 2박3일쯤의 시간을 투자해서 현병호 씨의 말씀을 음미해 주시길…
1. 이 길에 서기까지
홍대입구 전철역 가까이에 위치한 민들레 사무실은 일반 가정집의 반지하에 둥지를 틀고 있었다. 세 개의 방과 마루 겸 부엌, 그리고 화장실 등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반지하의 가정집. 우리가 민들레를 찾아간 그 시간에 현병호 씨는 얼마 전 발행된 <<민들레>> 14호를 발송하러 잠시 우체국에 갔다 한다. 그러나 민들레라는 작고 아담한 공간은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민들레는 드나들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주인이 되는, ‘완전히’ 개방된 공간이었다.
어머니를 따라 민들레를 찾아온 윤용이와 함께 토닥토닥 놀고 있을 즈음, 현병호 씨가 돌아왔다. 잡지 편집인이라고 하면 으레 떠올리던 어떤 꼬장꼬장함, 혹은 삶에 지쳐 있는 표정과는 너무나 다른, 반백의 머리에, 개량 한복을 입은, 시원시원하게 인상좋은 이 아저씨가 현병호 씨란다. 벌써 인상에서부터 한방 맞은 느낌이다. 인사 후, 나도 모르게 내뱉은 첫 마디. “생각보다 젊으시네요…” 처음 뵌 분께, 그리고 머리도 하얗게 센 그 분에게 처음으로 건넨 말이 왜 그것이었는지 지금도 나는 알지 못한다.
퍼 : 많이 바쁘신 거 같은데, 요즘에 무슨 일로 바쁘세요?
현 : 특별히 무슨 일로 바쁜 것이 아니고 사랑방도 이제 막 시작이 되어서 소모임들 꾸리고 그러느라고 바쁘고, 오늘 민들레 15호 기획회의하고 손님들 차다오고(찾아오고), 아이들도 차다오고 하니깐 거의 밤 11시가 되어야 끝나죠.
발음이 재밌다. “차다오고”. “차자오고”라는 발음을, “차다오고”라고 하신다. 그런데 이 말이 현병호 씨의 입에서 나오니 그야말로 제격이다.
퍼 : 아침에는?
현 : 아침에는 9시.
퍼 : 체력이 뒷받침 되나요?
현 : 요즘은 좀 힘에 부쳐요. 1년 반 정도, 2년 가까이 이런 생활을 하다 보니깐, 이러다가 과로사하는 건 아닌가 싶어요.(웃음)
아침 9시에 문을 열고, 밤 11시에 문을 닫는 민들레. 현병호 씨는 여기서 숙식을 해결하고 있었다. 북적북적대는 모습을 보건대, 현병호라는 개인을 위한 공간은 애당초 기대할 수 없을 것 같다.
현병호 씨가 돌아왔으니, 곧장 인터뷰에 들어갈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것은 착각이었다. 우체국에서 돌아온 현병호 씨를 우리보다 먼저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수북히 쌓여 있던 일거리들이었다. 인터뷰 첫 마디를 건넨 이후, 쏟아지는 전화와 어딘가로 보내야 할 서류 작성 등. 현병호 씨는 우리에게 양해를 구한 후, 분주히 일을 처리했다. 한 시간쯤 지나고야 인터뷰는 계속될 수 있었다.
퍼 : 민들레 하시기 전에는 무슨 일을 하셨나요?
현 : 민들레 하기 전에는 보리출판사에 있었드랬어요. 보리출판사 그만두고 바로 민들레 시작한 것은 아니고, 그 전에 그 얘기를 하자면 되게 장황한데, 그냥 민들레를 시작하게 된 게 느닷없이 한 것은 아니고요. 한 10년 정도 교육운동에 관심을 가진 것이 10년 넘었어요. 그 연장선에 있는 것이죠. 보리출판사에 있기 전에는, 공동육아 그 쪽 일도 있었고요. 어린이 캠프, 교육 책도 번역하는 일도 좀 하고, 귀농도 한 적 있고.
좀 심상치가 않다. 출판사 일, 그건 예상가능한 부분인데, 어린이 캠프, 교육 관련 번역 일, 공동육아, 귀농… 내가 정말 이 사람의 생각, 삶을 좇아갈 수나 있을까? 그러고 있는데, 불쑥 윤용이가 들이닥쳐, “누나, 밖에 맛있는 거 있는데, 안 먹어?”, “어, 그래. 좀 남겨놔.” 그렇게 듣고 있다. 지금 이 이야기를…
현 : 그냥 어떻게 하면 잘 살아볼까 하고 무진장 애를 썼는데, 교육운동에 뜻을 좀 갖게 된 게, 20대에 길을 잘 못 찾고 헤매면서, 그렇게 헤매면서 내가 왜 이렇게 됐나 하고 곰곰이 돌아보니깐, 내가 학교교육을 받아서 이렇게 되었구나 그런 게 너무나 선명하게 보이더라구요. 물론 다 학교 다니고, 길을 잘 찾아가는 친구도 있기는 하지만은 나만 그런 게 아니고 대체로 많이 헤매거든요. 두 분은 어떠신지 모르겠는데, 저는, 저는 좀 많이 힘들었어요. 20대가. 10대에 해야 할 고민을 안 하고 건너뛰면서 시험 공부하느라고 제대로 생각할 것을 못하고, 제대로 경험할 것을 못하고 20대에 그 과정을, 말하자면 자기를 돌아보는 과정을 20대에야 진지하게 하게 되었으니깐, 대강대강 살려고 하자면은 그렇게 살수 있겠지만, 고민이 조금이라도 있으면은 무척 힘들어지는데, 지금 이런 학교, 이런 교육 구조에서, 지금 탈학교 모임 아이들 보면은 못 견디는거죠. 뭐, 조금이라도 생각을 하면서 살려면은 학교에서는 그 생각을 못하게 하니깐, 저도 스물 여덟 그 무렵에 <<서머힐>>이라는 책을 그때 처음 봤거든요. 보고 되게 혼자서 충격을 받았어요. 세상에 이런 학교도 있구나 하고. 이런 교육을 받았다면은 정말 달라졌겠다는 그런 생각이 들면서, 닐 책도 번역하고 그랬어요. 그때. 제가 서머힐을 보고 닐한테 반했지요. 닐한테. 그게 교육에 뜻을 두게 된 처음 계기였어요.
‘서머힐’은 아동심리학자이며 아동교육 실천가인 A.S. Neill이 권위주의적 교육을 반대하고 1921년 세운 학교 이름이다.
현 : 그리고 나도 초등학교 교사가 돼야겠다 그래서 교대 가려고 준비도 하다가 제가 길을 찾으면서 내가 정말 무엇을 잘 할 수 있을까, 정말 좋아하는 것이 뭘까 그걸 생각을 하다가 어려서부터 쭉 과정을 돌이켜보니깐, 아이들을 좋아하더라고, 아이들하고 같이 지내는 거를. 그건 내가 아이일 때도 그랬고, 어릴 때도 친구들하고 놀기보다 애보면서 놀았으니깐, 그리고 계속 커서도 주위에 늘 아이들이, 그렇게 친하게 지내는 아이들이 있었고…
이때, 윤용이 녀석, 방문을 열고, “이거 가져도 돼요?” 한다. 그래 그래… 그냥 사람 좋은 미소로 답하는 현병호 씨.
현 : 그러면서 아이들을 돕는 일을 하면 참 좋겠다 싶어서 그 생각이 인제 학교 선생님 되면 좋겠다, 초등학교 교사가 되면은 좋겠다, 그 서머힐 같은 학교도 만들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했지요. 근데 그 때 닐 연구회 같은 것도 생겨나고, 처음 12년 전, 그랬었죠. 지금 그 때 꾸던, 머리 속에 그리던 것을 지금 말하자면 사랑방을 만들고, 이게 그 연장선에 있는 거죠. 지금도 우선 여기서 가능한 도시형 대안학교 모델 같은 걸 준비를 하고 있거든요. 사랑방도 사실은 이름이 사랑방이지, 어떻게 보면 학교나 다름이 없어요. 지금 아이들 30명, 자주 오는 아이들이 30명 정도 되거든요. 학교를 다니지 않는 아이들이 거의 대부분이죠. 소모임하고, 검정고시 공부도 하고. 전혀 다른 형태의, 아이들이 스스로 꾸미는 그런 학교같은 거죠. 우리는 도와주고.
민들레는 얼마 전 이사를 했다. 사랑방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서라는데, 여기서 말하는 사랑방 모임 공간이란 탈학교 아이들과 학부모들을 위한 공간으로, 민들레가 생각하는 대안교육 공간을 가리킨다.
현 : 제가 받은 교육이 하도 좀 분할 정도로 어떻게 그런 걸 교육이라 하면서 시킬 수 있나 할 정도로. 그러니까 제가 민들레에 계속 해서 쓴 게 우리가 받아온 교육이 과연 어떤 교육이었는가 그게 공교육의 현장을 둘러싼 정말 그런 교육의 실체, 그러니까 우리가 막연히 잘못된 교육이라고 하지만 구체적으로, 그냥 막연히 입시위주, 이게, 사실은 이게 문제가 아니고, 입시위주? 이건 그냥 피상적인, 드러난 모습일뿐이지, 그 배경에 깔려있는 그런 어떤 삶의 철학이랄까? 그런 것들이요. 그 세계관, 사회철학 같은 게, 사실은 다 깔려있는 거잖아요, 그 교육의 형태 속에. 그걸 좀 정말 정확하게 보고 그 문제를 정확하게 보면은 그 해결책도 거기에 다 들어있다고 봐요. 그러니까 대안을 찾는 게 물론 그게 필요하지만은, 또 해서 안 될 것을 안 하면은 그것 자체가 이미, 그러니까 변화, 대안이 될 수 있는 거잖아요. 그러니깐, 차려, 열중쉬엇 이것을 왜 해야 되나? 앞으로 나란히 왜 해야되나? 그, 그, 거기에 대해서 의문을 갖고, 아, 이게 할 필요 없는 거구나 느끼면 그거 안 하면 되잖아요. 그러니까, 그냥 그런 것부터 이제 말하자면, 새로운 교육으로 가는 거지요.
