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마는 ‘칠공주’

엄마에게도 소녀시절이 있었을까? 나는 엄마는 태어나면서 엄마 였을거라는 착각을 하면서 살았다. 물론 엄마도 나이를 드시고 나 역시 이제는 어엿한 숙녀고, 후에 나도 어머니가 되겠지만 소녀시절의 어머니라......상상이 가질 않는다. 빛 바랜 사진 속의 소녀 어머니를 찾아가자.

6월 6일 아홉시. 나는 잠옷을 입고 TV를 보시는 엄마를 툭툭 건드렸다. 엄마는 한참 재미있게 보는데 방해한다는 듯이 나를 째려보셨고 나는 우물거렸다. 전날 인터뷰를 하자고 엄마랑 약속을 했는데, 엄마는 아시는지 모르시는지 길게 하품만 하셨다. 시간은 점점 흐르고 다급해진 나는 TV를 끄고 인터뷰를 시작하자고 했다. 엄마는 툴툴거리시며 화장실로 들어가시더니 한참 후에야 나오셨다. 인터뷰를 하는데 씻어야 할 것 아니냐며 세수를 하고 머리를 빗으셨다. 우습기도 하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소녀 같은 엄마를 봤다. 나는 엄마를 끌고 내 방으로 들어왔고 방문을 굳게 닫았다. 혹시 아빠나 동생이 엿보면 창피하기도 하고 쑥스럽기도 하기 때문이다. 엄마는 침대에 걸터앉으시고 나는 길게 누웠다.

마는 칠공주!

마에게도 소녀시절이 있었을까? 나는 엄마는 태어나면서 엄마 였을거라는 착각을 하면서 살았다. 물론 엄마도 나이를 드시고 나 역시 이제는 어엿한 숙녀고, 후에 나도 어머니가 되겠지만 소녀시절의 어머니라……상상이 가질 않는다. 빛 바랜 사진 속의 소녀 어머니를 찾아가자.

 

: 엄마는 언제 태어났어?
엄마 : 1958……

 

: 엄마 떨지 마. 히히.
엄마 : 1958 9 16일 아침 아홉시. 개 밥줄 때

 

: 호호, 개 밥줄 때?
엄마: 아침 먹고 남은 거 개밥 줄 때.

 

: 그래서 엄마가 개띠구나.

 

엄마의 생일을 몰라 물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있어서 꼭 필요할 것 같아서였다. 58년 갓 태어난 엄마의 모습. 상상이 되질 않는다. 하지만 어머니는 당연한 걸 묻느냐고 나를 힐끔 째려보셨다.

 

: 엄마가 초등학교 다닐 때 기억나는 것이 있다면?
엄마 : 초등학교 때 생각나는 거. 달리기도 잘했고..

 

: 하하하. 엄마가?
엄마: 그럼. 그리고 뭐….6.25 대회에서 웅변 대회에서 상도 받았고, 또 초등학교 6학년 때 대덕구에서 선행아 상 받고

 

: 그거 말고 다른 거는?
엄마: 다른 거 뭐?

 

:  초등학교 때 추억같은 거.
엄마: 초등학교 때 추억…… 엄마, 칠공주…..

 

: 하하하칠공주..? 정말?
엄마: 그럼 칠공주에서엄마 칠공주 모임에서 항상 1등했던 거.

 

: 칠공주에서 뭐했는데?
엄마: 그냥 애들하고 놀러 다니고공부하고나쁜 애들 때려주고

 

: 그 키에? (울 엄마는 나보다 키가 작다. 참고로 내 키는 155cm)
엄마: (나를 잠시 째려 보셨다)

 

엄마가 칠공주라….. 지금은 상상이 가질 않는다. 아니 그 얘기를 들었을 때 어찌나 웃기던지. 지금은 엄마의 추억 속에서 잠자고 있는 칠공주. 엄마의 동심을 엿볼 수 있었고, 모르던 사실을 알게 되어서 좋았다.