차렷! 교장 선생님께 대하여 경례! 바로! 열중 쉬어!
매주 월요일 아침이면 운동장을 울리던 저 힘찬 구령 소리에 몸이 굳어지던 시절이 있었다. 조례대 단상 위에는 교장 선생님이 뒷짐을 지고 계시고 단상 아래에는 선생님들이 한 줄로 늘어서서 역시 뒷짐을 진 채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는 역시 뒷짐을 진 우리들이 선생님을 마주 보고 도열해 있었다….
우리는 발이 저리고 때로 발가락이 시려빠질 듯 해도 뒷짐을 진 채 저 훈화가 끝날 때까지 장승처럼 꼼짝 않고 서 있었다. 마음은 온통 발가락에 가 있어도 눈은 단상 위를 바라보며 열심히 ‘열중’하는 표정을 짓고 서 있었던 것이다. 우리들 앞에 도열한 선생님들이 보내는 감시의 눈초리를 피하기 어려웠을뿐더러, 뒷짐을 덜려고 꿈지럭거리며 잡담을 하다, 슬며시 뒤로 다가온 훈육 선생님에게 느닷없이 정강이를 까이는 봉변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현병호, <열중 쉬어! 차려! 앞으로 나란히!>, <<민들레>> 1999년 1월-2월 창간호 중에서)
현 : 그리고 대안을 찾는 사람들이 같이 힘을 모을 수 있게 중간 다리 역할을 하고, 그러니깐, 지금 인터뷰가 제대로 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그냥 되는대로 이야기를 하자면은 민들레가 하는 큰, 그러니까 크게 가닥을 잡자면은 뜻이 통하는 사람들이 같이 모여야 뭔가 일이 되니까, 지역에서 그런 모임들이 생겨 날 수 있게 돕고, 그러고 이제 그렇게 사람들이 깰 수 있게 그 자극을 주고, 그러면서 계속 퍼뜨리는 거죠. 지금 민들레 독자가, 약 2,500명 정도 되는데, 진짜 그 절실한 사람들이 민들레를 보는 거잖아요. 음… 그러니까, 그 운동성이 있는 것 같아요. 따로 광고를 안 해도 계속 알음알음으로 퍼져 나가고 있거든요. 사람들이. 그러니까 그런 모임들이 생겨나고.
현 : 앞으로 저는 지금 교육, 학교 교육이니 시끄럽지만 그렇게 어둡지 않은 것 같아요. 민들레를 만들다 보면은 그런 좀 다른 생각을 하고 길로 찾아 나가는 사람들이 많이 보이잖아요. 그런 사람들 보면은 우리 나라 사람들 열정이 정말 대단하다. 교육열도 대단하다지만, 그 삐딱한 교육열도 대단하지만 그 반작용으로 이런, 그런 좀 길을 찾는 사람들, 그게 에너지가 아주 대단하거든요. 그러니까 저는 그렇게 어둡지가 않은 것 같아요. 지금 잘 가고 있다. 과도기의 이제 예전 게 무너지면서 혼란이 좀 있을 뿐이지 나아갈 방향대로 잘 가고 있다 그런 느낌이 들어요. 나는 이민 가고 싶은, 설령 내 아이가 있다고 해도 이민가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어요. 여기서, 할 일도 너무 많고, 이렇게 재밌잖아요? 그 뭐, 캐나다나 그런 데 가면 할 일이 없을 거 같애. 왜냐면 그냥 잘 먹고 잘 사는 거밖에 뭐 있을까? 그냥…
잘 먹고 잘 사는 것. 많은 사람들이 꿈꾸는 이상적인 미래지만, 막상 그것이 이루어진다면 삶은 너무 심심해질 것이다. 근데 한편으로 현병호 씨는 천성적으로 낙관론자 같기도 하다. 이 지점에서 아, 끊기 어려운데, 그냥 치고 들어가서 질문한다.
퍼 : 미래를 긍정적으로 보시는 거 같은데, 지금 하시는 일들, 예를 들면 탈학교 모임이라거나, 사랑방에 오는 사람들, 혹은 뭐 민들레가 독자가 점점 늘어나는 이런 부분들로 인해서 그런 생각들을 갖게 되시는 거죠?
인터뷰 초반, 난 이렇게 섣부르게 질문하고 있었다. 아직 현병호 씨의 말하기 특성을 잘 감지하지 못한 것이다.
현 : 음… 구체적으로 그런 게 이렇게 잡히니까, 그렇긴 한데 그런데 전반적으로 음, 저는 좀 뭐랄까? 이렇게 말해도 될까 모르겠는데, 저는 그 진보랄까? 아니면 사람의 의식의 성장이랄까? 진화? 단순히 생물학적인 진화만이 아니고, 그런, 영적인 진화라고 할까, 그걸 좀 믿는 편이에요. 음.. 그러니까, 그 나는 교회는 안 다니지만은 어떤 큰, 그 말하자면, 이 우주를 이렇게, 세상을 말하자면 유지시키는 신의 섭리라고 하든, 그런 큰 뜻이 있다면, 그러니까, 사람이 아무리 잘못되도 잘못될 수가 없는 그런, 음.. 그러니까 결국은 다 모든 사람이 다 이렇게 더 나은 단계로 나아가고 있는 과정에 있고, 그러기 위해서 자꾸 이렇게 필요하다 할까, 다시 태어나 뭔가 이렇게… 이런 말 하면 또, (웃음) 그렇게 하면서 진화에 간다고 믿고 있어요. 좀 낙천적이죠. 이번 생애에 다 못하면 다음 생애에까지 느긋하게 생각하는…
이.생.포. 언젠가 우리 퍼슨웹 뒷풀이에서 누군가 내뱉은 말이다. “이번 생은 포기한다…” 이 부분의 현병호 씨 말씀은 그 말을 생각나게 한다. 물론 맥락은 다르지만. “이번 생에 다 못 하면 다음 생을 기약한다.” 이번 생을 포기한다는 건 때로는 절망일 수 있지만, 사실은 그 말을 내뱉었던 퍼슨웹의 그 사람이나, 혹은 현병호 씨나 모두, 절망까지도 감싸안는 삶의 본원적 생명력을 이야기하고 있었을 것이다.
2. 교육적 상상력의 아름다운 실천
– 도시형 대안학교
민들레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들었던 생각 중 하나. 민들레에서는 학교 교육 그 자체를 비판하고 있지만, 학교 내에서의 변화도 굉장히 중요한 부분 아닐까? 현병호 씨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그런 질문 자체가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용감하게 질문했다. 무식하면 용감할 수밖에.
퍼 : 학교 내에서의 변화도 굉장히 중요한 문제 아닌가요?
현 : <<민들레>>가 얘기를 아주 안 하는 것은 아니거든요. 근데 별로 안 하는 편이죠. 사실은.
퍼 : 그것보다는 다른 부분에 더 집중해야 되다는 생각하시기 때문에?
현 : 그러니깐, 학교 안의 변화는 전교조에서 하고, 많이들 하고 있으니깐, 민들레는 그것까지 다 할 수, 물론 역부족이기도 하고, 거의 필요 없어서 안 하는 것이 아니고, 민들레가 그냥 다 할 수가 없기 때문에 안 하는 것일 뿐이지, 그러니까 저희가 학교 안의 변화에 대해서 얘기를 한적은 그러니까, 저희는 학교 안이든 밖이든 지금 교육문제를 푼다고 그럴까. 열쇠가 자율성이라고 봐요. 그러니까 학교 밖에서도 홈스쿨링하는 사람들도 부모가 아이 그렇게 다그치면서 그렇게 하면은 그거 대안 아니거든요. 홈스쿨링이 그 자체가 대안인 거는 아니지요.
홈스쿨링(homeschooling)은 가정학교를 말한다. 학교 가기를 거부하는 아이들, 혹은 의무교육을 거부하는 부모들을 중심으로 가정에서 부모들이 자녀를 대상으로 교육하는 형태이다. 최근 새로운 대안교육의 형태로 부상하고 있는데, 현재는 주로 초등 단계의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 홈스쿨링 그 자체가 대안은 아니라는 말은 결국 학교교육이냐, 가정학교냐, 혹은 그밖의 또 어떤 형식이냐가 관건이 아니라는 말이다. 문제는 ‘자율성’에 놓여 있다.
현 : 그러니까 학교 안이 그런 규율을 만들고 지키고 하는 문제, 그러니까 저희가 인제 그, 자율에 대해서 계속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그 부분, 탈학교실천연대에서도 계속 그런, 말하자면 자율고양운동, 그런 학교민주화, 그거지요. 그러니까 자율성이라는 게 결국 민주화, 학교가 민주주의를 가르친다고 말은 하지만 거꾸로, 실제로는 거꾸로 하고 있다는 걸 다 알잖아요. 그러니까, 말로만 하지 말고 이제 실제로도 하자 그 이야기지. 전인교육도 말로만 하지 말고. 그러니까 대안교육이나 제도 교육이나 하는 이야기는 똑같아요. 전인교육하자는 이야기지. 근데 제도교육 안에서는 말로만 한다는 거죠.
이런 과격한 이야기를 이렇게 조용조용히 이야기하니, 마치 딴 이야기를 하는 거 같다. 그러나 조금만 정신 차리고 들어보면 아, 지금 현병호 씨는 얼마나 과격한 내용을 거론하고 있는가. “학교, 거짓말하는 거 말고, 뭐 제대로 하는 거 있어?”
사랑방 이야기
그렇다면 현병호 씨가 생각하는 대안교육의 모습은 무엇인가? 이제 그 부분에 귀를 기울여보자. 우선 앞에서도 얼핏 거론이 되었지만, 지금 민들레에서 하고 있는 일은 잡지 <<민들레>>를 만드는 일 이외에, 사랑방을 운영하는 것이다. 사랑방은 현병호 씨의 말을 따르자면 도시형 대안학교의 한 모델이다.
현 : 그런, 지금, 어쨌든 우리가 받은 교육을 정확히 보고 지금 우리 환경에서 가능한 대안들, 좀더 많은 사람들이, 저는 그래요. 지금 도시형 대안학교 모델 같은 것도 좀, 좀더 많은 사람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그런 모데엘(모델), 아주 근본적인 대안은 못 되더라도 지금 당장 윤구병 선생님처럼 그렇게는 못 되더라도, 공동체 만들어서 그런 몇십년 내다 보면서 그렇게 하는 것도 필요하긴 하지만 우선, 저는 우선 당장 정말 학교 때문에 망가지는 아이들한테 도움이 되는 것도 필요하다 싶고, 탈학교 모임이나 이쪽 그러니까 민들레를 통해서 그나마 힘을 되찾는 아이들이, 길을 찾는 아이들이 그래도 좀 얼마가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주위에서 그런 일들이 있으니까. 아이들이 저엉말 몇 달 사이에 많이 변하거든요. 그래도 큰 아이들이라서 더 힘들긴 한데, 그래도 조금만 도와주면은 휠씬 더 나아지는데…
도시형 대안학교라는 말은 상당히 의미심장하다. 지금 현재 특성화 학교라고 하여 제도권 내에서 대안학교로 인정받고 있는 학교뿐만 아니라, 아직까지 제도권 내에 편입되지 못한 대안학교의 경우, 주로 시골에 위치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는 우선 대안학교들이 충분하지 못한 재정을 가지고 학교를 마련해야 하기 때문에 주로 시골의 폐교를 구입한다는 점과, 또한 많은 경우, 대안 학교가 자연친화적인 교육을 내세우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현병호 씨가 생각하는 대안학교는 그런 모습과는 조금 다른 차원에 놓여 있다.
현 : 일단은 그런 뭐랄까, 교육과 관련해서 우리 사회에 퍼져 있는 통념들 그런 걸 깨는 작업, 교육=학교라는 통념, 지금은 이제 그건 좀 웬만큼 깨지고 있는 것 같아요. 처음 민들레에서 타겟을 잡은 게 그거였거든요. 교육=학교라는 그 통념. 이제 그러면서, 그런 학교 밖의 대안들을 소개하고, 또 그리고 그런 통념들은 너무 많지요. 온갖 그런 것들 찾아서 생각해 보는 기회를 갖는 거, 그게 민들레가 할 일인 거 같아요.
‘교육=학교’ 너무나 익숙한 구도여서,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는, ‘아니 그렇다면 민들레에서 말하는 교육은 뭘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 보면, 우리 주변에는 ‘사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이미 학교를 벗어난 교육이 범람하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고 해서 민들레가 주장하는 것이 그런 사교육의 모습은 아닐 터. ‘교육=공교육(학교교육)+사교육’이라는 구도를 벗어나야 한다. 상상력이 필요해지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현병호 씨가 말하고 있는 ‘도시형 대안학교’, 도시 속에서 가능한 대안학교, 사랑방으로 시도하고 있는 그건 과연 어떤 모습일까?
퍼 : 사랑방 소모임에 상시적으로 결합하고 있는 선생님들이 계시는 건가요?
현 : 그렇죠. 그룹 과외 교사라고 할까? 그런 사람들이 있는 거죠.
퍼 : 지금 현직 교사 하시는 분들?
현 : 아니요. 대체로 이제 대학 갓 졸업한 친구들이나 아니면 나이가 드신 분들, 이 중에서도 주부, 그러니깐, 집에서 그냥 살림하시는 분들도 있고, 그냥 이런 쪽에 관심 있는 분들이…
현 : 아이들 중에 요가를 하고 싶어하는 아이들이 있으면 요가할 사람들, 게시판에 붙이거나 아니면 탈학교 모임 홈페이지 게시판에 올리고, 그러면 일단 사람이 모이고, 사람이 모이면 도와줄 사람을 찾고, 어른들이 도와주죠. 그러니까 그렇게 해서 연결이 되면은 그렇게 해서 시작이 되는 거죠. 그러니까 아이들이 일단 뭐, 자기하고 싶은 것을 제안을 하면은 자기들끼리 그렇게 만들어가지요. 그런, 그냥… 지금은 검정고시 같은 것들도 그렇게 하고 있고…
현 : 근데 문제는 부모들이 움직이지 않는 거예요. 그러니까 아이들, 지금 학교를 그만둔 아이들은 어렵게 어렵게 학교를 그만 두잖아요. 부모들이 그래, 너 그만둬라 하는 부모들은 진짜 극소수거든요. 없지는 않아요. 오히려 그만두기를 바라는 부모들도 아주 드물게 있는데, 에이, 학교도 안 그만두냐, 이런 식으로, 아니 진짜 좀 깨어있는 부모님들 중에는 그런, 초등학생, 지금 애가 6학년인데 학교 안 다니겠다고 하면은 당장 그만, 근데 너무 학교 다니는 걸 재미있어 해서,(웃음) 그런 분들도 있고, 그런데 대부분은 학교 안 다니면 완전히… 자퇴하겠다고 하면 남세스러워서 이사갈 궁리까지 하는 부모들이 많으니까 그러니까 이런 데 아이들이 오는 걸 그렇게 긍정적으로 보는 부모들이 별로 없지요. 탈학교 모임 때문에 아이들, 말 안 들어서 학교 그만두고 그런다고 이제 걱정하는 부모들, 근데 일단 그 부모들하고 소통할 수 있는 그런 길을 찾고 있어요, 검정고시 같은 것이 그 중간 고리 역할을 할 것 같은데, 일단 검정고시를 우리가 책임을 지겠다는 거죠.
학교 교육을 비판하는 민들레에서 검정고시를 공부하는 아이들이 있다는 말은 좀 의외로 들린다. 그러나 민들레에서 검정고시는, 변하고 있는 학생과 변화하지 않은 학부모의 접점으로서 활용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민들레를 거쳐간 아이들이 사회 밖이 아니라 안에서 생활할 수 있게 도와주어야 한다면 검정고시는 적극적으로 활용해야할 제도일 수 있을 것이다.
현 : 사실 민들레 오는 아이들은 이미 그렇게 걱정 안 해도 웬만큼 자기 길을 잘 찾아가고 이제 그러니까 이제 그런 아이들의 경우에는 그냥 학교를 안 다니는 것보다는 그냥 다녀서, 그냥 졸업장 받고 그렇게 무난하게 그냥 사회에 적응하는 거요, 말 그대로. 그냥 사회가 길들인 대로 그냥 그렇게 그렇게 성장해서 사회에 잘 적응하는, 그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아요. 그냥 다 그냥 뭐, 제가 말하면은 사실은 그, 그거 사회가 유지되기 힘든 측면도 있지요. 사실은 저도 여기 오는 아이들은 적응을 못했었기도 하지만 안 하려고 하는 아이들인거죠. 근데 음… 지금 이제 그러니까 적응이라는 말이 사실은 너무 애매한 표현이고, 환경에 적응하기보다 환경을 바꾸고 싶어하는 아이들이니깐, 이런 아이들이 있고, 그냥 그렇게 환경에 적응을 해서 이 사회의 틀을 안정시키는 그런 역할을 맡는 아이들도 있을 수 있는 거죠. 음…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사는 것처럼 보이는 아이들. 근데 저는 그런 아이들도 그래도 사람의 본성이랄까? 그게, 뭔가 좀 그래도 태어나서, 태어난 이상 좀 잘 살고 싶어하는 마음들이 있잖아요? 의미 없이 죽고 싶지는 않잖아요? 개죽음 하는 걸, 원하는 사람은 없잖아요? 그러니까 그런 사람의 그런, 타고난 심성이랄까? 기본적인 사람이면 누구나 다 갖고 있는 거, 근본적인 사랑같은 게. 그렇게 걱정할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그래도 좀더 그런 친구들이 좀더 정신을 차리면 좋겠다 싶기는 하죠. 그러면서 서로 자극을 주기도 하고, 그렇지요. 여기 오는 아이들이.
이제야 조금씩 현병호 씨의 말투에 익숙해져 가려 한다. 이 분의 말 속에, 간투사가 많은 것, 그건 이 사람이 지금 이 문제를 너무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으며, 그 고민 속에서 한 단어, 한 단어를 선택하고 있구나 하는 느낌을 받게 한다. 스스로 고민하고 스스로 해결 방법, 위안을 찾고… 그렇게 힘들게 온 몸으로 말하고 있다.
퍼 : 여기 처음에 아이들이 어떻게 알고 오는지요?