 

: 엄마는 학교를 다니다가 그만두었는데 왜 그랬어?
엄마 : 옛날에는 가난하고 형제들이 많으니까….. 초등학교 6학년까지만 다니다가 중학교 보내달라고 삼일은 밥 안먹고 울었지 뭐. 가정이 어려우니까.

 

: 그리면 내가 지금 학교 다니는 거 보면 좋겠네.
엄마: 좋지내 딸들이 다니니까.

 

엄마의 집 즉 나의 외가는 그다지 잘 살지 못했다. 더군다나 오남매 중 셋째인 엄마는 당연히 학업을 포기해야만 했다. 이때 어머니의 얼굴에는 잠시 그늘이 스쳤다. 할 수만 있다면 엄마에게 배우는 기쁨을 드리고 싶었다.

 

: 엄마는 형제들이 많았는데 어땠어?
엄마 : 옛날에는 여럿이 많으니까 위에 하고 싸우고 할 겨를이 없지 뭐.

 

: 정말 안 싸웠어? 이모하고 삼촌하고?
엄마: 위에도 그렇고, 엄마는 딸 넷에 아들 하나니까 그거 서로 업어주려고 싸웠지 뭐.


: ~~~~

엄마와 이모들 그리고 외삼촌. 모두들 장성하다 못해 중후하기까지 한데, 그분들에게도 어린 시절이 있었다니. 나보다 키가 큰삼촌이 나보다 작은 엄마 등에 업혔다는 게 우스웠다.

 

: 어렸을 때 친구들 중에 가장 기억에 많이 남는 친구는?
엄마 : 친구들 많이 있지. 여기 있는 애들도 있고, 미국에 가 있는 애들도 있고, 결혼해 간 애들도 있고 작년에 나온 애들도 있고

: 왜 기억에 남는데?
엄마: 친구들하고 유별나게 놀았으니까.

 

: 어떻게 유별나게 놀았는데?
엄마: 우리는 뭘 하겠다 하면 1등으로 해야하고, 달리기라든지, 웅변이라든지 뭐 응원을 한다하면 딱딱 뭉쳤으니까. 그 칠공주는 하나는 변동 살고, 하나는 대동에 살고 하나는 미국 가 살고, 나머지 친구는 연락이 안 돼.

 

: 많이 보고 싶겠네.
엄마: 보고싶지.

 

칠공주. 엄마의 추억 가장 깊은 곳에는 칠공주가 있었다. 칠공주 친구와 함께 놀던 그 시절 엄마는 정말 행복했었나 보다. 칠공주라

 

: 엄마는 어릴 적 꿈이 뭐야?
엄마: 엄마는 어렸을 때 꿈이글 잘 써 가지고(원래 엄마도 문장력이 좋았어) 웅변같은 거 하고, 친구들이 엄마보고 편지 써달라고 하고엄마가 친구들 연예편지도 다 써줬어.

 

: 그러면 내가 엄마 꿈을 대신 하고 있네.
엄마: 그렇지 뭐

 

엄마 꿈이 작가였다니또 믿을 수 없는 사실이다. 칠공주에 이어서 연예편지도 대신 써준 엄마. 엄마의 학창시절은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 어렸을 때 가장 먹고 싶었던 것은?
엄마: 하얀 쌀밥에다가 갈치.

 

: 하하하되게 소박하다.
엄마: 옛날에는 그랬어…. 맨 보리밥, 수제비 같은 거, 밀가루 음식이 많았지. 엄마는 밀가루 음식을 안 먹었어. 그때는 하얀 쌀밥에다가 갈치, 갈치 구어 가지고 먹으면 최고 맛있을 거 같았는데, 지금 먹어보면 뭐 배가 불렀는지 맛이 없더라.

 

하얀 쌀밥에 갈치가 제일 먹고 싶었다는 엄마. 재미있고 신기하면서도 그 시절에 얼마나 가난하고 궁핍했는지 알 수 있었다.