현 : 그 <<민들레>> 책을 보고 오는 아이들도 있고, <<학교를 넘어서>> 책을 보고 오는 아이들도 있고, 또 뭐, 처음에는 책보고 왔죠. 부모가 소개해서 오는 아이들도 있고, 알음알음으로 인제 <<민들레>> 책을 보고 민들레 한번 가봐라, 인제 주위에서 모였는데 그 아이들하고 같이 이렇게 활동하는 게 신문에, 방송에 보도가 되면서 갑작스럽게 이제 또, 갑작스럽게 늘어났죠. 재작년 7,8월 그 무렵에 한참 시끄럽고 할 때, 그 때 뭐, 아이들이 신문 방송 엄청 많이 나갔어요. 나중에는 피곤해서, 그러면서 알려져서…
현 : 지금은 뭐, 그러니까 탈학교 모임 홈페이지가 상당히 활발하거든요. 아이들이 하루에 게시판에 보면은 3,40건씩 이렇게 올라가니깐, 근데 그 저, 저희도 탈학교 모임에 오는 아이들 얼굴 모르는 아이들도 있어요. 여기에 오는 아이들말고는. 그까, 게시판에서 주로 보는 아이들도 꽤 되고, 그러니까, 저… 탈학교 모임은 사실은 친목모임이죠. 그런 아이들, 학교를 나오면 친구를 만날 기회가 없는데, 그런 모임에 나오고, 끼리끼리 모이고, 그러는 것 같아요. 초기에 민들레 오던 아이들 하고, 요즘 탈학교 모임에 오는 아이들, 좀 성향이 다른 아이들이 꽤 많이 있어요.
퍼 : 어떻게 다르죠?
현 : 이전에 오던 아이들은 정말 고민을 많이 하고 진짜 문제 의식이 아주 뚜렷한 아이들이 많았거든요. 대부분은. 근데, 요 한 1년 사이에 그렇지 않고 그냥 쉽게 생각하고 그냥 학교를 나오는 아이들이 있어요. 그러니깐, 그냥 학교 다니기 싫어서 안 다니는 아이들도 있고, 그런 아이들이 사실은 많죠. 그러면서 탈학교 모임 분위기,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은 분위기가 예전처럼 분위기가 좀 진지한 분위기라기보다는 가볍고, 그러니까 음… 어떻게 보면 요즘 아이들답다고 그럴까? 그런 모습들이 좀 있죠. 아이들은 어떻게 보면 다들 애늙은이같이 다들…
탈학교 모임은 <<학교를 넘어서>>의 저자 이한 씨가 만든 운동단체이다. 대학생과 고등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대안교육공간의 구축과 확산, 학력제도의 폐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교육재정분배의 실현이라는 세 가지 목표를 내걸고 활동하고 있다.
교육네트워크
좀더 상상력을 발휘해 보시라. 도시형 대안학교가 과연 그것뿐인가? 이런 건 어떨까? 망망대해 속의 섬과 같은 대안 공간이 아니라, 이 도시 전체를 그런 대안의 공간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면? 도시인들을 독자적 개체로 분리시켜버리고는 다시 화합시킬 줄 모르는, 그 벽들을 모두 허물어버릴 수 있다면…
현 : 음… 그… 저희가 지금 사랑방을 시초로 해서, 사랑방이 말하자면 도시형 대안학교를 만들어 가는 그런 전진기지랄까 그런 셈인데, 그러니까 저는 도시형 모델, 우선 다른 모델도 많이 있겠지만은 도시에서 가능한 모델 중에, 도시 안에서도 가능한 모델은 아주 많겠죠. 아주 많은데, 저희가 좀 현실적으로 음… 대안으로 생각하는 거는 벽이 없는 학교 모델같은 거, 네트워크형 학교랄까? 학교 건물이 없어도, 그러니까 지역사회의 전, 말하자면 서울이면 서울 전체를 그런 학교로 삼는 거죠. 학교. 교육자본이 사회에 널려 있잖아요. 그러니깐 그걸 최대한 활용해서, 그러니까 교육이라는 게, 삶… 지금 우리 교육이, 삶과 동떨어진 그런, 그렇게 인제 진행되는 게 문제잖아요. 그러니까 그걸 해결하기 위한 그런 방안이기도 하고 지금 뭐 시골의 특성화 학교들, 특성화 교과라고 해서 하는 게 잘해야 스물 몇 가지, 서른 가지 이런데, 실제로 사회 교육자원을 활용해서 하다보면 수백 가지 만들 수 있잖아요. 그리고 비용도 휠씬 더 적게 들이면서.
교육 네트워크란 이런 것이다. 내가 중국어를 할 수 있다면, 나는 중국어를 배우고 싶은 사람에게 중국어를 가르쳐준다. 그런데 나는 수영을 배우고 싶다. 그러면 수영을 할 수 있는 사람에게서 수영을 배운다. 그런데 누가 중국어를 배우고 싶어하며, 누가 수영을 할 수 있는지 알 수 없다. 그때, 민들레에서 뭔가를 가르쳐 줄 수 있는 사람과, 뭔가를 배우고 싶은 사람들을 서로서로 연결해주는 역할을 담당하여, 사람들 사이의 네트워크를 형성해주는 것이다.
현 : 그런, 생활과 교육이 분리되지 않고, 삶의 현장 속에서 교육이 가능한 그런 모델? 그러면서 스스로 이제 자기를 말하자면, 그러니까 자기능력을 개발할 수 있는, 어떤 자율성이 최대한 살려지는 시스템, 누가 이렇게 떠넘겨 주는 게 아니고, 자기가 알아서 찾아갈 수 있게, 아이들이 인제, 앞으로 사회는 그렇게 계속 차다가지(찾아가지) 않으면 뭐 학교에서 배운 걸로 평생 써먹는 사회는 아닐 게 분명하잖아요. 그런, 그 뭐, 아이들, 자기가 배우고 싶은 것 여기저기 찾아다니면서, 스스로 배운다고 그럴까 그런 시스템을 만드는 거, 그게 지금 이제, 사랑방을 통해서 하고 있는 작업이지요. 실제로는 미국에서 2,30년 전에 시도가 되어서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데 고 단점 같은 걸 조금만 보완하면 잘 될 거 같아요. 우리가 학교라는 틀에서 좀 자유로워지면은 아주 다양한 방식으로 시도해 볼 수 있는데, 좀 상상력이 필요한 것 같아요. 교육문제를 푸는데도 그렇고, 우리는 너무나 상상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커놓으니까, 문제를 구태의연하게 좀 풀어 가는 것 같은데
미국에서 최초로 조직된 ‘학습 네트워크’로 시카고에 있는 ‘학습 교환소(Learning Exchange)’가 있다. ‘학습교환소’에 등록을 하고 있는 사람 수는 시카고 권에 속해 있는 사람만 해도 4만3천 명(81년 5월 현재)에 이른다. 그 정도의 조직을 움직이기 위해서 사무실에는 단 세 사람의 상근자와 카드함, 전화가 갖추어져 있다. 실제로 이 곳에서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다리를 놓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단순한 중개 역할이라서 가르치는 이로 등록한 사람과 배우는 이로 등록한 사람만 있으면 필요조건이 갖추어진 것이다.(오오누마 야스시, <배움의 연대, 학습네트워크>, <<민들레>> 통권 13호, 2000년 1∼2월호 중에서 발췌)
퍼 : 실제로 어느 정도 이루어지고 있나요?
현 : 지금 시작한 지 3달 정도 되는깐, 실제로 지금 한 달에 한 열건 정도. 얼마 안 되죠?
그게 시카고 같은 데서 모델이, 시카고 모델 같은 거, 그걸 참고로 했는데, 그게 좀, 거기서는 센터의 운영자가 복덕방처럼 중계 역할을 다 해주는데, 그러니까 그게 좀 힘들거 같아요. 민들레 회원들 정도는 연락처로 넣어도 어느 정도, 그러니까 일반인들도 회원이 되어서 규모가 좀 커지면 따로 이제 운영이 되어야 될텐데 지금은 일단 학습 네크워크, 이게 제대로 되려면 회원수가 몇 백명, 3,4백명 이상은 되어야 시스템이 웬만큼 돌아갈 것 같아요. 그 때까지는 음, 뭐…
퍼 : 지금은 한 몇 명 정도가 가입을?
현 : 지금은 민들레 여기 올라 있는 사람들말고, 민들레 독자는 누구나 활용을 할 수 있는 거니까, 한 4,50명 정도, 4,50명 되는 거 같아요. 지금 민들레 인터넷 홈페이지, 인터넷을 통해서 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일 거 같아요. 지금 홈페이지를 만들고 있는데, 거기서 필요한 걸 바로 연락하고 그러면 일종의 벼룩시장, 교육 벼룩시장 같은 게 되는 거죠. 그러니까 저는 그게, 부작용도 있을 수는 있을 텐데, 근데 그런 것을 감안하더라도, 지금 교육시장 구조, 학원, 학교가 그 구조에서 말하자면 제3의 시스템이 되는 거죠. 물론 돈을 주고받기도 하겠지만, 대체로 보면은 돈 없이도 많이들 하거든요. 그런 인간적인(목소리 낮춰서), 그 모델들, 지금 지역통화들도 사실은 잘 운영이 안되고 있는데, 다들 취지는 좋다고 공감을 많이 하고 소개는 많이 되지만은 실제로 그러니깐 운영이 잘 안 되는 그런…
교육 네트워크는 아직 활발하게 시행되고 있는 단계는 아닌 듯 했다. 그러나 머리 속의 상(像)을 실생활 속으로 옮겨 놓고자 하는 움직임은 미미하게라도 시작되고 있었다. 상상이 상상만으로 그칠 때, 그건 상상이 아니라 공상에 불과하다. 상상이 실천과 결합될 때, 상상은 상상으로서의 빛을 발할 수 있다.
3. 대안교육에 대한 비판을 넘어
결국 우리는 민들레에 눌러 앉아, 저녁까지 대접받았다. 다른 데서는 맛볼 수 없는 민들레만의 특식이라며 현병호 씨는 직접 북어죽을 끓이셨다. 우리는 그날 저녁 민들레에서 처음 뵌, 아직 통성명도 하지 못한 대여섯 명의 사람들과 함께 남비 두 개에 가득 끓인 북어죽을 맛나게 나누어 먹었다. 식사 후, 설거지가 한창 진행 중인 마루 겸 식당으로 장소를 옮겨 인터뷰를 이어갔다.
퍼 : 제가 민들레 읽은 것 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 중의 하나가 몇 호에 실려있는지 모르겠는데요. 이름도 원래, 쓰신 분 이름이 안 나와있고, 대안 교육을 비판하는 글이 있었어요.
현 : 아아… 오류선생 글이구나. 지난 호(13호)예요.
퍼 : 저는 굉장히 인상적으로 읽었거든요. 그 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나는 이 질문이 굉장히 잔인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맛있는 저녁까지 얻어 먹고 지금 이게 무슨 짓거리인가. 그렇지만 현병호 씨를 만난 이상, 이 부분에 대해서만은 꼭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먼저 오류선생의 글 중 일부만을 소개한다.
순전히 직업상의 필요로 『민들레』를 잠시 정기구독 했다가 지금은 그 알량한 떠돌이 직업을 팽개친 관계로 『민들레』를 읽지 않는다. 지금 내가 구태여 민들레를 찾지 않는 이유는 메시지가 담고 있는 생동감에 비해 상당수의 글들이 내 자식만큼은 더 나은 교육을 시켜보자는 식자층의 또 다른 이기심이 묻어나기 때문이다.
이기심은 특히 ‘대안’에서 묻어난다. 대안을 고민하는 사람들은 아이들이 아니라 먼저 자신의 삶부터 대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 자신의 삶을 그대로 둔 채 아이들이 제대로 된 교육을 받기를 바란다면 그것이야말로 무기제조공장의 노동자가 반전시위를 펼치는 것과 같다. 나자신의 부도덕한 삶을 제도 안에 은폐시켜놓고 아이들을 제도 바깥으로 내모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거니와 공허하기까지 하다. 그래서 탈학교는 실상 부모들의 탈 제도화가 전제되지 않으면 안 된다.
교육을 전공해서 학교보다 더 잘 아이를 가르칠 수 있는 지식을 가진 부모, 제 자식에 대한 사랑이 너무나 애틋하여 멍청한 학교와 고루한 제도에는 맡길 수 없다는 부모, 학교를 보내지 않고도 얼마든지 좋은 대학에 보낼 수 있다고 믿는 부모, 여린 감성을 가져 학교에서 상처를 받기 때문에 상처받지 않는 공동체로서의 학교. 나는 그런 사람들이 꿈꾸는 아주 특별한 ‘대안교육’에 별로 관심이 없다. ‘대안교육’을 받아 몸과 마음을 재구성해야 할 사람은 바로 아이들이 아니라 부모 자신이기 때문이다. 그럼 그 순강 아이들의 교육은 완성된다고 나는 믿는다. 학교가 똥통이 되건, 삼풍백화점처럼 폭삭 주저앉더라도 말이다.
그래서 난 대안교육을 아이들이 대학을 가고, 이 사회에서 잘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주고 있는 『민들레』의 말을 믿지 못한다. 지금 무너져 가는 학교를 만들어낸 곳은 바로 사회다. 사회는 학교보다 더 비굴하기를 요구하고, 편법을 요구하고, 교만하기를 요구하고, 폭력적이기를 요구한다. 자존심마저 빼앗아 수치심도 느끼지 못하는 인간이 되어야만 살아갈 수 있는 곳이 아닌가? 그런데 어찌하여 학교를 뛰쳐나온 아이들이 다른 방식의 교육과정을 거치면 사회에 적응할 수 있다는 말인가? 아이 때는 참을 수 없던 분노를 나이가 들어 ‘좋은 게 좋은 거’를 깨달았다는 말이 아닌가? 그것이 아니라면 ‘대안교육’은 잘난 사람들의 또 하나의 굿판임이 분명하다. 모든 것이 다 잘 돌아가고 오직 학교만 문제인가? 아님 모든 것이 다 잘못됐지만 학교 다니는 기간만 뚝 떼어내서 대안을 찾으면 문제가 해결되는 건가? 정말 바보 아냐?
읽어 보시면 알겠지만, 오류선생의 글은 과감하게 대안교육의 ‘대안’을, 그리고 그 대안에 숨겨져 있는 이기심을 비판한다. 에둘러 말하지 않는 오류선생의 글을 읽으면서 현병호 씨는 분명히 많은 상처를 받았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난 그 상처를 다시 들춰내기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현 : 그 글… 음… (한숨? 느린) 그 그을… 맞는 얘기. 그 관점에서 보면 맞아요. 관점에 따라서 보면 다를 텐데, 제가 볼 때도 충분히 설득력이 있는 이야기이고, 맞는 얘기죠. 맞는 얘기인데, 좀 뭐랄까? 대안 교육에 목매단 사람의 심정이랄까? 애정이랄까? 그게 좀 없는, 그러니까 이렇게 뭐랄까? 그게 좀 아쉽죠. 그게 전문을 다 실은 것이 아니고 ⅔를 실었어요. 그 글에 빠진 부분은… 그대로 다 실었으면 어떨라나? 대안 속에서 이기심을 보자와는 조금 맥락이 다르게 자기와 자기 아이는 어떻게 지내는지 그런 얘기들이 많이 있었는데 제가 볼 때에는 뭐 이런 아버지가 다 있냐 싶게, 음.. 좀… 별로 바람직한 아버지 모습은 아니다 싶었어요. 그런 내용이 같이 들어가면은, 대안 속에서 이기심을 보자는 그런 메시지가 죽을 거 같아서, 초점을 흐려 놓을 것 같아서 그 부분은 뺐는데… 너무 아이를 방치하다시피, 그냥 되는대로 아이가 크는 것은 지 몫이다라고 그냥 내버려 두는, 그런 인상이 짙어서… 그건 좀 아닌 것 같다 싶고.
원래의 편지에서 일부를 좀 뺐다고 하지만, <<민들레>>에 실려 있는 부분으로 오류선생의 생각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 내 자식 얘기로 끝을 맺자. 나도 아이에게 거는 꿈이 있다. 나는 아이를 중학교에 보내지 않을 것이다. 군대를 가지 않는 방법으로 아이와 합의한 사항이기도 하지만 유니폼을 입히고 머리를 깎이고 싶지 않다. 옷 입는 것과 머리 기르는 따위의 자기 신체상의 자결권마저 없는 집단에 내 아이가 속한다는 것은 참기 어렵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검정고시나 다른 어떤 방법을 통해 아이가 대학을 진학하고, 그 결과로 사회에 진출하기를 결코 원치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비겁한 길이기도 하거니와 제도교육과 군대를 통과한 사람들이 주류를 형성한 사회는 어치피 그 나물에 그 밥이다.
아이는 내가 뒤늦게 사회를 왕따 놓으며 겪은 불필요한 좌절을 경험하지 않고 사회의 바깥에서 굳건히 살아가 주길 바란다.
사회 바깥에서 굳건하게 살아가는 아이. 오류선생이 자기 자식에게 기대하는 몫이다. 교육 이전에 사회가 이미 잘못된 것이라면 그 사회와 타협할 게 아니라, 그 사회를 과감하게 벗어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며, 사회를 벗어나서도 꿋꿋하게 잘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현 : 지금 부모들, 어떻게든 자식 잘 되기를… 자식이 잘 되는 것이 자기가 잘 되는 것이라고 느끼니깐, 제도 교육에서 성공을 하든, 대안 교육에서 창의성을 살려서 성공을 하든 어쩌든, 어쨌든 뭔가 잘 되기를 바라는 거지요. 그 심정은 그건 아주 뭐, 보통사람의 보통심리인 것이고, 생각의 차이인 거지, 대부분은 그냥 제도학교에서 성공하는 것이 성공하는 길이다 하는 거고 대안학교를 보내는 부모들은 오히려 그런 학교를 나와야 사회에서 인정받고 더욱 잘 적응하고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많이 있을 거예요. 그리고 분명히 돈도 있고 하니깐, 그런 것을 선택하는 부모들이 있겠지요. 말하자면 그 이기심에서 출발하는, 그런 게 그 대안 교육 속에도 있는 거고, 물론 그 속에는 어떻게 사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지 그런 고민을 하면서 정말 가난해도 좋으니깐 이런 교육이 좋다 해서 그렇게 그런 신념을 갖고 있는 부모들도 있을 것예요. 근데 그렇게 그것도 어쨌든 부모의 나름의 가치관인 거고, 욕심인 거고. 그렇게 보자면 이기심 아닌 것이 없죠.
생각 이상으로 현병호 씨는 더 곤혹스러워 하고, 더 고민하고 있다. 질문을 철회하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다. 망설이는 듯한 말투, ‘바로 지금’ 고민하면서 느릿느릿 대답하는 방식, 우리를 주시하는 듯 하지만, 사실은 허공을 바라보면서 어떤 생각에 골몰해 있는 그의 시선… 그의 고백적 말투의 강도가 심해진다. 그러다 잠시 짬을 두고 조금은 신념에 찬 목소리에, 약간 말투가 빨라지고 조금 커지면서 다음과 같은 말이 이어진다.