 

: 어렸을 때 어디에 가장 가고 싶었어?
엄마: 가고싶은 데 많지. 옛날에는 수학여행을 현충사로 갔는데, 현충사뭐 할머니가 엄마하고 이모하고 나이는 두 살 차이인데 엄마가 늦게 들어가 가지고, 하나는 5학년 하나는 6학년. 둘 다 보낼 수 없으니까 운동화 하나 사 가지고 서로 신고 가려고 싸우니까, 옛날에는 운동화 안 신고 고무신 신었잖아. 서로 가고 싶어서 싸우고가고싶은 데 많았지. 수학여행 가는데 돈을 주어야 가지옛날에 수학여행 가려면 일년을 별러야 돼.

 

: 히히히
엄마: 그래야 줄동 말동이여. 돈 십원 타려면 열흘을엄마 십 원만 줘. 십 원만 줘해야 십원 준다니께.

 

수학여행. 요즘은 굳이 수학여행이 아니더라도 여행을 많이 가는데산이고 바다고 제주도를 제외하고 거의 다 가본 엄마도 한때는 수학여행을 가려고 이모와 싸웠다는 게 우스웠다. 하지만 그렇게 어렵게 간만큼 추억들도 많았을 것이다. 엄마의 그런 소중한 추억들이 부러웠다.

 

: 어렸을 때 부모님은 어땠어?
엄마 : 그냥 소박하고 없는 집이니까,  소박하고그냥엄마 아빠 노력해서 살고 하는 그런 시대라자식들 하나도 남의 집에 안 보내고, 지금 아침마당 같은 데 나오잖아.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는 인제 자식들 다 빼놓지 않고, 키우고 그랬지 뭐. 그리고 초등학교래도 가르치고

 

: 엄마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안 미웠어? 중학교 안 보내줘서?
엄마: 그렇지 뭐….돈도 없고 하니까….

 

: 엄마엄마는 할머니가 좋았어. 할아버지가 좋았어?
엄마: 엄마는니 외할아버지가 엄마만 몰래 데꾸가서 보신탕 멕이고그러면 할머니가 와서 뭐라고 하고, 할아버지랑 많이 돌아다녔지.

 

: 아빠랑 똑같다. 그치?
엄마:…

 

부모님 생각이 나셨는지 엄마의 표정이 잠시 어두워졌다. 엄마가 외할머니와 돌아가신 외할아버지를 남달리 생각하시는 것은 알지만, 그래도 이런 얘기를 꺼내니까 옛 생각에 좋아하시다가도 걱정스런 한숨을 쉬셨다.

 

: 과거로 다시 돌아간다면 언제로 가고 싶어?

아빠가 무서워!

 

엄마의 20대와 30.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을 때의 엄마. 어렸을 때의 엄마를 생각하는 것보다 더 상상이 안되었다. 풋풋한 처녀. 엄마가 지금 나만할 때가 있다고 생각하니 절로 웃음이 나온다. 엄마의 처녀시절은 어땠을까?

 

: 엄마가 스무 살이었을 때는?
엄마: 엄마가 스무살 때는직장 다니다가 아빠 만나서 한참 연애 걸었지.

 

: 스무살인데? 너무 빠르잖아. ~~~
엄마: 옛날에는 그렇잖아. 옛날에는열아홉 스물에 만나고그때는 빠른 게 아니지.

 

: 그럼 지금은?
엄마: 지금은 학교도 다니고 하니까좀 더 있다가 해도 되지.

 

연애시절. 나 역시 지금 남자친구가 있지만 엄마는 스무살 꽃필 때 연애를 했다. 나는 이 사실을 사진을 통해 확인했다. 꽃밭에서 둘이서 찍은 사진이란정말 웃기다.

 

: 처녀적 이상형은?
엄마: 이상형은아버지 같은 사람.

 

: 어떤 거?
엄마: 활발하고그냥 활발한 사람이 좋았어.

 

: 아빠네.
엄마: 그러니까 아빠 같은 사람을 만났지. 옛날에.. 엄마는 우리 아버지 같은 사람하고 시집가야지 했는데 지금 니 아빠가 할아버지랑 비슷하잖아.