현 : 근데 저는 지금 대안 교육이 음… 지금 중산층 위주고, 그런 게 지금의 현실이고 그걸 인정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지금 사실 중산층의 지원 없이는 대안 교육이 있을 수 없거든요. 아예 이런 움직임차도 가능하지가 않은 거죠. 아무리 중산층의 이기심에 뿌리는 두고, 기대고 있다고 할지라도, 뿌리는 두고 있다는 말은 틀린 말 같고, 기대고 있다. 뿌리까지는 아니란 말이에요. 지금 기대고 있지요. 그거 없이는 정말, 이런 게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저는 어쩔 수 없다고 봐요. 어떤 이런 단계에서는 사람들이 먹고 살만 해야 다른 데 눈을 돌리는 게 그게 당연한 거고, 그러니까 그런 거죠. 그런 점에서 지금 그 대안 교육을, 그렇게 열의를 갖고 있는 부모들을 저는 비난해서는 안 된다고 봐요. 그건 그 사람들 나름으로 그래도, 정말 최선을 다하고 있는 거죠. 그 사람들로서는. 전 다양성, 다양성에 대한 인정이랄까? 저는 대안, 이기심에서 대안교육을 찾는 사람들까지도 인정을 하자, 저는 그런…
현 :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지금 다른 활동을 하는 사람들, 서로 손가락질 할 게 아니고, 자기가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그 일을 그냥 잘 하는 것, 그냥 뭐 어떻게든 잘하려고 애를 쓰는 것이니깐, 아주 뭐, 민족사관학교 같이 그렇게 해서, 그게 뭐 대안이라고 생각하고 거기에 일생을 바치는 사람들, 그것도 나무랄 수 없는 거죠. 그게, 음… 그리고 그건 또 아니다 이야기를 하는 것도 의미가 있는 거고, 근데 음… 그러면서 그러니까 그 부분, 참 그래요. 그러니깐 남을 욕하지 않으면서, 비판을 하면서 자기, 그냥 자기가 바로 섬으로써 그냥 보여주는 것이니깐, 이렇게 하니깐 정말 좋더라 뭐 그런, 우린 이렇게 한다 이렇게 하니까 참 좋다. 그냥 그런 정도 보여주면은 사람들이 보고 자기들에게 맞는 것을 선택하겠죠. 지금 뭐 신자유주의니, 자립형 사립학교 그런 걸, 그러는데, 귀족학교 만들려면 만들라죠 뭐, 그러니까 그런 학교도 만들고 또 이렇게 뭐, 아주 돈이 있어도 골프장 안 만드는 사람들은 안 만드는 거죠. 그렇게 사는 것은 우리가 살고 싶은 방식이 아니다 하면은 또 그렇게 그걸 선택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가는 거고, 그러니까 그 부분은 서로 관점이 다른 사람들끼리, 글쎄… 안 싸울 수도 없는데, 싸우더라도 서로 힘을 잃지 않고 좀 그냥 미처 자기가 못 본 부분을 서로 보게 해 주는 거울 역할을 해서.
교육은 절대 누군가의 소유가 될 수 없다. 심지어 국가조차도 교육을 독점해서는 안 된다. 다양성을 인정하는 교육, 교육의 내용이든, 교육하는 주체이든, 그 모든 다양성이 허용되는 모습, 그것이 현병호 씨가 꿈꾸고 있는 교육의 모습이 아닐까? 물론 그런 생각의 연장선상에서 대안교육 역시, “바로 내가 대안이야” 말하는 순간, 대안교육으로서의 정체성을 잃게 될 것이다. 온갖 다양한 가능성들이 실험되고, 용인되어 서로를 비춰줄 때, 교육은 교육다움으로 살아날 수 있을 것이다.
현 : 사실 대안교육 쪽 사람들도 정신 차려야 될 게 정말 그… 그러니까 아주 분명한 어떤 내실이라고 그럴까 대안교육 한답시고 아이들 그냥 어정쩡하게 실력도 없고, 그냥 적당히 이렇게 그냥 시간을 보내는 거예요. 그러니까 뭐 지식, 공부도 안하고, 그렇다고 뭐 그런 것도 없이 지금 사실 대안 학교들도 교과 과정이랄까 그런 어떤 학습 방법, 뭐 체계들이 아직 잘 안 잡혀 있잖아요. 지금 잡아가는 과정이기는 한데. 제도권 교육은 엉터리로 하더라도 그래도 뭔가 체계를 잡고 하잖아요. 그 노하우가 쌓인 게 있으니깐, 어떻게든 뭐, 그런… 그 김희동 선생님이 하는 이야기가, 실력을 쌓아야 된다고 대안 교육 안에서도. 정말 뭐, 우리가 그냥 말하자면, 조한혜정 선생은 그렇게 표현하대요. 그냥 마음씨 좋은 농사꾼으로 키우고 말 거냐. 물론 그렇게 마음씨 좋은 농사꾼, 아주 이제 그런 생태적인, 아주 그런 사람들이 필요하지요. 진짜 좀 그런 사람을 길러내는 교육도 좋은데 그… 그게 그렇게 사는 사람이 다는 아니잖아요. 그렇게 다 사는 것도 아니고, 진짜 외국어도 유창하게 하고, 뭐 컴퓨터도 귀신 같이 다루면서도 정말 바르게 사는 게 뭔지를 알고, 진짜 국제 감각을 갖고, 진짜 지구촌을 생각하면서 활동하는 사람도 필요하잖아요. 그러니까 그런 사람을 길러낼 수 있어야 한다구요. 안 그러면은 그냥 대안 교육 출신들은 시골에서 그냥 뭐, 마음씨 좋은 농사꾼으로만 살고 세계는 그냥 그런 사람들이 주무르게 놔두면은 그냥 시골에서 생태공동체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거잖아요. 진짜…
좋은 농사꾼으로 키우고 말 거냐? 혹은 제도 밖의 아웃사이더로만 살아가게 하고 말 거냐? 적어도 현병호 씨가 생각하고 있는 대안교육의 모습은 그건 아닌 것 같다. 사회를 벗어나 자신만의 세계로 숨어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세계와 당당하게 겨룰 수 있는 아이들이 되도록 도와주는 것, 그것이 현병호 씨가 생각하고 있는 대안교육의 모습인 듯 했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는 현병호 씨는 여전히 힘들어 보인다. 이렇게 자신을 괴롭히는 글인데, 도대체 왜 실었을까?
현 : 왜 실었냐구요?
퍼 : 그렇게 많은 고민을 불러 일으킨, 혹은 고민을 담고 있는 그런 글인데…
현 : 그냥 대안 교육을 찾는 사람들이 그냥 자기를 돌아보는 그런 기회, 분명히 그 점에서는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을 했죠. 그것에 대해서는 사람들 반응이 되게, 진짜, 아주, 아주 격한 반응들이 많았어요. 음…
퍼 : 격한 반응이라면 어떤 게?
현 : 그냥 뭐. 그러니까… 대체로 인제 뭐… 음… 반반인데 그 진짜 공감한다, 뭐 그렇게, 아주 그러면서 두고 보겠다. 그런 사람도 있었고. 그것 때문에 구독자가 분명히 세 사람은(!), 분명히 그것때문에 그만 떨어져 나갔고, 알게 모르게 더 떨어져 나갔을 수도 있겠죠. 근데 그러면서도 그걸 인정하면서도 그게 다가 아니다. 대안 교육을 고민하는 사람, 찾는 사람들이 얼마나, 얼마나 고민을 하는지 그냥 그렇게 편하게, 그냥 돈 좀 있다고 편하게 그냥 그걸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 고민하면서 엄청나게 고생해서 힘들게 힘들게 그런 길을 더듬어 가는데, 그 사람을 그렇게 몰아, 도매급으로 몰아 붙일 수는 없는 거지요.
민들레 독자들의, 오류선생에 대한 반응은 <<민들레>>14호에 실려 있는 다음과 같은 말로 요약 가능할 것이다.
독자들 반응이 떠들썩했습니다. ‘오류선생’의 진짜 이름을 묻는 이, 같이 술이라도 한 잔 하고 싶다고 전화번호를 가르쳐달라는 이, 속셈을 들킨 것 같아 몇 밤을 설쳤다는 이, ‘이건 오류선생의 오류야’ 하며 성토하던 이, 두 달이 다 된 지금도 오류선생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립니다. 심지어 내 이기심을 이제 거두어야겠다고 『민들레』 구독을 그만둔 이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가만히 물어보았습니다.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정말 이기적인 게 뭐니?” 하고. 이번 홀씨편지에서는 거울의 대답을 실어보았습니다.
그 글에 대한 반응이 얼마나 뜨거웠는가 짐작이 간다.
현 : 민들레에서도 그런 이야기를 하죠. 결국 교육문제는 없다. 교육문제라는 게 따로 있는 게 아니라… 근데 이제 사람이 다 이렇게 건드릴 수는 없는 거니까. 그걸 알면서도 자기가 놀고 있는 물이 말하자면, 분야가 사회와 접촉하는 접촉점이 교육이면 교육인 거고, 그런 거죠. 환경이면 환경인 거고, 그렇게 저마다 자기 힘이 닿는 한에서 그 분야에서 활동을 하는 건데, 그러니까 그건 필요한 것 같아요. 교육 문제라는 게 그렇게 따로 똑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사람들이 잊어버리기 쉽잖아요. 하다보면. 음… 그러니까 주위를 자꾸 환기시킬 필요는 있는 것 같아요. 결국 삶이 문제고, 우리, 전체 사회가 문제다. 이런 말보다, 오히려 개별적으로 사회라는 게 따로 있는 게 아니라 그냥, 사람이 모인 게 사회인데, 결국 내가 어떻게 바로 사느냐 그 문제인 것 같아요. 교육문제라는 것도. 뭐 부모가 제대로 살면은 그걸로써 문제가 다 풀리는 거라고 봐도 틀리지 않을텐데…
‘교육문제라는 게 따로 있는 게 아니다.’ 현병호 씨의 말은 어딘가로 귀결하고 있다. 그의 말에 계속 귀기울여 보자. 내가 그를 왜 ‘근본주의자’라고 명명할 수밖에 없는지 아시게 될 것이다.