 

아빠가 이상형이라이때 아빠가 빼꼼이 방문을 열어보았다. 그때 엄마와 나는 웃었고, 아빠는 영문도 모르고 빤히 쳐다보시다가 나가셨다. 딸의 이상형은 아빠라더니 엄마도 그랬다. 정말이지 나는 기억에 없지만 술을 좋아하시고 노래를 잘 부르시는 건 아버지랑 외할아버지랑 닮았다고 이모들이 지나가는 소리로 그랬다. 나도 그럼 아버지 닮은 사람과 결혼하게 되나?

 

: 아빠를 만나기 전에 만난 사람이 있었어?
엄마: 만났던 사람은 없었지.


: 정말?

 

너무도 당연한 질문이었나? 그래도 10대에 남자를 만날 수 있었을 텐데. 엄마는 첫사랑에 성공한 위대한 사람이다. 나도 그렇게 살아나지. 아니, 이게 무슨 소리람?

 

: 아빠랑은 어떻게 만났어?
엄마: 아빠랑은 뭐 연말에놀러가서 만났지.

 

: 놀러가서 어떻게 만났는데?
엄마: 놀러 가는 장소에서

 

: ~~~ 아빠랑 얘기가 틀린데?
엄마: 에이, 놀러가서 만났어. 니 아빠가 잘못 기억하는 거야.

 

~~내가 실수를. 그 날 밤 아버지와 어머니는 첫 만남에 대해서 진지하게 의논했는지도 모른다. 어디서 만났으면 어때. 지금 두 분이 사이좋게 사시는데. 아빠 죄송해요. ^^

 

: 아빠의 어디가 좋았어?
엄마: 첨에는 니 아빠 무서웠어. 나이 차이도 나니까. 아저씨라고 했지. 니 아빠 말년 휴가 나왔을 때 우연치 않게 만나서. 그래서 소식 끊겼었지. 그런데 제대하고서 또 우연찮게 또 만났지 뭐그냥 무섭다가 정들었지 뭐.

 

: 그게 다야?
엄마: 그렇지 뭐.

 

뜨거운 사랑얘기를 듣고자 했던 건 아니지만, 그래도인터뷰 도중 나는 무언가 더 끌어내려고 했지만 엄마는 더 이상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다 큰 자식이래도 어려보였나 보다.

 

: 아빠는 엄마 이상형과 비슷해?
엄마: 비슷하지

 

짧고 당당한 대답. 이 이야기를 아빠한테 해 준다면 아빠는 무지무지 좋아하셨을 것이다.

 

: 엄마는 결혼했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어?
엄마: 연애시절이고.. 연애하고 결혼한 거라 어떤 생각을 할 겨를이 있나. 첨에는 좋으니까 만나고 아빠가 엄마 만나러 오고, 엄마가 아빠 만나러 가고. 그러다가 결혼하니까 좋지 뭐.

 

 

: 그냥 좋았어?
엄마: 첨엔 그냥 좋았지그런데 살다보니까 힘들기도 하고그래

 

엄마의 볼이 발그스레 물들었다. 그냥 정들어서 결혼한 건 확실히 아니다. 이렇게 말을 하면 자연스럽게 나올 것을연애하고 결혼하고 그렇게 좋을까? 나도 빨리 결혼하고 싶다.

 

: 결혼 전과 결혼 후에 달라진 점은?
엄마: 결혼 전에는 그냥 좋아서 만났지만 결혼하고 나서는 너 생기고 지혜 생기고 해서 싫어도 자식 때문에 검은 머리가 파뿌리 될 때까지 살어야겠다 하고 사는거지다 뭐자식 생각해서 살고 그러지. 달라진 거는 시부모님들 모시고 사니까 힘들고 아빠는 아빠대로 힘들게 하고 그러니까.

 

: 후회했겠네.
어머니: 후회도 하고 좋기도 하고마냥 좋기만 하나.

 

어렴풋이 기억이 났다. 엄마가 아빠와 할아버지, 할머니, 기타 등등 때문에 힘들어했던 거. 물론 결혼이라는 것이 연애와 다르지만, 나도 결혼하면 그럴까? ~~~무섭다.

 

: 나 낳았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어?
엄마: 너 낳을 때 마냥 좋지 뭐, 첫딸이니까. 아빠도 좋아하고.

 

: 딸이라서 섭섭하지는 않았어?
엄마: 그런 거 생각할 겨를도 없었지. 너를 하도 어렵게 나서.

 

: ?
엄마: 왜긴니가 안 나오니까.. 니가 하도 안 나와서 아빠가 엄마 앞에서 무릎꿇고 아들이건 딸이건 아무나 나오라고 울고..

 

: 정말? 히히
엄마: 그래서 아빠가 너 이뻐하고너 어렸을 때 맨날 어디 데려가고 그랬지맨 사진보면 너 놀러갔던 거밖에 없잖아.

 


으쓱으쓱.. 내가 세상에 처음 태어났을 때 부모님이 기뻐하셨을 것을 생각하면, 너무도 기분이 좋다. 집안에서 사랑 받는 장녀!

 

: 결혼하고 아빠한테 속았다는 느낌이 들었을 때?
엄마: 속았다는 것보다는 아빠가 한참 속 썩이고, 6남매 맏며느리로 왔으니까. 속았다는 것보다는 힘들었지. 없는 집에 와서 살으려니까할아버지 15년 동안 홀시아버지 모시고 사니까 나중에는 할아버지가 친정 아버지 같고, 지금까지 사는겨.

 

: 할아버지 돌아가시고 속상했지?
엄마: 그렇지아버지 돌아가신 거 같고그냥 깜깜하고 그랬지.

 

엄마는 정말 맏며느리로 들어와서 고생을 참 많이 하셨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삼 년 전부터 중풍으로 몸을 쓰지 못하셨을 때도 다 받아내시고, 아빠가 언제 엄마 속을 썩였는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어머니가 맏며느리로 고생을 많이 하셔서 마음이 많이 아팠다.

학교가는 엄마

 

이제야 나의 엄마로, 엄마는 아줌마가 되고, 할머니가 되고, 이제는 사위 볼 나이가 되었다고  말씀하신다. 다른 분의 자녀 결혼식에 다녀오시고는 눈물 흘렸다는 엄마. 아직도 드라마를 보면서 소녀같이 눈물 흘리는 엄마. 나는 그런 엄마를 사랑한다.

 

: 스무 살과 서른 살이 달라?
엄마: 스무 살에는 마음이 결혼을 해서 애를 낳아도 다 할 수 있고, 지금도 엄마가 마흔 넷이잖아

 

:
엄마: 그래도 니 덜 마음 같고, 그래서 꿈을 꿔도 학교 가는 꿈

 

: 학교 가는꿈?
엄마: 맨날 늦어서 교실도 못들어가고 운동장까지 뛰어가는 꿈.

 

: ?
엄마: 왜긴학교 다닐 때 밥하고 청소하고 가니까 맨날 늦어서 ?“? 했으니까 그렇지.

 

: 지각대장 이었네그럼 서른살때는?
엄마: 서른살때도 엄마가 서른먹었다는 생각은 안들어.

 

: 그럼 똑같애?
엄마: 그럼마음은 다 똑같해. 다만, 몸도 많이 망가지고, 밥걱정하고.

 

: 아줌마네.

 

굳이 나이에서 차이점을 찾는다면 육체적인 변화가 제일 클 것이다. 하지만 나이가 먹어도 사랑을 한다면 엄마의 말씀대로 달라질 것은 없을 것이다.

 

: 엄마가 나이가 먹었다고 생각될 때?
엄마:  엄마가 내 나이가 이렇게 먹었구나 할 때는 마흔살 접어들면서, 그러면서 아 인제 나가가 먹었구나..하지몸도 이제 아프고 놀러 가는 것도 좋아했는데 나이가 먹으니까 귀찮고.

 

: 그래도 잘 놀러 다니잖아.
엄마: 그래도 몸이 말을 잘 안 들으니까 집에서 쉬고 싶지 뭐.

 

부쩍 아픈 곳이 많아진 엄마. 젊었을 때 힘이 세다못해 억척스럽더니 이제는 허리고 다리고 안 아프신 곳이 없으신 단다. 그러면서도 아직까지 자식을 위해 최선을 다하시는 엄마. 우리 엄마 정말 멋있죠?  