4. 우리 모두는 하나다.
퍼 : 앞으로 정말 뭐하고 싶으세요? 지금 하고 있는 일을 계속해서 하고 싶으신가요?
현 : 제 개인적인 바람이랄까요. 저는 사실은 시골에서 그냥 시골에서 살고 싶죠. 귀농. 농사는 그냥 먹을 만큼 짓고, 저는 도자기 만드는 것에, 그러니까 사실은 민들레 하기 전에 보리 출판사 그만두고 도자기 만드는 일하려고 가마터 알아보러 다니고 그랬었어요. 그러다가 어떻게 또 배운 도둑질을 그만 두지 못하고… 민들레 안정이 좀 되고 웬만큼, 궤도에 오르면은, 저는 길게 잡아서 5년 정도 잡는데, 앞으로 5년 후면 아마 제가 마흔 다섯, 다섯… 지나서는 서울에 안 있을 것 같아요. 아이들하고 같이 흙놀이 하면서 마을 학교랄까? 그러니까 변산공동체? 뭐 그런 공동체는 아니고, 그냥 마을에서 그런 아이들하고 같이, 이제, 학교 다니는 아이들도 있을 테고 안 다니는 아이들도 있을 테고, 그냥 거기서 이렇게 마을 사람으로, 그릇 만들면서 그냥 좀 한가하게 살고 싶어요. 할아버지 소리 들으면서.
이런 꿈… 소박하다고 할 수 있나? 이런 거창한 꿈을… 근데 과연 이 양반 그렇게 살 수 있을까?
퍼 : 자녀분은 있으세요?
현 : 없어요. 어떻게 될지 모르겠는데, 글쎄… 결혼을 하게 될지, 아무래도 지금.
퍼 : 결혼 안 하셨어요?
현 : 안 했어요. 결혼 했다가 그냥 반쯤 했지, 결혼식만 하고 같이 살다가 헤어졌으니깐. 1년만에. 법적으로는 총각이죠. 어쨌든 1년 정도 동거를 하고, 결혼식까지 했으니깐, 결혼을 한 거죠. 그랬는데 서로 너무 힘들어서 좀… 결혼도 서른다섯이나 돼서 했는데… 결혼, 저한테 안 맞는 것 같아요.
우린 조금 당황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지금의 민들레, 지금의 모습으로 운영하고 있는 현병호 씨가 이제사 조금 이해가 갈 듯도 했다. 빨리 화제를 다룬 곳으로 돌려야겠다.
함께 인터뷰를 나간 낙타가 운을 뗐다. 교과서나 국가 시험에 대한 현병호 씨의 생각은 어떤 것일까? 가르쳐야 할 가치에 대한 문제,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민들레에서는 무엇을 가르치고 싶어하는가? 민들레에서 가르치고 싶은 과목, 교재, 내용, 가치관 등등.
현 : 지금 이 사회에서 무언가 밥벌이를 해야 되고, 자기 길을 찾기 위해서 필요한 최소한의 조건들이 있는 거죠. 지금 학교교육 시스템에 잘 적응을 해서 지금 이게 뭐, 교과서 문제, 그런 것들이 다 연관성이 있겠지요. 검정고시도 교과서 보고 공부를 해야 되는 거고, 그 속에는 이제 뭐, 어쨌든 그러니까 국가라기보다 우리 사회의 지배계층의 이데올로기가 담겨있는 거고, 그.. 음, 그렇죠. 그걸 그러면서 최소한의 무언가를 이제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서 그걸 감수하는 거지요. 근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는데, 음… 그러니까 이를테면 지금 뭐 일본 역사 교과서 문제가 심각한데, 지금 우리도 사실은 역사교과서 보면은 그렇게 숨길 것 다 숨기고, 그러니깐, 얘기하고 싶은 것만 이야기하잖아요. 우리가 뭐 베트남 양민 학살에 대해서 한 마디 이야기해요? 우리 교과서에도 종군 위안부 이야기도 없잖아요. 그런 저런 거, 숨기고 싶은 것 다 숨기죠. 왜 친일파 이야기합니까? 안 하잖아요. 어쨌든 이, 그… 그게 우리, 일본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도 인디언 학살 이야기 전혀 안 하잖아요. 자기들, 어쨌든 그 사회의 지배층뿐만 아니고 그 사회의 구성원들이 암묵적으로 이제 그걸 용인하고 있는 거지요. 어쨌든 자기를 떳떳하게 내보이고 싶은, 떳떳한 존재로 보이고 싶은 게 사람들 심리니까 그렇게 되는 거라고.
위 발언을 그저 ‘제도 교육 내에서 가르치고 있는 가치들은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라는 말로 정리하고 싶지 않다. 그건 현병호 씨의 고민을 너무 천박하게 요약해버리는 폭력이다. 따라서 이 지점에서 난 현병호 씨의 말씀을 요약, 정리하기를 기꺼이 포기한다.
현 : 그, 음… 그 겉, 그 지금 이 제도 교육에서 아둥바둥 일류대학 가려고 하는 것도 이 속에서 자기를 인정받고 싶은 거잖아요. 그렇게 뭐, 어쨌든 좀 잘나 보이고 싶은 거고, 그래서 음… 그, 그게 음… 그, 누가, 그 음… 사실은 누가 이, 그러니까 획일화라든지, 국가 주도의, 지금 학교 가고, 계층 재생산 이런 게 누가 어떤, 누가 의도해서, 아주 이제 박정희라는 사람이 의도를 가지고 그렇게 만든 게 아니고 박정희라는, 이런 사람은 상징성이, 말하자면 그 정점에서 있는 사람일뿐이지 그 시스템에서 어떻게든 좀더 잘나 보이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 그런 사람들의 욕망이 집단의식이 그렇게 구현이 된 거죠. 그게 교과서로도 구현이 되고, 그러니까 교육시스템, 그런 경쟁적인 교육시스템, 어떻게든 자기가 잘 되기 위해서 남을 이렇게 밀쳐야 되는 그런 시스템을 만들어 내는 거죠. 거기에 동조를 하는 거잖아요. 우리가 다. 부모들이 거기에 다 동조를 하고 이 게임에 참여를 하는 거잖아요.
현 : 그러니까 그… 음… 사실은 저는 그런, 결국은 이런 사회 체제의 변화, 그게 아주 필요한데 그 이면에 이런 사회체제를 낳는 그런 집단의식랄까, 개인의 어떤, 집단의식이 변화하는 건 결국 개인의식이 나부터 바뀌지 않으면 안 되는 거지요. 저희 민들레도 말하자면 사회운동을 하고 있는 거잖아요. 사회체제를 어떻게 바꾸어 보자면서 그렇게 운동을 하고 있는데, 근데 나부터, 그러니까 나나 민들레를 보는 사람들이나, 정말 그 사람들이 정말 바뀌지 않으면은 체제도 안 바뀐다는 거지요. 체제를 바꾸면서 노력을 하면서 정말 같이 가야될 부분이 사실은 그런 개인의 변화, 의식의 변화, 그게 그러면은 아무리 이 체제가 획일적이고, 이데올로기를 강요한다 하더라도 그 영향력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고 봐요. 그 교과서… 음… 교과서가 글쎄… 음… 제가 지금 얘기를 제대로 풀고 있는 건지, 어떤 건지 잘 모르겠네. 내가 지금 맥락을 제대로 짚은 건지…
사실은 아까부터 질문의 맥락에 맞닿은 대답, 그런 건 일찌감치 포기하고 있었다. 그냥 우리는 현병호 씨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을 뿐이다. 현병호 씨의 생각은 조금씩 조금씩 자리 이동을 하며 교육의 근원적인 문제로 다가가고 있었다.
많은 경우 교육은 가르쳐야 할, 혹은 전수해야 할 그 사회의 가치를 바탕에 두고 있다. 그러나 이런 경우, 교육은 학생 외부에 이미 어떤 보편적인 가치를 설정해놓고, 그것을 강요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대안교육에서는 어떤 가르쳐야 할 가치, 그런 것들을 미리 설정해두고 아이들에게 다가가는 것 같지는 않다. 가치를 바라보는 현병호 씨의 입장은 무엇일까?
현 : 그런, 그런. 음… 그러니까 이건 분명히 가치 교육인 거 같아요. 대안교육, 지금은 더욱이 이념성이 더 강하고, 그래서 한편으로는 좀… 우리가 그 이념, 그 국민교육헌장에 담겨있는 그 이념과는 질적으로는 다르지만 아주 이념성이 강한 교육을 하고 있는… 그러니까 그런 거죠.
퍼 : 새로운 가치들를 찾아내고, 대안 교육이 생각하는 가치들을 교육하고 같이 학습하고 이런 것이라고 이해하면 될까요?
현 : (한참 후에) 글쎄, 그 부분은… 이념? 근데 이념? 이념이라는 것에서 이념이라는 게 앞서서는 안 된다고 봐요. 이념이라는 게 그냥 녹아있어야지, 그냥 자연스럽게 그 속에서 구현이 되어야지 그걸 견본처럼 딱 써 붙여 놓고 그걸 그렇게 삶을 맞추어 가려고 해서는 안 되겠지요. 아이들이든 교사든 부모도 마찬가지이고, 어쨌든 주체가 주체가 되는 거예요.