 

:언제 어머니가 아줌마라고 생각했어?
엄마: 30대 중반.

 

: ?
엄마: 그때부터는 몸매도 그렇고, 니덜 키우고 정신 없이 살다보니까는 아줌마니까 친구들이 만나자고 해도 못나가고.. 밥해야 하니까저녁때 되면 밥해야 되는데 하면서 못나가고, 그때 아줌마니까 처녀 때랑은 틀리구나 하고 느끼지.

 

어머니에게도 그런 일이. 늘 밥 때가 되면 초조해 하시는 것은 알지만, 이제는 여유를 부리시면서 나보고 밥해놓으라고 시키시면서, 엄마도 사소한 것에 아줌마라고 느끼며 슬퍼한다는 걸 알았다.

 

: 엄마가 된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엄마: 후회는 없어. 예쁜 딸 둘 낳고, 엄마가 배우지 못한 거 니들이 배우고, 엄마 속 안 썩이고 잘 하니까. 좋지 뭐. 뭐 다들 엄마보고 부럽다고는 하더라

 

: 히히히?
엄마: 자식들 속 안 썩이고, 가정 형편상이나 모든 거에 고생은 많이 했지. 육체적으로나 마음적으로나 금전적으로 고생은 많이 했지만, 그래도 니들 키우고 대학교 다니고 하니까 뿌듯하지. 엄마가 못한 거 니들한테 대학교래도 보낸다 하니까좋지

 

뿌듯뿌듯. 인터뷰를 하면서 가장 기분 좋은 말이었다. 자식에 대해 자신을 가지고 사시는 엄마. 자식을 내 몸보다 아끼시는 엄마. 그리고 이쁜 딸이라고 하는 엄마. 엄마 파이팅!!

 

: 지금까지 살면서 엄마가 된 거 후회안해?
엄마: 후회? 안하지내가 못한 걸 니들한테 다 하니까 좋지. 내가 못한걸 하니까. 대학가고 하니까.

 

인터뷰 내내 공부에 대해 엄마가 얼마나 미련을 가지고 계시는지 새삼 느꼈다. 그래서 더 이상은 목이 메여 물어 볼 수가 없었다.

 

: 아빠와 우리들 중에서 하나를 택한다면?
엄마: 니덜이냐 아빠냐? 그건 곤란한 질문이다. 니덜도 필요하고 아빠도 필요하고. 나이가 먹으면 자식은 품 안에 있을 때 그러니까 니들이 중학교, 초등학교 때 좋고, 그때는 우리 애들 아니면 못산다 하고 벌벌벌 떨었는데, 니들 고등학교 대학교 들어가니까 자유롭게 돌아다니잖아,

 

: 그러니까 아빠야?
엄마: 뭐 그런 건 아니지만 아빠하고 밥도 같이 먹고 아빠하고 대화도 많이 하고 하니까

 

: 결국은 아빠네.
엄마: 그러니까 니들 어렸을 때는 니들이었는데, 나이 먹으니까 아빠. 니들 시집가면 소요없잖아.

 

질투가 나면서도 기분 좋았다. 끝에는 자신있게 말하는 엄마. 내가 늦게 오면서 엄마도 많이 외롭고, 자식이 떠나간다고 느끼셨던 거 같다.

 

: 엄마 이름이 사라진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엄마: 그거에 대해서 불만은 없지. 그런데 직장생활 하다보면 이름 불러주니까. 산악회니 그런데 다니니까이름을 불러주니까 주지, . .

 

: 그러니까 좋아?
엄마: 좋을 때도 있지. 엄마 이름이 흔한 이름이라첨에는젊었을 때는 창피하게 느꼈지. 엄마 이름이 촌스러우니까.. 지금은 나이가 사십, 오십이 다 되가는 데도 엄마 친구들 만나면 친구가영자야하니까 좋더라.

 

: 영자야!! 

 

자신의 이름이 사라진다면 정말 서글플 것이다. 나라는 개인이 아닌, 어떤 부속품이 된 기분이랄까? 아무튼 엄마도 한참지은이 엄마로 불리다가 갑자기영자란 이름으로 불리면서 어리둥절했을 것이다.