현 : 아이들 자율성뿐만 아니고, 교육이라는 그와 관련된 모든 사람들이 자기답게 산다고 그럴까? 통제 당하는 게 아니라 정말 자기 내적인 것 힘에 따라서 사는 것, 지금 그러니까 우리 사회, 사람만이 아니고 짐승들도 다 짐승들답게 못 살고 있잖아요. 뭐, 개나 닭이나 소나 그러니까 사람도 사람답게 못 사는 거고, 난 진짜 지금 우리, 이, 이런 문화가, 우리가 먹기 위해서 닭들을 그렇게 기르고 우리가 먹자고 닭들을 철장 속에 가두어서 걸어다니지도 못하게 해놓고, 그렇게 키우는 사회에서, 그런 사회에서는 사람도 사람답게 못 산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닭뿐만 그런 게 아니고, 소, 돼지 다 마찬가지거든요. 지금 보면은 이건 뭐, 동물을 사랑하자 그 차원이 아니고, 개나 소가 진짜 개나 소답게 살 수 있는 사회가 되는 거, 그러면 아이들도 아이들답게 살 수 있을 거잖아요. 그런 사회에서는 당연히. 당연히 그렇게, 그러니깐 우리가 사람만 생각하니깐 그 동물들을 그 학대를 하면서 키우고 있잖아요. 그런 결국은 그런 의식이 자기만 생각하는 그런 의식 수준이 낳는 문화가 이런 거죠. 이런 사회를 만들어 내는 거잖아요. 그… 진짜 그런, 얘기를 하다 보니까… (실소) 자꾸만 퍼지는 거 같다아…
현병호 씨가 근본주의자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했던 대목이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것만이 중요한 게 아니다. 소나 닭, 돼지들이 소나 닭, 돼지답게 살 수 있는 사회가 이루어질 때, 사람도 사람다워질 수 있다는 말이다. 물론 현병호 씨 자신은 스스로가 무슨무슨 주의자라고 내세운 적 없지만, 현병호 씨의 교육에 대한 고민은 세상 모든 사물, 삶의 근본에까지 맞닿아 있다.
현 : 그래, 사실은 진짜 교육문제라는 거, 이건…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우리가 정말 저렇게 학대받으면서 그 살고 있는 닭들이 낳은 알을 아무 생각 없이 먹으면서 정말 우리 사회가 좋은 사회가 되고 교육이 바로 될 거라고 생각은 안 해요. 학교에서 학교 급식하면서 아이들 영양가 생각해서 달걀 반 쪽씩을 하나씩 넣어주는데, 그 달걀이 어떻게 나오지를 전혀 이야기하지 않으면서 아이들 아무리 영양가 맞추어 주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어요? 그게, 그… 교육문제라는 게, 그렇게, 아주 결국, 정말 삶의 문제고, 모든 것이 다 걸려있는 거잖아요. 우리가 관련 맺고 있는, 진짜 생각하건대, 끝없이 모든, 이 세상의 관련이 없는 게 없잖아요. 우리가 사는데. 우리집에 다들 카페트 한 장씩 다 깔려있는데 그 카페트들, 외제, 싼 카페트들, 수입 카페트가 더 싼 것들, 요즘 많이 나돌잖아요. 그 카페트들, 파키스탄 이런 데서 대여섯살 되는 꼬마아이들이 짠 그런 카페트들이래요.(목소리가 좀 단호해진 느낌이다.) 10살도 안된 아이들이, 이렇게. 그러니까 그런 아이들이 짠 카페트가 싸기 때문에 그래도 우리는 또 사서 쓰죠. 우리가 사서 쓰니깐 그나마 그 아이들이 그렇게 조금이라도 돈을 받아서 가족들이 먹고살고 그러긴 하죠. 그 아이들은 학교를 다니고 싶어도 못 다니는 아이들이잖아요.
왔다갔다 하던 윤용이 녀석이 옆에 와서 우리가 가져간 디지털 카메라가 신기한지 기웃기웃거린다. ‘이거 뭐야’, ‘이걸로 어떻게 사진 찍어’ 그런 것에 아랑곳없이 현병호 씨의 말씀은 이어진다. 윤용이는 민들레를 구성하는 일부이며, 그 모두를 통제하거나 억제하지 않은 채, 자연스러운 그대로로 받아들이고, 그 속에 스스로를 녹여내고 있는 모습이 바로 민들레의 현병호 씨다.
현 : 그 우리, 학교를 비판하면서, 그 생각을 안 할 수 없는 거지요. 그 아이들하고도 관련이 있으니까. 그 학교를 다니고 싶어도 못 다니는, 못 다니면서 그렇게 하루종일 일을 해야 하는 아이들이 짠 카페트를 깔고, 살고 있는 우리들, 그러니까 그 아이들한테는 정말, 그 이런 형편없는 학교라도, 학교가 있으면은 학교를 다닐 수 있으면 더 낫겠죠. 어쨌든, 뭐, 진짜 중요한 거는, 진짜, 정말 어떻게 사는 게, 아는 만큼은 실천이 되는 거 같아요. 그게 참, 관건인 것 같아요. 닭들이 저렇게 살아선 안 된다 하면은 달걀을 안 먹어야지요. 그러니까 그러고, 또 뭐, 충분히 우리가 그러면 양계장 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먹고살라고 하지만 근데 그런 산업이 없어지면은 얼마든지 다른 방식, 새로운 방식의 산업 구조가 만들어질 테고, 다른 먹거리 문화가 생기고, 다시 만들어질테고, 판이 다시 짜이겠죠. 그러니까 음… 지금 정말 그, 그참, 생각하면은, 관련된 게 많아요.(독백조로…)
현 : 음… 하여간 저는 민들레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는 그런 것이죠. 이거는 근본적인 이야기이기도 한데, 우리 모두는 하나다. 모두는 하나다. 세상의 모든 존재, 그걸 뭐, 생태 쪽에서는 그물이라고 표현을 하지만은 그냥 정말 그렇게 단순히 그물처럼 얽혀있어서 하나다라는 게 아니고, 그냥 말하자면 그냥 부분 속에 전체가 들어있고, 전체 속에 부분이 들어있다는 뜻에서 말이죠. 우리, 내 속에, 내가 존재하기 위해서 모든 이 세상의 만물이 존재해야 내가 존재할 수가 있는 거죠. 그러니까 그런, 모두가 하나고, 모든 사람은 모든 거에 대한 책임이 있는 거죠. 자기의. 그 의식의 확산? 그 의식이 정말 사람들 속에서 확산이 되면은 그것이 말로만이 아니고, 그걸 정말 절실하게 이렇게 깨달으면은 단번에 바뀔, 사회가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바뀐다는 거죠. 다른 사람을 해치는 게 결국 자기를 해치는 거라는 걸, 그걸 알면은 그걸 정말(강조) 알면은… 달라지지 않을 수 없겠죠. 그거예요. 민들레에서 지금 알게 모르게, 이 메시지, 이게 그런 메시지를 담고 있는 거죠. 13호에서 이제, 그러니까, 이… 사실은 우리가 알고 있듯이 우리가 개별된 존재이기는 하지만, 사실은 경계라는 게 애매한 거예요. 그러니까 나와 너라는 게 그렇게 우리가 알고 있듯이 그렇게 딱 나누어진 게 아니고, 그런… 음… 제가 생각하는 교육의 어떤, 교육이든 뭐든, 그… 어떤 근본적인 지향점이랄까, 열쇠랄까, 그게 그… 그…
또 말을 더듬기 시작한다…
인터뷰는 이렇게 정리되었다. 인터뷰를 다 마친 시간은 밤 9시 50분, 저녁 6시에 민들레를 찾아 갔으니, 약 3시간 50분 정도를 민들레에서 보낸 셈이다. 인터뷰를 마친 현병호 씨는 상당히 피곤하고 지쳐 보였다. 우리가 민들레를 나오던 시간에도 여전히 민들레는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아마도 현병호 씨는 밤 11시, 아니 잠자리에 들기 이전까지는 쉬지 못했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이 근본주의자는 밤에 잠자고 있는 동안에도 교육에 관한 꿈을 꾸지 않았을까…
글의 서두에서 현병호 씨를 만나러 가기 전 준비해갔던 많은 질문들을 하나도 제대로 묻지 못했다고 했지만, 실상 그 질문들은 물을 필요가 없는 것이었다. 내가 무엇을 질문했든, 아마도 현병호 씨의 대답은 지금까지 내가 들었던 내용과 별반 달라지지 않았을 거 같다. 현병호 씨에게는 교육과 관련된 제반 현상들, 그리고 교육과 이 사회가 모두 연관되어 있기에, 하나의 실마리를 잡아 끄집어내기 시작하면 그것은 마치 호박넝쿨처럼 줄줄이 매달려 나오고 있었다. 현병호 씨의 독백은 그 모든 연관들을 무시하지 않은 채, 끊임없이 고민하며(심지어, 인터뷰에서 답변하는 그 순간순간까지도), 실천하는 그의 삶, 그 연장선 속에 있었다. 따라서 그의 독백은 그냥 허공에 떠돌고 마는 독백이 아니었다. 그의 독백은 잔잔한 호수 위에서 동심원을 그리며 조용히 퍼져 나가고 있었다. 묵묵히 그 독백을 짊어진 채, 한 걸음 한 걸음을 힘들게 떼어 놓고 있는 사람, 그가 바로 내가 만난 현병호 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