 

: 엄마의 엄마는?
엄마: 오 할머니?

 

: 오 할머니히히
엄마: 오할머니는 인제 엄마가 할아버지 모시면서 엄마를 생각하고 했는데 엄마가 느끼는 게 아들이 필요하다는 거할머니를 대하는데 할머니는 어렸을 때도 우리 엄마고 한데, 결혼하니까 마음대로 못하고마음대로 못할 때딸이니까 이제 남편 눈치도 봐야하고못해주면 또 속상하고지금도 내가 아들이면 할머니 모시고 사는데니들도 가르치고 직장생활도 해야하니까그렇지도 못하고….

 

: 그럼엄마.. .할머니랑 엄마를 닮은 거 있어?
엄마: 닮은 거는자식 생각하는 거할머니가 나 생각하는 거나, 엄마가 너 생각하는 거나. 또 니가 자식 나서 생각하는 거나.

 

내가 엄마가 된다고? 난 조금은 두렵다. 나처럼 말 안 듣는 딸이라.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다. 할머니 얘기를 꺼내니까 미국에 계신 할머니가 생각나셨는지 표정이 어두웠다. 부모가 자식을 생각하는 것도 애틋하지만 자식이 부모 생각하는 마음도 같은 것 같다.

 

: 10대에 생각하는 할머니와 20대에 생각하는 할머니와 지금의 할머니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어?
엄마: 그럼 10대에는 자랄 때라 귀한 줄 알고, 그렇다가 20대에는 성장해서 배후 자를 만나니까 정이라는 것은 사람이 다 한가지에 쏟는 거니까 아무래도 배후자한테 쏠리니까 엄마를 잊고, 30대는 내 살림하고, 니들 키우고 할아버지 모시느라고 잊고 살고, 40대는 다 크고 니들은 밖에 있으니까 할머니 생각이 나지. 나이 먹으면서.

 

내 인생에서 엄마도 지금의 엄마가 할머니께 가진 생각과 비슷할 것이다.  

 


: 마지막으로 가족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엄마: 우리 가족 다 건강하고, 니들 착하게 잘 해서 대학 졸업 잘 하고 좋은 사람 만나고, 아빠 건강하고, 나이 들수록 아빠 아픈데 많으니까 아프지 말고식구들 다 건강하고 그렇지뭐.

 

엄마. 엄마는 늘 자신보다는 자식과 가족이 전부인 사람이다. 마지막 질문에 자신이 건강하기보다는 가족 그리고 남편이 건강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새삼 찡하게 와 닿았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서….

 

엄마 끝났어나는 열심히 인터뷰를 한 엄마에게 고맙다는 말을 못했다. 처음에도 그렇지만 너무 쑥스러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터뷰를 하고 정리하면서, 40, 여자의 인생이란 자신이 아닌 누군가에 의한 삶이라는 것을 알았다. 한때는 그런 삶들이 지루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엄마의 행복한 미소에서 그것이 단지 지루하지만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녹음된 내용들을 다시 들으면서 테이프 안에 크게 울려 퍼지는 엄마와 나의 웃음소리가 내내 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취재, 정리 : 이지은 (건양대 문학영상창작학과 학·[email protected]

 

 

엄마가 살아온 날들  

1958 9 16   대전시 대덕구 장동 작은집에서 일남 사녀중 셋째로 태어남

1968 3        대전시 대덕구 장동초등학교 입학

1974 2        초등학교 졸업

1980 8 31   큰딸 이지은 낳음

1983 11 21  남편 이종래 씨와 결혼

1983  2 16  둘째딸 이지혜 낳음

2001  현재      단란한 가족의 엄마로 살아감   

 


그리고 나  

1980 8 31일 대전시 대덕구 장동에서 태어남

1987 3      대전 복수 초등학교 입학

1993 3      대전 도마중학교 입학

1996 3      대전 서일여고 입학

1999 3      논산 건양대학교 국문학부 입학

2001 6월      건양대학교 문학영상창작학과 3년 재학중